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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기행 련재(8)
2017년 11월 24일 10시 25분  조회:2674  추천:0  작성자: 최상운
조선기행
 
 
                                   1. 유구한 력사를 지닌 도시 평양
 
     나는 2008년 4월 29일 심양 도산공항에서 고려항공기를 타고 평양으로 떠났다. 한 시간의 비행로정을 거처 고려항공기는 무사히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하였다.
    공항 검표구를 나오니 조선 국제려행사 안내 일군들이 우리를 반가히 맞아주었다. 우리는 전용뻐스를 타고 평양으로 향하였다.
    뻐스 안에서 조선국제 려행사 안내원 전미령 가이드가 중국말로 자아 소개를 하고서 귀빈 여러분이 오시여 반갑다고 하였다. 그는 우리 려행단이 다녀야 할 로정과 시간표를 알려주었다. 그러면서 조선국제 려행사에서 손님들의 안전을 책임지며 힘껏 안내를 잘해 들리겠다고 하였다.
    전미령 가이드는 23세이며 평양 외국어 학원 중국어과를 졸업하였다고 했다. 그는 계통적으로 중국어와 중국의 력사와 문화를 배웠다. 유창한 중국어로 조선의 력사와 근대사를 이야기하였으며 조선에 있는 력사유적지와 문물을 소개 하였다. 그는 조선의 아름다운 산천과 조선민족의 전통과 민속습관에 대하여 구수하게 이야기 하였다.
   조선에 오니 다른 기분이 들었다. 한국으로 갔을때에는 돈을 벌자는 것과 우리민족의 력사를 알려고 하는것이 목적이였다고 한다면 조선을 오는 목적은 조선 관광을 하며 민족의 력사지식을 넓히려 하는것이 목적이라 할수 있었다. 관광을 한다고 하니 나 자신이 한차원 높아지는 감이들었다.
    이전부터 나는 조선의 음악 예술은 상당히 발전하였고 영화도 예술성이 강하다는것을 알고 있었다. 오늘 공항에서 평양으로 오는 뻐스안은 환락이 기분으로 들떠있었다. 조선 려행사 일군들은 노래를 건들어지게 잘 불렀다. 그들에게 질소냐 중국의 손님들도 노래를 멋들어지게 불렀다.
   흥겹게 노래자랑을 하고 보니 어느사이 평양에 도착하였다. 평양에 왔으니 평양의 력사를 알아야 할것 같다. 평양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도이다. 평양은 오랜 력사를 가진 인류문명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지리적으로 비옥한 평야와 순조로운 기후, 유리한 교통조건을 가지고있던 평양일대에는 인류려명기 원시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아왔다. 현유 대동강 류역에는 원시시대의 유적과 유물이 남아있었다.
    평양시 중심에서 동쪽으로 40킬로매터 떨어진 상원군 우리에 있는 검은모루에서 발굴된 유적은 지금으로부터 100만년전 구석기시대 초기 인류가 발생하여 최초의 사람인 원시단계의 사람들이 남긴 유적이 남아 있었다. 그 동굴안에는 원시인들이 사용하였던 원시적인 타제석기들이 있다.
    력사를 훝어보면 평양은 일찍 고조선시기에 수도였다. 기원전 30세기초 단군은 조선의 첫 고대국가 고조선을 세웠다. 시조왕 단군은 “맑은 아침의 나라” 라는 의미에서 나라이름을 조선(朝鮮)이라고 짓고 평양에 도읍을 정하였다고 한다. 평양은 고조선의 수도로서 3000년간 존재하면서 여러가지 곡절을 겪었으며 나라의 정치, 경제, 문화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였다. 국가정권의 형성을 알리는 징표로 되는 성곽들이 평양시 중심으로부터 대성구역 장암동 등지에 100여리를 사이 두고 축성배치되였있었다.
   평양시 강동군에서 1993년에 단군릉이 발굴되였는데 그곳에서 나온 사람의 뼈가 그때로부터 5,011년전의것으로서 추정되는데 단군과 그의 안해의 유골이라는것이 확증되였다 한다.
    평양시일대에는 청동기시대의 무덤인 고인돌무덤이 많이 발굴되였다.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의 지배계층들이 무덤이다. 무덤의 크기에 따라 죽은 자의 지위를 나타 내였다.
