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두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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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허씨 3형제의 동화 그림책으로 출간 댓글:  조회:1193  추천:0  2018-07-02
           허씨 3형제 동화 그림책으로 출간 2018년06월26일 09:01 출처: 길림신문   조회수:398   민족문자출판물 특별보조프로젝트로 출간되는 중국조선족작가 창작그림책 시리즈의 동화편으로 허충남, 허봉남, 허두남 3형제의 동화가 선정되여 연변인민출판사의 출판으로 일전에 독자들과 대면했다. 허충남의 《우주인의 만능옷》과 허봉남의 《칠동이의 변신술》은 화가 신순칠이, 허두남의 《뽐내던 날치》는 화가 김휘가 배합그림을 그렸는데 《우주인의 만능옷》에는 , , , 등 4편의 동화가, 《칠동이의 변신술》에는 , , 등 3편의 동화가, 《뽐내던 날치》에는 , , , 등 16편의 동화가 수록되였다. 1940~1950년대에 화룡시 로과에서 출생한 허씨네 3형제는 수십년간 아동소설, 동화, 우화, 수필, 희곡, 동시 등 다양한 쟝르의 문학창작을 하였는데 중국조선족아동문학사에서 중요한 한페지를 차지하고 있다.    
8    허두남의 구연,희곡집《뽀뽀》 출간 댓글:  조회:1279  추천:0  2017-05-24
허두남의 구연,희곡집《뽀뽀》 출간              허두남 지음     구연희곡집 . 중국 조선족 작가 허두남이 다년간 전업단체무대에 올렸던 작품들을 위주로 묶은 구연희곡집이다. 신랄한 필치로 현실생활 가운데의 부정과 비리를 파헤치고 있다. 작품 본래의 맛을 살리기 위해 작가가 사용한 표현을 그대로 실었다. 해학과 풍자가 넘치는 작품들을 통해 연변 구연희곡예술의 일각을 충분히 엿볼수 있다.                                      허튼 말      좋은 코미디작품을 공연한뒤면 극장에 배꼽이 한벌 쫙 깔린다고 한다. 관중들이 배가죽을 풀떡거리면서 웃는바람에 배꼽이 톡톡 튕겨나오기때문이다. 그래서 명작가들이 쓴 코미디작품을 공연한뒤 극장을 청소하는 청소부는 배꼽을 한바구니는 줍는단다.   몇해전 나의 구연특집을 공연하던 날 나는 품속에 비닐주머니를 넣고 극장에 갔다. 공연이 끝나는대로 극장에 널린 배꼽을 주어넣으려는 것이였다.    (지금은 젊은 여자들이 모두 배꼽을 내놓고 다니니 웃을 때 배꼽이 실수 없이 극장 바닥에 떨어질테지! 한주머니 넘쳐나지나 않을가?)   공연이 끝나고 관중들이 다 나가자 나는 극장안을 두리번거리면서 돌아다녔다. 머리를 수굿하고 마루바닥을 눈빗질하는 나를 보고 청소부할아버지가 뭘 찾느냐고 물었다. 내가 관중들이 웃을 때 빠진 배꼽이 있나 해서 찾는다고 하자 나와 잘 아는 할아버지는 앙천대소하였다.   “그 정도로 웃겨 배꼽이 빠져요? 작가선생은 자아감각이 참 좋군요!”   하지만 나는 아무렴, 배꼽 하나도 안 떨어졌을가고 그냥 찾고 찾았다. 그럼 그렇지! 드디여 배꼽 하나를 주어들었다.   “보세요. 이게 그래 배꼽 아닌가요?”   청소부할아버지는 내손에서 그것을 받아쥐고 자세히 들여다보더니 또한번 앙천대소하였다.   “이건 배꼽이 아니라 누가 떨어뜨린 개암알이구만!”   다시 보니 아닌게아니라 개암알이였다.   할아버지는 너무 우스워 턱을 제끼고 껄걸 웃다가 그만 턱이 내려앉아서 입을 다물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고 나에게 손짓만 하였다.   바빠맞은 나는 구급차를 불러 할아버지를 병원으로 모셔가며 복새판을 벌렸다. 웃음을 창조하는 일은 천사만이 할수 있음을 몰랐던 나의 한단락 에피소드이다.   목차 제1부 재담편 손이 맞는 부부    김영식 주미옥 출연 바보 평방   강동춘 등 출연 뽀뽀    리동훈 김홍옥 출연 연분    연변일보 편작의 후예들   전영호  한석준 출연 오미자    최재천 리애순 출연 혹 뗀 이야기    리동진 등 출연 제일    방송예술단 출연 수수께끼    한석준 전영호 출연 돌이와 금싸락(아동재담)    소년보 병(아동분장재담)     방미자 주월선 리애순 출연 제2부 만담편 무촌   강동춘 출연 말    김홍옥 출연 젖    리봉호 출연 똑똑이    김영식 출연 심술통    연변일보 제3부 소품편 남매간    원용란 김형관 고송희 출연 감주   리동훈 오선옥 전영호 출연 로임봉투    로영철 김해란 왕순녀 출연 어머님 생일날    김동현 원용란 박숙자 김아정 출연 숙직실 별난 다툼질    리봉호 주춘복 등 출연 그놈이 그놈    김문혁 황명화 전영호 출연 화목한 가정 아첨 경기    김영식 리동훈 전영호 출연 요술 남편은 떠보는게 아니야    연변일보 상점 부경리 순돌령감과 왈패로친    황명화 장미옥 전영호 출연 허풍선이 로맨스 렬차에서 만난 사람    전영호 등 출연 돼지 판 돈    최인호 리옥희 김미화 출연 말미 풍파     체용 최해연 리명옥 출연 꼼짝 말앗! 뜨물주정     김동현 박정복 김형관 출연 우리 구연단 좋을시구 담배질 견습생(아동소품) 너무 고마워서(TV소품)     리동훈 오선옥 리미옥 출연 특별가족사진(TV소품)     김위동 윤향화 박숙자 한성후 출연      
