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张学奎文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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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청도로그인 댓글:  조회:1234  추천:0  2014-08-31
단편소설 청도로그인 장학규   1 신우는 달려오는 택시를 막아서며 무작정 손을 설레발처럼 흔들었다. 벌써 20분은 훌쩍 넘긴것 같다. 출퇴근 고봉기도 아닌데 지나가는 택시마다 밉상스럽게 손님이 앉아있었다. “올라타!” 신우는 위동이에게 소리치고 차 뒤문을 열고 미꾸라지처럼 쏙 기어들어갔다. 비대한 그가 이날처럼 민첩하게 움직인것은 처음이였다. 위동이와 한 아파트단지에 살고있는 신우는 생김새와 알맞게 한국에서 노가다판을 7~8년 구불다가 식당주방장을 한 마누라와 함께 청도로 귀국하여 추어탕집을 꾸린지 불과 2년이 채 되지 않았다. 신문업을 하는 위동이가 가끔 손님들과 더불어 추어탕집에 다니다보니 친하게 되였고 따지고보니 또 동갑에 한동네여서 바로 말을 놓고 야자치기를 하게 된것이다.  위동이는 실웃음을 가늘게 지으며 미안하다는듯 길옆에서 그들과 더불어 20분간 좋이 함께 택시를 기다렸던 이름모를 두 녀인에게 목례를 올리고 부랴부랴 택시에 올라탔다. 뒤통수에 가시같은 눈길이 그대로 꽂이는것을 육감적으로 느낄수 있었다. “자식이, 신사인척 하기는…” “글쎄 그러나 이러나 욕 먹기는 마찬가지기는 하구나.” “그러니까 차 몰고 가자고 했잖아” 신우가 투덜대는중에 택시기사가 어디로 갈거냐고 무척 짜증섞인 어조로 물어왔다. 불 같은 신우가 욱 하면서 한 성격하려는것을 위동이가 눈으로 어르듯 말리며 “교남.” 하고 짤막하게 대답했다가 인차 이어서 “옛날 해변고속도로로 갑시다.” 하고 보충했다. 산동사내답게 우덕진 체격을 가진 기사는 시다달다 별 대꾸없이 그대로 차를 몰아댔다. 위동이는 이 자식이 도대체 말귀나 알아들었는지 무척 궁금하기도 했지만 내색 않고 신우를 돌아보며 말했다. “잔치집 가는데 술 안 먹을수 없잖아. 괜히 차 몰고 갔다가 잡히면 어쩔라고?” “퍼런 대낮에 웬넘이 잡는다더니?” 신우는 언제 기분 나빴더냐는듯 장난꾸러기처럼 대꾸했다. 위동이는 터덜터덜한 신우가 그래서 좋았다.  “잘못 걸렸다가는 12점이야 한꺼번에. 아니면 보름이구.” “글쎄 그게 어디 쉽냐구? 얼빤한 넘들이나 걸리지.” “세상 일 모른다. 거 왕경리 있잖아. IT업 한다던 그 친구말이. 며칠전 우리랑 모가만식당에서 한잔 하고 이촌으로 들어가다가 걸렸어. 면허 찢기구 보름 땡강했어.” “왕경리 술 별로 못하잖아?” “히히히…” “자식이 허파에 바람 들렸나? 헤식게 웃기는…” “거 청양입체교에서 308국도에 내리면 와리 십자길 있잖아. 거기 교통경찰이 가끔 있는데 왕경리가 용케 경찰 눈을 피해 건너갔거던. 그런데 갑자기 머리에 물이 들어간거야. 아무래도 그 길이 이촌 가는 길 같지 않더래. 그래서 차를 척 길가에 세워놓고 시벌건 얼굴을 한채로 술냄새까지 풍기며 교통경찰한테 다가가 이 길이 이촌 가는 길이 옳냐고 물었다는거야. 흐흐. 자기 절로 지옥문을 열었짐. 얼빤한 자식이 후후…” “후하하…세상에 술 먹구 교통경찰한테 길 묻는 양반도 있구나 하하하…” 빠끔히 열린 차틈사이로 불어들어온 초봄의 싱그러운 바람이 급작스레 터진 상쾌한 웃음을 그대로 차창밖으로 훌 실어날라갔다. 오전 11시가 성급하게 막 꼬리를 내린 시간이였다. 그들은 지금 친구 덕호의 조카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청양에서 교남으로 나가는 길이였다. 자가용으로도 좋이 한시간 정도는 달려야 하는 거리였다. 동북 고향에 있을 때는 현성 사이를 오가는 일이 꽤나 번거롭고 그리고 아주 먼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청도에서 십수년 살고보니 이제는 그 정도의 거리는 대강 이웃에 마실 다니는 느낌이였다. 결혼식은 11시 58분에 거행된다. 이제는 결혼식 시간은 물론 정월 대보름에 왠쇼를 먹고 팔월 추석이면 쭝즈를 먹는 등 대개는 중국인 행세를 그대로 앵무새처럼 본뜨면서 살아가고있는 셈이다. 이대로 달리면 그럭저럭 시간을 맞출수 있을것 같았다. 택시는 어느덧 여고구해상대교(女姑口跨海大桥)우를 달리고있었다. 저 앞으로 당장 청도의 새로운 핫이슈로 떠오른 홍도(红岛)가 거인마냥 숨 막히게 다가오고있었다. 미래 대청도의 공간 중심과 교통 중추로 기획된 홍도경제구는 블루경제구가 국가프로젝트로 업그레이드되면서 대청도의 새로운 발전엔진으로 부상하고있었다. 한때 청도시정부가 이전해올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하더니 새해에 들어와서 난데없이 정무센터가 곧 자리잡을것이라는 관방의 공식발표가 있었다. 그러나 현지정부의 행정심사비준서비스센터의 이전만으로도 홍도는 어마한 파워로 위압감을 주고도 남음이 있었다. 인구 10만도 안되는 어촌구역에 70만 인구를 수용하는 청도판 ‘포동’을 건설하느라고 여기저기서 공사판이 여념없다. 새우양식장들이 해변가를 따라 촘촘히 널려있는것이 한눈에 보였고 그 너머로 칙칙한 갯벌이 육지까지 길다랗게 누워있었다. 세상에 유명한 홍도바지락이 이 지역에서 나온다. 이곳이 간척지로 변해버린다면 또 하나의 전설이 사라지는 셈인가. “투다리 총부가 이 동네에 자리잡은지 여러해 됐어. 한회장은 참 선견지명이 있는 분이야.” “청도의 전설이지므. 직업소개소로부터 그룹회사 총수, 이건 그대로 드라마야.” 위동이의 찬탄에 신우도 간만에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국에 수백개 체인점을 두고있는 투다리는 조선족기업가가 이끌고있는 그룹회사이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서 교남으로 들어가는중에 길을 잃고 잠간 헤맸다. “우리도 내려서 교통경찰한테 물을가? 술 먹은것도 아닌데 무서울게 없지 킬킬” 신우가 옆구리를 지르며 킬킬거린다. 덕호한테 전화로 길을 물으니 거듭 창미달전자회사를 지나왔냐부터 물어왔다. 고속도로를 내리면서 바로 왼손편으로 있는 창미달전자는 위동이도 여러번 다녀간 기업이였다. 흑룡강성 탕원현에서 온 김씨성의 조선족이 그 주인이였다. 건물 자체를 구입하고 전자제품을 생산하고있는 김사장은 그래서 청도진출 조선족중에서 가장 성공한 모델로 세인의 주목을 받는 기업인이였다. “창미달 지나서 두번째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돌아서 쭉 달려와. 양옆을 돌아보지 말고 곧추 앞으로 와. 얼마나 푸른 하늘이냐. 그 하늘아래 내가 서있으니까.” 참새같은 친구는 그 와중에도 일본 영화 “추격체포”의 대사까지 흉내내면서 주절거렸다. 려행사를 꾸리는 덕호와는 사업건때문에 만나 사귄 친구인데 말이 쉴새없는게 흠이라면 흠이였다.  그나저나 현장에 도착했을때는 덕호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길에서 버벅이는 사이에 결혼식 시간이 되여 행사장으로 들어가버린것이다. 대신 풋면목이 좀 있는 덕호의 처남이 당황한 눈빛을 하고 길가에서 서성이고있었다.  안내를 받으며 혼례식이 한창 진행되고있는 행사장에 들어가 조심스레 식탁에 앉다가 위동이는 누군가 급작스레 어깨를 와락 끌어안는바람에 초풍할 지경으로 놀랐다. “니 위동이 아니야? 아이구 여기서 만나다니, 이게 몇년만이냐?” 얼굴도 미처 보지 못했는데 대방이 집안이 떠나갈듯 고아대며 위동이를 더 조여왔다. 위동이는 무안하여 얼굴을 붉히며 손에 힘을 주어 대방의 팔을 뜯어내고 돌아보았다. 실제로 반가운 친구가 맞았다. 한고향 한마을에서 함께 자란 짜개바지친구 범철이였다. 위동이가 대학에 가면서 다시 만나지 못했으니 20년이 다되는 셈이다. 2 느닷없이 웃층에서 들려오는 와당탕 소리에 눈을 뜨면서 습관적으로 손목을 쳐다보던 위동이는 불시에 후다닥 뛰여일어났다가 아 정말 오늘이 일요일이지 그렇게 속으로 주절대면서 도로 벌렁 드러누웠다. 시침은 오전 9시 38분을 가리키고있었다. 교남에서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범철이하고 반가운 김에 잔치상이 파하기 바쁘게 2차로 노래방에 가서 뭉글뭉글한 아가씨를 끼고 양주에 맥주에 와인까지 벌려놓고 마신것까진 생각났다. 그리고 범철이가 황도에서 식품무역을 하고있고 위동이가 어렸을적에 삼촌삼촌하고 불렀던 범철이 아버지가 월요일에 뒤늦은 환갑연을 크게 차린다는 말이 맞춤하게 떠올랐다. 그런데 언제 어떻게 깜박했던지는 전혀 모를 일이다. 제길…지난해 마흔을 넘기면서부터 드문드문 발생하는 현상이였다. 전에는 아무리 많이 마시고 짬봉하면서 먹어도 흐트러짐 한번 없이 꼿꼿이 자기발로 집까지 찾아왔었다. (신우가 데려다준거겠지.) 정상적인 생리반응인지 아니면 정말 어딘가 나사가 풀려서 잘못된건지 자신도 알수가 없었다. 오늘은 청도시내로 나가야 한다. 대학동창인 남수가 둘째아이 돐잔치를 굉장하게 차리기로 한것이다. 둘째도 딸년인데 큰딸하고 꼬박 12년 차이나고있었다. 남수는 작은 딸 얘기만 나오면 그저 입을 다물지 못한다. 요즘 청도는 터울차이가 크게 나는 둘째를 낳는 바람이 꽤나 거세게 불고있었다. 남수를 생각하면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저 자식이 어떻게 저렇게 가정적이 되였는지 알고도 모를 일이다. 대학때부터 남수는 좀 바람기가 있었다. 뭐 바람기라기보다는 허울이 원래 잘 생겼으니까 녀학생들이 잘도 따라다녀 련애경험이 풍부하달가. 아무튼 위동이가 녀학생이랑 말 몇번 못했을 즈음에 남수는 벌써 학교 주변의 루추한 려관방을 자기집처럼 드나들었다. 청도에 와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서도 그 식이 장식이였다. 더우기 단위의 파견을 받고 협력해주던 한국사장을 차버리고 포워딩회사를 독자적으로 오픈하고나서부터는 아예 집에 붙어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사실 영업을 뛰느라고 여기저기 쏘다니는것도 있었지만 그 바쁜 와중에도 녀자 사냥을 게을리하지 않았던것이다. 남수는 딸애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무렵쯤에 한번 크게 가정이 해체될 위기에 몰린적도 있었다. 그날도 남수는 바이어들과 더불어 노래방에서 2차를 하고 배동했던 아가씨를 끌고 방을 열었다. 수학공식같은 일이여서 그렇겠거니 여기고 각자가 자기 뜻대로 뿔뿔이 헤여졌다. 그런데 남수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도 마누라한테 교대해야 한다는 핍박감은 있어서 일을 끝내기 바쁘게 아가씨를 쫓아버리고 부랴부랴 바지를 꿰차고 새벽이슬과 더불어 집으로 들어갔다. 그날따라 오래동안 독수공방한 남수의 마누라가 발정이 난 모양으로 새벽까지 눈꼽을 뜯으면서 기다렸다가 남편이 들어오자마자 참지 못하겠다는듯 불시에 그의 벨트를 낚아챈것이다. 순간 고름같은것이 가득 들어찬 콤돈이 거시기에 그대로 걸린채 밑으로 축 처져있는 모습이 드러났다. “엉? 이거 왜 여기 걸려있지?” 그때 술이 확 깨버린 남수가 얼결에 했다는 말이다. 마누라는 히스테리 들린듯 가위를 집어들고 달려들었고 남수는 그러는 마누라를 피해 어느새 문밖으로 도망쳐버렸다. (아이구 못살아…) 위동이는 그 일만 생각하면 지금도 배를 끌어안고 뒹군다. 아닌 새벽에 동창 마누라한테 불리워가서 추궁당하고 아닌보살하고 헤식은 바보인척 하면서도 위동이는 억울함이나 창피함이나 힘든 느낌이 전혀 없었다. 대신 자꾸 웃음이 복부에서 생겨나 목줄기를 거쳐 구강에서 터지는것을 참느라고 죽는줄 알았다. 남의 불행이 경우에 따라서 전혀 감염이 되지 않는다는 현실을 처음으로 절실히 느꼈다. 그리고 그 온몸에 충만하는 에너지를 해소하느라고 그 집을 나서서부터 거짓말 보태 달반가량 미친넘처럼 웃으면서 다녔다.  “이거 왜 여기 걸려있지?” 친구들이 남수를 만나 인사삼아 건네는 말이다. 가끔 “그건 왜 거기 걸려있지?” 이렇게 변형시키기도 하고 좀 멀면 “저건 왜 저기 걸려있지?’” 그런 식으로 시까스르기도 했다. 암튼 그런 남수가 둘째를 만들고나서부터 술담배 끊기보다 더 어렵다는 풍류행객을 칼로 자르듯 그만 딱 끊어버렸다. 마누라도 이젠 다 풀렸는지 남편을 보는 눈이 적의보다는 정이 좀 더 담겨있었다. 그래도 상처는 잘 잊어 안지는지 동창들 모임때면 꼭 과거를 꺼내 한번 료리해야 마음을 놓는다. 그때마다 장소의 분위기는 “이거 왜 여기 걸려있지?” 하는 복창과 더불어 바람 높은 하늘에 띄운 연마냥 붕 뜨군 했다. 열시가 다 되어서야 위동이는 부시시 일어나 차를 몰고 집을 나섰다. 30만 좀 넘어 주고 뽑은지 갓 두달도 되지 않는 신형 혼다 엘리시온은 흔들림 하나 없이 장성로를 따라 북으로 굴러갔다. 술에 찌든 몸을 풀려고 힐링스파로 찾아가는 길이였다. “정사장님, 어서 오세요.” 후론트에서 뭔가 직원들에게 분부하던 미스리가 위동이를 발견하고 멀리서부터 달려왔다. 언제봐도 해사한 미스리이다. 이 힐링스파가 생겨서부터 지금까지 8년간 굳건히 한우물을 파고있는 미스리이다. “윤사장님은 참 복도 많습니다. 미스리를 저한테 양보하면 안되겠습니까?” 언젠가 위동이가 가목사 출신의 윤사장에게 정색을 하고 건의한적이 있었다. 윤사장이 골프를 치던 손님을 접대하던 힐링스파는 집사같은 미스리의 인솔하에 계속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사장은 있나?” “진국장이 만나자고 해서 공안국에 갔습니다. 무슨 일 있나요?” “아니…” 위동이는 곧추 3층의 남탕으로 들어가 대수 씻은후 다시 4층에 있는 안마실로 찾아갔다. 태국식 진한 마사지를 받고나니 11시반이 되어왔다. 잠간 가운을 입은채로 황토방에서 피곤한 눈을 감았다가 저도 몰래 피씩 웃음이 나갔다. 자기절로도 놀라 주위를 둘러보니 아닌게 아니라 주변 손님들이 웬일인가 하여 그를 흘끔흘끔 건너다보고있었다. (이게 아닌데...) 위동이는 머쓱하여 가운을 여비며 일어섰다. 바로 달포전에 위동이는 남수와 더불어 이 힐링스파에서 사우나를 즐기고 갈라졌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와보니 남수가 웬일인지 먼저 와 문밖에서 기다리고있었다. “남아도는 팬티 하나 주라.” “왜?” “바지속이 이상하게 허전해서 손 넣어보니 팬티 안입고 힐링스파 나왔네. 이대로 집가면 혀가 열가닥이라도 해명 못해.” “킬킬킬…이번에는 이거 왜 여기 안 걸려있지구나 흐흐흐” 위동이는 배를 끌어안으면서도 고스란히 새 팬티 한장 찾아 넘겨주었다. 솔직히 나이 어린 동창 마누라한테 시달굼을 받고싶지 않았다. 해명을 하고 증명을 서는 일도 치사했다. 그보다 남수의 진지한 모습이 새삼스레 감동을 주고있었다. 이런걸 두고 격세지감이라던가. 힐링스파를 나와 차에 오르면서 스마트폰을 보니 남수한테서 전화가 세번이나 걸려왔었다. “웬일이냐?” “어디 가 죽었다가 이제 나오니? 언제 올거냐?” “지금 떠나는 길이다.” “임마 그러면 행사 끝나잖아.” “끝나면 조오치. 내사 가서 부조돈만 주면 되는데므.” “돈이 싫단다. 박사가 된다면서 볼편을 쥐였다.” “정양학교에 우수 학생 하나 생겼구나.” “누가 아니라니? 교장선생님도 오셨으니까 얼른 와.” ‘알았어.” 오늘은 술을 피할수 있을란지 모를 일이다. 아무렴 차를 끌고가니까 사람을 덜 시달구겠지. 하다못해 누구처럼 술 먹고 길 가다가 어리버리하게 교통경찰한테 길을 물을 정도는 아니 되겠지싶다. 솔직히 청도의 골목골목 길을 교통경찰보다도 더 훤하게 꿰고 있는 위동이기도 했다. 3 아침에 홀리데이인 오피스텔에 위치한 회사에 나가서 작업지시를 하는 사이에도 범철이한테서 전화가 두번 걸려왔다. 어제부터 계산하면 벌써 다섯통째이다. 위동이는 좀 짜증이 났다. “왜 또 전화니?” 아마도 볼멘소리였던지 범철이답지 않게 기여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쁜 모양이구나? 그럼 끊을게.” ‘아니, 말해. 무슨 일이냐?” “아버지 그러는데 니가 먹물 많이 먹었으니까 아버지 략력을 소개해주었으면 좋겠다는구나.” “알았어. 지금 곧 갈게.” 위동이는 수시로 회사 업무를 체크할수 있도록 비서인 미스권더러 하루종일 핸드폰을 켜놓고있으라고 분부하고 바삐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엘리베이터 속도가 빨랐던 모양으로 속이 울렁거리면서 욱하고 뭔가 치밀어올라 하마트면 그대로 오바이트할번 했다.  오래동안 위에 쌓이고 쌓인 알콜이 화학반응을 하는 모양새다. 어제도 안 마신다 안 마신다 하면서도 선후 빼갈 둬병은 들이킨거 같다. 점잖은 교장선생님과는 오래전부터 알고지내는 사이였다. 92무의 토지를 사서 자체 교사건물까지 짓고 새로운 정착지에서 민족교육에 전념하는 정양학교의 이야기는 거의 전설처럼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주고있었다. 하기에 어떤 장소에서나 위동이는 학교 관계자들이 눈에 띄우면 꼭 찾아가서 깍듯이 인사 올리고 술을 권해왔었다. 어제도 남먼저 교장선생님을 찾아가 술 한잔 권하고 한쪽 구석에 숨어들려고 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였다. 동창들이 위동이를 그저 내버려두지 않았다. “왜 저기 숨어있지?” 왜 여기 걸려있지가 왜 저기 숨어있지로 버전이 바뀐건 물론 “경찰아저씨, 술구멍이 어디유?” 왕경리가 찾아가던 이촌이 어느새 술구멍으로 변형되기도 했다. 어쩌면 청도바닥이 참 작았다. 고작 이틑전 일이 벌써 쫙 퍼진것이다. 그렇게 왁짝 고아대고 히히닥닥거리며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악세사리회사를 운영하는 한국인 문사장의 전화를 받고 대리기사를 불러 청양으로 돌아올때는 별로 길지 않은 초봄의 해가 꼬리를 감춘 뒤였다. 그리고 다시 곧 한국으로 철거하게 되는 문사장과 더불어 섭섭한 술에 위로의 술을 겸해서 두루 3차를 거치다보니 늦은 초봄의 아침해도 빠끔히 동녁하늘을 희게 물들이고있을 때였다. “어허허…” 하품이 줄달음쳐 나왔다. 교주만해상대교에 올랐을즈음 도어홈에 놓아둔 핸드폰이 성급하게 울렸다. 운전중에 통화하는것도 처벌대상이라지만 망망대해우에 놓인 다리우에서는 감시하는 사람도 없었다. 세계에서 가장 긴 해상대교답게 눈뿌리가 모자라게 쭉 길게 드러누운 교주만해상대교는 그저 보기에도 기가 질렸다.  “여보세요.” “나 문사장인데 정사장 지금 어디예요?” “아, 고향 어르신이 환갑연을 차리게 되여 지금 황도로 나가는 길입니다. 속이 괜찮아요?” “지금 막 일어나는 중입니다. 정사장 암튼 대단해요. 또 전투겠네요.” “매일매일 그렇고 그렇습니다.” “점심 약주 한잔 할려고 했는데 안되겠네요. 담에 기약합시다.” “네, 문사장님, 일 잘 될거니까 힘내세요.” 위동이는 진심을 담아 축복했다. 문사장은 위동이가 탄복하는 몇 안되는 한국기업가중의 한사람이다. 한때는 직원이 800여명에 달했으나 최저임금의 상향과 원자재 가격 폭등 및 환경보호정책의 실시로 로동밀집형 기업은 살아갈 립지가 점점 좁아져만 갔다. 여태껏 비쳐낸것만도 다행이였다. 그리고 빚 하나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마무리하고 떠나는 모습도 문사장다왔다. “새우잠을 자더라도 고래꿈을 꾸라고 했네. 내 1년안에 꼭 새로운 아이템을 가지고 다시 오리다.” 엊저녁 문사장이 취해서 곱씹고 곱씹던 말이였다. 황도 금사탄까지 가는데 차가 많이 막혔다. 얼마전 교남시와 통합되여 대 황도구로 거듭난 이 지역에는 경제기술개발구, 보세구, 화물항구 등이 밀집되여있어 청도의 또다른  성장모델로 변하고있었다. 단순히 리모델링이 아니고 거의 재건축 수준으로 간다고 보면 틀림없다. “너 일본차 몰고도 황도에 막 들어오는구나!” 벌써 밖에서 기다리던 범철이가 과장된 어조로 말을 걸어왔다. 조어도 사건이 불거지면서 발생한 일본제 자동차의 피해를 념두에 두고 하는 말이였다. 청도서는 황도의 일본기업이 제일 피해가 심했다. 파나소닉의 전자부품공장 등 일본 기업 10곳에 시위대가 쳐들어가 불을 지르고 생산라인을 파괴했다. 또 대형유통업체인 쟈스코 이오지마를 습격하여 창고에 보관되여있던 상품 1500만 어치의 절반 정도를 약탈해갔다. 도요타자동차 청도판매 1호점이 방화되는 등 타지역에서도 억울한 피해가 발생하면서 일제 자가용을 가진 사람들은 전전긍긍했다. 차 브랜드에 오성홍기를 딱지처럼 붙이기도 하고 량옆 차문에 “조어도는 중국땅”이라는 글을 스티커로 새기기도 했다. 범철이네 식구들과 더불어 노인의 프로필을 정리하고보니 행사 시간까지 아직 시간반 정도 남아있었다. 소대 대장까지 하면서 위세가 있었던 범철이 아버지는 어느새 버쩍 말라 한없이 작아진 느낌이였다. 대신 범철이 어머니는 옛날 그대로 인정이 넘쳐나 시종 위동이 옆에 붙어앉아 손을 잡고있었다. “어렸을때부터 공부 잘하더니 끝내 출세했구나.” “범철이에 비하면 나는 거지나 다름 없어요.” “넌 기자잖아. 돈 가지고 바꿀수 없지.” 범철이 아버지가 맞춤하게 끼여들었다. 그의 얼굴에는 쉽지 않게 홍조가 떠오르고 눈에는 광채가 났다. “범철이 고생 많이 했네라. 배운게 있나? 뒷심이 있나? 고작 돈 3백원을 차비로 청도 와가지고 머리가 비였다고 한국사장의 괄시를 받으면서도 꾹 참고 10년 꼬박 쌍발했는데 망할넘의 사장이 오밤중에 튀는 바람에 근 2년 노임을 날리고 허망 나앉았어. “아버지…” “넌 가만 있어. 맞지 않나. 겨우 거리바닥에 천쪼각을 펴놓고 한국식품을 소매하다가 청관넘들한테 구박은 또 얼마 받았다고. 차차 작은 가게 하나 임대했는데 이번에는 공상국, 세무국, 소방대에 깡패까지 벌떼처럼 달려들어 그걸 시다바리하느라고 똥줄 뀌였어.그렇게 지금까지 6년 좀 넘어 체인점만 네개여.” “우리 아버지 노망이셔. 나가 담배 한대 피자.” 범철이에게 끌려나가면서 위동이는 참 오래간만에 따스한 인정을 느꼈다. 사실 범철이한테 청도 조선족의 흔적이 진하게 묻어있었다. 신우는 수년간 부부가 한국가서 일해 목돈을 들고 와서 창업했고 남수는 대학 졸업후 특수인재로 청도에 인입되였다가 독립한것이다. 위동이 자신은 본사의 파견을 받아 온것이다. 그러니까 적수공권인 범철이는 순수 자기 노력과 힘으로 일어선것이다. “오늘 저녁 우리집에서 밤 새도록 옛날 얘기랑 하자. 우리 부모님들이 저렇게 기뻐하는 모습 오래간만에 본다.” “나도 그러고싶어. 그런데 아무래도 다음날로 미뤄야 할것 같구나.” “왜?” “찐따거라고 아는지 모르겠다. 한때 시남구 지역에서 내노라 하던 양반이야. 호텔도 하고 복장공장도 차렸던 분이야.” “소문 들어 알고있어.” “그분의 장인이 오늘 새벽에 세상 떴다는구나. 오늘 밤 지켜주고 내일 화장터까지 가야 해.” “실은 나도 친구들 만나면 그저 넘기기 어렵지.” 4 황도를 떠난것은 저녁 8시가 좀 넘어서였다. 차를 몬다는 핑계를 내세웠어도 어차피 맥주 두컵 정도는 마신것 같았다. 거기다 전날의 알콜이 채 분해되지 않은 상태여서 슬그머니 울기가 올랐었다. 다행히 범철이 부모가 위동이를 붙잡고 앉아 호랑이 담배 피울적 얘기를 늘어놓는바람에 엉거주춤 그때까지 주저앉았다가 저녁밥까지 얻어먹고 길을 나섰다. 그런데 교주만 해저터널을 벗어나면서 그게 얼마나 다행한 일이였냐를 깊이 느꼈다. 7800메터나 되는 바다밑 긴 터널을 지루하게 달리고 금방 출구를 나와 유턴하는데 앞에서 느닷없이 경찰이 나타나 손을 흔들었다. “정례검사입니다. 면허증 좀 봅시다.” (나무아미타불!) 속이 철렁했지만 내색않고 침착하게 면허증을 찾아 넘겨주었다. 경찰은 대수 훑어보는듯 하다가 그대로 되돌려주었다. 전문 술냄새만 맡는 경찰의 얄팍한 수작이였다. “하이얼로에 가자면 어떻게 가지요?” 엎딘김에 절이라고 위동이는 경찰에게 가까운 길을 물었다. 느닷없이 술 먹은 왕경리가 떠올라 입가에 묘한 미소를 떠올렸다. 순간이나마 괜히 왕경리처럼 긁어 부스럼 만드는게 아니냐는 위구심도 없지 않았다. 그것도 모르고 경찰은 상세하게 가르쳐주는것이였다. “저 앞의 동서쾌속도로에 올라 그대로 곧추 달리면 하이얼로가 나집니다.” “아, 그래요? 고맙습니다.” 위동이는 더이상 지체없이 액셀러레이터를 지그시 밟았다. 가끔 40킬로, 60킬로 하면서 속도제한피켓이 나왔지만 별로 짜증내지 않고 가라는대로 느끗하게 차를 몰았다. 어림잡아도 아마 1년에 화장터 출입을 스물번은 하는거 같다. 대수 그런대로 그럭저럭 지낼수 있는 집은 상여가 나가는 시간을 맞추어 화장터에 가면 된다. 그러나 연고가 있어 좀 가깝고 앞으로도 꾸준히 함께 가야 할 집은 밤시간을 함께 보내주는게 법처럼 되여있다. 장례집은 자정전에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초저녁쯤엔 친척들이 망자를 지켜준다. 그리고 청도는 조선족로인협회가 동네마다 있어 상사를 도맡아 처리해주고있다. 친구들이나 동료 또는 가까운 사람들이 날을 새는것은 솔직히 주인의 면목을 지켜주기 위해서였다. 봐라, 이런이런 사람들이 와서 조문하고 밤을 함께 새준다 뭐 이런 심리가 다분했다. 신분이 어지간한 친구가 많고 힘이 되여주는 형제들이 적지 않다는 무언의 선언도 되는셈이였다. 모여온 사람들은 별로 할 일도 없고 늦은 밤에 술 한잔 나누고 그다음은 트럼프판을 벌리는게 관례였다. 찐따거는 말그대로 김씨 형님이란 말이다. 찐따거는 연변 출신으로 지금도 중국말에 엄청 서툴고 입만 열면 진한 사투리를 쓰고있다. 언젠가 조선족 망년회때 찐따거가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연변버전으로 엮어 대박을 터친적이 있었다. 제목부터 깔끔하게 ‘천지꽃’이라 고쳐 불렀다. 내 베기시러 가게쓰무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때에는) 뭐이라 아이 할께 콱 갑소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천지꼬즈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망태기로 끄너가지구 그기다가 너러놓겠쓰구마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게가는 발짝마다 그 꼬즈  (가시는 걸음 걸음 노인 그 꽃을) 막 디디메 콱 갑소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내 베기시러 간다므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때에는) 써거져도 아이 울겠쓰꾸마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저런 사람이 어떻게 학생들을 가르쳤나싶었지만 그 집에 가보면 교육사업을 하면서 받은 상장들이 수두룩했다. 연변주급은 물론 성급, 전국급의 상장도 있었다. 그리고 한족 친구들도 어지간히 많았다. 중국말이 나가지 않아 갑자르는것만 보면 어떻게 의사교류가 되는지 무척 궁금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옆에는 중국인 친구들이 빌사이가 없었다. 찐따거는 청도바닥을 남보다 좀 일찍 밟은 편이였다. 80년대 말이였다. 여름방학시간을 리용하여 그 세월에 아주 희한한 물건이였던 데코데를 가져다 팔려고 광주쪽으로 나가다가 잠간 청도에 들르게 되였다. 속이 뚝 떨어지게 된장국 한사발 먹으려고 려관 주변을 발칵 뒤집었지만 조선족식당이라군 없었다. (이게 될만한 장사군!) 찐따거는 그 길로 고향으로 회군하여 학교에 사표를 낸후 가산을 다 팔아가지고 다시 청도로 왔다. 그렇게 식당을 시작했다가 규모가 좀 작은 호텔로 번져졌고 다시 호텔에 든 한국손님과 합작하여 복장공장을 꾸리는데로 나아갔다. 찐따거는 드물게 처음부터 창업루트를 걸어온 사람이였다. 물론 일사천리로 내달린것도 아니였다. 한번은 복장 원단이 자꾸 딸려 80만원을 요구대로 원단공장에 선불해놓고 아무리 기다려도 와야 할 원단이 감감무소식이였다. 모든 라인이 3일이나 멈춰서는 사고가 터지고 전화로 사정하고 사람이 찾아가 다그치고 해도 진씨 성의 한족사장은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 이리저리 수소문해보니 진씨가 원단을 다른 회사에 우선 공급하고있었던것이다. 어차피 이쪽은 선불금을 냈으니 코가 궤여졌다는 계산이였다. “이 간나새끼 내르 얼빤하게 보느구나.” 동업자인 한국사장의 눈치도 눈치거니와 당장 코앞에 다가온 납기일이 더 큰 문제였다.  찐따거는 무작정 가스통 두개를 차에 싣고 진씨네 공장으로 찾아갔다. “천창재, 챈디 뿌요라. 뚱씨 게이뿌게이? 뿌게 워 스라.(진사장, 돈은 싫다. 물건 줄래 안줄래? 안 주면 난 죽는다.)” 찐따거는 가스통으로 진씨의 사무실 출입문을 막아놓고 밸브를 틀어 연후 곧바로 그 우에 앉으면서 주머니에서 라이타를 꺼내들었다. 너 죽고 내 죽자는 찐따거의 거동에 진씨는 그만 아연실색하여 부들부들 떨었다. “찐따거, 지금 당장 보내줄테니까 이러지 마오.” 그 진씨가 바로 위동이보다 한발 앞서 조문을 와서 인사중이였다. “정사자이, 느께와쓰까 벌금해야겠다이.” 찐따거는 뒤이어 들어서는 위동이를 다짜고짜 식탁쪽으로 끌어갔다. “술마개 누가 따주.” 오래동안 서로 다녀 벌금이란게 술 먹인다는 소리란것을 잘 알고있는 위동이는 사양도 없이 술잔을 받았다. 오늘은 다시 움직일 일이 없으니 술 먹어도 괜찮을거 같았다. 저쪽 안쪽에서 알만한 사람들이 벌써 “떠우띠주”를 노느라고 정신들이 없었다. 구경군중에 시립병원에서 신경외과전문의로 일하는 장박사가 보여 손을 들어 인사를 보냈다. 장박사가 답례를 하는상싶더니 어느새 사람들틈을 비집고 다가왔다. “오래간만입니다.” “반갑습니다.” 장박사에 진씨까지 끼여들어 술상이 꽤나 법석거렸다. 5 철썩 철썩 파도가 여느때보다 사나왔다. 찬공기가 몰려오면서 기온이 떨어질거라더니 아닌게 아니라 바람이 기승을 부린다. 왁작지껄하던 인간들의 소음이 가뭇 스톱되고 유독 바람소리가 회오리치는게 섬찍하기도 했다. “제일식당이야. 싹다 그기로 와야대.” 찐따거가 일행을 와락 이끌고 떠나간 마당에 위동이와 장박사만 남았다. 따로 약속한것도 아니였지만 암묵적으로 뭔가 통하는 모양이였다. 찐따거의 장인은 원래 묘지를 사서 안장하려고 했었다. 저그만치 십수만원을 써야 했다. 사전에 노인협회에 자문했었는데 묘지를 쓰면 첫 삼년은 설이나 지일날은 물론 청명, 추석 등 날에도 제사상을 차려야 한다고 하는 바람에 계획을 취소했다. 상주여야 할 아들은 한국에서 일하고있고 딸 하나는 고향에 그대로 있었다. 찐따거 말을 빈다면 자기도 언제 어디로 훌쩍 떠날지 모르는 상황에 제사상을 모시기 어려웠던것이다. 불확실성은 화장터에 납골당을 모시는 방안도 부정했다. 결국 노인들의 건의대로 골회를 바다에 뿌리는걸로 결정되였다. “어쩌면 바다물을 타고 정말로 고향에 찾아갈지도 모르잖아요.” 장박사는 약간 비감에 젖은 어조로 낮다랗게 말했다. 원래 목소리가 작은데 어조마저 착 갈아앉아 위동이는 귀를 곤두세워야 했다. “내 말은 저 노인이 내일쯤은 조선반도에 등륙할거란 말이요.” 위동이는 본능적으로 장박사의 손길을 따라 바다쪽으로 눈길을 주었다. 해빛이 맞춤하게 반사되면서 눈을 자극하여 눈물방울이 맺혀졌다. 장박사는 시무룩이 웃었다. “감성적이네요.” “아니, 그게 아니라…” 위동이는 뭐라고 변명하려다가 별로 무료한 노릇같아서 다시 눈길을 해변으로 돌렸다. 저 앞으로 올림픽요트센터가 바라보였다. 북경올림픽을 계기로 건설된 요트센터는 지금 청도의 표지성건축물로 자리매김하고있었다. 부지면적이 45헥타르가 되는 거대 건축군을 해변에다 지으려면 무엇무엇해도 방수처리가 엄청 중요했다. 그런데 그 방수공사에 리짼방수라는 청도조선족업체도 참여했다. 이 회사는 노산구정부 프로젝트는 물론 북해중공조선공장과 청도해저세계의 방수업무도 맡아 시공하기도 했다. “바다도 누군가 흔드니까 출렁대는게 아닙니까?” 위동이는 자기도 알아듣기 어려운 말을 내뱉고 장박사를 건너다보았다. “자, 우리도 자리 찾아갑시다.” “좋지요. 글찮아도 한잔하고 싶었습니다.” 둘은 마주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들이 찾아간 곳은 “흥부식당’이였다. 한국영사관이 위치한 부근인데 조용하고 아담하고 고급스러운 한국식당이였다. 장박사와는 13년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 그때 위동이는 금방 청도로 조동해온 장박사를 취재하게 되였다. 한국기업의 대대적인  진출과 더불어 청도는 여러 분야의 조선족 인재가 대폭 수요되였다. 대부분 투자유치분야에 집중되였지만 의료, 세관, 공항, 관광, 매체 등 부문에도 동북의 조선족들이 수혈되여왔다. 장박사도 그중의 한사람이였다. 나이가 동갑인데다가 두루 가정사도 엇비슷하고 위동이 엄마와 장박사가 또한 동성동본이여서 둘은 만나자마자 인차 친한 사이로 되였다. 장박사는 그후 병원의 파견으로 일본유학을 떠나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하였다. “실은 할 말이 있어서 이렇게 따로 만나자고 눈치했습니다.” 장박사는 참 난감하다는듯 서양인들처럼 두팔을 벌리고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가 과장된 제스처를 하는 모습은 처음 본다. 그만큼 많이 고민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우리 사이에 우물쭈물할 일이 없잖아요.” “하긴…내 아무래도 해외동포 하나 만들것 같소이다.” “엉?” 위동이는 말귀를 알아듣지 못해 두눈을 휘둥그래 떴다. 그러는 위동이가 재미있다는듯 장박사는 입가에 희미한 웃음을 띄우며 느닷없이 스마트폰을 건네주었다. “얼마전 카카오톡으로 받은건데 너무 신기해서 그대로 두었소.” 위동이는 스마트폰을 받아 들여다보았다. 그것은 “요즘의 아들 시리즈”란 문장이였다. 1, 사춘기가 되면 남남, 군대 가면 손님, 장가 가면 사돈. 2, 낳을땐 1촌, 대학 가면 4촌, 군대 다녀오면 8촌, 결혼하면 사돈의 8촌, 애 낳으면 동포, 이민 가면 해외동포. 3, 장가간 아들은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며느리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딸은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 4, 출가시킨 후에 아들은 큰도둑, 며느리는 좀도둑, 딸은 이쁜 도둑 5, 잘난 아들은 나라의 아들, 돈 잘 버는 아들은 사돈의 아들, 빚진 아들은 내 아들. 6, 딸 둘에 아들 하나면 금메달, 딸만 둘이면 은메달, 딸 하나 아들 하나면 동메달, 아들만 둘이면 목메달. 7, 3대 정신나간 여자: 며느리를 딸로 착각하는 여자, 사위를 아들로 착각하는 여자, 며느리의 남편을 아직도 아들로 착각하는 여자 8, 노후생활: 아들 둘 둔 엄마는 모시기를 서로 미루는 바람에 오며가며, 딸 둘 가진 엄마는 해외여행, 딸 하나 가진 엄마는 딸집 설거지, 아들 하나 둔 엄마는 양로원. 위동이는 허리가 부러져라고 앞뒤로 몸을 흔들며 히스테리 들린듯 웃어제꼈다. “껄껄껄…그러니까 명호가 이민간단 말입니까?” “남은 정색해서 말하고있는데 이러면 너무 하는게 아닙니까?” “아, 미안. 아까 메시지 너무 웃겨서요. 그나저나 명호 올해 대학졸업이잖습니까?” 명호는 한중수교후 청도호적 첫 조선족대학생으로 화제를 몰아왔던 인물이다. “졸업하자마자 미국으로 유학 떠난다우. 가면 돌아오지 않는다나.” “심각하군.” “그러니까요. 난 떠돌이가 우리세대에서 마무리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글쎄 아버지, 할아버지 시대는 정말 먹지 못해서, 살기 힘들어서 정든 고향을 떠나온게 아닙니까. 우리까지도 그렇다고 봐야겠지요. 지금은 생각하는거면 다 가질수 있는데도 뭐가 모자란건지?” “자아가치 또는 인간의 존엄 뭐 그런 유혹때문에 아닐가요?” 위동이는 애매하게 얼버무렸다. 장박사는 더이상 말이 없이 부지런히 맥주를 들이켰다. 둘은 승벽이라도 하듯이 한잔 또 한잔 들이키다보니 잠간사이에 6병짜리 세트 하나가 없어지고 새로이 한 세트가 들어왔다. 다시 말없이 한병을 비울 무렵 어눌한 무드를 깨려는듯 위동이의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위동이가 그걸 무시하고 술잔을 드는데 장박사가 침묵을 깨뜨렸다. “받어요.” “괜찮습니다. 또 술 먹자는 전화입니다. 백프로…” 어차피 피할수 없으면 즐겨라 했다. 남수처럼 꼭 팬티를 입으란 법은 없다. 사람은 노팬티바람으로도 그네를 날릴수 있는거다. 목 졸라 토하게 하는게 무슨 장땡인가. 되는대로 살자. 우리가 이룩한것으로 만족을 하면서 살자. 뒤일은 뒤사람들이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하자. 이렇게 장박사에게 말하고싶었지만 웬일인지 그 말이 목안에서 맴돌뿐 도무지 나가주지 않았다. 아무렴 말 안해도 장박사처럼 알만한 사람은 눈길로도 표정으로도 알아듣는다. 무엇이나 다 말해버릴 리유는 없다. “들은 주령인데 마지막으로 건배제의를 하나 합시다.” 문밖에 대리기사가 대령하고있다는 보이의 전갈을 받은 위동이는 맥주컵을 들고 말을 이어갔다. “우리 청도 와서 가족같이 지내온것이 아닙니까? 그러니까 내가 ‘가’하고 선창을 떼면 우리같이 ‘족같이’하고 합창을 합시다 그려.” 장박사는 잠간 어리둥절했다가 불시에 후다닥 뛰여일어나며 잔을 부딪쳐왔다. 순간 청도의 그 하나의 공간에 색다른 주령과 웃음이 동반되여 가득 채워졌다. “가~” “족같이~” 그리고 오래오래 회오리가 되여 메아리쳤다. 위동이와 장박사가 어깨동무를 하고 “흥부식당”을 나섰을때는 사납던 바람이 어느새 사그라지고 따스한 봄날씨로 변해있었다. 앞마당의 파란 풀싹이 돋아난 그 사이로 거리로 나가는 길이 유난히 뚜렸했다. 내일도 일상을 계속 영위해가자. 한국인병원의 김원장과 약속대로 먼저 미팅하고 그다음은…옳지 전화 계속 들어오고있지….                                   2013년 3월 청도에서
15    조깅 댓글:  조회:1004  추천:0  2014-08-31
  단편소설 조     깅       장학규   (젠장, 글로벌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그 콘크리트처럼 굳어진 마인드상태부터 글로벌로 가꿔보시지?! 글로벌이 뭐 말라비틀어진 거시기인가?) 만득이는 자기도 모르게 횡 하고 코방귀를 뀌면서 아파트 대문을 열었다. 어제 괜스레 기업인 상대의 무슨 정부 모임에 강제나 다름없이 억지로 불리워갔다가 질리도록 글로벌 타령만 잔뜩 듣고 돌아와 온밤 한숨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대뇌의 메모리 용량이 고작 그 정도의 인간들이 허망 무대에 어쩡쩡 올라서서 예전과 다름없이 여전히 그 식이 장식으로 앵무새같이 레코드판이나 돌리고 있으니 한심하지 않을수 없었다. 변화가 없는 지루하고 고루한 스타일은 범죄나 다름없다고 귀띰해주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당장 짐을 싸지고 고향으로 돌아가야 할지 모를 일이였다. 벌써 여러번 도대체 이곳에서 사업을 할거냐는 위협적인 경고를 받았었다. (고상한 흉내내는것도 유분수지. 흥!) 바깥은 아닌 밤중의 홍두깨처럼 초겨울 비가 비실비실 날리고있었다. 정말 못 말리는 세상이다. 새벽 여섯시가 가까와 오고있지만 하늘은 아직 먹물을 뿌린채로 시꺼멓다. 숨이 꺼억 막힐것같이 짙게 깔린 어둠사이로 비방울이 소리없이 날려와 얼굴에 묻는다. 만득이는 문밖에서 잠간 머뭇거렸다. 이대로 계속 조깅을 나가야 하는건지 스스로도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11월 중순에도 비오는 동네가 새삼스러운듯 희한하기도 했다. 늦둥이인 만득이처럼 한참 늦어진 비가 지굿게 이른 새벽에 내리고있다. 고향도 이맘때 이 시각에는 이처럼 어둡다. 계절로 비스듬히 어두웠지만 한쪽에서는 폭설이 쌓이고 한쪽에서는 비물이 고인다. 아파트 앞으로 백사하가 길다랗게 누워있다. 로산 자락에 저수지가 만들어지면서 사실상 흐름을 거의 멈춘 강이다. 폭우가 내릴때마다 저수지에서 홍수 방지 차원에서  마지못해 잠간 방류할뿐 나머지 시간은 내내 웅뎅이처럼 물이 고여있는 강이다. 그래도 멀리서 보면 대수 멋있는 강처럼 느껴진다. 만득이는 느적느적 걸어 아파트단지를 벗어났다. 그 사이 동녁하늘이 물고기 배처럼 희끄므레하게 변해오고 있었고 언제 비방울이 오싹하게 뿌려졌냐싶게 미적지근한 바람이 페부를 훓는다. 산소가 흡입되면서 이산화탄소가 밀려나는 순간은 참으로 후련한 느낌이였다. 한창 늦잠을 향수해야 할 만득이가 볼품도 없는 백사하에 매료되여 조깅을 다니기 시작한것은 불과 나흘전의 일이다. 단초를 제공한 사람은 양부장이였다. 그날 만득이는 좀 열이 받아있는 상황이였다. 아침에 회사 나오려고 집문을 가볍게 여는데 뭔가 문이 열리는 동시에 땅에 종이장 하나가 스르르 떨어졌다. 호기심이 동해 허리를 굽혀 주어서 들고보니 이번 주일내로 거주증 수속을 하라는 당지 파출소의 통고문이였다. 시뻘건 공장까지 찍힌 그 통고문은 주어진 시간내에 거주증 수속을 하지 않으면 벌금을 할것이라고 강한 어투로 경고하고있었다. 약이 부쩍 오른 만득이는 그 자리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구정부의 열선전화를 호출했다. “나 외지인은 분명한데 이곳에 내 돈을 주고 집을 샀거든요. 내 집에 내가 사는데 왜 거주증 만들어야 하우? 당지 사람이던 외지 사람이던 집 없어 남의 집 빌려들면 그게 거주증 발급 대상이 아닙니까?! 누굴 벌금한다고 위협입니까?” “미안합니다. 정책이 그러니까요.” 사무적이고 딱딱한 대답이 돌아왔다. “글쎄 말입니다. 분명 틀렸는데도 정책입니다 하고 핑계 달고 밀어버리면 문제가 해결되는겁니까?”     “천천히 해결합시다.” 그 천천히가 대강 몇년이 될지 몇십년이 될지 그건 누구도 알수 없는 일이였다. 어차피 만사를 체념하면서 살아가는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밤을 문 입을 해가지고 출근하는데 5분도 채 안되여 전화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려왔다. 동네파출소에서 온 전화였는데 벌금얘기는 실례라면서 취소하고 그러나 거주증은 시간이 나는대로 와서 수속하라면서 아니면 여러가지로 정책적인 수혜를 받지 못하게 된다고 완곡하게 설명했다. 암튼 2라운드에서는 심리적으로나마 이긴 셈이였다. 그래서 링에 오른 김에 전화를 걸어온 경찰 친구에게 느끗하게 다른 질의를 들이댔다. “제 려권이 기한 완료되였습니다. 외지 호적도 당지에서 려권을 발급 받을수 있다구 들었는데요. 가능합니까?” “제 소관이 아니여서 잘 모르겠습니다.” 먼저번과 비슷한 텁텁한 소리가 돌아왔다. “정책이 그렇게 되여있지 않습니까?” “몰라요. 아마 고향에 돌아가서 수속을 다시 밟아야 할거예요.” 대방은 더이상 귀찮다는듯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아, 이런 쓰벌…” 만득이가 3라운드에서 멋지게 펀치당하여 카운트다운 상태로 회사에 들어오는데 눈치 없는 양부장이 정면으로 다가왔다.  회사에서 인력 부분은 양부장의 몫이였다. 총무 한사람 받아들이는데 굳이 사장인 만득이에게 재가를 받지 않아도 될 일이였다. 어쩌면  양부장으로서는 좀 난처하기는 했었다. 팔팔한 애들이 입사했다가 거퍼 업무도 익히기 전에 금세 달아나군 했다. 화가 잔뜩 난 양부장이 이제부터는 조선족보다 한족 위주로 직원을 채용하자고 볼이 부어 제기해왔다. 조선족만 받는다는것은 만득이가 회사 설립 초기에 세워놓은 직원채용규정이였다. “그건 안돼!” 심통 맞은 양부장이 파리를 날리기 시작한것은 그 무렵부터였다. 알맞고 적중한 사람을 고르는게 문제가 아니라 아예 사람을 찾을수 없다고 투정부리면서 차일피일 미루더니 이날 방정맞게 서류 뭉치를 들고와 만득이더러 재가해달라고 요청한것이다. “마음에 들란지 모르겠는데 이 정도도 겨우 찾았습니다.” “그래?” 만득이는 내색 없이 양부장이 내민 서류철을 받아 들여다보지도 않고 그대로 멋지게 사인해버렸다. 다른건 몰라도 사인 하나는 만득이를 따를 사람이 주변에는 별반 없었다. 기실 필치를 자랑하기보다는 반칙을 일삼는것은 경박을 넘어 일종 악이란것을 양부장에게 귀띔해주고싶어서였다. 못난 나무가 산을 지킨다고 별로 튀는데가 없는 양부장이 회사 초창기부터 내리 쭉  10여년간 중견으로 자리를 굳혀온 리유는 그가 여직껏 사장의 말에 토를 달아본적이 없는데다 마음의 눈을 다른곳에 팔지 않았기때문이다. 만득이는 그 점을 높이 사왔었다. “보시지 않으십니까?” “뭘?” “어떤 사람인지 말입니다. 하기사 나이는 꽤 먹었어도 얼굴은 많이 동안이더라구요. 그리고 묘하게도 사장님과 한고향 출신이데요.” “엉?” 양부장이랑은 같은 채널에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가끔 둘이 묘하게 도킹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손이 맞는다는 느낌이 들때는 대개 그런 경우였다. 만득이는 호기심에 쫓겨 서류철을 새삼스럽게 들여다보았다. 순간 저 아득한 고향의 들판이 우렷이 떠올랐다. 거칠것 하나 없는 일망무제한 논밭사이로 훓어지나는 북풍이 윙윙 소리를 내며 눈보라를 산지사방으로 날려준다. 오붓한 농가집 구들은 그래도 마냥 따스하다. 이모는 어딘가 놀러가고 해가 중천에 두둥실 떠오른 시각까지도 누나는 일어날 념을 않는다. 매끈하게 퍼진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돋아있다. 조용히 불러보아도 대답은커녕 숨소리도 없었다. 잠보다는 감기에 지친 몸이다. 수건을 적셔 얼굴을 닦아준후 살그머니 이마를 짚어보았다. 크게 뜨겁지는 않았다. 다시 더듬더듬 손을 잡아보았다. 솜같이 부드럽고 포근했다. 한결 마른 입술이 수분을 갈구하고있었다. 입술을 맞닿이듯 가까이 대고 혀를 살짝 갖다붙였다. 마음 밑바닥에서 쿵쾅 하고 천둥이 울고 찌르릉 전률이 흘렀다. “김민정” 입속으로 되뇌인다는게 모름지기 저절로 소리가 되여 나왔다. 프로필은 물론 사진까지 오차 하나 없이 틀림없는 민정이 누나였다. “으음…” 꼬박 20년을 도망치듯 의식적으로 피해다닌 이름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기억은 더욱 선명해지는 이름이기도 하다. 민정이 누나하고는 그 눈보라 사납게 휘몰아치는 겨울날 낮에 고향집에서 인연이 종쳤던 셈이였다. 하필이면 만득이의 혀가 민정이 누나의 입술에 닿이는 찰나에 민정이 누나가 가벼운 신음을 하면서 이불을 훌 걷어찬것이다. 더불어 꽉 조인 흰 적삼속에 꼬옥 감춰진 봉긋한 젖가슴이 산등성이마냥 우뚝 눈앞에 솟아났다. 그건 그대로 지진을 잉태하고 용암을 끓이고 분출을 대기하는 산등성이였다. 그리고 항거를 절대 허용치 않는 사탄같은 유혹이였다. 만득이는 신성한 의식을 치르듯 심령의 이끔대로 손을 경건하게 그 산등성이에 얹고 한동안 미동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멈춰지고 머리가 하얗게 비여갔다. “아이구 이넘아, 너 뭐하고 있어?” 만득이의 손을 치운건 언제 들어온지도 모르는 이모였다. 민정이 누나는 계속 깊은 잠속에 빠진듯 입가에 행복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만득아, 너 자꾸 이러면 민정이 시집도 못간다. 알겠니?” “나하구 살면 되잖아요.” “누나잖아 민정이가.” “혈육관계도 없는데므.” “그리구 나이도 너보다 세살이나 많지 않아.” “민정이 누나 아버지도 이모보다 나이 적잖아요?” “이 자식이 아무래도 안되겠다.” 이모는 그 길로 멀리 청도에 있는 만득이 삼촌에게 전화하여 만득이를 데려갈것을 요청했고 만득이는 동네집 신세를 지던 몸이라 싫어도 민정이 누나 옆을 떠나야 했다. 그후로 한번도 민정이 누나를 만나보지 못했다. (벌써 20년이 되였구나,) 그러니까 가슴으로 고향을 뜨겁게 그려온지가 어느새 20년이 되여오는 셈이다. 눈 없는 이곳의 미적지근한 겨울이 다가오면 항상 저멀리 처마밑에 고드름을 만드는 고향의 겨울이 떠올랐고 주변 농군들이 바짝 메마른 누르끼한 땅에 인분을 퍼놓고 종자를 뿌리는 봄날이면 어린시절 늘 보아왔던 시꺼면 흙에 그대로 싱싱하게 곡식이 자라던 고향의 비옥진 들판이 눈앞에 우렷이 나타났다.  만득이는 발 가는대로 추적추적 강변을 거닐었다. 금방 수천금을 들여 새로 정비한 강변유보도는 줄곧 308국도까지 이어지고있었다. 원래 만들어놓았던 유보도를 새롭게 리모델링하는것은 물론 그 옆에 웅덩이와 풀밭으로 방치되였던 자리에 4차선 대통로를 쭉 빼고 어디서인가 아름드리 나무들을 가져다가 옮기고 있었다. 출퇴근하면서 일년남아 트럭들이 왔다갔다하고 기중기가 나무를 들었다놓았다 하고 검은 구름같은 먼지가 뭉게뭉게 올리솟는것을 보면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던 만득이였다. 애들이 다닐 학교가 모자라서 수백명이 죽기내기로 하나의 명액을 두고 경쟁하는 동네에서 학교 10개는 거뜬히 지을 거금을 애궂은 강변에다 퍼붓고있었다. 바로 얼마전에 만득이는 풋면목있는 어느 교장에게 인민페 두묶음을 던져주고 친구의 애를 명액이 도저히 없다는 그 학교에 붙인적이 있었다. 돈을 판 친구가 에잇 이넘의 지랄같은 동네에서 못살겠네를 주절거리는것을 그래도 고향을 이미 떠나온바엔 뿌리를 굳건히 박아야 하지 않겠냐면서 말리기도 했지만 사실 콘트라스트(反差)가 심한 이런 대목에서는 만득이 자신도 심리평형을 잡기 어려웠다. (망할 넘의…) 느닷없이 박쥐 여러마리가 눈앞을 희미하게 날아지나는것이 보였다. 아닌 계절이라기에는 조금은 포근한 날씨여서 날벌레들이 꽤나 설쳐대고있었다. 박쥐가 새냐 쥐냐 하는 논쟁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다툼보다 더 멋대가리 없지만 식충성적인 박쥐가 기어코 초겨울의 새벽 하늘을 난다는것은 좀 심각한 일이였다. 어쩌면 대만 작가 백양의 말처럼 일찍 일어난 “새”에게 먹을 벌레가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박쥐도 어쩌면 생존경쟁에 떠밀려 도심속으로 들어온 모양이다. 어둠과 침침함에 익숙하고 적응된 박쥐도 관성에 밀려 어느 정도 내몰린 상황이겠지만 만득이는 이렇게 집 부근에서 박쥐를 면대하기는 처음이였다.  가끔 강물속에서도 가마우찌같은 물새가 요란한 물소리를 내고 낮게 나는 장면도 목격되었다. 백사하 가운데 볼품없이 또치까처럼 높다랗게 쌓여있는 펌프우물이 어쩌면 가마우찌들의 휴식터일지도 모른다. 그 펌프우물은 일찍 백사하 물줄기가 끊기기전부터 시민들에게 음료수를 공급하던 시설이였다. 당지에서 새로운 수원을 확보하면서 운행을 중단하고있지만 수요될때에 언제든지 수시로 가동할수 있도록 항상 보수하고있는터였다. 언젠가 한번은 이웃집 로인에게 저 물탱크를 왜 없애버리지 않는거냐고 물었었다. 로인은 제법 심각한양 그게 바로 청도인들의 생존방법이라고 답했다. 자연적인 여건이 부족하기에 어차피 남보다 일찍 시작하고 남처럼 버리지 않고 남따라 하지 않게 된다는것이였다. 배고픔을 참지 못했을때는 남부녀대하여 관동으로 떠났고 오늘날 국문이 열리자 또 고향에 돌아와 창업하는게 바로 산동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렇찮으면 이 험악한 동네에 사람이 남아있지 못했을거라고 했다. 다행히 그렇게라도 서둘렀기에 그나마 허리띠를 조금은 풀어놓고 살만하다면서 입에 침방울을 튕겼다. 여건이 여의치 못하면 일찍 출발하고 빨리 처리하고 자주 움직이는 방법밖에 없다는 논리였다.   기실 따져보면 만득이도 이름이 느질뿐이지 사람은 많이 조숙했던거 같다. 부모가 한국으로 나가면서 만득이를 민정이네 집에 맡겨두었다. 원체 두집이 평소에 네것내것 따로없이 더불어 쓰는 많이 가까운 사이였던 원인도 있었지만 만득이가 유별나게 민정이를 그림자처럼 졸졸 따라다니기 좋아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민정이가 공부도 배워주고 돌봐도 주면 우리가 마음 놓을거다.” 그해 민정이는 열여덟이였고 대학입시를 앞두고있었다. 물론 민정이도 만득이를 무척 귀여워했다. 초중 3학년생인 만득이는 한창 사춘기를 앓고있었다. 민정이가 메이크업을 할라치면 멀찌감치 서서 얼굴을 붉힌채 힐끔힐끔 훔쳐보군 했다. 그런 눈치를 민정이 누나가 모를리 없었다. “얘, 여기 와.” “왜?” “오라면 올거지.” 만득이는 웬지 민정이 누나의 말은 항거 못한다. 그처럼 부드럽고 가늘었지만 도무지 저항할 힘을 잃어버린다. 민정이보다 주먹 하나는 더 커버린 만득이가 쑥스러운듯 기가 질려 다가오기 바쁘게 만득이 얼굴에 크림을 한손가락 듬직이 찍어놓고 민정이는 깔깔거리며 웃어댔다. “너 이걸 맛보고 싶어 그렇게 쳐다본거지?” 어느날 하학하고 집에 돌아온 만득이는 집에 아무도 없는 기회에 민정이 누나가 홀로 사용하는 웃방에 살그머니 들어갔다. 책상우에 이름 모를 화장품이 여럿 있었다. 전번에 민정이 누나가 얼굴에 찍어주던 크림도 보였다. 우선 그걸 살짝 열어보았다. 향기로운 냄새가 코를 질렀다. 그건 크림 냄새가 아니라 그대로 민정이 누나 냄새였다. 민정이 누나가 스쳐지날때마다 항상 맡게 되는 냄새였다. “너 이걸 맛보고 싶어 그렇게 쳐다본거지?” 민정이 누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흔적나지 않게 조금 손가락으로 찍어 얼굴에 바르려다가 그대로 혀바닥으로 가져갔다. 너무 긴장했던 탓인지 무슨 맛인지 전혀 감각이 없었다. 다시 한옆에 오렷이 서있는 립스틱을 더듬어쥐었다. 뚜겅을 열었으나 속살을 올릴 방법이 없어 포기했다가 다시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당기거나 밀어서 안되는거 보니 비틀면 될것 같아 조심스레 비트니 스르륵 시뻘건 속살이 솟아올라왔다. 거울을 마주하고 평소 민정이 누나가 하던것처럼 입술에 발라보았다. 생각처럼 잘되여지지 않았다. 입술이 순간적으로 립스틱이 더덕더덕 찍히면서 붉으락푸르락하게 변해버렸다. 급히 냅킨을 찾아 입술을 닦았으나 여전히 닭잡아 먹은 형상이였다. 할수없이 물로 입술이 아려날때까지 박박 씻어냈다. 그런데  저녁에 민정이 누나가 조용히 만득이를 불렀다. “너 내 크림에 손을 댔지?” “아니…아닌데…” “니 얼굴에 용건이 딱 써있어. 아닌 보살할 생각 말어.” 만득이의 DNA는 거짓말을 못하도록 메모리되어 있는 모양이다. 그렇게도 흔적나지 않도록 조심했는데도 인차 들통나는것을 보면 민정이 누나 말처럼 그의 얼굴에 뭔가 씌여져있는게 틀림없었다. 아무튼 민정이 누나가 그걸 알아차린게 오히려 더 잘된 일일지도 모른다. “너 혹시 나를 좋아하는거니?” “누나니까.” “그렇구나.” 만득이는 아차했지만 이미 엎질러놓은 물이였다. 민정이 누나 얼굴에 실망같은 그늘이 가볍게 흘러지나가는것을 보고 만득이는 정말이지 그저 죽고만싶은 심정이였다. “그러면 오늘밤 누나하고 잠간 시내 갔다오자.” 학교가 위치한 시내는 마을에서 채 5리도 떨어지지 않았다. 가운데 해랑하가 흐르고 그 강에 건설된 다리에서 가끔 여러가지 사고가 생기군 했었다. 늦여름이라 해도 고향의 밤은 차가웠다. 하늘 높이 하얗게 떠오른 하현달은 찬 빛만 발산하고 있었고 그옆으로 촘촘히 둘러싼 별들도 추운듯 바들바들 떨고있다. 대학입시를 반년 좀 넘어 남겨둔 민정이 누나는 언제나 저녁밥을 학교에서 먹고 밤 자습까지 마친후 돌아왔었다. 집에 왔다가 다시 나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모부가 한국 나가면서 민정이 누나를 챙겨줄 사람이 없었던 리유도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러던 민정이 누나가 만득이를 데리고 마실가듯 학교를 한바퀴 돌더니 곧 도로 집으로 다시 가잔다. 밤에도 학교에 남아 공부하는 친구들과 인사말 몇마디 나눈것이 고작이였다. 그저 그 정도 말을 하려고 밤걸음을 걸은건지 그저 궁금하기만 했지만 만득이는 용케 참아냈다. 해랑하대교를 건널때 민정이 누나는 어슬렁 만득이한테로 다가와 팔을 끌어안았다. “여기에 강도가 가끔 나타난다면서?” “거짓말이야.” 만득이는 저도모르게 얼굴이 겁기로 긴장해졌지만 억지로 태연한체 대꾸했다. “우리 다리밑으로 한번 내려가볼까?” 민정이 누나가 이끄는대로 둘은 다리밑으로 내려갔다. 가을이 눈앞으로 다가오면서 물이 많이 낮아진 느낌이였다. 밝은 달빛 아래에서 강물은 바닥까지 환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깨끗했다. 버들나무가 듬성듬성 자라있는 땅바닥사이로 강물이 여러갈래로 갈라졌다 모아졌다 하면서 똘랑똘랑 물소리를 내고있었다. 가끔 새끼손가락만한 고기들이 물을 거슬러 오르면서 찌르륵찌르륵 소리를 낸다. “고기들이 왜 물살을 거슬러오르기 좋아하는지 알아?” “아니…” “그건 살아있다는 증명이야. 활어역수(活鱼逆水)라 했어. 죽은 고기는 물을 따라 떠내려가…”  민정이 누나는 하던 말을 삼키고 물살을 거슬러올라가는 물고기를 잡으려고 손을 쑥 내밀었다. 순간 상체의 평형이 기울어지면서 미처 잡기도전에 물속으로 엎어졌다. 힘을 불시에 쓴 탓이였다. 허우적거리다보니 웃옷이 거의 다 젖어버렸다. “아 추워.” 민정이 누나는 겉옷을 벗어 짜다가 기침을 쏟아내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만득이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다가가 뒤에서 민정이 누나를 꼬옥 껴안았다. 차가왔다. 인차 따스해졌다. 그리고 포곤해왔다. “이 죄꼬만 넘이…” 이렇게 야단칠것 같던 민정이 누나는 그러나 몸을 털지 않았다. 만득이 존재가 없는듯  조용히 짜던 옷을 계속 비틀고있었다. 그날부터 민정이 누나는 다시 만득이를 닦아세우지 않았다. 멀찍이 서서 훔쳐보아도 모른체 가만히 있었다. 가끔 만득이가 민정이 누나의 손을 잡고 만져도 그냥 내버려두었다. 어떤때는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다가가 뒤에서 살짝 안아도 타발하지 않았다. “이 철딱서니 없는것아, 다 자란것이 누나하고 그게 뭐야?” 대신 이모의 입에서 난데없는 잔소리가 나오기 시작하다가 마침내는 “너 자꾸 그러면 민정이 시집도 못간다.’ 이런 험한 지청구도 튀여나왔다. 그리고 그해 초겨울에 만득이는 고향의 따뜻한 구들에 혼곤히 잠들어있는 민정이 누나를 흔상하다가 이모로부터 축객령을 받았던것이다. 하늘이 이젠 제법 밝아왔다. 조깅을 나온 사람들의 모습이 어슴프레 보이기 시작했고 까치들도 가로수에 오구작작 모여앉아 재잘대고있었다. 혼탁한 백사하도 새벽의 비때문인지 둔덕진 구역에서는 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여름에 낮아졌던 물이 초겨울이 되면서 오히려 불어나는 눈치였다. 찌르륵 찌르륵 하는 소리가 들려와서 지저분한 쓰레기가 널려있는 방파제에 다가가보니 제법 보아줄만한 붕어들이 무리지어 상류쪽으로 헤염쳐 올라가는것이 얼결에 보이고있었다. 그 붕어들을 환영하는듯 가끔이지만 웃쪽 풀밭에서 팔뚝만한 잉어들이 풍덩 솟구쳐 오르기도 했다. 백사하에 고기가 있다. 로산저수지에서 방류할때 딸려온 고기들임에 틀림없다. 흐름이 거의 멈춘 백사하에서 그 고기들은 작은 흐름을 이용하여서라도 우로우로 오르고있었다. 만득이도 이젠 뭔가 결판을 내야 하겠다는 생각을 벌써 전부터 하고있었다. 아직은 돌도 소화시킬 왕성한 나이이다. 그리고 얼마간 성숙을 가져오면서 뜨거운 가슴보다 차가운 머리가 더 절박해진 시점이다. 만득이는 항상 생각은 뇌로 하는것이지 가슴으로 하는게 아니라고 생각해왔다. 특히 의과대학을 나온 민정이 누나가 홀몸이 되여 20년만에 다시 나타났을때 만득이는 그것이 자기의 운명임을 뼈저리게 느꼈으며 어디가 자기의 귀속인지 알아버렸다. “이 여자 당장 불러와.”   그때 양부장은 화들짝 놀라는 표정이였다. “지금요? 이 여자를?” “그래, 지금 당장.” “지금은 곤란한데요. 아마 고향에 돌아가는 기차에 있을겁니다.” “고향은 왜?”   “정리할것이 많다고 합니다. 애 학교문제도 있고 아무튼 처리해야 할 일이 많다면서 새해부터 출근하겠다네요. 아무튼 한달밖에 남지 않았잖아요.” “아, 잘됐어. 애를 그곳에서 계속 학교 다니도록 해줄테니 오지 말라고 해, 아니 연락 번호 나를 줘!” 만득이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하고있는지 자신도 알아들을수 없었다. 눈이 데꾼해진 양부장을 사무실에 그대로 놔두고 만득이는 정말 오래간만에 두둥실 뜬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왔고 그 이틑날부터 잠을 잃은 만득이는 모름지기 조깅을 시작하였다. 날이 완전히 밝아왔다. 그런데 가시권은 반경 50메터도 되는것 같지 않았다. 더 멀리는 안개 같고 구름 같고 또 먼지 같은것에 의해 담벽처럼 막혀서 보이지 않았다. 요즘 다시 기승을 부리는 스모그탓이다. 고향의 하늘이 기억에 새롭다. 티 한점 찾아볼수 없이 맑고 깨끗했던 하늘이 태반이였다. 사람의 모습이던것이 급작스레 짐승의 형상으로 변하고 산수가 불시에 수목으로 바뀌는 흰구름의 조화는 신비하기만 했다. 봄이면 아지랑이 몰몰 피여오르는 가운데 강남 갔던 제비가 하늘을 오르내리며 회귀를 자랑했고 여름에 접어들기 바쁘게 싱그러운 꽃향기에 실려 잠자리들이 너울너울 춤춘다. 가을이면 애처로운 울음을 남기며 새로운 서식처로 자리를 옮기는 기러기떼가 줄을 이었고 겨울이면 솜같이 가벼운 눈꽃이 하늘하늘 춤추며 내렸었다. 고향은 대체로 랑만이였고 동화였다.  불현듯 일찍 빨리 자주를 강조하던 이웃집 산동로인이 떠올랐다. 많은 사람들이 어떤 추세에 끌려서 덩달아 고향을 떠나는 시점이 오히려 고향이 기회를 잉태하는 타이밍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동을 찾아왔다가 되돌아가는 산동사람들처럼 말이다. 백사하도 그 사이 부쩍 들끓기 시작했다. 붕붕 차들이 다니고 여기저기서 쿵쾅하고 시공하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만득이는 먼지가 다시 일기 시작한 백사하를 등뒤에 내버려두고 아파트단지로 가볍게 접어들었다. 민정이 누나에게는 고향에 따로 설립할 회사의 관리를 책임지게 하기로 약속하였다. 고향이 어쩌면 만득이가 남보다 더 일찍 돌아가야 할 인생역이 될지도 모른다.
