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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운명-7
2016년 07월 31일 08시 31분  조회:1261  추천:0  작성자: hooligan
한국의 운명/7

(요즘 한반도에서 미국 싸드미사이일 방어 시쓰템 배치를 두고 한반도는 물론이고 주변국들의 반대 항의로 난리 떨기에 7년전에 본인 야후코리아 불로그에 올린글들을 그대로 다시 조글로 본인 블로그에 올려봅니다.)

2009년 9월 22일 오후 3:36공개조회수 8931 1

38선

       20세기의 앞 반시기 한국 운명은 글이나 말로 형용할수 없을 정도로 너무 나도 비참 하다. 설하자면 일본의 식민지로 편입 되면서36년간의 망국노 신세로 살다가 남의 힘으로 광복을 보게 되자 불과 몇년 않지나 6.25전쟁이 터지면서 구후 반세기는 미국의 보호권에 귀속 되면서 여직 미국에 공손 해가고 독자적이 권한을 잃은 상태에서 피동적으로 눈치 봐가면서 살아야하니 말이다.

      우선 38선의 유래를 보기로 하자.2차대전이 마무리될 싯점에 당시 미국과 前쏘련,그리고 영국이 1945년 2월에 쏘련의 꺼리비야 반도의yalta에서 극 비밀리 3국 최고 영도자들이 모여 유럽 전쟁이 끝난후 공동으로 연합하여 일본에대한 전쟁을 전개 하자는 회의를 갖게 되였다.

     회의시 미국은 교환 조건으로 미국이 단독으로 일본을 점령 하겠다고 하자. 쏘련측은 19세기초 러-일전쟁시 잃은 모든 권한을 회복 하겠다는 견해를 완강히 펴나갔다. 동시에 임자 없는 조선 반도의 운명을 결정 짓는 중요한 비밀 회의기도 했다.

     토론 내용으로는 연합하여 일본에대한 전쟁을 개시할데 대해서와 주인 잃은 조선반도를 국제 사회에서 托菅(대신 관리)하자는 주 내용 이였다. 영국은 조선반도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미국과 쏘련은 아주 진지하게 열토들 하고 있었다.

      영국은 국제사회에서 조선반도를 托菅하는것이 가장 적합하다고 고집하자. 미국의 ROOSEVELT대통령은 국제사회보다는 미국과 쏘련 그리고 중국측 대표가 합쳐서 나눠20-30년간 또는 장기간 托菅 할것을 주장 해왔다.

     쏘련측의 스탈린(STALIN)은 托管 년한이 너무나 길다면서 짧으면 짧을수로 좋다고 말을 내 밷고는 앞으로 외국 군대를 조선반도에 진입 시킬것이냐고 미국측에 반문을 던지자 로즈벨트 대통령은 단연히 NO!라고하자 쓰탈린은 그럼 나도 상기 의사를 동의한다고 표시 하였다.

      미국의 제안을 쏘련측은 완전히 받아 들일수 있다. 하지만 전제 조건으로는 반드시 托管 기한을 최대한 쭐여야 한다.그리고 쏘련은 전에 러-일전쟁을 감안하여 지금 일본과 宣戰 할것을 분명히 밝혔다.

      얄타(yalta)회의를 가진후 3달후 쏘련은 독일의 BERLIN을 점령 하게 되였다. 동시에 유럽에 나가있는 병력중에 25개사단을 극동지역으로 조정하기 시작 하였다. 이시기 미국과 일본은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였다.

      쏘련군은 일본 關東군을 습격하기 위해 중국 국경선에 약 200만 대군을 조정 시키는 싯점에 미국도 일본 본토와 1000킬로미터 떨어진 오기나와를 이미 점령하게 되였다.

      1945년8월 BERLIN근교 POTSDAM에서 3국이 다시 모여 일본이 무조건 투항할 선언을 협정 하면서 조선반도의 중요성에 눈길을 돌리기 시작 하였다.

