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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문단의 인물전기 창작열에 대한 진맥
2013년 09월 26일 09시 15분  조회:3241  추천:10  작성자: 김혁

 
 
. 대 담 .
 
조선족문단의 인물전기창작열에 대한 진맥
 (1)

 

연변인민방송국 “문학살롱”
사회자: 신금철
게스트: 김혁 (소설가, 연변작가협회 소설창작위원회 주임, 인물전기 “한락연”, “주덕해”의 저자)
 
첫 방송  2013.  08. 28   16:00FM
재방송   2013.  08. 29   08:00AM
재방송   2013.  08. 29   23:20AM


 
 
 
 

신금철:
  최근 몇 년 사이에 중국조선족문단에서는 인물전기창작열이 한창 일고 있습니다. 저희 문학살롱에서 이미 소개드린 “한락연전”, “정률성평전”외에도 “주덕해평전”, “양림평전”을 비롯하여 많은 인물전기들이 창작되였고 또 지금 많은 작가들이 인물전기창작 기획을 세우고 자료를 수집하고 답사하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인물전기창작은 중국조선족문단의 새로운 사조라고도 할수 있습니다.
  오늘부터 저희 문학살롱에서는 중국조선족문단의 중견소설가이며 연변작가협회 소설창작위원회 주임이신 김혁선생님을 모시고 조선족문단의 인물전기열풍에 대해 진맥해보려 합니다. 인사. 조선족위인들의 인물평전창작, 아마도 요사이 우리문단의 신선한 기류가 아닌가 생각하는데요.
 
김혁:
요즘 우리문단과 출판계의 이슈를 뽑으라면 아마 인물전기창작 열풍일것입니다. 인물전기라는 독특한 매력을 가진 쟝르를 조선족 작가들도 뒤늦게 주목하기 시작했고 따라서 우리문단에서는 근년들어 인물전기서의 창작과 출품이 마치 "봇물”이 터진듯 합니다.
 
신금철:
중국조선족문단 일반을 아울러보면 지금 어떤 작품들이 나왔는지 소개주시지요.
 
김혁:
  그 몇부를 살펴보면 우선 연변대학 김호웅 교수와 김학철옹의 자제분인 김해양의 공저로 된 "김학철 평전”이 중후한 모습으로 나왔습니다.
평전은 김학철옹의 문체를 그대로 닮았습니다. 조선족문학의 거목이며 비운의 작가인 김학철옹의 삶이 때론 유머러스하게, 때론 비장하게 손에 잡힐듯 그려져 있습니다. 책은 한국의 최대 포털 사이트인 네이버에 의해 "오늘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연변조선족자치주 초창기지도자의 한분인 "조룡호 전기” (안룡정 저)도 나왔습니다. 전기는 자치주 주장직을 력임했던 조룡호의 항미원조시기로부터 자치주창립, 문화대혁명, 개혁개방시기에 이르기까지의 파란 많은 려정을 비교적 완정하게 기록하여 연변조선족자치주 발전력사를 료해하고 연구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사료적 가치가 있습니다는 평판을 받고있습니다.
       장편인물전기 "중한우호의 전기인물 한성호”(김수영 저)도 출간되였습니다. 40만자에 달하는 작품은 중한수교의 물꼬를 트는데 기여한 한 애국화교의 노력을 진실하고도 감동적으로 기록했습니다.
       연변대학 전 총장 림민호 평전도 발간됐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 모두 형제여라”(김호웅 저)라는 부제가 붙은 평전에서는 연변대학교 창시자의 한 사람으로 대학발전의 기틀을 마련한 한 교육자의 삶이 파노라마로 펼쳐집니다.
이 평전은 지난해 소수민족 준마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지녔지요.
       자치주 부주장을 지냈던 최채에 대한 인물전기 "불멸의 영령”(고 류연산 저)도 조한문으로 출간되였습니다.
       오장숙평전 "내를 건너 고개 넘어”도 북경민족출판사에 의해 출간되였습니다. 역시 고 류연산 작가에 의해 집필된 "내를 건너 고개 넘어”는 풍부한 사료로 전면적이고 객관적으로 새중국이 배양한 우수한 조선족간부 오장숙의 일생 사업, 학습과 생활을 기록해 냈다. 평전은 중국조선족의 발전과 연변 여러 민족인민의 단결진보사업력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가치를 갖고 있다고 정계와 학계의 정평을 받고있습니다.
       “아시아 주단왕”으로 불리는 광주모드모아그룹 리성일회장의 일대기를 엮은 인물전기 ”꿈의 마라토너”도 일전 출간되였습니다.
전기는 연변의 오지에서 태여난 한 조선족 기업가가 전국정협위원 그리고 아시아 주단왕으로 부상하기까지 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엮어보이고있습니다. 원 전국정협 부주석 조남기는 "파란만장한 인생려정에서 성공의 신화를 엮은 리성일은 꿈과 야망을 지닌 젊은이들한테 귀감이 될만한 사람이다”라며 책을 독자들에게 권장했습니다.
       다음 독립운동가 가문에서 태여나 30년대 상해를 무대로 맹아상태의 중국영화계를 주도하며 "영화황제"로 등극한  김염의 예술생애를 그린 인물전기 "영화황제 김염"(김창석)도 출판됐습니다.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초대주장인 주덕해의 일대기를 다룬 “주덕해평전”도 지난해 연변조선족자치주창립 60주년을 계기로 출판되였습니다. 연변작가협회 최국철부주석에 의해 창작되였지요.
       중국인민해방군 군가의 작곡자이자 조선인민군 군가 작곡가이며 섭이, 선성해와 더불어 중국 3대 음악가로 지칭되는 "정률성 평전”도 리혜선 소설가에 의해 집필, "장백산지"에 지금 한창 련재중입니다.
리혜선 소설가는 "우선 중국에서도 위인이지만 조선족으로 놓고 볼때에도 크나큰 자랑이고 존경하는 위인이기에 민족작가로서의 사명감으로 집필에 착수하게 되였습니다”고 창작동기를 밝혔습니다. 평전은 처음으로 중국작가협회 중점 지지작품으로 선정되여 이슈를 일으켰지요.
       다음 조선인으로서 홍군의 2만5천리 장정길에 오른 양림의 려정을 쓴 "양림평전"도 리광인씨에 의해 창작, 출간되였습니다. 이 작품 역시 중국작가협회 중점지지작품으로 선정되였습니다.
       그리고 룡정이 낳은 걸출한 조선족 정치활동가이며 인민예술가로서 "중국의 피카소"로 불리는 한락연에 대한 인물전기도 제가 집필해 연변일보 "종합신문"에 8개월여에 거쳐 련재를 끝냈습니다.
 
신금철:
  이런 인물전기의 출판은 독자층에서 어떤 반향을 일으키고 있습니까? 그리고 또 이런 인물전기들을 어떻게 분류할수 있을가요?
 
