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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백산》문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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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춘평孙春平: 후사(단편소설)
2019년 07월 12일 19시 47분  조회:598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후사

손춘평

 

로혁명가 진풍년이 세상떴다. 향년 98세이다. 생전에 로인은 내가 죽는 건 두렵지 않으나 사후의 일이 걱정된다며 자신이 죽은 뒤에라도 아무런 말썽이 없게 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장례는 시로간부국의 사회하에 치루어졌다. 로인의 유언 대로 장례는 아무런 말썽도 없이 조용히 치러졌다. 유가족들은 인생의 막을 내리는 이번 연출무대에서 저마다 보조출연자에 불과했다. 그들은 사회자의 지휘하에 기와와 그릇들을 부수어버리기도 하고 령구 앞에 서서 기발을 치켜들기도 하고 큰절을 세번 올리기도 하고 유골을 골회함에 안치하기도 하면서 각자 자기가 맡은 역할을 출중하게 완성했다. 

 장례가 끝나자 여러 유가족들은 차에 앉아 곧바로 진풍년 로인이 생전에 살았던 별장으로 향했다. 이 별장을 진풍년로인이 생전에 살았던 별장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로인이 사망한 후부터 이 별장이 더는 진씨 가족들의 소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집도 집체 소유물이고 가구들도 집체 소유물에 속한다. 진정으로 진씨네 후손들에게 속하는 것이란 집안에 있는 몇몇 생활필수품들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구체적으로 이런 일을 담당한 사람은 성은 수, 이름은 초였는데 그는 시로간부국 종합과 과장이였다. 그의 다른 한 신분은 로간부 제1당지부 련락원이다. 수초는 모든 사람들 앞에서 집문을 열어보이며 지금부터 진씨네 네 자녀들이 각기 대표 한사람씩 파견하여 집안에 들어가서 물건들이 진로인이 생전에 쓰던 그대로 있는지를 확인하고 만약 파손되거나 잃어지지 않고 그대로 보존되여있다면 다음 절차로 넘어가겠다고 말했다. 네 자녀 대표는 집안에 들어간 지 얼마 안되여 금방 밖으로 나오더니 모두 말없이 수초를 향해 머리를 끄덕여보였다. 

수초는 다시 한번 쉰 목소리로 선포했다. 

“진로인님께서 생전에 시로간부국에 사후의 집안 재물에 대한 관리와 분배를 부탁하셨으므로 지금부터 제가 시로동국을 대표하여 구체적인 분배방안을 여러분께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귀담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들으신 뒤 이의가 있으시면 별도로 협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진로인님께서 생전에 사셨던 이 집은 공공재산인바 장례 뒤 여전히 국영신광농장에 귀속되며 이번 분배 대상 범위에 속하지 않습니다. 이에 따라 진로인 가족들은 그 어떤 리유로든 이 집에서 살 수 없습니다. 둘째, 집안에 있는 가구들, 이를테면 책상, 의자, 침대, 쏘파 등은 모두 신광농장과 시로간부관리국에서 진로인을 위해 특별히 맞추어드린 것이기에 이것들도 분배대상 범위에 속하지 않습니다. 셋째, 진로인께서 생전에 저축해놓은 약간한 저금은 잠시 시로간부관리국에서 통일적으로 보관하게 되는데 진로인의 보상금 및 장례비가 발급되기를 기다렸다가 그 돈에서 이미 지출된 비용들을 떼낸 다음 나머지를 네 자녀분들에게 균등하게 분배합니다. 그리고 지금 분배하는 물건들, 이를테면 집안의 일상용품들은 법적인 규정에 따라 첫 상속자에게 먼저 분배합니다. 저 개인의 생각인데, 먼저 네 자녀분들이 제비뽑기를 하여 순서를 결정한 뒤 1호가 먼저 들어가서 물건을 하나 골라내서 밖에 내놓은 다음 그 뒤를 이어 2호, 3호, 4호 순으로 고르되 매 집들에서 물건을 고르는 시간은 5분을 초과하면 안됩니다. 제2회 순서는 2341 순으로 하고 제3회 순서는 3412 순, 이런 식으로 계속 돌고 돌다가 네집에서 더 고르고 싶지 않아할 때 진로인의 다른 친척들이 집안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들 보기에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잠시 침묵이 흘렀다. 맏이의 아들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다들 한집안 식구인데 제비는 무슨 놈의 제비예요. 웃기지 않아요. 그냥 순서 대로 합시다!”

맏이는 진로인이 세상 뜰 때까지 줄곧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지어 장례식장과 산소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건강이 좋지 않아 장손을 전권대표로 파견해왔다고 한다. 어쩌면 정말 건강이 좋지 않을지도 모른다.

장손의 말이 끝나자와 함께 넷째가 말을 이었다.

“뭐가 순서인가? 설사 순서대로 한다 해도 웃어른들부터 해야 하지. 아무리 어째도 어른을 존중하는 례의는 지켜야 할 게 아닌가!”

오늘 모인 사람들 중에서 유독 넷째만이 어른이였다. 수초는 혹 말다툼이라도 벌어질가봐 급히 다시 한번 정색해서 해석했다.

“오늘 오신 네 집 대표는 모두 제1 상속자의 권리를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권리와 의무가 똑같기에 제비뽑기를 했습니다. 그러니 이에 대해 더 론의하지 맙시다.”

모인 사람들 속에서 우하하 웃음소리가 터졌다. 그 웃음소리는 눈앞에서 막 벌어지고 있는 상황과는 어딘가 잘 어울리지 않았다. 진로인이 살던 집은 다섯칸 방으로 된 벽돌집이였고 사면에 예쁜 수목이 우거져있는 데다가 집앞에 자그마한 전원까지 시원하게 펼쳐져있었다. 초봄이여서 아무 것도 심지 않은 논밭두렁 우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서 길게 목을 빼들고 집앞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진로인의 자손 외에 부고를 듣고 조문하러 온 진로인의 질남질녀들이였다. 어떤 사람들은 혹시 마지막 순서에라도 진로인의 유물이 차례져서 기념으로 삼을 수 있지 않을가 해서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듣는 말에 의하면 장수한 사람의 유물은 령험하다고 한다.

한참 후,  둘째의 딸이 다시 침묵을 깼다.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 질질 끌지 말고 빨리 다그쳐요. 저 또 다른 볼일도 있거든요.”

진로인의 둘째는 딸이였다. 둘째는 이번에 장례식장에 오지 못했다. 부고를 보낸 뒤 수초는 이번만은 이 진씨네 누님을 꼭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기대했던 그녀 대신 딸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들이 말해줘서야 그는 진씨네 누님이 2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죽으면서까지도 아버지에게 소식 하나 전하지 않았다. 늙은 아버지가 불행한 소식을 들으면 상심할가봐 알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도 있으나 일이 그렇게 간단한 것만도 아닌 것 같았다. 곰곰히 계산해보면 수초가 진로인을 위해 일한 지도 어언 20여년이라는 긴 세월을 헤아린다. 그동안 수초는 1주일에 적어도 두번은 진로인네 집에 드나들었다. 그런데도 그는 거의 한번도 이 진씨네 누님을 본 적이 없었다. 곰곰히 따져보면 만약 진씨네 누님이 아직도 살아있다면 70세는 될 것이였다. 

수초는 품속에서 사전에 프린트한 서류 한장을 꺼내들며 말했다. 

“그럼 좋아요. 다그칩시다. 시작하기 전에 네집에서 각각 대표를 파견하여 이 서류에 싸인하시기 바랍니다. 서류 내용은 방금 제가 말한 몇가지입니다. 싸인하시기 전에 내용을 다시 한번 꼼꼼히 심열하시기 바랍니다.”

어제 저녁, 이 서류를 준비하기 위해 수초는 한밤중까지 자지 못했다. 도중에 깊이 잠든 안해까지 흔들어깨워 참고로 봐달라고 사정했다. 그의 안해는 법원 민사청에서 판사로 일한 적이 있어서 이런 일에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안해는 꿈결에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 시끄럽게 굴지 말라며 화를 냈다. 수초는 아첨하듯 안해를 달래고 구슬렸다. 

“이건 시끄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야. 심각한 문제란 말이야. 이 집안이 얼마나 복잡한 집안인지 알아? 복잡한 정도가 당신이 지금까지 맡은 그 어떤 안건도 비하지 못한단 말이야. 자칫 신중하게 다루지 않으면 내가 시끄러워져!”

싸인하는 것마저 제비뽑기를 해 순서를 결정할 수는 없었다. 첫사람으로 볼펜을 잡은 맏이 아들이 볼멘 소리로 투덜거렸다.

“수형, 왜 이렇게 사람을 귀찮게 굴어요?!”

수초는 그의 어깨를 툭 치며 짧으면서도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이건 꼭 해야 될 일이니 더 해석하지 않겠어!”

