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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월의 진달래꽃은 지금도 피고 있을까
2015년 04월 02일 10시 06분  조회:3988  추천:1  작성자: 넉두리

소월의 진달래꽃은 지금도 피고 있을까

 
김병훈





 
김소월(1902~1934)의 시는 현대 서정시의 처음과 끝이다. 그의  서정시를 능가하는 시를 본적이 없고 그의 시어와 운율은 근 1세기가 지난 지금도 깊은 울림을 준다. 애잔하면서도 전통적인 정조와 입에 감기는 운율까지, 실로 그는 천재였다.
 
소월의 시를 읊조리면 어느새 눈물이 나고 가슴이 박차오르며 때로는 신이 난다. 시에 문외한인 사람이 보아도, 전문 평론가가 보아도 소월의 시는 명쾌하고 마치 마음속에 흐르는 노래처럼 리듬을 타고 일렁인다. 보는 관점마다 다 다르겠지만 소월의 시만큼 우리말을 아름답고 우아하게 구사한 문학작품은 또 없을 것이다. 그의 시는 한마디로 한 개인의 상상력과 지식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수천 년간 수많은 사람들의 머리와 입으로 전승되며 다듬어진 민요같다. 그런 시를 혼자 썼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고작 32년을 살다 간 요절 시인은 백여 수의 시를 남겼는데 하나같이 가슴과 머리와 입에 와 닿는 명시다. 《진달래꽃》은 소월의 대표작으로 한국적 미학과 서정성의 극치를 단순명쾌한 시어로 표현하고 있어서 굳이 외우려 하지 않아도 몇번 읽다 보면 마음의 앙금으로 남아 자연스럽게 발성이 되어 나온다. 그 《진달래꽃》의 무대가 영변의 약산이다. 시 속에도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 오리다”로 등장한다.
 
영변은 평안북도 내륙지방으로 묘항산에서 그리 멀지 않다. 원래 소월의 고향은 영변 옆의 구성인데 예로부터 이 지역에서는 약산의 진달래가 유명했나 보다. 약산은 영변읍 바로 옆에 솟아 있으며 산 아래로는 청천강의 지류인 구룡강이 안동 하회마을처럼 거대한 물돌이 지형을 만들며 감아 돌고 있다. 산의 동북쪽 분지에 영변읍이 자리한다. 겨우 488메터의 높이지만 강변 저지대에서 곧추 솟아서 상당한 고도감을 준다.
 
문제는 약산의 서쪽과 남쪽에 그 유명한 영변 핵시설이 있다는 것이다.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파문을 일으킨 “북핵문제”의 진원지가 바로 여기다. 이제 약산에는 더 이상 진달래가 피지 않을 것이고 산 곳곳에는 핵시설을 보호하는 군사시설만이 가득할 것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약산을 오르는 산길과 구룡강 강변에는 다시 진달래가 피여나고 그 사이로 난 꽃길은 최고의 자전거 코스가 될 것이라 믿어본다.
 
 
 
 


 
 
 
 
부록
 
진달래꽃

 
 
                         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김소월(金素月)의 본명은 정식(廷湜)입니다. 그는 1902년 8월 6일에 평북 구성군에 출생하고, 그의 아버지 김성도는 1904년 처가에 가던 중 철도 공사를 하던 일본 목도들에게 폭행을 당하여 정신이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김소월은 광산 사업을 하는 조부에 의하여 자라났습니다. 남산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오산학교(1915년-1919년)에서 민족의 스승인 조만식 선생을 만나고, 평생 문학 스승인 김억 선생을 만났습니다. 1916년 오산학교 시절에 고향인 구성군 평지면의 홍단실과 결혼하였습니다. 3.1운동 후 오산학교가 문을 닫자 배재고등보통학교 5학년에 편입하여 졸업했습니다. 1923년에 도쿄상업대학에 입학했으나 동년 9월 관동대지진 후 중퇴하고 귀국했습니다. 김소월은 고향에서 조부님의 광산 사업을 도우며 일했으나 실패하고, 구성군 남시에서 동아일보 지국을 개설했으나 역시 실패하여 극도로 빈곤하게 되어,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아 술로 세월을 보내고 친지들로 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았습니다. 1922년에 우리나라의 서정시의 기념비적 작품인 "진달래꽃"을 <개벽>지에 발표하고, 그리고 "예전엔 미쳐 몰랐어요" "산유화"를 발표했습니다. 김소월의 유일한 시집 <진달래꽃>을 1925년에 출판했습니다. 김소월은 향토적 소재와 설화적 내용을 민요적 기법으로 노래했습니다. 그의 유일한 단편소설은 <함박눈>입니다. 김소월은 초기에는 여성적인 서정시를 썼으나, 말년에는 남성적인 참여적인 글을 썼다고 합니다. "진달래꽃" "산유화" "금잔디" "엄마야 누나야" "예전엔 미쳐 몰랐어요" 등은 한국 사람들이 가장 애송하는 시들입니다. 불행하게도 1934년 12월 24일에 곽산에서 아편을 먹고 음독자살했다고 합니다. 1981년에 금관 문화훈장을 추서하고, 남산에 그의 시비가 서 있습니다. 5~6년의 짧은 문단생활이지만 154편의 시와 시론을 남기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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