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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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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소설

대하소설 진다래 소야곡(9)
2018년 01월 30일 16시 44분  조회:1145  추천:1  작성자: 김장혁





                        16. 약혼녀
교정에는 활짝 핀 라이라크가 생글방글 웃음지으면서 처녀총각들의 싱숭생숭한 마음을 보듬어주고 있었다.
어느날 밤중에 승호가 침실문을 뚝 떼고 황망히 뛰쳐들어왔다.
“성호, 날 좀 도와달라.”
“무슨 일이야?”
성호는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나 신발부터 신었다.
“홍희와 은영을 지켜달라. 이전에 말이 있던 경옥이 보복하러 올 거 같아.”
성호는 굳어졌던 얼굴의 근육을 느슨히 풀었다.
“녀자앤데 어쩐다구?”
“숱한 친척들을 데리고 오겠다더라.”
승호는 맥없이 침대에 털썩 물앉았다.
“졸업을 앞두고 이게 뭐야? 이번엔 뛸데 없이 퇴학맞을 거야.”
그는 침대 이불 밑을 더듬더니 시퍼런 비수를 들춰냈다.
“요즘 좀 덜 자더라도 이걸로 홍희와 은영을 보호해 달라.”
성호는 비수를 되밀어주었다.
“필요없어.”
자신만만해 하는 성호를 보고 승호는 비수를 내밀면서 타일렀다.
“경옥의 사촌오빠는 악명 높은 깡패두목이야. 난 7년 전부터 악연을 맺었어. 독종들이야. 은영과 홍희 눈깔을 빼가겠다더라.”
성호는 벌떡 일어났다.
“공안국에 좋은 아버지를 두고 뭘 해?”
승호는 난색을 지었다.
“아버진들 어쩌겠니? 그 자식 언제나 교활하게 수하를 시켜 해치우고는 꼬리를 빼는데야.”
승호는 한숨을 후~ 내쉬였다.
“또 공안국에 알리면 더 악감을 품고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승호는 성호의 어깨를 다독였다.
“홍희와 은영을 부탁하자. 난 최선생과 허서기를 찾아가 대책을 의논해 봐야겠어.”
성호는 비수를 침대 우에 훌 던져버리고 나섰다.
“근심하지 말라.”
“감사하다. 믿을만한 건 너 밖에 없어.”
승호는 성호의 손을 꽉 잡고 힘차게 흔들었다.
성호는 곧추 녀성숙사로 달려가 홍희네 침실 문을 노크하고 들어갔다.
침실에는 침대에 누운 홍희 외에도 정희와 연화가 있었다.
성호는 연화와 인사하고나서 홍희를 복도에 데리고 나가 조용히 찾아온 사연을 알렸다.
홍희는 맥빠진 소리를 했다.
“창피해 어떻게 살아? 아예 깡패들한테 죽는게 낫지.”
“쓸데없는 소릴 하지 마오.”
성호는 홍희를 침실에 들여보낸 후 정희를 나오라고 했다.
“요즘 침실을 지켜야겠소.”
정희는 사연을 듣고 파랗게 질린 얼굴을 들었다.
“멍청이짓 하지 마세요. 괜히 상하겠어.”
 “알았어. 근심하지 마오.”
성호는 책상과 걸상을 들고 복도에 나갔다.
“왜? 우리 침실에 앉아 있을게죠.”
성호는 “은영네 침실도 지켜야지.” 하고 걸상에 턱 들어앉아 복도를 지켰다.
“진짜 로지심 같아.”
침실 안에서 정희와 연화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성호는 은영네 침실에 가서 은영을 조용히 불렀다.
은영은 상을 찡그리면서 복도에 나왔다.
“왜 또 찾아왔어요?”
성호는 밸 같아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훌 가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용하게 놀라운 인내력으로 꾹 참았다.
성호는 은영을 복도 한켠에 데리고 가 나직이 사연을 말했다.
“야, 복잡해 어떻게 살겠니?”
“뭐라고 합데. 이런줄 알았으면 당초에…”
은영은 시끄러워 성호의 말을 중도무이했다.
“됐어요, 됐어. 제발 날 잊어주세요. 그럼 감사하겠어요.”