맏이의 아들은 수초와 나이가 거의 비슷해서 형님 동생 할 만도 했다. 진씨네 손자손녀들은 그를 아저씨라고도 부르고 할아버지라고도 불렀다. 그렇게 부르는 건 그를 진로인의 동료로 여기기 때문이였다. 그들에게는 동료란 곧 동년배였다.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라지. 수초는 그것까지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1호 제비를 뽑은 셋째의 딸이 금방 집안에서 나왔다. 그녀는 품에 작고 깜찍한 전자사진첩을 안고 있었다. 이 전자사진첩은 바로 이 외손녀가 진로인에게 선물한 것이였다. 그녀는 수집할 수 있는 모든 가족의 사진들을 모아서 이 메모리에 담아 외할아버지에게 드리면서 가족사진을 보고 싶을 때 이 키보드 하나만 누르면 사진들을 슬라이드처럼 볼 수 있고 음악을 선택하면 노래도 들을 수 있다고 설명해드렸다. 진로인은 마지막으로 병원에 들어가기 전까지도 늘 이것을 품에 안고 가족사진을 보았었다. ‘1호선수’가 제일 먼저 안고 나온 것이 고작 이따위 것이리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정말 뜻밖이였다. 

2호 제비를 뽑은 사람은 맏이의 아들이였다. 이른바 종가집 장손이였다. 장손은 조금 뒤 집에서 나오더니 자기는 거실에 놓여있는 스탠드형 에어컨을 가지겠다고 했다. 그는 오늘은 가져가지 않고 래일 트럭에 실어 가져가도 되는가고 수초에게 물었다.

그 말에 수초가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미안, 미안, 나 금방 깜빡하고 말하지 않았군. 그 에어컨은 로간부국의 것이기에 분배 범위에 속하지 않아. 대신 너 두 방안에 있는 걸개식 에어컨을 가져. 그건 진로인이 자기 돈으로 보탠 거니까.”

장손은 큭- 코를 소리나게 들이켜며 얼굴을 찡긋해보이고는 다시 집안으로 사라졌다. 방문은 활짝 열려있었다. 수초는 의자를 가져다가 문에 기대앉았다. 그렇게 해야 했던 것은 첫째는 밖에 있는 사람들이 순서를 어기고 란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고 둘째는 이미 선택되여 밖에 내놓은 물건들도 지켜봐야 했기 때문이다. 방금 그는 선택한 물건은 잠시 문 앞에 내놓았다가 물건을 선택하는 절차가 끝나고 나서 모두 통일적으로 점검해본 다음 다른 이의가 없으면 각자가 알아서 가져가야 한다고 말했었다. 셋째는 자기도 좀 쉬여야 했기 때문이다. 간밤에 거의 잠을 못 잔 데다가 날도 밝기 전에 일찍 일어나서 진씨네 장례식 일들을 처리하느라 사처로 뛰여다녔다. 발인하고 장례식장에 가보고 유체와 고별하고 골회함을 선택하고 그것을 묘지에 안장하는 등등의 일들은 그 어느 것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그런 일 때문에 조급해하고 열 받아서 그는 목소리마저 쉬였다. 진씨네 자손들은 적지 않았지만 진로인이 생전에 자신의 후사를 전부 시로간부국에만 위탁해놓았기에 그들이 태만을 부려도 누가 나서서 감히 말하지도 못했다. 사람은 정말 세월을 우습게 알 일이 아니였다. 나이 반백을 넘으니 몸이 욕심을 따라주지 않았다. 

집앞에 쌓아놓은 네개의 작은 산이 점점 높아져갔다. 어떤 사람은 밖으로 이불까지 안고 나오고 있었다. 돈이 될 만한 물건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수초는 그것들을 보기마저 싫어서 허리를 굽히고 자기가 쓰고 타자한 <진풍년동지를 침통하게 애도합니다>라는 글만 훑어보았다. 상급에서 추도회를 열지 않는다는 규정을 내려서 그로서는 다만 사망자의 생평에 대한 간단한 소개나마 작성하고 타자해서 유체와의 고별식에서 여러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수 밖에 없었다. 수초의 눈앞에는 로인의 목소리와 웃던 모습이 또 한번 떠올랐다. 그중에서도 80세 가까이 되여갈 때 밭에 나가 일하던 모습이 더욱 생생히 떠올랐다. 수십년간 수많은 생사고비를 넘나들면서 살아온 로인은 공화국의 공신이라 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그럼에도 로인이 가슴 깊숙한 곳에 얼마나 많은 억울함과 외로움을 묻고 살았는지 이루 한마디로 다 말할 수 없었다. 만년에 이르러 생활은 별 걱정이 없었지만 자손들은 그에 대한 불만과 원망 때문에 평소 집에 거의 드나들지 않았다. 자식들이 불효자이기 때문만은 아니였다. 세간의 혈육의 정이란 어느 하나가 평소 서로 아끼고 보태고 나누면서 조금씩 쌓아지지 않는 것이 있는가! 그러나 진로인에게는 유감스럽게도 바로 이러한 침전과 루적이 조금 결여되였다. 

 진로인은 태항산에서 태여나 항일전쟁이 발발하자 팔로군에 참가했고 후에 무공대 대장까지 되여 부대를 이끌고 적후에서 유격전을 벌였다. 1943년, 왜놈들이 ‘3광정책’까지 실시해대며 화북지구를 포위하고 소탕할 때 진풍년은 적들에게 쫓겨 어느 한 동굴에 들어갔다. 동굴 속에는 마침 그와 거의 같은 시간에 뛰여들어 몸을 숨긴 부구회妇救会 처녀도 있었다. 동굴 밖에서 뜨거운 산불이 활활 타오르고 총소리가 자지러지게 울렸다. 처녀가 동굴 밖을 내다보며 진풍년에게 “대장님은 죽는 것이 겁난가요?” 하고 물었다. 진풍년은 코웃음 치며 “흥! 죽는 것을 겁나했다면 나 팔로군에 참가하지도 않았을 거요! 유감이라면 20살이 넘도록 아무 것도 못하고 헛되이 산 것 뿐이오…”라고 대답했다. 그 말에 처녀는 “유감 중에 련애 한번 못해본 것도 있죠? 대장님께서 만약 못난 저를 꺼리지만 않는다면 굴 밖에 나가게 되면 제가 대장님의 안해가 되겠어요.” 하고 당돌하게 말했다.

일주일 후 왜놈들이 물러갔다. 부대로 돌아가기 전 진풍년은 처녀와 산과 바다 같은 사랑을 맹세했다. 그런데 그번의 리별이 둘을 음과 양으로 영영 갈라놓을 줄이야. 몇년 후 항일전쟁이 승리하자 진풍년은 다시 산골로 되돌아왔다. 그제야 그는 처녀가 왜놈들이 또 한차례 벌인 포위전에서 총알에 맞아 죽었다는 것과 그녀가 남긴 세살 난 남자애를 마을 사람이 키우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진풍년은 그 아이를 찾았다. 아이를 보는 순간 그는 첫눈에 그가 자기의 혈육임을 알아보았다. 그는 슬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한 마음에 몸에 지니고 있던 모든 값진 것들을 다 꺼내서 아들을 키워준 마을 아주머니에게 주면서 우리 가난한 사람들이 천하의 주인이 되는 그 때 다시 돌아와서 은공에 보답하겠다며 아이를 계속 키워달라고 부탁했다.

진풍년의 두번째 혼인은 1949년에 이루어졌다. ‘제4야전군’ 이 동북의 전역을 해방하고 군마를 이끌고 평진平津을 향해 진격할 때 진풍년이 소속된 퇀团은 명령을 받고 남아서 북구北口를 지키게 되였다. 그 때는 격정이 불처럼 활활 타오르고 사람마다 영웅을 찬미하고 숭배하던 년대여서 어떤 사람은 한개 퇀의 통수인 진풍년에게 끊임없이 애인을 소개해왔다. 진풍년이 왜놈, 장개석과 싸운 영웅이였을 뿐만 아니라 30살도 안된 멋진 총각이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 때 진풍년은 한 녀대생을 좋아했다. 그 녀대생의 거절을 피면하기 위해 그는 태항산에 아들애 하나가 있는 사실을 숨겼다. 그는 녀대생과 결혼하여 안해가 아이를 낳은 다음 진실을 고백하려 했다. 그에게 아이가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녀자의 태도가 완전히 다를 수 있었기 때문이였다. 수년간 병사를 이끌고 싸운 그가 어찌 적들의 고지를 점령하여 속전속결하는 전술을 모르겠는가! 그런데 결혼하여 밀월 같은 달콤한 결혼생활을 한 지 겨우 1년 남짓한 때, 부대가 명령을 받고 압록강가에 집결하게 될 줄은 몰랐다. 진풍년은 임신중인 안해와 헤여지지 않으면 안되였다. 압록강 강변의 집결은 근근히 전주곡에 불과했다. 그 뒤를 이어 벌어진 전투는 왜놈과 벌인 전투나 장개석부대와 벌인 전투에 비해 훨씬 잔혹한 고전이였다. 1951년, 진풍년은 전 퇀을 이끌고 조선에서 련합군부대를 저격했다. 상급의 명령은 듣기만 해도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그 명령이란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24시간 동안 견결히 진지를 사수하라였다. 그번의 전투는 말 그대로 악전이고 고투였다. 미국 양키들의 비행기, 대포는 쉼없이 폭격과 포격을 거듭했고 련합군은 벌둥지를 터쳐놓은듯이 번갈아가며 돌격해올라왔다. 진풍년의 발아래의 진지는 우박처럼 쏟아지는 포화에 양파처럼 한겹한겹 벗겨져갔다. 장장 하루 낮 하루 밤을 싸우고 나서 진풍년이 전사들을 이끌고 철퇴할 때는 신변에 남은 병사란 2백명도 안되였고 탄약은 더욱 적었다. 얼음을 밟고 강을 건널 때는 미군 비행기가 쫓아와 미친듯이 공중에서 소사하고 폭격해댔고 지면 우는 온통 앞을 가로막고 뒤를 차단하는 적군들 뿐이였다. 머리 우로는 또 적기가 투하한 조명탄이 높이 걸려 밤을 대낮 같이 환히 밝히기도 했다. 그번의 전투에서 몸에 중상을 입은 진풍년은 자신은 이미 혁명을 끝까지 했다고 생각하고 최후의 명령을 내리지 않고 병사들에게 우리의 임무는 이미 완성됐으니 즉시 세사람이 한조를 묶고 분산해서 포위를 뚫으라고 했다. 그는 될수록 상망을 적게 내고 꼭 살아서 돌아가야 한다고 병사들에게 부탁했다. 그는 또 적들 앞에서 무기를 놓되 당을 배반하고 나라를 배반하면 절대 안된다고 부탁했다. 무엇인가를 더 말하려고 했으나 바로 그 때 폭탄 하나가 옆에 떨어져 그 뒤의 일은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틀밤과 이틀낮 후였다. 눈을 떠보니 어느 산 속의 동굴 안에 누워있었고 옆에서 조선의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이 손짓발짓을 다해가면서 알려줘서야 진풍년은 그들이 죽은 시체더미 속에서 먹을 것을 찾다가 진풍년의 목숨이 아직 끊어지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구해주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 때 두 로인의 극진한 간호를 받으면서 진풍년은 그 두메산골에서 옹근 반년을 숨어살았다. 지원군들이 또 한차례 전역을 벌여 다시 쳐들어올 때까지…