    고조선 성립 이후 조선반도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와 같은 봉건국가들이 세워졌다. 첫 봉건국가로는 고구려(277-668년)였다. 고구려는 동족의 봉건국가들중에서 가장 강대한 나라로서 천년의 력사를 엮었다 한다. 평양은 고구려가 세워진후 얼마간 지나서 고구려의 수도로 되였다. 후날 고구려는 신라와 당나라 련합군에 의하여 패망하였다.
    력사의 흐름속에 새로운 통일국가 고려가 일떠서면서 평양은 고려의 두번째 수도인 서경으로 되였고 리조시기에는 평양은 고려때와는 달리 제2수도로 되여있지않았다. 그러나 평양부라 하였고 전주부, 함흥부와 못지 않은 지위를 차지하였다.
   일제의 조선침략(1905-1945) 으로 민족수난의 암운이 평양을 뒤엎게 되였다. 평양은 일제의 조선강점후 반일운동의 거점으로 애국문화운동의 활발히 전개된 거점으로 되였다. 1945년8월15일 일본침략자가 무조건 투항을 하였다. 조선반도에서 광복을 맞았다. 강대국의 간섭으로 조선반도는 두 동강이 났다. 1948년9월9일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창건되면서 드디어 평양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도로 되였다.
    력사자료에 의하면 평양이 고구려의 수도로 된 과정은 대략이러하였다. 대동강류역에서 창조된 단군조선의 문화건설은 비록 큰 규모인 것은 아니지만 매우높은 수준에 이룬 문화였다고 한다. 고조선 성립후 조선민족이 살던 령역안에는 부여, 구려, 진국등 후국들로 있다가 후에 조선반도에로 전의 되면서 점차 고구려, 신라, 백제 삼국으로 형성되였다. 기원전 1세기초중엽에 고구려는 서북쪽으로 세력을 뻩쳐 평양지방에 있던 락랑국을 흡수하였으며 2세기말 3세기 초에 이르러 평양을 한개 지방통치단위로 만들었다 3세기중엽부터 고구려의 동명왕 때부터 평양은 정식으로 고구려의 수도로 되였다.
    평양(平壤)이란 뜻은 펑퍼짐한 땅, 아늑한 땅 이라는 뜻에서 지은 이름이다. 평양 주위를 보면 높은산이 보이지 않는다. 대동강을 중심으로 펼처진 대동강 류역은 넓은 평야를 형성하였다. 옛날에는 평양을 서경(西京) 혹은 류경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서경이란 서쪽에있는 서울을 의미하며 류경(柳京)이란 뜻은 대동강변을 중심으로 평양에는 실실히 늘어진 버드나무가 많았다 한다. 버드나무가 많은 서울이라 하여 류경이라 불렀다 한다.
   공항을 떠나 뻐스는 3시간을 달리여 호화로운 평양민족회관 앞에 멈춰섰다. 회관 밖에서 산듯한 민족복장을 입은 예뿐 아가씨들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우리는 그들의 인도를 받아 회관안으로 들어갔다. 화려하고 산듯하게 꾸민 이 회관은 조선의 짙은 민족특색을 나타나 조선의 건축예술을 돋보이게 하였다. 우리는 이 회관에서 환영만찬을 하게 되였다. 맛갈스런 산해진미들이 식탁에 올랐다. 시원한 평양 맥주도 고려술도 올랐다. 상상외로 조선의 료리는 색갈과 맛이 잘 어울려 구미를 돋구어 주었다.
    식사가 끝나자 간단한 환영 파티가 있었다. 회관의 지배인이 나와서 축하의 인사말을 하였다. 지배인이 인사말이 끝나자 흥겨운 오락판이 벌어졌다. 회관의 직원들은 저마다 노래를 잘 불렀다. 어떤 직원은 중국 노래를 잘 불렀다.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중국에 살면서도 중국 노래를 잘 부를줄 모르는데 조선사람들이 중국노래를 잘 부르자 얼굴이 뜨거워났다. 손님과 주인들은 모두다 흥이 나서 노래소리에 맞추어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우리는 답례로  회관 직원 들에게 생화를 안겨주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저녁 만찬이 끝나자 우리는 주숙처로 안내 되였다. 우리가 들 주숙처는 평양에서 두 번째로 호화로운 양각도 호텔이였다. 양각도 호텔은 대동강반에 있는 한 섬도에 있었다. 이섬의 모양의 양의 뿔과 같다하여 이 호텔이 이름을 양각도 호텔이라 지었다 한다. 양각도 호텔은 48층으로 된 호화롭게 장식한 고층건물이였다. 나는 할빈에서 온 류씨와 함께 19층 2호실에 들었다.
