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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백산》문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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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란: 고통과 성찰이 드러나는 남철심 시인의 시적 세계(시평)
2019년 07월 15일 11시 22분  조회:406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고통과 성찰이 드러나는 남철심 시인의 시적 세계 

-<고요한 밤(외5수)>를 읽고

손경란

 

고통은 우리가 누구나 살면서 보편적으로 체험하는 감정이다. 고통의 류형은 육체적 고통, 내면적 고통, 세계의 부정으로 발생하는 사회적 고통, 력사적으로 인식하는 고통이 있다.  이들 중에서 남철심 시인의 시에서 보이는 고통의 류형은 내면적 고통이 지배하며 그 원인은 그리움과 고독, 소외감, 상실감, 혐오감에서 비롯되고 있다. 시에서 시인은 고통의 순간을 자기 인식의 세계로 끌어들이고 깊은 성찰에 이른다. 남철심 시인의 시를 말하면서 고통의 문제를 먼저 떠올리게 된 것은 그의 시에서 시적 화자의 내면의 고통이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격하게 울렁이고 있기 때문이다. 본고에서는 남철심 시인의 시 <고요한 밤(외5수)>를 통해 고통과 성찰이 드러나는 그의 시적 세계에 접근해보고저 한다. 

 

1.  그리움-

령혼으로 보는 고요의  소리 

먼저 첫번째 시 <고요한 밤>을 읽어보자. 밤은 고요하다. 그래서 고요를 즐기는 사람은 밤을 찾는다. 한개 련으로 된 이 시에서 시적 화자는 밤이 와야만 찾아오는 어둠의 세계 속에서 찾아오는 존재를 만난다. 

시의 첫행 “고요가 뜯어먹은 밤의 가장자리에서”라는 표현은 시적 화자가 처해있는 현재 시점은 고요한 밤의 끝자락 시간임을 말해준다. 화자는 온밤 깊은 생각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가 밤이 다 지나가는 시간에 이르러서야 “한걸음씩 사색이 물러가”게 되고 주위의 메뚜기, 꽃, 별 등 자연물들을 바라보게 된다. 어둠을 배경으로 우주 속의 만물은 잠들어있다. “여름을 만지며 놀던 / 메뚜기의 발가락도 잠들었고”  “꽃들이 꽃들의 모양을 하고 / 입 다문 별들을 본다”. 어둠은 모든 상황의 정지이며 쉼이며 묵언임을 일깨워준다. 이런 어둠을 통해 먼 은하에서 출발해 망막에 하나 둘 착상된 별빛은 시적 화자의 그리움을 불러오며 “서러운 이름 하나”를 기억해낸다. 그 이름은 이내 “흐르는 바람결과 어우르며” 시적 화자의  슬픈 추억을 불러일으키고 리별의 순간을 기억하게 한다. 만물이 잠든 밤의 고요 속에서 움직여 살아나는 추억을 “흐르는 바람결”에 “흔들리는 잎새”로의 비유적 표현이 기발하다. 또한 추억에 대한 동적인 묘사는 밤의 고요와 대조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추억의 감정을 고조시킨다. 인간은 태여나면서 모태와의 리별을 첫 경험으로 그 후의 삶 속에서 부단한 리별과 만남으로 살아가면서 리별의 아픔을 숙명적으로 맞아야 한다. 수많은 리별 가운데서 “생의 약속들을 날리며 / 하늘보다 먼 나라로 떠나는” ‘죽음’이라는 리별 앞에서 시적 화자는 생의 약속들이 부질없이 가벼운 것이였음을 느끼며 삶에 대한 성찰에 이른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정교한 유리알을 굴리며” 창밖을 보는 집고양이의 동반이다. 또 전반 시에서 ‘메뚜기’, ‘꽃’, ‘별’, ‘고양이’ 그리고 시적 화자가 하나의 풍경으로 스크랩되고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감응하고 조응하는 인간과 자연이 융화된 모습 속에서 동기감응하는 자연의 질서를 돋보이게 한다. 

