륙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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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병시인의 시
2022년 02월 20일 18시 07분  조회:918  추천:0  작성자: 륙도하
천상병
 
(千祥炳, 1930년 1월 29일 ~ 1993년 4월 28일)은 대한민국의 시인, 문학평론가이다. 호는 심온(深溫), 본관은 영양(潁陽)이다. 일본 효고현(兵庫縣) 히메지(姬路)에서 출생하였으며 지난날 한때 일본 효고 현 고베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의 원적지는 대한민국 경상남도 마산이다. 종교는 천주교이며, 소풍 온 속세를 떠나 하늘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내용을 담은 시 《귀천(歸天)》으로 유명하다. 1967년 불행히도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심한 옥고와 고문을 겪었으며, 1993년 지병인 간경화로 인해 타계하였다.
 
일본 효고현 히메지에서 한국인 부모에게서 출생했으며, 8.15 광복 후 부모를 따라 귀국하였다. 1949년 마산중학교 5학년 때, 《죽순(竹筍)》 11집에 시 《공상(空想)》 외 1편을 발표했으며, 여러 문예지에 시와 평론 등을 발표했다. 1951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에 입학해 다니다가 중퇴했으며, 중앙정보부에 의해 과장된 사건으로 판명된 소위 '동백림 사건'(1967년)에 연루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친구 강빈구에게 막걸리값으로 5백원,1천원씩 받아 썼던 돈은 공작금으로 과장되었으며, 천상병 시인 자신도 전기고문으로 몸과 정신이 멍들었다. 그때의 처참한 수난을 천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이젠 몇 년이었는가/아이론 밑 와이셔츠같이/(고문)당한 그날은...//이젠 몇 년이었는가/무서운 집 뒷창가에 여름 곤충 한 마리/땀 흘리는 나에게 악수를 청한 그날은.../네 사과 뼈는 알고 있다./진실과 고통/그 어느 쪽이 강자인가를..."
 
이후 천시인은 여러 일화들을 남기는데, 1970년에는 무연고자로 오해받아 서울시립정신병원에 수용되는 일도 있었다. 당시 지인들은 갑자기 사라진 천시인이 죽었다고 생각, 유고시집 《새》를 발표하였다.
 
당시 시집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내 영혼의 빈터에/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내가 죽는 날/그 다음날.//산다는 것과/아름다운 것과/사랑한다는 것과의노래가/한창인 때에/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한 마리 새.//살아서/좋은 일도 있었다고/나쁜 일도 있었다고/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새)
 
1972년 친구의 여동생인 목순옥 여사와 결혼한 천상병 시인은 1979년 시집 《주막에서》를 민음사에서 펴냈고, 《천상병은 천상 시인이다》(1984년), 《저승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1987년), 시집 《요놈! 요놈! 요 이쁜 놈!》(1991년), 동화집 《나는 할아버지다. 요놈들아》"(1993년)도 발표하였다. 천시인은 하느님에 대한 소박하고 순수한 기독교적 신앙을 보여주는 작품활동도 하였다.
 
"하느님은 어찌 생겼을까?/대우주의 정기(精氣)가 모여서/되신 분이 아니실까싶다.//대우주는 넓다./너무나 크다.//그 큰 우주의 정기가 결합하여/우리 하느님이/되신 것이 아니옵니까?"(하느님은 어찌 생겼을까)
 
천상병시인의 시
천상병은 개종을 하지는 않았다. 천주교 명동성당을 다니다가 81년부터 개신교(장로교) 연동교회로 나갔다.
 
"나는 지금까지 약 30년동안은/명동 천주성당에 다녔는데/ 그러니까 어엿한 천주교신도인데도/81년부터는/기독교 연동교회로 나갑니다./주임목사 김형태 목사님도/대단히 훌륭하신 목사님으로/ 그리고 기독교방송에서/그동안 두번 설교를 하셔서/나는 드디어 그분의 연동교회엘/나갈 것을 결심하고 나갑니다./교회당 구조도 아주 교회당답고/조용하고 아늑하여 기뻐집니다./아내는 미리 연동교회였으나/그동안 가톨릭에 구애되어 나 혼자/명동 천주성당에 나갔었으나/그런데 81년부터는 다릅니다./한번밖에 안 나갔어도 그렇게 좋으니/이제는 연동교회에만 나가겠습니다./물론 개종은 않고 말입니다./배신자라는 말 듣기는 아주 싫습니다."(연동교회)
1993년 4월 28일 지병인 간경화증으로 의정부시 장암동 자택에서 타계했고, 의정부 공원묘지에 안장되었다. 이후 유고시집 《나 하늘로 돌아가네》, 《천상병 전집》이 발표되었다. 2007년 5월 1일에는 제 4회 천상병 예술제가 천상병이 죽을 때까지 10여 년 간 거주한 의정부시에서 열리기도 했다.
 
작품 목록
<덕수궁의 오후>
<어둔 밤에>
《새》
<장마>
<간 봄>
<귀천>
《주막에서》
《저승 가는데도 여비가 든다면》
 
94년 KBS 1TV 인간극장에서 천상병 시인의 삶을 다룬 <귀천>이 성탄절 특집 2부작으로 방영됐는데 연극배우 출신 故 정진이 드라마의 주인공이었던 천상병, 故 김자옥이 천 시인의 아내이면서 극의 화자인 목순옥 역을 맡았다[3].
 
학력
일본 효고현 고베 중학교 수료
경상남도 마산고등보통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 중퇴
 
 
 
 
 
 
 
 
천상병의 이야기
 
김병종
 
가난했던 한 시인이 천국으로 떠났다. 조의금이 몇백 걷혔다. 생전에 그렇게 '큰 돈'을 만져본 적 없는 시인의 장모는 가슴이 뛰었다. 이 큰 돈을 어디다 숨길까. 퍼뜩 떠오른 것이 아궁이였다. 거기라면 도둑이 든다해도 찾아낼 수 없을 터였다. 노인은 돈을 신문지에 잘 싸서 아궁이 깊숙이 숨기고서야 편한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시인의 아내는 하늘나라로 간 남편이 추울 거라는 생각에 그 아궁이에 불을 넣었다. 타오르는 불길 속에 푸르스름한 빛이 이상했다. 땔나무 불빛 사이로 배추이파리 같은 것들이 팔랑거리고 있었다.
 
조의금은 그렇게 불타버렸다. 다행히 타다 남은 돈을 은행에서 새 돈으로 바꾸어주어, 그 돈을 먼저 떠난 시인이 '엄마야'며 따르던 팔순의 장모님 장례비로 남겨둘 수 있게 되었다. 시인은 늘 '엄마'의 장례비를 걱정했기 때문이다. 
 
이 슬픈 동화 같은 이야기는 시인 천상병가의 이야기이다. 평생 돈의 셈 법이 어둡고 돈으로부터 자유로왔던 시인이었다. 지상에 소풍 왔던 천사처럼 무구하게 살다간 시인의 혼은 가고 남은 자리마저 그런 식으로 자유로와 지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그처럼 숫자 계산에 어둡고 어린애 같은 셈법으로 살다간 시인은 사실 '서울상대' 출신이었다. 
 
우리 모두는 천상병 시인을 사랑했다. 우리에게 달라붙어 있는 세속과 악의 혐의가 짙을수록 그 어린아이 같은 시인을 그리워했다. 지상에서 가난했고 고초 당했던 그 시인은 그러나 천국에 가면 땅은 선한 것이었다고, 지상은 아름다왔노라고 전할 것이라고 썼다. 악은 그의 머릿속에도 없었고 가슴에도 없었다. 악에 관한한 그는 지진아인 셈이었다. 
 
사물과 사람을 투명하게 관조하여 그려내었던 천상병은 그러나 1967년 7월 친구 한 사람이 동백림사건에 연루되면서 엉뚱하게도 기관에 끌려가 전기고문을 받게 된다. 그 후유증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평생 아이를 갖지 못하는 몸이 된다. 뜻밖의 고초와 충격으로 그의 정신은 황폐해졌고 어느날 거리에 쓰러져 행려병자로 분류되어 시립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그의 친구들은 그가 어디에선가 죽은 것으로 생각해 유고시집 <새>를 출간하고…. 유명한 사건이었다. 유독 어린아이를 좋아했던 시인은 훗날 아내에게 '전기고문을 두 번만 받았어도 아기를 볼 수 있었는데…'하며 아쉬운 마음을 술회하곤 했다 한다. 
 
