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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과 함께 하는 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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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성장일기 댓글:  조회:486  추천:0  2019-10-22
                                                                          성장일기                                                                                                                                                                      8학년 3반  김찬성 일기쓰기는 글짓기와 학생들의 성장에 리롭다고 하지만 실지 일기를 꾸준히 쓰는 학생은 별로 없었다. 내가 일기쓰기를 시작하고 견지할수 있었던것은 우리 할아버지 덕분이다.  우리 할아버지는 나를 무척 아끼고 귀해 하신다. 평소에 술을 좋아하셔셔 동네 할아버지들이랑 자주 술자리에 나갔다가는 인사불성이 되셔서 옷을 두고 오시거나 신발을 바꿔신거나 지갑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았지만 유독 한가지만은 잊지 않고 챙겨오시군 하셨다. 바로 내가 좋아하는 사랑이다. 집문에 들어서면서부터 떨리는 손으로 이주머니 저주머니를 뒤지면서 “우리 손주 줄 사탕이 어디 있지?” 하시면서 나를 부르신다.  아버지는 어른이 되셨지만 할아버지를 무서워하신다. 어릴 대부터 아버지한테 아주 엄하셨고  야단도 많이 맞았고 매도 많이 맞으면서 컸다고 한다. 지금도 할아버지 말씀이면 꼼짝을 못한다. 하지만 나한테는 한번도 욕하거나 때린적이 없었다. 시험을 잘못 치고 울상이 되여 앉아 있으면 “괜찮다. 다음에 잘하면 되지? 사내녀석이 그러면 못써” 하시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신다. 혹시 내가 잘못한 일이 있어 아버지한테 야단을 맞고 울고 있으면  “ 괜찮다 사내녀석들은 원래 크고 작은 사고를 치면서 크는거란다. 뭘 잘못했는지 알면 되는거야.” 라고 하시면서 꼭 껴안아주신다. 그럴때마다 아버지는  알수 없다는 표정으로 할아버지를 바라보신다.  열살을 넘기면서 나도 다 컸노라 간혹 할아버지한테 대들기도 한다 그러면 할어버지는 “에끼! 이 버르장머리 없는 놈아…” 하시면서 내 이마를 튕겨 놓는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얼굴에 웃음을 띠고 계셨고 전혀 화난 기색이 아니였다. 그러던 할아버지가  어느날 갑자기 심장마비로 말 한마디 남기지 못하시고 우리 곁은 떠나가셧다. 그날 아침도 두고온 나의 도시락가방을 챙겨들고 헐레벌떡 뻐스정류소까지 쫓아오셔서 “이놈아, 할아버지가 언제까지 너의 곁에 있을수 있는거 아니야.! 이제는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해, 세상은 홀로서기야…”  이것이 할아버지가 남기신 마지막 알이 되였다.  그후 오래동안 나는 할아버지를 보낸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였고 말수가 적은 아이로 변해갔다. 내가 유일하게 할수 있는건 날마다 일기장으로 할아버지와 대화하느것이였다. 오늘 있었던 일, 내가 잘한 일  잘못한 일, 궁금한일 많은것들을 적으면서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였다.  이렇게 시작한지도 어언 삼년철을 잡는다. 나의 일기책도 다섯권을 넘어간다. 할아버지를 보낸 슬픔은 옅어졌지만 그리움은 짙어만 간다. 할아버지 덕분에 나의 일기책의 두께와 더불어 나의 마음의 키도 쑥쑥 커간다.  할아버지 고마워요 늘 지켜봐주세요  잘 클게요  사랑해요      평어: 할어버지의 사랑을 감동적으로 잘 엮었고 할아버지의 가르침도 자신의 일기쓰기와 련계시켜 잘 보여주었다.                                                        지도교원: 허복순   