성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침실로 들어가는 은영의 등뒤에 대고 부탁했다.
“명심하오. 혼자 아무데나 가지 마오.”
녀학생들은 사연도 모르고 이상한 눈길로 성호를 흘끔흘끔 훔쳐보며 지나갔다. 화장실 쪽에 가서는 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키득거렸다.
정희는 복도에 나와 성호를 침실에 끌고 들어갔다.
“멍청이 아니야? 푸대접을 받으면서 보호해?”
“승호 부탁을 받았어.”
“그래도 그렇지. 복도 다 떠나가게 괄시하잖아? 분해서 어디 살겠어.”
성호는 복도에 나가 책상에 책을 놓고 보면서 스스로 위안했다.
(참새들이 어찌 고니의 큰 뜻을 알리오?)
성호는 진짜 의리심이 강했다. 승호의 부탁을 받은 것도 있지만 기어이 홍희와  은영을 보호하려고 작심했다.
정희는 슬그머니 나와 책상에 종이쪽지를 놓고 눈을 흘기면서 가버렸다.
성호가 쪽지를 펼쳐보니 이런 글씨가 또박또박 씌여 있었다.
 
여보세요. 목숨 걸고 보호할 건 뭔가요? 괜히 남의 일에 다칠까봐 속이 다 타 죽겠어요. 그만두고 숙사로 돌아가세요. 제발 빌어요.
 
성호는 그 쪽지에 몇글씨 쓱쓱 쓰더니 정희가 돌아올 때 건네주었다.
정희가 침실에 들어와 펴보니 이렇게 또박또박 씌여 있었다.
 
녀동창생들을 구해야 되겠다는 일념 밖에 없어. 너무 근심하지 말라. 잘 자!
밤중이 되자 성호는 잠이 호르르 와서 큰일났다.
“성호야, 잠을 좀 덜 자더라도 은영과 홍희를 보호해달라.”
그때 승호가 부탁하던 말소리가 귀전을 때렸다. 꺼떡꺼떡 자불던 성호는 눈을 비비고 걸상에 앉아 복도를 지켰다.
이때 홍희가 잠옷을 껴입고 복도에 나왔다.
“화장실에 가려고?”
홍희는 머리를 끄덕였다.
“데려다줄게.”
성호는 홍희를 화장실에 데려다주고 문어귀에 서서 로지심처럼 바깥을 지켰다.
그때 녀대성숙사 당직을 서던 경비원이 다가왔다.
“여기 서서 뭘 하오?”
“녀동창생을 기다립니다.”
“음.”
경비원은 마땅찮은 눈길을 보내더니 경비실로 돌아갔다.
성호는 피뜩 령감이 떠올랐다.
(경비원의 방조도 받아야지.)
성호는 경비원을 찾아가 딱한 사정을 이야기했다.
“공안국과 보위과에 알려야지.”
경비원은 급히 전화번호를 눌렀다.
홍희가 화장실에서 나와 숙사로 뛰여들어오는 승호와 딱 마주쳤다.
“승호, 이 개놈새끼, 어디 죽어봐라!”
갑자기 바깥에서 녀성의 앙칼진 목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성호는 황급히 경비실에서 뛰쳐나왔다.
어둑시그레한 바깥에 억대우 같은 20대 사내들이 한무리나 덮쳐들었다.
뒤에서 한 처녀애가 앙칼지게 고함쳤다.
“족쳐라! 쌍가시나 눈깔을 빼가자!”
성호는 다짜고짜 녀대생숙사로 뛰쳐들어오는 사내들을 막아나섰다.
“쳐라!”
깡패들은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쳐들어왔다. 성호는 깡패들의 머리 우로 날아나가면서 쌍발로 대가리를 탁탁 걷어찼다. 몇놈이 비명소리와 함께 나동그라졌다.
“개새끼!”
뒤에서 억대우 같은 코수염쟁이 방치를 휘둘러 어깨 넘어 날아지나가는 성호의 종아리를 쳤다. 성호는 몸을 훌 날려 뒤발로 코수염쟁이 관자노리를 걷어찼다.
“아야! 이 새끼.”
