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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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언수상록79) 내 눈에 보이는 세상 구석
2018년 06월 05일 20시 45분  조회:239  추천:0  작성자: 최균선
                                          내 눈에 보이는 세상 구석
 
                                                          진 언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이 세상이 어떻게 보이는지 알수 없다. 하지만 내 눈에 보이는 세상을 공중에 내놓고 싶어진다. 하긴 내눈에 보이는 인간세상에 대하여 횡설수설한다면 혹 동감을 얻을수도 있고 반대로 하찮은 글쟁이로 오지랖이 넓다고 비난할 사람들이 더 많을줄로 안다. 그러나 오래 살아오면서 보고 느끼고 생각되는바를 표백한다면 그 역시 진실한 마음이라 할것이다.
    “내가 존재하므로”를 전제로 할제 내가 없으면 이 세상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 할 근거가 생긴것이요 눈에 보이는대로 세상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게도 되는것이다. 철학자 죠지 버클리는 “물질이 인간에게 부여하는것은 물질속에 존재하는 성질이 아니다.”라고 하였듯이 실상 보이는 세상과 보는 세상의 구별도 있게 된것이다.
    세상에 어섯눈을 떴을 때 세상은 낮이 지나면 밤이 오고 밤이 새면 밝은 새날이 오듯이 흑백 두가지 색으로 인지되여 특별히 분명했고 이 대천세계에 기이하지 않은것이란 없었다. 그러나 아이들 눈이라도 동일한 사물에 대한 견해도 달랐다. 나자신도 내 눈에 보이는 수많은 사물도 볼 때에 따라 느낌이 달라졌다. 마치 처음 명화 “몬나리자”를 보았을 때 단아하기는 하였으나 살아있는듯한 질감이 느껴지지 않았으나 후에 다시 보면 확실히 살아있는듯 생명의 활력을 느낄수 있듯이 말이다.
    그러나 아롱다롱하던 동경이 현실과 마주섰을 때 특히 나의 청춘의 꿈이 철저히 부서졌다고 절감한 그때로부터 모든것의 앞뒤면, 그것의 량면성을 보아낼수 있었다. 다른 젊은은이들의 눈에는 이 세상이 아름답고 해빛찬란하다고 느꼈을지 모른다. 물론 이 세상은 아름답지만 보는 눈길, 느끼는 마음에 따라 달리 인지될수밖에 없다.
    아닌게 아니라 차차 지적으로 성숙을 다그치면서 이 세상이 회색, 일종 혼합색으로 느껴지면서 명명백백하게 안겨오는것이란 별로 없게 되였다. 세상이 혼탁해서 내눈이 혼탁해졌는지 아니면 내 눈이 혼탁해서 색안경을 낀것처럼 무엇이나 원색을 보아낼수 없는지…일찍 박지원이 하루밤에 아홉번 강을 건너며 강물소리가 각이하게 들릴수 있다고 설득력이 있게 설파하기는 했지만…
    다 아는바와같이 하나의 사회는 한 시대를 담고있고 한 시대는 당시 사람들의 눈속에 비낀 사회상이 있기마련이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 사회는 변화하고 우리들의 눈에 비낀 사회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하게 된다. 이를테면 다같이 가난하기는 했지만 인심만은 훈훈했던 산촌에 “×××를 타도하자!”는 구호소리가 터지면서 산천 초목도 떨던 광란의 년대. 세상은 헝클어지기 시작했고 물이 흐린김에 손을 넣어 고기를 잡는 “영웅”들이 나와 우쭐렁거리는 바람에 친화성은 가뭇없이 사라졌다.
    돈이 나오는 곳이면 물불을 가리지 않게 된 금전만능주의 현시대에 들어와서 사람들이 저저 심리벽을 쌓아놓고 남을 쉬이 믿으려 하지 않고 경계심만 곤두세우게 되였다. 언론이 너무 민감해서인가, 아니면 이 사회가 너무 부패해져서인가 보이나니 곳곳에 락마관들의 추태요 들리나니 벼라별 추문들이라 머리가 어리벙벙할 지경이다. 물욕이 종횡무진하는 시대여서 인성, 인정마저 돈으로 말아먹게 되였는가? 사람들은 “사회대가정”이란 말을 많이도 외워왔는데 당신은 대가정의 따스함을 느끼는가?
    경우와 과정이야 어찌되였든 많이 차지하게 된 사람들은, 남을 다스리는 재미가 짭짤한 기득권자들은 이 세상이 무척 살맛이 날것은 당연하다. 그러니 행복하고 쾌락한 이들은 분복대로 나름껏 쾌락하라고 하라. 그러나 세상은 밝은 곳이 있는만큼 어두운 구석이 많고 그 구석에서 한숨 쉬고 눈물짓는 사람들도 있다는것만 념두에 둔다 면 괜찮은 사람들이라 해야 할것이다.
