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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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언수상록 46) 학자의 량지와 인간성
2017년 01월 14일 10시 53분  조회:3314  추천:0  작성자: 최균선
                                                 학자의 량지와 인간성
 
                                                         진 언
   
    미국의 경제발전과정에서 노예제도와 철도가 어떤 역할을 했는가를 새롭게 조명했다는 로버트 W. 포겔이 지난 11일 86 살로 죽었다는 소식을 인터넷에서 읽었다. 남이야 장송곡을 부르거나 말거나…요는 그가 노벨상을 수상자로 인정된 자이지만 “노예제가 매우 효률적인 제도였으며 주인들도 노예를 재산으로 여겨 최소한 가축들만큼은 돌봤다”는 주장으로부터 드러난 학자로서의 량지와 인간성의 저급성이다.
    그는 당시 남부노예들의 처지는 북부의 로동자들보다 일반적으로 나았다며 자신의 론리를 뒷받침 하였는데 얼핏보기엔 인도주의적인듯한 착각을 준다. “최소한 가축만큼은 돌봤다”는 말이 사람의 입에서 나올 말인가? 이 얼마나 지독한 편견이고 오만인가? 미국의 학자라서 그럴법도 한 말이지만 이건 스스로 문명의 탈을 쓴 인간이기를 그만두었다는 선언이다. 학자군에 이런 인간말종이 있었고 노벨상까지 받았다니 노벨상도 한심하기 짝이 없다고 해야 하지 않을가?!
    그의 제자가 포겔이 다룬 주제들은 모두 론란을 불러일으켰다고 하였는데 흑인들의 노예로동이 백인들의 경제효익에서는 긍정적일수밖에 없는것은 상식이하이니 생 략하고, 력사가 증명하다싶이 구라파식민주의자들은 이미 북미대륙에 반인류적인 흑인노예제도를 건립하였고 흑인노예들을 인간이하로 학대하며 고역에 내몰았다.
    노예주들의 제정한 법률에 노예는 세세대대로 노예의 운명을 벗어날수 없었다. 백인들의 눈에는 흑인노예들이 일종 부동산에 불과하였는바 생활상에서 흑노들은 소위 주인의 허락이 없이는 결혼할수 없었으며 흑노들의 처자들은 주인이 마음대로 유린할수 있는 수욕의 도구였다. 주인은 제멋대로 흑인노예가정을 짓밟을수 있었고 팔 아치우거나 례물로 내줄수 있었다.
    그런데도 소위 학자로서 오로지 흑인노예들의 골수까지 빨아낸 압박착취에 의하여 이룩된 경제성장만 보았을뿐 인간으로서의 흑인은 안중에도 없었던것이다. 학자이든 무엇이든 우선 인간이다. 인간이 아닌 학자는 학자가 아니라 경제계산기에 불과하다. 아무리 경제학자이던들 전세계를 감동시킨 미국작가 알레스 헤이리의 소설《뿌리》가 있다는 말도 못들었으며 해리엇 비처 스토의“톰아저씨 오두막”이라는 소설이 있다는것도 몰랐는가? 만약 이 두책을 펼쳐보지도 못했다면 그는 학자이기전에 벌써 지식인이 아니며 기껏해야 유명무실한 식자에 불과하다.
    로버트씨는 미국사실주의 작가이자 노예제반대자인 헤리엇 비처 스토 (1811년 -1896년)《톰아저씨의 오두막》은 1852년에 발표되였는데 소설은 착하디 착하고 순하디순한 톰의 불행한 운명을 묘사하여 미국남부의 노예제도의 하늘에 사무친 죄악을 만천하에 성토했다. 소설은 발표되지 재빨리 미국전역의 상하에 거대한 영향을 일으켰으며 광대한 로동계급과 좌익자산계그분자들과 일체 량지가 있고 정직한 미국인들이 한결같이 작자의 정의적인 립장을 지지성원하였다. 이처럼 성세호대한 혁명적여론의 위력은 노예제페지운동의 발전을 크게 추동하였으며 “노예도망법” 실시를 제지하기도 하였다. 한부의 소설이 료원의 불길로 타오를 혁명의 불심지가 된것이다.
    한편 소설은 노예제의 비참성과 노예들의 참혹한 생활을 구체적으로 생동하게 묘사하여 노예제반대론자와 찬성론자간의 평가가 극단적으로 갈리게 한 명작이다. 반대 론자들은 노예제의 비인간성을 고발하는 소재가 되였고 찬성론자들에게는 "편견으로 가득찬 책" 이였던것이다. 폭력에 반대하다가 악마같은 노예주 레글리에게 구타당한 톰이 "비록 나의 몸은 당신에게 팔려왔지만 내령혼만은 하느님의것입니다." 라고 한 선언은 이 작품의 성격과 주제로서 마땅히 학자의 량지로 읽어야 했다.
