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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유람 3박4일
2012년 02월 10일 08시 06분  조회:4002  추천:3  작성자: 등에
기행문
조선유람34
김 재 룡
  벼르고 벼르던 조선유람길에 올랐다.많은 사람들은 평양이요 모란봉이요 묘향산이요 아리랑 공연이요 하는것을 유람 코스로 선택했으나 나는 고집스레 몇차례나 그기로 가는것을 거절하고 이번 칠보산행을 택했다.왜서냐는 물음에 딱히 설명할 리유는 없었지마는 나는 조선의 자연 실태 그것을 친히 내 육안으로 보고 싶어서가 아마 주요로 되는 원인이 아닌가 나 스스로 결론을 가져본다.
  3박4일의 짧은 시간에 함경북도 남단에 위치하여있는 칠보산까지 왕복하였다는것은 거의 매일 매일 관광 뻐스에 앉아있는 시간이 대부분 시간을 점하였다는것을 말하여 준다.정확한 기록과 계산을 해 보지는 않았지만 연길서 중국의 삼합 해관까지의 거리를 계산에 넣지않고 조선땅인 회령에서 함경북도 수부인 청진을지나 명천군 경내에 자리잡고있는 칠보산까지 대충270km는 되리라고 본다.그런데 조선은500m가1리가 아니고400m를1리로 친다.그러니 자그만치 구불구불 도는 길을 모두 계산한다면 왕복 조선 리수로1500리를 달린셈이다.조선의 도로는 중국 처럼 포장된 길이 아니고 모래길이긴 하였으나 수많은 도로 수축공들이 도로 수리를 하는 덕분에 원래 생각 보다는 훨씬 적게 덜렁거렸다.관광차는 일본제였으나 모두가 낡아서 중국 같아서면 언녕 “퇴직”년령에 달한 차들이였다.그나마 이 차들은 중국관광객들을 모시는 차여서 고급스런 차들이였다. 군용 터럭을 제외하고는 휘발유를 쓰는 차들은 보기가 힘들었고 민간인들이 몰고 다니는 차들은 연료가 부족한 조선에서는 장작을 태워서 가스를 만들어 저축기에 저축하여 그 가스가 타서 폭팔하여 원동력이되여서 차를 움직이게하는 차들이 연기를 활활 뿜으며 가다가 가스가 떨어지면 또 차를 세워 놓고 장작을 태워 가스를 만든다.이런 차들이 조선에서는 주요로 민간인들이 타고 다니며 화물들을 실어 나른다. 조선의 시골에는 공공 버스가 거의 없단다.혹 일이있어 집을 나서면 자전거가 중요한 교통 도구이고 장거리 출장은 이런 가스차를 리용하여야하고 누구나 길가에서 손을 들면 운전 기사는 차를 세우고 어디 가느냐는 간단한 물음을 한후 태워 준다한다.
   첫날, 앞에 달리던 가스차가 뿜는 연기가 차창으로 우리가 타고 가는 차안으로 메케한 연기를 몰아 넣었다. 이에 일행중 한 친구가 좌석밑에 무었이 탄다고 놀라 고함을 지르는 바람에 차를 급 정거하고 검사한결과 우리가 타고 가는 차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그놈의 장작을 때며 달리는 가스차의 작간이였던 것이였다. 
회령 해관의 조선측 검사는 얼마나 까다로운지 진절머리가 날 정도였다.돈은 얼마나 챙기고 있느냐, 무슨물건을 소지하였느냐,왜 한국전화번호가있는 전화기록부를 갖고 다니느냐,보따리며 가방을 쌔가리 훗듯 샅샅이 뒤져 본다.사진기며 촬영기는 전부 등록하여야 했고 내용물은 엄격한 검사를 거쳐야했다.그들의 사업효률은 생각보다 더 굼뜻다.현대 전자 검사기는 없고 모두가 인공으로 진행하였기에 우리들에게는 견디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그나마 검사원들의 말씨는 매우 상냥 스러웠다.
회령땅에 들어서자 관광안내가 회령시 복판에 자리하고 있는 김정숙동지의 동상으로 안내하였다. 조선에서는 김일성과 동등하게 김정숙을 존경하였고 김정일 역시 그들과 같은 서렬에 서있기에 우리가 살고있는 중국처럼 모택동이요 후진토요하고 이름 석자만 부러는것은 용허가 돼지 않으며 반드시 그들의 이름뒤에 동지라고 붙여 부러거나 “원수님”“장군님”하고 불러야 하고 일반사람들과는 그저 동무라 부른다.
