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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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언수상록 92) 총명의 도(度)
2018년 07월 22일 14시 55분  조회:97  추천:0  작성자: 최균선
                                                         총명의 도(度)
 
                                                              진 언                                
 
    똑똑하다, 머리가 좋다를 총명하다고 하는데 총명(聪明)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총은 청각이 령민한것이고 명은 밝고 선명하여 밖으로 잘 드러나는것을 의미한다. 총명은 유전적인것으로서 소리를 듣고 사물을 보며 진가,선악, 정의,사악, 시비를 가려낸다는 뜻이다. 그래서 한어에 “이총목명 (耳聪目明)”라 한다.
    총명의 정의, 기준, 측정에 론란이 많지만 한 사람이 얼마나 똑똑한지는 아직 백프로 과학적으로 증명해내지 못했다고 한다. 지혜가 생존의 경지 혹은 경계 (境界) 라 한다면 총명은 생존능력이다. 흔히 누구는 총명하고 누구는 우둔하다고 평판하는데 총명에도 소총명과 대총명이 있으니 어느것을 기준으로 하는것일가?
    어떤 사람이 소총명한 사람일가? 여러가지 여건이 있겠지만 우선 눈앞에 리익, 다다익선의 감각에 리성을 잃은자는 결과적으로 소총명한 자이다. 소총명한자는 기능과 기량을 갖추었기에 인맥을 찾는데 달인으로서 재부와 권력을 잘 낚는다.  
    하다면 대관절 가장 실제적인 총명의 기준은 무엇이며 총명의 한도는 무엇으로 가늠되는가? 저사람은 손해보지 않고 우둔한 짓을 하지 않는다고 평판할 잣대는 무엇인가? 바로 권력과 금전과 미색앞에 세워보는것이라고 생각해본다. 바꾸어 말하면 인간의 본성인 욕망이 무지경일지라도 자기를 제어할줄 아는데서 그 사람의 총명의 도(度)가 금그어지기때문이다.
    총명이 극치에 이르렀을 때 더는 총명이라고 하지 않고 지혜라 이름한다. 총명은 대개 선천적이고 지혜는 후천적인것으로서 닦는다고 한다. 지혜는 마음에서 비롯되는것이기에 “혜출심생(慧出心生)” 이라 한다. 총명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 쉽게 띄이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잘 보아내지 못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절대적으로 총명하지만 총명한사람이라 해서 다가 지혜로운 사람인것이 아니다. 총명이 곧 지혜로 되지는 않기때문이다.
    세상에 총명한 사람은 많지만 진정 지혜로운 사람은 드물다. 지혜에는 한계가 없으나 총명의 도(度)에도 한계가 있다. 말하자면 태산에서 재채기를 한번 하면 희말라야산에 12급태풍이 불어친다는 권세가들은 한자리 했으니 총명하다 할것이요 검은 돈이라도 억만금을 챙겨두었으니 과시 “지혜롭다”고 할수도 있겠다. 그러나 소총명이 도를 넘으면 우직함에 이른다. 례컨대 자동차로 실어낼만큼 돈을 끌어모아 쌓아두어 콤태기가 끼고있는데도 그냥 냠냠하는 지경이면 과연 총명한 자일가?
    지혜는 분석, 판단능력, 발명창조능력이라고 한다. 지(智)는 날마다 지식이 넓어지고 증장한다는 의미이고 혜(慧)는 하나의 마음에 땅바닥을 절반 쓴다는 형상으로서 그 위에 풍성할 풍자가 두개나 놓여있는 형상이다. 지혜가 없다면 총명은 령혼이 없게 된다. 지혜로운 사람은 인생에 대해 깨득한것이 많고 깊으므로 심성이 바르다. 그래서 사람들의 눈에 조금 바보처럼 보인다.
    장자는 “聪明过头,使人忘记大宁)”이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대녕”인즉 자연을 가리킨다. 자연은 곧 섭리로서 총명이 도를 넘으면 오히려 심령을 상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인간의 욕망은 한도가 없으므로 스스로 재화를 자초하게 되여졌다. 욕망은 인간의 본성이지만 탐욕은 본성이 아니라 모종 환경에서 사욕이 팽창되면서 생성된 일종의 불건전한 심리일뿐이다. 무릇 욕망은 개체 나아가서 사회발전의 원동력이 될수 있지만 탐욕은 만악의 근원으로 사람들을 아주 쉽게 죄악의 심연에로 밀어넣거나 다시 불귀의 저승길로 떠민다.