김혁:
  대량 산출되고있는 인물전기는 점차 새로운 독자군을 형성하고 있고 그 력사와 인물에 대한 진실한 기록으로 독자와 문단의 공명을 자아내고있습니다. 픽션(허구)작품을 압도하는 기세로 논픽션(비허구)쟝르의 붐을 일으키고 있는거지요.
       그러면 우선 인물전기라는 쟝르에 대해 알아보기로 합시다. 사실 인물전기문학은 여러가지 종류로 분류 할수 있습니다.
  • 전기물: 전기물은 어느 실존 인물의 생애를 동시대 또는 후세 사람이 기록한것입니다.
  례를 들어 "중국근대문학의 아버지"인 로신의 생애에 관한 전기물입니다. 로신에 대해서는 많은 작가와 학자들이 조명해왔습니다. 그중에는 그를 가까이에서 지켜봤던 주위의 문인, 학자들이 쓴 경우도 있고 로신이 작고한뒤 그 분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이 여러가지 자료를 조사하여 쓴 경우도 있습니다.
  • 자서전: 실존 인물이 스스로 자기 자신의 생애를 기록한것입니다.
  례를 들면 저명한 사학가이자 문학가인 곽말약의 자서전이 있습니다.
사천성에서 태여나 5.4운동의 영향을 받아 문학창작을 시작, 문학도로부터 갑골문에 대한 연구로 유명석학으로 발돋움하기 까지 자신의 생애를 자서전으로 출간하였다. 그 자서전의 수량은 방대하여 "북벌", "홍파곡" 등 9권이나 된다.
유명한 자서전으로는 인도의 "성웅" 간디의 자서전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2001년 서안에서 1937년판 "모택동자서전"이 발견되여 재판되기도 했습니다.  
  흥미로운 자서전으로는 중국의 마지막 황제인 부의의 "나의 전반생"이 있습니다.
요즘 서점가에서 가장 인기있는 자서전은 한국의 첫 녀대통령 박근혜의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绝望锻炼了我)"이다. 역림출판사에 의해 중문으로 번역, 출간되였습니다. 자서전은 한국 수뇌의 딸로 태여나 젊은 나이에 부모를 련이어 잃고 혼자의 힘으로 자신의 길을 걸어오기까지의 이야기를 담담하고 소박한 필치로 들려주면서 그녀를 버티게 한 신념과 희망에 대한 메시지를 자서전의 갈피갈피에서 건넵니다. 박근혜 대통령 개인의 인생 전반은 물론 한국 현대사가 담겨져 있지요.
  • 회고록: 과거의 일을 그 관계자가 회상하여 집필한 기록이다. 기록한 사람의 생애를 중심으로 한 자서전적인 기록과 자신이 지켜본 력사적인 사건을 중심으로 한 기록이 있습니다.
  중국현대문학의 거장 파금의 "수상록"이 그 일례입니다. 비록 수필형식으로 씌여졌지만 회고록의 모든 요소를 구비하고 있는 이 "수상록"에서 파금은 문화혁명에서 피부로 겪은 피해를 회고해 보는가 하면 자기 문학인생에 대한 총결산, 그리고 문학 동지들에 대한 회고 등을 풀어놓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회고록으로는 영국수상 처칠의 전 12권으로 된 전쟁회고록 (제2차 세계대전)이 있습니다.
  • 평전: 평전은 말 그대로 비평을 곁들인 전기입니다. 전기물에 글쓴이의 평가가 담긴 기록이지요.
  요즘들어 중국의 출판계에서 가장 많은 판본으로 나온 평전중 하나가 "공자 평전"입니다. 연변의 서점가를 살펴봐도 문화석학인 림어당이 쓴 공자로부터 중앙텔레비죤 백가강단의 저명한 강사 포붕산(鲍鹏山)교수의 공자, 그리고 일본의 유명한 작가 이노우에 야스시(井上靖)가 쓴 공자 등으로 10여권은 실히 되게 서점가에 올라 있습니다. 력사적으로 유교는 중국 나아가 동아시아 국가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기에 유교의 창시자이자 아이콘인 공자에 대해 다가가려는 독자들의 구독열은 그냥 식지 않고 있다고 보아집니다.
  • 렬전: 비슷한 일이나 업적을 남긴 사람의 개별적인 전기를 함께 모아 적은 것입니다.
  례를 들면 사마천의 "사기"와 같은 것입니다. 상고시대로부터 사마천이 살았던 한무제 때까지의 제왕과 제후를 위해 일했던 인물들의 전기를 주로 수록하고 있습니다.
 
신금철:
  김혁선생님 역시 인물전기를 창작하면서 인물전기도 많이 읽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중에서 조선족대중들과 비교적 접근한 작품들을 꼽아본다면요?
 
김혁:
  인물전기에 관한 리해를 돕기 위하여 우수한 인물전기 몇편을 소개할가 합니다. 우선 우리 민족의 력사와 직결된 평전 몇부를 나름 뽑아 보았습니다.
       우선 님웰즈의 "아리랑"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미국 녀기자 님 웨일즈가 지난세기 30년대에 기록한 조선인 혁명가 김산의 일대기로 많이 읽혀진 인물전입니다.
1920∼1930년대라는 정치적 격동기를 살다 간 혁명가 김산의 고뇌, 좌절, 사랑, 열정, 사상의 발자취를 아름다운 문체로 고스란히 담아냈습니다. 항일전쟁의 열화가 중국전역에 파급되였던 1937년 6월, 중국 혁명의 성지 연안의 초라한 방에서 손에 경련이 일도록 김산의 구술을 적어내려가면서 내심 감복과 찬탄을 금할수 없었던 그녀는 그후 인물전기문학의 진수로 오래동안 읽혀 내려온 "아리랑"을 집필해 냅니다.  
  김산의 원명은 장지락(張志樂)으로서 1905년 3월 10일 조선 평안북도 룡천군(龍川郡) 하장동(河張洞)의 한 자작농의 셋째 아들로 태여납니다.
  1919년 일본 도꾜 제국대학에 가 고학을 하면서 맑스레닌주의를 접하게 되고 "인간해방의 비책"을 배우고저 시베리아를 향해 북상하게 됩니다. 그 길에 그는 중국의 신흥무관학교에서 군사학을 배우고 상해를 거쳐 북경 협화의과대학에 가 공부를 하기도 합니다. 거기서 중국공산당창시자들인 리대소 등의 영향으로 조기공산당간행물 "혁명"잡지를 발간하면서 맑스주의를 접하게 되지요. 이 시절 중국공산당에 가입합니다.
  1927년 조선혁명가들과 함께 국제주의기치를 들고 광주무장봉기에 동참합니다. 허나 봉기는 실패하여 200여명 조선인혁명가들도 목숨을 바칩니다. 퇴각해가면서 김산은 전우들의 의지를 북돋우고저 아름답고 슬픈 노래 "아리랑"을 불렀다고 합니다.   
1929년 5월부터 김산은 북경에서 본격적인 지하투쟁을 전개하면서 북경대학을 중심으로 여러 대학의 학생운동을 지도하고 중국공산당 북평시당위원회 조직부장사업을 맡게 됩니다. 이시기 그는 저술활동도 활발하게 벌려 일본학자 사노가꾸의 "무신론"을 중문으로 번역, 발표하는가 하면 조선의렬단 대원의 의거를 소설화한 작품 "기이한 무기"를 출판하였고 한시 "동지들이여 싸우자" 등을 발표하여 적들과 굴함없이 싸우려는 공산주의자의 강인한 의지를 보여줍니다. 그 외에도 "포이에르바하, 레닌, 맑스의 인생관"번역본의 서언을 쓰면서 맑스주의철학을 터득하고 공산주의실현에 대한 굳은 신념을 다졌습니다.
  1930년말 그는 국민당에 체포되였고 일본령사관에 넘겨져 갖은 혹형을 받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신분과 조직관계를 절대 밝히지 않았지요.
  1932년초 김산은 가혹한 고문에 페결핵에 걸려 신음하면서도 북경으로 다그쳐 돌아옵니다. 그는 리대소가 꾸린 사범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학생들에게 진보적인 력사관을 전수하면서 당조직을 도와 학생운동을 이끕니다.
1933년 불행하게도 또다시 체포되여 천진 일본령사관으로 넘겨집니다. 다시한번 비인간적인 혹형을 받지만 김산은 강인한 의지력으로 적들과 싸웠습니다.
  1934년 만기석방되여 또다시 북경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김산은 당조직의 외면을 받기 시작합니다. 1936년 8월 김산은 상해에서 조선민족해방동맹의 파견을 받고 천신만고를 겪으며 중화쏘베트지구로 갑니다. 이듬해 1월, 연안에 이른 그는 중앙군사위원회의 초청으로 연안항일군정대학에서 일본경제와 화학, 물리 등 학과를 강의합니다. 하지만 당시 섬감녕변구 보안처로부터 일본간첩으로 의심받고있는중이였습니다. 그러던 1938년 10월경, 그는 비밀리에 처형되고 맙니다. 그때 나이가 겨우 33세였습니다.
백색테로에서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항쟁을 밀고나아갔던 김산, 그는 실패와 좌절을 거듭하면서도 피압박자들의 승리를 확신한 공산주의자였습니다. 김산의 아들 고영광은 어른이 되어서야 자신은 조선족이라는것을 알게 되였습니다고한다. 그는 님 웨일즈의 "아리랑"에 소개된 아버지의 력사를 알게 되면서 중앙에 아버지에 대한 잘못된 판정을 시정해줄것을 바라는 편지를 띄워 봅니다. 1983년 1월, 중앙조직부에서는 몇년간의 조사를 거쳐 김산에 대한 "그릇된 판결을 취소하고 그의 당적을 회복할데 관한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결정에서는 김산의 "죽음은 특정한 력사시기에 발생한 하나의 억울한 사건이므로 반드시 시정해야 한다", "그는 당에 충성하였고 우리 나라 인민의 혁명사업에 기여하였다"고 평가를 내렸습니다.
       민족의 독립 그리고 공산주의의 실현과 이념에 대한 굳은 신념으로 산화해 간 한 혁명가에 대해 만강의 열정으로 그려낸 "아리랑"의 저자 님웰즈는 본명은 헬렌 포스터 스노입니다. 신문기자이자 시인이였던 그는 오랜 기간을 격변하는 아시아에서 보내면서 님 웨일즈라는 필명으로 중국과 한국에 관하여 많은 글을 집필하였는데요 그녀는 다름 아닌 중국홍군에 대한 저서 "중국의 붉은 별"로 유명한 에드가 스노의 부인이기도 합니다. 스노와 결혼한후 남편과 함께 1930∼40년대 중국을 누비며 중국혁명가들의 실상을 세상에 알렸고 이 업적을 인정받아 노벨평화상 후보에 두 번 오르기도 했습니다.
 