   나는 중국에 있을때 평양은 공원이 도시이며 청춘의 도시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오늘 보고싶던 평양을 보니 소문과 같는 감이 들었다. 평양은 새로건설한 도시이므로 거리가 넓고 집들이 산듯해 보이며 이곳저곳에 공원이 있으며 나무와 꽃이 많아 생신한감을 주었다. 하기에 평양은 청춘이 도시, 공원의 도시라 할만큼 생기가 넘치였다. 평양시의 록지면적은 전시면적이 75프로를 점한다고 한다. 듣는 말에 의하며 전 세계 100여개 나라중에서 도시 록지면적이 이렇게 많은 도시는 드물다고 한다.
   양각도 호텔에서 평양시내를 내려다보니 평양시가 한폭이 아름다운 그림으로 되여 보이였다. 도시 전체가 수림속에 잠겨 있고 도시의 한 가운데로 맑은 대동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고 버드나무가 많은 대동강 량가에는 각종 놀이터가 있었다. 수림속 곳곳에 고층건물들이 웅기중기 일떠서 있었다. 형태가 다르게 건설한 대동강에 놓인 다리위로 차들이 분주히 오가고 있는 모습을 보니 가슴의 확 열리는 감이들었다.
   나는 아름다운 평양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6.25 조선전쟁시 평양은 미군 폭격기의 폭격으로 페허로 되였다. 그 페허우에 이처럼 아름다운 도시를 건설한데는 조선인민의 신근한 로동으로 이루어진것이다. 나는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를 건설한 조선 국민들에게 경의를 드린다.
   양각도 호텔은 현대식으로 멋있게 건축하였다 호텔 실내 설비도 산듯하고 화려하게 꾸미였다. 객실도 허물하나 할것없이 아늑하게 꾸며졌으며 생활용품들도 구전하게 갖추어져 있었다.
    우리 관광팀은 아침 식사와 저녁식사는 양각도 호텔에서 하고 점심은 다른곳에가 자시였다. 호텔에서 자시는 음식은 서양음식과 조선식음식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손님의 구미에 맞게 선택하여 자시였다. 호텔 음식은 깔끔하고 다양하여 맛이 좋았다. 호텔의 서비스도 일품이였다.
   양각도 호텔에 든 객들을 보니 대부분 중국과 로씨야, 재일동포와 카나다 사람들이였다.
 
 
                               2. 경치가 아름다운 기묘한 묘향산
 
 
    하루밤을 양각도 호텔에서 편안히 보내고 보니 기분이 좋았다. 오늘의 일정은 묘향산(妙香山) 을 구경하기로 하였다. 우리는 서양식음식으로 아침식사를 한 후 8시정각이 되자 묘향산으로 가는 전용 뻐스에 올랐다.
    예로부터 묘향산은 아름다운 조각 미에 웅장한 모습을 다 갖고 있어 명산이라 소문이 높았다. 묘향산은 조선의 5대 명산중의 하나이다. (백두산, 금강산, 묘향산, 칠보산, 구월산) 묘향산은 평양에서 160km 떨어져 있다 묘향산은 평안남도, 평안북도, 자강도 경계를 이어주는 삼각 지대에 자리잡고 있다.
    묘향산은 주위가 160km가 되고 동서남북의 길이가 각각 35km이며 산 전체의 면적은 375평방킬로메터가 된다고 한다. 묘향산에는 비로봉(1,900m)을 비롯하여 원만봉, 권태봉, 향로봉, 법완봉, 관음봉이 있다.
    조선정부에서는 묘향산에 많은 재정투자를 하였다. 평양에서 묘향산으로 오는 길을 잘 닦았을 뿐만 아니라 전기를 가설하여 묘향산을 구경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하였다.
    묘향산 입구에 들어서자 이름 모를 향기가 차안으로 흘러 들어왔다. 그윽한 향기가 페부에 스며들자 나는 저도몰래 아! 이래서 묘향산을 기묘하고 향기를 뿜는 산이라 하였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묘향산 정류소에 도착한 후 선참으로 묘향산 국제 친선전람관으로 갔다. 묘향산에는 유명한 국제 친선 전람관이 있었다. 높은 산에 산굴을 뚫어 국제 친선전람관을 만들었다. 조선을 방문하거나 관광을 오는 외국인들이 꼭 이 전람관을 참관하도록 일정이 잡혀 있었다.