3    할머니와 닭백숙 댓글:  조회:340  추천:0  2019-10-22
                                                                할머니와  닭백숙                                                                                                                                                       8학년 1반  신미정 눈이 내리는 날이면 난 어김없이 닭백숙을 시켜 먹는다. 뽀얀 국물에서 할머니의 웃는 모습을 떠올리면서 돌아가신 할머니를 기린다. 내가 다섯살 때 엄마, 아빠는 철없는 나를 할머니한테 맡기시고 큰돈 번다며 외국으로 떠나셨다. 그해 겨울 할아버지가 갑자기 중풍에 걸려 운신도 제대로 못하고 자리에 드러눕게 되였다. 엄마, 아빠는 미안하여 할머니가 고생하신다고 나를 전탁 맡기겠다고 하였지만 할머니는 “내가 죽기전에는 손녀를 남의 집에 못보낸다” 라고 하시면서 기어이 나를 맡으셧다. 나는 낮에는 할머니옷자락을 쥐고 놓지 않았고 밤에는 할머니 품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학교 붙을때도 할머니 손을 잡고 갔고 운동회때도 할머니 손을 잡고 갔고 소학교 졸업식때도 할머니 손을 잡고 등장하였다. 할아버지의 병시중에 나의 뒤바라지까지 하시느라 할머니의  머리는 눈처럼 하얗게 되셨고  이마의 주름살은 밭고랑처럼 푹 패여 들어갔으며 허리는 어찌나 심하게 구부러지셨는지 동네 아이들한테 꼬부랑할머니라고 놀림 받기도 하신다.  그해 겨울은 눈도 많이 내렸었다.  창밖에서는 살을 에이는듯한 바람이 기승을 부리며 울부짖고  집에서는 할아버지의 기침소리가 멎을줄 몰랐다. 게다가 감기기운이 있으신 할머니는 이불을 쓰고 자리에 누우셨는데 점심밥도 못하시고 저녁때가 되였는데도 일어나지를 못했다. 나는 너무 배가 고파 할머리를 깨웠다. “할머니, 배고파요.” 할머니는 그제서야 아픈 몸을 일으켜 세우시더니 물으셨다. “그래, 할미가 정신없이 잤구나. 우리 손녀 뭐가 먹고 싶은데?” 나는 닭백숙이 먹고 싶다고 하였다. 그러자 할머니는 “할미가 몸이 안 좋아서 해줄수는 없구 사다 줄게 “ 하시면서 주섬주섬 옷을 주어 입으셨다. 그때 할아버지가 말리고 나섰다. “날도 춥고 눈이 녹아서 얼음강판인데 그 몸을 해가지구 어떻게 간다고 그러오,  큰일 나겠소 대충 먹으면 되지..” 할어버지의 말에 나는 기가 죽어 의기가 소침해졌고 뽀로통해서 자기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의 눈치를 살피시던 할머니는   “괜찮아유,  금방 갔다올게유,  손녀가 먹고 싶다는데 왜 못 가겠수” 라고 하시더니 밖으로 나가셨다.  그렇게 나가신 할머니는 한나절이 지나도 돌아오지를 않으셨다. 나는 저으기 당황해나기 시작하였다. 혹시 무슨 사고라도 난건 아닐가?  넘어지셔서 못 일어나시는건 아닐가? 혹시라도 일이 생기면 나 어떡하지? 여러가지 불길한 생각들이 떠오르면서 나는 무서워나기 시작하였고 눈물이 날것 같았다.  그때 현관문이 드르륵 열리면서 배가 유난히 뚱뚱한 눈사람이 들어섰다.  할머니였다. 백숙이 식을가봐 솜외투 안에 꼭 감싸고 오신것이였다.. 나는 너무도 놀라고 미안하여 그 백숙이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먹었다. 눈물과 함께 꾸역꾸역 입에 퍼넣었다.  그 뒤로 할머니는 된 감기에 걸리셔서 시름시름 앓으시다가 일년을 못 넘기고 돌아가시고 말았다. 나는 그것이 마치도 내 잘못인것 같아서 마음이 괴로왔다. (나만 아니였다면 할머니가 더 오래 앉으실수도 있었겠는데) 하는 생각을 뿌리칠수가 없었고 내가 죄인인듯 싶었다. 오늘도  송이송이 흰눈이 살풋이 창틀에 내려 앉는다. 나는 어김없이 닭백숙을 시켜 먹으면서 뽀얀 국물의 향을 느껴본다, 할머니의 사랑이 그 향속에 듬뿍 들어있는것 같아서… 창문을 열고 두손으로 눈을 받는다. 두손을 맞잡는다. 차거운 눈이 녹으면서 내 손바닥을 얼얼하게 해준다. 눈을 감는다. 사랑하는 우리 할머니 저 세상에서는 힘들지 마시고 상처받지 마시고 행복하게 살게 해달라고  따뜻한 나의 체온으로 눈에게 부탁을 해본다.   평어: 할머니의 사랑을 닭백숙이라는 매개물을 통하여 진한 감동을 주는 글이였습니다.                                                       지도교원: 허복순   
