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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의 탈선으로 생긴 비극
2014년 02월 24일 16시 16분  조회:2350  추천:0  작성자: 회령
              실화
                                   순간의 탈선으로 생긴 비극
                                                                                                    회령

    항미원조 전쟁이 끝난후 2년두달이 지나서 탁준보는 제대되여 고향마을로 돌아 왔다. 준보는 한없이 기쁜마음으로 걸음도 가볍게 아니, 마음은 언녕 나래돛혀 고향에, 부모형제 곁으로, 더 솔직히 말한다면 안해 곁으로 달려 왔다. 인물은 함박꽃 같고 체격은 싱싱탄력 있고 마음씨는 쾌활하고 너그럽고 무던하며 춘향이 같은 절개 심청이 같은 효심의 순금이는(그때 처녀들의 마음씨는 절대 대부분이 순금이와 같았다.) 원근에서 1등처녀라고 소문난 색시감이 였다. 지랄같은 조선전쟁이 일어나던해 늦은봄 준보와 순금이는 잔치를 하였다. 많은 시아버님 시어머님 덜먹총각들이 그리고 장인 장모 호마같은 처녀들이(준보도 끌끌한 총각이였다.) 군침을 꿀꺽, 꼴깍 넘겼으나 그것은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 였다. 사람들은 말그대로 천생배필이라고 찬탄을 하였다. 심술궂은 사람들은 속으로는 끙끙 배를 앓았다. 그러나 무슨 용빼는 수가 있는가. 잘코사니 였다. 누가 못난데다 심술마저 고약하라 했든가.

    잔치한해 9월 진보적 청년인 준보는 당과 모주석의 호소에 적극 호응하여 항미원조에 뛰여 들었다. 포연탄우의 가렬처절한 현대전에서 수십만 전우들이 삼대 쓰러지둣 희생되였다. 그러나 준보는 파편에 종아리가 한번 긁히였을뿐, 진지를 끝까지 고수하여 그번에 군공메달을 받았다. 물론 모자며 아래위 군복에 탄알과 파편이 찢고 꿰뚫고 나간것은 몇십번인지 그도 기억하지 못한다. 준보는 죽지 않았을 뿐만아니라 잔페로도 되지 않고 씩씩하게 돌아 왔다. 하느님이 아니면 보살님이 보우했다고 볼수밖에. 그러나 준보네는 본인은 두말할것도 없고 그 누구도 하느님이며 부처님이 어느동네 살아 계시옵는지 알지도 못했다. 그들은 자기힘으로 바른 량심을 가지고 성실하게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것밖에 몰랐고 대대로 그렇게 살아 왔다. 그러나 가난을 벗지 못하다가 부모들 대에 와서야 당과 모주석의 은덕으로 번신을 하였다. 준보는 당과 모주석을 무한히 열애 하였다.

    보리저녘켠에 준보는 도랑꾸(트럭. 그때는 그것이 려객차질도 했다.)에서 내려 마을까지 5,6리길을 반달음을 하였다. 부모형제들은 마구 얼싸 부등켜 안겠지만 사람들 앞에서 순금이와는 그러지 못하리. 하지만… 그건 따로 때가 있다.

    마을어귀에 이르니 어데선가 울음소리가 들리는데, 집과 가까워 질수록 통곡소리는 더욱 크게 들리고 그것은 분명 자기집에서 울려 나왔다! 웬일인가?! 준보는 한달음에 집으로 뛰여 갔다.

    순금이가 죽었다! 이틀전 이른아침 어머니는 뒤울안 살구나무 고목가지에 목매죽은 순금이를 발견하고 넋이 나가 고함치다가 기절해 버렸다. 준보가 나타나자 초상집은 더욱 상측집이 되여 버렸다. 친척들과 마을사람들은 준보네 집에서 줄줄히 초상이 난다고 야단들이 였다. 그들은 준보네 집에 밤낮 붙어 있으면서 준보와 그의 부모들을 안착시키느라 무진 애를 썼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누구나 모두 순금이가 왜서 자살을 했는지 경악하며 그저 어리둥절 하기만 했다.

    푸르싱싱하던 순금이는 왜서 자살을 했는가? 내막은 너무도 억이 막힌다. 준보가 집으로 돌아온 이튿날은 순금의 장례날이 였다. 준보의 어머니는 며느리의 보내줄 유품들을(태워버릴 물건) 들춰 내여 놓다가 무어라고 쓴 종이장을 발견 하였다. 어머니는 넋을 잃고 앉아 있는 아들에게 그 종이장을 넘겨주며 뭐라고 했는지… 하며 더욱 목메여 하였다.

      준보동무!! 여보!! 
  나는 말언덕 수수밭에서 22일오후 구정부 오진묵이 한테 겁탈을 당했습니다. 죽기로 싸웠으나 기진맥진하고 혼미한 상태에서 당하고 말았습니다. 파출소에 고발하려니 사람들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고 놈을 죽이려니 기회가 언제 있겠는지… 원통하고 수치스러워 한시도 살고싶지 않습니다. 숨기고는 더욱 살수 없습니다. 오진묵 이 미친개새끼를 천하에 발가 놓고 원쑤를 갚아 주세요!! 한번 더렵혀진 이몸은 살수 없습니다. 나는 죽을때까지 참다운 녀자로, 안해로 살리라 맹세 했는데 그것이 여지없이 짓밟혔어요. 녀자에게서 정조를 빼놓으면 무엇이 남습니까. 더는 녀자가 아니지요. 개나 돼지보다도 못한 더러운 몸퉁이 뿐이죠. 목숨보다 더 귀중한 정조를 더럽히고 어찌 삽니까!! 내가 산다는건 나 자신과 당신 그리고 가족, 친척 여러분께 치욕일 뿐입니다. 원통합니다!! 이글과 나의 죽음을 증거로 원쑤를 갚아 주세요!!
                                                                                          순금이
                                                                                                       9. 24

