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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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백산언덕가에는 미인송이 서있다
2013년 07월 24일 15시 38분  조회:1222  추천:0  작성자: 홍천룡
장백산언덕가에는 미인송이 서있다

홍 천 룡


농촌에 있을 때에는 산이 그리운 줄 몰랐었다. 짬만 있으면 산에 올라가 땔나무도 하고 나물도 캐고 새둥지도 털고 했으니까. 사회가 발전하면서 도시가 확대되고 도시생활이 보편화되면서 도시문화가 풍부해졌다. 긴장하면서도 질서있고 복잡하면서도 향상해지고 호화로우면서도 무정해지는 도시생활에 푹 빠져 흐지부지 퍼진다음에야 사람들은 느긋하고 근심걱정없이 땀 흘리며 먹어라 써라 하던 목가적인 농경생활이 그리워지고 산이 그리워지고 꽃이 그리워지는 모양이다. 요즘은 산으로 다니는 사람들이 급격하게 많아지고있다. 별일이다고 의혹감이 들 정도이다. 덩달아 몇번 산에 올라가보니 그 원인을 알것만 같았다. 산은 정말 좋은 곳이다. 공기 좋고 물이 좋고 경치가 수려하다. 그래서 나도 자주 산으로 다니게 되였다. 두루 산을 돌아보면 산은 산마다 특색이 있다. 어떤 산에 가면 마음이 한없이 안온해지고 어떤 산에 가면 정서가 더없이 숭엄해지고 어떤 산에 가면 세상을 등지고 도를 닦는 스님이 되여보고 싶은 생각이 덧없이 들기도 한다.

우리 조선민족은 장백산을 성산으로 우러러 보고있다. 그래서 나도 오래전부터 장백산으로 여러번 갔다왔다. 매번 갈 때마다 감수가 달라지군 한다. 장백산기슭에 이르러 언덕가에 오르면 특별히 눈길을 끄는 나무가 있다. 먼데서 보면 꿋꿋한 전선대에 갓을 씌워놓은것 같기도 하다. 그 나무가 바로 미인송이다. 가까이에 가보면 아래로부터 웃부분의 “갓”모양이 펴지는 곳까지는 곁가지 하나도 없이 미끈하게 쭉 올리 뻗쳐있다. 창공을 찌르려는 삼각창 같기도 하다. 그리고 또 어찌보면 사람다리 같기도 하다. 미끈한 겉모양을 보면 녀자의 다리와 같기도 하고 힘있게 쭉 뻗은 전체모양을 보면 남자의 다리 같기도 하다. 미인송은 미인과 같은 체격을 가지고 있지만 미인과 같은 나긋한 교태감과 화려한 아양감은 없다. 그 어떤 광풍폭우속에서도 그 긴 허리를 굽힐줄 모른다. 사람들은 미인송을 장백산출입구를 지켜주는 수호천사에다 비기기도 한다. 미인송이 지켜주기에 장백산에서는 각종 야생동물들이 마음껏 뛰놀수 있고 미인송이 지켜주기에 장백산에서는 각가지 야생화들이 울긋불긋 피여날수 있다는것이다.

나는 20여년전부터 장백산으로 다니기 시작하면서 장백산기슭에다 화원을 꾸리는 한 조선족사나이를 알게 되였다. 기름한 얼굴에 키도 미인송처럼 늘씬하게 빠졌다. 하냥 조용한 미소를 짓는것이 특징적이였다. 장백산기슭에서 조용히 피는 야생화처럼.

20여년전만 해도 장백산기슭은 거칠고 인적이 드문 황산언덕이였다. 그런 곳에다 꽃밭을 꾸리려고 하니 무슨 아이들 같은 소꿉장난은 그만 두라고 마음좋은 동네분들이 막아나서기도 했었다. 사나이는 그냥 고맙다고 조용한 미소를 보내고는 그냥 괭이를 메고 산기슭으로 향하군 했었다. 그 구부정한 뒤잔등을 바라보며 그 깊은 속을 헤아려보는 동네지기 몇분이 그 뒤를 밟아주었다.

이 세상의 사람들은 모두 꽃을 좋아한다. 악인이든 호인이든, 남자이든 녀자이든 다 즐긴다. 왜서? 곱기 때문에! 눈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것이 고운줄을 다 안다. 요즘엔 거주조건이 개선됨에 따라 집집마다 화분을 몇통쯤은 다 가꾼다. 그 몇통쯤 되는 화분을 가꿔본 사람이라면 다 알것이다. 꽃이란 보기에는 좋아도 가꾸기란 얼마나 시끄러운 일인줄을! 하물며 잡목이 무성하고 잡초가 우거진 산기슭에다 꽃밭을 꾸리겠다고 하니 그 고생인들 오죽했으랴! 꽃밭을 일구자니 소도 사야 하고 보습도 사야 하고 일군도 써야 했다. 그 세월에도 돈이 들어가야 일감이 손에 잡힌다. 그래서 사나이는제호주머니도 털고 부인앞에 손을 내밀기도 하고 지기들의 선심도 받아주고 깍쟁이 청인들의 돈도 꾸고 하면서 꽃밭도 일궈놓고 화단도 수건해놓았다.