하이칼라도 코방귀를 뀌면서 방망이를 휘두르며 덮쳐들었다.
“꽤나 솜씨 있구나!”
코수염쟁이는 방망이를 내리며 빈정거렸다.
“알고 지내자. 넌 누군데?”
“시골에서 온 목동이야. 넌 누구냐?”
코수염쟁이 거만스레 코웃음쳤다.
“흥! 이 시내에 코수염쟁이도 모르는 놈도 있구나.”
“녀자숙사에 쳐들어오는 주제에 우쭐거리긴?”
“뭐 어쩌고 어째?”
성호와 코수염쟁이 맞붙으려고 할 때였다.
“송파, 서라!”
뒤에서 전지불빛이 어지럽게 비췄다.
“너 허서기 아들 맞지?!”
경비원이 나와서 꺽다리 코수염쟁이에게 삿대질했다.
코수염쟁이는 목을 움츠리더니 뒤에 대고 손을 홱 휘둘렀다.
“돌아가자!”
뒤에서 처녀애의 앙칼진 목소리가 울렸다.
“저 년놈들을 살려두고 어디로 가?!”
“경찰이다!”
코수염쟁이는 뒤에서 야단치던 처녀애를 끌고 도망쳤다.
그때까지 승호는 대가리도 내밀지 않다가 그제야 기신기신 기여나와 두리번거렸다.
“상한데 없니?”
성호는 승호를 보고 “홍희와 은영을 숙사에 두고 지키는게 방법이 아닌 것 같아.”라고 했다.
그는 승호의 귀에 대고 나직이 말했다.
“쟤들을 너네 집에 숨겨 둬라.”
승호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때 담임교원 최성균선생님이 다가왔다.
“홍희를 우리 집에 데려갈게.”
최선생은 대머리에 흐르는 땀을 손으로 뚝뚝 찍더니 홍희를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
승호는 은영을 침실에서 데리고 나왔다. 때마침 승호가 리과장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아보는 경찰이 있었다. 그리하여 승호는 은영을 경찰차에 앉혀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날부터 은영은 경찰의 보호를 받으면서 집에서 학교로 통학하기로 했다.
성호는 정희마저 몸소 집에까지 데려다주고서야 침실에 돌아왔다.
그는 한숨을 후~ 내쉬고 침대에 덜렁 들어누었다.
이튿날, 웃지도 울지도 못할 희비극이 벌어졌다.
침실문이 벌컥 열리더니 승호가 뛰여들어왔다.
“허서기 호출장이 왔어. 경옥이 또 숱한 깡패들을 데리고 학교 기률검사위원회까지 찾아갔어.”
성호는 보던 책을 놓고 천천히 일어났다.
“천하의 호랑이가 다 놀라다니? 쯧쯧쯧.”
승호는 얼굴에 겁기까지 띠지 않겠는가.
“얘, 그 쌍년 사촌오빠가 누군지 아니? 요 먼저 숙사에 쳐들어왔던 깡패두목 허송파야!”
“그 코수염쟁이? 허허허. 그 새끼 뭐 대단하냐?”
“웃긴? 남은 칼모태에 오른 물고기 신센데.”
성호는 승호의 어깨를 다독였다.
“이후엔 범송이랑 촌뜨기라고 욕하지 말라. 바쁠 땐 그래도 동창생이잖아.”
승호는 머리를 끄덕이면서 따라나섰다.
범송과 종수는 성호 낯을 봐서 마지못해 따라나섰다.
그들이 허서기 사무실로 곧추 갔을 때였다. 층계에서 한무리 코수염쟁이와 하이칼라들이 잡아먹을 것처럼 쏘아보았다. 깡패들은 허서기 사무실  앞에 보위과 경비원들이 죽 늘어서서 대기하고 있어 손을 쓰지 못하고 있는 눈치였다. 그런데 교활한 깡패두목 허송파는 보이지 않았다.
승호가 성호네 호위를 받으면서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다.
“야, 이 색마야, 오늘 네 죽고 내 죽고 해보자!”
약혼녀 경옥이 승호에게 단말마적으로 덮쳐들었다. 그녀가 승호를 마구 허비고 뜯으려고 하자 성호가 막아 나섰다.