동백림사건 이후 그의 시세계는 죽음 저편을 바라보는 초월의식과 함께 종교적 원융무애의 어린아이 같은 세계로 나아간다. 엄청난 고초를 겪었지만 절망과 증오와 비탄 아닌 맑고 투명한 어린아이의 세계를 열어보인 것이다. 그 점에서 그는 성자였다. 
 
병구완에 헌신적이었던 아내 목순옥을 그는 하나님이 숨겨두셨던 천사라고 했다. 그는 생전에 고문 후유증으로 활발한 걸음걸이가 아니었지만 인사동에 나오기를 즐겨했다. 아니, 인사동 골목의 아내가 하는 작은 찻집 <귀천>에 나오기를 좋아했다. 귀천에 나오면 무엇보다 하루종일 아내를 볼 수 있어 좋고, 문인·화가·연극인 같은 다정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다고 하였다. 하지만 빨간 옷 입고 오는 여자나 안경 낀 남자는 무척이나 싫어했다고 한다. 무슨 논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싫어했다는 것이다. 이 역시 아이 같은 일면이다. 빨간 옷 입거나 안경 낀 손님이 오면 '문디가시나 문디가시나'하며 아내를 원망했다는 것이다. 
 
'하루에 용돈 2천 원이면 나는 행복하다… 내가 즐겨 마시는 맥주 한잔과 아이스크림 하나면 딱 좋다.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을 좋아했다. 바늘귀를 통과하는 낙타가 있겠는가. 그런데 사람들은 다 부자가 되려고 하니 딱한 노릇이다. 굶지 않기만 하면 되는데… 내게 만일 1억 원이 생긴다면 나는 이 돈을 몽땅 서울대학교에 기증하겠다. 장학금으로….'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나쁜 일도 있었다고/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새)'처럼 가볍게 살다가 시인은 이제 인사동을 떠나 천국으로 갔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귀천)고 작별을 고하며. 
 
천상병이 떠나버린 인사동은 쓸쓸하다. 야트막한 집들과 필방과 도자기와 그림과 그리고 한국차와 시의 동네 인사동. 모든 것이 번쩍거리기만 하는 시대에 무채색으로 가라앉아 있어 정겹던 그 인사동. 이제는 그 동네도 반들반들 닳고단 상업의 거리가 되어간다. 인사동이 때묻어 갈수록 시인의 맑고 투명한 정신이 그 때 묻음을 씻어내고 정화시켜 그래도 인사동의 인사동다운 맛을 지켜내었건만, 그 인사동 지킴이 천상병은 새 되어 천상으로 떠나버린 것이다. 촉수 낮은 '수희재' 전등 밑에서 세상과 인생을 들려주던 '민병산 선생' 떠나고, 인사동을 홀로 지키던 '귀천'의 시인 천상병마저 천국으로 돌아가버려 인사동은 허전하기 그지없다. 
 
하늘이 낮게 가라앉고 눈발이라도 흩날릴 때 '귀천'을 찾아가는 마음들이 비단 그 모과차의 따뜻함 때문만은 아니었을 터이다. 저기 저만큼 어두운 한쪽에 언제나처럼 앉아 있던 시인의 순수가 더 그리워서였을 것이다
 
. (김병종·서울대미대 교수)
 
천상병 생각
 
이승하
 
 
인사동 거리 걸어갈 때 마주치는 찻집
내 그대 살아생전의 얼굴 본 적은 없네
 
그대 반평생 제정신으로 살다
반평생 넋 나가 살았다는 얘기며
술잔만큼의 웃음과
담배 개비만큼의 구걸
소문으로 들어서 알고 있을 뿐
 
나 2000년에
시인으로 살아가기 부끄럽고 한심스러워
'귀천歸天 '간판 못 본 듯 발걸음 옮기네
천상의 시인이었으면 무엇하나
지상의 병 깊은 몸이었던 것을
그대 애꿎게 당한 세 차례의 전기 고문과
생전의 유고 시집 '새'이후
황폐한 나날에 쓴 시들이 쨍그랑!
 
내 혼을 깨뜨리네
아프고 또 아픈 몸으로
소풍 나온 아이처럼 웃고 또 웃다가
하늘로 돌아간 그대 생각에
나 부끄러워 그 집 앞
얼른 지나쳐 가네. 
 
 
​- 이승하 시집 <뼈아픈 별을 찾아서>
 
 
편지
 
 
                     천상병
 
 
점심을 얻어 먹고 배부른 내가
배고팠던 나에게 편지를 쓴다.
옛날에도 더러 있었던 일,
그다지 섭섭하진 않겠지?
 
때론 호사로운 적도 없지 않았다.
그걸 잊지 말아 주기 바란다.
내일을 믿다가
이십년!
 
배부른 내가
그걸 잊을까 걱정이 되어서
나는
자네한테 편지를 쓴다네.
 
 
귀천(歸天)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터에
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내가 죽는 날
그 다음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
 
 
 
막걸리 
 
천상병
 
남들은 막걸리를 술이라지만
내게는 밥이나 마찬가지다
막걸리를 마시면
배가 불러지니 말이다
 
막걸리는 술이 아니다
쌀로 만드는 막걸리는
영양분이 많다
그러니 어찌 술이랴
 
나는 막걸리를 조금씩만
마시니 취한다는 걸 모른다
그저 배만 든든하고
기분만 좋은 것이다
 
 
 
어린애들
                           
    천상병
 
 
정오께 집 대문 밖을 나서니
여섯, 일곱쯤 되는 어린이들이
활기차게 뛰놀고 있다.
 
앞으로 저놈들이 어른이 돼서
이 나라 주인인 될 걸 생각하니
발걸음을 멈추고 그들을 본다.
 
총명하게 생긴 놈들이
아기자기하게 잘도 놀고 있다.
그들의 영리한 눈에 축복이 있길 빈다.
 
 
 
 
 
나무
 
천상병
 
 
 나무를 볼 때마다
 나는 하나님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왜냐구요?
 글쎄 들어보이소.
 산나무에 비료를 준다는 일은 없다.
 그래도 무럭무럭 자란다.
 이건 왠일인가?
 사실은 물밖에
 끌어들이는 것이 없지 않은가?
 그런데 저렇게 자라다니
 신기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산이란 산마다
 나무가 빽빽히 자라는 것은
 누가 심었더란 말인가.
 그것뿐만이 아니다.
 바다 한가운데 섬에도
 나무는 있다.
 이것은 어찌된 일인가.
 누가 심었더란 말이냐?
 나는 도무지 모르겠다.
 
 
 
오월의 신록
                     
   천상병
 

오월의 신록은 너무 신선하다.
녹색은 눈에도 좋고
상쾌하다.

젊은 날이 새롭다
육십 두 살 된 나는
그래도 신록이 좋다.
가슴에 활기를 주기 때문이다.

나는 늙었지만
신록은 청춘이다.
청춘의 특권을 마음껏 발휘하라.
 
  [천상병 전집] 평민사. 2018
 
 

꽃빛  
                      
천상병  
 
손바닥 펴
꽃빛아래 놓으니
꽃빛 그늘 앉아 아롱집니다.
 
며칠 전 간
비원에서 본
그 꽃빛생각 절로 납니다.
 
그 밝음과 그늘이
열렬히 사랑하고 있습니다!  
내 손바닥 위에서.....
 
 
시집 < 요놈 요놈 요 이쁜놈 > 답게, 1991
 
 
푸른 것만이 아니다
                      
천상병  
 
 
저기 저렇게 맑고 푸른 하늘을
자꾸 보고 또 보고 보는데
푸른 것만이 아니다.
 
외로움에 가슴 조일 때
하염없이 잎이 떨어져 오고
들에 나가 팔을 벌리면
보일 듯이 안 보일 듯이 흐르는
한 떨기 구름
 
3월 4월 그리고 5월의 신록
어디서 와서 달은 뜨는가
별은 밤마다 나를 보던가.
 
