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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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소설) 봇나무
2013년 01월 16일 18시 49분  조회:3277  추천:0  작성자: 최균선
                                                         봇나무
 
                                                           최 균 필
 
    인생은 만남과 리별이 엇갈리는 희비극의 극장이다. 웃으면서 만났다가 울면서 헤여지고  울며 만났다가 웃으며 헤여지기도 하는 인생무대, 나만의 인생고로 점철된 인생극, 내가 극본을 쓰고 내가 연출하고 내가 관중으로도 되였기에 아무 허구도 없이 구구절절 진실한 얘기로 극정을 이룬것이다.
연분은 아니였지만 아무튼 인생극에 등장하는 두녀인과 얽히고 맺힌 사연들이 그번의 기우로 하여 추억의 쪽배에 가득 실려올줄 누가 알았으랴! 오랜 세월이 흘렀 어도 마음 한구석에 깊숙히 간직하고서도 다시 만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그 녀인을 만났을 때 나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 다만 까닭을 알수 없는 오열과 함께 지난 일들이 한꺼번에 얽혀도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참으로 생각하는 인생은 희극이요 체험하는 인생은 비극인것이다.
지나간 일체는 친절한 회억으로 변하는가? 돌이켜생각하기도 끔찍스러운 그 세월에 얽히고 맺힌 사연이니 어찌 한두마디로 다 말할수 있으랴, 두번째 녀자는 내가 군마사육장에 만났지만 그녀를 만나게 된 계기를 서술하자면 아무래도 그 먼저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할것 같다.
                                    
  1.                                   운명의 전주곡
                              
                        ㅡ 인생은  만나는 일과 잊어버리는 일 ㅡ
 
    나는 까막골이라 부르는 군마창에 오기전에는 할빈농업기계학원의 재학생이였다. 일망무제한 북대황의 농장벌을 또락또르로 갈아엎고 꼼바인으로 밀수확을 하는것이 나의 푸른 꿈이였다. 그때는 온세상을 독차지한듯 청춘의 랑만과 희열을 가슴가득 안고 살았다. 그리하여 돈지갑이 늘 말라있는 신세였지만 일요일이면 무작정 친구들 과 작동하여 여기저기 거리를 쏘다녔고 상점에도 들락거렸다.
    내가 단골처럼 다닌곳은 할빈의 번화가에 웅좌를 자랑하는 로씨야식 석조건물인 유명한《츄린(秋林)》이라는 백화상점이였다. 매대에는 쏘련상품들이 많이 진렬되여 있었는데 명멸하는 네온싸인의 불빛속에 소비를 유혹하고있었다. 게다가 매대의 점원들도 일매지게 요란한 젖가슴과 호마궁둥이에 날나리 허리를 한 로씨야처녀들이 였는데 특유의 냄새를 피우며 크고 아름다운 눈으로 유혹해서인지 중국사람들도 제일 많이 몰려드는 곳이였다. 그때만도 외국녀자들의 그 독특한 미를 눈요기라도 하는 것이 일종 향수였던지 모른다.
    아닌게 아니라 내가 츄린을 자주 찾는데는 그럴만한 사연도 있었다. 거기엔 나의 노랑머리 미인이 있었던것이다. 어느 날, 오래동안 벼르고 별렀던 루바슈까를 사려고 첫손님으로 들어섰다. 루바슈까란 로씨야젊은이들이 즐겨입는 전통 여름옷이다. 한창 허영심에 들떠 살던 때이고 쏘련식멋이 류행이던 때라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모른다.
여러 매대에 녀자들이 날리는 미소에 왼눈 한벌 팔지 않고 곧추 나의 미인이 서있는 매대로 달려갔다. 올랴라는 로씨야처녀는 보는 사람마다 첫눈에 홀딱 반하게 하는 금발미녀였는데 그 꿈꾸는듯한 파란 눈을 마주하면 금방 심장이 멎을듯 사람의 넋을 빼앗아갔다. 올랴가 반색하며 맞아주었다.
  《도 브레이젠(안녕하세요?》
    나는 바보처럼 그저 벙실거리기만 했다. 내가 하얀루바슈까를 가리키며 사겠다고 하자 그녀는 상글거리며 매대안에서 새것을 꺼내여 입혀주고는 거울앞에 끌고가서 연신《하라쇼!》를 뽑아냈다. 옷이 날래라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스스로도 멋져 보였다. 기분이 둥둥 뜬 나는 일요일 날 친구들을 불러올테니 함께 태양도로 야영을 가는게 어떠냐고 초청했다. 믿었던대로 올랴는 흔쾌히 응낙했다.
   손꼽아 기다리던 일요일이 돌아왔다. 루바슈까를 떨쳐입고 두리모까지 쓰고나선 나는 친구들을 불러모아 송화강으로 달려갔다. 세친구와 함께 강가에 이르니 올랴가 벌써 친구들과 함께 나와있었다 낯익은 금발머리가 멀리서 손저어 불렀다. 멋지게 눌러쓴 태양모깃에 손을 얹고 방글 웃는 그 모습은 예이제 눈이 부시였다.
    《야! 저 노랑머리가 정말 대단한 미인인데》
    친구들속에서 감탄성이 터져올랐다.
    《이자식, 너 언제부터 노린내에 취해버렸니? 새침데기 시골내기인줄 알았더니 능구렝이 담을 넘었네. 그러구두 아닌보살 했구나. 하하하 》
    《음, 저 처녀말이야 모디얼호텔의 무도장에 내 단짝이야, 올랴라고 하는데 어때? 백조아가씨같지?》
    내가 로씨야식으로 어깨르 으쓱하고 두팔을 벌려보이자 코를 싸쥐고 킥킥거리는 녀석에, 입안에 물었던 음료를 확! 내뿜는 녀석에 아무튼 내가 새빨간 거짓말을 한다며 믿지 않았다. 나는 오기를 피우며 자리에서 일어나 저쪽으로 성큼성큼 다가갔 다. 올랴가 달려오며 가볍게 포옹했다. 나는 이쪽을 주시하는 친구들의 눈길을 의식 하며 호기를 피웠다.
《도 브레이젠(안녕하세요?》하고 올랴의 친구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쓰빠씨바(감사합니다.》
내가 로씨야식으로 례절을 차린후 내 친구들을 불러왔으니 함께 뽀트놀이를 하는게 어떠냐고 제의했다. 대환영이였다.
  《하라쇼, 야오체라드 와스위쩨지 (당신을 만나서 정말 반가워요.》
    올랴도 자기 련인이나 되는것처럼 내 팔에 매달리며 퐁퐁 뛰였다. 그제야 친구들 이 엄지손가락을 내들었다. 친구들은 제각기 짝을 지어 뽀트에 앉아 강심으로 노저어 갔다. 비록 말은 서로 다르고 잘 알아듣지 못해도 젊은 심장들은 잘도 어울렸다. 눈짓, 손짓 벙어리시늉을 해가면서 청춘의 랑만을 꽃피웠다. 태양도가 저만치 보였다. 처녀들은 흥이나서 노래를 불렀다.《볼가강의 노래, 모스크바교외의 밤, 공청원의 노래 …》노래시합이라도 하듯 겨끔내기로 불러대는데 빨간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은방울소리가 그처럼 귀맛좋을수 없었다.
    한창 흥이 도도한 때에 강심을 질주하던 화물선이 씽하고 지나가며 격랑을 솟구 치는바람에 우리가 탄 뽀트들이 뒤집어질번했다. 처녀들은 엉겹결에 남자들을 부등켜 안으며 새된 비명을 질러댔다. 올랴도 내가슴에 와락 안기였다. 그바람에 몸을 가누 지 못하고 그만 뽀트가 번져지며 둘다 물에 빠졌다. 물속에서 솟구쳐나오니 올랴가 허우 적거리며 아비규환을 질러대고있었다.
    평온을 찾은 다른 뽀트에 처녀들은 언제 위험이 있어냐는듯 깔깔댔다. 나는 올랴와 함께 안깐힘을 써가며 겨우 뽀트를 바로 번져놓았다. 그제야 친구들이 거너와 배안에 물을 퍼내느라 야단법석을 캤다. 물병아리가 된 우리의 모습이 우습다고 다시 웃음소리가 배전에 넘쳤다. 나의 새 루바슈까는 올랴의 입술연지로 그만 꽃적삼이 되고말았다. 그러나 아쉬움도 잠간, 물결치는 푸른 송화강처럼 나의 정열은 굽이쳤고 랑만으로 넘치였다.
    우리는 배놀이를 마치고 다시 쓰딸린공원으로 갔다. 친구들의 기분은 맑은 하늘 에 둥둥 떠가는 구름같았다. 나는 갑자기 생활이 더없이 아름답게 느껴졌고 유보도를 거니는 사람들의 모습이 유달리 정다워보였다. 웃고떠들며 실랭이치는 사이에 어느새 하루해가 저물어갔다. 처녀들도 우리들도 서로 헤여지기 아쉬워했다.
   《도스위다냐(다시 만납시다.)연신 뒤돌아보며 손을 젓다가 인파속에 사라지는 노랑머리리 말괄냥이들과 하루동안 쌓은 정이 그렇게 련련할줄이야, 친구들의 얼굴 에도 다시 만나고싶어하는 심정들이 력력했다. 순결한 청춘의 가슴에서 설설 끓는 정열에는 민족도 국경도 따로 없는것이리라.
    나는 겨울에는 올랴와 함께 스케트장으로 다녔다. 할빈의 긴긴 겨울날에 올랴와 함께 남강체육장 스케트장에 다니는 일이 그렇게 즐거울수 없었다. 그래서 집에서 겨우겨우 보내오는 빠듯한 식비를 절약해서 고물상점에서 노르웨제스케트도 한켤레를 샀다. 거기엔 올랴친구들도 단골이였다. 나는 개구장이시절부터 송화강 얼음판에서 굴러먹은지라 스케트 하나만은 멋지게 탓다. 배고픈고생을 톡톡히 했지만 올랴가 기다리는 스케트장에 들어서면 대번에 기분전환이 왔다.
    머리에서 김이 문문 나도록 몇바퀴 씽씽 돌고나서는 나의 파랑눈을 찾아 슬며시 다가간다. 내가 그를 스치면서 슬쩍 밀쳐놓으면 올랴는 영낙없이 내 허리를 붙잡는다. 때론 둘이 함께 넘어져서 한덩어리가 되기도 했다. 파란 눈과 검은 눈이 부딪치며 작열할 때 그 감수란 참으로 오묘했다. 그렇게 얼음판에서 뜨거운 정을 키운 우리들 인지라 마침내 떨어질수 없는 사이가 되였다. 어느 날 올랴가 자기 집에 초청하였다. 언제부터 로씨야인들이 사는 신비의 집에 가보고 싶던차라 나는 쾌히 응낙했다.
    어느 날 우리는 련인처럼 전차에 딱붙어앉아 마쟈커우라는 로씨야인들의 마을로 갔다. 집들은 일매지게 목조건물인데 지붕이 뾰족하고 창문들은 좁고 길었다. 널다란 뜨락에는 젖소들이 두세마리씩 매여있었다. 이 마을 사람들은 모두 제정로씨야시절의 백계출신들이여서 쏘베트로 되여진 조국에 돌아갈수 없는 망향민들이였다. 그들은 젓소를 길러 우유를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다보니 생활이 넉넉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천성적으로 락관주의자들이였다. 구멍이 펑 뚤린 털스카트를 입고 다니는 딸애의 몰골에도 《하라쇼》를 내뱉았고 전차에서 내리면 쭉 찢어진 내 바지 가랭이를 보고도 구새통같은 몸집을 흔들며 웃어대였다. 그들은 어린 딸애가 낯모를 남자친구를 제집에 끌어들여도 반갑게 맞아준다.