신금철:
  김산의 인생려정을 상세히 기록하여 훗날 김산의 명예회복을 위해 큰 기여를 했던 님.웨일즈의 “아리랑”이였습니다. 다음은 어떤 작품들이 있는지요?
 
김혁:
  송우혜의 "윤동주 평전"을 꼽고 싶습니다.
  윤동주의 생애 읽기는 이미 많은 사람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시도되여 독자들과 만났습니다. 한국에서만도 그의 시세계에 대한 연구로 박사, 석사학위를 받은 이가 무려 50여명이라 합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송우혜의 "윤동주 평전”이 압권중의 압권이요, 경전중의 경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윤동주에 대해서는 우리의 독자들이 너무나도 익히 알고있기에 그의 생애에 대한 소개는 여기서 략하기로 합니다.
 
신금철:
  송우혜의 “윤동주평전”을 압권중의 압권, 경전중의 경전이라고 하는 리유는 뭔지요?
 
김혁:
  우선 창작자에 대해 알아봅시다.
  작자 송우혜는 1947년 서울에서 출생. 한신대 신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이화여대 대학원 사학과에서 한국사를 전공,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마쳤습니다. 198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였구요. 작품으로는 소설집 "눈이 큰 씨름꾼 이야기", 장편소설 "남도행", "산문집 "서투른 자가 쏘는 활이 무섭다" 등이 있고 또 그를 중국조선족문단에도 널리 알린 "윤동주 평전"이 있습니다.
각종 언론매체에서 예리하게 시사문제를 논하는 칼럼니스트로서도 이름이 높으며 한국사 관련 론고와 학술론문으로는 "청산리전투와 홍범도 장군", "북간도 대한국민회의 조직형태에 관한 연구" 등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력사학에 천착하면서도 원체 소설가라 뛰여난 작가적 감수성으로 송우혜는 10여년을 갈고 닦은 끝에 윤동주 생애에 대해 황홀하게 복원해 내였습니다.
친지와 친우들의 증언들을 토대로 하고 빈틈없는 현장답사와 풍부한 자료를 섭렵했는데요 룡정광명중학의 학적부, 일경의 극비취조문서, 판결문 등을 비롯한 각종 자료들을 동원하고 그에 대한 집요한 추적과 분석을 가했습니다. 그저 단순한 책상물림의 상상력 연 띄우기 방식이 아니라 치밀한 작업으로 실존적 고뇌와 준엄한 륜리적 태도를 지니고있는 한 고절한 시인의 마음의 행보를 샅샅이 더듬으면서 그 생생한 숨소리까지 평전은 들려주고있습니다. 평전을 읽노라면 겨레가 애대하는 시인 윤동주의 삶과 문학의 려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그 외에도 평전을 통해 그 시대를 올곧게 살아내려고 애썼던 이들의 삶의 궤적을 우리는 만날수 있습니다. 민족을 위해 혼신을 던지면서 윤동주라는 고고한 별이 창공에 빛나기까지 깊은 영향을 주었던 스승, 친지, 친구, 은사, 문호들인 김약연, 송몽규, 명의조, 최현배, 문익환, 정병욱 등 주변 인물들의 다채로운 삶의 자취, 윤동주라는 별자리 주위에 모여 함께 빛을 내는 다른 별들의 공전과 밝음에 대해서도 더불어 료해할수가 있습니다.
윤동주의 고향사람인 우리도 미처 몰랐던 연변지역의 당시 시대상과 풍토가 평전의 초반에 오렷이 그려집니다. 사건들을 추적하여 그 력사를 따라가면서도 다시 시의 궤적을 따라 시를 통해 력사를 읽고 인물의 생애를 다시 읽는 기법을 쓰고 있어서 문학인으로서는 인물전기외에도 시집, 작품론평을 읽는것처럼 "일석다조”의 감흥으로 읽혔습니다. 작가는 시인의 생의 순간순간에 현미경을 들이댔는데 대상에 대한 장악력으로 그 일거수 일투족을 묘사하는 치밀성에 엄지를 빼들지 않을수 없게 합니다. 과시 "윤동주라는 인물연구의 결정체요, 평전문학의 진수”라는 평단과 독자들의 찬사처럼 인물전기의 진수를 보여준 평전이였습니다.
"윤동주평전”은 우리의 전기문학장르를 꿈꾸는 작가들에게는 범문이요, 독자들에게는 애장서격이라고 말해도 지나침이 없을것입니다.
 
신금철:
  “아리랑”, “윤동주평전”외에 또 김혁작가님이 권장하고싶은 인물평전은요?
 
김혁:
  박계원의 "중국영화황제 김염"도 참말로 읽어 볼만합니다.
중국 영화계에서 "영화황제”로 파란많은 일생을 보낸 김염의 예술인생을 조명하고 있는 평전은 상해문예출판사에 의해 중문으로 번역출판되여 지난 2012년 6월, 상해시작가협회에서 출간소식공개회를 가졌습니다.
아시아 영화권에서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린 곳은 향항, 북경, 대만입니다. 그러나 이곳의 영화는 모두 그 뿌리를 1930년대의 상해영화에 두고있습니다. 1930년대의 상해는 중국 영화사상 최고의 황금기를 구가하며 "동양의 할리우드”로 불렸습니다. 바로 그 당시 상해 영화계에 혜성같이 나타나 약관의 나이에 "영화황제”로 등극한 한 조선인 청년이 있었는데 바로 김염입니다.
  김염(金焰)은 본명이 김덕린으로서 1910년 4월 7일 서울의 명문 의사집안에서 태여났습니다. 독립운동자금을 조달했던 아버지 김필순은 중국으로 망명했고 이어 일본인에게 독살 당했습니다.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어린 김염은 고모의 집에 의탁되였습니다. 고학으로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도 운동과 예술 분야에서 감출수없는 끼를 보였던 김염은 1927년 열일곱살때 친구들이 마련해준 차비 7원을 갖고 상해로 향했습니다.
  당시 세계에서 뉴욕과 시카고 다음으로 가장 번화한 금융 도시이자 무역 중심지였던 상해에서 무일푼으로 비참한 생활을 영위하던 김염은 1929년 손유 감독의 과감한 기용으로 드디여 꿈을 펼치게 되였습니다. 손유감독은 햇내기의 그를 무성영화 "풍류검객”에 주연으로 내세웠다. 영화속에서 펼치는 그의 개성적 연기, 준수한 외모와 건강미, 지성미는 당시 고정적인 매너리즘(틀)에 빠져있던 중국 영화계에 일대 충격을 안겨주며 새로운 영화스타의 탄생을 예고했습니다. 
  그후로 김염은 "일전매'(1931년) "도화읍혈기'(1932년) "모성지광'(1933년) 등에 주연으로 발탁된다. 내용은 대부분 중국 봉건시대의 계급을 뛰어넘는 사랑 이야기로 그의 뛰여난 연기력과 용모를 연거번거 확인해 주었지요.
1932년 그는 서생과 건달의 경계를 넘나드는 인물을 그려낸 영화 "야초한화(野草闲花)"로 스타덤에 올르게 됩니다. 당시의 유명 녀배우 왕인미와 결혼했습니다. 왕인미는 영화 "어강곡(渔光曲)"에 출연, 이 영화는 중국영화사상 처음으로 외국에서 영예상을 수상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후 김염은 손유감독과 손잡고 대표적 항일영화경전인 "대로(大路1934년)"를 제작했고 역시 항일영화 "장공만리' 등에 출연하는 등 예술인으로서 반일활동에 적극 가담했습니다. 항일 영화인 "장지릉운'(1936년)은 일본이 향항을 점령했을때 가장 먼저 필림을 찾아 없애버린 영화였습니다. 그는 "9.18사변"이 발발하자 자신의 싸인을 담은 브로마이드(肖像)를 판매해 항일 자금을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출연작마다 대성공을 거둔 김염은 중국 전역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영화 황제”로 뽑혔고, 중국 영화계에서 유일한 이 계관을 쓴 사람으로 그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중일전쟁이 터지자 일본이 제안한 출연요구를 거절하고 향항으로 피신했고 1947년 녀배우 진이(秦怡)와 재혼했습니다. 진이는 중국영화계의 유명한 원로 녀배우로서 "녀자롱구선수 5번" 등 경전영화에 출연했습니다.
  1962년 은퇴할때까지 30여년간 총 40여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김염은 중국 영화사에 커다란 궤적을 남겼습니다. 새중국이 성립된후 김염은 상해 영화제작소 부주임, 상해시 인민대표대회 대표, 중국영화작가협회 리사 등으로 활발히 활동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생활은 여느 거장의 운명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리혼의 아픔에다 재혼한 진이와의 사이에 태여난 아들이 정신질환을 앓게되는 불행을 겪었으며 문화대혁명때는 농촌으로 하방되고 안해와 함께 수용소에 갖히는 비운을 경험했습니다. 장기간의 고역에서 얻은 폐기종 등의 합병증으로 투병생활을 하던 김염은 1983년 12월 27일 73세로 상해에서 타계합니다. 현재 상해시내 용화렬사릉원 기념관에 그의 유골이 안치되여 있고 북경영화박물관에 기념공간이 따로 마련돼 있습니다.
 
