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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손으로 만든 뒤웅박신세
2014년 02월 28일 17시 29분  조회:2417  추천:2  작성자: 회령
실화
                                            제손으로 만든 뒤웅박 신세
                                                                                                            회령


    미옥이는 꽤 해사하게 생겼는데 초중때에 벌서 남자애들과 련애작란을 한 경력을 갖고있다.

    보슴털도 채벗지못한것이 련애질을하고 공부는 또라지여서 마을 사람들은 말할것도없고 그의부모들조차도 “간나가 사람질을 제대로 하겠는지 모르겠다” 하고 은근히 근심했다. 미옥이는 위로 오빠가 셋이고 막내딸인데 학교졸업 후에는 별수없이 집에서 농사일을 하였다. 하지만 일하는 날수는 적고 멋을따며 놀러 다니는 차수는 무척 많았다. 개체농사니 말이지 집체화 시절이라면 아무리 양념딸이고 미인이래도 대비판 대상에 올랐을것이다. 일하지않는자는 먹지말라고 했고 집체생산로동에 적극적이 아니면 대채건설 락후분자라고 할때니까.

    열아홉이 되던해 미옥이는 시집을갔다.

    신랑은 십여리 떨어진 아래마을 신용사회계였다. 이름은 영수, 미남이고 아주 정직한 청년이였다. 사람들은 미옥에게는 과분하다고, 미옥이가 시집을 잘 간다고 치하를 해주었다. 영수에게 부족한점이라면 위염으로신체가 좀 허약한편이고 딸이 넷인 집에서 귀하게 자란고로 굳센일을 잘하지못하는것이였다.

    어린부부는 부모들 그늘밑에서 알콩달콩 재미있게 살았다.

    모두알다싶이 외국바람 도시바람이 맹렬속도로 불어치면서 농촌마을들이 허물어 지기 시작했다.

    부모들의 기력은 날따라 못해가고 영수의 쥐꼬리월급은 생쥐볼가심 정도로나 조금씩 올랐다. 귀엽게 생긴 두딸애는 잘자라고 있었지만 애들이 커갈수록 영수부부의 근심걱정도 커갔다. 그들이 다니던 초중학교는 언녕 없어지고 중학교부터는 시가지에 가서 하숙을하며 다녀야했다. 애들은 공부를 잘 했는데 그들의 형편으로는 그것이 큰 근심거리였다. 미옥이는 남편에게 그까짓 월급 때려치고 한국벌이를 나가라고 성화를했다.그러나 영수는 안해의 닥달을 당하면서도 끝내 용단을 내리지 못했다. 험한 일만 해야 한다는 한국이 두려웠다. 늙은부모들은 마치도 아들을 사지판에 보내는것만 같아서 극구 반대를했다. 화통이 발딱 치밀어 오른 미옥이는 자기가 가겟다고 검으락 푸르락했다. 영수와 시부모들은 그것도 안된다고 잡아뗐다. 바람쟁이가 우글우글 한다는 한국에 꽤 이쁘고 젊은 녀자를 혼자 내 보낸다는 것이 도무지 탐탁치가 않았던것이다. 그러나 고집이 센 미옥이를 당할 재간이없었다. 여러날 싱갱이 끝에 미옥이가 나가는 것으로 결정했다. 마침 그때 다른집 녀자들도 몇이 나가자고했다.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형편이형편이니만큼 영수는 이리저리 리자돈을 꾸고 변통을 해서 안해를 한극에 내여 보냈다. 검은비자였지만 재수가 붙어서 미옥이 일행은 무사히 한국에갔다. 그리고 수월이 술집에 일자리를 찿았다. 고되긴 해도 돈벌이가 잘되어 그해안으로 빚을 갚고 집에 전화까지 놓고 달마다 7ㅡ8천원씩 돈을 보냈다. 마을사람들은 한국벌이를 나간 집들을 침을 한발씩 흘리며 부러워했다. 영수는 가슴이 흐믓해 났다. 부모들도 은근히 좋아했다.

    이듬해봄 영수는 신용사가 없어지면서 재수딱지가 없이 정리해고를 당했다.

    일에 서툰 그는 늙은부모를 따라 일손을 도우며 그럭저럭 소일하였다. 안해가 달마다 목돈을 보내기에 무슨 업을 벌일 생각도 없었고 그런 궁냥을 하지도 않았고 나지도 않았다. 안해가 버는 돈으로도 부자가 되는데 허욕을 쓸게 뭐람…영수는 안해를 한국에 보낸 불중태들과 다정해져서 여름에는 매미소리를 들으며 당나무 그늘 밑에서 마작놀이를하고 동삼에는 개를 잡아 안치고 술놀이를했다. 영수는 술과 담배를 질색이였는데 차츰차츰 파겁을했다. 그러지말고 고생하는 안해를 생각해서라도 무슨 일을 좀 하라고 동생들이나 처남들 혹은 사촌들이 권고를 하면 그는 오히려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친구들은 시내 술집에가서 주전부리를 하기도 했지만 정직한 영수는 그런 짓은 하지않았다.

    그해말 마을에서는 미옥이가 한국에서 다른 나그네와 붙어 산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는데 얼마후에는 영수네 집에서도 알게되였다.