나는 초면강산의 불청객이였으련만 대환영을 받았다. 올랴의 어머니가 손수 구웠 다는 헐레브에 빠다를 발라서 먹는 맛이란 정말 별스러웠다. 그것도 젓가락에 습관 되였던 내가 칼고 포크로 먹는 멋이 별로였다. 식사후 따끈한 우유에 설탕을 놓아서 내놓는 로씨야어머니의 자애로운 모습을 보노라니 고향에 계시는 어머니가 생각났다.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은 피부색을 물론하고 사랑의 화신들이 아니겠는가?
    혼솔기가 터져버린 내 바지가랭이를 손마선으로 박으며 그렇듯 정답게 웃어주는 올랴의 어머니가 한없이 존경스러웠다. 그녀는 나같이 참하게 생긴 아들이 하나라도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며 외동딸을 둔 아쉬움을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휴식일 이면 자주 놀러오라고 당부하였다. 나는 첫대면에 벌써 이 로씨야어머니에게 끌렸다.
    나는 올랴외에도 다른 로씨야계 젊은이들과 친숙하게 지내였다. 그것은 나의 로씨아어실력을 높이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그런데 조선족젊은이들이 세상에 두려울 것 없다는듯이 무리를 지어다니는것이 언녕 공안국에 소식이 들어가서 은근히 주시 하고있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학교에서는 내가 로씨야처녀들을 홀려내여 제좋은 멋에 놀아나고 건달풍기마저 있다고 쉬쉬하였다. 그러나 나는 개의치 않았다. 한창 쏘련형님들을 따라배우는것이 시체멋이였던지라 여름이면 루바슈까에 두리모를 쓰고 모디얼호텔 무도장에도 자주 들락거렸다. 겨울에는 쏘련제목구두에 까자크털모자까 지 얻어쓰고 징을 박은 구두뒤축으로 돌길을 떨꺼덕거리며 쏘다녔다. 그래서 허파에 바람이 든 청년으로 보이기 십상이였을것이다.
    나는 본래 쏘련숭배자였다. 그래서 올랴의 권고에 따라 로어를 열심히 배우면서 얼마후엔 올랴와 로어로 대화하는 수준이 되였다. 하여《안나까레니나》,《전쟁과 평화》,《고요한 돈》《죽은 넋》,《어머니》등 많은 로씨야명작들을 번역본과 대조해가면서 열심히 탐독했다. 아직 정식으로 구혼하지는 않았지만 올랴를 미래의 안해로 점찍어두었기에 그에게 조선말도 배워주면서 자신은 로어에 능통하려고 마음 을 도사려먹었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사랑이란  원만할수 있으랴 싶었다.
    그때 우리 학교의 맞은켠에 조선실습생청사가 있었는데 오리가 오리무리를 따르 고 게사니가 게사니무리를 따른다고 나는 기회만 있으면 운동장에 넌지시 찾아가서 함께 배구도 치고 뽈도 차면서 조선실습생들과도 친하게 지냈다. 할빈타빈 공장, 보이라공장 등에서 실습하고있는 나어린 학생들은 나를 멋쟁이 큰형이라고 부르면서 무척도 따랐다. 나도 그들을 사랑해주었다. 피는 물보다 진한것이다.
    어느 일요일 저녁무렵, 내가 여느때처럼 조선실습생들과 배구를 치고있는데 안면 이 있는 실습지도교원이 나를 불러내야 자기 사무실로 데리고갔다. 그는 나를 쏘련을 따라배우는 멋쟁이 젊은이라고 칭찬하고나서 조선실습생들의 한패가 모스크바로 류학가게 되였다면서 로어통역이 필요한데 갈생각이 없느냐고 내 의중을 떠보았다. 출국수속은 자기네들이 다 책임지고 해줄테니 동의만 하면 문제가 없다고 했다.
    나는 대뜸 긴장해졌다. 중국공민으로서 그렇게 하는것은 조국을 배반하는 일이라고 생각되였던것이다. 그때 무슨 애국심이 어떻고 할 높은 각오는 가지고있지 못했지만 어쨌든 량심이 그렇게 하는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량심이란 인생의 가장 완전한 해설자가 아니던가? 하지만 드러내놓고 말할수 없어서 아직은 로어수준이 발바닥이고 더구나 중국공민으로서 어찌 갈수 있겠는가고 좋게 사양했다. 지도교원은 입에 침이 마르게 설복하려 들었다. 전쟁이 금방 끝나서 국내엔 인재가 형편없이 모자라는데 해외동포로서 좀 지원해주면 좋지 않겠는가고 사정하기도 하였다.
    물론 나도 전쟁후 복구건설을 위해 재일동포들도 현해탄을 건너오고 중국에서도 조선족청년들이 자원해 두만강을 건넜다는것을 들어서 알고있다. 그중에는 물에 빠져 비명횡사한 젊은이들도 많았다. 그리고 나자신도 일제놈들에게 나라잃고 고향을 빼앗기고 살길찾아 두만강을 건넌 망향민의 후손이여서 고국에 남모르는 감정을 지니고있은것은 사실이였다.
    그러나 이제 2년후이면 농업기술자가 되여 북만의 국영농장에 배치받게 될판인 데 생각지도 않게 중국이냐, 쏘련이냐, 조선이냐? 하는 선택의 갈림길 나타날줄 어찌 생각했으랴. 나의 태줄이 묻힌 이 흑토에 내가 마시고 자란 송화강이 흐르고 홀 어머니와 나어린 동생들이 나를 하늘처럼 믿고 사는데 내가 어찌 혼자의 영화를 위해 소홀히 행동한단말인가? 나는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못가겠다고 단연히 잘라말했다. 그러자 실습지도원이 갑자기 책상을 탕 치며 무뚝뚝한 평안도 말씨로 닥아세웠다.
   《네래 조선놈씨종자가 옳아? 네래 조국은 조선인거다. 알갔어? 》
   그가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나오자 원래 성미가 강퍅했던 나도 맞불을 놓았다.
《당신 일본순사처럼 왜 꿰닥거리는거요. 내 혈관속에서도 조선인의 피가 흐르는것 은 사실이요. 나의 두삼촌도 조선전쟁판에서 희생되였소. 당신만 애족하는줄 아는가? 그러나 나는 월경분자가 될수 없단말이요.》
    나는 그와 더 싱갱이질 하고싶지 않아서 문을 박차고 나와버렸다. 그후로 다시는 그 운동장에 얼씬거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일이 나의 운명에 흑점이 될줄이야.
    1957년 봄부터 중국대지에 운동바람이 휘몰아쳤다. 정풍운동, 대명대방, 대변론 등 정치기후가 대번에 어두워졌다. 하루강아지 범무서운줄 모른다고 노루꼬리만한 지식을 가지고 학술계에 번져지는 대변론에 뛰여드는 어리광대들이 학교에 나타났다. 그때까지 나에겐 무슨 정치견해란것이 없었다. 일년이 지나서 대약진이란 회오리 바람까지 몰아쳐서 그야말로 눈이 어질어질해 날지경이 되였다.
    그해 겨울방학에 고향마을에 갔다. 공산주의대문에 들어섰다고 생산대마다 공동 식당이 생기고 집집의 굴뚝들에 밥짓는 연기가 사라졌다. 누룽지 한덩이도 얻어먹을 수 없었고 가마목은 싸늘했다. 대대로 물려왔다는 쇠가마도 공사의 용광속에서 녹아 버렸다. 나는 고향마을에서 많은것을 보았고 많은 이야기들을 들었다. 어린 소견에도 너무 황당한 짓거리들이 진행되고있었다.
    학교에 돌아온 나는 내가 보고 듣고 느낀 점을 친구들에 말하고 그들의 소감을 들으려했다. 그러나 그처럼 믿었던 친구들속에서 고발자가 생기여 마침내 입덕을 톡톡이 입게 될줄 어찌 짐작이나 했으랴, 대변론에 입한번 뻥긋하지 않았건만 세폭의 붉은기를 모독하고 자산계급사사을 전파하려 날뛴 새끼우파로 전락되고말았다. 후에 안일이긴 하지만 원래 학교에 내려온 우파명액을 채우지 못해 끙긍거리던차에 나를 우파로 몰아부쳤던것이다.
거기에 조선사람과 내통하여 나라를 배반하려 하였다는 죄명에 백계로씨야처녀와 련애하는 반동조직성원이란 얼토당토않는 죄까지 씌우다보니 드디어 공안국에 체포 되였다. 예나제나 사람들은 헐뜯는다. 참말을 하면 참말을 했다고 징벌하고 말이 없으면 그래서 또 음해한다. 적당하게 말해도 무슨 죄명을 씌울지 누가 알랴, 참으로 황당한 세월에 황당하게 비틀어진 내운명이였다.
    밤에 갑자기 숙사에서 체포되다보니 올랴는 물론 어머니에게 소식을 전할새도 없었다. 나는 미결수감방에 갇혔다. 이때나 그때나 새 죄수가 들어서면 로죄수들이 행패부리는 악습이 있었다. 일반 형사범도 아니고 쉬쉬한 말이 도는 죄수인데다가 햇 내기 청년인지라 더 만만하게 여기는 눈치들이였다. 원래 근육질의 체질인다가 주먹 쓰기도 좀 하는지라 떨리지는 않았지만  중과부적이여서 은근히 겁나기도 했다.
    그런데 하느님의 안배였던가 아니면 어떤 전생연분이였던가 거기서 올랴의 아버지를 만나게 될줄은 정말 꿈밖이였다. 내가 올랴네 집에 몇번 놀려다니며 정분을 틔운데 로어까지 웬간히 하였던지라 나를 극히 좋게 보아오던 그였다. 나에겐 더없이 반가운 만남이였지만 슬픈 조우이기도 했다. 그렇게 순박해보이던 그가 언제 무슨 죄로 체포되였단 말인가? 그러나 다른 뭇귀가 무서워 자세히 캐물을수도 없었다.
    아무튼 덕지가 땅크같은 사람인데다가 백계군대의 군관이였던 그인지라 잰내비 같은 조무래기동양인들을 아주 우습게 보는터였다. 그러나 어중이떠중이들이 모인 곳인데가 타민족들이여서 늘 경각성을 괴우고 밤잠을 설치던차 자기가 잘 아는 조선 족청년이 곁에 있게 되자 그도 마음이 든든해지는 모양이였다.
나도 그의 보호를 고맙게 여기지 않을수 없었다. 내가 아무리 힘꼴이나 쓴다해도 암암리에 해꼬지하자면 어려운 일도 아니다. 그속에 우리 《꼬리방즈》들에게 선입견 을 가지고 공연히 으르렁거리는 악질들도 있었으니 말이다. 우리는 묵결을 맺았고 매사에 서로를 감싸고 돌았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 공연히 트집을 잡히지 않게 하기 위해 말을 적게 주고받았다. 어느 날 한밤중, 모두가 잠에 곯아떨어진후 그가 내곁에 다가와 귀속말을 했다.
 《젊은이, 내가 어째서 갇히게 되였는가는 자세히 말할수 없고 또 말해도 소용이 없는 일이기에 간략해두고 부탁이 하나있소. 아무래도 저사람들이 나를 쉽게 내놓을 것 같지를 않소. 원인은 묻지 마오. 내 력사가 워낙 복잡하게 얽혀있소 》
그러면서  내귀에 대고 간청하듯 말했다. 자기의 외동딸인 올랴도 나를 좋아하고 자기도 훌륭한 청년이라고 믿으니 사위삼아 아들삼아 되여 올랴를 평생 지켜달라며 눈물이 글썽해 하였다. 나는 무어라 말할수 없이 가슴이 옥죄여서 올랴아버지의 손을 으스러지게 잡았다. 그는 품에서 절반짜리 손수건을 꺼내여 건네주면서 이것이면 올랴에미도 마지막 부탁인줄 알고 허락할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마음씨좋은 로씨야로인의 당부를 실현할수 없었다. 비록 몇달후 내 일이 다행스럽게도 해명되였지만 결국 로동개조대상으로 군마창에 끌려가게 되였던것 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 올랴에게 편지를 하였지만 공안국에서 중도 뜯어보고 깔아두었는지, 아니면 올랴가 회답을 했는데 창부에서 깔아두었는지 모를 일이였다. 일체를 잃은 후에도 미래는 의연히 존재한다지만 나와 올랴와의 인연이 다시 맺어질 길은 그렇게 묘연해졌다.   
                                    

