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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절 독자와 문학
2007년 09월 16일 22시 57분  조회:4182  추천:24  작성자: 최균선

                                      제3절 독자와 문학

1. 독자와 문학

독자란 작가사상의 수신자이다. 독일의 교육연구가 미하엘 바인리히는 문학작품을 작가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독자의 관점에서 관찰할것을 강조하면서 “독자들의 기대가 문학작품의 구성요소이기때문에, 그리고 문학은 독자와의 대화에서 존재하기때문에 문학사는 바로 이 대화의 력사”가 되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문학사회학에서 문학과 사회관계를 세가지로 구별하고 관찰하였다.   

첫번째는 작가와 그가 속하는 사회관계이다. 작가가 사회의 어느 층에 속하느냐 하는 문제는 작가의 리념과 더불어 작품속에 반영된다. 두번째로 문학작품과 독자도 포함한다는것이다.  그런데 독자와의 관계도 단순하지 않다. 례컨대 작가가 작품을 쓸 때 마음속으로 예측하였던 독자 즉 대화의 파트너와 실제 독자는 일치하지 않을수 있는것이다. 독일의 프란츠 카프카는 ≪성≫, ≪아메리카≫ 등 대작을 썼을 때 어떠한 가상의 독자도 없었다. 자기가 죽은 다음 원고들을 불살라버리라는 유언까지 했다.

그런데 그의 친구 막스 브로트가 그가 죽은후 그의 유언을 어기고 출판을 하는데 뜻하지 않았던 전세계의 독자를 확보하게 되였다. 또한 로신의 경우에는 1918년에서 1936년 걸쳐 일부 지식인들과 정치인, 혁명동지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아주 소수의 써클을 위한 잡지와 소설집에 중편소설을 발표하였던것인데 결과적으로 수천만의 중국인을 위한 저술이 되였다. 중국혁명이 로신의 의도에 호응할만한 능력있는 출판자를 로신의 작품에 제공할수 있었기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작품속에 반영된 사회현실의 제관계인것이다. 문학은 즐거움을 주는것이냐, 가르침을 주는것이냐? 시드니와 같은 대다수의 르네쌍스 비평가들에게는 도덕적효과가 최종목적이었고 쾌감과 감정은 부수적인것이였다. 그는 “시는 말하는 그림이며 가르침과 즐거움을 주는 두가지 목적을 가지고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좋은 시인은 독자의 요청에 부응하는 시인이다. 독자의 요청을 어느만큼 만족시켜 주느냐하는것이 그 시인에 대한 평가기준이 된다.

시드니의 문학관은 이런 점에서 볼 때 철저히 효용론의 립장을 취하고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시인은 자기의 교훈을 이야기속에 숨김으로써 “잔인한 악인”까지도 “앵두알을 먹듯이” 저도 모르게 선을 사랑하도록 유도한다고 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서사시는 “가치있는 인간이 되고자 하는 욕망으로 정신을 가장 불타게 하기”때문에 시의 왕림을 스스로 증명한다.

공자는 ≪론어≫에서 “시 3백편을 읽으면 사특한 마음이 없어진다.”고 했는데 이것은 분명 독자를 의식한 말임을 알수 있다. 문학작품의 감동의 효과는 마치 설사약이 위장을 깨끗이 씻어내듯이 마음의 찌꺼기를 씻어내어 정화시켜주는것에 비유할수 있다.

그러나 독자들의 취향도 가지가지, 불만도 가지가지이고 바라는것도 가지가지이다. 열독흥취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는 바람직한 일이라 할수 있지만 독서계의 통일성에는 불안한 인소로서  “기대지평”의 불온정성을 의미한다. 특히 시대의 발전과 문학환경의 변화에 따라 문학작품은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하며 그때마다 독자들은 텍스트ㅡ문학문본의 새로운 지평에 부딪치게 된다.

독자들의 “친숙한 지평” 과 텍스트의 “새로운 지평”사이의 이런저런 충돌 로 인하여 이른바 “지평의 전환”이 생겨난다. 이러한 지평의 전환은 곧 독자들에게 수용되여 새로운 “기대지평”으로 작가들을 충격하고 무형의 압력을 준다. 그래서 문학관념의 소통문제가 새롭게 제기되기도 한다.

주제의 적극성이라든가, 사회적가치라든가, 작품의 지적수준이라든가, 질적함량이라든가를 불문하고 결국 재미있느냐? 없는냐? 하는 이률배반적이고 이중성적인 열독취향은 상품화된 문학작품의 가치취향을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었으며 가치기준도 불가예측이 되게 하였다. 문학작품이 재미있다고 할 때 그 재미란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분명 지식적유희를 말할것이다.

