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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기행 련재(18)
2018년 05월 06일 07시 22분  조회:2081  추천:0  작성자: 최상운
                                         미국기행 (2)                              
                                       
                                        7. 쌘프란시스코를 돌아보다.
 
    우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그랜드 캐니언을 돌아보고 라스베가스로 되돌아와 하루밤을 자고 이튼날 쌘프란시스코 관광을 떠났다.
     뻐스로 라스벨가스에서 쌘프란시스코로 오는데5시간이 걸리였다. 라스베가스에서 쌘프란시스코로 오면서 보이는 것은 푸른 전야도 프르른 산도 아닌, 황막한 사막과 민둥산이였다.
    쌘프란시스코로 오는 공로옆에서 쌘프란시스코의 명물, 대형 태양능발전소가 보이였다. 축구장 몇배가 될 큰 형광판을 단 태양능발전소였다. 쌘프란시스코 지역은 비가 적게 내리고 기온이 높은 건조한 지대였다. 사막지대여서 낮과 밤의 기온차이가 심하고 맑은 날이 많고 일조시간이 길다고 한다. 쌘프란시스코시에서는 이런 유리한 조건을 리용하여 여러곳에 대형 태양능발전소를 건설하였다.
    차가 쌘프란시스코 구역에 들어서자 차창밖으로 보이는것은 푸르른 나무숲이였다. 라스베가스에서 오면서 황막한 사막을 보는데 지쳤던 나는 생기로 넘치는 푸른 수림을 보자 정신이 번쩍드는 감이 들었다. 쌘프란시스코도 미국의 여느 도시와 마찬가지로 나무피복률이 높은 도시였다. 무연히 뻗은 수림속에  여러가지 양식을 같춘 집들이 보이였다. 쌘프란시스코지역은 이민이 많이 집중된 곳이라 한다. 특히 아세아인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이라 한다. 이민이 많으므로 쌘프란시스코에는 아세아인이 집중하여 살고있는 구역과 유럽인들이 살고있는 구역과 혼합구역이있다고 한다. 이런 관계로 건축양식도 각기 달랐다.
    중국에서 건너온 철도로동자들은 쌘프란시스코에 차이나타운을 만들었다. 지금 쌘프란시스코에는 뉴욕에 이어 미국에서 두번째로 큰 차이나 타운이있었다.
    쌘프란시스코에 왔으니 잠간 쌘프란시스코의 력사를 도리켜보는것도 무리가 아니라 생각된다.
    고고학적인 증거에 의하면 기원전 3000년전부터 이곳에 사람이 살았다 한다. 이곳에는 인디안계의 호홀로 부족이 이곳에 살았다고 한다. 1760녀11월2일 가스마드포르톨라가 이끄는 에스빠냐 탐험대가 이곳에 도착하였다. 그들이 왔을때 이미 이곳에는 아메리카 인디안 호홀로부족의 거주하는 작은 마을이 있었다 한다. 후에 에스빠냐 식민자들은 이곳을 영원히 점령하기 위하여 샌프란시스코에 요새를 수축하였고 가토릭 수도원인 돌로레스 선교회를 창설하면서 점차 이지역을 에스빠냐 통치지역으로 만들었다 한다. 그후 강성했던 멕시코가 1821년 이 지역을 점령하고 에스뺘냐 통치에서 벋어나 독립하여 멕시코의 령토로 만들었다. 멕시코인들은 이 지역을 예르바부예냐라고 이름을 지어 불렀다. 멕시코 통치하에 선교풍은 점차 없어지고 땅을 민영화가 되였다 한다.
    그후 아메리카합중국인 미국의 강성해지자 맥시코와 미국간의 령토쟁탈전쟁이 벌어졌다. 미국의 강한 압박에 멕시코는 미국과 강화조약을 맺고 쌘프란시스코지역을 포함한  광활한 서부지역 땅을 미국에 넘기였다. 강화조약후 예르바부예냐를 쌘프란시스코란 이름으로 바꾸었다 한다.