신금철:
  김염의 일대기를 인물전기로 펴낸 작가는 어떤 분인지요?
 
김혁:
  중국의 유일한 영화황제 김염에 대해 다룬 저자 박규원은 1954년 서울 출생으로서 경기녀고와 리화녀자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했습니다.
  "김염 평전"에는 "-외할아버지를 찾아서"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저자 박규원은 우연한 기회에 중국의 "영화황제” 김염이 자신의 작은 외할아버지라는것을 알게 되였고 화려한 삶뒤에 불행한 력사와 운명을 함께할 수밖에 없었던 김염의 정신적 고뇌에 매력을 느끼고 그의 자취를 따라 10년 동안 취재를 했습니다.
  집필 과정에서 저자는 직접 중국어를 배우고 자료를 번역하는 등 무리하게 정진하던 저자는 건강이 나빠져서 큰 수술을 받았고 시력감퇴 및 합병증으로 고생했습니다. 그러나 한 예술가의 삶을 재현하는 작업을 중단할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힘든 노력으로 얻은 결실이 바로 이 "외할아버지를 찾아서”입니다.
  이 전기물은 일찍 2003년 한국 "올해의 논픽션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전기는 세심한 자료조사와 친족들과의 인터뷰, 치밀한 현장답사를 통해 전기물이 가질수 있는 미덕을 잘 보여 주면서 중국 "영화 황제” 김염에 대한 복원과 더불어 "력사와 개인의 운명”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함께 탐색하고 있습니다.
 
신금철:
  네, 오늘 문학살롱에서는 김혁소설가의 소개를 통하여 인물전기의 분류와 조선족대중들이 인상적으로 알고 있던 김산, 윤동주와 김염 등 위인들에 대해 알아보았고 또 그분들의 일대기를 인물전기로 펴낸 작가들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중국조선족문단의 인물전기창작시리즈, 다음주에 계속 이어집니다.
  이 시간 프로편집에 남철이였습니다..



조선족문단의 인물전기 창작열에 대한 진맥 (2)

 

연변인민방송국 “문학살롱”
편집: 남철
사회자: 신금철
게스트: 김혁 (소설가, 연변작가협회 소설창작위원회 주임, 인물전기 “한락연”, “주덕해”의 저자)
 
첫 방송  2013.  09. 11   16:00FM
재방송   2013.  09. 12   08:00AM
재방송   2013.  09. 12   23:20AM
 
: 안녕하십니까? 문학살롱 신금철. 지난 시간까지 세기에 걸쳐 저희들은 연변작가협회 소설창작위원회 주임인 김혁선생님을 모시고 우리 문단의 인물전기창작에 대해 조명해보았습니다.
오늘은 이 시리즈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지난 두 번에 걸쳐 우리는 인물전기창작개황과 우리 문단에서 인물전기창작의 선두주자라고 할수 있는 류연산작가의 인물전기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럼오늘 소개할 내용은요?
 
: 전번기에 우리민족의 력사와 직결된 해외작가들의 우수한 전기문학작품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면 이번 회는 중국조선족작가들이 근년래 창작한 우수한 작품 몇부를 추려 소개할가 합니다.
 
: 구체적으로 어떤 작품들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 맨처음으로 김호웅, 김해양의 "김학철 평전"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중국조선족문단에서 인물전기문학이 아직 걸음마를 타고 있다고 해야 할 현시점에서 볼때 이 평전은 그야말로 평전문학의 강점들을 두루 갖춘 훌륭한 평전이 아닌가 싶습니다.
김호웅, 김해양의 공저로 된 "김학철 평전"은 2007년 한국 실천문학사에 의해 출간되였습니다.
 
: 김학철선생은 우리 문단에서 아주 익숙히 알고 있는 분이지요?
 
: 네, 한번 그이의 파란많은 일대기에 대해 다시한번 더듬어 보기로 합시다.
1916년 식민지 조선 함경남도 원산에서 누룩제조업자의 아들로 태여난 김학철은 18세 때 민족독립을 위해 한몸 바치겠다며 교복을 입은 채 무작정 중국행 기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상해에서 반일 테러활동에 가담했으며 중국 황포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조선의용대 대원으로 활약하다 1941년 일제와의 호가장전투에서 한 쪽 다리를 잃고 일본군에 체포돼 4년간 나가사키 형무소에 복역하고 풀려났습니다. 일제와의 사투에서 한쪽 다리를 잃은 뒤에도 김학철은 문학이라는 또 다른 수단으로 잊혀진 민족사를 묘파하고 복원하는 데 평생을 바쳤습니다. 그의 투쟁의 붓자루는 민중을 억압하는 모든 정치 기제와 독재를 향해 삿대질했기에 그의 문학적 인생이 가지는 의의는 더더욱 의미심장하다고 해야할겁니다. 지난 동란시기, 우상화에 대해 반대한 소설을 쓴 연고로 김학철은 10년간 옥고를 치르는 등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습니다.
       2001년 현대사의 질곡을 외다리로 넘어 온 몸이 더는 가망이 없습니다는 걸 확인한 85살의 로작가는 "사회의 부담을 덜기 위해, 가족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더는 연연하지 않고 깨끗이 떠나간다”는 유서를 써놓고 21일간 단식 끝에 세상을 떴습니다. 유언에 따라 그의 유골은 우편함에 담아 두만강을 타고 동해로 보내졌습니다.
김학철은 그 어디에서도 보기드문 반골기질의 소유자였습니다. 평생 중국의 대문호 로신을 사표로 삼아 자신을 엄격히 규제한 그는 자유와 정의를 위한 길에서 불의와 한치도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탄압, 망명, 옥살이 등 어려운 현실로 인해 글쓰기가 쉽지 않았지만 죽는날까지 붓을 놓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경험했던 시대와 너무도 많은 경험을 토대로 간결하면서도 맛깔스러운 문체로 격동적인 시대와 그 도가니속 삶들을 파노라마처럼 펼쳐냈지요.
평론가들은 김학철의 작품은 1990년대 랭전붕괴 이후 그때까지 "좌익금기"에 속박당했던 한국의 문학지형을 흔들고 현대사를 다시 쓰게 만들었습니다고 높이 평가합니다.
한국의 평론가 김윤식 교수는 "조선의용군이 언제, 어떤 리유로 중국태항산까지 넘어가게 되였는가를 증언하는 기록은 김학철의 것이 유일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학철은 그 자체가 력사요, 기구한 한·중·일 현대사의 광대한 미발굴 지층탐사의 한 리정표라는것이지요.
청화대학 왕혜 교수는 "식민주의와 자본주의에 어떻게 유효하게 저항하고 그것들을 바꿔나갈 것인가” 하는 아시아 근대의 역사적 과제를 풀고 새로운 아시아를 상상하는 데 김학철 문학이 긴요한 역할을 할수 있습니다고 평했습니다. 평전은 조선의용대 마지막 분대장으로 항일투쟁의 마지막 증인이자 민족과 국경을 넘나드는 민족 문학가로서의 김학철의 전모를 보여주고있습니다. 작가들은 고인이 남긴 자서전과 잡문, 기존 연구서들을 엮어 그의 인생과 문학, 철학 등을 새롭게 조명했습니다. 김학철이라는 인물의 영웅적 면모에서부터 지인들과의 관계, 가족과 일상생활 그리고 방대한 문학세계를 세세하게 그렸다. 국제주의자로서의 세계 인식, 죽음에 대한 초탈한 자세 등 그의 초인간적인 모습을 생생히 담아냈습니다.
오래동안 김학철에 대해 연구해온 연변대의 유명교수 김호웅과 김학철의 혈육인 외아들 김해양이 함께 집필했기에 리론적인 면과 생활적인 면에서의 깊이와 넓이를 기할수 있었습니다.
 
: 김학철선생은 자신의 삶 자체가 력사요, 교과서일뿐만아니라 소설과 잡문을 포함한 많은 작품도 우리 문단에는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존재하지 않을까요?
 
