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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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세우지 못한 비석
2013년 01월 23일 08시 30분  조회:2525  추천:0  작성자: 최균선
                                        세우지 못한 비석
 
                                                 최 균 필
 
    추석을 며칠 앞두고 나는 십여년만에 고향에 다녀왔다. 아버지산소에 비석을 세워 불효자식의 때늦은 죄책감을 다소나마 덜기도 하고 영원을 기하려는 심정으로 백사불구하고 귀향길에 올랐던것이다.
고향마을로 가는 마지막 뻐스를 탔을 때는 해볕이 따사로운 오후였다. 누렇게 익어 고개숙인 탐스러운 벼이삭들이 땅꺼지게 실린 논밭이며 오동통 살진 아기를 두세개씩 업고 있는 무성한 옥수수밭들, 양지바른쪽 과수원에 사과들이 가지가 휘여지게 주렁주렁 달려 빨갛게 익어가고 있었다.
    농촌의 풍요로운 모습은 농사군의 아들인 그에게는 마냥 아름다운 한폭의 풍경화였다. 농민들이 잘 살게된 세상, 농촌이 풍요해야 시내월급쟁이도 밥상걱정 없이 살터이니 말이다. 앞마을에서 한무리 한족사람들이 내리고난 뻐스안은 휑뎅그레했다. 옛날엔 보따리를 이고 지고 오구작작 내리던 조선아낙네들은 보이지 않고 어두운 얼굴의 로인몇이 마을어구에서 내렸다. 뒷산은 그대로 번들이마를 자랑하고 있었고 마을로 들어가는 길도 울퉁불퉁 달구지길 그대로 누워있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철수는 한숨을 토했다
    중학교 시절에 심은 길가의 백양나무, 수양버들이 인제는 바람잡는 거목으로 자라나 꿋꿋이 제자리를 지키고있었다. 우수수 락엽이 스치는 바람에 흩날린다. 갑자기 그는 자기 마음도 락엽처럼 황이 드는것을 어찌할수 없었다.
외할머니네집은 몇십년전 초급합작사때 지은 초가집이다. 오래동안 손질하지 않아서 헌삿갓을 눌러쓴듯 지붕은 축처져있었고 밭고랑이 패여있었다. 네기둥이 땅속으로 잦아들 면서 벽체도 기울어지고 있었다. 낯모를 손님이 들어서자 검둥개가 컹컹 짖어댔다. 개짖는 소리에 정주문이 삐걱 열리더니 외할머니가 힘겹게 문설주에 기대여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나는 짐짝을 든채로 달려가 금방 넘어질듯 문턱을 넘어서는 외할머니를 와락 부등키였다. 나를 업어키운 외할머니의 여윈 어깨가 가냘프게 떨고있었다. 아들 며느리 모두 한국에 돈벌러 나가고 집에서 손자 뒷바라지를 하는 외할머니는 몹시 지쳐있었다. 나는 외할머니가 이렇게 되여지도록 무심했던 자신의 죄책감에 할말을 잃었다.
    외할머니는 자리에 앉으면서부터“이거 어디 분통이 터져서…”하면서 푸념부터 늘여놓았다. 사연을 듣고보니 정말 주먹이 쥐여졌다. 마을에는 문화혁명때 우쭐렁 거리던 방길만이라는 개포수가 있었다. 몇년전부터 현성에 들어가서 개장집을 꾸리고 얼렁뚱땅해서 돈깨나 쥐였다는 방길만이가 한국에 로무나간 나의 사촌형을 전화로 구슬려서 도맡은 과수원을 한족사람에게 팔아넘겼다는것이였다.
    외할머니네집 혼자만 당하는 일이 아니였다. 압록강을 건너서 산설고 물설은 이 료하벌에 괴나리보짐을 내려놓은 조상들이 망국노의 설음을 짓씹어삼키며 수렁땅에 한뙈기 한뙈기 피땀으로 일궈놓은 수전이 야금야금 중국사람들의 손으로 녹아 들어 간다는것이다. 아무 미련도 없이 조상님들이 물려준 땅을 한족사람들에게 헐값으로 넘겨주고 고향을 훌쩍 떠나간 얼빠진 마을사람이 미워났다. 촌장도 눈이 멀었거니와 촌간부들은 어느 구석에서 마작판에 갇혔는지 바야흐로 무너져가는 마을을 보지 못했단 말인가.
    앞마을에 한족사람들은 새 농촌건설에 열의충천하여 벽돌집을 짓는다. 세멘트 길을 닦는다 온마을이 야단법석인데 여기 조선족마을은 초상난집처럼 한산했다. 하긴 고향마을에 동전한잎 보태주지 않는 놈이 괜스레 야단이니 제절로도 자신이 가소롭게 느껴졌다.