 

2. 소외감-

작은 존재에 대한 응시와 공감 

두번째 시는 들꽃의 한 종류인 <좁쌀꽃>을 시적 대상으로 쓴 시이다. 좁쌀꽃의 ‘좁쌀’ 이름만으로 좁쌀꽃을 상상해보면 아주 작은 꽃이 상상될지 모르겠지만 사전적 해석을 보면 좁쌀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꽃이 크다고 한다. 물론 또 다른 꽃들과 비교하면 그리 큰 꽃은 아니다. 잘 익은 좁쌀의 색갈을 간직하고 피여난 꽃, 아마도 다닥다닥 꽃망울이 모여있는 모습이 마치 좁쌀이 모여있는듯해서 좁쌀꽃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아닌가 싶다. 

이 시는 3련으로 되여있는데 1련의 첫 두행 “어디를 닮았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 나를 닮은 풍뎅이 길에서 꽃이 핀다”라는 도입부의 시적 표현을 보면 화자는 강변의 야산이나 들판에 서식하는 15-21mm 크기의 작은 곤충인 풍뎅이와 자신을 부분적으로 동일시하는데 이는 독자들에게 구경 어디를 닮았을가 하는 궁금증을 자아내며 좁쌀꽃 밭으로 독자들을 이끈다. 3행과 4행에서의 “큰 것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 야리야리 서있는 노오란 좁쌀꽃”은 좁쌀꽃의 가늘고 노오란 식물적 속성을 강화하여 시각적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독자들의 시선을 좁쌀꽃에 집중시킨다. 그러면서 “큰 것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좁쌀꽃이라고 강조한다. 다시 말하면 ‘큰 것들은 보지 않는다’는 뜻과 함께 ‘작은 것들은 본다’라는 뜻을  함축함과 동시에 화자가 숨기고 있던 풍뎅이와의 류사성이 실은 ‘작은 존재’라는 점을 넌지시 암시하며 독자들의 궁금증을 해소해준다. 

2련의 첫 두행 “같이 온 계절의 겨드랑이에 끼워 / 훌 불면 날릴듯 가녀린 모습”은 1련에서 제기한  ‘야리야리 서있는 좁쌀꽃’에 대한 의인화적 표현이다. 좁쌀꽃은 수많은 꽃들이 만발하는 계절에 단지 “겨드랑이에 끼워”서 찾아오는 작은 존재로, 또 “가녀린 모습”의 약한 존재로 의인화되여 표현되며 이로부터 화자는 좁쌀꽃에서 “시집간 누이”의 뒤모습, 즉 “작은 등”을  발견한다. 뒤이어 좁쌀꽃은 또 “아지랑거리는 태양의 눈물”로 승화된다. “시집간 누이의 작은 등”과 “아지랑거리는 태양의 눈물”은 1련의 4행에서 제기한 원관념인 좁쌀꽃의 보조관념으로서 은유적인 표현이다. 즉 한개의 원관념 “좁쌀꽃”이 “시집간 누이의 작은 등”과  “태양의 눈물” 등 두개의 보조관념으로 전이되여 의미의 변용과 확대가 이루어지고 있다. “누이의 작은 등”이 좁쌀꽃의 “야리야리한 모습”과 동일시되였다면 “태양의 눈물”은 좁쌀꽃의 ‘태양빛’을 닮은 노오란 빛갈과 ‘눈물’의 방울크기와 같은 작은 물리적 속성에 대한 시각적 이미지화로서 경이로운 표현이다. 또한 ‘눈물’ 이미지는 좁쌀꽃의 ‘슬픈 존재’를 부각시키는 역할을 한다. 

3 련에 이르러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기억 속에서 가물가물해진 좁쌀꽃의 ‘잃어버린 애모쁨’의 모습을 되찾고저 하는 감정이 고조되며 시적 화자의 그리움이 솟구쳐 흐른다. 2련의 시적 정서가 3련에서 이어져 좁쌀꽃과 동일시된 누이에 대한 그리움도 혼재해있기에 그 감동이 독자들에게 더 절실히 다가온다. 3련의 1행과 3행에서 ‘다시’라는 낱말을 반복하여 사용함으로써 좁쌀꽃에 대한 시적 화자의 그리움의 정서가 더욱더 간절히 드러난다. 풍뎅이 길에 피였던 좁쌀꽃은 이미 시적 화자의 가슴속으로 고스란히 옮겨져있다. 