김: 연변대학 김관웅교수는 이 평전에 대해 이렇게 평했습니다.
"경전적인 전기문학으로 되자면 반드시 전주(傳主)의 경력이나 인격 및 그 성취가 빼여날 뿐만 아니라 커다란 사회력사적인 인식가치가 있어야만 합니다. 개혁개방후의 중국조선족의 전기문학에서《진실성, 문학성, 지식성, 가독성(可讀性)》을 겸비한 외에도 사회력사적인 인식가치가 가장 풍부한 전기문학의 경전은 단연 김학철선생의 《항일독립군 최후의 분대장 김학철 자서전》입니다. 그러나 김학철선생의 《항일독립군 최후의 분대장 김학철 자서전》은 필경은 자서전이며, 본인의 자서전과는 다른 방관자가 쓴 《김학철평전》이 이를 받쳐주어야만 합니다. 바로 이런 독서계의 수요를 감안하여 나온 것이 바로 김호웅, 김해양 공저로 된 《김학철평전》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아주 적시적이고 아주 필요한 책입니다… 김학철의 문학정신을 담론하는 것은 한낱 재미로나 행세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실천에 옮기고 우리중국조선족의 삶을 개조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이제 김학철정신을 궁행(躬行)하는 "실천적 김학철파”를 필요로 하지, 말로만 김학철을 기리고 칭송하는 "구두김학철파(口頭金學鐵)"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김학철평전》은 김학철의 문학텍스트들과 함께 우리문인들의 정신적 수양의 교과서로, 실천의 지침으로 될 것입니다."
평전은 20세기의 가장 처절하고 아픈 력사를 관통해온 비운의 작가를 그리지만 그 필봉을 심각함과 비장감에만 두지 않는다. 어찌보면 평전의 문체는 유머, 위트, 풍자로 점철된 산문을 수백편 펴냈던 김학철의 문체를 그대로 닮았습니다. 실제 김학철 선생의 작품들을 보면 인간에 대한 선생 특유의 락관적인 믿음과 더불어 웃음의 코드가 창작의 중요한 원천이 되고 있음을 잘 알수가 있습니다. 민중에 대한 신뢰와 력사의 발전과정에 대한 믿음이 선생의 작품의 주류를 이루면서 그 어떤 역경에서나 웃음으로 화해낼수 있는 생활자세를 준것입니다. 김학철선생의 특유의 문체적 구사를 따와서 집필을 이어나간것이 이 평전의 압권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비운의 작가의 삶이 시종 유머러스하게 그리고 유려하게 손에 잡힐듯이 그려져 있습니다. 평전을 읽고나면 중국, 한국 일본 3국을 무대로 파란과 곡절로 점철된 팔순의 삶을 살다 간 그이의 개인사외에도 중국과 한국 나아가 동아세아의 근현대사의 흐름을 읽을수 있고 그에 눈을 뜨게 됩니다. 평전은 그야말로 고난과 격동으로 점철된 우리 민족의 지난 세기를 오롯이 담아놓았습니다. 이것이 이 평전의 또 하나의 빼여난 점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시대와 세상과 끝내 불화를 했던 김학철의 모진 인생과 문학을 통해 우리는 삶과 문학은 따로 떨어져 있는것이 아니라는것을 알게되며 진정한 작가의 자세란 무엇인지 알게 되지요.
우리 시대와 문학의 참다운 사표(師表)였던 선생님은 이제 고인이 되셨습니다다. 그러나 그이의 평전을 읽으면서 문학에 대해, 사람에 대해 소중한 깨달음의 전언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어려운 현실과 시대를 어떻게 살아나가야 하는지 지혜와 용기를 줍니다.
민족의 대의를 위하여 치렬하게 왜적과 맞선 인물로서 그리고 그 경험을 토대로 뛰여난 문학을 이루어낸 인물로서 그래서 김학철의 길고 험한 삶의 려정을 평전으로 더듬어 보는 일은 참으로 즐겁고 소중한 일이라 할수 있지요.
 
: 선생님의 소개를 통하여 우리 문단의 태산북두로 군림했던 김학철선생님의 일생을 다시 한번 심도 있게 조명해 보았습니다.
다음으로 또 어떤 작품들이 인물전기창작에서의 귀감으로 될까요?
 
: 다음은 이미 작고한 류연산의 "류자명 평전"에 대해 언급하고 싶습니다. 우리 조선족문단에서도 가장 일찍 나온 평전이기에 특별히 소개하고자 합니다.
 
: 류자명은 어떤 분이시죠? 우리에게는 어딘가 낯설은 이름인데요?
 
: 류자명 선생은 한국충주에서 태여났습니다. 교사시절이던 1919년 학생만세운동을 계획하다 일본경찰에 발각돼 중국으로 망명했습니다. 아나키즘 즉 무정부주의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테러를 통해 일제에 항거하는 것을 반일애국운동으로 여겼고 1921년 천진에서 김원봉을 만나 의렬단에 가입했습니다. 1923년 발표된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혁명선언" 작성을 도왔고 항일 테러단체 결성에 깊이 관여했습니다. 1940년부터 농업기술 연구에 몰두한 그는 “6.25”전쟁 발발로 귀국하지 못하고 중국에 남아 고원지대 특수벼 재배법 등 농학분야의 뛰어난 연구업적을 인정받아 1950년부터 30여년 동안 호남성 호남대학 농학원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류자명 선생은 한국과 조선으로부터 건국훈장과 3급 국기훈장을 받아 남북한으로부터 동시에 인정받은 보기 드문 독립유공자입니다. 류자명은 1930년대에 무한에서 중국의 대문호인 파금(巴金)을 만난 이후 평생동안 절친한 친구이자 동지적 관계를 맺어간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류자명의 전기적인 행적은 파금의 작품에도 반영됐습니다. 파금의 문학활동초기의 대표작인 단편소설 "머리카락의 이야기"는 젊은 나이에 머리카락이 새하얘진 류자명의 모습을 보고 령감을 얻어 쓴것이라고 합니다. 류자명은 젊은 나이에 머리가 하얗게 셌는데 파금은 소설에서 주인공이 반일투쟁속에서 분노와 고민때문에 흰 머리카락이 급작스레 생겨났다고 그렸습니다.
류자명은 중국에서 농예사로 그 지위가 매우 높았습니다. 포도를 재배하지 못하던 호남에서 그의 연구로 하여 포도재배에 성공하게 되였습니다. 또 귤 전문가로 소문이 높았습니다. 류연산의 평전이 나오기 이전인 1995년 중국농업출판사에서는 전기물 "훈장을 단 원예학자-류자명전”을 출간했는데 이는 중국에서의 그의 명성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1985년 4월 17일 호남성 장사에서 타계했습니다. 2003년부터 농학자, 교육자로서의 류자명을 재조명하는 학술대회가 중국과 그의 고향 한국 충주에서 수차 열렸다. 2009년 호남농업대학에서는 그의 거소를 문물명록에 신청하여 복구하고 실내에 류자명 사적 진렬관을 꾸며놓았습니다.
김병민 감수, 류연산 집필로 된 장편인물전기 "불멸의 지사 류자명평전"은 2003년 연변인민출판사에서 출간되였습니다. 연변대학 김병민 총장은 단재 신채호를 연구하면서 그와 관련된 인물인 류자명에 관심을 가지게 돼 80년대부터 그에 대한 자료를 수집해 왔다고합니다. 그러다 그 집필을 제자인 류연산에게 의뢰했습니다. 김총장의 자료와 중국에 사는 류자명의 후손 소장 자료, 그리고 당시 중국 신문과 잡지에 실린 기사 등이 이번 평전의 바탕이 됐습니다.
평전을 집필한 류연산은 "독립운동사에서 류자명의 위치를 새롭게 조명할수 있었습니다"면서 "특히 아나키스트들의 행적을 연구하는 산 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평전은 "조국과 운명을 같이", "항일투사의 첫걸음", "의열단", "격정시대", "농학자의 길" 등 모두 7장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평전에서 류자명의 친필 한문 회상기에 대한 고증으로 드러나는 그의 인생행적을 비롯해 김구, 신채호 등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글과 편지, 그리고 파금(巴金) 등 중국 작가들에 대한 그의 정평이 실려 있습니다. 또 농업학자이기도 했던 류자명의 농업관련 성과도 살펴볼수 있습니다.
특히 독립운동 기간 백범 김구 선생을 비롯해 리회영, 김창숙, 신채호, 나석주, 조소앙 등 많은 인사와의 교류를 통해 근대 한민족사의 일부를  조명했습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평전의 집필을 위하여 류연산은 기성된 자료를 열심히 수집하였을 뿐만아니라 새로운 자료도 깊이 있게 발굴하여 이 전기물로 하여금 문학성은 물론 력사적 진실성을 기하도록 하였습니다. 작가가 중국과 한국을 오가면서 1985년 타계한 류자명 선생님의 발자취를 쫓아 철저히 고증을 통한 작품이기에 그 내용에서 베여 나온 글자 하나 하나, 문장 하나 하나가 소중함을 더해주고 그 진솔함에 독자들로 하여금 그 감회를 새롭게 해주고 있습니다. 청년들을 남경군관학교에 보내 군사지식을 습득하게 하고 1926년 일본의 식민지 수탈에 맞서 나석주 의사가 조선식산은행과 동양척식회사에 폭탄을 투척케 한 작전도 선생이 계획과 지휘를 맡았던것으로 알려지는 등 의열단의 비밀참모로 활약한 그의 일대기가 상세하게 수록돼 있습니다.
 