간접적경험, 감동으로 말할 때 만화를 보는듯 홀가분한 유모아감일것이다. 책을 덮은뒤 무겁고 비장한 정서를 가지게 된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지는 현시대의 열독심리상태이기도 하다. 문학은 작가의 상상, 감정을 독자의 상상력, 감정에 호소하고 감동시키는것이다.

2. 독자의 위치

현대비평이 거둔 가장 괄목할만한 업적은 어쩌면 독자의 재능을 발견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던 독자의 위치를 새롭게 자리매김해준데 있다. 독자는 자유로운 신분이다. 문학은 별다른 선택이 없다. 오직 자기에게 속하고 자기를 열애하는 독자를 쟁취하는 길뿐이다.

문학예술은 발송인에서 접수인으로 일방통행으로 보내지는 소포같은것은 아니라 감정의 소통수단이다. 감정의 통과작용이기때문에 일방통행일수 없듯이 심혼의 울림이 없는 작품이 살아남을수 없다. 흔히 독자는 무서운 군체라고 하는데 작가가 심혈을 쏟아부어 생산한 정신산품ㅡ책을 구매해주는 큰 손이고 열독주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문학령역에는 작가ㅡ문학이라는 두점과 선이외에 이 량자와 등거리관계에 있는 세번째 점인 독자의 존재를 중시해야 한다. 문학령역에 이 세개의 각색이 곧 “문학의 기묘한 3각지대”를 이루고있다. 물론 작자의 창작과 독자의 열독수요가 이 3각지대에서 주요한 모순으로서 기타 모순과 서로 련관되여있거나 굴절반사가 되여진다.

문학작품은 독자에 의해 진정 강한 생명력을 가지게 되고 작품이 재창조된다. 독서는 텍스트에 의존하며 그 텍스트는 읽고있는 독자에 의해 좌우된다. 그러나 어떤 텍스트의 독서내용은 독자에 따라 무수히 다양한 편차를 가지며  동일한 독자라도 상황이 달라지면 동일한 텍스트를 다르게 읽을수도  있다.

작가의 립장에서 본다면 자기의 “정신수출”이 독자의 심령세계에 “침략”이 될것인지 아니면 “문화건설자”가 될것인지는 작가가 수출한 정신의 우렬과 흡인력유무, 유익점, 그에 반해서 독자가 원래 가지고있는 정신상태와 조건, 당시의 정신적수요에 의해 결정된다.

“작품은 독자의 독서행위를 통해서 완성된다.”는 샤르트르의 독자론은 그만큼 소홀히 취급하였던 독자에 대한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시켜준것이다. 문학활동은 작가와 독자의 상호합작관계속에서 진행된다. 독자의 감상에서 정보귀환은 작가의 예술추구에 중요한 참조계로 되며 심지어 일종 고삐가 되여 창작을 제약하기도 한다.

어느 작가는 이렇게 쓰고있다. “작가가 원고지를 펼쳐놓고 창작할 때 미지의 독자의 그림자가 작가의 뒤에 서있으며 작가가 그림자의 존재를 의식하기를 원치않을 때에도 그냥 그의 등뒤에 서있는다. 이 독자는 원고지우에 작가가 볼수 없는, 그러나 마멸해 버릴수 없는 표기를 찍어놓는다.”

아. 똘쓰또이도 “개인의 창작경험에 근거하여 나는 내가 쓰려는 작품의 응당 있어야 할 력량과 질량은 나의 심목중에 제일 먼저 제기되는 독자와 관련된 개념에서 얻어진다는것을 알았다.”고 쓰고있다. 이렇듯 여기에는 상품을 련결점으로 한 량자의 긴밀한 합작이 수요되거니와 전제조건이 있다.

작가는 자기의 정신수출행정에서 무엇보다 먼저 독자는 단순히 수동적기능만 갖는것이 아니라 력사형성의 에네르기가 되고있는 점을 전제로 삼아야 하며 문학작품의 력사적생명은 그 수용자 즉 독자의 능동적참여에 의해서 련속성과 재생산성으로 발전할수 있다는 점을 명기해야 할것이다, 따라서 문학의 력사는 작품의 전달기능과 마찬가지로 독자와의 대화적이며 과정적관계를 전제로 한다는 점을 도리로서가 아니라 정감적으로 알아두어야 한다.

3. 독자의 류형

광의적의미에서의 독자는 책을 읽는 모든 사람들을 포섭하고있다. 여기서 말하는 독자란 문학작품을 읽는 독자를 말한다. 열독심리에서 착안한다면 능동형, 피동형, 참여형, 구지형, 소일형이 있고 열독효과에서 본다면 일반독자, 초일급독자, 작품의 원뜻을 등진 창조형독자가 있다.