7    "문단3총사" 허씨 3형제 작품선 출간 댓글:  조회:960  추천:0  2017-05-08
 “문단3총사” 허씨 3형제 작품선 출간     허충남,  허봉남,  허두남— 허씨 3형제의 아동문학작품선 “자기를 잃어버린 아이”가 연변인민출판사에 의해 출간되였다.   작품선에는 3형제가 다년래 창작한 작품중에서 아동소설, 동화, 수필등 30여편을 선별하여 묶었다.     허씨 3형제는 지금까지 아동장편소설 “엄마 찾는 아이”, 동화집 “거꾸로나라 , 우화시집 “사탕을 좋아하는 애”등 17권을 출간,  “동북3성 우수도서상”, “길림성우수도서상”, “연변작가협회 1등상” 등을 수상했다.   김혁 기자   “종합신문” 2011년 7월 4일        
6    《우리네 동화우화》 출간기념모임 개최 댓글:  조회:817  추천:0  2017-04-27
《우리네 동화우화》출간기념모임 개최 래원:연변일보      2013-12-24 09:15:00   2000년대 중국조선족동화우화집 《우리네 동화우화》출간기념모임이 20일 오후 연길에서 있었다. 활동은 연변조선족아동문학연구회와 연변작가협회 아동문학분과에서 주최하고 연변아동병원에서 후원했다. 《우리네 동화우화》(연변대학출판사)는 2000년대이후 아동문학작가들이 창작한 동화와 우화를 수록, 허두남이 주필, 림철, 김철호가 부주필을 맡았다.책은 연변조선족아동문학연구회에서 기획,출판하는 중국조선족아동문학작품집시리즈가운데 하나로 2011년에 출판한 《2000년대 중국 조선족10인동시집》에 이은 두번째 아동문학작품집이다. 이번 동화우화집은 동화편과 우화편으로 나뉘였는데 각각 정문준, 김미란, 전복록, 전춘식, 림철, 박영옥, 주덕진, 김만석, 리영철 등 9명 작가의 동화 24편과 김선파, 허두남작가의 우화 19편이 수록됐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림철과 김현순이 각각 "동화문학의 발전과 창달의 공간 확대 요청"과 "미래지향적 동화의 이미지"를 제목으로 평론을 발표했다.    
5    허씨3형제의 남다른 문학사랑 댓글:  조회:848  추천:1  2017-04-23
허씨 3형제의 남다른 문학사랑 —문학인 3형제 허충남, 허봉남, 허두남의 이야기 채선애       독일에 수많은 동화작품을 창작해서 이름을 날린 그림형제가 있다면 우리 연변에는 여러가지 쟝르의 문학작품을 무더기로 발표하고 도합 17권의 책자를 출판하여 문학인 3형제로 소문을 놓은 허충남, 허봉남, 허두남이 있다.     두만강변에서 태여나 맑은 물을 마시고 자란 이들 3형제중에서 맏이 허충남선생은 시작품을, 둘째 허봉남선생은 소설작품을, 셋째 허두남선생은 극작품을 많이 창 작하였지만 세분이 모두 아동작품창작을 더없이 사랑하는지라 얼마전에는 3형제 아동 문학작품을 함께 묶은 단행본 《자기를 잃어버린 아이》를 출간하기도 하였다. 맏형님을 하늘나라로 떠나보내고 둘째형님이 인사불성이 되여 누워계신지 여러해 되는 지금에 와서 홀로 문필활동에 종사하고있는 셋째 허두남선생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본다.   “마당형님” 허충남     어린 시절 셋째 허두남은 맏형님이라는 발음을 잘 번지지 못해 큰형님인 허충남선생을 “마당형님”이라고 불렀다. 그 말이 “씨”가 되였는지 허충남선생은 진짜로 평생 시골을 떠나지 않고 명실공히 제집 마당을 지키는 “마당형님”이 되였다. 기실 자식이 9남매나 되는 대가정에서 제일 먼저 문학의 길에 들어선 사람도, 동생들을 문학의 길로 이끌어준 사람도 맏이인 허충남선생이였다.       1939년생인 허충남선생이 태여난 곳은 두만강변에 위치한 조선 함경북도 무산군 량영리 오리장마을, 다년간 월강농사를 지어 생계를 유지하던 가정이 1946년에 강건너 중국땅으로 이민오면서 13호 동네인 화룡시 남평진 길지촌 송전동에서 살게 되였다. 목재판에서 뜨개소를 잘 다루기로 이름난 아버지는  또한 이야기를 잘해 소문을 놓았다. 아버지는 밥상에 마주앉아서도 국수오리가 질기면 “줄싸움(바줄잡아당기기)을 한다”고 말할 정도로 언어가 다채롭고 형상성이 풍부했다. 