14    일탈 댓글:  조회:1144  추천:0  2014-08-31
단편소설 일    탈 장학규   동이는 허우허우 돌밭길을 걸어나갔다. 어깨에 걸친 낚시장비가 당장 미끌어 떨어질듯 안스럽다. 저 앞으로 조그마하게 옴츠러든 웬 녀인이 손에 비닐주머니를 들고 힘겹게 바위돌 사이를 헤집고 나가고있었다. 우에는 자잘한 분홍꽃 무늬의 저고리를 입고 밑에는 검정색 바지를 걸치고 있었다. 아래우 전혀 대칭이 되지 않은 옷차림을 하고 있는것을 보니 매일 같이 이 바다가에서 게나 다슬기 또는 바지락 따위를 줏는 주변 동네 아낙네가 분명했다. 동이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낚시장비를 추슬렸다. 스스로 듣기에도 숨결이 거칠고 무거워온다. 해변가는 대개 모래톱으로 이루어졌을것이라는 멋스러운 감동을 보기 좋게 산산쪼각내버린것은 청도라는 해변도시에 와서야 생긴 일이다. 그전에는 바다옆에 이렇게 험한 바위돌들이 널려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러니까 이제는 한 20년이 되어오는 셈이다. 그때는 물론이고 지금도 그때의 일을 돌이켜보면 그저 아찔하기만 하다. 난생 처음 바다란 것을 보고 또 난생 처음 바다가에 널려진 바위돌틈사이로 신기한듯 팬티바람으로 넘나들다가 급작스레 덮치는 파도에 밀려 허망 나뒹군 적이 있었다. 머리가 뗑해나고 손바닥이 여기 저기 긁히워 나갔다. 젊은 혈기에서였던지 자존심이 무척 상했었다. 한쪽 발과 손을 큼직한 바위에 뻗치고 집체같이 덮쳐오는 파도를 다시 한번 맞받았다. 별 저항 없이 동이는 가볍게 훌쩍 들리워서 자리를 떠버렸고 파도는 동이를  그대로 바위에 던져버린후 파도는 몰방울로 으깨여져 유유히 흘러나갔다. 동이는 그제야 바다가 물방울로가 아니라 주체하기 어려운 마귀와 같은 힘과 파워로 이루어졌다는걸 새삼스레 뼈 저리게 느낄수가 있었다. 동이는 항상 자신이 세개의 분신이 되어 있는것을 느끼고 끔쩍끔쩍 놀란다.  무일푼의 백수로부터 성공신화를 만들어낸 점잖은 기업가의 형상은 동이의 가장 잘 알려진 모습이었다. 가끔은 오기가 발동해 무모한 일에 발을 적셨다가 한방 크게 당하고도 반성없이 또다시 도전을 일삼는 모습은 동이의 다른 캐릭터였다. 그리고 점차 이 두 분신사이를 넘나들며 흐뭇했다 방황했다 호방했다 후회했다를 번복하는 회수를 늘이면서 새로운 분신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10월 중순의 청도의 아침 해살은 미안한줄도 모르고 그저 따갑기만 하다. 여기저기에 바다 해빛에 그을려 시꺼매진 장정들이 심드렁하게 갯바위낚시질에 여념이 없었다. 동이는 될수록 사람들과 멀찍히 떨어진 바위돌우에 찾아올라갔다. 얼결에 보니 아까 그 비례를 잃은듯한 녀인이 바지락 주이는 념두에도 없다는듯 저쪽 바위우에 주저앉아 바다너머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도 바지락을 캐느라고 저쪽 갯벌에서 적잖이 뭉갰는지 흙으로 얼룩덜룩해진 옷자락이 바람에 펄럭거리고 있었다. 발밑의 투명한 바다물속에 우럭 여러 마리가 시름없이 헤어다니는것이 보였다. 동이는 미끼를 끼우고  낚시질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동이가 낚시에 재미를 들인것은 8년전의 일이었다. 10여년간의 직장 생활을 접고 사업을 한답시고 해운업을 벌렸을 무렵이었다. 고객이라고 처음 찾아온 사람은 생각밖에도 조선족이었다. 동북의 교하란 고장에서 청도의 해군에 입대했다가 장교로 퇴역하고 무역업에 뛰여든 송씨 성의 사나이였다. 그는 해군에 몸담았던 경력만큼 바다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고 그래서인지 “명수 1호”로 명명된 낚시전용선까지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그 덕분에 동이는 조깅낚시 또는 선상낚시란것을 접하게 되었다. 해안에서 100킬로 정도 떨어진 먼 바다로 몇시간동안 나가서 장애물이 거의 없는 뻘 지역에서 대형 우럭을 노리는 낚시질은 정말 신났다. 수심이 깊고 사용하는 추의 무게와 낚여 올라오는 대형우럭때문에 일반 스피닝릴이나 장구통릴로는 많은 어려움이 따라 주로 전동릴을 사용했다. 그러다가 해안가에서도 우럭은 역시 낚을수 있다는것을 그 즈음에 알게 되였다. 우럭은 회유성 어류가 아니라 사시장철 갯바위나 방파제 주위와 먼바다의 좌초된 배에서 서식하는 토착 어종이라 쉽게 만날수 있었다. 그리고 강한 탐식성 육식어종이여서 먹이에 대한 공격성이 강하므로 낚기도 쉬웠다. 우럭은 그리고 맛도 일미였다. 갯바위낚시에 걸려드는 우럭은 대개 어른 엄지만큼 굵직한것이였다. 낚아올린채로 그 자리에서 껍질을 발라 초장에 찍어먹으면 말그대로 두사람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지경이였다. 그런데 생각처럼 오늘은 고기가 잘 물리지 않았다. 퍼그나 화창하고 온화한 날씨에 물빛마저 푸르고 맑았으나 당장 막 무리지어 성급하게 걸려들것 같던 우럭은 커녕 숭어, 도다리류도 별로 보이지 않았다. 겨우 우럭 둬마리 건지고 동이는 기진맥진해버려 처음으로 낚시대에서 눈길을 떼고 건너편으로 머리를 돌렸다. 그때 마침 이쪽으로 힐끔 돌아보는 옷맵시가 대칭이 깨진 그 녀인과 눈길이 마주쳤다. 녀인은 그때까지도 석노인마냥 굳어진듯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낡은 옷차림과는 달리 깨끗한 얼굴에 오관이 마춤마춤하게 박혀있었다. 다듬고 나서면 꽤나 미인이라는 말을 들을거 같았다. 느닷없이 그녀가 결코 당지인이 아니라는 생각이 뇌리를 치면서 동이는 처음으로 녀인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먼길을 달려온 흔적이 력력했고 허기에 찬 표정이 뚜렷했다. 손에 보물마냥 꼭 잡혀있는 흰색 비닐주머니에는 다슬기같은 물건이 여럿 담겨있었다. 녀인은 인차 눈길을 바다쪽으로 돌렸고 머쓱해진 동이도 손팔을 통해 전달해오는 스릴을 느끼며 황급히 낚시를 들어올렸다. 제법 보아줄만한 우럭 한마리가 올라왔다. 조심스레 고기를 그물망에 넣어두고 다시 낚시를 던지니 기다렸다는듯 자그마한 우럭 한마리가 또 걸려나왔다. 송사장과 도킹되면서 동이는 한결 신심이 백배했다. 동이 인생에 시동이 걸린것도 그 무렵이였다. 한국 사장이 흘려주는 콩고물을 받아먹던 동이는 송사장과 거래하면서 세상에 타고난 종자란게 따로 없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터득했다. 이제는 수도 없이 돌리고 돌린 레코트판이다. 스팸메일 같은 과거로 무조건 삭제하고프기만 한 아픈 기억이다. 따져보면 동이는 타이밍이 귀똥차게 좋지 않았다. 대수 중학교 정도 다닌 넘도 청도에 오자마자 척 대리 자리를 차지하던 세월이였지만 대학을 졸업한 동이는 달반 넘어 취직이 되지 않다가 그것도 직업소개소 덕분에 진성이라는 제조업회사에 현장관리로 들어갔다. 슬리퍼를 생산하여 일본으로 전량 수출하는 한국회사였다. 화이트칼라가 아니라 듣기 좋게 말하면 블루칼라였다. 아침 여섯시에 일어나 식사전에 작업 준비를 해야 하고 저녁 여섯시에 직원들이 퇴근한다음 뒷거두매까지 말끔히 해야 했으며 저녁 식사후에는 하루 생산량 및 불량품을 체크하고보면 새벽닭이 회치는 시간이였다. 하루 한시 동반 입사한 미스터 양은 사나흘 지나서부터 시도때도 없이 줄줄 코피를 흘리군 했다. 무엇보다 동이를 참기 어렵게 했던것은 남씨 성을 가진 사장이였다. 예순이 넘은 령감태기가 어디서 정력이 그렇게 넘쳐나는지 식전 새벽부터 고함을 지르면서 3층 숙사에서 달리듯 내려오군 했다. 아직 늦잠에 익숙한 동이네들은 처음에는 괜히 그 고함소리에 놀라서 부랴부랴 옷들을 걸치고 현장에 우르르 달려나갔다. 혹시 무슨 잘못된 일이 있을가 싶어서였다. 그런데 그게 아니였다. 사장은 동이네들이 놀라서 낯이 흙빛이 되는게 재미있어서였다. 그리고 어둑어둑한 새벽녁에 일자로 줄을 세워놓고 사훈을 외게 하는게 신나는 모양이였다. 사장은 매일이다싶이 하루에도 열두번 넘어 고함을 질렀고 그때마다 동이네들은 화들짝 놀라면서 어쩔줄 몰랐다. 호랑이같은 남사장이 개구쟁이 모습을 하고 나타나는 경우도 가끔 있었다. 대개 좋은 오더가 떨어졌거나 바이어한테 한바탕 칭찬을 받은 직전이었다. 그때면 작은 키만큼 작은 발에 특대 슬리퍼를 궤고 수백명 직원이 미싱작업을 하는 현장으로 개잡은 포수마냥 데뷔하여 여직원들의 궁둥이를 차주기도 했다. 채운 여직원들이 줄줄이 천쪼각을 붙인 테이프를 사장의 등뒤에 붙여놓았고 그걸 번연히 알고 있는 남사장은 그대로 현장을 한바퀴 돌면서 개그굿을 펼쳤다. 좀 담대하고 짓궂은 나이 먹은 여직원들은 아예 테이프모자를 만들어서 사장의 머리에 얹어주었고 남사장은 그대로 팔짱까지 지르고 미싱 라인사이의 좁은 복도에 갈라선 여직원들 사이를 비벼지나가기도 했다. 한족 여자애들은 버릇 한번 잘못 굳히면 이상제하도 없다고 기회가 생길 때마다 지나가는 어투로 귀띰했지만 오히려 동이네들이 직원들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다고 야단이였다. 한번은 한국에 두고 온 서른살 어린 마누라가 생남했다면서 갑작스레 현장에 뛰어오더니 열개 라인의 스위치를 몽땅 꺼버렸다. 그리고 동이를 시켜서 식당 아줌마 세명을 몽땅 현장으로 불러왔다. 그리고는 회사밖에 세워둔 수박트럭을 통채를 몰고 들어와 반나절 넘어 수박잔치를 벌렸었다. 그 일화가 청도의 아리비안나이트가 되였다.  소학교밖에 나오지 못한 미스터 양은 첫달 로임을 받자마자 사직서를 제출했다. 동이도 욱하는 충동을 겨우 참았다. 새우잠을 자더라도 고래꿈을 꾸랬던가. 사람이 붙어있기 어려운 이런 곳이 오히려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사막에다 배 띄우기를 석삼년만에 남사장은 공장을 그 사이 배를 두번이나 슬그머니 불려놓은 한족 여직원의 오빠한테 넘겨주고 동이만 끌고 무역업에 올인했다. 하긴 동이외에는 거퍼 석달이상 일한 관리자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나마 일본 바이어를 틀어쥔 덕분에 오다를 뿌리고 마진을 남기는 일은 무난했었다. 그렇게 2년 정도 우왕좌왕하다가 남사장은 동이더러 포워딩회사를 오픈하도록 하고 자기는 오다를 뿌리고 여직원 오빠는 제품을 생산하고 동이는 그것을 일본으로 보내는 시스템을 만들어놓고 부랴부랴 한국으로 귀국했다. 그물망태에 고기가 묵직하게 들 무렵에 바다물이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저만치 아득하게 밀려나갔다. 시계를 보니 금방 열시에 올인하고 있었다. 동이는 갯바위장화를 착석하고 바다물을 따라 느적느적 걸었다. 한 백미터 정도 나가니 물이 주춤 머물러 서는것이 육안으로도 얼핏 보였다. 동이는 갯바위낚시질로 맞춤한 높은 바위 덩이에 올라 짐을 풀고 자리를 잡았다. 그건 썩 전부터 눈여겨 본 자리였다. 밀물이 다시 밀려와도 바다물에 잠기지 않는 맨바위였다. 일단 담배쉼부터 하려고 주머니를 주섬주섬 더듬다가 이상한 느낌에 돌아보니 아까 그 건너편 녀인이 휘청이며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는것이 보였다. 가냘픈 몸매는 바다바람에 당장 날려갈것 같았지만 한사코 기다싶이 하여 톺아오르더니 그중 가장 높은 바위우에 터벅 주저앉았다. 손에는 여전히 흰색비닐주머니가 들려있었는데 그사이 바지락도 여러 개 들어가 있었다. 아무래도 이쪽으로 이동하면서 닥치는대로 주어담은 모양이였다. 동이와는 비스듬히 5~6미터 사이두고 있어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고도 녀인의 일거일동을 살펴볼수 있었다. 녀인은 엄청 힘들었던지 가뿐 숨을 톺고있었다. 본능적으로 숨소리를 따라 올려다보던 동이는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래졌다. 녀인이 주저앉은채로 돌쪼각으로 바지락을 까더니 날것 그대로 허겁지겁 입안으로 쓸어넣고 있었던 것이다. 량미간에 박힌 검은 기미가 유난히 눈에 띄였다. 동이가 놀라고 의아한 눈빛으로 건너다보는것도 모른채 녀인은 손에 잡히는대로 바지락을 까서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더니 더 이상 없던지 이번에는 다슬기를 까는 소리가 요란했다. 까딱까딱 바람에 실려 다슬기 까는 소리가 한결 다급해 보인다. 카악카악 사래기 들린 상태 역시 성급하다. 동이는 도무지 정신을 집중할수 없었다. 눈살이 찌푸려지는 매치 안되는 옷차림은 물론 그 칙칙한 옷가지에서 풍겨나오는 고약한 냄새, 그리고 녀인의 입으로 흘러들어가는 바다 생물들의 버려진 허울까지 어느 하나도 그저 흘러지나가지 않았다. 도대체가 저 녀자의 정체는 무엇일가 몹시 궁금했다. 허술하게 지나치고 무시하기에는 저 눈빛이 너무 강인했다. 지저분하고 꾀죄죄한 천쪼각에 감싸진 조그만 육체는 굳센 의지로 뭉쳐있었고 까아만 눈동자는 지적인 힘을 발산하고 있었다. 특히 량미간에 자리잡은 검은 기미는 동이를 동화와 같은 아득한 저 옛날로 이끌어갔다. 동이네 이웃에는 동이보다 두살 어린 쌍가매란 녀자애가 살고 있었다. 평소에 동이 뒤를 꼬리처럼 따라다녔던 쌍가매는 그러나 동이가 소학교에 진학하면서 그 보기 흉한 량미간의 기미때문에 점차 동이한테 기피대상이 되였다. 동이는 반급 애들이 쌍가매 똥가매 하면서 놀리는것도 싫었고 점 점 돼지점 하는것도 짜증났다.  그래도 쌍가매는 쌍가매대로 눈치코치 없이 동이가 싫어하는것도 모르는양 잘도 따라다녔다. 그 시절에는 먹거리도 많이 모자랐다. 한창 뼈마디가 자라고 굵어지는 나이라 항상 뭔가 먹고 싶었다. 다행히 동이의 할배가 소대 우사간에서 소를 먹이고있어 동이는 틈틈이 콩기름을 짜고 나머지 찌꺼기를 다져서 만든 일명 두병이란것을 가끔 얻어먹군 했었다.  시커멓게 타고 단단한 두병이지만 먹고난후면 고소한 뒤맛도 있었다. 그래도 동네애들과의 생존경쟁에서 두병은 동이의 강력한 무기이기도 했다. 두병으로 힘센 넘을 회유하기도 하고 밉상인 넘에겐 검게 타기만 했지 제대로 익지 않은 두병을 주어 골탕을 먹이기도 했다. 쌍가매에게도 그런 약수를 쓴거 같았다. 두병을 한사발 다 먹어야 데리고 다닐것이라고 했더니 급병맞을 계집애가 넘어도 안가는 생두병을 억지고 넘기고 뒤가 막혀버린것이다. 배를 잡고 대굴대굴 딩굴며 울어대는데 동이는 어쩔줄 모르고 쩔쩔매기만 했다. 그러다가 무작정 쌍가매를 끌고 변소로 들어갔다. 어린 나이에도 부끄럼을 알고 숨어야 한다는걸 알아서 변소로 찾아들어간것이지만 그게 자신이나 쌍가매에게 얼마나 큰 후환을 만들었는지 당시에는 전혀 몰랐다. 변소에 숨어 들어가서 나무판자에 쌍가매를 훌쩍 올려세우고 바지를 끌러내리고 밑구멍에 손을 넣고 후비는데까지는 문제 없었다. 엄마가 쩍하면 그의 똥구녕을 후벼주었던것이다. 그런데 짖궂은 하나님은 동이에게도 선악과를 먹이기 시작한것이다. 눈길이 자기도 모르게 자꾸 쌍가매의 그곳으로 쏠리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렇게 한번 두번 눈길을 주다가 똥구녕을 후비던 손으로 그곳을 만지기 시작했다. 방정맞게 때맞춰 그곳을 지나가던 한 아주머니가 급한 일을 보려고 변소문을 열었다가 그 장면을 목격하게 되였다. 반동분자는 그 종자때부터 퇴페적이다. 빈농의 후대를 여우처럼 홀리는 반동분자들의 책동을 뿌리부터 잘라야 한다. 쌍가매는 지주성분을 가진 할아버지와 함께 매일 조리돌림을 당하다가 어느날 한밤중에 그 집식구들이 마을에서 소리없이 사라졌다. 그 뒤에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강넘어 저쪽 나라로 건너갔다고 한다. 그 나라에서는 맛있는 입밥에 소고기국을 먹는다고 했다.  그렇게 동이는 쌍가매와 헤어졌고 세월이 흐르는동안 기억에서마저 잊어버렸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이 그른데 없었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시간은 오후 한시를 넘기고 있었다. 동이는 낚시대를 거두고 물에 고여놓은 고기그물망태를 들어올렸다. 큼직한 우럭 10마리 정도 꺼내여 껍질 바르는데 채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한옆에 모아두었던 우럭 껍질을 바다새들이 마음놓고 먹도록 멀찌감치 뿌려던지고 마른 나무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해변에는 별라별 오가잡탕들이 다 있어서 땔감은 쉽사리 모아졌다. 불을 피워놓고 고기를 나무꼬챙이에 꿰고 있는데 저쪽에 있던 녀인이 불시에 튀여일어나는것이 보였다. 집에 가려나보다고 생각하는데 다시 꼬꾸라지듯 그 자리에 주저앉는것이였다. 푹 꺼져들어간 눈은 탐욕으로 부글부글 끓고있었다. 동이는 눈인사로 함께 먹자고 요청했다. 녀인은 예상외로 고집스럽고 완강하게 거절했다. 동이는 별수 없다는듯 고기가 굽히는대로 입에 넣고 맛나게 먹었다. 참이슬 한병이 잠간사이에 배속에 들어갔다. 해나른해져서 더 굽기 싫어질 무렵에는 아예 날것채로 고추장에 찍어 입에 털어넣었다. 비릿하면서도 구수한 그 맛은 어떻게 형용할 방법이 없었다. 녀인은 지쳤는지 더이상 이쪽을 보지 않고 지그시 눈을 감고 있었다. 숨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웬일인지 동이는 괜히 안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 그물망태에서 10여마리 꺼내 껍질을 바른후 누렇게 구웠다. 그리고 그 녀인과의 중간쯤 되는 거리에 가져다놓고 돌아섰다. 얼결에 보니 그 사이 녀인이 데꾼하게 뜬 눈으로 동이를 의아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건말건 동이는 휘적휘적 내려와 턱 퍼진 바위에 그대로 드러누웠다. 파아란 하늘에는 갈매기떼들이 유유작작 날으고 있었고 그 밑으로 우뚝 솟은 로산은 해상제1명산답게 기세당당했다. 언제가 로산에 자리잡은 태청궁에 출가나 할가부다 생각했다가 저절로 쓴웃음이 나갔다. 자기처럼 주육풍류에 절을대로 절은 중생을 도가 역시 거절할게 당연했던것이다. 머리뒤로 가벼운 발걸음소리가 들려왔다. 녀인이 고기 가질러 오는게 틀림없었다. 동이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뜬눈의 동이를 보면 녀인의 용기도 사라질지 몰랐기 때문이다. 오던 발걸음소리가 멈춰섰다. 한동안 아무런 기척도 없더니 다시 멀어져가는 발걸음소리가 간간히 들려왔다. 동이는 괜히 큰일을 한듯 눈을 더 지긋이 감았다. 따가운 해빛이 눈까풀을 뚫고 들어와 눈안을 새빨갛게 물들였다. 황홀했다. 거기에 술기운이 더해져 몸이 둥둥 뜨는 기분이였다. 귀가에 느닷없이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그것은 파도가 바위를 덮치는 소리였다. 이렇게 가까이서 파도소리를 들어본것도 참 오래간만의 일이였다. 동이는 후다닥 놀라면서 뛰여일어났다. 어느새 잠이 흠뻑 들었던 모양이다. 하늘은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머리맡에는 물고기망태가 놓여있었고 주변은 온통 바다물로 둘러있었다. 동이가 잠든 사이에 밀물이 다시 밀려들어온것이다. 동이는 조건반사적으로 우쪽을 올려보았다. 녀인은 조용히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두말할것 없이 고기망태는 그녀가 건져서 갖다놓은게 분명했다. 동이는 씨익 웃었다. 그러자 그녀 역시 해말간 웃음으로 답례했다. 동이는 괜스레 궁둥이를 툭툭 털며 사위를 둘러보았다. 그들은 손바닥만한 바위덩이우에 갇혀있었다. 해안가는 어느새 저만치에 밀려가 있었고 사람은커녕 개미새끼 한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는 고기도 잡히지 않는다. 동이는 멜가방을 뒤적였다. 참이슬 한병이 걸려나왔고 생수 두병이 딸려나왔다. 잠시 담배 한대 뽑아서 깊게 서너모금 빨다가 그대로 바다에 던져버리고 다시 땔감을 모아보았다. 다행히 점심에 별로 피우지 않아 꽤나 많이 남아있었다. 아직은 희미하나마 볼수 있어 여기저기 돌면서 불이 붙을만한 물건이면 무작적 걷어모았다. 저쪽의 녀인도 후다닥 일어나더니 주변을 돌면서 나무가지들을 긁어모으기 시작했다. 바다는 해만 넘어가면 바로 어두워졌다. 녀인은 다가와 모은 나무가지들을 내려놓고는 소리없이 다시 물러갔다. 밤은 바야흐로 깊어가고 파도는 점점 소름 끼치게 높아갔다. 아마도 어둠에 배겨내기 어려웠던지 녀인이 어느덧 눈앞까지 내려와 앉았다. 동이는 개의치 않고 불을 피웠다. 그리고는 느끗하게 앉아서 그물망태기에서 고기를 꺼내 굽기 시작했다. 껍질을 바르는것도 귀찮아졌다. 고기가 구워지는 냄새가 금세 퍼져나갔다. 해변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에 동이는 썰물이 대강 언제쯤 나간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그때까지 하다못해 불씨라도 쪼일려면 최대한 땔것을 아껴야 했다.  동이는 얼추 구워진 고기 한마리를 녀인의 앞에 놓았다. 그리고 그김에 생수 한병과 참이슬병도 함께 나란히 놓아주었다. 녀인도 이번에는 거절하지 않았다. 고기를 냉큼 집어 입안에 넣고 씹더니 참이슬을 한모금 털어넣었다. 안주 먼저 먹고 술 먹는 사람은 동이는 처음 보았다. 녀인은 소주를 다시 동이앞으로 밀어놓더니 그제는 생수를 들고 한모금에 굽을 내버렸다. 동이도 술을 한모금 마시고 날고기채로 입에 넣고 씹다가 갑자기 집에 이 상황을 알리지 않았다는 생각에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상대가 알아듣지 못하도록 우리 말로 바위에 갇히게 된 사연을 장황하게 설명하고 핸드폰을 닫다가 이상한 느낌에 녀인을 쳐다보니 녀인은 어느새 퉁방울처럼 둥그런 눈을 하고있었다. 우수가 가득하던 눈에서 겁기가 밀려나고 대신 믿음이 서서히 자리잡고 있었다. 녀인은 한걸음 더 다가앉았고 얼굴은 한결 펴지고 홍조가 떠올랐다. 녀인은 동이가 술병을 갖다놓기전에 두손으로 그대로 받았다. 그리고 저절로 그물망태에서 고기 한마리를 꺼내 껍질을 쭉 바르는것이였다. 무척 로련한 솜씨였다. 바다와 많이 익숙한 사람이 분명했다. 두 사람은 말 한마디 없이 술병을 주고 받았고 고기 안주는 스스로 자기몫을 해결했다. 가끔 녀인은 참이슬병을 불가에 갖다대고 설명서를 들여다보군 했다. 읽을줄 알고나 그러는지 동이로서도 판단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은 어눌한 무드속에서 참이슬 한병을 굽내고 사그라진 불더미를 마주하고 말없이 오래동안 마주앉아있었다. 시간이 응고된듯 했지만 웬일인지 지루한 감은 없었다. 녀인은 나이로 보아 동이와 비슷해보였지만 풍진세월을 겪을대로 겪은 사람마냥 많이 지쳐있었다. 동이는 그 만장같은 사연을 건드려서는 안된다는것을 직감으로 느끼고있었다. 침묵이 그녀를 지탱해주는 자존심일지도 모른다. 밤은 깊어만 갔다. 해안쪽에서는 불빛이 대낮같이 밝아있었다. 엎어지면 코닿은 육지를 눈앞에 두고 그들은 갈수가 없다. 원래는 육지와 이어진 길이였다. 그들은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육지와 생지옥처럼 갈라지고 막혀졌다. 혹시 어느 파도 하나가 갑작스레 바위 전체를 덮쳐 삼켜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들은 자기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바다에 그대로 훌렁 나떨어질것이고 그다음 서로 살겠다고 대방을 끄잡고 실랭이하다가 함께 바다 깊숙히 침몰할것이다.. 시체는 얼마 안되여 주변 어부들로 인해 마춤하게 건져질거고 자칫 장례식이라도 치뤄주면 그 이상 호강이 없는거로 만족해야 할것이다. 물론 어부들은 그들 주머니속에 든 물건들을 몽땅 고스란히 털어내 냉큼 차지할건 분명하다. 인간의 본성은 원래 탐욕스럽다. 인지초 성본선은 참 웃기는 말이다. 동이는 자기도 끔뻑 놀랄 정도로 흥 하고 코방귀 뀌고 주머니를 더듬어 돈지갑을 꺼냈다. 아무런 생각없이 잔돈만 내놓고 100원짜리 지페를 몽땅 꺼내여 헤어보았다. 1800원이였다. 그는 상대를 쳐다보지도 않고 돈을 움켜쥔 손을 녀인앞으로 내밀었다. 어부들한테 멋대가리없이 바쳐질것이면 하다못해 잠간이라도 그녀한테 선심을 쓰고 감사하다는 말이라도 듣는게 낫겠다는 충동이 그더러 그런 당돌한 행동을 하도록 만들었다. 더욱 아이러니한것은 눈 한번 깜박이지 않고 동이를 지켜보던 녀인이 별로 주춤하는 멋도 없이 그대로 돈을 받아서 주머니 깊이 질러넣은것이다. 순간 동이는 자기가 환청같은 공간에 들어가있었다는걸 느꼈지만 다시 어떻게 돌이킬수는 없었다. 동이는 자조하듯 허글픈 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하는 짓이 언제나 뻐스 떠난다음에 손드는 편이라는 생각과 더불어 저 아득한 옛날의 쌍가매가 동시에 떠올랐다. 량미간의 검은 기미가 녀인과 묘하게 캡처되었다. 바로 그거였다. 쌀쌀한 바다바람이 급작스레 불어왔다. 파도는 한결 사나워졌고 따라서 추위가 엄습해왔다. 바다가는 주야의 기온차가 엄청 심했다. 녀인은 오싹 몸을 떠는가싶더니 콜록콜록 기침을 가볍게 해댔다. 동이는 겉옷을 벗어 녀인에게 건넸다. 이상하게 녀인은 세차게 머리를 가로저었다. 그녀의 몸떨림이 육감으로도 전해졌다. 동이는 자리를 차고 일어나 녀인 옆으로 다가가 옷을 그녀의 몸에 걸쳐주었다. 손을 허우적거리며 털어내던 그녀가 문뜩 거절을 멈추는가 싶더니 불시에 동이의 품으로 쓰러지듯 안겨왔다. 그때 유표하게 량미간에 자리잡은 검은 기미가 선하게 동이의 눈안에 들어왔다. 동이는 녀인을 밀쳐내는것도 잊은채 멍하니 그 기미만 들여다보았다. 녀인의 몸은 가늘게 떨고있었다. 허름한 옷속에 속절없이 감춰진 젖가슴은 생각밖에 무겁고 두터웠다. 아직은 생기가 남아있는 몽뚱이였다. 녀인은 동이의 품에 기댄채 슬그머니 눈을 감아버렸다. 약간 젖힌 얼굴은 동이를 향해있었고 도톰하게 올라온 입술은 무엇인가를 갈구하는듯 싶었다. 동이는 한동안 굳어진듯 서있었다. 마음 밑바닥으로부터 뜨거운 기운이 올리솟은건 얼마후였다. 동이는 그것을 주체할 힘이 없었다. 녀인의 신음은 한결 급했고 몸은 금세라도 활활 타버릴듯 바들바들 떨고있었다. 동이는 손을 녀인의 가슴우에 올리고 한웅큼 틀어잡았다. 알맞춤하게 크고 부드러웠다. 녀인은 손을 뻗쳐 동이의 벨트를 풀어내렸다. 바지가 무릎밑으로 스르르 흘러내려가고 찬바람이 휑하니 아래도리를 훓어지나갔다. 녀인의 손이 팬티속으로 들어오는 찰나 동이는 그대로 녀인을 바위우로 쓸어넘겼다. 동이는 자신의 분신을 다시 돌이켜보았다. 어쩌면 세 분신이 하나가 되여 그 자신이 되어있다는게 신기하기도 했다. 갈라져 제마끔 용을 쓸때는 미워나기도 했지만 가끔 한몸에서 뭉쳐서 힘을 발산할때는 대견하기도 했다. 내일이면 남사장이 한국에서 들어온다. 기를 잔뜩 살리고 안하무인식으로 노는 남사장이지만 귀여운데가 많기도 했다. 마냥 넘쳐나는 정력이 그 하나였다. 그와 어울리자면 잠을 미리 자두어야 하고 다리도 쉬여두어야 하고 특히 마음을 비워두어야 한다. 그렇게 맞추어가는것이 또한 인생을 살아가는 하나의 재미인듯싶기도 했다. 차고 딱딱한 바위바닥을 의식하고 동이가 눈을 떴을 때는 녀인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금방 한바탕 일장춘몽을 꾸고 헤어나온 느낌이였다. 동이는 그것이 진정 꿈이기를 바랐다. 하지만 가을에 춘몽이 어불성설이다. 동이는 주섬주섬 옷을 주어입고 행장을 챙겼다. 썰물이 밀려나간 뒤었다. 어두컴컴한 돌바위길은 걷기가 한결 불편했다. 동이는 허우허우 돌밭길을 걸어나갔다. 어깨에 걸친 낚시장비가 당장 미끌어 떨어질듯 안스럽다. 동이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낚시장비를 추슬렸다. 스스로 듣기에도 숨결이 많이 거칠고 힘겹다. 저 멀리 어두움속에 조그마하게 옴츠러든 녀인이 힘겹게 바위돌 사이를 헤집고 나가고있는 모습이 환각인듯 어슴푸레 보이고있었다. 이제는 입은 옷색상이 전혀 보이지는 않지만 이 바다가에서 게나 다슬기 또는 바지락 따위를 줏는 주변 동네 아낙네는 아니란것이 분명해졌다. 이름이 무엇인지 묻지 않은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쌍가매는 아니겠지…  
13    인저리타임 댓글:  조회:888  추천:0  2014-08-31
단편소설 인 저 리 타 임 장 학 규   조씨는 맥이 풀리는듯 낮다란 바위돌우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았다. 2월이면 청도는 봄철에 접어든다고 말할수 있다. 겨우내 푸들푸들하던 나무들이 살판 만난듯 새움이 돋아나고 얼뚱말둥하던 민물의 살얼음이 어느새 풀려진다. 그러나 황해가의 봄바람은 여전히 매우 날카롭다. 만주벌판처럼 쌩쌩 소리내며 달려드는건 아니여도 옷섶을 와락 헤치며 몸을 오싹하게 하는 매서움이 있다. 기온은 영상에서 맴돌아도 귀가 얼어가는 느낌은 겨울이나 다를바 없다. 청도의 바다는 하루에 두번 고조와 저조가 반복되는 반일조이다. 철썩 철썩… 만조때에는 노한 파도가 그대로 집채처럼 해안바위를 부신다. 천군만마처럼 우야야 달려와서 방울방울로 산산히 부셔져내리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간조에는 물우에 훌쩍 드러난 해변 바위사이를 가로막은 낮다란 방파제를 볼수 있다. 그것은 밀물에 딸려온 고기들이 다시 썰물과 더불어 바다 깊이 돌아가지 못하게 하는 아주 원시적이고도 효과적인 장치이다. 염전처럼 바다물이 방파제안에 갇히면서 작은 바다고기들이 그속에 허우적거린다. 그때면 맞춤하게 갈매기떼들이 달려든다. 박력감있고 속도감 넘치는 갈매기들의 날개짓에 사람들은 저절로 매료된다. 싱크를 맞추어 나란히 날면서 손님들이 던져주는 먹이를 노오란 부리로 냉큼 집어삼키는 모습은 전률 그 자체이다. 흰색의 몸뚱이 밑으로 길게 뻗은 황색 다리를 달싹이며 한껏 낮아진 바다물에서 고기를 집어먹는 자태도 그저 귀엽기만 하다. 조씨는 특히 간조때를 좋아한다. 운이 좋으면 돌틈에 기여든 게를 쇠줄로 끄집어내는 재미는 물론 갯바위에 찰싹 들어붙은 굴도 더러 캘수 있다. 이젠 다슬기 정도는 별로 눈에 차지 않는다. 아주 가끔이기는 하지만 방파제안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엄지굵기만한 우럭을 공짜로 주을때도 있었다. 그 재미에 조씨는 매일 48분 차이로 시간이 뒤로 밀리면서 나타나는 간조때를 용케 맞추어 나간다. 그런데 오늘은 별로 신통치 않았다. 바다를 아는 친구 하나가 조씨보다 먼저 나타나서 한바퀴 서리해버리고난 뒤였다. 얼굴이 분칠한것처럼 하얀 사내였는데 평소 조씨가 다니던 루트대로 묘하게 다니면서 싹쓸이하고있었다. 훤칠한 키에 멋이 철철 흘러넘치는 회색의 윈드 재킷 차림새였다. 얼핏 보기에 이 동네를 그저 스쳐지나가는 행객이 분명했지만 방정 맞게도 밥알 한톨 흘리지 않을 정도로 샅샅히 훑고있었다. “씨발, 재수에 옴 붙었군. 어디서 굴러온 넘이지?” 조씨는 흰얼굴 뒤를 잰걸음으로 쫓아갔지만 그 긴다리를 끝내 이기지 못하고 체념한듯 혼자소리로 중얼거렸다. 술덤벙 물덤벙이 성격인 조씨는 입안소리도 남들 듣기에는 마냥 요란하다. 아닌게 아니라 앞서가던 흰얼굴이 주춤 멈춰서면서 획 돌아섰다. “이제 그 말 나더러 한겁니까?” 정확히 조선말이 되돌아왔다. 하느님 맙소서. 조씨는 가끔 친구들로부터 언젠가는 주둥이가 찰떡이 되어 돌아올수 있다는 경고를 듣는 사람이다. “아, 그게 뭐…말하자면…” 조씨가 미역 감다 물 먹은 넘처럼 꺽꺽거리는데 흰얼굴은 냉소를 머금고 다시 마이웨이 행보를 이어갔다. 무표정한 얼굴표정도 그렇고 끼있는 걸음걸이도 그렇고 쉽사리 건드리기 어려운 사람이 분명했다. 조씨는 흰얼굴의 우덕진 뒤모습을 이윽토록 바라보다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돌아섰다. 아무래도 오늘은 가게에 점잖게 붙어있어야할가부다. 조씨네가 저 멀리로 부두가 비스듬히 바라보이는 이곳에 국밥집을 오픈한지도 벌써 서너해가 되여온다. 처음에는 항구를 오가는 동포들을 념두에 두고 차렸지만 요즘에는 색다른 사람들이 더 많이 찾아온다. 팔도방언으로 와글와글 끓던 그 많은 동포들이 어느덧 과거로 굳어져버렸고 대신 클릭되여진건 쏼라쏼라 팅부둥세상이였다. 주변에 살면서 어느새 국밥에 길들여진 혀꼬부라진 당지인들이 단골로 자리매김한데다 오가는 관광객들이 다른 동네 음식을 맛본다며 찾아드는 경우가 더 많았다.  가게에는 어느덧 손님 서넛이 들어있었다. 조씨가 그나마 바다생물을 반봉다리라도 들고 들어오는 날이면 마누라는 공짜 해물국밥을 만들수 있어서인지 기뻐 날뛰기까지는 아니라도 최소한도로 잔소리는 없이 대수 넘어가주었다. 그러나 빈손인 경우에는 때시걱 준비로 굽은 허리를 펴면서 말없이 쏘아보기가 일쑤였다. 오늘도 례외가 아니였다. 쌀쌀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독기 어린 마누라의 눈길을 직시할수 없어서 조씨는 고개를 숙인채 주방으로 들어가 조용히 바닥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주인장, 여기 술 한잔 주시오.” 느닷없이 들려오는 조선말에 조씨는 본능적으로 홀안을 내다보았다. 가물에 콩나듯 드물게 들려오는 조선말은 조씨에게 언제나와 같이 위안이였고 또한 아픔이였다. 뜻밖에도 소리의 임자는 아까 바다에서 조우했던 흰얼굴이였다. 첫인상처럼 참말로 남다른 사람이였다. “주인장, 여기 술 한잔 주시오.” 흰얼굴은 분명 그렇게 말했다. 손님들이 맥주로 목을 추기는 경우는 자주 있는 일이였다. 그러나 맞춤맞춤하게 먹고 얼른얼른 나가야 할 국밥집에 와서 술 한병도 아니고 “한잔”을 달라는 사람은 지금까지 흰얼굴이 유일했다. 어느새 흰얼굴이 구들에 올방자를 틀고 앉아있었다. 번연히 폼잡는듯한 인상을 주는 회색의 윈드 재킷은 벌써 벗겨져 무릎옆으로 구겨져있었다. 사실 흰얼굴은 신사타입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는 그런 부류였다. 몰골은 허여멀쑥했지만 자세나 언동이나 옷차림이나 서로 매치가 잘되지 않는것이 첫눈에도 알렸다. 소고기국밥을 받아놓은 자리 바로 옆에 아까 바다에서 주어담은 해물 주머니를 놓아두고 있었다. “쯔쯔쯔…” 마누라가 혀를 끌끌 찼다. 영문 모르는 조씨가 의아한 눈길로 쳐다보니 마누라는 귀속말로 소곤거려왔다. “자기가 들고온 굴에다 김치를 넣고 해물국밥을 말아달라는걸 거절했어요.” “주인장, 술 한잔 주시오.” 흰얼굴이 많이 신경질이 난다는듯 다시 한번 갈린 목소리로 재촉했다. “예에, 인차 나갑니다.” 자그마한 가게라 홀서빙 도우미가 달랑 미스 왕 한사람이다. 그래도 한때 그럭저럭 괜찮게 나갈때는 일군도 여럿 썼었다. 그러나 이제는 바쁠때는 조씨도 웨이터 역할을 놀아야 한다. 조씨는 마누라가 말리는것도 뿌리치고 새 술병을 따서 두냥짜리 잔에다 술을 가득 부어 들고나갔다. 홀안은 봉당과 구들로 양분되여있다. 올방자 틀고는 마냥 불편할 한족들을 위해 한쪽으로 맨 봉당에 테이블 세개를 가지런히 놓았다. 그리고 구들우에도 맞춤하게 상 세개를 일자로 놓았다. “아, 우리 구면입니다그려.” 흰얼굴은 의외라는듯 기쁜 표정을 지었다. 업이 업이니만큼 조씨도 몹시 반가운듯 악수를 청하고나서 모든 손님들에게 그랬던것처럼 밑반찬에 서비스로 삶은 땅콩 한접시를 얹어서 내놓았다. 흰얼굴은 많이 감동을 먹었는지 연신 감사를 치켜올렸다. “고맙습니다. 그래도 같은 민족 만나니 제일 반갑네요.” 조씨는 그런 겉치례 인사에 인젠 많이 지쳐있는 상황이였다. “청도 처음 오시는 길이네요.” “아니요. 3년전에 청도에 와서 한국회사에 취직했더랬습니다. 그런데 겨우 밥먹고 살 정도밖에 안되더라구요. 그 정도 살자고 고향 떠나온건 아니잖아요. 몇번 이곳 저곳 옮겨다니다가 어떻게 운으로 고기배를 타게 되였는데 1년 좀 넘어 일해보니 세상에 사람새끼가 제일 못해먹을게 배넘이라 이번에 접안하는 기회에 때려치우고 귀국하는 길입니다.” 조씨는 아까 바다가에서 흰얼굴이 아주 익숙하게 해물서리를 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아무렴 그렇겠지. 그래도 대수라도 배 타본 사람이 뭔가 알긴 아는 법이였다.  “그럼 고향으로 돌아가시는 길이네요.” “고향 가봤자 마을에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여기서 무슨 일이나 찾아볼가 생각중입니다.” 조씨가 흰얼굴과 몇마디 너스레를 떠는 사이에 마누라의 부름소리가 두번이나 날아왔다. 조씨는 황급히 주방으로 물러나와 마누라가 넘겨주는 음식그릇을 다른 손님들의 상에 배달해주느라고 어느덧 흰얼굴을 까마득히 잊어버렸다. 항상 그랬다. 특별히 단골손님이 아니고 일반 손님은 거쳐가는 즉시 잊혀지는 법이다. 흰얼굴이 언제 자리를 떴는지 조씨는 몰랐다. 손님들을 다 보내고 청소하면서 보니 흰얼굴이 앉았던 상에 해물꾸레미가 그대로 놓여있는것이 보였다. 마누라에게 물어보니 자기도 모르는 일이란다. 대신 계산을 맞추면서 카운터에 놓인 가게 명함장을 집어 주머니에 넣더라고 알려주었다. “나중 혹 문의할게 있으면 카카오톡 넣을게요.” 그렇지만 카카오톡 때릴거란 흰얼굴은 그뒤로 감감무소식이였다. 하기사 모기 배꼽마저 빼먹을 요즘 세상에 누구를 믿는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였다. 그뒤로도 조씨의 채바퀴 돌리는 일상은 여전히 반복되였다. 매일 잊지 않고 간조때를 맞추어 바다가로 나가는것도 멈추지를 않았다. 하루에 밀물이 두번 들어오고 썰물이 두번 나가는 바다처럼 국밥집도 매일 두번 손님이 들어왔다 나가는 규칙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날은 점심시간이였다. 음력 보름이 가까와오는터라 밀물이 해변가를 꽉 채우고있었다. 일찍 들이닥친 카페리 손님들을 한바탕 치르고난 가게방은 폭격 맞은것처럼 지저분했다.  창밖 풍경도 별로 신통할게 없었다. 행인이 드물게 오가는 한산한 거리에는 때아니게 늦여름 바람이 훑어지나면서 휴지쪼각들을 날리고있었다. 항구쪽 검푸른 바다우에는 갈매기떼들이 날개를 펴고 우쭐 춤을 추고있는것이 보였다. 꽈아악 꽈아악 하는 울부짖음 소리가 방불히 들려오는듯 싶었다. 갈매기와 대칭되듯 알록달록한 여러가지 연들이 하늘이 모자라게 높이 높이 떠올라있었다. 이곳 시민들에게는 둘도 없는 취미 놀음이 연띄우기였다. “주인장, 여기 술 한잔 주시오.” 불현듯 석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는 잠시 손님이 들지 않을것이라 믿고 주방에서 담배쉼을 하며 창밖을 내다보던 조씨는 흠칫 놀랐다. 말소리가 무척 귀에 익어 본능적으로 구들쪽을 힐끔 내다보았다. “주인장, 여기 술 한잔 주시오.” 국밥집에 와서 술 한병도 아니고 “한잔”을 달라는 사람이 어디 또 있겠는가?! 조씨는 후다닥 뛰여일어났다. 친지도 아니고 연고가 깊은 사람도 아니였지만 어차피 마음속에 계속 응어리로 남아있는 사람이였다. 아닌게 아니라 흰얼굴이 구들우에 올방자를 틀고 앉아있었다. 그사이 패션이 바뀌여져 있었다. 회색의 윈드 재킷을 입어야 할 캐릭터가 말도 안되게 몸에 꽉 낀 런닝셔츠우에 헐렁한 드레스 셔츠를 입고있었다. 물론 양복은 어느새 벗겨져 무릎옆으로 구겨져있었다. 조씨는 선반우에서 술단지를 내렸다. 오미자, 구기자에 양삼따위를 넣어 담근 근들이술이다. 그건 솔직히 흰얼굴때문에 만들어진것이다. 전번에 흰얼굴이 다녀간후로 조씨는 처음으로 가게 운영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해보았다. 사실 조씨도 다른 식당에 홀로 갔다가 작은병들이 술은 입맛에 안맞고 입맛 맞는 큰 술 한병은 부담이 되여 맨밥을 먹고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손님의 수요가 시장이 아닌가. 조씨는 시골에서 하던대로 약주를 담가보았다. 손님들의 반응이 그런대로 나쁘지는 않았다. 알고보니 순 국밥집 손님중에도 다모토리 술군이 더러 끼여있었다. “오랜만입니다.” “반년 좀 넘었는데 웬 호들갑입니까.” 흰얼굴은 조씨가 겉치례 인사를 하는것도 모른채 급급히 해명했다. 정확히 시간까지 기억하는걸 보니 흰얼굴도 조씨네 국밥집에 깊은 인상이 남았던 모양이였다. 얼굴은 때가 아니라 먼지로 얼룩덜룩해져있었다. 모름지기 꽤나 지체있는 모습이였다. 조씨는 흰얼굴이 전에 두고간 해물꾸레미도 있고 하여 마누라가 시장에 나가고 없는 기회에 해물국밥을 진하게 끓여서 내왔다. “그간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말도 마시우.” 흰얼굴은 괜스레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무척 억울한듯 이마살을 잔뜩 찡그리면서 하많은 사연을 호소하려는듯 입을 실룩거렸다. “배넘 노릇 며칠 해본덕에 회 뜰줄 좀 알아서 회집 차려봤는데 생각처럼 되지 않아 밑천만 날리고 걷었습니다.” “겨우 서너달만에 맥을 버린겁니까?” “견적을 보면 딱 답이 나오잖아요. 그리고 바로 한국갈 기회가 나졌네요.” 조씨가 뭐라고 더 말하려는데 마침 밖에 나갔던 마누라가 돌아왔다. 보스에 캐셔이기도 한 마누라를 조씨는 많이 어려워한다. 어려워하는만큼 마누라가 지키는 자리에서는 조씨가 손님들과 담소를 나누지 않는것이 거의 법처럼 되여있다. 흰얼굴이 언제 나갔는지 조씨는 그냥 모른다. 마누라 말로는 흰얼굴이 나갈때 먼저번처럼 가게 명함장을 챙기고 나갔단다. 그러나 그 뒤로 흰얼굴은 여전히 전화를 해오지 않았다. (아마 정말 한국에 나갔나보다.) 조씨네가 흰얼굴의 생김새마저 다 잊혀갈 무렵 별로 시원치않은 한해도 무난하게 지나갔다. 그러나 금융위기의 여파는 오가는 행객들의 모습에서도 인차 엿볼수 있었다. 전에는 큰짐 작은 짐 챙겨들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보따리 따이궁은 물론 청도에 와서 한판 사업을 벌려보려는 웅심을 가지고 전 재산을 싸가지고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였다. 부두에 나가면 사람을 마중하느라고 여기저기서 훈민정음 피켓을 내들고 있었다. 국내선이던 해외선이던 반갑다고 부둥켜 안고 란리도 아니였다. 팔도방언이 범벅이 되여 항구의 하늘을 시끌법적거렸다. 그러나 지금은 배웅하러 나온 사람이 더 많았다. 보따리를 꿍져지고 떠나는 사람들의 뒤모습은 마냥 서글프다. 어린 자식의 손목을 잡고 눈물을 글썽이며 겨우 발걸음을 옮기는가 하면 누군가를 의식하며 두리번두리번 주변을 살피는 불안한 눈빛도 있었다. 그런 어수선한 항구 국제여객터미널로 조씨는 들어섰다. 한국에서 10여년 불법체류하다가 자진신고하고 귀국하는 동서를 마중하기 위해서이다. 이곳에 올때마다 항상 느끼는것이지만 선착장도 세관이 될수 있다는게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고작 난간 둬개에 검사대 한번으로 국경 역할을 한다는게 아이러니했다. 조씨의 인생경험에 국경이란것은 강으로 그어지거나 아니면 산에 철조망을 두르고 만들어지는것이다. 국방군의 순라가 눈으로 확인되지 않는 바다의 국경이 너무 생소해서 올때마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바다에 금을 그을수도 없고 하늘우에 구름이 그대로 길다랗게 거쳐있고 바다속의 물고기가 왔다갔다 하고 바다새들이 철따라 오가고 하는데 령물이라는 사람들은 오히려 갇혀서 검문검색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한심하기도 했다. 아무튼 조씨로서는 인간세상이 참 요지경이라는 느낌뿐이다. 오늘도 날씨는 스산하기 그지없다. 아직 추위가 완전히 가셔지지도 않았는데 하늘에서는 가는 비줄기를 뿌리고있었다. 방향감이 없이 좌충우돌하는 바다바람도 국경을 넘나드는 사람들에게는 밉상이다. 항구를 오가는 선박들의 고동소리도 마냥 서글프고 애처롭다. 줄지어 나오는 손님들속에서 동서를 발견한 조씨가 남달리 톤이 높은 목소리로 불렀다. 그것도 모자라 대구 손을 흔드니 멀리서도 동서가 전형적인 시누런 이발을 환하게 드러내고 시무룩이 웃는것이 보였다. 조씨가 입국장을 나선 동서의 손에서 트렁크를 받아드는데 불시에 누군가 그의 어깨를 가볍게 쳐왔다. “여기서도 만납니다.” 고개를 들고보니 흰얼굴이였다. 기억이란게 참 희한한 물건이였다. 어떤 사람은 매일 보는거 같은데 도무지 기억에 남지 않지만 흰얼굴은 거퍼 몇번 만나지 못했어도 보자마자 기억에 퍼렇게 살아오는것이 아닌가. 그래도 남의 국수사발에 괜히 초치는 흰얼굴이 별로 반갑진 않았다. “글쎄 말이유. 어디 가시는 길입니까?” “가는게 아니라 오는겁니다. 한국서.” 흰얼굴의 패션이 그사이 다시 바뀐것을 조씨는 놀랍게 발견했다. 물이 간 검정색 점퍼에 짙은 토색의 구식 캐주얼화를 받쳐 신고있었다. “접때 간다더니 기어코 갔구마이.” 조씨는 더이상 흰얼굴과 말섞기 싫어 동서의 짐을 끌고 씨엉씨엉 앞서 걸었다. 엎어지면 코 닿을 국밥집에 이르러 뒤돌아보니 어디로 갔을법한 흰얼굴이 멀쩡하게 뒤따라와있었다. “주인장, 여기 술 한잔 주시오.” 흰얼굴은 구들에 올방자를 틀고 앉아 소리쳤다. 천천히 점퍼를 벗더니 무릎옆에 아무렇게나 던져놓았다. 조씨는 흰얼굴의 주문대로 순대국밥에 약술 한잔을 가득 부어 가져다주면서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 했다. “간지 얼마 안되지 않습니까?” “반년 안되였을걸요.” 흰얼굴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사이 얼굴이 많이 검실해졌고 살도 크게 빠져있었다. “한국에게 우리는 이방인입니다. 거의 거지취급이지요.” “부자 대접 받자고 간건 아니잖습니까?” “그래도 그렇지. 온갖 더러운 일, 힘든 일, 어려운 일을 다 하면서 중국에서도 받지 않는 괄시를 받는건 정말 참을수 없습니다.” 동서가 오래간만에 온데다가 또 다른 손님도 돌봐야겠기에 조씨는 잘 드시란 인사를 마치고 물러났다. 그리고 동서와 마주앉아 세상살이를 주고받느라고 흰얼굴이 언제 갔는지 미처 살필 사이가 없었다. 나중 손님들이 모두 나간다음 문뜩 생각나 마누라에게 물었더니 흰얼굴이 계산하면서 카운터에서 가게 명함장을 한장 짚어가더라는것이였다. 그렇지만 역시 한번 간 흰얼굴은 전화를 다시 걸어오는 법이 없었다. 동서는 달포정도 머물었다. 고향에 가보았자 기다리는 사람도 없었다. 중국에 남은 외동딸은 초중도 졸업하지 못하고 북경에 가서 몇년동안 뒹굴더니 어떻게 여행사 취직이 되여 지금은 가이드 일을 하고 있다. 동서와 함께 나갔던 조씨의 처제는 여직 한국에 숨어서 살고있다. 그대로 남아서 돈을 벌다가 동서가 중국에서 자리를 잡으면 때맞추어 돌아와 살면서 기한이 차기를 기다려 다시 한국으로 나갈 생각이였다. 동서는 우선 딸애가 있는 북경에 가겠다고 했다. 가능하다면 2년 후 다시 한국으로 나갈때는 딸애를 데리고 갈 타산이였다. 합법적인 신분의 중요성을 새삼스럽게 느꼈다면서 동서는 한국에서 겪은 일화들을 매일매일 들려주었다. 원체 얼음에 박밀듯 달변인 동서는 한국과 한국인의 나쁜점만 부각해 말했다. 그러면서도 또 나간다고 한다. 그것도 딸애까지 끌고 가겠다고 한다. 조씨는 아무래도 리해되지 않았다. 동서가 북경으로 떠나가는 날이다. 오후 기차라 동서는 집에서 늦잠을 자고 조씨는 조씨대로 가게에 나와 점심 준비로 바삐 보내고있었다. 어쩌면 하늘이 구멍이 뚫린 모양으로 기분 나쁘게 비방울을 날리고있었다. 시커먼 구름이 낮다랗게 떠서 뭉게뭉게 떠도는가 하면 바다가답게 맵짠 바람이 한껏 불어치고있었다. 일년치고 바람 잘 날이 며칠 없었다. 그 덕분에 바다가에는 연들이 마냥 떠서 하늘을 장식하고있다. 군용외투로 온몸을 꽁꽁 감싼 로인들이 줄을 길게 늘이고 당겼다 풀었다 하는 품이 제법 전문가다운 멋이 있었다. 긴줄배기 룡연으로부터 독수리연은 물론 작은 잠자리연까지 연놀이군들의 손끝에서 한껏 재주를 부리고있었다. 멀리 질주하는듯 하더니 금세 춤추는 자세로 멈추는가 하면 낮게 맴돌더니 불시에 소소리 높이 올리솟구치기도 했다. 모든것이 연놀이군들의 손놀림에 달려있었다. “주인장, 여기 술 한잔 주시오.” 조씨는 자기의 귀를 의심했다. 분명 흰얼굴의 석쉼한 목소리였지만 도무지 믿어지지 않아 목을 내밀고 홀을 내다보았다. 다른 누가 아닌 흰얼굴이 버젓이 구들에 올방자를 틀고 앉아있었다. 그간 날씨가 조금 풀려서인지 흰얼굴은 갈색의 엷은 양털셔츠를 차려입고있었다. 겉옷은 검은색의 양복인듯 벌써 무릎옆으로 구겨져있었다. 조씨는 흰얼굴에게 이 차림새가 가장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번에는 어디로 가시는 길입니까?” “고향에요.” 흰얼굴은 소태를 씹은듯 이마살을 잔뜩 찡그렸다. “정말 뭔가 해볼려고 했었는데 도대체가 할 일이 없네요. 중국은 무슨 업이나 다 꽉 들어찬 느낌입니다그려.” ”그럼 일단 출근하면서 기회를 찾아볼거지요?” “아니요. 청진기 갖다대기전에 진단이 먼저 나옵디다.” 조씨는 입을 가시면서 더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흰얼굴이 아무 국밥이나 알아서 달라고 하여 별 생각없이 콩나물국밥을 내놓았다. 끓이기 쉬운 원인도 있었지만 갖다놓고보니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고향 초가집 한구석에 벼짚으로 엮은 콩나물시루가 우렷이 떠올랐다. 가둑나무로 기둥을 해서 받치고 밑에 큰소래를 놓고 물받이로 쓰던 그 콩나물시루는 한가정의 버팀목이기도 했었다. 떠나는 동서에게 점심을 대접하려고 집으로 잠간 갔다오는 사이에 흰얼굴은 종적을 감추어버렸다. 마누라에게 물어보니 이번에는 흰얼굴이 가게 명함장을 가져가지 않았다고 한다. “아이쿠 얼마나 말을 조리있게 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깜짝 속히겠더라구요. 물에 빠지면 입만 동동 뜰 사람이데요.” 마누라는 인민재판을 마치듯 한마디 툭 던지고 다시 가게 일에 분주했다. 동서와 조촐한 밥상을 마주하고 술 한잔 나누면서 조씨는 할 말을 잃은듯 했다. 머리속에는 엉뚱하게 별로 엮인것도 없는 흰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조씨가 다시 바다가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간 동서가 다녀가면서 소홀히 했던 해물 서리를 더 지굿게 해나갔다. 솔직히 조씨는 바다를 엄청 좋아한다. 아마도 조씨의 심저에는 바다의 유전자가 살아숨쉬는게 틀림없다. 확실하게 한방 날리는 바다바람도 마음에 들었고 바다하늘을 나는 갈매기와 연도 짜릿한 스릴을 준다. 특히 썰물로 인해 해면이 가장 낮아지는 간조때면 바위 틈서리에 기여든 게나 돌바위에 그대로 붙은 굴을 잡는 재미가 쏠쏠하다. 마누라의 지청구도 여전하다. 그나마 해물꾸러미를 대강 들고오는 날이면 공짜 해물국밥을 할수 있어서인지 별 말이 없다. 그러나 빈손인 경우에는 일에 지친 허리를 구부린채 독기있게 쏘아보군 했다. 조씨는 이제는 그런데 습관되여있다. 대신 신경이 도사려지는 일이 한가지 추가로 생겼다. 가게 일을 하다가도 시도때도 없이 홀안을 내다보는것이였다. 어쩌면 갑지기 구들에서 석쉼한 목소리가 울려올것 같아서이다. “주인장, 여기 술 한잔 주시오.”    