“왜 이러오? 무슨 일인지 말로 하오.”
한쪽으로 밀려난 경옥이 성호랑 둘러보더니 승호를 손가락질 하면서 쌍욕을 퍼부었다.
“야, 이 개새끼, 아직도 조직능력이 대단하구나. 벌써 셋이나 데리고 왔어? 네깐 놈이 뭔데? 난 30명을 데리고 왔다. 오늘 숱한 처녀들을 해친 그 더러운 XX을 베가지 않는가 봐라!”
승호는 콧방귀를 뀌며 허서기를 바라보았다.
허서기는 경옥을 제지한 후 아니꼬운 눈길로 승호를 쏘아보며 꾸짖었다.
“승호, 넌 진짜 우리 학교를 다 팔아먹는 말썽꾸러기야. 학생당원이자 학생회 체육부장이 아니요? 저 경옥과는 약혼한 사이라면서?”
승호는 억울한듯 고아쳤다.
“아닙니다. 내 언제 쟤하구 약혼했습니까?”
“뭐라니? 약혼도 하지 않고 날 짓밟았니? 처녀 정조 목숨 같다는 거 모르니?”
허서기는 사무상을 꽝꽝 두드리면서 승호를 훈계했다.
“그게 뭔가? 약혼녀 있으면서 숱한 녀대생들을 짓밟다니?!”
“아니, 경옥은 약혼녀 아닙니다.”
“야, 홀딱 나눕겠니?”
“결혼도 하지 않고 무슨 조강지처입니까?”
“야, 썩어질 개새끼야? 내 정조를 돌려달라.”
성호와 범송은 눈길을 마주쳤다. 경옥은 헐치 않은 처녀애였다. 인물도 그만하면 시내 처녀애치고 잘 생겼다고 할 수 있었다. 독살이 오른 외까풀눈을 내놓고 훤칠한 체격에 걀쭉한 우유빛얼굴이라든가 오똑한 콧날이라든가 앵두 입이라던가  표독스러워 그렇지 매력이 엿보였다.
“그만!”
허서기는 또 사무상을 꽝꽝 두드렸다.
“똑똑히 말하오. 경옥과 약혼한 사이오? 아니오?”
“약혼? 저를 과부네 아들이라고 항상 업신여겼는데 약혼 같은 소릴 다. 어우, 씨.”
“내 언제 널 업신여겼니?”
허서기가 경옥한테 눈길을 보냈다.
경옥은 억울하다는듯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공안국 형사과장네 아들을 누가 감히 업신여겨?”
“너네 부모 그래 날 과부네 더러운 새끼라면서 약혼을 거부하지 않았댔니?”
“네 애비 펀히 살아 있는데 네 에미를 과부라 했다니? 말도 안돼.”
승호는 누구도 모르는 사실을 밝혔다.
“허서기, 이건 사실입니다. 저의 어머니는 진짜 과부였습니다. 전 어려서부터 쟤네 에미한테서 ‘애비도 없는 과부네 아들’이라고 놀림을 당하고 무시당했습니다.”
성호랑 범송이랑 놀란 눈길로 눈물까지 핑 돈 승호를 바라보았다.
“음~”
허서기도 승호를 흘끔 건너다보았다.
경옥은 우쭐해 일격을 가했다.
“과부 아들 주제에 남의 정조를 짓밟고 살아남을 거 같애?”
승호는 뭐라고 맞받아치려다가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삼키고 속으로 욕했다.
“항상 과부네 아들이라고 깔보는 네 에미한테 보복하고 싶었어. 어째?”
탕, 탕, 탕!
허서기는 경옥을 쏘아보았다.
“그만해! 이제야 본성이 들어났군.”
그는 녀조카 경옥이 일을 궁지에 몰고가는 것이 미웠다.
둘이 약혼한 사이라면 성호가 경옥의 정조를 짓밟은 것이 정당화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줄도 모르고 떠드는 경옥이 안타까웠다.
“묻는 말에만 대답해라.”
“밸이 나는 거 어쩌랍니까?”
경옥이 머리를 숙이자 허서기는 승호에게 눈길을 돌렸다.