그다음 문제는 꽃씨를 얻는것이였다. 그는 늘 새벽부터 신들메를 죄여매고는 먼길을 떠나군 했다. 동서남북에 꽃을 재배한다는 집들은 다 찾아다녔다. 까만 들가방을 달랑 들고는 연길도 얼마나 드나들었는지 모른다. 한번은 그 사나이가 연길로 왔다기에 찾아가 뵈였다. 한창 기음철이라 땡볕에 그을린 얼굴이 새까매져있었다.

“고생이 많으시우! 두루 몸도 살피면서 하세유.”

“나야 뭐, 별로 큰일도 못하면서 슬렁슬렁 돌아다니니 괜찮수다.”

사나이는 늘 조용한 미소에 조용한 말소리로 락관적인 모습을 보여주군 했다.

사나이는 꽃씨를 얻느라 국내 각지를 동분서주했을 뿐만 아니라 없는 돈에 비싼 비행기를 타면서 한국, 조선 , 일본, 미국 등 해외로 날아다니기도 했다. 그래서 많은 우량품종을 갖출수 있게 되였다. 그 가운데는 적지 않은 명화들도 들어있었다. 어떤 꽃은 세계적으로도 손을 꼽을수 있는 명화였다. 고운 꽃에 가시가 있다고 어떤 꽃은 너무 고와서 일부 구경군들의 눈을 자극하기도 했다. 사나이는 고운 꽃만 키운 것이 아니라 꽃의 약용성이며 식용성도 따져가며 심었고 또한 연구가치가 있는 기이화초도 길러 일부 구경군들의 물의를 일으킬 때도 있었다.

아무튼 그처럼 아글타글 가꾼 꽃밭에 울긋불긋 각가지 꽃들이 피기 시작했다. 꽃구경오는 관광객들이 많아졌다. 사나이는 거기에서 힘을 얻고 더 큰 희망을 내다보게 되였다.

그러던 어느 해, 어느 날부터 하느님이 우숩게 놀았다. 하늘에서 번개가 번쩍이고 우뢰가 울부짖더니 폭우가 쏟아져내렸다. 해마다 몇번씩 퍼붓는 폭우때문에 고생해왔지만 그번 폭우는 련며칠 그치지 않고 퍼부어 홍수가 지게 되였다. 골물이 터지니 사정없었다. 아가리를 쫙 벌리고 사품치는 흙탕물에 알뜰히 가꿔놓은 꽃밭한쪽이 밀려나갔고 집채같은 바위돌이 굴러떨어지면서 정교하게 수건해놓은 화단이 박산나게 되였다. 사나이는 비속에서 삽을 쥐고 결사적으로 싸웠다. 물곬을 옮기지 않으면 꽃밭이 끝장날수도 있었다. 원내 동료들이 몽땅 동원되였고 집식구들도 동원되였었다. 동네분들도 구원의 손길을 보내주었다. 끝내 물곬을 옮기고 꽃밭을 지켜내고야 말았다. 그번 홍수와의 싸움에서 사내도 지쳤고 동료들도 지쳤다. 부인은 그번 홍수에 병까지 얻었다. 사나이는 부인의 병을 치료해주려고 국내 여러 병원들을 돌아다녔다. 그러면서도 홍수에 밀린 부분을 다시 가꿔놓도록 많은 조치를 댔다.

지칠대로 지친 사나이는 그 어느 날 꽃밭머리에서 잠간 숨을 돌리느라 미인송나무에 기대여 앉은것이 그만 깜박 쪽잠에 떨어져 꿈나라로 들어가게 되였다…

