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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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 작가의 량지
2018년 09월 20일 11시 26분  조회:382  추천:0  작성자: 최균선
                                           작가의 량지
 
                                           최 균 선
 
    량지란 사람들에게 내재한 도덕판단과 도덕평가 체계로서 환경과 교육에 의거하지 않고 자연적으로 구비되는 도덕의식과 도덕정감이다. 작가의 량지는 사회의 일원인 사람이면 공동히 가지고 있는 량지이면서도 이외에 예술량지와 사회량지가 구비 되여야 하는바 이것이 일반 사람과 한차원 높은 량지이다,
    인간의 생존과 발전에 발을 붙이는것은 문학예술발전의 영원한 규률이고 동요될수 없는 준칙이다. 그러므로 문학으로서 인류생존의 침체, 타락, 부패, 퇴화, 기형적인 이화 등에 대하여 편달하고 질타해야 한다. 그러자면 순수한 마음과 성실한 태도로 문학을 시작해야 한다. 이것은 예술이 작가에게 부여한 량지이다. 사회량지는 예술량지의 외재저표현이라면 예술량지는 작가의 몸에서의 인격화이다.
    작가의 사회적량지는 신분증처럼 작가 자신의 확인이다. 작가의 량지는 문학정신의 근원이며 문학정신은 되돌아와 작가의 량지를 체현힌다. 심오하게 생각할것도 없이 “량지(良知)” 란 바로 어떻게 해야 좋은것이고 어떻게 하면 나쁜것인가를 잘 아는것이다. 착함과 성실과 자률 등은 좋은것이고 가치로운것임을 아는것이 량지로서 량지가 있은 연후에 비로소 량호한 창작행위가 있게 된다.
    문학창작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생명활동이다. 좋은 말이다. 그러나 오늘에 와서는 작가의 방종에 대한 변명으로 되였다. 창작을 일종 정신사업이라 할진대 작품은 사회에 향한 공공연한 납함이다. 아무도 알아들을수 없는 뇌까림으로는 독자들을 김화시킬수 없다. 작가는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글을 짓는 사람이지만 다른 사람의 심목속에 작가로 존재할수밖에 없다.
    작가가 자기의 자유의지에 따라 글을 쓴다는것은 개인의 창조성으로서 작가적 존재의 리유이고 기초이다. 그가 명작가이든 무명작가이든 다른 사람들의 심목속에 작가라는 사실을 부인하려 하지 않을것이다. 달리 말하면 작가는 반드시 사회, 독자들의 어떤 질문에 대답할 사명을 지니고있다. 즉 원하든 원치않든 부여받은 사회적 작용이다. 세상을 향해 발언한다는것이 바로 작가의 존재리유이다.
    자고로 인간사회에 고난과 눈물이 보편적이고 악세력은 아직도 그처럼 악랄하게 횡행하는데 작가로서 이런 현실에 눈을 감고 싱이탑속에서 간지러운 피리만 불어댄다면 이것은 문학의 비애가 아닐수 없다. 문학은 지혜로 모종의 조우와 생활경험을 증명하는데 그칠것이 아니라 작가내심에 있던 용기로써 존재의 불행과 사회의 비리와 모순을 파헤쳐야 량지가 있는 작가로 자리매김 할것이다.
    당전 우리 문학은 현실을 회피하는 자기 기편적인 모순을 안고 용속한 소비문화의 포로가 되였다. 20세기 80년대까지만도 작가들은 보편적으로 시대의 앞장에 섰고 문학은 사상의 선소리로 메아리쳤다. 그런데 90년대후 작가들은 주류무대에서 자진 퇴장하면서 오늘에 이르러서는 글쟁이군체로 되여버렸다. 작가가 사회상에서 중요한 각색을 맡던 시대는 이미 과거의 언덕에 묻혔지만 스스로를 추락시킨다는것은 자업자득으로서 작가 자신만이 아니라 사회, 독자들도 속상한 일이다.
   오늘날 작가들은 민중이 관심하는것을 작가들이 관심하지 않으며 민중이 기뻐하는 일을 작가들이 기뻐하지 않는다. 민중은 다 꿰뚫어보고 있는데 작가들은 잘 모르고있다. 아닌게 아니라 갈수록 더 많은 작가들이 서재에 숨어들어 소용돌이치는 현실생활을 외면하고 민중의 고난을 도외시 하면서 가렵지도 않은 문제를 가지고 대서특필하면서 문자유희에 열중하다보니 작가가 반드시 납함해야 할 때는 결석한다.