    쌘프란시스코시에 들어서자 멀리 서쪽에 거물같은 긴 다리가 유표하게 보이였다. 이 다리는 금문교라 하는데 두 지역으로 나뉘어진 쌘프란시스코를 련결하여 주는 오작교와 같은 다리였다. 쌘프란시스코시는 쌘프란반도의 북부와  마드린해협을 사이두고 도시가 형성되였다. 금문교 위로 많은 차들이 오가고 있었다.
    쌘프란시스코 중심에 들어 서자 고층건물들이 즐비하게 서 있었다. 쌘프란시스코시는 앞에는 태평양 바다를 끼고 있고 뒤에는 높은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있어 그야말로 경치가 아름다운도시였다. 쌘프란시스코시는 자연환경조건이 좋고 사람이 많이 살고있어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문화, 경제, 상업, 대외무역, 관광업에서 기둥 역활을하고있는 도시였다. 쌘프란시스코의 공식명칭은 시디앤카운티오브쌘프란시스코이다. 쌘프란시스코시의 면적은 46.9평방킬로메터이라고 한다.
    쌘프란시스코시는 캘리포니아주에서 인구밀도가 가장높은 도시이다. 미국 전체에서 볼때 뉴욕에 이어 두번째로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라 한다. 쌘프란시스코의 도시 인구는 2014년 기준으로 시 인구는 85만2천469명이며 광역도시인구를 합치면 860만명으로서 미국에서 다섯번째로 인구가 많은 광역권에 속한다 한다.
    200년전만하여도 쌘프란시스코는 작은 어촌마을에 불과 했다. 그러던것이 미국의 령토에 편입되고 광산개발이 시작되자 몰라보게 발전하였다. 근래에 쌘프란시스코의 경제 발전은 매우 빠르다고 한다. 쌘프란시스코가 빨리 발전하게 된것은 쌘프란시스코가 태평양 연안에 위치해 있으며 천연적이 항만을 가지고 있어 대외무역을 하는데 유리한 조건도 가지고 있어 경제 발전이 빠르게된 요소이지만 더 주요한것은 쌘프란시스코 지역에 여러 종류의 희귀한 금속과 비금속 광물이 매장되였기 때문이라 한다. 풍부한 광물자원은 쌘프란시스코의 경제를 발전시키는 기초가 되였다 한다. 한시기 쌘프란시스코지역에 금과같은 보귀한 광물이 많이 매장되였다는 소문이 펴지지 많은 광산개발업자들이 몰려와 광산개발에 자금과 설비를 투자하였다 한다. 1859년 캄스록광맥이 발견되자 많은 투자자들은 앞다투어 자금을 투자하여 철도를 부설하고 공로를 닦았다고 한다. 광산개발로 하여 쌘프란시스코의 인구는 급속도로 증가 되였다. 1848년의 쌘프란시스코의 도시인구는 천명이였는데 2014년에는85만명이 넘는다. 도시인구의 증가와 자금축적으로 쌘프란시스코의 경제 발전은 가속화 되였다 한다. 광산개발에 열기과 함께 항만건설을 하여 대외무역이 활기를 띠였으며 동시에 관광업과 스포츠, 기타 산업들도 흥성하게 발전되였다 한다. 
     쌘프란시스코시는 인기가 있는 광광도시였다. 쌘프란시스코시는 해변의도시로서 쌘프란 반도의 마린드헤드랜 해협을 두고 도시가 형성되여 있어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몹시춥지않다고 한다.  짙은  안개가 끼는날이 있어 푸근함을 느끼게 한다. 관광을 할때 가파르고 구불구불한 어덕길을 걸으면서 태평양을 보고 바다와 조화를 이룬 다양한 건축물을 보노라면 어느사인가 자연의 정취에 흠뻑취해 피곤도 잊고 말았다.
    쌘프란시스코시를 보면 낡은 건물이 별반없고 새건물이 많이 보이였다. 1906년에 쌘프란시스코 대지진이 일어났다. 그번 지진과 화재로인하여 도시의 4분의 3이 파괴돠였다. 그후 재빠르게 재건하였다. 하여 쌘프란시스코는 새건물이 많았다.