                                                   2. 인생고 제1막

 
                             ㅡ 인생은 일종 징벌이기도 하고 고험이기도 하다. ㅡ
 
    여기는 쏘련과 흑룡강을 사이둔 고장이지만 지역우세때문인지 여기저기 군대농장이 많이도 개설되였다. 내가 소속된 군마사양장은 대흥안령에서도 오지인 까막골이라 부르는 곳이였다. 원래는 일본관동군의 기병대본영이였던곳이다. 여기서 나의 기구한 운명의 길이 시작되였고 청춘이 엉망으로 되였다. 말몰이군으로, 군마훈련원으로 되여 7년세월이 흐르는 동안 애숭이청년으로부터 서른살을 저만치 바라보는 로총각 으로 변하였고 정신궁전도 철저히 무너져버렸다.
    신주대지를 쑥밭으로 만들었던 10년광란이 이 오지에도 살벌한 흑풍을 몰아왔다. 사람마다 열에 들떠서 위대한 망발질에 정신없이 뛰여들었다. 그들로 말하면 일종 성스러운 마음에 숭고한 사명을 안고 짓부시고 족치고 죽이고 하는 모험들에 열불이 나있었겠지만 내 보건대는 다시없는 광란이였고 문화비극이였다.
    나는 더구나 죽어지내야 했다. 자신을 믿는것은 자기 인생에 대한 긍정이라고 누군가 말했지만 북대황의 거친비바람속에서 타고난 개성도 색바래였고 범이라도 잡을것같던 청춘의 패기도 사라져버렸다. 오직 넋이 없어져버린 빈 육체를 끌고 다니 는 산송장이였다. 그러나 이렇게 그저 죽어갈수는 없다고 몇번이고 이를 사려물었다.
한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나쁜 상태는 자기에 대한 인식과 파악을 잃어버렸을 때이다. 나는 현실을 접수해야 했고 생존철학을 터득하려고 밤마다 잠을 설치였다. 이중인격인이 되는것도 꺼리지 않은만큼 귀신을 보며 귀신말을 하고 사람을 보면 사람말을 하며 자신을 철저히 감추고살기로 작심했다. 지금 내 처지에서 일체 곤난에 대응되는 가장 좋은 약으로 위장술밖에 더 있겠는가? 매사에 근신해야 한다.
생활의 본질은 불안이며 세상만사는 늘 사람들의 뜻과 상반대로 돌아가는 법이 다. 나는 인내로써 내 운명의 신을 달래려고 작심했다. 참아야 한다. 참자. 인내가 언젠가 꽉 막힌 내 미래의 쪽문을 열어줄지 어찌 알랴, 준엄한 생활은 이내야말로 지혜의 맏아들이라는것을 처처에서 증명해주었다.
    참을수 없는 인생고를 겪는 나에게는 세월이 너무 더디였지만 어느덧 8년세월 을 저믈었다. 그해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던 어느 날, 머리에서 발끝까지 군장을 한 병사아닌 한무리 병사들이 붉은기발을 휘날리며 군마창에 들어섰다. 머나먼 상해에서 재교육을 받으러 이 광활한 천지에 군림하게 된 홍위병맹장들이였다. 비록 계속혁명 의 투지로 앙양된 모습들이였으나 내눈에는 가엾다고 보면 너무 당돌해 보였고 불쌍 하다고 보면 너무 유치해보이는 애숭이들이였다.
    무산계급사령부를 목숨으로 지킨다며 혁명의기 충천하여 종횡무진하며 모든것을 들부시던 맹장들, 이른바《잡귀신》을 잡아내는데 혁혁한 공로를 세우고 천안문광장 에서 붉은 태양의 사열을 받으며 감격의 눈물에 목이 메여하던 그들이 동북변강에도 막바지인 여기 대흥안령골짜기에 떨어질줄 생각이나 했을가? 신격화된 영원한 태양의 만수무강을 외우며 중국의 풍운을 휘여잡는다던 그들이 결국에는 영광스럽게 재교육 의 광활한 천지에 진군하게 되였으니 말이다.
    우리 군마사양장에 농업대대장의 명언이 있었다. 지식청년들이 여기 북대황의 만두를 먹는것도 혁명세례를 받는것이란다. 그가 자기의 명언대로 지식청년들에게 더 많은 만두를 먹이려고 그랬던지 새로 황무지를 개간하려고 날치였다. 새초밭에 불을 질렀는데 그만 방화선을 치지 않은탓으로 료원을 불길로 타번지던 혁명의 불길이 그만 산으로 치달올라 산불로 번지게 되였다. 불은 그래저래 진화되였지만 재주를 쓰다가 메주를 쓴 격으로 된 농업대대장은 방화범으로 수갑을 차고 수인차에 실려 가고 말았다. 참으로 황당한 세월에만 있을수 있는 흑색유모아였다고나 할런지…
    쏘련기계화부대가 일단 쳐들어온다하면 한시간도 안되여 득달한다는 국경지대여 서 유사시에 수천마리의 군마를 안전지대로 피신시키기 위한 준비를 게을리하지 않고 있었는데 봄파종이 끝나면 방목원들이 말들을 훈련시키기에 눈코뜰새없이 보내야 한다. 게다가 전시구호아래 집집에 방공굴까지 파놓고 있어서 인심은 늘 뒤숭숭했다.
    첫날 그 대오속에 죽지부러진 새처럼 애처로운 모습을 하고섰던 가냘픈 소녀 애가 어찌 그리도 눈길을 끌었던지 모를 일이였다. 사람에게 무슨 륙감각이란게 있다더니 그래서인지 첫눈에 그애의 신상이 은근히 안심되지 않았다. 후에 알았지만 진소연이라는 그애는 자본가의 딸이여서 또래들중에서도 못생긴 새끼오리였다.
    그래서 종래로 처녀애들에게는 시키지 않는 말몰이군으로 내려보내였다. 다행히 내가 있는 방목소조에 배치된 그애에게 저도모르게 왼심을 쓰게 되였다. 동병상린이 라고 무리에서 떨어진 백조같은 처녀애를 남몰래 보호해주고 싶었고 그만큼 신경을 써가며 보살펴주어야 한다고 심장이 시키고있었다. 그렇게 나와 두번째 녀자와의 인연이 시작 되였다. 역시 황당한 세월에 있을수밖에 없는 황당한 인연이랄가.
   소연이는 요란한 미인은 아니였지만 특유한 매력을 가진 녀자애였다. 황포강물을 마시고 자란 상해처녀들에게만 있을수 있는 희고 보드라운 살갗의 얼굴은 버들잎같이 갸름하였는데 웃을때마다 폭폭 패이는 보조개는 그저 있을때에도 웃는듯한 한쌍의 흑진주같은 커다란 눈과 너무도 잘 조화되였다. 아직 어린 나이건만 조숙을 말해주듯 남달리 붕긋한 가슴은 뭇사내들의 눈길을 끌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 시기의 류행으로 단발을 하고있어 더구나 금방이라도 포르르 날아나 버릴것같은 파랑새를 련상시켰다.
    그 어떤 반발심에서 지어낸것인지 몰라도 소연이는 함께 배치받아온 다른 두 처녀애들보다 활발하였고 무척 소탈하게 처사하고있었다. 원래는 성분이 좋은 녀자애 들은 처음엔 위생소 아니면 식당같은 후근부나 채소대에 배치하는게 관례였다. 소연 이는 자진해서 우리 방목대에 왔다고 하였다. 고생을 사서한다고 핀잔삼아 말했더니 자기같은 문제아는 밑바닥에 묻혀사는게 제일 안전하다고 제법 도리있게 해석했다. 소연이는 학교때 흔해빠진 홍위병에도 못들고 짓몰리며 살아왔단다. 그에게 무슨 선택권이 있었으려만 아무튼 부모의 덕을 단단히 입고있었다.
    군마창에서 제일 하바닥일이 방목원이다. 방목대는 낮과 밤이 따로 없이 수백필 의 말들에게 밤풀을 뜯긴다. 이슬풀을 먹인다하며 헛눈 한번 팔세라 잘 지켜야 하는 책임이 막중한 일이다. 처음 한두달은 말타기에 신이 날지 모르나 진종일 말잔등에서 내릴새가 없이 맴돌아쳐야 한다. 천고마비의 호실절인 초가을에는 더구나 벌판에서 살다싶이 해야 하는데 승냥이무리가 무시로 출몰하는 이 고장에서 섬약한 처녀가 말떼을 몬다는것은 그야말로 불가사의한 일이였다.
    도시에서 곱게 자란 상해처녀들에게 말타기를 배워주기란 쉽지 않았다. 비록 불 을 깐 순한 말들을 골라주었지만 원체 성깔스러운 숫말들에게 정을 붙이는 일부터가 어려운 일이였다. 강냉이 이삭이나 홍당무우를 입에 물려주며 머리와 귀서껀 두루 쓰다듬어주기. 맑은 물로 물을 먹이며 말을 다독여주기, 손바닥에 알소금을 놓아 핥 아먹게 하여 주인의 체취에 익숙하게 하기 등 예비훈련을 시키고 어느 정도 친숙해진 말에게 자갈을 물리기. 안장을 얹기 등을 세심하게 가르쳤다.
    말배때끈이 풀린다거나 느슨해지면 인명사고가 날 일이다. 그래서 각별히 명심 하게 하고 승마할 때 말등자에 어떻게 발을 디밀고 어떻게 발끝에 힘을 주어야 하는가 하는 여러가지 기본규률을 지키도록 엄격하게 요구했다. 다른때 같으면 어림도 없으련만 말을 처음 태울때는 허리를 안아 올려주거나 엉덩이를 받쳐주면서 련습시켰지만 수집음많은 계집애들도 당연한 일로 받아들였다. 그것은 이미 어지간히 친숙해졌다는 의미이기도 한것이다. 소연이는 오히려 그렇게 하는것을 더 좋아하는 듯 하기도 했다. 물론 나의 직감이긴 하지만도 말이다.
    말타기는 확실히 예술이 수요된다. 말이 달리기 시작하면 들뛰는 말의 동체의 률동에 따라 박자를 맞추는것이 가장 중요하다. 말이 네발뜀을 할 때에는 발끝에 힘을 주면서 될수록 말잔등에 중력을 주지 말아야 한다. 말이 힘겨워하는것은 둘째치고 말잔등에 궁둥방아를 찧을라치며 오장이 뒤집어지는듯 메스꺼워 배겨내지 못한다. 가령 그런 우직한 주인이 엉덩이를 말잔등에 깔고앉으면 말도 허리의 충격이 귀찮아서 내동댕이치기도 한다. 말은 등허리힘이 약해서 잘 아껴주어야 한다. 
    공든탑이 무너지랴, 한달이 안되여 소연이는 물론 두처녀애들도 능란한 기마수가 되여 방목임무를 얼마든지 담당할수 있게 되였다. 방목장에서 처녀애들에게 가장 난처한 경우는 숫놈들이 무시로 배아래에서 커다란 방망이를 꺼내들고 웅성을 과시 하는 때이다. 내가 아무리 신경을 써서 재때에 경고를 주지만 촉기빠른 처녀애들은 볼것을 다보고있었고 어떤 련상속에 제무안에 취해 얼굴을 붉히고들 있었다. 그러나 말못하는 짐승들에게 어찌 일일이 도덕교육을 할수 있겠는가, 그러다보니 처녀애들도 심드렁하게 보고지내기 마련이였다.
    아무튼 말떼를 몰고 방목하기란 힘겨운 일이다. 여름에는 불볕에 타고 등에의 성화에 시달려야 하고 저녁이면 모기에게 죽어지내야 한다. 종자말들은 우리에 너무 오래 가두어두면 오금에 녹이 쓴다고 눈이오나 비가오나 한바탕 달리기를 시켜야 한다. 시베리야 찬바람이 뼈속을 파고드는 엄동설한에도 말떼를 몰고 풀숲에서 맴돌 아쳐야 한다. 노루꼬리만한 해가 어느새 서산에 꼴깍하면 어둠이 깃드는 심산속은 아무리 담큰 대장부라해도 소름이 끼치게 한다. 어둠이 깃들기 바쁘게 여기저기서 시퍼런 눈을 번뜩이는 승냥이들이 말떼주변을 감돌며 호시탐탐하기때문이다.
    총소리가 울리고 화약냄새가 풍기면 꽁무니를 빼지만 대신 마을에 내려가서 닥치는대로 가축을 물어간다. 이런 무시무시한 사지판에 애어린 도시청년들이 빈하 중농의 재교육을 받는 영광을 누리게 된것이다. 하지만 이미 리성을 잃어버린 시대인지라 군간부들도, 전사들도 지식청년들도 저마다 목숨으로 혁명사령부를 보위 한다며 웃음속에 칼을 갈았고 남을 잡아서 득세하려고 피눈이 되여있었다.
    세상은 뒤죽박죽이 되였어도 자연의 섭리는 내 알바가 아니라는듯이 거친 북대황 에 봄은 봄마다 어김없이 깃든다. 여기 흥안령기슭에는 5월에 접어들어서야 얼음이 녹기 시작하여 봄이 늦게 드는 대신 가을은 부른듯이 일찌기 찾아와서 9월중순이면 흰눈꽃이 날리기 시작한다. 그래서 말먹이로 연맥을 심는외에 겨울에 청사료를 보장하기 위해서 콩과 옥수수도 심는다. 
꽁꽁 얼어붙었던 흥안령기슭에 따스한 바람이 불기시작하더니 묵은 덤불속에서 새싹이 움트는 봄날이 서서히 다가오고있었다. 그런 경사로운 봄날 뜻밖에 하늘이 무너질듯한 불상사가 생겼다. 내가 속한 방목대에서 말한필이 잃어졌던것이다. 만약 말이 강을 건너 월경하는 날엔 그날 방목한 사람이 뛸데없이 반혁명 감투를 쓰고 감옥행차를 해야 한다. 그날 하느님이 보살펴주었는지 나는 사양실당번을 서다보니 들판에서 벌어진 일에 끌려들 일은 없었지만 수백마리 말중에서도 내가 제일 아끼던 준마였던 깜장말이 없어졌다. 가슴이 섬찍했다.
    그놈은 워낙 성깔이 몹시 사나워서 노상 제멋대로 뛰여다니는 놈이였다. 한 보름 지나면 관례대로 불알을 까기로 되여있는데 그놈이 그만 암내를 맡고 정처없이 떠나 버린것이 틀림없었다. 자칫 사랑하는 조국을 배반하고 강을 건너 수정주의나라에서 복무할수도 있었다.  말떼를 몰고나간 방목군이 몇이 되지만 약한 다리에 침질이라고 불똥이 소연에게 덮씌워질게 뻔했다. 소연이가 땅에 엎어져 엉엉 우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뿌직뿌직 찢기는듯 했다. 소연이의 운명이 결딴나게 생긴것이다.
     그저 강건너 맥을 놓고 소연이를 얼없이 지켜볼 일이 아니였다. 나는 이왕의 경우를 돌이켜보며 깜장말의 행적을 추측해 보았다. 문득 어떤 예감이 뇌를 스치였다. 우리 2분대에서 사오리쯤 떨어진 골짜기 너머에 말짱 암말만 사양하는 3분대가 생각났던것이다. 그놈이 봄바람을 타고 실려온 암냄새를 맡고 색시사냥을 간게 틀림 없었다. 나는 저녁을 먹을념도 없이 어둡도록 풀언덕에 엎드려 그냥 서럽게 우는 소연이에게 슬며시 다가가 위로에 위로를 거듭했다    
  《쑈진. 울지말아라. 이 아저씨가 날이 밝으면 찾으러갈게, 응? 그런다고 말이 이 밤에 절로 돌아올것도 아닌데 어서 저녁이나 먹어라.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이 있지? 간대루야 무슨 사단이 생기겠니? 내 말을 들어라. 어서,》
    그러나 겁에질려 불안에 떨며 흐느끼는 소연이는 막무가내였다. 그렇다고 너무 오래 붙잡고 싱갱이질하다가 남의 눈에 들키는 날엔 공연히 일을 버르집어놓을수 있었기에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리지 않을수 없었다. 비록 침소에 돌아왔지만 간간히 들려오는 소연이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한잠도 잘수 없었다. 어떻게든 말을 찾아오고 소연이를 구해야 했다. 타민족이지만 인정상으로도 의지가지없는 처녀애가 너무 안스러웠다. 남들이 딴 생각이 있어 발벗고 나섰다고 오해하여도 물러설수 없는 일이였다. 내 량심이. 내 뜨거운 가슴이 용서하지 않을 일이였다.
   닭이 세홰를 치기전에 슬며시 침소를 나와서 힘세고 날랜 나의 적토마에 안장을 얹었다. 길량식이랑,물이랑, 소금이랑 초저녁에 준비해두어서 크게 지체될 일이 없었다. 길량켠에 수북히 자란 밀의 싱그러운 냄새가 페부를 찔러 잠기를 말끔히 가셔주었다. 날이 희붐히 밝는듯싶더니 뒤이어 동녁하늘이 붉게 타오르고있었다. 이리저리 기웃거리느라 천천히 걷기던 말의 배때기를 걷어차며 급보려 달리려는 순간 난데없는 말발굽소리가 내 발목을 잡았다. 얼결에 돌아다보니 소연이가 먼지를 일구며 달려오고있지 않는가? 소연이도 자지않고 있다가 나의 뒤를 밟은게 분명했다.
   《따거, 떵이덩. 》
    몇리길을 단숨에 달려온듯 말은 뜨거운 입김을 내뿜고 있었고 소연이의 얼굴도 한껏 상기되여 있었다. 다른 처녀애들은 나를 다 아저씨라 불렀지만 소연이는 단둘이 있을때면 《따거》라고 불러주었다. 그럴때마다 야릇한  느낌이 들군하는 나였다.
   《아니, 소연이! 어쩌자구 따라나선거요. 얼마나 돌아다녀야 할지 모르는 길인 데. 어서 돌아가우, 나 혼자라도 꼭 찾아올테닌 이 따거를 믿어, 응, 》
   《아니예요. 따거를 혼자 고생시킬수는 없어요. 원래 저의 일인데…아니 더 말하지 말고 어서 가자요. 쨔쨔!》