4련은 1련과 호응을 이루며 화자의 정서는 계속해서 고조된다. “노오란 좁쌀꽃”은 작고 여리지만 “가볍잖은 생의 무게를 / 고스란히 껴안고” 살아가는 외유내강의 존재이다. 여기서 “노오란 좁쌀꽃”은 축자적인 의미 뿐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힘없이 살아가는 ‘누이’를 포함한 소외된 인간존재에 대한 상징적 의미도 함께 내포하고 있다. 

시 <좁쌀꽃>에서 시적 화자는 작고 소외된 존재에 대한 응시와 공감을 통해 소외된 자들과 하나가 되고저 한다. 이는 인간존재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망각한 채 서로 소외시키고 또 소외당하는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무의식을 일깨우는 행위이기도 하다. 

 

3. 상실감-몸안에 갇힌 상처 

세번째 시의 제목은 주방의 의미를 나태내는 외래어 <키친>이다. 주방은 음식을 료리하는 물리적인 공간이다. 이 시에서는  ‘밥짓기’가 계기가 되여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시적 상상력을 펼치는 공간이다. 

“금방까지 배고프다고 조르더니 / 부엌에서 밥 짓는 사이 / 그 사람은 홀랑 죽어버렸다”라는 표현에서 시적 화자는 밥 할 시간이 되여 주방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배가 고파 주방에 들어간다. 아마도 굶어있었던 모양이다. 무슨 사연이 있었을가? 바로 이어지는 “밥 짓는 사이 / 그 사람은 홀랑 죽어버렸다.”라는 표현하에 갑자기 팽팽히 긴장되고 음산한 강박감이 흐른다. 이어 독자의 시선을 칼도마 우에서 죽은 잉어 우로 옮겨간다. “칼도마 우에서 팔딱거리던 / 잉어 대가리도 / 썰어놓은 고수풀 옆에서 / 눈도 못 감은 채 죽어있었다”. 화자는 잉어의 눈빛에 시안을 집중한다. 잉어는 림종시에 풀지 못하는  한이 있어 차마 눈을 감지 못하는 것일가? 정지된 생선의 눈빛에서… 죽임을 당한 잉어에게서 아찍 꺼지지 않은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잉어를 죽이면서 “피를 먹어 인자한 칼을 내려놓”는다. 밥을 지을 때 칼은 늘 사용하는 도구이다. 칼은 사물을 자르거나 분할하여 가르는 역할을 하지만 칼자루를 쥔 자는 칼의 힘으로 권력이나 부나 욕망을 쟁취하기도 한다. 이러한 물리적인 칼이 아닌 인간의 마음속에도 칼이 있다. 화자가 한자루의 칼을 가지고 마음대로 휘두르는 리유는 무엇일가? 이어 “손바닥을 펴보니 / 손가락이 없다 / 눈을 비벼도 하나에서 열까지 / 손가락이 없다”. 인체의 중요한 부위로서 ‘손가락’의 상실은 육체적 불구를 의미한다. 이어서 “혼자 생각하던 담배불이 / 눈을 껌벅이며 / 터지려는 오줌을 참고 있다”라는 시적 표현으로 넘어가는데 그제야 안도의 숨이 나간다. 여기서 담배불은 화자를 가리키고 화자는 잉어를 죽이면서 칼자루에 묻어난 피를 보면서 ‘죽이고 싶은’ 좀더 정확히 말하면 ‘기억에서 내려놓고 싶은’ 누군가를 잊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 더 죽여야 할 시간인데 / 누군가 하나만 더 / 죽여야 할 시간인데”라는 표현은 화자가 죽여야 하는 존재는 아직도 마음속에 하나, 둘 더  존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시의 공포를 자아내는 이미지들은 결코 실재 대상의 재현이 아니다. 시인의 내면세계 속에 존재하는 이미지들이다. 이 시는 의식과 무의식의 층위를 오고가는 시적 특징을 보이기 때문에 다소 난해하고 해괴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한창 시 속에 머물며 서성이게 한다. 또한 행간의 이미지는 어떤 론리에 의해 형상화되는 것이 아니라 시적 화자의 내면세계의 갈등과 모순의 이미지화이다. 이에 시적 표현을 다시 음미해보면 ‘홀랑 죽어버린 사람’은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상대, ‘잘린 손가락’은 자아상실감, ‘더 죽여야 할 누군가’는 상실로 인한 주위 사물들에 대한 귀찮음의 정서로 볼 수 있다. 외부세계를 상실한 상황에서 시인이 보는 것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 곧 자신의 내면세계이다. 전반 시는 화자의 내면세계의 강렬한 충동을 충격적으로 묘사하고 현실적 시공간과 환상이 뒤섞이면서 시적 긴장을 이루고 있다. 

