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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백산》문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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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서: 올가미(단편소설)
2019년 07월 12일 19시 20분  조회:430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올가미

연서

 

분명히 올가미였다는 것이 뚜렷이 실감나게 바로 무덤을 만들고 나서 며칠이 지난 어느 고요한 밤이였다. 낮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그 밤은 유난히 깊고 길었었다. 

천근 무게라도 되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터벅터벅 길거리를 하염없이 걷고 또 걸었다. 머리 속은 온갖 생각들이 의지와 상관 없이 활개를 치며 멈출 줄을 모른다. 한치한치 피부 속으로 파고드는듯한 한기 때문에 한여름철에도 련속 몸서리를 치게 했다. 그 날로부터 랭독은 지속적으로 세포를 탐식하고 있는 모양이다. 예고도 없이 불시에 엄습해올 때면 어떤 대비도 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갈 때까지 감내해야만 했다. 

 

밖으로 나간 고양이는 잘 지내고 있을가. 갑자기 키우던 고양이 보리가 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지금 이 마당에 고양이가 과연 중요할가? 모든 게 부질없는 존재다. 나의 존재도 지금 어둠 속에서 소외되여 점차 희미한 점으로 사라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 순간 나의 느낌과 감수는 또한 무슨 의미가 있을가? 누군가와 함께 기상하고 식사하고 대화하고 영화 보고 취침하고… 모든 일상이 살아숨쉬며 아름다운 화음을 이루는 미묘한 세상이 한없이 갈망된다. 

홀로 남은 삶! 너덜너덜한 나의 삶을 감내하기가 벅차다. 

 

어둑어둑한 골목을 빠져나와 옷깃을 여미고 달빛 속에서 한산한 거리를 계속 걸었다. 

오른쪽 모퉁이로 굽으면 바로 도착하는 강가, 오늘도 강물만 하염없이 흐르고 있었다. 아무런 말도 없이, 아무런 감정도 없이 다만 일관된 류속을 유지하며 흘러가고만 있다. 납작한 돌멩이 하나를 집어서 던져보았다. 풍덩 울림 뿐이였다. 

문득 명희가 한 말이 귀전을 맴돌았다. 

-너는 너무 감정적인 게 문제야. 그러다 다치면 또 고슴도치처럼 숨어버리고. 론리적으로 인간관계를 형성해야지 말이야. 

그리고 그녀 특유의 예리한 말투로 내게 령활성이라고는 도무지 한군데도 없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그것이 어느 정도 중요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만 대부분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중요한 모양이다. 

령활성, 그 울림이 주는 거대한 충격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가여운 인간들… 그런 것들을 맞추고 재고 하느라 진땀을 빼며 그 와중에 질식해죽은 정감… 그런 감정들의 퍼즐을 하나하나 맞추어보면 먼 허공에서 누군가가 돌연 질문을 던져온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뭘가요? 

-혼자 남는 법은 어떤 건가요?

답이 있을 법하면서도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 령적인 질문이다. 

 

어느새 슈퍼에 도착했다. 슈퍼 랭장고 문을 열고 캔맥주 두개와 흰술 한병을 꺼내 계산대로 향했다. 점원이 하나하나 체크하며 계산대에서 밀어냈다. 데구루루 병이 계산대 끝으로 굴러가며 소리를 냈다. 

머리도 복잡하고 속도 터질 것만 같아 부지런히 입안으로 부어넣었다. 정적이 배제된 꽤나 번잡한 중심거리에서 순간 주변으로부터 격리된 착각이 스며온다. 머리가 무겁고 혼란스러웠다. 정신을 가다듬고 보니 주위의 거리며 가게들이며 모든 환경이 생소해보이기도 했다.

 

가까운 지척에서 끼리끼리 무리 지은 사람들이 눈에 안겨왔다. 왼쪽에는 람루한 옷차림을 한, 현장일군으로 짐작돼보이는 남자들이 얼굴에 피곤기가 력력한 채 술을 마시고 있었고 오른쪽에는 열예닐곱 쯤 돼보이는 고중생들의 깔깔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긴 가랑잎만 굴러가도 까르르 웃는 나이대였다. 