  안내원은 우리들을 선생이라고 호칭하였다.
김정숙동지에게 모두가 묵도로 경의를 표시하고 긴긴 해설을 들은후 또 덜렁데는 차에 앉아 청진을 향하여 출발했다.
  조선의 산천은 아름다웠다.
남에서(조선백성들은  3.8선 이남을 아랫마을이라고 부른다.)말하는것 처럼 백성들이 굶주려 나무겁질을 모두 벗겨 먹어 버렷다는 소문과는 완전히 다른 정경이우리들의 눈앞에 펼쳐졌다.가로수는 주로 아카시아 나무였고 백양 나무도 자주 눈에 띄였다. 나무의 굵기로 보아 심은지 5--6년 좌우로 되여 보였고 산에는 아름들이 소나무며 이깔나무와 황철나무 등 많은 수목들이 산마다 꽉 차있었고 계곡을 흐르는 맑은 샘물은 귀맛좋게 조잘조잘 반가운 노래로 우리들을  맞아 주었다.
조선의 냇물과 하천은 흐린물을 볼수가없었다.그토록 맑았다.
회령이나 청진에서 그리고 도로가에서 일하는 주민들을 나는 유심히 살펴 보았다.
그들의 복장은 중국에서70년대 농촌 주민들의 복장 차림을 련상케 하였다. 면화와 면방직 공업이 락후한 진 모습 그대로였다.나이론이나 데틀론을 주 원료로 만들어진 원단은 화려한 염색을 받아 주지 못하는 원인으로 모두가 거므스레한 색갈이였으며 짙은 국방색이 아니면 회색도 아니고 검은색도 아닌 그러한 색이였으며 공무원들은 이런색의 나일론 천으로 만들어진 김정일 장군님이 입고 다니는 쟘버복이였고 조선에서 근년에 류행이 돼고 있다는 장군복이 눈에 자주 띄우곤 하였다 여성들은 대부분이 적삼에 바지 차림이였지만 고운 꽃점삼에 멋진 바지 차림을 하고 다니는 것을 보기 힘들었다.산동성의 제일 락후지방인 이멍산 시골에서 살고있는 농민들도 이보다 화려한 옷차림이다.그러나 호텔이나 려관이나 식당에서 일하는 여성 종업원들의 복장은 한결 화려한 편 이었다.
도시에 살고있는 사람이나 농촌에 살고있는 사람이나 어른이나 학생들이나 남자나 여자나 얼굴은  모두가 청일색으로 검고 초최한 모습들이였다.까마잡자하고 수심에 낀 모습들이였으며 웃음을 볼수 없는 얼굴들이었다.청진에서 일행은 김일성 원수님의 동상에 꽃다발을  20원주고 사서 증정하고 묵례를 한후 잠간 광장에서 놀고있는 사람들을 살펴 볼 기회가있었다.청춘남녀가 손잡고 거니는 모습은 하나도 볼수 없고 혹 전동기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도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일본제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조선은 침울한 나라이다.어딜가나 모두가 엄숙한 얼굴이였으며 도보로 가거나 자전거를 타고 가거나 삼삼오오 때를 지어 웃으며 떠들며 활개치며 다니는 중국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이었다.
  웃음을 볼수없거니와 또한 뚱보가 없는 나라다.
피골이 상접한 모습은 비료가 모자라서 앙상하게 자라고있는 논밭의 정경이나 다를바 없다.한창 꽃나이에 활짝피여날 처녀들의 가슴은 모두가 평면을 이루고 있었으며 풍만한 엉덩이를 갖고있는 녀인들은 볼수가없다.혹 보인다면 앞에서 말한바와 같이 호텔의 종업원이나 고급간부의 자녀들이다.그들의 얼굴은 희고 뽀얗고 화장품도 바르고 다니는게 눈에 띄였다.
  지구촌에서 제일 미녀산지인 조선의 녀인들이 이런 모양이니 별스런 생각이든다.
 식량이 모자라고 로동강도가 심하다는 증거일 것이다.
