륙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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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문안 / 병문안
2019년 08월 19일 12시 21분  조회:1088  추천:0  작성자: 륙도하

병문안


                                   김사이

 

죽음에 기저귀를 채우고 껌벅껌벅
나는 이순례입니다
내 이름은 이순례입니다

부시게 푸르른 하늘도 스산한 오후의 비도
순간 입맞춤처럼 지나가리니
분노는 늙고 눈물은 낡아서 운다

촛불이 켜져도 슬픔이 마르지 않는 몸뚱이는
가난한 땅에서 쉴 틈 없이 닳고 닳아
덮어쓴 껍데기 속으로 순하게 주무신다

휙 던져져 바람의 먹이로 사라지는 우렁각시
지구의 뚱뚱한 나이만큼 오래된 일상
짐짝처럼 끌려갈 때도 지키지 못한 영혼들
가까스로 살아온 환향녀는 화냥년이 되었다
오래된 일상이 너무 오래되어 나는 죄가 되었다

더는 목구멍으로 삶을 삼킬 수 없는 시간
죽음에 이르러서 되찾은 이름
나는 여자 이순례입니다

-《창작과 비평》2017년 겨울호


 

<표정>    /     김종배

당신 얼굴에 쓰여진 난해한 문자

나 지금 토라졌으니 토닥여달란 건지

이젠 정말 끝이니 사라져달란 건지

당신이 쓰고 있는 또 다른 당신

깨진 거울의 파편을 들여다보는 난독증의 사내

 


 

사바(娑婆) 

                               김사인

이것으로 올해도 작별이구나.

풀들도 주섬주섬 좌판을 거두는 외진 길섶
어린 연둣빛 귀뚜리 하나를(생후 며칠이나!)
늙은 개미가 온 힘을 다해 끌고 간다.
가는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아직 산 놈이면 봐주는 게 어떻겠는가,하자
한사코 죽은 놈이라 우긴다.

놓지 않는다.


ㅡ 시집『어린 당나귀 곁에서』 창비, 2015년 


  김기택


구멍의 어둠 속에 정적의 숨죽임 뒤에
불안은 두근거리고 있다
사람이나 고양이의 잠을 깨울
가볍고 요란한 소리들은 깡통 속에
양동이 속에 대야 속에 항상 숨어 있다
어둠은 편안하고 안전하지만 굶주림이 있는 곳
몽둥이와 덫이 있는 대낮을 지나
번득이는 눈과 의심 많은 귀를 지나
주린 위장을 끌어당기는 냄새를 향하여
걸음은 공기를 밟듯 나아간다
꾸역꾸역 굶주림 속으로 들어오는 비누 조각
비닐봉지 향기로운 쥐약이 붙어 있는 밥알들
거품을 물고 떨며 죽을 때까지 그칠 줄 모르는
아아 황홀하고 불안한 식욕

 

 

 

의자 / 이정록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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