      미국은 쏘련이 일본에대한 전쟁 도발을 피면 못할 것으로 판단 내리고 東西 정세를 다시한번 점검후 하루 빨리 전쟁을 마무리 져야할 중요성을 알게되자 1945년 8월 5일 미국의TRUMAN 대통령이 POTSDAM에서 돌아가는 군함에서 아주 중요한 명령을 내렸다.

       나중에 알게된 일이지만 미국이 비밀리에 태평양 비밀 기지인 지미안 섬도에서 3대의 B-29 폭격기를 일본향해 출발 시켰는데 이중에 당시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이름도 모르는 지금의 원자핵 탄을 장치한 B-29폭격기가 끼여 있었다.

      1945년8월6일 9시경에 B-29폭격기는 일본 본토 히로시마에 투하 한것이 바로 지금의 원자핵 폭탄이였다. 3일후인 8월9일 다시 나가사기에다 재투 하면서 투항을 쪼아 댔다.

       이 시기가 바로 POTSDAM 협정에서 맺은 쏘련군이 일본을 진공할 원 계획보다 꼭 15일 앞당긴 싯점이였다. 미국은 先發制人(선손써서 다스리는법)하여 일본을 독점할 계획으로 강경하게 나서면서 지어는 쏘련군이 일본과의 宣戰을 거절하는 동시에 극동의 전쟁 이익 분할권 마저도 거절 해나섰다.

       8월9일 일본이 투항을 거절하자 아니나 다를까 쏘련군은 8월10일 25개사단의 200만 대군을 3갈래로 나눠 중국과 몽골을 거쳐 일본을 향해 정식으로 전쟁에 도발해오자 미국은 속수무책으로 급해만 났다.

      미국의 워싱톤에서 일본이 무조건 투항할데대해 총명령을 내렸다.그리고 버니스디얼이라는 上校 작전참모가 그날밤 30분이란 짧은 시간을 들여 투항에 관한 문서를 밤깊어서 작성하게 되였다.

       지리적으로 미군이 가장 가까운 오기나와도 조선반도와는 1000킬로미터 떨어져있으니 쏘련군이 조선반도에 먼저 도착하여 반도 전부를 점령할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였다. 그리하여 그 무슨 방법을 대서라도 쏘련군이 서울 도착을 제지 시키기로 작심 했다.

      당시 그의 사무실벽에 걸려있는 세계 지도에는 조선반도의 행정 구역이 없었다. 한참이나 들여 봤지만 눈에 쉽게 떠오르는것이 38선뿐이였다. 우선 야얼타 협정도 POTSDAM협정을 가만해서라면 미-쏘간이 38선을 기준으로 나눈다면 투르만이나 쓰탈린이 모두 접수할거라는 생각을 강구해냈다. 이렇게 작성한 제1호 문서를 워싱톤의 백궁(White House)에 제출 하였다.

      8월11일 새벽 백궁에서는 신나게 토론을 벌리게 되였다. 미국해군 참모부에서는 분계선을 아여39도 선으로 나눠 대련을 포함한 만주의 요동반도까지 포함시키자는 제안을 내놓자. 백궁에서는 해군참모부에서 내놓은 제안을 부인 하였다.

      원인은 쏘련측은 절때 접수하지 않을 것이다.그리고 지리적으로 미군이 쏘련군보다 절때 조선반도에 먼저 도착할수가 없으니 쏘련에 자극을 주게되면 나중엔 조선반도 전체가 쏘련군 수중에 들어갈수가있고, 더 나아거서는 일본 본토까지도 쏘련군 수중에 넘어갈 가능성도 걱정스러우니 절때 않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기존에 정한 38선을 기준으로 하는것이 가장 바램직하다는 결론이였다.

      이때의 쏘련 해군 선발대가 벌써 조선 원산항에 도착 하게되였다.개전한지 3일만에 씨베리아 PENINSULA주에서 출발시킨 육군들도 서서히 조선반도 서울 직전인 개성과 춘천으로 육속 도착 시켰다.