길 건너편에서 내가 있는 쪽을 카메라 영상에 담는다면 그들 사이에 홀로 끼인 내가 꽤나 이상케 여겨질지도 모른다. 마치 외딴섬에 류배된 외계인처럼 말이다. 

그들이 나누는 일상적인 대화에 귀를 기울여보았다. 

-난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어. 어른들은 왜서 그리 복잡하게 생각할가? 사실 간단한 게 진리인데 말이야. 

곁에 녀자애는 꽤나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차피 안되면 말고 애당초 결론짓고 말지. 다투고 또 다투고 결국 해결보는 게 하나 없잖아. 중요한 게 뭔지 알기나 할가.

-너는 너무 어른인 척하는 게 문제야. 너무 빨리 셈이 든 척한단 말이야.

말하는 어조로 봐서 그다지 심각한 일은 아닌 같았다. 

-괜히 분위기 잡지 마. 딱 보면 알리잖아. 어른들은 하나같이 다 자기 리익만 추구하는 것 같애. 뭐 큰 거라도 얻게 될 거라 착각하지? 실은 아무 것도 아니란 말이야. 그렇지 않아? 그저 마음만 비우면 되는 건데…

-그만해, 제발 일절만 하자.

-우리 얘기만 하자, 어른들 말고 우리 관심얘기 말이야.

… …

 

그들이 무슨 화제를 둘러싸고 얘기를 나누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때론 진지하게 때론 깔깔대며 주절주절 주고받는 대화를 곁에서 듣다 보니 꺽 하고 가슴이 막혀왔다. 이 아이들이 공유하는 대화내용이 생소하게만 느껴졌다. 새로운 각본이 생겨난 것인지 진부한 옛이야기들이 조소 속에서 함몰된 것인지, 하여튼 나는 완전히 이방인으로 소외된 사람이였다. 

순간 무덤 속 존재가 서서히 떠올라 소녀들의 얼굴과 합치되였다. 십여년 후이면 아름답게 필 한송이 꽃… 

 

-애송이들아, 니들이 뭘 알겠냐만… 아직은 코흘리개들이지.

람루한 차림의 아저씨가 훅 치고 들어왔다.

-아저씨는 잘은 모르면서…

그중 한 녀자애가 말끝을 흐렸다. 

-이제 너희들도 크면 다 알게 될 거다… 에고… 일단 쏘다니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하거라.

-앞으로 시간이 얼마 흐르면 알게 될가요? 그런다고 뭐가 달라질가요? 어느 순간 확 알아버리는 그런 느낌인가요? 그렇죠? 맞죠? … 그리고 한치 앞도 모르는 래일 알아서 뭐 해요? 그러니 오늘이 중요하지 않을가요? 

아저씨의 말에 녀자애는 자기 생각을 당차게 발설했다. 

-맞아. 어제와 오늘의 온도가 너무 다르잖아.

옆에 있던 다른 한 아이가 공감하는듯 친구를 동조해나섰다. 

-실리를 따지는 어른들은 따분한 벌레일지도 몰라. 야금야금 꿈을 좀먹게 할지도 몰라. 그거야말로 지루한 거야. 존재하는 것, 눈앞에 보이는 게 전부 아닐 수도 있는데 머리보단 가슴으로 생각하는 게 맞는데… 

녀자애는 아저씨와의 대화를 중단하고 다소 날카로운 어투에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친구들에게 자기 하던 말을 계속했다. 

-쯧쯧… 요즘 애들은 너무 조숙됐다니까. 그게 문제지…

아저씨는 혀를 끌끌 찼다.

-본능에 충실하면 돼. 애당초 본능에서부터 시작되는 거 아니겠어. 어차피 영원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아. 느낌 그대로.

-어우. 시인이 납시오.

키득키득 웃는 소리가 들려온다. 

 

영원, 그건 언어마법사의 진한 롱담이질도…

불현듯 취기가 괴여오르는지 피가 거꾸로 흐르는 감이 들었다. 캔맥주를 입에 대고 련속 들이켰다. 

