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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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찰과 치유로써의 수필
2017년 12월 15일 08시 31분  조회:2239  추천:0  작성자: 최균선
                                                    성찰과 치유로써의 수필
 
                                                                최균선
 
    흔히 수필을 자기 고백의 글이라고 하는 데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말하자면 자기 성찰로써의 수필을 쓰노라면 알게 모르게 세속에 병든 마음을 치유할 수도 있는 의미로운 창조적 작업이라는 것이다. 자꾸자꾸 수필을 쓰노라면 무의식에 잠재해있던 내면의 갈등을 겪지 않을 수 없는데 그것이 바로 일종의 심리치료인 것이다.
    프로이드는 환자를 치료할 때 환자가 속심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과정 자체에서 환자의 심리갈등이 어느 정도 치유된다고 보았다. 말을 통한 치유가 가능하기에 하고 싶은 말을 문자로 적어놓는 글도 례외일 수 없다. 일기나 자전적인 글도 자신을 위한 치유로써의 글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삶의 양상을 폭로하면서 상처를 끄집어내며 투시하고 치유하려는 본능적 욕구가 발현된다. 수필만이 아니라 다른 쟝르의 글에도 자기 치유를 위한 무의식적 충동이 반영되기도 한다. 창작심리 속에 자신의 상처와 갈등을 드러내면서 성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수필을 아무날 아무때 쓰려고 작정해놓았다가 집필하는 사람들도 혹 있겠지만 우연히 보게 된 경물, 어떤 현상에서 문득 수필글 감대기가 다가서고 혹은 끊임없는 잠의식의 흐름 속에서 어떤 관념이 떠오를 때 그것을 표현하고 싶은 열망에 몸이 달아오른 경우가 있음을 체험해보았을 것이다. 이것은 령감의 발현과 다르다.
    무심한 듯 무심하지 않기도 한 나날속에 겹쳐지는 세월을 보내며 어느날 문득 마주하게 된 산이 은혜로운 해볕 아래 화사한 봄날의 풍물을 빚어가고 있음을 느꼈을 때, 거한 바위 앞에서 침묵의 의미를 되새겨보면서 오히려 표현하고 싶은 욕망의 꿈틀거림을 말려낼 수 없을 때, 시나 혹은 수필로 표현해내고 싶어지는 것은 글을 쓰는 사람들의 공통된 직업병 혹은 심리관성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 되려면 반드시 남다른 감수와 정취를 갖추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감각이 활약하면 감수는 절로 쌓이게 된다. 이를테면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이채로운 계절은 돌아가면서 아름다운 자연을 만들어간다. 꽃 피고, 무성한 숲 그리고 온갖 색갈로 물들었다가 마침내 떨어지는 락엽과 흰눈이 쌓여가는 련산련봉들을 보면서 이 땅의 서정적인 풍취는 물론이지만 생명의식을 가지고 즐겁고 복된 나날을 함께 할 수 있는 공동체적인 삶에 대해 다시 느끼고 새삼스레 생각해보게 된다.
    겨울, 라목의 숲에서 끈덕지게 은근히 준비되고 있는 새봄의 싱싱한 새잎의 향연은 나무의 생명찬가이며 우리가 살아야 할 의미를 깨우쳐준다. 호듯호듯 뛰는 해살과 뜨거운 여름의 해볕 아래 오곡과 백과가 성숙하고 차차 익어간다. 봄여름을 지난 계절의 절정은 가을이다. 해볕의 은총을 입어 붉게 익어가고 시간과 바람 속에서 맛이 깊어가는 가을은 분명 사계절의 절정이다. 그리고 그러한 계절의 화려한 성숙의 끝에 락엽이 지고 땅 우에서 다시 썩어 흙이 되여진다. 풍요로움의 절정에 뒤이어 쇠락의 섭리를 읽으며 인생무상을 반추하게 된다.
    단풍이 붉게 타고 있는 산자락길에 굼니노라면 자신도 한폭의 풍경이 되는 것이 요 바람이 건들 불어와 한잎, 두잎 쓸쓸히 떨어져 락엽이 락하의 철학을 실증하고 있을 때 처연한 조락 때문에 련민의 정이 가슴 가득 차오를 것이다. 산봉에 펼쳐진 하늘바다에 구름 몇송이가 고기처럼 유유히 헤염치고 있는 풍경에 심취되면 스스로 의미로운 시각을 맞는다고 생각될 것이다. 그것이 곧 아름다움이며 감동이다.
