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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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언수상록 55)“금전미학” 서론
2017년 06월 14일 12시 03분  조회:2826  추천:0  작성자: 최균선
                                                         “금전미학” 서론                
 
                                                                  진 언
 
    고대중국인들이 돈을 어찌하여 공방형(孔方兄)이라 불렀는지 모르되 상품가치의 도량(度量), 교환의 도구로 충당되였다. 공방형은  지극히 대립적이고 이질적이며 멀리 떨어져 있는 인간, 상품이라도 서로 접촉하게 하는 불가결의 매개물이였다. 그러면서도 돈은 그 자체가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수단과 더불어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수단을 내포하여 돈으로 악행을 할수도 있고 중생을 구하는 자선사업을 할수도 있는 모순체로 되였다.  
    그 와중에 인간의 물질문명이 돈을 통해 실현되였지만 결국 현대문화의 갈등과 비극을 빚었다. 돈은 절대의 신처럼 인간이 창조한 모든것을 지배하며 인간들이 무조건 복종하도록 예속하였는바 문명개화시대, 모든 가치의 절대적 등가물이 됨으로써 추상적인 수준에서 다양한 대상을 초월하게 되였기때문이다.
    인간이 철두철미 금전관계로 예속됨으로써 불평등을 조성하는 악과를 빚어냈고 인류문명사를 악순환속에서 엮어오면서 궁극적으로 인간적본질로부터 리탈하고말았 다. 그러나 돈의 잘못이 아니라 경제동물이 되여진 인간의 자업자득이다. 현대인의 일상적 삶이 금전적규정, 측정적, 비교의 론리를 따르다보니 마침내 인간이 스스로 령혼마저 팔아먹게 하였다. 가장 비근한 실례로 매춘이다. 돈의 관성으로 인해 돈과 매춘사이에 일종의 등가교환이 자연스럽게, 공공연하게 진행되게 한것이다.
    결국 인간은 아이러니하게 자기의 창조물인 돈을 가장 객관적이면서도 비협동적이며 친인간적이면서도 비인격적인 그리고 가장 비천한 존재물로 전락시켰고 되돌아와 돈은 돈을 만든 자신들을 저주하는 부호로 되였다. 이 공방형이 인간을 탈인성화, 탈량심화한것이 아니라 돈을 사용하는 인간의 비정한 행위에서 비롯된것뿐이다.
    스마일즈가 뉘신지 모르되 악의 근원을 이루는것은 돈, 바로 돈이 아니라 나에 대한 애착인것이라고 했다. 가령 산해진미를 배터지도록 먹고 탈이 났다면 “빌어먹 을것”이라고 욕할 천하부실이 있을것인가? 만악은 마음에서 생긴다(万恶由心生)는 말이 있지 않던가? 심성인즉 욕망이나 그에는 호불호가 있다.  
    돈은 수량이 유일한 규준이지만 이중역할을 하였다. 같은 돈이라도 임자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부동한 악과를 빚기도 했다. 돈을 만악의 근원이라 한다. 맞는 말이기도 하다. 아니, 맞지 않기도 하다.마치 같은 샘물이라도 독사가 마시면 독즙이 되고 젖소가 마시면 우유가 된다는 말처럼 말이다. 돈소리하면 배안에 아이도 손을 내민다고 하니 그 유혹력은 불가항력이라 하렸다. 가령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문제를 두고 쟁론할 때 닭이 좋으냐? 달걀이 더 좋으냐? 하는 문제로 번져놓으면 사물의 근원문제를 벗어나는 궤변으로 된다..
    존 레이라는 사람이 “신은 인간을 만들고 옷은 인간의 외양을 꾸민다. 그러나 인간을 마지막으로 완성하는것은 돈이다.” 라고 했으니 돈의 무소부재(无所不在)와 무소불위(无所不为)를 이르는 말이고 니체가 “정당한 소유는 인간을 자유롭게 하지만 지나친 소유는 소유자체가 주인이 되여 소유자를 노예로 만든다”고 한 말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길이 전해질 경세지언이라 하겠다.
    불감청이언정 고소원(不敢請固所願)이라 할가, 인간이 제손으로 만들어낸 돈이건만 스스로 루루천년 세세대대로 돈의 노예로 살게 만든것은 인간의 탐욕이다. 혹자는 일확천금하여 귀신도 부리다가 물극상반, 마침내 일패도지하여 천길나락에 떨어진것이 과연 돈탓이란 말인가?
