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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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족녀성들의 전통미담-- 4
2013년 11월 09일 09시 55분  조회:3496  추천:15  작성자: 강순화

           
                         (6)   녀항일투사 김순희
 

     항일의 봉화가 이 땅의 하늘을 붉게 물들이던 30년대에 불요불굴의 의지로 놈들과 싸운 조선족 녀항일투사 김순희의 투쟁업적은 영웅적 서사시로 되어 항일투쟁력사의 한페지를 엮어놓았다.

    1930년 김순희는 적위대에 참가하였다. 혁명전사로 된 자호감과 혁명의 중임을 짊어진 책임감으로 순희는 사업을 진지하고도 힘차게 벌려나갔다. 남성들에게 뒤질세라 선전삐라를 뿌리고 정보도 날랐으며 소년단조직사업도 열성스레 해나갔다. 투쟁의 전두에 나선 순희는 언제나 용감무쌍하였으며 슬기롭고 재치있게 임무를 수행하였다. 투쟁속에서 시련을 겪고 련마된 그는 재빨리 성장되여 영광스럽게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다.

    어엿한 공산당원으로 성장된 김순희는 조국과 민족의 수요라면 자신의 일체를 아낌없이 바치리라 속다짐하였다.
    당조직에서는 김순희를 약수동의 부녀위원으로 파견하였다. 9월《추수폭동》의 불길은 온 동만지역을 불태웠다. 약수동 군중들은 이 투쟁의 앞장에 섰다. 그들은 한결같이 떨쳐나와 지주놈들과 싸웠다.

   《9.18사변》후 1932년 봄 간도지역에서는 규모가 보다 큰《보리고개》투쟁이 벌어졌다.
   《지주놈의 식량을 빼앗아 보리고개 기근을 해결하자!》는 구호밑에 일제를 반대하고 민족의 반역자들을 쓸어엎는 반제반봉건투쟁은 적들에게 침중한 타격을 주었다.

    날따라 세차게 타오른 동만지역 조선족인민들의 반일투쟁불길에 간담이 서늘해진 일제놈들은 위만군까지 동원하여《3광정책》을 실시하였다.

    1932년 11월의 어느날 토벌대가 약수동에 박근해오고 있다는 정보가 왔다. 당조직에서는 희생을 적게 내고 력량을 보존하여 놈들을 더 많이 소멸하기 위해 적위대를 잠시 철거하라 명령하였다.
때는 바로 김순희가 해산을 앞둔 림박이였다. 그는 적위대장인 남편 손태익을 떠나보내면서 자기는 이런 몸으로 동지들게 부담될것이니 남아서 군중들을 보살피고 또 그들의 보살핌도 받을터이니 념려말라고 하였다. 남편은 근심가득히 대오를 거느리고 떠났다.
    기실 적위대는 약수동 동남쪽 몇십리 떨어진 교통요도에 매복하여 있은것이다. 교활한 놈들은 적위대의 보초선을 에돌아 세린하쪽으로 기여들었다.
 
   놈들은 미친개마냥 집집에 뛰여들어 부시고 마스며 닥치는대로 사람을 붙잡았다. 만삭이 된 김순희도 붙잡혀 나왔다. 놈들은 무고한 백성들에게 사정없이 채찍질했다. 붉은 피에 흠뻑 젖은 채찍이 마을사람들의 몸에 연신 감겨들어 살점을 뜯어냈다.

    김순희는 더 보고만 있을수 없었다.
   《나는 공산당원이다. 나는 마을사람들을 위해, 당의 사업을 위해 남았다. 내가 나서지 않으면 많은 동지들의 목숨이 위험하다. 나는 혁명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쳐야 한다.》

    김순희는 선뜻이 나섰다.
   《이 악마들아, 네놈들이 공산당원을 찾지않으냐?  내가 바로 공산당원이며 내가 바로 촌간부이다. 어서 채찍을 걷어라.》

    그는 놈들 앞으로 걸어나갔다. 만삭이 된 나젊은 부녀의 당돌한 거동에 어안이 벙벙해진 살인백정들은 인츰 순희를 꽁꽁 묶어 놓고 잔인무도한 혹행을 가했다.

   《적위대가 어데 갔느냐?  지하당원은 누구누구이냐?》
    순희는 경멸에 찬 눈길로 놈들을 쏘아보며 입을 열었다.
   《그것은 당의 비밀이다. 살인백정인 네놈들에게 절대 알려줄수 없다!》

    악에 바친 놈들은 김순희의 몸에 사정없이 매질했다. 놈들에게 추호의 실마리도 잡혀서는 안된다고 생각한 김순희는 비장한 결의를 다지고 결연히 자기의 혀를 깨물어 끊어버렸다. 그는 온 힘을 다 모아 입안의 피와 혀끝을 놈의 낯반대기에 콱 내뱉었다. 놈들은 그의 강철같은 의지에 벌벌 떨었고 피로 저주를 퍼붓는 그의 증오의 눈길에 풀이 죽었다.

    까무러쳤다가 정신이 든 김순희는 놈들의 마귀상이 어슴프레 보였다. 놈들은 또 종이장을 내놓으며 지하당원의 명단을 쓰라고 하였다. 바로 이때였다. 김순희는 정신을 가다듬고 제 손가락을 물어 끊었다.

    꼬물만한 단서도 얻지 못한 놈들은 철저한 실패를 보게되자 김순희 등 8명의 동지를 불더미속에 밀어넣고 기관총으로 소사했다. 인피를 쓴 야수들은 최후의 발악을 했다.
    김순희는 22세의 꽃나이로 당과 혁명, 인민의 리익을 위하여 보귀한 청춘을 바쳤다.

