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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는 슬프다
2013년 05월 07일 11시 26분  조회:1882  추천:0  작성자: shijun
                                   약자는 슬프다
 
                                         한세준
 
    세상은 천태만상이요 인간은 천층만층 구만층이라 하나 크게 강자와 약자로 나눌수 있고 달리 잘난자와 못난자로 나눌수도 있겠다. 이렇게 숙명적으로 어느 한 부류에 귀속되여있으나 강자를 표방하고싶어하고 잘난 사람이 되고싶어하는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그러다보니 못나도 “잘난척”, 모르면서도 “아는척”, 없어도 “있는척” 하는것을 일컫는 이른바 “3척”이 답습되여왔다. 저저마다 제잘난 멋에 사는 이 풍진 세상에서 돈 없고 힘 없고 빽이 없는 “약자”들이 “3척” 을 터득하지 못하면 더구나 병신, 바보취급을 당하기 마련이라 웬간히 머리가 돌아가는 사람이면 거개 다 “3척”으로 난국에 응부할수도 있고 체면유지도 할수 있으니 가히 처세의 입문이라 하리라.
    하여 사람들은 예로부터 이 처세의 입문을 본능적으로 습득하여 남녀로소를 불문하고 활용하여왔다. 맑은 날 막대를 세우면 그림자를 볼수 있듯이 손자병법보다 더 신통력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허구픈 웃음이 나오는것은 무엇때문일가? 밤 자고나면 신조어가 만들어지는 때인지라 사상의 옷이라 하는 말속에서 기기묘묘하게 변해가는 세상인심에 절로 슬퍼지는것을 말릴수 없다.
    일전에 “연변일보”에 실린 박××녀사의 글에 “3소”라는 말이 있었는데 오늘날의 인정세태를 읽을수 있어 다시한번 개탄하게 되였다. 소위 “3소”란 집집의 마누라들이 코리안드림의 격랑을 타고 한국에 나가 돈을 벌어오게 되자 단군족의 전통적인 대남자주의는 자라목처럼 움츠러들고 돈 잘버는 마누리말에는 무조건 “옳소”가 따르고 멋대로 하는 마누라의 처사에도 무작정 “맞소”가 내달아오고 옳고그름이야 어떠하든 마누라의 주장이라면 지엄한 어명처럼 “맞소”라는 “3소”를 노래가사처럼 외우며 아양을 떠는 현대나그네들의 궁상을 거품없이 그려낸 기사를 보면서 생각이 얽히고서리였다.
    하긴 산설고 물설은 타국땅에서 기시를 받을대로 받으며 몇몇해를 고생속에 돈을 벌어온 안해이니 감지덕지하는 마음이 절로 생겨나서 그럴수도 있겠다고 리해력을 달려보기도 하나 딱히 그런것만도 아닌것 같다. 남들처럼 멋을 내며 살아야 하는데 사무한신이라 돈지갑은 비여있어 마누라가 내주는 용돈을 쪼개써야 하고 그전처럼 풍류를 즐기다 가는 천둥벼락은 둘째치고 쪽박차고 나앉게 되였으니 내노라 하던 “바깥량반”들이 고충이 한두가지가 아니란다.
    원래 절반 하늘을 떠이였다는 녀성들이 상품경제시대에 들어와서 경제적으로 자립할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진 차에 더구나 한국바람이 불어치자 남자가 꼭 “바깥량반”이고 안해가 꼭 “집사람”이여야 할 리유가 없게 되였다. 일심동체라는 부부사이에서도 돈 잘 벌고 못 벌고에 따라 “강자”와 “약자”로 금이 그어지는 판인가? 한 가정은 사랑으로 얽힌 한개 소집단으로서 부모자식간의 사랑은 헌신적이고 무조건적이지만 부부간의 사랑은 조건적이고 리기적성분이 다분하게 된 이 시대이다.
    사랑에는 보험이 없다. 약자로 전락된 “바깥량반”들이 계속 “3소”타령이나 부르면서 “안사람”의 그늘밑에서 안일만 탐내여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 아무리 착한 마누라도 “하늘같은” 세대주의 미운 꼴을 내내 눈 감아줄수는 없을것이다. 거의 류행어로 된 “구조조정”이란 말이 먼저 가정내에서 자연스럽게 실현되니 이 아니 비애인가? 한편 제구실을 못하여 약자로 몰리운 남자들은 구제불능이며 아무도 동정할수 없으렸다.
    그런데 진정 약자의 비애를 절감하게 되는것은 가정울타리를 벗어나 력사 사회적 시각으로 볼 때의 우리 민족의 수난의 력사이다. 조선력사를 좀 읽은 사람들은 모두 “병자년국치(丙子国耻)”라는 단어를 기억할것이고 세월을 거슬러 민족의 슬픔을 두고 통탄해마지 않을것이다.
    “병자호란” 직후에 “환향녀(还乡女)”라는 말이 생겨났는데 전패후 조선의 꽃같은 딸들이 수없이 청나라 포로로 끌려가 온갖 수모와 릉욕을 당하였다. 1637년 1월 30 일 인조대왕이 소현세자와 함께 남한산성 서대문을 지나 한강 동쪽기슭의 항복식장에 끌려나와 누루하치에게 이마에 피터지도록 언땅에 머리를 조아리며 굴욕적인 사죄를 하면서 청나라를 섬기겠노라고 약속한후에야 비로소 전쟁을 마무리지었다.