내가 더 무어라 말할새 없이 소연이가 말에 채찍을 안기면 질풍같이 앞질러갔다. 말타기가 제법인 소연이의 뒤모습을 대견스럽게 바라보던 나는 할수 없이 뒤따랐다.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3분대에 거의 이르렀을 때 3분대의 말들이 한골짜기를 가득메우고 이슬맺힌 풀들을 뜯고있었다. 높은 산등성이에 올라가서 네눈이 뚫어지라 고 살폈으나 깜장말은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다시 말을 천천히 몰아 방목군에게 다가갔다. 들판에서 서로 면목을 터두 고 지내는 사인지라 찾아온 사연을 말했더니 희한하게도 3분대에서도 어제 암말 두 필이 새여나가서 자기네 분대에도 일대 소동이 벌어졌다고 하였다. 일종의 안도감을 느끼며 왕청같은 궁리가 빠져나왔다. 녀자가 바람이 나면 젖먹이도 가슴에서 떼여놓 고 야밤도주 한다더니 이놈의 말들도 발정나면 앞뒤를 가리지 않는게 분명했다.
    봄이 되면 암말들이 먼저 발정난다. 제때에 욕구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궁둥이를 나무에 비벼대며 방구까지 빵뻥 뀌다가는 제방귀에 놀라 네굽을 안는데 그럴때면 아무리 날랜 말도 따라잡기 힘들어한다. 말을 들어보니 깜장말이 암말을 꾀여내여 어느 아늑한 곳에서 제재미를 보는라 여념이 없을것이 분명했다. 나는 소연이더러 먼저 돌아가라고 타일렀지만 기어이 따라간다고 우겨댔다.
  《소연이, 내 말 들어라. 먼저 이 3분대에서도 먼 여러 골짜기까지 훑어보아야 하고 없으면 온 대흥안령숲속이라도 헤매야 할것이다. 며칠이 걸리든간에 승냥이가 먹다 남긴 말대가리라도 찾아가지고 가야 한다. 우리가 둘다 말까지 타고 말없이 분대를 떠났으니 지금쯤 야단법석일거다. 네가 먼저 가서 오해를 풀어주어야지.》
   그러나 죄꼬만 계집애의 고집은 꺾이지 않았다. 할수없이 말에서 내린 나는 망태를 끌러서 물병이랑 만두랑 꺼내여놓고 대수 요기나 하자고 하였다. 소연이도 배가 고팠던지 먹자는데는 반대가 없었다. 만두를 씹으며 다시 설복하려 들었지만 외려 제쪽에서도 망태를 헤쳐보이면서 따거보다 더 잘 준비해왔노라고 자랑질이였다. 그리고 죽어도 살아도 함께 한다며 눈물을 찔끔 쥐여짰다. 그모습에 가슴이 찡해나서 무어라 더 말할수 없었다. 우리는 묵결속에 눈길을 마주치고 말잔등에 올랐다.
    여기 흥안령 가근방의 여러골짜기는 손금보듯하는 나는 길을 잃을 념려도 없이 말발굽이 찍힌 곳이면 이리저리 다 찾아다녔다. 그렇게 천방지축 쫓아다니다가 흑룡 강기슭에 이르렀을 때는 하루해가 자기의 긴 려정을 마치고 서서히 이국땅의 산봉에 걸터앉으려 하고있었다. 일출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안겨주고 락일은 철학적 사색과 묵상을 안겨준다던가? 나는 때아닌 명상에 잠겼다.
   소연이도 바야흐로 지려는 저녁해를 넋없이 바라며 처연한 모습을 짓고있었다. 나는 슬며시 소연이의 심정을 읽어보려 애썼다. 석양에 물든 그녀의 모습은 그 자체 가 하나의 정묘한 조각상같았다. 그린듯 굳어져있던 그녀가 내 눈길을 의식했던지 갑자기 돌아서며 그윽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불꽃같은 무엇이 작열하고있었다.
    나는 나의 그 파랑눈을 내놓고는 그렇게 정나미도는 녀자의 눈길과 마추진적이 없었다. 가슴이 후두두 뛰였다. 온몸에 피가 설설 끓어올랐다. 그러다 자신을 찾은 나는 스스로를 호되게 꾸짖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무안에 취해버린 나는 슬며시 눈길을 돌려 흑룡강을 굽어보는체 했다. 로씨야 사람들이 아무르강이라 고쳐부르는 흑룡강의 호한한 물결우에 고기잡이 발동선들이 대안으로 돌아가고있었다. 석양을 실은 고기배들의 모습도 한폭의 수채화였다.
    다시 강을 따라 앞장서 달리며 강기슭을 살피던 나는 저도 모르게 환성을 질렀다. 세놈의 말이 볼일을 다보고 여흥을 즐기듯이 사이좋게 풀을 뜯으며 갈개고있었던것이 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나는 굴러떨어지듯 말에서 내려 풀숲에 주저앉았다. 소연 이도 환성을 지르며 말에서 굴러떨어져 달려오더니 무작정 내가슴에 와락 안겨들었다. 그리고 소리없이 흐느끼였다. 나는 저도 모르게 그녀의 들먹이는 어깨를 감싸안았다. 우리는 그렇게 아무 미동도 없이 오래오래 부등키고 앉았다.
    한시름 놓은 우리는 해저문 흑룡강기슭에서 환희로운 저녁만찬을 시작했다. 웃음을 되찾은 소연이의 얼굴은 보름달처럼 환해졌다. 보기가 너무너무 좋았다. 우리는 말들을 놀래우지 않기 위해 잠시 지켜보기만 하였다. 마음의 여유를 찾은 나는 소연에게 흑룡강의 특산인 따마하라는 고기얘기를 했다.
    따마하는 산란기가 되면 빨간 눈에 심지를 켜고 바다에서 강을 따라 물밀듯이 올라온다. 지금이 바로 따마하을 잡는 호시절이다. 큰놈은 열댓근이나 된다. 따마하 는 잔뼈가 없고 속살이 빨간데 맛은 고래고기 사촌이라 한다. 바다물속에서 커가지고 다시 고향인 흑룡강에 돌아와 산란하고는 흰배때기를 뒤집은채 바다를 향해 무리로 떠내리는 명물이다. 내 말을 잠자코 듣던 소연이가 몰래 춤을 꼴깍 삼키고있었다.   
    나는 싱그레 웃으며 기회가 있으면 몇마리 잡아서 먹여준다고 약속했다. 그러면 서 소연이를 떼놓고 혼자 여기까지 왔더면 얼마나 외롭고 쓸쓸했을가 생각하며 그녀 의 고집이 얼마나 고마운지 코마루가 시큼해났다. 내가 자리에서 일자 소연이도 말없 이 일어섰다. 어둡기전에 말들을 몰고 귀로에 올라야 한다는것을 그도 느낀것이다.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저녁안개가 산허리에서 감돌고있었다.
   우리는 용케도 세마리 말을 얼리고 닥쳐 귀로에 올랐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말에 대해 강의했다. 개나 소들은 자기가 온 길은 꼭 기억하고있어 길을 잃는법이 절대 없다. 개는 코로써 길을 찾아가고 소는 퉁방울같은 눈으로 경물을 찍어두었기에 길을 외끼지 않는다. 그러나 말은 어느 짐승보다 영물이다. 말은 앞발족 안에 메추리알만한 혹이 각질속에 싸여 붙어있는데 그게 눈의 작을 한다. 그래서 길바닥을 환히 내려다보며 발밑에 무엇이든 밟아죽이는 법이 없고 네굽을 안고 달릴때에도 걸채여 넘어지지 않는다.
    말은 개보다 더 충성스러워 주인을 배반할줄 모른 짐승중에 군자이다. 몇년씩이 나 갈라져있어도 에미말은 자기 배속에서 나온 자식을 알아본다. 혹시 새끼말이 제에 미를 몰라보고 외람되게 올라탔다가는 에미에게 물어뜯기거나 뒤발로 쫓아버린단다. 하건만 못된 숫말은 눈이 멀기시작한다고 한다. 말이 일단 사람과 정분이 나면 생사 관두에 주인을 구해낸다. 나는 내가 본 쏘련영화 《용감한 사람》의 경개를 말해주면 서 말의 충성을 증명해보였다.
    내가 깜장말을 극구 찾아나선것은 사이비한 애착심도 있다. 로총각이 다 되도록 따스한 말을 나눌수 없는 나로서는 이 성깔사나운 깜장말이 친구였고 련인이기도 했다. 새벽에 떠날때는 어디서 호랑이밥이나 되지 않았는지 해서 몹시 걱정했다. 그러나 3분대에서도 두필의 말이 달아났다는 말을 듣고 저으기 안심했다. 적어도 외롭게 혼자 떠돌지 않을것이였으니까.
    이 흥안령오지에 운명이 처박히면서 여지껏 속심을 나눌 친구도 하나 없는 나였 다. 말떼를 풀밭에 몰아놓고 풀언덕에 큰 대자로 누우면 먼산에 가물거리는 아지랑이 에 내마음도 더없이 간질거리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러나 나같은 감투쟁이에게 누가 감히 련정을 느낄것인가? 속절없이 세월네월이 가는것을 한탄하며 못다하는   사나이 가슴에 수없는 못을 박고 또 박아왔을뿐이였다.
    어둠이 이 끝없는 대흥안령산맥을 완전히 휩싸버렸다. 앞에서 건정건정 걸어가던 세필의 말이 갑자기 뒷발질하며 울부짖는것이였다. 우리가 타고있던 말들도 두다리를 떨고있는게 알렸다. 어느새 따라붙었는지 무시무시한 시퍼런 불들이 번쩍이고 있었다. 소연이가 낌새를 채고 새된 비명을 질렀다. 나는 얼결에 안장에 걸어두었던 나무하는 칼을 꺼내들고 말에서 뛰여내렸다. 길기에 나무를 잘라낸후 누더기솜옷소매를 떼내여 홰불을 만들었다. 그리고 꽁무니에 차고있던 술에 적셔 불을 달았다.
    주위에 어둠이 훌쩍 물러섰다. 소연이가 어느새 내 뒤에 붙어서서 발발 떨고 있었다. 내가 겁을 먹고 주밋거리면 소연이는 기절하고말것이다. 용기가 있으면 액운도 물리칠수 있는것이다. 나는 무서운 소리를 지르며 불방망이 쳐들고 승냥이들 쪽으로 내달렸다. 불방이에 질겁한 승냥이들 이 저만치 퇴각했다. 잠시 숨을 돌린 나는 소연에게 홰불을 맡기고 허리에 감았던 바줄로 부들부들 떨고있는 말들의 발목 을 돌아가며 묶어놓아 제마끔 내뛰지 못하게 하였다. 일은 삽시에 끝났다. 아마 고도 의 긴장감이 폭발력을 재촉했을것이다. 
    소연이를 말배때기에 딱 붙어서있게 하고 승냥이들쪽으로 둥그렇게 불을 질렀다. 그렇게 세곳에 불을 달아서 승냥이들을 가둘잡도리를 보여주었다. 아닌게아니라 역어 빠진 승냥이들은 사람이 한창 함정이나 덫을 놓는것으로 착각한것같았다. 그것도 활활 타오르는 불함정이라고 생각되였던지 비실비실 물러서는듯 싶더니 두목이 먼저 돌따서서 내빼자 졸개승냥이들도 우르르 골짜기아래로 도망쳐버렸다.
    사색이 다 되여버린 소연이를 안아서 말잔등에 앉힌후 내 말곁에 바싹 다가서 몰게 하였다. 혼쭐이 난 세마리 말도 고분고분 따라섰다. 깜장말은 더구나 말꼬리를 물듯이 하고 졸졸 묻어왔다. 나는 수시로 뒤를 돌아다보았지만 승냥이무리가 다시 쫓 아오지 않았다. 그제야 등줄기가 후줄근해진것을 느꼈다. 나는 어스름 달빛을 빌어 발을 급보로 달리였다.
    마침내 군마창이 저만치 굽어보이는 산등성이에 도착했다. 삼태성도 기울어지고 초생달이 깜박깜박 조으는 별무리를 거느리고 새벽으로 가고있었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을 자청해 한것은 오로지 소연이를 위한것이였고 깜장말에 깃든 정때문이였다. 내가 그렇게 위험한 밤길을 헤치며 말을 찾아와도 결코 한마디 치하도 없을것이다. 나는 소연이를 먼저 숙소로 쫓아보냈다. 말들을 일일이 말뚝에 매여놓고 숙소로 돌아온 나는 나무토막이 쓰러지듯 무너져내렸다.
    나의 숙소란 마구간 한켠에 칸을 막은 사양원실이다. 따스한 물이나마 따라줄 사람도 없고 다리를 쭉 펴고 누울 따스한 온돌방도 아니다. 옛날 지주집에 머슴을 살던 홀아비도 나처럼 처참하지 않을듯 싶었다. 두눈에서 뜨거운 물방울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이 지상에는 책과 녀인의 가슴과 말잔등, 세가지 락이 있다고 유럽의 어는 명인이 말했다. 말잔등에서 누리는 락은 나에게 남아돌지만 칠정륙욕을 가진 칠척장한에게는 녀자의 가슴에서 누리는 락이 무엇보다 소중한것이 아니랴, 
    내 나이 아직 스믈여덟밖에 안되였는데도 청년애들이 우파아저씨라고 부르니 얼마나 복창이 터질 일인가? 이 열악한 환경에서 육체고생보다도 마음 고생이 그만큼 나를 겉늙게 했는지도 모르지만 그들로 말하면 적당한 호칭도 떠오르지 않았을수도 있었다. 그런들 어떠랴. 불구덩에서 사는 사람 연기내를 마다하랴,
    나는 말떼에 익숙할뿐 사람축에 들지 못한다. 가슴속에서 부글댄것이 지금 생각 하면 사회불만이였는지 모른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문화혁명까지 이토록 치렬하니 내 인생은 여기서 볼장을 다본것같다. 비록 32원이란 보잘것없는 월급이지만 나를 개조시킨다는것 자체가 너무나 황당하고 억울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여기 나의 보금자리에서만 굴릴수 있었으니 죽지 못해 사는 내 목숨은 또 얼마나 너절한가?
   이 오지에서 할빈멋쟁이가 완전히 쿠리가 되였다. 여름이나 겨울이나 헌솜옷을 걸치고 말잔등에서 세월을 보내는 나에게는 봄날의 잔디풀밭이 다시없는 보금자리 였다. 봄바람이 스쳐가는 봄날의 언덕에 누워서 정처없이 떠도는 흰구름에 나의 사랑 과 그리움을 실으면 저도 모르게 아리랑이 흘러나온다. 속태우실 어머니와 어린 동생들을 생각하며 일절을 넘기였고 올랴를 생각하며 두번째 절을 부른다. 
    나는 다른 노래를 모른다. 배우고싶지도 않았다. 내 입에서 붉은태양의 노래가 나와서는 안된다. 그게 오히려 내마음을 편하게 했을수도 있었다. 한창 폼을 내며 살던 할빈시절, 올랴와 함께 불렀던 《모스크마교외의 밤》도 가사를 잊어버렸다. 기억하고있는 노래란 아리랑뿐이다. 혼자 멀리까지 말을 몰고가서는 말잔등에서 가슴 이 터지라 부른 아리랑, 그렇게 서럽게 부르고 부르다가 말목을 부여안고 통곡한것도 몇번이였는지도 모른다. 내가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면 한가로이 풀을 뜯던 말들도 무슨 귀신의 울음소리로 들렸는지 그 커다란 눈들을 씀뻑거리곤 했다.
    새벽늦게야 굳잠에 빠졌던 나는 늦게 눈을 떳다. 밖에서 왁자지껄 고아대는 소리에 깨여났던것이다. 3분대 방목원들이 나에게 눈인사를 보내올뿐 멀고 먼 흑룡 강기슭에까지 가서 세필의 말을 찾아왔다는 희소식이 총부의 스피카에서 울려나왔 지만 일등공신인 이 우파분자의 이름은 물론 진소연의 이름도 없었다. 의례 그러려니 하고 미리 마음을 챙기고있은 나이지만 가슴에서 불뭉치가 굴러대는것을 참기란 정말 힘겨웠다. 나는 씁슬한 울분을 삼키며 마구간으로 들어가버렸다.
    한바탕 땅치며 통곡하고 싶었다. 그러나 울수는 없는 일이다. 웃음마저 어떤 의미로 해석되는 살벌한 비상시국에 눈물이 가당한가? 눈물마저 흘릴곳이 없다는것은 인간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사람이라고 유석이라는 작가가 말했던지 모르겠다. 가령 사람들 등뒤에 숨어서 나를 지켜보던 소연이의 이슬머금은 크고 까만 눈을 의식 하지 못했더라면 나는 버럭버럭 소리라도 질렀을지 모른다.
    선행도 상응한 보답을 받지 못하면 덕행으로 평가되지 않는 법이다. 그 망할놈의 세월에는 더구나 그랬다. 그러나 운명이 영영 비틀어질번했던 한 애어린 처녀을 곤경에서 구해주었다는 그 인간적인 장거만이라도 스스로 만족할수 있었다. 내가 제정신이 아니였던지 그 모든 사람들이 미쳐있었던지 모른다. 어찌되였든 나에게는 나갈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내게는 세상을 보는 눈이 필요없다. 내가 볼수 있으면 또 한번 실족하여 넘어질것이다.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과신하는데서 대세를 잘못 보고 더욱 기로에 빠져들수 있다. 살아있다는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한다.
 