감상수준을 평가하여 경험있는 독자, 리상적인 독자, 유능한 독자, 진부한 독자, 둔감한 독자…등으로 나눌수도 있고 감상기호로부터 우아한것과 통속적인것으로 나눌수도 있다. 여기서 흥미, 환원과 이변, 오해와 공명 등에 층차성이 생긴다. 독자의 층차를 또 제1독자(작자 및 가족, 친우 등)와 제2독자(편집. 출판인)과 제3독자(문학계, 평론계)로 나누기도 한다. 이런 부동한 독자층이 문학활동에서의 참여정도를 결정한다.

여기서는 제4독자층에 대해 연구한다. 이 층차의 독자층은 가장 방대한 구매대오로서 문학에 “명성”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이 독자층에 문학형독자층이 따로 있는데 구지형독자를 비롯해서 문학에 매료되였거나 학습하여 장차 문학창작권에 들어서려 시도하는 독자가 들어있다. 다음 비문학형독자군에는 우연하게 혹은 경우에 따라 문학작품을 읽는 독자, “핍박”에 의해 열독하는 독자(광범한 학생층), 소일형, 오락형독자 등이 포괄된다. 이런 분류는 이딸리아 “접수미학” 학자인 모르가리의 분류법에 근거한것이다.

문학형독자군속에도 통속문학독자가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이 부류의 독자들은 생활경력, 경제상황, 정치, 사회지위, 문화정도, 지식결구, 도덕관념, 심리상태, 감상수준 등 제원인으로 하여 문학에 부동한 리해와 평가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문학을 실제로 가능케하는 주체가 누구인가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작가와 독자는 동등한 립장이 된다. 소설가가 없으면 소설독자가 존재할수 없듯이 소설독자가 없으면 소설가도 존재할수 없다. 독자가 문학의 운명을 결정하기에 이른 현시대가 된것이다.

목전, 인터넷문학이 흥성하면서 인터넷문학이 대성황을 이루었는데 네티즌들의 열독의식, 열독심리는 “변수”로서 전면적이고 객관적일수도 있고 편파적이고 주관적 일수도 있기에 작가의 주관관념이 독자들의 열독심리, 심미취미와 등호로 성립될수는 없다. 이것은 문화소비에서의 절대현상이다.

4. 작가와 독자

작가와 독자는 비유하건대 기하학상에서 직선으로 련계되는 두개 점이고 사회학이라는 이 망망한 대해속에서 서로 흡인하고 의뢰하는 두개의 마음이다. 싸르트는 ≪문학이란 무엇인가?≫에서 “모든 작품은 일종의 부름이다. 쓴다는것은 언어를 수단으로 자신의 기획을 객관적존재로 구체화시켜달라고 독자를 향해 웨치는 행위”라고 하였다.

자기 자신은 누리지 못하는 삶의 기쁨과 의의, 인격의 존엄성을 우리에게 일깨우기 위하여 한평생 혹사한 그런 숭고한 작가들이 많고 많다. 그러한 작가들의 대작들을 읽으면서 각자의 삶도 시나브로 심화되고 확충되여 간다. 그들 의 격려에 힘을 입어 우리는 인생의 허무와의 싸움에서 이겨나갈수 있고 삶의 가치에, 세계의 아름다움과 신비함에 눈을 더 크게 뜰수 있는것이다.

위대한 소설들은 인간들의 진정한 적은 자신의 독선과 리기심이라는것을 일깨워주었고 이웃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야말로 삶을 존엄스럽게 해준다는 교훈도 주고있다. 실로 작가들은 슬픔과 절망조차도 소중하고 가치있는 부분임을 우리들로 하여금 체험하게 한다.

스티븐슨과 동행하면 보물섬에도 갈수 있고 쎄르반떼스를 따라서 돈 끼호떼의 기사수업을 추적하노라면 시대락오자의 참패가 어데서 오고 그 뼈저린 맛을 알게 된다. 발자끄의 ≪인간희극≫속에서 우리는 각양각색의 문명인의 탐욕과 우매와 비틀어진 인격상에 통탄하게 되고 모파쌍의 ≪미모의 벗≫에서 웅성의 잔인함과 리기심을 보면서 몸서리치게 된다. 몰리에르의 ≪따르뜌프≫에서 우리는 위선과 사악의 근원을 보며 인간의 원죄와 추태에 얼굴을 붉히게 된다.