     쌘프란시스코는 도시사람들은 비좁게 살고 있지만 도시를 벗어나면 많은 사람들이 산재하여 넓은 집터를 가지고 안온한 전원생활을 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넓은 집터를 소유하고 있으므로 도시외각은 상당히 범위가 컸다.
    우리는 먼저 쌘프란시스코항구를 찾아갔다. 항구는  대단히 범위가 크고 현대화 장비를 갖추고 있었다. 쌘프란시스코항은 미국에서 아세아지역으로 무역을 하는데 있어서 주요한  작용을하고 있었다. 미국 전역의 많은 수출상품과 수입품들은 이항구를 통과한다고 한다. 많은 물품들이 철도와 공로를 통하여 쌘프란시시코항으로 집중되였다. 쌘프란시스코항구는 한때는 군용항구였다. 제2차세계대전쟁시 태평양전장으로 보내는 군수품 물자와 군인들을 수송하던 항구이기도 했다.
    나는 쌘프란시스코에서 미국의 기차를 보았다. 미국에서 사용하는 화물차는 내연기차였다. 나는 처음에 기차를 보고 별로 신기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우리가탄 뻐스와 기차가 동일한 방향으로 달리게 되여 가까이에서 볼수있었다.  기차의 모양은 중국의 기차나 다름없었는데 기차바곤이 너무도 많아 이상스럽게 생각되였다.  중국에서는 화물차가 차 바곤을 달고 다니는것이 일반적으로 20개를 초과 하지않았는데 미국서부 지역이 기차 바곤수가 너무도 많아 헤여 보았더니 80여개 되는것이였다. 어떻게 되여 이렇게 많은 차 바곤을 달고 다닐수 있을가? 나는 찬찬히 보았다. 기관차는 앞부분에 두대가있고 중간에 한대가 있고 꼬리부분에 두대가 있었다. 모두 다섯대의 기관차가 80개이 차 바곤을 달고 다니는것이였다. 한편으로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렇게 많은 차 바곤을 달고 다닐수 있는것은 5대의 기관차이 견인력이 센데도 있겠지만 미국의 지형이 평탄하기에 부하를 적게 받기 때문이라 예측하였다.
    쌘프란시스코에는 유명한 전쟁기념 공연에술쎈터가 있었다. 이 공연예술쎈터에서는 전기적으로 공연을 하는데 공연수평이 미국에서 손꼽힌다고 한다. 또 쌘프란시스코에는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친 발레단이 있으며 유명 무용수들이 있다고 한다. 또  북미에서 두번째로 큰 쌘프란시스코 오페라 극장도 있었다. 우리는 전쟁기념공연쎈터로 가서 공연을 보았다. 멋인는 공연은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쌘프란시스코는 스포츠경기가 잘되는 곳이다. 운동중에서 야구운이 가장 인기가 높다고 한다. 세계의 많은 이름난 야구단이 이곳 메이저 야구시합에 참가한다고 한다. 
    우리는 쌘프란시스코에서 1박2일을 있었다.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쌘프란시스코 관광을 하고 나니 흐뭇하였다. 쌘프란시스코를 떠나면서 쌘프란시스코의 아름다운 매래를 기원하였다.
 
 
                                      8. 영화의 도시 할리우드
 
     우리는 쌘프란시스코에서 2일을 보내고 이튼날에는 할리우드시로 향하였다. 차가 쌘프란시스코에서 남쪽으로 4시간 달리자 할리우드시에 도착하였다. 사람들은 할리우드? 하면 자연 영화촬영기지와 할리우드 영화축제를 련상하게 된다.
      할리우드시는 미국 서해안 캘리포니아주에 있었다. 쌘프란시스코와 로스안젤스 사이에 있었다. 쌘프란시스코에서 남쪽 해변길을 따라 내려가면 할리우드시에 이르게 되였다.