이런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랄가 허충남은 어려서부터 책읽기를 좋아하고 문장을 제법 잘 지었는데 초중 1학년때에는 작문 “소조학습의 저녁”을 소년아동신문에 발표하기도 하였다. (이것은 남평향이 생겨나서 어른이고 아이고 다 하여 처음 발표한 글이다.)     그후 가정생활난으로 초중를 중퇴하고 농사일에 몸을 담았지만 문학만은 버릴수 없었던 그는 열심히 독서를 하고 부지런히 습작을 하면서 차곡차곡 문학기량을 쌓았다. 20살의 애젊은 나이에 허충남은 발목뼈에 이상이 생겨 3년동안 앉음뱅이로 살았다. 현립병원에서 발목을 절단하라는 진단을 받았으나 죽으면 죽었지  못하겠다고  한사코 자르지 않았다. 눈물겨운 그 3년동안 바깥출입을 마음대로 할수 없게 된 그는 병치료를 하는외의 시간을 몽땅 독서와 습작에 할애하였다. 이 시기에 와서 끄릴로브의 우화시에 특별한 흥취를 가지게 되면서 시인이 되기로 작심한 그는 시공부에 심혈을 쏟기 시작했고 우화시 “메돼지”를 소년아동신문에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동불사에 있는 로중의 서의사의 처방에 따라 메밀엿을 환부에 붙이고 기적적으로 병이 나은 허충남은 부모님들을 도와 농사일을 하는 한편 시간만 있으면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시와 문학평론을 애독했던 그는 하많은 문학작품을 접촉하면서 국내외의 문학명인들을 더없이 흠모하였다. 한번은 수수깡으로 액자를 만들어 마야꼽스끼, 로신, 박지원, 엄호석의 사진을  벽에 걸어놓았는데 그때 집에 주숙했던 군대들이 머리를 빡빡 깎은 마야꼽스끼를 흐루쇼브인가해서 자꾸 캐물은 일이 있다.      허충남의 영향으로 두 동생인 허봉남과 허두남은 물론 남평향에는 많은 문학애호가들이 나타났다. 1975년 시를 쓰는 젊은이들이 많아지자 허충남은 당시 남평문화소 소장인 김응룡을 도와서 이런 시애호가들을 조직하여 연변인민출판사 출판으로 된《공사의 아침》이라는 시집을 출간했다. 이 책은 문화대혁명후 제일 처음으로 출간된 지방작품집이다. 책에는 허씨 3형제 외 김응룡, 최룡관, 신창수, 박상국 김영철. 최홍일(당시 남평향에 하향지식청년으로 내려갔던 지금의 연변작가협회 부주석)등 남평향의 문학애호가들의 시작품 46수가 수록되여있다.  출판사에서는 남평향의 시집원고가 올라온다니 거개 민가가 올라올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알쭌한 서정시들이여서 어지간히 놀랐다고 한다. 작품집중의 “로전사 고향에 돌아왔네”는 초중교과서에 수록되기도 했다. 차츰  남평은 화룡시 나아가 전반 연변의 농촌문학활동중심지로 중시를 받게 되였고 허충남은 문학스승으로 젊은이들이 우러러보는 존재가 되였다.     1976년부터 남평중학교에 들어가 조선어문교원으로 된 허충남선생은 문학리론연구와 작품창작에 정진하는 한편 후대양성에  알심을 넣어 여러명의 문학애호가들을 양성해내였는데 현재 시인으로 성공한 제자들로는 박장길과 김영건이 있다.     시인으로서의 허충남선생이 가장 존경하는 시인은 조선의 조기천과 영국의 바이론이였다. 시창작에서 랑만주의풍격을 선호한 선생은  중국시인들가운데서는 두보보다 리백을 더 좋아했다.      수십년의 창작생애에서 선생은 또 리영식아동문학상을 수상한 동화집 《꺼꾸로나라려행기》를 비롯해서 많은 아동작품을 어린이들에게 선물하였다.     당년에 허충남선생의 그늘에서 문학활동에 종사하던 두 동생을 포함해서 김응룡, 최룡관, 리태학, 박장길, 김영건 등은 선후로 연길에 진출했지만 허충남선생은 산골에서 일생을 마치였다. 평범한 시골백성으로 한생을 살아가는것이 소원이였던 선생은 화룡3중에서 작문교원으로 초빙할 때도, 남평중학교에서 교장직을 맡으라고 할 때도 완곡하게 사절하고 2009년에 심근경색으로 돌아갈 때까지 고스란히 “마당형님”으로 살았다.   “애서가” 허봉남     형님 허충남선생과 마찬가지로 조선에서 태여났지만 어머니의 잔등에 업혀 중국땅에 들어온 허봉남은 형님의 영향을 받아 어린 시절부터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했고 소학교 6학년때에 소년아동신문에 “눈내리는 아침”이라는 작문을 발표하였다.     당시 선생님들로부터 천재적인 문학소년이라고 긍정을 받을 정도로 글솜씨가 뛰여났던 그는 그때에 벌써 《범죄의 길》(미발표작)이라는 장편소설을 썼고 초중시절에는 동화 “다람쥐”룰 완성해서 소년아동신문에 투고하였지만 편폭이 너무 긴 관계로 채용되지 못했다.(편집부에서는 동무를 발견한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면서 작품을 참고로 두었다고 했다.)     장남인 형님이 초중도 채 졸업하지 못하고 농사일을 하는판에 고중공부를 기대할수도 없게 된 허봉남은 초중졸업전야에 진학시험을 포기하고 매일 두만강가에 나가서  조선작가 리기영의 장편소설 《두만강》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복습도 제대로 하지 않고 진학시험에 참가한 그가  다른 2명 녀학생과 더불어 고중에 진학하게 될줄이야?     