    다른 많은 학자들이 포겔의 주장이 부정확한 수치에 근거하고 있을뿐아니라 노예들에게 가해진 심리적인 악영향은 소홀히 했다고 비판했듯이 그는 단지 수치로 본 미 국의 백인경제리익만 알았지 그것을 창조하여준 수천만의 흑인노예들의 생명평등권은 당초 안중에도 없었다는것을 느낄 때 연변사투리로 인간성은 완죤 저짝이다.
    대저 무슨 학자이든 우선 인간적량심이 있어야 하고 학자로서의 량지가 구비되 여야 하며 나아가서 “사회의 량심”이 되여야 한다. 일전 전국인대대표 홍가주(洪可 柱)가 두가지 회의에서 몇몇 국내의 저명한 경제학자들을 준렬하게 비평하면서 이런 사람들이 특수지위의 권전(圈钱),마술같은 치부(致富),축재속도가 어떤 롱단기업을 초과하는데 권력과 비대칭정보로 치부하기때문”이라고 꼬집었다.
    학자는 “지식이 곧 재부”라는 시대에 국가와 사회에서의 중요성을 현시하게 되였으며 더우기 학자는 “사회의 량심”이라고 불리운다. 학자들의 도덕에 의문을 가지게 된것은 그들중 적잖은 사람들이 각종 기업들에 독립적인 동사장으로, 자문고문으로 있으면서 높은 보수를 받고있으며 어떤 사람들은 돈을 받고 시비를 가르는 마당에서 “실언”하거나 “되는대로 말하여” 해당 리익집단의 대변자로 전락되였기때문이다.
    나무를 보고 수풀을 보았다고 말할수 없듯이 전문가, 학자들의 작용을 전반 부정해서는 안되지만 일부 학자들이 제멋대로 하기에 확실히 그들 자신의 공신력이 떨어지고 있는것은 사실이다. 일부학자들속에 금전을 위하여 대변하는 행위가 걷잡을 수없이 범람하고 있어 학자들에 대한 사회신임과 영예에 위기를 자초하고있다.
    한개 사회에서 민중은 가히 우매할수 있으며 매체는 가히 실어증에 걸릴수 있으나 유독 학계만은 혼탁할수 없으며 량심을 가리우고 “증명도구(证明工具)”로 충당되는것은 천부당 만부당한 일이다. 그들이 받는 경제대우의 고저를 잠시 불문하고 사회상에서 받는 존중정도가 미끄럼질하고 있다는것은 비애가 아닐수 없다. 여북하면 민간에서 “전문가 (专家)”를 “전가(砖家)”、“전가(专假)”라고 하겠는가? 전문가대오중에 미꾸라지들이 온 개천을 흐리는 바람에 정체적으로 공신력을 잃은것이다.
    지금 “가짜대가”들이 너무많다. 조금 성취를 쌓고 침소봉대하여 학자, 전문가, 대가의 월계관을 얻어쓴다. 가짜가 진짜같고 진짜도 가짜같다. 2008년, 절강대학의 약학부교수의 론문표절사건은 국내외를 시끌벅적하게 하였다. 한알의 모래알에서 우주를 볼수 있고 한송이 꽃에서 지옥을 볼수 있다. 작금에 대학, 학술계에서 연구성과조작, 론문표절 현상이 극심한데 류비추리가 과연 억지일가?
    진정한 지식분자는 사상으로 생활해야 하지만 사상을 위해 살아야 한다. 학자로서의 최대의 비애는 독립성을 상실하는것이고 그로 인한 인격력량의 기형은 담장위에 갈대로 될수밖에 없다. 한편 학자가 량지를 상실한다면 인간으로서 최대의 비애로서 참인간이기를 그만두어야 할것이다. 화란의 철학가 스피노자는“진리를 위해 죽는것은 쉽지 않으나 진리를 위해 산다는것은 더욱 어렵다”고 하였다.
   학자가 아니라도 인간이면 량심은 가져야 한다. “량심은 선(善)을 행하려는 자신에 대한 의무의식(칸트)”이고 “배우지 않아도 선악을 분별하는 선천적인 도덕적 판단 능력인 “량지량능(良知良能)ㅡ맹자)”이다. 량지란 추상적개념이지만 누군가 량심은 고기로 만들어졌다고 했으니 산육체라면 량심도 생동해야 하지 않겠는가?
    자고로 학술은 인류의 선량하고 정직한 품격의 대명사격이다. 그런 학술이 오래 두면 곰태기가 끼는 달걀처럼 변질해서야 되겠으며 권력처럼 부패균을 번식시켜서야 되겠는가?  학자가 되기도 어렵지만 진정 인격자로서의 학자 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는 알수 있기에 그래서 질타하는바이다.
      
 
                                                   2013년 6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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