    전람관 입구는 동으로 만든 든든한 대문이 입구를 막고 있었다. 보안인원이 자동스위치를 누르면 육중한 문이 스를륵 열리였다. 전람관안  대청과 실내 복도는 산듯한 대리석으로 벽체를 장식하였고 천정은 현란한 빛을 뿜는 전등을 가설하였다.
    이 국제친선전람관은 조선의 위대한 수령 고 김일성 주석의 생전에 외국 친선 방문단을 접견하였을때 받은 귀중한 물건들이 보관되여 있었다. 130개 나라의 수뇌들이 증송한 도자기, 공예품, 서화, 진귀한 보물들 17만개가 진렬되여 있었으며 김주석이 별세한 후에 증정받은 물건도 진렬되여 있었다. 중국의 당정지도자들이 증정한 기념품도 많이 있었다.
    우리는 안내원들이 인도를 따라 국제친선전람관의 마지막 칸인 고 김일성주석의 석상앞에 묵도를 드리였다. 외국인들은 김주석의 석상앞에 꽃다발을 증송하였다.
    나는 전람을 마치고 안내원의 인도를  받아 전시관 중심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산중턱에 있는 전망대로 올라갔다. 묘향산의 전망대는 묘향산 중심산에 있었다. 정자식으로 만든 전망대는 널직하고 깔끔하게 꾸미였다. 나도 관람객들을 따라 전망대 정자안에 있는 의자에 편히 앉아 음료를 마시면서 앞 산들을 보았다. 전망대 앞에는 높은 산봉우리들이 련련 치솟아 있고 산 중턱에는 흰 구름이 에돌고 있었다. 깊은 계곡으로 맑은 물이 폭포를 이루며 쏟아져 내리는 것이 마치 흰 비단을 내리 드리워 놓은것 같았다. 묘향산의 경치를 구경하고 나면 온갓 잠념을 다 날려버리고 거뿐한 마음을 가지게 되였다. 나는 전망대에 앉아 여류롭게 묘향산의 경치를 감상하고 보니 내가 마치 신선으로 된 기분이였다.
    묘향산에는 곳곳에 절이 있었다. 그 절중에서 가장 유명한 절은 보현사였다. 보현사는 1042년에 세워졌는데 절에는 조계문으로부터 시작하여 해탈문, 천왕문,  4각9층석탑,  8각13층 석탑이 있고 대웅전, 연상각, 만수당, 해장원 등이 있었다. 보현사가 유명한것은 임진왜란때 큰 공을 세운 서산대사가 있던 곳이며 왜국에가 항복서를 받아왔다는 서산대사의 사제 사명당도 이곳에 있었다. 사명당은 이곳에서 서산대사의 가르침을 받고 왜적을 물리치는데 큰 공을 세웠다 한다.
   보현사 곁에는 우물 하나가 있었다. 이 우물을 장수우물이라 불렀다. 왜서 장수우물이라 하였을까? 나는 금궁증을 풀려고 가이드한제 물었더니 가이드가 정답을 말하지 않고 이 우물에 깃든 이야기를 하였다.
    “멀고먼 옛날 묘향산에는 로 부부가 살고 있었다 한다. 하루는 령감이 이곳에 왔다가 이 우물을 발견하고 이 우물 물을 마시였는데 왼일인지 기운이 솟구치며 몸이 변하기 시작하였다 한다.  수차 이 우물물을 마이자 령감은 젊은이로 변하였다 한다. 젊어진 령감을 보고 로친은 그만 자기 령감이 아니라고 야단쳤단다. 그때로부터 이 우물은 장수우물이란 이름을 가지였다고 한다.”
     우리는 흥미롭게 묘향산을 구경하고 나서 묘향산 별장에서 늦은 점심을 지시고 잠간 휴식하였다. 그날 묘향산별장에서 자신 음식은 별맛이였다. 묘향산에서 채집한 산나물 볶음이 특이한 맛이 있어 내 입맛을 돋구어 주었다. 우리는 잠깐 쉬였다가 다시 평양으로 돌아오는 뻐스를 탔다. 뻐스가 묘향산에서 평양으로 돌아오는 사이 차 안에서는 흥겨운 오락판이 벌여졌다. 묘향산에서 받은 정기 때문인지 모두다 흥이나서 노래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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