지루한 사람들, 가여운 사람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

빙글빙글 어지럽다. 이후 필을 들 때마다 심연에 빠진듯 혼자말로 되뇌이는 그 녀자애가 떠오를 것만 같았다. 이젠 집으로 돌아갈 때 아닌가 싶다. 머리 속은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으나 발걸음은 천근만근 무거워났다. 도저히 발걸음을 옮길 힘이 나질 않는다. 심경은 심란하면서 삭막하기 그지없다. 그러고 있자니 무덤을 만들던 날 밤이 자꾸만 끔찍하게 떠올랐다.

심한 하혈이 시작되고 하혈과 섞여진 피덩이 하나… 

나는 그 날 무언가에 끌리운듯 앞마당으로 향했다. 무언가 억울해서 격분과 마음의 쓰라림을 견디지 못하고 처절한 죽음을 마주해야 했다.

 

-낯선 인간과 낯선 곳에서 하루종일 이야기만 하다가 죽고 싶네요.

내 안의 다른 한 내가 말하고 있다. 

-얼마나 낯설면 되지? 

-나조차 못 알아볼 정도로 딱 그만큼만.

순간 나는 전률을 느끼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직 따지 않은 소주 한병을 들고 앞마당을 찾아갔다. 조그마한 언덕 같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미약한 숨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입술이 파르르 떨리며 눈물이 두 볼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생명의 꽃을 피워보지 못한 령혼이 허공 속을 회유하고 있었다. 

나는 동그란 동산 같은 그 곳에 소주병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어떤 아이였을가?

나는 그 무덤가에 손을 살며시 얹었다. 열병처럼 뜨거웠다. 애처로운 오열… 가능하다면 나는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아니 대신해서 땅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할 수 있는 거라곤 손을 내리고 아무 말 없이 뒤돌아서는 것 뿐이였다. 온몸의 중력이 아래로 내리꼰지고 있었다.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되였지?

스스로 자책하며 또다시 엄습해오는 상실감에 휩싸여 가슴이 미여지고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그렇게 나는 다시 무기력하게 심연 속으로 빠져든다. 앞마당에 올 때마다 있는 일이다. 마음 속 갑갑하고 불안한 정서가 이곳과 화학적 반응을 일으켜 나를 괴롭히고 있다. 

이를 악물고 발버둥 치며 간신히 과거를 깊숙이 삼켜버렸다. 마귀의 손에서 탈출하여 요행 살아났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것들이 새롭게 고개를 들고 부활한다면 이제는 참지 않고 스스로 숨을 끊을 것 같았다. 

무덤 속으로 사라진 령혼과 별개로 숨쉬며 살아간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예전과 똑같이 먹고 자고 웃고 울고 꾸준히 살아간다. 그게 견디는 방법인지 그렇게 하는 것이 견디게 만드는 것인지 모르지만 엄마는 살아가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앞마당을 떠나 네온사인이 가득한 사거리를 빠져나오자 구불구불한 골목이 고스란히 나타났다. 팔딱이고 있는 내 심장과는 무관하게 골목길은 고요한 정적을 유지하고 있었다.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서 고향집에 머문 같은 포근함이 느껴지며 이곳이 나의 귀속처가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보았다. 누구도 없는 이곳에서 나는 완벽한 자신이자 주인공이였다.

취기가 부족했다. 서서히 바닥 나는 통장 잔고, 누구와 신세한탄을 하면서 외로움을 토해내며 함께 마시는 것도 이젠 사치로 남았다. 그렇다면 이 몸 뉘울 곳은 가로등 밑 길다랗게 놓여진 벤치, 순간 그 곳에 누군가 와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마주해오는 모든 우연과 필연을 스쳐지나 철저한 소외 속에서 눈 감으려 했던 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였다. 그리고 삶을 서둘러 흘러보내려고 한 것도 아니였다. 

반대편 그리고 골목의 입구 옆 자택에서는 밝은 불빛이 새여나왔다. 그 앞으로는 순시경찰차 한대가 덩그러니 세워져있다. 내 옆으로 심플해보이는 청년이 휘파람을 휙 불며 지나갔다. 그 남자는 나를 힐끔 쳐다보고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휘청거리는 밤이다. 나는 골목길에서 십메터쯤 떨어져있는 벤치에 몸을 기대고 앉았다. 가로등만이 어두커니 긴 밤을 지켜주고 있었다. 

