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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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소곡 2
2018년 02월 28일 12시 44분  조회:371  추천:0  작성자: 최균선
                                                                황혼소곡 2
 
                                                                     최균선

    산골에도 심심산골에 살아본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대자연의 축복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가져보군 했을 것이다. 두 팔을 펼쳐들면 량켠에 산봉들을 거머쥘 수 있 듯 좁디 좁은 산곡간, 우중충 푸르른 숲, 싱그러운 공기가 어울려 새소리, 계곡을 빠져 나가려 분주탕을 피우는 물소리, 자연의 신비로운 조화를 이루어낸다.
   시골 명동중학교에 몸을 담고 있던 시절, 벌방에서는 감촉하지 못했던 순수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새삼스레 느끼며 자연과 더불어 살고 늙어가는 것이 얼마나 복된 것인지를 절실히 느끼였다. 때때로 황혼빛 실실이 걸리는 두만강가 버드나무 아래에 앉아 매미가 우는 소리에 심취되여 있노라면 매미소리가 귀 속으로가 아니라 가슴 속으로 파고들어서 마치 몽롱한 꿈세계의 선률처럼 신비하게 느껴지였다.
   평화가 깃드는 고요한 황혼녘의 자지러진 매미울음소리는 그렇듯 신비로운 대자 연의 음악이였다. 한여름 향촌의 합창단은 해해년년 지칠줄 모르고 울어쌌을 것이다. 세월과 더불어 부르고 부르는 저 서늘한 선률 속에서 향촌은 늙어갔고 사람들도 늙어 갔으리라.
평화로움과 안녕이 깃드는 해질녘의 향촌마을의 상공에 이채로운 풍경은 회백색 의 연기이다. 집집의 굴뚝에서 모락모락 피여오르는 저녁연기는 석양이 비낀 향촌에 생동한 풍속화를 그려주고 있다. 그 것은 결코 숨 막히게 하는 공기오염이 아니라 풋풋한 인정이 감돌아드는 사람 사는 냄새이기도 하였다.
    기압이 한껏 낮은 저녁이면 굴뚝에서 머리를 풀고 나온 연기가 땅에 내려앉으며 마을 길을 휘돌아 동구밖 나무가지에 걸렸다가 미구에 하늘에서 굳어지기도 하였다. 아이들은 제 집의 굴뚝에서 연기가 거의 사그라지는 것을 보고 놀음에 탐했던 마음을 접고 “얘들아, 밥 먹을 때가 되였다, 오늘은 그만 놀자!” 하고 짝짜꿍을 치며 제 보 금자리로 줄달음쳐갔다. 애들의 마음 속에는 저녁연기가 엄마 혹은 할머니가 애들에게 알리는 가장 의미롭고 다정스러운 부름이였던 것이다.
    밥 짓는 연기는 향촌에만 있을 수 있는 특이한 풍경선이였다. 잠풍한 이른아침 밥 짓는 연기는 투명하고 석양의 황금색에 물든 마을에 피여오르는 연기는 엄마, 할매들의 냄새, 손맛 그 자체였다. 아침저녁으로 마을을 감도는 연기 속에서 향촌의 삶의 향기와 생기를 느낄 수 있었다.
    해 지는 들녘, 곱게 비낀 저녁노을이 고기비늘 같은 엷은 구름을 채단처럼 물들 이는데 풍년가을이 설레이는 밭길을 따라 농부내외가 소수레를 타고 돌아온다. 아낙 네는 무어라 자꾸 새살을 떨고 나그네는 빙그레 웃으면서 장알진 손으로 소궁둥이를 철썩 갈길 뿐이다.
    “에라, 이 눔의 소야, 늑장부리지 말고 얼러덩 가자…이랴! 쩌쩌…”너무너무 평화롭고 슬프도록 아름다운 목가적인 향촌풍경이였다.
    저녁 상을 물리고 모기불 피워놓고 마당가에 나앉아 밤하늘 총총한 별들과 은 은한 달빛, 개구리와 풀벌레, 산새소리, 코끝을 스치고 머리와 어깨를 어루만지고 가는 바람결, 어둠 속에서 술래잡기를 하느라 떠들석 고아대는 아이들… 가진 것 없고 잘난 것 없어도 소박하고 주어진 삶에 안주하는 행복이란 따로 있으리라.
    조물주가 베풀어준 천상천하의 그 많은 경물 중에서 석양도 자체의 특이함으로써 사람들을 매료시킨다. 붉게 물들다 못해 그냥 불 타고 있는 듯한 서녘하늘 구름 사이 로 서서히 사라져가는 장려한 석양은 눈물 나도록 아름답다. 밤이 가까워지는 시각과 이률배반적인 정경이요, 그 아름다움이 너무도 잠간이여서 아쉬워서 눈물겨운지도 모른다. 아무튼 황혼은 누구와 리별하는 시각도 아닌데 그냥 슬프다.