여느 집들에서는 경사가 났다고 기뻐날뛰겠는데 돈이 없어 뒤바라지를 해줄수 없 허는 허씨네 가정은 초상난 집처럼 썰렁했다. 미구에 자식의 전도를 막을수 없게 된  부모님들이 이를 악물고 둘째아들을 고중에 보내지만 구차한 살림형편때문에 공부를 계속할수 없게 된 허봉남은 몇달뒤 휴학을 결심, 1년간 농사일을 하면서 문학창작에 종사했다. 그즈음 최우등의 성적으로 소학교를 졸업한 녀동생도 초중진학을 포기하고 농사일에 몸을 담았다.     모처럼 길지촌에 내려왔던 남평향당위 제1서기  최해당동지(후에 화룡현 현장)가 이 정황을 알고 녀동생을 공급판매합작사 판매원으로 취직시켜주었다. 이렇게 허봉남은 녀동생이 출근하면서 벌어들인 로임으로 고중공부를 마칠수 있게 되였다. 고중시절 허봉남이 창작한 “상처자국”이란 단편소설은 상당한 수준이였는데 공교롭게도 그 즈음 발표된 황봉룡선생의 희곡 “상촌의 소나기”와 내용이 비슷한바람에 해빛을 보지 못하고말았다. 허봉남의 동창이고 문우였던 리태학은 지금도 그 소설에 쓰였던  “억병으로 취하여” “장잎 쩍쩍 뻗은” 등 구절을 입에 올리면서 허봉남의 높은 어휘기교에 대해 감탄을 아끼지 않고있다. 책을 눈동자처럼 아끼는 허봉남이였지만 사전을 통으로 외우려는 욕심에 하루 사전 한장씩 찢어서 외우고는 찢은 책장은 구겨서 버리군 했다. 그런데 1년 휴학으로 고중을 한해 늦게 졸업하면서 대학진학의 길이 막혀버렸다. 전례없는 문화대혁명이 터지면서 학생을 모집하지 않는통에 평생 대학문턱을 넘어보지 못하는 유감을 지니게 되였던것이다.     어쩔수없이 귀향지식청년이 된 허봉남은 농사일을 하는 여가에 문학작품을 창작하면서 농촌문화활동의 골간으로 활약하였다. 그러다가 한마을의 김응룡과 함께 화룡현교원강습반에 들어가 공부할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였다. 이렇게 몇년간 농사일을 하다가 중학교 조선어문교원이 된 허봉남선생은 교수임무를 착실하게 완수하는 전제에서 문필활동에 열성을 쏟았고  10년뒤에는 화룡현문련 창작실에 전근되여 김문회선생과 더불어 전직창작원으로 일하게 되였다.     그뒤 다시 연변일보사, 연변인민출판사를 전전하며 문학편집사업에 몸을 담게 된 허봉남선생은 다른 사람들의 작품을 정성껏 다듬어서 신문 또는 책자에 실어주면서도 새록새록 새로운 작품들을 발표하면서 문필활동에 극성을 부렸다. 이 시기에 와서 선생이 고중시절 일기장에 적어두었던 사소한 이야기들이 작품의 뼈가 되고 살이 되여 선생은 현실생활을 반영하면서도 음미할 가치가 있는 소설작품을 련속 내놓을수 있게 되였다.     동생 허두남선생의 소개에 따르면 허봉남선생은 고중에 다닐 때부터 일기를 쓰는 습관을 키웠다. 하루동안 보고 듣고 겪은 일들을 세부묘사까지 하면서 어찌나 생동하게 적었는지 소설책보다 더 재미있어서 동생인 허두남은 한시기 심심할 때면 형님의 일기장을 뒤적이는것을 소일거리로 삼았다고 한다. 허두남선생은 만약  문화대혁명기간에 여러권이나 되는 일기장을 없애버리지 않았더라면 형님이 더욱 많은 작품을 발표할수 있었을거라며 아쉬운 심경을 내비치였다.     소설가 허봉남선생에게서 가장 특징적인것은 책에 대한 사랑이다. 소학교시절에는 금방 서점에 나온 조수리의 중편소설 《리가장의 변천》을 하도나 사고싶어 어머니 몰래 남비를 페품수매소에 팔아서 돈을 마련했고 고중시절에는 한사발에 3전씩 하는 국도 사먹지 않으면서 돈을 절약해서 한권에 2원도 넘는 《세계문학선집》을 사들였다는 허봉남선생이다. 아글타글 책을 모은 선생은 화룡에서 세집을 10여차씩 옮기며 힘들게 살던 나날에도 책만은 단 한권이라도 버릴세라 비닐마대에 담아 정성들여 간수했고 장서가 아무리 많아도 눈에 드는 책이 있으면 주머니사정과는 상관없이 꼭 사놓고야 시름을 놓았다.     사위가 책을 빌려달라고할때 “딸은 가져가도 되지만 책은 안된다!”고 하면서 말도 다시 꺼내지 못하게 할 정도로 책에 대해서만은 지나치게 몰인정하고 린색한 “애서가”이다. 아빠트에 들게 되자 선생은 객실 한칸 벽을 몽땅 책장으로 만들고 건축설계사가 고층건물을 설계하듯 낡은 책과 겉보기에 못한 책들은 안쪽에, 표지가 멋스러운 책과 정제본은 바깥쪽에 두겹으로 모셨다. 그리고는 금고문을 잠그듯  자물쇠를 꽁꽁 잠궈놓고 동생들이 빌리러 가도 “그 책이 어디에 꽂혔는지 모르겠다”, “책장열쇠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어째 도서관에 가서 빌리지 못하니?”라고 하면서 빌려주지 않을 때가 많았다.     허봉남선생은 작가중에서 발자크를 가장 숭배했고 작품으로는 숄로호브의 《고요한 돈》을 특별히 사랑했다고 한다. 