       급해난 미국은 이미 준비해놓은 투항 선고문을 원 계획보다 앞당겨 발표하도록 태통령이 명령을 내리자 일본 천황의 라디오 녹음 투항문을 공포하기로 하였다. 이 날이 바로 8월15일 이다.

      마음을 쪼여 가면서 불안에 떨던 미국 워싱턴에서는 일본 천황의 투항문을 라디오 전파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공포하고는 쏘련의 모스크바 반응을 애타게 기다렸다.

      쏘련측에서는 조선반도 문제는 38선을 기준으로 나눌데 대한 미국의 제안을 반대치 않는다는 모스크바의 반응이 떨어지자 미국은 한숨을 내쉬고는 급히 오기나와에 주둔하고있는 미군을 출발 시켜 서울 등륙을 재촉 하였다.

      그리하여 20일 후인 1945년 9월 4일 서울로 등륙하여 우선 조선반도의 모든 권한을 일본 총독부 수중에서 인수 받고.동시에 약속대로 미-쏘 양군이 지금의 38선에서 승리적으로 회합 하게되였다.   

     그후로 미-쏘간의 사전 협정대로 쏘련군이 우선 38선을 완전 봉쇄하면서 당시의 12개의 크고 작은 河류와 284개의 지방(local) 道路와 23개 公路 그리고 6개의 철도선이 38선기준으로 썩뚝 짤리게 되였다.

      지금의38선이 바로 6.25전쟁전 조선반도의 고려민족 자체가 원하지도 않고 알지도 못하던 강국들간의 사전 계획에 따라 나눠진 분계선이며. 또한 광복일도 민족 자체가 정한 날자도 아니고 그냥 미국의 필요에 따라 원계획보다 앞당긴 8월15일을 일본이 무조건 투항한 날로 선정하게된 날자에 불과하다.

      조선반도의 정권을 한손에 검어 잡은 미국은 서급히 자국 이익을 위한 괴뢰정부를 만들기위해 투표로 대통령 선거를 제창하자 북한은 미국이 간섭하는 투표 선거에는 참가하지 않는다고 밝히고는 나름 대로 북에서는 토지 개혁 정책을 펴나갔다.

     그후로 남한은 미국의 뜻대로 이승만 대통령 정부가 들어서게 되였고, 북한은 쏘련의 지지를 받아온 김일성이 주석으로 선발되면서 남북한이 완전히 갈라진 서로 다른 정부가 들어서게 되였다.

      일본이 완전 패망하여 미국한테 무조건 투항을 선포하게되면서 쏘련군은 더이상 일본에대한 침략을 시행할수가 없게됨을 깨우치고 하루 빨리 남북한을 정리 시켜놓는데 시급했다.

      미-쏘간의 비밀 조항대로 쏘련군은 48년12월30일 북한에서 완전히 군대를 철퇴 시켰고,미군은 49년6월19일 남한에서 철군 시켰다.
 
      강국들끼리 사전 38분계선을 나눠 托管할 운명을 결정 져놓은줄은 전혀 모르고, 조선반도의 고려민족들은 아까운 목숨을 잃어가면서 국내외에서 열심히 뛰여다니면서 애국 운동과. 독립 운동을 해봤자 그 무슨 소용이 있으랴...

      독립의 주도권과 나라의 운명도 서구 열강들의 수중에 있는줄도 모르고 나라의 독립을 갈망 하였으니 얼마나 불쌍한 신세였음을 오늘 다시 되상겨 보기위해 38선이 생긴 유래를 요즘 별로 잘 알려지지않은 일부 비밀 문서들을 살짝 공개 해 보겠습니다.

       미-쏘간 남북에서 군사력을 철퇴 시킨지 6일이 부족한 일년만인 1950년 6월25일 고려민족들이 더 이상 바라지도 않는 전쟁이 참지못하고 드디여 터지면서 조선반도를 완전히 초토화 만든 뼈에 사무친 6.25전쟁이 38선을 아주 더 굳건하게 만들어 놓았다. (뒤에 계속)

Hooligan(오호)
2009년9월2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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