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국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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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끼 쪼슨것에 물새비 넣은 햄”
2014년 12월 16일 08시 54분  조회:1870  추천:1  작성자: 최국철

‘무끼 쪼슨것에 물새비 넣은 햄’을 보면 목이 꾹 메면서 가슴이 시린다. 먹지 말라는 설음은 궁핍에서 오겠지만 지금까지 상쇄가 안되는 아픈 부끄러움이였다.

“무끼 쪼슨것에 물새비 넣은 햄” —얼핏 보면 중세어 같지만 우리가 지금 흔히 사용하는 함경도방언이다. 더 적절하게 말하면 륙진방언이다.

해석하면 잘게 쪼은 무우에 짠 물새우를 버무린 밑반찬이다.

햄(ham)의 어원에 대해 필자는 광복시기 쏘련홍군들이 동북으로 진출하면서 남긴 로어라고 생각했고 우리가 차용한줄로만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였다. “햄” 혹은 “해미”는 함경도 토착방언이다.

“무끼 쪼슨것에 물새비 넣은 햄”—문화어로도 대접받지 못해 해석하기도 구구하다. 다행히도 한국식 밑반찬이란 포괄적인 음식용어를 차용하니 문화명칭으로 둔갑할수 있다. 밑반찬이라 하면 장아찌, 젓갈, 자반따위들로 다시 세분하는데 “무끼 쪼슨것에 물새비 넣은 햄”을 어느 종류에 편재시켜야 적절할지 서성거리다가 아무래도 자반쯤에 가까울것 같다.

필자의 소학교시절은 무섭게 가난했던 생산대시절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무릎아래로 자식 오남매와 우로 조모를 모신 우리 집은 8명이라는 대가정이였다. 이 대가정의 생활력 중심에는 아버지라는 존재가 바위처럼 우뚝 서있었다. 하기에 우리 집 밥상질서도 존(尊)과 비(卑)가 엄격했다. 복(福)자를 새긴 아버지의 밥그릇의 내용물부터 놋숟가락은 우리들이 감히 범접할수 없는 식기(食器)였다. 뿐만아니라 그 시절 아버지만 유일하게 까는 요도 그런 연장선에서 부러운 침구였다. 아버지는 주(住)식(食)에서 모든 “기득권”을 누린것이다. 지금 보면 보잘것없지만…

소학교 3학년이였으니 필자가 11살이 되던 해다.

“큰사람이 밭갈이에 지쳐서 얼굴이 누렇게 뜨는데 무끼 쪼슨것에 물새비라도 넣어서 따루 햄을 맨들어주오.” 조모가 이런 분부를 내리면 어머니는 어김없이 무우를 잘게 탕치고 거기에 공소합작사에서 사온 짠 물새우를 넣은 반찬을 만드는데 그것을 파르스름한 유리그릇에 담아서 아버지 밥그릇과 가지런히 놓는다. 그때부터 밥상에만 앉으면 눈길은 그 유리그릇에서 맴돈다. 새우의 비비한 냄새가 그렇게도 자극적이였지만 우리들에게는 군침만 흘리게 하는 금식이였다. 그런데 어느날 아침인가 나도 모르게 무엄하게도 아버지의 그 반찬그릇에 불쑥 저가락을 넣었다. 하지만 “탁”하는 조야한 소리와 동시에 아무렇게나 휘여진 나의 초라한 참대저가락이 “절러덩” 밥상우에 나동그라졌다. 어느결에 큰아들의 철없는 “침략행위”를 발견한 어머니가 자신의 저가락으로 나의 저가락을 가격한것이다.

지금도 믿지 못할 일이다. 당시 우리 집은 아버지, 할머니를 위시하여 우리 남자형제들만 밥상에 둘러앉고 어머니가 누나와 녀동생을 데리고 구들바닥에서 식사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일본화로를 놓고 된장국을 찐하게 끓이군 했다. 그 첩첩한 장애물을 넘어서 어떻게 나를 물리쳐버렸는지 모를 일이다.

“어디서 배운 개버릇이야. 자란덜(어른들)의 음식에 탁탁 매달리면서…그게 니가 먹을 햄이니… ” 어머니가 사납게 눈을 흘겼다. “놔두오. 애들이 그렇지…” 아버지가 나의 역성이라도 들어주었으면 했지만 아버지 역시 눈을 흘기면서 “얼때 모르고 헴이 못 들었다”고 나무랐다.

그날의 그 일그러졌던 참담한 랑패상…생존이라는 현실에서 우리 집 구성원들의 생존과 삶의 연장을 위해서 아버지라는 존재를 부각하려면 어머니가 악역배우로 나서 “전밥들의” 희생을 강요해야 한다는 생존적인 진실이 숨어있을테지만 감성은 필경 감성 그 자체다. 하기에 필자에게 평생의 부끄러움만이 아닌 치부 같은 존재로 남았다. 필자는 지금도 집사람에게 그런 류의 자반을 만들지 못하게 한다. “무끼 쪼슨것에 물새비 넣은 햄”을 보면 목이 꾹 메면서 가슴이 시린다. 먹지 말라는 설음은 궁핍에서 오겠지만 지금까지 상쇄가 안되는 아픈 부끄러움이였다.

“무끼 쪼슨것에 물새비 넣은 햄”, 그 시절 결국 나에게 속하는 반찬이 아니였다. 피를 물려준 어머니에게서 받은 그 참담한 부끄러움을 잊지 못하는 까닭은 그날의 그 작은 일상이였던 밥상사연이 필자의 성장에 결정적인 큰 영향을 미쳤기때문이였으리라…

자기에게 속하지 않을 물건은 욕심내지 마라.
 
연변일보 20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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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1 ]

1   작성자 : 어비주지
날자:2014-12-16 09:20:37
국철작가의 글들은 언제나 문학성짙은 방언이 끼이여 더욱 재미납니다. 한국의 경상도사투리가 짙은 장편들을 읽어보십시오 얼마나 렵기적이고 궁금증으로 이끄는 흥취적인 진미가 돋보입니까. 더 좋은 글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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