-어이, 거기…

아니나 다를가 중후한 목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뒤를 돌아보니 중년남자가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혼자인 것 같은데 우리 얘기 좀 나누지 않겠소?

남자는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응시하면서 물어왔다. 

나는 가타부타 말도 없이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무서워 말게.

키가 큰 편이였다. 짙은 갈색 모자를 눌러쓰고 짧은 잠바를 입고 있었는데 옷깃을 세워 꽁꽁 앞을 가렸다.

한참 침묵이 흐른 뒤 나는 그에게 무덤덤히 하루밤 얼마 줄 건가고 묻자 그는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리고 자기는 실은 조용한 곳에서 대화를 나누고 싶을 뿐이라고, 마침 내가 그런 상대로 적절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지금 작업 거는 겁니까?

-거 적당히 하소. 그런 게 아니라… 마누라가 암으로 돌아가고…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남자는 방향으로 따라오라고 내게 고개짓했다. 

지끈한 머리를 부여잡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뒤를 따랐다.

골목 사이로 그를 따라 한참을 들어가니 아주 조용한 건물이 보였다. 일층의 슈퍼는 이미 문을 닫았고 2층은 간판도 걸려있지 않았다. 

그는 무심히 걷고 있는 나의 팔소매를 붙잡고 2층으로 나를 이끌었다. 

한적한 공간이였다. 

-마누라가 작년 암으로 돌아갔소, 딸네미 하나 있는 건 한국으로 시집갔고… 이제 살 만하니… 이리 보톨 신세 면치 못했소!

나는 딱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장례식을 치르고 대략 일년간 벽과 마주하고 있었소. 어찌 이리 대화할 사람조차 곁에 없는지…

그의 어두운 얼굴에는 처량함이 어려있었다. 

-그냥 이렇게 내 말만 들어주면 되오. 다른 뜻 없소.

-그래요? 그럼 얘기 계속하세요. 

나의 말에는 궁금증, 안타까움 같은 그 어떤 감정도 개입되지 않아있었다. 

남자는 모자를 벗고 후- 한숨을 내쉬였다. 

나는 의자등받이에 몸을 기대였다.

의자등받이의 차거운 촉감, 밀페된 공간에 가득한 그의 숨소리, 이것이 내가 잠시 살아있다는 증거였다. 

-내가 나쁜 사람으로 보이오? 아 근데 처자는 왜 아까 그러고 혼자 있었소?

-저도 잘 모르겠는 걸요…

자기도 모르게 한숨이 나갔다. 

-처자도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데 어차피 다시 못 볼 사이인데 다 터놓소. 말 못할 고충들을 쭉 얘기하오.

-이 세상에는 비정상적인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아요.

스스로에 대한 비아냥인지 부정인지 가늠할 수 없는 어투였다. 

-그런가? 혼자 남는다는 게 얼마나 혹독한 건지 뼈저리게 느끼게 되였소. 젊었을 때 허구헌 날 술에 취해 마누라 속 적잖게 썩였댔소. 지금 후회해도 곁에 없으니 무슨 소용 있소, 에휴…

여기까지 말한 남자는 담배 한대를 집어물었다. 그러면서 내게 권하려는 제스처를 보였다. 내가 고개를 저으니 이내 손을 거두어들였다.

-아주아주 미친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줄가요?

남자는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짧은 탄식을 하더니 담배를 한모금 들이켰다. 

새파란 나이에 비해 가슴 아픈 사연이 있는듯한 서두여서 남자가 멍한 표정을 지었는지 나는 그의 의사 같은 건 전혀 개의치 않고 중이 경을 읊듯 주절주절 이야기를 시작했다.

-봄이 한창 무르익을 때 있죠. 녀자에게는 꽃이 만발할 때가 구경 몇번 있을가요.

-그래 녀자들은 거 뭐 있겠소, 그냥 적당한 시기에 좋은 남자 만나 시집 가는 게 좋은 직장 얻는 것보다 백배 잘된 거지. 우리 딸네미도 딱 한창 그 나이인데…

-아는 녀자가 있었어요. 그 녀자는 한 남자와 결혼을 했는데 어쩐지 두 사람 사이에 또 다른 한 녀자가 그들과 같이 사는 느낌이 드는 거 있죠. 기하학에서는 삼각형이 가장 단단한 구조라고 했는데 인간관계에서는 삼각관계가 가장 불안정한 관계인가 봐요. 그 집 남편은요, 두 녀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어느 쪽하고도 정리하지 않았어요. 