    할리우드시는 영화촬영기지를 둘러싸고 도시가 형성되였다. 미국의 한 부자가 할리우드의 자연환경이 좋고 경치가 하도 아름다워 이곳에 영화촬영기지를 세웠다 한다. 영화찰영기지가 들어서자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면서 어느사이 활리우드란 도시가 형성되였다 한다.
     할리우드영화촬영소는 촬영중심과 보조촬영기지로 나뉘어저 있었다. 촬영중심은 산 언덕에 자리잡고 있고 보조촬영기지는 언덕아래에 있었다.
    우리는 촬영소 입구에 있는 매표소에서 입장권를 산후 촬영소로 들어갔다. 입구에 들어서니 넓은 광장이 있었다 광장 정면에는 할리우드 촬영소 표징으로되는 둥근 기구가 설치되여 있었다. 기구가 있는곳을 지나면 놀이터가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놀이터에서 즐겁게 보내고 있었다. 놀이터 주위에는 꽃밭이 있었다. 활짝핀 꽃들은 고운 얼굴을 방실대며 관람객들을 반기고 있었다
    우리는 놀이터에서 기념사진을 찍은후 고추 촬영중심소로 갔다. 중심촬영소 입구로 가는 길 옆에 의류와 식품을 파는 가계들이 촘촘히 있었다. 가계들을 보니 마치 미국의 어느  도시의 상업거리로 로 오지 않아냐? 하는 착각을 느끼게 했다. 
     놀이터를 지나 상업거리를 거처 야자수나무가 우거진 길을 따라 한참 걸으면 할리우드 영화촬영장소 중심기지에 이르게 된다. 영화찰영 중심기지로 들어가려면 고대 성벽을 방불케 하는 성곽과 관문을 통과하여야 했다. 웅장한 관문을 지나 뜰안에 들어서면 진짜 촬영소 건물들이 있었다.
     대문가에서 멀지않은 곳에 낡은 기관차 한대가 서 있었다. 기관차 앞에는 미국 옛 독립군이 군복차림을 한 로전사가 서 있었다. 그 로전사는 들어오는 손님들에게 일일이 군례를 올렸다. 관람객들도 반가워서 그 로전사와  악수를 하고선 합영사진을 찍었다. 나도 기분좋게 그 사람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기관차가 있는곳을 지나면 꽤나 넓은 거리가 있었다. 거리량켠에는 동방과 서방 나라를 대표하는 민족 특색이 짙은 집들이 보이였다. 프랑스 빠리, 이딸리아 로마, 애급의 금자탑, 중국의 고궁과 같은 여러가지의 모방 건축물들이였다. 그 중에서 눈길을 끄는 집은 북방부에서만 볼수있는 지붕에 흰눈이 덮힌 귀틀집이였다. 나는 촬영거리를 돌면서 내가 오늘 운이좋게 단번에 세계려행을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영화촬영중심을 돌아본후 제2영화촬영기지로 갔다. 제2영화촬영기지는 언덕애래에 있었다. 언덕에서 3계단으로 된 엘리베이터를 타고 제2촬영기지로 내려왔다. 제2촬영기지 출입문을 벗어나자 보이는것은 나무숲이였다. 촬영기지 주위는 이름모를 나무와 꽃나무들로  숲을 이루고 있었다. 나무와 나무사이에는 새파란 잔디가 있어 더욱 이채를 돋구어 주었다.
   경사면으로 된 구불구불한 산 길을 걷노라니 고향의 산향길을 걸었던 일이 떠올랐다. 길을 따라 내려 가면 수림속으로 졸졸 소리를 내는 작은 냇물이 있었다. 락차가 있는곳에는 물례방아를 설치하여 놓았다. 숲속에서 지지대는 새소리가 물레방아가 도는 소리와 회합하여 고즈넉한 시골의 정취를 느끼게 했다.
