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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갑질”을 비웃는다
2018년 05월 01일 18시 49분  조회:2434  추천:0  작성자: 최균선
                                                        “갑질”을 비웃는다
 
                                                                   진  언
 
    언제부터인가 한국에서는 권력의 우위에 있는 갑이 권리관계에서 약자인 을에게 하는 부당행위를 통칭하는 개념으로 갑질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내였는데 ‘갑을’은 원래 계약체결의 당사자인 갑방(甲方)과 을방 (乙方)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계약은 정의상 둘 이상의 독립적인 개인이 자유의사에 의해 대등한 자격으로 체결하는 합의임에도 불구하고 갑이 거래관계에서 차지하는 우월한 지위를 리용하여 을에게 공정치 못한 행위를 저지르는 일이 바로 사악한 갑질이다.
    갑부들의 잘난 “갑질”이 무척 성행되고있다. 려객기를 되돌리게 한 오너 임원, 백화점 주차요원의 무릎을 꿇게 한 고객모녀, 제자를 고문하고 인분을 먹인 교수, 운전수를 노예처럼 부려먹은 기업주, 기업회장의 항공사직원에 대한 폭행, 병사더러 술상을 차리게 하고 쩍하면 구타한 모사단장, 일컬어 인류 생명의 기사들의 일터인 병원내에서 만연된 임금갑질, 휴가갑질, 노동갑질, 모성갑질, 성희롱갑질, 폭력갑질, 지시갑질, 비품갑질, 정치갑질, 의료갑질…
    갑질하는 자들의 잠재의식에는 잘난 우월감이 준동하고있다. 그런 자애가 자신을 선량한 갑으로 놓아두지 않는것이다. 갑질하는 자들은 안하무인이여서 타인의 삶을 인격적으로 모욕하는 악랄하고 비루한 작태가 일상이다. 묻거니와 자기만이 주인이 아니라 타인도 자기 삶의 주인일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가? 무식하면 용감해지는 법인가, 갑질쟁이들은 인성공부에는 “묵은돼지”들이다.
    힘있는 자들의 무제한적 권리가 힘없는 자들의 무제한적 의무로 규정되고 있는 비리한 현실은 인간의 저렬한 근성의 또 다른 화랑이다. 상처입은 사람들은 아프고 분통이 터지고 증오심이 비등할것이다. 힘있는 자들의 갑질은 막무가내라 할세 약자로서 또 다른 약자를 갑질하려 든다면 어처구니 없지만 현실이 그러하다.
    한국의《연합뉴스》에서 청주 흥덕경찰서는 70대 택시운전기사의 뺨을 수차례 때린 혐의로 중학생 A(15)양과 B(15)양을 불구속 입건했다. 눈물이 헤픈만큼 동정심도 많고 순결무구해야 할 소녀들마저 갑질의 쾌감을 느끼려하니 말세는 말세로다.
    더욱 경악할 일도 있다. 2년전인가, 경기도 이천시의 한 특성화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파괴된 인성의 패륜현장은 그야말로 언어도단이다. “39세의 기간제 교사에게 16세 전후가 된 학생 3.4명이 듣기조차 힘든 욕질과 침뱉고 매질을 하는 장면이 세상에 전파되였는데 만화나 소설도 표현하기 힘든 패륜 그 자체였다
    학생들의 인성에 내제된 인간의 도리는 아예 찾아 볼수조차 없다. 정식교사가 아닌 기간제교사란 약점을 잡아쥐고 저지른 그 악랄한 '갑'의 근성이 어른들 사회를 조소하듯 표출된 더러운 모습이다. 사회 곳곳에 고질적으로 만연해 있는 "갑질문화"가 가장 신성하다는 교정에서 공공연하게 감행되였다는 사실은 충격을 넘어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수 없다. 한 나라의 인성질서가 가장 근본이 되고 확실하게 확립되야 할 교단이 저런 식으로 무너지면 한국사회는 미래가 없다. 