-남편을 포함한 모든 것을 자기 령역 안에 두어야 안심이 되는 안해는 남편에게 더더욱 집착할 수 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갈팡질팡 우유부단한 남편을 보고 안해는 차차 환멸을 느꼈어요. 

여기까지 말하고는 긴 여백이 흘렀다. 

-이미 그녀와 헤여질 수 없을 정도로 두 사람 깊이 사귄 것을 의식한 안해는 이를 악물고 그냥 받아들이려고 자신을 설득했어요. 숨을 죽이고 조용히 살아가는 게 모두에게 편한 방식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뜻밖에 안해의 배속에 새 생명이 잉태되였어요. 남편의 태도는 예전보다 어느 정도 살틀해지기도 했어요. 안해는 임신을 빌미로 그녀와의 관계정리를 요구했죠. 물론 남편은 안해의 말을 귀등으로 흘려버리고 행동이 불편한 임신 기간에 제 하고 싶은 대로 했죠. 

남자는 나를 한참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뽀얀 담배연기가 눈앞에서 하얗게 피여올랐다. 

-있잖아요, 이 세상에는 겉은 멀쩡하게 생겼어도 속은 음흉한 생각들로 가득찬 인간들이 얼마나 수두룩해요. 자신이 한 남자의 안해라는 정체성을 잃어가는 분노와 불안에 시달리던 안해는 약간의 하혈이 시작되였는데 그 녀자의 과거를 들먹이며 예전에 류산한 적 있지 않냐며 야멸차게 굴더래요. 안해가 할 수 있는 것은 목놓아 우는 것 뿐이였겠죠. 

남자는 상념에 빠진듯 담배만 뻑뻑 빨아댔다. 

-그 집 남정네는 머 하고 있었다오.

남자는 중후한 목소리로 질문했다.

-어쩌면 중재자가 십분 필요했었겠죠. 량쪽 모두를 만족시키는 존재가 아니라 갈등을 중지시키고 판결을 내리는 역할을 수행하는 그런 역할 담장자. 

나는 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며 결단코 그런 일은 없었다는듯 아주 잠간 눈을 감았다 떴다.

-새우 등 터질가봐 상황을 다 알면서도 회피했죠. 조정자로서의 역할이란 것이 공정한 태도와 분명한 자기 주장을 갖고 있어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건데 모든 남편들에게 이런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렵겠죠.

나는 남자의 담배갑에서 담배 한대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러고 나서 그러니까 얼마 안 지나 안해는 하혈이 점점 심해지더니 안타깝게도 배속 아이를 결국 잃고 말았어요. 그러자 이번에 그 녀자가 내 남자를 빼앗은 대가라며 욕지거리를 해왔어요. 뭐 내 남자를 빼앗은 대가? 너무 무자비하지 않아요? 생각할수록 너무 악에 받치는 거예요. 이보다 더 치욕스러운 일이 있나 싶을 정도니깐요. 안해가 미쳐버린 건 아마 그 때가 처음일 거예요. 벽을 얼마나 긁어댔는지 몰라요. 집안의 물건은 죄다 집어던지고 친정엄마가 와서 막 말리고… 근데 남편이 진짜 더 미친 놈이지요. 안해를 위로할 대신 혼이 나간 표정을 짓더니 그 녀자랑 갑자기 나가버리는 거예요. 완전 미쳤죠!

남자의 미간은 순간 찌프러졌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것들이 옮는 것 같은 표정이였다. 

나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진짜 웃긴 건 말이예요. 그러고 나서 후에 누군가 그러는데 새로운 아빠트에서 남편이 그 녀자랑 함께 사는 걸 목격했대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리혼서류는 택배로 보내왔는데 택배를 뜯어보는 순간 쓰러져버렸어요. 

나는 표독스럽게 허공을 바라보았다. 차거운 공기는 각막마저 딱딱하게 만들었다.