    물레방아가 설치된 곳에서 조금 내려가면 넓은 호수가 있었다. 호수 주변에는 서유럽식으로 지은 호화형 별장과 놀이 기구가 설치되여있었다. 배를 탈수있는 선착장도 있었다. 선착장에는 다종한 돗배와 뽀트가 정박해 있었다. 호수 중심에 작은 섬이 있었다. 섬에는 동물 훈련장이있었다. 물범, 돌고래와 같은 수상동물들의 교련사의 지시대로 여러가지 고난도 동작을 하였다. 동물들은 어찌도 훈련를 많이 받았는지 관람객들에게 인사를 하였다.
    호수에는 무대 장치를 한 배가 떠 있었다. 무대에서 유명 배우들의 나와 모델 표현을 하였으며 노래와 춤도 추었다. 공연장 한켠에서는 수영선수들이 높은 덕우에서 수면으로 내리 뛰는 동작과 여러가지 어려운 수영동작을 보여주였다.
    호수에는 인공으로 만든  어룡, 고래, 상어가 있었다. 잔잔하던 호수에 음악소리가 울리더니 갑자기 물속에서 어룡과 같은 괴물들이 물위로 불끈 솟구치면서 관람객들을 향하여  쏜살같이 달가온다. 준비가 없던 관람객들은 괴물을 보고 혼비백산하여 뒤로 달아났다.
  호수에서 멀지않은곳에 과학환상영화촬영장소가 있었다. 이 과학영화촬영소는 어린이들이 즐겨하는 동화와 환상영화를 찍고 있었고 공포영화도 찍었다. 이 영화촬영소에서 제작한 어린의들이 즐겨보는 동화편과 환상영화는 인기가 있어 세계 어린이들이 즐겨보는 영화라 한다 
    과학환상영화찰영소에는 인공으로 만든 마귀굴이 있었다. 우리는 이 마귀동굴로 들어갔다. 이 동굴에서 자극성이 강한 공포영화를 찍는 다고 했다. 동굴 입구에서 특수한 안경을 발급했다. 겉 모양을 보아서는 별로 다른점이 없었다. 안경을 걸고 차를 타고 마귀굴로 들어가면 세상아닌 별란 세상으로 온 감이든다. 고요한 어둠속에 은은한 음악이 울리자  어둠이 차차 사라지고 밝아지더니 지구가 아니 다른 세상이 펼쳐지였다. 눈앞에는 우리가 영화에서 보았던 공룡과 같은 괴물이 나타났다. 공룡이 존재했던 수억만년전으로 되돌려 놓은것 이였다. 거대한 공룡들이 하늘과 땅에서 우리를 향하여 다가왔다. 진짜로 나한테 덮쳐드는것 같았다. 단박이라도 공룡이 먹이감이 될가봐 숨이 한줌되여 가슴을 죄이였다. 괴물들은 우리를 향하여 타액을 내뿜었다. 타액이 차창의 유리에 부디치기도 하며 내 몸에 닷는것 같다. 아짜아짜한 순간에 내 얼굴과 옷을 만져보니 정말로 찐득찐득한 타액이 뭍쳐 있는감이 들었다. 간신히 공룡이 세계를 벗어나면 룡왕이 있는 수중세계로 들어간다. 수중에 있는 물고기들이 우리 한테로 다가온다. 작은물고기들은 친절한데 상어나 대 문어같은 큰 고기들은 날카로운 이발을 드러내놓으면서 우리를 향해 다가온다. 딱 벌린 입을 보면 단박이라도 물리여 죽을것 같아 두려움이 앞선다. 거대한 괴물 문어는 발을 너풀거리며 우리한테 온다. 커다란 괴물의 종지발에 감기면 빠져 나올것 같지았다. 괴물들을 피하다 보면 어느사인가 등곬이 축축해 난다. 근방 위험구를 벗어나 한숨을 돌릴가 하면  또 가열치렬한 전투장면이 나와 손에 땀을 쥐게 하였다. 진짜 전투장면을 보는것 같았다. 비행기공습, 달리는 땅크에 짖 눌리워 목숨을 잃을것 같았다. 30분간 마귀굴에서 공포에 떨다가 밖으로 나오니 살것같아 휴!, 숨이 나왔다.