    따라서 작품들은 련속부절히 쏟아져 나오지만 보편적으로 정신취약성이 낳은 굴욕감으로 점철되여 있다. 많은 작가들의 량지가 혼탁해졌고 정신이 연약해졌기에 문학이 격정과 리상적경지를 상실하게 된것이다. 창백무력한 창작시대가 도래한것이다. 현실은 엄혹하건만 문단이라는 울타리안에서 스스로 즐기고 자족하고 끼리끼리 자축하는 이런 현상은 작가들의 비애만이 아니라 독자들의 비애이기도 하다.
    작가는 자기 심령의 화원에 원예사이다. 맞다. 누구나 간섭할수 없는 정신왕국이다. 그러나 온 사회가 공유하게 되여먹은 문학의 존재리유는 오직 인간사회의 구석구석을 탐색하고 새로운것을 발굴해내는데 있다. 그러나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괴테의 말처럼 용속해지지 말아야 한다.
    작가가 일반 사람들과 다른 점은 무엇일가? 자신의 골수에 슴배여 있는 작가적 사명감이 곧 그것이다. 그런 사명감을 지니고 붓대를 꼬나들고 생활의 소용돌 이속에 들어가 민중의 대변인 나아가서 나팔수가 되느냐 하는데 근본적 구별이 있는것이다. 자기가 가려고 작정한 길로 견정불이하게 나아가는것이 작가의 옳바른 자세이다.
    작가의 량지에는 작가적 분노의 감정의 분출도 포함되여 있다. 작가의 격분이란 바로 현재 존재상황에 대한 불만의 표시이고 일종의 거부와 현실의 모순을 조화시키려는 작업이다. 작가의 분노는 결코 감정적 충동이 아니라 리성사유를 거친 호소이다. 문학작품에 비판성과 리상적품격이 결여하면 그에서 파생된 문학은 기필고 연약한 문학, 용기를 상실한 문학이 될수밖에 없다.
    리상적인 자유창작을 할수 없는 원인을 시대의 제약성에서 찾는것은 교묘한 핑게만은 아니다. 자유로운 창작의 “황금시대”는 그 어느때에도 없었다. 따라서 창작의 황금시대는 먼곳에 있는것도 아니며 미래에 있는것도 아니다. 진정한 문인으로 되지 못하는것은 개체의 비애이고 참된 문인을 용납하지 않는것은 시대의 비애이고 우리 문학인들의 가장 처절한 비극이다.
    작가에게 가장 리상적인 정신가원이고 생존방식의 일종이던 문학이 곤궁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되였다. 문학의 성당은 이미 “실락원” 이 되였다는것을 부인할수 없다. 작품과 생활과 독자 사이에 벽은 날로 높아지고 두터워지고 있기때문이다.
    작가를 존중하라고 요청할수 없지만 문화발전에 헌신하려는 지성인들이 소박받게 된 금전만능의 현실이 개탄스럽지 않으랴, 작가군체에 절대 대부분 작가들은 업여작가들로서 문학을 경영하여 부자가 된 사람이 거의 없다. 그러면서도 작가들은 문학창작에 혼신을 불태운다. 왜? 문학은 일종 고상한 정취이고 일종의 책임이여 나아가서는 일종의 사명이기때문이다.
    작가가 현실을 직시하고 발언할수 없다면 굴욕적인 현실의 노예로 될수밖에 없다. 작가들이 자신들이 처경에 분노할줄 모르고 항쟁의 립장을 상실하였디면 초롱속에서 노래하는 꾀꼬리로 될뿐이다. 허용범위내에서 동네가 부산하도록 왝왝 거리는 게사 니가 될수도 있고 숲속에서 전문 해충을 쫏아먹는 딱따구리도 될수 있다. 많은 작가들이 현실은 현실이고 문학은 그저 문학일뿐이라고 하는데 문학정신을 외면하거나 포기한 글짓기는 모두 문학량지의 상실이다.
    누가 뭐라든 정의는 영원히 사람들로 하여금 밝은 앞날을 향해 매진하도록 격려하며 정의의 힘은 인민대중의 량지와 각성속에 존재하면서 사악과 투쟁하는 길에 횃불로 타오를것임은 의심할바 없다. 물론 작가도 우선은 인간인만큼 비속한 생존자가 될수 있지만 비속한 작가로 되는것은 독자가 용납하지 않는다. 이 시점에서 작가로 말할 때 량지는 창작의 기준이자 출발점이라고 하는것이다.
 
                                 2018년 3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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