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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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에게 도화원은 없다
2018년 04월 08일 12시 51분  조회:2313  추천:0  작성자: 최균선
                                        작가에게 도화원은 없다
 
                                                         최 균 선
 
    우리의 문학은 지금 독자층의 확보라는 난제를 안고있다. 우리의 문학을 누가 읽어야 하는가. 오늘 날, 다른 전달매체에서 끌어간 더 많은 대중들이 읽어야 한다. 감각지상주의가 된 이 시대, 문제시 되는것은 보다 문학성이 짙은 작품으로 날로 나날이 더 많이 잃어가고 있는 독자들을 흡인하기가 쉽지 않다는것이다.
   문학이 사회와 관련없이 쾌락적인 오락으로 전락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작가가 개변하기는 어렵다. 현시대 젊은이들의 상상력의 결핍은 문학에 대한 소외와 관련 되여 있다. 유혹의 상징은 희랍신화속 바다요녀의 노래이다. 문학이 바로 바다요녀의 유혹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문학은 자체에 고유했던 유혹력을 상실하였다.
    문학이 인간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해 나가는데 무력하다는 의론을 반문학적이라고 말할수는 없지만 작가로서는 비관적인 평판이 아닐수 없다. 인류가 남겨놓은 문학유산은 휴지가 될것이고 선각자들이 쉴새없이 진행한 사고들은 모두 헛짓이 되고 말기때문이다. 문학이 대중에게 소외당하게 된것은 고도의 물질문명의 역설인가?
    손중산선생은 인간을 세가지 류형으로 나누어 보았다.
    첫째는 “선지선각자(先知先覺者)”로 다른 사람보다 먼저 생각하고 먼저 알고 먼저 깨달아서 먼저 행동하는 사람을 이른다. 항상 앞서가는 인간군의 선두주자들로서 희소하다
    둘째는 “후지후각자(後知後覺者”로 다른 사람이 행동할 때 뒤따라가는 사람으로서 항상 행동이 한단계 느리지만 뒤늦게 깨달아도 나름대로 자기 삶을 살아가는 사 람이다. 때론 자존심때문에 맹종하지 않고 늦게라도 알아차려 제대로 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로서 된 사람으로서 인생고를 겪어야 할 운명이다.
    셋째는 “부지부각자(不知不覺者)”인데 아무것도 모르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면서 우왕좌왕, 천방지축 살아가는 사람, 자신이 시대의 흐름에 앞서고 있는지 뒤처져 있는지 분간못하고 그냥 제멋에 겨워 인생을 살아가는 무리들이다..
    손중산선생이 말하는 첫째 부류의 선각자가 되는 길이 작가의 길이다. 작가들은 흔히 불만족한 현실에 없는 문제들을 작품속에서 더듬어내고 그것을 펼쳐 보인다. 정상적인 환경에서는 문학이 인류의 안녕과 복지에 복무하지만 비정상적인 환경하에서 문학의 백화원을 누가 지배하는가에 따라 악용되였다. 그러기에 무시로 딱한 처지에 놓일 부류가 문학인계층이였다. 그들은 문학이 보이지 않는 커다란 손에 의해 운행될지 알기도 하지만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문학 그 자체에는 리념이나 진영 따위가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책에 씌여진 공리공담이다.누군가 자청해서 어용문인이 되였을 때 그는 인생의 패필을 쓰기 시작한것이며 랭소와 저주의 기둥에 매달리게 된다. 자고로 지조가 높다는 선비들도 리해득실을 앞세울 때에는 량지를 잃는다. 인간사회에서 리익을 초월하는 힘이 없기때문이다. 바람이 부는데 흔들리지 않는 나무는 그 어디에도 없다. 그만큼 문인은 갈대의 순정에서 벗어날수 없다.
    인간성이나 자유라는 개념이 상충되고 있는 인문환경속에서 문학에 혼신을 불태우는 작가들이 많은데 인류에 필요하고 청사에 길이 남을 작가가 될지 아니면 력사의 죄인이 될지는 각자가 선택할 일이다. 바람따라 돛을 달수도 있고 문인의 지조를 고집할수도 있는데 각자 선택이 옳았는지는 시간이 판정할것이다.