    제2촬영기지에는 여러가지 쟝르의 영화를 찍기위해 번하한 거리, 호화스런 주택, 아름다운 시골마을을 만들어놓았고 어떤데는 전문 도시와 명승지를 그림으로 생동하게 그려놓았다. 얼핏 보아선 그림이라고 보여지지 않았다.
    나는 영화촬영기지를 돌아보고서 영화란 단순히 실제 사실이 아니고 예술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할리우드영화촬영소는 처음에는 작고 원시적인데로 부터 지금은 현대적 과학기술을 응요하여 다양하고 질이 높은영화를 제작하여 세계 일류의 영화제작소로 되였다. 이 열화촬영소에서는 많은 세계급  배우들을 배출하였으며 주기적으로 영화 축제를 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할리우드 영화촬영소를 돌아보고 나서 영화를 어떻게 찍는가를 알게되여 마음이 흡족하였다.
 
 
                                  9. 스포츠 도시로 각광받는 로스안젤스
 
    우리는 할리우드영화찰영소를 맘껏 구경하고 나서 캘리포니아주 남부에 있는 아름다운 도시 로스안젤스로 향하였다.
    할리우드에서 로스안젤스로 오는데 두시간이 걸리였다, 로스안젤스는 캘리포니아주에서 큰 도시이다. 이 도시에는 5섯개 진으로 구성되였다. 로스안젤스에는 태평양 연안에 있는 도시이기에 쌘프란시스코와 마찬가지로 “이민의 도시”라고 할만큼 아세아인들이 많이 이주해 살고있었다. 로스안젤스지역에는 화인이 약90만명이 살고 있다고 한다. 그들의 선구자는 미국철도부설 로동자들이라 한다. 로스안젤스는  미국에서 한국인이 제일 많이 살고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우리 조선족들도 적지않게 이곳에 정착하여 살고 있다고 한다.
    로스안젤스에 들어서면  보이는것은 수림속에 붉은기와에 흰 벽체로된 산듯한 집들이였다. 산등성이에 집들이 많이 산재해 있었는데 각기 다른 양식으로 지은 집이였다. 하지만 거개가 에스빠냐 건축양식으로 지은 집이라 한다. 나는 보기좋은 이런집을 보면서 어찌하여 로스안젤스만이 이런 독특한  집들이 많을가? 궁금하였다. 알고 보니 과거 로스안젤스지역은 에스빠냐 식민지였다고 한다. 후에 멕시코 통치지역으로 되였다가 미국의 세력의 강해 지면서 로스안젤스는 멕시코의 통치권에서 미국의 통치권으로 넘어갔다고 한다. “민족의 문자는 백년이면 다른 민족 문자에 동화될수 있지만 민족의 전통습관은 천년이 간다.” 는 말이 있다. 로스안젤스의 건축을 보면 그말이 리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로스안젤스가 에스빠냐 통치권에서 미국의수중으로 들어갔지만 오랜동안 이곳 사람들은 에스빠냐의 통치하에 있었고 에스빠냐의 문화에 물젓어 있었다. 그러므로 이곳 사람들은 여전히 에스빠냐 문화와 습관을 지켜가고 있었다. 지금도 로스안젤스에서는 영어와 에스빠냐어를 공통어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먼저 로스안젤스의 중심거리를 돌아본 후 캘리포니아로스안젤스 대학을 찾아갔다.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캘리포니아로스안젤스 대학은 1919년에 설립된 대학으로서 종합성 공립대학이다. 캘리포니아주 대학중에서 두번째로 설립된 공립대학이였다. 이 대학에서는 졸업생과 교수를 포함하여 15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대학이다. 참으로 실력이 대단한 대학이였다. 이 대학은 과학기술 방면에서 뛰여난 성과를 때냈을뿐만아니라 스포츠팀이 강하기로 유명했다. 이 학교의 스포츠팀은  올림픽운동대회에서 214개의 우승메달을 따내였다고 한다. 그외 예술분야에서도 인재를 많이 양성하였다. 할리우드의 스타들과 영화감독들, 그리고 음악계의 유명한 작곡가 가수들을 배출해내였다. 이 대학에는 외국류학생이 많다고 한다. 류학생중에서 중국과 한국의 류학생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한다.