다리 하나를 절게 되자 진풍년은 더 부대에 남아있을 수 없어 재빨리 국내에 호송되여왔다. 그런데 그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그를 맞아준 것이란 꽃묶음도 박수소리도 아닌 감옥 같이 침침하고 은밀한 심문실이였다. 그는 그 곳에 갇혀 심사를 받기 시작했다. 심사원들은 그에게 부대가 진지에서 철퇴할 때 그가 어떤 명령을 내렸는가고 질문했다. 그들은 자기들이 알기로는 그가 그 때 중상을 입은 몸이여서 정신이 똑똑하지 못했다는 점에 특별히 력점을 두며 말했다. 그런데 그렇게 암시해주었는데도 진풍년은 자기가 부상을 입은 곳은 다리와 몸이였고 비록 폭탄에 두피도 벗겨지고 귀도 절반 떨어져나갔지만 정신만은 줄곧 말짱했다고 우겼다. 

“내가 그 때 내린 명령은 분산적으로 포위를 뚫고 나가되 더는 죽기내기로 싸우지 말라, 무기는 놓아도 된다. 그러나 당을 배반하고 나라는 배반하지 말라!였습니다.”  

이때 심사원이 그의 말을 자르며 물었다. 

“당신이 말한 ‘죽기내기’란 무슨 뜻이오?”

진풍년이 가식없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우리들이 거의 30시간 진지를 고수하느라 싸우는 과정에 희생된 전사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이미 임무를 완성한 데다가 탄알과 쌀까지 떨어져서 더 싸우면 그대로 목숨을 적들에게 바치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그렇게 무리할 필요까지야 있습니까? 저의 전사들은 모두 훌륭한 청년들입니다. 저로서는 차마 눈 뜨고 그들이 부질없이 목숨을 바치는 걸 볼 수 없었습니다.” 

진풍년의 말이 끝나자 심사원이 또 질문을 들이댔다. 

“당신의 그 명령이 반역철학이나 생의 철학과 뭐가 다르다고 생각하오?” 

“저는 철학을 모릅니다. 다만 포로와 반역자가 같지 않다는 것만 알 뿐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어떤 나라의 전쟁포로는 석방되여 귀국해도 여전히 영웅으로 받들린다고 합니다. 만약 우리 퇀의 어떤 전사가 포로되였지만 당과 나라만 배반하지 않는다면 저는 그도 존경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외국의 전쟁포로가 귀국해서 영웅이 되였다는 말은 어디에서 들었소?” 심사원이 또 캐물었다. “저의 안해한테서 들었습니다. 안해와 그녀의 동창생은 2차 세계대전을 반영한 책과 영화를 보았답니다.” 

심사원이 다시 물었다. 

“당신이 살아돌아올 수 있었던 건 적군에게 포로됐기 때문이였소? 포로된 뒤 당과 나라를 배반한 일을 사실 대로 말하시오!” 

그 말에 진풍년이 벌떡 자리를 차고 일어나 지팡이로 마루바닥을 탕탕 치면서 화난듯 소리 질렀다. 

“전 적들에게 포로되지 않았습니다. 조선의 백성들이 시체더미에서 저를 발견하고 구해주었습니다. 정 믿음이 안 가면 직접 조사해보세요. 전 그 때 제가 꼭 죽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런 명령을 내렸습니다. 제가 당을 배신하려 했다면 항일전쟁 때 했지 하필 공산당이 천하 주인이 된 때에 와서 왜 배신하겠습니까! 그리구 배신하지 않는 포로로 되기도 어디 그렇게 쉬운가요? 배신하지 않는 포로가 되느니 차라리 죽기만 못하지요. 철 같은 의지가 없이는 당을 배신하지 않는 포로로 되기도 어렵단 말입니다.” 

진풍년은 옹근 4년간 이런 식으로 심사를 받았다. 그가 이런저런 명목하에 얼마나 많은 담화와 취조, 심문을 당했는지는 그 자신도 잘 모른다. 그가 빨간 손도장을 찍은 심문서류만 쌓아놓아도 사람의 키 절반 높이는 족히 될 것이다. 그동안 전장에서 귀국한 사师의 수장이나 군军의 수장도 그를 유도하고 설득한다는 명목으로 찾아와 면회했다. 수장은 그의 손을 꼭 잡으며 감개무량한 어조로 그번 저격전에서 진풍년 퇀의 공로가 가장 컸다면서 진풍년 퇀이 적은 희생을 내면서 대부대의 반격전을 위해 보귀한 시간을 벌었다고 치하했다.

그 때 진풍년은 쓰겁게 웃으며 속으로 그번 전투에서 우리 한개 퇀의 전사들이 거의 전멸했는데 그 희생을 적다고 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 수장은 또 진풍년에게 우리 당은 력대로 한 간부를 평가할 때 그 사람의 한가지만을 보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걸어온 력사와 일해온 정황들을 보면서 전면적으로 평가하니 머리에 너무 무거운 보따리를 짊어지지 말고 태연한 자세로 당의 심사에 림하라고 타일렀다. 수장들은 또 그와 작별할 때 몸에 상처를 입으면 정신상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병을 속이거나 병원을 기피하지 말고 제때에 치료하라고 간곡히 타일렀다. 진풍년은 수장의 성의를 모르는 것이 아니였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수장에게 상급 수장님께 꼭 자기의 건의를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그의 건의란 전장에서 아군의 실력이 절대적인 렬세에 처했을 때 저항을 멈추어도 전쟁의 전반 국면에 그 어떤 영향도 주지 않는 정황하에서 전사들이 무기를 놓는 것을 허락하여 불필요한 희생을 피면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장은 그렇게 많이 암시했는데도 그가 여전히 이런 식으로 말하니 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며 진풍년에게 “자네의 상처가 정말 중하구만!” 했다. 

  바로 이렇게 고집이 세고 자기 주견만 내세운 탓에 진풍년은 류당사간留党查看 1년이라는 처분을 받았고 군적军籍에서도 제명당했다. 4년 후 그가 북구로 다시 돌아왔을 때 그에게 차례진 새로운 직무는 겨우 국영농장의 부농장장이였다. 듣는 말에 의하면 그것마저도 옛 수장이 차마 마음이 내려가지 않아서 특별히 아는 사람을 공작해서 쟁취해온 것이라고 한다. 북구로 돌아오자 진풍년은 안해부터 찾았다. 임신한 몸이였던 안해가 그를 보자 엉~엉~ 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렸다. 안해는 울면서 당신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살아있으면서 왜 몇년간 편지 한장 없었느냐며 그를 원망했다. 진풍년은 한참 아무런 대답도 못하고 있다가 “우리 애는?” 하며 아이 안부를 물었다.     