“경옥의 부모가 동의하지 않았으면 약혼한 사이도 아니고 뭐요? 그런데 경옥의 정조를 짓빫은 건 강간죄요, 강간죄! 강간죄는 퇴학은 물론, 감옥에 들어가야 하오.”
승호는 벌떡 일어났다.
“아니, 허서기, 허서긴 아무리 경옥의 큰아버지노라고 그러지 마십시오. 어째 짝시비만 합니까?”
“뭐라오?”
허서기도 사무상을 땅 치며 일어나 승호를 손가락질 하면서 으름장을 놓았다.
“너 그래 경옥을 강간하지 않았니? 깡패한테 경옥이 당한 거야.”
승호도 물러서지 않았다.
“경옥이 나한테 시집오지 못해 몸을 들이댔지. 언제 강간했다고 생사람을 물어먹습니까?”
“야, 이 개새끼야, 오늘도 억울하게 굴겠니? 네놈이 뭐라 했니? ‘우리 둘이 좋아하면 다야. 그걸 다 했는데 부모가 결혼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니?’ 그래서 그렇게 됐지.”
허서기는 울고 불고 하는 경옥을 앉으라 하고 승호를 꾸짖었다.
“문제는 결혼도 하지 않으면서 경옥을 짓밟은 거요. 또 경옥을 다쳐놓고 홍의와 은영과도 련애를 구실로 짓밟은 건 용서할수 없는 형사죄요.  진짜  악질상습강간범이구나. 이대로 놔뒀다간 얼마나 많은 처녀들을 해칠지 모르겠소.”
승호는 물러서지 않았다.
“검정개 돼지 흉을 하지 마십시오. 온 시내에서 깡패두목 허송파라면 모르는 사람이 몇입니까?”
허서기는 옆에 앉은 깡패들이랑 성호랑 둘러보더니 의자에 앉더니  건 가래를 뗐다.
“에헴, 승호와 경옥을 내놓고 몽땅 바깥에 나가오.”
성호랑 깡패랑 서로 쏘아보면서 슬밋슬밋 나갔다.
허서기는 훌쩍거리는 경옥을 가엽게 바라보다가 성호에게 물었다.
“엎질러놓은 물을 어쩌겠소? 새 출발을 하면 어떻소? 그럼 경옥이나 동무나 다 전도를 망치지 않고…”
승호는 자기 귀를 의심할 지경이였다.
그는 한숨을 후~ 내쉬더니 무겁게 입을 열었다.
“어찌 쏟은 물을 되담을 수 있겠습니까? 누가 사랑이 변하지 않는다고 했습니까? 난 경옥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어찌 억지로 결합할 수 있습니까? 정조 말을 하는데 내가 경제적으로 보상해주면 안되겠습니까? 성형외과에 가서 성형수술을 하면 될 건데요. 개방세월에 정조라는 건 봉건전통관념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 하루밤 처녀지 무슨, 처녀면 어떻고 사랑스러워야 처녀지…”
“아니, 이 자식! 그것도 말이라고 악다구니질이냐?”
허서기도 리지를 잃고 말았다.
“돈으로 처녀의 생명 같은 정조를 사고 팔 수 있느냐?!”
그는 사무상을 꽝 치면서 벌떡 일어났다.
“진짜 개새끼구나.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왜 경옥을 짓밟았어? 처녀들의 정조를 초개같이 여기는 네놈이 이제도 얼마나 많은 처녀를 짓밟을지 몰라. 이 세상에 살아남을 거 같아?!”
경옥도 악이 치밀대로 치밀었다.
“야, 이 개새끼야! 오늘 내 정조를 돌려달라.”
승호는 능청을 떨었다.
“서로 좋아서 그랬는데 어쩌란 말이냐?”
경옥은 울며불며 손을 뻗쳐 승호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마구 뜯으며 고함쳤다.
“야, 이 새끼야, 정조는 처녀의 목숨이야. 정조를 돌려주지 않으면 내 손에 죽는다, 죽어!”
승호는 단말마적으로 달려드는 경옥을 슬쩍 밀어냈다.
경옥은 머리로 벽을 마구 쪼으면서 고함쳤다.