: 그러니까 류자명의 력사는 지금까지 편면적으로 기술되였다가 이번에 류연산작가의 평전을 통해 립체적인 인물로 부각되였구만요.
 
: 그동안 류자명은 한국독립운동사에서 거론의 대상이 아니였습니다. 김구선생의 "백범일지"에서처럼 무정부주의련맹의 대표로 류자명이 있었습니다할 정도로 이름 한번 적힐 뿐이었습니다는 너무나 린색하고 왜곡된 표현을 바로잡기 위해 본격적으로 류자명 평전을 저술하였습니다고 했습니다.
평전은 방대한 력사의 흐름속에서 전기인물 주인공의 의의있는 생애를 펼쳐보이고있을 뿐만아니라 타인들의 가치있는 평가도 까근히 연구해 주인공에 대한 인식적 가치를 한결 높이고있습니다. 작품을 읽어보면 력사의 현장속에서 류자명 선생의 역할이 얼마나 컸는가 하는 점을 감지할수 있습니다. 그동안 한국에서는 류자명을 독립운동가로, 중국에서는 농학자로만 각각 기리고 있는데 이 책에서는 류자명선생을 독립운동가인 동시에 농학자로서의 서술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철저한 무정부주의 사상가로서 세계 모든 인류가 더불어 살아가야 하며 자연과 공생해야함을 몸소 보여준 실천가로서의 류자명 선생에 대해 다각적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인물평전은 한 인물을 기념비적으로 부각하는 고고학 비슷한 신성한 작업이라고 봐야겠습니다.
다음으로 영향력 있는 인물평전을 더 소개해 주시지요.
 
: 다음은 연변작가협회 주석 최국철의 “주덕해 평전”을 말하고 싶습니다.
지난해 연변조선족자치주창립 60주년을 맞아 조선족자치주의 설립을 주도한  주덕해의 평전이 출간됐습니다.
       여기서 잠간 주덕해의 일생을 요약해 보면-
1911년 3월 로씨야 원동지구의 한 시골에서 태여난 주덕해는 1931년 중국공산당에 가입한뒤 1936년 모스크바 동방로동대학으로 류학을 떠났습니다. 1939년에는 중국공산당 혁명의 성지로 통하는 연안으로 합류해 혁명가의 길을 걸었습니다.
1949년 3월 조선의용군 제3지대 정치위원이자 동북행정위원회 민족사무처 처장인 주덕해는 연변에 파견됩니다. 1952년 9월 3일 연변 조선족 자치구가 설립되자, 그는 제1주석으로 선출됐습니다.
2010년부터 북경 민족출판사와 연변인민출판사는 련합으로 조선족인물평전 시리즈를 기획하게 되였고 《주덕해평전》이 그 작업의 중요한 일환으로 부상하였습니다. 연변작가협회 부주석인 최국철이 그 적임자로 선정되였습니다. 최국철은 평전의 기초작업부터 시작했습니다. 기존 사료를 모으고 정리하고 분석하고 골라내는 작업이지요. 다음으로는 조사, 답사의 길에 나섰다. 주덕해의 자취는 중국 광활한 대지에 널려있어 이 부분의 작업량은 엄청난것이였습니다. 또한 연변자치주 창립 60돐 헌례작품이기에 작년 "9.3"전에 출간, 최국철에게는 시간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 “주덕해평전”창작을 위한 답사과정도 만만치 않은 작업이였습니다고 하던데요?
 
: 2010년부터 현지답사를 시작하여 1차답사와 2차답사를 마무리하면서 주덕해의 국내 발자취를 따라나섰다. 할빈, 녕안, 밀산, 동경성, 서안, 연안, 남니만, 무한, 북경, 천진, 그리고 연변 8개 현시의 주덕해가 다녀갔던 모든 향진이 그의 답사코스였습니다. 관련인물도 60여명 취재하고 당안국, 도서관에 각종 문서를 열람, 서면자료, 구술, 현지답사를 통한 자료를 전부 수집하면서 인물에 대한 서술적 기초를 마련했습니다. 여기에 기초하여 전형적인 인물을 부각하기 시작했고 주덕해가 처한 국내외 시대적 배경과 주변의 환경, 겪은 력사를 통하여 주덕해의 성장과정을 그려갔다. 단순한 기술이나 묘사가 아닌 정치적, 인간적 발전단계를 설명해주는 작업이였습니다. 결과 세계속, 특히 구 쏘련의 영향속에서 중국혁명이란 력사적 환경에 적응하면서, 그리고 연변조선족자치지역이란 특수한 사업환경에서 중국공산당의 정책과 방침을 충실히 집행하면서 조선족의 근본리익을 대변하는 자치주의 산파로 성장하기까지의 주덕해의 파란많은 려로를 9장 62소절 50여만자에 달하는 편폭에 담아내였습니다. 평전은 주덕해를 "탁월한 조선족 지도간부이자 오랜 시련을 겪은 공산주의전사"라며 "혁명전투 년대와 사회주의건설시기를 막론하고 시종 자신의 운명을 국가와 민족의 운명과 결부시키고 피나는 노력을 다해 눈부신 공훈을 세웠다"고 정평했습니다. 평전을 통해 우리는 연변의 정초와 건설을 위해 혼신을 다한 주덕해의 헌신정신을 알게 되였고 인간적인 면을 알게 되였으며 그가 얼마나 훌륭한 리더십을 가진 지도자였는가를 알게 됩니다.
 
: 그러고보니 최근, 특히 2, 3년 사시에 인물전기창작이 부쩍 늘고 있고 그 량도 많이 제고되였다는 인상입니다. 또 한부 더 소개해 준다면요?
 
: 근년에 창작된 조선족인물전기중에 빠뜨릴수 없는 또 한부의 작품은 리혜선의 "정률성평전"입니다.
 
: “정률성평전”은 작가 리혜선선생이 금년 5월 7일부터 8월 21일까지 저의 문학살롱에 직접 출연하셔서 상세한 소개를 드렸던 작품입니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갈것은 이 작품이 우리나라의 중점지지작품에 선정되였습니다는 점이고 이 부분은 그때 상세히 소개되지 못했는데요, 오늘 기회에 그 점에 대해 소개주시지요.
 
: "정률성평전"은 집필하기전에 벌써 큰 이슈를 터뜨린 작품입니다. 그의 집필기획이 중국작가협회에서 선정하는 2009년 중국작가협회 중점지지(扶持)작품목록중 기록문학 지지작품에 선정됐기때문이지요. 그후 조선족작가들의 적지 않은 작품이 국가중점지지작품에 선정됐지만 조선족의 창작작품이 이 프로젝트에 선정되기는 그번이 처음이였습니다. 중국작가협회는 2009년 중국작가협회 각 산하 단체회원단위에서 추천한 221부의 작품중 60부를 중점지지작품으로 선정했다고 공포했는데 그중 리혜선소설가의 "정률성평전"이 들어 있었습니다.
평전은 중국인민해방군 군가의 작곡자인 조선족 음악가 정률성의 예술인생을 다루고있습니다. 평전은 기본상 마무리되여 "장백산"잡지에 일년여 동안 련재중인데 아직 일부를 련재했음에도 그 치밀한 력사복구작업과 유려한 문체로 독자들의 환영을 받고있습니다. 아직 완결하지 못했기에 간략한 소개로 그칠가 합니다.
 
: 지금 조선족문단의 적지않은 작가들이 인물전기창작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실정인데요, 이 분야를 전반적으로 조명해볼때 지금의 현황을 어떻게 정의를 내려야 할까요?
 
: 우리 조선족문단에서 인물전기 창작과 출판이 활성화되기 시작한것은 근년래의 일이라 말할수 있습니다. 지난 80년대에도 다른 쟝르에 비해 인문전기문학은 거의 전무한 상태였습니다.
그 와중에 송정환의 "안중근", 김송죽의 "설한"등이 나왔다. 하지만 우리 중국조선족인물을 다룬 작품은 아니였습니다. 90년대 중기에 류순호 작가의 조상지"가 나왔습니다. 이 역시 타민족 인물이였습니다. 하지만 우리 민족의 항일투쟁사와 직결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나오자 환영을 받았습니다.
우리 민족이 배출한 인걸들을 당시에 펴낸 작품으로는 리성권이 펴낸 조선족기업가 석산린의 창업기가 있습니다. 90년대 중기에 나온 회고록으로 연변대학 정판룡교장의 "고향 떠나 50년"이 절찬리에 련재되고 책으로 중국과 한국에서 모두 출간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류연산작가를 필두로 시작된 인물전기 문학이 90년대말 이후로 불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정확한 통계가 아니지만 추산해보더라도 20여 종에 달하는 인물전기가 출간됐습니다.
그 중 우수한 몇부를 다시 집계해 보면 예술인, 문학인으로는 김학철, 정률성, 김염, 한락연 등이, 정치인으로는 주덕해, 조남기, 조룡호, 최채, 오장숙 등이, 항일운동가로는 류자명, 양림, 최진동 등이, 교육자로는 림민호, 정판룡, 김진경 등이, 사회인 기업인으로는  석산린, 한성호, 리성일 등등의 인물전기가 창작되였습니다.
또 민족출판사에서 "조선족 구술 시리즈"라는 기획도서들을 련줄로 출간하고 있는데 이처럼 자서전, 회고록의 출판 역시 증가세다. 굳이 인물전기라는 제목을 달지 않았더라도 인물에 대해 여러 쟝르로 탐구한 책까지 포함하면 종수는 더 늘어낙 됩니다.
 