 칠보산의 민박집 주인의 말에 따르면 한집의식구가3명이던4명이던 한달에20kg의 량곡을 배급주고 나머지는 자체로 해결한다 한다.그곳에서는 그런대로 바다를 끼고 있어 조개같은 해물들을 잡고 또 산비탈에 뙤기밭을 일쿠어 옥수수며 콩을 심어 보충을 할수있다한다.지리적 우세의 도움을 받은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조선의 주민들이 그렇게 엄중한 기아에 시달리고 있다는 감은 느껴 보지 못하였다.더군다나 굶주려 사람마저 해친다는 이야기는 아마 과장도 이만 저만한 과장이 아닌가 싶다.
  길거리에서 도로공들이 점심 도시락을 먹는 모습을 먼 발치에서 넘겨 보았는데 옥수수에 나물을 섞어 지은 밥으로 보이고 반찬은 역시 나물과 장으로 보였다.고된 로동을 하고있는 그들에게는 량으로 보아도 충족하지 못한 량이었다.
우리들에게 보여준 청진 제강소 유치원 어린이들의 공연은 참으로 놀라웠다.그들의 천진하고 높은 예술의 기교에 우리는 손벽이 아프도록 박수를 보내 주었다. 그러나 나는 웃음속으로 눈물을 삼켯다. 귀여운 어린이들이었건만 한명도 복실 복실 피여 나는 모습은 않보였고 수척하고 파리한 모습들이였다.
어린이들이 공연하면서 짖는 웃음도 어색하였다.
조국의 미래고 조국의 꽃봉오리라고 하는  그들에게 차려진 현실은 락관적이 못되는뜻 싶었다
 
  조선은 세가지가 무료로 백성들이 아주 만족감을 느낀다.
  첫째,세금이 없다.
  둘째,11년제 교육을 무료로 한다.(학년전1년,소학교4년,중학교6년)
  셋째,의료비가 무료다.
그외에 더 보충한다면 조선에는 개인 소유의 집이없다. 공장이나 광산로동자들이나 농촌 협동조합의 농민들의 집은 모두가 나라에서 지어준다.그저 몽뚱이만 들어가면 그기에 모든것이 가추어져있다.비록 사치스러운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러니 조선에는 사유재산이 극도로 재한을 받고있다.
조선에는 한개 체널밖에 더는 수신할수 없지만 텔레비도 널리 보급되고있는겄이 지붕위로 굴뚝과 같이 높이 세워진 안테나선으로 보아 낼수있다.내가 들었던 보촌 민박집 주인집은2층건물이였는데 아래층은 주인집4식솔이 살고있었고2층은 객방이었는데 객방의 이불장과 이불 요,그리고 침대등 모든것은 나라에서 장만하여 준것이고 아래층의 살림 살이도 역시 기업에서(이 민속촌은 나라의 한 기업체에 속한다 한다.) 마련하여 주었다 한다.그러나 텔레비만은 자체로 사들이었단다.이집의 학생 둘은 모두가 자전거를 타고10분정도 거리의 학교로 다니고 조선에는 아무리 험악한 산골에1명의 학생이 있어도 학교가 있다하니 나라에서 얼마나 교육을 중시한다는 것을  넉넉히 보아낼수있다.
비록 밥은 배불리 먹지 못하고 옷은  화려한 옷을 입지는 못하는 인민들의 생활이지만 인민들의 애국심은 높고 수령에대한 충성심은 대단하다는것을 이나라의 <선군정치>에서 알아 볼수있다.
  <선군정치>란 김정일 장군께서 창도한 미제국주의를 위수로한 외세의 침략과 업수임을 막기 위하여 먼저 군사력량을 키워 제국주의의 침략을 막기위한 정치로서 매년8월25일,이날을 경축한다.이 나라 인민들은 일하여 번 재부를 국방건설에 투입하고 자신들이 헐벗고 굶주림은 마땅한것으로 여긴다.그래서 두차례의 핵무기 실험을 아주 자랑으로 간주하고 자오감을 느낀다고 려행 안내원이 말하었다.백성들은 오직 이렇게 하는것만이 애국심이요 나라를 위하여,장군님의 지시를 목숨으로 사수하는 일이라고 간주하기에 백성들이 부유해지고 나라가 부강해지는 일을 동시에 생각해서 잘먹고 잘 살아 보자는 욕심 조차 가져 본적이 있는것 같지를 않았다.