12    하숙집 댓글:  조회:1069  추천:0  2014-08-31
단편소설   하  숙  집   장학규        축축하게 누기가 들고 갑갑하도록 캄캄한 독신숙사다.보기에도 끔찍스러운 거미 한마리가 천정에 거꾸로 매달린채 뚱기적거린다. 감방같은 느낌이다.아무래도 세상의 버림을 받은 죄수같은 감각이다.   창밖의 교정에서는 영원히 지칠줄을 모르는 소년들의 천진란만한 웃음소리가 귀아프게 들려온다.나도 그들만 했으면 하면서도 그 부러움에 앞서 피동적으로 고독하게 그 웃음 소리들을 듣는 것이 어쨌던 질색이다.   나는 쫓기듯 숙사문을 나섰다.구울러 다니는 낙엽에 석양빛이 물들어있다.절망과 낭만의 교묘한 회합이다.허나 그 낭만은 종당엔 추방을 당하고 말것이며 그러면 절망만이 그것의 응당한 귀속으로 될 것이다.하다면 하나의 낙엽에도 귀속은 있을진대 떠도는 부평초같이 중심을 잃은 나의 귀속은 도대체 어디에 있을가? 그것을 찾고저 나선 걸음이었다.     거리의 사람들은 안온한 보금자리를 찾아가는 바쁜 걸음걸이들이었다.어차피 괴로와지는 마음이었다.벌써 오래전부터 이지의 힘으로선 도무지 억제 못할 해괴한 기운이 올리 뻗치고 있었다.종당엔 그것이 불치의 병을 희롱해 올 것이라는 예감이 불쑥불쑥 들기도 했다.남아 스물여덟이면 생활도 얼마쯤 고정이 되어있어야 할터인데.나 혼자만이라도 삶을 영위해갈 낭만의 터전을 마련했어야 할 것이다.그러면 불도 때보고 될 수 있으면 꽃도 키우면서 생활을 실습해 볼터이지만 항시 길 떠난 나그네처럼 할 일이 막연한 느낌이었다.   방향이 없고 목표도 없이 두루 돌다가 세집 패쪽을 내건 한 집에 문뜩  뛰어드니 나를 맞아주는 것은 칠순에 가까운 유령같은 영감과 그 손자 손녀인듯한 참새같은 어린이 둘이었다.   "누굴 찾수?"   노쇠했으나 악센트가 진한 음성으로 미루어보아 절대 만만한 영감이 아니겠다는 인상이 들었다.모르긴 해도 아들 며느리를 놀이감처럼 쥐고 흔들만큼 과격한 성미의 노인임이 분명했다.나는 어딘가 모르게 위압감을 느끼면서 얼떠름해졌다.   "세집을 맡자구요."   "무슨 일을 하나?"   명실공히 심문이었다.나는 몹시 기분이 잡쳤다.내가 무슨 일을 하던 돈을 주고 세를 맡으면 그만이 아닌가 하는 고까운 생각까지 들었다.허나 입에서는 생각밖으로 순순한 대답이 저절로 흘러나갔다.   "교원입니다."   "성친은 했는가?"   "단신입니다."   "그럼 좋네. 날 따라오게."   노인은 더 말할 여유가 없다는 듯 빼빼 마른 팔을 한번 휘젓고는 복도에 나섰다.세집으로 내줄 방은 복도 저쪽에 있는상싶었다.이 시각 나의 사유는 완전히 정지되고 오직 몸만이 어쩔새 없이 영감의 뒤를 따랐다.내가 왜 이토록 주눅이 들었는지 스스로도 우스울 지경이었다.여직껏 엿가락처럼 할아버지 옆에 붙어있던 사내애가 쫑그르르 달려가 방문을 열었다.스산한 한기가 얼굴을 스쳤다.아마도 오래동안 비워둔 방임에 틀림없었다.   "전에도 여기에 사람을 넣었었네."   노인은 마치도 개 돼지를 거둔듯한 태연한 기색으로 스스럼없이 말하더니 계속했다.   "모두들 돈이 있으니까 먹기도 잘 하겠지.그래 조용히 해먹으면 누구 뭐라겠나? 귀 아프게 볶고 지지고 하니 이것들이..."   그는 또다시 자기 몸에 붙어선 손자 손녀를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철없는 자기들도 좋은걸 먹겠다고 야단이니 그 성화를 어찌 받아내겠나.그래서 내쫓아버렸네.자네는 교원이고 독신이니 받아주는줄 알게."   말을 마친 노인은 수시로 집들이를 할 수 있다고 부언하고나서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활개를 치며 걸어나갔다.그 씩씩한 걸음걸이를 보면 젊었을 때 곰을 서너마리 잡았을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나는 망연자실했다.좀체로 말할 틈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었다.웬 일인지 할아버지를 그림자같이 따라 다니던 두 조무래기가 그때만은 문틀에 기대선채 말똥말똥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다.흩어진 심리에 대한 평형을 잡기 위해서랄가.나는 그중 동생인듯한 사내애에게 말을 걸었다.   "이름이 뭐지?"   "순철이."   퍼그나 담대한 대답이었다.어찌 보면 할아버지의 성격을 그대로 닮은듯 싶었다.   "오,순철이,넌?"   계집애는 수집은듯 얼굴을 돌리면서도   "순애."   하는 대답만은 용케 했다.   "몇살?"   "야덜살."   "순철이는?"   "여섯살."   이러루한 재미를 보다가 문뜩 이상한 감촉이 들어서 복도쪽을 넌지시 건너다보니 어느새 영감이 나타나서 경계하는 눈초리로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순간 나는 전신에 소름이 쭉 끼치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나는 급히 눈을 떨구고 한시급히 자리를 뜨려고 하였다.바로 그 즈음에 우물쭈물하던 계집애가 발꿈치로 동생을 건드리는가 싶더니 순철이란 녀석이 바로 앞으로 썩 나서며 손을 내미는 것이었다.   "삼촌,돈!"   철부지 애치고는 지나치게 명령적인 어투었다.했지만 거미 뒤다리도 걸리지 않는 그것들 한테서 "삼촌" 소리를 듣는 것이 어쨌던 싫지 않았다.돌이켜보면 몇해였던가.시골에서 대학에 갔다가 일가친척 하나 없는 이곳 도시에 배치 받아서부터 인정미가 찰찰 흐르는 이런 호칭을 전혀 들어보지 못했고 또 거의 잊어가고 있던 나였다.나는 호주머니에서 1원짜리 두장을 더듬어내어 한놈에게 한장씩 쥐어주고는 석고상같은 노인에게 내일 또 건너오겠다고 간다는 인사에 곁들어 말했다.생각밖으로 무뚝뚝해 보이던 노인이 나를 큰거리에까지 전송해주는 것이었다.     이날 내가 짐을 꾸려가지고 하숙집에 이르렀을 때는 점심 무렵이었다.젊은 주인내외는 그때까지 퇴근하지 않았고 영감이 두 손군을 거느리고 내가 들 집안을 깨끗이 거두고 한참 기다리고 있는 참이었다.   "왜 인제야 오나? 물건은 다 가져왔나?"   목석같던 어제와 선명한 대조를 이루는 수다였다.그러고보면 영감은 내가 처음 받았던 인상처럼 그렇게 까다롭고 몰인정한 것도 아니었다.아무렴 년장자이니까 후배 앞에서 좀 자존을 세워본거겠지.나는 이렇게 풀이함으로써 마음에 석연치 못한 구석을 몰아내보기도 하였다.   "저의 물건이라야 이불짐에 책궤밖에 없는걸요.오후쯤에는 그릇에 땔 것,먹을 것들을 사야겠어요."   나는 찰거마리같이 살살 기어드는 순철이를 꼭 껴안고서야 부풀어오르는 감정을 가까스로 눅잦힐수가 있었다.이젠 나에게도 나를 걱정해주고 도와주는 가정 같은 것이 있구나 하는 환심이었다.   "숙사에 있으면 이런 시끄러움이 없을텐데..."   "아닙니다.거기에 있으니 사람이 늙어가고 죽어간다는 착각뿐이었습니다.실례이지만도..."   "부모 떠나 고생이 오죽하겠나.이후부턴 여기를 자기 집으로 간주하게."   "감사합니다."   이쯤 말하고 있을 때 밖에서 느닷없이 싸구려 소리가 들려왔다.순애가 홀딱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인츰 발로 동생을 건드리는 것이 내 눈에 안겨왔다.암시를 받은 순철이가 조건반사적으로   "삼촌,돈!"   하며 손을 내미는데 똑마치 나의 존재가 그의 타액을 자극하는 조미료인듯한 감도 없지 않았다.했건만 노인은 노인대로 느슨한 미소를 머금고 나를 지켜보는데 그 눈길속엔 무엇을 갈망하는 뜻이 어슴푸레 나타났다.나에겐 그것이 더 좋았다.애들더러 그러면 못 쓴다고 호통쳐 내쫓는다면 내가 이 가정에서 외목나고 소외된다는 느낌이었을 것이다.차라리 애들 친삼촌을 대하는것처럼 "뭘 좀 사먹게 돈 좀 쥐어줘!" 했더라면 내 마음에 더 큰 위안이 되겠다는 엉뚱한 생각마저 갈마들기도 했다.나는 주저없이 한놈에게 50전씩 나눠주었다.     그날 저녁 나는 또 한번 실면의 고험을 이겨내야 했다.밥 먹듯 실면을 거듭해온 나였지만 이날 저녁만은 성질이 다른 것이었다.나는 스스로 이 가정의 한 성원으로 되어간다는 의식이었다.젊은 주인 내외와도 면목을 익혔는데 퍼그나 선량한 분들이었다.짐작대로 노인이 이 가정을 좌우지하고 있었다.     나의 생활은 또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하냥 굳어졌던 얼굴이 점차 피어가고 웃음으로 장식되면서부터 동료들은 노총각이 색시감을 봐둔게 틀림없다고 어림짐작으로 놀려주기도 했다.나는 또한 나대로 별로 해석을 가하지 않고 사실이 그렇다는듯 함구무언으로 그들을 대하기가 일쑤였다.그러니까 동료들은 더욱 기가 올라 사탕을 사내라 한턱 내라며 야단이었다.나도 그런 인사가 있어야겠다고 자각하고 있었다.비록 이성벗을 사귄 것은 아니지만 하나의 가정을 소유하고 있다고 자인하는 그 자체가,또 거기서 삶의 낙취를 한껏 만끽하고 있다는 사실이 경축할만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허나 일단 호주머니를 들추었을 때 나는 나의 돈이 눈에 뜨이게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놀랍게 발견하였다.까딱하면 이 달의 생활비용도 이어대기 어렵겠다는 위구심을 안겨주는 그만한 돈밖에 남지 않았던 것이다.나는 의아해졌다.아무리 머리를 짜봐야 통이 크게 돈을 써본적이 없는 나였다.     주인집 영감은 내가 들어서부터 매일이다싶이 손군들을 달고 마실을 다녔다.입담은 썩 좋은 축이 못되지만 위만시대때 일제의 행패같은 얘기를 할라치면 그래도 어딘가 모르게 구수하게 당기는 맛이 있었다.우리가 이야기에 정신을 팔면 조무래기들은 저희들끼리 희희덕거리며 뛰놀았다.우리의 이야기가 끝날 때면 그들의 놀음도 알맞춤하게 마무리 짓는데 그때면 순애는 버릇처럼   "뭘 먹고싶다야."한다.   그러면 순철이는 대뜸 내앞으로 뛰어와   "삼촌,돈!"   하는 것이었다.   "오냐.순철이 곱다.순애는 밉구."   흘러나오는대로 하는 자연적인 말이였지만 실상 그것은 내 진심의 말이기도 했다.나를 하늘같이 믿고 무랍없이 대하는 순철이가 진정 더 귀여웠다.만나면 언제나 나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오직 순철이를 통해서만이 자신의 진정한 의도를 표달하는 순애에겐 정이 잘 가지 않았다.저게 저렇게 여우처럼 역어서 앞으로 무엇이 될가 하는 걱정을 앞세울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그래서 우정 순철이에게는 어김없이 50전을 쥐어주지만 순애에겐 20전쯤 던져주기가 일쑤였다.   "요잘난거,좀 더 줘!"   그년이 이렇게라도 나서면 허허 웃으며 돈을 더 얹어주련만 순애는 언제나 투정없이 납작 받아들이는 것이었다.그것이 내 마음에는 더 밉상스러웠다.     동료들에게 실언을 하고 하숙집으로 돌아오는 내 마음은 납덩이같이 굳어지고 있었다.인격과 신용의 가치를 새삼스레 인식했던 것이다.남아 일언 중천금이라 했는데 자신이 번진 말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니 어떻게 이 세상에 발을 붙이겠는가 하는 부끄러움에 온종일 머리를 들 수가 없었다.다행히 동료들의 성화는 길지 않았다.그러니 돈이 떨어져서 여차여차하게 안되었다는 구차한 해석을 가하지 않아도 될 수 있었다.그러나 저러나 돈의 행방을 추종하는 것이 급선무였다.아무렴 혼자 벌어서 혼자 쓰기에는 족할 것이다.게다가 나에게는 아직도 많은 생활의 과제가 남아있는 것이다.가정을 일구고 집을 해결하고 저금도 얼마간 있어야 자식도 옳바로 키워낼 수가 있는 것이다.더는 이처럼 흐리멍텅한 장부를 하면서 생활할 수 없었다.정신을 차려야 한다.나는 자신에게 이렇게 경고를 주면서 하숙집으로 통한 골목길에 접어들었다.   "삼촌!"   목이 빠지게 나를 기다리고 있던 순철이가 한달음에 달려와 나의 품에 안겼다.문어구에는 주인집 영감이 순애의 손목을 잡고 자애로운 웃음을 띠우며 서있었다.   "삼촌,돈!"   바로 그 말이 분명했다.날마다 빠짐없는 필수 과목이었다.언제나 그러했다.염치를 모르는 순철이가 달려나오고 순애는 수집은듯 할아버지의 손목을 잡고 있으면서도 눈길은 꼿꼿이 이쪽으로 쏠리는 이런 풍경화는 벌써부터 내 머리속에 생동하게 새겨져 있는 것이었다.나는 속으로 나무아미타불을 불렀다.따라서  여직껏 종적을 찾을바 없던 일종의 답안을 획득하고 있는 시각이기도 했다.   "순철아,미안하다.오늘은 돈이 없구나."   나는 처음으로 순진한 어린애의 요구를 거절했다.나도 살아야 한다는 자각을 앞세우니 별로 자격지심도 들지 않았다.   "응-안되.난 삥굴 사먹을래!"   "없다는데두."   "그럼 20전만."   이때면 부끄러움이라곤 전혀 모르는 순철이가 귀찮았다.저쪽에 서서 대견스레 손자녀석을 바라보는 영감이 야속하기도 했다.오히려 말없이 서있는 순애가 이때만은 코마루가 쩡해나도록 고마왔다.나는 별수없이 호주머니를 들추었다.방정맞게도 20전짜리 지전이 딱 한장 있었다.그것을 받아쥔 순철이는 좋아라고 퐁퐁 뛰며 할아버지한테로 달려갔다.그와 동시에 순애가 가지러진 울음을 터뜨렸다.자기한테도 얼마간 차례질 것이라고 기대하였다가 그 희망이 물거품이 되니 새삼스레 설음이 북받쳤던 모양이었다.그렇다고 한장밖에 안남은 대단결표를 던져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나는 노인과 순애에게 양해를 구하는 뜻으로 두 손을 벌려보였다.생각밖으로 노인의 얼굴이 무섭게 이그러지는가 싶더니 불시에 요동치는 손녀를 길거리로 밀치고는 휑하니 집안으로 달려들어가는 것이었다."꽝!" 하는 폭탄작열을 방붚케 하는 문 닫히는 소리가 나의 부푼 가슴을 갈갈이 찢어놓았다.     그날 밤 주인집에서는 말다툼이 벌어졌다.영감이 나를 내자는 것을 젊은 주인내외가 한사코 반대하는상 싶었다.에라.될대로 되라지.나는 구들에 큰 대자로 드러누워 이왕지사를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그러니까 자연 자신의 아둔함이 스스로 발견되었다.혈육이란건 정분이나 인연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어린 것들이 돈을 달라고 손을 내밀 때 호통쳐 아버리거나 학용품을 사는데 써야 한다고 타일러 주는 것이 친삼촌다운 거동일 것이다.그들의 구미만을 맞춰준 나의 행실에는 그 누구의 환심을 사려는 동기가 다분했던 것이다.그러고보면 나는 사실상에서 이 가정의 성원으로 될 수가 없었다.죄꼬만 녀석들의 장단에 멋없이 놀아난 내가 가련할 뿐이었다.그야말고 꿩 잃고 알까지 깬 격이니 누구를 원망하랴.     주인집에서는 나를 내지 않았다.그러나 영감은 다시 마실을 오지 않았다.퇴근시간에도 문어구에 나타나는 법이 없었다.이전의 그 화기애애한 기분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냉전이 시작된 것이다.   허나 두 조무래기만은 예나 다름없이 여전히 나를 기다려 주었다.내가 눈에 띄우기 무섭게 순철이는 여전해 "삼촌,돈!" 하는 것이 예사였고 보호신을 잃은 순애는 저만치 물러서서 물욕의 눈길을 던져오군 하였다.그렇지만 나는 아주 기고만장하게 그들을 물리칠 수 있었다.   "없어!"   이쯤이면 비위좋은 순철이도 순순히 물러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전처럼 생떼질을 쓰지 않는 것을 보아 어린 심령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모양이었다.   가끔 시꺼먼 복도 너머로 유령같은 영감의 그림자가 비쳐지기도 했다.전보다 허약해진듯 했으나 매양 날카로운 두눈에서는 살기같은 무서운 빛이 번쩍이고 있었다.나는 전신에 소름이 끼치는 것을 어쩔수 없었다.언젠가 의식도 못한채 목 졸려 죽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하여 그후로부터 나에겐 밤중에 문을 꽁꽁 닫아걸고 자는 습관이 생겨났다.따라서 한밤중까지 밖에서 술을 퍼마시게 되었다.     바로 내 하숙집과 멀지 않은 거리에 선술집 하나가 새로 섰다. 등잔불밑이 어둡다는 격으로 자주 그 거리를 오가면서도 나는 그 선술집을 알지 못하였다.   하루는 고주망태가 되어 돌아오다가 배수가 급해 문뜩 멈춰선 곳이 그 선술집 문앞이었다.술이 술을 보고 손짓했던지 나는 무작정 문을 떼고 들어섰다.이름 그대로 자그마한 선술집이었는데 나처럼 가난한 선비들이 출입하기에 알맞춤한 곳이었다.해사한 계집 하나가 구면이기라도 한듯 냉큼 마주 오며   "무엇을 들겠어요?"   하는데 달콤한 그 목소리는 사람의 간장을 싹 녹여줄듯 하였다.   "배갈 두냥에 마마콩 하나."   나는 휘청거리는 몸을 겨우 바로잡으며 쪽걸상에 주저앉았다.   "보아하니 술을 꽤나 마셨군요."   "왜? 마셨는데는?가져와."   계집은 입을 오무리고 매대쪽으로 가더니 술과 낙화생 말고도 계란볶음과 무우짠지를 더 가져왔다.나는 의아해졌다.   "나한텐 돈이 그렇게 없어."   "제가 한턱 내는셈치지요."   "어허,나한테 이런 복도 있나."   나는 자조하는듯 한바탕 너털 웃음을 웃어댔다.   "저를 정말 몰라 보겠어요? 학부형회의에도 몇번 참가했었는데요."   "그래? 이거 실순데...누구더라?"   "우리 태호는 자주 선생님을 외우고 있어요.훌륭한 분이시라구요."   "태호?...그러면 아가씨는 그 누님되는 분이구먼.실례했습니다.이거 오늘 술 먹어서..."   나는 저으기 불안해났다.사회적으로 높이 모시는 교원의 형상에 먹칠한듯한 감이 들었다.그래서 술 한잔 찌우는 것으로 마음의 흔들림을 억제했다.옥란이라고 부른다는 그녀는 인츰 일어나 술 한잔을 따랐다.   "괜찮아요.그런데 기색이 영 말이 아니구만요.무슨 불쾌한 일이라도 있었나봐요."   그녀의 고운 얼굴에는 퍼그나 근심스럽다는 기색이 역력히 새겨졌다.그 표정이 코마루가 시큰해나도록 고마왔다.하여 나는 어쩔새도 없이 나의 번뇌와 고통 그리고 내가 겪은 일들을 자초지종 이야기해 주었다.그녀는 잠자코 듣기만 했는데 간혹   "아이참,그랬구만요."   "저런,그래서요?"   하는 따위의 찬탄사들을 빼내어 나의 연설이 절정에 이르게 하였다.나의 이야기가 끝날 무렵에는 밤도 이슥하였다.누구의 제의였는지는 몰라도 우리는 그 길로 찬바람이 몰아치는 초겨울 거리를 거닐었다.알고보니 그 선술집은 옥란이가 경영하는 것이었다.     그후부터 나는 자주 그 선술집으로 드나들었는데 그러는 사이에 우리 둘사이에는 미묘한 변화가 일어났다.서로 허물없이 무도장,영화관으로 다니던데로부터 점차 포옹하고 키스하는 단계에 진입했던 것이다.영근 사나이의 정열은 무서운 것이었다.때론 옥란이쪽에서 배겨내지 못하여 좀 억제하라는 충고를 하여왔다.집을 사고 가장집물을 일구자면 이미 번 돈으로선 모자라니 한 일이년쯤 참아달라는 요구였다.했건만 나는 독신생활에 진저리가 났던 터였다.그만큼 정이 그리운 나였다.어느 한번의 밀회끝에 나는 또다시 결혼문제를 토론에 붙혔다.   "좀만 더 기다려요.당금이예요.5만원만 채우면 정식 결혼하자요."   "그저 돈 소리구만.돈이 없으면 이 세상이 돌지 않겠구만."   "왜 그리 고집스러워요? 당신도 돈이 없으니 이 꼴이 아니예요."   옳아,옳거니.나한테 돈이 있으면 세상은 나에게 추파를 던져줄 것이다.푼전이 없으니 냉대되고 멸시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사실 그녀의 논조를 반박할 힘이 없었다.   "어쩌겠어요?견딘바하곤 여름까지 기다려요.보세요.봄이 닥쳐왔어요.멀지 않았어요.그 영감두상은 제가 다스릴게요."   "그만두오.적어도 나에게는 최후로 발악할 수 있는 진지는 있어야 하는거요.나는 절대 질식할 것만 같은 그 독신숙사에 되돌아 갈수 없소.하물며 주인집 영감은 내가 독신이기에 받는다고 성명한바도 있었소."   "저를 못 믿겠다는 암시죠.좋아요.내일 영감을 설복 못하면 그길로 결혼등기를 하자요."   옥란이는 더 변명할 여지가 없다는듯 내쏘고는 자리를 떴다.나는 오래도록 그 자리를 맴돌았다.하긴 그것도 좋을상싶었다.색다른 사람을 데리고 가서 영감의 분통을 터쳐보는 것도 별로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영감과 여직껏 별일 없이 무사하게 지낸 것도 따져보면 나의 흠집이 그에게 잡혀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이제 영감에게 미끼를 던져주어 그로 하여금 길길이 날뛰게 한다면 옥란이에게 아무리 적중한 이유가 있어도 나의 요구를 거절하지는 못할 것이리라.     이날 우리가 하숙집에 이르니 주인집 영감은 두 손군을 거느리고 볕쪼임을 하고 있었다.그번의 그 불쾌한 일이 있어서부터 처음으로 그가 밖에 나온 것을 본 나였다.그간 노인은 퍽 눈에 띄게 늙었었다.우리를 발견한 그는 주춤거리며 일어섰는데 날카롭던 눈은 정기를 잃고 지어는 멀게 보이기도 했다.인생이 허무하달밖에.그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거두지 못하면서도 한사코 우리만을 뚫어지게 쏘아보고 있었다.당금 청천벽력이 떨어질것 같은 징조였다.    "할아버지,안녕하세요?"    옥란이는 익살꾸러기처럼 허리까지 굽혀 반갑게 인사를 올리는 것이었다.그런데 당금 날벼락이 튕겨나올 것 같던 영감의 입에서 생뚱같은 대답이 튕겨나올줄이야.   "죽지는 않았네."   옥란이는 나를 돌아보며 입을 샐쭉거리고는 자기를 말똥말똥 올려다보는 두 어린애를 끄당기는 것이었다.   "너 이름이 순철이지? 삼촌이 일러줬다.옛다.5원이다.그리구 순애에게도 5원."   나는 눈이 데꾼해질 지경이였다.이건 순전한 "회뢰"였다.하다면 옥란이가 영감을 설복한다는 방식이 고작 이런 것이였는가!   "그런데 새긴 누군지?"   영감의 얼굴에 가득찼던 적의는 어느새 사라지고 오래간만에 회심의 웃음이 떠올랐다.   "저의 애인입니다.미혼처 알지요?"   "좋네 좋아.자네도 성가할 때가 지났지.좋은 일이구말구."   영감은 나의 시까스르는 말을 푸접 좋게 받아넘기고는 옥란이를 붙잡고 일장설화를 풀어놓기 시작했다.물론 위만시대때 일제의 행패같은 얘기들이었다.노인은 또다시 이전의 그 형태로 되돌아간 것이다.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어쩌면 저럴수가 있을가? 과연 돈의 위력일가? 그러나 그 얘기만은 이전처럼 그렇게 구수하지 않았다.아니,오히려 구역질이 나도록 역겨웠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옥란이는 가끔 맞장구를 치면서 이야기에 정신을 팔았다.나는 부글부글 끓어번지는 분노를 눅잦힐 수 없어 홱 돌아서 집안으로 들어오고 말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문이 조용히 열리며 옥란이가 들어섰다.나의 눈치를 흘끔흘끔 훔쳐보던 그녀는 응석을 부리듯 나의 품에 몸을 기대였다.나는 무작정 그녀를 밀어냈다.   "노여웠군요.이게 생활예술이란거예요.돈이 정이거든요.게다가 당신처럼 질금질금 줄 것이 아니라 한번에 푸짐하게 주어 할 말이 없게 해야 하는거죠."   "나는 정으로 주는거지 돈으로 주는 것이 아니야.더우기 거기처럼 수완을 쓸줄도 모르니깐."   "사람을 비꼬지 말아요.모두 당신을 위한 것이 아니겠어요."   "나는 오히려 내 형상이 손상받았다고 생각되는데..."   "고집불통이군요.그러기에 여직껏 무슨 일이나 막히지요."   "맞소.나는 오직 양심대로 살려는 일념뿐이지 수단을 쓰고 틈을 타서 출세하려는 생각이 꼬물도 없었소.내가 이런 사람인줄 알았으니 어서 물러가오."   나는 히스테리환자마냥 마구 부르짖었다.믿던 도끼에 발등 찍혔다 할가.마음의 의지가 되고 생활의 신조를 굳혀주었어야 할 옥란이마저 정상적인 사유를 변태적으로 보고 있으니 내 마음에 애써 쌓아올린 희망의 탑이 와그르르 무너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아!'   옥란이는 얼굴을 싸쥐고 밖으로 뛰쳐나갔다.취약한 내 마음을 산산이 쪼각내고.    이틑날 나는 학교에 사표를 내고 하숙집에 돌아와 이불짐을 쌌다. 여느때 없이 다정다감해진 영감이 한사코 나를 말리는 것이었다.   "어디루 가자구 이러나? 사람이 자꾸 움직이면 먼지도 안 붙는다는데..."   "저도 모르겠습니다.아무렴 살아나갈 길이 나지겠지요."   주인집영감을 하직하고 거리에 나서니 훈훈한 봄바람이 얼굴에 불어왔다.바야흐로 격정의 새봄을 메모하고 있는 것이다.    
11    살어리민박 댓글:  조회:843  추천:0  2014-08-31
단편소설 살  어  리  민  박 장학규   세번째 날 띵동 띵동 초인종소리가 시끄럽다. “민대리, 나가 문 좀 열어줍소. 아까 그 한국사람이 온 모양입꾸마.” 뚱보아줌마의 북치는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주방에서는 무엇을 씻는 모양으로 수도물소리가 요란하다. 봉수는 아쉬운듯 보던 책을 침대머리에 내려놓고 머리를 긁적이며 거실을 거쳐 출입문으로 다가갔다. 문을 따기 바쁘게 웬 거쿨진 사나이가 큰 트렁크 하나를 힘겹게 끌고 들어섰다. 옅은 노란색의 중고 파카를 입은 모습이 그대로 영락한 떠돌이였다. 고맙다는 인사대신 불만부터 내뿜었다. “여가 대체 민박 맞는겨? 사람 마중도 안 할라카고 초인종 울려도 몇십분만에 나오고 도무지 서비스가 되여있지 안하져.” 뚱보아줌마가 어느새 달려나와 손님의 트렁크를 받아들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바깥주인이 출장중이라 미안하게 되였습니다. 어서 오세요. 저쪽 방입니다.” 봉수는 꿔온 보리자루처럼 한옆에서 서성거리다가 싱거워져 부시시 방으로 돌아왔다. 책을 다시 집어들었으나 글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3일전 봉수가 처음 살어리민박을 찾아왔을때도 주인인 뚱보아줌마는 생김새와는 어울리지 않게 간드러진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었다. “바깥주인이 출장중이라 미안하게 되였습니다. 어서 오세요. 저쪽 방입니다.” 뚱보아줌마가 둘변이 전혀 없는 사람이 아니면 틀림없이 저 말을 대뇌에 록음하여 오는 사람마다에 되풀이 하는게 분명했다. 12월 중순의 청도는 저녁 다섯시만 되면 어둑어둑해진다. 전등을 켜기 귀찮아 침대에 그대로 구겨져있던 봉수가 어슴푸레 잠들무렵 누군가 노크도 없이 스르륵 문을 열고 들어섰다. 어제 새로 입주한 연길 김씨였다. “오늘 아무데도 안 나갔소?” “잠간 회사 갔다 왔네요.” 면목 익힌지 고작 하루밖에 안된 김씨는 오랜 지인인양 맨발바람을 한채 침대에 털썩 걸터앉았다. “오늘 또 사람 한내 들어왔재?” “한국사람이라데요. 예쉰 넘어 되어보였어요.” “아, 거 ‘요’ 없애버리므 안되우? 신경질날라 하우.” “글므 어떻게 해?” “딱 그렇게 하지, 아예 야자하자. 나이두 비슷한데.” “글까?” “저 한국넘은 뭐하는 넘이라니?” 그때 뚱보아줌마가 맞춤하게 식사를 재촉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김씨가 많이 배고팠던 모양으로 미처 대답을 들을념도 않고 후다닥 일어나 앞서나갔다. 사십대 후반인 김씨는 동작도 퍼그나 민첩했다. 봉수는 조용히 그 뒤를 따라나갔다. 터덜터덜한 김씨가 별로 인상이 나쁘지는 않았다. 벌써 음식상이 차려져있었다. 봉수의 요구대로 뚱보아줌마가 두부를 듬뿍 넣고 청국장을 끓였다. 점심에 귀국을 눈앞에 둔 한사장과 깡술을 한병씩 퍼먹고 속이 볶여 죽는줄 알았다. 한사장이 어렵고 힘들고 또 불쌍한건 잘 알지만 봉수 자신도 살길이 막힌건 피차일반이였다. 벌써 거의 일년째 로임 한푼 받지 못하고 지내왔다. 새로 온 한국손님은 어느새 식탁에 마주앉아있었다. 김씨가 먼저 한국손님의 마주켠에 턱하고 앉았고 봉수는 머뭇거리다가 김씨의 아래쪽에 다가가 앉았다. 앉으면서 힐끔 김씨를 건너보니 예상했던대로 김씨가 뚱보아줌마한테서 국사발을 받아든채로 한국손님을 째지게 건너다보고 있었다. “어디서 오셨슴까?” “한국요.” “한국 어딘가 말입지비.” “부산요.” 둘은 목구멍에 중풍이 온듯 단마디 명창으로 주고받았다. 대체 뭐하자는 시츄에이션인지 도무지 갈판을 잡을수 없었다. 그러나 봉수가 손에 땀을 쥐고 걱정했던것과는 달리 두사람은 그뒤로 손발이 척척 잘도 맞아나갔다. “장사 나왔슴까?” “무쟈 좋은 물건 갖고 나왔당께. 거 성씨 뭐라카노?” “경주 김씨임다.” “우리 같은 신라 왕족 아이가. 갱상돈데 와 함갱도 말씨를 쓰노?” “본만 경주지 내사 조상팔대까지두 함경도지므.” “까지껏 관등성명을 치와뿌리고 나하구 퍼뜩 물건이나 팔아보지 않겠나?” 진한 사투리를 쓰면서도 둘은 용케도 서로 알아듣고 있었다. 원래 밥을 빨리 먹는 봉수는 그들이 인사수작을 하는 사이에 밥 한그릇을 뚝딱 깨끗이 비우고 거실로 나왔다. 티비를 켰으나 식당에서 두사람이 어찌나 고아대면서 이야기를 나누는지 도무지 티비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막무가내로 방으로 들어오는데 뚱보아줌마가 그림자처럼 소리없이 따라들어왔다. “민대리, 오늘 어떻게 마무리하셨슴둥?” “공장 사겠다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구…한사장은 나더러 넘겨받겠는가구 하는데 모르겠어요. 며칠 더 기다려보구 가불을 결정해야겠어요.” 뚱보아줌마는 달다시다 아무말 없이 우물쭈물하더니 용기를 낸듯 다시 말을 걸어왔다. “저 래일 동북에서 부부 한쌍이 와서 사흘 정도 있게 되는데 그동안 김씨랑 한방 쓰면 안되겠슴두? 돈 좀 적게 받던가 할게.” “글쎄…저야 뭐…김씨가 어떻게…” “저 새워이 걱정은 맙소. 우리 고향 사람입꾸마. 일년에도 열번 넘어 들락거리는데므. 그럼 그렇게 하는걸로 알겠슴다.” 뚱보아줌마가 미꾸라지처럼 사라진뒤에도 봉수는 입을 하 벌린채로 한동안 제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뭉글뭉글 살집이 좋은거 내놓고는 별로 볼데 없는 뚱보아줌마이지만 그녀한테 빠지면 출구가 전혀 없다는것을 새삼스레 체험했다. 네번째 날 뚱보아줌마는 장 보러 나갔는지 보이지 않고 낯선 남녀 한쌍이 거실에 앉아 티비를 시청하고있었다. 삼십대인듯한 남자는 얼굴이 사내답게 둥글넙죽한 대신 부자연스럽게 쏘파에 기대있었고 바싹 마른 녀자가 몸에 비싼 퍼코트를 걸친채 오히려 대범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있었다. 사실 12월도 중턱까지 달려왔지만 바깥온도는 아직도 령상에서 맴돌고있는 청도에서 파코트는 좀 이른 차림이였다. 봉수는 하루종일 액세사리회사에 나가 풀이 한껏 꺾인 한국인 한사장과 함께 앉아있다가 돌아오는 중이였다. 오늘도 찾아오는 사람은 없었다. 회사 대문에 큰종이로 공장을 양도한다는 포고를 써붙였고 찌라시도 숱해 날리고 상업신문의 한쪽 구석에도 광고를 냈지만 찾는 사람이 없었다. 전사장은 기어코 공장을 팔아 빚을 다 갚고 떠날거라며 우겼다. 야반도주가 이슈가 된 마당에 봉수는 그런 사장을 차마 그냥 내버려둘수 없었다. 10여년을 쭉 중국측 대리로 있으면서 봉수는 한사장과 호흡을 잘 맞추어왔었다. 그 한사장이 쪽박 찬것은 어쩔수 없다쳐도 개털까지 되는건 정말 보고있을수 없었다. 방에는 어느새 연길 김씨의 짐들이 들여져있었다. 뚱보아줌마가 갖다놓은게 틀림없었다. 짐이라 해봤자 큼직한 멜가방 하나에 옷견지 몇개였다. 그대로 안쪽 침대에 내버려졌는데 퀴퀴한 냄새가 코를 간지럽혔다. 이제야 방마다 호텔처럼 침대 두개씩 들여놓은 리유를 알것 같았다. 봉수가 거실로 도로 나가지도 못하고 안절부절 서성이고있는데 때맞추어 핸드폰소리가 요란하게 울려왔다. 뚱보아줌마였다. “민대리, 지금 어디 있슴두?” 전화만으로도 귀가 멍멍해왔다. “살어리에요.” “그럼 얼른 쇼취대문까지 옵소. 이걸 들어다줘야겠으꾸마.” 봉수는 웬일인지도 모르고 솜 슬리퍼를 끌고 흔들흔들 4층 계단을 내려갔다. 아파트단지 정문까지 가는데 꽤나 시간이 걸렸던지 저 앞에 뚱보아줌마가 량손에 비닐꾸러미를 한아름씩 꿰지고 두 걸음에 한번씩 쉬면서 오는것이 보였다. 봉수는 괜히 허둥대며 한달음에 다가가 뚱보아줌마의 손에서 물건들을 받아들었다. 뚱보아줌마가 몇개라도 남길줄 알았는데 손에 든 비닐꾸러미를 깡그리 넘겨주는것이였다. “아이구 무거워 죽는줄 알았으꾸마.” (원숭이 바나나 먹다가 설사하는 소리하고 계시네. 아니, 허깨비 씨나락 까먹는 소리랑 비슷하네.) 봉수는 속으로 울화가 울컥 치밀었으나 그대로 참았다. 어차피 뚱보아줌마는 개념 탑재가 요상하게 된 사람이였다. 여러날 있으면서 보니 뚱보아줌마는 판도라상자처럼 도무지 파악이 되지 않았다. 속빈 강정 같을때도 있고 또 가끔은 내숭을 떨고 생을 깔때도 있었다. 아무튼 정신이 약간 가출된 상태가 아니고서는 뚱보아줌마와 보조를 같이한다는건 어림 반푼도 없었다. “김씨랑 돌아왔슴두?” “아니오. 한국분도 안들어오고요.” “둘이 같이 나갔으꾸마. 무슨 생기발딱인지 하는걸 판다면서, 엊저녁 대포쟁이 둘이서 세상 장사 다 합더구마.” “김씨랑 한고향 사람 아닙니까?” “그런 셈이기는 합지.” 봉수는 아파트 밑에서 비닐주머니들을 땅바닥에 내려놓고 잠시 숨을 돌렸다. 양손 손가락 마디가 쑤시듯 얼얼해왔다. 들여다보니 비닐주머니가 졸인 흔적이 굵고 깊게 파여있었다. 간신히 4층에 있는 민박까지 올라가 노크하니 기다렸다는듯 문이 열리며 새로 온 어리숙한 남자가 손을 내밀어 채소들을 받았다. 아마 그들이 올라오는 소리를 듣고 기다렸던 모양이였다.  저녁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한국손님과 연길 김씨가 거나하게 취해서 돌아왔다. 한국손님은 술에 이겨내지 못하겠다는듯 방으로 곧바로 들어갔고 연길 김씨는 휘청이면서도 식탁에 다가와 털썩 주저앉았다. 중키가 되나마나했지만 몸은 근육질로 단단하게 다져있었다. “오늘 온다던 사람들이구마.” “에.” 뚱보아줌마를 념두에 두고 묻는 어조였지만 젊은 남자가 덩달아 먼저 실오리같은 소리로 대답했다. “어디서 왔소?” “심양에요.” 이번에는 녀자가 앞질러 대답했다. 겨릅대처럼 말라있었지만 어딘가 날카로운데가 있었다. 남자를 재촉하여 일어나더니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아무래도 부부간이 아닌거 같으꾸마.” 뚱보아줌마가 딴에는 톤을 낮추어 귀속말을 한다는게 집안이 다 웅웅거렸다. “여자는 평안도치가 분명한데 남자는 길림쪽 사람 같슴다. 나이도 여자가 이상인거 같구 영 아이 맞슴다.” “뭐할러 왔담두?” “말로는 놀러 왔다는데 짐 숱해 들구온걸 보므 아무래도 청도서 숨어 살려고 작정한거 같슴다.” 이때 새 손님들의 방문이 와락 열리면서 말라괭이 녀자가 얼굴이 상기된채로 씽하니 나와 정수기에서 물 한컵을 뽑아 울컥울컥 들이키더니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고 다시 방으로 쑥 들어가버렸다. “밥 터먹구 할일두 없디.” 인차 방안에서 들으라는듯 궁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안을 느낀 봉수가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났고 뒤를 이어 뚱보아줌마가 그릇들을 와락와락 거두기 시작했다. 연길 김씨는 봉수 뒤를 졸졸 따라들어오더니 자기 뒤털미를 옆사람이 화들짝 놀랄 정도로 탁탁 치기 시작했다. “오늘 하루종일 돌아댕겼더니 아다마 왔다리갔다리한다.“ “무슨 말이지?” “정신이 싹다 잃어진다는 말이다. 왜?” “넌 같은 말 해도 아주 재수없게 한다. 그것도 재간이라면 재간이다.” 봉수는 시무룩이 웃으며 핀잔을 주었다. 그랬건 말건 김씨는 두렵게 큰 퉁방울 눈을 슴벅이며 주절대기 시작했다. “저 한국넘 말이야. 와늘 좁쌀이더라. 택시 타므 인차 가겠는데 뻐스를 열서너번 갈아타구 댕기느라고 죽을 고생했다. 뭐 중국 뻐스 타는게 재밋댄다. 씨 거지같은게, 우티 입은거 봐라. 쫄딱 망해가지구 중국와서 한판 해먹을려구. 난 오면서 김치무깍지 다 됐는데 노톨이는 댕기는게 와늘 산산하겠구나.” “어디루 그렇게 다녔는데?” “저 양반이 생기발랄이라고 부르는 특허제품을 들구왔다구 해서 청도바닥에 있는 조선족, 한국사람들 가게란 가게는 다 댕겼다. 그런데 벌써 물건들이 다 있는거야. 좋기는 하더라. 신발냄새랑 제거하고 변소깐 소독하고 공기 바꾸구…그렇게 좋은걸 제만 아는것처럼. 벌써 시장에 쫙 깔렸는데 말이.” 아까 뚱보아줌마가 “생기발딱”이라고 해서 별 이상한 물건이 다 있다 하면서 갸우뚱했더니 원래 “생기발랄”이였다. “그럼 장사 하나 깨졌구나.” “네리 라이시에 가보기로 했다. 요새 석재가 돈벌이되는데 한국에 가져가 팔면 큰 돈 될거야.” 이틀 정도 겪어봐서 김씨가 뜬구름 잡는데는 챔피언감이란것을 대강 아는 봉수는 대꾸 한마디 없이 옷을 벗고 이불속으로 들어가버렸다. 이 자식은 고무신짝에 붙은 껌처럼 질기기에 상대 않는게 좋았다. 아닌게 아니라 머쓱해진 김씨가 애궂은 담배를 연거퍼 두대 태우더니 부시시 방을 나갔다. 아마도 한국손님을 찾아가는 모양이라고 생각을 굴리며 봉수는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여섯번째 날 심한 갈증에 눈을 뜨니 먼저 머리가 으깨지듯 아파왔다. 천정이 빙빙 돌면서 속이 메쓱거렸다. 간밤에 어떻게 민박에 돌아왔는지 전혀 기억에 남지 않았다. 봉수는 벌벌 기다싶이 거실로 나와 정수기에서 찬물을 받아 꿀컥꿀컥 들이켰다. 연거퍼 세컵을 마시니 조여들었던 속이 조금 풀려지는 느낌이였다. 주방에서 채소를 다듬던 뚱보아줌마가 어느새 소리를 듣고 뭉툭한 목을 쭉 내밀며 물어왔다. “밥 먹겠슴까? 지금 차리람두?” “된장국 있습니까?” “있재쿠. 아침에 해놓쿠 아무리 불러두 일어나야 말이지. 심양 젊은사람들이 덕분에 말뚱한 정신으로 해장 잘했슴다.” 뚱보아줌마는 말하는 속도만큼 일쏨씨도 무척 빨라 어느새 상우에 음식들이 가득 차려졌다. 봉수는 코를 벌름거리면서 식탁에 다가가 우선 장국부터 들어 한사발 쭉 들이켰다. 아까 먹은 냉수 세컵이 반발하는지 속이 출렁하더니 코구멍으로 물방울이 스르르 흘러내렸다. 뚱보아줌마가 눈치 챌가봐 슬그머니 화장실에 들어가 코를 씻고 나오는데 봉수를 보는 뚱보아줌마의 눈길이 심상치 않았다. “이 사람들 점심에두 안올라나?” 봉수와 눈길이 마주치자 뚱보아줌마는 드물게 얼굴을 붉히며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벌써 열한시가 가까와오고 있었다. 봉수는 말없이 된장국에 밥을 말아 우물우물 맛나게 먹기 시작했다. “누구랑 그렇게 술 죽게 마셨슴까?” “한사장하고요.” “그 한사자이인지 뭔지 하는 사람 다 망했다면서?” “망한건 아니고 여러가지로 수익이 맞지 않아서 일을 접으려는것뿐입니다. 결국 내가 접수하기로 했습니다. 한사장님은 한국서 오더를 밀어주고.” “아이쿠, 안그래두 며칠 그렇게 따라댕기는거 보구 메캐대하게 그럴줄 알았슴다. 우리 동개비임다. 내 막말해두 일없지예? 한국사람 절대 불쌍하게 여기지 맙소. 돌아서면 인정사정없는 사람들임다.” 봉수는 가타부타 말없이 밥만 부지런히 입으로 퍼넣었다. 뚱보아줌마가 괜히 오버하는게 적잖이 속으로 마땅치 않았다. 지랄도 풍년이지, 내가 뭐 자선남비 들고 종치는 사람처럼 보이는가 하는 그런 불만과 오기가 함께 가슴 언저리에서 자리를 틀었다. 한동안 침묵이 흐르고 둘이 막 서먹해지려는 찰나에 문이 벌컥 열리며 연길 김씨가  허둥지둥 뛰여들고 그 뒤를 따라 약속이나 한듯이 한국손님과 심양에서 온 부부인듯한 남녀가 차례로 줄줄 이어 물고기처럼 들어왔다. 잠간이나마 찬바람이 씽하고 집안을 훑어지나갔다. “두사람이 그새 좋았겠다.” 술덤벙 물덤벙인 연길 김씨가 사냥개처럼 무슨 냄새를 맡았는지 왁작 고아댔다. 무지막지한걸 가문의 영광으로 아는 모양으로 김씨는 항상 대방의 기분 같은것을 념두에도 두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네사람이 한데 들어옴두?” 뚱보아줌마는 김씨가 역겹다는듯 눈길은 말라괭이 심양여자한테 박으며 동네물음을 던졌다. 그걸 받은 사람은 의외로 한국손님이였다. “이자 들오는데 이 친구랑 저쪽핀달이서 고구매 사먹는기라. 달라캐서 퍼뜩 하나 어더 묵구 오능기라.” “뭐람두?” 뚱보아줌마가 머리를 갸우뚱하면서 봉수를 돌아다보았다. “오다가 이분들이 고구마를 사먹는걸 보고 하나 얻어먹고 함께 들어온대요.” “아이구 정신 다 해까닥해짐다.” 좌중에 불시에 웃음보가 터졌다. 누가 먼저라 할것없이 모두가 약정을 한듯 식탁에 빙 둘어앉았고 뚱보아줌마도 시키지 않았지만 제법 손놀림 빠르게 밥상을 다시 차렸다. 살어리민박에 든 손님들이 처음으로 점심상에 빠짐없이 모인것이다. 봉수는 새로 밥 한공기를 더 달라고 하여 받아들고 김씨에게 물었다. “어제 아침에 나가서 이제 들어오는거지?” “사람이 없어진것도 몰랐구나.” “그래, 갔던 일은 어떻게 되었지?” “한마디로 조또맛데구다사이다.” “왜?” “그게 뭐꼬? 돌뎅이가 한국보다 비싸다 아이가. 대신 좋은 장사건 하나 봐두었능기라. 인지사 중국 실정 쪼매 알거 감슴더.” 귀를 곤두세우고 한국사람의 입만 쳐다보는 뚱보아줌마를 옆에 앉은 심양 녀자가 슬쩍 건드리더니 뭔가 소곤거렸다. 가지런히 앉은 함께 온 남자는 먼저날보다 많이 자연스러워진 얼굴이였다. 그런데도 한국손님은 뭐가 시원찮은지 볼 미여지는 소리를 내뱉었다. “머스마가 와 이라노? 노박 지뿌둥말구 성들이랑 어울려 놀자 아이가.” “그케하겠습니데이.” 머스마로 불리운게 많이 억울했던 모양으로 젊은 남자가 불시에 경상도 사투리로 대꾸했다. 순간 좌석은 쥐죽은듯 조용해졌다. 모두들 어리둥절하여 서로 물그러미 쳐다보고 있는데 말라괭이 녀자가 손사래를 치면서 해석했다. “오해마세요. 한국사람이 아니고 부산에서 여러해 있어서 경상도사투리를 잘해요.” “성씨는 뭐요?”  여직 기회가 없어 끼여들지 못했던 김씨가 물었다. “신가예요.” “청도에는 뭐할러 왔소?” “말 나온김에 다 말하겠습니다. 우리 한국에서 일하다가 청도서 뭔가 해볼려고 왔습니다. 오늘 비슷한 밥집 자리 하나 봐두었습니다.” 이번에도 녀자가 앞질러 대답했다. 어느모로 봐도 반품이 유력한 품절녀이지만 오히려 남자가 많이 밀리고있었다. 봉수는 누가 A/S해달라고 부탁하는것도 아닌데 괜한 걱정을 하고있다고 자신을 질책했다. “밥집이 뭠두?” 뚱보아줌마가 또 한번 머리를 갸우뚱했다. “식당을 말합니다. 좋은 일이네요. 마침 잘되였어요. 내일 개 한마리 사올테니까 식당주인될 사람들이 한번 개탕 잘 끓여줘요. 잘하면 앞으로 계속 찾아갈테니까 수고 부탁해요.” “걱정마시라요. 호박에 줄 그어봤자 수박이 되는게 아니니까 두고보시라요.” “그럼 민박분들 내일 저녁 한분도 빠지지 마세요.” 마지막 날 연길 김씨는 뭐가 그렇게 기분이 좋은지 아침부터 거실로 주방으로 화장실로 쉴새 없이 쏘다니면서 온 민박집 손님들을 다 깨우더니 식사를 마치고 나서는 봉수와 함께 개를 사러간다고 따라나섰다. 란리라도 터졌으면 제일 좋아할 사람이였다. 아무튼 에너지가 온몸에 꼴똑 채워진 사람이였다. 한국손님은 지머루시장에 한번 가본다며 그들과 함께 따라나섰다가 버스를 갈아타려고 북역에서 내렸다. 채근도 하지 않았지만 저녁에 꼭 돌아온다고 자기절로 굳게 약속했다. 심양에서 왔다는 부부인듯한 남녀는 오늘 한번 더 “밥집” 주인과 담판해야 한다면서 그래도 점심전에는 민박에 돌아올것이라고 다짐했다. 봉수는 한사장도 청했다. 청했다기보다 내일부터 한사장은 “살어리민박”의 새로운 멤버가 되여야 할 판이였다. 봉수는 한사장과 바꾸어 공장에 주숙하면서 다시 가동할 준비를 해야 했다. 얼마 안되는 한사장의 부채를 봉수가 짊어지는대신 한사장은 공장이 정상 가동때까지  봉수를 도와주기로 했다. 여직껏 경영해온 거래처와 인맥,노하우로 얼마든지 이 위기를 이겨나갈수 있다고 봉수는 믿었다. 이촌시장에서 초벌로 검질된 개 한마리를 사서 김씨에게 먼저 들려서 민박에 보내고 봉수가 회사에 잠간 들렸다가 다시 민박에 돌아왔을때는 신씨라는 심양의 젊은 남자가 한창 땀을 벌벌 흘리며 각을 뜯고있었다. 칼질하는 솜씨가 례사 장난이 아니였다. 쓱쓱 각이 뜯겨나가 큰 소래에 담겨지는것을 보고 봉수는 입을 하 벌렸다. 선비같이 유연해보이는 몸매에서 어떻게 저런 파워가 나오는지 리해되지 않았다. 마누라인듯한 말라괭이 여자는 입질할때와는 달리 한옆에 팔짱을 찌르고 서서 구경만 하고있었다. 알고보니 총을 재우는 사람 따로 쏘는 사람 따로인 셈이였다. 불난 집에 오일 싸지른다고 그 난시판에도 생간으로 바이깔 한잔 하던 김씨에게 잡혀 억지로 한모금 마신 봉수는 아직은 별로 할 역할이 없어 거실 쏘파에 주춤 앉아있는 뚱보아줌마한테로 다가갔다. “저 내일부터 회사에 나가 있을거예요. 그간 고마웠습니다.” “돈 받고 하는 일인데 고맙기는 무슨, 민박이란게 그런게 아님두? 나갔다 들어왔다…” 미리 눈치는 알았다는 어투였다. 그러면서도 뚱보아줌마의 눈에는 물기가 돋아난다. 요즘 사람들은 순결이 뭐 훈장이냐 그러지만 아직까지도 정에 메여 사는 뚱보아줌마가 코마루가 찡해나도록 고마웠다. “하긴 그렇네요. 내일 우리 한사장이 저대신 들어올거예요.” “이 민박 시작할때 고향 어른한테 이름 지어달랬더니 ‘살어리’라고 지어줍더구마. 살자구 왔다가 살자구 나가구 두루두루 살아지는 민박이 된다는 뜻이라 했슴다. 몇년 해보니 진짜 그렇습디다. 여기에 거지꼴하고 왔다가 나가서 뜨르르한 사장된 사람들 미처 셈을 다 못함다.” 저녁상은 예상외로 좀 일찍 시작되였다. 부글부글 끓는 개고기가 군침을 자꾸 자아내는 원인도 있었지만 한해가 곧 마무리되여가는 마당에 객지에서는 정말 쉽지 않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기때문이였다. 사람이 어울리면 술은 빠질수가 없다. 어느새 취기가 오른 연길 김씨가 봉수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말을 걸어왔다. “사장이 된다면서? 니네 제품 나도 팔아줄게. 거 뭐라더라, 마진 많이 남겨달라.” “고맙다.” 봉수는 눈길을 심양 신씨에게 돌렸다. 한솜씨 보이고 자신감이 많이 늘어난 신씨가 맞춤하게 잔을 부딪쳐왔다. “앞으로 우리 밥집 자주 찾아줘요.” “당연이지. 나보다 어리니까 말 낮춘다. 우린 중간말이 없어 미안타. 언제부터 할거니?” “나도 건방지다는 소리 자꾸 들어요. 단김에 뿔 뽑는다구 바로 시작할려구요. 형님이 기계 돌리므 우리도 밥 할거예요.” “알았다. 우선 우리 점심밥부터 하는걸로 하자. 회사에 식당이 없으니까.” “어, 너 벌써 오더 딴거니? 난 일년 내내 헛돌아댕겼는데. 이 형하고 한잔 단단히 해야겠다.” “우리 같이 들어요.” 연길 김씨에 이어 신씨의 여자가 끼어들어 분위기를 돋구는 바람에 술맛이 한결 달았다. 저쪽에서는 신라 왕족 후손이라는 한국 김씨와 한사장이 술잔 하나를 서로 주고 받으며 말을 나누고있었다. “서울이랬캤나?” “네.” “나 부산 문디인디, 서울 깍쟁이 내한테 함 자피봐라…아, 그게 아니구…우짜든 이자뿌라.” “알겠습니다.” 기고만장한 한국 김씨와 달리 한사장은 시종 흐트러짐이 없이 점잖게 받아주었다. 땀을 닦으며 쩔쩔매는 한사장이 안쓰러웠던지 뚱보아줌마가 술잔을 들고 다가가 두사람 사이를 갈라놓았다. “한사장님, 민대리한테서 귀에 못 박히게 들었으꾸마. 좋은 사람이라구. 우리민박에서 마음 놓고 있습소. 우리민박 이름이 뭠두? 살어리민박임다. 며칠만 있으므 인차 살아남다.” “무가 사라난다는깅가?” “남자 몸에 살아날게 하나밖에 있음두?” 한국 김씨가 혀꼬부라진 소리로 지껄이는걸 연길 김씨가 바로 받아쳐서 좌석에 폭소가 터졌다. 무안해진 뚱보아줌마가 왕벌처럼 왕 고아댔다. “우리 바깥주인이 출장갔다오므 새워이 살아나는것부터 잘라버려야겠슴다.” “하하하” “호호호” “흐흐흐” 봉수는 사람들이 북적이는 틈을 타서 조용히 일어나 베란다로 나갔다. 담배 한가치 꼬나물고 바깥을 내다보았다. 일찍 어두워진 밤하늘에 쪼각달이 하얗게 걸려있었다.  