    대학을 나와서 대도시에 배치받아 직장생활을 하면서 백평도 넘는 아파트에서 근심걱정 없이 제멋에 살면서 언제 어느때 한번 고향생각이나 했던가? 고작해서 제아비산소에 비석을 세워 효자얼굴이나 빛내자고한 놈이 무슨 발언권이 있어 이러쿵 저러쿵 하는가 말이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개포수가 한족사람 두셋을 데리고 마을에 들어섰다. 한국에 로무로 나간다고 수속을 마친 김국철이를 찾아온것이다. 땅을 촌정부에 들여 놓으면 한정이 없다고 자기에게 팔라고 몇번이나 찾아와 구슬렸던것이다. 눈껍쩍하면 한국행 비행기표값 공떨어지는 꿩먹고 알먹기라고 너스레를 떠는 바람에 국철이의 마음이 동하는듯 하자 소뿔도 단김에 빼야 한다며 자기 야마하 오토바이에 국철이를 달고 현성으로 올라갔다.
    물론 자기네 개장집에 모셨다. 개내포, 개혀…말짱 개고기붙이로 한상 떡버러 지게 차려놓고 따끈한 술잔을 마주하니 마음이 둥둥 떴다. 도깨비장물을 꿀꺽꿀꺽 넘기며 무어라 자꾸 씨벌거리는 한족친구의 입을 건너다 보며 주판알을 튕기였다.
     국철이는 논이 한쌍반이 있었다. 개포수는 한쌍에 4000원, 10년기한. 현금은 일식지불 6만원, 중도에 파약하는 경우 벌금 50% 배상조항이 쓰인 계약서를 내놓 았다. 땅거래 해먹은 방길만이는 국철이를 옴짝달싹 못하게 삶아놓았다. 술상가운데 놓여있는 인민페 여섯묶음에 국철는 눈이 홱뒤집혔는지 군말없이 지장을 꾹찍고 돈을 챙겼다. 난생처음으로 만져보는 돈뭉치이라. 방길만이는 국철이를 쫓다싶이 돌려보내 고는 돌아 앉아서 절강사람한테 한쌍에 6천원씩 받고 넘겨주었다. 그는 쥐도새도 모르게 해먹었다싶어 수염을 뻑 씻었다.
    국철이가 한국으로 떠나기 며칠전에 방길만이와 마을에 왔던 왕씨가 찾아왔다. 왕씨는 조용한 길모퉁이에서 자기는 농사군이 아니라는것, 그날 얼굴이나 빌려주고 계약서를 만들어주었다고 실토정을 했다. 방길만이는 량심없이 거간돈을 혼자 챙기고 자기에게는 인삼패 담배 두어보루를 사주더라는것이였다. 자기는 인젠 손을 싹 씻겠 다면서 량심을 속일수 없어 알려주니 용서해달라며 죄지은 놈처럼 굽썩하고는 휭하니 가버렸다.
    국철이는 얼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았다. (참 세상이 변해도 더럽게도 번져있구나. 한때 형님 동생하면서 한마을에서 큰가마밥을 먹고 살았는데 우물에 빠진 사람 건져주지는 못할망정 이렇게 돌까지 던져넣을수 있단말인가. 국철이는 씩씩 황소숨을 몰아 쉬며 단걸음에 촌장을 찾아가 시비를 캐달라고 하였다.
    “씨팔것들, 언제는 제좋아서 개장국물까지 얻어 처먹고 와서는 날보고 어쩌란 말인가. 서울판에 가서 봉창이나 콱해라.” 이렇게 퉁명스럽게 쏘아붙이면서 촌장은 귀찮다는듯 씽 나가버렸다. 국철이는 스스로 함정에 뛰여든지라 더 어쩌지 못하고 돌아오고 말았다. 사람 이 너무 고지식하면 남이 머리우에 올라 똥싼단 말이 있다. 국철이는 길만이가 괘씸했지만 다 쑤어놓은 죽을 밥으로 만들 용빼는 수가 없었다.
    흰종이에 배상금 50%라는 검은 글씨가 적혀 있으니 벙어리 랭가슴 앓듯 자신만 원망스러워졌다. 한국으로 떠나면서 ‘(너같은 토비가 촌장질 하기에 이 조선마을이 망한다 망해. 벼락이나 맞고 뒈져라.)하고 듣지 못하는 욕만해댔다. 그렇게 자기의 보금자리를 내버리고 외국으로 떠나는 사람이 어찌 한사람뿐이랴.
    개포수가 한족사람들에게 땅을 되넘기치기를 한다는것을 촌장은 알면서도 단속하지 못했다. 먹은 놈이 똥을 싼다고 방길만이는 마을에 들어와 땅거래를 할때 마다 집짓는데 보태쓰라고 만원, 아들이 장가를 간다해서 몇천원씩 남몰래 쥐여주었 던것이다.
    마을은 스산할대로 스산해졌지만 촌장은 마을복권에 번듯한 벽돌집을 짓고있었다. 큰 간부는 크게 해먹고 배탈이나서 영창에 끌려가고 부스러기 촌간부는 농민들의 땅에서 고혈 을 짜내는 이 세월에 조선족마을은 무너지고있었다. 글읽는 소리 랑랑 하던 소학교가 문을 닫고 운동장이 염소, 돼지, 게사니 놀이터가 되였으니 어찌 가슴 이 아프지 않으랴. 나는 무심결에 책상우에 내버린 어린 조카의 작문책을 뒤져보다가 눈물을 쏟고말았다.
                            