     나는 로스안젤스에서 처음으로 한글로 쓴 간판을 보았다. 내가 주숙한 호텔에서 멀지않은 곳에서 한글로 된 간판이 걸려있는것을 보았다. 미국에 한인들이 많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만 미국에 체류한 10일동안 한명도 보지못하였다. 우리의 글로된 간판을 보자 친절한감이들었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로스안젤스지역에 20만이 넘는 한인들이 살고있다고 했다. 로스안젤스에는 화인과 한인들이 집중하여 살고있는 구역이 따로있다고 한다. 시간의 제약으로 한인이 살고 있다는 곳으로 가고싶었지만 가지못하였다. 로스안젤스지역에는 과거에 에스빠냐인들이 많이 있었는데 지금은 미국인이 많고 그 버금으로 멕시코인이 많이 살고 있다고 한다. 
     로스안젤스지역은 쌘프란시스코 지역처럼 지진이 자주발생하는 지진대 구역이라고 한다. 지진에 대처하기위하여 로스안젤스에서는 높은 층집을 짖지않고. 대신 지진예방을 위해  목조가옥과 단층집을 많이 짖는다 한다. 단층집이 많으므로 로스안젤스시는 구역범위가 상당히 넓었다.
     로스안젤스도 건조한 지역이지만 나무가 많아 건조한 지대라는 감을 느끼지 않았다. 로스안젤스는 의학공업이 발전한 도시이다. 로스안젤스 기업들에서는 대학과 과학연구기관과 손잡고 세계적으로 많이 발생하는 당뇨병, 고혈압을 치료하는 약을 생산하고 있었다. 기업들에서는 당면 세계가 로인화로 변하고 있는 실정에따라 로인들에게 자주발생하는 병을 치료하는데 중점을 두고 약품을 개발하고 있었다.   
     우리는 로스안젤스의 한 제약공장을찾아갔다. 이 제약공장은 고혈압치료제 약과 당뇨병치료제 약을 전문생산 하는 업체였다. 이 회사에선 캐리포니아로스안젤스대학과 합작하여 고혈압 치료와 당뇨병치료약을 개발하여 좋은 효과를 거두었다 한다.  우리팀원중에서 고혈압과 당뇨병이 있는 사람은 공장판매과의 설명을 듣고 믿음이 간다면서 약을 많이 삿다.
     그 제약회사에서는 고혈압과 당뇨병치료제 약을 생산할뿐만 아니라 보건품도 팔고 있었다. 태평양의 천정바다에서 서식하는 해삼을 특수하게 가공한 보건품이였다. 또 바다의 깊은곳에서만 서식하는 진귀한 홍산홍를 팔기도 했다. 우리팀원들은 과학적으로 세심하게 가공한 해삼제품이 마음에들어 모두다 삿다. 돈이 많은 부자들은 홍사홍을 삿다.
     우리는 제약공장을 돌아본후 로스안젤스에서 이름있는 절로 갔다. 이 절은 화인이 건축한 절인데 절 주위의 환경도 좋거니와 로승이있어 로스안젤스에서 명망이 높은 절이라고 한다.
     로스안젤스에는 곳곳에 절이 있었다. 미국에는 카토릭신자가 많으나 불교를 싱안하는 신자는 많지않다. 하지만 아세아인이 많이 살고 있는 로스안젤스지역에는 불교를 신앙하는 신도들이 많다고 한다.  불교신자가 많으니 자연 절이 많게 된다. 절도 각이한데 인종과 지역에 따라 다른 양식이 절을 지었다. 대체적으로 보면 비슷한 감이 들지만 동남아인이 세운 절과 화인들이 세운 절, 그리고 한인들이 세운 절로 구분되였다.