10    석노인의 전설 댓글:  조회:773  추천:0  2014-08-31
단편소설 석노인의 전설              장학규 1, “경옥식당”이란 간판이 클로즈업되어 한눈에 들어온다. 사자구(沙子口)에도 이런 식당이 있을 줄 꿈에도 생각지 못한다. 출입문은 미닫이 형식으로 되어있다. 독특한 디자인이란 생각이 든다. 현호는 이젠 기억에도 까맣게 사라지고 있는 한옥을 어슴프레 떠올리며 집안에 들어선다. 미닫이 출입문과 걸맞게 집안도 봉당이 아닌 구들이다. 낮다란 네모 밥상 여섯개가 셋씩 두줄로 가지런히 놓여있다. 한창 때시걱인데도 밥 먹는 손님은 하나도 없다. 현호는 텅빈 주머니를 괜스레 손빗질하며 허영허영 신을 벗는다. 연료가 다 떨어진 엔진같다는 생각이 든다. 방전된 배터리같다고나 할까? 가장 구석진  테이블에 명자가 다리를 꼬고 앉아있다. 전보다 늙은 건 확실한데 이상하게 더 섹시해진 모습이다. 무엇보다 나이와 어울리지 않게 예쁜 비행기 그림이 그려진 T가 눈길을 끈다. 자기도 모르게 눈길을 그곳에 꼿으면서 묘하게 허영이 엿보인다는 생각이 든다.. “섹시하고 즐겁게 늙으라는게 요즘 유행어라면서…” 조심스러우면서도 현호는 특유의 장난기를 고집한다. “왜 비행기가 욕심난거냐?” “아니, 비행기보다는 비행장이 더 인기 끌지.” “흐흐, 그건 벌써 폭격 맞을대로 맞은 비행장이야!” “지금 시설로 미루어 그럭저럭 재폭격해도 괜찮을 거 같다. “ “아직도 요격시스템이 작동하고 있거든. 구식 비행기가 다가오면 도리어 격추당할 수도 있어.” “요격이 두려워 꼬리 감추면 전투기가 아니지 흐흐.” “그러구보니 아직 덜 혼난 거 같구나.” 명자는 독설을 퍼부으면서도 환하게 웃는다. “설비”가 아직 쓸만하다는 평가에 대한 만족감때문일까 그녀의 웃음은 추호의 꾸밈도 없는 자연산 그대로이다. 그 맴시있는 웃음은 요리를 주문하고 쉴 새 없이 완샷을 하고 식대를 지불할 때까지 이어진다. 지어는 아내의 행방을 묻는 현호의 물음에 “모른다.”로 일관하면서까지 자연산을 입가에 걸고 있다. 역시  대단한 여자란 생각이 든다. 그러나 현호는 오랜만에 명자 덕분에 배 불리 먹으면서도 기분 더럽게 먹었다는 생각뿐이다. 오늘 맛 다 버린 거다. 2, 바다가 사납게 요동친다. 청도의 명물 석노인은 수천 수만년간 파도의 부대낌을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바다에 서있다. 용왕에게 잡혀간 딸을 애타게 기다리며 마냥 수심에 잠긴 모습이다. 소피아호텔은 석노인에 의해 유명하다. 탁 트인 시야는 바다를 한눈에 아우른다. 그 앞을 구불하게 뻗어간 동해로는 여느 거리와 달리 퇴근 물결은 없다. 고급스럽거나 섹시한 차림을 한 신사숙녀들이 혹은 관광을, 혹은 향락을 즐기려고 그 거리를 오간다. 지하에 위치한 나이트클럽은 아직 초저녁이지만 제법 손님들이 북적인다. 명자는 칵테일잔을 든채로 지배인실에 내려진 카텐 사이로 홀을 내다본다. “그래 어쩔 타산이더니?” 현정이는 여전히 무관심인듯 쏘파에 몸을 깊숙히 파묻고 실없이 묻는다. 가슴 라인이 그대로 훤히 드러나게 윗 양복 단추를 풀어놓고 있다. 불현듯 현호가 떠올라 명자는 피씩 소리내며 웃는다. “왜?” “걔가 내 이 가슴 아직 쓸만 하다고 글더라마.” “그 인간 꺼내들면 연장이야. 착각하기는.” “그래도 이만하면 나도 유통기한내에 들 수 있지 않을까?” “싸가지가 바가지네.” “도대체 누굴 욕하는 거니? 나를?” “번짓수 다른 소리 고만해! 나 지금 요상한 쇼를 구경할 여유가 없거든.” 연분홍 내의에 꽉 조인 현정의 불룩한 가슴을 내려다보면서 명자는 자기라도 이런 여자는 박차지 못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환장을 한거지. “니 뜻 충분히 전달했어. 그런데…” “그런데?” “아무래도 집에 돌아갈 생각이 아니더라. 취직할 생각 갖고 있어. 어느 여행사인가 면접간다구 하더라.” “엉? 어느 여행사?” “말하지 않더군. 그나 저나 너한테 집념이 아주 강해요. 어쩌면 아직도 순결하다고 할까.” “순결이 뭐 훈장이냐?! 아무데나 얹어주게.” 잠간 침묵이 흐른다. 현정이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진다. 그러는 현정을 명자는 낯선듯 무표정하게 바라볼 뿐이다. “여행사라? 으흠!” 중얼거림이라기에는 너무 무거운 혼잣말이 지배인실에 오래 메아리된다. 3 “꼬끼오! 꼬끼오! 꼬…” 닭울음소리가 멀찌감치에서도 들을상 싶게 높다. 현호는 손을 뻗어 신고스레 부르르 떨며 아침을 알리는 핸드폰을 더듬어 쥐다가 불시에 벌떡 일어선다. 셋집이다. 노산자락에 자리잡고 바다를 내다보고 있으면서도 아직은 청도에서 인기가 별로 없는 사자구의 구석 동네다. 산동사람들 집답게 벽 여기저기에 누기가 들어 떨어져나간 싸구려 집이다. 퀴퀴한 냄새가 나는 이 집에서 산지도 벌써 한달이 되어온다. 어제는 꽤나 취했던 거 같다. 어쩌면 취한 것처럼 가장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명자가 술값 지불하던 장면이 가물거리며 떠오른다. 그리고 어떻게 헤어졌는지 모른다. 곱 없는 배가 알콜의 충동질을 받고 뇌를 급습했던게 분명했다. 옷을 주섬주섬 주어입으며 핸드폰을 켠다. 오전 10시에 여행사 면접을 보기로 약정되어 있다. 이제 집에 돌아갈 면목은 없다. 13억 인민 모두 그가 망하기를 바라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대로 청도에 눌러 사는 거다. 읽지 않은 메시지 하나가 있다. 명자가 엊저녁 느즈막에 보낸 것이다. 은행구좌를 알려달라는 것이다. 일단 전화를 건다. “저녁에 만나자.” “또 밥 사달라니?” 비위 상하는 억양은 아니라도 약간 실웃음이 흘려나오는 어조다. “네 그릇 수준은 사발이냐? 맘 쓰는게 왜 종재기 같아.”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이제 본질 나오네..” “버릇 하나 잘못 배웠구나. 저녁에 만나자. 너한테 과외를 해줘야겠다.” 현호는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아 신을 궤찬다. “과외 사절이다. 구좌나 때려넣으라마.” “나 어제 돈 달랬더니? 하긴 주머니 빈 건 사실이지만…” “적반하장에 후안무치구나. 차비 줄테니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 조선족 출판업계는 니가 필요하잖아!” “똑똑히 전달해. 내 현정이랑은 천생연분에 보리개떡이라구 절대 갈라서지 않아. “ “걔 가슴은 이미 식을대로 식어 유통기한 다 지났단 말이야.” “지금 유통기한 안 넘기는 물건 몇개 있어? 슈퍼에 가봐!” “훗훗, 페기처분은 니가 한 거잖아?” “페기처분은 왜? 아직 삐까번쩍 생생한데…” 전화 저쪽에서 나이에 걸맞지 않게 깔깔깔 숨 넘어가는 듯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저 기집은 요사해서 탈이야. 현호는 머리를 절레절레 젓는다. 그래도 명자와 얘기할 때면 기분 하나는 죽여주게 좋은 것만은 사실이다. 4, 그들은 대학 동기동창이다. 명자와 아내 현정이는 더구나 소굽 친구다. 남자는 천생적으로 애교에 약하다. 그래서 현호는 하마트면 명자와 먼저 연분이 이어질 번 한다. 쪽지는 분명 명자의 침대에 놓았다. 그런데 약속장소에 나타난 것은 현정이다. 음차양차였지만 솔직히 싫지 않다. 어쩜 현정이는 접근하기 두려웠던 존재이다. “왜 불렀어?” “나하구 사귀자.” 현정의 도고한 기세에 오기가 솟구친다. 무작정 다가가 야들야들한 손목을 거머잡는다. 어긋난 김에 계속 틀리자 그거다. “뭐야? 이 손 놔!” “연애하자구 했잖아!” “두꺼비가 요행 접시에 뛰어들었다고 고기덩이인줄로 아나봐.” “너 버르장머리 밥 말아 먹었구나.히히.” “헤식다. 번데기앞에서 주름잡는 격이지만 거 웃음소리 정말 소름 끼친다.” “뛰어봤자 벼룩이야.” “너한테는 멸치 똥만큼도 관심이 없다니깐.” “얘, 그러지 말고 정식으로 한번 가보자.” 현정이는 킥 웃으며 막무가내라는 듯 더 깊은 수림속으로 걸음을 옮긴다. 결혼후 현호는 현정에게 번지수가 잘못 매겨졌음을 스스럼없이 털어놓는다. 그래서 명자와 현정이 침대를 바꾸어 잔지도 한주일이 넘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우리 둘 이름에 모두 ‘현’자가 들었잖아. 천생연분이야.” “그게 같은 글일세 말이지.” 현정의 명자에 대한  방어는 그때로부터 시작된다. 현정이는 명자네는 어머니대부터 여우같이 간사스러웠다고 말한다. 그 집 여자들은 대개 그렇다고 한다. 엄마도 주변에 염문이 그칠새 없었고 언니는 병든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어딘가 도망치기도 했다고 한다. 다행히 명자는 청도외자유치국으로 조동하는 남편을 따라 떠났다. 그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함께 민족출판사에 배치받은지 2년만의 일이다. 5, “행복이란 마음속으로 생각해낸 것이지요.” 면접도 별난 게 다 있구나 생각하면서 현호는 내키는대로 말한다. 여인은 퍽 재미난 대답이란 듯 빙그레 웃는다. “행복도 생각해낼 수 있어요?” “그럼요. 로또에 당첨되고도 돈 비락질 올 사람들 생각이 파도처럼 밀려오면 행복할 수 없잖습니까.” “그러니까 생각하기 나름이라 그 말씀이군요.” “그렇습니다.” “네, 참 신선한 대답입니다. 그럼 나쁜 일도 좋게 생각할 수 있을가요?” “차사고로 다리 한짝 잃었습니다. 아, 난 앞으로 어떻게 살지? 이 모양 갖고…이런 생각하면 세상이 곧 끝장나겠죠. 근데 다리 한짝 남은 게 얼마 다행이냐고 생각하면 살 용기가 생길지도 모릅니다.” 현호는 자기 처지가 그런 대목이라고 생각된다. “그건 좀 궤변 같아요. 적어도 성실한 대답은 아닙니다.” “사람 마음이 성실이란 단어에 목 맬 일 없잖습니까?” 그의 목소리가 좀 높았던지 우뚤 놀라면서 이쪽으로 건너다보는 얼굴들이 한눈에 보인다. 놀라기는 현호도 마찬가지다. 흥분을 잘하지 않는 타입인데 자기도 모르게 고담준론이 나간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여인은 계속 웃는 얼굴이다. “저희들 일이요. 그러니까 한번 나간다 하면 2박 3일 정도는 기본이예요.” “저도 기본 정도는 챙기고 있습니다.” “흐흐, 그러면 기본은 회사서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네요.” 비슷한 나이의 여사장의 배웅을 받으며 밖으로 나선 현호는 곧바로 나무그늘밑을 찾아 명자한테 메시지를 발송한다. 공상은행…. 6 현정이는  출입문을 등지고 눈을 지그시 감는다. 찰칵 하는 아주 단순한 자물쇠가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절대 실수 없이 정확하게 문 따는 소리다. 이 콘도에 들어서 유일하게 현정의 호기심을 유발하는 일이다. 언젠가 사람이 없을 때 궁금증을 참다 못해 직접 시험해보기도 한다. 신경을 한껏 도사리는데도 키가 정확히 꽂혀지지 않는다. 바느실 꿰듯 한쪽 눈을 지그시 감으며 키를 들이밀어도 아래위 아니면 좌우로 허우적대기가 태반이다. 그러나 강사장은 매양 한번으로 매끈하게 문을 딴다. 그의 모든 언행도 로봇처럼 추호의 오차도 없다. 그래서인지 차가움이 느껴진다. 소리없이 어깨에 손이 얹혀진다. 깔끔하게 다듬어진 손이다. 큼직한 금반지가 반짝인다. 현정이는 미동도 않는다. 언제처럼 바삐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듯 숨소리마저 조용하다. “오늘 컨디션이 별로인 모양이군.” 현정이는 여전히 무표정하다. 눈앞에는 현호의 흐트러진 움직임이 하느작거린다. “현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어?  차분하게 설명 좀 해봐.” “차분이라니요? 억수로 현학스레 말씀하시느라 수고 많네요.” “어허, 이건 무슨 옥황상제 똥구녕 뚜지는 소리여? 문제 생겼으면 해결하는 게 첫 순서인데 화낸다고 되는 거야?” 뼈가 들어간 말이다. 하회는 말치 않아도 예고할 수 있다. 온 하루 앉혀놓고 과거 현재 미래를 깐깐히 엮어서 얘기한다. 아, 지겨워. 현정은 몸을 일으키면서 자연스레 강사장의 손을 털어낸다. “개념 드시고 사는 냉정한 분들은 화가 뭔지 모르시죠?!” “더위 먹었어? 아님 가을 타는 거야?” “한번 제대로 미쳤다 그거죠? 그러니까 돌아가시죠.” 품격 만땅인 강사장은 이럴 때면 절대 뒷일이 따로 없다. 현정은 느릿느릿 냉장고에 다가가 캔맥주 하나 따서 쭉 들이키고는 유유작작하게 강사장앞을 지나 침실로 들어간다. 침대머리에서 한바퀴 빙 돌면서 잠옷을 풀어낸다. 실 한오리 걸치지 않은 30대 후반의 싱싱한 알몸이다. “찰칵” 출입문이 밖에서 닫히는 가벼운 마찰음이 육감으로 전해온다. 현정의 입가에 실웃음이 흐른다. 7 (흥! 어디 한번 드라마 연출해보시지.) 현정이는 문소리가 나기 바쁘게 침대에서 뛰어 일어나 검은색 스프링코드를 걸쳐 입는다. 옷장에서 속절없이 몇년 묵은 옷이다. 선글라스도 꺼내들었다가 어쩐지 너무 요란하다는 느낌에 그대로 침대에 던져버린다. (비 오는 날 먼지 좀 나겠지.) 익숙한 뒷그림자를 멀찌감치에서 따른다. 액션영화맨이어서인지 쉽게 캐릭터에 진입한다. 전혀 서먹하거나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없다. 앞서서 두리번 거리는 꼬라지가 꼭 죄지은 넘이다. 그래서 사람은 나쁜 일 하지 말라 한거다. (날아봐야 여래불 손아귀에 든 손오공이지 흥!) 서로 독립된 개체라도 10년을 부딪치면 텔레파시란 게 있다. 눈길로도, 냄새로도, 몸놀림으로도 알만큼 알린다. 지가 새침 떼고 내숭 떨어봤자다. 그러다가 정말이면 어쩌나 속이 졸여온다. 의심이 현실로 펼쳐지면 쪽 팔려 어떻게 살까 싶다. (에라이 내가 쪽이나 있어야 팔리지.) 총총하니 어느 레스토랑으로 들어간다. 많이 급했던 모양이다. 하긴 안되는 거짓을 꾸밀려니 세월을  좀 소모했겠지 싶다. 부부가 같은 직장에 있으면 선의의 거짓말도 못하게 되어있다. 쉽게 오해하고 많이 눈치 보이고 또 그만큼 서로 불편하다. 그래서 어느 일방이 다른 직장으로 옮기자는 토론도 가끔 한다. 현정이가 떠났으면 하는 바램이 온 얼굴에 덮혀있다. 여자를 움직이려는 속셈에 약간 원망스럽다. 거기서 티가 난건가? (눈밭에 꿩이야. 머리 틀어박아봤자지. 치부가 다 드러났는데.) 거짓말같이 레스토랑에서는 현정이가 짜놓은 시나라오가 그대로 진행되고 있다. 손을 잡은 채로 와인잔을 부딪치던 두 남녀는 현정이의 돌연적인 출현에 조각같이 굳어진다. (길위의 똥이라도 모두 쇠똥인 건 아닌데 하필이면…) 현정이는 심한 구토를 느끼며 발작 한번 못하고 돌아나온다. 이틑날부터 현호의 발뺌소리가 귓가에 앵앵거린다. 난 주간인데 넌 월간이잖아. 그 월간도 발행이 제대로 되지 않아 쩍하면 격월간이 된단 말이야. 참을 수 있어야 말이지. 남자 그거 참으면 죽는 수도 있어. 어떻게든 버려야 돼. 물 건너다 바지 젖은 셈 치자. (개 풀 뜯어 먹다가 기침하는 소리 작작 하라구.) 그런 애원이 귀에 들어갈 리 없다. 어느날 현정이는 남편 몰래 사직하고 사라진다. 8 “왜 하필이면 이 곳이지?” 명자는 돈봉투를 집어 주머니에 넣고 입에 술잔을 갖다댄다. 양주병 하나가 벌써 굽나있다. “사냥개처럼 무슨 냄새 맡은 건 아니니?” 그래도 명자는 시무룩이 웃기만 한다. 벌써 현호와 여러번 이 동네에 와서 술을 마신다. 현정이가 신경이 날카로와질만도 하다. 명자는 묻는 말에는 대답 않고 쏘파에 비스듬히 기댄채 현정에게 되묻는다. “근데 강사장하구는 어떻게 된거니?” “사람 물색하는가 보던데…” “내 우리 여보보구 한방 날리라 할까?” “관둬. 강사장도 어지간히 속이 저려있을 거야.” “너 지금 사돈 남 말하둣 하구나.” “안 그러면 어쩔건데? 어차피 모두 착각이잖아.” 강사장을 겪으면서 현정은 남편 현호를 이해할 듯도 싶다. 사랑이란 게 어쩌면  착각일 수도 있다. 청도에 와서 첫 반년은 정신 없이 일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점점 외롭고 쓸쓸하다. 마담으로 손님들한테 불리워가서 술 한잔 나누며 자연스레 오가는 짓궂은 장난에 저도모르게 짜릿할 때가 한두번 아니다. 동물적인 본능으로 타매 불가능이다. 사랑 없이도 섹스가 즐겁다는 걸 뒤늦게 안 자신이 바보스럽다. 그리고 섹스가 사랑을 키워준다는 사실도 알아버린다. 강사장과는 그런 이유로 가까이 다가선지 불과 한달이다. 이젠 정리가 눈앞이다. “그러면 넌 어쩔 타산이냐?” “지금 장소를 알아보는 중이야. 이젠 독립할 때도 되었잖아?” “현호는 어떻게 처리할거니?” “걱정 붙들어매라마. 때가 되면 감이 떨어지겠지.” “재밋다. 내 물 버리고 인차 오마. 귀도 씻고 올거야 히히.” 명자는 요란하게 엉덩이를 꼬며 달려나간다. 9, 여기는 “석노인”을 떠나서 얘기가 되지 않는다. 바다속에 우뚝 솟은 돌바위에는 석노인의 전설이 슴배어 있다. 그 해안을 따라 길고 평퍼짐한 석노인해수욕장이 펼쳐져 있다. 뒤로 노산기슭을 타고 오르는 산언덕은 석노인관광원이다. 그 가운데는 새로이 석노인골프장이 자리하고 있다. “저 돌이 용왕에게 딸을 빼앗긴 할아버지가 굳어진 거라면서?” “여행사에 있는 사람이 더 잘 알잖아.” 그들 부부는 아직도 해라로 통한다. “난 꼭 나자신 같은 생각이 들어. 아내 찾으러 왔다가 굳어지는…” 현호는 칙칙한 모래불에 그대로 누워버린다. 사내답지 않게 눈가에 눈물이 고인다. 현정이한테 그게 발각된 것이 많이 체면이 깎인 듯 실없이 두덜댄다. “아, 별 싸가지 없는 것이 다 기어나오고 야단이네.” 현정이는 시무룩이 웃는다. “나 거기 있는 걸 어떻게 알았어?” “여행사잖아. 유흥업소와 쇼핑점은 필수과목이짐.” “그래서 명자랑 들락거리면 내가 나타나리라 짐작한거야?” “옛날부터 식초 잘 드셨잖아.” “점입가경이군. 니 똥 굵다 히히.” “글지 말고 우리 여기서 애 하나 더 낳고 잘 살자마.” “애기가 뭐 자판기에서 마음대로 뽑아내는 커피인감?” 그러면서도 현정이는 행복감에 정신이 아찔해나고 몸이 부르르 떨린다. “이젠 물러설 자리도 없는 처지인데 어떻게 할 참이야?” “사장님이 나더러 청도지역을 도맡으라구 그래. 상해에다 새로 여행사 세우고 그쪽으로 갈 생각인가 봐. 난 노임보다는 지분을 갖는 쪽을 택했어. 젊었을 때 모험 해보는 것도 괜찮겠지.” “잘했어!” “명자한테 다 들었어. 장소는 찾은 거야?” “초록은 동색이라더니 참.” 맑은 하늘처럼 현정의 얼굴도 구름 한점없이 펴져있다. 10, 시원스레 뻗어나간 해변도로로 현대차 한대가 달린다. 내려진 차창으로 핸들을 잡은 현호의 모습이 보인다. 전보다 얼굴이 많이 검붉다. 옆좌석에는 금방 고향에서 데려온 열살난 딸애가 앉아 쉴새없이 재잘거린다. 처음 보는 바다가 신기한 듯 시도 때도 없이 창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손을 내밀고 한다. 그러는 딸애가 걱정인 듯 뒷좌석에 앉은 현정이는 가끔 충고를 준다. “얘, 글지마. 위험하다니까!” 그녀의 품에는 태어난지 두달 남짓한 아들애가 안겨있다. 정말로 자판기에서 뽑아내 듯 아들애가 생각보다 쉽게 나온 것이다. 현호와 재회해서 두달 좀 넘어 생겨난 늦둥이이다. 현호는 요즘 엄청 바쁘다. 아내가 임신하면서 현호는 아내 장사까지 겸해 돌보다보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요행 찾아온 추석 연휴로 모처럼 한가정이 뜻깊은 석노인 관광을 나선 것이지만 현호는 집에 돌아가서 당할 일이 그저 무섭기만 하다. “벌써 한달이 되어오네. 정말 이럴 거야?” 현정이 매달려도 현호는 심드렁하기만 하다. 이젠 현호가 월간이 되고 현정이가 주간으로 돌아온 셈이다. 하느님 맙소서. 저 멀리로 바다에 발을 담근 석노인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9    산길 댓글:  조회:795  추천:0  2014-08-31
단편소설   산     길   장학규       산길은 오불꼬불 굽이 돌지 않을 수도 있었다.평퍼짐한 산등성이여서 얼마든지 곧게 뺄 수 있었다.그러나 어느 방정맞을 사람이 이곳에 첫발작을 내디뎠는지 보기 싫게 오불꼬불한 산길을 내놓았다.   그 옆에 민들레가 자라나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흙은 북방에만 특유한 검붉은 흙이어서 북방의 어느 산에서 자라고 피어나는 나물과 꽃들도 얼마든지 자라고 피어날 수 있을 것이었다.하지만 산길옆에는 민들레가 놀라울 정도로 큰 면적을 차지하고 피어있었다.   그녀는 스물두살이 아닐 수도 있었다.그녀가 좀 일찍 혹은 좀 늦게 이 세상에 태어났어도 그것은 가능한 일이었다.그러나 그녀는 많지도 적지도 않은 스물두살이었다.   그날은 비가 내리지 말아야 했다.하늘은 맑고 푸른대로였는데 난데없이 비방울이 떨어졌다.시골에서는 이런 비를 햇비 혹은 가는비라고 한다.   그녀는 비를 피하지 말아야 했었다.그러나 그녀는 비를 피하려고 급급히 서둘렀다.가까운 곳에 다 찌그러져가는 초막집이 있었다.초막집은 그녀를 유혹하고 있었다.그녀는 그리로 뛰어갔다.   비극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점점 짧아지는 가을해는 어느덧 서산으로 기울고 있었다.그러나 김치움 깊이는 허리도 치지 못했다.   "호-"   그녀는 삽을 땅속에 박은채 깊은 한숨을 몰아쉬었다.웬 일인지 손가락 하나 까닥할 맥도 없었다.그녀는 서글펐다.고통스러웠다.그녀는 이제 서른두살밖에 되지 않았다.그런데 오래전부터 기력이 모자람을 느끼고 있는터였다.아직도 앞길이 구만리 같은데...   (밥이나 짓고 볼가?)   그녀는 멍해진 눈으로 굴뚝을 쳐다보았다.온기 없는 굴뚝은 언녕 그녀를 부르고 있었다.   (안돼.내일부터는 가을을 시작해야겠는데...남들은 벌써 시작한지 오래다.)   그녀는 도리머리질 하면서 손에 침을 발랐다.계속 흙을 파서 올렸다.그녀는 불현듯 팔다리가 녹작지근해나 몸을 가누지 못하고 휘청거렸다.잔등은 어쩔새도 없이 김치움벽에 탁 부딪쳤다.눈앞이 아찔해났다.마구 꽃보라가 날리는둣 했다.그녀는 한동안 눈을 꼭 감은채 꼼짝하지 않고 흙벽에 기대어 서있었다.   "아니 ,너 웬일이냐?"   익숙하고 친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녀는 맥없이 눈을 떳다.친정어머니가 눈앞에 나타났다.어머니는 손으로 가슴을 어루쓸며 근심스레 그녀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녀는 저도모르게 콧마루가 시큰해났다.어머니의 품에 안겨 마구 통곡하고 싶었다.하지만 다음 순간,그녀는 아무 일도 없다는듯 얼굴에 알릴듯 말듯한 미소를 띄웠다.   "아무 일도 아니예요.어머니."   "빨리 올라오너라."   "오늘 다 파야 해요.남들은 가을을 다 끝내고 있는데..."   "걷어치워! 그래  이 집엔 씨종자가 말랐단 말이냐? 무슨 일이나 다 네 손이 가야 하니,에그 에그..."   "됐어요.됐어요.제발..."   그녀는 손을 싹싹 비비며 빌었다.그녀는 또 한차례의 말싸움을 예감했던 것이다.   하지만 친정어머니로선 자기의 피덩어리가 당하는 이 고통을 그저 눈 뜨고 볼 수만 없었다.여지껏 딸의 간청에 참고 또 참았지만 인젠 더 참을 수 없었다.어머니는 집안의 사람들이 들으라는듯 더욱 목청을 높였다.   "그 주제에 장가는 왜 들어? 응? 녀편네 등을 파먹자구 남의 고운 딸을 데려갔어? 아이구 원통해라..."   문이 벌컥 열리며 시어머니가 푸르딩딩해서 나왔다.그녀는 스르르 눈을 감아버렸다.옛말에 변소와 사돈집은 멀어야 한다더니...   "입은 비뚤어도 말은 바른대로 하랬다고 우리 집에서 데려온거요? 그 집에서 손이야 발이야 빌면서 준거지."   시어머니의 악다구니는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찔렀다.시어머니는 그녀를 사람이 아니라 물건으로 보고 있었다.마음대로 주고 받는 물건으로 치부하고 있었던 것이다.그녀의 얼굴엔 구슬같은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눈물은 그녀의 갈라터진 입술을 적셔놓아 퍼그나 아려났다.그녀는 이를 악물고 벌벌 김치움에서 기어올라왔다.발을 헛디뎌 하마트면 도로 떨어질번 했다.시어머니의 악다구니에 억이 막혀 부들부들 떨던 어머니가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시어머니는 고개를 쳐들고 먼산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런대로 그녀는 기어올라왔다.   "어머니,이젠 집에 돌아가세요."   웬일인지 그녀는 기어드는 소리로 간청했다.   어머니는 눈물범벅이 된 외동딸을 훑어보았다.옛날 포동포동하던 처녀의 모습은 오간데 없고 뼈만 앙상하게 남아있었다.이제 겨우 서른고개를 넘었건만 이마에는 벌써 잔주름이 잡혀있었다.   "후-"   어머니는 긴 한숨을 몰아쉬었다.뭐라고 더 말하겠는가? 말 그대로 자기가 빌듯이 딸을 이 집에 맡겨음에랴.그때 안사돈이 우쭐거리던 꼴이 지금도 눈앞에 삼삼한 어머니였다.기실 어머니와 딸은 모두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하지만 내키지 않아도 그렇게 해야만 했었다.   "집에나 자주 오렴,몇발작 아니면 되는데..." 부탁을 마친 어머니는 휘청휘청 돌아갔다.그녀는 목석같이 어머니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어머니,좀 기다려줘요.같이 가자요.)   그녀는 목 터지게 부르고 싶었다.마구 달려가고 싶었다.   시어머니는 또다시 가마목에 올방자를 틀고 앉았다.모든 것이 원래의 그대로 되돌아갔다.아니,그녀로 놓고 말할 때에는 설음과 고독,한숨과 고통의 계속인 것이다.   "밥은 언제 지으려나? 우리를 굶겨죽이자는 수작이야?!)   또 시어머니의 불같은 호령이었다.그녀는 부랴부랴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썰렁하던 집안에 인차 온기가 돌았다.그녀는 거의 마비된 손으로 기계적으로 풍구를 돌렸다.   남편은 여지껏 잠자코 있었다.허약한 몸을 간신히 지탱하고 앉아서 애궂은 담배만 풀썩풀썩 태우고 있었다.   그를 보는 순간 그녀는 또 설음이 북받쳤다.어머니의 말마따나 녀편네의 등살을 파먹고나 살 맹추,그렇게 마른 주제에 담배는 육실하게 피워대긴?여태껏 저런 뼈다귀를 믿고 살아오다니...   그래도 그녀는 그를 믿고 살아왔다.10년 전의 그 일이 있은 후부터 그녀는 그만을 믿고 살아왔다.   (벌써 10년이 지났단 말인가? 아.옹근 10년이구나!)   바로 10년전,그녀가 스물두살을 먹은 그 해의 어느날,맑은 하늘에서는 까닭없이 비방울이 떨어졌다.   민들레를 캐고 있던 처녀는 날듯이 뛰어일어났다.그녀의 환한 얼굴에 불현듯 근심의 빛이 어리었다.처녀의 몸에는 새하얀 적삼과 빨간 치마가 감겨있었다.그녀는 그것이 비에 젖는 것이 아까왔다.그녀는 급히 사위를 둘러보았다.멀지 않은 곳에 초막집이 있었다.그녀는 그곳으로 뛰어갔다.   초막집은 그 옛날 사냥군들이 지어놓은 것임에 틀림없었다.팔뚝만한 가둑나무를 마주 세워 A자형으로 지은 초막집인데 썩은 거적 하나가 문노릇을 하고 있었다.   "어마나!"   거적을 쳐들었던 그녀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손을 놓아버렸다.그바람에 거적이 뭉청 떵에 떨어졌다.그녀의 앞가슴이 세차게 오르내렸다.   초막안에는 웬 남자가 사지를 쭉 뻗고 누워있었던 것이다.그녀가 내지른 소리가 그를 놀래웠는지 그는 부시시 일어나 앉았다.눈이 수욕에 넘친 야수의 눈처럼 번쩍이었다.   그녀는 그를 알고 있었다.그 눈길이 익숙하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그녀에게 쏠리는 눈길중에서 가장 지꿎은 눈길이었다.그러나 그녀는 그에게 호감을 가지지 못하였다.늙은이처럼 활기 없고 느른한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그녀의 마음속에는 언녕 상고머리가 들어앉아있었다.그녀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돌아섰다.  "얘!"   한달음에 달려나온 그는 냉큼 그녀의 손목을 틀어잡았다.   "난...난 더 참을 수 없어."   그는 마구 그녀를 초막안으로 끌었다.그녀는 젖 먹던 힘까지 다하여 발악했지만 그 힘은 너무 미약했다.주위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얼씬하지 않았다.그녀를 구해줄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그녀는 완전히 맥을 버렸다.더 반항하지 않았다.모든 것을 운명에 맡겨버렸다.그녀는 그의 양심에 일루의 희망을 걸고 있었다.그러나 그의 손은 어느덧 그녀의 옷을 벗기고 있었다.그녀는 눈을 꼭 감아버렸다.완전히 희망을 잃었던 것이다.그런데 그때까지도 하신에  아무런 감각도 느끼지 못한 것이 이상한 일이었다.   그녀는 정기 잃은 눈으로 멍하니 그만을 쏘아보았다.눈물이 샘솟듯 흘러나왔다.   "아니, 밥이 다 탄다.밥이 다 타!"   시어머니가 급작스레 고아대는 바람에 그녀는 흠칫 놀랐다.그녀는 눈물을 닦을 새도 없이 본능적으로 물을 떠서 가마안에 휙 둘렀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 밥은 푸지 않고..."   그녀는 또 기계적으로 밥을 펐다.눈물이 자꾸 겉잡을 수 없이 주르륵 흘러내려 밥소래에 떨어졌다.그녀는 밥을 퍼담기 바쁘게 밖으로 뛰쳐나왔다.시어미니에게 못난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상은 차리지 않고 어데로 가?"   집안에서는 시어머니의 새된 소리가 등골을 탁 친다.   "김치움..."   그녀는 무엇때문에 이런 대답을 했는지 몰랐다.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났다.삽을 들 맥조차 없었다.멍하니 김치움을 들여다보고 있는 사이 남편이 불편한 몸을 질질 끌며 밖으로 나왔다.   "들어가 밥을 먹소.내가 팔테니..."   "당신이?"   그녀는 고마울 대신 이름 할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막 달려들어 찢어놓고 실었다.   "노릇도 못하는 주제에 왜 더러운 소문을 퍼뜨려 제집에 끌어들이고 못 살게 구는거요?!"   그녀는 이렇게 마구 질책하고 싶었다.   결혼날 밤을 지난후 그녀는 모든 것을 알았다.그랬기때문에 그에 대한 그녀의 원한은 10년간 줄곤 가실줄 몰랐다.   한편 그녀는 그가 불쌍하기도 했다.그녀앞에서 그는 시종 죄인마냥 곰상곰상했다.마음이 어질고 내성적인 그는 자신의 과거에 죄책을 느낀 나머지 말없는 행동으로 속죄하려는듯 했다.매사에 그녀를 위해 변호했다.그래서 남편과 시어머니사이의 모순은 그들 부부간의 모순보다 더욱 치렬했다.또한 그나마 이러한 남편이였기에 그녀도 마음에 없는 이 집에 정을 붙이고 10년을 아글타글 살오온 것도 사실이었다.   "됐어요.들어가자요."   그녀는 신음하듯 말했다.   그들은 나란히 집에 들어섰다.시어머니의 눈길은 언녕 꼿꼿해져 있었다.그녀는 그 눈길을 외면하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밤은 깊어만 갔다.정지칸에서는 구들고래를 훑는듯한 코고는 소리가 들려온지도 이슥하다.   그녀는 좀체로 잠들 수가 없었다.앞길을 생각하니 막막한 느낌뿐이었다.   그녀는 속이 허전한감을 느꼈다.그녀의 배는 시종 비여있었다.그것도 그럴 것이 남편이 제구실을 하지 못하니 말이다.그래도 욕망만은 있어 밤이 되면 남편 구실을 하려고 헤덤빈다.뜻대로 되지 않으면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한사코 그녀를 못 살게 군다.하여 이날 일어나면 그녀의 머리는 천근같이 무겁다.   그녀는 의식적으로 남편을 멀리했다.남편의 몸이 언제가는 완쾌할 날이 있을 것으로 믿었고 그날을 위해 묵묵히 고통을 삼켰다.그와 그녀 사이의 고충은 그들밖에 누구도 몰랐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차츰 그 일에 관한 에피소드들이 전해지고 있었다.그녀는 어리둥절했지만 그후부터는 드러내놓고 남편을 병원에 데리고 다녔다.언젠가는 누구한테서 그 병에는 범의 그것이 좋다는 말을 얻어듣고 여기저기 수소문하기도 했다.그러는 사이에 10년이 흘러갔다.그러나 남편은 여전히 그 꼴 그 모양대로였다.그녀는 자신의 처사가 저으기 후회되었다.아이가 그리웠다.아이라도 있었더면 얼마간 위안이라도 되련만...   "여보세요."   그녀는 조용히 불렀다.움지락거리는 감각이 전해왔다.뒤이어 빼빼 마른 손이 그녀의 젖가슴을 더듬고 있었다. 전 같으면 남편의 허약한 신체가 염려되어 물리쳤을 그녀였지만 지금 이 시각에는 남편이 하는대로 내버려두었다.그녀는 아이가 그리웠다.아이는 그녀의 삶의 기둥으로 될 것이다.그녀도 필경을 여인이었다.여인으로서의 요구도 있었다.그녀는 더는 그것을 억제할 수 없었다.그녀는 조용히 그가 성공하기를 바랐다.딱 한번이라도.   불현듯 그녀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10년전의 그가 새삼스레 떠올랐다.지금과도 꼭같은 여전한 동작,여전한 낭패상이었다.바로 그때문에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과 갈라지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나도 다 들었소.우린 그만 갈라지기오."   그는 상고머리를 긁적거리며 달아나버렸다.   그녀는 을 잃고 상고머리의 우둑진 뒤모습을 쏘아보았다.그가 저주로왔다.천지를 감동시키던 맹세를 쉽사리 망각한 그가 가증스러웠다.그녀는 저도모르게 반발심에 사로잡혔다.하여 단연 이 집에 시집을 오겠다고 서둘렀던 것이다.물론 남편으로 된 사람은 그때 으쓱했고 소문을 퍼뜨린 시어머니도 시뜩했던 것이다.   남편은 여전히 씩씩거리고만 있었다.말 못할 염오감에 휩싸인 그녀는 남편을 밀쳐버렸다.웅장한 상고머리라면 결코 실망의 그늘은 지어주지 않을 것이다.그녀는 옷을 주섬주섬 주어입고 밖으로 나왔다.   달밝은 밥이었다.삼라만상이 침묵속에 잠긴 조용한 밤이었다.   그녀는 울안에서 서성겨렸다.무었때문에 밖으로 나왔는지 그녀 자신도 모르고 있었다.그저 가슴이 답답해질 뿐이었다.정말이지 그녀는 땅을 치며 한바탕 통곡하고 싶었다.마을에서는 그녀가 어리무던하다고 찬사가 많았다.하지만 그녀는 언녕 그러한 칭찬에 반감을 가졌고 진절머리가 났으며 그런 허위적인 생활에 권태를 느꼈다.그러나 그녀는 필경 여인이었다.나약한 여인이었다.지친 여인이었다.하다면 그녀는 이 세상 막끝까지 신음으로 걸어가야 하는가?   "누구세요?"   갑자기 그녀는 울바자에 붙어선 이상한 물체를 발견했다.그것은 웬 사람이었다.그 사람은 몸을 흠칫하더니 기어드는 소리로 대답했다.   "나요."   "나라니?"   그녀는 전률하듯 몸을 떨었다.그 사람은 다름 아닌 상고머리였다.그녀는 오늘까지 그를 본체만체했다.그녀는 영원히 그를 용서할 수 없었다.쉽사리 사랑의 신의를 저버린 그,그녀는 그를 원망했었다.지금 녀편네와 자식을 두고 한밤중에 도적처럼 남의 울바자에 붙어있는 그를 보노라니 원망보다 증오가 앞섰다.   "염치 없군요! 썩 물러가요!"   "난 그저 딱 한마디만..."   "듣기 싫어요!"   그녀는 저도모르게 꽥 소리를 지르며 귀를 틀어막았다.   집안은 전등이 켜져 있었다.문이 벌컥 열리며 시어머니가 맨발로 뛰어나왔다.그뒤에 남편도 따라나왔다.그녀는 초조한 심정으로 상고머리를 돌아보았다.어느새 상고머리는 저멀리 사라지고 있었다.   "저게 어느 개자식이야? 그 놈이지?"   시어머니가 따져물었다.   "옳아요,상고머리에요."   그녀는 태연하게 대답했다.이상하게도 마음이 거뿐해졌다.   "하긴 잘한다.너 봤지? "   시어머니는 아들을 돌아보았다.모자간에 평시에 뒤에서 어떤 얘기들이 오갔던 모양이었다.남편은 이윽토록 그녀를 쏘아보았다.동안이 지나서야 한결 가라앉은 소리로 물었다.   "그가 멀하러 이 밤중에 찾아왔소?"   "저와 살겠다구요!"   그녀는 또렷하게 대답했다.   "그래 당신은 어떻게 대답하였소?'   남편의 물음은 그녀의 마음 한구석에 쌓이고 쌓인 원한을 터뜨러 놓고 말았다.10년이나 살아오면서 여직 마음을 알지 못하는 그가 저주로왔다.그를 위해서 바친 그녀의 대가는 엄청나게도 컸지만 그는 그것을 알아주는상 싶지 않았다.여전히 10년전의 그,자기밖에 모르는 야수적인 인간이었다.그녀는 악에 받쳐 대답했다.   "그와 살겠다고 대답했어요!"   "찰싹!"   강한 충격을 받은 그녀는 허궁 나가 넘어졌다.   "하하하..."   그녀는 히스테리적으로 웃어댔다.그 하나의 매,통쾌한 웃음에 그들이 애써 유지해오던 10년간의 부부생활은 쿵!하고 드디어 막을 내려버렸다...   산길은 곧게 뻗어있었다.어느 개명한 사람이 그 오불꼬불한 길을 고쳐놓았던 것이다.   그 옆의 민들레는 언녕 시들어버렸다.   비도 내리지 않았다.   초막집도 간데온데 없어졌다.   모든 것이 변했다.10년전과 판이하게 변했다.   그녀는 그 오솔길을 따라 내처 걷고 있었다.그녀가 어디로 가는지 누구도 모른다.다만 홀가분한 걸음,한결 재빠른 걸음을 멀리서 볼 수 있을 뿐이었다.                                                                                                                                                                                끝    
8    겨울변주곡 댓글:  조회:661  추천:0  2014-08-31
단편소설   겨울변주곡 장학규       그날도 해나른해진 주정뱅이처럼 멋대가리 없는 겨울날이었다.창밖에서는 둥그런 겨울해가 실없이 열기를 뽐내고 있었고 눈세례라군 못 받았다는듯 헐벗은 대지가 근육을 느슨히 풀어놓고 길가는 행인들의 신발을 매질하고 있었다.   "너 마구 지랄하더니 내가 애기 뱃잖아.빨리 와서 나를 델구가.안오면 개다."   해순이가 이런 전화를 걸어왔을 때 재석이는 어깨가 으쓱해졌다.창밖의 살풍경따위는 염두에도 두지 않았다.그리고 개가 아닌 것을 시위라도 하듯 사람답게 고개를 꿋꿋이 세우고 해순이네 집으로 갔다.이 세월에 딸 가진 부모는 모두 그렇듯이 해순이 아버지는 울방자를 틀고 앉아 재식이를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그렇건 말건 재식이는 무작정 해순이 아버지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장가들고 싶어 왔습니다.해순이를 저에게 주십시오."   "임마,해순이 물건이야? 막 주게?"   "막 달란게 아니구 굉장하게 모셔가겠단 겁니다."   "그래도 안돼,아미를 튕겨가며 골라줄란다."   "줄바엔 저에게 주는게 낭패 없을 겁니다."   "허허,그 자식이 비위 하나는 떼먹었구나."   결국 해순이 아버지가 두손을 바싹 들고 투항해 재식이는 그달로 해순이를 맞아올 수 있었다.5,6년만에 처음 있는 희사여서 온 마을이 벅적 끓은 것은 물론 재식이도 해포나마 어깨를 살리고 돌아다닐 수 있었다.     오랜 촌장인 아버지의 덕분에 재식이는 고중을 나오자바람으로 단지부서기에 민병 련장을 겸하게 되었다.일자무식인 아버지가 우뚝밸 하나로 마을의 패권을 틀어잡았다면 재식이는 가냘픈 체질에 알맞게 수완을 잘 쓰는 편이었다.   알아보면 해순이와의 만남도 그저 그렇고 그렇게 이루어졌었다.아버지 세대나 큰 형님 또래가 들으면 해괴하게 생각할 일이겠지만 그들은 별로 쑥스럽지도 않게 아주 자연스레 결합되었던 것이다.   해순이를 알기는 향에서 조직한 어느 한차례의 단간부모임에서였다.해순이는 건너마을 지서의 딸로 재식이보다 서너살 아래였다.오리무리에 끼어든 고니라 할가.주최측에서 용케 불러낸 몇 안되는 마을처녀중에 그녀는 유일하게 그런대로 보아줄 수 있는 얼굴이었다.게다가 걸줄한 농담도 술술 받아주어 처녀고갈에 맞다든 총각들에게 하나의 장미빛 유혹으로 부상했던 것이다.누구의 제의였던지 술을 얼근히 마신후 모두들 강에 나가 물싸움을 벌리게 되었다.재식이는 사전에 계확한대로 슬금슬금 물장난에 정신없는 해순이 옆에 다가섰고 그런줄도 모르고 무방비상태에 있는 해순이를 허궁 들어서 무작정 물속에 처박았다.조금도 사정을 봐주지 않으리라고 언녕 작정했던 터이므로 해순이는 짐작대로 물을 꿀꺽꿀꺽 들이켰다.허둥대다가 간신히 일어난 해순이는 복수한다며 종주먹을 쥐고 암펌처럼 달려들었다.재식이는 헐레벌떡 달아나다가 갑자기 뒤로 넘어지면서 바투 다가선 해순이의 손을 붙잡아 끄당겼다.몸이 맞붙어서 물속에 잠기기 바쁘게 재식이는 그녀의 궁둥리를 두손으로 넙적 끌어안았고 급해난 해순이는 본능적으로 그의 손을 뿌리친다고 헤덤비다가 맞춤하게 남자의 요긴한 부분을 거머쥐게 되었다.화들짝 놀라 갈라져서 물우에 떠오른 후 그들은 누구 먼저라 할것 없이 배를 끌어안고 웃어제?다.   "에씨,난 어쩌래?"   해순이는 살짝 얼굴에 홍조를 띄우며 투덜댔다.   " 어쩌긴? 나하구 살면 되지."   "체, 생각은 좋다.막 죽이고싶은데."   "그러면 꽉 틀어쥘거지."   "아이참,난 몰라,그럼 정말 죽인다."   해순이는 거세게 욕설을 퍼부으며 달려 들었으나 물속에 잠겨서는 곱다랗게 재식이의 유희에 호응해주었다.그런 에피소드로 하여 그들의 관계는 하루가 다르게 밀접해졌고 종당에는 한집에 모이게 된 것이다.     재식이는 운수가 좋은 편이었으나 마음 한구석은 시종 탐탁치 않았다.이젠 간부경력도 그만큼 길고 또 그때문에 마을 노총각들중에서 유일하게 장가를 들었지만 아직까지 총각때를 벗지 못한 친구들이 시종 그의 권위를 인정해주지 않는 것이었다.사실 지금 실정에 그따위 벼슬 아닌 벼슬을 두려워할 놈팽이가 있을리 만무했다.봉급을 주면 입단하겠노라고 박박 엇서는가 하면 민병련이란게 어떤 부서냐고 애를 먹이기도 했다.그중에서도 만수란 자식이 가장 큰 골치거리였다.몸집도 웅장하고 주먹도 꽤나  센 편이었다.학교를 나올 때까지만 해도 또래들중에서 왕노릇을 했던 까닭인지 재식이를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뿐만아니라 가끔 재식이와 공개적으로 엇서면서 난처하게 굴었다.하여 재식이는 별 볼장 없는 중놈처럼 마을에서 위신을 크게 세우지 못한채 흔들흔들 회의나 다니고 년중과 년말에 둬번쯤 경비란 것을 타내가지고 패잔병처럼 흩어진 친구들을 긁어모아 흥청망청 먹고 마시는 것으로 소일할 수밖에 없었다.     해순이가 고맙게도 아들을 낳아준 며칠후였다.그때 역시 겨울날이었고 재식이는 소위 활동경비라 이름하고 촌에서 돈을 타내어 친구들을 불렀다.그런데 어지간히 취기가 오르자 만수가 걸고들기 시작했다.   "야,임마.넌 애비 신세를 톡톡히 지고있구나.새해엔 촌장이 된다면서?"   아무래도 이 자식의 어느 구석엔가 노촌장인 자기 아버지의 흔적이 묻어있다고 재식이는 동물적인 본능으로 냄새맡고 있었다.우덕진 체구도 그렇고 말하는 본새도 그렇고 노촌장을 꼭 닮아있었다.그러나 동류는 피하는 법인지 주먹 하나를 신주같이 모시는 만수도 늙은 재식이 아버지한테는 고양이앞에 나선 쥐격으로 사맥을 추지 못했다.그대신 재식이만 보면 묵은 빚을 받지 못한 것처럼 으르렁거렸다.   "동네 하나 변변히 틀어잡지 못하는 자식이 무슨 일을 한다고 그래.썩 물러나."   재식이도 체면은 있는 셈이었다.만수의 노골적인 언사도 그렇고 여기저기서 쿡쿡거리는 소리도 마찬가지로 신경줄을 팽팽하게 당겨주고 있었다.비록 벼슬 같지 않은 것이긴 하지만도 여하튼 그 덕분에 내년의 촌장개선때는 당당한 유망주로 이미 내정되어 있었던 것이다.물론 아버지가 뒤에서 밀어준 관계도 있지만 한편 선배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늙어버렸고 새 일대는 여직 일어서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그러니까 재식이는 당연히 홀로 물우에 솟은 부용이었고 창턱에 놓인 꽃병이었다.그처럼 귀한 몸인줄을 만수만이 모른다고 할가.아무렴 눈치 무딘 만수에게 귀뜀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취했군.네가 해마다 임무공을 빼먹은걸 누가 뒤처리해주었는지 알고나 말해."   그건 만수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앞으로 재식이가 이곳에서 일을 해나가려면 주먹질을 잘하는 만수의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3백호밖에 안되는 작은 마을이라 하지만 좀체로 단합이 되지 않고 있었다.서로 물고 뜯는 아귀다툼을 하루에도 수십번 곱씹고 있었다.아버지때는 그럭저럭 우격다짐으로 밀고 나갔지만 일단 재식이가 일을 맡으면 형세를 틀어잡기 어려울 것은 뻔한 일이었다.그래서 언제부터 슬그머니 만수의 손을 봐주고 있는 실정이었다.물론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만수가 느낄 수 있도록 기술적인 수잔을 쓰는 것도 잊지 않았다.그런데도 만수는 꼬물만큼도 사양하지 않았다.   "치사하게 공자랑 말어.다 세월 잘못 만난 탓이다."   "세월 만나면 뭐가 될 거 같애,너가?"   "해방전에 탄생했으면 장군감이다."   "해방후면 토개간부이겠지?"   만수가 타령처럼 외우는 말이어서 이젠 재식이도 뒤말을 이어댈 수 있었다.   "문혁때면 반란파 두목을 했을테지."   "그렇찮구.개코같이...지금 어디 사람 사는 세상이야.재수 나쁘게 태어난게 원통하다."   그게 누구 탓이냐고 질문하려다가 재식이는 입을 다물어버렸다.취중에도 만수의 어머니가 남편 없이 만수를 만들어냈다는 사실을 떠올린 것이었다.그것도 재식이 아버지인 노촌장과 구설이 오가는 실정이었다.어렸을 때 재식이는 어머니와 아버지,그리고 어머니와 만수의 어머니가 서로 싸우는 틈서리에서 살았었다.어쩌면 해명하기 어려운 그런 역사가 재식이와 만수 사이를 벌려놓고 있는지도 모른다.그래서 재식이는 슬그머니 말머리를 돌렸다.   "그 용기면 외지애들이나 좀 다스려.말이 아니잖아.우리 애들이 날마다 얻어타지기만 하구."   "치보는 뒀다 어디에 쓰는거야?"   "늙었잖아,제 몸도 돌보지 못하는데..."   "그러면 털고 나앉아야지.그것도 벼슬이라구 깔고 앉아서..."   "쓸데 없는 소리는 말구.어쨌든 한번 결판내야지."   "독불장군이랬어.일이 벌어졌다 하면 뿔뿔이 꽁무니를 빼지 않아.모두들..."   "그 힘은 제사람이나 잡자고 남겨."   "여자한테 퍼부을거야.씨팔.여자가 있어야 어쩌지.먹자."   "마시자."   재식이는 한고뿌 가득찬 흰술을 단숨에 굽을 내었다.만수의 눈은 대번에 데꾼해졌다.잇따라 그도 한모금에  한고뿌를 입에 털어넣었다.새벽닭이 첫홰를 칠 때까지 그들은 내기라도 하듯 말없이 술만 들이켰다.     재식이가 심한 뇨기를 느끼고 잠에서 깨어났을 때 창밖은 아직도 거무틱틱한대로였다.손목시계는 10분전 5시를 가리키고 있었다.바지궤춤을 추스리며 부시시 밖으로 나섰다.허리띠를 끌렀다가 배설을 단념하고 비칠비칠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간밤에 어떻게 드러누웠는지 알쏭달쏭했다.술을 너무 과음한 것 같았다.속이 메쓱거려왔다.꼭 술량으로 해결해야 할 대결도 실상 아니였다.그저 자기쪽에서 그렇게 하고싶었을 따름이었다.이제 이 겨울이 지나면 재식이는 당연히 촌장으로 승진할 것이다.촌장이면 이 마을을 쥐락펴락할 수 있다.제 아무리 한다하는 만수라 해도 촌장앞에서는 어쩔 수 없다.이게 바로 "관"과 "민"의 차이점이였다.그렇지만 만수를 옆에 두고 싶은게 재식이의 솔직한 심정이었다.만수도 입은 거칠었지만 그런 눈치를 나타내고 있었다.그리고 재식이가 영화에서 나오는 호한들처럼 술을 연거퍼 들이키자 저으기 감복하는 눈치도 보여주었다.어쨌던 그것은 좋은 징조였다.   마을은 쥐죽은듯 조용했다.겨울의 농촌은 할 일이 없어진다.닭장을 더듬어 술추렴을 하던 일도 왕창 옛날로 되어버렸고 그대신 매캐한 연기속에서 마작쪽을 다듬는 일에 빠져있었다.그런대로 무료함이 달래지고 있었지만 아침은 언제나 동면상태였다.   문고리를 거머쥐었을 때에야 재식이는 그때까지도 배설을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기랄..."   중얼거리며 돌아선 재식이는 스적스적 바자쪽으로 다가섰다.막혔던 골물이 터지듯 쏴아 줄기차게 쏟아져나왔다.방광에 무겁게 가해졌던 압력이 서서히 물러감과 더불어 난생 처음 배설도 하나의 향수였구나 하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갈마들었다.   이때 어디선가 문 열리는 소리가 조용히 들려왔다.동쪽 최과부네 집이였다.조그마한 체구의 최과부가 나타나더니 사방을 두리번 살폈다.사람이 없음을 확신했던지 둬걸음 이쪽으로 걸어오더니 대범하게 허리를 풀고 주저앉는 것이었다.궁둥이를 재식이쪽으로 돌린채 급한 문제를 해결하고 있었다.희미한 윤곽이었지만 최과부의 궁둥이는 묘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재식이는 소리가 날세라 숨을 죽인채 최과부의 궁둥이를 흔상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것두 자원 낭비야,조물주에게 미안한 노릇이고...)   최과부가 집으로 들어간 후 재식이는 멍청하게 선채 이런 생각을 굴리고 있었다.   외국에 돈벌러 갔던 남편이 시고로 죽은쥐 2년나마 최과부는 철부지 딸애를 데리고 홀로 지내고 있었다.남 같으면 열두번도 넘게 재가하여 복을 누릴터이지만 새파랗게 젊은 여자가 왜서인지 독신을 고집하고 있었다.대개 최씨집 여자는 퍼그나 드세다고 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과부는 어딘가 모르게 아련한 모습을 꾸미고 있었다.드센 성격과는 사돈에 팔촌도 걸리지 않는다는듯 언제 어디서나 해면처럼 부드러운 표정이었고 말소리는 무척 잔잔하면서도 애교적이었다.눈웃음을 살살 흘릴 때면 당장 그속에 빨려들것만 같았다.특히 걸음을 걸을 때 별로 꾸미는 흔적 없이 살랑살랑 흔들어대는 예쁜 궁둥이가 남달리 인상적이어서 한번쯤 만져보고싶다는 욕망과 충동을 동네남정들은 누구나 체험해온 터였다.   재식이도 예외는 아니었다.농촌에서 떠도는 말대로 하면 그런 도적마음은 있었어도 그런 도적 담량은 없었다고나 할가.여하튼 어슴푸레하게나마 최과부의 벗은 궁둥이를 볼 수 있었던 것만 해도 하느님의 덕분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몇시쯤이나 되었을가? 10분전 다섯시였지.)   밖으로 나오면서 시계를 보았던 기억이 났다.아마 지금쯤은 다섯시가 되었겠지.그렇게 어림짐작하고 집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 짐작이 문제거리로 되고 말았다.그것이 기억의 창고에 숨어있다가 정각 다섯시가 되면 꼭 재식이를 깨우는 것이었다.재식이는 귀신에게라도 홀린듯 막무가내로 긴 하품을 연발하면서 끌신을 찾아신고 부시시 밖으로 나선다.매일매일 반복하는 일이었지만 별로 싫증이 나지 않았고 오히려 일종 스릴을 느끼고 있는터였다.웬일인지 궁궁이가 저도 모르게 율동적으로 움직여졌다.습관이 자연으로 된다는 동방철학이 참으로 신통한 것이었다.처음에는 틀림없이 최과부의 동작을 모방했던 것이었으나 어느새 저절로 몸에 익혀진 것이다.이제는 신경을 도사리지 않고도 궁둥이를 멋지게 흔들어댈 수 있었다.연후에는 역시 자연히 되어버린 습관적인 동작으로 바자곁에 붙어서서 배설하는 동시에 바자너머에 도사리고 있는 최과부네 초가집을 흘끔 거너다본다.   그렇게 한달나마 흘러갔다.구정이 아득바득 가까와오고 있는 대목이었지만 아직까지도 봄이 끙끙 앓는 소리를 저 멀리에 둔 추운 겨울이어서 날은 여전히 그대로 어두웠다.그러나 최과부는 아쉽게도 다시 나타날념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하느님은 공정한 편이었다.어느날 끝내 다른 방식으로 재식이의 호기심을 만족시켜 주었던 것이다.     그날도 재식이의 생물시계에 맞춰 바자너머 초가집에서 나온 사람은 최과부가 아니라 어떤 남자였다.퍼그나 낯익은 모습이었지만 구경 누구인지는 딱히 알 수 없었다.   그 남자가 세번째로 최과부네 집에서 나올 때 운동화를 바꾸어 신은 재식이는 멀찌감치에서 어슬렁 뒤따랐다.이 골목 저 골목을 에돌던 그 사람이 오차없이 만수네 집으로 쑥 들어갔다.   (자식이 힘을 뺄 여자를 찾긴 찾았구나.어디 두고보자.)   한밑천 단단히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만수도 이젠 코 꿴 송아지었다.네댓살 연상인 과부와 가정은 뭇지 않을 것이다.동네에 소문나는 것을 두려워할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집으로 돌아오던 재식이는 생각을 고쳐 최과부네 집으로 들어갔다.만수에게 자기가 어떤 비밀을 알고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였다.