 

4. 고독감-페쇄된 시간과 

공간 속에서 느끼는 환청 

네번째 시 <재수 없는 날이면>이란 시는 “재수 없는 날이면 / 고장난 세탁기가 돌아간다 / 베란다 구석에서 소리치며”라는 전도적 표현으로 시작된다. 세탁기가 고장났으니 재수가 없긴 없다. 고장난 세탁기의 소음 진동소리에 생각하며 그리워하던 누군가의 이름이 씻겨간다. “하얀 기억이 새롭게 표백된다”. 하얗게 희미해진 기억이 더 희미해진다. 기억과 그리움을 차단시키는 고장난 세탁기 소리가 그야말로 재수가 없긴 없다. “너무 오래 가리우고 살아온 / 슴슴한 일상의 냄새에 섞여 / 마지막 남았던 이름마저 / 비뚤어진 배수구로 도망간다”라는 표현은 일상사에 쫓기우고 또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가슴 깊숙한 자리까지 내밀려있던 누군가의 기억이 고장난 세탁기의 소음소리에 단절되였다는 의미이다. 원망과 아쉬움이 내재해있다. 하얗게 무색해진 기억은 화자가 떠올리고저 하는 아름다운 내면풍경이다. 

2련에서 “아주 가끔씩 / 세탁기가 돌아가는 날이면 / 고장난 전화기가 울린다 / 걸어오는 사람도 없이 / 혼자 울린다”라는 시적 표현을 보면 고장난 전화기가 울릴 수 없다. 화자는 환청을 경험한 것이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소음소리에 혹시라도 울릴지 모르는 전화소리를 듣지 못할가 안절부절 못했거나 아니 누군가 전화를 걸어오기를 기다렸다고 말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그러다 환청을 한 것이다. 전화기를 들고 일본어로 “모시모시(여보세요)”라고 인사를 해서야 확실히 잘못 들었음을 확인한다. 화자는 심심풀이를 세탁기를 돌리는 것으로 해소한다. 심심해서 세탁기가 돌아갈 때 환청하는 귀를 두고 ‘고장났다’라는 표현을 쓴다. 누군가를 애써 기억하고 누군가의 목소리를 애타게 기다리는 시간과 페쇄된 공간인 집에서 홀로 느끼는 고독과  외로움의 극치가 아니겠는가?!

 

5.‘부드러운’ 육체를 통한 

자아 및 인간에 대한 성찰 

다섯번째 시 <욕조>를 보자. 욕조는 우리가 하루의 일상을 마치고 따뜻한 물에 몸을 풀면서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기도 하며 알몸으로 들어서는 공간이다. 있는 그대로를 맡기는 공간이다. 가식이 필요없이 투명하게 물과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시의 첫련 “뜨거운 욕조 속에 들어가면 / 아무렇게라도 이야기는 시작되겠지”라는 도입부의 추측적인 표현은 화자가  욕조 속의 ‘어떤 이야기’를 기대하고 있음을 말해주며 동시에 독자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기대할가’라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이어서 2련 “몸의 중심에 달린 그것도 / 흐드러지고 희미해지고 흔들거린다 / 연하고 부드러운 것들은 / 다 녹여 하나로 되더니 / 손가락도 발가락도 거기도 / 길게 비뚤어져 녹을 것처럼 / 흐물거리다가 그대로 있다”라는 표현을 보면 화자는 육체와 물과의 교합 속에서 욕조 속의 알몸을 세심하게 관찰한다. 이 때 몸은 뜨거운 욕망의 그릇이 아니라 자아를 포함한 인간을 성찰하는 시적 대상으로 기능하다. “모든 물상들 다 불러 / 함께 담그고 싶은데”라는 표현은 사람들과 더불어 살고저 하는 화자의 념원을 드러내지만 바로 “단단하고 각이 나서 맞히면 아프다” 라고 하면서 단념한다. 많이 부딪쳐 아픔을 겪은 기억 때문이다.