장백산기슭에 꽃바다가 펴진다. 이쪽에서는 진붉은 진달래가 불타오르고 있는가 하면 저쪽에서는 하얀 민들레꽃이 거대한 면사포를 이루어가고있었다. 장백산입구는 완전히 꽃대궐을 이루었고 머루넝쿨로 이루어진 길다란 랑하에는 먹음직한 머루송이들이 데룽데룽 드리워져있었다. 올리 쭉 뻗은 그 끝머리에는 락락장송들이 하늘을 가리우면서 선선한 그늘을 지어주고있었다. 완전히 선경같은 환경이였다. 그속에서 새들이 지저귀며 합창을 했고 꽃나비들이 집체무용을 펼쳐냈으며 꽃사슴들이 마라손경주를 했고 곰들이 씨름판을 벌리고있었다. 나중에 장백산호랑이가 따웅! 하며 산곡간을 은은하게 울려주니 녀석들은 저마다 꽃묶음을 안고 두줄로 렬을 지어 장백산입구로부터 천지정상에까지 이르는 구간에 환영진을 이루어놓는것이였다. 둥기당! 가야금가락에 맞춰 상모춤대오가 처음으로 꽃대궐속으로 들어갔고 그 뒤로 새장구를 앞가슴에 건 꼬리치마 아낙네들이 따랐다. 풍상고초를 겪을대로 다 겪어온 우리 민족의 어르신님들이 백발을 흩날리며 퉁소가락을 건건하게 흘려넘긴다. 이어 칠색단 꽃저고리를 입은 동자들이 환호소리 야- 울리며 산기슭을 메우며 밀려온다. 희망의 구름떼를 이루어준다. 그다음에는 원예사들이 나타났다. 세계각국으로부터 모여온 우리 민족의 고급원예사들이다. 그들은 저마다 자기의 화원에서 정성껏 가꿔서 받은 꽃씨를 가지고 왔다. 그 꽃씨를 바야흐로 이 대지에 뿌려놓을것이다. 끝으로 구경군대오가 나타났다. 대서양 저쪽에서 날아오신 분들도 있고 태평양남안에서 헤염쳐오신 분들도 있다. 유럽의 털부숭이도 보이고 아프리카의 깜장미인도 보이고 동남아의 뽈록이마도 보인다. 상모춤대오가 정상에 이르렀을 때 천지를 진동하는 폭죽소리가 터진다…

그 소리에 사나이는 꿈을 깼다. 그리고는 또 조용히 미소를 짓는다.

그 이듬해에 사나이는 꽃밭을 장백산중턱으로 옮기려고 했다. 관광객들이 늘어나고 꽃밭규모도 확대해야 할 추세에 직면했던것이다. 허나, 자리를 옮긴다는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였다. 자금도 문제이고 인력도 문제이지만 그보다도 산을 관리하는 해당부문의 수속절차가 복잡하고 시끄러웠다. 허나, 사나이는 또 그 특징적인 까만 들가방을 달랑 들고는 이런저런 부문을 문턱이 닳도록 다녔다. 그렇게 닦은 공력은 세상사람들이 다 알고 우리 민족이 다 알고있다. 지어 하느님도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자리를 옮기니 꽃밭이 더 화려하게 가꾸어졌다. 사나이는 세계각국에 있는 우리 민족지성인들이 가꾸어서 심은 꽃씨를 가져다 심고 가꾸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특유한 품종도 가꾸어서 꽃씨를 받아냈다. 그래서 세계각국의 저명한 인사들의 중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었다. 력사와 민족의 뿌리에 얽혀지면서 이루어진 이런 특유의 품종은 이제 앞으로 다른 품종과 교접되면서 더많은 명화를 배출해낼것이다.

인젠 꽃밭도 화려하게 가꾸어놓았으니 좀 여생을 여유작작하게 보낼수 있었지만 사나이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근간에 와서는 또 동네분들이 가꿀수 있는 삼림까지 도맡았던것이다. 점점 더 아름차게 일을 벌려나가고있다.

요즘 나는 또 장백산에 올라가보았다. 언제나 산에 오를 때에는 땀이 나고 숨이 차서 고통스럽게 헐떡거리게 된다. 그럴 때에는 괜히 밥먹고 할노릇이 없어 하는 짓거리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허나, 정상에 오른다음에는 기분이 완전히 달라진다. 만천하가 한가슴에 안겨온다. 력대의 영웅호걸들도 산중에서 산을 지키면서 웅심을 키워오군 했었다. 모택동도 정강산에서 《8•1》붉은기를 휘날렸고 김일성도 장백산줄기를 주름잡으며 유격전을 벌려왔었다. 시대란 이 거형의 불도젤은 이미 붉은기를 휘날리며 총가목을 틀어쥐고 싸우던 혁명시기를 저 멀리 뒤골짜기로 밀어놓았다. 세계는 바야흐로 화목과 평화의 화려한 화원에 들어서고있다. 부동한 사람들의 조화로운 만남의 장소를 이루어주는데는 꽃보다도 더 매력적인 매개물은 없다. 꽃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것은 부동한 사람들의 공동한 념원이기때문이다.

장백산중턱에 이르러 숨도 돌릴 겸 미인송나무에 몸을 기대고 서서 고개를 돌려보니 저기 저 꽃밭에서 꽃을 가꾸고있는 사나이들이 얼마나 돋보이는지 모르겠다. 다시 고개를 쳐들고 미인송을 올려다보니 몇년전보다 더 미끈해진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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