그런데 문을 떼고 들어서기 무섭게 가마목에 웅크리고 누웠던 최과부가 벌떡 몸을 일으키며 날카롭게 쏘아붙이는 것이었다.   "왜 또 왔소? 남들이 알면 어쩌자구 그러오?"   재식이를 만수로 오인한 것이었다.최과부가 앙칼지게 소리치는 것을 처음 듣는 재식이었다.그렇다면 최과부의 유연함도 결국은 조합해낸 것이 분명했다.여인은 분명 여인이라는 편견을 세우며 재식이는 고집스레 어두운 봉당에 꼼짝 않고 서있었다.그제야 이상한 생각이 들었던지 최과부는 몸을 일으키며 전등을 켰다.   "게 누구요? 아..."   "왜 난 오면 안되우?"   "이렇게 남의 집에 막 뛰어드는 법이 어디 있소? 과부라고 업신여긴거요?"   "능청떨지 마오.내 다 알고 있소."   재식이는 괘씸한 생각이 들어 무작정 방에 걸터앉았다.간단했던 최초의 동기는 최과부가 괜스레 역정을 부리는 바람에 복잡하게 번져갔다.최소한 골려라도 주어야겠다는 오기가 머리를 쳐들었던 것이다.   "나도 한번 재미보면 안되우?"   "..."   최과부는 낯색이 새까맣게 질린채 그대로 무너졌다.솟옷차림인 몸매가 유난히 눈부셨다.궁둥이도 맨살로 보았을 때보다 퍽 유혹적이었다.사람은 그래도 적으나마 옷은 입어야 한다고 느끼면서 재식이는 본능적으로 손을 내밀어 푸더분한 여인의 궁둥이를 어루쓸었다.감각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보드랍고도 탄력이 강했다.남성이 서서히 살아나는 순간이었다.아내가 해산한 후 잠시나마 여체를 멀리했던 재식이었다.최과부는 나를 잡아잡수 하는듯 두 눈을 꼭 감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젠 돌아가오.집에서 각시가 기다리겠소."   이윽고 최과부가 들뜬 소리로 말했다.   "내가 싫소?"   "애가 깰 때가 되었소."   1학년에 다니는 최과부의 딸애가 이불을 걷어차던진채로 한쪽 구석에 쪼크리고 자고있었다.   "괜찮소.날이 밝자면 아직 멀었소.이리 오우."   재식이는 최과부를 끌어당겨 품에 안으며 전등불을 꺼버렸다.   최과부는 반항하지 않았다.아무래도 피하기는 어렵다고 자각했던지 오리려 적극적으로 몸을 움직여주었다.남자의 손이 젖무덤에 대이기 바쁘게 "흐흑-" 하고 신음을 토해내기도 했다 벌써 몸이 달아있었다.재식이는 입가에 느슨한 미소를 떠올리며 애가 깨어날가봐 조심스레 최과부를 안아서 돌려세웠다.그리고 애무와 더불어 뒤로 밀고 들어갔을 때 최과부는 난생 처음 그렇게 당해본듯 흐느낌에 가까운 신음을 톺아냈다.   "그 사람은 일요일에만 오기로 되어있소.그날외에는 아무때 와도 되오."   재식이가 자리를 뜰 임박에 최과부는 그의 이마에 조용히 키스를 해주며 흥분된 목소리로 알려주었다.   (알고보니 효과적으로 쓰고 있는걸.괜히 낭비라고 아쉬워했군.)      그날 아침은 아버지 집에서 먹었다.아버지한테서 자기가 이미 유일한 촌장후선인으로 최종확정되었으며 향의 비준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이젠 형식에 불과한 선거만 남았을 뿐이었다.그리고 당지부서기가 1년후에엔 지서책임마저 떠맡길 의향을 밝혀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아무튼 복이 쌍으로 굴러들어온 셈이었다.아버지도 매우 흡족한듯 벽에 등을 기대며 위엄기있게 분부했다.   "애에미에게도 알려라."   마침 재식이의 심중에 들어맞았다.공백이 펑 뚫린 아침 시간의 내막을 이리같은 해순이가 아는 날에는 끝장이 날 것은 불보듯 뻔했다.   재식이는 느긋한 어조로 집에 전화를 걸었다.기다렸다는듯 아내의 앙칼진 목소리가 튕겨나왔다.   "식전 아침부터 어디에 가서 뒈졌소?"   "아버지네 집이오."   "거긴 뭘하러 갔소?"   재식이는 한줄에 이어대기 어렵다는듯 상황설명을 구구히 전달했다.그 긴 소식을 듣느라고 여직껏 눌러있었다는 깜찍한 발뺌이었다.머리가 길어도 소갈머리는 앝았던지 해순이는 금시 해시시해졌다.   "나도 지금 거기에 가겠소."   "정신 나갔구만.그 몸으로 바람 맞으면 큰 일 나오."   해순이를 눌러놓은 후 재식이는 그길로 만수를 찾아갔다.아무래도 궁둥이에 좀이 쑤셔 그대로 앉아있을 수 없었다.만수와는 의사소통이 있어야 할것만 같았다.걸림돌이자 골치거리인 만수의 마음을 틀어잡으려면 얼마쯤 양보해야 한다는 각오는 있었다.물론 그의 양기를 한껏 키워주어도 안되었다.만수는 작은 언덕만 있어도 충분히 갈비대를 들이밀 위인이다.그러나 일단 덜미만 잡아놓으면 훌륭한 조수가 될 사람이기도 했다.      남수는 홀로 구들에 대자로 누워 애궂은 담배를 태우며 마작군들을 기다리고 있었다.언제부터인지 만수네집은 마작굴이 되어있었다 재식이도 가끔 마작군들과 어울렸기에 마작이 시작되는 시간을 대충 알고 있었다.아직 한시간 푼히 남아 있었다.   "간밤에 기운을 크게 뺐군.축 처진걸 보니..."   어떻게 이런 말들이 의식의 지배를 물리치고 터져나갔는지 재식으로서도 알 수 없었다.가슴 한구석에서 널장같은 것이 쿵 하고 떨어지면서 저으기 당황했으나 적재적소의 진격이라는 생각이 잇따라 들어 인츰 마음을 눅잦힐 수 있었다.반면에 만수는 화들짝 놀라는 표정이 되어있었다.   "게 무슨 소리야?"   도적이 발 저린 격으로 왕 소리를 질렀다.내친김에 재식이는 한마디 더 시까슬렀다.   "놀라긴...일이 있긴 있었구나."   "허튼소리 마.주둥이 성하려면 가만 있는게 좋아."   "좀 작작 으시대.나한테 걸려든 사람은 온전하지 못할걸."   "도대체 무슨 감투끈이야?"   만수의 곤두섰던 표정이 누그러드는 것을 보며 재식이는 천천히 신을 벗고 구들에 올라갔다.만수의 옆에 풍덩 주저앉으며 말을 이었다.   "난 종래로 근거없는 말은 하지 않아."   "..."   만수는 씩씩거릴뿐 어쩌지 못하고 있었다.무언의 투항이라는 것을 해쓱한 얼굴이 증명하고 있었다.   "내가 촌장이 되는건 이미 결정났어.앞으로는 지부서기도 겸할거구,그러니 너도 무슨 일인가 할 준비를 해."   "상세하게 말해봐."   만수의 눈동자가 급작스레 확대되며 재식이를 교활하게 직시하고 있었다.   "그때면 너를 지금의 내 자리에 앉힐테다."   "난 단원도 아니잖아."   "그건 간단해.하루 이틀품이야."   "왜 나를 찾는거야?"   "마을에 완력을 쓰는 사람은 너밖에 없잖아.마을을 다스리자면 지도부가 강해야 한단 말이야."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다.약속하자."   "깍지!"   둘은 아주 경건하게 깍지를 걸었다.무슨 성스러운 의식을 거행하듯 말없이 서로 응시하며 오래도록 걸고 있었다.한 아득한 소년시절이 머리속에 우럿이 떠올랐다.신의와 믿음을 기초로 한 깍지걸이는 그때의 전매특허였다.그것은 신성불가침한 것으로써 동시에 의무가 부여되어있고 희생이 요구되어있었다.또한 약속력이 강했고 혹독한 배타성이 안받침되어 있었다.두사람만의 목적이나 이익을 대변한다는데서 깍지걸이는 사실상 보편성을 띠기 어려웠다.불가피면적이 아니고서는 도무지 할 수 없고 또 해서도 안되는 깍지걸이었다.때문에 시골애들은 깍지걸이를 아주 정중한 행사로 대해왔었다.   성인이 된후 재식이는 단 두번 깍지를 걸었을뿐이었다.한번은 강변의 버드나무숲에다 해순이를 깔아눕혔을 때였다.결혼을 선결조건으로 내세우고 해순이가 손가락을 내밀 때 재식이는 추호의 주저도 없이 맞걸었었다.그리고 이번이 두번째 였다.   마작군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둘은 아무 일도 없었던듯 그들과 어울려 마작을 번지기 시작했다.마작을 놀면서 일면 엊저녁 아무개네 집이 털렸다느니 설대목이어서 경찰들이 소비돈을 마련하느라고 눈알이 빨개서 도박판을 찾아다닌다느니 만만한 이 동네가 여러가지로 당하고 있다느니 하며 입방아들을 찧는중에 토끼꼬리만한 겨울해는 어느덧 중천에 걸렸다.재식이는 더 놀 흥심이 없어져서 다른 사람을 대신 앉히고 그만 물러났다.워낙 돈을 적잖게 잃은 까닭에 별로 고까와하는 사람도 없었다.새 사람이 들어앉아 자리를 정돈하는데 불현듯 문이 벌컥 열리며 최과부가 헐레벌떡 뛰어들었다.   "아이구,모두들 여기 있구만.어쩌겠소.우리 애가 맞아서 피투성이가 되었소."   누구라 없이 후다닥 일어섰고 여기저기서 "왜?","누가 때렸소?" 하고 중구난방으로 물어댔다.   "아.글쎄 그 '미친개'가 길 가는 우리 미연이를 불러세워 따귀를 치고 발로 짓밟았다오."   "미친개"라면 이웃 마을의 한족인 풍삼이를 가리킨다.동네방네에 쏘다니며 행패를 일삼는 악당이었다.마을 청년들은 물론 늙은이들도 심심찮게 그의 매를 맞아오는터였다.   최과부의 눈길은 꼿꼿이 만수의 몸에 꽂혀졌다.애원에 가까와보이는 그 눈길은 아무래도 너밖에 믿을 데가 없다는 호소가 틀림없었다.그런데 지목된 당사자는 오히려 기세등등하게 일어설 때와는 달리 구들에 물앉고 있었다.   "풍삼이가...왜 그런다오?"   "내가 알턱이 뭐요."   최과부는 금시 얼굴이 빨개났으나 어조는 무척 거세고 텁텁했다.인간의 본성은 관건적인 시각에 나타난다는 말이 그른데 없었다.   "그 새끼 심심하면 우리 동네에 와서 행패 부리지 않구 뭐요."   ""하긴 그렇소.그 닥달에 사람이 어디 살겠소.이사가든지 어쩌든지 해야지."   "모두 우리가 업시보여서 그렇지."   "무슨 방법을 대야지 안되겠소."   나도나도 지껄이다가 금시 재식이쪽으로 눈길을 돌렸다.그 무엇인가를 기대한다기보다는 조소의 성분을 다분히 담은 눈길이었다.앞날의 부모관이 한번 태도표시를 하라는 무언의 촉구였다.그중에서도 만수의 눈길이 가장 선명하고 질리였다.재식이는 더 이상 물러설 자리가 없었다.어찌보면 이번이 마을에서 자신의 형상과 위신을 춰세우는 절호의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재식이는 작감으로 느꼈다.   "풍삼이 지금 어디 있소?"   "지금도 저 앞에서 으르렁거리고 있소."   "좋소."   재식이는 한걸음 썩 나섰다.마치도 전쟁마당에 나선 지휘관마냥 팔을 휘두르며 열변을 토했다.   "언제부터 외지건달들에게 본때를 보여주려고 마음 먹었소.한두놈 되게 두들겨 버릇을 고쳐줄 필요가 있소.닭잡아 여우 혼내운다고 먼저 풍삼이부터 잡치기오.후과는 내가 책임질테니 그저 죽이지만 말고 족치오."   "와-"   그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만수가 먼저 고함을 지르며 밖으로 뛰쳐나갔고 그뒤로 모두 우르르 따라나섰다...     그날 저녁 재식이와 만수는 최과부네 집에서 조용히 만났다.최과부가 정성들여 만든 음식상을 마주하고 말없이 술잔만 비우기에 여념 없었다.   들려오는 소식은 한결같이 불길했다.먼저는 뭇매를 맞은 풍삼이가 지금까지 인사불성으로 심한 뇌진탕일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었다.잇따라 향파출소에서 이미 입안했는데 주모자를 엄하게 징벌할 것이라는 소식을 재식이 아버지가 전해주었다.그리고 촌사무실에 동정을 살피러 갔던 최과부가 경찰들이 금방 마을에 들어섰음을 알렸다.일은 예상밖으로 많이 빗나가고 있었다.이무튼 술상은 끝나가고 있었고 둘은 체념하듯 묵묵히 앉아만 있었다.오히려 최과부가 더 안절부절 못했다.   "도대체 어쩔 셈들이유?"   허공에 던지는 질문이었다.이 시각 딱히 누구에게도 관심의 분동을 높여줄 수 없는 그녀의 입장이었다.둘 다 그녀에겐 은인인 셈이었고 또 두사람에게 모두 속살을 내주었던 사정이었다.최과부는 또다시 이전의 유연함으로 되돌아가 있었다.아련한 자태로 회복되었고 그늘진 얼굴에는 선량한 여인만이 소유할 수 있는 근심을 싣고 있었다.   "내가 책임진댔잖소.그 미친개도 나쁜짓은 너무 많이 했으니 큰 문제는 없을게요."   아버지한테서 즉살나게 욕을 먹고 온데다가 술까지 많이 들이켜서 재식이는 머리가 무척 혼잡해왔다.   "그래서 되겠소.그러면 촌장노릇은 다 해먹었잖소."   "그잘난거 안해먹어도 괜찮소.그게 뭐 큰 벼슬이라구."   "아직도 젊었는데 무슨 말이오.내 공안대를 찾아가서리 어떻게 벌어진 일인가를 다 말 하겠소."   최과부는 다시 얼굴을 붉혔으나 목소리는 아주 단호했다.그녀와 풍삼이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을 재식이는 인츰 의식할 수 있었다.   여직껏 애궂은 담배만 태우면서 덤덤히 앉아있던 만수가 자리를 차고 있어서는 최과부의 손목을 냉큼 거머쥐어 주저앉혔다.   "너 오늘 아침 한 약속이 진짜지?"   재식이는 대답 대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최과부가 앉아있는 마당이라서인지 만수의 검붉은 얼굴은 더 진하게  붉어지고 있었다.   "넌 패해,내가 책임질테니.누구말마따나 미친개가 먼저 단 불이니 크게 어쩌지 못할거다."   "우리 아버지도 그건 따지겠다고 했어.촌에서 나서면 쉽게 해결되겠지."   "그럼 됐어.네가 끌어안으면 우린 둘다 볼장이 없어진다.내 말 알아들었지?"   "음-"   "그럼 약속하자."   만수는 비장한 결심을 내린듯 손가락을 내밀었다. 그 저의를 재식이는 얼마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아니,약속력을 재한층 검증하는 순간이었다.   "걱정마.촌의 입장으로 파출소에 강하게 나설거야!"   재식이는 아무런 주저도 없이 만수의 손가락에 깍지를 걸었다.이날 두번째로 거는 깍지걸이였다.   최과부는 울상이 되어 중얼거리고 있었다.   "내가 이제 뭐 볼게 있소.오기만 하면 다 말할테요."   어딘가 모르게 애수가 묻어있는 절절한 그 호소에 재식이는 코마루가 찡해났다.그녀에게 미안하기도 했다.동시에 질투심 비슷한 감정도 가슴속에서 까닭없이 용을 쓰고 있었다.   만수의 재촉에 못이겨 재식이는 최과부네 집을 나섰다.만수와 최과부에게 조금이라도 시간을 더 주기 위해 재식이는 총총히 촌사무실로 발걸음을 재우쳤다.얼굴을 스치는 겨울바람은 여전히 차가운 그대로였다.                                                                                            -끝    
7    사거리 댓글:  조회:1073  추천:0  2014-08-31
  단편소설 사거리 장학규   A1 아파트단지를 어슬렁 나서며  천이는 두손으로 아래우 주머니를 더듬었다. 손에 잡혀나온것은10여 년간 꾸준히 피워온 쌍희표 담배이다. 입에 담배를 붙여물고 두손을 바지 주머니에 깊숙히 질러넣고 어깨를 옹송그리며 헐떡헐떡 반달음치는게 천이만의 브랜드 이미지이다. 4월의 청도 아침날씨는 유달리 변덕이 많다. 어제까지도 찬 바다바람이 몰아치던것이 오늘은 금세 얼굴을 바꾸고 사람을 지글지글 볶기 시작했다. 천이는 영문 모를 사람들의 영문 모를 바쁜 행보속에 무작정 합류하면서 일단 오늘은 걸어서 출근하기로 작심한다. 회사까지는 도보로 20분 거리이다. 대체로 비슷한 사이즈의 두갈래 코스가 있었는데 그것도 묘하게 두갈래 모두 사거리 두개씩 지나야 했다. 버스 선로도 여러개 있었으나 전에는 괜히 폼을 잡느라고 매일이다싶이 택시를 잡아타고 출퇴근했었다. 주머니친구가 매일 적자투성이라고 아우성이였지만 회사동료들이 부러운 시선을 보내오는게 그대로 풍선이 되어 둥둥 뜬 기분이였다. 에라이, 인생이 얼마나 길다고? 사람은 좋은 기억을 만들기 위해 산다고 생각하니 날마다 무덤으로 향하는 노정도 즐겁고 대견했었다. 누구처럼 미쳐서 살다가 정신 들어 죽는게다. 그렇게 나사 하나 풀린것처럼 쭉 지내오다가 문뜩 자기가 안방 호랑이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뭐야? 가까운 친구들이 차례차례 집 사고 자가용 갖추고 또 어떤 넘은 느닷없이 사변을 당해 병신이 되기도 하고 아예 꼴기 없이 죽어나가기도 한다. 어제도 숱한 돈을 팔고 아가씨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하고 곤드레만드레 취해서 집에 돌아왔다가 먼 고향에 있는 친구의 비보를 들었다. 술자리에서 그대로 엎어져 죽어버렸단다. 남자 인생 황금기라는 마흔 고개가 어쩌면 시련의 고개인지도 모른다. 망할 넘의 언덕이 어디 정해져서 따로 있나? 그러면서도 속은 텅 비여버린다. 느닷없이 죽음이라는 추상적인 관념이 세부적인 형상이 되여 우렷이 나타난다. 저 앞 태양성이 바라보이는 첫 사거리에 행인과 차량들이 막 범벅이 되여서 멈춰져 있었다. 교통사고가 난게 분명했다. 소리는 복잡하고 몸놀림들도 두루 있는 거 같은데도 장면은 여전히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도 영화의 어느 한장면이 갑자기 스톱되여 있는 현상과 흡사했다.  천이는 그대로 지나치려다가 거리에서 맞닥뜨린 사고현장을 확인하지 않으면 방정 맞는다던 어느 친구의 부적같은 말이 갑자기 떠올라 둘러선 사람들 틈을 허우허우 비집고 들여다보았다. 화물차와 택시의 추돌사고였는데 택시 앞부분이 거의 콩가루가 되여진 상태였다. 택시기사는 병원으로 들려갔는지 차안에 없었고 이상하게도 피흔적 역시 보이지 않았다. 죽고싶어 환장을 한거지. 뒤꽁무니를 들이박았잖아. 중국사람들은 1초를 양보하는 정신이 결핍하단 말이야! 돼지처럼 피둥피둥 살이 찐 장년 사나이가 팔소매를 걷어올린채 때를 만났다는듯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저기 미국이랑 보라구요. 얼마나 신사적인 사람들입니까? 길 뺏기 하는게 아니라 서로 먼저 가시오 하고 양보하면서 산단 말입니다. 그들의 시민 정신을 따라배워야 합니다. 시벌넘아, 주제 꼴갑 그만 떨어. 미국 시민이 언제 너처럼 사거리에서 사람들 모아놓고 침방울 튕기더니? 그리고 남 불행에 웬 쾌재야. 인간성 상실이야 당신은…뭐 묻은 무스게가 무어 붙은 무엇을 나무란다더니 세상 부끄러운줄이나 알아라. 천이는 욕설이 나가는 걸 겨우 참고 돌아섰다. 웬일인지 피자국을 보지 못한것이 석연치 못했다. 들으면 병이라고 사고란건 피와 함께 보는게 액운을 털어내는거라고 어디서 귀동냥한거 같았다. 당사자한테는 억수로 미안한 일이지만 천이도 많이 숙명론적으로 변해진 자신이 놀랍고 미워졌다. 오늘 택시 타지 않은게 다행이었구나. 어쩜 하늘이 자기를 도와준거 같아 순간 자기도 모르게 안도의 숨이 나갔다. 그때 누군가 천이의 팔소매를 툭 잡아당겼다. 천이는 괜히 후다닥 놀라며 돌아보았다. 늙은 남자 하나가 시꺼먼 사발을 내밀고 있었다. 나무이미타불, 이 난시판에도 동냥군이 끼여들다니? 하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인간이 개미처럼 모여든 이런 자리가 구걸에 더 리롭겠지 싶어 부시럭 호주머니를 들추어 10전짜리 동전을 찾아내 던져주었다.  늙은 남자는 고맙다는 인사대신 킁킁 코푸는듯한 소리를 냈다. 천이는 개의치 않고 어느 길로 회사로 갈까를 잠간 고민했다. 정양로를 따라 직진했다가 왼쪽으로 꺾어든후 다음 사거리에서 다시 왼쪽으로 꺾어들면 바로 회사이다. 그리고 지금 바로 태양성을 껴안고 왼쪽으로 중성로에 들어선다음 풍모꼬치집에서 다시 오른쪽으로 돌아 한참 나가면 역시 회사가 위치한 자리다. 정양로는 청양의 중심거리라 많이 붐비는 편이였다. 복잡한걸 싫어하는 천이는 겹겹히 둘러친 사람벽을 에돌아 왼쪽으로 중성로에 들어섰다. 걸으면서 보니 중성로 절반 넘어 구경군들이 차지하고 있었고 나머지 좁아터진 길에서 왕래 차량과 행인들로 혼전을 치르고 있었다. 그런데 기사는 어떻게 되였어요? 그때 어떤 녀인이 누군가에게 묻는 목소리가 가늘게 들려왔다. 단 1초이긴 했지만 천이도 그게 궁금하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동시에 목소리가 참 감미롭다는 생각에 걸으면서 뒤로 돌아보았다. 그러나 그건 단 1초에 불과했다. 천이가 소리나는 곳으로 머리를 돌리는 순간 펑 하는 소리와 더불어 자기 몸이 강한 충격에 하늘로 씽 날아오르는 장면을 스스로 볼수 있었다. 무엇에 치였는지 그 자신도 알수 없었다. 아무튼 의식이 희미해져왔다. 아, 난 죽으면 안돼. 죽어도 죽을수 없어! 죽어도 죽지 말아야해!! 죽어도 살아나야 해!!! 1초라는 시간에 정말 많은걸 생각할수 있는게 사람이였다. A2 아파트단지를 어슬렁 나서며  천이는 두손으로 아래우 주머니를 더듬었다. 손에 잡혀나온것은10여 년간 꾸준히 피워온 쌍희표 담배이다. 입에 담배를 붙여물고 두손을 바지 주머니에 깊숙히 질러넣고 어깨를 옹송그리며 헐떡헐떡 반달음치는게 천이만의 브랜드 이미지이다. 4월의 청도 아침날씨는 유달리 변덕이 많다. 어제까지도 찬 바다바람이 몰아치던것이 오늘은 금세 얼굴을 바꾸고 사람을 지글지글 볶기 시작했다. 천이는 영문 모를 사람들의 영문 모를 바쁜 행보속에 무작정 합류하면서 일단 오늘은 걸어서 출근하기로 작심한다. 회사까지는 도보로 20분 거리이다. 대체로 비슷한 사이즈의 두갈래 코스가 있었는데 그것도 묘하게 두갈래 모두 사거리 두개씩 지나야 했다. 버스 선로도 여러개 있었으나 전에는 괜히 폼을 잡느라고 매일이다싶이 택시를 잡아타고 출퇴근했었다. 주머니친구가 매일 적자투성이라고 아우성이였지만 회사동료들이 부러운 시선을 보내오는게 그대로 풍선이 되어 둥둥 뜬 기분이였다. 에라이, 인생이 얼마나 길다고? 사람은 좋은 기억을 만들기 위해 산다고 생각하니 날마다 무덤으로 향하는 노정도 즐겁고 대견했었다. 누구처럼 미쳐서 살다가 정신 들어 죽는게다. 그렇게 나사 하나 풀린것처럼 쭉 지내오다가 문뜩 자기가 안방 호랑이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뭐야? 가까운 친구들이 차례차례 집 사고 자가용 갖추고 또 어떤 넘은 느닷없이 사변을 당해 병신이 되기도 하고 아예 꼴기 없이 죽어나가기도 한다. 어제도 숱한 돈을 팔고 아가씨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하고 곤드레만드레 취해서 집에 돌아왔다가 먼 고향에 있는 친구의 비보를 들었다. 술자리에서 그대로 엎어져 죽어버렸단다. 남자 인생 황금기라는 마흔 고개가 어쩌면 시련의 고개인지도 모른다. 망할 넘의 언덕이 어디 정해져서 따로 있나? 그러면서도 속은 텅 비여버린다. 느닷없이 죽음이라는 추상적인 관념이 세부적인 형상이 되여 우렷이 나타난다. 저 앞 태양성이 바라보이는 첫 사거리에 행인과 차량들이 막 범벅이 되여서 멈춰져 있었다. 교통사고가 난게 분명했다. 천이는 잠간 망설였다. 재수에 옴이 붙었나보다. 아침부터 피를 본다는 불길한 예감에 천이는 무작정 겹겹히 둘러친 사람벽을 에돌아 왼쪽으로 중성로에 들어섰다. 이대로 쭉 정양로를 따라가다간 또 무슨 날벼락치는 일을 만날지 알수 없어서였다. 걸으면서 보니 중성로 절반 넘어 구경군들이 차지하고 있었고 나머지 좁아터진 길에서 왕래 차량과 행인들로 혼전을 치르고 있었다. 실랑이 반 신경질 반 해가면서 간신히 헤쳐나가는데 느닷없이 디리링 핸드폰이 울렸다. 액면에 “왕벌”이라고 뜬다. 자그마한 악세사리 공장을 차리고있는 친구의 대명사다. 전화 한번 받아주면 왕왕왕 반시간은 고아대는 친구이다. 그만큼 뜨거운 친구이기도 하다. 여보세요. 여보라면 여보지므. 언제나 그 식이 장식이다. 이 자식한테는 영원히 기분 나쁜 날이 없는가 본다. 천이는 응응 건성으로 대답하며 걷다가 회사까지 통화하면서 들어갈거 같아 아예 길옆 골든벨노래방 대문에 등을 기대고 경청하기 시작했다. 저 주둥이를 그저 공업용 미싱으로 드르륵 박아버리고말가부다. 도적넘 개 꾸짖듯 속으로 투덜대다가 천이는 갑자기 심각한 표정이 되였다. 왕벌한테서 가끔 사람같은 소리가 나올 때 있었는데 지금이 그 시각이였던것이다. 어제 표사장이랑 새벽까지 먹었다. 왜 니두 알잖아. 거 눈깔 하나 빼대대한 넘 있잖아. 천이도 물론 아는 한국인이였다. 왕벌이한테 끌려서 둬번 같이 술을 마신적이 있었다. 외모는 별로 볼게 없어도 점잖고 아는것도 많은 인상을 주었다. 한국인 많이는 그런 타입이지만도. 어제 너를 자꾸 외우더라. 한번 손잡고 일해보고 싶다구. 오늘 시간 괜찮겠니? 전번에 말했던가? 거 무시게야. 신발냄새랑 제거하고 곰팽이 방지하고 또 세균을 없애는 향기발랄인가 하는 특허제품있잖아. 중국 총판을 땄다고 하더라. 한번 해보자던데 내사 내일만 해도 정신 없으니까 니 한번 안해볼래? 오늘은 회사 꼭 나가야 해. 씨발 출근해봤자 굶어죽어도 굶어죽지 않을만큼이잖아. 그래도 자기업을 가져야 해. 천이는 대답없이 멍하니 허공만 쳐다보았다. 초첨 잃은 하늘은 뿌옇기만 했다. 하긴 인생은 신발 벗어봐야 알고 고스톱 담요 덮어봐야 안다고 했다. 뜬구름 잡기 좋아하는 왕벌이가 하는 생각이 거의 무협지수준이긴 하지만 괴짜는 괴짜가 틀림 없었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끝없이 나오고 비지니스건도 끝없이 생긴다. 타입이 완전히 다른 표사장이랑 어떻게 어울리는지 생각만 해도 해괴하다. 이넘아, 힘써서 바람새는 소리라도 내야 하잖아. 씨, 방귀라도 질러라. 어차피 인생은 도박이고 로비다. 한국 김영삼동지가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마침내 온다고 그랬던가. 무조건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접어들면 안될 일이 있을라구. 몇시? 어디서? 열한시에 홀리데이인 호텔에서 만나기로 했다. 저 세기공원옆에 있는 호텔 알지? 알았어. 천이는 일방적으로 통화를 끊고 손저어 택시를 불렀다. 도어를 잡는 순간 핸드폰이 또 디리링 울린다. 회사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어차피 김장철이 다가왔으니 좀 비싸게 놀아볼가! 깍두기가 때맞춰 너펄대는 형국일지도 모르지!!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A3 아파트단지를 어슬렁 나서며  천이는 두손으로 아래우 주머니를 더듬었다. 손에 잡혀나온것은10여 년간 꾸준히 피워온 쌍희표 담배이다. 입에 담배를 붙여물고 두손을 바지 주머니에 깊숙히 질러넣고 어깨를 옹송그리며 헐떡헐떡 반달음치는게 천이만의 브랜드 이미지이다. 4월의 청도 아침날씨는 유달리 변덕이 많다. 어제까지도 찬 바다바람이 몰아치던것이 오늘은 금세 얼굴을 바꾸고 사람을 지글지글 볶기 시작했다. 천이는 영문 모를 사람들의 영문 모를 바쁜 행보속에 무작정 합류하면서 일단 오늘은 걸어서 출근하기로 작심한다. 회사까지는 도보로 20분 거리이다. 대체로 비슷한 사이즈의 두갈래 코스가 있었는데 그것도 묘하게 두갈래 모두 사거리 두개씩 지나야 했다. 버스 선로도 여러개 있었으나 전에는 괜히 폼을 잡느라고 매일이다싶이 택시를 잡아타고 출퇴근했었다. 주머니친구가 매일 적자투성이라고 아우성이였지만 회사동료들이 부러운 시선을 보내오는게 그대로 풍선이 되어 둥둥 뜬 기분이였다. 에라이, 인생이 얼마나 길다고? 사람은 좋은 기억을 만들기 위해 산다고 생각하니 날마다 무덤으로 향하는 노정도 즐겁고 대견했었다. 누구처럼 미쳐서 살다가 정신 들어 죽는게다. 그렇게 나사 하나 풀린것처럼 쭉 지내오다가 문뜩 자기가 안방 호랑이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뭐야? 가까운 친구들이 차례차례 집 사고 자가용 갖추고 또 어떤 넘은 느닷없이 사변을 당해 병신이 되기도 하고 아예 꼴기 없이 죽어나가기도 한다. 어제도 숱한 돈을 팔고 아가씨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하고 곤드레만드레 취해서 집에 돌아왔다가 먼 고향에 있는 친구의 비보를 들었다. 술자리에서 그대로 엎어져 죽어버렸단다. 남자 인생 황금기라는 마흔 고개가 어쩌면 시련의 고개인지도 모른다. 망할 넘의 언덕이 어디 정해져서 따로 있나? 그러면서도 속은 텅 비여버린다. 느닷없이 죽음이라는 추상적인 관념이 세부적인 형상이 되여 우렷이 나타난다. 저 앞 태양성이 바라보이는 첫 사거리에 행인과 차량들이 막 범벅이 되여서 멈춰져 있었다. 교통사고가 난게 분명했다. 천이는 무감각하게 그대로 태양성을 에돌아 중성로에 들어섰다. 걸으면서 보니 중성로 절반 넘어 구경군들이 차지하고 있었고 나머지 좁아터진 길에서 왕래 차량과 행인들로 혼전을 치르고 있었다. 살얼음 걷듯 조심스레 좌우를 살펴보며 나가는데 불시에 등허리에 뭔가 들이박혔다. 아차, 그 경황에도 사고가 나는거냐는 아찔한 생각과 더불어 몸이 금방 오싹 얼어붙는 느낌이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 사고났으면 내가 이런 생각할 겨를이나 있을까 하는 자조가 몰려들어 저도모르게 허글픈 웃음이 나왔다. 돌아보니 멜대에 광주리따위를 걸친 늙수그레한 장사군이 오가는 사람들에 부대겨 팽이처럼 이리저리 돌아가고 있었다. 그 광주리 덩어리에 맞은것이다. 광주리가 상할가봐 시커먼 손으로 다잡으면서도 무엇이 그렇게 섭섭한지 가끔 목을 거위처럼 빼고 구경군들 틈새를 들여다보군 했다. 때자국이 질벅한 옷에서 역겨운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괜히 헤픈 인간들은 정말 말릴 방법이 없어. 천이가 왕창 욕설이 나오는것을 억지로 참고 돌아서는데 불현듯 저쪽에서 거쿨진 사나이가 달려들어 장사군 두상의 멱살을 거머쥐며 걸쭉한 욕을 해댔다. 초니마! 어쩐지 목소리가 익숙해 다시 돌아보던 천이는 면바로 그 사나이와 눈길을 맞추었다.  엉?! 두사람은 동시에 단창을 뽑았다. 고향친구 명이였다. 청도에서는 가끔 이런 장면이 연출되군 했다. 시도때도 없이 몇년 지어는 몇십년씩 종적 모르던 사람들이 만나게 되는 고장이 청도였다. 아무튼 별로 반가운 친구는 아니였다. 고향에 있을 때부터 시답지 않게 지내던 명이였다. 떡잎부터 알린다고 싹수가 노랗게 각인된 명이는 천이에게 며느리 미우면 문지방 넘어서는 발뒤축이 하얀색인것도 보기 싫은것과 같은 존재였었다. 이 난시판에 헤식게 바람잡는 꼬라지에서도 큰 개변은 없어보였다. 아무렴 청도에 온다고 뱁새가 황새가 될가 싶었다. 그래도 어차피 조우한 마당에서 난 모른다고 돌아설수도 없었다. 너 언제 청도 왔어? 눈인사를 하는 천이와 달리 명이는 꽤나 반가운 표정으로 장사군을 잡았던 손으로 천이의 어깨를 냉큼 거머잡았다. 자식이 심통 맞고 성질머리 더럽기는 매일반이야. 천이는 가벼운 통증때문에 입을 씰룩거렸다. 거의 10년이 돼와. 그랬어? 근데 왜 난 몰랐지? 글쎄… 암튼 어디 가서 한잔 하자. 아침에 어디 가서 술 해? 나 출근이야. 나중 련락하고 만나자. 임마, 넌 계속 그렇게 랭혈이구나. 고향 친구 어쩌다 만났는데 섭섭해서 쓰겠니. 가자. 저기 태양성 뒤에 금자식당이라고 초두부 잘하는 집이 새로 나졌더라. 명이는 중고품 뉴스를 빅뉴스인양 지껄이며 한시급히 이 자리를 모면하고 싶은 천이를 한사코 길옆으로 끌었다. 허무하게 질질 딸려가면서 천이는 자기가 참 개같다는 느낌이 저절로 들었다. 다음 사거리에서 왼쪽으로 막 도는데 뜻밖의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자기집 안마당인듯 허깨비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줴치며 큰 거리에 활개치며 내려서던 명이가 막 급정거하는 자가용에 치인것이다. 당장 땅에는 피가 흥건히 고였고 명이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천이는 소란스러운 명이나 입닥친 명이나 숨막히기는 마찬가지였다. 천이가 제정신이 들어 급히 차번호를 적는 사이에 사고를 저지른 자가용 주인 아가씨가 무슨 힘으로인지 어느새 집체같은 명이를 차에 싣고 있었다. 천이도 텅빈 머리로 올라탔고 자가용은 쏜쌀같이 청양인민병원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명이는 생명 위험은 없었다. 명이를 수술실에 처넣고 죄지어 풀이 죽은 낯선 자가용 아가씨와 어색하게 마주앉아 있는데 핸드폰이 디리링 울린다. 회사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병원을 오게 된 사연을 포토샵까지 해서 장황하게 설명하고 핸드폰을 닫으려다가 보니 부재중 전화가 한통 있었다. 왕벌이었다. 자그마한 악세사리 공장을 차리고있는 친구이다. 전화 한번 받아주면 왕왕왕 반시간은 고아대는 친구이다. 그만큼 뜨거운 친구이기도 하다. 체, 무슨 일이 있을라구. 또 술 처먹자는 소리겠지! 천이는 핸드폰을 닫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B1 아파트단지를 어슬렁 나서며  천이는 두손으로 아래우 주머니를 더듬었다. 손에 잡혀나온것은10여 년간 꾸준히 피워온 쌍희표 담배이다. 입에 담배를 붙여물고 두손을 바지 주머니에 깊숙히 질러넣고 어깨를 옹송그리며 헐떡헐떡 반달음치는게 천이만의 브랜드 이미지이다. 4월의 청도 아침날씨는 유달리 변덕이 많다. 어제까지도 찬 바다바람이 몰아치던것이 오늘은 금세 얼굴을 바꾸고 사람을 지글지글 볶기 시작했다. 천이는 영문 모를 사람들의 영문 모를 바쁜 행보속에 무작정 합류하면서 일단 오늘은 걸어서 출근하기로 작심한다. 회사까지는 도보로 20분 거리이다. 대체로 비슷한 사이즈의 두갈래 코스가 있었는데 그것도 묘하게 두갈래 모두 사거리 두개씩 지나야 했다. 버스 선로도 여러개 있었으나 전에는 괜히 폼을 잡느라고 매일이다싶이 택시를 잡아타고 출퇴근했었다. 주머니친구가 매일 적자투성이라고 아우성이였지만 회사동료들이 부러운 시선을 보내오는게 그대로 풍선이 되어 둥둥 뜬 기분이였다. 에라이, 인생이 얼마나 길다고? 사람은 좋은 기억을 만들기 위해 산다고 생각하니 날마다 무덤으로 향하는 노정도 즐겁고 대견했었다. 누구처럼 미쳐서 살다가 정신 들어 죽는게다. 그렇게 나사 하나 풀린것처럼 쭉 지내오다가 문뜩 자기가 안방 호랑이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뭐야? 가까운 친구들이 차례차례 집 사고 자가용 갖추고 또 어떤 넘은 느닷없이 사변을 당해 병신이 되기도 하고 아예 꼴기 없이 죽어나가기도 한다. 어제도 숱한 돈을 팔고 아가씨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하고 곤드레만드레 취해서 집에 돌아왔다가 먼 고향에 있는 친구의 비보를 들었다. 술자리에서 그대로 엎어져 죽어버렸단다. 남자 인생 황금기라는 마흔 고개가 어쩌면 시련의 고개인지도 모른다. 망할 넘의 언덕이 어디 정해져서 따로 있나? 그러면서도 속은 텅 비여버린다. 느닷없이 죽음이라는 추상적인 관념이 세부적인 형상이 되여 우렷이 나타난다. 저 앞 태양성이 바라보이는 첫 사거리에 행인과 차량들이 막 범벅이 되여서 멈춰져 있었다. 교통사고가 난게 분명했다. 천이는 교통사고따위엔 관심이 없이 거의 무의식적으로 사거리를 가로질러 직진했다. 택시를 타고 마냥 다니던 코스여서 몸에 익숙하고 굳어있었던 것이다. 천이는 또다른 코스가 있다는것을 거의 의식하지 못한채 발길이 가는대로 본능적으로 따라 걸었다.  천이는 정양로를 지나다니기를 특별히 즐긴다. 시원하고 넑직하게 쭉 뻗어나간 정양로는 청양의 중심거리이다. 청양구정부는 물론 유명업소 대부분 이 거리에 몰려있었다. 천이도 언젠가는 이 거리에 근사한 자기의 업소 하나를 오픈하는게 소원이였다. 사는건 머슴급인데 포부는 세종대왕급이라고나 할가. 청양의 변화는 피부로 느낄수가 있었다. 어쩌면 천이는 청양변화의 산증인이라고 할수 있다. 17년전 청양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때 소위 현성이란 곳에 제일 높은 건물이 3층짜리 백화상점이였다. 현재는 태양성이라는 명물로  자리매김하고 있지만 지표적인 함의 이상으로 매력적인것은 아니다. 지금은 몇십층짜리 건물들이 여기저기 들어섰고 아파트 가격도 콩나물처럼 올리솟아 완커 매물은 평당 만원을 돌파하고 있었다. 기적이야. 암, 그렇구 말구. 조선족과 한국인들이 만들어낸 세상에 둘도 없는 인간기적이야. 바람 한점 없는 포근하고 화창한 봄날씨여서 한결 거뿐하고 둥둥 뜬 기분이였다. 길옆의 복숭아나무도 요염하게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이럴때면 담배 한대 거뜬하게 태우고싶어진다. 천이는 부시럭부시럭 호주머니를 뒤적거렸지만 마땅히 있어야 할 쌍희담배는 없었다. 어허, 아침에 피웠었는데 어디 갔지? 천이는 부지런히 손을 놀리면서도 두리번두리번 가게들을 살폈다. 저 앞에 자그마한 슈퍼 하나가 보였다. 리췬인지 리커라이인지 브랜드를 살펴볼 사이 없이 급한 걸음으로 다가갔다. 담배가 피고싶다하면 할배가 와도 말리지 못하는 고질이였다. 문을 밀고 들어간 천이는 마침 계산을 맞추고 돌아서는 30대 여자와 정면으로 마주섰다. 천이씨, 오래간만이네요. 여자가 애교가 다분한 목소리로 반겼다. 한때 애인으로 사귀였던 희라는 여자였다. 아, 정말 오래간만이네요. 관계를 정리한지 1년 좀 넘었고 가끔은 만나서 서로의 마음속 말을 나누기도 하는 사이였다. 남처럼 갈라지고 잡아먹지 못해 으르릉거리는 그런 관계가 아니고 스킨쉽을 절제할뿐 못할 말이 없을 정도로 친구보다 많이 가까운 그런 무난한 사이였다. 이것도 인연인가봐요. 어디 가서 얘기나 좀 해요. 희는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슈퍼를 나섰다. 천이는 무기력하게 따라서면서 이 여자를 처음 어디서 어떻게 만났던지 기억을 더듬어보았지만 대뇌는 거의 공백상태여서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단지 처음에도 희는 이런 말을 했던거 같다. 이것도 인연인가봐요. 어디 가서 얘기나 해요. 이 시간대는 마땅히 앉아 얘기할 장소도 없다는것을 천이는 잘 알고 있었다. 무작정 택시를 잡고 쟈쟈왠으로 달렸다. 그 옆에 더타이란 이름의 호텔이 있었다. 그 커피숍에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핸드폰이 디리링 울렸다. 왕벌이였다. 이 자식은 적당히 무시해도 괜찮은 물덤벙 술덤벙 친구였다. 요새 어떻게 지냈죠? 그저 그렇게 살았죠뭐. 희는 마침 울고싶었는데 때맞추어 뺨을 때렸다는듯 눈가에 실눈물을 떠올렸다. 희는 남편을 무던히도 사랑하고있었다. 애인인 천이앞에서도 남편과 진한 스킨쉽을 주저하지 않아 민망할 때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희는 천에게 많이 기댔었다. 절대 쉽게 주거나 함부로 몸을 다루는 녀인은 아니였다. 어쩌면 마음이 많이 비여있는 녀인이였다. 일이 잘 풀리지 않네요. 뭔가 해보려고 해도 자신이 없고. 이렇게 산다는게 정말 힘들어요. 막 자신을 던지고싶은 충동마저 일어요. 천이는 아무말도 할수 없었다.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기는 법이다. 희의 몸에 자기의 사랑이 아직까지 묻어있다는것을 천은 깊이 느끼고있었다. 그렇찮으면 이처럼 살이 도려내지는 아픔이 있을리 만무했다. 희가 사랑이 모자란 사람은 결코 아니란것을 잘 알면서도 사랑밖에 더 줄수 없는 자신을 돌아보며 천이는 맥풀린 소리밖에 낼수 없었다. 그러지 말아요. 다쳐요. 저도 알아요. 인생은 속절없이 늙어가는데 정말 계속 이렇게 살아갈 자신이 없어요. 희가 쉽게 주지 않았다면 천도 가볍게 거둔것은 결코 아니였다. 희가 이별을 선언했을때 천은 거의 패닉 상태에 빠졌었다. 막 죽이고싶다는 독한 마음까지 들었었다. 그래도 희를 아끼고 지키고싶은 마음이 더 강렬하게 자리잡고 있어 오늘까지 버텨냈었다. 과거는 잊어버릴수 있으나 결코 지워지지는 않는다. 오늘 어디던 저를 데려가줘요. 상처는 상처를 입힌 사람한테서 치유받는다고 하잖아요. 하루라도 안정을 찾고싶어요. 천이는 엉켜진 마음이 스르르 풀리는 느낌이였다. 불현듯 희의 크고 희디흰 젖무덤과 더불어 남달리 특이한 유두가 머리속에 우렷이 떠올랐다. 가끔 머리는 스스로를 속일수 있어도 몸은 절대 거짓말을 못한다. 온 몸 구석구석에서 사랑의 기운이 퍼져올랐다. 이 녀자는 내가 꼭 지켜줘야 하고 있는 능력껏 도와줘야 한다는 책임감까지 들었다. 룸을 열기 위해 카운터로 내려가면서 천이의 눈가에도 어느덧 물기가 슴배여올랐다. 내가 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잘 보듬어주자! 이 녀자를 절대 다시 울려서는 안돼!! B2 아파트단지를 어슬렁 나서며  천이는 두손으로 아래우 주머니를 더듬었다. 손에 잡혀나온것은10여 년간 꾸준히 피워온 쌍희표 담배이다. 입에 담배를 붙여물고 두손을 바지 주머니에 깊숙히 질러넣고 어깨를 옹송그리며 헐떡헐떡 반달음치는게 천이만의 브랜드 이미지이다. 4월의 청도 아침날씨는 유달리 변덕이 많다. 어제까지도 찬 바다바람이 몰아치던것이 오늘은 금세 얼굴을 바꾸고 사람을 지글지글 볶기 시작했다. 천이는 영문 모를 사람들의 영문 모를 바쁜 행보속에 무작정 합류하면서 일단 오늘은 걸어서 출근하기로 작심한다. 회사까지는 도보로 20분 거리이다. 대체로 비슷한 사이즈의 두갈래 코스가 있었는데 그것도 묘하게 두갈래 모두 사거리 두개씩 지나야 했다. 버스 선로도 여러개 있었으나 전에는 괜히 폼을 잡느라고 매일이다싶이 택시를 잡아타고 출퇴근했었다. 주머니친구가 매일 적자투성이라고 아우성이였지만 회사동료들이 부러운 시선을 보내오는게 그대로 풍선이 되어 둥둥 뜬 기분이였다. 에라이, 인생이 얼마나 길다고? 사람은 좋은 기억을 만들기 위해 산다고 생각하니 날마다 무덤으로 향하는 노정도 즐겁고 대견했었다. 누구처럼 미쳐서 살다가 정신 들어 죽는게다. 그렇게 나사 하나 풀린것처럼 쭉 지내오다가 문뜩 자기가 안방 호랑이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뭐야? 가까운 친구들이 차례차례 집 사고 자가용 갖추고 또 어떤 넘은 느닷없이 사변을 당해 병신이 되기도 하고 아예 꼴기 없이 죽어나가기도 한다. 어제도 숱한 돈을 팔고 아가씨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하고 곤드레만드레 취해서 집에 돌아왔다가 먼 고향에 있는 친구의 비보를 들었다. 술자리에서 그대로 엎어져 죽어버렸단다. 남자 인생 황금기라는 마흔 고개가 어쩌면 시련의 고개인지도 모른다. 망할 넘의 언덕이 어디 정해져서 따로 있나? 그러면서도 속은 텅 비여버린다. 느닷없이 죽음이라는 추상적인 관념이 세부적인 형상이 되여 우렷이 나타난다. 저 앞 태양성이 바라보이는 첫 사거리에 행인과 차량들이 막 범벅이 되여서 멈춰져 있었다. 교통사고가 난게 분명했다. 중성로 절반 넘어 구경군들이 차지하고 있었고 나머지 좁아터진 길에서 왕래 차량과 행인들로 혼전을 치르고 있었다. 천이는 중성로를 포기하고 그대로 정양로를 따라 걸었다. 이 동네에 이사온지 여러해 되였지만 저렇게 사람들이 억수로 몰려든 대형 사고는 처음이였다. 아무튼 사람 하나쯤은 죽은 모양이야. 정양로는 출근하는 사람에, 장사군에, 실없이 구경거리를 찾아달리는 인간에, 일거리를 찾아헤매는 일당치에, 어두운 거래에 혈안이 된 브로커에 막 범벅이 되어있었다. 천이는 늘쩡늘쩡 무심하게 걷다가 마주오는 웬 젊은 청년과 오다가다 어깨를 부딪쳤다. 아, 미안. 그런데도 청년은 사죄를 받아들이기는커녕 째려지게 천이를 흘겨보았다. 그러건말건 천이는 계속 앞으로 나가려다가 불시에 후다닥 옆으로 튕겨나갔다. 웬넘이 길가에 오물을 한무덤 토해놓고있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코를 싸쥐고 왝왝 마른 구토질을 하며 피해가고있었다. 금방 청년도 그렇게 피하다가  자기를 부딪쳤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천이는 욱 부아가 치밀어올랐다. 망할 자식같으니라구. 자기가 잘못해놓고 어디다 눈깔 부라려. 천이는 한바탕 해낼양으로 급히 몸을 돌렸다. 청년대신 웬 할머니가 천이를 골받이로 맞아주었다. 아이쿠! 할머니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그 자리에 폴싹 주저앉았다. 이어 당장 죽는듯 숨넘어가는 소리로 애고애고 앓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천이도 머리가 얼얼해나기는 마찬가지였으나 인츰 본능적으로 오늘 잘못 걸려들었다는 직감이 들었다. 거리에서 흔하게 보고 또 비웃었던 일이 자기한테서도 재현되고 있었던것이다. 할머니, 미안해요. 괜찮아요? 그러건말건 허스름한 옷차림의 할머니의 고통을 호소하는 소리가 점점 높아갔다. 이때 방정 맞게 핸드폰이 디리링 울렸다. 자그마한 악세사리 공장을 경영하고 있는 왕벌이가 걸어온 전화였다. 천이는 시에미 역정에 개배때기를 차는 격으로 핸드폰을 열자마자 고래고래 소리질렀다. 임마, 때 맞춰 전화해! 전화를 닫은 천이를 급히 할머니를 부축해 일으켰다. 우리 빨리 병원에 가요. 나 병원에 갈 시간이 없어. 손주애가 혼자 집에 있단 말이야. 그럼 어쩌지요? 나절로 시간내서 병원갈테니 돈이나 줘. 별로 상한데는 없는거 같은데 백원 줄게요. 내가 거지인줄 알아. 늙은 뼈가 어떻게 상했는지 모르잖아. 사진 찍고 치료하고 돈이 얼마 드는데… 그럼 얼마 드려야 합니까? 천원은 들겠지. 나 그렇게 없어요. 오백원 드릴게요. 안돼. 행인들이 하나둘 모여들고 할머니는 성수난듯 손사래를 쳐대기 시작했다. 천이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할머니와 더 이상 담판을 지속할 의욕을 잃었다. 겨우 할머니를 달래고 함께 자동인출기를 찾아나섰다. 꼬리처럼 졸졸 따라다니면서도 할머니의 입은 쉴새 없었다. 죽을것 같이 머리가 어지럽다느니, 집에 홀로 있는 애가 잘못되면 책임져야 한다느니, 신분증과 연락전화를 내놓으라니 끝없이 재잘댔다. 이상하게도 그 긴 정양로에 자동인출기가 보이지 않았다. 한시가 급하다던 할머니는 돈 냄새때문인지 잘도 따라다녔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 겨우 자동인출기를 찾아냈지만 고장중이였다. 너 이기나 내 이기나 한번 해보자. 그렇게 다시 거리를 돌다가 할머니보다 천이의 인내력이 거의 밑바닥이 날 즈음에 자동인출기 하나가 또 나졌다. 천이는 이제 안되면 내 배 째라 하고 맛설 다짐을 하고 카드를 집어넣었다. 괘씸하게도 돈이 드르륵 잘도 빠져나왔다. 죽는게 무섭지만 사는것도 똑같이 무섭구나 그때 뇌리를 치는 생각이 이러했다. 할머니는 주름살을 펴며 떠나고 천이만 망연자실한채 거리를 마주하고 섰다. 세상이  참 살 멋이 없구나!  인생은 이렇게 허무하고 지겨운데 인간이 스스로 심각한체 자신을 기편하면서 내숭을 떨며 사는게 아닌가!! B3 아파트단지를 어슬렁 나서며  천이는 두손으로 아래우 주머니를 더듬었다. 손에 잡혀나온것은10여 년간 꾸준히 피워온 쌍희표 담배이다. 입에 담배를 붙여물고 두손을 바지 주머니에 깊숙히 질러넣고 어깨를 옹송그리며 헐떡헐떡 반달음치는게 천이만의 브랜드 이미지이다. 4월의 청도 아침날씨는 유달리 변덕이 많다. 어제까지도 찬 바다바람이 몰아치던것이 오늘은 금세 얼굴을 바꾸고 사람을 지글지글 볶기 시작했다. 천이는 영문 모를 사람들의 영문 모를 바쁜 행보속에 무작정 합류하면서 일단 오늘은 걸어서 출근하기로 작심한다. 회사까지는 도보로 20분 거리이다. 대체로 비슷한 사이즈의 두갈래 코스가 있었는데 그것도 묘하게 두갈래 모두 사거리 두개씩 지나야 했다. 버스 선로도 여러개 있었으나 전에는 괜히 폼을 잡느라고 매일이다싶이 택시를 잡아타고 출퇴근했었다. 주머니친구가 매일 적자투성이라고 아우성이였지만 회사동료들이 부러운 시선을 보내오는게 그대로 풍선이 되어 둥둥 뜬 기분이였다. 에라이, 인생이 얼마나 길다고? 사람은 좋은 기억을 만들기 위해 산다고 생각하니 날마다 무덤으로 향하는 노정도 즐겁고 대견했었다. 누구처럼 미쳐서 살다가 정신 들어 죽는게다. 그렇게 나사 하나 풀린것처럼 쭉 지내오다가 문뜩 자기가 안방 호랑이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뭐야? 가까운 친구들이 차례차례 집 사고 자가용 갖추고 또 어떤 넘은 느닷없이 사변을 당해 병신이 되기도 하고 아예 꼴기 없이 죽어나가기도 한다. 어제도 숱한 돈을 팔고 아가씨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하고 곤드레만드레 취해서 집에 돌아왔다가 먼 고향에 있는 친구의 비보를 들었다. 술자리에서 그대로 엎어져 죽어버렸단다. 남자 인생 황금기라는 마흔 고개가 어쩌면 시련의 고개인지도 모른다. 망할 넘의 언덕이 어디 정해져서 따로 있나? 그러면서도 속은 텅 비여버린다. 느닷없이 죽음이라는 추상적인 관념이 세부적인 형상이 되여 우렷이 나타난다. 저 앞 태양성이 바라보이는 첫 사거리에 행인과 차량들이 막 범벅이 되여서 멈춰져 있었다. 교통사고가 난게 분명했다. 천이는 무감각하게 그대로 스쳐지나 정양로를 따라 회사로 향했다. 오늘따라 아무런 감흥도 없었다. 호기심도 없었고 특별히 기분이 잡치지도 않았다. 아마 반시간 넘어 입에 거미줄이 쳐진것 같다. 별로 말할 상대도 나지지 않았고 말하고싶은 마음도 생기지 않았다. 느적느적 걸으며 천이는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꺼내 들여다보았다.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서였지만 핸드폰을 보고싶은 마음이 더 강렬했던 모양이다. 그 핸드폰은 어제 금방 새로 뺀것이였다. 천여원 현금을 주고 샀지만 매달 통화료로 90원을 1년동안 환불하는 그런 판촉 핸드폰이였다. 1년이면 본전을 다 뽑는 싸구려인가 하면 그런것도 아니였다. 게임도 놀고 TV도 나오고 인터넷도 대강 할수 있는 스마트폰에 가까운 기능을 갖추고있었다. 8시가 가까와오고 있는 시점이였고 이제 저 앞의 강성로에서 왼쪽으로 돌면 바로 회사가 보인다. 길가의 사람들은 너나없이 쫓겨사는 모양인듯 바쁜 걸음들이였다. 유독 자기만 별로 한가하고 느슨하게 인생을 영위하는것 같아 쪼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강성로에 접어들기 바쁘게 노천 과일매대가 나졌다. 느닷없이 배에서 개구리새끼 치듯 꼬르륵 소리가 진동했다. 그제야 오늘도 아침을 거르고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가 방문취업비자로 한국에 나간후 반년남짓한 사이에 아침 먹은 날을 손으로 꼽을수 있을 지경이였다. 아무래도 오늘은 좀 요기를 해야 할것 같았다. 엊저녁에도 외로움을 달랠려고 노래방으로 기어들어 혼자서 양주 한병을 다 털어넣고 밥알 한톨도 먹지 않았던것이다. 이게 무슨 지랄이람. 세월은 류수요 인생은 초로라 했는데 초로같은 인생을 왜 이렇게 멋대가리 없이 살아야 하는가 생각하니 한없이 억울하기도 했다. 천이는 바나나를 사서 허겁지겁 먹으며 걷다가 저만치 회사가 보이는 거리에서 우뚝 멈춰섰다. 회사 동료들에게 자기의 걸탐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다. 천이는 어슬렁 길옆 가게의 계단에 걸터앉아 바나나 하나를 새로 발랐다. 저렴하게 생겼으면 단순하게 살자였다. 왕벌한테서 전화가 두번째로 걸려왔으나 천이는 개의치 않고 철거공사가 한창인 마주켠 아파트단지를 넋잃고 바라보았다. 사실 머리에 들어오는건 아무것도 없었고 몇몇 일군들이 쇠망치를 휘두르며 콩크리트 벽을 부수는 장면만 클로즈업되어 눈앞에 펼쳐졌다. 말그대로 포크레인 놔두고 삽질하는 형국이였다. 저래서도 살아야겠지. 아니, 살려야겠지. 인간은 넘쳐나고 밥 먹을 호구도 무진장하고 어차피 쇠망치 휘둘러야겠지. 천이는 자신도 별로 그들보다 낫지 않다는 느낌이 들면서도 니들 덕분에 험한 세상 조금 웃으며 산다는 위로감을 앞세우며 오늘 처음으로 해맑은 웃음을 지었다. 뭐든지 넘쳐나면 좋을게 없어. 엄청 부자인 정주영의 아들도 자살하고 한때 멋지던 배우 최진실도 인생이 역겨워 스스로 세상을 하직하더라. 인생이 별건가? 대수대수 살다가 시원시원하게 가면 그뿐이다. 공수래 공수거가 영원한 진리야. 이 세상은 온통 잉여인간일뿐 누구라 없이 쓰레기 냄새가 진동할뿐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은 한결 느슨해지고 너그러워졌다. 철부지 어린애 몇이 장난질을 하며 지나쳤고 이어 팔소매가 짧은 웃옷에 나이에 걸맞지 않게 엉덩이가 거의 드러나는 초니미 스커트를 입은 30대 초반의 여인 둘이 팔짱을 하고 가지런히 지나갔다. 하긴 엉덩이가 거의 처지지 않은 매끈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는게 다행이였다. 불현듯 천이는 가까이 지내는 채사장의 말이 떠올랐다. 음식이 문제야. 한족들은 나이를 먹어도 엉덩이가 처지지 않는데 조선족들은 서른만 넘기면 메주덩이처럼 내려앉는단 말이야. 어쩌면 그런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천이는 조선족 녀인을 선호하는 편이였다. 피를 함께 한다는 동질성보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고 자기 중심적이며 더우기 성깔이 사나운 한족은 정말 질색이였다. 마지막 바나나까지 깨끗이 발라먹고 천이는 부시시 일어났다. 저쪽으로 회사 동료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또 지루하고 평범하고 무의미한 하루가 시작되는것이다. 천이는 어느새 옆으로 어슬렁 기어들어 고뿌를 들이미는 거지를 거들떠도 보지 않고 회사쪽으로 늘쩡늘쩡 걸어갔다. 내일이면 태양이 또 뜨겠지! 그리고 세월은 하루가 줄어들거고!!    