    글을 써서 밥을 먹고 살려는 지향은 불확실하다. 지금은 원고료로 갑부가 된 한 족작가들이 있지만 자초에 우리가 문학을 지망하던 그때는 원고료를 바라고 붓을 든 사람은 적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되돌려진 원고를 찢으며 절망하고 더는 문학을 하지 않는다고 만년필을 던진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것은 문학의 잘못이 아니였다.
    작가는 마치 임자없는 묵밭에 금은보화를 묻혔다는 랑설을 곧이듣고 그 밭을 사서 구석구석 파헤치는 우직한 사람같다. 문학의 백화원에 눈부시게 피여나 향기 만방하는 글꽃들은 무수하지만 금은보화는 없다.작가는 망망한 바다에 한껏 펼쳐지여 희귀한 물고기를 끌어모으는 그물과 같기도 하여 그물에 가득하매 못된것은 내버리고 좋은것만 문학이라는 그릇에 담는 사람이기도 하다.
    작가다운 작가는 고군분투할 숙명이을 타고났다. 또 하나 작가의 장인정신은 분투정신이다. 각고의 노력에 금전과 명성이 따라서지 못하여도 기죽지 않는것이 작가의 의지이다. 삶의 현장에 대한 관조와 재조명이 작가적 자각의 행위라면 문학은 비생명적이며 반인간적인 여러가지 요인에 결연히 맞서서 동시대의 사람들을 위해 바람직한 인문조건을 마련하는 성스러운 작업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산은 오르라고 있는것이지 보라고 있는것이 아니다. 땀을 흘리며 힘겹게 정상에 오른 사람이 즐거움을 맛볼수 있다. 문학백화원의 주인은 작가들이다. 고생스러움도 자아가치 실현도 내가 선택하고 내가 해석하는만큼 채워지고 달라진다. 억지가 상식을 짓밟고 진실이 혼란속에 질식되였지만 작가로서 굴절시킨 자기 합리화는 무모하다. 독자들의 사랑을 잃으면 문학의 존재리유를 상실한것이다.
    인생은 행복한것인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니라 행복하게 만들것인가 아닌가에 달려있다. 레브 똘쓰또이가 글을 쓴 까닭은 오로지 자신이 깊이 생각하여 깨달은바를 다른 사람, 세상사람들에게 전함으로써 그들의 삶에 다소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때문이였다고 설파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리되기 위해서 분투하였다. 인류는 너무 많은 진실을 감당할수 없지만 반대로 만천하에 범람하는 허위에도 진저리 치고있다. 작가는 그들과 함께 진저리만 치는것이 아니라 납함해야 할 사람들이다
    진정한 작가는 “글뒤주”에서 나온적이 없다. 지식경제시대라 해도 작가에게 있어서 졸업장ㅡ학력(学历), 학벌은 별개의 문제이다. 작가에게는 학력보다 학력(学力) 이 효용적이기때문이다. 작가에게 확실한 학력은 곧 문학세계에서 발신되는 창조정신과 력량이다. 쉐익스피어나 쎄르반떼스나 졸라 등 대문호들의 학력은 미미했지만 인간연구에서 얻은 학력(学力)은 학력(学历)을 무시하고 인류의 문화발전에 불멸의 큰 획을 그어놓은 대학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겸손하기 그지없는 이인(异人)들이였다.
    참으로 진정한 문인은 교만하지 않는 자이다. 교만한자는 마치 다른 사람의 눈을 가리워놓으면 광명이 온통 자기에게 속하는듯 여기는 우자들이다. 겸손하지 않으면 진정한 문인일수 없다는 사실을 바르게 알면 미래가 기약되지만 그것을 외면하면 희망이 없다. 작가가 옳바른 추구와 판단이 없이는 문학작품이 무료한 사람들의 소일거리로 전락할것이고 그로써 작가의 로동은 무효로동이 되고말것이다.
    한편의 불멸의 시는 인성을 치유하는 힘, 영생하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읽는 이의 가슴에 닿아 정감세계에 한폭의 아름다운 그림으로 펼쳐주기도 한다. 인생현장의 골목길은 종래로 뒤공론하는 자들과 말밥에 오른 자들로 시끌벅적했다. 그러기에 남의 기분에 장단맞추지 않는것이 작가다운 자세이다.
     “도연명은 어디로 갔는지 알수 없는데 도화원에서 씨뿌리고 밭갈수 있을가” 인간촌에 도화원은 작가들의 힘으로 만들수 없다. 내가 딛고 있는 현실을 도화원으로 만들수 있을뿐이다. 공연히 도고한체 하는 작가들이 글밭을 갈 도화원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있다면 꿈의 세계도, 도피의 세계도 아닌 민중의 생활속에 있다.


                                                           2018년 2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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