아이에 대한 말이 나오자 전처는 또 한번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눈물을 닦으며 아이의 행방에 대해 알려주었다. 전처는 애가 계집애였다면서 재혼하기 전에 상대방이 자기가 아이를 데리고 가는 것을 꺼려서 그 때 마침 자기 동창생의 고향에 있는 한 젊은 부부가 결혼한 뒤 줄곧 아이가 없어서 딸을 그 집에 줬노라고 했다. 전처는 자기는 이제 진풍년과 같이 살 수 없게 됐다며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진풍년은 전처에게 아이를 누구에게 줬는가 따지며 당장 아이를 도로 찾아오겠다고 했다. 그 말에 전처는 더 슬프게 울면서 제발 찾아가지 말라고 애걸했다. 그녀는 당년에 아이를 줄 때 애 아빠가 죽었다고 보증했고 어떤 일이 있어도 앞으로 애에게 영향주는 일을 하지 않겠다고 젊은 부부에게 맹세까지 했다고 했다. 그녀는 장차 애가 크면 자기가 꼭 방법을 대서 당신을 찾아가도록 하겠노라고 다짐했다.

그로부터 3년 뒤 진풍년은 또 결혼했다. 녀자는 과거 그의 수하에서 련장을 했던 젊은이의 미망인이였는데 슬하에 딸 하나 있었다. 그 몇년간 진풍년은 조금만 틈이 생기면 희생된 전사들의 가족들을 찾아다녔다. 그 때 그는 련장의 미망인이 딸 하나를 거느리고 힘들게 살고 있는 데다가 련장의 유복 딸이 그의 손을 잡고 놓지 않으며 “저의 아빠 맞지요? 아빠 왜 이제야 돌아왔어요? 아빤 미국 양키들과 싸운 영웅이지요?” 하며 가엾게 응석을 부리기에 련장의 미망인을 보고 아이를 데리고 자기와 같이 농장으로 가서 출근하면 어떻겠느냐고 권했고 농장에서 출근하면 달마다 월급이 있어서 깊은 산골에 파묻혀 사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설득했다. 농장으로 돌아온 뒤 진풍년은 련장의 미망인 모녀를 자기 집에서 살게 하고 자기는 사무실에 침대 하나만 달랑 놓고 거기에서 혼자 하루 세끼를 대충 해먹으면서 살았다. 그로부터 몇달 뒤의 어느 날 미망인이 진풍년을 찾아와서 얼굴을 수줍게 붉히며 아이가 하루 종일 울면서 아빠를 찾는 데다가 농장사람들이 쩍하면 자기를 보고 ‘아주머니’라고 롱담을 하니 당신이 만약 우리 모녀가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셋이 같이 사는 게 어떻겠는가고 물어왔다. 진풍년은 그녀와 결혼한 지 1년 만에 아들을 보았다. 진풍년의 생활은 그로부터 끝내 안정과 평온을 찾았다. 

3년 곤난 시기 나라 곳곳에 큰 자연재해가 들어 밥을 빌어먹기 위해 떠돌이를 하는 사람들이 보물을 이루었다. 바로 그 때 태항산에 있던 아들이 찾아왔고 전처가 남에게 주었던 딸도 양아버지와 양어머니를 모시고 진풍년을 찾아왔다. 국영농장에는 당시 새로 직원을 모집할 때 농장직원의 친속을 우선하라는 규정이 있었다. 마침 그 때 슬하에 한쌍의 아들딸이 남아있어서 진풍년은 그들을 어렵지 않게 국영농장의 직원으로 넣을 수 있었다. 진풍년은 그 때문에 두 미망인 앞에서 좀 떳떳해진 것 같았다. 

지난 세기 80년대에 이르러 진풍년은 당의 새로운 간부정책에 의해 끝내 과거에 조사받고 심문당했던 억울한 혐의에서 풀려났다. 애석하게도 그 때 그는 이미 퇴직로인이 되였다. 당조직에서는 진풍년이 과거 생사고비를 넘나들며 싸운 혁명경력과 여러차례 전장에서 세운 공로을 감안하여 그에 대한 대우를 시지급市地级 퇴직으로 진급시키기로 결정했다. 수초는 바로 그 때 시로간부국에 전근하여 진풍년과 익숙해지게 되였다. 대학을 졸업한 후 수초는 먼저 중학교에서 글을 가르쳤는데 마침 그 때 일부 년세 계시는 로간부들을 도와서 자료를 정리하고 회억록 같은 것을 대필해서 써야 하는 일들이 있어서 시에서는 그를 로간부국에 전근시켜 간사로 일하게 했다. 그는 진로인을 도와 리력서를 써드리는 과정에 진로인의 서류를 적지 않게 보았다. 진로인의 서류에서 그는 진로인이 사람을 찾아 진술한 대필자료도 보았고 진로인과 기률검사 감찰원들 간에 오고간 담화기록도 보았다. 후에는 진로인과 직접 대화하면서 그가 들려준 과거에 대한 이야기들도 많이 들었다. 수초는 진로인이 하나면 하나라고 하는 공명정대한 사람이라는 것과 사람됨이 간사하지 않고 거짓을 모르며 자신의 허물을 덮어감추려 하지 않고 거짓말을 할 줄도 모른다는 것을 알았다. 수십년 전에 심사를 받을 때 한 말을 그는 몇년 뒤에도 토 하나 틀리지 않게 그대로 했다. 공명정대함은 로인에게 많은 불행을 가져다주었으나 공정함과 정의로움은 또 그의 공명정대함으로 해서 다시 되돌아오기도 했다.

거의 30여년간 부농장장으로 살아오면서도 그는 줄곧 넉넉하지 못한 생활을 했다. 그는 몇푼 안되는 월급으로 네식구를 먹여살려야 했을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어려운 생활을 하는 두 자녀도 돌봐야 했다. 일찍 농민이였던 아들과 딸은 올 때 식구들을 다 거느리고 오기는 했지만 그들 자신도 다만 농장에서 일하는 보통 로동자에 불과해서 돈이 늘 딸렸다. 진풍년은 그들을 볼 면목이 없어서 달마다 자기가 받는 월급에서 얼마간 덜어내서 주군 했다. 안해가 그러는 자신을 리해해주는 것이 늘 고마웠다.  그러나 달마다 하는 그의 구제도 아버지에 대한 아들딸의 몰리해나 원망을 밑뿌리까지 깨끗이 해소시키기에는 부족했다. 다른 집 로혁명가 아버지들은 자녀들을 호의호식시켜주는데 우리 진씨네 아버지는 왜 한달에 겨우 10원, 8원으로 친자식의 입을 막으려 하는가? 두 자녀는 늘 이런 식으로 진풍년과 트집을 잡았다. 그러다가 진풍년이 시지급퇴직간부 대우를 받게 된다는 소식이 봄바람이 되여 두 자녀와 아버지 사이에 생겼던 얼음층을 녹여버렸다. 그 몇년간 매번 설을 쇨 때마다 그들은 아들딸을 거느리고 와서 손자손녀를 할아버지 무릎에 앉힌다 어쩐다 하면서 떠들어댔다. 그러나 봄날의 따뜻함은 언제나 짧기 마련이다. 간혹 꽃샘추위라도 오면 이미 녹은 얼음층을 더욱 튼튼하게 얼어붙게 할 뿐만 아니라 땅을 헤치고 머리를 내민 새싹마저 모두 얼어죽게 하여 한 계절의 희망마저 훼멸시키는 경우도 있다.

어느 날 맏아들이 갑자기 찾아와서 홍두깨 내미듯 자기가 얼마 전에 성으로 가서 모청장을 만났는데 그 청장이 자기가 옛날 아버지의 부하였다면서 집에 돌아가면 옛 수장께 대신 꼭 안부를 전해달라고 부탁하더라는 것이였다. 아들의 말에 진풍년은 일개 농장의 로동자인 아들이 무슨 일 때문에 성에 갔고 왜 청장까지 만나고 왔는지 이상하기만 했다. 그가 막 물어보려고 할 때 아들이 솔직하게 자초지종을 말해주었다. 아들의 말인즉 요즘 아주 중요한 공사 하나를 맡으려고 하는데 그 공사를 바로 아버지의 옛날 부하였던 청장이 관할한다는 것이였다. 그러면서 아버지가 그 청장에게 전화를 하거나 편지 한장을 써서 그를 도와 공사를 따오기만 하면 우리 부자가 평생 받는 월급보다 더 많은 리익을 볼 수 있다는 것이였다. 진풍년이 깜짝 놀라 아들에게 네가 회사를 차렸는가고 물으니 아들은 자기가 무슨 능력으로 회사를 차리겠는가며 사실은 자기 친구가 회사를 차렸는데 그가 어느 공사 입찰에 참가하려고 하는데 자기 능력으로 그 공사를 따올 자신이 없으니 수소문으로 아버지와 그 청장의 밀접한 관계를 알고 자기를 찾아와 회사의 부사장 직함까지 주면서 사정하더라는 것이였다. 아들의 말을 듣고 화가 상투밑까지 치민 진풍년은 간신히 지팡이에 의지해 일어나서 칼날 같이 섬뜩한 목소리로 호통쳤다.

“너 이후 또다시 이따위 짓을 하면 그 땐 가만두지 않을 테다! 금후 사람들이 나에 대해 묻거든 차라리 내가 화장터에 간 지 오래다고 말해주어라! 난 이미 죽었단 말이다! 알아들었느냐?!”