봄은 왔건만
 
강남제비 학교 처마밑에 집을 지었어요.
제비는 둥지 틀지만 학교는 문을 닫았어요
땡땡 상학종 울리던 우리 학교 페교된대요
단발머리 우리 선생님도 떠나간대요.
 
뒷산에 울긋불긋 핀 진달래 한아름 꺽어
선생님께 드리던 봄놀이가 눈에 삼삼해요.
꽁다리연필도 나누어 쓰던 우리 교실
웃음도 노래도 사라지고 문을 닫는대요
 
정다움던 학교 문닫으니 운동장도 싫어졌요
진달래도 보기 싫고 공부하기도 재미없어요
누나같던 우리 선생님 떠나시던 날
마을친구들 눈물로 길을 적셨어요
 
선생님 우릴 두고 어딜 가나요 가지 말아요
우리 모두 공부 잘해 선생님 기쁘게 할래요
선생님 팔목에 치마자락에 동동 매달렸어요
선생님도 울고 우리도 울었어요
 
고향땅 버리고 한국간 엄마야, 아빠야
난 멋진 옷도 싫어요. 개도 안먹는 돈도 싫어요
우리 선생님 누나선생님 빨리 찾아와라
산에 들에 들으라고 소리쳤어요.
 
     어린 조카의 작문지는 눈물로 얼룩져있었다. 학교가 페교되고나서 고개넘어 한 족학교에 다니게 되였지만 한족말을 못해서 새 선생님에게 꾸지람듣고 머리 큰 한족애들이 업신여겨서 무리싸움하고 코피가 터져 집에 돌아오는 어린 학생들은 학 교를 죽어라 안가고 염소무리만 쫓아다닌단다 저애들이 철없이 보내는 세월도 잠간 이리니 커서 셈이들면 누가 누구를 원망하겠는지…
    슬금슬금 기여드는 한족들에게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우리 조선족들이 떠도는 집시가 될 날이 과연 오고야 마는것일가? 무너진 고향, 슬프게 사라지는 고향, 아서라, 돌비석을 세운들 구천에 아버지가 고향땅을 지켜줄것인가? 나는 아버지의 묘를 파헤쳐 박스에 해골을 담아메고 고향을 떠났다. 나는 눈물을 머금고 골회를 강물에 띄워보냈다. 넋이라도 물결 따라 고국산천에 가게 하고싶었던것이다.
                                                       
 
                                                       2008. 2. 7   (청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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