2    그날의 해빛은 찬란했다. 댓글:  조회:339  추천:0  2019-10-22
                                                     그날의 해빛은 찬란했다.                                                                                                                                                   8학년 3반    엄지혜 방학이 시작되였지만 내 마음은 쓸쓸하기만 했다. 1학년 마지막기말시험에서 노력을 하지 않은 탓에 성직이 곤두박질을 쳤기 때문이다. 그 날은 날씨가 유난히도 좋았다. 우울해서 상을 찡그리고 앉아있는 나에게 엄마는 카카오성분 100프로인 쵸클렛을 주었다. 색갈이 어찌나 검은지 보기만 해도 꼐름해나서 도저히 입에 넣고 싶지가 않았다. 엄미가 억지로 막 입에 넣어주셨다. 혀끝에 닿는 순간 쓴맛이 입안 전체에 쫙 퍼져갔다.  “퉤퉤! 이런걸 어떻게 먹어…” 나는 신경질을 쓰면서 뱉어내려고 하였지만 엄마는 입을 다물고 잠간만 기다려보라고 하셨다. 그랬더니 말하는 사이에 벌써 은은한 단맛이 쓴맛을 걷어가면서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어느새 달콤함이 온 입안을 꽉 채워갔고 목구멍을 넘어가는 순간 저도몰래 얼굴에 느슨한 미소가 지어졌고 행복감이 온 가슴을 메워왔다. 엄마는 예견하고 있었다는듯이  “달지?” 하며 의미심장하게 읏으시였다.  “ 공부도 그런거야? 한번 쓴맛을 보았다고 결코 뱉어서는 안돼. 그러면 영원한 쓴맛만 맛보게 될거야. 아무리 써도 그속에서 단맛을 찾을줄 알아야 돼, 그래야만 진정한 승자가 되는거란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되겠어? 어깨도 펴고 얼굴도 펴. 당당하게 래일의 태양을 맞이해야지.  엄마는 우리 딸 믿어 알겠지!...”  “네…”  목이 메여왔다. 쓴맛 한번 봤다고 뱉어버리려고 한 자신이 부끄러워서, 단맛을 알게 한 엄마가 고마워서. 나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입을 꼭 다물었다. 좀더 성숙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해빛이 문틈사이로 비집고 들어와 내 얼굴을 쓰다듬어준다. 나는 창문을 활짝 열고 찬란한 해빛을 맞아들였다.  “아!...” 가슴이 뻥 뚫리는듯 하였다. 그날의 해빛은 유난히 찬한하였다.   평어: 쵸클렛의 맛으로 딸을 일깨워주는 지헤로운 엄마의 형상을 그린점이 돋보인다.                            지도교원:   허복순  
1    조선기행 댓글:  조회:404  추천:0  2019-10-22
조선 기행 8학년 4반   유지혜 여름방학때마다 가족려행을 떠나는것은 우리 집의 전통이다. 나의 강렬한 요구에 의하여 이번 려행지는 북조선 경진에 있는 동해바다로 가기로 하였다. 우리 이웃에 살고 있고 또 같은 민족인데 어떻게 사는지 많이 궁금했었다. 우리의 일정은 2박3일로 되여 있었다.   첫날,우리는. 경진에 위치한 유치원으로 갔다. 내부 시설은 무척이나 깜끔했다. 우리는 먼저 어린이들의 서예작품을 감상하러 전시관으로 들어갔다. (북조선 애들이 그림을 그리면 얼마나 잘 그렸을가? ) 나는 별 기대 없이 서예와 회화작품을 감상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내 생각과는 달리 너무나 아름다운 그림들이 전시되여 있었다. 