                                                     3.  초지에서의 조우

 
                              ㅡ  인간은 운명에 의한 불행은 벗어날수 있지만
                                   스스로 가한 불행에는 구원의 방법이 없다. ㅡ
   
    해마다 여름한철은 종마창에서 가장 분망한 계절이다. 말복전에 청초를 베여두어 야 하기때문이다. 일손이 턱없이 부족하여 산넘어 벌방의 사원들도 이 골령에 밀려들 어 벌판의 여기저기에 풍막을 쳐놓고 풀베기부업을 하는데 한 반달가량은 흥성흥성하 여 사람사는 냄새가 나는것 같다.
    고무바퀴뜨락또르가 들어설수 있는 곳은 기계로 풀을 베여눕히지만 육중한 기계 를 받아당하지 못하는 습지쪽은 사람들이 갈구리같은 로씨야식 낫으로 베여눕혀야 한다. 그렇게 베여놓은 청초를 쇠스랑이로 끌어모아 단을 묶어서 버섯모야으로 옹기 종기 무져놓는다. 흥안령기슭의 초지에는 여기저기 천연함정이 기다리고있기에 걸음 마다 조심해야 한다. 아무데나 시름놓고 발을 들여놓았다간 대번에 발목이 잠기면서 누런 물이 괴여오른다. 몇천년을 그렇게 썩고 고여서 사람이나 짐승을 저승으로 보내 기기 십상인 사지판이였다.
    청초베기가 한창 고조에 달하였던 어느 날 점심무렵이였다. 온몸이 땀에 후줄근 해지고 속에서 열불이 타올라서 견딜수 없었다. 나는 송화강에서 익힌 물재간을 믿고 꽤나 넓어보이는 늪에 풍덩 뛰여들었다. 인츰 물위로 솟구치려했건만 어쩐 일인지 자꾸만 밑으로 빨려들어가는것이였다. 내가 뛰여들면서 괴여오른 감탕물에 눈과 코가 대번에 꽉 막히면서 숨이차고 눈앞이 캄캄해났다. 안깐힘을 써서 한쪽눈을 뜨고보니 기슭이 어렴풋이 보이였다.
    풀뿌리가 썩어 말오줌보다 더 역한 냄새를 풍기는 감탕물이 입안에 넘치는것도 아랑곳할새 없이 젖먹던 힘까지 내여 솟구쳐올랐다. 요행 발이 감탕에서 빠져나왔다. 그러나 정신이 아찔해 냈다. 온몸에 맥이 다 흘러나가는듯 했다. 아무리 허우적거려 도 도무지 앞으로 헤여나갈수 없었다. 나는 리지를 잃을번했다. 참으로 짚오래기라도 집는 심정으로 물우에 뜬 풀줄기를 휘여잡으며 버둥질쳤지만 허사였다.
    그러나 서른살전에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수는 없었다. 이 역시 운명의 장난질인 지 모른다. 운명앞에 두손들고 사신을 맞을수도 없거니와 자기 젊은 생명을 두고 락엽같은 정서를 가진다는것은 너무나 비겁한 일이였다. 절망에 반항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생의 욕구를 가지고  희망의 언덕을 바라보며 박투하려는 그 심정은 비장한 법이다. 나는 물속에 갈아앉지 않으려고 이판사판 물장구를 치였다.
    누군가 소리치는듯 싶더니 사람들이 오구작작 몰려들었다. 그러나 너무 돌연적인 상황이여서 구원의 손길을 뻗칠생각이 미처 나지 않았던지 누구하나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내 입에서는 《사람살려요》소리가 나가지 않았다. 아니, 이미 입안 에 더러운 물이 가득차서 소리조차 나갈수 없었다. 혹시 사람들의 눈에는 진구렁에 빠진  황소를 보는 그런 마음이였는지 모른다. 이 사회에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우파분 자라는 불청객이야 죽건말건 그들에게는 그저 생사박투의 단막극으로 보였 을수도 있다. 분명 그런것 같았다. 생의 욕망보다 더 강한 어떤 반발심이 욱 치밀어올랐다.
    심사는 심사대로 멀쩍하였지만 나는 점점 기진맥진하는것을 절감하며 오열을 토해냈다. 눈물인지 더러운 오수인지 내 눈언저리를 즐벅하게 만들었다. 눈앞에 흐릿 해졌다. 내가 최후로 모지름을 쓰려고 작심하는 찰나에 난데없는 바줄이 날아들었다. 진소연이 마차에서 바줄을 얻어내여 나에게 뿌려준것이였다. 방목하다가 말을 잘 듣지 않는 말에게 올가미를 던지는 기술을 배워준것이 은을 내였다. 나는 허허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다가 구명대를 얻은 사람처럼 요행 바줄을 거머쥐고 헤여나왔다. 소연뒤에서 함께 방목대에 내려온 두처녀가 바줄을 잡아당기고있었다.
    목숨은 겨우 구해서 언덕에 올라와보니 이게 또 무슨 일인가? 팔다리는 더 말할 것 없고 사타구니에까지 흉측스러운 찰거머디들이 다닥다닥 들어붙어 곁사람들이 질겁할지경이였다. 나는 껄끄러운 새밭에 딩굴면서 팔다리나 사타구니에서 피를 빨아 대는 놈들을 겨우 털어버렸으나 등허리에 찰싹붙어 살을 파고드는 놈들은 어떻게 털어낼 방도가 없었다. 먼발치에서 강건너 불구경하듯 하던 사람들이 인제 욱 몰려와 서 동물원의 원숭이가 재롱을 피우는것을 보는듯이 구경하며 희희닥거렸다.
    이번에도 소연이가 나를 구해주었다. 다른 사람들의 눈길을 아랑곳없이 나의 등허리에 거마리들을 찰싹 찰싹 때려서 하나하나 해결해주었다. 거머리가 붙었던 자리가 콩알처럼 불어났다. 아프고 쓰리여 참을수 없었다. 소연이가 옆낭에서 보드랍 게 빻은 소금을 꺼내여 내 가슴과 잔등을 문질러주었다. 다른 처녀애들이 무어라 손가락질하며 수군댔다. 난생 처음 닿아보는 녀자의 따스하고 보드라운 손길에 괴로움이 대번에 가셔지는듯 하였고 형언할길 없이 짜릿한 감각이 온몸에 퍼졌다. 
    전통관념이 도사리고 있는 그 세월에 처녀의 몸으로 한 로총각의 몸에 손길을 대인다는것부터 불가사의한 일이였고 더구나 사람마다 온역신을 피하듯 하는 존재에 게 따뜻한 정을 안고 다가선다는것은 정치적으로 위험한 일이 아닐수 없었다. 인간의 정을 전해주는 처녀의 손길을 피부로 느끼며 나는 내 한목숨을 구해준 이 상해처녀를 목숨을 걸고라도 끝까지 지켜주리라 심장으로 다졌다. 그번의 생사를 건 사건은 우리 둘 사이에 성스러운 묵결을 맺아주었다.
    이듬해 어느 쾌청한 봄날, 새로 무어진 우리 방목조의 여섯명이 처음으로 머나 먼 방목길에 올랐다. 날씨가 잘해주는 때라 우리는 멀리 새로운 풀판을 찾아가기로 합의를 보았다. 저마다의 배낭에는 만두랑 짠지랑. 넉넉히 채워져있었다. 나는 누구 도 모르게 낙시줄과 지렁이통, 작은 냄비를 챙겨넣었다. 말떼의 앞장에는 언제나 깜장말이 서서 기세좋게 달리였다. 소연이가 신명이 났던지“푸른 하늘에 흰구름 뜨고 초원에 말 달리네”라는 몽고노래를 불렀다.
    창림림업국과 경계를 이루는 골짜기에는 들꽃이 만개해서 가관이였다. 처녀들은 신이나서 이리 달리고 저리 달리며 깔깔댔다. 나도 방목이 아니라 처녀들을 배동 하여 들놀이를 떠난듯한 기분이였다. 말떼들도 저쪽에 맛나는 풀들이 있는것을 알기 나 한듯이 잘도 달리였다. 소연이는 내곁을 떠나지 않고 생글거리며 말을 달리고있었 다. 군모같밑으로 흘러나온 가랑머리가 봄바람에 보기좋게 날리였다. 그가 연신 보기 좋게 채찍소리를 내자 산새들이 하늘에 날아오른다.
    세패로 나뉘여 말떼를 공제하며 목적지로 향하는 우리는 마치 천군만마를 거느리 고 돌격전에 뛰여드는 기분이였다. 해마다 이맘때면 찾아오는 골짜기이지만 오늘 따라 어이 이리 기분이 싱숭생숭해나는지, 내가 배양해낸 방목원처녀들의 말탄 모습 이 대견해서일가? 그럴수도 있다. 그러나 8년 세월 이 골령에서 청춘을 썩이고있었 지만 내 가슴에는 청춘의 희망이 살아서 꿈틀대고있다는 그것을 놀랍게 재확인할수 있은것이다. 그렇다. 생명은 그저 호흡인것이 아니라 줄기찬 활동인것이다.
    내 비록 자유인은 아니여도 심장이 돌이 된것이 아니다. 인생길에서 뜻하지 않게 맞다들린 조우는 한바탕의 폭우이고 운명은 곧 구멍이 숭숭한 우산이라고나 할가, 그리고 사랑은 그 우산을 곱게 곱게 기워가고…나는 과연 사랑을 하고있는것일가? 언제부터인가 소연이의 아릿다운 모습이 로총각의 가슴에 서서히 들어서고있다는것을 느끼였을 때 그것이 행우인가? 불행인가? 나로서는 종잡을길 없는 수수께끼로 남아있 다. 나는 자유롭던 랑만의 시절을 회상하지 않기로 마음을 도사려먹은지 오래다. 불행할 때 행복했던 과거를 회상하는것보다 더 큰 불행이 없다는것을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있었다.
     내가 제좋은 생각에 잠겨있을 때 소연이의 새된 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머리를 들어보니 말떼들이 방향을 잘못잡고 있었다. 《말머리를 돌려라!》조장의 명령이 쩌렁 울려왔다. 나와 소연이는 서쪽산등성이를 향해 질풍같이 내달렸다. 먼지구름을 일구며 제일 앞에서 달리는 말은 예이제 말썽꾸러기 깜장말이였다. 나는 소연이를 데리고 산등성이를 내리여 말떼앞을 가로질러 나갔다. 서쪽관목림에 들어서기전에 말 떼를 막아 동남쪽으로 돌려야 했다.
    채찍소리가 연신 하늘을 찢었다. 우리가 엄엄하게 막아서면 위압을 느끼고 오른 쪽으로 방향을 돌릴줄 알았는데 고집이 센 깜장말이 서쪽으로 돌파구를 열려고 앞발 을 쳐들며 울부짖었다. 말이란 놈은 눈동자가 다로 째져서 무슨 물건이나 크게 보인 다. 그래서 말의 눈에는 사람이 전선대처럼 높게 보이여 무서워하는것이다. 그런데 망할놈의 깜장말은 우리를 우습게 보고있었던것이다.
    나는 소연에게 서쪽을 막아서라고 지시하고 말떼속으로 돌진해서 깜장말의 대가 리를 호되게 후려쳤다. 그제야 겁이 났던지 몇번 대가리를 흔들어대더니 동남쪽으로 내달리였다. 그제야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였지만  한편 속이 께림직해났다. 그도 그럴것이 내가 사정없이 휘두른 채찍에 깜장말이 상하지 않았는지 하는 불길한 생각이 가슴을 움켜쥐였던것이다.
    말몰이군들이 말을 후려칠때 제일 겁나하는것이 말이 눈을 다치는것이다. 일단 말의 눈을 못쓰게 만들면 농장에서 쫓기는것은 둘째치고 무슨 징벌을 받을지 모른다. 그러면 지방에 역마로 팔아버리게 된다. 숨이 한줌만해서 말을 달리던 나는 방목지에 도착하여 풀을 뜯는 깜장말한테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령리한 놈은 나에게서 맞은 봉창이나 하려는듯 궁둥이를 돌리며 뒤발로 일격을 가할 잡도리였다. 그런대로 그냥 다가가서 강냉이 이삭과 소연이가 내주는 홍당무우로 말을 얼리였다.
    먹거리를 탐낸 깜장말이 한번 용서한다는 셈인지 투레질하면서 슬금슬금 다가왔 다. 대가리를 쓰다듬어주며 살펴보니 다행으로 귀도 째지지 않았고 눈도 상하지 않았 다. 말은 정은 정대로 받아주었다. 참으로 될성부른 준마였다. 한시름을 놓은 나는 제자리에 풀썩 들어앉아버렸다. 기분좋은 봄날에 기분잡친 일이라고 할가?
   처녀애들은 오래동안 말등에서 싱갱이질했건만 내리려고 하지 않고 그냥 맴을 돌고있었다.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도 그럴것이, 남자들은 한동안 말을 달리 고나면 돌출부가 안장코숭이에 짓쫗이면서 대단히 불편하지만 녀자들은 말을 타면 은밀한 곳이 자연적으로 애무를 받게 되여서 걷잡을수 없이 흥분된다고 한다. 기분이 날듯이 좋아지고 사지가 나른해지지만 그냥 행복감에 잠겨있는것이다.
    방목조내에서도 육담으로 소문난 늙은 총각은 평생 홀아비로 되였지 몽골녀자는 거저 준다해도 가지지 않는다고했다. 어릴때부터 말잔등에서 굴러먹고 커서도 그냥 말잔등에서 살다싶이 하다보니 거기가 더없이 굳어져서 아무 멋도 없다고했다. 그래 서 몽골족녀자들은 한족녀자들처럼 아이를 무우뽑아내듯 출산하지 못한다는것이였다. 그리고 서양녀자들은 그렇게 가둑나무껍질처럼 될가봐 말을 타도 한쪽으로 비스듬히 걸터앉는다고 했다. 참 아는것도 많은 괴짜친구였다.
    각설하고, 방목장에 멀지 않은 곳에 흑룡강으로 흘러드는 지류가 한갈래 있었는 데 낚시질이 식은죽먹기였다. 나는 조장의 허락을 맡고 강가로 내려갔다. 내가 지렁이 미끼를 끼운 낚시를 던져넣자마자 고기가 물려나왔다. 미처 미끼를 바꿀새 없이 분주히 돌며 련해련속 버들치들을 낚아올리는데 어느새 뒤를 밟아왔는지 소연이 의 달콤한 입김이 뒤덜미를 덥히고있었다. 한참 구경만하던 그가 한번 해본다고 낚시 대를 빼앗았다. 여기 눈먼 고기들은 햇내기낚시군을 가리지 않는다. 내가 버들가지를  꺾어서 낚시대를 하나 더 만들다보니 한시간도 안되여 한냄비를 꼭 채우게 낚아냈다.
    내가 고기를 많이 낚을줄 알고있던 조장은 벌써 삭정이랑 가득 준비해놓고있었 다. 녀자애들이 국을 끓이는 사이에 우리는 버들치들을 가득 구워놓았다. 상해판에서 어찌 이런 원시적이면서도 목가적인 야외만찬을 할수 있었으랴. 그들은 좋아서 어쩔 줄 몰라했다. 나도 공연히 입맛이 당기였다. 이 산골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꽃다운 쳐녀애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몰랐다. 그때는 먼후날에 아름다 운 추억이 될수 있다는 마음의 여유가 있을수 없었지만 하여튼 좋기만했다.
    방목에서 돌아온후 늘 한적하던 사양실이 녀자들의 웃음소리로 넘치였다. 소연이 네가 자랑질 했는지 휴식일이면 녀자애들이 대여섯씩 몰려와서 말타기를 배워달라고 졸라대였다. 그애들고 그 희한한 기분상태를 체험해보고 싶어서였는지 몰라도 아무튼 말타기열성이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그렇게 자주 사양실로 오다보니 해괴한 장면들도 많이 구경하게 마련이다.
    말하자면 발정난 숫말들이 그 희한한 명물을 빼들고 용을 쓸때면 녀자애들은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서도 볼것은 다보며 깔깔대였다. 때로 말들이 처녀들한테 다가 오기나 하면 나죽는다고 비명을 지르며 내 등뒤에 딱 붙어서서 호들갑을 피웠다. 소연이가 자연히 기술지도원이 되고 내가 고문이 되였다. 그런데 결국 긁어서 부스럼 을 만든셈이 되였다. 회색옷을 입은 우파분자가 붉은 후계자들을 잘못 인도하는가고 창부에서 조사단이 내려왔다. 그러나 해박한 처녀애들이 나를 감싸고 돈바람에 화가 복이 되였다.
    며칠후 스피카에서 상해처녀들이 위험도 무릅쓰고 휴식날 말타기를 배우고있는데 이는 전쟁준비을 위해서 좋고 앞으로 유사시 수천만마리 말을 전이시키는 준비사업도 된다는것이였다. 또 한바탕 닥달질 당할줄 알았는데 내가 시키지도 않은 좋은 일을 한셈이였다. 물론 나에 대한 칭찬은 일언반구도 없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창부 지도부에서는 숱한 말안장과 자갈, 말굴레를 각분대에 내려보내면서 더욱 많은 기마수들을 훈련해내라고 지시했다. 나는 정식기마훈련원이 되였고 소연이가 조수로 되였다. 소연이가 위신이 하늘만큼 높아졌다. 나도 십년만에 처음으로 몰래 음미 해보는 영광이였다.
 
                                        4. 인간성은 다 죽지 않았다.
 
