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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기의 즐거움이라?
2017년 08월 26일 08시 03분  조회:2108  추천:0  작성자: 최균선
                                               굶기의 즐거움이라?
 
                                                           최균선
 
    고대로부터 중국에 “민이식위천(民以食为天)”이라는 말이 전해져 내려왔고 우리 민족에게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거나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속담이 전해지고 있다. 인간의 생존의 전제이자 본성이기도 한 식(食)은 보편적이면서도 특수한 일종의 사회현상으로서 인류의 진화와 동보하였다. 유사이래 민초들은 먹기 위해 사는듯, 배를 불리기 위해 피터지는 인간고를 치러야 했다.
    그런데 고도의 물질문명시대 영양가가 높다는 것만 골라서 먹고 또 많이 먹으면서도 운동에는 린색한 현대인들은 먹은 것을 다 소화시키지 못하여 이른바 부자병이란 것이 만연되면서 굶기가 병치료의 수단으로 되였다. 굶기는 너무 잘 먹는 것이 몸에 해로워 끼니를 굶는 것이 몸과 마음을 청소하는 청소부이자 인체 내부의 각 기관들을 부활시키는 가장 좋은 치유법이란다. 그에서 느끼는 감각을 “굶기의 즐거움” 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생명을 살리는 우주 대자연의 근본원리는 단식에 있다는 주장에 근거를 두고 있다. 
    어느 시대에나 어떤 계층의 사람이나 다 먹거리와 먹는 방법에 관심을 가져왔지만 현시대에 이르러서 특히 건강과 관련된 먹거리, 건강식이 많은 사람들의 제일 가는 관심거리가 되였다. 옛날엔 꿈도 꾸지 못하던 좋은 세월이 와서 지금은 먹는 문제가 단지 배를 불리는 문제가 아니라 영양공급과 살까기에 직결된 문제로 부상된 것이다.
    대저 “식(食)은 명(命)”이란다. 밥을 어떻게 잘 먹느냐에 따라 운명이 달라진다는 말이다. 아무리 건강하더라도 무절제한 식생활은 단명하거나 질병의 고통에서 모대기게 한다. 원래 사람의 위는 주먹 만하고 음식도 주먹 만큼 먹도록 정해졌다. 하건만 요즘 적지 않은 사람들이 너무 많이 먹어서 위하수에 걸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런데 야단 아닌가? 날마다 때마다 가능한 잘 먹어야 한다는 식도락풍조로 자연의 리치에 어긋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동서고금을 물론하고 과식을 경계하여왔다. 일례로 쉐익스피어의 ‘헨리4세’에는 “과식하도록 내버려두어라. 무덤이 그를 향해 3배나 큰 입을 벌릴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고 또 우리 선인들은 굵고 길게 살려면 음식을 적게 먹는 습관을 키우라고 했다. 너무 잘 먹게 된 일도 우환이 된 현대인들에게는 필경 경세지언이 아닐 수 없으렷다. 하지만 잘 먹어야 한다는 관념이 너무 깊이 뿌리 박고 있어서 대충 먹으며 산다는 게 삶의 질과 직결되는 문제인데 그게 말이 되냐며 소화공정에 더구나 열을 내고 있다.
    필자는 굶기의 즐거움이 어떤지 알 수도 없거니와 그런 즐거움을 가져볼 생각은 꼬물만치도 없다. 세월이 반세기도 넘어 지났어도 굶주림의 고통이 기억에 생생한데 언제 배고픈 즐거움 따위를 떠올리겠는가? 인간세상에서 고생 고생 해도 배고픈 고생 만한 고생이 더 있겠는가? 건강장수를 위해서 굶기의 즐거움이 필요하기도 하겠지만 나로서는 배부른 흥타령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지난 세기 70년대 이전에 태여난 세대들은 거개 몸소 겪어서 체험이 절실할 것이다. 먹는 문제로 지지리 고생하던 유년시절 주린 배를 달래려고 야생식물을 많이도 먹었을 것이다. 나도 이른봄에는 메뿌리를 캐먹었고 일송정에 진달래가 피면 꽃잎을 뜯어먹어 입술을 빨갛게 물들이였으며 어쩌다 만나면 뽀디(뽕)도 따먹고 개나리꽃도 입에 넣었으며 산의 개살구도 볶은 콩 주어먹듯 먹었고 민들레, 달래를 캐여 날 것 채로 우겨댔으며 하얗게 핀 비술나무씨도 훑어서 먹고 살구철엔 살구씨도 깨먹었다…
    한여름에는 수수밭의 감부지인지 하는 것도 입이 거멓게 되도록 따먹었고 달달한 것이 속으로 댕겨서 옥수수대를 짓씹어 단물을 빨아먹었고 가을철이면 뉘 집 바자굽이나 두엄무지에 난 감태랑 뜯어먹었고 개암이 익기도전에 뜯어다 깨먹었다. 이제 생각해 보니 입에 넣어 먹을 만한 것이면 다 먹었던 것들이 대자연이 하사한 “천연보약”이 아니였는지 모른다. 칠십을 넘기도록 오장륙부에 고장난 곳 하나 없으니…