향기가 날듯한 싱그러운 곷작품, 금방 날아나올듯한 새작품, 내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나는 속으로 혹시 어른들 그림을 전시해놓고 우리를 기만하는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다음은 어린이들의 예술공연이였다. 꼬마어린이들의 예술공연은 참으로 정채로왔다.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악기면 악기 어느것 하나 흠잡을데가 없었다. 나의 눈과 귀가 호강을 하는 날이였다. 나도 어릴때부터 악기를 이것저것 다 배워봐서 어느젇도 악기를 익히는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실감하고 있었다.  십년을 배운 나의 사물놀이 실력이 5다덧살 짜리 북조선어린이보다 못하다니 참 부끄럽게 느껴졌고 반면 여기 어린이들이 어려서부터 얼마나 부지런하고 악착같이 련습하고 익혔으며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을 흘렸을지 가히 짐작할수가 있었다. 그들의 끈기에 감탄을 금할수가 없다. 더불어 아까의 그림실력도 확실히 어린이들의 작품일거라는 확신이 서면서 아무 근거없이 경제가 락후하다는 것만으로 사람들을 믿어주지 않고  의심했던 자신이 너무 하찮게 느껴졌다. 공연이 끝나고 그들의 깍듯한 인사를 받으면서 우리는 아쉬운 마음으로 유치원을 나섰다.  방금 그들에 대한 “거만함”이 너무도 미안하여 나는 그들을 행해 손을 흔들고 또 흔들었다.  이튿날 우리는 뻐스를 타고 칠보산으로 향했다. 칠보산은 내칠보, 외칠보 해칠보 세개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등산은 힘들었지만 정상에 오른뒤의 감수는 역시 남달랐다. 뿌듯함과 성취감이 확 밀려들면서 마음이 후련해 났다.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넘어갔다. 멀리 동해바다가 어렴풋이 안겨왔다. 우리는 해칠보에서 하루밤을 묵고 이튿날 동해바다로 가기로 했다.  삼일날 우리는 뻐스를 타고 동해 바다로 향했다. 멀리서 바라보니 푸른색으로 어우러진 하늘과 바다는 계선이 알리지 않고 한톡의 푸른색천을 펼쳐놓은것 같았다. 가까이 다가서니 철썩-처절썩 바위에 부딫치는 물소리가 귀청을 때렸고 시원한 바다물이 사정벗이 내 몸을 덮쳤다. 나는 깜짝 놀라 “어머나!”를 부르며 몸을 휘청했다. 하마트면 물에 빠질번하였다. 개발을 하지 않아 순수 그 자체인 조선의 바다는 너무도 맑고 깨끗하고  장엄하였다.                   바다구경을 마치고 우리는 모여 앉아 점심 식사를 했다. 조선 주민들도 가족려행을 온듯 단란하게 모여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비록 옷차림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웃음만큼은 너무도 순수하고 아름다와 보였다. 아마도  나름대로의 행복을 찾아 자신들만의 생활을 즐기는듯 싶었다. 그 모습이 참으로 행복해보여 마음 한구석이 흐뭇해났다.   드디여 우리가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같은 민족 같은 음식 같은 맛, 여기서 먹으니 더구나 감회가 새로왔다. 역시 우리는 한 피줄임을 더욱 실감나게 하였다. 조선 아주머니들의 손맛도 출중했다. 거기에 후한 인정까지 더해주니 그야말로 꿀맛이였다. . 나는 끝없이 펼쳐진 동해바다를 바라보며 오래동안 생각에 잠겼다. 조선의 미래가 저 끝없이 펼쳐진 동해바다처럼 발전해 갔으면 얼마나 좋을가? 내가 누리는거 이들도 함께 누릴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가? 우리는 형제니까!  중국과의 친선관계도 마르지 않는 동해바다 물처럼 오래오래 우지됐으면 하는 소망을 안고 귀로에 올랐다. 평어: 짙은 민족애릐 정신이 엿보여 감동적이였다.                          지도교원:   허복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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