조선작가중에서는 리기영과 천세봉을 제일 좋아했다. 소설창작에 조예가 깊은 허봉남선생도 형님 허충남선생과 마찬가지로 아동작품창작에 취미가 있어서 중병에 걸려 인사불성이 되기전까지 성인소설을 많이 창작한외 아동장편소설 “엄마 찾는 아이” 동화집 “수림속의 생사박투” 중국조선족문단에서 처음으로 된 과학소설집 《까불이 모험기》 등 7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는데 이런 책들은 모두 주급이상의 상을 수여받았다.   말없는 실천가 허두남     1950년생인 허두남선생은 소학교시절부터 큰형님이 보는 《끄릴로브우화집》을 따라 읽고 형님을 본받아 우화시를 쓴답시고 머리를 쥐여짰다. 소학교 6학년때에 작문 “생일날”을 소년아동신문에 발표하면서 문학창작에 자신감을 갖게 된 그는 중학교를 졸업한후 대대선전대의 공연프로를 창작할 중임을 떠메고 재담이며 촌극, 가사 등을 닥치는대로 창작하며 실천가운데서 창작기량을 닦았다.     1977년 봄에 이웃향인 용화향에 가서 대과교원으로 사업하게 된 허두남선생은 2년뒤인 1979년에 31편의 우화시로 우화시집 《개미와 코끼리》를 묶어서 연변인민출판사에 투고했다. 당시 문예편집이였던 류원무선생님과 김창욱선생님은 그 작품들을 높이 평가해주었고 김창욱선생님은 멀리 용화에까지 찾아와서 수정의견을 제기해주었다. 용화중학교 교장 조창송은 덕재를 겸비하고 흉금이 넓은 호남아였는데 이름없는 시골의 대과교원이 책을 낸다는건 대단한 일이라고 하면서 개학초 다른 교원들이 참나무버섯재배때문에 로동에 종사하는 드바쁜 와중에 집에서 작품을 수개할 특혜를 주었다. 이렇게 중국조선족문단에서 우화책이 없던 공백을 메꾼 허두남의 처녀작작품집은 고마운 여러 사람들의 지성어린 관심속에서 고고성을 울리였다.     1982년 가을에 허두남선생은 화룡탄광중학교에 들어갔는데 전근해간지 1달만에 연변작가협회에서 문학반을 모집하게 되였다. 그때 30대초반의 조선족작가중에 단행본을 낸 사람은 허두남뿐이였는데 문학반의 초생을 책임진 당시 작가협회 김기형비서장은 현문련에다 허두남을 보내달라고 이름을 찍어 부탁했다. 그런데 탄광에서 내놓지 않는 바람에 포기할수밖에 없었다. 이때부터 탄광을 떠나 보다 많은 시간을 문학창작에 투입할수 있는 단위로 가기로 마음을 굳혔던 허두남선생은 후에 당시 현당위 선전부장인  김동운동지(주인대 부주임 력임)의 도움으로 현방송국 문예편집으로 전근하게 된다.     방송문예로 전문창작의 길에 들어선 선생은 선후로 중학생신문, 연길시 창작실 등 단위로 자리를 옮기며 창작이라는 한우물만 팠다. 연길시 창작실에서 사업하면서 선생은 소품 “감주”, “로임봉투”, “아첨경기”, “남매간” 등 많은 작품을 창작해서 연길시구연단에 공급, 여러차나 주급, 성급 창작상을 수상하였다.     주위에서 발생된 진실한 이야기를 주선으로 창작한 이런 작품들은 진실성, 해학성으로 관중들을 울고웃게 만든것이 특징적이였는데 소품 “남매간”에서는 출국해서 돈을 벌고 돌아온 오빠가 자기를 보러온 녀동생을 돈꾸러온걸로 생각하고  전전긍긍하는 모습과 그런 오빠를 야속해하는 녀동생의 마음을 하도 생동하게 표현하여 이름난 연출가 최인호선생까지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소품 “로임봉투”에서는 가짜 부조명세를 봉투에다 가득 적어넣고 안해를 속이다가 발각되는 이야기를 썼는데 어찌나 현실생활을 잘 반영했던지 친구 여러 사람이나 허두남선생을 보고 “당신이 그걸 다 폭로해놔서 인젠 그 방법을 못 쓰게 됐다이.” 했단다. 가장 대표적인 소품은 그래도 감주일것이다. 돈 한푼이라도 벌겠다고 감주 팔러나온 안해한테서 감주를 홀려먹는 주정뱅이 남편의 행동은 사람들로 하여금 배꼽 잡고 웃게 한 뒤끝에 눈굽을 찍게 한다.     정년퇴직한후에도 여전히 창작에 정진하고있는 선생은 또 연변생태문화예술협회에서 조직한 공모활동에 적극 참가해서 솜씨를 자랑하고있는데 단편소설 “천렵” 가곡 “첫날색시” 재담 “로천화장실” 등  작품으로 련속 3년간 수상의 영예를 안아왔다.     두 형님들처럼 아동작품창작에서도 손을 펴고있는 허두남선생은  한국계몽문학상을 수상한 아동소설 “보배야 보배야”와 소학교 음악교과서에 수록된 가요 “꿈에 울었답니다”를 비롯해서 많은 아동문학작품을 창작하여 아동문학작가로도 뚜렷한 위치를 굳히고있다.     2009년에 큰형님 허충남선생이 하늘나라로 떠나가고 둘째형님 허봉남선생이 더는 작품을 발표할수 없게 된 오늘에 와서 혼자 외롭게 문필활동에 종사하고있는 허두남선생은 최근에 3형제의 아동작품가운데서 제일 알쭌한 작품들을 정선한외 두 형님을 그리면서 쓴 수필 “마당형님“, “둘째형님의 책장”을 곁들여서 허씨 3형제의  아동문학작품집인 《자기를 잃어버린 아이》를 출간하였다. 선생이 계속해서 많은 작품을 창작하면서 두 형님의 몫까지 다 하길 기대해본다.          