    보리알천지인 조밥을 시래기국에 말아먹으면 제일 속이 든든하던 그 “행복”을 그 시절을 지내보지 못한 사람들은 신화처럼 여길 것이다. 지금도 여름이면 랭수에 밥을 말아 고추장에 파, 풋고추, 마늘 같은 것을 뚝뚝 찍어 먹으면 속이 개운하고 후련하다고 하면 아마 애들은 원시인 보듯 눈이 휘둥그래질 것이다. 배를 곯을가 봐 걱정되는 것이 아니라 먹을 게 너무 많아서, 너무 잘 먹어서 걱정인 시대이니 말이다. “몸이 났구만!” 하는 말이 덕담이였었는데 지금은 듣그러운 비아냥이 되니 가히 알 수 있지 않은가?  
   “신토불이(身土不二)”란 사람이 주어진 풍토와 일체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자연과 인간이 한몸이 되는 것은 지혜로운 생활방식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민족은 육식민족이 아닌데 서양의 육식민족 흉내를 내다 보니 비만과 성인병이 만연하게 되였다. 이런 식생활은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라 생각한다.
    자연은 인류의 모체이다. 모든 생명체가 자연으로부터 왔기 때문에 건강을 유지하고 삶을 풍요롭게 가꾸기 위해서는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야 한다. 누가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이 시대의 슬로건으로 된 것만은 사실이다. 로자, 루쏘 등 많은 선각자들은 일찍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호소로 인류가 정신적, 육체적인 모든 질병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길을 제시해주었었다. 하지만 인류는 이를 마이동풍으로 여기고 비만증을 초래할 때까지 잘 먹어댔으니 자업자득이 아니겠는가.
    살찌는 것을 막기 위해 굶어보는 행복한 사람들, 그들이 진짜 처절한 굶주림을 겪는다면 어떻게들 나올가? 사흘을 굶어보지 못한 사람과는 인생을 론하지 말라 했다. 핍박에 의한 굶주림이 아니라 의도적인 굶어보기가 왜 “굶기의 즐거움”이 되는지 나는 리해불가이다. 요란한 설교가 필요 없다. “작작 먹고 가는 똥 누라”는 속담의 원 뜻은 천천히 여유있게 나아가야 잘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의미이고 너무 욕심을 부리지 말고 자신의 분수에 맞게 살아가는 것이 편안하다는 뜻이지만 또한 식복이 넘쳐나는 사람들의 건강장수에 경종이 아닐 수 없다.
    만포식하거나 미식을 추구하면 결과적으로 뇌의 활성화가 잘 진행되지 않는다고 한다. 육체적 비만이 정신적인 포만상태를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뜻으로도 되겠다.
    굶주림이 일상이던 때 내린 식욕의 뿌리가 지금껏 억세게 굳어져서인가. 이처럼 막부득이한 굶주림은 력사적인 명제이고 병을 치유하고 건강에 유조하게 하려고 굶어보는 것은 사치한 삶의 양상이다. 달리 말하면 굶주림과 굶어보기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먹을 게 남아돌고 너무 먹어서 먹는 게 지겨워진 복 받은 자들에게는 굶기가 고행이지만 무너진 심신을 단정히 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자신을 혁신하고자 할 때는 굶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먹지 않는(굶는) 즐거움”이란 하루이틀도 아닌 아사지경에서 모대기는 사람들에게는 분명 미친 소리로 들릴 것이다.
    아니 그럴 것인가? 유엔산하기구인 세계식량계획(WFP)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세계 인구 9명중 1명에 해당하는 7억 9500만여명이 굶주리고 있으며 그중 33% 가량은 영양실조 상태라고 하였다. 또 전세계 5세미만 영유아 사망의 절반 이상이 영양결핍 탓인 것으로 나타났다. 여섯개의 개발도상국 인구 4명중 1명 이상이 영양결핍이라고 한다. 소말리아와 케냐, 예멘, 남수단 등 아프리카 4개 국에서만도 2000만명 이상이 극심한 기아에 시달리고 있다니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굶주린 아우성과 배부른 흥타령이 인간세상의 협화음으로 되고 있으니…
 
                                                           2017년 3월 10일            (단풍잎 16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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