6    바람의 옵션 댓글:  조회:755  추천:0  2014-08-31
단편소설 바람의 옵션 장학규 산자락의 밤은 그대로 짙은 두려움이다. 로산은 어두움이 내리기 바쁘게 부엉이 소리가 때맞추어 울린다. 우웡 우웡~ 처량한듯 목 갈린듯 갈피를 잡을수 없는 그 울음소리는 주변의 솔나무가 밤바람에 흔들리는 소리와 야합하여 한결 소름이 끼친다. 거기에 울퉁불퉁한 산바위가 여러가지 짐승모양을 하고 있는데다 산골짜기를 길게 흘러내려오는 개울물소리도 공포감을 가중시키고있다. 춘심이는 한시간나마 툭툭 튀는 가슴을 부여잡고 차가운 구들에 그대로 꼬꾸라진 세 아이를 내려본다. 애들은 결국 애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엄마의 팔다리에 매달려 울음을 터뜨리던 애들이 어느새 혼곤히 잠나라로 달려가있었다. 아직 눈물자국이 그대로 남아있는 애어린 얼굴들은 추위에 퍼렇게 질려있었지만 그나마 그들의 마음에 평온이 찾아와서 다행이였다. 미처 막을사이도 빌어볼사이도 없이 일이 불시에 터진지 한식경이 넘었지만 춘심이는 쫓아나갈 생각을 전혀 못한다. 누군가를 찾아가서 애오라지 옷자락이라도 붙잡고 애걸해야 할판인데도 앉은 자리에 뭉개면서 그냥 넋을 놓고있다. 담이 원체 작은 춘심이는 평소에도 밤에는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첫애가  태여났을때부터이니까 벌써 5년이 넘는 셈이다. 가로등이 명멸하는 도회지를 떠나서부터 밤길을 거의 다니지 못한 춘심이였다. 피치 못할 사연때문에 어쩔수 없이 도교명산인 로산자락에 숨어들어와서 살게 되였지만 유명 풍경구에 몸담고있다는 실감이 하나도 없이 저녁 여덟시가 되기도전에 온마을이 바로 까막나라로 돌진해 들어가는 촌동네가 춘심이는 정말 싫었다. 그러나 남편은 2년쯤 깜박 죽은듯 지내더니 그후부터 점차 적막을 못이기겠다는듯 바깥돌이에 재미를 붙이더니 나중에는 부지런히 야행을 즐겼다. 아니, 밤낮이 따로 없이 산을 탔다. 그게 어쩌면 춘심이에게는 더 아픔이였다. 애당초 남편은 해상제일명산을 즐길 마음의 여흥같은것이 남아있는 사람이 못되였다. 사나이라는, 남편이라는 그런 허울에 쫓겨 관성적으로 집문을 나설수밖에 없는 사람이였다.  어쩌면 화근은 그때로부터 심어졌을것이다. 행인이 끊긴 오밤중에 외홀로 풍천가방을 둘쳐메고 후레쉬를 칼처럼 궤춤에 질러넣고 다니는 남편이 이웃 중국인들의 눈에 나기 시작한것도 그 무렵부터였다. 모두들 도적질에 이골이 튼 사람 정도로 의심하다가 결국 어느날 마을 장정 여럿이 짜고들어 도적 잡는다는 명목하에 길을 가로막고 풍천가방을 들추면서 그속에 든것이 엄나무나 칙뿌리, 도라지 명색인것을 보고는 바로 그들이 먹고 살기 어려울 정도로 아주 어려운 생활을 하고있다는 소문이 온 동네에 쫙 퍼졌다. 이웃집에서 살인이 나도 감감부지인 도회지 아파트생활과는 달리 시골사람들은 이웃에 대한 관심이 대단했다. 특히 외지에서 갓 이사온 낯설고 생소한 이웃에는 분에 넘치도록 스포트라이트를 주었다. 남자는 가랭이 잡기 바쁘고 여자는 가랭이 벌리기 바쁜 요즘 세상에 대수 비슷한 스캔들 하나 잡아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요리하는것도 시골사람들이 사는 재미중의 하나였다. 처음에는 세상의 손가락질을 전혀 의식하지 않아도 될 나이든 로인들이 손에 토란이나 고구마따위를 둬개 들고 탐색전에 나서기 시작했다. 세상물정에 많이 둔감한 춘심이는 그게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남편이 밤낮없이 캐온 산지 산물을 모아 시내의 한국식당에 팔아봤자 집세를 물고나면 생활비가 항상 딸렸었다. 한창 몸이 자라는 세 아이는 영양이 부족하여 비쩍 말라가고있었다. 춘심이는 로인들의 목적이 뭐든지 생각해볼 마음의 여지가 없었다. 애들에게 먹거리가 생긴것으로 입이 마냥 벌어졌다. 그러나 그것도 얼마 가지 않았다. 로인들은  몇번 쉬쉬거리더니 건질 건더기가 도무지 없었던지 인츰 조용해졌다. 대신 무슨 소리를 어떻게 들었는지 전혀 반갑지 않은 진씨 성을 가진 집주인이 부지런히 나들었다. 틀림없이 원숭이 후손인 왜소한 집주인은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매양 시누런 눈곱을 쭉 찢어진 작은 눈가에 그대로 달고왔다. 조물주가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갖다붙여놓은듯한 벌름코에서 벌렁벌렁 코방울이 나왔다들어갔다할때면 세상은 완전 지옥이였다. “당신네 다음달 집세를 낼수 있는가?” 진씨는 말을 할때면 항상 춘심이를 살핀다. 그도 남편이 중국말을 겨우 뜯어듣는 외국인이라는것을 알고있는상 싶었다. “며칠전 드렸잖아요?” “그러니 다음달 묻잖소.” “여직껏 집세 밀린적이 없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진씨는 번마다 이런식으로 꼬리를 내렸다. 그리고 별로 혀를 밸밸 타는듯한 산동말로 한참 저절로 궁시렁거리다가 돌아갔다. 그날은 남편이 생각보다 일찍 돌아왔다. 진씨가 구들목에 걸터앉아있는것을 본 남편의 기색이 대뜸 어두워졌다. 작은 애를 안고 진씨와 마주 앉았던 춘심이가 엉거주춤 일어서는데 남편의 고성이 귀막을 쩌렁 울렸다. “이 자식은 왜 바람난 숫캐처럼 자꾸 들락거려.” “또 집세 달란 말하려 왔나봐요.” “줬잖아. 며칠전에.” “글쎄말이예요.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진씨가 토끼처럼 귀를 곤두세우고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동냥하는듯 하더니 아무래도 자기를 말하는 눈치처럼 느껴졌던지 불쾌한 기색을 지으며 끼여들었다. “나를 욕할려면 사내답게 중국말로 욕해. 비겁하잖아.” “빙신같은 넘이라구. 내가 중국말을 왜 해? 니가 한국말을 알아들어야지.” 남편이 곧장 진씨에게 눈길을 돌리면서 한국말로 투덜대자 상서롭지 못한 징조를 느꼈던지 진씨가 후다닥 튀여일어났다. “한판 하자는건가? 어디 덤벼들어봐.” “아니예요. 제가 밥을 하지 않았다고 야단하는거예요.” 춘심이는 진씨를 어린애 어르듯 달려서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날 저녁 둘은 처음으로 언성을 높이면서 싸웠다. 마침 쌀도 떨어진터라 묵은 밥을 애들한테 적으나마 똑같이 나누어주고 부부는 고스란히 굶었다. 온밤을 뜬눈으로 지새운 춘심이는 새벽과 같이 일어나 간밤의 일을 툭툭 털어버리고 남편이 전날에 캐온 엄나무를 챙겨들고 시내로 나가 평소에 자주 거래하던 한국식당에 넘겼다. 겨우 60원을 받아 시장에서 쌀 스무근을 사서 부랴부랴 집에 돌아오니 남편은 보이지 않고 애들만 주린 기색이 력력한채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 미안. 인차 밥 해줄테니 좀만 기다려.” 춘심이는 쌀을 부지런히 씻으면서 간밤에 괜히 남편과 대들었다고 후회했다. (벌써 산에 들어간건가? 두때나 굶고 무슨 힘으로 일한단 말인가?) 두사람은 여직 혼인신고가 되지 않은 상태이다. 물론 아이들도 출생신고가 되여있지 않고 국적도 마련이 없었다. 춘심이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자기 인생이 그대로 사건사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게 운명이라고 치부하면서 막무가내로 살고있기는 하지만 정말로 운명할번한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대학 선배의 주선으로 체육용품을 생산하는 청도의 한국회사에 입사했을때만 해도 춘심이는 세상이 마냥 단순해보였다. 밥 먹고 일하고 놀고 자고 그런게 인생인가부다 슴슴한 생각으로 살아갔다. 비록 제조업이기는 하나 다행히 사무실 부서에 속하는 총무과에 배치되여 별로 손에 먼지를 묻히지 않아도 되였다. 총무과장은 춘심이보다 서너살 이상인 한국인 총각이였다. 모두들 심과장이라고 불렀다. 그래도 그녀앞에서 성숙한 냄새를 내느라고 무척이나 폼을 잡았다. 작업지시를 내릴때면 제법 고개를 빳빳하게 쳐들고 코맹맹이 소리를 질렀고 작업보고는 항상 회전의자에 앉은채로 머리도 들지 않고 으응으응 헛대꾸만 하면서 들었다. 대신 심과장과 동창이라는 무역과장 변씨는 스타일이 완전 딴판이였다. 서른이라는 나이답지 않게 항상 히히닥거렸다. 틈만 나면 총무과를 들락거리는 변과장은 얼굴에 용건을 딱 쓴것처럼 남들 보기에도 틀림없이 춘심이를 보고 오는것이였다. 그러던 어느 휴일날 저녁무렵 춘심이는 시장거리를 거닐다가 우연히 변과장과 마주쳤다. 변과장은 과장된 제스처로 반가운 인사를 하기 바쁘게 무작정 그녀를 끌고 시장입구에 있는 와인바로 끌었다. 그런데 일이 묘하게 번지려고 그랬던지 아직 사람이 별로 들지 않은 와인바에 거짓말같이 심과장이 홀로 출입문을 향해 앉아서 와인대신 양주를 빨고있었다. (엉?) 세사람은 동시에 눈이 데꾼해졌다. 그러나 인차 심과장이 용수철처럼 자리에서 튕겨일어났다. “이게 뭐여? 기껏 길 닦아놓았더니 똥개가 지나간다고 준호 너 이러는게 아니잖아.” 춘심이는 그때서야 변과장의 이름이 준호인줄 알았다. “괜히 남의 그릇에 초치지 말고 꺼져주면 안되겠니?” “자식이 지랄 옆차기해도 유분수지.” 심과장의 주먹이 쳐들리는것을 본 춘심이는 엉겹결에 변준호의 팔을 잡아당겼다. 그런데 준호 역시 심통 맞고 성깔머리 더러웠던 모양으로 순순히 물러날대신 팔을 끄당겨 그녀를 털어내려고 용을 썼다. 왜소한 춘심이가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막 끌려가면서 정통으로 총무과장의 주먹을 맞았다. “악!” 순간 눈앞이 불꽃이 튕기듯 아찔하더니 의식을 잃어버렸다. 춘심이가 다시 눈을 떴을때는 이미 병원의 병실이였다. 입가에서 심한 통증이 전해왔다. 얼굴에 크게 타박상을 입은 모양으로 붕대가 감겨있었다. 심과장은 보이지 않고 변과장만이 침대가에 걸터앉은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보고있었다. “미안해, 모두 내 탓이야.” “아니요.” 그러나 그게 소리로 되어주지 않았다. 목구멍이 불타는듯 아려왔다. 어느새 변과장이 눈치를 채고 구석쪽에 있는 정수기에서 더운 물 한컵 뽑아와서 그녀의 입가에 가져다댔다. “어서 한모금 마셔.” 세상에 남자가 이렇게 살갑고 친절할수도 있다는것을 춘심이는 처음으로 느꼈다. 심과장은 그후로도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다. 춘심이가 입원해있은 사흘간 사고 당사자대신 변과장이 춘심이를 돌봐주었다. 물론 그사이에 춘심이의 마음속 어섯눈도 매끈하고 질서정연한 심과장으로부터 터덜터덜하고 자유분방한 변과장한테로 완전히 돌아섰다. 직접 얼굴을 마주하면 부끄럽고 미안해할줄 알았던 심과장은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전보다 더 도고하고 야박하게 굴었다. 춘심이가 출원하여 다시 출근하기 시작해서부터 근 한달간 얼굴 한번 쳐다보지 않았다. 대신 심술이 온몸에 방울방울 묻어났다. 꼬박꼬박 챙기던 작업일지도 두손으로 공손히 올려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여러번 랭대받고 멋쩍어져서 하루는 작업일지를 바치지 않고 퇴근했더니 이틑날 아침 바로 호출하여 직원들앞에서 춘심이를 혼줄나게 닦아세웠다. “다시 또 건방지게 그래봐. 쪽박 차고 개털될줄 알아.” 한번은 자재구매를 책임진 춘심이가 련락한 박스 트럭이 약속된 오전 10시를 10분 넘겨서도 오지 않았다. 회사 대문밖에서 핸드폰을 부지런히 두드리면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서성거리는 춘심이 등어리에 불시에 심한 충격이 가해졌다. 툭하고 땅에 떨어진것은 든든한 남성용 운동화였다. 아픔을 가까스로 참으면서 돌아보니 저만치에서 심과장이 얼굴이 푸르딩딩한채 잰걸음으로 다가오고있었다. 춘심이는 말세가 다가왔음을 느끼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이년아, 당장 짐 싸서 꺼져. 놀고 먹는게 니년 팔자에 없어.” 목이 조여와서 가까스로 눈을 떠보니 더 무서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녀의 목덜미를 거머쥔 심과장 뒤로 변과장이 충혈된 눈을 하고 각목을 휘두르고있었던것이다. 툭! 심과장이 손에 힘이 빠지면서 썩은 나무처럼 꺾어져내렸다. 회사는 금세 폭격 맞은듯 란장판이 되였다. 인사불성이 된 심과장은 앰블랜스에 실려 병원으로 떠나가고 그 즉시로 진행된 회사회의에서 변과장과 춘심이에게 해고결정이 내려졌다. “미안해요. 저때문에 변과장님한테 불똥이 튀였네요.” 짐을 싸들고 사무실을 나서는 춘심이를 변과장이 무조건 막아나섰다. “아니야. 언제든 발생할 일이였어. 속아지 비뚤면 주둥이도 비뚠다고 동냥을 주지 못할망정 쪽박을 깨는 저런 넘은 매가 해결책이야. 그리고 고름은 터쳐야 상처로 남지 않는 법이거든.” 변과장은 대범하게 웃으면서 춘심이의 손을 잡았다. “오늘만큼 속이 거뿐한 날이 없어. 좀 기다려. 같이 가자.” 회사 숙소에 서식하는 변과장이 해고당했다는건 곧 한국으로의 귀국을 의미했다.  그리고 짐을 들고 숙소에서 나와 춘심이와 가겠다는건 다름아닌 귀국을 포기하겠다는 뜻이였다. 두사람의 동거는 그렇게 시작되였다. 중국말에 서툰데다 림시거처도 없는 변준호는 자연스럽게 춘심이 세집에 함께 들었다. 준호는 회사에 다니면서 익힌 무역업에 나섰다. 중국의 농산물을 한국으로 수출하는 업무였다. 처음에는 그럭저럭 밥벌이가 되였다. “이제 두고봐. 몇년안으로 회사를 엄청 키워 저넘들한테 보여줄거야.” 준호는 퍼그나 기가 올라 호언장담했다. 집도 널찍한 아파트로 이사하고 중국인 파출부를 불러 살림을 맡겼다. 춘심이는 한국 드라마에 나오는 마님처럼 날마다 미용실이나 다녔다. 춘심이 몸에 태기가 있을때이다. 준호가 한국에 함께 들어가서 혼인신고를 하자고 하여 춘심이는 어떤 자료들이 수요되는지 여기저기 수소문했다. 려권이 필요하다고 하여 간만에 동북 고향으로 날아갔다. 그런데 파출소에서는 법륜공신도가 아니라는 증명을 가져오라고 했다. 밖에 나간지 여러해되는 사람에게 어떻게 담보 서주냐면서 마을 치보가 도리머리를 치는걸 슬그머니 2백원을 질러주고 겨우 떼어서 파출소에 넣었다. 려권이 나와서 신분증과 호적부를 들고 돌아오니 이번에는 미혼증명서를 떼서 공증해와야 한다고  했다. 다시 고향행을 할때는 그해도 가을로 접어들고있었다. 그런데 비자 신청에서 또 한번 걸렸다. 무범죄기록증명서를 떼와야 한다는것이였다. 춘심이의 참을줄이 한계에 다다랐을무렵 준호가 먼저 폭발했다. “그만 걷어치워. 시간되는대로 내가 귀국하여 저쪽 수속을 받아와서 이곳에서 신고하자구.” 마침 한국에서 병충해와 냉해를 동시에 당하면서 배추농사가 엉망이 되였다. 따라서 중국배추에 대한 수요가 대폭 늘었다. 준호의 오더도 폭주했다. 모아두었던 저축을 몽땅 때려넣고도 많이 부족하여 준호는 그간 사귀여놓은 브로커들에게 외상으로 배추를 받아 한국으로 수출했다. 그런데 대금이 들어올대신 배추에서 잔류농약성분이 검출되여 몽땅 몰수되였다는 바이어의 맥빠진 소리가 들려왔다.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였다. 화는 홀로 오지 않는다고 다급해진 준호가 사실확인을 위해 티켓을 끊고 귀국하려다가 공항에서 걸렸다. 비자가 무효되였다는 통고였다. 불법체류 보름째였다. 며칠전까지만 해도 비자 마감일을 기억했던 준호였는데 그만 물건을 보내는데 급급하다보니 시간을 넘겨버린것이였다. 보름쯤이야 문제 아니겠지 했었는데 공항인원은 속히 현지 출입경관리국에 가서 등록하고 통행증을 발급받아야 한다고 귀띰했다. 더불어 하루 벌금 5백원, 최고로 5천원 벌금을 감수해야 하며 비자 연장도 다시 할수 없다고 알려주었다. 그때 준호는 머리가 하얗게 비여가는 느낌이 들었다. 비자 연장이 안된다는건 재입국이 불가능하다는 말이였다. 그리고 일방통행인 브로커들에게 농약검출 운운이 통할리 없다는것도 잘 알고있었다. (잠적하자.) 준호는 이틑날로 춘심이를 끌고 시내와 멀리 떨어진 청양구로 이사했다. 브로커들이 사람을 풀어 준호를 찾고있다는 소식이 풍편에 자꾸 들려왔다. 속이 졸려 도저히 더 이상 있을수 없었다. 큰 애 민지가 태여나서 보름만에 준호는 결연히 시내를 탈출하여 로산가의 어느 산간마을에 보금자리를 틀었다. 가지고있던 돈으로 2년 정도 소리없이 살다가 둘째 민영이가 태여나면서 지출이 크게 늘었다. 더이상 놀고있을수 없었다. 그렇지만 불체자인데다가 도주자인 그가 찾아서 할수 있는 일거리는 거의 없었다. 재수공부할때 준호는 주숙하던 사찰 스님을 도와 엄나무를 채취하여 백숙도 해보았고 칙뿌리랑 도라지랑도 파보았었다. 그 경험이 그들 가정에 큰 밑천이 되였다. 살림이 윤택하거나 크게 배부른것은 아니여도 최저로 굶어죽지는 않았다. 가족과 하루라도 함께 산다는것이 얼마나 큰 혜택이고 보람이고 행복이라는것을 그들 부부는 그때서야 절실히 느낄수가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아들 민국이가 태여났다. 그래서인지 준호의 인생시동은 줄곧 꺼지지 않고 백마일로 발진된 상태였다. 로산의 밤바람이 다시 서늘해져올무렵 마침내 바데리가 방전될 위기에 처해졌다. 일반 시민들이 다닐수 있는 로산 주변에서 돈이 될수 있는 산지 산물은 채집하기 점점 어려워졌다. 아무리 마른 수건을 짜면서 살림을 해도 마이너스 수치가 생겨나는것은 어쩔수 없었다. 진씨의 집세가 손이야발이야 사정으로 한달, 엎죽넙죽 절로 두달, 다시 앙앙왕왕 눈물로 석달 그렇게 밀리는와중에 어느덧 6개월이 훌쩍 쌓여버렸다. 돈은 모든것의 시작이자 끝이다. 돈으로 준호의 인생이 망가졌다면 역시 돈때문에 그들 가정이 막바지에 몰리고말았다. 집은 준호에게 베드타운이나 다름없었다. 눈이 뜨여져있을때는 부지런히 산을 타야 했었다. 로산의 밤도, 로산의 개울물도, 로산의 부엉이도, 물론 로산의 찬바람도 그걸 막지 못했다. 그날도 저녁 일곱시가 넘도록 준호는 산에서 여직 내려오지 않았다. 춘심이는 겨우 두줌 남은 쌀로 죽을 끓여놓고 배고프다고 졸라대는 애들을 달래며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춘심이는 하다못해 문밖에라도 서서 해종일 고생하고 돌아오는 남편을 기다리고싶었지만 시골의 밤은 정말로 자신이 없었다. 밖에서는 해변의 밤바람이 요동치고있었다. 저 멀리로 부엉이소리가 무섭게 들려왔다. 거기에 묻혀 계곡의 물소리가 소름 끼치도록 처량하게 들려왔다. 춘심이는 얼결에 삐꺽하는 대문소리를 들은듯싶었다. “여보세요. 당신이세요?” 대답이 없었다. 환청인가부다고 생각하는데 소리없이 방문이 열리면서 집주인 진씨가 귀신처럼 빨려들어왔다. 조물주가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갖다붙여놓은듯한 벌름코에서 벌렁벌렁 코방울이 나왔다들어갔다 하는줄도 모르고 씨물씨물 웃기부터했다. “집세는 언제 줄거지?” “아저씨, 적선하는셈치고 좀 더 기다려주세요 네?” “반년이야. 사람들이 렴치가 있어야지. 하다못해 몸으로 에때우던가…” 량심에 털난 진씨가 눈꼽을 집어뜯으며 어슬렁어슬렁 다가왔다. 돈밖에 모르는 진씨가 갑자기 번지수 다른 소리를 줴치기 시작했다. “너 남편이 집에 붙어있지 않잖아. 얼마나 외롭고 억울해. 젊은 나이에 이게 무슨 고생이람.” 진씨가 춘심의 손을 거머쥐려는것을 춘심이가 긴 손톱으로 할퀐다. 삽시간에 진시의 팔목에 피줄이 쭉 건너갔다. “이 기집년이 순진한체 하기는…그게 뭐 밥 먹여주는 훈장인줄 알았어? 당장 돈 못내?” 춘심이가 손을 싹싹 부비며 빌려는데 쾅 문 열리는 소리가 나며 준호가 뛰여들었다. 어느새 준호의 손에는 칙뿌리를 긁어내는 갈쿠리가 들려있었다. 두눈에는 퍼런 불꽃이 펄펄 끓고있었다. 밖에서 모든것을 지켜보았던 모양이였다. 그러나 치켜들었던 갈쿠리는 허공에서 그대로 멈춰졌다. 준호는 황소숨을 씩씩 몰아쉬면서도 더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진씨는 부들부들 떨면서 준호가 비워준 팔밑으로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다. “이 자식 너 가만놔두지 않을테야.” 진씨는 그래도 입만은 살아서 김밥 옆꾸리 터지는 소리는 빼지 않았다. 그런데 그게 전에처럼 그저 하는 소리가 아니라는건 금방 증명되였다. 준호가 캐온 물건들을 집에 들여놓고 세수를 마치고 밥상에 앉는데 앵앵 하는 경찰차 싸이렌소리가 멀리서부터 가까와왔다. 잇따라 어지러운 구두발소리가 들려오더니 시커먼 장정 여럿이 집으로 들이닥쳤다. “당신 사람 쳤다면서?” “아니예요. 손가락 하나 다치지 않았는데요.” 춘심이가 앞을 막으면서 해명했다. 그러나 사복한 경찰들은 인정사정을 두지 않았다. 무작정 준호의 팔목에 수갑을 철컥 채웠다.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조사해서 문제 없으면 바로 돌려보낼거니까 기다리십시오.” 사람들이 한번 쓸고나간 집안은 어수선하기 그지없었다. 느닷없는 소란에 놀란 애들이 바들바들 떨면서 엄마의 팔다리에 매달려 한동안 울더니 지쳤는지 그대로 찬구들에 쓰러져 잠들었다. 아직 눈물자국이 그대로 남아있는 애어린 얼굴들은 추위에 퍼렇게 질려있었지만 그나마 그들의 마음에 평온이 찾아와서 다행이였다. 이틑날 해당 파출소에서 련락이 왔다. 춘심이더러 준호의 려권과 주민등록증을 가져오라고 했다. 신원조회로 필요하다고 했다. 그때 잠간 만나본 준호는 몰골이 형편없이 초라했다. 6년나마 살을 섞고 살아온 춘심이 앞에서도 얼굴을 제대로 들지 못했다. 고쟁이 뒤집어쓰고 손님 맞이한다는듯 말마디마저 떨었다. “나같은 인간은 잉여인간이야. 당신을 고생시키지 않겠다고 했는데 이게 무슨 꼬라지지? 미안해. 마지막으로 나를 한번 믿고 기다려줄수 있지?” 다시 사흘후에 준호가 시구치소로 수감되였다는 통지가 날아왔다. 연후 조사가 끝나는대로 국외로 추방할것이라고 정식으로 알려왔다. 수년전 준호가 그렇게 싫어서 도주했던 그 결과가 끝내 현실로 눈앞에 대두한것이다. 이제는 달리 어떻게 되돌릴수도 없는 사실로 되여버렸다. 철창속에 갇혀버린 준호는 어떤 감수일지 춘심이는 너무나도 잘 알고있었다. 춘심이가 넋놓고있는 사이 여섯살배기 민지가 두 동생을 챙겨주었다. 다행히도 이웃들에서 락화생이나 고구마 또는 토란같은 먹거리들을 갖다주었다. 시골인심은 여전히 후한 편이였다. 외홀로 내버려진 타민족 녀인을 위해 눈물을 흘려주는 인정 많은 할머니들도 있었다. 그보다도 어린 민지가 동생들을 먹인다며 연기에 눈물을 질질 흘리면서도 고구마를 굽는것을 본 춘심이는 더는 그렇게 망연자실할수만은 없다는 책임감이 앞섰다. 애들이 너무 일찍히 헴이 들었다. 엄마가 맥을 버려서는 절대 안되였다. 그건 준호가 바라던바도 아니였다. 저 피덩이들을 위해, 저 애들이 존엄을 가지고 떳떳하게 살아가게 하기 위해 뭔가 자기가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 또 있다는것을 춘심이는 그제야 알게 된듯 싶었다.                            2014년 3월 중순 청도에서  
5    노오란 동그라미 댓글:  조회:644  추천:0  2014-08-31
  단편소설                  노오란 동그라미                                       장학규     희미한 의식속에서도 영원이는 굴지의 기운이 신체의 어느 한 부위에로 서서히 모여지는 느낌이 들었다.잠결에도 습관적으로 손을 내밀어 옆자리를 더듬었다.뭉클할 것이라는 기대가 허공을 짚으면서 물거품이 되여 쪼각났다.    막무가내로 시계를 보니 새벽 네시반이였다.초여름이라 바깥은 벌써 희끄무레해지고 있었다.   잠은 이미 설쳐놓은 터였다.   영원이는 담배를 더듬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몽롱한 야광속에서 담배연기는 노오란 색갈을 띠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상했다.이름이 문제인것 같았다.무슨 일에서나 마라톤처럼 질기고 꾸준한것이 참 걱정거리였다.    연해도시로 나와 처음으로 그렇다할 연휴일을 쉬는 셈이였다.    상주 인구의 격감으로 인해 위기감에 사로잡힌 신문사가 연해 지역 개발이라는 이슈를 벌리며 영원이를 낯선 황해변에 던진 그때로부터 석달간 정말 하루도 쉬어본것 같지 않았다.이제 좀 숨을 돌릴만 하니 마누라쪽 회사에 문제가 덜컥 생긴것이다.싼 인력만 바라고 들어온 한국기업이 요즘은 임금 인상의 압력을 받으면서 이런 저런 트집을 잡아 직원을 줄이고 있었던것이다.토사구팽이라던가.현지화 몇년에 통역 없이도 회사가 돌 지경이 되여 첫 매를 맞는게 초창기에 인기짱이였던 현장 통역 즉 조선족들이였다.안해도 그런 위기감에 끼워든 일원이였다.다행히 영원이가 기자증을 들고 다니며 회사쪽 일을 더러 봐준 일이 있어 지금까진 그렇다할 얘기가 나오지 않았지만 안해는 마냥 불안해하고있었다.    엊저녁에 초벌을 거쳤던것이 틀림 없었다.안해가 회사에서 짤리지 않으려고 부등부등 자진하여 밤대거리 나가는 것을 애원하듯 붙잡고 늘어진것이였다.    하긴 그럴만도 했다.사업상 관계로 영원이는 예고 없는 출장을 밥 먹듯 다녀야 했다.게다가 현지 선전부와 공상국의 단속을 피해 멀리 변두리로 이사해간 분사가 집과 너무 떨어져 있어 한번 출장을 간다하면 어지간히 란리를 벌리군 했다.그것은 시끄럽다기보다 아예 신경이 번져지는 노릇이여서 영원이는 결김에 짐을 와락 꿍져가지고 회사 숙소에 들어가 한달에 둬어번 려관 들리듯 집으로 다녔었다.처음엔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결정이라는것은 달을 넘기기전에 들어나고 말았다.    그때로부터 얌전하기만 하던 안해의 입에서   "굶은 승냥이 같네!"   "학대광이잖아?"   하는 욕설에 가까운 불만이 심심찮게 튕겨나왔고 나중엔 체념을 했는지 너는 너대로 요동을 하고 나는 나대로 잠이나 잔다는듯 행위도중임에도 불구하고 코를 쌔근쌔근 곯아대는 씨나리오를 출연하기도 했다.    그런데 엊저녁은 그게 아니였다."승냥이" 대신 "빨리빨리"였고 "학대광" 대용으로 "잉,오라다"가 련발되였다.완전한 방관자의 태도였다.영원이는 제풀에 멋적어 그만 중도하차 하고 말았다.    "빌어먹을 ...!"   영원이는 그때까지도 노란 연기를 가물거려대는 담배를 재떨이에 신경질적으로 비벼꼈다.   이맘때가 법처럼 화장실 출입해야 할 시간이였다.영원이는 공연히 침대에서 부시럭거렸지만 종내는 일어서지 않았다.배를 살살 간지럽히는 고통과 더불어 신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쾌감도 있었던 것이다.이때는 시간과 공간을 망각한채 오로지 그속에 완전히 도취되여야 했다.일단 배설을 결행하기만 하면 온갖 감각세포가 따라서 가뭇없이 소실된다는것을 경험은 그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여섯시가 썩 넘어서야 영원이는 마지 못해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볼장을 깡그리 보고나니 배가 살살 고파났다.무언가 먹지 않고서는 견디기 어려웠지만 바싹 마른 기분때문인지 손가락 하나 까닥하기 싫었다.    전에도 가끔 그랬던것처럼 영원이는 집을 빠져나와 거리를 가로건넜다.마주켠에는 "부산스낵"이란 간판을 내건 간이식당이 있었다.번화가여서 전문 홀몸이나 지나가는 행인만 받아도 밥 벌이는 됨직한 그런 식당이였다.    민영교원 노릇을 하다가 꼴 사나와 무작정 연해행을 결단했다는 삼십대의 녀인이 그 마담이였다.이곳에서는 한사람의 내력을 당자가 말한대로 믿어주는 습관이 있었다.서로 모르는 지방들에서 오다보니 사실 어떻게 확인할 방법도 없었다.   이름은 고루하기가 이를데 없는 금옥이라던가.   얼굴은 미인축에는 못 들어도 그런대로 밉지 않게 보아줄수는 있는 스타일이였다.무료한 남자들에게 자극을 주지 않게 빼빼 마른 몸매에 젖무덤은 거의 보이지 않는,그야말로 부담 없이 장사할수 있는 알맞춤한 녀인이였다.   녀인은 어딘가 모르게 맵짠데가 있었다.각난 입술때문일가 아님 또릿한 눈길때문일가고 그 범접하기 어려운 리유를 캐보았지만 판단은 잘 나지지 않았다.아무튼 일자리 없이 매일 미친년 널 뛰듯 하는 주위의 동포 나그네들도 이 식당에서만은 별로 말썽을 부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녀인임에도 영원이는 그 손등을 둬번 쓸어준 경력으로 으쓱대고 있는 편이였다.의식적이였던 무의식적이였던 취기를 핑게대고 슬그머니 목을 끌어안고 가슴에 손을 올리붙인적도 있었다.손은 어딘가 좀 투박한 느낌이였고 딱히는 알수 없지만 콩알만큼 자그마한 유두가 감각에 잡혀왔었다.이 동네에서 매일이다싶이 쉽사리 벌어지는 그런 일들이 그 녀인한테 적용할 수 있는 상대는 영원이라는 사나이 내놓고 다시 없을거라고 굳게 믿는 터였다.   그래도 술기운이 가뭇없이 사라진 이날에는 스스로 무안에 빠져서 한동안 발길을 끊었다가 근래에야 다시 출입하게 된것이다.    (이래선 안되는데...무슨 해결책은 없을가?)   헛기침을 쏟으며 음식점에 들어서니 마담인 금옥이 혼자만 댕그랗게 의자에 앉아있었다.무슨 상념에 잠겨있었던듯 머리를 세차게 젓더니 불시에 가느다란 미소를 입가에 떠올리는것이였다.바로 그 웃음이였다.실수로 인한 영원이의 자격지심을 녹여주는듯 한층 더 심하게 불안에 떨게 하던 그런 웃음이였다.   "아,오셨어요?"   "음,그런데 왜 이리 썰렁하지?"   "급한 손님은 먼저 먹고 가고 안 급한 손님은 아직 오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나는 반중건중한 손님이란 말이군..."    영원이는 아무렇게나 가까운 의자를 끄당겨 앉으며 씨부렁거렸다.   "아니,그게 아니구요.진짜 귀한 손님은 이때에 오시는거지요.남들은 먹자바람으로 얘기도 없이 가버리는것이 아니예요."   묘하게도 사람의 마음을 살펴주는 말이였다.항상 그런 느낌이 들었던것처럼 참으로 편안한 녀자였다.그만큼 마음 씀씀이가 좋았고 구석구석을 녀인의 눈으로 더듬어주는 금옥이였다.그러나 그 어조는 어딘가 모르게 저락되여 있었고 고독이 묻어있었다.되도록이면 명항한 쪽으로 화제를 돌리고 싶었다.    "듣다 반가운 소리군.마치 기다렸듯이 말하니깐..."   "그럴지도 모르지요...선생님이라면 기다릴만도 하거든요...아,너무 심심하니 사람이 그리운가 보죠..."    녀인은 깜찍하게 둘러붙혔다.아무렴 교원노릇을 헛되이 한것은 아니였다.무시당한 감도 약간 들었으나 여하튼 약삭바르다는 생각이 앞섰다.그래서 한마디 더 지껼였다.   "거두 절미하고 가운데 말만 가슴에 새겼소."   "문자 사용하시니까 전 무식해서 알아 들을수 없군요."   "그럼 어미만 팽개치겠소."   "호...참,어머니를 어떻게 팽개친다구 그러죠?"   "허...그런가...? 어차피 얘기를 할바엔 조용해야잖겠소.직원들 출근하기 전만이라도 문을 좀 닫으면 어떻소?"    순간이나마 금옥이의 눈빛이 날이 섰다가 인츰 희미하게 사라진다.주저하는듯 바른손을 허공에 올렸다가 맥없이 내린다.   영원이는 더이상 말없이 담배를 붙여물고 의자에 몸을 깊숙이 들이대고 후 하고 담배연기를 내뿜었다.실눈속에 잡혀들어오는 담배연기는 노란 색갈이였다.이상한 생각에 눈을 떠보니 어느새 금옥이는 그 자리를 떠나 구석쪽으로 가고있었다."영업중지"란 간판을 밖에 내걸고 문을 절컥 잠가버리는 것이였다.그리고는 영원이를 거들떠도 보지 않은채 안방쪽으로 쑥 들어가는것이였다.   (기분이 잡쳐졌나? 뭐 어쩌지도 않았는데...)   그때 머리속에는 사유의 핑게와는 딴판으로 엉뚱하게도 콩알만한 유두가 떠올랐다.금옥이의 여윈 가슴에 달려있는 그것은 욕정을 불러일으키기에는 좀 부족한 편이였다.살뜰하고 세심한것외에는 사실상 금옥이는 녀인다운데가 적었다.마누라와 정반대였다.그런데도 다리 사이는 벌써 부자연스러워지고있었다.뇨기가 온것이라고 의레 짐작하고 화장실에 들어갔으나 단 한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이윽고 금옥이는 미리 준비나 했던것처럼 여러가지 채소를 날라왔다.맨 나중 난데 없는 "북대황" 술 한병 들고 나왔다.   "울 고향 술이네."    "얼마전 고향 갔다가 선생님 드리려고 사온거예요.마셔요.오늘은...저도 한잔 하고파요."    얼마간 흐트러진 자태였다.종래로 없던 일이였다.   전에도 가끔 술상에 마주 앉아주었지만 음료같은것을 따라놓고 해쭉해쭉 웃으며 말동무나 해주었을 뿐이였다.   영원이는 그게 싫지 않았던것이다.하여 모름지기 자신의 고통이나 번뇌같은것을 스르럼 없이 얘기했던것 같다.   "아이구 그랬어요?"   "전 선생님같은 분들은 고민이 없는줄로 알았어요"   "참 안됐네요.그래도..."   맞장구 쳐주는 금옥이 때문에 말 못할 부부 사이의 일도 더러 비쳐던것 같았다.물론 금옥이도 자신의 신세를 상대를 위로해준다는 명목하에 더러 말했었다.고향에 있는 남편은 정리실업 당한지 벌써 3년이 되었는데 와서 마누라를 도와줄념을 않고 맨날 한국갈 궁리로 허송세월한다고 했다.자존심만은 강해 아낙에 붙어살 위인이 아니라고 땅땅 큰소리 친다고 했다.그런 내역을 서로 통한 다음부터 둘 사이는 재빨리 친근해졌고 남들이 비리라 할만큼의 큰 폭의 동작들도 영원이는 할수가 있었던것이다.   그러나 그 이상의 관계는 맺지 않았다.금옥이는 녀인 특유의 부드러움을 시종 베풀면서도 남편을 향한 충성심은 잃지 않고 있었던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완전히 취할 잡도리였다.한잔 또 한잔 입에 털어넣기에 급급했다.영원이도 묵묵히 따라 마셨다.경주라도 하둣 쉴새없이 잔을 비우면서 결코 이런 장면을 눈앞에 보고싶었던건 아니라고 속으로 왼고개를 쳤다.   "아무래도 리혼해야겠어요."   술병이 굽날 무렵에 금옥이는 입을 실룩거리며 한마디 뱉어냈다.   "애를 봐서도 안된다고 했잖아?"   "누가 자기를 말해요? 제가 하겠단 말이지."   "그건 나도 알아들었어.경솔하게 처리하는것이 아니야."   "그 자식도 당신처럼 이랬으면 얼마나 좋겠어요.흐흑..."   상에 엎드려 흐느끼던 녀인의 울음이 점차 대성통곡으로 번져갔다.영원이는 당황하여 급히 녀인의 어깨를 감싸안고 달래둣 속삭였다.   "이러지 마.동네에서 들으면 어쩔려구 그래?"   "돈은 번대로 다 갖다 쓰고...그 주제에 어떻게 번 돈이냐고 따지기는 좋아하고...애인 데리구 노래방에 죽쳐 앉아서 큰소리 땡땡하고...이게 복통 터질 일이 아니구 뭐예요..."   한번 풀린 녀인의 입을 다시 비끌어매기는 어려웠다.영원이는 녀인을 감싸안고 팔에 힘을 가하며 가냘푼 그 몸체를 다독이기만 반복했다.   금옥이는 많은 말을 했다.어쩌구 저쩌구가 도무지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남편에 대한 실망이 더덕더덕 묻어났다.   "자기는 나가서 바람만 피우구...남자는 모두가 숫캐야!"   재잘대던 금옥이가 급작스레 히스테리를 부리며 몸을 터는 바람에 영원이는 하마트면 뒤로 허망 나가 넘어질번 했다.왜서였던지 영원이는 심한 분노를 느끼며 일어선 녀인을 선 자리에서 빙 돌려세우고 무작정 꽉 끌어안았다.   "여기 숫캐 한마리 또 있어."   "놔! 짐승같은것들!"    "숫캐의 맛을 보여줄테야!"   "빨리 놔,소리치겠어!"   "맘대로 쳐봐!"   종주먹을 부르쥐고 버둥대는 금옥이와는 달리 영원이는 여유작작했다.싸우둣 톤을 높히며 이건 아닌데 하면서도 싫다고 한사코 뻗치는 금옥이의 얼굴을 끄당겨 억지로 입을 맞췄다.금옥이는 꼭 깨물것처럼 날치더니 정작 혀가 입속으로 밀려들어가자 발광을 멈추고 고스란히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노끈한 혀로 맞유희를 벌리면서 자꾸자꾸 가슴속으로 옹그러들어왔다.    단지 쓴지 감각으로 잡혀지지 않는 긴 키스였다.   술을 무드없이 마신 때문인지 사유가 혼돈되여 왔다.그래도 기어이 남성을 깨우치고있었다.녀인의 간절한 신음에 재촉 받으며 영원이는 입을 맞붙인채로 녀인을 훌쩍 들어 온돌우로 올라갔다.금옥이는 눕혀지는줄도 모르고 열심히 키스에만 열중했다.   어느새 영원이의 손은 녀인의 옷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금옥이는 본능적으로 손을 들어 막았으나 한사코 고집스레 파고드는 영원이를 당해내지 못하고 그대로 맥을 풀었다.짐작대로 녀인의 가슴은 아무리 끌어모아도 한줌이 되지 않았다.그래도 생각밖에 작은 보석은 탱탱하게 돋아나고있었다.손가락으로 슬쩍 밀었따가 놓으니 씽하고 용수철처럼 튕겨 일어나는것이 생동하게 알려왔다.저도 모르게 손이 녀인의 허리띠를 거머쥐였다.원래부터 남자들의 목적은 거기에 있는지 모른다.여직껏 취한듯 받기만 하던 금옥이가 그때 후다닥 떨어져 나갔다.   "안되요.그건 안되요!"   "왜?"   대답이 없다.가쁜 숨을 몰아쉬며 멍하니 천정만 쳐다보더니 불쑥 물어왔다.   "리혼할수 있어요?"   머리가 저절로 흔들어졌다.무드가 없을뿐이지 어리무던한 안해를 버러야 할 리유는 별로 없었다.   "그럴줄 알았어요.당신은 책임감 있는 남자이니깐요."   금옥이의 눈가에는 순간에 이슬이 맺히더니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사모님은 왜 그리 행복하지요? 저는 또 왜 이렇게 불행하구요..운명인가봐요.그러나 저는 남의 애인 노릇은 절대 할수 없어요.우리는 계속 이렇게 친구로 지내자요."   그러면서 몸을 탈아 영원이의 품속에 안기며 자그마한 입술을 내밀었다.뜨거운 키스가 또다시 이어졌다.수동적으로 당하기만 하는 영원이의 손을 잡아 자기의 가슴속에 넣어주기도 했다.우정과 사랑의 계선을 허리에 귀결시키는 행동이 우스웠으나 그녀는 내내 진지한 표정이였다.그들은 그렇게 한동안 말없이 안고있다가 점심 영업을 위해 몰려올 종업원들 때문에 별 아쉬움 없이 갈라졌다.   집에 돌아오니 아홉시가 금방 넘어서고 있었다.그사이 퇴근하여 집에 돌아온 안해는 정신없이 곯아떨어져 있었고 그 영향을 받아서인지 영원이도 눕자마자 잠들어버렸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안해는 한창 출근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남들이 모두 싫어하는 밤대거리를 신청한 그녀에겐 실업보다 더 큰 관심거리는 없는 모양이였다.   "여기 좀 와!"   ":왜?"   텁텁한 음성이였다.   "두주일이잖아!"   "어제 일은 뭐예요?"   "그게 어디 한게야?"   "꼭 굶은 승냥이야.악착두 하지!"   안해는 구시렁거리면서도 당기는대로 순순히 주저앉았다.   언제나 그랬다.옷을 홀랑 벗기고 이불속으로 끌때까지도 멀쩡하게 앉아있었다.아직 열이  오르지도 않았는데 행진곡 같은 안해의 재촉이 개시를 올렸다.   "좀 빨리요.으흑...시간이 다 돼요."   그바람에 반쯤 정서가 식어갔지만 그래도 오늘은 포기하지 않으리라 작심하는데 어처구니없이 발설되고말았다.안해는 꼬물만큼도 미안해 하는 기색이 없이 옷을 주섬주섬 주어입고는 급급히 나가버렸다.   (빌어먹을 년! 아무래도 남이를 데려와야겠어.)   남이는 아들이다.우리 말을 잃지 않게 하려고 고향에 있는 외가집에 보내놓고 있었다.남이가 돌아오면 안해는 밤대거리를 할수 없을거고 그러면 "승냥이"는 계속되더라도 "빨리빨리"는 다시 연주되지 않을것이였다.   "빌어먹을..."   투덜대며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방광을 깨끗이 비우고나니 배가 고파났다.밥상에는 안해가 챙겨놓은 음식들이 놓여있었다.잠시 금옥이를 또 찾아갈가고 생각했다.술도 얻어 먹을겸 손도 쥐여볼겸...허지만 인츰 도리를 저었다.리혼이 주문되지 않는것처럼 육연도 결코 베풀어 줄리 만무하기 때문이다.그녀와의 거래는 언제나 책임감이 따라다녔다.   영원이는 대충 배를 다지고나서 거리에 나가 택시를 잡아타고 곧추 회사로 들어갔다.   "일요일인데 집에서 푹 쉬지 않고 왜 나왔소?"   숙직실 할아버지가 관심조로 묻는것을 건성으로 대답하고 4층 사무실문부터 열었다.해야 할 일들이 하자면 끝이 없었다.금방 자료더미를 끄집어내였는데 따르릉-전화벨소리가 울려왔다.발작적으로 송수화기를 집어들었다.    "여보세요!"   "집에 돌아가시지 않았군요.역시 짐작대로네요."   대학동창생 선희였다.한때는 그렇게 따라도 거뜰떠 보지도 않던 선희가 근자엔 사흘이 멀다하게 전화를 주고있었다.야한 목소리인것으로 미루어보아 또 무슨 부탁이 있는 모양이였다.머리속에는 그녀의 화사한 얼굴과 만두같은 유방이 조건반사적으로 떠올랐다.   "무슨 일이요?"   "꼭 일이 있어야 전화할수 있나요?"   "그런게 아니라..."   "사실은 그쪽으로 출장갈 일이 있어서 기다려 달라구 그래요."   "언제?"   "금요일 오후."   "알았어."   "그리고 그날 돈을 좀 드텨받았으면 해요.새집을 장식하자니 돈이 모자라서요.자꾸 시끄럼을 끼쳐서 미안하지만..."   "얼마쯤?"   "5천원이요."    "그렇겐 없어."   "그럼 2천원만이라도 해결해줘요."   "그때 보지."    영원이는 메치듯 수화기를 내려놓았다.이젠 일을 보긴 다 틀려먹었다.웬일인지 조금만 자극 받아도 정서파동이 심해지면서 정력을 집중시킬수 없었다.   선희와의 재회는 10년만에 이루어졌다.동기동창생은 일반적으로 같은 계통에 떨어지는것이 상식이였으나 당시 선희는 남편감으로 선정된 사람이 사범전업이여서 지방학교로 함께 배치되여간것이였다.   일이 만들어질려고 그랬던지 본사에 있을 때 교육면을 책임졌던 영원이는 어느 한차례의 교육연구토론회에 갔다가 약속없이 선희와 마주쳤다.10년전보다 퍽 성숙되고 풍만해진 30대 중반의 녀인이 되여있는 선희는 회의의 초점인물이였다.워낙 몸매도 근사했지만 얼굴 또한 비례에 맞춤하게 해사했다.   회의가 끝난후 둘은 동창생이라는 허울아래 조용히 한자리에 앉을수 있었다.어느 고급호텔의 레스토랑에서였다.   "오늘 밤엔 돌아가야 해요.남편이 마중나오기로 했으니깐요."   "자꾸 남편을 거들지 마! 짜증나. 누군 녀편네가 없남!"   영원이는 좀 취한 상태였다.워낙 술을 즐기는데다 권주에 약한 편이여서 차례로 돌아오는 술을 모두 받아 마셨던것이다.서로가 면목없이 만났다가 아쉽게 갈라지는 마당에서 사양이란 금물이라고 인정하는 사람이니깐.그리고는 오차없이 선희의 손목을 잡고 이쪽으로 달려왔던 것이다.   "술 먹는것도 그렇고 성질도 그렇게 꼭 옛날 그대로네요."   선희는 손으로 입을 막고 소리 없이 웃었다.   "남편이란 사람 어때?"   "남편이란 사람 그냥 고린내나는 아홉째죠.근데 어투가 너무 무리해요."   "무리는 힘을 대변해.무리가 많으면 힘이 크다고 했잖아.모택동이...왜 여직껏 소식 한장 없었어?"   "기다렸던가요?"   괜한 투정에 반발심이 생겼던지 도전적으로 물어왔다.크고 까만 쌍겹눈이 두려움 없이 영원이를 직시했다.   "당근이지...미친듯 사랑했던 여자인데..."   "그때 왜 끝까지 지 않았어요? 그랬으면 아마 지금쯤 당신의 마누라가 되였을지도 모르잖아요."   어조는 갈아앉아 있었으나 퍼그나 충격을 주고있었다.이처럼 직설적으로 자기의 마음을 알려주기는 처음이였다.청춘을 돌이킬수 없기 때문일가!   영원이는 그만 기가 죽었다.하긴 몇번의 시탐이 박대를 받았다고 혈기의 나이답게 앵돌아졌던 그였다.   "언제든 꼭 찾아오리라 믿었어요.사내다왔으니깐.그래서 결혼도 늦게 했어요."   "애가 몇살인데?"   "없어요."   찾아갈 생각도 못했거니와 기다렸을줄은 더욱 몰랐었다.   사범전업생은 사랑이 이루어질수 없는 상대였다 한다.결혼을 앞두고 서너번 살을 섞으며 지내보니 아주 볼품 없는 남자였다고 한다.그래서 서운한 느낌도 없이 갈라졌고 그것이 상처가 되여 몇년을 홀로 지내다가 아무렇게나 붙잡아놓은것이 지금의 남편이란다.숫총각이 분명했는데 자기는 경험있는 녀인이여서 가끔 량심의 가책을 느꼈고 그나마 아무런 조치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두 남자한테서 모두 애가 생기지 않아 다행이였다고 한다.그리고는 소리 없이 흐느껴 울었다.   "어디던지 맘대로 데려가줘요.원을 풀어드릴게요."   영원이는 틀림없이 사내였지만 대장부는 아니였다.즉시 카운터로 가서 독방을 신청했다.하루 방세가 저그만치 680원이였다.   방에 들어가서 우선 티비부터 켰다.마침 연한 무도곡이 흘러나오고있었다.   "먼저 춤을 추자요."   틈서리 하나 없이 엉켜붙어 돌아갔다.큼직한 살덩이 두개가 아름차게 가슴에 떡 맞쳐왔다.대학시절때부터 그렇게 쥐여보고싶던 선희의 젖무덤이였다.   누가 먼저라 할것 없이 어느새 미칠듯한 입맞춤으로 번져갔다.입술과 입술간의 탐닉,혀와 혀간의 갈구, 그것은 정녕 혼육을 융화시키는 마력이였다.   "사랑했어."   "저두 사랑했어요.'   헉헉거리며 침대가로 다가가 그대로 쓰러졌다.실 한오리 걸치지 않은 홀몸이 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흐른것 같았다.그러나 그처럼 소유하고 싶었던 녀인의 유방이 한입 가득히 밀려들어와 요동을 칠 때 모든것은 이미 보상받은 셈이였다.   "젖이 너무 크지요?"   "응.포유기 녀인같아!"   "아,애를 갖고파요."   "낳아,만들어줄게."   "아니요.그럼 안되요."   그러건 말건 그대로 힘있게 밀고 들어가 화려하게 폭발했다.   "넌 마귀야.예쁜 녀인은 마귀의 화신이랬어."   "마귀맛 한번 더 보세요."   그 충동질에 사그라졌던 남성이 재빨리 부활했고 어쩔새 없이 영원이는 밑에 깔리우는 신세로 전락했다.그래도 달가왔다.진땀을 빼는 선희가 미친것만 같았다.   눈을 뜬 이날은 오히려 서먹서먹했다.   "아이참,이게 무슨 노릇이죠?"   선희는 수치감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그러는 그녀가 자극을 받을가봐 영원이는 한동안 눈을 감고 조용히 누워있었다.   호텔을 빠져나온 그들은 묵묵히 거리를 걸었다.선희는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오지 못한듯 영원이의 뒤만 졸졸 따라왔다.그러다가 문득 기차역으로 가고있다는것을 발견했던지 우뚝 멈춰서는것이였다.   "애가 생기면 어쩌지요?"   "그럴수가 없어,하루밤새에 무슨..."   "그걸 누가 알아요.애가 생기면 책임져요."    영원이는 흠칫 놀랐다.거기까진 미처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것이다.    "어떻게?"   "놀랄것까진 없어요.그저 아버지 노릇을 착실히 하면 되는거예요."     선희는 갈피를 잡을수 없는 희미한 웃음만 날릴뿐이였다.    그후부터 두려움을 앞세우면서도 한달에 한번씩은 정해놓고 선희와 만났다.상화에 따라 그녀가 오기도 했고 그가 찾아가기도 했다.물론 그때마다 결코 엷지 않은 선물을 그녀에게 선사하군 했다.대개 미모의 녀인들은 옷차림을 즐기는 법인가.선희는 남달리 쇼핑을 좋아했고 보는것마다 욕심냈다.    "아이,저 치마 좀 봐요.멋있죠?"    그렇게 호들갑을 떨어도 사주지 않으면 그만이였다.별로 고까와하는 기색도 없었다.대신 기분이 좋아서 통 크게 사주면 기뻐서 해종일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랬지만 사주었던 사주지 않았던 침대에서의 그녀의 표현은 구별 없이 뜨거웠고 열렬했다.정열에 불타는 녀인이 분명했다.    "임신했어요.두달이 돼요."    어느날 선희가 전화로 이런 소식을 알려왔을 때 영원이는 온몸이 얼어드는 충격을 받았다.그러나 그뒤에 이어진 말은 더욱 그를 아연해지게 하였다.   "도대체 누구 씬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돌려가며 당했으니 말이예요.절반 책임만 지울게요."   무게를 가볍게 하느라고 태연하게 하는 말이였지만 천근같은 부담이 느껴졌다.   사실상 연해의 분사로 영원이가 내려온것도 어쩌면 그런 황당한 립장에서의 도망이라고 보아도 무방할것이였다.    선희는 금옥이와는 완전히 다른 타입이였다.내성적이고  강인한 성격의 소유자인 금옥이는 종래로 선물 같은것을 요구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기쪽에서 고급 담배나 라이타 같은것을 몰래 쥐여주군 했다.그녀의 허리띠는 리혼과 결혼만이 풀수 있는 것이였다.그래서 책임감이 묵중하게 딸려있었다.그러나 선희는 리혼이나 결혼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듯 싶었다.금옥이 한텐 책임감이 부여된다면 선희는 부담을 첨가시켜주고 있었다.    선희는 정확하게 닷새가 지나서 찾아왔다.금요일 오후였다.허줄한 커피점에서 커피를 시켜놓고 둘은 마주 앉았다.몸이 많이 불어난 선희를 직시하기엔 용기가 부족했다.    "몸은 어때?"   "괜찮아요.부담을 가지지 마세요.당신 피줄 아닐거예요."   선희는 전에 없이 순한 모습을 보였다.   영원이는 돈을 넣은 봉투를 그녀앞으로 내밀며 물었다.    '그걸 어떻게 알지?"   "직감이예요."    영원이는 주머니에서 따로 준비해온 돈 2천원을 꺼내 선희의 매끈한 손에 쥐여주었다.    "이걸로 병원에 가서 떼버려!"   "싫어요!"    선희는 실신하듯 고함쳤다.주위의 사람들은 영문을 몰라 흘끔흘끔 건너다 보고있었다.그러건 말건 선희는 단호하게 말을 이어갔다.     "당신과 인연을 끊더라도 애는 못 지워요.홀몸으로 마흔을 바라보는 녀인의 심정을 당신은 알수 없을거예요.고독도 아니고 외로움도 아니예요.모성의 피로예요.알겠어요?흐흑..."    영원이는 어깨를 세차게 떨며 우는 녀인을 망연히 바라보다 묵묵히 일어섰다.녀인은 여전히 요지부동인채 입을 열었다.'    "다신 만나지 알을거지요?"   "..."   "늦게나마 당신을 만나서 행복했어요.마지막으로 하루만 함께 있자요.저의 마지막 소원 풀어주시죠?"   "이러지 마! 내 마음이 약해지고 있어.우린 너무 깊이 빠진거야.헤여나오기 어렵도록 말이야.이젠 정신을 차려야 해!"    말을 마치기 무섭게 돌아서 나갔다,그리고는 무작정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달렸다.귀가에는 피뜩 들은 선희의 마지막 말이 쟁쟁하게 울려오고 있었다.    "당신은 틀림 없는 사내예요.수캐 같고 마귀같은..."    택시운전수의 재촉을 받고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집앞에 와있었다.급히 료금을 물고 내리는데 마침 가게밖으로 나서는 금옥이와 마주쳤다.매양 그러하듯 금옥이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인제 오세요? 전번엔 실수가 많았어요.히스테리가 왔던가봐요."   "제가 오히려 죄송합니다.량해를 바랍니다."   "아니,아니예요.래일 아침 또 오세요.기다릴게요."   "아...앞으로는 그런 시간이 나질거 같지 않습니다."    영원이는 헤식게 머리를 긁적거렸다.녀인의 얼굴에 가는 실망이 흐르는것 같더니 인츰 개여지며 고운 인사를 남기고 집안으로 사라졌다.    영원이는 그 자리에 선채 담배를 꺼내 물었다.어두운 황혼빛때문인지 담배연기는 노오랗게 피여오르고 있었다.    내일이면 또 연휴이다.쉽지 않게 벌어진 휴식날이다.    영원이는 오늘 저녁에도 달갑게 "굶은 승냥이"가 되고 "학대광"이 되리라 작심하며 성큼성큼 집으로 걸어들어갔다.아마 이맘때면 안해는 야간작업 나갈려 준비하고 있을테지...영원이는 입으로 뭔가를 계속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4    네모칸 하늘 댓글:  조회:724  추천:0  2014-08-31
