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영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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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의 《유산》
2009년 02월 19일 10시 13분  조회:2337  추천:42  작성자: 채영춘

    나에게 소장되여있는 수천권의 장서중에서 《기호 1번》은 50년대 초반 모쓰크바 외문서적출판사에서 간행한 쏘련의 천재적 소년화가에 관한 전기체 중편소설집이다.
    인제는 책표지가 원형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퇴색하고 보풀이 날대로 난데다가 곰팡이 냄새까지 푹 배이여 그야말로 흉물스러울 정도로 엉망인 책이지만 서렬1위로서의 권위성은 여전하다. 책은 책 이상이고 생명이다고 한 어느 석학의 명언이 나의 이 책의 경우에 꼭 맞는것 같다. 근 40년의 풍상고초의 흔적이 차분히 슴배여있는 이 책을 대할 때마다 나는 늘 더없이 애틋한 정감의 소용돌이속에 잠기군 한다...
    60 년대 초반 아버님이 해외망명을 떠나면서 남겨놓은 수천권의 값진 책들은 《분서갱유》의 《문화혁명》세월에, 그것도 《 잡귀신》댁으로 점지돼있는 우리집 처지에서 큰 화근을 자초할 도화선으로 밖에 될 수 없는것이였다. 반동분자 색출에 혈안이 되어 광분하는 《반란파》들의 수색작전에 우리는 언제 무슨 우환거리가 될지 모를 아버님의 장서들을 소각하기로 하였다.
    문화혁명이 점차 고조되고있던 1966년 초의 어느날, 우리집 부엌에서는 비감한 분위기가 감도는 분서작업이 단행되고 있었다. 아버님께서 당신의 생명처럼 애지중지하시던 책들이, 당신께서 해외로 떠나시면서 잘 간수하라고 그렇게도 신신당부하셨던 책들이 불과 2년도 버티지 못하고 결국 쫙 벌려진 호랑이 아구리같은 아궁이속으로 들어가 재가 돼버리는 것을 침통하게 지켜보는 엄마와 우리 자식들의 마음은 함께 재가 되는것 같았다.
    활활 타번지는 아궁이속으로 끊임없이 던져지는 책들을 무심히 지켜보던 내 눈에 순간 비취색의 화려한 디자인으로 포장된 20절지 정장본 한권이 맞혀들어왔다. 붓과 연필을 문양도안으로 한 책표지가 내 눈을 자극한 탓이였을가? 아궁이 불빛에 금박입힌 표제가 유난히 번쩍거리는 희한한 책이 불속에 갓 던져짐과 동시에 나는 황겁히 그 책을 덥석 집어냈다. 참으로 위기일발의 순간이였다. 두꺼운 책 부피에 소년화가의 그림 삽화들이 페이지 사이에 가담가담 배치되여있는 굉장히 정교한 이 책이 바로 향후  《촉도난》의 내 인생의 파트너로 자리매김을 하며 내 문화적 삶을 부각시켜준 《이른 해돋이》가 된다.
    아버님의 모든 장서는 어떤 류형의 책이든 책의 안표지마다에 꼭 당신의 존함 세글자와 함께 책을 구입한 일자가 뚜렷이 박혀있는 것이 상례다. 그런데 유일하게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이 책만은 아버님의 싸인이 없다. 왜서였을가? 순간 한줌의 재로 될번했던 이 책이 아버님께서 나를 위해 구입하여 보관하신 책이라는 확신과 함께 짜릿한 그 무엇이 전신을 훑어 지나갔다.
    어릴 때 나의 소망은 화가가 되는것이였다. 대여섯살 때부터 나의 손에는 늘 크레용, 연필, 분필 같은 화구가 쥐여져 집안의 구석구석, 동네 울타리들에는 나의 《작품》들로 얼룩덜룩하여 부모님이나 동네어른들의 핀잔도 많이 들었다. 내가 잃어졌다고 집에서 소동이 벌어져 시내곳곳을 찾아 헤맬 때 나는 버젓히 쓰딸린 극장 (후에 인민영화관으로 고침)이나 서광장 (지금의 복무대루) 길목에서 겹겹히 둘러선 구경군들속에 진을 치고 앉아 지나가는 자동차나 행인들을 스켓취하느라 날이 저무는줄 모를 때도 한두번이 아니였다. 소학교에 입학한 후에도 반급의 벽보를 꾸미는것은 나의 몫이였고 학교미술써클활동은 나의 과외활동의 1번이였다.