4    연변주 제8회 "진달래문예상" 시상야회 개최 댓글:  조회:881  추천:0  2017-04-18
연변주 제8회 “진달래문예상”시상야회 개최 편집/기자: [ 김태국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6-10-20 10:51:27 ] 클릭: [  ] 연변주 문화사업의 번영과 발전을 촉진하고 광범한 문예사업자들의 창작열정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제8회 “진달래문예상” 시상야회 “진달래향기”가 10월 19일 오후, 룡정시 해란강극장에서 개최되였다. 주당위 상무위원이며 선전부 부장인 김기덕, 주인대 상무위원회 부주임 왕연명, 주정부 부주장 조룡호, 주정협 부주석 마경봉이 시상야회에 참석했다. 올해로 8회를 맞는 진달래문예상은 연변주 문예분야 최고의 상으로 변강소수민족지역 문예사업의 생기 있는 발전을 추동, 문예사업일군들의 창작열정을 불러일으키고 정품창작을 고무하는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부분적 수상자들(좌상으로부터 김영건,우상렬,김동진,리혜선,허련순,허두남) 올해 “진달래문예상”은 창작상, 영예상, 새별상으로 나뉘였는데 채영춘, 우상렬, 김영건, 리혜선 등 13명이 문학류 창작상을, 차광범 등 13명이 예술류 창작상을 수상했다. 이외 조성희, 김동진이 문학류 영예상을, 송미라, 최주범이 예술류 영예상을, 김단, 박송천이 문학류 새별상을 그리고 손박, 김선화가 예술류 새별상을 수상했다. 무용 “향지운”으로 화려한 첫막을 올린 이날 시상야회에는 시랑송, 독창, 남녀2인창 등 다채로운 종목들이 무대를 장식하였고 가곡 “잊을수 없는 고향정”, 무용 “성세장고”, “흔적” 등 제8회 “진달래문예상” 예술류창작상을 수상한 작품들이 무대에 올라 관객들에게 고품질의 예술향연을 선물했다.
3    우화와 동시의 절묘한 하모니 댓글:  조회:719  추천:0  2017-04-16
우화와 동시의 절묘한 “하모니 우화동시 작가 허두남선생 날짜  2015-6-11 14:42:22   조회  506   요즘 허두남선생의 여덟번째 우화동시집 《빵순이 다이어트》가 출판되여 화제를 모으고있다. 우화동시ㅡ문예사전을 펼쳐봐도 없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우화동시는 허두남선생이 수십년간의 창작생애에서 더듬고 연구하면서 세상에 내놓은 참신한 새 형식으로 선생은 개념을 이렇게 세워본다고 했다. “비뚠 인물의 비뚠 행동을 빌어 작고 깜찍한 도리를 귀띔해주는 유머동시…” 지금까지 근 40년 동안 오직 우화라는 한 우물만 꾸준히 파온 허두남선생은 지금까지 시로 쓴 우화집 6권과 산문으로 쓴 우화집 2권을 출판하였다. 허두남선생은 맏형님을 추모하여 쓴 수필 “마당형님”에서 이렇게 썼다. “나를 우화창작에로 이끈 사람도 맏형님이다… 소학생이였던 나는 형님이 보는 《크릴로브우화집》을 따라 읽었고 형님을 본받아 우화시를 쓰느라고 긁적거렸다. 그것이 내 우화인생에서 걸음마전의 엎치기련습이였을것이다. 그 엎치기련습이후에 첫 걸음마로, 미력의 내가 라 퐁텐과 크릴로브 같은 작가가 될 뜻을 품고 부단히 자신을 갱신하려 고행을 거듭한 수십년의 려정으로 이어졌다.” 맏형인 허충남선생의 영향으로 우화를 사랑하게 된 허두남선생은 소학교때 《위풍 없는 사자왕》이라는 제목으로 첫 우화시집을 묶었다. 책속에는 “위풍 없는 사자왕”, “남의 공을 모르는 달”과 아버지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옮긴 “꿀을 훔치는 곰” 등 20여편의 우화시를 수록하였다. 물론 그 우화시들은 한편도 발표되지 못한것들이였다. 1979년 우화시집 《개미와 코끼리》를 출판해서부터 지금까지 세상에 내놓은 여러권의 저작에 수록된 작품들을 살펴보면 우화시를 개혁하려고 얼마나 모대겼는지 한눈에 알린다. 한 제재로 여러편의 우화시를 쓴것도 볼수 있는데 비록 하나의 제재지만 완전히 다른 작품으로 탈바꿈시켰다. 초기에 허두남선생은 조선 우화시의 영향을 받아 동화시처럼 과정을 전개시켰는데 후에 과정전개를 생략하기 위해 백방으로 애썼다. 수십년의 끈질긴 노력끝에 마침내 동요동시의 형태로 고정시켰는데 이번에 출판된 《빵순이 다이어트》가 그 결과물이다. “살구나무가지끝에서/ 바람이 앵앵 울고있어요/ 여기저기 쏘다니면서/ 못된 장난 재미 삼던 개구쟁이 바람/ 빨래줄에 걸린 옷 팽개치고/ 장독뚜껑 허공중에 날려버리더니/ 나무가지 부러뜨리려 심술 부리다가/ 가지끝에 옷자락 걸렸나봐요/ 도와줘요/ 도와줘요/ 애처롭게 구원 청하는데/ 아무도 내다보지 않네요/ 저러다 옷자락이 찢어지면 어쩐담?/ 아이참, 그러게 / 고약한 미운짓 일삼지 말게지.” —우화동시 “바람” 얼핏 봐도 한편의 훌륭한 동시이다. 