                               ㅡ 바라지 않았던 일이 바라지 않던 일보다
                                     더 자주 생기는게 인생마당이다. ㅡ
   
    또 일망무제한 북대황 곳곳마다에 황금물결이 넘실거리는 가을이 왔다. 대추수회 전을 앞두고 군마창지도부에서 사흘휴식을 선포했다. 그저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는 성미인 나는 힘깨나 쓰는 말네필을 메운 마차에 상해처녀들을 가득 싣고 개암을 따러 산으로 향했다. 처녀애들이 웃고떠들어대는 복새판에 어느새 내 뒤에 붙어앉은 소연 이가 대생산패담배 한갑을 웃옷주머니에 슬며시 밀어넣었다. 가슴이 뜨거워났다. 그것은 담배한갑이 아니라 순결한 이민족처녀애의 포근한 정이였다.
    나는 내가 잘 알고있는 개암밭에 이르러 처녀들을 부리워놓고 주의사항을 몇마디 주고는 산으로 올려보냈다. 나는 마차에 붉은기를 높이 꽂아놓아 집합점을 잃지 않도록 잡도리해놓고 개암뜯으러 나섰다. 나는 따온 개암을 미리 보아두었던 소연의 자루에 가득 채워주고나서 소연이가 사준 담배를 피워물었다. 가끔씩 사서 피우던 담배였거만 그렇게 향기로울수가 없었다.
    이번엔 흥안령의 특산물인 원숭이버섯을 캐여 소연이할아버지에게 선물로 보내려 고 말을 타고 먼산으로 갔다. 이 버섯은 산속에 고기라고 칭송받는데 돼지고기와 섞 어서 볶으면 돼지고기같고 닭고기와 볶아도 어느것이 닭고기인지 가려내기 어려울만 큼 특유한 버섯이였다. 그만큼 캐기가 수월치 않았다. 하지만 내 정성이 산신령을 감동시켰는데 나무숲을 얼마 헤매지 않고도 호함지게 생긴놈을 여섯송이나 캐였다.   
    원숭이버섯은 한곳에서 발견하면 마당삼처럼 홀로 돋지 않는법이다. 그래서 나는 새해에도 찾아올것을 생각하고 여러곳에 표적을 해놓았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상할세 라 적삼을 벗어 버섯을 싸메고 산을 내렸다. 처녀애들은 주머니마다 개암을 가득 채워놓고 나를 기다리고있었다. 하얗던 손들이 개암물이 들어 퍼렇게 되였지만 잔뜩 신들려있었다. 돌아오는 겨울에 집에 돌아가지 못하더라도 집에 부쳐보낸다고 설레발 을 놓으며 들까불어댔다. 나는 그 모습들을 보며 인제 이 처녀애들만큼 숙성했을   녀동생을 생각하며 눈굽을 적시였다.
    풍년이 든데다가 날씨마저 잘해주어서 밀가을도 제때에 마치고 청사료랑 채소랑 다 걷어들였다. 총부마당에서 풍년가을을 경축하는 대회가 열렸다. 꽹과리 북소리가 동북변강의 하늘에 메아리쳐갔다. 저녁에는 영화도 세편이나 돌리였다. 영화를 돌리 는 그 긴긴 시간을 소연이는 내곁에 붙어앉아서 쏙닥거렸다. 나만 공연히 민망스러 워졌다. 하건만 소연이는 남들이야 수군거릴것도 아랑곳하지 않는듯 나와 접근하는것 을 거의 숨기지 않고있었다. 참으로 인정있고 도담한 녀자애였다.
    고난이란 평등을 낳는다. 고난을 겪고있는 사람을 동정하는것은 녀자들이 천사들 과 같이 가지는 감정이다. 또 다른 시점에서 처녀의 동정심이란 사랑하겠다고 맹세한 하인이라고 볼수도 있다. 그것이 확실하다면 언제 시작하든 내가 그 동정심을 사랑으 로 승화시킬수도 있을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 소연이의 진속을 확정할수 없다. 하지만 나같은 사람에게는 그저 좋아하고 생각해주는 아릿다운 녀자가 있다는것만도 얼마나 좋은 일인가?
    나는 소연이가 찌들어가는 내 생명에 고목봉춘같은 소생의 입김을 불어넣고 있다는것에 목이 메였다. 나는 확실히 소연이의 말없는 그 힘에 받들려 자칫 무너져 내릴 내 생명을 오를처럼 활기차게 지탱해왔는지도 모른다. 어둠속에서 소연이의 따스하고 보드라운 손이 내 북두갈구리같은 손안으로 슬며시 들어왔다.가슴이 후둑후둑 뛰고 온몸이 후끈 달아올랐다. 생각같아선 녀자애를 설설 끓어번지는 가슴 에 꼭 그러안아주고 싶었다. 아니 이 복마전같은  세상을 피해 말잔등에 싣고 천리 고 만리고 도망쳐서 우리들만의 락토를 찾아가고싶었다.
   국경절을 며칠 앞둔 어느 날이였다. 생각밖에 별명이 쥐새끼라는 상해지식청년이 사양실로 찾아들었다. 그 애의 손에 큼직한 들가방이 들려있었다. 돈이 급히 수요된 다면서 싸게라도 처리해달라고 간청하듯 청탁해왔다. 내가 후과를 념려하여 거절하자 거의 울듯이 매달리며 따거까지 개여올리는데는 밀막아버릴수 없었다. 만약 이 일을 처리해주면 평생 은혜를 잊지 않겠다고 맹세까지 했다. 보아하니 사정이 급한것같았 다. 나는 울며겨자먹기로 응낙하고야 말았다.
   가방을 헤치고보니 모두 침직물이였다. 세수수건 하나도 천표를 내고 사야 하는 판에 천표도 받지 않고 팔아치우겠다는것을 보아서 이만저만한 사연이 아닌것같았다. 나는 선걸음으로 가방을 들고나가서 농장원들의 숙소나 집에 찾아가서 어렵사리 다 처리해버렸다. 천표도 내지 않고 베개수건이나 침대보같은것을 산 집에서는 딸애의 지참품을 마련했다고 좋아들 했다. 그런데 물건은 적고 임자는 많은 탓에 세수수건 하나 사지 못한 한 사람들이 입귀가 뒤틀리며 수군덕거리더니 이튿날로 창부에 고해 바치고 말았던것이다. 진실이 장화를 신고있는 동안 헛소문은 온 농장을 돌아다녔다. 우파분자가 어디서 후무려온 물건인지 몰라도 암거래를 하다가 들통이 났다는것이다.
    그날 밤중에 2분대의 간부 몇이 민병련장의 령솔하에 나의 숙소로 들이닥쳐 수색을 벌렸다. 내가 사연을 말하며 해석하려 하였지만 한켠에 밀치고는 쥐구멍마저 샅샅이 뒤지였다. 아무리 수색해봐야 홀아비냄새가 나는 이부자리에 헌옷가지들밖에 없었다. 일기책을 뒤져냈지만 몽땅 조선글인지라 그대로 땅바닥에 동댕이치고 한참 짓밟고는 휭하니 나가버렸다. 나는 공연한 짓을 했다고 후회하였다. 정직한 마음의 단 하나의 약점은 남을 쉽게 믿고 동정하는것이였다.
    이틑후 2분대 구락부에서 투쟁대회가 열렸다. 사면에 《지식청년재교육방침에  마수를 뻗친 우파분자를 타도하자. 》《조선수정주의개다리를 타도하자》등 요란한 구호들이 나붙어있었다. 그런 엄엄한 분위기속에서 한메터나 되는 고깔모자를 쓰고 나서니 두다리가 다 후들거렸다. 사달은 쇼펑이 국경절에 고향집에 방문할 청가를 받지 못하자 상해로 도망쳐버린데서 크게 번져진것이다. 기차표를 살돈이 모자라니 집에서 가져온 물건을 팔아서 보태였다고 한다.
    내가 그저 심부름을 하고 받은 돈도 일호차 착이 없이 고스란히 돌려주었는데 내가 무슨 죄란말인가? 그러나 입이 열개라도 말할수 없는 준엄한 상황에서 그저 당 할수밖에 없다. 평시엔 힘꼴깨나 쓰는줄 알고 감히 어쩌지 못했던 본지방지식청년들 이 이번 기회에 앙갚음하려고 윽윽 벼르고있었다. 옆구리에 2백근짜리 밀마대를 끼고 3층집높이만큼한 밀두주에도 씽씽 올라가는 장골인지라 한둘이 달려들어도 별로 버거울것 없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그런데 내 등뒤에 체육학교의 선수단출신이라는 왕복래, 진대성을 비롯한 상해지 식청년들이 8대금강처럼 버티고 선것이 못내 마음에 걸리였다. 그들의 얼굴은 본지 청년들에 못지 않게 살기등등했던것이다. 그런데 이상한것은 까닭없이 나를 미워하던 할빈패들이 단박이라도 내대갈통을 까부시지 못해 우둘대면서도 감히 행패를 부리지 못하는것이였고 상해청년들은 입으로만 타도를 부르며 기세를 돋굴뿐이였다.
    비판대회가 끝나서 사양실에 돌아온 내가 의기소침해서 한숨을 쉬는데 소연이가 도적고양이처럼 새여들었다. 그애의 말에 의하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은것은 상해청년들이 단합해서 은근히 보호해준탓이라고 알려주었다. 후에 안일이지만 그들을 동원한데는 소연이 힘이 컸던것이다. 소연이가 나를 두번 살려준것이다. 사연을 알게 된후 나는 그런 투쟁은 열번 당해도 두려울것 없다고 배포유해졌다.
    쇼펑의 사정도 듣고보니 후회할 일이 아니였다. 그의 어머니가 급병에 들어 림종 전에 막내아들의 얼굴을 보고죽겠다고 해서 전보를 보내왔는데 총부에서 인정사정을 봐주지 않았던것이다. 효성이 지극하다는 그가 어찌 도망치지 않을수 있으랴, 같이 온 친구들도 자기가 가지고있던 물건들을 내놓았다고 한다. 그런 사정을 다 알고있으 면서도 하나를 허가하면 련쇄반응이 일어나서 수백명의 요구를 막아낼수 없을것으로 단정하고 각박하게 굴었던것이다.
    한창 호미난방이던차 나를 잡아내여 간접적으로 으름장을 놓았던것이고 그러지 않아도 창부지도부나 지방세력들에게 반감을 가지고있던 상해청년들이 공공연하게 나서지는 못하고 소연의 호소대로 음으로 양으로 나를 보호하기로 단합된것이였다. 나는 평시에 상해아이들에게 별로 호감을 가지고있지는 않았지만 이번 일을 거치고 나서 마음이 확 바뀌였다. 그들도 소연이를 통해서 내가 그저 우파도 아니고 량심이 있는 조선청년이라는것을 알게 되였고 차차 친구로 지내게 되였다. 참으로 말들보다 못한 인간들이 인간성을 말아먹고 있는것이 아니랴, 나는 그저 깜장말의 목을 그러안 고  소리없이 울었다.
 
                                                       6.렬화속에 생사련
 
                                     ㅡ 고난은 참된 인간이 되여가는 과정이다. ㅡ
 
    동토지대의 겨울은 일찌기 찾아든다. 첫눈이 소복히 내리였다. 아침에 일어나보 니 북극의 풍광 천리에 얼음얼고  만리에 백설이였다. 꿩사냥에 알맞춤한 날이였다. 총이 없어 네발가진 짐승은 못잡아도 꿩사냥은 불이 번쩍나게 잘 했다. 나는 동남산 에 올라가 콩밭을 여기저기 쓸어내고 미리 준비해두었던 콩알들을 뿌려놓았다. 콩알은 물론 청산가리를 속에 넣고 잘 다듬어놓은 미끼들이였다.
    얼마후 잔뜩 굶주렸던 꿩들이 무리지어 내렸다. 콩알을 주어먹은 꿩들이 하나들 주정을 하기 시작했다. 한식경이 안되여 열다섯마리나 자루에 잡아넣었다. 사양실에 돌아오자바람을 꿩의 배를 가르고 내장들을 말끔히 걷어냈다. 조금만 늦추어도 청산 가리가 온몸에 퍼지면 큰 일이 나는것이다. 나는 개털모자를 펄럭이며 공소사라 향했 다. 꿩을 팔아 필수품서껀 서너가지 사고 술병도 채웠다.
    밤, 창밖에서는 죽을놈은 나오라고 눈바람이 기승을 부렸다. 고독한 나그네처럼 잠잠하던 바람이 마침내 노호하기 시작한것이다. 때국이 흐르는 남비에 꿩고기탕을 끓여놓고 한정없이 술잔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삼라만상이 동장군의 호령속에 움츠러 들고 오직 바람만이 이 동토지대를 휩쓸며 요동친다.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앉았 노라니 또 다시 슬픔이 슬금슬금 몰려들었다. 나는 슬픔의 덩이를 눈덩이처럼 굴리며 예이제 내 운명과 고통에 몸부림쳤다.
    가슴속에 파고드는 고통은 넋마저 얽어매는 쇠사슬이다. 고통은 인간을 생각하게 만든다. 사고는 인간을 현명하게 만드는것인가? 고통속에서 얻어진다는 지혜는 인생을 견딜만한것으로 만든다고도 한다. 정말 그럴가? 이 우주에 어떠한 폭풍도 잠잠해 질때가 있는 법이지만 문화대혁명인지 광란인지 하는 이 지랄은 언제면 끝이 날건가? 나에게 있어서 고통의 보수가 경험이 될수 있단말인가? 참을수 없는 이 지리 한 아픔은 갈수록 피가 림리하다.
    오래동안 아팠다는것은 과연 가벼운 상처라는 설명인가? 나는 알고있다. 고통을 이겨내려면 죽음보다 더 강한 용기가 수요된다는것을, 과연 나에게 그것을 이겨낼 신념이 어디서 생길수 있는가? 운명은 개연성을 비웃는다. 《운명에 굴복하는 얼빠진 자들이여, 슬픔이 있으라》라는 명구가 뇌리에 맴돌이친다. 나에게 신념이 살아있다 면 누구도 나를 넘어뜨리지 못할것인가? 그 신념이 과연 나를 태양에도 가는 인생길 에 매한걸음을 비쳐줄수 있을것인가? 상념은 상념을 불러오고 그 상념은 마침내 흐느 낌과 눈물을 몰아올뿐이다. 나는 술한병을 굽내고 그자리에 폭 꼬꾸라지고 말았다.
    북위 51도선에서 살아도 내 마음의 위도는 북극권에 그어졌으니 내내 얼어붙어 녹을줄 모르건만 다섯달씩이나 행패부리던 지독한 동장군도 물러가고 또다시 새 봄은 이 땅에 군림하기 시작했다. 사방 백리를 차지하고도 성차지 않은지 지도부에서 올해 또 땅을 개간한다고 설쳐댔다. 인간이 자연을 너무 혹독하게 닥달질 하면 그 보응을 받게 되는 법이다. 방화선도 제대로 치지 않고 불을 놓기에만 급급해 한 탓으로 벌판 에 놓은 불이 화광이 충천해서 산으로 치달아올랐던것이다. 밀파종도 방목도 다 중지 시키고 진화작업에 총동원되였다.
    그날 내가 방화지휘부에 지원물자를 부리우고있는데 스피카에서 긴급통지를 내고 있었다. 아침에 동서풍이 불길을 몰아 흥안령기슭으로 달리던것이 점심때부터 서북 풍으로 바뀌면서 군마창의 뒤산으로 불길이 돌아섰다는것이였다. 짐을 다 부리웠지만 곧장 2분대로 돌아갈수 없음을 직감했다. 키를 넘는 풀숲으로 양밸같이 오불꼬불한 좁은 길로 마차를 몰고가다가는 산불에 갇히기 십상이였다.
    말이란 워낙 불만 보면 떡 뻗치고서서 엉덩이에 칼이 들어가도 죽여줍시사하고 움직이지 않는 동물이였다. 할수 없이 말세필과 마차를 방화지휘부창고지기에게 맡기 고 물에 젖은 마대와 만 두를 넣은 자루를 안장에 비끄러매고 나의 적토마에 올랐다. 얼마가지 않아 산등성이에 연기가 자욱한것을 보았다. 불길이 휩쓸고 지나간 길을 따라 말을 달리노라니 발굽이 뜨거워난 말은 네굽을 안았다.
    산등성이에 도달하였지만 말은 제자리에서 맴돌아칠뿐 더는 앞으로 나가려하지 않았다. 무슨 영문인지 알수 없었다. 자욱한 연기속에서 저녁해가 어렴풋이 보이였다. 말은 두귀를 쭝깃거리며 두발을 높이 쳐들더니 연신 효용했다. 말을 진정시키며 귀를 기울여 동정을 살피노라니 서쪽켠에서 무엇이 울부짖는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밤이면 흔히 만나는 승냥이들이지만 온산에 불길이 타번지고 해도 아직 넘어가지 않았는데 승냥이가 울부짖을리 없었다.
    말잔등에 거의 올라서다싶이 하며 방향을 잡지 못해하는데 산아래 새밭쪽에서 아우성소리가 들려오는듯 싶었다. 찬찬히 여겨보니 타래쳐오르는 연기속에서 한무리 사람들이 이쪽으로 뛰여오는 모습이 보이였다.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침에 소연이가 불끄기대오와 함께 북쪽산으로 갔다는 생각이 뇌리를 쳤다. 게다가 들려오 는 소리가 녀인들의 새된 울부짖음소리가 분명했다. 나는 더 생각할 겨를이 없이 젖은 마대와 만두주머니를 끌러내린후 말고삐를 말목에 친친 감은다음 말배때기를 죽어라고 냅다질렀다. 호된 충격을 받은 말은 얼결에 네굽을 안고 오던길로 들고뛰였다. 말은 이제 더 근심할것 없었다.
    나는 저만치 뒤에서 불기둥을 솟구치며 쫓아오는 불길앞에서 허둥지둥 내달리는 녀자들을 똑똑히 볼수 있었다. 하루강아지 범무서운줄 모르고 혁명열의 하나만 안고 불끄기에 나선 상해처녀들이 분명했다. 한초도 지체할수 없었다. 나는 무작정 산아래 로 내리뛰였다. 오직 애어린 녀자애들을 불속에서 구해야 하겠다는 일념을 안고 걸음 에 바람을 일구었다. 래일은 삼수갑산을 가더래도 유일한 방도를 댈수밖에 없었다. 즉 맞불을 놓는것이였다. 그리고 녀자들쪽으로 천방지축 달려갔다.
    짐작했던대로 진소연네 짝패들이였다. 나를 발견한 소연이는 내 목에 와락 매달 렸다. 그러나 그의 응석을 받을새가 어디 있는가? 혼비백산해 갈팡질팡하는 녀자애 들을 돼지몰듯 불길이 내놓은 커다란 공지에 들이몰았다. 뒤미처 불길이 들이닥쳤다. 그러나 기세사납게 달려오던 불길은 량옆으로, 머리우로 비껴지났다. 여느때 같으면 얼굴에 먼지가 좀 끼였다고 킬킬대던 녀자애들이 연기속에서 서로 부등켜안고 엉엉 울어댔다. 홍보서를 넣고다니던 해방군가방들은 어디 팽개쳤는지 손에는 싸리나무 가지들만 달랑 들고있었다. 위험한 고비는 넘겼다. 숨막힐듯 매캐하던 더운 공기도 차츰 물러갔다. 그대신 어둠이 짙게 깔리기 시작했다.
    나는 진종일 굶었을 그들에게 만두를 하나씩 나누어주었다. 처녀애들은 부끄러움 도 계급의식도 잊은듯이 내 가슴에 매달리며 엉엉 울어댔다. 그러는 녀자애들을 가볍 게 다독여주느라니 나의 눈에서도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젊은 생명들을 구했다 는 한없는 기쁨에서였으리라. 마른 만두나마 요기를 말린 처녀들이 조금 진정되자 귀로에 올랐다.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서 타나남은 짐승의 똥들에서 가느다란 연기가 피여오르고 있었다.
    불에 맞아 밑둥이 거멓게 그을린 봇나무를 만나자 칼로 삼각형모양으로 껍질을 벗겨냈다. 맑은 물방울들이 맺거니 덧거니했다. 나는 우스개삼아 봇나무에 입을 맞 추라고 권고했다. 처녀애들은 목이 말라 마른 입술을 감빨면서도 반신반의하는듯  주춤거렸다. 내가 알아듣기 쉽게 해석해서야 저마다 봇나무즙으로 타서 갈라진 입술 들을 나무에 대였다. 시내물도 없는 산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 나무의 가지를 살피면 살길이 나진다. 참나무나 봇나무를 살펴보면 가지가 많고 잎이 무성한 쪽이 남향작이 다. 그리고 나무에 파란 이끼가 돋은 쪽이 틀림없이 북쪽인것이다.
    그제야 도시처녀들이 탄복하며 감탄성을 지르는것이였다. 여기 대흥안령속에서는 아무리 맑아보여도 웅덩이물을 마셔서는 안된다. 비상을 풀어놓은 물처럼 대번에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수 있다. 그렇게 기진맥진한 처녀들의 정신을 홀려내며 걸음을 다그쳤다. 드디어 아득히 먼곳에서 불빛이 깜박이였다. 군마창총부였다. 그런데 제일 나어린 처녀애가 발을 몹시 쩔뚝거렸다. 신바닥들을 검사해보니 불에 녹아빠져서 구 멍이 펑 뚤려있었다. 나는 다시 봇나무신세를 지지지 않을수 없었다. 분홍색속껍질을 벗겨내여 신바닥에 깔게 하였다. 그제야 모두 발이 편해서 길을 축내였다.
    우리가 한창 산등성이를 내리려는데 풀숲에서 버스럭 소리가 났다. 승냥이 같지도 않은 덩치가 커다란 물건이 스적스적 우리 앞으로 다가왔다. 기겁한 녀자 애들이 이번에도 내 등뒤에 몰려들며 비명을 질러댔다. 나하나만 믿고 에워싸는 녀자 애들이 측은해져서 나는 앞을 막아나섰다. 험악한 이 고장에서 벼라별 일을 다 겪은 나는 웬간히 담이 커져있었다. 손전지를 꺼내여 비춰보니 이게 웬일인가? 참으로 귀 신이 곡할 노릇이였다. 언녕 창부에 가있으리라고 믿었던 나의 적토마가 아닌가?
    나는 너무 감동되여 말의 목을 와락 그러안았다. 말못하는 짐승도 내 감동을 알아챘는지 연신 코투레질하며 주둥이를 비벼댔다. 불속에서 요행 살아나왔는데 애마까지 가지 않고 마중왔으니 어찌 감동되지 않으랴. 나는 입속으로 속삭였다. 《내 사랑하는 애마야, 정말 고맙구나. 너는 우리 박정한 인간들보다 더 났구나》 나는 호주머니에서 소금알을 찾아내여 나의 애마를 위로해주었다. 아무튼 소설같은 장면이였다. 발을 상해서 잘 걷지 못하는 처녀애를 말에 태우고 다시 길을 재촉했다.
    나는 거의 말목을 안다싶이 하며 걸었다. 절친한 친구하나 없이 소외당하고 사는 나에게 말보다 더 미더운 친구가 있으랴,
며칠후, 해방군보에는 동북변강의 군마창의 녀상해지식청년들이 죽음도 겁내지 않고 산불끄기에 나서 혁명청춘의 기개를 떨쳤다는 요란 기사가 실렸다. 진소연이 네는 모두 3등공신이 되였다. 그러나 그 공신들을 누가 불속에서 구해냈던가? 나는 또 한번 환멸에 치를 떨며 오열을 삼켰다.
 