저기 저렇게 맑고 푸른 하늘을
자꾸 보고 또 보고 보는데
푸른 것만이 아니다.
 
 
시집 < 주막에서 > 민음사, 1995  
 
 
 
내가 좋아하는 여자
                         
천상병
 
 
내가 좋아하는 여자의 으뜸은
물론이지만
아내이외일 수는 없습니다.
 
오십 둘이나 된 아내와
육십살 먹은 남편이니
거의 무능력자이지만
 
그래도 말입니다.
이 시 쓰는 시간은
89년 5월 4일
오후 다섯시 무렵이지만요.
 
이, 삼일 전날 밤에는
뭉클 뭉클
어떻게 요동을 치는지
 
옆방의 아내를
고함 지르며 불렀으나,
한참 불러도
 
아내는 쿨쿨 잠자는 모양으로
장모님의
"시끄럽다, 잠 좀 자자"라는
말씀 때문에
금시 또 미꾸라지가 되는 걸
필자는 어쩌지 못했어요.
 
 
시집 < 요놈 요놈 요 이쁜놈 > 답게, 1991
 
 
 
갈매기
                      
   천상병
 
그대로의 그리움이
갈매기로 하여금
구름이 되게 하였다.
 
가까운 듯
푸른 바다의 이름으로
흰 날개를 하늘에 묻어 보내어
 
이제 파도도
빛나는 가슴도
구름을 따라 먼 나라로 흘렀다.
 
그리하여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날아오르는 자랑이었다.
아름다운 마음이었다.
 
 
 
 
한 가지 소원
                       
천상병  
 
 
나의 다소 명석한 지성과 깨끗한 영혼이
흙 속에 묻혀 살과 같이
문드러지고 진물이 나 삭여진다고?
 
야스퍼스는
과학에게 그 자체의 의미를 물어도
절대로 대답하지 못한다고 했는데-
 
억지밖에 없는 엽전 세상에서
용케도 이때껏 살았나 싶다.
별다른 불만은 없지만,
 
똥걸레 같은 지성은 썩어 버려도
이런 시를 쓰게 하는 내 영혼은
어떻게 좀 안 될지 모르겠다.
 
내가 죽은 여러 해 뒤에는
꾹 쥔 십 원을 슬쩍 주고는
서울길 밤버스를 내 영혼은 타고 있지 않을까?
 
 
< 귀천 > 도서출판 답게,  1996
*한국문학 영역 총서 2 *
 
 
회상 2
                      
천상병  
 
 
그 길을 다시 가면
봄이 오고,
 
고개를 넘으면
여름빛 쬐인다.
 
돌아오는 길에는
가을이 낙엽 흩날리게 하고,
 
겨울은 별 수 없이
함박눈 쏟아진다.
 
내가 네게 쓴
사랑의 편지.
 
그 사랑의 글자에는
그러한 뜻이, 큰 강물 되어 도도히 흐른다.
 
< 귀천 > 답게, 1996
 
 
 
 
 
12월이란 참말로 잔인한 달이다
 
천상병
1930 1 29 ~ 1993 4 28
 
 
엘리어트란 시인은
4월이 잔인한 달처럼 말했지만
사실은 12월이 가장 잔인한 달이다
 
생각해보라
12월이 없으면
새해가 없지 않는가
 
1년을 마감하고
새해가 없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가 새 기분으로
맞이하는 것은
새해뿐이기 때문이다
 
 
바람에게도 길이 있다
                      
천상병  
 
강하게 때론 약하게
함부로 부는 바람인 줄 알아도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길을
바람은 용케 찾아간다.
바람길은 사통팔달(四通八達)이다.
 
나는 비로소 나의 길을 가는데
바람은 바람길을 간다.
길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다.
 
 
< 귀천 > 답게, 1996
 
 
무명전사(無名戰死)
                            
   천상병
 
 
지난날엔 싸움터였던 
흙더미 위에 반듯이 누워 
이즈러진 눈으로 그대는 
그래도 맑은 하늘을 우러러 보는가 
 
구름이 가는 저 하늘 위의 
그 더 위에서 살고 계신 
어머니를 지금 너는 보는가 
 
썩어서 허무러진 살 
그 살의 무게는 
너를 생각하는 이 시간 
우리들의 살의 무게가 되었고 
 
온 몸이 남김 없이 
흙 속에 묻히는 그때부터 
네 뼈는 
영원의 것의 뿌리가 되어지리니 
 
밤하늘을 타고 
내려오는 별빛이 
그 자리를 수억만 번 와서 씻은 뒷날 새벽에 
 
그 뿌리는 나무가 되고 
숲이 되어 
네가 
장엄한 산령(山嶺)을 이룰 것을 나는 믿나니 
 
- 이 몸집은 
저를 잊고 
이제도 어머니를 못 잊은 아들의 것이다.
 
 
천상병 전집 中에서
 
 
김관식 입관
 
천상병
 
 
심통한 바람과 구름이었을 게다.
네 길잡이는.
고단한 이 땅에 슬슬 와서는
한다는 일이
가슴에서는 숱한 구슬
입에서는 독한 먼지
터지게 토해 놓고
오늘은 별 일 없다는 듯이
싸구려 관 속에
삼베옷 걸치고
또 슬슬 들어간다.
네 구슬이 아니라
독한 먼지였다.
좌충우돌의 미학은
너로 말미암아 비롯하고
드디어 끝났다.
구슬도 먼지도 못되는
점잖은 친구들아.
이제는 당하지 않을 것이니
되레 기뻐해다오.
김관식의 가을바람 이는 이 입관을
 
1970년 11월
 
 
 
 
 천상병
 
(千祥炳, 1930년 1월 29일 ~ 1993년 4월 28일)은 대한민국의 시인, 문학평론가이다. 호는 심온(深溫), 본관은 영양(潁陽)이다. 일본 효고현(兵庫縣) 히메지(姬路)에서 출생하였으며 지난날 한때 일본 효고 현 고베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의 원적지는 대한민국 경상남도 마산이다. 종교는 천주교이며, 소풍 온 속세를 떠나 하늘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내용을 담은 시 《귀천(歸天)》으로 유명하다. 1967년 불행히도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심한 옥고와 고문을 겪었으며, 1993년 지병인 간경화로 인해 타계하였다.
 
일본 효고현 히메지에서 한국인 부모에게서 출생했으며, 8.15 광복 후 부모를 따라 귀국하였다. 1949년 마산중학교 5학년 때, 《죽순(竹筍)》 11집에 시 《공상(空想)》 외 1편을 발표했으며, 여러 문예지에 시와 평론 등을 발표했다. 1951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에 입학해 다니다가 중퇴했으며, 중앙정보부에 의해 과장된 사건으로 판명된 소위 '동백림 사건'(1967년)에 연루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친구 강빈구에게 막걸리값으로 5백원,1천원씩 받아 썼던 돈은 공작금으로 과장되었으며, 천상병 시인 자신도 전기고문으로 몸과 정신이 멍들었다. 그때의 처참한 수난을 천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이젠 몇 년이었는가/아이론 밑 와이셔츠같이/(고문)당한 그날은...//이젠 몇 년이었는가/무서운 집 뒷창가에 여름 곤충 한 마리/땀 흘리는 나에게 악수를 청한 그날은.../네 사과 뼈는 알고 있다./진실과 고통/그 어느 쪽이 강자인가를..."
 
이후 천시인은 여러 일화들을 남기는데, 1970년에는 무연고자로 오해받아 서울시립정신병원에 수용되는 일도 있었다. 당시 지인들은 갑자기 사라진 천시인이 죽었다고 생각, 유고시집 《새》를 발표하였다.
 
당시 시집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내 영혼의 빈터에/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내가 죽는 날/그 다음날.//산다는 것과/아름다운 것과/사랑한다는 것과의노래가/한창인 때에/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한 마리 새.//살아서/좋은 일도 있었다고/나쁜 일도 있었다고/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새)
 
1972년 친구의 여동생인 목순옥 여사와 결혼한 천상병 시인은 1979년 시집 《주막에서》를 민음사에서 펴냈고, 《천상병은 천상 시인이다》(1984년), 《저승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1987년), 시집 《요놈! 요놈! 요 이쁜 놈!》(1991년), 동화집 《나는 할아버지다. 요놈들아》"(1993년)도 발표하였다. 천시인은 하느님에 대한 소박하고 순수한 기독교적 신앙을 보여주는 작품활동도 하였다.
 