일반독자이든 전업적안광을 가진 비일반독자이든 한부의 책을 읽을 때 그 작품을 쓴 작가와의 한차례 지력겨룸, 사상, 정감의 겨룸, 관찰과 인식의 겨룸, 표달방식과 능력의 겨룸이라 할수 있다. 작가가 각 방면에서 독자의 우위에 있으면 독자는 탄복한다. 이처럼 독자의 기대심리는 중대한것이다. 공명은 문학접수의 고조계단의 특유한 상황으로서 작품에 대한 독자의 강렬한 심령의 반응이며 혹은 동일한 작품에서 산생된 부동한 독자들사이의 심령감응현상이다.

따라서 자연히 작가군과 독자군의 문화반응문제가 뒤따라 선다. 그것의 첫째로 공명대이다. 공명은 문학접수의 고조계단의 특유한 상황으로서 작품에 대한 독자의 강렬한 심령의 반응이며 혹은 동일한 작품에서 산생된 부동한 독자들사이의 심령감응현상이다. 여기서 두가지 의미에서의 공명이 산생된다.

례를 들어 쉘리의 경우, 당시 영국사람들이 금빛면사포를 쓴 이른바 “도덕”앞에 전전긍긍해 있을 때 쉘리가 일떠나서 그런 도덕의 허위와 잔혹성을 발가놓았다. 그러나 영국사람들이 쉘리에게 안겨준것은 인신공격이였다. 여기서 우리는 예술가치의 실현은 하나의 협조적감상과정이 아니라 충돌의 력사이기도 한것임을 충분하게 알수 있다.

단떼의 ≪신곡≫을 두고 맑스는 중세기의 제일 마지막 시인이자 새 세기의 첫시인이라는 영예의 계관을 내려주었지만 너무나 일찌기 발표한 시인의 시대리상, 시인의 정신과 관념은 프로렌스 공민들에게서 얼마 리해받지 못하였다. 1800년이란 세월이 흐른후 랑만주의가 흥기해서야 단떼의 정신이 이딸리아사람들의 심령속에서 부활되였고 그제야 괴테식정신으로 환기되였다. ≪데카메론≫의 작자 보카치오도 오랜 세월이 지난후에 세계고전작가의 보좌에 모셔졌다. 상술한바와 같이 작가군과 독자군사이에 문화반응은 심각해질수 있다.

현대주의국가들에서도 작가군과 독자군사이의 관계가 팽팽해졌다. 현대파가 직면한것은 한개 문명의 극적변화, 문화렬변의 시대였다. 례하면 카프카, 유네쓰꾸 등의 작품들은 온작 시련을 거쳐서야 독자들에게 접수되였던것이다. 그러나 시대의 렬차는 달리고 승객들은 부단히 바뀌기 마련이다. 그것은 시대가 작가들에게 내주는 다할길 없는 숙제로 되고있다.

책은 누군가와 만나야만 살아날수 있다. 그 마법의 주인공이 독자들이다. 문학작품이 잠들어있는 공주라면 독자가 바로 그 행운의 왕자이다. 하지만 아무나 잠자는 “공주를 깨울수” 없다. 별처럼 반짝이는 눈을 뜨게 할수 있는것은 그처럼 아름다운 공주를 차지할수 있는 자격이 있는 “왕자”의 입맞춤뿐이다.

그만큼 독자와의 문학적대화는 진솔하고 진지해야 한다. 이 점은 작자의 사명감과 더불어 사회적책임성을 규정하게 된다. 검투사가 검으로 말하듯이 작가 는 글로 대화한다. 글의 주재자는 곧 독자들이다. 문학작품이란 작자가 자신의 전부의 능력을 동원한 정신산품이다. 문학예술은 독자의 령혼심처를 울림으로써 더욱 소중하게 되지만 문학의 진동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이는 시대변화의 현상으로서 독자들의 탓이 아니다.

과거는 물론 현대에는 더구나 작가의 열정적인 감정의 전달, 확산이 어떻 게 독자에게 영향을 주는가 하는 독자의 반응이 그 작품의 사활을 결정하게 되 였다. 헤겔은 “무릇 현실은 모두 합리하며 무릇 합리한것은 모두 현실”이라는 쟁의 있는 명제를 내놓았는데 정말로 문학예술을 그저 소일거리로 삼는다면 문학에 그보다 더 곤혹스러운 조우는 없을것이다.

비유하건대 작가와 독자는 물과 고기의 관계이다. 누가 물이고 누가 고기일가? 량자는 변수관계이다. 작가는 자신이 독자라는 대해속에 하나의 작은 고기라고 생각하면 창작에 근신할수 있고 독자는 자신이 일종 지혜의 집합속에서 정신서식한다고 생각하면 작자가 리해될것이다. 아무튼 작자와 독자는 영원한 파트너이다. 물떠나 고기가 살수 없고 고기가 없는 물은 “사해”이다. 이 점이 오늘날 문학의 삼각지대에 세워진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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