가는곳 마다 “장군님의 선군정치 만세!”의 대폭 구호를 볼수있고 “장군님만세!”의 구호에 비추어 아주 작으마한 “부강대국”이란 구호는 혹간 보여도 “잘먹고 잘사는 나라로 건설하자”는 구호는 눈에 띄우질 않았다.그러나 중요한것은 이 봉쇠된 나라에도 개혁이란  거세찬 물결에 약간이나마 문이 열린듯 싶었다.
관광차 안에서 틀어 놓은 노래속에 흘러간 옛노래도 두어곡이 흘러 나왔고 안내원과의 이야기 속에서도 유머적인 육담도 부담없이 듣고 나눌수 있었다.또 아랫마을의 술자리에서 흔히 부르는 “위하여”라는 웨침소리도 그들의 입으로 세여 나왔으며 식당 접대원 처녀들은 노래를 마추어 허리와 엉치를 흔들며 디스코도 제법이었다.
그런가하면 정치적인 내용을 담지 않은 이야기는 려관 경비원이나 청소공이나 민박집 주인들과 시름없이 나눌수가 있었고 좀 민감한 이야기라면 그들은 재치있게 돌려대군하였다.기타 주민들과는 접촉이 허락이 되여있질 않아 말할 기회가 없어서 알고싶고 묻고싶은 일이 많았지만 그런대로 지나쳐버리고 말았다.
 
  려행 목적지인 칠보산에는 이튿날인8월23일, 점심때에 도착하였다.
점심을 먹고 해수욕장에 매인당 인민페10원을 주고 해수욕을 즐겼다. 조선 동해바다의 물은 그 이상 더는 맑을 수 없었다. 허리까지 깊은 물속에서도 조개들을 볼수있었고 우리들은 어린이들 마냥 많은 조개를 잡아내였다.해가 기우러 지고 으슬으슬 추워지자 우리는 물속에서 나와 미리 주문하여 놓은 털게와 조개구이에 조선술을 마셨는데 술은 20도 짜리<배술>이여서 마신후 머리가 아플가봐 걱정이 많았지만 이튿날 아침에일어나 보니 아무렇지도 않았다.
식당 접대원 처녀들이 구워 주어서 우리가 손을 쓰지 않아도 되였고 윤희라 부르는 처녀는 한컵이나 되는 술을 단숨에 마셔 우리들을 놀래웠다. 그리곤 젓가락 장단에 노래를 시켰드니 가는 곳마다에서 듣는 또 그<반갑습니다>이였다.청진 유치원어린이들이 처음으로 부른 노래도 이 노래였고 경성에서도 이곳에서도 저곳에서도 누구나 이 노래를 우리에게 선사하였다.저녁 식당에 들려 또 중국에서 가져간<얼궈터우>를 마시고 해당된 숙소로 제각기 헤여졌다.    
      
   칠보산은 조선에서 “제2의 금강산”이라 불리우는 명승지이다.
   칠보산은 이 산중에 금,은,호박,차거,마노,산호,진주 등 일곱가지 보물이 있다고하여 칠보산이라 불리웠다하나 오늘날까지 한가지 보물도 발견을 못하였다 한다.
 
칠보산은<해칠보>,<외칠보>,<내칠보>의 경관으로 나뉘여져있는데 우리가 주숙하고있는곳이 바로<해칠보>였다.
   칠보산을 삶은 달걀에 비유하면 해칠보는 달걀 껍질에, 외칠보는 흰자위에,내칠보는 달걀의 노란자위로 비유 할수있다 한다. 점점 볼거리가 더 많고 더 좋다는 말일것이다.
  <해칠보>에서 뭐니 뭐니 해도 해돋이 구경이 제일 장관일 것이다.
  아침4시반에 해가 뜬다하여4시부터 일어나 바닷가로 나갔다.이렇게 상쾌한 아침은 난생 처음인것같다.