"하느님은 어찌 생겼을까?/대우주의 정기(精氣)가 모여서/되신 분이 아니실까싶다.//대우주는 넓다./너무나 크다.//그 큰 우주의 정기가 결합하여/우리 하느님이/되신 것이 아니옵니까?"(하느님은 어찌 생겼을까)
 
천상병시인의 시
천상병은 개종을 하지는 않았다. 천주교 명동성당을 다니다가 81년부터 개신교(장로교) 연동교회로 나갔다.
 
"나는 지금까지 약 30년동안은/명동 천주성당에 다녔는데/ 그러니까 어엿한 천주교신도인데도/81년부터는/기독교 연동교회로 나갑니다./주임목사 김형태 목사님도/대단히 훌륭하신 목사님으로/ 그리고 기독교방송에서/그동안 두번 설교를 하셔서/나는 드디어 그분의 연동교회엘/나갈 것을 결심하고 나갑니다./교회당 구조도 아주 교회당답고/조용하고 아늑하여 기뻐집니다./아내는 미리 연동교회였으나/그동안 가톨릭에 구애되어 나 혼자/명동 천주성당에 나갔었으나/그런데 81년부터는 다릅니다./한번밖에 안 나갔어도 그렇게 좋으니/이제는 연동교회에만 나가겠습니다./물론 개종은 않고 말입니다./배신자라는 말 듣기는 아주 싫습니다."(연동교회)
1993년 4월 28일 지병인 간경화증으로 의정부시 장암동 자택에서 타계했고, 의정부 공원묘지에 안장되었다. 이후 유고시집 《나 하늘로 돌아가네》, 《천상병 전집》이 발표되었다. 2007년 5월 1일에는 제 4회 천상병 예술제가 천상병이 죽을 때까지 10여 년 간 거주한 의정부시에서 열리기도 했다.
 
작품 목록
<덕수궁의 오후>
<어둔 밤에>
《새》
<장마>
<간 봄>
<귀천>
《주막에서》
《저승 가는데도 여비가 든다면》
 
94년 KBS 1TV 인간극장에서 천상병 시인의 삶을 다룬 <귀천>이 성탄절 특집 2부작으로 방영됐는데 연극배우 출신 故 정진이 드라마의 주인공이었던 천상병, 故 김자옥이 천 시인의 아내이면서 극의 화자인 목순옥 역을 맡았다[3].
 
학력
일본 효고현 고베 중학교 수료
경상남도 마산고등보통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 중퇴
 
 
 
 
 
 
 
 
천상병의 이야기
 
김병종
 
가난했던 한 시인이 천국으로 떠났다. 조의금이 몇백 걷혔다. 생전에 그렇게 '큰 돈'을 만져본 적 없는 시인의 장모는 가슴이 뛰었다. 이 큰 돈을 어디다 숨길까. 퍼뜩 떠오른 것이 아궁이였다. 거기라면 도둑이 든다해도 찾아낼 수 없을 터였다. 노인은 돈을 신문지에 잘 싸서 아궁이 깊숙이 숨기고서야 편한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시인의 아내는 하늘나라로 간 남편이 추울 거라는 생각에 그 아궁이에 불을 넣었다. 타오르는 불길 속에 푸르스름한 빛이 이상했다. 땔나무 불빛 사이로 배추이파리 같은 것들이 팔랑거리고 있었다.
 
조의금은 그렇게 불타버렸다. 다행히 타다 남은 돈을 은행에서 새 돈으로 바꾸어주어, 그 돈을 먼저 떠난 시인이 '엄마야'며 따르던 팔순의 장모님 장례비로 남겨둘 수 있게 되었다. 시인은 늘 '엄마'의 장례비를 걱정했기 때문이다. 
 
이 슬픈 동화 같은 이야기는 시인 천상병가의 이야기이다. 평생 돈의 셈 법이 어둡고 돈으로부터 자유로왔던 시인이었다. 지상에 소풍 왔던 천사처럼 무구하게 살다간 시인의 혼은 가고 남은 자리마저 그런 식으로 자유로와 지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그처럼 숫자 계산에 어둡고 어린애 같은 셈법으로 살다간 시인은 사실 '서울상대' 출신이었다. 
 
우리 모두는 천상병 시인을 사랑했다. 우리에게 달라붙어 있는 세속과 악의 혐의가 짙을수록 그 어린아이 같은 시인을 그리워했다. 지상에서 가난했고 고초 당했던 그 시인은 그러나 천국에 가면 땅은 선한 것이었다고, 지상은 아름다왔노라고 전할 것이라고 썼다. 악은 그의 머릿속에도 없었고 가슴에도 없었다. 악에 관한한 그는 지진아인 셈이었다. 
 
사물과 사람을 투명하게 관조하여 그려내었던 천상병은 그러나 1967년 7월 친구 한 사람이 동백림사건에 연루되면서 엉뚱하게도 기관에 끌려가 전기고문을 받게 된다. 그 후유증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평생 아이를 갖지 못하는 몸이 된다. 뜻밖의 고초와 충격으로 그의 정신은 황폐해졌고 어느날 거리에 쓰러져 행려병자로 분류되어 시립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그의 친구들은 그가 어디에선가 죽은 것으로 생각해 유고시집 <새>를 출간하고…. 유명한 사건이었다. 유독 어린아이를 좋아했던 시인은 훗날 아내에게 '전기고문을 두 번만 받았어도 아기를 볼 수 있었는데…'하며 아쉬운 마음을 술회하곤 했다 한다. 
 
동백림사건 이후 그의 시세계는 죽음 저편을 바라보는 초월의식과 함께 종교적 원융무애의 어린아이 같은 세계로 나아간다. 엄청난 고초를 겪었지만 절망과 증오와 비탄 아닌 맑고 투명한 어린아이의 세계를 열어보인 것이다. 그 점에서 그는 성자였다. 
 
병구완에 헌신적이었던 아내 목순옥을 그는 하나님이 숨겨두셨던 천사라고 했다. 그는 생전에 고문 후유증으로 활발한 걸음걸이가 아니었지만 인사동에 나오기를 즐겨했다. 아니, 인사동 골목의 아내가 하는 작은 찻집 <귀천>에 나오기를 좋아했다. 귀천에 나오면 무엇보다 하루종일 아내를 볼 수 있어 좋고, 문인·화가·연극인 같은 다정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다고 하였다. 하지만 빨간 옷 입고 오는 여자나 안경 낀 남자는 무척이나 싫어했다고 한다. 무슨 논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싫어했다는 것이다. 이 역시 아이 같은 일면이다. 빨간 옷 입거나 안경 낀 손님이 오면 '문디가시나 문디가시나'하며 아내를 원망했다는 것이다. 
 
'하루에 용돈 2천 원이면 나는 행복하다… 내가 즐겨 마시는 맥주 한잔과 아이스크림 하나면 딱 좋다.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을 좋아했다. 바늘귀를 통과하는 낙타가 있겠는가. 그런데 사람들은 다 부자가 되려고 하니 딱한 노릇이다. 굶지 않기만 하면 되는데… 내게 만일 1억 원이 생긴다면 나는 이 돈을 몽땅 서울대학교에 기증하겠다. 장학금으로….'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나쁜 일도 있었다고/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새)'처럼 가볍게 살다가 시인은 이제 인사동을 떠나 천국으로 갔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귀천)고 작별을 고하며. 
 
천상병이 떠나버린 인사동은 쓸쓸하다. 야트막한 집들과 필방과 도자기와 그림과 그리고 한국차와 시의 동네 인사동. 모든 것이 번쩍거리기만 하는 시대에 무채색으로 가라앉아 있어 정겹던 그 인사동. 이제는 그 동네도 반들반들 닳고단 상업의 거리가 되어간다. 인사동이 때묻어 갈수록 시인의 맑고 투명한 정신이 그 때 묻음을 씻어내고 정화시켜 그래도 인사동의 인사동다운 맛을 지켜내었건만, 그 인사동 지킴이 천상병은 새 되어 천상으로 떠나버린 것이다. 촉수 낮은 '수희재' 전등 밑에서 세상과 인생을 들려주던 '민병산 선생' 떠나고, 인사동을 홀로 지키던 '귀천'의 시인 천상병마저 천국으로 돌아가버려 인사동은 허전하기 그지없다. 
 