     로스안젤스는 체육이 도시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로스안젤스에서는 스포츠 행사가 잘 진행된다. 미국의 유명한 야구운동원과 롱구운동원들이 이곳 로스안젤스에서 많이 배출되였다 한다. 로스안젤스에서는 경상적으로 세계급 스포츠대회를 개최하고 있었다. 우리가 텔레비죤에서 흔히 보아왔던 미국의 엠베이 롱구시합도 로스안젤스에서 진행된다고 한다. 로스안젤스에는 시설이 구전한 경기장이 있고 기후와 환경조건이 좋아 세계 정상급 운동선수들이 많이 찾아온다고 한다.
    우리는 계획대로 로스안젤스 체육관으로 가기기로 하였다. 오늘 체육관에서 미국의 동부롱구팀과 서부롱팀간의 경기가 있다고 했다. 그 롱구경기를 보려고 간다고 하자 모두 은근히 기뻐하였다. 텔레비죤에서나 볼수있었던 세계급 롱구경기를 본다고 하니 아니 기뿔수없었다.
    기뿜도 한순간이였다. 얄밉게도 교통혼잡으로 인해 우리가 롱구구경을 하자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시교에서 시내안에 있는 체육관으로 가는 길에 들어서자 앞을막는 차들이 너무 많아 차가 제대로 달릴수없었다. 매일마다 로스안젤스 시내안은 이맘때면 길이 막힌다 했다. 주요한 원인은 오후 4시가 지나면 직장에서 퇴근하는 사람들이 몰고온 차들이 많아  길에서 차가 막히는 현상이 많다고한다. 오늘은 세계급 롱구경기가 있다고 하니 교통이 더 혼잡했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평시에는 그래도 시교에서 체육관 까지 가려면  30분이이 걸리였는데 오늘은 차가 너무 많아 어느때 체육관으로 갈지 모르겠다고 했다. 차는 거북이 걸음을 했다. 어느때 길이 열릴지 몰라 우리는 답답하기만 했다. 가이드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조급해 하였다. 그는  이 속도대로 체육관으로 가려면 두시간이 더 걸리것 같다면서 체육관으로 가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말았다. 두시간 후에. 체육관으로 간다고 해도 롱구구경을 할것 같지 않아서였다. 우리도 아쉬운대로 가이드의 말을 따르기로 하였다.
    차를 우회로 돌려 간신히 체육장으로 가던길을 벗어났다. 로스안젤스시는 교통이 혼자하기로 미국에서 뉴욕 버금이라고 한다. 로젤안제스시가 교통이 혼잡한 주요한 원인은 시민들의 소유하고 있는 자동차가 많기때문이다. 로스안젤스 시민들을 보면 도시에서 사는 사람보다 교외에서 사는 사람이 많았다. 그들이 도시에 있는 직장을 다니거나 도시로 올때에는 꼭 차를몰고온다. 저마다 차를 소유하고 있기때문에  도심에는 늘 교통 혼잡이 생기게 되였다.  
     사람들은 로스안젤스를 “스포츠도시”라고 부른다. 알고보면 확실히 로스안젤스가 스포츠도시로 되기에는 무색하지 않다. 로스안젤스가 스포츠도시로 불리우게 되는데는 로스안젤스의 독특한 자연환경과 관계된다고 한다. 로스안젤스는 태평양 연안에 위치해 있어 여름에는 몹시덮지 않고 겨울에는 몹시 춥지않다고 한다. 로스안젤스기후는 특별한봐 사계절이 분명하지 않고 우기와 찬기로 나누어져 있다고 한다. 우기는 대개 1-3월 사이이고 찬기는 11-12월 사이라한다. 이런 좋은기후와 더불어 자연 풍경이 아름다워 스포츠 경기를 하기에 안성마춤한 곳이였다.
    나는 아름다운 도시, 스포츠도시인 로스안젤스를 유람하고나니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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