    그후 청국에서는 그동안 겁탈해갔던 우리 민족의 딸들을 고향으로 되돌려보냈는데 그녀들을 “환향녀”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렇게 사무치게 그리워하던 부모형제들이 있는 고향에 천신만고로 돌아왔건만 그녀들을 반겨주는 사람이 없었고 설 자리도 없었다. 유교관념에 물젖은 당시 사회에서 녀자가 한번 몸을 버렸다면 페기처분이 된 물품의 신세로 되고말았던것이다. 환향녀들은 더러운 녀자의 대명사가 되였고 질시의 대상이 되여버렸다.
    기실 부패한 리조왕조의 무능으로 인하여 희생양이 된 그녀들에게는 아무 잘못도 없었건만 “잘난 남자들”이 알량한 권위를 휘둘러 또 한번 내쫓은것이다. 그리하여 대부분 환향녀들은 자살해버리고 그러지 못한 녀자들은 “화냥년”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기구한 목숨을 이어갔다고 한다. 그때로부터 그 말의 변종으로 화냥년이라는 말이 생겨나고 대대로 내리 정조를 내버린 녀자들에 대한 욕설이 되였던것이다. “환향녀”라는 말은 우리민족 녀인들의 피눈물 젖은 수난의 력사의 대명사로 되였다. 그러므로 그 어떤 상황에서라도 아무리 막말을 하고싶더라도 이 말만은 부디 삼가하였으면 한다.
    동서고금의 력사를 두루 살펴보아도 약자는 약자라는 그 한가지 리유만으로도 눈물겹도록 슬프고 고통스럽다. 지금은 예전에 비하여 사람마다 보다 나은 생활을 하고있는데 여유가 조금 있으면 남을 조금이라도 보듬을줄 아는게 상례인데 저저히 일신의 향락만 추구하는 극단적인 리기주의시대의 풍경선을 그리고있다. 선인들의 배운자가 더 교묘하고 가진자가 더 각박하다는 말이 그른데 없다.
    돈이 활개치고 진리가 주눅이 들어버린 이 사회에서는 노력한것보다 더 많은것을 얻고 실력은 없지만 분에 넘치게 대접받고 자신의 일신영달을 위해 아첨을 일삼는 사람들이 강자인듯 행세하나 기실 더없이 불쌍한 약자들이라 말하고싶다. 일찍 자취를 감추었던 관상쟁이, 점쟁이들이 공공연히 사주팔자를 뇌까리며 신비한 표정으로 돈을 벌고있는데 옛날 고관대작들도 머리숙였다는 그들앞에서 공손히 꿇어앉아 점꽤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그 기대에 찬 눈길들이 안쓰럽기도 하다.
    분명 돈과 직위를 가져다줄 남편복이라든가 녀자복이 무더기로 쏟아질것이라는 길한 징조일것이다. 어찌 생각하면 가련한 령혼들이 아닐수 없고 동정할수 없는 정신적약자들이라 락인찍어야 할것이다.
    맑스는 “자본주의사회에서 아무리 추하게 생겼다 하더라도 부자이면 가장 아름다운 미인을 안해로 맞아들일수 있다”고 하였는데 그 론단이 지금 이 사회에서 실증되고있다. 아닌게아니라 남방의 한 늙은 부자는 “내가 돈을 내흔들지 않아도 녀자들이 나를 줄쳐따른다. 그것은 나의 돈때문이 아니라 나의 매력때문이다”라고 흰소리를 쳤다는데 참 야물딱진 호언장담이다. 그가 공방형의 등에 업히지 않았다면 과연 매력을 들먹일수 있단 말인가? 답은 그속에 있다.
    그 반증으로 돈이 없는 수많은 남자들이 다 늙도록 련애 한번 제대로 못하고있는 실정에서 우리는 그들을 불쌍한 약자라고만 기시할수도 없을것이다. 때론 한국 텔레비죤프로에서 동남아의 젊은 아가씨들이 잘 살아보겠다고 정든 땅, 부모형제들을 떠나 한국 농촌에 시집와서 살면서 더없이 행복하노라고 각본에 따른 미소를 지어보일 때 공연히 슬퍼지는것은 내가 고루해서인지 모르겠다.
    아무도 돈냄새에 취하지 않는다고 할수는 없으리라. 돈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거개 가진자의 피곤한 하품소리로서 못 가진자에겐 흰소리로밖에 안 들릴것이다. 결국 못 가진자, 힘이 없는자들만 약자가 아니라 가진자라도 정신적으로 연골증에 걸린 약자들도 이 세상에 많다는 결론은 결코 자기위안이 아니라는 나의 납함이다.
    하긴 아무 대책도 없이 막무가내한 약자타령만 늘어놓고보니 더욱 슬퍼지는 마음이다. 이 세상에 모든 약자들은 숙명적인 존재들인가? 나에게는 정답이 없다. 다만 믿고싶은것은 강자 약자의 계선도 많이는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것이다. 그렇다고 경제적인 “강자”가 되여보려고 너나없이 코리안드림에 뛰여든다는것도 능사는 아닐터.
    나의 하늘아래 강자라고 생각하면서 자기 삶을 열심히 가꾼다면 상대적으로 강자가 되는것이 아닐가? 주어진 삶을 제나름대로 개척하면서 살아갈 때 약자의 타령도 어느새 시들해지고 약자로 된 비애도 새 삶의 도전을 부르는 강자의 웨침으로 될수 있으리라.
 
                                          2011년 6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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