내용으로 보면 또한 교훈과 풍자를 두루 갖춘 완벽한 우화라고 할수도 있다. 이 시는 잘 짜인 동시에 “남잡이 제잡이”라는 철리와 나쁜 일을 일삼는자는 도와주는이가 없다는 인생교훈을 담고있다. 허두남선생은 크릴로브의 우화시와 조선의 우화시들을 배우면서 우화시를 창작하기 시작했지만 그가 완성해놓은 우화동시는 크릴로브우화시와도 조선의 우화시와도 다르다. 허두남선생의 우화동시는 다음과 같은 특점을 갖고있다. 성인을 상대로 쓴 끄릴로브우화시와 달리 어린이를 상대하였으며 이야기과정을 전개하는 조선의 우화시와 달리 완전히 동요동시로 개변했다. 그리고 동식물을 주로 쓰던 재래우화시의 전통에서 벗어나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이른바 “랑만주의 우화시”로부터 “사실주의 우화시”로 개조하였으며 일일이 다 말하지 않는 수법을 많이 썼다. 우화동시를 쓰자면 서사적인 내용을 고도로 함축한 동시로 써야 하기에 일반적인 서사문이나 동시보다 구상도 집필도 더 어려운바 서사문과 운문 두가지를 다 다룰줄 알아야 우화동시를 창작할수 있다는것이 허두남선생의 일가견이다. 허두남선생은 자신의 우화동시에 아직도 보완해야 할 점들이 적지 않는바 시의 편폭이 긴것과 여전히 이야기전달식으로 기술하는것 등이 제일 마음에 걸린다고 한다. 선생은 우화동시는 정감을 쓰는 일반 동시보다 달리 이야기를 담는 시이기에 자칫 무미건조해질수 있다면서 앞으로 우화동시 창작에서 재치, 유모어, 생활적인 세부 등 세가지에 모를 박으련다고 창작타산을 피력한다. 우리 조선족문단에 한떨기 이색적인 꽃을 피운 우화작가 허두남선생이 앞으로도 갱신이란 두 글자를 등대로 걸어놓고 더욱 완전하고 독특한 자신만의 스찔을 갖춘 우화작가로 거듭나기를 기대해본다.                                                                 연변일보에서    글, 사진 김인덕기자  
2    허두남의 우화동시집 《빵순이 다이어트》출간 댓글:  조회:1143  추천:1  2017-04-12
허두남의 우화동시집《빵순이 다이어트》출간 조글로미디어(ZOGLO) 2015년5월20일 08시08분    조회:4464    아동문학작가이고 극작가인 허두남의 우화동시집《빵순이 다이어트》가 연변인민출판사에 의해 출간되였다.   《빵순이 다이어트》는 모두 7개 장절로 나뉘였고 총 137편의 시가 수록되였다, 제1부는 "고운 꿈", 제2부는 "내가 두려운 것은", 제3부는 "민들레시의 이사", 제4부는 "싸움대장", 제5부는 "주방에 나선 아빠", 제6부는 "‘못난 리자’초상화", 제7부는 "나는야 중앙공격수"이다. 《빵순이 다이어트》는 책 제목이자 한편의 시의 제목이다. 얼굴도 빵, 빵순이/몸매도 빵, 빵순이/ 큰 빵우에 작은 빵 올려놓았나/ 걸어가는지/ 굴러가는지// 연필 틀어잡고 또박또박/다이어트 계획/ 한끼 빵 세개 이상 안먹는다!//다이어트 일주일만에/식은땀 뚝뚝/ 보는것마다 빵으로 보이네//(빵 세개씩이라 했으니 죽을 더 먹어야지!)//한사발씩 먹던죽/ 세사발 먹었건만/ 먹고 돌아앉으면/ 또다시 허기지는 요놈의 배// (하루세끼라 밝히지 않았으니 다섯끼 먹어야지)// 어제도 오늘도 그 빵순이/ 큰 빵우에 작은 빵 올려놓았나/걸어가는지/굴러가는지. 빵순이는 다이어트하려고 결심만 했지 실제 행동에 옮기지 못했다. 또한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해보았지만 결국은 다이어트에서 실패하고 만다. 공부도 마찬가지가 아닐가 생각한다. 속임수를 써가며 공부하는 애들이 참 많다. 무턱대고 공부하는 애들도 참 많다. 이렇게 맹목적인 공부는 아이의 지식축적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한개 문제를 풀더라고 문제의 특점을 분석하고 기교를 찾아낸다면  예기했던 목표에 쉽게 도달할수 있지 않을가 생각한다. 이 책은 지식성, 취미성이 강하며 철리적인 내용을 알기 쉬운 우화적인 수법으로 표현하였기에 어린이들에게 사색의 여운을 남겨주고 일상행활에서 자신을 비춰볼수 있게 한 생활의 지침서라 생각된다. 저자 허두남은 아동문학작가이자 극작가이다. 1979년 우화시집 《개미와 코끼리》로 문단에 데뷔한 이래 《춰주는 바람에》등 우화집 7권, 희곡작품집《뽀뽀》등 작품집들을 출간했다. 그는 동요《나는 꿈에 울었답니다》등으로 20여차 수상했으며 아동소설《보배야보배야》로 한국계몽사 아동문학 특별상을 수상한바 있다.   조글로미디어 문인숙기자   -------------   11   작성자:허몽둥이 날자:2015-05-29 04:51:27 허 허허... 두 루두루... 남 자답군...   10   작성자:ㅎㅎㅎ 날자:2015-05-22 22:46:44 참으로 연변의 문인들의 생각이 이상합니다. 