륙도하
http://www.zoglo.net/blog/5857 블로그홈 | 로그인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 -> 좋은글 -> 펌글

나의카테고리 : 좋은 시

서정주 시 묶음
2019년 12월 10일 23시 49분  조회:1840  추천:0  작성자: 륙도하

 

국화 옆에서

 서정주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곶감
 
서정주


맨드래미 물드리신 무명 핫저고리에,
핫보선에, 꽃다님에, 나막신 신고
감나무집 할머니께 세배를 갔네.
곶감이 먹고 싶어 세배를 갔네.
그 할머니 눈창은 고추장 빛이신데
그래도 절을 하면 곶감 한개는 주었네.
"그 할머니 눈창이 왜 그리 붉어?"
집에 와서 내 할머니한테 물어보니까
"도깨비 서방을 얻어 살어서 그래"라고
내 할머니는 내게 말해 주셨네.
"도깨비 서방얻어 호강하는게 찔려서
쑥국새 솟작새같이 울고만 지낸다더니
두 눈창자가 그만 그렇게
고추장빛이 다아 되어버렸지


 

자화상 (自畵像)
                                               
서 정 주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 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
흙으로 바람벽 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甲午年)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罪人)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天痴)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 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찬란히 틔워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詩)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신록  ㅡ ㅡ 서정주


어이할꺼나
아, 나는 사랑을 가졌어라
남몰래 혼자서 사랑을 가졌어라

천지엔 이미 꽃잎이 지고
새로운 녹음이 다시 돋아나
또 한 번 날 에워싸는데

못견디게 서러운 몸짓을 하며
붉은 꽃잎은 떨어져 내려
펄펄펄 펄펄펄 떨어져 내려

신라 가시내의 숨결과 같은
신라 가시내의 머리털 같은
풀밭에 바람 속에 떨어져 내려

올해도 내 앞에 흩날리는데
부르르 떨며 흩날리는데

아, 나는 사랑을 가졌어라
꾀꼬리처럼 울지도 못할
기찬 사랑을 혼자서 가졌어라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61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61 이생진시인의 시 2022-02-20 0 1335
60 천상병시인의 시 2022-02-20 0 893
59 정호승의 시 2020-02-02 0 2014
58 목필균의 시 2020-01-24 0 1829
57 복효근의 시 2020-01-24 0 1968
56 한국시 (임영도시 다수) 2020-01-05 0 1669
55 공광규 시 묶음 2020-01-05 0 1917
54 한국의 좋은 시11 2020-01-05 0 1777
53 '사실주의적 기법의 시상' 2020-01-03 0 1612
52 한국시 10 2019-12-21 0 1840
51 서정주 시 묶음 2019-12-10 0 1840
50 문정희 시 묶음 2019-12-10 0 1733
49 한국시 9 2019-12-10 0 1740
48 한국시 * 2019-12-06 0 2323
47 겨울 시들 2019-11-30 0 1792
46 신용목 시 묶음 2019-11-30 0 1783
45 한국시 (7)(황광주 시) 2019-11-30 0 1568
44 공광규 시 묶음 2019-11-30 0 1757
43 한국시(6) 2019-11-27 0 1554
42 시론 2019-11-27 0 1543
‹처음  이전 1 2 3 4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