하늘이 낮게 가라앉고 눈발이라도 흩날릴 때 '귀천'을 찾아가는 마음들이 비단 그 모과차의 따뜻함 때문만은 아니었을 터이다. 저기 저만큼 어두운 한쪽에 언제나처럼 앉아 있던 시인의 순수가 더 그리워서였을 것이다
 
. (김병종·서울대미대 교수)
 
천상병 생각
 
이승하
 
 
인사동 거리 걸어갈 때 마주치는 찻집
내 그대 살아생전의 얼굴 본 적은 없네
 
그대 반평생 제정신으로 살다
반평생 넋 나가 살았다는 얘기며
술잔만큼의 웃음과
담배 개비만큼의 구걸
소문으로 들어서 알고 있을 뿐
 
나 2000년에
시인으로 살아가기 부끄럽고 한심스러워
'귀천歸天 '간판 못 본 듯 발걸음 옮기네
천상의 시인이었으면 무엇하나
지상의 병 깊은 몸이었던 것을
그대 애꿎게 당한 세 차례의 전기 고문과
생전의 유고 시집 '새'이후
황폐한 나날에 쓴 시들이 쨍그랑!
 
내 혼을 깨뜨리네
아프고 또 아픈 몸으로
소풍 나온 아이처럼 웃고 또 웃다가
하늘로 돌아간 그대 생각에
나 부끄러워 그 집 앞
얼른 지나쳐 가네. 
 
 
​- 이승하 시집 <뼈아픈 별을 찾아서>
 
 
편지
 
 
                     천상병
 
 
점심을 얻어 먹고 배부른 내가
배고팠던 나에게 편지를 쓴다.
옛날에도 더러 있었던 일,
그다지 섭섭하진 않겠지?
 
때론 호사로운 적도 없지 않았다.
그걸 잊지 말아 주기 바란다.
내일을 믿다가
이십년!
 
배부른 내가
그걸 잊을까 걱정이 되어서
나는
자네한테 편지를 쓴다네.
 
 
귀천(歸天)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터에
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내가 죽는 날
그 다음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
 
 
 
막걸리 
 
천상병
 
남들은 막걸리를 술이라지만
내게는 밥이나 마찬가지다
막걸리를 마시면
배가 불러지니 말이다
 
막걸리는 술이 아니다
쌀로 만드는 막걸리는
영양분이 많다
그러니 어찌 술이랴
 
나는 막걸리를 조금씩만
마시니 취한다는 걸 모른다
그저 배만 든든하고
기분만 좋은 것이다
 
 
 
어린애들
                           
    천상병
 
 
정오께 집 대문 밖을 나서니
여섯, 일곱쯤 되는 어린이들이
활기차게 뛰놀고 있다.
 
앞으로 저놈들이 어른이 돼서
이 나라 주인인 될 걸 생각하니
발걸음을 멈추고 그들을 본다.
 
총명하게 생긴 놈들이
아기자기하게 잘도 놀고 있다.
그들의 영리한 눈에 축복이 있길 빈다.
 
 
 
 
 
나무
 
천상병
 
 
 나무를 볼 때마다
 나는 하나님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왜냐구요?
 글쎄 들어보이소.
 산나무에 비료를 준다는 일은 없다.
 그래도 무럭무럭 자란다.
 이건 왠일인가?
 사실은 물밖에
 끌어들이는 것이 없지 않은가?
 그런데 저렇게 자라다니
 신기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산이란 산마다
 나무가 빽빽히 자라는 것은
 누가 심었더란 말인가.
 그것뿐만이 아니다.
 바다 한가운데 섬에도
 나무는 있다.
 이것은 어찌된 일인가.
 누가 심었더란 말이냐?
 나는 도무지 모르겠다.
 
 
 
오월의 신록
                     
   천상병
 

오월의 신록은 너무 신선하다.
녹색은 눈에도 좋고
상쾌하다.

젊은 날이 새롭다
육십 두 살 된 나는
그래도 신록이 좋다.
가슴에 활기를 주기 때문이다.

나는 늙었지만
신록은 청춘이다.
청춘의 특권을 마음껏 발휘하라.
 
  [천상병 전집] 평민사. 2018
 
 

꽃빛  
                      
천상병  
 
손바닥 펴
꽃빛아래 놓으니
꽃빛 그늘 앉아 아롱집니다.
 
며칠 전 간
비원에서 본
그 꽃빛생각 절로 납니다.
 
그 밝음과 그늘이
열렬히 사랑하고 있습니다!  
내 손바닥 위에서.....
 
 
시집 < 요놈 요놈 요 이쁜놈 > 답게, 1991
 
 
푸른 것만이 아니다
                      
천상병  
 
 
저기 저렇게 맑고 푸른 하늘을
자꾸 보고 또 보고 보는데
푸른 것만이 아니다.
 
외로움에 가슴 조일 때
하염없이 잎이 떨어져 오고
들에 나가 팔을 벌리면
보일 듯이 안 보일 듯이 흐르는
한 떨기 구름
 
3월 4월 그리고 5월의 신록
어디서 와서 달은 뜨는가
별은 밤마다 나를 보던가.
 
저기 저렇게 맑고 푸른 하늘을
자꾸 보고 또 보고 보는데
푸른 것만이 아니다.
 
 
시집 < 주막에서 > 민음사, 1995  
 
 
 
내가 좋아하는 여자
                         
천상병
 
 
내가 좋아하는 여자의 으뜸은
물론이지만
아내이외일 수는 없습니다.
 
오십 둘이나 된 아내와
육십살 먹은 남편이니
거의 무능력자이지만
 
그래도 말입니다.
이 시 쓰는 시간은
89년 5월 4일
오후 다섯시 무렵이지만요.
 
이, 삼일 전날 밤에는
뭉클 뭉클
어떻게 요동을 치는지
 
옆방의 아내를
고함 지르며 불렀으나,
한참 불러도
 
아내는 쿨쿨 잠자는 모양으로
장모님의
"시끄럽다, 잠 좀 자자"라는
말씀 때문에
금시 또 미꾸라지가 되는 걸
필자는 어쩌지 못했어요.
 
 
시집 < 요놈 요놈 요 이쁜놈 > 답게, 1991
 
 
 
갈매기
                      
   천상병
 
그대로의 그리움이
갈매기로 하여금
구름이 되게 하였다.
 
가까운 듯
푸른 바다의 이름으로
흰 날개를 하늘에 묻어 보내어
 
이제 파도도
빛나는 가슴도
구름을 따라 먼 나라로 흘렀다.
 
그리하여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날아오르는 자랑이었다.
아름다운 마음이었다.
 
 
 
 
한 가지 소원
                       
천상병  
 
 
나의 다소 명석한 지성과 깨끗한 영혼이
흙 속에 묻혀 살과 같이
문드러지고 진물이 나 삭여진다고?
 
야스퍼스는
과학에게 그 자체의 의미를 물어도
절대로 대답하지 못한다고 했는데-
 
억지밖에 없는 엽전 세상에서
용케도 이때껏 살았나 싶다.
별다른 불만은 없지만,
 
똥걸레 같은 지성은 썩어 버려도
이런 시를 쓰게 하는 내 영혼은
어떻게 좀 안 될지 모르겠다.
 
내가 죽은 여러 해 뒤에는
꾹 쥔 십 원을 슬쩍 주고는
서울길 밤버스를 내 영혼은 타고 있지 않을까?
 
 
< 귀천 > 도서출판 답게,  1996
*한국문학 영역 총서 2 *
 
 
회상 2
                      
천상병  
 
 
그 길을 다시 가면
봄이 오고,
 
고개를 넘으면
여름빛 쬐인다.
 
돌아오는 길에는
가을이 낙엽 흩날리게 하고,
 
겨울은 별 수 없이
함박눈 쏟아진다.
 
내가 네게 쓴
사랑의 편지.
 