작품이 좋고 그름을 떠나서 얼마나 고맙습니까 그걸로 받아주면 안됩니까 우리말에 된장에 쉿파리가 많다는 얘기가 있습니다.된장을 아무나 담그는 것이 아닙니다.바로 어머니의 손맛입니다.그럼 이 분의 작품은 진짜 된장담그는 솜씨로 썼으면 그것으로 만족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그 어떤 시도도 좋고 그 어떤 사유도 좋기에 저자를 존중하고 저자의 피타는 노력을 인정해주심이 우리의 자세가 아닐까요 긍정하라는 얘기가 아니고 고맙고 감사하고 더 나아가서는 우리 문단에서 나름대로의 글 문화에 존경을 표시하면서 저자의 책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9   작성자:알고 삽시다. 날자:2015-05-22 18:02:43 연변문단은 스스로 자신을 갑속에 가두어넣는게 문제다. 지금이 어느때라고, 혁신과 창조, 개발이 없는 문학은 죽은 문학이다. 쟝르의 특점과 제요소를 반드시 지키며 글을 써야 한다는것은 절대 금물이다. 여기에 비하면 신생사물인 하이퍼문학도 따라배울 점이라고 본다. 하이퍼문학의 장단점은 젖혀놓고라도 창신사유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문학의 리론체계구축보다도 체계화된 리론의 벽을 허물고 마스면서 부단히 새로운 벽을 쌓는 각고의 작업이 필요한 시기이다. 1. 동화창작에서 3단발전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건 도리가 없다. 2. 동화창작에서 대상물은 반드시 현실속에서의 속성을 떠나서는 안된다는 리론은 엉터리다. 대중들이 즐겨 보는 많은 구미 동화들은 대상물의 속성을 의도적으로 떠나 환상과 상상의 세계를 펼치고있다. 모두 알고나 있는가들?...   8   작성자:모르는 소리 날자:2015-05-22 11:19:26 세상에 없다는게 먼 소리야? 우화시가 있는데 어째 우화동시가 없단 말이냐? 없는것두 만들면 있는게지. 어느거는 첨부터 있었나? 7번아, 너는 한참 더 배워야 데겟구나. 유치원부터 다시 다녀라!   7   작성자:그런데 날자:2015-05-22 06:30:36 저 홀로 웃으면서 작품을 즐겁게 읽었습니다. 재미는 좋은데...그런데 세상에 우화가 있고 동시는 있지만 우화동시라는건 없는줄 아는데요. 이렇게 제맘대로 써도 되는지?   6   작성자:시대 날자:2015-05-21 13:48:12 참 좋은일 했습니다. 20여수 읽어보았는데 철학사상이 잘 익었고 ...하지만 개념들이 좀 낡투가 많다는 느낌도 없지않아 들더군요. 요즘 애들의 사색을 잘 파냈다기보다는 허선생 어릴적 생활모습이라든지, 어릴적 생활환경이라든지 그런게 넘 많아 좀 그런감이 들더군요 참고하세요.   5   작성자:꾸루루~ 날자:2015-05-21 06:21:05 뿔루뿔루~ 책 좋더라. 잘썼더라. 이런 사람 크게 써줘야 하는데 이런 사람 왜 잡지사 총편이나 아동작가협회 주석이 못된단말인가? 지금이라도 빨리 써줘야 하는데... 인재가 썩는구려~   4   작성자:대단하다 날자:2015-05-21 06:08:56 진짜 훌률한 책을 썼습니다. 저는 아동문학작품을 잘 보는편은 아닙니다. 색다른것같아서증정 받은 책을 몇페지 읽어보려 했는데 재미있어서 다 보았습니다. 시도 괜찮게 썼지만 그 사상과 철학이 놀랍습니다.   3   작성자:김태현 날자:2015-05-20 14:30:52 허두남선생님, 새책출간을 축하드립니다. 그동안 또 한번 큰 일을 해내셨네요. 아동문학에 그루를 박고 전심하는 선생님에게 크게 고무가 됩니다. 연변아동문학의 행로에 삼형제로 눈부신 역할을 하면서 오늘도 변함없이 아동문학에 심혈을 쏟는 선생님에게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선생님, 새책 출간에 다시한번 축하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좋은 책 많이 만들어주세요.   2   작성자:동네서방 날자:2015-05-20 13:50:49 허두남이라~ 허참, 그 나그네 이마 번듯한게 잘 생겼다야. 아동문학의 최고 실력가라는거 다 인정해줘야지. 아무튼 축하합꾸마~ 근데 책이랑 냈당게 술이랑 좀 삽소   1   작성자:선경대 날자:2015-05-20 09:41:58 도서 출간 축하드립니다    
1    허두남(许斗男) 댓글:  조회:1242  추천:0  2013-08-26
허두남(许斗男) 아동문학작가, 극작가. 1950년 길림성 화룡시 출생. 1979년 우화집《개미와 코끼리》로 등단. 우화동시집 《빵순이 다이어트》 구연,희곡집 《뽀뽀》등 10권 출간. 진달래문예상, 한국 계몽사 아동문학특별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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