                                               6.  세월의 저 언덕에서 
     
                         ㅡ 서로 마주보는 청산은 만날수 없어도 마음속에
                               있는 사람은 언제라도 만날수 있는것이다. ㅡ
 
    재난의 십년세월이 흘러가고 새 시대의 첫봄이 왔다. 내 인생고가 력력히 찍힌 수난많은 고장에 다시 소생과 약동을 안고 새 봄아 찾아왔다. 겨우내 얼고 멍들었던 산과 벌은 마음껏 푸르러간다. 온 세상이 푸름을 안고 생명의 약동으로 끓어넘치고 있다. 그러나 이 해의 봄은 나에게는 심드렁하게 느껴졌다. 짓밟힌 넋에도 정녕 봄이 깃들수 있다면 그것은 절름발이 봄날일수밖에 없으리라.
    여느때처럼 말떼를 몰고 동남산으로 방목을 떠났다. 그런데 마음은 더업이 허전했다. 3년세월을 밤낮 없이 얼굴을 맞대고 살며 알뜰히도 키워낸 깜장말을 비롯 해서 수십필의 군마들이 어느 기병대에 복역하게 된것이다. 사람들과는 정을 나누지 못하고 짐승들과만 정을 나누며 살아온 나로서는 마치 절친한 친구들과 헤여지는 그런 석별의 정을 안고 떠나보냈다.
    내 손에서 마지막으로 강냉이 이삭을 받아먹고 손바닥에 놓은 소금을 받아먹는 말들도 헤여짐을 알기나 한듯이 주둥이를 내 가슴에 들이밀다가는 앞발로 땅을 탕탕 차는것을 보다가 끝내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 소연이도 불끄기에 공신이 된 덕분 으로 상해에 돌아가게 되였다. 말잔등우에서 열심히 공부하던 소연이가 추천받아  상해상학원의 입학통지서를 받아안게 된것이다. 나는 제일처럼 기쁘기도 하면서 마음의 기둥이 와르르 무너져내리리것을 절감하지 않을수 없었다.
   내가 소연이의 마음을 끝끝내 받아들이지 않고 고히 보내게 되였지만 사실 나의 마음은 시종 모순되여 있었다. 거의 가망이 없는 올랴를 잊지 못하는 탓도 있거니와 보다는 소연이와 한길로 걸어갈수 없다는것을 자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처럼 불붙는 처녀의 순정이 나를 사랑해서라기보다 고마움에 보답하려는 커다란 희생이 라는 생각을 떨쳐버릴수 없었다. 비록 그애가 소원이여서 자기를 헌신하더라도 나는 그렇게 리기적으로 점령해버릴 용기가 나지않았다.
    동남산마루의 커다란 봇나무아래 헌솜옷을 펴놓고 벌렁 드러누워 허허 창공에 정처없이 떠도는 쪼각구름에 향수를 얹으며 구슬픈 명상에 잠겨있었던지라 내 발치에 눈에 익은 점백이의 미끈한 앞다리가 오래 서있은것도 몰랐다. 말이 요란스레 투레질 해서야 소스라쳐 일어났다. 언제 왔는지 들꽃 한묶음을 꺾어든 소연이가 정깊은 눈길 로 나를 굽어보고있었다.
    《오빠, 축하해줘요, 그리고 나도 오빠를 축하할게요.》
   꽃다발을 내가슴에 안겨주며 예이제 사람의 넋을 사로잡는 고운 얼굴에 웃음꽃을 피웠다.소연이는 이 몇해동안 나에게서 몰래 조선말을 배워왔다. 나의 안해가 되자면 조선말을 잘해야 된다면서 열심하던 그였다. 원래 총기좋은 애인지라 글자까지 알게 되였고 단둘이 있을 때면 별로 막힘없이 조선말로 의사를 표달할수 있었다.
    곱게 차려입은 소연이와 말몰이군아저씨의 초라한 모습을 누가 보았으면 영화장 면을 찍는가고 착각할수도 있었으리라. 나는 게면쩍게 웃으며 그의 통통해진 어깨에 두손을 가볍게 올려놓고 깊이를 알수 없는 호수같이 서느러운 두눈을 들여다보았다.
   《그럼, 이 오빠가 축하해줘야지. 참 잘 되였어, 내가 대학가는만큼 기쁘다. 그런 데 네가 날 축하한다는 말은 무슨 뜻이냐? 》
   《오빠, 나 신새벽에 총부의 정치부에 갔다가 이제 돌아오는 길이예요. 상해로 돌아가는 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정치부 왕주임이2분대에 내려보내는 공문을 나에게 부탁하지 않겠어요. 그게 무슨 공문인지 어디 한번 맞춰봐요.》
    그가 아이처럼 졸라댔지만 내가 그냥 시무룩해 있자 내 어깨에 동동 달리며 어서 맞춰보라고 새롱댔다.
    《요, 장난꾸러기야. 내가 무얼 맞춰낸단말이냐? 세상이 돌아가는 일 나와는 아무 상관도 없지 않니? 그리고 기어이 더 축하라면 위대한 부통수가 운두루한에 승천하고나서 그렇게 기세부리던 맹장들이 기가 푹 죽어지내는 꼬락서니이지. 》                       
  《아이참, 누가 그걸 말하나요, 쥐구멍에도 볕이 들게 되였단 말이예요. 그 누더기 솜옷을 훌훌 벗어던지게 됐단말입니다.》
그래도 내가 오리무중에 빠진 바보상을 짓고있으니 성미 급한 소연이가 기관총을 쏘아대듯 말을 뱉아냈다.
《 보고, 특대소식, 최해동지의 잘못된 판결을 시정함. 1972년 5월 1일부터 군마창자제중학교 교원으로 취임할수 있음을 통지함, 보고 끝》
    말을 마친 소연이가 제비처럼 내 가슴에 날아들었다. 너무 갑작스레 들이닥친지 라 몸을 가누지 못하고 소연이을 안은채 뒤로 벌렁 넘어졌다. 소연이가 깔깔대며 내 두볼에 키스벼락을 퍼부었다. 그리고는 급급히 웃옷단추를 끌러댔다.
  《소연아, 너 지금 뭘하는거야? 》
   《오빠, 나 오늘을 기다렸어요. 인제 우리가 누구의 눈치를 보겠어요? 둘다 푸른 하늘로 날아오를 판인데. 우리 결혼하자요, 지금 당장 결혼해요, 나 다 내여줄게, 다 가지세요.》
나는 얼결에 소연이를 와락 끌어안고 소리없는 눈물만 흘렸다. 그렇게 미동없이 있다가 리성을 되찾은 나는 소연이를 살며시 떼여놓고 일어나앉아 하얀 가슴을 드러 내고 있는 소연이의 옷에 단추를 천천히 천천히 끼워주었다.
  《그럴수 없어, 이 바보같은 파랑새야, 우린 길이 달라, 넌 이제 대학생이구 상해아가씨가 될 사람이야,》
  《아니야요, 내가 언녕 말했잖아? 나 당신의 안해가 되고싶고 당신처럼 잘 생긴 아들을 낳아서 키운다구, 입에 발린 말이 아니라는것을 이 자리에서 증명해 보일게 응? 인제 우리를 방해할 아무것도 없잖아, 왜 내가 마음에 안들어?》
   《그런게 아니야, 넌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처녀야, 그러나 사랑이 무엇인지 너 아니? 사랑은 두사람이 마주 쳐다보는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것이다. 난 이미 시들어버린 사람이구 넌 곧 하늘에 날아올라 생명의 찬가를 부를 종달새란 말이다. 난 너를 어디까지나 친녀동생처럼 여기고싶다. 내 마음을 알겠니? 요 귀염둥이야,》
  《아니예요, 흥안령의 기념으로, 아니 봇나무의 사랑으로 우리 두사람의 심장을 이자리에서 새겨다질래요. 결혼은 천천히 하더래도 먼저 당신의 아들을 가지고 싶어요, 상해에서 키우면서 당신을 기다리겠어. 당신의 꿈처럼 먼훗날 당신의 고국이 통일되면 아들딸 앞세우고 함께 찾아가자요, 응?
    난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간다고 한번도 생각해본적이 없어요, 말을 잃어버렸을 때 나를 살려준 사람이 오빠였지요. 지난번 산불이 났을 때 우리를 구하려 달려온 오빠, 봇나무즙으로 내 입술 추겨주던 오빠, 내 신발에 봇나무껍질을 곱게 깔아주던 오빠, 내 자루에 개암을 가득 채워주었던 오빠, 원숭이버섯을 몰래 말리워서 내 가방에 넣어주던 오빠, 너무너무 고마운 사람, 조선남자들은 범처럼 무섭다던데 당신은 생긴것처럼 보살님이였어, 아니면 범가죽을 쓴 양이였나? 오빠, 내 사랑을 받아줄거지? 나 당신의 허락없이 절대 다른 남자에게 시집가지 않을거야. 》
    소연이는 다시 단추를 벗기였다. 그리고 내가슴에 폭싹 안겨들었다. 한껏 부푼 젖무덤이 주는 이름할수 없는 감각이 가슴에 뭉클 부딪쳐왔다. 오래동안 묵어자빠 졌던 웅성이 욱 일어서고있었다. 그러나 그냥 이렇게 밀고나가서는 안될일이였다. 나는 책략을 바꾸기로 작심하고 소연이를 구슬렀다.
    《그래, 나도 소연이를 좋아했어, 오래동안, 아니 사랑했어, 하지만 결혼은 천천 생각해자구 응? 나도 이제 자유의 몸이 되였으니 이 지긋지긋한 곳을 떠날거다.자 우리 이렇게 할가? 넌 먼저 상해에 돌아가서 학교다니구, 난 할빈에 돌아가서 가정 일이랑 잘 처리해놓고 널 찾아갈게, 그럼 안돼? 그러나 오늘 이런 곳에서 내가 목숨처럼 아끼던 널 허투루 꺾고싶지 않아, 너를 위해서, 또 나의  인격을 위해서 말이다. 자, 너 내 말을 잘 듣는 애였잖아, 내가 단추를 채워줄게, 우리 신비의 화촉동방을 남겨두자구, 응? 이 루추한 곳에서는 네가 너무 아까워, 안그래?》
    나의 진심어린 말에 소연이는 겨우 안정을 찾았다. 그러나 내 품에서 오래오래 떨어지지 않았다. 한식경이나 지나서 자리를 털고일어난 우리는 봇나무에 우리 들의 이름을 새겨넣었다. 방금 인간들이 어떤 희비극을 벌렸는지 알배없다는듯 말들은 저 희들끼리 갈개고있었다.
    며칠후 소연이는 눈물을 머금고 수난의 고장을 떠났다. 나는 처지가 처지인지라 배웅해주지 못하고 몰래 숨어서 눈길로 바래기만 했다. 얼마후 나도 꿈처럼 차례진 교단을 사절하고 떠난지 십여년이 되는 할빈에 돌아왔다. 그러나 가도와도 슬픔과 괴로움을 안겨주는 내 운명의 궤적이였다. 그동안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숙성한 동생 들이 눈물로 맍아주었다. 집안일을 두루 배치해놓고 올랴를 찾아나섰다.
    올랴가 그 란시판에 츄린에 그냥 있을리 없다고 생각하고 곧장 마쟈커우마을로 찾아갔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나를 기다린것은 허무였다. 올랴는 그곳에 없었다. 문화대혁명이 터지자 당국에서 로씨야사람들을 추방해버렸다. 조국으로는 갈수 없었던 그들이였던지라 몽땅 카나다로 이민을 갔다고 하였다. 올랴네도 그 틈에 끼여 카나다로 날아간것이 분명했다. 다만 그 선량한 로씨야령감이 감옥에서 풀려나와 가족들과 함께 이민으로 떠났는지 알길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올랴도 잃게 되였다. 사랑은 아름다운 꿈이라지만 나는 꿈꾸는 호시절을 빼앗긴 불행아였다.
    …고달픈 인생길에 어느덧 30년 세월이 굴러갔다. 소연이는 처음 몇해는 사흘이 멀다하게 편지를 보내왔다. 하지만 나는 여러가지 사연으로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그만 극동지구에 주저 앉아 농민질을 하다가 장가들어 가정을 이루었다. 신주대륙에 개혁개방의 춘풍이 불었다. 나는 새 시대의 서막을 열어놓은 등어른의 혜택을 단단히 입었다. 흥안령골 짜기에서 말몰이군질 하던 우파가, 극동지구에서 가난을 파먹으며 농사짓던 농부가 수도 북경에 국제무역회사를 꾸리고 장사길에 오른후 내 후반생에 또 다른 인생극을 쓰게 되였다.
    십여년의 분투끝에 북경에 진출하여 민족무역공사를 차리게까지 되였으니 산천 은 의구해도 사람은 변하기 마련인가보다. 그동안 국내에서의 장사길이 차차 넓어지 면서 대만기업가, 향항, 마카오의 대상인들과도 인맥을 맺고 국제무역을 활발하게 벌려나가게 되였다. 지난세기90년대초반 대만의 굴지기업사장단과 평양사이에 려계 를 달아주고 대표단을 거느리고 무역협정을 맺으러 나갔더랬다. 그것이 반연이 되여 헤여진지 30년이나 되는 소여이를 만나게 되였으니 인생이 희비극이 아니겠는가?
    평양서 벌린 일이 순조롭게 성사되였다. 그런데 대표단속에 상해에서 수천명의 로동자를 가진 봉재공장을 경영하는 채선생이라는 재벌이 있었는데 나의 출신경력을 대개 알고는 놀라움을 금치못하며 흥안령숲속에 말떼나 방목하던 죄인이 어엿한 무역 일군이 되였다는것은 개천에서 룡마난격이라고 찬탄하였다. 그러면서 자기 안해도 그 군마창의 출신이라 하였다. 놀라운 소식이였지만 소연이와 련계시킬 상상은 못했다.
화성그룹은 조선에 무진장한 고령토개발에 투자하기로 하고 채선생은 평양에 대형피복공장을 세우기로 합의를 보았다. 협정을 원만히 마치게 된 대만화성그룹의 총재가 기분이 난김에 대북에 돌아가자마자 김일성주석에게 고급위생실설비를 300틀 이나 선물하는 바람에 조선땅에서 나의 위상도 크게 올라가게 되였다.
    조선서 돌아와 얼마 안되였는데 생각밖에도 상해의 채선생이 북경 ㅡ상해왕복비 행기표를 보내면서 가급적으로 빨리 왕림해달라고 당부해왔다. 그동안 상해에 갈 때 마다 내 마음속에 고이 간직된 소연이가 떠올려져 옛날 주소대로 두루 수소문도 해보았으나 행방이 묘연했다. 이미 중년사나이들이 되였을 상해친구들도 바다에서 바늘찾기였다. 채선생이 어째서 오라는 말은 아니했지만 상해는 나에게서 늘 충격 적인 도시였다. 이번에도 착잡한 심정으로 비행기에서 내렸다.