비록 크고작은 차이는 있었지만 이와 비슷한 일들은 그 후에도 끊임없이 발생했다. 둘째와 그 사위도 그를 찾아왔고 셋째 사위도 그를 찾아왔다. 넷째는 그 때 부모와 한지붕 아래에서 같이 살고 있었으므로 더욱 진풍년을 시끄럽게 굴었다. 그 때 막내아들은 직장에서 경선을 통해 과장자리에 초빙되려 했는데 쉽게 진풍년을 설득할 수 없음을 알고 지금 간부하는 사람들 중 인맥관계를 통하지 않고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아버지가 지금 살아계시니까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아버지를 존경하지 몇년만 더 지나면 아버지를 보는 척도 하지 않을 것이라며 으름장까지 놓았다. 그 말에 진풍년은 또 화가 치밀어 “내가 지금까지 거느린 병사가 만명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8천명은 족히 될 것이다. 그런데 난 지금까지 그중 어느 한 전사도 자기가 쥔 총칼이 아닌 인맥관계에 의지해서 적진으로 돌격했다는 소리는 못 들었다. 네가 진짜 표범이라면 앞으로 밀고나가고 다만 편안하고 안일한 생활만을 원한다면 거부기처럼 대가리를 감추고 조용히 살아라. 나는 늙었어도 지금까지 평생 하지 못하는 일이 바로 허리를 굽신거리며 다른 사람의 도움을 청하는 일이다. 왜냐 하면 난 그 사람을 잃어서는 안되기 때문이야!” 하고 아들을 타박주었다. 

세상 어디에서나 인맥이나 사람관계를 리용하여 사적인 리득을 챙기는 문란한 풍기가 만연되고 있는 때에 진로인의 이러한 대공무사함은 가뜩이나 조화롭지 못한 부자관계에 찬물을 끼얹는 거나 다름이 없었다. 안해가 살아있을 때에도 친인척을 대하는 그의 무자비한 태도를 두고 한두번 말한 것이 아니였다. 살아있을 때 그녀는 “우리 집은 이 둥지 저 보금자리에서 자란 애들만 모여살고 있어서 오래지 않아 ‘혼인법’의 산 교재로 될 거예요. 아이들이 가뜩이나 당신과 친하지 못한데 이제 누구도 집으로 오지 않게 됐으니 차라리 잘됐지 뭐예요. 이제는 심지어 막내마저 밖에 나가 혼자 살게 됐어요. 내 보기에는 우리가 사는 세상 자체가 이렇게 돼먹은 것 같아요. 이런 풍기는 날이 갈수록 더해만 가니 우리 고집만 부리지 말고 애들을 도울 수 있는 데까지 도웁시다. 힘이 모자라서 돕지 못하면 애들두 우릴 원망하지 않아요.” 했다.

그 때 진풍년은 머리를 숙이고 아무런 말도 없다가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 

“나도 애들을 돕고 싶고 애들이 돌아와 함께 살기를 원한다는 걸 당신이 어찌 알겠소?! 이 네 아이가 모두 당신이 혼자 낳은 아이들이라면 난 누구의 미움을 사도 무섭지 않겠소. 그러나 바로 그 애들이 같지 않은 엄마의 배속에서 나왔기에 난 애들을 공평하게 대하지 못할가봐 늘 걱정이란 말이요. 그 때문에 집도 혼란스럽기만 하니 그렇게 하기보다는 그 애들이 자기 능력으로 분투하게 하는 것이 차라리 더 낫지 않겠소? 후에 그 애들이 우리를 원망하고 싶으면 원망하고 미워하고 싶으면 미워하라지 까짓 걸!”

진로인이 80여세 다되여갈 때 시정부에서는 리직한 로간부들의 주거조건과 환경을 해결하기 위해 별장동네 하나를 축조했다. 매 별장의 면적은 평균 2백여평방이였다. 집을 분배할 때 시정부에서는 재산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번 집은 매 가족들에서 구매하는 것이지 무상으로 거주하는 것이 아니기에 먼저 얼마간의 집값을 지불한 후 3년 뒤에 이 집도 시내의 다른 상업성 아빠트처럼 70년 재산권을 갖게 되며 아울러 팔거나 양도할 수 있는 권리도 갖게 된다고 선포했다. 조금 사리에 밝은 사람이라면 시정부에서 말하는 이른바 집값이란 상징적으로 내는 것에 불과하며 돈보다 중요한 것은 집을 살 수 있는 자격이고 자격이 없으면 아무리 욕심나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집 수매계약을 맺기 전에 시로간부국에서는 차를 파견하여 로인들을 별장동네로 모셔왔다. 별장동네는 시내에서 가까운 교외에 있었는데 뒤에는 산 앞에는 강이 있었고 교통도 편리했다. 매 별장에는 두세대가 들기로 돼있어서 속칭 련립주택이라고는 하나 두집이 각기 자기의 단독 문을 갖고 있었고 문을 떼고 집안에 들어서면 집안이 2층식으로 돼있는 데다 해빛이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했다. 더우기 로인들 대부분이 전원생활에 익숙한 점을 고려하여 매 집앞에 백여평방메터에 달하는 원포를 조성해 화초도 심을 수 있게 하고 채소도 심을 수 있게 했다. 그야말로 신선들이 모여사는 선경 같은 좋은 동네였다. 장차 발생할 수 있는 불필요한 시비를 피면하기 위해 시로간부국에서는 사전에 자격과 급별에 따라 순서를 배렬하는 수매 규칙을 제정했다. 그 날 진로인은 안해와 같이 집 보러 갔다. 안해는 그 때 이미 엄중한 페기종병을 앓고 있어서 가다가 쉬고 쉬고는 또 가군 했다. 가는 길에 진로인의 안해는 줄곧 수초의 부축을 받았다. 집구경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진로인의 안해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듣자니 우리가 1호여서 제일 먼저 집을 고를 수 있다는데 당신은 어느 집이 마음에 들었어요?” 하고 진로인에게 물었다. 진로인은 조금 머뭇거린 뒤에야 겨우 급하지 않으니 집에 돌아가서 의논하자고 했다. 

사흘 뒤 국장과 수초가 함께 진로인의 초대를 받고 진로인의 댁을 방문하게 되였다. 로인은 이미 우려놓은 룡정차를 기어이 두 사람의 잔에 손수 따르겠다고 했다. 이런 정경은 과거에도 있기는 했으나 손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적었다. 국장과 수초는 몰래 눈을 맞추며 서로 진로인의 신상에 꼭 무슨 큰일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니나 다를가, 상긋한 엽차 향기가 집안에 가득 차자 진로인이 무겁게 입을 뗐다. 

“조직에서 우리 늙은 사람들을 위해 이렇게 좋은 집을 지어줘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네. 그런데 우리 집 정황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자네들이 다 알고 있지 않는가. 말로는 집을 우리 로간부들에게 준다고 하지만 우리가 앞으로 살면 몇년 더 살겠는가? 언젠가는 이 강토를 위해 싸우다가 죽은 전우들과 만나러 나도 가야 하지. 우리 집 네 애들 말일세, 모두 이 둥지 저 둥지에서 태여나서 애비가 같지 않으면 어미가 다르고 어미가 같으면 또 애비가 달라서 누구나 우리 두 늙은이와 친하지 못하네. 사실 애들을 원망할 것도 없지. 천하를 위해 싸우기란 원래 쉽지 않은 일이네. 피 뿌리며 목숨 바쳐 싸우기도 쉽지 않구 혈육의 정을 버려야 하는 것도 쉽지 않네. 잃어버린 이 모든 것들은 아마 내 인생에는 되찾아오지 못할 것이네. 내가 오늘 말하고저 하는 건 우리 두 늙은이가 죽은 뒤에 이 집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일세. 다른 사람한테 맡겨서 애들이 서로 양보하면서 고루 살게 하거나 나중에 집을 판 돈을 똑같은 몫으로 나누어가지게 하고도 싶으나 우리 집 애들로서는 그렇게 하기가 어렵다네. 전혀 래왕하지 않던 애들이 어쩌다 만나도 형님, 누나, 언니, 동생 하는 걸  듣기마저 힘드네. 그러다가 누가 먼저 집에라도 덜컥 들어보게. 애들이 네 죽네 나 죽네 싸우느라 정신이 없을 거네. 일이 그렇게 되면 우리 부부도 땅 밑에서 사람들을 볼 면목이 없어지고 조직에서도 난처하게 될걸세.” 

진로인이 차잔을 들고 엽차를 마시는 틈을 타서 수초가 한마디 했다. 

“로인님께서 이것저것 너무 많이 고려할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두분께서 공정한 유서만 남기시면 백년 뒤 시비가 있더라도 법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진로인이 머리를 저으며 얼굴에 쓴웃음을 띠고 말했다. 

“아무리 청렴한 관리라도 가사와 관계를 끊을 수는 없다네. 이 며칠 사이 우리 부부는 텔레비죤에서 많은 법적 소송과 관계되는 프로를 보았다네. 이런 소송프로에서 보면 유서가 아니라 법적인 판결마저 집행하지 않으려 하는데 자네인들 어떻게 하겠는가!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친혈육을 적으로 만드는 것을 두 눈을 펀히 뜨고 지켜봐야 하는 경우도 있지.”

국장은 어딘가 실마리가 잡히기라도 한듯 진로인에게 “혹시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이라도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진로인이 입술에 침을 바르며 말했다. 