단편소설 네모칸 하늘 장학규 창밖이 시커멓게 흐려오고있다. 아마도 늦은 봄비가 내릴 모양이다. 건국댁은 미처 지팡이를 찾아 집을사이도 없이 벽을 더듬더듬 짚으며 창문가로 비틀비틀 다가갔다. 어제부터 다리가 더 말을 듣지 않는다. 쇼파에서 창문까지 고작 3메터도 안되는 거리를 건국댁은 5분이상 시간을 허비했다. 이럴때마다 건국댁은 자기가 마치 스파이더맨같다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든다. 언제부터인지 딱히 알수 없지만 건국댁은 벽을 짚고 걸어다니는데 이미 습관되여있었다. 사람들은 흔히 꽃봉오리 터지는 봄철은 시샘을 자아내는 계절이라고 말들을 하고있다. 그렇지만 씨 뿌려야 할 땅덩어리가 그대로 걍 말라서 갈러터지는 시점에 하다못해 눈물오리같은 비방울이 흩날리는것도 많이 아름다운 일이라 하지 않을수 없다. 그러나 솔직히 건국댁은 그런 자연의 위대함에는 멸치 똥만큼도 관심이 없다. (나랑 무슨 상관이라구.) 건국댁에게는 이제는 감흥이나 낭만같은것이 거의 남이있지 않는거 같다. 만성 위축성 위염때문에 한때에 한 스푼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건국댁은 맛나는 음식에도 거의 유혹을 느끼지 못하고있었다. 아직 남아있는 동경같은것이 있다면 아마 맑고 따스한 날씨가 아닐까싶다. 아파트밑 으로 차량들이 옹기종기 질서없이 세워져있다. 아직은 한낮인데도 단지내의 골목마다에 할일 없는 사람들이 쉴새없이 오가고있었다. 저 앞으로 건국댁이 못내 아쉬워하는 연못이 내다보였다. 희미한 날씨때문인지 물빛마저 암회색으로 어둡게 변해있는게 유감이였다. 마침 한줄기 회오리바람이 지나가는지 호수물이 가늘게 일자로 줄서서 씽 달리는 모습이 보였다. 제법 근사했다. 도심에서 꽤나 외진 이 동네가 그나마 인기를 끌게 된것은 모두 저 연못 덕분이였다. 건국댁은 지금도 엎어지면 코 닿을 지척에 어마어마한 바다를 두고있는 해변도시에서 자그마한 연못이 왜 이처럼 큰 흡인력을 가지는지 납득되지 않는다. 아무래도 인간은 끝없이 물을 갈구하는, 물이 아무리 많아도 전혀 실증을 느끼지 못하는 수중래(水中来)동물이 틀림없는 모양이였다. 연못 주변에는 싸구려 옷을 걸친 사람들이 엉거주춤 쪼그리고있거나 아니면 아예 찌라시광고지를 엉덩이에 깔고 앉아있다. 어떤 노인네들은 작심한듯 굵은 끈으로 궤여 만든 접이식 의자까지 갖다놓고 팔자 편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서 남들이 버리고 간 낡은 신문장을 뒤적이고있었다. 이미 뒤북이 되여진 신문이였지만 개의치 않고 흥미진진하게 읽고있었다. 좀 있으면 그 신문이 연못가에 그대로 내버려지고 연후 누군가 또다시 그걸 집어서 훑어볼것이다. 좀 젊어보이는 사람들은 풍경보다 손바닥에 쉽지 않게 들어온 스마트폰에 더 신경을 도사리고 열심히 뭔가 들여다보고있었다. 모름지기 누군가 음악을 틀어놓은 모양으로 한쪽에 손바닥만하게 펼쳐진 공지에서는 어설픈 아낙네들이 서로 매치되지 않게 춤을 추고있었다. 건국댁은 저도모르게 연못가의 벤치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솔직히 건국댁이 연못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있는데는 다른 사람은 모르는 나름대로의 리유가 있었다. 네모난 창문에 갓 다가섰을때 첫눈을 먼저 벤치쪽으로 주었던거 같았다. 그러나 그순간 스스로 화들짝 놀라며 급히 눈길을 허공으로 돌렸던 기억이 새롭다. 그리고 벤치에 사람이 있었던지 없었던지 가물가물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다시 벤치에 시선을 주었을때는 그곳에 아무도 앉아있지 않았다. 아니, 처음부터 거기엔 사람이 없었을것이다. 건국댁은 속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였다. 벌써 나흘째나 이렇게 끔쩍끔쩍 놀라고있었다. 건국댁이 눈길을 바로 벤치에 고착시키지 못하는 리유가 거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이맘때면 그 벤치에는 마땅히 한 사람이 앉아있어야 했다. 그 벤치는 그 사람의 전용물이나 다름없었다. 그 벤치는 참말로 쉽지 않게 그 사람이 없을때는 여부없이 항상 비여있었다. 모두들 그 벤치는 그 사람이 집에서 들고내려온것으로 착각하고있는것처럼 보였다. 은빛처럼 세여버린 하얀 머리칼에 둥글넙죽한 얼굴을 가진 남자가 그 장본인이였다. 걸음이 꿈뜨기는 해도 풍채가 름름한 예순 중반대의 사나이였다. 그 늙은 남자를 처음으로 만났을때 건국댁은 정말 멋지고 의젓한 남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저렇게 세련된 남자도 있었다는게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백발이였지만 머리 한톨 허트러지지 않았고 얼굴은 면도를 깨끗이 하여 수염 한대 보이지 않았다. 고급스러우면서도 정갈한 옷차림새도 이 동네서는 쉽게 볼수 있는것이 아니였고 미소 하나 동작 하나도 잘 다듬어져있었다. 건국댁도 그만하면 세상물을 꽤나 먹은 셈이였다. 평생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동서남북으로 세미나요 포럼이요를 다니며 나름 괜찮다는 남자들을 많이 보아왔었다. 자식 낳이를 못해본 녀자의 가슴이 메말라서인지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남자를 거의 만나보지 못했다. 아, 딱 한번 어느 대학의 교수님이 그녀의 마음을 잠간이나마 사로잡은적이 있었다. 작달막한 키에 이발마저 누르끼한 사람이였는데 어찌나 말을 직방배기로 하는지 그의 강연을 듣는 청중들은 모두 뒤에서 사람이 너무 건방지고 싸가지 없다고 수근거렸다. 그런데 건국댁은 오히려 묘한 스릴을 느꼈다. 그 교수가 손 한번 잡아주면서 어디에 오라 그렇게 부르기만 하면 무조건 달려가서 안길것 같은 충동을 느꼈었다. 그러나 단 그 한순간에 불과했다. 단기 강습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건국댁은 하마트면 고양이한테 생선 맡길번한 자신의 충동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어이 상실했던거야. 틀림없이 더위 먹은거지.) 지금 같으면 어림 반푼도 없을 일이였다. 아무리 젊은 나이에 남편을 여위였다고 해도 건국댁에게는 그런 리지와 판단력 그리고 의력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은 아니였다. 간밤 먹은 마음이 아침이면 스르르 무너져내린다. 이러면 안되는데 그러면서도 금방 그 남자가 떠오른다. 뇌에 피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는게 분명했다. 그런 그 남자를 저 벤치에서 처음 만났던것이다. 딱 일년이 되여오는듯 싶다. 그날도 날씨는 여의치 못했다. 하늘은 잔뜩 찌프려져 있었고 바다바람이 아파트단지내 경관 나무가지를 세차게 흔들고있었다. 창가에 붙어서서 밖을 내다보던 건국댁은 사람이 드문 이런 날에 한번 세상을 둘러보고싶은 충동을 느꼈다. 몸에 병을 수두룩이 달고 고향에서 외홀로 살던 건국댁을 양녀가 억지다짐으로 낯선 이곳으로 끌고 왔다. 갓 태여난 피덩어리를 안아 키워온 보람이 있다고 해야 할가. 아무튼 건국댁은 여직껏 함께 해왔던 모든 사람들과 갑자기 소음장치가 된듯 한꺼번에 단절되고 시한부 삶을 아파트에 갇혀 살게 되였다. 네모난 창문이 유일하게 바깥과 소통하는 창구였다. 3층 계단을 내려가는건 건국댁에게는 엄청난 장애였다. 한 계단 내리고 숨을 두번 쉬면서 바깥까지 나서는데 반시간 이상 허비했다. 건국댁은 죽는게 두렵지만 그에 못지 않게 사는것도 똑같이 무섭다는 도리를 처음 터득했다. 처음에는 고혈압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이어서 위축성 위염이 도졌고 그다음 대퇴골두 괴사로 증후군을 이루었다. 좀만 음식이 들어가도 포만감이 느껴오고 구토, 설사 지어는 토혈까지 했다. 더욱 골치거리인것은 걸음을 걸을때마다 다리에 저림이 오거나 통증이 동반되는것이다. 건국댁은 연못에 채 못미쳐서 벤치가 있는 곳에서 간신히 멈춰섰다. 어느새 하늘은 씻은듯 개여지고 바람도 지친듯 잠잠했다. 건국댁은 이마에 돋은 땀을 훔치고 계속 연못까지 걸어갈가고 궁리했다가 어쩐지 자신이 없어져 그대로 벤치에 물러앉았다. 그때 누군가 건국댁앞으로 느릿느릿 다가왔다. 고개를 숙이고 무엇인가 열심히 골몰하던 건국댁은 눈앞에 클로즈업된 반들반들 윤기나게 닦아진 적갈색 구두를 발견하고 화들짝 놀라며 눈을 올렸다. 훤칠한 키에 카키색 스프링코트를 단정하게 입은 늙은 신사였다. 단추를 목밑에까지 가쯘하게 채우고 두손을 주머니에 질러넣고있었다. 얼핏 보기에는 예순 미만되여 보였다. “여기 내 자리요.” 남자는 깔끔한 생김새처럼 말마디도 짧고 분명했다. (개 풀 뜯어먹다가 기침하는 소리하고있네.) 건국댁은 속이 울컥 주먹을 내들었으나 웬일인지 발작을 할수 없었다. 처음 있는 일이였다. 친구들은 건국댁을 칼입이라고 평가하고있다. 특히 버르장머리 밥 말아먹은 인간들에게는 종래로 사정을 봐주는 법이 없었다. 건국댁이 우엉부엉하는 사이에 남자가 다시 말을 걸어왔다. “한옆에 앉아도 되겠소? 서있기 힘들구만.” 건국댁은 마치 누가 들었다놓는것처럼 자기도 모르게 무덤덤하게 옆으로 움직여 앉았고 남자는 사정없이 바로 들어앉았다. 입에서는 들숨은 없고 날숨만 있는지 푸푸 하는 소리만 들려왔다. “처음 보는구만. 어디서 오셨소?” “…” “아, 나는 해방이라고 부르오. 해방나는 해에 태여났다고 아버지가 그렇게 이름지었다오.” 건국댁은 남자가 자기와 동갑이라는데 다시 한번 놀랐다. 지금은 기억에도 희미해진 남편도 그녀와 동갑이였다. 그래서 남편의 이름은 건국이다. 해방되면서 건국되였으니 홀어머니가 쉽게 그렇게 부르면서 이름으로 되였다고 언젠가 남편이 말했었다. 그렇게 천생연분에 보리개떡이라던 남편이 황천길에 오른지도 어느덧 저그만치 30년 세월이 다가온다. “그렇게 되여보이지 않아요. 저보다 한창 어린줄로 알았네요.” “그럼?” “저도 49년도 태생이예요.” “아이구 이럴법이라구야. 이럴법이라구야.” 남자는 과장된 제스처를 취하면서 연신 감탄을 내쏟았다. 둘은 핸드폰번호를 서로 주고받고 한동안 동네방네 얘기로 시간을 보내다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해방씨는 해군 출신이라고 했다. 장교직으로 퇴직했지만 군에서 모든 생활을 책임진다고 했다. 아들딸들이 집을 넘보고 같이 살자고 매일 지청구를 들이대지만 모두 물리치고 지금도 혼자서 생활하고있다고 했다. 부대에서 생활을 돌보는 도우미를 보내주어 별 어려움없이 잘 살고있다고 했다. 이틑날 딸과 사위가 출근하여 얼마 안되여 해방씨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건 건국댁이 그어놓은 마지노선이였다. 아무리 무던한 사위라고 해도 당장 무덤으로 들어갈 할망구가 남자를 만나고 다닌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꼴 한번 제대로 미쳤구나 그러지 아니하란 법은 없을것이다. 빈대도 낯짝 있고 벼룩도 코등 있다고 건국댁은 예나 지금이나 남의 손가락질을 가장 싫어했다. 그날 건국댁은 해방씨로부터 더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마누라는 3년전에 저 세상으로 떠났다고 했다. 그리고 슬하에 아들 하나 딸 둘을 두고있다고 했다. 대략 20년전부터 당뇨병을 앓고있는데 거의 매일이다싶이 인슐린주사액을 맞고있다고 했다. 오래 앓으면 저절로 의사가 된다고 해방씨는 당뇨병에 대하여 상세히 알려주었다. 그리고 인슐린주사도 자기 절로 맞고있다고 덧붙였다. 물론 물고기에게 수영 가르치는 격이지만 평생 총을 가지고 논 사람으로서는 쉽지 않게 많은 지식을 가지고있었다. 늙은 사람이 어디서 그런 힘이 솟구치는지 해종일 얘기해도 지칠줄 몰랐다. 헤여질 림박에 해방씨가 서운한 빛을 감추지 못하며 솔직하게 말했다. “오늘 당신 덕분에 무척 기분이 좋았소.” “여기도 홀가뿐 1인분 추가해요.” “그래? 앞으로 자주 만납시다.” 날이 저물고 달이 바뀌면서 건국댁에게는 변화가 감지되였다. 계단을 내리고 오르는데 별로 힘이 들지 않았다. 밥도 두 숟가락은 거뜬히 먹을수 있었다. 오래동안 구토증상이 없어졌으며 얼굴에 피기가 돋아나기 시작했다. 딸보다 더 극진하게 건국댁을 보살피는 사위는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이면 방에 들어와 문안한다. 물론 힘이 센 사위가 대소변을 돌봐줘야 하는 원인도 있었지만 이마를 짚어보고 직접 밥술을 떠서 넣어주는 정성까지 보여주었다. 처음에는 사위도 남자인지라 그앞에서 허연 엉덩이를 까내놓을수 없어 화장실밖으로 내쫓았었다, 그러다가 어느 한번 일을 마치고 일어서다가 불시에 몸을 가누지 못해 꼬꾸라지면서 머리를 세게 벽에 부딪친다음부터 사위는 아무리 마다해도 화장실까지 따라들어왔다. “우리 엄마는 내가 목욕까지 시켜드렸습니다. 내 어렸을때 먹던 젖이 쪼그라들어서 보이지도 않더라구요.” 사위가 그렇게 능글치는바람에 건국댁은 더이상 거절하지 않았다. 하긴 겨릅대같은 양딸이 몸이 부어 고기덩이가 되여진 건국댁을 이겨낼 방법이 없는것도 사실이였다. 이날도 사위가 문을 노크하고 조용히 들어섰다. “어머니, 요강통 비워야죠?” 코미디언이 제격인 사위는 언제나 무드를 조성할줄 안다. 그 덕분에 건국댁은 사위 미안한줄 모르고 업혀오고 업혀간다. “나 금방 보고 왔네?” “엉? 혼자서요?” “그래. 오늘은 괜찮구려.” “오늘이 아니고 벌써 여러날째입니다. 혹시 호전되였는지 모르니까 한번 병원에 가봅시다." 건국댁이 아무리 손사래를 쳐도 사위는 막무가내로 자가용에 실어 병원으로 달려갔다. 전면 검사를 하는데 거의 반나절이 걸렸다. 그러나 결과는 맹랑했다. “혈압은 고정된듯 합니다만 다른 증상은 호전이 별로 없네요.” 어딘가 건방져보이는 40대 의사는 의아해하는 사위의 눈치를 의식했던지 말을 이었다. “더 악화되지 않은걸 보니 근래에 음식조절을 잘했거나 마음을 잘 다스린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 리유를 치매랑 해당 사항이 없는 건국댁은 좀 알거 같았다. 그러나 사위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라는 표정이였다. “혹시 어머니 어디에 남자 숨겨둔게 아닙니까? 히히” 사위는 항상 그 식이 장식으로 유머로 넘겨가려고 했지만 건국댁은 순간 속이 철렁 하고 내려앉았다. “나 조금씩 매일 운동하고있네. 그게 효과본건지 모르지.” 거짓말도 습관이 되면 새끼에 새끼를 거듭 친다고 건국댁답지 않게 이젠 거짓말이 술술 나왔다. “얼굴이 새빨개지는걸 보니 연애하고있는게 틀립없습니다.” 사위는 그냥 놓아주려고 하지 않고 한수 더 떴다. 이해 겨울은 유난히 따스했다. 왕년에는 그나마 손바닥만한 두께의 얼음은 얼었었는데 이번 겨울은 새벽에 살얼음이 얼었다가 한낮에 싹 녹아버려 연못에서 늦가을에 새끼친 물오리도 사람들의 념려와는 달리 용케 겨울을 났다. “물오리는 늦은 가을에도 새끼를 까네. 사람보다는 퍽 자유로워 보이군.” 물오리 새끼가 끼끼거리면서 에미의 꽁무리를 따라다니는것을 보고 행방씨가 하던 말이 문뜩 떠올랐다. 어쩌면 체념이 덕지덕지 묻어나는 한탄에 가까웠다. 그때 뒤뚱대면서 헤염을 치던 새끼 물오리들이 이젠 제법 여유롭게 물살을 가르고 나아가고있었다. 만물이 새움이 트기 시작하던 어느날 해방씨로부터 또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긴히 할 말 있다면서 속히 내려오라는것이였다. 창문으로 내다보니 벤치는 아직 그대로 비여있었다. 그러나 건국댁은 부랴부랴 옷맵시를 정리한후 문을 나섰다. 벤치에 앉아 10여분 기다려도 해방씨는 나타나지 않았다. 해방씨는 언제나 먼저 도착하여 건국댁을 맞아주군 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게 아니였다. 그래도 건국댁은 별생각없이 조용히 기다렸다. 약속을 동냥아치 쪽박 깨듯하는 사람이 아니란것을 믿고있었기때문이였다. 화창한 봄날에 강렬한 해빛이 벤치를 따스하게 감싸고있었다. 여기저기서 나무들이 타닥거리며 기지개을 켜는 소리가 방불히 들려왔다. 캠핑 나온건 아니였지만 건국댁은 명랑한 봄날을 한껏 즐기고싶었다. 어느덧 건국댁은 소녀가 되여진 느낌이였다. 쪼크리고 앉아 하얗게 세여가는 민들레를 흔상하다가 늘쩡늘쩡 연못가로 다가가 새싹이 한뺌이나 올리솟은 갈대잎을 어루쓸기도 했다. (웬일이지? 약속을 먼저 해놓고 누굴 바람 맞히고 이러지?) 건국댁이 오늘 맛 다 버렸다고 생각하면서 서운하게 일어설 무렵 어디서 나타났는지 해방씨가 갑자기 눈앞에 떡 뻗치고 서있었다. 네이비색 양복에 진붉은 넥타이, 그리고 까아만 구두 차림이였다. 오랜 해군생활에 화려한 색상에 적응되였나보다. “나 저쪽에 숨어서 한창 지켜보았소? 오늘따라 정말 이쁘더라니까.”  “아이, 미워죽겠네요. 남은 속을 조이면서 기다리고있었구만은…” “속 조였다는 사람이 자연을 흔상하느라고 사람이 옆에까지 온것도 몰랐소?” 건국댁은 자기도모르게 얼굴이 달아올랐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도적맞힌 느낌이였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이지요? 이렇게 멋지게 차려입으시고요.” “멋지지 글치?” 해방씨는 어린애마냥 입이 한껏 벌어졌다. 개념 먹고 살아온 사람이라 여직껏 이렇게 흐트러진 모습은 처음 본다. 건국댁은 오히려 그게 더 좋았다. 건국댁은 고개를 끄덕끄덕거렸다. “진짜 멋져요.” “우리 아침 메뉴 똑같은걸 먹었나보우. 이렇게 견해가 같을법이라구야. 나도 내가 참 의젓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허허.” 해방씨가 투박한 손을 내밀어 무작정 건국댁의 가늘고 조그마한 손목을 덥썩 잡았다. “우리 사귀지 않겠소? 아니, 우리 결혼하기오. 나한테 집도 있고 돈도 살만큼은 있으니까 마지막 인생길 함께 손잡고 갑시다.” 건국댁은 불시에 가슴이 후둑후둑 떨려와 몸을 가눌수 없었다. 이 나이에도 아직 풍당풍당 뛰는 심장이 남아있다는게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얼굴이 금방 달아오르고 숨이 꺽 막히게 벅차올랐다. 어쩌면 벌써부터 기다렸던 말이였는지 모른다. 긴긴 밤을 해방씨를 떠올리며 실면했던 적도 있는 건국댁이였다. 그러나 건국댁은 마음과는 달리 머리를 설래설래 저었다. “안돼요. 애들이 주책머리 없다고 욕하겠어요.” “남의 말을 제멋대로 비벼먹구 그러지 말고 도대체 내가 좋나 안좋나 말해보우.” 해방씨는 얼굴이 지지벌개져서 볼멘 소리를 내질렀다. 처음 만났을때처럼 들숨은 들리지 않고 날숨만 푸푸 내쉬는 소리만 들려왔다. “부모는 자식의 첫시작을 보고 자식은 부모의 마지막을 지켜본다는 말이 있어요. 애들한테 못난 모습 보여줄수는 없어요.” “혹시 다른 임자가 이미 있는거지?” “아니라니까요.” “틀림없이 점찍어놓은 임자가 있어.” 해방씨는 씩씩거리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시야에서 사라졌다. 건국댁은 가슴이 무척 아팠지만 소리쳐 부르지 않았다. 녀자와 소는 고삐 잡는게 임자라고 호기뽑던 해방씨가 느닷없이 떠올랐다. 아닌게 아니라 이틑날 해방씨가 맞춤하게 전화를 걸어왔다. 다시 한번 얘기를 나눠보자고 간청해왔다. 그러나 건국댁은 례절있게 거절했다. 각자가 시간을 두고 마음을 정리할 필요가 있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다음날도 그 다음다음날도 해방씨는 전화를 걸어왔다. 건국댁은 아예 핸드폰을 꺼버렸다. 창문가에 다가가보니 해방씨는 벤치에 앉지도 않고 선채로 이쪽을 건너다보면서 부지런히 핸드폰을 누르고있었다. 건국댁은 틀림없이 자기한테 전화를 거는거라고 짐작했다. 해방씨는 련속 닷새동안이나 그렇게 벤치 주위를 맴돌더니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오늘까지 벌써 나흘동안이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있었다. 사실 엿새되는 날부터 건국댁은 조용히 핸드폰을 켜두었다. 이제 해방씨가 다시 전화를 걸어오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달려가 그 넓은 품속에 안겨 꺼우꺼우 한바탕 울고부터 볼 판이였다. 그러나 해방씨는 종적을 감추는것과 동시에 다시는 전화를 걸어오지 않았다. 이틑날 건국댁은 마침내 참지 못하고 지팡이를 찾아 짚고 휘청휘청 계단을 내려갔다. 언제부터인지 다시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한계단 내려가고 두번 숨을 몰아쉬면서 아파트를 벗어나는데 걸린 시간은 반시간이 넘었다. 조용히 벤치에 다가가 말없이 한시간 나마 앉아있었다. 주변에서 온통 해방씨의 숨결이 느껴졌다. 건국댁은 자기가 난센스 한번 잘 부렸다고 못내 후회되였다. 마음 깊은 심저에서 빨리 해방씨를 찾아가 붙들어야 한다고 재촉하고있었다. 건국댁은 핸드폰을 꺼내 버튼을 눌렀다. 액정화면에 “해방씨”라고 익숙하고 친근한 글자가 떠올랐다. 인차 핸드폰에서는 공식적인 도우미의 안내말이 되돌아왔다. “당신이 호출한 번호는 이미 정지되였습니다.” 예감이 별로 신통하지 않았다. 건국댁은 투닥투닥 세차게 튀는 가슴을 부여잡고 황황히 해방씨가 산다는 아파트로 향했다. 한번도 직접 가보지는 않았지만 해방씨의 입을 통해서 여러번 들어 익숙한 동이였다. 웬일인지 다리도 비칠거리지 않았다. 건국댁과 오며가며 얼굴을 익힌 단지내의 사람들은 놀란 눈으로 그녀를 건너다보았다. 그런것도 모르고 건국댁은 거의 한달음에 해방씨의 아파트에 이르렀다. 1층이여서 다행이였지만 지금 심정 같았으면 10층도 기여오를수 있을것만 같았다. 불길했던 예감이 적중했다. 집 문고리에 붉은 천조각이 걸려있었다. 그것은 이 고장 사람들이 망자를 기리는 물건이였다. 대외에 상사가 났음을 알리는 동시에 사악한 기운을 막고 음기가 집안에 침습 못하게 하는 일종의 부적같은 물건이였다. 해방씨가 죽은것이다. 틀림없이 해방씨가 죽은것이다. 닷새째나 모습이 보이지 않고 핸드폰도 셧다운된건 이 점을 충분히 설명하고도 남음이 있다. 해방씨는 건국댁때문에 죽었다. 아니, 건국댁 자기가 죽인것이다. “혹시 다른 임자가 이미 있는거지?” “틀림없이 점찍어놓은 임자가 있어.” 해방씨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남달리 건국댁의 마음을 에이듯 도려냈다. (아니예요. 정말 아니예요. 저를 두고 왜 홀로 가셨어요? 빨리 저도 데리고 가주세요.) 건국댁은 꺽꺽 마른 울음을 터뜨리며 가슴을 마구 잡아뜯었다. 온몸의 피가 심장으로 몰려들면서 끝없이 팽창시키고있었다. 당장 심장이 폭발할것만 같았다. 그런 와중에도 건국댁은 맑은 날씨이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고 비오는 날이였으면 아마 자기가 열번도 넘게 벼락을 맞았을것이라는 생각이 갈마들었다. 차라리 그게 더 시원하고 속편할것이였다. (해방씨 같이 가요. 나도 데리고 가요.) 다리가 후들거리고 하늘이 빙빙 돌았다. 건국댁은 그 자리에 폴싹 꺼꾸러졌다.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 건국댁은 전혀 모른다. 속이 깊은 사위가 집번호를 붙인 열쇠를 목에 걸어주었었다. 아마 동네 사람들이 그걸 보고 건국댁을 집까지 데려다준게 분명했다. 차라리 그대로 그곳에서 죽게 내버려두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가고 건국댁은 생각했다. “엄마가 너무 불쌍해. 제발 이 고비를 잘 넘겨야 하는데…” “글쎄말이오. 그런데 그 동네에는 왜 가셨다우?” 희미한 청각속으로 근심에 쌓인 양딸네 부부간이 대화하는 목소리가 모기소리처럼 낮다랗게 들려왔다. 자식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뭐 하나 보탬이 되여주지도 못하고 부담만 가득 짊어주었다. 건국댁은 안간힘을 써 눈을 간신히 떴다. 초점을 잃은 눈이 창문을 더듬고있었다. 네모난 창문으로 시뿌연 하늘이 보였다. 어느새 하늘이 얼굴을 변한것이다. 2014년 4월 말
3    갈대의 뿌리는 얼마나 깊을가 댓글:  조회:638  추천:0  2014-08-31
단편소설 갈대의 뿌리는 얼마나 깊을가 장학규 타이밍이 절묘한 탈출이였다. 어쩌면 드라마같은 탈출이기도 했다. 어제 아침까지만 해도 맹사장은 전형적인 미소를 짓고 사무실에 일찍 나왔었다. 마침 음력으로 2월 2일날이라 직원들은 룡이 머리를 쳐드는 날 “룽타이터우”라고 해서 옛풍속대로 머리를 가쯘하게 깎고 출근했다. 명절 분위기때문인지 사장을 감시하는 눈초리가 많이 무뎌져 있었다. 맹사장 역시 이날만은 배포유했다. 흐들흐들한 얼굴에는 전처럼 초조함이나 불안감이 전혀 없이 사장실에 태연히 죽쳐 앉아서 별 볼 일도 없으면서 여기저기 전화질을 해댔다. 사무실 분위기는 금방 밖으로 새여나간다. 해산물가공수출업을 하는 회사라 직원이 고작 10여 명뿐이였다. 그 몇명 안되는 직원도 둬사람이 사무실에 앉아 실없이 귀구멍을 후비는외에 나머지는 울안 공지에서 평화롭게 해빛을 쪼이고있었다. 그옆으로 대문이 활짝 열려진 공장건물안에는 고물같이 낡아빠진 기계 몇대가 가동이 제대로 되지 않아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쓰고있었다. 회사 업무가 내리막길로 곤두박질하게 되면서 사실상 맹사장은 연금상태에 처해진거나 다름없었다. 몇년간 줄창 회사 울안 숙소에 홀로 기거하고있는 맹사장의 일거수 일투족이 언제부터인가 직원들의 감시를 받고있었다. 직원들은 여느 회사처럼 사장이 갑자기 증발해버리면 반년간 밀린 봉급을 받을수 없을가봐 전전긍긍하고있었다. 특히 쑈량네 형제가 남달리 맹사장의 활동라인을 매일이고 체크했다. 허우대가 큰 두형제가 같은 회사에 있으면서 다른 직원들을 부하처럼 리드하는 원인도 있었지만 아버지가 하는 홍합양식장이 별로 수익이 그닥잖아 돈이 저으기 딸리는 눈치였다. “준, 오늘 저녁 회식할거라고 직원들에게 알려.” 맹사장은 통역으로 유일하게 남아있는 준이에게 분부했다. 사장과 직원 사이의 모든 교류는 준이를 통해서만 가능했다. 그래서인지 직원들은 준이를 사장의 사람으로 알고있었고 사장은 사장대로 준이가 직원들과 통한다고 인식하고있었다. 아무튼 준이는 샌드위치처럼 가운데 찡겨서 말이 아니였다. 그날 저녁 오래간만에 작은 어촌의 최고급 식당에서 회식자리가 마련되였다. “새해는 새기상이라고 모두들 나를 믿어. 올해부터는 오더가 늘어나고있단말이야. 한번 손을 맞춰 다시 크게 해보자구.” 맹사장은 특유의 달변으로 회사에 기사회생의 새로운 기회가 나졌다고 역설하면서 자꾸 술을 권했다. 직원들도 오래간만에 경계심을 풀고 룡의 수염이라며 국수를 청하고 회사에 단비가 내린것을 축하한다며 돼지머리고기를 주문했다. 소주에 맥주에 짬봉을 하면서 술자리는 새벽까지 치달았고 누구라없이 술에 푹 취해버렸다. 특히 맹사장은 더했다. 일어서다가 그 자리에서 바닥에 머리를 박고 꼬꾸라졌다. 금세 이마에 피가 흘러내렸지만 맹사장은 그것도 모르고 바닥이 침대인듯 그대로 팔다리를 뻗고 잠들었다. 준이는 그 웅장한 체구를 회사까지 업어오느라고 죽는줄 알았다. 그런데 이틑날 점심무렵에도 맹사장은 사무실에 나오지 않았다. 숙소 앞마당에는 맹사장이 10여년 굴린 애마 쏘나타가 상처투성이인채로 얌전하게 서있었다. 직원들은 그 차를 보면서 사장이 아직 깨여나지 않은것이라 믿고있었다. “어제 진짜 술 많이 먹었어. 늙은 사람이 우리랑 똑같이 먹어서 될법이나 한가?” 쇼량의 동생 쑈밍이 오른손 엄지로 코를 쓱 문다지며 지껄였다. 그러자 옆에 둘러선 직원들이 서로 허리를 찔러대며 히히닥거렸다. “그래도 우리 사장 만날 아가씨를 달고 다니더라. 할수나 있으면서 그러는지 몰라 히히히.” 그러나 해가 중천에 걸리면서 모두들 초조한 눈빛이 되였다. 맹사장은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그때까지도 나오지 않았던것이다. “아무래도 이게 아니야. 무슨 일인가 있어!” 쇼량이 동생 쇼밍을 건드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자 삽시간에 분위기가 긴장해졌다. 쇼밍이 본능적으로 움직이자 누구라없이 모두가 그 뒤에 몰려서 우하고 사장의 숙소로 달려갔다. 숙소문은 쉽게 안으로 열렸고 그 안에는 맹사장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화장실에도 없었다. 식모는 맹사장이 여직껏 식사할려 나오지도 않았다고 했다. 회사 구석구석을 뒤져도 맹사장은 없었다. “이 자식이 도망친게 틀림없어.” 금세 추격전이 벌어졌다. 오토바이가 부르릉 시동이 걸리고 자가용이 씽 용수철 튕기듯 마을밖 거리로 달려나갔다. 어촌은 시내와 꽤나 떨어져있었다. 그래도 한시간 품이면 곧 닿을 거리였다. 치밀하게 계획하고 사라진 사람을 찾아온다는건 하늘의 별따기나 다름 없는 일이였다. 아닌게 아니라 한식경도 못되여 하나둘씩 어깨가 처져 회사로 돌아왔다. 쇼량이 다짜고짜로 다가와 준이의 목덜미를 거머쥐였다. “준이 넌 맹사장이 어디로 숨어들었는지 알고있지?” “아니, 난 몰라. 알았으면 여기에 이러구 죽치고있었겠어.” 준이가 입이 열개라고 해명이 안되는 경우가 바로 이런 대목이였다. 아닌게 아니라 쇼량은 그것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뒤에 남아서 회사 물건 챙기려고 그러는건줄 다 알고있어. 이 회사도 준이 니 이름으로 등록되여있잖아. 맹사장을 못 찾으면 니가 책임질수밖에. 쇼밍, 이 친구를 우리 컨터이너쪽으로 데리고 가서 지켜. 나머지는 조를 나누어 매일 공항에서 지키자. 넘이 얼마나 숨어있는가 보자구.” 준이는 쇼밍에게 끌려 어촌을 벗어나 해변쪽으로 걸어갔다. 얼마 안되여 습지가 눈앞에 나지는가싶더니 자잘한 갈대가 드문드문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해에 자랐다가 비쩍 말라버린 속빈 갈대들은 시누렇게 바람에 흔들렸고 점차 두툼하게 길가에 깔려서 사람들의 발길에 밟혀 찌지직 신음소리를 내고있었다. 하아얀 갈대에 가려 더이상 저 멀리 해변의 갯벌도 잘 내다보이지 않게 갈대가 무성해져왔다. 준이는 쇼밍의 앞에 서서 자기 키보다도 더 큰 갈대들에 부대끼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얼마쯤 걸었는지 알바 없다. 다시 해안선이 내다보일 즈음 적황색 컨터이너 하나가 마춤하게 나타났다. 광활한 갯벌과 갈대밭이 멋스럽게 어우러져 장관을 연출하고있는 그곳에 쇼밍의 아버지가 언제 전갈을 받았는지 컨터이너밖으로 나와있었다. “이 친구랑 며칠 이곳에 있어야겠어요. 아버지는 집에 돌아가 주무세요.” “이분 찐부장이 아닌가? 왜 무슨 일 있은거니?” “사장이 달아났어요. 찾아내기전에는 이 친구를 볼모로 잡아두어야 합니다.” 세사람은 컨터이너로 들어갔다. 겉으로 덕지덕지 칠이 벗겨진데 비하면 집안은 꽤나 정갈한 편이였다. 흰 뼁끼로 색을 새로 올린 가운데 앞뒤로 창문을 내여 밝고 환했다. 제일 안쪽으로 스프링침대 두개가 가지런히 놓여있었고 출입문을 면대한 벽쪽에는 자그마한 난로도 설치해두고있었다. 그 난로로 때시걱을 해결하는 모양이였다. 령감은 집에 돌아갈 준비로 부산했다. 침대밑에 아무렇게나 뭉쳐넣은 옷가지들을 꺼내는 순간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러왔다. 아까부터 무슨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그렇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침대밑을 시작으로 집안 구석구석에서 비린내, 노린내에 썩은내가 진동했다. 준이는 코를 싸쥐고 밖으로 나왔다. 큰일난듯 헐레벌떡 뒤따라 나온 쇼밍은 준이가 멀쩡하게 컨터이너에 기대여 서있는것을 보고는 제풀에 멋적었는지 헤벌써 웃었다. 회사에서 오며가며 만날때마다 허리를 굽석이며 “형님”을 개여올리던 쇼밍이였다. 떠나는 령감을 바래고도 준이는 한동안 밖에서 서성였다. 쇼밍은 출입문에 기대선채 아무렇지도 않은듯 핸드폰을 가지고 게임을 놀기 시작했지만 마음의 눈은 항상 준이에게 가 있었다. 갯벌을 따라 드넓게 펼쳐진 갈대가 불타는 석양을 반사하면서 은빛으로 반짝이였다. 부드럽게 일렁이는 갈대는 따스한 솜이불마냥 포근함을 전해주었다. 잠자리를 바꾼 탓인지 새벽까지 잠들지 못했던 준이가 눈을 떴을때는 게으름뱅이 초봄의 해도 한발이나 두둥실 올리솟은 9시무렵이였다. 막 썰물이 밀려갈 무렵이였다. “형, 짱둥어 잡이 나가지 않을래?” 옆에 사람이 없자 쇼밍은 다시 이전처럼 형이란 호칭을 썼다. “너희 집에서는 홍합을 양식하잖아. 짱둥어는 어디서 나지?” “히히히” 쇼밍은 헤식은 웃음을 흘리면서 앞서 컨터이너밖으로 나갔다. 준이가 뒤따라 오는것을 의식했던지 고개도 돌리지 않고 집뒤로 가더니 갈대숲에서 낚시대 두개를 더듬어냈다. “썰물이 나갈때면 재밋어. 칠게나 짱둥어들이 막 물따라 밀려나가지. 그물을 치면 찰게가 덕지덕지 걸려들어. 짱둥어는 좀 손으로 잡자면 힘들어. 배밑에 지느러미 두개로 발처럼 사용하여 기어다니기도 하고 뛰여다니기도 해. 정말 뻘밭에 박아놓은 낮은 말뚝우에도 막 뛰어오를수 있어.” 짱둥어의 부화철이 곧 다가온다면서 쇼밍은 부지런히 준이를 재촉하여 낚시터로 알맞은 자리를 찾아갔다. 미끼를 끼고 던지기 바쁘게 한번에 짱둥이 두마리가 걸려나왔다. 탐욕스러운 짱둥어는 그래서 잡기 쉽다고 쇼밍은 자랑삼아 얘기했다. 쇼밍은 주머니에서 만두 하나를 꺼내 준이더러 먹으라면서 낚시대 하나를 함께 건네주었다. 그러나 준이는 낚시에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대신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힐링하기를 즐긴다. 발밑에서부터 쭉 머리를 들며 먼 바다까지 내다보면 바다물이 틀림없이 사선처럼 보인다. 막 바다물이 자신한테로 금방 쏟아져올것만 같다. 힘든 육체나 아픈 마음이나 그대로 던져서 맞받아보고싶어진다. 바다의 효능은 그래서 병원 못지 않다. 쇼밍이 혼자서 낚시질하는게 먹적었던지 돌아가자고 소리쳐왔다. 부시시 일어나서 쇼밍의 파란색 양동이를 들여다보니 그새 짱둥이는 물론 소라나 칠게, 바지락 따위도 들어있었다. “너 국제백정도 아니구 닥치는대로 다 잡았구나.” “국제적이기야 형들이지. 여기까지 와서 국제사기치면서.” 준이는 금세 얼굴이 뜨거워졌다. 사실 자기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지만 그걸 알아줄 사람이 없다는 막무가내가 다시 한번 엄습해왔다. 그들이 집을 비운 사이에 컨터이너에 사람 하나가 대신 들어있었다. 요즘 세월에는 쉽지 않은 량태머리를 한 앳된 처녀였다. 준희를 보는 맑은 눈동자가 새물새물 웃고있었고 새하얀 얼굴은 붉게 물들고있었다. “엄마가 점심밥 갖다주라고 해서…” 처녀애는 발끝을 내려다보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어제 아버지가 만두 몇개를 남겨두고 갔어. 오늘 하루는 살수 있을텐데…” 쇼밍은 처녀의 손에서 보자기를 받아서 침대우에 내려놓고 준이에게 말했다. “형, 내 녀동생 링링이야. 링링, 오빠한테 인사해.” 두 형제뿐인줄 알았더니 그 밑에 또 녀동생이 있었단말이지? 령감 나이가 예순전일거 같은데 그때면 산아제한이 시작되였을텐데 어떻게 자식 셋이나 낳았지? 하긴 전에부터 저 집안이 빽이 들어있다는 인상은 있었다. 아무튼 이쁜 녀자애가 갑자기 나타나면서 준이의 마음은 한결 밝아졌다. “오 링링이랬지? 먹을거 갖다주어서 고맙다.” 링링은 준이를 바로 쳐다보지 못하면서도 몸을 돌려 급히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쇼밍은 아예 잘되였다는듯 링링에게 짱둥어탕을 부탁하고 자기는 밖에서 모닥불을 지펴 칠게랑 바지락이랑 굽기 시작했다. 링링이 잽싸게 짱둥어탕을 끓여내오는것과 함께 굽기도 맞춤하게 끝나 점심식사는 예상외로 풍성했다. 링링이가 끓여서인지 짱둥이탕은 정말 천하일미였다. 링링은 거두매까지 깨끗이 마무리고 갈대가 바람결에 흐드러지게 날리는 오솔길로 유유히 사라졌다. 이틑날 아침무렵에도 링링이 나타났다. 아울러 아버지의 분부도 전해왔다. 시간나는대로 컨터이너 지붕에 있는 건홍합을 집으로 가져다달라는 부탁이였다. “시내 무슨 큰 회사에서 건홍합을 무지 요구하나봐. 아빠가 온동네의 건홍합을 모두 거두고있어.” “사람 손으로 깐 얼마 안되는 그까짓거 가지고 얼마 번다구 야단이라니?” 쇼밍은 투덜대면서도 아버지의 분부라 거역할수 없었던지 기신기신 컨터이너 우로 기여올라가 반주머니 정도 되나마나한 건홍합을 들고 내려왔다. “쇼밍, 지금 홍합철이잖아. 우리 회사 기계 돌리면 며칠내로 엄청 만들수 있을텐데.” “아, 형, 내 왜 이 생각 못했지. 형이 맹사장한테서 기술 다 배웠잖아.” “기술은 문제 없어. 나한테 맡겨.” “좋아. 나 아빠한테 갔다올게. 링링 니 이 오빠하고 잠시 이곳에 남아있어.” 쇼밍이 부랴부랴 건홍합 주머니를 둘러메고 갈대숲속으로 달려갔다. 쇼밍이 떠나기 무섭게 컨터이너 안은 무거운 침묵이 흐르기 시작했다. 링링은 얼굴이 새빨개져서 숨소리마저 옆사람이 들릴 정도로 가팔아졌다. 준이는 더이상 그렇게 보고있을수 없어 입을 열었다. “링링, 너희 홍합양식장에 한번 가볼수 없을까?” 링링은 대답대신 씽하니 밖으로 뛰쳐나갔다. 준이도 담배 한대를 붙여물고 뒤따라갔다. 갈대밭을 몇고비 에돌아가니 갯벌가에 자그마한 기름배 한척이 매여있었다. 밀물때라 기름배가 바다물에 세차게 흔들거리고있었다. 링링이 민첩하게 배우에 뛰여올라갔다. 그러나 육지동물인 준이는 아무리 애써도 좌우로 흔들리는 배우에 기여오를수가 없었다. 링링은 그제야 홍조를 풀고 해시시 웃으며 손을 내밀어 준이를 끌어올렸다. 기름배를 10여분쯤 몰고나가니 저 얖에 흰색의 부피들이 눈뿌리 모자라게 보였다. 가까이 다가서보니 굵은 줄이 부피와 련결되여있었다. 길이가 200메터는 실히 되는거 같았다. 줄이 수십개는 되였고 원래는 줄줄이 똑바로 펴놓았을거지만 파도때문인지 구불구불 곡선을 이루고있었다. 그것도 묘하게 수십개 줄이 똑같은 모양을 하고있었다. 줄옆으로 배를 몰고간 링링이 바다물에 손을 내밀더니 무엇인가 잡아당겼다. 원래 이 줄 아래로 홍합을 단 바줄이 내려져있었던것이다. “이걸 ‘년’이라 불러요. 5메터 정도되는데 홍합은 이 기다란 바줄에 붙어서 자라요.” 링링은 딸려올라오는 년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작년 9월 중순에 종패를 붙여 바다에 내린것을 2월부터 걷어올려요. 살이 여물게 오른것을 맛보자면 늦은 겨울과 이른 봄 사이의것이 제일 좋아요.” 이제 봄기운이 완연해지면 홍합은 산란을 하게 되는데 이때면 홍합에 독소가 생겨 먹으면 안된다고 부언했다. 썰물때문에 더이상 구경하지 못하고 귀로에 오르면서 링링은 홍합을 큼직한걸로 한아름 떼여냈다. 뭍에 배를 미끄러매기 무섭게 홍합꾸레미를 준이에게 지우고 앞서서 컨터이너로 걸어갔다. 종전의 얌전하고 부끄럼 많던 처녀애가 아니였다. 손재간 좋고 부지런한 어촌 쳐녀로 어느새 변해있었다. 링링은 난로불을 피우고 솥에다 물을 넣고 끓이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쌀을 씻으면서 준이더러 듬직한 홍합으로 스무나문개 까놓으라고 분부했다. 준이는 기계적으로 처녀가 시키는대로 부지런히 몸을 놀렸다. 물이 끓기 시작하자 링링은 준이가 골라내고 남은 홍합을 그속에 넣고 삶았다. 홍합 입이 벌려지는것을 확인한후 건져내더니 다시 새물을 붓고 준이가 까놓은 홍합을 쌀과 함께 넣어서 밥을 지었다. “홍합은 암컷은 살색이 붉고 수컷은 흰편이예요. 암컷이 훨씬 맛있어요.” 맹사장을 따라 해산물가공수출업을 10여년 해온 준이는 물론 그 정도는 알고있었다. 홍합은 어떤 양념도 필요없이 오직 제몸에서 우러나는 천연조미료로 감칠맛을 낸다는것도 알고 숙취해소기능과 비만예방효과도 있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그러나 직접 양식하는것은 처음 보았다. “오빠, 식기전에 얼른 먹어.” “너도 같이 먹자구나.” “그럴까?” 링링은 잰솜씨로 홍합밥을 한사발 꼴똑 퍼서 준이에게 넘겨주고 홍합탕도 떠주었다. 무엇이 그렇게 신나는지 자기도 모르게 코노래를 흥얼거렸다. 점심식사가 끝나서 한참 지나서도 쇼밍은 돌아올념을 않았다. 링링은 쇼밍의 부재를 완전히 잊은듯 침대가에 걸터앉은채 여전히 코노래를 부르고있었다. 요즘 티비에서 한창 방송되는 유행가들이였다. 머리태는 땋았어도 신조류는 막을수 없나보다. “오빠, 소녀시대 노래 알아? 거 지지배배하는거 말이야.” “알구말구. 그게 제비처럼 지지배배하는게 아니구 ‘지’는 ‘와’하는 감탄사고 베비는 ‘아기’란 뜻이야. 나중 시간나면 가사 알려줄게.” “와, 오빠 역시 대단해.” 준이는 난생 처음으로 이성앞에서 으쓱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외딴 어촌이라 마음을 흔들어놓을만한 아가씨가 없었다. 워낙 해산물가공이라는 힘들고 어지러운 일이라 녀자들이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아 직원 전원이 남자일색이였다. 전에 회사에 미스최라고 그나마 쑬쑬하게 생긴 아가씨 하나가 비서로 온적이 있었다. 그러나 미스최는 이 고즈넉한 동네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몇달만에 떠나버렸다. 그후론 넓고 후줄근한 천옷에 네모수건을 머리에 동인 촌아낙네들만 보아왔었다. 갯벌에 진주라더니 이런 동네에 링링과 같이 자연 그대로의 이쁨과 순수함을 가지고있는 처녀가 있었다니 잘 믿어지지 않았다. 준이는 괜히 혀를 끌끌 찼다. “나 말이야. 사실은 오빠를 본지 오래되였어. 한번은 쇼량 오빠를 찾으러 가는것처럼 하구 회사까지 가서 오빠를 훔쳐보고 오기도 했어.” 링링은 저도 모르게 마음속 말이 흘러나간것을 의식했던지 혀를 홀랑 내밀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얼굴이 홍합살처럼 벌겋게 달아올라있었다. 준이는 그게 더 재밋고 즐거웠다. “그때 왜 오빠 나 여기 있어 그렇게 소리칠거지.” “아이참, 말하지 않을래.” “그때 소리쳤으면 내가 링링한테 바로 반했을지도 모르잖아?” “정말?” “그럼, 링링처럼 이쁜 처녀한텐 누구나 다 반할거야.” “오빠도 나한테 끌려?” “응. 너만 괜찮다면 우리 사귀자.” “나몰라.” 링링이는 두손에 얼굴을 파묻으면서 슬그머니 준이에게 기대왔다. 준이는 자연스럽게 그러는 링링을 받아안았다. 그때 출입문이 벌컥 열리면서 쇼밍이 들어서다가 그자리에 굳어졌다. 이어 뒤따라 들어오던 링링의 아버지가 쇼밍의 등어리를 박으면서 아이쿠 소리를 질렀다. 준이와 링링은 후다닥 갈라섰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쇼밍은 물론 령감도 눈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다는것을 알아버렸다. 먼저 쇼밍의 눈에서 불같은것이 타올랐다. “형이 이렇게 얄팍한 사람인줄 몰랐어. 내 의리 없다고 원망하지마.” 쇼밍이 주먹을 들고 다가오는 그 앞으로 링링이 벌떡 막아나섰다. 가냘픈 처녀의 몸에서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모를 일이였다. “오빠 내가 선택한 사람이야. 저 사람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 링링은 다시 문가에 굳어진채로 멀뚱하게 서있는 아버지를 건너다보며 말을 이었다. “아빠, 나 저 사람에게 시집갈래. 내가 저 사람을 좋아한지 아주 오래되었단 말이야.” 두 부자간은 이윽토록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응고된듯 긴 침묵이 흘렀다. 한식경이 자나서 령감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한가지 물읍세. 저 회사 자네 이름으로 되여있다는게 사실인가?” “네. 처음에 정부에서 외국인이 해산물가공업에 종사하지 못하도록 규정했었습니다. 그래서 맹사장이 저의 이름을 빌린거구요.” “리유는 필요없고 확실히 자네가 법인인거 맞지?” “네.” “량이가 이미 공안국에 맹사장을 고발했네. 이미 출국했다면 어쩔수 없는 문제지만 아니면 언젠가는 잡히게 될거네. 이제 남은것은 저 회사 기계를 돌리는 문제인데 우리가 다치면 바로 타인 재산 침범이 된단말일세.” “거야 당연히 그렇지요.” “그런데 자네는 그 회사의 법인이란 말이네. 자네가 회사를 움직이면 아무런 법적문제도 없단말일세. 어떤가? 자네가 기계를 가동하여 우리랑 한번 손잡아보지 않겠나? 기술은 자네한테 있고 나는 원자재가 있고 판로가 있네. 해볼 생각이 없나?” 준이는 잠간 망설였다. 담배 한가치를 피워물고 밖으로 슬쩍슬쩍 걸어나갔다. 어느새 하늘가에는 석양이 조금씩 물들고있었다. 생각해보면 맹사장이 준이를 섭섭하게 대해준것도 별로 없었다. 금방 대학을 나온 준이에게 같은 동포라면서 손을 잡아끌면서 남한테는 절대 보여주지 않는 기술을 배워주었다. 비록 준이한테도 탈출계획을 알려주지 않고 슬그머니 혼자서 도망가는바람에 하마트면 준이가 큰 곡경을 치를번했지만 어쨌던 맹사장한테서 준이는 여러모로 많은것을 배웠었다. 이제 맹사장은 다시 돌아올 가망이 없었다. 낡은 기계를 기술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팔수도 없고 행여 고물로 사겠다는 사람이 나져봤자 직원들에게 밀린 로임에 대면 새발의 피였다. 그 뒤수습을 준이 자기가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갑자기 뇌리를 쳤다. 어쩌면 이 곤경이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되여버린 형국이였다. 기회가 왔을때 부지런히 기계를 돌려 맹사장대신 로임빚도 갚아주고 회사에 생기를 불어넣어준다면 역시 좋은 일이 아닐까 싶었다. 준이는 지신지신 걸어서 갈대숲가로 다가갔다. 뒤따라온 령감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한가지 물어봅시다. 여기 해변가에 웬 갈대가 이렇게 많지요?” “실은 인공적으로 심은거네. 중금속과 같은 오염물질이 유입되는 곳에 갈대를 심어 오염물질을 제거하는게 요즘 대세네.” “아, 그런 원인이였군요.” “갈대의 뿌리는 약으로도 쓰네. 한방에서 쓰는 노근(蘆根)은 갈대의 뿌리줄기를 말린 것으로 위 운동촉진, 이뇨, 지혈 등에 쓰이기도 하네.” “알겠습니다. 저 할게요. 지금 당장 가서 기계를 정비합시다.” “허허허 좋네” 령감은 준이의 어깨를 주먹으로 가볍게 치면서 호방하게 껄껄 웃었다. 쇼밍도 덩달아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어느새 다가왔는지 링링이 슬그머니 준이의 잡을 잡았다. 부드러운 녀인의 손으로부터 따스한 체온이 전해져왔다. 2014년 3월 중순