그 사랑의 글자에는
그러한 뜻이, 큰 강물 되어 도도히 흐른다.
 
< 귀천 > 답게, 1996
 
 
 
 
 
12월이란 참말로 잔인한 달이다
 
천상병
1930 1 29 ~ 1993 4 28
 
 
엘리어트란 시인은
4월이 잔인한 달처럼 말했지만
사실은 12월이 가장 잔인한 달이다
 
생각해보라
12월이 없으면
새해가 없지 않는가
 
1년을 마감하고
새해가 없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가 새 기분으로
맞이하는 것은
새해뿐이기 때문이다
 
 
바람에게도 길이 있다
                      
천상병  
 
강하게 때론 약하게
함부로 부는 바람인 줄 알아도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길을
바람은 용케 찾아간다.
바람길은 사통팔달(四通八達)이다.
 
나는 비로소 나의 길을 가는데
바람은 바람길을 간다.
길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다.
 
 
< 귀천 > 답게, 1996
 
 
무명전사(無名戰死)
                            
   천상병
 
 
지난날엔 싸움터였던 
흙더미 위에 반듯이 누워 
이즈러진 눈으로 그대는 
그래도 맑은 하늘을 우러러 보는가 
 
구름이 가는 저 하늘 위의 
그 더 위에서 살고 계신 
어머니를 지금 너는 보는가 
 
썩어서 허무러진 살 
그 살의 무게는 
너를 생각하는 이 시간 
우리들의 살의 무게가 되었고 
 
온 몸이 남김 없이 
흙 속에 묻히는 그때부터 
네 뼈는 
영원의 것의 뿌리가 되어지리니 
 
밤하늘을 타고 
내려오는 별빛이 
그 자리를 수억만 번 와서 씻은 뒷날 새벽에 
 
그 뿌리는 나무가 되고 
숲이 되어 
네가 
장엄한 산령(山嶺)을 이룰 것을 나는 믿나니 
 
- 이 몸집은 
저를 잊고 
이제도 어머니를 못 잊은 아들의 것이다.
 
 
천상병 전집 中에서
 
 
김관식 입관
 
천상병
 
 
심통한 바람과 구름이었을 게다.
네 길잡이는.
고단한 이 땅에 슬슬 와서는
한다는 일이
가슴에서는 숱한 구슬
입에서는 독한 먼지
터지게 토해 놓고
오늘은 별 일 없다는 듯이
싸구려 관 속에
삼베옷 걸치고
또 슬슬 들어간다.
네 구슬이 아니라
독한 먼지였다.
좌충우돌의 미학은
너로 말미암아 비롯하고
드디어 끝났다.
구슬도 먼지도 못되는
점잖은 친구들아.
이제는 당하지 않을 것이니
되레 기뻐해다오.
김관식의 가을바람 이는 이 입관을
 
1970년 11월
 
 
 
 
 천상병
 
(千祥炳, 1930년 1월 29일 ~ 1993년 4월 28일)은 대한민국의 시인, 문학평론가이다. 호는 심온(深溫), 본관은 영양(潁陽)이다. 일본 효고현(兵庫縣) 히메지(姬路)에서 출생하였으며 지난날 한때 일본 효고 현 고베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의 원적지는 대한민국 경상남도 마산이다. 종교는 천주교이며, 소풍 온 속세를 떠나 하늘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내용을 담은 시 《귀천(歸天)》으로 유명하다. 1967년 불행히도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심한 옥고와 고문을 겪었으며, 1993년 지병인 간경화로 인해 타계하였다.
 
일본 효고현 히메지에서 한국인 부모에게서 출생했으며, 8.15 광복 후 부모를 따라 귀국하였다. 1949년 마산중학교 5학년 때, 《죽순(竹筍)》 11집에 시 《공상(空想)》 외 1편을 발표했으며, 여러 문예지에 시와 평론 등을 발표했다. 1951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에 입학해 다니다가 중퇴했으며, 중앙정보부에 의해 과장된 사건으로 판명된 소위 '동백림 사건'(1967년)에 연루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친구 강빈구에게 막걸리값으로 5백원,1천원씩 받아 썼던 돈은 공작금으로 과장되었으며, 천상병 시인 자신도 전기고문으로 몸과 정신이 멍들었다. 그때의 처참한 수난을 천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이젠 몇 년이었는가/아이론 밑 와이셔츠같이/(고문)당한 그날은...//이젠 몇 년이었는가/무서운 집 뒷창가에 여름 곤충 한 마리/땀 흘리는 나에게 악수를 청한 그날은.../네 사과 뼈는 알고 있다./진실과 고통/그 어느 쪽이 강자인가를..."
 
이후 천시인은 여러 일화들을 남기는데, 1970년에는 무연고자로 오해받아 서울시립정신병원에 수용되는 일도 있었다. 당시 지인들은 갑자기 사라진 천시인이 죽었다고 생각, 유고시집 《새》를 발표하였다.
 
당시 시집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내 영혼의 빈터에/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내가 죽는 날/그 다음날.//산다는 것과/아름다운 것과/사랑한다는 것과의노래가/한창인 때에/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한 마리 새.//살아서/좋은 일도 있었다고/나쁜 일도 있었다고/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새)
 
1972년 친구의 여동생인 목순옥 여사와 결혼한 천상병 시인은 1979년 시집 《주막에서》를 민음사에서 펴냈고, 《천상병은 천상 시인이다》(1984년), 《저승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1987년), 시집 《요놈! 요놈! 요 이쁜 놈!》(1991년), 동화집 《나는 할아버지다. 요놈들아》"(1993년)도 발표하였다. 천시인은 하느님에 대한 소박하고 순수한 기독교적 신앙을 보여주는 작품활동도 하였다.
 
"하느님은 어찌 생겼을까?/대우주의 정기(精氣)가 모여서/되신 분이 아니실까싶다.//대우주는 넓다./너무나 크다.//그 큰 우주의 정기가 결합하여/우리 하느님이/되신 것이 아니옵니까?"(하느님은 어찌 생겼을까)
 
천상병시인의 시
천상병은 개종을 하지는 않았다. 천주교 명동성당을 다니다가 81년부터 개신교(장로교) 연동교회로 나갔다.
 
"나는 지금까지 약 30년동안은/명동 천주성당에 다녔는데/ 그러니까 어엿한 천주교신도인데도/81년부터는/기독교 연동교회로 나갑니다./주임목사 김형태 목사님도/대단히 훌륭하신 목사님으로/ 그리고 기독교방송에서/그동안 두번 설교를 하셔서/나는 드디어 그분의 연동교회엘/나갈 것을 결심하고 나갑니다./교회당 구조도 아주 교회당답고/조용하고 아늑하여 기뻐집니다./아내는 미리 연동교회였으나/그동안 가톨릭에 구애되어 나 혼자/명동 천주성당에 나갔었으나/그런데 81년부터는 다릅니다./한번밖에 안 나갔어도 그렇게 좋으니/이제는 연동교회에만 나가겠습니다./물론 개종은 않고 말입니다./배신자라는 말 듣기는 아주 싫습니다."(연동교회)
1993년 4월 28일 지병인 간경화증으로 의정부시 장암동 자택에서 타계했고, 의정부 공원묘지에 안장되었다. 이후 유고시집 《나 하늘로 돌아가네》, 《천상병 전집》이 발표되었다. 2007년 5월 1일에는 제 4회 천상병 예술제가 천상병이 죽을 때까지 10여 년 간 거주한 의정부시에서 열리기도 했다.
 
작품 목록
<덕수궁의 오후>
<어둔 밤에>
《새》
<장마>
<간 봄>
<귀천>
《주막에서》
《저승 가는데도 여비가 든다면》
 
94년 KBS 1TV 인간극장에서 천상병 시인의 삶을 다룬 <귀천>이 성탄절 특집 2부작으로 방영됐는데 연극배우 출신 故 정진이 드라마의 주인공이었던 천상병, 故 김자옥이 천 시인의 아내이면서 극의 화자인 목순옥 역을 맡았다[3].
 