마지막 련은 돌연적으로 “사람 하나 사랑하기가 이리 어려운데 / 사람 하나 미워하기가 얼마나 힘들가”라는 독백으로 끝을 맺는데 이는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면서 그 속에서 서로 사랑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미워하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라는 인간관계에 대한  성찰에 이르면서 독자들의 공감을 자아낸다. 

경제적 론리에 따라 사고하고 움직이는 현대 인간관계 속에서 사람들은 늘 쉽게 상처를 주거나 받는다.  전반 시의 흐름에는 욕조 속에 놓인 녹아든 ‘부드러운’ 몸에 대한 응시를 통해 더불어 살고저 하는 시인의 무의식적 사고가 내재해있다. 

 

6.혐오감-

현대문명과 인간에 대한 비판

마지막 시 <银座四丁目>를 읽어보도록 하자. 긴자 욘쵸메는 일본 제일 번화한 쇼핑가로 고급 매장과 백화점이 자리잡고 있으며 고급 유흥업소들도 많다고 한다. 세련되고 아담한 상점과 레스토랑 등이 즐비하고 찬란한 네온사인이 인상적인 곳, 현대 문명을 자랑하는 도꾜의 상징적 거리이기도 하다. 

허나 이 시의 도입부에서는 일본의 현대문명과 부를 대표하는 가장 번화한 거리를 “银座四丁目 / 오줌싸개들의 거리”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비하한다. 오줌은 인체의 배설물로서 오줌싸개는 아무데서나 배설하는 추태를 보이는 행위를 말한다. 즉 추잡한 인간상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2련에서의 “고귀한 것들이 / 다 모여 / 오줌을 싸는 거리”라는 표현은  ‘고귀’한 존재에 대한 반어적 비판과 조롱이다.

3련과 4련은 전도적 표현수법으로 되여있다. “숫구멍이 두개 달려 / 조금은 부실해보이는 / 착한 내 령혼을 / 유쾌히 짓밟으며 / 이쁜 종아리들이 지나가고 / 가랭이를 적시며 / 바람난 고양이도 지나가고”라는 표현은 긴자 욘쵸메에서 목격한 장면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쁜 종아리들”은 이쁜 녀성을 말하고 떠돌이 고양이를  ‘바람났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긴자 욘쵸메의 주류 풍경과는 어울리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조금은 부실해보이는’ ‘모자라는’ 존재로 자조한다. 

5련에서의 “미쳐버리도록 아릿다운 / 아래도리들의 정서를 만지작거리며”라는 표현은 인간의 원초적인 욕구나 욕망들을 말하는 것으로서 번화가에서 다들 점잖게 오가지만 내면엔 성적인 원초욕망이 우글거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밤은 이미 / 꽃의 변두리까지 오고 있다”라는 표현은 옥타비오 파스가  “섹스가 뿌리라면 에오티시즘은 줄기이고 사랑은 꽃”이라고 한 비유적 이미지와 맞물리는 시적 표현이라 생각된다. 인간의 원초적 욕망으로서의 성욕은 우리 삶의 아름다움이기도 하고 온갖 추한 악의 근원이기도 하다. 

6련과 7련의 “가랭이를 벌리면 / 시간이 털처럼 일어서는 / 銀座四丁目 / 아릿다운 것들이 / 다 모여 / 오줌을 싸는 거리”라는 표현은 소위 신사와 갑부들의 버젓한 외모와  대조되는 그들의 추태를 대조적으로 비판하고 조롱하면서  ‘아름다움과 고귀한 것’에 대한 사색을 독자들에게 던진다. 

이상 남철심 시인의 <고요한 밤(외5수)>를 읽으면서 가끔은 시인의 상상의 날개를 따라 자유롭게 노닐다가도 난해한 시적 표현에 이르러서는 한참 동안 시 속에 머물면서 머뭇거리게 된다. 또한  그 머뭇거림 때문에 읽을 재미가 더해지고 탐정미를 느낄 수 있었으며 시인의 진실한 령혼의 시세계를 만끽해 볼 수 있었다. 

출처:<장백산>2018 제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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