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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팔월 한가위 D-1 몽골 울란바토르 풍경 (2016. 09. 14)
2016년 09월 14일 22시 40분  조회:1618  추천:0  작성자: 몽골 특파원

2016 팔월 한가위 새벽 시각입니다. 지금쯤 고국 어느 집 안방에서는 술 한 상 차려 놓고 도란도란 혈육 간의 정다운 대화가 이어지겠습니다.

얼마 전, 스스로 세상을 등진 하일성 야구 해설위원은 언젠가 TV에 나와서, 웃으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아휴, 그 놈의 처가(남자들=부인 오빠들)는 웬 술을 그렇게 많이 마시는지 모르겠어요! 명절 때 처가에 가면, 2홉들이도 아니고, 4홉들이 소주 한 짝이 금방 동이 난단 말이에요!" 하지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싫지는 않은 표정이었습니다.

하일성 씨는, 베트남 전쟁에서도 살아돌아왔으면서, 왜, 하필이면 명절 앞두고, 그렇게 홀연히, 서둘러 하늘나라로 떠났는지 모르겠습니다. 남의 속사정까지 제 알 바 아닙니다만, 바야흐로, 명절이니, 지금쯤 8월 한가위 맞이 술 한 잔을 하늘나라 현장에서 먼저 가 있는, 조성민, 장효조, 최동원 같은 후배들 불러 모아 같이 나누고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몽골의 가을이 깊어갑니다. 어제 보니 몽골 정부 종합청사 뜰에 심어져 있는 나무의 나뭇잎들이 슬슬 노란색으로 변해 가고 있더군요.



2016년 팔월 한가위를 하루 앞둔 9월 14일 수요일 정오, 저는 동료 교수인 데. 에르데네수렌(D. Erdenesuren) 교수, 엠. 사란토야(M. Sarantuya) 교수와 오찬을 같이 했습니다.



지난 9월 2일 금요일 거행됐던 저의 제9회 캐나다 민초해외문학상 수상 축하 몽골인문대학교(UHM=University of the Humanities in Mongolia, 총장 베. 촐론도르지=B. Chuluundorj) 한국학과 교수단 오찬 자리에, 데. 에르데네수렌(D. Erdenesuren) 교수가 지방 출장 관계로 부득이 자리를 같이 하지 못했기 때문에, 제가 별도로 마련한 자리였습니다.

엠. 사란토야 교수(Prof. M. Sarantuya).
 
두 교수 모두, 몽골인문대학교 출신에다가, 서울 유학을 떠나 학위를 받고 몽골 울란바토르로 돌아와 후학 양성에 나선, 요컨대, 한국어 실력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몽골의 재원(才媛)들입니다.

데. 에르데네수렌 교수(Prof. D. Erdenesuren) (오른쪽).
 
세월이 물같이 흐릅니다. 엠. 사란토야 교수(Prof. M. Sarantuya) 같은 경우는 한국 유학을 마치고 곧바로 모교로 복귀해서 대학원 강의를 맡았었습니다. 체. 제기마(Ch. Zegiimaa) 대학원장이 사란토야 교수를 소개하면서, "우리 대학에서 가장 젊고, 가장 날씬한 여교수!"라고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사란토야 교수도 벌써 이립(而立)의 나이를 넘겼습니다. 
 


실상, 동료 교수라고 하지만, 강의 시각이 서로 달라서 자주 보질 못합니다. 이런 까닭에, 부디, 허리띠 풀고 실컷 들기를 빌었습니다. 하지만, 모처럼 마련한 자리였건만, 이 두 여교수는 그리 많이 들지를 못하더군요. 속상했습니다.



이 두 여교수는, 단언하건대, 누가 밥 먹자고 해서 쉽사리 응하는 그런 부류가 아닙니다. 이런 까닭에, 팔월 한가위 D-1 분위기에서, 두 여교수와 나눈 오찬은 제게는 참으로 유쾌했습니다. 



신(新)퓨마 호텔 17층 레스토랑에서 내려다 본 몽골 울란바토르 거리는 가을 풍경이 물씬 풍겨나왔습니다.



타국 생활을 할 때, 타국의 명절이나 고국의 명절을 맞을 때가 제일 곤혹스러운 시간입니다. 이 두 여자 교수는 한국 유학을 할 때 저와 똑같은 경험을 했을 겁니다. 그 고뇌를 몽골 현지에서 제가 그대로 당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그게 운명인 것을!

그냥 헤어지기가 아쉬웠던 우리는 센트럴 타워 빌딩(Central Tower Building) 17층 모네 레스토랑으로 자리를 옮겨 커피 한 잔으로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커피숍에서,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몽골 교육부 장관 표창과, 대한민국 국무총리 표창을 받은 적이 있는, 데. 에르데네수렌(D. Erdenesuren) 교수는,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강 교수님, 저는, 강 교수님처럼, 부상(=상금)이 있는 상 한 번 받아 봤으면 좋겠습니다!"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요컨대, "표창 백날 받아 봤자, 그저 명예일 뿐, 종이쪽지일 뿐이니 무슨 소용이 있냐? 오히려, 축하 턱 내느라고 돈이 더 든다!"는 다소 농담 섞인 푸념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제가 몽골 한인 동포 사회로 끌어 왔던  모두 6번의 국제공모전 상의 출처는, 모두 상금이 걸려 있던, 하다 못해, 태블릿 PC 같은 경품이라도 걸려 있던 대회였습니다.

"어, 나는 상금 보고 글 쓴 거 아니야!" 라고 대답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런 말이 나올 만도 했습니다. 좌우지간, 그 말이 너무 재미있어서 저는 깔깔거리고 웃고 말았습니다. 

한편, 이런 가운데, 이유식 캐나다 민초해외문학상 운영위원장(=우리투자 홀딩주 회장)은, 제게, "택배로 송편 떡과 가을 국화꽃을 한아름 보냈는데 받으셨나요?"라는 안부 인사와 함께, 8월 한가위 축시를 제게 이메일로 보내 왔습니다.

"아이고, 고맙기도 하셔라!" 그러나 저러나, 마음 먹고 보내셨는데, 8월 한가위 택배 떡이 상하지나 않을는지 걱정이 됩니다.

캐나다에서 부친 소포가 몽골로 어떻게 오는지를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 유럽을 경유해서 올는지, 한국을 경유해 올는지, 아니면 중국을 돌아서 올는지 모르겠습니다.

한몽 수교 직후인 1990년대 초반에, 서울 김포-울란바토르 직항로가 없던 시절, 한국에서 소포를 부치면, 이게 러시아 모스크바로 돌아서 오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기다리다가 눈이 빠지는 것은 물론, 분실 위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몽골 주소 뒤에 Via Beijing을 덧붙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야 빨리 받을 수 있었거든요.

좌우지간, 캐나다 로키 산맥의 정취가 물씬 담긴 캐나다 캘거리 발 소포가 언제 도착할는지 참으로 기대가 됩니다.

아울러, 이유식 캐나다 민초해외문학상 운영위원장(=우리투자 홀딩주 회장)은, 지난 9월 12일 월요일, 캐나다 캘거리 델타 호텔에서, 조대식 주캐나다 대한민국 대사가 주제 발표자로 나선 가운데 개최된 경제 세미나에, 캐나다 한인 동포 기업인 자격으로 참석했다는 근황도, 사진과 함께, 알려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