-혼미에서 깨여나 보니 뱀의 혀가 보였다. 오롯이 자신에게 필요한 욕망, 자신만을 위한 술수에 뱀은 혀가 두개 필요했다. 하늘에 태양이 하나일 수 밖에 없는 것처럼 두개의 태양이 뜬다면 인간은 죽음보다도 무서운 고갈을 맛보게 될 것이라. 두개의 혀를 가진 뱀, 죽음보다 무서운 뱀의 사악함… 뱀을 죽이지 않았으면 그 다음 차례는 안해였을 거예요. 틀림없어요.

남자는 화들짝 놀라는 표정이였다.

-그래서 어떻게 되였소? 끔찍한 일이라도 발생했단 말이요?

정곡을 찌르는 질문이였다. 

나는 고개를 젓고 말을 이었다.

-내가 무덤을 만들어봐서 알죠.

그는 담배를 올리던 손을 멈췄다.

-하지만 나는 살아있는 사람은 안 묻으니 걱정하지 말아요.

여기까지 말하고 나니 아주 속이 개운한 감이 들었다. 

그는 궁금해하는 한편 념려되는 눈치였다. 

나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다시 차근차근 말을 이었다.

-다만 하나만 물어봐도 되나요? 다시 봄이 올가요? 그녀에게…

-어험, 그러챈쿠, 그렇구말구…

남자는 한치의 주저함도 없이 대답했다. 

-내가 지금 당신 눈앞에서 죽으면 어떨 것 같아요?

남자는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못 들은 걸로 하겠소. 한창 좋을 때요, 창창한 앞날이 기다리는데 나 같은 홀애비도 외로움 이겨내며 살고 있는데… 무슨 험한 일을 겪었는지 알 수 없다만 인생 망쳤다 생각 말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잘살아가야 하오… 죽으려는 생각은 하지도 마오.

 

그렇게 단호한 목소리를 참 오랜만에 들은 같았다.

나는 새파란 롱담이라고 얼버무리고서는 그에게서 담배 한가치 받아 피웠다. 

묘한 분위기가 흘렀다. 

내가 걱정된다는 표정이 남자의 얼굴에 씌여져있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하나의 작은 파문이 되였음을 명백히 알아보았다. 더우기 그것도 가족이 아닌 타인한테서…

내가 벽에 걸린 시계를 보자 남자도 따라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두시 삼십오분을 넘기고 있었다. 

남자는 주머니에서 오백원을 꺼내 테이블 우에 올려놓고는 문을 떼고 나가더니 사라져버렸다. 

 

나는 건물에서 조용히 빠져나와 돌아가는 길에 나섰다. 아까 머물렀던 골목길의 벤치에 이르렀다. 이상하게도 여태 나를 괴롭혔던 초조와 불안의 정서가 가뭇없이 사라렸다.

벤치에는 대학생들로 짐작되는 청년들이 앉아서 왁작지껄 떠들고 있었다. 지나가는 나를 의식했는지 시선이 나에게로 쏠리자 나는 조금 불편함을 느끼고 옆골목으로 접어들었다. 

별빛 가득한 밤하늘을 고개 들어 바라보았다. 반짝반짝 보석처럼 반짝이는 별들 이 유난히도 가슴 따뜻하게 느껴졌다. 숨을 제대로 쉴 수 있을 만큼 마음이 후련했다.  

마지막으로 그 무덤을 찾아가기로 작심하고 앞마당으로 향했다. 

한 아이가 내게로 다가와 해맑은 웃음을 지어보이고 있다.

눈가에 그렁그렁 눈물이 차올랐다. 

산 시체들의 삶은 아무 것도 아니다. 올가미의 올가미였다.

출처:<장백산>2018년 제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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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박명옥: 엄마의 살구나무(단편소설) 2019-07-12 0 393
4 우도: 개구리(시, 외5수) 2019-07-12 0 386
3 조영욱: 과잉된 기억(시평) 2019-07-12 0 282
2 천상규: 자잘하다 평범하다 맛있다 멋있다(수필평) 2019-07-12 0 374
1 김혁: 늦봄, 계단을 오르다(만필,련재1) 2019-07-12 0 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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