    그래서 동서고금의 수많은 시인과 문필가들이 해돋이를 두고 붓을 날려 불후의 걸작을 남겼던 것이 아니랴, <거칠은 광야에 외로운 연기 피여오르고 지는 해 대하에 잠겨 쟁반 같구나.>라고 한 옛 시구에는 까닭 모를 처량함이 담겨있지만 석양은 그래서 더 감상적이리라.
   아닌 게 아니라 황혼이 찾아들면 매양 처량함이 앞서 온다. 이제 가야 할 멀지 않은 길에 황혼빛 서러워라. 꽃이 시들어짐에 바람을 탓할 수 없 듯이 청춘이 지기 로서니 황혼을 탓하랴만 황혼에 비애를 느끼지 않는 도끼등 같은 감정을 가진 늙은 이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황혼에 림하여 각자의 느낌은 천차만별, 각양각색이다.
    황혼은 생로병사의 수순을 가는 인생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어떤 이들은 만개 한 꽃에 눈물 짓고 어떤 이는 지는 꽃에 처연한 한숨을 토하고 혹자는 저녁새 우는 소리에 미묘한 정취를 느끼고 어떤 이는 애처로운 울음에 눈물 짓고… 옳거니, 세상사 영원한 번영을 확보할 수 없거늘, 누군들 황혼의 비애를 느껴보지 못했을 가부냐,
    흔적없이 가버린 세월 속에 속절없이 미련은 남아서 비워야 채우고 버려야 얻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보니 황혼이 슬피 운다. 리별은 안타까움으로 기다림을 빚을 수 있다만 황혼은 비애로 어스름이나 빚을가, 노을빛 피같이 물들인 석양의 언덕에 넋을 놓고 앉다. 어째서 온지도 모르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정처없이 걸어온 인생길. 지나온 자국마다 후회가 콜짝인다.
    고생 끝에 살만치 되면 남은 시간이 얼마 없고 참다운 사랑을 느끼게 되면 사랑 하는 사람은 이미 떠나고 삶의 진실을 깨달으면 머리에 흰서리가 처량하고 삶의 진미를 터득한 듯 싶을 때 몸은 이미 로쇠했음을 절감하게 된다. 돌이킬 수 없는 허황한 추억이 건만 늙으면 추억병에 걸리는 걸 말려내지 못하는 까닭이리라.
    세월의 물레방아는 쉬임없이 돌고돌아도 산천은 유구하고 꽃은 지고 다시 피여도 생명의 꽃은 다시 필줄 모르는데 비켜갈 수 없는 세월의 언덕에 황혼은 날마다 도적 고양이처럼 슬밋슬밋 다가오고 늙음은 득달같이 달려온다. 기운은 점점 쇠락해지고 황혼이 슬픈 곡조로 노래할 때 바람 타고 들여오는 하늘의 소리, 황혼의 소리, 대자연의 소리를 고독으로 들으며 새겨보게 될 것이다.
    청년시절은 누구나 거의 대동소이하게 살았지만 로년의 삶은 자신이 가꾸기에 따라 그 질이 달라진다. 외모로 나타나는 격차는 별로 없지만 정신적인 차이는 말 몇마디를 해보면 금방 저울금이 보인다. 몸은 비록 늙었지만 감성이 쇠퇴하지 않 았다면 내면 세계에는 청춘의 록지가 남아있다는 표징이다.
   나이80에 미국 헌법을 기초한 벤자민 프랭클린은 "진심으로 삶을 사랑하는 사람은 절대 나이를 먹지 않는다. 비록 나이 때문에 죽을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젊어 서 죽는 것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프랭클린의 말처럼 만년을 살아간다면 인생의 일몰은 일출만큼이나 아름답다고 할 것이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알고 가는 이의 뒤모습은 더없이 아름답지만 우왕좌왕 방황하는 모습은 민망스럽다 하리라. 바람아, 구름아,황혼아, 말 좀 하려무나. 어디 로 가야 고고한지, 청춘시절도 아득히 잊혀지고 황혼만 눈앞에 생생하니 인생의 초행 길 걷고 걸으며 고래희고개에 오른 로옹의 마른가슴에 회한만 축축하구나.
    섭리에 순응하며 현세에서 잠시 쉬다가 종착역인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황혼아, 천천히 가자꾸나. 인고의 세월을 불사르며 황혼의 끝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미련만 까불리니 어쩌냐? 마음으로는 스스로 추하게 늙지 말자고 벼르지만 황혼의 로신사가 내게는 인연이 없고녀.

                                                    2018년 2월 22일                   연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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