    그러나 아버님은 그렇지 않으셨다. 굉장히 엄하셨던 아버님께서 나에게 거신 기대는 작가나 음악가로 대성하는것이지 결코 화가는 아닌것 같았다. 내 의향 같은것은 들어보시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읽으라고 선택해주시는 책도 문학과 관계되는 책들이였고 내가 그렇게 질색해도 우격다짐으로 예술학교에 끌고가 피아노레슨을 받도록 강요하시던 분이셨다.
    그런데 《분서》현장에서 뒤늦게 이 책과 만나는 순간 나는 아버님께서 나의 소망을 위해 은근히 마음을 써오셨음을 깨닫게 되었고 그후 이 책에 심취되면서 나는 아버님의 무언의 깊은 뜻을 받아 드릴수 있었다.
    《풍부한 문학소양을 갖추었을때만이 미술가의 세계에 입문할수 있다.》아버님께서는 책의 주인공 꼴랴 드리뜨리예브를 통해 나에게 이같은 조언을 완벽하게 주고계셨다. 문학과 미술을 대립이 아닌 깊은 련계속에서 파악하도록 충고하고 계셨다. 따라서 아버님께서 왜 나에게 문학서적들을 많이 탐독하도록 하셨는지를 알 것 같았다. 나는 아버님께 더없이 감사하면서 《이른해돋이》를 읽고 또 읽었다.
    한권의 책은 한 사람의 미래를 바꿔놓을수 있다는 말이 있다.
    《이른해돋이》는 나의 계몽 교과서였다. 이 교과서를 통해 아니, 이 교과서안의 꼴랴주인공의 일기에서 나는 치스쨔꼬브, 레삔, 쎄로브를 비롯한 로씨야의 저명한 화가들과 만날수 있었고 그들로부터 금싸락같은 조언을 받게 된다. 나의 독서필기장에는 그들의 명언이 차례로 기록되고 나의 머리속에는 그들의 훈시가 각인된다. 나는 이 교과서에서 소년천재 꼴랴의 여섯 살 때의 첫발견을 함께 감수하며 미술에서의 원근법과 투시법을 터득한다.
    꼴랴 드리뜨리예브는 나의 계몽 스승이였다. 이 스승을 통해 나는 독서방법, 생활습관, 관찰방식, 창작태도를 조정하고 모방하면서 자신의 문화적 삶의 보조를 주인공과 통일시키기 위해 모지름을 쓴다. 주인공의 천재적 자질이 풍부한 독서와 예리한 관찰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깨닫고 나도 꼴랴처럼 자기 주위의 생활을 아주 탐스럽게 끊임없는 호기심으로 살펴보면서 자신의 사색과 행동을 좋은 책으로써 검열하는 습관도 양성해간다. 꼴랴가 문학작품에서 자연과 인간에 대한 묘사를 자세히 읽으며 그것을 공간예술에 담아보고저 쏟아붓는 피타는 노력과 결실은 나를 그처럼 감동시킨다.
    뿌슈낀, 크릴로브, 고골리, 뚜르게네브와 같은 문학대가들의 작중 인물과 경물묘사를 회화언어로 핍진하게 형상화하려는 꼴랴의 시도와 실천은 나를 깊히 매료시키며 나의 독서 시각을 새롭게 바로잡아준다. 꼴랴가 뚜르게네브의 작품에서 묘사한 이른해돋이 장면을 화가적 시각으로 현장 재확인을 하는 진지한 모습은 수십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나를 감격시킨다...