    늘 밝은 세상에서 태양의 축복을 만끽하는 사람들은 단정하게 정좌하고 있는 여래불의 신상앞에 한눈 감고 한눈 뜨고 소원을 뇌까릴제 몸은 불조앞에 있으나 마음은 돈뭉치와 함께 굴러다닌다는것을 전지전능한 여래불이 알기나 하는지, 그리고 보다 많고 날로 더 많아지는 세상의 어두운 구석을 천리혜안 부처님은 굽어보고 계시는지, 예수도 수많은 신도들이 하느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는체 하며 자기 리속을 챙기려 꼼지락거리는것을 알고나 있는지…
   공생공존하기 위해 맺게 되는 모든 인연들이 다행일수도 있고 불행일수도 있다. 어찌 생각하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라고 할수도 있다. 뭇사람들과의 인연이든 부부인연이든 재물과의 인연이든 직장인연이든 자연스러운 인연이 아니라면 꽈배긴가 타래떡처럼 배배 꼬이는 인생이 될것이고…
    사람들이 모인 곳이면 사회불평들을 의론하고 돌이킬수 없는 부패에 침을 튕기지만 어떤 사람은 행복감에 취해 그런 의론을 예전같으면 멸문지화를 당할 “사회불평”이라고 펄쩍 뛸것이고 어떤 사람은 막무가내함에 손을 휙 내젓고 속으로 참을 인자를 외우기도 할것이다. 그러나 인간세상은 낮과 밤이 엇바뀌듯 규칙적이 아니다.
    가령 이런 생각을 한다고 하자. 즉 이 세상에 모든 생물은 모두 생존권이 있으며 생명가치가 있다. 례하면 걸어다니는 료리들인 돼지, 소, 닭, 헤염치는 물고기 등등, 인류의 사회공약에 무고하게 동류를 살해하는것을 금기하고있다. 그런데 우리는 무슨 권리로 그런 생명체들을 잔인하게 잡아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뜯고 오리오리 칼로 저며내고 칼탕치고 삶고 고으고 지지고 볶고 상추에 싸서 먹는가?
    이는 두말할것없이 우문중에 우문이다. 대답은 지극히 리기적인 인간이 류행어처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하여” 타생명을 마구 잡아먹는게 당연지사라는것이다. 우문에 현답이로되 기실 상식을 초월하는 원본사상이 깃들어있다. 즉 이 세상, 이 사회의 본질을 투시하고 파헤치는 그런 심각한 문제가 예시되는것이다. 일컬어 “사회강자”는 “고기”를 먹는 자들이며 사회약자는 강자에게 먹히우는 “고기”들이다. 
    세상구석을 벗어나 좀 멀리 내다본다면 금전만능주의 자본주의 사회체계는 압박도 착취도 없는 평등한 사회의 아름다운 리상도 말아먹고 결국 빈익빈 부익부 세상을 만들어냈고 결과 량극화 현상이 극에 달하게 되였다. 자유, 평등은 간곳이 없이 오로지 힘의 론리가 지배하는 불가사의한 인간세상, 약육강식의 세상이 되였다. 극단적 리기주의자들이 세상을 쥐락펴락 하기에 평등은 허황한 념원속으로 숨어 들었고 불의를 보고 참아내지 못하는 정의지사들과 도리와 례의범절을 지향하는 군자들은 뒷전으로 쫓겨갔거나 매몰당하고있다.
    “자유,평등,박애,민주,인권”이라는 기치아래 실리주의, 금전만능주의는 금수들의 적자생존의 론리만을 진리로 내세우고있다. 피의 비극이 끊임없이 빚어지는 지구촌을 보라, 무력패권주의가 휘둘러지는 천상천하, 마음에 들지 않은 약소국들은 강대국의 구미에 따라 유린당하고 훼멸당하고 있지 않는가?그러나 개체들은 먹고 살만한 세상이라고 생각하면서 내 앞가림에만 분주하다.
    페일언하고, 세상을 거의 살다가 다행히 인터넷시대를 접하면서 안계가 조금 넓어져서 지구촌의 세상만사를 눈요기하게 되니 헛살고 있지는 않는것 같다. 내 눈에 보이는게 세상이 전경이 아니고 내가 보려는 세상은 다 볼수 없으나 세상구석이라도 보는것이 여간 의미롭지 않다. 그렇다고 눈앞에 보이는 세상에 감탄표만 칠수는 없고 의문표만 달수도 없다. 이는 두 극단이다. 마침표는 가당하지 않으니 아마도 풀이표 혹은 점선을 쳐두고 하회를 보아야 하리라            

                                                2016년 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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