: 지금까지 창작한 작품도 적지 않구만요, 그리고 지난 번에도 얘기가 나왔지만 인물전기창작은 창작전에 작가의 참다운 태도를 필요로 하는 것은 물론 자료수집, 답사, 확인, 집필 등 과정을 거치면서 작가로 놓고 말하면 피나는 노력이이 아니겠는가 생각됩니다.
 
: 무릇 글을 쓴다는것이 다 그렇지만 인물전기를 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한 인물의 내면에 육박해 그 정신세계를 빈틈없이 포착해내야 하기때문이지요. 해당 인물의 삶이 어떤 가치와 의미를 가졌는지에 대한 판단은 고스란히 인물전을 쓰는 작가에게 맡겨집니다. 그러니 창작자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질수밖에 없지요. 인물전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 결국엔 작가 자신이라는 사실입니다. 인물의 생애와 활동을 서술하면서 인물은 물론 그가 속한 시대에 대한 주관적 평가까지 드러내야 하는게 인물전쓰기의 어려움입니다. 이런 연유로 작가들은 평전을 쓰는 일은 결국 "글쓴이 자신의 력사적 태도와 문화적 인식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이 시대에 대해 무언가를 말하고자 하는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 그렇다면 작가들이 이렇게 고된 로동에 투신하는 이유는 무엇일가요?
 
: 우리의 작가들은 왜 어려운 인물전기에 적극 투신하고 있을가요? 그리고 왜 뒤늦게 인물전기문학이 문단과 출판계의 총아로 떠올랐을가요?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사학가들은 "력사 자체가 인물사다”라고 단언합니다. 한 인물의 생애를 면밀히 추적해 그 시대와 사회를 조망해 보는 데 인물연구의 특징이 있습니다. 시대에, 제반 분야에 굵직한 획을 그은 이들의 깊은 사상과 력동적인 몸짓을 남긴 걸물들의 인물전기가 서점가에서 독자들의 눈길과 손길을 끌기 시작한것이지요. 력사의 물줄기를 바꾼 개인의 삶을 통해 우리는 한 시대와 만나고 그 시대의 공과를 헤아려볼수 있습니다. 변화의 시대를 보아내고 넉넉한 삶을 예시하는 새로운 눈을 인물전기들은 갖게 합니다.
인물의 삶에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피와 땀, 숨결이 살아 있는 인생의 면면은 지나간 시대를 오롯이 복원합니다. 인물사가 그 자체로 력사인 리유다. 인물전기에 오른 선각자들의 삶은 우리의 평범한 삶과는 분명하게 다르다. 그들이 세상과 부딪치고 세상을 바라보는 특별한 시각과 그 속에 담겨있는 진리를 파악하는 탁월한 능력이 발휘되는 과정은 어떠한 영화나 드라마에 못지 않은 극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런 삶을 자세하게 되살려보는것은 무척 흥미로울 수밖에 없고, 민족사적인 립장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 인물전기를 창작하는 작가들은 어떻게 력사를 리해해야 할가요?
 
: 력사를 생동감 있게 리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시대를 치렬하게 산 인물들의 인물전을 읽는 것일 겁니다. 력사 속에 박제화된 인물을 피가 돌고 살냄새 나는 인간으로 다시 만날수 있다는 데 평전의 진정한 매력이 있습니다.
또 인물전기 출간이 늘어나고 있는 리유 중 하나는 불안한 상황에 믿고 따를 만한 "롤 모델"이 부족하기때문이라고도 비평가들은 보고있습니다. 오늘날 변혁기 조선족공동체가 겪는 진통과 아픔은 우리에게 커다란 우려와 걱정을 가져다 주고 있습니다.  때문에 실제로 력사를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 경험을 통해 어려운 시기를 헤쳐나갈 방법을 찾으려 하는것이지요. 평론가들의 말처럼 "영웅 부재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새로운 리더십과 좌표가 될만한 사람들을 소개해준다는 점에서 인물전기가 가지는 의미가 큰 것"입니다. 따라서 변혁기의 세상에서 길을 찾고자 하는 대중들의 인물읽기가 출판계의 신조류로 자리잡은것입니다.
 
: 그렇다면 인물전기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요?
 
: 정치인이나 예술가의 전기는 그것을 통해서 그 사람의 일생은 물론이고, 그 사람이 처했던 사회의 시대상, 그리고 그 사람이 이룩해 낸 정치적, 예술적 업적에 대한 리해를 증진시킬수 있습니다. 우리 보다 먼저, 그리고 우리 보다 남다른 삶을, 더 우수한 삶을 살았던 인물들을 통해 자아를 확립하게 하게하는 인물전이 가진 가치를 무시할 수 없지요.
인물전기의 출간이 증가하는것은 우리의 출판 시장과 독서 수준이 높아졌다는 방증으로 볼수도 있습니다. 문학이 여러 쟝르로 양상을 보이고 다른 형태의 창작 소재들이 활성화 돼야 우리의 독서수준이 높아졌다고 말할수 있는데 이는 문단의 척도와 우리 독자들의 열독 수준이 다양화 되고 성숙된것으로 보입니다. 우리의 인물전기의 창작과 출판은 여전히 걸음마 단계라고 말해야 할것입니다.
 
: 목전 우리 문단의 인물전기창작현황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가요?
 
: 우리 인물전기 시장은 아직 열려 있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의 전기물창작에는 아직 허점이 보이고 아쉬운 점도 많습니다.
원래 출판이 발달한 나라에서 평전 출간이 활발한데 아직 우리는 "붐"이라고 말하기엔 부족하지요. 그 밖에도 인물전기가 대부분 3,40년대를 살다간 인물들에 편중돼 있는데 균형이 좀 필요할 것 같습니다. 현재 수고로움을 감내하며 인물전을 쓸 젊은 작가는 보이지 않습니다. 인물전에 선택하는 인물들이 더 다양해 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력사의 향간에 묻힌 인물들 특히 영웅이나 위인으로 취급받지 못하는 인물의 경우 그 조명작업에 착수하는 작가는 적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물선택은 "여전히 영웅사관에 갇혀 있습니다", 다양하고 더 훌륭한 사람냄새나는 인물전이 나오려면 영웅 중심, 사건 중심의 력사관에서 벗어나야합니다.
그리고 현재 우리 작가들의 인물연구나 창작지원 시스템도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올해 인물전기에 관한 문학상시상식을 한번 치른다니 기대해볼만한 일입니다. 우리의 작가들이 소설적 상상력과 구성력, 대중적인 필력만 갖췄다고 해서 모두 인물전을 쓸수 있는것은 아니다. 한 인물의 사상적·정신적 궤적을 깊이있게 다뤄야 하는 인물전기작업에서 무엇보다 중요한것은 력사와 언어에 대한 균형감각입니다. 한 사람의 일생이 끝나고, 후세의 사람들이 앞선 이의 발자취를 더듬어 그이가 살았던 때와 곳, 그에 맞선 그이의 삶의 태도와 행동으로 들 내어진 것과 그로 인한 제반 결과물들에 대한 실증적 해석이라는데 전기의 핵이 있습니다.
 
: 인물전기창작은 필경은 새로운 분야에 속하는데 목전 창작에서 어떤 부족점을 보이고 있는지요?
 