    례컨대 서××라는 락마관의2000㎡의 지하실에서 1t이 넘는 미국달러, 유로, 인민페와 당·송·원·명조의 골동품과 진귀한 보물 등 재물을 이송하는데 군용트럭이 10대가량 동원됐다고 한다. 각지에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상하이에서는 4살 된 그의 손자이름으로 된 부동산이 최소한 4채 발견됐다고 한다.
    구××의 집에서 순금흉상, 황금세수대야, 모태주 수만병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져 국인들을 경악하게 했다. 압수된 물품을 이동하는데 트럭 4대가 동원되였는데 횡령액중 최고액에 이르는 200억원이였단다. 게다가 수백채의 집도 챙겼다고 한다. 류××은 6천 460만원을 해먹고도 아닌보살했다. 근근히 과장급의 수도공사경리란 자의 집에서 집에서 황금 37㎏, 현금 1억2천만 원, 68채의 부동산 서류가 나왔다니 공방형이 지랄처럼 곱새춤을 춘 탓이라고 말하지는 못하겠지?  
    “어떻게 돈을 벌것인가는 골이 아프지 않는데 다만 어떻게 돈을 감출것인가가 머리아프다.”고 한 훅호트의 마××는 부국장으로 임직 22개월간 매일 10000원씩 번셈인데 북경,훅호트의 주택에서 인민페 8800만원, 419만딸라에 향항돈 27만원, 유럽돈 30만원, 황금 43.3킬로그람이 나왔다고 한다. 이들은 아마 그 돈이 영원히 자기의 소유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감춰두었을것이다. 쓰지않고 꽁꽁 넣어두는것은 마치 죽은물고기를 랭장고에 넣어두고 잘 보관하고 있다고 여기는것과 같다. 누가 흐르는 강물의 바닥에 메워지지 않는 구덩이를 팔수는 있는가? 그러나 락마관들은 그냥 더 깊이 파려고 혈안이 되여있다가 볼장을 다 보게 된것이다.
    돈이 가지는 량적론리는 일정한 정도를 넘어서면서 질적론리로 비약한다고 말한 다. 돈의 악과인 탈인성화와 탈럄심화로부터 해탈되여 인성화가 될 가능성은 어디까지나 역설이다. ​칼릴 지브란은 “돈은 현악기와 같다. 그것을 적절히 사용할줄 모르는 사람은 불협화음을 듣게 된다. 돈은 사랑과 같다. 이것을 잘 베풀려하지 않는 이들을 천천히 그리고 고통스럽게 죽인다.” 돈냄새에 취하지 않을 사람이 없지만 그만큼 가장 치명적인 독성이 있기때문이리라.
   《회남자》에 “도둑질로 잘사는 사람도 있으나 잘사는 사람이라고 모두 도둑질 한것은 아니다. 또한 청렴해서 가난하게 사는 사람도 있으나 가난한 사람이 다 청렴한것은 아니다.”라는 고훈이 있다. 그러나 탐관오리들은 모두 500명의 가난뱅이를 만들었거나 혹은 세동네를 망하게 한 슬기롭고 지혜로운 자들이라 할것이다.
    존 M케인스의 “마음대로 좋은 나뭇잎을 골라 뜯어먹는 목이 긴 기린의 행복을 생각할 때 목이 짧아 굶어죽은 기린의 고통을 잊어서는 안된다.”라는 말은 돈못번 사람들에게 복음이지만 거부들에게는 싱겁고 허황한 잔소리가 될것이다. 돈이 사회와 인간의 정신을 지배하게 되면 돈의 한계에서 걸음을 멈추게 된다. 그것이 바로 돈의 한계이다. 돈이 지배하는 시대, 갑부가 되는것이 모두의 리상이 되였기에 공방형이 옥황상제를 대체하고 관음보살을 대체하고 석가모니를 대체하였다.
    돈은 종래로 길을 잘못들어서는 법이 없었고 류통에서 길을 외끼는법이 없었다. 한 사람의 부자가 있기 위해서는 5 백명의 가난뱅이가 있지 않으면 안된다는 서양 격언과 부자하나이면 세동네가 망한다는 속담도 있지만 돈자체에는 착오가 없다. 잘못이 있다면 인간이 처음 돈을 만들고 금전, 은전이라고 이름지은것이랄가,
    칸트는 인간을 단순한 수단으로 리용해서는 결코 안되며 언제나 인간을 동시에 목적으로서 인정하고 취급해야 한다는 도덕규범을 제시했는데 매춘업에서는 네미덜머리이다. 서로가 원해서 하는 매춘은 아마 인간관계 가운데서 당사자가 서로를 단순한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가장 전형적인 경우일것이다. “돈에 웃고 사랑에 우는” 인간희비극과도 별개의 비극이다. 돈의 노예 인간의 귀속은 어딜가? 우문이렸다.
 
                                                                   2014년 11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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