 

                           (7) 《종달새소녀》 김금녀
 

     김금녀는 1924년 왕청현의 한 빈곤한 농민가정에서 태여났다. 1931년 연길현 복동소학교에 입학하여 공부하였는데 총명하고 예쁘게 생긴 금녀는 남달리 노래를 잘 불러 마을사람들에게《종달새》라고 불리웠다.
 
    1932년 봄 악독한 일본침략자들은 왕우구일대에 기여들어 골짜기와 마을을 쏘다니며《토벌》하였다. 이리떼같은 놈들은 북동마을에 들어서자 집에다 마구 불을 지르고 사람들을 죽였다. 금녀의 부모와 동생 등 여섯식구가 모두 비참히 학살되였다. 부모형제를 잃고 고아로 된 금녀는 더 살아갈 용기마저 없어 눈물만 흘렸다.

    선생님은 울기만 해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것, 그리고 부모의 원쑤를 갚기 위해서는 꼭 자신을 아동단원의 수준으로 제고해야 한다는것을 깨우쳐 주었다. 금녀는 선생님의 지도로 나날이 각성이 높아갔고 마침내 아동단에 가입하게 되었다.

    아동단에 가입하는 날 금녀는 단기앞에서《전세계 무산계급의 해방을 위하여 항상 준비하자 ... 》라고 장엄히 선서하였으며《아동단조직에서 힘을 키워 원쑤를 갚고 왜놈들을 모조리 쳐죽이겠다》고 결심하였다.

    금녀는 쏘베트정부의 따사로운 품에 안겨 공부를 더 열심히 하였고 아동단활동에 적극 참가하였다. 특히 문예활동에 열정을 다하였으며 조직에서 맡겨준 선전고동사업에서 모범을 보여주었다.

    1933년 가을, 요영구 항일유격근거지에서 20여명의 조선족아동들로 구성된 문예선전대가 창립되였다. 금녀도 이 선전대의 한 성원이였는데 이들은 노래와 춤으로 원쑤들과 싸우는 항일 꼬마전사들이였다.

    놈들의《토벌》을 자주 받다나니 먹을것, 입을것이 곤난했거니와 악기, 무용복, 무대시설같은것도 얻을수 없었다. 금녀는 이렇게 어려운 환경속에서 굶주림과 추위를 무릅쓰고 이악스레 공연프로를 연습하였으며 유격대를 따라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맞받아 허리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을 헤치면서 진지를 찾아 위문공연을 하였다. 간고한 시련속에서 금녀는 몰라보게 성장하였다. 나이는 제일 어렸어도 노래와 춤은 제일이였다.

                              나어린 몸 홀로 두고
                              아버지는 철창속에 갇혔네
                              눈보라 치는 벌판에서
                              어머니도 영리별
                              어머니도 영리별

                              놈들의 최후발악
                              어찌하면 까부실가
                              싸울 활을 만들어야
                              살길이 있단다
                              살길이 있단다

    백설이 뒤덮힌 산발을 타고 멀리로 울려퍼지는 금녀의 노래소리가 어찌도 비장했던지 어떤 전사들은 눈물을 흘렸고 어떤 전사는 주먹을 불끈 쥐고《저 애들을 위해 싸우자! 원쑤를 쳐부수자!》하고 웨쳤다.

    금녀는 자기 집 여섯식구가 몽땅 왜놈들에게 피살당한 비장한 사실을 가사로 지어 부르면서 춤을 추었다... ... 금녀의 노래와 춤은 생동하고 진실했으며 비장하였다.

    주보중장군은 그때 금녀의 생동한 공연을 보고 너무 감동되여《그 애의 공연이 어찌도 격조높히 사람들의 가슴을 치는지 전사들은 진심으로 감동되였으며 지어 눈물까지 흘렸지요.》라고 말하였다.

    1935년 봄, 바로 금녀가 열두살 되던 해 왕청현 라자구유격근거지에 있었던 한차례의 전투에서 금녀는 불행하게도 왜놈들에게 붙잡혔다.
    금녀는 룡정에 있는 일본총령사관으로 압송되였는데 놈들은 금녀를 어린 녀자애라고 얕보고 위협하거나 달래면 인차 굴복시킬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하지만 항일투쟁에 떨쳐나서 단련된 소녀의 강철같은 의지를 일제놈들이 어찌 알았으랴! 왜놈들이 물으면 금녀는 원한에 찬 두눈을 부릅뜨고《네 놈들과는 말하기도 싫다!》하고 소리쳤다.

    왜놈들은 약에 올라 금녀를 혹독하게 때렸다. 그러나 금녀는 울지도 않고 아프다는 말 한마디 없이 매서운 눈초리로 원쑤들을 쏘아보면서《우리집 식구들은 몽땅 네놈들 손에 죽었다. 멀지않아 항일전쟁의 거세찬 불길은 승냥이같은 네놈들을 모조리 불태워 죽일것이다.》하고 웨쳤다.

    금녀는 책상을 뒤집어 엎으며 왜놈헌병대장놈에게 달려들어 결사적으로 대항하였다. 왜놈 한놈이 군도를 뽑아들고 금녀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자!》
    소녀는 넘어지면서 소리높이 웨쳤다. 야수같은 왜놈들은 쓰러진 어린 소녀를 마구 차고 밟았다.
    짧디짧은 한생을 혁명위해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던《종달새소녀》금녀는 앞길이 만리같은 열두살의 어린 나이에 선뜻이 자기의 목숨을 바치였다.


                                      ( 하회: 항일련군의 《녀장군》허성숙,  연안시절의 조선족녀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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