“옳다! 오늘 날 죽여라! 죽여! 죽이지 못하면 넌 여기서 죽을줄 알아라! 오늘 정조 대신 네 XX을 빼가지 않는가 봐라!”
경옥은 머리가 터져 뻘건 선지피가 마구 흘러 두볼을 흥건히 적셨다.
허서기는 경옥을 말렸다.
승호는 멍해 서 있다가
“경옥이, 미안하오. 이제 어쩌란 말이오?” 하고 서성거렸다.
그는 이젠 경옥이나 홍희나 은영이나 아무도 버리면 죄인으로 락인될 가능성이 아주 컸다. 그는 괘씸한 경옥 일가에 돌려대고 오줌도 싸고 싶지 않았다. 그런바 하고는 홍희나 은영 가운데 하나 붙잡고 늘어질 판이였다.
경옥이 행악질하자 그것이 신호로 됐다. 바깥에서 깡패들이 문을 박차고 욱 쓸어들어왔다.
“쳐라!”
그자들은 호랑이처럼 성호에게 덮쳐들었다.
성호도 주먹을 쥐고 벽구석에 몸을 딱 붙이고 이리 치고 저리 치면서 몸을 피했다. 바깥에서 성호랑 쳐들어와 맞붙었다.
허서기는 황급히 두 손을 쳐들면서 고함쳤다.
“닥쳐!”
그는 우두머리인 듯한 꺽다리 하이칼라를 손가락질하면서 “그만두지 못하겠느냐?!” 하고 고함쳤다.
그자는 송파의 졸개였다.
허서기는 바깥에 달려나와 고함쳤다.
“경비원들은 뭘 해?! 몽땅 체포해!”
그제야 얻어맞아 쓰러졌던 경비원들이 하나, 둘 일어나 허서기 눈치를 보면서 건성으로 말리는 척했다. 그들도 비수를 들고 날치는 깡패들에게 무모하게 목숨을 잃기 싫었던  것이다.
이때 머리에서 경옥이 “으-악!” 소리치면서 사무실에서 달려나갔다.
“원통해 이 세상에서 못 살겠다!”
그녀는 곧추 층계쪽으로 달려가 마구 고함치며 콩크리트란간에  머리를 탁 쫗고 폭 꼬꾸라졌다.
“경옥아!”
허서기와 송호가 달려가 얼굴이 피투성이 된 경옥을 껴안았다. 경옥은 머리가 터져 뻘건 피를 쿨쿨 흘리면서 인사불성이 되였다. 경옥은 백지장같이 창백해진 얼굴에 피를 줄줄 흘리면서 까무러진 채 인사불성이 됐다. 맹강녀가 만리장성에 가서 죽은 남편을 그리며 통곡친들 어찌 저보다 더 처참할가.
“어서 병원에 업어가라!”
하이칼라는 보기 구차해 경옥을 둘쳐 업고 달려갔다.
이때 호각소리 요란하게 울리더니 경찰들이 들이닥쳤다.
“몽땅 체포하라!”
승호의 아버지 리철갑 과장이 팔을 홱 휘둘렀다. 숱한 경찰들이 깡패들과 범송이랑 종수랑 몽땅 나포했다. 경찰들은 깡패들에게 쇠고랑이를 채워 끌고 갔다.
어데서 슬쩍 기여나왔는지 송호가 피투성이 된 경옥을 받아업고 달렸다.
허철만 서기는 울상이 돼 발을 동동 굴렀다.
“이게 뭐요?”
리철갑 과장은 허철만 서기를 흘겨보았다.
최성균 교수는 뒤늦게야 소문을 듣고 달려왔다.
“야- 졸업식을 앞두고 이 일을 어쩌는가?”
그는 허서기를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 한참이나 뭐라고 쑤군거렸다. 허서기는  그제야 제 정신이 펄쩍 들었는지 리철갑 과장의 잔등을 툭툭 치며 한쪽 구석으로 데리고 갔다. 그들 둘은 한참이나 뭐라고 쑤군거리더니 갈라졌다.