천천히 출구를 나서니 내 이름자가 큼직하게 박힌 패쪽을 든 멋진 젊은이가 기다리고있었다.
  《북경에서 오시는 최선생이지요. 오시여 반갑습니다. 채총재를 대신해서 마중 나왔습니다. 자 어서 가시지요》
  《감사하오. 신세를 좀 집시다》
    수인사를 마친 나는 그가 안내하는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독일제 벤츠자가 대기 하고있었다. 차는 오래동안 달려 채선생이 경영한다는 커다란 공장구내에 들어섰다. 그런데 채선생이 공장대문에서부터 사무청사까지 화려하게 차림한 녀인들을 내세워 환영까지 할줄은 몰랐다. 나는 난 생처음 꽃을 흔들며 환영해주는 특혜를 받아보았다. 버릇처럼 뒤몰리며 살았던 어제와 오늘의 나이 처지를 대비하게 되면서 감구지회가 괴여올랐다. 어깨를 으쓱해야 하는가? 아니면 틀거지를 피워야 하는가?
    사무청사어귀에 채선생이 만면춘풍이 되여 서있었다.
    《최선생, 이렇게 한사에 모시게 된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먼길에 수고많으 셨습니다. 자, 안으로 드십시다.》
    호화로운 사무실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기전부터 채선생은 극구칭찬했다.
   《나는 세계각지를 돌아다녀보았지만 최선생의 주선으로 처음 가보게 된 평양이 제일 인상이 깊습니다. 사람들이 교양이 높고 례절도 발고 책임의식도 높아서 정말 놀랐습니다.》
    나는 혹시 말말가운데 무슨 민감한 문제라도 튀여나올가봐 그저 례절스럽게 웃기만 하였다.
   《그랬던가요, 좋은 인사을 받았다니 시름을 놓았습니다.허허허…그런데 채선생께서 이번에 무슨 일로 소인을 초청하셨는지 궁금합니다그려.》
    채선생은 그저 《호와, 호와…자 술이나 한잔 하면서 천천히 회포를 풉시다. 하 하하…》하면서 신비롭게 눈웃을 짓기만 하였다.
    나는 이름을 알수 없는 호화유람선연회실에 안내되였다. 금방 자리에 앉으려던 나는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굳어져버렸다. 세월은 오래 흘렀어도 늘 보는듯 생생히 떠오르던 소연의 모습이 눈앞에 나타났던것이다. 50고개를 바라보는 지숙한 녀인이 되였건만 아직도 그때의 아름다움이 성숙에 받들려 더 눈길을 끌었다. 소연에 게 있어서 미모란 용모, 몸매, 넋이 조화된 통일체였다. 표면적인것이 아니라 개성적 인 거동에서 나타나는 예지와 정열이기도 했으리라. 채선생이 례의 그 신비로운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
   《최선생. 이 사람을 잘 알고있겠지요? 나의 부인 진소연입니다. 참 좋은 인연 들이여서 오늘 이렇게 만나게 되였으니 하느님의 안배가 아닐가요? 허허허》
    소연이가 눈물이 글썽해서 엎어질듯 나에게로 다가오더니 두손을 꼭 부여잡았다.
    《오빠. 이게 꿈은 아니겠지요? 이게 몇해만이예요, 난 영영 못만날줄 알았는데 흑흑…정말 반가워요》
    오랜 세월속에 조선말을 싹 잊기도 했으련만 아직도 잊지 않고있다는 사실에 또 한번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나의 눈에도 뜨거운것이 줄을 타고내렸다. 사람이 일생 에서 몇번이나 정신적인 희열을 느낄수 있는가? 천지가 개벽하여 지금 서로의 처지가 달라졌지만 세월속에 얽힌 사연과 정은 변할수 없는것이다. 나는 소연이가 돈많은 부 자의 부인이 되여서 기쁘기보다 채선생같은 신사의 부인이 되여 행복하게 보낼것이라 는 그 한가지만으로도 더없이 기뻤다. 년장자로서만 지을수 있는 자애로운 나의 눈길속에서 소연이는 또 한 번 어깨를 들먹거렸다.
    《따거, 이야기는 차차 하도록 하고 먼저 소연이가 부어드리는 술을 받으세요.》
     굽높은 커다란 술잔에 붉은 포도주가 철철 넘치게 부어졌다. 나는 포도주 한잔 에도 관운장의 대추빛얼굴이 되지만 금구를 깨기로 작심하고 부어주는대로 마셨다. 나는 처음 기분으로 마시는 술은 취하지 않는다는 음주예술의 묘미를 터득할듯 싶었 다. 풍도가 있는 신사인 채선생은 식사가 끝내기 바쁘게 슬며시 자리를 피했다. 소연이가 손가방에서 사진을 꺼내보였다. 사진은 누렇게 색바래있었다. 그러나 하얀 봇나무를 배경으로 말을 타고있는 한 애된 처녀의 모습은 결코 색바래지 않았다. 사진을 오래 들여다 보노라니 색이난 군복에 혁띠를 띠고 군모를 단정히 눌러쓴 군마창의 천덕꾸러기 진소연이를 다시 실물로 보는듯해서 코마루가 시큼해졌다
    선창으로 나갔다. 유람선룡머리란간에 딱 붙어서서 출렁이는 물소리에 온 마음을 실었다. 두눈이 다시 흐릿해지며 황포강에 어른거리리는 불빛이 수십갈래로 갈라지고 산산히 부서지는것 같기도 했다. 소연이가 나를 홱 잡아채여 돌려세우더니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세차게 흐느꼈다.
   《오빠, 니 쩐 화이야, 왜 그렇게 기다리는 나를 버렸나요? 얼마나 오래동안 기다렸다구요, 단 한번이라도 회답하구 내한테 와서 어째서 결합될수 없다는 리유를 접수할수 있도록 해석했어야 도리가 아닌가요? 그럴 자신감이 없으신거지요? 내가 나중에 당신을 얼마나 미워했는지 알아요?》
     나는 소연이를 살며시 밀쳐내며 두팔을 쩍 벌려보였다.
    《소연이, 정말 미안하오. 그러나 내가 미안하게 했으니까 오늘 상해녀인 소연이 가 있게 된거아니요.》
    《그런 창백한 변명을 하지말아요. 물론 나 지금 남편을 나무리지 않아요. 그러 나 훌륭한 남자라해서 다 미만한 사랑은 아닌거예요. 그리고 한 처녀의 순결한 첫 사랑은 단 한번이듯이 나의 첫남자는 당신 하나뿐이얘요. 인젠 다 쑤어놓은 죽이니까 밥이 될리야 없지요. 아무래도 천생배필이 아니였던거라고 생각하면 위안이 되였지만 나 정말 당신을 죽이고 싶도록 미워했어요. 더구나 남편이 점점 풍류객으로 나돌 때 그렇게 충성스러운 사나이였던 당신생각에 가슴이 찢긴단말이예요. 흑흑…》
    채선생이 평양에서 돌아와 여기저기서 찍은 기념사진들을 안해에게 보여주었는데 대동강변에서 산책하다가 찍은 사진에서 어덴가 본듯한 모습을 보고 반신반의 하는데 조선족이고 북경에서 장사하는 사람이라고 알려주었단다. 게다가 자기처럼 흥안령의 군마창에서 오래 고생한 사람이라고 말하자 대번에 확신이 가더라는것이였다. 물론 몹시 놀랐다고 했다. 사시장철 헌솜옷을 오래기로 질끈 동여입고 다니던 사람이 이렇게 멋지 신사로 되여 남편곁에 선것이 꿈같이 느껴졌단다. 그리고 울면서 자기를 구해준 은인을 찾았으니 담방 상해에 모셔오라고 졸라댔단다.
   소연이는 다시 화제를 돌려 하소하듯 원망하듯 지난 사연을 이야기했다. 그가 상학원 졸업하고 사업에 참가해서도 여느 처녀들처럼 일찍 시집을 가려는것이 아니라 결혼소리라면 아예 귀를 막고 돌아섰다. 원래 재산가였던 할아버지는 남은 재산은 별로 없었지만 집안 재산이 밖으로 흘러나가는것을 방지하기 위해 근친결혼을 하는 옛풍속대로 대만의 재벌아들인 이종조카와 짝을 맺아주었단다.
    그렇게 대상자는 결정되였지만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기까지 또 몇해가 흐른뒤 세월이 좋아지고 량안의 래왕길이 트이여서야 결혼했다는것이였다. 그래서 아이도 아직 어리다고 하였다.
  《당신도 무역을 한다니까 얼마나 돈을 모았는지 몰라도 돈이 곧 사랑이고 행복 인것은 아니예요. 성실한 남자는 돈이 없는게 문제이고 돈많은 남자들은 믿을수 없어요. 옛날 우리 할아버지도 형편없는 풍류였대요. 나의 혈관속에도 자본가의 피가 흐르고  있겠지만 내가 바란건 사랑이였어요. 불속에도 뛰여들어 자기 녀자를 구할수 있는 용기와 충성심을 가진 당신같은 남자에게만 있을수 있는 그런 사랑말이예요, 그 날을 나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해요, 그때 당신은 철없는 계집애의 충동이라고 여겼지 요. 아니, 정말 소원했던거애요. 부끄러운 얘기지만 그때 나도 이미 생리적으로도 다 성숙한 녀자였잖아요. 우습게 여기지 말아요. 나 당신이 할빈에 가자고했더면 그냥 따라갈 용기도 있었던거래요. 그러나 당신은 고집불통이였지요. 이제 더 말해 무었하 겠어요. 추억은 아름답다지만 나에겐 가슴아픈 추억만 가득 남았다구요. 매정한 사람 같으니라구…》
   소연의 말에서 평양에 갔을 때 채선생의 모습을 되새겨보았다.  채선생은 평양에 갔을 때 도금한 18k짜리 가락지 몇개를 넣고다녔다. 외국의 호텔이나 커피숍에서 가락지 하나쯤 내놓으면 아가씨들을 키스할수 있는것은 물론 마음대로 손이 들어가도 문제없 고 딸라 한장이면 아가씨와 함께 온밤 침대를 망가뜨릴수 있다고 하면서 평양엔 그런 서비스가 없는가고 탐문했다. 아닌게아니라 고려호텔에서 식사할 때 채선생은 중국처 럼 믿고 예쁜 복무원처녀의 손을 강다짐으로 잡아끌고 가락지를 끼워준다고 싱갱이질 했다. 난생 처음 외국남자에게서 봉변당한 처녀는 울상이 되여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례절을 차릴새 없이 가락지를 빼앗아 채선생의 호주머니에 넣어주며 엄숙하 게 해석해주었다. 이 지구촌에서 에이즈병이 없는 나라가 조선이다. 세상에 비대증이 없는 나라가 조선이다. 저 아가씨가 채선생의 가락지를 받았다면 밥통이 깨지는것은 둘째치고 벌을 받게 된다. 가령 선물을 받았다면 곧추 책임자에게 받치게 되여있으니 주나마나 하고 아무 보상도 없다고 했다. 그제야 수긍이 가는듯 점직하게 웃으면서도 입속을 두덜거리는것은 잊지 않았다. 《참 좋은 곳인데 녀자가 없는 도시야, 헝》
    그때 일을 떠올리면서 나는 소연이 푸념비슷한 말을 가슴아프게 들었고 그 마음 을 얼마든지 헤아려볼수 있었다. 내가 서글픈 생각에 담배연기만 뿜어올리는데 소연 이가 느닷없이 나직히 아리랑노래를 불렀다. 상해의 황포강의 유람선우에서, 그것도 이민족녀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상해악센트가 섞인 아리랑선률을 듣는다는것은 참으 로 이색적이고 의미로웠다. 소연이는 여전히 목소리가 고왔고 노래도 곡조가 맞게 정서적으로 부를줄 알았다. 가슴이 뭉클해났다. 저도 모르게 나의 입에서도 아리랑이 흘러나왔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탈이 나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지금도 그곳은 그렇게 락후할가요? 그곳의 골짜기들과 풀판과 동남산에 가보고 싶어요. 우리가 이름을 새긴 봇나무는 지금도 있는지…우리 기회를 마련해서 같이 가보자요, 네? 》
   《그것참, 좋은 생각이요. 채벙당하지 않았다면 하늘을 찌를것이요. 단풍이 곱게 물드는 가을 한번 가봅시다. 나도 몹시 보고싶소. 지나간 일체가 아름다운 추억이라 더니 가보면 감개무량할거요. 설사 아픈 추억이라도 기억하고 슬퍼하기보다 잊어버리 고 새롭게 기억하면서 웃는게 나을지…》
   《오빠, 정말 오늘 돌이켜 생각해보면 리별은 시간을 어김없이 지키는 선생같고 만남은 지각하는 아이같잖아요, 호호호》
우리는 눈길을 마주치며 의미있게 웃었다. 그렇다. 웃음도 눈물도 그렇게 오래가 는것은 아니다. 욕망도 사랑도 미움도 한번 스치고 지나면 마음속에 아무런 힘도 미치지 못하는것이다. 인생은 저마다의 무대이다. 그 무대우에 남녀는 모두 배우에 불과하다. 그만큼 등장할 때가 있고 퇴장할 때가 있다. 무정한 세월이 가고 사람은 남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속에 새겨진 진정은 오래 남아있으리라.
    밤을 모르는 불야성의 도시, 유유히 흐르는 물결이 배전을 철썩이고 있었다…
 
 
 
                                          2008 년 2 월 1 일
                            
                                                        청도에서

                                                                        (연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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