: 어떤 전기물들은 인물전기가 형식과 내용 면에서 인물전으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요건을 갖추지 않고 있습니다. 이미 공표된 문헌을 토대로 쓰고있는데 글의 형식이며 내용도 필자 자신의 편견과 무지, 성의와 무성의가 고스란히 담긴 결함투성이의 미완성품들도 있습니다.
우리와는 무관한 인물들을 잘못 선택해 수고로움을 바치고도 그 작품이 출판조차 못되는 경우도 여러번 있었습니다. 이는 창작자의 창작물에 대한 선정과 창작관 그리고 그 창작자세문제입니다.
인물연구는 상대적으로 연구자의 수고가 많이 드는 연구작업입니다. 한 인물의 생애 전체를 추적해야 하는 만큼 1차 자료의 수집에만도 상당한 시간과 발품이 필요합니다. 전기 혹은 평전을 쓰는 사람은 그가 쓰고자 하는 사람의 제반 년대기적 자료를 모으고 정리합니다. 태여나고 죽은 때와 곳, 가계도와 성장 배경, 자라고 배우던 때의 증명 기록, 살아가면서 몸담은 곳에서의 제반 활동 기록 혹은 갖가지 증서의 사본은 물론 그에 대한 다른 이의 회고담 및 어울린 이들과 주고받은 편지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하면서도 포괄적으로 제반 자료를 수집합니다. 그러니 여기서 철저한 취재는 두말할 필요도 없지요.
"사료와 사료 사이의 간격을 메우는 작가의 상상력은 현장 취재와 인터뷰를 통해서만 얻어질수 있습니다”고 어느 평전 창작자는 말했습니다. 여기저기서 "베껴내기 식"이나 답사를 배제하고 고방에 박혀서 펴낸 "책상머리 평전"은 결코 설득력을 얻을수 없습니다. 어떤 인물전은 그야말로 작가의 년보를 그대로 베껴낸 장편리력서격으로 되여 있습니다. 그저 사처에서 자료를 퍼다가 성의없이 대충 짜깁기를 하고 만것입니다. 그러하니 인물전이 가지는 매력은 커녕 열독의욕까지 상실하게 만들지요.
 
: 인물전기창작자의 올바른 자세는 어떠해야 합니다고 보는가?
 
: 인물전을 쓰는 일에 대해 작가들은 "기록과 사람, 공간의 제약과 싸우는 작업”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많이 읽고 만나고 돌아다녀야 좋은 인물전이 나온다는 얘기입니다. 전기물창작의 출발점은 표층적 자료에 대한 올바른 리해와 검증이며, 더 나아가 검증된 자료의 타당성과 진실성을 확보하면서 오류를 밝힘에 있습니다. 그런데 인물의 활동년도나 시대배경에서 작자의 수준미달로 오점투성이의 인물전기도 만날수 있습니다. 선택된 인물에 대해 잘 알고 있거나 관심있는 독자들은 그러한 오점에 민감하게 반영합니다. 인물의 활동년대마저도 제대로 명기하지 못해 오점이 속출한 인물전도 있는데 한두곳이면 작가의 소홀이라고 볼수 있으나 여러번 이런 현상이 속출하면 이는 선택된 인물에 대한 례의의 상실, 치렬한 작가정신의 부재라고 볼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고인이 된 인물들, 이미 우리와 멀리 떨어진 인물들을 "지금", "이곳"으로 끌어내 가상의 대화를 나누어야 합니다. 그만큼 한 인물의 진면목을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얘기지요. 전기는 빈틈없는 론리와 현실에 대한 탁월한 리해력을 바탕으로 합니다. 그러나 쓰고자 하는 사람의 의도가 금전적 수요에서 출발한 알량한 전기물들은 흔히 삶의 론리가 어긋나 있고 도저히 리해할수 없는 뜻과 행위의 결과가 혼재합니다. 문단과 독자들은 그런 전기물을 외면할것입니다. 해외의 여러 인물전기, 평전들을 보면 평전마다 특색이 다 다르다. 어떤 평전은 소설같고 어떤 평전은 공구서적 같고 어떤 평전은 현학적이고 어떤 평전은 지어 동화 같습니다. 이 처럼 여러가지 문체적인 특점으로 한 사람의 감동적인 일생을 정확하게 전달해야합니다. 그리고 전기물의 창작은 해외문단, 중국문단이나 우리와 같은 한글을 구하하고 있는 한국문단이 우리보다 앞선것은 물론입니다.
 
: 주류문단인 중국문단과 해외문단의 경우는 어떠한지요?
 
: 중국문단에서는 한 위인에 대해 다양한 각도로 여러 작가들 그리고 여러 출판사가 다투어 출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례하면 모택동에 관한 인물전은 수십권도 넘습니다. 한국에서도 안중근이나 단재 신채호같은 인물에 대한 전기물은 한 두사람이 아닌 여러 작가들의 연구물로 대량 쏟아져 나오고있습니다. 미국에서는 링컨 전 대통령 사후 무려 180여 권에 이르는 링컨 평전이 쏟아졌다고합니다.
 
: 우리 문단은 여기에 어떻게 비교되는지요?
 
: 우리는 우리 민족이 낳은 우리 고향을 활동반경으로 하고, 나아가 세계를 무대로 활동한 우리들만이 자호할만한 우리들의 인물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인물전기 문학의 승산점입니다.
례하면 연변이 낳은 걸출한 시인 윤동주와 같은 인물입니다. 해외서 그에 대한 전기물은 벌써 5,6부정도 나왔다. 하지만 우리작가들은 이제는 아시아에서조차 그 위상을 자리매김하고있는 고향이 낳은 위인에 대해 아직도 조명하지 못하고있는 실정입니다. 덧붙여 말하면 우리는 우리가 가진 빼여난 지어 위대하다는 수식어가 아깝지않은 인물들의 가치를 너무 모르는 것 같습니다.
한 인간의 삶은 그 자체로 시대의 단면을 총체적으로 증명합니다. 인물전을 쓰려면 인물이 속했던 시대의 사회, 문화적 배경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해선 안 됩니다. 비교적 근세에 살았던 인물이 아니라, 시간적 거리가 먼 력사속 인물의 평전을 쓸때는 더욱 그렇다. 평전의 중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가 특정 시대의 총체적 사회상을 한 인물의 생애를 통해 온전히 드러내는데 있기때문입니다. 이 작업엔 인물이 속한 시대에 대한 통사적 지식은 물론, 정치·사회·문화사적 인식이 총동원돼야 합니다. 시대에 대한 정교한 인식망이 구축된 뒤에야 인물의 행적과 언행, 인식에 대한 엄정한 평가도 가능한거지요.
여기서 학계의 동원이 필요됩니다. 인물연구만큼 학계의 연구가 필요한 분야도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학계에서 인물연구의 자리는 좁다. 특별한 연구방법론이 마련된것도 아니다. 인물전이 어느 정도 각광받고 있는 것과 달리 학계의 인물 연구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입니다. 문학인들은 김학철과 같은 거물급 몇몇분에 치중되는 점을 볼수 있습니다. 인물연구가 학계에 흡수되지 못한채 소설이나 평전의 장르로만 자리매김 되고있는것입니다. 대학가에서 우리의 인물연구가 하나의 학문령역으로 정착됨이 좋을듯 합니다.
실제 미국이나 일본, 유럽에선 전문적인 논픽션 작가들이 인물전을 주로 쓰는 데 반해 우리문단은 작가들의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논픽션 작가군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다. "력사학자들은 딱딱한 론문적 글쓰기 방식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소설가들은 사료에 대한 평가와 검증 능력이 취약하지요. 서로 보완해야할 부분입니다. 단 문학인들이 고군분투하는 작업뿐아니라 력사, 철학 연구자들의 합동연구가 뒤받침 돼야 묵직한 리론과 아름다운 문체가 혼합된 훌륭한 인물전이 탄생하게 될것입니다.
민족의 발전을 위해 기여한 인물과 그 력사에 대한 새로운 조명열은 분명 민족의 발전과 우리의 삶에 기(气)를 불어넣는 좋은 작업으로 될것입니다. 앞선 이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그들이 이루어낸 업적에 대해 방대한 자료를 통해 재구성하고 기술하면서 문학적 감동과 학술적 객관성을 함께 지닌 묵직한 분량의 인물전기들은 근년래 침체화, 단일화 경향을 보이던 우리 문단에 새로운 활력소를 주입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문단에서 뒤미처 인물전기가 각광받는 풍토가 일고있는데 이는 바람직한 현상입니다. 이제는 어중간한 수량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우수한 수작(秀作)의 미량(微量)으로 우리의 전기문학은 아직도 걸음마타기이며 그 저변이 아직도 척박하다고 봐야겠습니다. 작가들의 노력으로 력사와 지식과 정보가 담긴향기나는 인물전을, 정녕 우수한 인물전을 기대합니다.
 
: 중국조선족문단의 인물전기창작을 두고 참으로 보귀한 말씀 주셨습니다.
저희 문학살롱에서는 오늘까지 4기에 걸쳐 연변작가협회 소설창작위원회 김혁주임을 모시고 중국 조선족문단의 인물전기창작을 둘러싸고 말씀 드렸습니다. 이번 시리즈가 우리의 작가와 독자들의 인물전기창작에 다소나마 리해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이상 오늘 문학살롱 여기서 줄입니다. 

김혁 문학블로그:http://blog.naver.com/khk6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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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성자 :
날자:2013-10-07 20:34:28
문단현상에 대해 적시적으로 평한 대담이네요. 대담이라는 장르도 전혀 없는 우리 조선족문단에서 연줄로 대담, 그리고 각종 장르를 펴내는 작가님, 역시 김혁작가라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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