학력
일본 효고현 고베 중학교 수료
경상남도 마산고등보통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 중퇴
 
 
 
 
 
 
 
 
천상병의 이야기
 
김병종
 
가난했던 한 시인이 천국으로 떠났다. 조의금이 몇백 걷혔다. 생전에 그렇게 '큰 돈'을 만져본 적 없는 시인의 장모는 가슴이 뛰었다. 이 큰 돈을 어디다 숨길까. 퍼뜩 떠오른 것이 아궁이였다. 거기라면 도둑이 든다해도 찾아낼 수 없을 터였다. 노인은 돈을 신문지에 잘 싸서 아궁이 깊숙이 숨기고서야 편한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시인의 아내는 하늘나라로 간 남편이 추울 거라는 생각에 그 아궁이에 불을 넣었다. 타오르는 불길 속에 푸르스름한 빛이 이상했다. 땔나무 불빛 사이로 배추이파리 같은 것들이 팔랑거리고 있었다.
 
조의금은 그렇게 불타버렸다. 다행히 타다 남은 돈을 은행에서 새 돈으로 바꾸어주어, 그 돈을 먼저 떠난 시인이 '엄마야'며 따르던 팔순의 장모님 장례비로 남겨둘 수 있게 되었다. 시인은 늘 '엄마'의 장례비를 걱정했기 때문이다. 
 
이 슬픈 동화 같은 이야기는 시인 천상병가의 이야기이다. 평생 돈의 셈 법이 어둡고 돈으로부터 자유로왔던 시인이었다. 지상에 소풍 왔던 천사처럼 무구하게 살다간 시인의 혼은 가고 남은 자리마저 그런 식으로 자유로와 지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그처럼 숫자 계산에 어둡고 어린애 같은 셈법으로 살다간 시인은 사실 '서울상대' 출신이었다. 
 
우리 모두는 천상병 시인을 사랑했다. 우리에게 달라붙어 있는 세속과 악의 혐의가 짙을수록 그 어린아이 같은 시인을 그리워했다. 지상에서 가난했고 고초 당했던 그 시인은 그러나 천국에 가면 땅은 선한 것이었다고, 지상은 아름다왔노라고 전할 것이라고 썼다. 악은 그의 머릿속에도 없었고 가슴에도 없었다. 악에 관한한 그는 지진아인 셈이었다. 
 
사물과 사람을 투명하게 관조하여 그려내었던 천상병은 그러나 1967년 7월 친구 한 사람이 동백림사건에 연루되면서 엉뚱하게도 기관에 끌려가 전기고문을 받게 된다. 그 후유증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평생 아이를 갖지 못하는 몸이 된다. 뜻밖의 고초와 충격으로 그의 정신은 황폐해졌고 어느날 거리에 쓰러져 행려병자로 분류되어 시립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그의 친구들은 그가 어디에선가 죽은 것으로 생각해 유고시집 <새>를 출간하고…. 유명한 사건이었다. 유독 어린아이를 좋아했던 시인은 훗날 아내에게 '전기고문을 두 번만 받았어도 아기를 볼 수 있었는데…'하며 아쉬운 마음을 술회하곤 했다 한다. 
 
동백림사건 이후 그의 시세계는 죽음 저편을 바라보는 초월의식과 함께 종교적 원융무애의 어린아이 같은 세계로 나아간다. 엄청난 고초를 겪었지만 절망과 증오와 비탄 아닌 맑고 투명한 어린아이의 세계를 열어보인 것이다. 그 점에서 그는 성자였다. 
 
병구완에 헌신적이었던 아내 목순옥을 그는 하나님이 숨겨두셨던 천사라고 했다. 그는 생전에 고문 후유증으로 활발한 걸음걸이가 아니었지만 인사동에 나오기를 즐겨했다. 아니, 인사동 골목의 아내가 하는 작은 찻집 <귀천>에 나오기를 좋아했다. 귀천에 나오면 무엇보다 하루종일 아내를 볼 수 있어 좋고, 문인·화가·연극인 같은 다정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다고 하였다. 하지만 빨간 옷 입고 오는 여자나 안경 낀 남자는 무척이나 싫어했다고 한다. 무슨 논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싫어했다는 것이다. 이 역시 아이 같은 일면이다. 빨간 옷 입거나 안경 낀 손님이 오면 '문디가시나 문디가시나'하며 아내를 원망했다는 것이다. 
 
'하루에 용돈 2천 원이면 나는 행복하다… 내가 즐겨 마시는 맥주 한잔과 아이스크림 하나면 딱 좋다.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을 좋아했다. 바늘귀를 통과하는 낙타가 있겠는가. 그런데 사람들은 다 부자가 되려고 하니 딱한 노릇이다. 굶지 않기만 하면 되는데… 내게 만일 1억 원이 생긴다면 나는 이 돈을 몽땅 서울대학교에 기증하겠다. 장학금으로….'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나쁜 일도 있었다고/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새)'처럼 가볍게 살다가 시인은 이제 인사동을 떠나 천국으로 갔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귀천)고 작별을 고하며. 
 
천상병이 떠나버린 인사동은 쓸쓸하다. 야트막한 집들과 필방과 도자기와 그림과 그리고 한국차와 시의 동네 인사동. 모든 것이 번쩍거리기만 하는 시대에 무채색으로 가라앉아 있어 정겹던 그 인사동. 이제는 그 동네도 반들반들 닳고단 상업의 거리가 되어간다. 인사동이 때묻어 갈수록 시인의 맑고 투명한 정신이 그 때 묻음을 씻어내고 정화시켜 그래도 인사동의 인사동다운 맛을 지켜내었건만, 그 인사동 지킴이 천상병은 새 되어 천상으로 떠나버린 것이다. 촉수 낮은 '수희재' 전등 밑에서 세상과 인생을 들려주던 '민병산 선생' 떠나고, 인사동을 홀로 지키던 '귀천'의 시인 천상병마저 천국으로 돌아가버려 인사동은 허전하기 그지없다. 
 
하늘이 낮게 가라앉고 눈발이라도 흩날릴 때 '귀천'을 찾아가는 마음들이 비단 그 모과차의 따뜻함 때문만은 아니었을 터이다. 저기 저만큼 어두운 한쪽에 언제나처럼 앉아 있던 시인의 순수가 더 그리워서였을 것이다
 
. (김병종·서울대미대 교수)
 
천상병 생각
 
이승하
 
 
인사동 거리 걸어갈 때 마주치는 찻집
내 그대 살아생전의 얼굴 본 적은 없네
 
그대 반평생 제정신으로 살다
반평생 넋 나가 살았다는 얘기며
술잔만큼의 웃음과
담배 개비만큼의 구걸
소문으로 들어서 알고 있을 뿐
 
나 2000년에
시인으로 살아가기 부끄럽고 한심스러워
'귀천歸天 '간판 못 본 듯 발걸음 옮기네
천상의 시인이었으면 무엇하나
지상의 병 깊은 몸이었던 것을
그대 애꿎게 당한 세 차례의 전기 고문과
생전의 유고 시집 '새'이후
황폐한 나날에 쓴 시들이 쨍그랑!
 
내 혼을 깨뜨리네
아프고 또 아픈 몸으로
소풍 나온 아이처럼 웃고 또 웃다가
하늘로 돌아간 그대 생각에
나 부끄러워 그 집 앞
얼른 지나쳐 가네. 
 
 
​- 이승하 시집 <뼈아픈 별을 찾아서>
 
 
편지
 
 
                     천상병
 
 
점심을 얻어 먹고 배부른 내가
배고팠던 나에게 편지를 쓴다.
옛날에도 더러 있었던 일,
그다지 섭섭하진 않겠지?
 
때론 호사로운 적도 없지 않았다.
그걸 잊지 말아 주기 바란다.
내일을 믿다가
이십년!
 
배부른 내가
그걸 잊을까 걱정이 되어서
나는
자네한테 편지를 쓴다네.
 
 
귀천(歸天)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터에
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내가 죽는 날
그 다음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
 
 
 
막걸리 
 
천상병
 
남들은 막걸리를 술이라지만
내게는 밥이나 마찬가지다
막걸리를 마시면
배가 불러지니 말이다
 
막걸리는 술이 아니다
쌀로 만드는 막걸리는
영양분이 많다
그러니 어찌 술이랴
 
나는 막걸리를 조금씩만
마시니 취한다는 걸 모른다
그저 배만 든든하고
기분만 좋은 것이다
 
 
 
어린애들
                           
    천상병
 
 
정오께 집 대문 밖을 나서니
여섯, 일곱쯤 되는 어린이들이
활기차게 뛰놀고 있다.
 