“우리 부부가 요즘 반복적으로 상의해봤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가 아직 숨이 붙어있을 때 먼저 집을 애들에게 나누어주자는 거네. 돈과 집에 있는 물건들은 우리가 죽은 다음 조직에서 책임지고 평균 나누어주면 큰 말썽이 없을 줄로 아네. 내 말의 뜻인즉 국에서 상급에 청시해서 지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별장에 대해 값을 정한 다음 우리 부부에게 집값을 먼저 지불할 수 없는가 하는 것이네. 집은 쪼개서 자식들에게 나누어주지 못하지만 돈은 나누어줄 수 있지 않는가? 안 그렇수?” 

그 말을 듣고 수초가 놀라며 물었다. 

“그렇게 하시면 로인님은 어디에 가서 지내시겠습니까?” 

수초의 걱정에 진로인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거야 문제 없지. 나 농장의 이 집에서 살 수도 있지 않는가! 나의 이 요구를 전 농장에서 꼭 받아줄 거네. 물론 우리로서는 별장이 영원히 농장에 속한다는 것과 우리가 죽은 뒤 즉시 농장에 돌려준다는 보증서와 증거를 글귀로 남길 거네. 우리가 별장에 들어있는 이 몇년간은 달마다 집세를 지불할 거네. 이렇게 하면 개인이나 집체나 다 손해가 없지 않겠는가.” 

국장이 잠간 갑자르다가 먼저 대답했다. 

“진로인님께서 후사를 이렇듯 세밀하게 안배해놓으시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저는 진로인님의 결정을 전적으로 지지합니다. 이 몇년간 로간부국에서 가장 처리하기 어려운 문제의 하나가 바로 사망한 로간부의 유산을 계승하는 문제입니다. 대부분 집들에서는 시비 없게 잘 처리하여 친목관계를 평소처럼 잘 유지해가지만 열집에서 간혹 한집에서라도 말썽이 생기면 헝클어진 삼실 같은 문제들이 꼬이고 꼬여서 삼년 오년, 심지어 십년 팔년이 지나가도 골머리를 앓게 만들지요. 제가 직접 성에 가거나 혹은 국에서 나서서 시의 어느 한 은행과 련계하여 담보대출을 맡는 방식을 참고하여 빠른 시일 내에 이 일을 현실화시키겠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이번의 집 물량이 적어서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할 어떤 로간부도 미처 집을 가지지 못했답니다. 듣는 말에 의하면 시에서 성에 자금청구와 땅청구를 동시에 제출하여 별장을 더 짓는다고 합니다. 그러니 진로인님의 생각이 실현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런데 금방 하신 진로인님의 말씀이 필경은 두분의 념원일 뿐입니다. 저의 뜻인즉 네 자제분에 대한 공작도 사전에 잘해놓으셔야 한다는 말입니다.” 

국장의 말에 진로인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거야 두말이면 잔소리지. 그럼 우리 두길로 나누어 공작해보지. 나는 지금껏 자네들을 설득시키지 못할가봐 걱정했다네.”

진로인이 소집한 그번의 가정회의에는 네 자녀가 유산계승문제를 토론한다는 말을 듣고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출석했다. 진로인은 수초를 특별히 초청해서 회의기록을 담당하게 했다. 그리고 사전에 수초에게 부탁하여 협의서를 작성하여 타자까지 하게 했다. 회의가 끝난 뒤 매 자녀의 싸인을 받아 자료로 남겨두기 위해서였다. 진로인이 내놓은 의견에 맏이와 둘째는 아무렇지도 않은듯 얼굴에 담담한 기색만을 지어보일 뿐 아무런 말도 없었다. 그러나 수초가 보니 그 두 사람이 태연한 척하면서도 몰래 눈짓으로 뭔가를 주고받고 있었다. 허공에서 부딪치는 그들의 눈빛에는 반가움과 기쁨이 가득 묻어났다. 셋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줄곧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얼굴에 같지 않은 의견이 드러나게 씌여있는 사람은 오직 넷째 뿐이였다. 넷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버지 어머니, 로혁명가들을 위해 지은 별장을 저는 진작 가보았습니다. 보니 정말 좋더군요. 외부환경을 보나 내부구조를 보나 흠 잡을 데 없더군요. 두분이 평생 고생만 하셨는데 만년에 그런 별장에 들어 복을 누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집에 들자면 몇만원은 있어야 되는 것 아닙니까! 두분이 돈 쓰기 아까우시면 제가 대신 쓰지요. 내부 인테리어라든가 가구구입까지 제가 전부 도맡을게요. 두분은 그냥 들어가서 사시기만 하면 돼요. 이러면 되겠지요?” 

맏이가 그 말을 듣고 즉시 반응했다. 

“그래도 내가 맏인데 돈을 내도 나부터 내야 하지.” 

그 말에 둘째가 찬바람이 쌩쌩 이는 어조로 한마디 던졌다. 

“다 같은 자녀인데 가깝고 멀고 먼저고 후고를 가르지 말아요.” 

그 때까지 셋째만 침묵하고 있다가 머리를 들고 몇몇 사람을 휙 쓸어본 뒤 다시 머리를 떨구었다. 네 자녀가 갖게 될 심사와 태도에 대해 진로인은 가정회의 전에 이미 수초와 함께 대개 점쳐보았다. 맏이와 둘째는 다만 부모들이 넷째에게 편향할가봐 마음을 조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 중 유독 넷째만이 두분의 피가 고루 섞인 친혈육이기 때문이였다. 만약 앞당겨 유산을 계승하고 평균 나눈다면 그들은 두손 들어 찬성할 것이다. 그러나 셋째의 경우는 비교적 특수했다. 혈연으로 따진다면 그녀와 진로인은 아무런 관계도 없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계승권을 가진다면 그녀로서는 당연히 감지덕지할 일이다. 네 형제들 중에서 사달을 낼 사람은 사실 넷째였다. 그는 부모와 갖고 있는 혈연의 우세를 믿고 재산문제에서 혼자 독점하지 못함을 안타깝게 생각할 것이다. 회의가 이런 식으로 진행되자 그 때까지 침묵하고 있던 안해가 급히 입을 열었다. 

“여보~! 당신도 좀 한마디 해보세유.” 

그제야 진로인이 말했다. 

“내가 너희들을 우리 집에 부른 것은 조직에서 나에게 준 이 돈을 평균으로 너희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이 좋겠는가를 의논하기 위해서였다. 만약 동의한다면 이 협의서에 서명하거라. 일단 동의하여 서명하면 영원히 뒤집지 못한다. 그 별장을 사느냐 않느냐는 내가 진작 시에 보고서를 써서 올렸다. 시에서 나의 청구에 따라 빠른 시일 내에 집값을 계산해서 나에게 돈을 보내올 것이다. 그러니 이 문제는 상의할 범위에 속하지 않는다. 난 몸은 늙었지만 머리는 아직도 말짱하다. 내 이 몇마디 말이 아직도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느냐?” 

진로인의 얼굴빛이 엄숙하게 굳어지고 말에도 찬기운이 묻어있었다. 자녀들은 원래 속으로 아버지를 무서워하는 데다가 아버지가 이런 식으로 날을 세워 말하니 저마다 입을 꾹 닫아버렸다. 다만 넷째만이 볼멘 소리로 투덜거릴 뿐이였다. 지금 부동산시장이 하늘을 찌를듯 매일 뜨겁게 달아오르는데 아버지 어머니가 집은 요구하지 않고 돈만을 중히 여기니 얼마나 바보스러워요? 그러자 안해가 낮은 목소리로 화내듯 말했다. 

“이 일을 가지고 나와 네 아버지도 의논할 만큼 의논했다. 우리가 만약 돈만을 중히 여기는 사람이라면 이번에 내려오는 돈도 너희들에게 나누어주려고 하지 않았을 거다. 그것을 은행에 저축해두고 리자만 받아먹으면 좀 좋아서!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것이 다 너희들을 위해서가 아니겠느냐! 집값이 올라간다면 돈을 나누어가진 뒤 그 돈으로 너희들도 집을 사면 될 것 아니냐? 큰 집을 사지 못하면 작은 집이라도 사면 되지. 듣자니 작은 집 값이 더 빨리 오른다더라. 너희들이 돈을 벌면 부모된 우리도 따라서 기쁜 거지 바보스럽기는 뭐가 바보스럽다는 거냐?” 

진로인이 끙끙거리다가 퉁명스럽게 안해의 말을 잘랐다. 

“그 자식과 무슨 쓸데없는 말을 해? 큰 집을 너 한놈에게만 주면 우리 집 식구들이 바보스럽지 않은 거지? 그런 거냐? 이 자식 꿈도 꾸지 마!”

진씨네 네 자녀들이 유물을 선택하는 순서도 이제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셋째의 딸과 넷째는 이제는 더 집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맏이와 둘째의 아들딸만이 아직도 엇바꾸어 집문을 들락거릴 뿐이였다. 넷째가 부러 짜증스럽고 높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배고파 죽겠어요. 이제 그만들 해. 이 집에 또 뭐가 있다고 그래?” 

수초가 담배를 꺼내 넷째에게 한대 내밀며 위로하듯 말했다. 