2    가장자리 댓글:  조회:663  추천:0  2014-08-31
단편소설 가 장 자 리 장학규   (왜 아직도 안 오나?)   란희는 가게밖으로 자꾸 눈길이 간다. 잎이 볼썽 사납게 몽땅 떨어진 벌거숭이 가로수의 나무가지가 간단없이 시선을 가린다.   가게 앞 거리는 해변까지 쭉 이어졌다. 그래서인지 이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은 대개 바다를 오가는 사람들이다.   란희는 그 사람들속에서 불쑥 누군가가 가게로 뛰여들기를 고대하고 있다. 남편이다. 아침에 나간 남편이 점심참을 훨씬 넘긴 지금도 돌아오지 않고있다. 요행으로 남편이 무척 기다려지는게 한편으로 신기하기도 했지만 그러나 그녀는 지금 정말로 애타게 남편을 기다리고있다.   (허참, 세상을 진짜로 오래 살고볼판이네.)   란희는 자조하듯 머리를 흔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옆에 있어봤자 밥축이나 내는외에 아무런 도움도 안되는 남편이란 인간때문에 반나절 남짓 뇌신경에 바이러스가 감겨든게 억울하기도 했다.   언제든 한번은 꼭 저 인간과 결판을 내야겠다고 마음 먹은지 오라다. 도무지 남편이라고 믿고 살아줄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다. 허우대가 멀쩡한 사내가 언제나 어깨를 옹송그리고 다니는것이 꼴불견이다. 항상 내의를 올려서 시커먼 배꼽이 드러나는것도 밉상이다. 밥상에 아무거나 내키는대로 음식이라고 차려놓아도 좋다궂다 투정없이 왕창 먹어주는것도 많이 게걸스러워 보인다. 욕해도 헤식은 웃음으로 넘어가고 다그쳐도 좀체로 세상 급한줄 모른다. 남편은 계속 자기 멋대로 산다. 도대체 고쳐지지 않는다.   아무것도 아닌 남편을 란희는 지금 속으로 윽윽 벼르면서도 조바심이 타서 기다리고있다.   란희네가 인파로 북적이는 이 노른자위에 슈퍼를 낼수 있은것은 순수하게 우연적이였다. 마침 그무렵 거리를 새로 정비하게 되면서 길거리를 파헤치고 건물앞에는 비계를 가설하게 되였다. 량옆의 상가들은 모두 아우성질하고있었다. 너나없이 출타가 새로운 이슈로 부상한 가운데 란희는 가게를 급처분하려는 주인으로부터 시세보다 많이 낮은 가격으로 가게 하나를 양도받을수 있었다. 그리고 분식점을 하자던 계획을 변경하여 전문 한국상품을 판매하는 슈퍼를 개장했다. 불편한 거리를 통해 밥 먹을러 오는 사람이 많지 않을대신 불편한 거리를 어쩔수 없이 지나치거나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필수품을 구매할 사람은 꽤나 될거라는 판단이였다.   란희의 판단은 적중했다. 주변가게들이 잠시 휴업하거나 열정이 떨어진 기회에 아침 저녁으로 줄기차게 영업을 한 덕분에 가게는 거짓말같이 흥성거렸고 2년여후 도로정비가 완전히 끝났을때는 라이벌이 없을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그때로부터 집주인의 심술이 시작되였다. 처음에는 5년이란 계약기한을 취소하고 집세를 20퍼센트 올려야 한다고 강하게 요구했다. 란희는 다투다못해 계약리행을 집행해달라고 법원에 소송장을 냈다. 안경이 코밑까지 굴러떨어질듯한 법원일군은 귀찮다는듯 하품을 연달아 쏟아내며 돌아가서 심리날자를 기다리라고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리고 꿩 구워 먹은 자리로 다시 소식이 없었다.   집주인은 더욱 기세가 올랐다. 셔터를 새로 달아야 한다면서 사람 여럿을 데리고 와서 출입문을 며칠씩이나 봉해버렸다. 경찰에 신고하니 이번에는 근사하게 생긴 경관이 끄나불인듯한 사복차림의 젊은 친구 하나를 끌고 왔다. 계약서를 보고 신분증을 확인하고 현장을 사진 찍은다음 돌아가더니 역시 가타부타 뒤말이 없었다.   결국 집주인의 일방적인 리그에 란희네는 꼬리를 내리지 않을수 없었다. 요구대로 집세를 20펴센트 올린다는 새 계약서에 서명했다. 승리자의 웃음을 게바른 집주인의 몰골이 밤마다 떠올라 잠을 잃기가 십상이였다. 시도때도 없이 한밤중에 일어나 흰 종이에 검은 글씨, 그리고 빨간 지장이 찍혀진 계약서를 보면서 저게 정말 구속력을 가지고나 있는것인지 그저 의구심을 버릴수 없었다.   아닌게 아니라 집주인의 속셈은 그게 아니였다. 속아지 비뚠 넘은 주둥이도 비뚤고 행실도 비뚠다고 기어코 란희네를 쫓아낼 궁리였다. 행적도 없던 양아치들의 소란도 그무렵부터 성화를 부렸고 챙이 큰 모자를 쓴 사람들도 그후부터 뻔질나게 들락거렸다.   그제는 공상국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한꺼번에 다섯명씩이나 몰려들어오더니 인사수작도 없이 무작정 선반우의 물건들을 마구 뒤적거렸다. 물건을 들고 대충 들여다보는듯 하더니 그대로 바로 바닥으로 던져버리기 시작했다. 직원들이 놀라 구석쪽으로 몰려가 엉켜섰고 손님들은 좋은 구경거리를 만난듯 우야 몰려들었다. 그중 번대머리를 한 작달막한 사내가 가장 기고만장했다. 개잡은 포수처럼 으시대며 물건을 그저 던지는게 아니라 아예 메치고있었다.   "이게 무슨 짓거리예요?"   란희가 충격속에서 깨여나 죽기내기로 앞을 막고 나섰을때는 매장안은 이미 아수라장이 되여버린지 한참이였다.   "이건 깡패짓보다 더한 강도짓입니다. 고발할거예요. "   그 말에 번대머리 난쟁이가 머리를 돌려 노려보더니 문득 발을 들어 바닥의 물건을 콱 내리밟았다. 그건 마침 신라면이였다. 면덩이가 발밑에 밟혀서 찌찍찍 소리내는게 귀청에 아프게 들려왔다.   "어디든 고발해봐. 외국식품은 중국문으로 된 설명문이 있어야 한다구. 국가규정이야. 여봐 쑈왕, 이 집에 벌금 때리고 영업허가서 몰수해!" 공상국 사람들은 들어올때처럼 우르르 몰려나갔다.   대충 시나리오는 직감적으로도 얼마간 잡혀왔다. 아웃사이더들이 흔히 당하는 조난이였다. 거기에 토를 달아서는 절대로 답이 있을수 없다. 인저리타임이 필요한 시점이였다.   란희는 바로 남편을 호출했다. 이런 대목에 남편을 캐스팅해봤자 제대로 될 일이 만무하겠지만 그래도 머리에 떠오르는 사람은 남편이 유일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란희의 속이 삶아지고 다시 구워져서 배배 탈때에야 남편은 시뻘겋게 충혈된 눈을 하고 비칠비칠 돌아왔다.   "방법 없지. 돈 써야지."   남편이 돌아와서 한 말이 단 이 한마디였다.   그리고 이틀씩이나 갑자르다가 겨우 오늘 아침 란희한테서 돈을 받아 나갔다. 뭐 친구의 사돈이 잘아는 한족친구가 공상국 사람들과 친하다고 하면서 술 한잔 잘 내면 될거라고 했다. 그렇게 나간 남편이 하루종일 전화 한통도 없다.   사실 란희도 인젠 모가 다 갈리여 더이상 정 맞을 자리도 없다. 벌써 오래전부터 내릴대로 내려 더이상 내릴 꼬리도 없다. 돈 내라면 돈 내고 술 사라면 술 사는 컨셉에 많이 익숙해졌다. 양심에 털난 인간들과 마주하기 싫어 남편을 내세우는데 불과했다.   그런데 그 남편이 여직 돌아오지 않고있다. 난생 처음 꽤 큰 돈을 쥐여주었다. 전에도 잔돈을 주어 밖으로 내보내면 처리하라는 일은 처리하지 않고 술을 먹는 경우가 더 많았었다. 그런데 이번은 그게 아니였다. 액수도 많았지만 그보다 발등에 떨어진 불을 당장 꺼야했다.   (이 인간 오늘 오지만 않아봐라. 정갱이 분질러놓던지 일을 낼테야.)   란희는 도적이 개꾸짖듯 속으로 벼르고 또 별렸다. 남편이 당장 유기질 비료로 화한다해도 아까울게 없었다. 섭섭할것 같지도 않았다. 그러나 돈은 정말 걱정되였다. 남편이 그 돈을 어떤 엉뚱한 넘들과 술 하면서 다 써버리면 큰 일이다. 돌이켜보면 이 일년은 바람 잘 날이 거의 없어 고추가루 몇 주먹 판것 같지 않았다.   늦겨울 해가 어둑해질 무렵 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출입문을 등지고 물건을 정리하던 란희는 그 자세 그대로 꽥 소리 질렀다.   "뭐 하느라고 이제 왔어? 엉? 지금 한가하게 풍월 읊을때에요. 에쿠에쿠, 당신도 남편이라구 믿구 사는 내가 어리석지."   그래도 대답이 없다. 남편은 항상 그 식이 장식이다. 언변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예 그녀와 말 섞기를 거절하는 타입이다.   "왜 말이 없어요? 한번 핑계라도 대야 하는게 아니예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란희는 어떤 심상치 않은 예감이 들어 본능적으로 몸을 돌렸다.   들어온 사람은 남편이 아니였다. 출입문에는 남편 대신 웬 작달막한 청년이 부자연스레 서있었다. 많이 야윈 몸매였지만 근육질은 탄탄해보였고 특별히 눈길이 사냥개처럼 예리하고 날카로웠다. 아래우 옷은 누가 던진걸 아무렇게나 주어입은듯 매치가 안되는 차림새였다. 오래동안 먼 거리를 허우허우 떠돌아온 모습이였다. 피기 없는 얼굴에는 지치고 허기진 흔적이 사뭇 무겁게 찍혀있었다.   란희는 괜스레 두 손을 비비면서 잘 안되는 중국말을 버벅였다.   "이거 미안합니다. 난 애 아버지인가 해서요. "   그러나 손님은 그때까지도 입을 열듯말듯 서성거렸다. 주위 환경에 적응되지 않는듯 두리번거리는양이 무척 의심스러웠다. 앞에 선 란희를 바라보기보다 문밖을 더 의식하고있는 모양이였다.   "배 고파요. 돈 10원만 주세요." 뜻밖에도 청년은 또렷한 조선말로 중얼거렸다. 란희 앞으로 내민 손은 바싹 말라 가죽만 남았고 먼지와 때로 얼룩져있었다.   "조선족이네요?"   아마도 슈퍼창문에 스티커로 써붙인 조선글을 보고 찾아들어온 모양이였다. 란희는 똑마치 자기 일처럼 생각되여 가슴이 찡해났다.   "배 고파요. 밥 한그릇 사먹게 돈 10원만 주세요. " 손님은 인정에 앞서 허기진 배가 더 급한듯 같은 말을 다시 곱씹었다.   "아, 이 정신 봐. "   란희는 부랴부랴 주머니를 뒤졌다. 거짓말같이 10원짜리 대신 20원짜리 한장이 겨우 들어있었다. 청년은 어줍게 내미는 그 돈을 덥석 잡아쥐더니 허리 굽혀 인사 올리기 바쁘게 문밖으로 나섰다.   "잠간만."   저 사람을 절대로 저렇게 보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려염집에서 정조비 세우겠다는 욕심은 없었다. 란희도 한때 정말 어렵게 살았었다. 그래서 가난이 창문으로 들어오면 행복은 대문으로 도망간다는 도리를 잘 알고있었다. 란희는 지금도 눈보라가 윙윙 휘몰아치는 겨울날 밤에 젖먹이 딸애를 둘쳐엎고 빚군들을 피해 정든 고향을 떠나던 옛일이 눈에 선하다. 아마도 남편에 대한 원망은 그때문에 더한지도 모른다.   청년은 갑자기 몸을 홱 돌렸다. 날카로운 눈에는 경계의 빛이 선했다. 어느새 주먹이 불끈 쥐여져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순간이였다. 청년은 불시에 머리에 손을 얹으며 휘청거렸다. 란희는 얼른 다가가 청년의 팔목을 잡았다.   "얼른 들어가요. 추운데 객지에 나와 고생 얼마 많겠어요."   청년은 만사를 포기한듯 순순히 끌려왔다. 란희는 매대앞으로 걸상을 갖다놓고 청년을 주저앉혔다. 연후 급히 식품선반쪽으로 달려가 신라면 세봉지를 가져왔다. 허기를 가장 빨리 달래주는것이 라면이다. 란희네도 시간이 없거나 식사시간이 늦어졌을때면 라면을 끓여먹군 했었다.   라면을 끓이는 그 짧은 시간에도 청년은 잠이 흠뻑 들었던 모양이였다. 란희가 가볍게 소리쳐 부르니 불에 덴듯 몸을 그대로 훌쩍 솟구쳐 일어서는데 례사로운 동작이 아니였다. 당장 란희의 목을 부러뜨릴듯 세모눈을 하고 쏘아보았다. 다음 순간 구수한 라면 냄새를 맡았는지 다시 맥없이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식어요. 어서 먹어요."   란희는 속이 섬뜩해왔다. 문뜩 이 사람이 그저 단순히 배고픈 사람만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좁은 가슴에 하많은 사연을 깊게 품고있는 사람이 분명했다. 그 사연은 함부로 다쳐서는 안되는것이였다. 란희는 더이상 청년과 말을 주고 받을 필요가 없다는것을 심심히 느꼈다.   세봉지의 신라면이 눈 한번 깜짝할 사이에 청년의 배속에 들어가버렸다. 게눈 감춘다는 말이 실감으로 다가왔다.   "정말 고맙습니다. "   청년은 오래간만에 입을 열었다. 허리를 굽혀 큰 인사를 올리더니 다시 문밖으로 나갔다. 아까보다 발걸음이 많이 가벼웠다.   란희는 더는 만류하지 않았다. 자칫 감정의 덧에 걸려 큰 사고를 저지를번 했다는 안도와 더불어 어쩌면 자신이 대목마다 주견을 잃고 한없이 약해지는지 그저 얄밉기만 했다.   (좀 독해져야 하는데!)   란희는 아무래도 오늘과 같은 결과가 나올줄 알았더라면 당초에 집주인과 대판 싸웠어야 하는거라고 매일매일 후회하고있다. 그러나 후회란것은 아무리 일찍해도 이미 늦은것이다. 그뿐 아니라 후회할 일도 매일매일 생겨나고있었다. 공상국 사람들과도 그랬다. 물건들을 막 바닥에 내팽개칠때부터 대들어서 야단했어야 했다. 설명서가 없으면 함부로 남의 물건을 바닥에 던지고 발로 짓밟을수 있는건가? 법은 법대로 집행하면 되지 않는가. 그런데 그때 왜 참았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다혈질인 자기가 너무 쉽게 포기란것을 하는거 같았다. 아니, 어쩌면 자신의 몸속에 대세에 고스란히 순응하는 유전인자가 깊숙히 자리를 틀고있는지 모른다.   실지 번대머리 난쟁이가 사람들을 이끌고 왔을 때 란희는 이건 례사 검사가 아니라 자신을 직접 과녁으로 삼은것이란것을 육감적으로 느꼈다. 뒤간에 든건 상전인데 하인이 똥구녕에 힘을 준다고 번대머리 난쟁이가 지랄 용천하는데는 집주인의 사주가 있는게 분명했다. 그런데도 란희는 막무가내로 체념만 하고있잖은가?   (정말 당하기만 해야 하는가.)   어느새 거리에는 가로등이 켜지고 아파트에도 하나둘씩 전등이 켜지기 시작했다. 아직 너무 어두운 편은 아니지만 저녁 식사 시간이 점차 다가오면서 거리에는 행인들이 뜸해졌고 대신 오가는 차량들로 북적였다.   아무래도 남편이 공상국 사람들을 모실대신 어느 어중이떠중이와 더불어 생일잔치를 베푸는게 틀림없을것 같았다. 더위 먹은 사람처럼 팽창한다 하면 바로 정신을 잃어버리는 남편이다. 이렇게 한없이 기다리는건 무리였다.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밀기전에 불러와야 했다. 란희가 핸드폰을 꺼내 버튼을 누르는데 슈퍼문이 조용히 열리면서 누군가 민첩하게 들어섰다.   나간지 한시간도 채 안되는 아까 그 청년이였다. 누르끼한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그러나 눈길에는 살기가 다분했다.   란희는 청년이 다시 돌아온 리유를 묻지 않았다. 청년의 고집스러운 눈길이 무엇인가를 암시하고있었다. 속이 철렁 하고 내려앉았다. 어렸을적 배운 동곽선생이 불현듯 떠올랐다. 란희는 기척없이 뒤로 크게 몇걸음 물러섰다.   청년은 문을 등지고 주춤 멈춰선채 란희를 쳐다보았다. 두 사람 사이에 깊은 침묵이 흘렀다. 게다가 슈퍼안의 전등도 켜지 않아 분위기가 한결 무겁고 침침했다. 주저하는듯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꺼냈다하던 청년이 한참만에 가벼운 목소리로 물어왔다. "위해에 가려는데 차비가 없어요. 한 100원 빌릴 수 없습니까? "   란희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대뇌는 빨리 돈을 주어 청년을 내보내라고 지시했지만 가슴은 너무 서둘러서는 안된다고 충고하고있었다. 청년이 호주머니에서 손을 꺼내는 틈을 타 슬쩍 훔쳐보니 거기에 쇠붙이 같은것이 들어있는지 딱딱하게 보였다.   계산대는 출입문쪽으로 있었다. 그리고 돈은 카운터안의 서랍에 있었다. 청년이 한눈에도 들여다볼수 있는 위치였다.   "거기 계산대안의 서랍에 있으니 절로 꺼내세요. 저는 전등을 켜고 물건들 좀 정리해야겠네요. " 란희는 대수롭지 않다는듯 가볍게 말하면서 자연스럽게 벽쪽으로 다가가 스위치를 눌렀다. 전기가 들어오면서 삽시간에 집안이 환하게 밝아왔다. 란희는 자기가 이렇게 침착하리라고는 스스로도 생각지 못했다. 청년은 여전히 주저하는 눈빛이였다. 미동도 하지 않은채 황당한듯 믿어지지 않는 눈으로 란희를 지켜보고 있었다. "한가지 청이 더 있습니다. 사실 저는 어디 가서 잘데도 없습니다. 오늘 하루밤만 여기서 신세지면 안될까요?" 란희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란희로서는 아무렇게도 대답할수 없는 요구였다. 안된다고 거절하면 란희는 이 집에서 다시 나갈수 없게 될것이다. 그렇다고 허락할수도 없다. 청년이 란희를 고스란히 내보낼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청년과 슈퍼에서 하루밤을 자야 한다는 말이 된다. 저도 모르게 온 몸에 소름이 끼쳤다. 드디여 올것이 온셈이다. 다시 침묵이 흘렀다. 청년은 고집스레 출입문을 등진채 한발짝도 움직이지 않았고 란희는 란희대로 쉽사리 움직일수 없었다. 그 어떤 불필요한 움직임도 엄청난 결과를 몰아온다는것을 란희는 잘 알고 있었다. "하루밤이면 됩니다. " "한마디 물어봅시다. 왜 하필이면 여기죠?" "이곳에 아는 사람이라고는 한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아는 사람이 봉이 되여야 하는겁니까?" 란희는 저도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마음 깊은 곳에서 다시 한번 왜 어째서 무엇때문에 기를 죽이며 살아야 하냐고 물어왔다. 그 물음은 충격파가 큰것이여서 란희의 자그마한 몸체가 도무지 억제할수 없는것이였다. 잠간이였지만 란희는 자기가 히스테리가 들린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처 아차할새도 없이 분수처럼 터져나간것이다. 청년은 눈이 휘둥그래진채 머뭇거렸다. 손이 뒤통수로 올라갔고 눈길이 느슨하게 풀려지기 시작했다. 한동안 머리를 긁적이던 청년이 싱거운듯 카운터에 기댔다. 가까이에 있는 허락한 돈도 꺼낼념을 않고 무엇인가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모습이였다. 란희는 운신의 폭이 넓어졌다. 아까 청년이 먹다남은 라면국물을 화장실에 들고가 버려도 청년은 별다른 행동이 없었다. 잠간이지만 란희는 화장실 문을 안으로 잠그고 110에 구조를 요청할가고 생각해보았다. 안되는건 아닐것 같았다. 청년이 화장실 문을 부시는 시간이면 얼마든지 경찰이 달려올수 있을것이였다. 그러나 왠지 란희는 그대로 돌아나와 다시 비자루를 찾아들고 바닥 청소를 시작했다. 경계심을 늦춘 청년에게 발작할 기미를 줄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위험이 다시 다가올때 화장실로 피해도 넉넉하다는 자신이 생겼다. "이러면 어떨가요? 제가 200원 드릴게요. 3~40원이면 괜찮은 려관에 들수 있어요. 차비 100원을 쓴다해도 60여원이 남으니 그 돈으로 며칠은 대수 넘길수 있잖아요. " 란희는 오른손에 비자루를 단단히 잡은채로 청년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돈액수는 의식적으로 적게 말했다. 많은 돈을 주겠다고 먼저 말하면 그녀가 겁을 집어먹었다고 의례 짐작할거 같았다. 사실 그랬지만 최저로 청년이 분에 넘친 요구를 못하도록 미리 막아야 했다. 청년은 고민에 빠진듯 눈쌀을 찌프리고 아무 말도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여기서 하루밤 주무세요. 저는 집에 가 자구요. " 아차 했지만 순간 어떻게 그런 말이 나갔는지 스스로도 알수 없었다. 조심조심한다는게 어느결에 마음의 탕개가 풀어진 모양이였다. 청년은 갑자기 제정신이 돌아온듯 카운터에서 몸을 일으켰다. 날카로운 눈매에서 다시 한번 살기가 번쩍이는것이 보였다. 란희는 비자루를 쥔 손에 힘을 주면서 천천히 뒤걸음쳤다. 그사이 총각의 몸도 카운터를 떠나 한걸음 앞으로 나와있었다. 총각이 한걸음만 더 앞으로 내디디면 란희는 냉큼 몸을 돌려 화장실로 뛰여들어갈 생각이였다. 바로 이때 슈퍼문이 활짝 열리며 남편이 세 친구와 더불어 왁짝 고아대며 들어왔다. 술냄새가 진동했다. 청년은 흠칫 놀라면서 옆으로 피해섰다. 어느새 오른손이 다시 주머니에 깊숙히 들어가있었다. 그런줄도 모르고 남편은 휘청이면서 청년과 란희 사이에 끼여들어섰다. "이 사람 누구야?" 청년의 매서운 눈길이 다시 한번 란희의 얼굴에 꽂혔다. "손님이예요." 란희의 차분한 대답에 청년은 눈이 데꾼해졌다. 청년은 망연자실한채 조심스레 몸을 돌리더니 바로 미꾸라지처럼 남편이 들어오면서 미처 닫지 않은 출입문을 빠져나갔다. 란희는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 한달음에 달려가 카운터 너머로 손을 뻗쳐 100원짜리 지폐 한장을 서랍에서 꺼내 뒤따라 나갔다. 청년은 어느새 한달음에 거리를 가로질러나가고있었다. 금방까지도 침착하고 당당하던 모습은 가뭇 사라지고 허둥지둥 앞만 바라고 잰걸음을 놓고있었다. "여보세요." 란희도 두려움없이 거리를 건너갔다. 청년은 뒤에 다른 사람이 따라나오지 않은것을 눈치챈 모양으로 걸음을 멈추고 돌아섰다. "아까 물건 사자던 돈이예요. 가져가세요. " 슈퍼밖으로 남편과 남편의 친구들이 나와서 영문을 모르겠다는듯 이쪽을 바라보고있었다. 그러던말던 란희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청년앞으로 다가가 돈을 청년의 손에 쥐여주었다. 모름지기 청년의 손은 가늘게 떨고있었다. 그러나 청년은 돈을 내치지는 않았다. 돈이 든 손으로 주먹을 하더니 한결 점잖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돌아서는 청년의 입에서 억 하는 흐느낌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야수의 울부짖음에 다름아니였다. 란희는 청년이 멀리 사라질때까지 그 자리에 꼼짝않고 서있었다. 남편과 남편의 친구들도 웬 영문인지 모른채 슈퍼밖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란희는 남편이 늦은 리유를 거의 알것 같았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 아니 새란 법은 없을것이다. 이제는 남편이 나가서 공상국 사람들을 수습했냐가 별로 관심거리가 아니였다. 어쩌면 해결하고 란희더러 한번 보라고 시위할러 온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런저런 구차한 변명을 하려고 친구들을 대동하고 왔을지도 알바없다. 아무튼 이젠 그게 대수롭지 않다. 왜 거기에 집착했던지 자신도 알바 없었다. 애초부터 누군가를 믿는다는 자체부터 잘못된 일인지도 모른다.   남편네들은 아무래도 밤새워 술놀이를 할 잡도리인거 같았다. 아무렴 그것도 괜찮겠다싶었다. 마시겠다면 마시게 하고 먹겠다면 먹도록 해주자. 그게 그들이 사는 재미인데야 어쩐단 말인가. 고작 그 정도가 락이고 삶의 의미인데 만족주면서 지나보내자. 앞으로 난제는 스스로 해결하는것이 숙명이라고 생각하니 마음도 한결 갈아앉고 넓어졌다.   란희는 천천히 거리를 되돌아 걸어왔다. 아무렴 지옥같은 저런 남편하고도 여직껏 이겨내면서 살아왔을라니 세상에 못 넘어갈 일이 어디 또 있을가싶었다.                                                                                                    2014년 1월
1    129번 댓글:  조회:955  추천:0  2014-08-31
단편소설 129번 아, 미치겠네. 그녀는 워이커광장 버스역에서 바장이고 있다. 벌써 그러기를 20여분이다. 129번 버스는 여전히 나타나지를 않는다. 건너가본다? 눈으로 힐끔 건너다 보이는 거리 저쪽 리커라이슈퍼 밑이 129번 선로의 출발역이다. 걸어서 채 5분도 아니되는 거리이다. 거기서 기다렸다가 버스를 타면 한 40분 동안 편안히 앉아서 집까지 갈 수 있다는 유혹을 난생 처음 강하게 받았다. 그래도 그녀는 서성이기만 할뿐 쉽게 걸음을 성큼 떼어서 거리를 넘지 않는다. 웬일인지 그녀는 팔다리를 쭉 늘이고 앉아있기보다 붐비는 사람들속에 서서 흔들리며 가는데 더 습관이 되고 스릴을 느끼는 편이다. 이제야 오네. 진짜… 그녀는 선 자세 그대로 머리만 왼편으로 돌린채 저 앞에서 굽이를 돌고 있는 버스를 눈여겨 살펴본다. 연푸른 색상만 보아도 129번 버스가 틀림없었다. 한눈에도 서있는 승객이 여럿 되도록 만원인데도 하품을 토하며 심드렁하게 서있던 사람들이 앞다투어 길가에 나서기 시작했다. 중국사람들은 뭐나 다 늦은데 버스 타는데만은 누구보다 빠르단 말이야. 그녀는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슬쩍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인간이란 참 아둔하고 미련한 동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남보다 먼저 올라가도 어차피 시루속 콩나물처럼 허리 휠 틈도 없이 꼿꼿이 서서 가야 할 운명이 분명하지만 목숨을 걸듯이 밀고닥치며 버스에 오르는 것을 보면서 그녀는 인생이 참 더럽고 역겹다는 느낌뿐이었다. 늘쩡늘쩡 마지막으로 오른 그녀는 한사코 입구쪽에 몰려서있는 사람들 틈새를 간신히 비집으며 뒤쪽으로 움직이다가 버스가 예고도 없이 부르릉 앞으로 나가는 바람에 하필이면 이쪽을 향해 서있는 덜 젊은 남자의 품에 그대로 자신을 들이박았다. 그 경황에도 남자의 향이 코속을 간지럽혀왔다. 아 미안해요! 이제 갓 서른을 넘겼지만 오랜 풍진을 겪은 것처럼 쉽사리 얼굴이 붉혀지지 않는다. 괜찮아요. 역시 애된 남자보다 성숙된 남자가 보기에도 즐겁다. 그녀는 말없이 해시시 웃어보이고 남자의 뒤로 넘어가서 손잡이를 잡고 섰다. 남자가 뒤로 한번 건너다보는 것이 감각으로 잡혀왔다. 40대 중반의 남자의 몸에서 나는 향이 어쩐지 많이 익숙했다. 남편의 몸에서 가끔 맡았던 거 같다. 다음 역은 이촌파크역이다. 말이 파크이지 별로 시설물도 없는 오픈된 공간이었다. 이 역은 청도에서 물동량이 가장 많은 버스환승역이기도 했다. 아직 버스가 멈춰서지도 않았는데 저 앞에서 개미떼처럼 사람들이 우야 몰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무관심인듯 파크내 지하슈퍼로 눈길을 돌렸다. 버스 정류소와 대착점에 있는 지하슈퍼 출입문으로 사람들이 미꾸라지처럼 쉴새없이 들어갔다 나왔다 하고 있었다. 미꾸라지를 연상하니 엉뚱하게도 난생 생각지도 않던 추어탕이 먹고 싶어졌다.그녀는 뭐나 많이 먹지 못하는 새처럼 작은 몸뚱이를 가지고 있지만 짬만 나면 뭔가 먹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에스칼레이터를 타고 지하슈퍼로 들어가면 바로 정면에 “선미미스낵”이 있다. 거기엔 그녀가 즐기는 냉면도 있다. 비빔밥도 있다. 떡볶이도 일품이다. 한그릇 후딱 해치울까보다. 그녀는 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버스는 그녀의 욕망을 무시하고 이촌파크를 저만치 밀어버린다. 버스가 달리는 거리만큼 시간도 앞으로 달린다. 그녀는 막무가내로 머리를 털다가 이상한 감촉을 느꼈다. 누군가 그녀의 등뒤에 바싹 붙어서서 그녀의 머리칼위로 뜨거운 숨을 뿜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스므나문살되어보이는 남자가 하신을 밀착해온채 아닌보살로 얼굴을 외면하고 있었다. 그녀는 미소를 머금고 살짝 몸을 옆으로 탈았다. 무언가 딱딱한 것이 허벅지를 툭 스치고 튕겨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도 반감은 없었다. 워낙 승객이 붐비다보니 서로가 불편해도 참을 수 밖에 없었다. 부자연스럽게 앞쪽으로 얼굴을 돌리던 그녀는 마침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향기있는 중년남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어느새 앞으로 향했던 남자가 그녀쪽으로 몸을 돌려세우고 있었다. 가슴 부위로 쏠린 남자의 눈길은 뜨거울 지경으로 강렬했다. 가끔 당하는 일이어서 별로 어색하지 않았다. 남자들은 대체가 거기서 거기야. 이날따라 그녀는 드물게 가슴 낮은 옷을 입고 있어 가슴 라인이 많이 드러나 있었다. 남편도 남자라고 치부하면 그녀의 가슴은 언녕 남자한테 오픈된 것이다. 쑥스러울 것도 없었다. 괜히 내숭 떨고 생까는 여자들 보면 오히려 민망했다. 분명 남들이 보아달라고 옷을 차려입고 나섰으면서도 아닌체 새침 떼는 건 여자들의 특허인듯 했다. 생각은 그렇게 하면서도 그녀는 손을 올려 가슴을 가렸다. 어쩜 자기가 다중 인격을 지닌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에 섬찍하기도 했다. 버스는 경운기보다 더 느리게 움직이고 있다. 차창밖으로 “차이나모바일”이란 간판을 내건 빌딩이 보였다. 매일 이 거리를 지나다니면서도 처음 보는 집이다. 보름후면 남편이 회사일로 출국하게 된다. 견물생심이라고 언제부터 시간나는대로 국제로밍을 좀 해달라던 남편의 말이 떠올라 그녀는 출입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점잔을 빼며 한옆에 붙어있던 젊은 남자가 아쉽지 않게 떨어져나갔고 중년남자의 눈길은 지궂게도 따라왔다. 버스가 하왕부 역에 칙 하고 멈춰서고 승객들이 하나둘 튕기듯 내렸지만 웬일인지 그녀는 그 자리에 못 박힌듯 서있기만 했다. 순간이긴 했지만 머리는 거의 공백상태에 처해있었다. 마음과 달리 몸이 움직여주지 않았던 적이 수없이 많았다. 역을 지나치는 건 밥 먹듯 자주 있었고 멍하니 서있다가 그대로 차를 놓쳐버린 적도 여러번 있었다. 벌써 늙어버린 건가? 여자는 7, 남자는 8이랬던가. 동의보감에 그렇게 적혔다는 거 같던데. 여자는 일곱살에 여자생리가 형성되기 시작해서 14세면 완전 여자로 되고 21세쯤 되면 최고봉을 자랑하다가 28세면 노쇠가 시작된다고 어디서 들었던지 보았던지 했다. 그러니까 그녀는 노쇠가 한참 진행된 셈이다. 다시 버스문이 닫히고 금수로를 가로질러 308국도에 접어들었다. 그녀는 원 자리로 돌아가려다가 말고 그대로 출입문 옆에 고양이같이 붙어섰다. 금수로와 308국도 사이에 들어선 위동아파트단지를 한번 더 살펴보고 싶었다. 그녀가 가장 욕심내는 아파트단지이다. 옛날엔 토끼도 배설하기를 꺼리던 이 고장이 지하철건설과 이창구정부의 이전 덕택으로 평당 만원으로 치솟고 있었다. 소문에 의하면 이 아파트는 사전 예약금을 지불하고 번호를 받아야 비로서 구매자격을 갖추게 된다고 한다. 언제 이런 위치에서 호강할 수 있을까?!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깊게 내쉬다가 와들 놀라며 주위를 살폈다. 실지로 그녀는 많이 민감한 편이다. 태연한체 쿨한체 해도 남들의 눈을 많이 의식하고 다른 사람의 평가에 무척 신경이 도사려진다. 한평생 평사원으로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는 남편을 기대하기는 열번도 글러먹은 일이다. 남편은 마음은 좋으나 입밖에 살아남지 않은 사람이었다. 세상 이치 모르는게 없고 사리분별도 잘하는 편이다. 그런데 딱 돈 버는 재주만은 제로이다. 그래도 체면은 잘 챙겨서 남 하는 노릇은 다 할려고 해서 그녀를 난처하게 만든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지금 살고 있는 자그마한 집의 은행대출금을 갚자고 해도 허리가 부러질 지경이다. 어떻게 갈쿠리로 돈무지를 왕창 긁어올 수는 없을까. 갑자기 버스가 터덕터덕거리며 심하게 흔들렸다. 고속도로에 버금가는 308국도에 들어섰다는 암시였다. 국도에 들어서는 차들의 속도를 제약하려고 일부러 길목에 장애물을 설치해놓은 것이다. 상왕부를 지나고 산수가원역에 이르자 아까 뒤에 섰던 젊은 남자가 얼굴을 깊숙이 숙인채 내렸다. 역에서 역시 키가 호리호리하나 얼굴은 덜 고운 아가씨가 기다리다가 그가 내리자마자 옆에 아무도 없는듯 냉큼 젊은 남자의 품에 안기며 얼굴을 부벼댔다. 이 동네서 사는 모양이구나. 전에 대출로 집을 살 때 이 동네를 고려해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아파트단지가 너무 안쪽으로 들어가 있어 차가 없으면 불편할 거 같아 그만두었었다. 자가용까지는 엄두를 낼 수 없는 처지였다. 친구 하나가 중고 QQ를 사서 몰고 다니는 걸 보면서 자기는 죽어도 그런 차는 몰 수 없다는 하늘만큼 높은 마음을 가졌다. 그녀는 물론 남편도 자가용면허증을 언녕 따놓고 있었다. 어쩌면 영원히 실현할 수 없는 욕심에 그들로서는 너무 아름찬 돈뭉치를 처넣고 따낸 면허증이 지금 고스란히 서랍에서 썩어가고 있었다. 그래도 그들은 가끔 그 면허증을 꺼내놓고 소나타냐 혼다냐를 두고 입싸움을 벌리기가 일쑤였다. 그녀는 일제를 선호하는 대신 남편은 언제나 한국제품을 우선하고 있었다. 점점 멀어져가는 젊은 연인들을 한사코 돌아보며 그녀는 남자아이가 자기 뒤에 섰던 장면을 쉽사리 기억에서 지울가가 궁금했다. 인차 잊겠지. 인간이 본능을 내놓고 도대체가 진실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를 넘짚어보면 이해도 닿을만 했다. 숨기고 감추고 덮고 치우기에 급급한 인생은 너무도 불쌍하고 가엽다고나 할까.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허벅지를 내려다보았다. 부질 없는 노릇이란 걸 알면서도 뒤늦은 점검에 나선 것이다. 요즘 인터넷을 화끈 달구고 있는 공공버스내 성추행사건이 갑자기 떠올라서이다. 그 아가씨도 참 코미디야. 뭐 바지에 흰 액체가 묻었다고? 액체가 뿜어나오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알기나 하나. 그때까지 짓써 들이대고 있었다는 건가 아니면 뭐했다는 거지. 희한해요 아무튼. 그리고 인육수색을 한다고 올린 그 사진도 그렇지. CCTV도 없는 버스안에서 웬 사진이란 말이. 조작이야 틀림 없이. 년놈들이 짜고 친 고스톱이지. 거기에 덩달아 흥분하는 네티즌들은 또 뭐야. 머리가 장식품이 틀림없어. 요즘 세상이 정말 재미있어. 승객들이 갑자기 부산을 떨며 탈 때와 똑같은 승벽내기로 차문쪽으로 몰려왔다. 내리는 손님이 가장 많은 천태성 역이 눈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녀는 여기 치우고 저기 밀리다가 아예 버스 제일 뒤쪽으로 물러갔다. 어느새 중년남자도 뒤쪽에 와있었다. 말 못할 향기는 여전하고 끈질긴 눈길은 계속 그녀를 쫒고 있었다. 솔직히 싫지는 않았다. 그녀는 그렇게 질긴 남자를 흔상하는 터였다. 남편도 거의 십년을 쫒아와서 그녀와 결혼에 골인했던 터였다. 남자는 그래도 항심이 있어야 한다. 그런 남자라야 사랑을 해도 진하게 하고 직심으로 한다고 믿는 터였다. 천태성에서 적지 않은 승객이 내렸다. 그녀 옆에서 잠자듯 눈 감고 앉아있던 아가씨 하나가 차가 떠나려고 할 때 불시에 일어나 후다닥 달려내려갔다. 뜻하지 않게 생겨난 빈자리를 그녀는 중년남자에게 양보한다는 듯 옆으로 비켜서주었다. 앉으세요. 그녀의 눈길에서 이런 뜻을 읽었던지 남자는 간만에 눈길을 풀면서 의자를 가리켰다. 아가씨 힘든데 앉으십시오. 괜찮아요. 앉으세요. 여사가 우선입니다. 사양마십시오. 아니오. 그녀는 가볍게 머리를 가로젖고 이제는 텅 비여있는 차문쪽으로 다시 내려섰다. 그러면서 흘끔 천태성을 돌아보았다. 청도에서 코리아타운으로 유명한 천태성이었다. 한국인과 조선족이 무리 지어 사는 곳이다. 그만큼 청도에서도 물가가 아주 비싼 동네이기도 했다. 그런데 집값은 죽어도 오르지 않는 마을이다. 5,6년 전의 5천여원이 지금도 그보다 별로 높지 않은 가격대로 팔리는 억수로 재수 없는 단지이다. 그럼에도 임대료는 또한 청도에서 가장 비싼 지역이다. 듣건대 옛날에는 무덤자리였다고 한다. 집값이 오르지 않는 이유가 거기 있다면 한겨레가 몰려진 때문에 매매던 임대던 거래는 또한 활발하다고 한다. 남편 회사의 사장 부장들이 이곳에 집을 잡았는가 하면 그녀의 친구 친척도 여럿이 여기에 집을 사서 살고 있었다. 오나라 오나라 아주 오나 가나라 가나라 아주 가나 … 핸드폰소리가 울렸다. 핸드폰 사서 다운 받은 벨음악이 3년째 계속 그대로이다. 그녀는 “대장금” 드라마를 열번도 더 본 거 같다. 여러 티비에서 돌리는 걸 돌아가며 다 본 건 물론이고 DVD를 사서 심심하면 띄워놓고 감상했다. 이영애는 그래도 한복을 입어야 미인다운 느낌이 들었다. 그 날씬한 몸매와 환한 얼굴, 그보다도 유연하고 아련한 자태가 한복이라는 고유의 복장과 어울릴 때 비로소 이영애란 캐릭터가 두드러진다고 믿고 있었다. 사실 언젠가 KBS의 어떤 행사에 나타난 평복차림의 이영애를 보고 기절초풍할듯 놀랐었다. 저 여자가 정말 이영애가 맞을까 의심할 지경으로 여기저기가 비례에 맞지 않았다. 여하튼 그녀는 이영애팬이었고 “대장금”팬이었다. 그래서 남들이 거의 알아먹지 못하는 주제가 가사도 그녀는 언녕 외우고 있었다. “ 대장금”은 멀어져갔지만 벨소리는 그냥 새롭기만 하다. 전혀 생소한 번호였지만 그녀는 그대로 받는다. 여보세요. 여긴 상해 만통증권투자회사입니다. 저… 그녀는 1초도 지체없이 핸드폰을 닫아버렸다. 왕짜증나도록 거의 매일이다싶이 여기 저기서 걸려오는 주식자문회사들의 전화이다. 상해 심천은 물론 멀리 곤명에서도 걸려온다. 중국에서는 이렇게 개인 정보가 유출되어도 어디가서 해낼데가 없다. 하긴 누굴 탓할 수도 없다. 죄라면 돈이 그리운게 죄라 할까. 올봄이던가. 주식하는 친구가 하도 들볶아서 증권회사에 등록한 것이 화근이였다. 기실 주식 놀음 한번도 놀지 못했다. 어디 심심해서 한옆에 누워있는 돈이 있어야 놀던가 말던가 하지. 하긴 한국 간 남동생이 건사해달라고 맡겨놓은 돈이 좀 있긴 했다. 그걸 염두에 두고 탐욕의 걸음을 떼긴 했으나 정작 거기에 손을 대자니 두려워졌다. 주식을 놀다가 돈 다 떼우고 자살한 사람도 많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남동생은 서른이 다 되도록 장가들지 못하고 있었다. 어디 못나거나 모자란데도 없는데, 누나인 자기가 보기엔 정말 멋진 사나이인데 여직 처녀 꼬리도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동생 덕분에 자기 집이라고 사서 지금 살고 있다. 동생이 그녀가 세집 살이 하는게 안쓰러워 집 사라고 선불금도 대준 것이다. 그 돈도 아직 갚지 못해 속병이 되고 있다. 매일마다 하는 다짐이지만 동생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마침 한창 건설중에 있는 동방성을 지나치고 있었다. 이곳이 미래 대청도의 상업중심이 될 거라고 요란하게 피켓을 걸어놓고 있었다. 딴에는 그럴듯 하기도 하다. 도심 외연이 점차 넓어져가는데다 공항이 복사하는 부근이다보니 그 파워가 형성될지도 모른다. 동방성에 동생 이름으로 상가 하나 사두는게 좋을 상 싶었다. 지금 한창 기초를 다지는 중이었지만 마켓팅은 벌써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이번 주말엔 꼭 한번 와봐야지. 쇠파이프가 빼곡히 들어선 현장을 내다보며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이기 시작했다. 꼭 마치 동생을 위해 큰 일을 성사시킨 것만 같았다. 상가가 있고 그 가게가 가격이 올리뛰고 그러면 동생도 예쁜 아내를 얻고 자식을 낳고 키우겠지 싶어 심장이 막 쿵쿵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가슴이 뛰면 좀체로 안정이 안되는 타입이다. 이럴 때면 세상이 한없이 즐거워보인다. 서늘한 가을바람이 귀밑머리로 슬그머니 지나치는게 기분 만땅이였고 팔짱 끼고 거리를 지나치는 남녀를 그림처럼 느껴받을 수 있었다. 국제공예품성 역에 도달했을 때까지도 그녀는 흥분을 걷잡을 수 없었다. 아니, 좀 더 심한 격동에 휩싸여들었다. 저기 저 4층 건물속에 한때 그녀가 좋아했고 또 미친듯 그녀를 쫓아다녔던 사나이가 장사를 하고 있었다. 인연이 그만큼이어서 이제는 완전히 남남이 되어 서로 소닭 보듯 하지만 한때는 정말 치렬한 사랑을 했었다. 강산도 변한다는 10여 년 세월이 흘러 제가끔 가정을 가졌지만 그는 아직도 그녀를 잊지 못하는 상 싶었다. 그녀를 보는 그의 눈빛에는 우울이 그대로 방울져 흐르고 있었다. 집도 있고 차도 있고 사업도 있지만 그는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한번 손짓해 부르면 그대로 모든 것을 팽개치고 달려올게 분명했다. 내가 뭐 볼데 있다구? 그녀는 자조하듯 머리를 설레설레 저었다. 남자는 생리적으로 여자와 틀린 모양이다. 한번 마음을 주면 미운 구석도 아픈 자리도 다 사랑으로 보듬을 수 있는 것 같았다. 지금 돌이켜도 참으로 모질게 굴었었는데도 여직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지극히 질긴 남자였다. 버스는 그녀에게 더 많은 회억을 주려는듯 부르릉거리면서도 좀체로 움직이질 않는다. 고장난 게 분명했다. 하긴 몇십년은 굴렸을 낡아빠진 고물이니까 고장 안나면 오히려 궤변일 것이다. 성냥갑처럼 꽉꽉 채워넣고 그만큼 다녔으면 새 물건으로 바꾸어도 될상 싶지만 여전히 중국답게 그 식이 장식으로 요란하게 털렁털렁거리는 낡은 버스가 가물에 콩나듯 드물게 왔다리갔다리 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 남자는 버스와 흡사했다. 하지만 물건은 새것이 좋고 사람은 옛사람이 더 정이 가는게 인지상정이다. 가끔이지만 여자로서 너무 지나친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원하는데 지금이라도 한번쯤 줄가 그러다가도 나사 한번 풀리면 겉잡을 수 없다는 두려움에 마음을 접군 했다. 저런 남자라면 사랑해도 무방한데 나는 왜 상처만 줘야 하나. 그저 자신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아프지 말아요 화이팅! 그녀의 축복을 들었는둥 말았는둥 버스는 시동이 걸렸다. 국제공예품성은 어느덧 사라지고 자동차전시판매장이 줄줄이 나타났다. 벤츠 보마로부터 대중싼타나 장안자동차에 이르기까지 한줄로 쭉 선 그 진한 풍경은 그대로 유혹 그 자체였다. 자기도 모르게 서랍에서 잠자는 면허증이 또 떠올랐다. 세월은 좋아진것이 확실한데 그녀는 그 과실을 맛볼 수가 전혀 없는 것이 억울하기만 했다. 잠시나마 둥둥 떳던 기분이 불시에 식어지고 그저 백사하에 뛰어들어 죽고 싶은 심정뿐이였다. 그러고보면 기쁨이던 슬픔이던 즐거움이던 괴로움이던 모두 사람의 마음이 하는 짓거리가 분명했다. 현실은 달라진게 하나도 없고 그녀는 여전히 버스에 몸을 싣고 있지만 그녀는 순간에 하늘과 땅, 천당과 지옥 그리고 행복과 불행사이를 넘나들고 있는 것이다. 백사하는 오랜만에 정말로 사람이 빠져죽어도 될만큼 불어있었다. 패어들어가서 강이라 불렸을뿐 몇년동안 거의 마르다싶이 했던 강이었다. 비물이 모아져서 겨우 강이라는 명맥을 이어가는 백사하, 그런데 금년에는 곤파스요 덴무요 하는 태풍이 쉴새없이 오가더니 백사하가 찰찰 넘치도록 채워주었다. 그래도 죽기보다는 미역이라도 감고 싶은게 솔직한 마음이었다. 비록 추석이 눈앞에 다가온 초가을이지만 청도는 여전히 무덥기만 하다. 정말 고향에 있을 때처럼 으슥한 구석에 숨어들어 미역이라도 감고 싶었다. 자연을 잊고 산지 너무 오랬다. 벽돌과 시멘트로 만들어진 성냥곽같은 집안에서 아무리 물줄기 멋지게 뿜어나오는 샤워기밑에 서있어도 강가에서 물싸움하던 그 시골풍경보다 감흥이 덜했다. 사우나방에서 질벅하게 호사해도 여자들의 가슴 모양이 각양각색이고 유두도 천차만별이란 발견외에는 도무지 강가에서의 즐거움과 전혀 비길바가 못되었다. 백사하가의 유팅 역은 한산했다. 공항이 자리잡은 이 동네가 영문을 알수 없이 개발이 엄청 느리다. 다른 도시같으면 공항이 위치한 곳이 변화가 가장 빠르지만 청도는 꼭 그 반대였다. 유팅은 석 삼년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그 식이 장식으로 아무런 체감변화도 느껴지지 않았다. 입체교 하나 넘어가 있는 청양은 지금 한창 청도의 새로운 궐기지역으로 부상하고 있는데 유독 유팅만은 아직도 낙후의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뭐니뭐니해도 청양은 한국사람과 조선족이 만들어낸거야. 이건 청양의 한족들마저 공인하는 사실이다. 언젠가 택시기사의 입을 통해 직접 듣기도 했던 일이다. 암, 그렇구말구. 조선족이 없었다면, 그리고 한국인이 없었다면 청양의 오늘이 있을 수 없는 일이구 말구. 유팅에서 향기의 중년남자가 머뭇머뭇 내렸다. 내리면서 그녀를 한번 힐끔 쳐다보는 걸 잊지 않았다. 그녀는 시무룩이 웃었다. 그 사이에 그만 그 남자를 잊어버렸던 것이다. 사람의 잊음이란 참 헤픈가 보다. 먼저 내린 꼬맹이는 이젠 어떻게 생겼던지 모습조차 기억에 남지 않았다. 창밖에 선 사나이는 가끔 버스를 올려다보면서 움직이지를 못한다. 그도 백사하에서 자살할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니면 수영이라도 할 타산을 하고 있을까? 버스는 308국도를 벗어나 와리쪽으로 굽어든다. 왼쪽으로 “한국인병원”이란 지시판이 보인다. 그만큼 와리는 한국기업이 몰려있는 동네이다. 특히 악세서리공장이 쫙 널려있다. 아무래도 이 동네서 일감을 맡아하는게 가장 편할 거 같았다. 이 곳에서 두 역전 더 가면 그녀의 집이다. 가까워서 다니기도 편하고 애를 돌보기도 제격이다. 글찮아도 언젠가 한번 공장에 찾아가서 일감을 가져간 적이 있었다. 하루종일 궤고 매고 했지만 30원 벌이밖에 안되었다. 지독한 사람들이야. 그녀는 한국사람 말만 나오면 꼭 이렇게 평가했다. 인정머리라군 꼬물도 없어. 좀 더 주면 어디 망하나? 꼭 사람을 미치고 환장하게 만든단 말이야. 안해! 굶어죽는 한이 있더라도 저것들의 치닥거리 해주지 말아야지! 그녀는 괜히 버스출입문에 눈을 흘기며 종알거렸다. 그러는 사이에 버스는 “초원의 집”과 “경복궁”을 지나쳐 종착역으로 달리고 있었다. 아, 미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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