    오진묵이란 어떤 사람인가? 그는 구(향)정부에서 청년단서기로 공작하는 사람인데 준보와 같은 년령이다. 아버지는 현의 무슨 령도간부인데, 진묵이는 안해를 데리고 구정부마을에서 비둘기 살림을 하고 있었다. 진묵이는 조선전쟁이 일어나던해 초봄에 구정부에 왔는데 그때는 청년단간사 였다. 안해는 무직업이여서 집에서 놀고 있다가 얼마후에는 소학교 선생으로 들어 갔다. 사람들은 공부도 못한 농촌녀자가 인물덕에, 남편덕에 출세를 했다느니, 시애비를 잘 만난 복이라느니 하며 부러워 했다. 진묵이는 문체에 흥취가 있는 활발하고 미끈한 청년이였다. 그는 초중을 다니다가 왜서인지 그만두었는데 말을 잘했다. 항미원조 동원공작이 개시되자 진묵이는 농촌마을들을 돌아다니며 청장년들에게 동원연설을 하였다. 그의 연설은 기가 막히게 웅변적이였다. 동원이 뜨직한 마을에는 두세번 내려가서 연설을 하면서 그는 자기도 군대에 간다고 선포를 하기도 했다. 당과 모주석께서 부르시면 그자리로 조선전쟁터에 용맹하게 달려갈거라고 하였다. 그런데 그는 전쟁터에 가지 않았다. 사람들이 군대에 가지않는가고 물으면 그는 조직의 수요에 복종한다고 하였다.

    한달음에 구정부로 달려간 준보는 눈에 달이 올라 진묵이를 찿았다. 청년단 서기실에서 진묵이는 공작성과 보고서를 쓰고 있었다. 준보는 다짜고짜로 진묵이를 쥐여 태를치고 짓뭉개 놓기 시작했다. 아예 때려죽일 잡도리인데 사람들이 달려와서 겨우 뜯어 냈다. 진묵이는 반주검이 되여 병원으로 업혀 갔다.

    몇달후 진묵이는 총살을 당했다. 사람들은 당장 죽이지 않는다고 증오를 했지만 그래도 거이 일년을 살았는데 그것은 현에 있는 아버지덕이 였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도 결국에는 보배아들을 살리지 못했다. 진묵이는 탄백에서 반반한 녀자들을 보면 음욕이 일고 네명의 녀자를 직접거리며 회롱 했는데 모두 코를 떼웠다고 했다. 그는 이러면 안된다고 자신을 경고 하기도 하였다고 하였다. 9월 22일 하향했다가 오후 늦게 집으로 돌아 오다가 수수밭 오솔길에서 순금이를 만났는데 순간 수욕이 치밀어 겁탈 했다는 것이였다. 순금이는 돼지풀을 뜯어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였다.

    문화대혁명이 일어나자 현성에서 어느반란파의 두목으로 있은 진묵의 외사촌동생 동광문이는 반란파들을 끌고 와서 준보를 호되게 투쟁 하였다. 당시 준보는 공사(향)당위서기 였다. 얼마 안되는 공사내 반란파들은 준보에게 대자보를 붙히고 투쟁대회를 하긴 했으나 호되게는 해내지 못했다. 그것은 군중들의 보호가 억셋기 때문이다. 문화대혁명이 더욱 창궐해 지면서 반란파들은 증실할수 없는 특무혐의를 준보에게 들씌우며 물고 늘어졌다. 광문이는 현성의 반란파들을 여러번 끌고와서 준보를 때려죽일듯 날뛰였으나 번마다 군중들의 단호한 제지로 음모를 실현하지 못했다.

    림표사건후 준보는 공사혁명위원회 부주임으로 되였는데 4인패가 거꾸러진 후에는 현 농업국 국장으로 전근 하였다.

    순금이가 죽은후 사람들은 오랜세월 애석해 하면서 그래도 죽은것이 옳다고 했다. 그리고 이구동성으로 진묵이 때문에 비극이 생겼다고 했다. 더 깊은 원인은 생각지도 못했다. 더 깊은 원인이 있는가?

    지금에 와서는 “만약시…” 하면서 사람들이 엇갈리는 견해를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력사에는, 인생에는 “만약”이라는 전제가 없다. 오직 무정하고 엄연한 사실만이 있을뿐이다.

    순금이는 죽었다. 진묵이도 수치스러운 끝장을 보았다. 스물여섯이란 어린나이에.

    하지만 시대가 어떻게 변하고 환경이며 관념이 그 어떻게 변한다고 하여도, 경천동지의 천지개벽이 일어난다고 하여도 사람의 기본도리(량심, 도덕, 법)는 변할수 없다. 이를테면 정조를 소중히 여기며, 비량심적, 비도덕적, 비법적행위(부정부패)는 하지말아야 한다. 사람의 기본도리는 천경지위다. 유장한 인간세상은 줄곧 그랬고 또 그럴것이 아닌가…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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