“배고프면 배고픈 대로 좀더 참아요! 제 보기엔 위로금이 내려온 뒤 아저씨 형제들을 찾아 한번 더 모인 다음 다시 모일 기회는 아마 많지 않을걸요.” 

넷째는 빨아들였던 연기를 토하며 “그건 그래. 오늘 같은 날에도 어떤 사람은 안 왔으니까!” 

수초가 뒤이어 넷째에게 말했다. 

“이 몇년간 관찰해보니 진로인이 가장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사람은 바로 아저씨였어요.” 

넷째가 눈섭을 치켜세우고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런데 난 왜 그걸 보아내지 못했을가?” 

“만약 아저씨가 눈치 채게 했다면 아저씨 아버지 아니지요. 아저씨는 진로인이 생전에 누구와 말할 때 가장 눈을 많이 부릅떴는지 알아요? 바로 아저씨였지요.” 

그 말을 듣고 넷째가 한참 멍청하게 있다가 겨우 한마디 했다. 

“눈을 부릅뜬 것도 관심으로 생각해야 돼?” 

수초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천천히 생각해보세요. 생각하고 또 하다 보면 언젠가는 알게 될 날이 있을 거예요.”

얼마 지나지 않아 맏이와 둘째 집 사람들도 집안으로 더 들어가지 않고 휴대폰으로 물건을 실어갈 트럭을 부르고 있었다. 수초는 그제야 그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질녀와 질남들을 집안으로 들어가서 마음대로 물건을 골라가게 했다. 그 때까지 기다리고 있던 사람도 몇이 남지 않았다. 담배 한대를 피우는 사이에 누군가 진로인이 자체로 피나무가지를 손질해서 만든 지팡이를 들고 나왔고 누군가는 또 작탄 껍데기로 만든 녹이 알락달락하게 쓴 구리필통을 들고 나왔다. 또 누군가는 호두알 두개를 주었다. 그 호두를 수초는 잘 알고 있었다. 몇년 전 진로인은 그걸 손에 쥐고 자꾸 비벼댔다. 진로인은 그것을 농장의 늙은 호두나무 밑에서 주었다고 했다. 후에 중양절을 쇨 때 로간부국에서 매 로간부들에게 건강용 베아링볼을 하나씩 나누어주었다. 베아링볼은 움직일 때마다 듣기 좋은 소리를 냈다. 진로인은 그제야 호두를 버렸다. 림종할 때 진로인은 그 베아링볼을 수초의 손에 놓아주며 “수초! 지난 몇년간 줄곧 날 돌봐줘서 정말 고마워. 이걸 기념으로 주니 받아주게나!” 했다.

모였던 사람들이 다 떠나가자 집은 휑뎅그렁했다. 어느덧 저녁이 되여 붉은 노을이 서쪽 하늘을 빨갛게 물들였다. 수초는 전화를 걸어 그 때까지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농장사람들을 불러왔다. 당년에 진로인이 여기에서 장기적으로 세내고 살아갈 계획을 농장 여러 사람들에게 말해주자 농장에서는 재빨리 집 수리와 인테리어에 착수해 원래 세칸이던 집을 다섯칸으로 뜯어고쳤다. 농장 령도들은 진로인이 여기에서 만년을 보내시는 건 우리 농장의 영광이니 장차 농장이 불경기에 처하더라도 로혁명가를 잘 모시지 않으면 안된다고 했다. 수초는 남아있는 진씨네 네 자녀 대표들에게 다시 한번 들어가서 잘 살펴보고 더 문제가 없으면 집 소유권 이전서에 서명하라고 말했다. 그들 몇은 수초 뒤를 따라 집안을 한칸한칸 순차적으로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어제날 진로인 부부의 숨소리와 살아가는 냄새로 꽉 찼던 집안에 남은 것이란 공허와 쓸쓸함 지저분함 뿐이였다. 바닥 여기저기에 가득 버려진 물건들은 쓰레기통에 버려야 할 물건들에 불과했다. 몇사람이 집 소유권 이전서에 막 싸인하고 있을 때 수초는 문득 벽에 비스듬히 걸려있는 낡은 거울틀을 보았다. 액틀은 면판이 작아서 안에는 몇장 안되는 옛날 사진이 들어있었다. 사진 속에는 가족사진이 있었고 진로인이 생전에 농장 동료들과 함께 찍은 집체사진도 있었다. 다른 한장은 언제인가 수초가 진로인을 부축하여 산을 내려오면서 찍은 사진이였다. 사진은 모두 퇴색하여 그다지 선명하지 않았다. 그중에서 칼라 사진이 가장 심하게 퇴색했다. 수초는 액틀을 벗겨낸 다음 바닥에 널려있는 낡은 옷으로 거울 우에 묻은 먼지를 닦으며 말했다. 이걸 누구도 가져가지 않으면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수초의 말에 누구도 대답이 없었다. 그들이 수초에게 보여준 것이란 일부러 지어내는 초연함과 도망치듯 감추는 눈빛 뿐이였다.

혹시 셋째가 오늘 직접 이 집에 왔다면 옛날 사진이 들어있는 이 거울틀이 수초의 손에 들어올 수 없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셋째도 이미 60세를 넘긴 부인이여서 머리에 흰서리도 내려앉고 걸음걸이도 그다지 민첩하지 않았다. 진로인이 병원에 입원해있을 때 그녀만이 이틀 사흘 간격으로 병원에 찾아와서 진로인을 보살폈고 매번 진로인을 보러 올 때면 언제나 손에 닭고기탕이나 물고기탕이 들어있는 단지를 들고 있었다. 어떤 때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자기가 올 수 없으면 아들이나 딸을 대신 보내기도 했다. 그녀 외의 다른 세 자녀와 그들의 식구들은 특수한 일로 병원에 오라고 전화하지 않는 한 거의 만나볼 수 없었다. 그들이 얼굴을 내밀지 않는 구실은 놀랄 정도로 일치했다. 말하자면 로인은 당의 사람이기에 로인의 일은 당을 믿고 당에 의뢰한다는 것이다. 진로인의 골회를 부인과 함께 합장한 후 셋째는 제일 마지막에야 묘지를 떠나면서 묘지 앞에 무릎을 꿇고 땅에 머리를 쫏듯 큰절을 올렸다. 그녀는 다시 한번 눈물을 쏟으며 말했다. 

“아버지, 어머니 이제부터 이 딸이 두분을 만나뵈러 자주 여기에 찾아오겠습니다. 두분께서 하늘나라에서도 이 딸을 잘 보호해주시고 그곳에서 이 딸이 쓸 땅도 마련해주세요. 다음세상에 가서도 이 딸은 여전히 두분의 딸이 되겠습니다.” 

셋째 말은 다시 한번 수초를 감동시켰고 슬프게 했다. 

“피란 정말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 피는 정말 물보다 짙은 것인가? 만약 낳아주고 키워준 은혜에 감사할 줄 모른다면 친혈육인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수초는 눈가장에 맺힌 눈물을 닦고 앞으로 걸어가 셋째를 부축하며 말했다. 

“누님, 우리 이만 돌아갑시다. 이 몇년간 보여준 누님의 뜻을 로인님은 다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자 셋째가 말했다. 

“난 여러분들이 모두 집에 일이 있다는 걸 알아요. 그러니 난 따라가지 않겠어요. 내가 여기에서 좀더 있으면서 아버지 어머님을 동무해드리면 안될가요?” 

수초가 셋째를 보며 말했다. 

“누님이 가시지 않으면 어떻게 해요? 네형제중 그 누구도 빠지면 안됩니다.”  

셋째가 또 수초에게 사정하듯 말했다. 

“정 그렇다면 저의 딸을 불러서 데리고 가요. 그 애가 나를 대표해 참가하면 돼요.” 