    옛글에 이르기를 “탐욕은 불과 같아서 제때에 끄지 않으면 자신을 태우게 되고 욕망은 물과 같아서 제때에 막지 않으면 자신이 익사하게 된다.”고 하였다. 수단을 가리지 않고 불의지재를 모은끝에 자족하다가 마침내 불귀객이 되여질것은 필연적이다. 눈감고 “야옹”하든 귀막고 방울훔치든, 종이로 불을 싸든 일시 소총명한자의 기량일뿐이다. 아니그런가?
    일세영달할듯 떵떵거리다가 결국 처자식, 손군들마저 휘말아감고 철창행을 한 수많은 락마관들의 끝장에서 총명이나 지혜로움을 론할 건덕지가 있을것인가? 비참 그 자체일뿐이다. 결국 패가망신하고 죽게 되여서야 후회막급해서 눈물코물 쥐여짜고 살려달라고 애원할 때 떠오르는것인즉 “早知今日,何必当初啊!”이다.
    소총명에 양양자득다보니 지극히 지혜롭지 못한 탐관오리들이 지천이 된것은 주요하게 제도에서 비롯된것이라고 지자들이 입을 모으고있다. 탐관들은 제도의 리익을 본 총명자들면서도 결국 좋은 끝장이 없는 “근시안”들이다. 부정축재할 기회가 도처에서 기다리고 있는데다가 들통나는것은 소수이니 용왕매진하는 전투정신을 계승하지 않을수 있으랴. 락마관들의 립장에서는 비리성적인 제도하에서 리성적행위라고 인식하기에 부정축재하지 않는자야말로 바보이고 렴결이야말로 비리성적이라 한다.
    기실 락마관들이야말로 소총명자도 아니다. 파하지 않은 연회란 없고 깨지 않는 미몽이란 없다는것은 이미 깨뜨릴수 없는 계률임을 알면서도 이판사판했다면 더 이를데없는 바보들이다. 잡히면 그렇게 목숨걸고 끌어모은 루만금이 국고에 들어가니 산다해도 가슴앓이로 괴로울것이요 만약 황천길에 오른다면 통탄에 목이 멜것이다. 사람을 수자 1일에 비길진대 권력, 금전, 미색, 명예는 0이다. 1자가 무지러졌다면 그뒤에 0이 아무리 많던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진짜 총명한 사람은 인생마당에 일체 사물은 각자 자기의 자리가 있다는것을 알고있다. 총명한 사람은 금전과 재부는 단지 수단일뿐 목적이 아니라는것을 알고 있기에 그것에 목숨까지 걸지 않는다. 총명한자는 일시적인 쾌감이 장구하게 만족시킬수 없다는 도리를 잘 알고있으며 인생에서 사악의 유혹을 피할수 없고 언젠가는 잃게 되고 생로병사의 섭리를 어길수 없음을 알기에 얻기만 하려고 악바리질 하지 않는다.
    그런데 락마관들이 탐욕의 포로가 되여 철창속에 들어앉게 되였으니 소총명이 오히려 그 자신을 잡은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호박을 쓰고 돼지굴에 들어가는 수준의 총명, 지혜라고 한다면 아마 노발대발할것이다. 길길이 뛰든말든 각설하고, 부정축재 하노매라 스스로 총명의 과인함에 만복의 배를 어루쓸겠지만 역시나 “두고 봐야지!” 의 섭리를 벗어나지 못하니 유감천만이 아닌가?
    사람이 량심과 도덕의 계선을 넘으면 더는 리지가 도망치며 지혜마저 상실하게 된다. 지혜에서 혜가 뜻하는 의미는 깊고 오묘한바 지식은 오가 잡탕에 형형색색이여서 우리의 마음을 혼탁하게 하는바 쓸데없는것을 쓸어내여 마음의 골방을 깨끗히 하라는 의미이다. 정판교의“聪明难,糊涂更难”이라는 말에서 “糊涂” 는 지헤로운 어리숙함 을 이르는것으로서 아무나 터득하는것이 아니나 경세제언임에는 틀림없다.
    조금 탈절된 비유를 해보자. 콩나물은 저저 건실하게 자라려고 애쓸것이다. 그런데 굵기와 가늘음, 길고 짧음은 그 자신으로서는 어찌할수 없다. 인생마당도 콩나물시루와 같고 인간은 각개의 콩나물처럼 저저 빼여나려 하고 월등하게 살려고 한다. 그것은 인지상정으로서 나무랄바가 아니나 재주를 쓰다가 메주를 쓴다는 속어처럼 남들보다 총명한체 하다가는 랑패보기가 일쑤이다. 세상만물에 한계가 있듯이 인간의 총명에도 극한이 있기때문이다. 그래서 총명의 도(度)란 금그어진것이 없다고 하리로다.                        

                                                             2015년 6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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