을씨년스런 하늘에는 먹장구름이 몰려왔다. 먹장구름 속에서 몇가닥의 불뱀이 대지에로 번쩍 내리꽂히며 시뻘건 혀로 채찍질하였다. 드디여 우뢰가 하늘땅을 진동했다. 소낙비가 억수로 쏟아져 어지러운 발자욱을 지워버렸다.




                                    17. 베일에 가려진 진상
이른 아침에 자오록한 안개가 삼라만상을 뒤덮으면서 몽롱한 세상을 만들고 있었다. 뜨거운 아침해가 서서히 동산에 솟아오르자 자오록하던 안개층이 서서히 엷어지면서 드문드문 푸른 하늘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삼삼오오 대학교  교정과 기숙사에 가는 대학생들도 베일 속에서 서서히 자기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베일 속에 가려졌던 희비극의 진상도 서서히 륜곽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온 대학교에서 특급뉴스보다도 현념이 더  커갔다.
며칠 전 경옥은 층계란간에 부딪쳐 머리가죽이 터지고 뇌진탕까지 좀 왔다. 다행히 아직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했다. 염라대왕은 어린 그녀가 너무나도 큰 상처를 입었다고 불쌍해 차마 데려가지 못한 것 같았다.
기적이 일어났다. 경옥이 서서히 흐리마리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머리에 붕대를 감은 채 병상에 누워서도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승호를 과부네 아들이라고 욕할 건 뭔가?)
그러나 인차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아니야, 부모가 잘했어. 그런 바람둥이를 거절하길 잘했지.)
그녀는 승호한테 릉욕당하고 짓밟히고 상처입은 것이 원망스러웠다.  
원래 승호와 경옥은 고중 동창생이였다. 승호는 체육위원, 경옥은 문예위원, 둘다  춤도 잘 추고 운동도 잘해 학교에서 인기인물이였다. 둘이 손도 척척 잘 맞춰 각종 활동도 본때나게 조직해 사생들의 호평을 받았다.
훤칠한 경옥은키에 물새 다리로 살같이 달려 교내 륙상대회에서 항상 일등을 따내군 했다. 그녀는 학교 문예공연대회 때마다 무대에 올라 걀죽한 우유빛얼굴에 나리꽃웃음을 꽃피우면서 학이 나래치듯 너울너울 춤 추군 했다. 승호는 그때 벌써  경옥한테 홀딱 반했다. 가슴에서는 저도 몰래 첫사랑의 씨앗이 움트기 시작했다.
옥의 티라고나 할가. 경옥은 운동이나 춤은 잘 췄지만 공는 수술하게 했다. 그러나 그 흠집은 경옥의 아름다움을 가릴 수는 없었고 그녀에 대한 승호의 사랑의 감정을 저지할 수는 없었다.
고중을 졸업하고 승호는 대학에 입학하게 됐지만 경옥은 그만 락방했다. 그들 둘의 운명은 갈림길에 들어섰다.
그러나 승호는 더 열렬하게, 아니, 더욱 무섭게  경옥한테 덤벼들었다.
경옥은 승호가 열렬해지면 열렬해질수록 미심해나고 불안해났다.
시원한 가을바람이 선들선들 불어오는 어느 하루 밤, 승호는 경옥을 불러 조용한 강가 버드나무숲 속에 갔다.
밝은 달빛은 실실이 내리드리운 버드나무 가지에 애처롭게 매달린 잎사귀들을 비추다가 아예 흐르는 강물에 뛰여들어 자맥질했다. 찬 빛을 띤 강물은 부서지는 은잔디를 싣고 촐랑촐랑 유유히 흘러갔다.
평소에 활발하던 경옥은 전에 없이 쓸쓸히 무거운 침묵을 지켰다.
"왜 아무 말도 없어."
그제야 경옥은 돌아서면서 겨우 승호를 응시했다.
"대학생하고 이젠 말하기도 어렵구나."
"무슨 소릴 해? 너도 열심히 복습해 대학에 입학해야지."
그러나 경옥은 김 빠진 공처럼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한숨을 호~ 내쉬였다.
"될 것 같잖아. 오르지 못할 나무는 바라보지도 말라고."
승호가 손을 잡으려고 하자 경옥은 홱 빼갔다.