    타인에 대한 갑질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할수가 없다. 자신의 현재 위치에 집착하다보니 타인의 삶에 치명적인 아픔을 주고있다. 갑질은 다른 사람을 주체로 보지 않는데서 생기는 지극히 가증스러운 병적인 심태이다. 갑질행위의 밑바닥을 파헤쳐 보면 저질의 인성의 표현이다. 그래 아니란 말인가? 자신의 행위가 결코 인간적인 작태가 아니란것을 알면서도 권력의 우위에 있는 “갑” 들은 자신의 인격력량과 차지한 자리의 힘을 혼동하고있다. 제복이 그 사람을 만든다는 나뽈레옹의 말처럼 그 사람이 대단한것이 아니라 그 자리로 하여 으시댈수 있을뿐이다.
    전통적 관념상 태여날 때 인격은 일률 평등하다고 한다. 그런데 각자 사회인이 되고 사회상에서 신분, 직위가 천차만별로 구별되면서 마치 “갑”과 “을”의 관계처럼 상위에 있는 인간간이 하위에 있는 인간을 박대하고 있다. 갑질행위를 너무 흔해빠진 분석을 들이댄다다면 입에 달고 있는 인권침해이다. 당신에게만 인권이 있는가? 피갑질자에게도 인권이 있다!
    그럼에도 무지막지한 인간들은 자신들의 근본을 잊고 갑질하기를 아주 좋아하는데 정상인의 심태일수 없다. 모든것이 변하는 이 인생마당에서 누구도 결코 갑으로만  살아갈수는 없지 않은가? 절대의 갑으로만 존재하는 생명체는 없으므로 좋으나 궂으나 상호의존해 살아가게 되여있다는 구구히 설명해주어야 알것인가? 도고한 갑질쟁이들이여, 그 좋아하는 갑질을 하기전에 한번쯤은 자문해 보라. 자신을 사랑하는만큼 랭철하게 해부해 본적이 있는가?
    그러니 진정 강자라면 약자들앞에서만 거센치 하지 말고 가장 이기기 어려운 적수인 자신한테 수시로 갑질하라. 타인을 용서할줄 알아야 사랑할줄도 안다. 타인에 대한 관용은 자기 내심세계의 평화를 열어주는 열쇠다. 적덕이란 용서하는 마음에서 쌓여진다. 세상에서 가장 나쁜 인간은 약자를 학대하는 인간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관용할 때 되돌아와 자기에 대한 관용이 되기도 한다. 이는 지력상수가 높은 사람이라야 깨도할수 있는 인생도리가 아니다. 박애는 일종의 정조이자 수양이다. 박애를 지닌 사람만이 진정으로 스스로를 대접하고 남을 대접할 줄 아는 사람기때문에 그의 삶도 즐거움으로 충만할수 있다. 이것은 인생상식이다.
    사람이 지켜야 할 법에는 세가지가 있다. 문화적으로 허용되는 행동을 말하는 사회륜리법, 법적으로 허용되는 민법과 형사법, 그리고 인과보응이라고 하는 보편법이 그것이다. 첫번째와 두번째 법은 위반해도 무사할수 있으나 세번째 법을 위반하면 결코 무사할수 없다. 도덕법정도 법정이요 평생을 두고 징벌하기때문이다.
    각설하고, 제대로 먹혀진 민주주의국가는 부하고 귀함을 막론하고 평등하게 공생공존 하도록 잘 짜여진 시스템을 갖춘 국가이다. 고위관료는 고위관료대로, 기업인은 기업인대로 갑질을 당연한 행실로 여기고 어떻게든 ‘갑’의 위치에 서보려는 ‘을’의 그릇된 생각이 오늘날 ‘갑질’이 일종의 문화풍경으로 그려지게 된 원인이다. 갑질이 화해사회에서 생기지 말아야 할 악성병폐이지만 변화가 있을수 없다.
    돈이면 만사통인 자본주의사회에서 특권층이 특권을 내려놓고 평등사회가 뿌리를 내리는 사회를 바라는것은 허황하기만 하다. 멀쩡한 제비다리를 부러뜨린 놀부는 죽었다 깨여나도 흥부가 될수 없다. 권귀들은 권귀들대로, 재벌은 재벌대로 호령질에 인이 박혀있기때문이다. 인격을 인격으로 보지 않으려는 지배구조에서 싹튼 ‘갑질’은 이제 인정마저 싹 말려버릴것이다.
    닭들은 모이를 주는 주인의 손을 <착한 손>이라고 생각한다. 그 손이 자신의 목을 비틀기전까지만, 이것을 영국의 철학자 버트란드 러셀의 비유 혹은 귀납의 오류라고 말한다. 닭을 키우던 농부가 결국에는 닭의 목을 비튼다는것은 그저 아이러니만이 아니다. 이래저래 참으로 우스운 인간극장이요 웃기는 갑질문화라 하겠다.
 
                                        2017년 11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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