    ---꼴랴는 아침이슬에 젖어 이를 똑똑 쫏으며 제일 높은 봇나무 웃가지에 앉아서 동녘을 주의 깊게 보았다... 겨드랑이 밑에서 뚜르게네브선집 한권과 노트를 끄집어냈다... 뚜르게네브가 아침을 어떻게 묘사했는가를 읽는다. 참 신통하다! 지금이 바로 뚜르게네브가 묘사한 그때이다...《아침이면 보통 잠잠하듯이 사위의 모든 것이 조용하였다. 무엇이나 다 려명의 깊은 잠에 들어 꼼짝하지 않았다...》 나무 웃가지우에서 잘 보이는 오까강 너머에서는 마지막 별 빛이 사라진지 오랬다. 검잇검잇한 지평선은 갑자기 밝아진 하늘에서 떨어지어 그 언저리가 붉으스레해 지며 연분홍빛 금빛광선이 등천을 물들이며 아주 잠잠한 강수의 차디찬 거울에 반영되였다. 《싸늘한 기운이 나의 얼굴을 스쳐지나갔다... 내가 눈을 떳을 때는 아침이 시작되였던 것이였다... 잎들에는 이슬이 맺히고 어디선지 간혹 숨가진 미물들의 소리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선지 암소가 소리친듯 하다... 그리고 또 무엇인지 뚝-하는 소리도 들린다...》---
    《이른해돋이》란 이 교과서, 꼴랴드미뜨리예브란 이 스승이 곁에 있어 나는 외롭지 않았다. 1966년 내가 열다섯살 때 《이른해돋이》를 사귀여 어언 40년에 가까운 세월을 함께 하면서 꼴랴드미뜨리예브는 내가 어디에 가든 붙어다니며 나를 독려하고 힘과 용기를 준 믿음직한 파트너였다. 간고했던 지난 《하향지식청년》시절에나, 저수지공사판에서 인생수업에 열중하던 때에나, 그 후 랑만과 허탈, 흥분과 실망의 인정세태를 두루 감수하며 여러 분야를 전전해오던 나날에도 《이른해돋이》란 이 교과서, 꼴랴란 이 스승에 대한 내 자신의 믿음과 사랑은 변치않았다. 그 믿음과 사랑의 중심에는 늘 아버님이 서계셨다.
    《이른해돋이》는 내가 인생의 험준한 바다를 항해하는데 희망과 좌표가 되게끔 아버님께서 나몰래 마련해 준 안내자요 라침판이요 망원경이였다. 《이른해돋이》를 읽으면서 나는 자랐고 《이른해돋이》를 실천하면서 나는 아버님의 뜻을 무르익혔다. 《이른해돋이》가 내 인생을 부각시켰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른해돋이》와 인연을 맺어 40년가까운 세월에 나는 유화작품 몇폭을 출세시키면서 미술창작을 해봤고 책 장정 설계, 삽화창작에 골을 썩이며 출판사 미술편집도 해보았고 에세이를 긁적거리면서 문학편집도 해보았다. 당기관에서, 잡지사, 방송국이나 신문출판 등 언론분야로 떠돌기도 하고 대학연단에도 서보면서 《여러우물을 파고》《한마리 토끼도 못잡고 만》《무재》신세지만 《이른해돋이》의 주인공의 부추킴으로 언제나 무엇인가를 시작하고 시험해보는 감동속에서 살고 싶었다. 리어령박사의 독백처럼 《내가 원하는 것은 완성이 아니다. 눈 뜨는 것, 첫 걸음을 내딛는 것, 처음 보는 것, 겨냥하는 것...》 그 와중에서 삶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었다. 아버님께서도 나의 이 같은 인생선택과 태도에 반기를 드시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가지면서 지금까지 항상 새롭게 시작하는 몸가짐으로 살아왔다.
    수십년의 세월이 흘러 《이른해돋이》의 화려한 디자인, 정교한 포장, 고급스런 종이는 퇴색하고 보풀이 심하게 났으며 페이지마다 군데군데 색연필과 만년필로 그어놓은 줄들로 울긋불긋하고 손때가 더덕더덕 앉아 미용이 형편없이 되었다. 나또한 열다섯살 소년으로 이 책에 《입문》하여 어느덧 지천명의 언덕에 올랐다. 하지만 《이른해돋이》와 나 사이의 관계에서 변한 것은 하나도 없으며 아마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질 때까지도 여전할 것이다.
    아버님의 수천권 장서에서 유일하게 목숨을 건진 《이른 해돋이》, 나에게는 더없이 귀중한 《유산》일 수밖에 없는 무가지보이다.
    오늘도 나는 《이른해돋이》를 어루쓸며 책에서 풍기는 수십년 세월의 그 익숙한 내음에 도취되면서 아버님께 감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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