   우리는 자기의 생애에 한페지를 멋지게 장식하는 멋과 재미에 자연을 찾아가면서 체험을 빚어간다.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알기 위하여 철학가의 인생론 열권을 볼 필요는 없다. 륜회하는 계절의 변화 속에서의 다양한 감수와 정취는 철학적 사색으로 려과되고 문학적인 언어로 엮어져 세상에 거듭난다. 그 와중에 자신의 삶과 사랑, 통찰과 아픔을 그대로 보여주노라면 마음의 주름살도 자연히 다림질하게 된다.
    몽떼뉴는 수필은 마음의 보행 그대로의 모습이다라고 하여 지극히 자연스러운 인간적 심성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것이 수필창작의 첫걸음이며 독자의 기억의 심연에 있던 서정과 서사를 자극하여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일이다. 세상과 삶에 대한 성찰을 통하여 비판정신의 낙낙함도 서슴없이 드러낼 때 자신의 마음의 골짜기를 어누룩한데 없이 내키는 대로 편답할 수 있다.
    인생의 의미를 또 다르게 생각하고 음미하고 인생에 대한 달관이 수필에 담긴다면 작자의 개성적, 관조적 인간성이 구현된다. 수필은 정서적이고 관조적이며 내밀한 정신세계에 자진침투하려는 자세와 충동적인 행위본능의 산물로서 차분한 정취와 력동적인 정서가 조화를 이루는 량면성이 있다. 그래서 수필에서 어떠한 쟝르보다도 인간성의 문제와 폭넓은 인문학적 소양이 잘 드러난다고 하는 것이다.
    마치 다정한 지인에게 귀속얘기를 들려주 듯하거나 아니면 많은 청중을 마주하여 자신의 견해와 주장을 역설하는 뜨거운 열기가 넘쳐나기도 한다. 이와 같은 리지적인 면과 열정적인 뜨거움이 씨와 날이 되여 수필의 경지를 펼치고 있다. 수필은 감성과 리성, 랭철함과 열정의 갈등과 소용돌이가 마침내 정관의 자세로 가라앉는 내 안의 진실한 인간상을 부각하는 작업인 것이다.
    현실을 직시하며 작심하고 내뱉는 날카로운 비판, 온당하고도 합리적인 제언, 현대의 사회가 안고 있는 비정함, 죽음의 문제, 종교문제 등등 제현상에 대한 나름의 깨달음을 표백하면서도 인생론적인 얘기 속에 해박한 지식과 랭철한 지성적 지향을 호소하며 동조를 기약하게 된다. 독자들의 가슴에 공명을 일으키려면 우선 그들을 존중하고 리해하는 아량과 포용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당당하면서도 여유롭게 자기가 바라본 세상과 삶의 현장을 투시한 결과를 공유해야 한다.
    한편, 한편의 수필이 그 어느때보다 칠정륙욕에 집착하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온갖 사람, 온갖 사건을 직접 체험한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진실한 모습이고 해탈하려는 기특한 심성을 독자의 정서체험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면 그보다 바람직한 수필이 없을 것이다. 환희와 더불어 분노 없이도 살아갈 수 없는 세상에서 수필은 분노의 감정 그 자체를 넘는 정당한 분노도, 의로운 분노도 얼마든지 토로할 수 있다. 그것은 독자에게 하는 성토이기 전에 심리평형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수필을 써서 세상에 내놓으려면 작자 자신이 스스로 심리치료를 거치게 된다. 자신의 흔적과 삶의 골짜기를 개방함으로써 치부도 드러나게 되므로 수필을 통하여 무엇을 어떻게 고백할 것인가 고민하게 된다.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인간상과 인격력량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앞으로 어떻게 살겠다는 의향도 비쳐야 하기 때문이다.
   수필읽기를 통해서도 치유가 가능하다. 작가는 개체경험을 일반화하여 내면의 갈등과 치유를 독자도 경험할 수 있도록 해준다. 따라서 읽는 이는 글을 통해서 감동을 받고 상처를 어루만질 수 있으며 자기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것이다.
    살며 느끼는 사람이면, 생명을 사랑하고 생활을 사랑하며 인생의 의미를 파헤치고 싶으면 표현하라! 표현욕은 소유욕 뒤에 그림자처럼 묻어나오는 욕망이다. 이 평범한 진리를 깨달았기에 작가의 길에 나선 사람들이 있게 된 것이 아니랴, 감성과 리성의 려과를 거친 감정을 씨실로 살아왔고 살아가는 이야기, 남에게 드러내고 싶은 자화상을, 아픔을 먹고 자라는 인생나무와 그것을 키워가면서 그 모두를 사랑한 사연들을 표백하고 또 표백하시라.    

                                              2017년 1월 7일    (연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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