밤장막이 서서히 내리고 있다. 옛날의 진씨네 집 식구들은 모두 가고 방에는 수초 한 사람만 외롭게 남았다. 수초는 갑자기 피곤을 느꼈다. 두다리가 힘이 빠져 후들거리는 데다가 마음까지 시큼해나서 어딘가에 숨어서 울고 싶었다. 진로인이 세상 떠서 지금까지 옹근 사흘 낮 사흘 밤 그는 쉼없이 빈객을 맞고 바래고 크고작은 가정회의를 소집하고 장례와 관계되는 모든 일들을 주관하면서 마치 자기와 전혀 상관 없는 일을 대하는 것처럼 줄곧 랭정하려 애썼다. 그러나 지금 긴장됐던 마음이 조금 풀리자 이제야 진풍년로인이 정말 떠나갔다는 생각이 실감 있게 찾아들었다. 그래, 진로인은 멀리 간 거야. 우리가 모르는 다른 한 세계로. 이제부터 진로인은 다시는 만날 수 없어. 수초는 진로인을 존경했다. 그러나 바로 존경하기 때문에 로인의 사망에 대해 이렇듯 절절한 애통과 비애, 공허함과 처연함을 느끼는 것이다. 네 자녀 중에서 다만 진로인과 아무런 혈연관계도 없는 딸만이 가까이 다가와서 살갑게 대했으니 진로인이 입으로는 말하지 않았지만 수초는 어디에 가서 어찌해볼 방법이 없는 로인의 난감함과 답답함을 느낄 수 있었다. 진로인의 마음속에는 영원히 아물 수 없는 흉터가 남아있었다. 평소 사람들은 알면서도 그것을 건드리지 않으려 했고 더 상하게 하지 않으려 했다. 안해가 생존해있을 때에도 례외는 아니였다. 수초는 거울틀을 품에 안고 문밖의 계단 우에 쪼크리고 앉았다. 웬 영문인지 뜨거운 눈물이 주르르 끊임없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 날 저녁 수초가 거울틀을 뜯어서 잘 닦은 다음 그 속에 들어있는 낡은 사진들을 자신의 사진첩에 옮겨놓으려고 거울틀의 모서리에 박혀있는 작은 못을 뽑아내고 사진틀 뒤에 있는 엷은 합판을 젖히는 찰나, 하나의 중요한 발견을 했다. 그 발견이란 화선지 우에 그려놓은 그림 한장이였다. 휘우듬하고 단단하게 우뚝 선 늙은 소나무 가지 우에 앉은 대머리 독수리 한마리가 동그렇게 뜬 매서운 눈으로 멀리 바라보며 막 날아가려고 몸을 한껏 움츠리고 있었다. 보는 사람의 눈을 그대로 사로잡는 독수리의 두 눈은 칼끝 같이 예리하고 악마 같이 흉악했다. 그림은 모두 먹으로만 그려졌는데 어떤 곳은 진하게 먹을 뿌리고 어떤 곳은 담백하게 슬쩍 칠해서 세밀한 화법과 간단한 스케치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게 했다. 그러나 화법보다는 그림이 보는 사람에게 주는 이미지가 기절할 만큼 충격적이였다. 그림의 왼쪽 아래 귀서리에 있는 락관에는 로유을묘년동老榆乙卯年冬日이라고 찍혀있었다. 그림에서 다만 도장만이 주홍색이였는데 바로 그 주홍색 때문에 화면이 보다 선명하고 산뜻하게 보여서 보는 사람에게 남다른 감개와 감동을 주었다.

그림 앞에 선 수초는 어리둥절한 채 못 박힌듯 오래도록 움직일 줄을 몰랐다. 을묘년, 당시는 바로 1975년이였고 바로 ‘문혁’이 끝나기 1년 전이다. 수년 전 수초는 진로인과 한담하다가 그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문혁’ 때 성소재지에서 한 화가가 살았는데 나이는 진로인과 비슷했고 그림 때문에 반혁명 루명을 쓰고 이곳 농장에 로동개조하러 왔다고 했다. 그 화가는 술을 잘 마셨는데 술을 마신 뒤에는 쩍하면 고함도 치고 노래도 불러대서 우사간 사람들은 모두 그를 싫어했다. 어느 해 겨울 화가가 병으로 몸져눕자 진로인은 그를 집으로 데려와 몸조리를 하게 했다. 

“기인은 모두 이상한 성격을 갖고 있는 것 같아.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술을 마시지 않으면 붓을 잡기 싫다더군. 조금이라도 입에 술을 대야 필끝에서 신바람이 인다고 늘 말했지.”

그 때 수초가 진로인에게 물었다. 

“화가를 집에까지 청해서 보살폈는데 그 때 그림 몇장이라도 그려달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 말에 진로인이 하하 통쾌하게 웃고는 한참 후에야 말했다. 

“무슨 체면에 그림을 그려달라고 하겠는가?! 게다가 설사 그려준다 하더라도 나야 보고 모르지 않는가!” 

수초가 진로인에게 물었다. 

“그가 그렇게 엄중한 죄명을 썼다는데 무슨 그림을 그릴 줄 안대요?” 

진로인이 대답했다.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그 화가는 독수리를 그리는 것이 특기라고 하더군. 그런데 독수리를 그리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대머리 독수리만은 그리지 말았어야 했어. 그가 그린 대머리 독수리 그림을 보고 어떤 사람들은 그가 장개석의 혼을 부른다고 했고 어떤 사람들은 림표를 위해 억울함을 호소한다고 했다네. 장개석과 림표는 다 대머리 아닌가! 어휴~ ‘문혁’ 때는 이러한 황당한 일들이 많았지.” 

수초가 또 물었다. 

“그 화가가 떠나간 뒤 그 분과 더 련락하지 않았어요?” 

진로인이 후~!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련락이라는 게 다 뭔가! ‘문혁’이 끝나자 그 화가는 성소재지로 돌아갔지. 그런데 듣는 말에 의하면 성에 도착하자마자 기쁜 김에 친구들을 찾아 술을 마시며 경축했는데 그 날 밤 너무 과음한 탓에 그 자리에서 취해 쓰러진 뒤 다시 깨여나지 못하고 승천했다지 뭔가! 어휴~ 이제 와서 보니 그가 성으로 돌아가지 말고 여기 농장에 계속 있었더라면 어쩌면 몇년 더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보아하니 그 화가가 바로 유씨였다. 유씨는 진로인의 댁에 자리를 옮겼다가 병이 낫자 진로인과 마주앉아 술잔을 기울이면서 진심을 털어놓았다. 혹시 술을 마신 뒤 주흥을 이기지 못해서였을가? 유씨는 진로인 집에 선지를 펴놓고 당장에서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력사의 화책에 길이 남을 대머리 독수리 그림을 그려서 선물했다.

혹시 진로인이 이 대머리 독수리 그림이 진귀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이 알고 또 유씨에게 죄명을 들씌울가봐 조심스럽게 거울틀 뒤에 감추어놓았는지도 모른다. 같은 도리로 유씨도 이 그림이 진로인에게 혹시 쓸 데 없는 시끄러움을 끼칠가봐 그림에 아정雅正이라든가 혜존惠存과 같은 글귀를 남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지금에 이르러 유씨와 진로인 모두가 학을 타고 신선이 돼서 이 모든 것들은 하나의 수수께끼로만 남았다.  

그 날 저녁 수초는 컴퓨터로 인터넷에 올라 바이두百度에서 유씨와 그의 그림의 가격을 검색해보다가 입이 딱 벌어져 한동안 숨도 바로 쉬지 못했다. 알고 보니 유씨는 화단에서 진작 잘 알려진 명숙名宿이였고 그의 유작은 그 어느 작품이나 천문학적인 값을 호가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그림은 혹시 더 비싸지 않을가?

며칠간 련일 쉼없이 바쁘게 돌아친 수초는 실면했다. 명화가의 명화를 어떻게 해야 할지 보통사람인 수초로서는 어떻게 해도 풀 수 없는 골드바흐의 추측이였다. 진로인의 넷째에게 줄가? 그러나 한장의 그림을 어떻게 평균 분배한단 말인가? 네형제자매가 만약 그림을 팔아서 돈을 나누어가지자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일을 말하지 않고 하자면 시끄럽지 않을가? 무서운 건 유씨네 자녀들이나 친척들이 소문을 듣고 그림의 소유권 문제를 추궁하면 그 소송은 절대 짧은 시간 내에 공정한 판결이 내려질 일이 아니였다. 그럼 로간부국 령도들에게 바친다? 그러나 속담에 ‘철로 만든 아문, 흐르는 물 같은 벼슬’이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지금의 국장들이 승진하거나 파면돼서 혹 다른 곳에라도 가버리면 어떻게 하는가? 장래의 국장들 또한 어느 시점에서 신선이 되고 꽃잎새처럼 스러져버릴지 누가 알겠는가! 그럼 내가 소장하고 있을가? 여기까지 생각하자 수초는 가슴이 쿵쿵 높뛰여 자기도 모르게 벌떡 자리를 차고 침대에서 일어나앉았다. 그 바람에 옆에서 자고 있던 안해가 잠을 깨고 짜증냈다. 

“귀신 같이 왜 이래요? 진로인이 꿈에 나타나 부탁한 걸 가지구 놀랄 것까지야 없잖아요!” 

수초는 길게 한숨을 쉬고는 다시 베개를 베고 도로 누웠다. 진로인의 유물들은 이미 네 자녀에게 평균으로 다 나누어주었고 분배 일정과 결과를 타자한 서류에 서명까지 깨끗이 했다. 그건 철 같은 증거이다. 지금 손에 있는 그림은 그들 네 자녀가 모두 가지지 않은 버린 물건에 불과하다. 그러나 후에 간혹 이 ‘독취도秃鹫图’가 세상에 공개돼서 사람들이 수초가 진로인의 유물을 나누기 전에 화가의 그림을 사적으로 감추어두었다고 모함하면 어떻게 변명해야 하는가?!

어느덧 창문 밖이 희붐히 밝아왔다. 이른아침부터 거리를 달리는 자동차의 경적소리와 차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창틈을 비집고 간간이 들려왔다. 진로인이 선대仙台로 갔다고는 하지만 아직 첫 7일 종이를 태우지 않았고 내하교奈何桥도 건너지 못하고 맹파탕孟婆汤도 드시지 못해서 집에서 너무 멀리까지는 가지 못했을 것이다.

수초는 어서 잠들기를 바랐다. 그래야 진로인이 꿈속에 나타나 어떻게 해야 안전할지 그에게 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재국 옮김)
 

출처:<장백산>2018 제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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