앞으로 저놈들이 어른이 돼서
이 나라 주인인 될 걸 생각하니
발걸음을 멈추고 그들을 본다.
 
총명하게 생긴 놈들이
아기자기하게 잘도 놀고 있다.
그들의 영리한 눈에 축복이 있길 빈다.
 
 
 
 
 
나무
 
천상병
 
 
 나무를 볼 때마다
 나는 하나님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왜냐구요?
 글쎄 들어보이소.
 산나무에 비료를 준다는 일은 없다.
 그래도 무럭무럭 자란다.
 이건 왠일인가?
 사실은 물밖에
 끌어들이는 것이 없지 않은가?
 그런데 저렇게 자라다니
 신기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산이란 산마다
 나무가 빽빽히 자라는 것은
 누가 심었더란 말인가.
 그것뿐만이 아니다.
 바다 한가운데 섬에도
 나무는 있다.
 이것은 어찌된 일인가.
 누가 심었더란 말이냐?
 나는 도무지 모르겠다.
 
 
 
오월의 신록
                     
   천상병
 

오월의 신록은 너무 신선하다.
녹색은 눈에도 좋고
상쾌하다.

젊은 날이 새롭다
육십 두 살 된 나는
그래도 신록이 좋다.
가슴에 활기를 주기 때문이다.

나는 늙었지만
신록은 청춘이다.
청춘의 특권을 마음껏 발휘하라.
 
  [천상병 전집] 평민사. 2018
 
 

꽃빛  
                      
천상병  
 
손바닥 펴
꽃빛아래 놓으니
꽃빛 그늘 앉아 아롱집니다.
 
며칠 전 간
비원에서 본
그 꽃빛생각 절로 납니다.
 
그 밝음과 그늘이
열렬히 사랑하고 있습니다!  
내 손바닥 위에서.....
 
 
시집 < 요놈 요놈 요 이쁜놈 > 답게, 1991
 
 
푸른 것만이 아니다
                      
천상병  
 
 
저기 저렇게 맑고 푸른 하늘을
자꾸 보고 또 보고 보는데
푸른 것만이 아니다.
 
외로움에 가슴 조일 때
하염없이 잎이 떨어져 오고
들에 나가 팔을 벌리면
보일 듯이 안 보일 듯이 흐르는
한 떨기 구름
 
3월 4월 그리고 5월의 신록
어디서 와서 달은 뜨는가
별은 밤마다 나를 보던가.
 
저기 저렇게 맑고 푸른 하늘을
자꾸 보고 또 보고 보는데
푸른 것만이 아니다.
 
 
시집 < 주막에서 > 민음사, 1995  
 
 
 
내가 좋아하는 여자
                         
천상병
 
 
내가 좋아하는 여자의 으뜸은
물론이지만
아내이외일 수는 없습니다.
 
오십 둘이나 된 아내와
육십살 먹은 남편이니
거의 무능력자이지만
 
그래도 말입니다.
이 시 쓰는 시간은
89년 5월 4일
오후 다섯시 무렵이지만요.
 
이, 삼일 전날 밤에는
뭉클 뭉클
어떻게 요동을 치는지
 
옆방의 아내를
고함 지르며 불렀으나,
한참 불러도
 
아내는 쿨쿨 잠자는 모양으로
장모님의
"시끄럽다, 잠 좀 자자"라는
말씀 때문에
금시 또 미꾸라지가 되는 걸
필자는 어쩌지 못했어요.
 
 
시집 < 요놈 요놈 요 이쁜놈 > 답게, 1991
 
 
 
갈매기
                      
   천상병
 
그대로의 그리움이
갈매기로 하여금
구름이 되게 하였다.
 
가까운 듯
푸른 바다의 이름으로
흰 날개를 하늘에 묻어 보내어
 
이제 파도도
빛나는 가슴도
구름을 따라 먼 나라로 흘렀다.
 
그리하여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날아오르는 자랑이었다.
아름다운 마음이었다.
 
 
 
 
한 가지 소원
                       
천상병  
 
 
나의 다소 명석한 지성과 깨끗한 영혼이
흙 속에 묻혀 살과 같이
문드러지고 진물이 나 삭여진다고?
 
야스퍼스는
과학에게 그 자체의 의미를 물어도
절대로 대답하지 못한다고 했는데-
 
억지밖에 없는 엽전 세상에서
용케도 이때껏 살았나 싶다.
별다른 불만은 없지만,
 
똥걸레 같은 지성은 썩어 버려도
이런 시를 쓰게 하는 내 영혼은
어떻게 좀 안 될지 모르겠다.
 
내가 죽은 여러 해 뒤에는
꾹 쥔 십 원을 슬쩍 주고는
서울길 밤버스를 내 영혼은 타고 있지 않을까?
 
 
< 귀천 > 도서출판 답게,  1996
*한국문학 영역 총서 2 *
 
 
회상 2
                      
천상병  
 
 
그 길을 다시 가면
봄이 오고,
 
고개를 넘으면
여름빛 쬐인다.
 
돌아오는 길에는
가을이 낙엽 흩날리게 하고,
 
겨울은 별 수 없이
함박눈 쏟아진다.
 
내가 네게 쓴
사랑의 편지.
 
그 사랑의 글자에는
그러한 뜻이, 큰 강물 되어 도도히 흐른다.
 
< 귀천 > 답게, 1996
 
 
 
 
 
12월이란 참말로 잔인한 달이다
 
천상병
1930 1 29 ~ 1993 4 28
 
 
엘리어트란 시인은
4월이 잔인한 달처럼 말했지만
사실은 12월이 가장 잔인한 달이다
 
생각해보라
12월이 없으면
새해가 없지 않는가
 
1년을 마감하고
새해가 없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가 새 기분으로
맞이하는 것은
새해뿐이기 때문이다
 
 
바람에게도 길이 있다
                      
천상병  
 
강하게 때론 약하게
함부로 부는 바람인 줄 알아도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길을
바람은 용케 찾아간다.
바람길은 사통팔달(四通八達)이다.
 
나는 비로소 나의 길을 가는데
바람은 바람길을 간다.
길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다.
 
 
< 귀천 > 답게, 1996
 
 
무명전사(無名戰死)
                            
   천상병
 
 
지난날엔 싸움터였던 
흙더미 위에 반듯이 누워 
이즈러진 눈으로 그대는 
그래도 맑은 하늘을 우러러 보는가 
 
구름이 가는 저 하늘 위의 
그 더 위에서 살고 계신 
어머니를 지금 너는 보는가 
 
썩어서 허무러진 살 
그 살의 무게는 
너를 생각하는 이 시간 
우리들의 살의 무게가 되었고 
 
온 몸이 남김 없이 
흙 속에 묻히는 그때부터 
네 뼈는 
영원의 것의 뿌리가 되어지리니 
 
밤하늘을 타고 
내려오는 별빛이 
그 자리를 수억만 번 와서 씻은 뒷날 새벽에 
 
그 뿌리는 나무가 되고 
숲이 되어 
네가 
장엄한 산령(山嶺)을 이룰 것을 나는 믿나니 
 
- 이 몸집은 
저를 잊고 
이제도 어머니를 못 잊은 아들의 것이다.
 
 
천상병 전집 中에서
 
 
김관식 입관
 
천상병
 
 
심통한 바람과 구름이었을 게다.
네 길잡이는.
고단한 이 땅에 슬슬 와서는
한다는 일이
가슴에서는 숱한 구슬
입에서는 독한 먼지
터지게 토해 놓고
오늘은 별 일 없다는 듯이
싸구려 관 속에
삼베옷 걸치고
또 슬슬 들어간다.
네 구슬이 아니라
독한 먼지였다.
좌충우돌의 미학은
너로 말미암아 비롯하고
드디어 끝났다.
구슬도 먼지도 못되는
점잖은 친구들아.
이제는 당하지 않을 것이니
되레 기뻐해다오.
김관식의 가을바람 이는 이 입관을
 
197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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