쏴—쏴 소리치며 밀려오는 파도소리에 동녁이 트기 시작한다.수평선 저 끝에서 천태 만상의 구름이 조화를 부리며 창창한 수림으로 변하였다가 고층빌딩이 줄줄이선 도시로 되어 눈앞에 나타 나기도 하였다가 삽시에 버들숲속에 싸여있는 농가들로 탈바꿈하여 붉게 물든 아름다운 아침 노을에 수집은듯 사라지기도한다.그런가하면 수려한 칠보산의 모습 그대로 담아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누구집의 강아지인지 아침 이슬을 밟으며 수풀속으로 뛰여간다.(개는 주민들이 키우는것인데 집집 마다 개를 키우고있다.사람들 조차 먹을게 없다면 개에게 먹일 여유가 있겠느냐는 나 혼자 해보는 추측이다.)  
몇일전에 새끼를 낳은듯한 엄마소가 아기소의 등에 내린 찬 이슬을 한가히 핥으며풀숲에 누워 있다.(이 소는 협동조합의 소유이다.)
동해바다의 해돋이를 렌즈에 담고 기념사진도 몇장 남기고 식당으로 돌아와 아침식사를 기다렸다.
  오늘은 좀 일직 서둘러서 외칠보와 내칠보를 모두 둘러 보아야 하였다.
   칠보산의 주봉은 해발659m인데 경관으로는 덕곡폭포와 부월암,촉혈암,장군바위 개심사,승선대,피아노바위,부부바위,비석바위,도끼바위 등 수많은 경관이있으며 그기에 모두가 그럴듯한 전설들이 얽혀있었다.덕곡폭포에서는 소원을 빌면 소원성취한다고 해서 몇몇녀성들은 쏟아지는 폭포앞에서 두손을 마주잡고 빌기도하였고 남폭포,녀폭포에 가서는 그물에 손을 씻으면 부처간에 모두 건강하게 잘산다하여 다투아가며 손들을 씻었다.
   특히 내칠보에 위치하고있는 만물상에는 자신의 상상력을 발휘한다면 수없는 변화 무쌍한 경물들을 발견할수있었다.
   한마디로 말하면 칠보산은 중국의 장쟈제(張家界)처럼 거창한 산들과 그 무엇인가 다른 수려하고 청아하고 맑은감을 관강객들에게 남겨주는 그런 산이었다.
   계곡도 쥬자이꺼우(九寨溝) 계곡 못지않았고 계곡량안에 촘촘이선 단풍나무를 보니 붉게 물들10월 단풍계절에 또 오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이 산속에 많은 약초와 산나물들이 있으련만 채집하여 파는것을 볼수가 없었다.
 개심사에서 한봉지에20원하는 고사리를 여러사람이 샀다.
 
   조선에서는 중국인민페가 류통이되고있어 무었이던 살수있으나 살만한 물건이 없었다.칠보산에서 말린 낙지를 한키로 사고.조선지도한장을20원주고 삿는데 도문에서는50원에 판다.조선해관에 오니 왜 가져온돈을 쓰지않고 그대로 가져가는냐는 웃기
는 물음를 한다.
   경성온천에서 한칸에2명이 들어가 온천욕을 하는데 중국인민페로30원을 주었다
.아이스케키라고 물에 단물을 섞어 얼쿤 얼음덩이를1원을 받았으며 로점상들이 과자며 청량음료 등속을 팔고있는것이 군데군데서 보였으나 기회가 없어서 사서 먹어보지 못하였다.
   차를 타고 지나갈때 청진이나 경성의 길거리 양쪽에<술집>,<단고기집>, <수산물상점>,<과일상점>,<순대국밥집> 등 여러가지 가게들이 눈에 띄우군하였으나 출입하는 사람들은 눈에 띄우지않았다.
   여러모로 어려운 생활을 하고있다는것이 확연하였다.
   그러나 길거리 포스터에 씌여있는바와 같이
 “조선은 결심만하면 한다”  “장군님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
 굳은 의지를 지닌 조선인민들의 용기와 마음을 손쉽게 읽을수있었다.
 더욱히 가는길은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는 그들의 락관적인 정서는 우리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였다.
 우리민족은 위대한 민족이다.그 언제고 남북이 소통이되여 통일이되고 손에 손잡고 “삼천리금수강산”에서 웃으며 행복하게 잘살아 볼날이 반듯이 오리라고 굳게믿는다.
“말타고 꽃 구경”하는식으로3박4일의 조선유람 소감을 이렇게 줄여서 적어려니 어쩐지 석연한 마음을 금할수없다.  (201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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