    영수와 미옥이는 전화로 다투기 시작했다. 제일 험악한 싸움은 이듬해 3.8절날 밤에 터졌다. 술을 좀 마인 영수는 끓어 번지는 분통을 참을길 없어서 안해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이 미옥이가 전화를 받았다. 그전에는 다른사람이 전화를 받고는 미옥이가 어데로 나갔다면서 전화를 끊을때가 많았는데 받는 사람은 녀자일 때도 있고 남자일 때도 있었다. 그럼 미옥이가 들어오면 집에 전화해 달라고 부탁하면 대답은 하는데 근근무소식이였다. 아예 전화기가 꺼져 있거나 받지도 않고 끊어버릴 때도 많았다. 너무도 분이치밀어 그럴때마다 영수는 며칠씩 자지못하며 공연히 곁사람들과 신경질을 썼다. 분한나머지 혼자서 주먹을 치며 운적도 한두번이 아니였다. 영수는 신경쇠약으로 치료를 받기까지했다. 부모형제 친척들은 모두 격분은 하면서도 미옥이 신세에 사는데…아이들을 보더라도 분하지만 참으라고, 참는수 밖에 없다고…권고하고 지어는 나무리기까지했다. 영수는 그중 똑똑하다는 셋째처남한테 미옥이를 타일러 달라고 방조를 청했다. 그런데 처남이라는 사람이 한다는 소리가 온집식구가 미옥이 덕에 먹고 살면서 아이들 공부시키는 주제에 무슨 흥타령인가고… 그냥 살겠으면 곱도록히 가만 있으라는 것이였다. 한몽둥이에 처죽일것들…영수의 가슴은 분노로 늘 부글 거렸다.

    전화기에서는 코고는 소리가 요란히 들려왔다.
    “거, 코고는 사람이 누기야? ”
    “누기문 어째? 돈을달라구 전화질이야?... 아이들은 상관말고 저절로 벌어 먹어. 날 바라지 말구.”
    “누가 네 신세에 살자니? 야! 이 화냥년아, 그놈 전화 바꿔!”
    “시끄러! 재간있으문 맘대루 해. 자신없으문 가만있구.”
    미옥이는 전화기를 꺼버렸다. 영수는 두주먹을 불끈쥐고 가슴을 쾅쾅쳤다. 미옥이 신세에 산대서야 말이되는가?! 이제부터 이 가정을 보란듯이 내가 메고 가리라! 영수는 드디여 결심하고 나섯다.

     그해 두어달후 영수는 한국으로 나갔다.

    그는 한국에 나간후 미옥이를 만나자고 여러면으로 노력했다. 그런데 미옥이는 피하기만 하다가 후에는 아주 련락이 끊어졌다. 영수는 미련을 철저히 버리고 이를 악물고 일했다. 그는 건축회사에서 일했는데 전기가설을 맡아했다. 그는 간단한 전기기술을 알고 있었던것이다. 회사에서는 영수가 정직하고 책임성 있는 사람임을 보아내고 그에게 반장책임까지 맡기였다. 영수는 돈벌이가 무척 잘 되였다.

    팽이처럼 돌아치는 세월은 언뜰 6년철이 지나갔다. 그간, 영수는 부모님들을 시내 딸집곁으로 이사시키고 (두 녀동생이 시내에서 산다)아이들의 공부 뒷바라지도 잘해주었다. 큰딸은 이미 대학졸업을하고 청도에 있는 일본회사에 취직 했는데 연길총각과 저희들 끼리는 약혼이 다 된 모양이다. 작은딸애는 지금 북경에서 대학에 다니고 있다.

    미옥이는 딸들과는 드문드문 련계가 있지만 딸들이 점점 더 정이 없어 하는 바람에 미지근한 상태다. 그간 죽자살자하던 룡정사내는 위암이여서 집으로 돌아 갔는데 더는 거래할 멋이 없게되였다. 미옥이는 이사내 저사내와 붙어 다니기도 했는데 저축한 돈도 얼마 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여기저기가 아프기도 해서 그는 중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갈곳이 없었다. 오빠네들 집으로 가니 시큰둥한 표정인데 올케들 눈길이 또한 곱지않았다. 미옥이는

    룡정에 셋집을 맡고 하숙생 몇을 두기도 했는데 시답지 않았다. 그는 다시 한국으로 나갔다. 하지만 이젠 힘도 부족했고 일자리도 그닥지 않았다. 야릇한 눈길로 자기를 쳐다보는 사내들도 별로 없었다. 그는 자기가 이젠 아줌마도 지나간 중다리 할머니임을 알았다.

    그는 있는 비위를 다 쓰며 영수의 행방을 찿았는데 누구도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다시 중국으로 건너왔다. 미옥이는 큰딸을 찿아 갔는데 큰딸은 여기서는 어머니가 할일이 없으니 집으로 가라고 했다. 완전히 꺼리는 눈치였다. 어데로 갈것인가… 시집켠은 차마 갈수없고 본가마을에도 갈만한 곳이 없었다.

    미옥이는 다시 셋집을 맡고 어떻게 할가를 이리저리 궁리했다. 그러나 신통한 생각이 나지 않았다.

    영수는 지금도 한국에서 열심히 즐겁게 일하고있다.

    누가 미옥이 말을 꺼내기만 하면 잊은지도 오래다면서, 딸들을 시집보낸후 처녀장가 갈거라며 한바탕 우스개를 하는데 듣는 사람들은 허투로 들을수 없다.

                                                                                                                             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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