"이러지 말라. 날 잊어라. 넌 대학생이고 난 고중생이야. 우린 한 길로 갈 수  없을 거 같아."
"아니야."
승호는 경옥을 와락 끌어안았다.
"난 이 세상에서 너 밖에 사랑하지 않아."
"픽."
경옥은 코방귀를 뀌더니 도리머리를 흔들면서 몸을 빼려고 했다.
"믿지 못하겠니?"
승호는 경옥을 더 꽉 껴안았다. 경옥은 단말마적으로 몸을 빼려고 몸부림쳤다.
"왜 이래? 넌 너무 역어서 믿기 어렵다."
승호는 경옥을 놓아주면서 정색했다.
"날 믿어다오. 사랑에 대해선 진지해. 넌 영원히 잊지 못할 첫사랑이야."
웬 일일가?
그 말은 마디마다 경옥의 가슴을 파고 들지 않겠는가.
경옥은 한숨을 호~ 내쉬였다. 그녀도 승호를 남자 같다고 여겼고 마음 속으로  좋아하고 사랑했다. 그것은 소녀의 티없이 맑고 깨끗한 첫사랑이였다. 룡암처럼 부글부글 피끓는 청춘남녀, 아니, 처녀총각의 첫사랑은 바야흐로 사랑폭포로 요란하게 쏟아질 것만 같았다. 뜨거운 사랑은 룡암처럼 골짜기와 들이라도 불태울 수 있었다.
경옥은 온몸이 찡해나면서 전률하다못해 두다리마저 나른해져 땅바닥에 물앉고 말았다. 승호는 경옥을 한품에 꼭 껴안고 열기 확확 풍기는 사랑을 고백했다.
"경옥아, 피 끓는 청춘을 다 바쳐 사랑한다. 목숨 다 바쳐 사랑해. 바다가 마르고 장백산이 무너져도 사랑할 거야. 칼산에 오르고 불바다에 뛰여들라고 해도 영원히 사랑할 거야. 혹시 마음이 변한다면 목을 쳐도 돼. 목숨으로 널 사랑한다는 걸 증명하겠어."
경옥은 승호의 팔을 천천히 풀더니 일어났다.
"아직도 믿지 못하겠니?"
경옥은 뜨거운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사랑해.”
그녀는 승호의 품에 얼굴을 파묻고 어깨를 들먹였다.
승호는 두 손으로 경옥의 얼굴을 받들더니 열기 오른 입술로 키스벼락을 뻑뻑 안겼다…
달님도 부끄러운듯이 얇은 구름송이를 들어 얼굴을 가렸다. 버드나무잎들도 장작더미에 붙은 불더미처럼 활활 타오르는 처녀총각의 사랑에 도취돼 선들선들한 가을바람에 너울너울 춤추며 설레였다…
그후부터 승호는 쩍하면 경옥을 불러내 뒤산 소나무 밭에서, 빈 집에서경 사랑의 서정서사시를 엮었다.
어느 하루, 승호는 집 문을 땅땅 걸고 그녀를 침대에 쓸어뜨리고 소중한 최후방선을 무너뜨리려고 했다.
"이러지 말라. 아직 사돈보기도 하지 않았는데 이게 뭐야? 더구나 어머니가 널 반대하는 눈친데…"
그때 승호는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데 뭐가 대수냐?" 하고 말하면서도 경옥의 몸에서 손을 스르르 뗐다.
순간, 승호의 눈 앞에는경옥의 어머니 표독스런 눈길이 떠올랐다.
경옥의 어머니는 백화상점 총경리 안수련이였다. 처음 경옥의 집으로 갔을 때였다.
그녀는 승호의 아래우를 훑어보더니 훤칠한 체격에 남자같이 생겼다고 그러는지 함박꽃웃음을 지었다.
“부모들은 뭘 하오?”
“아버지는 공안국 과장입니다.”
“그래? 가정배경 좋구먼. 아버지 명함은?”
“리철갑이라고 부릅니다.”
“뭐? 리철갑?”
안수련 총경리 얼굴에 대뜸 어두운 그늘이 퍼졌다.
“어머니는 뭘 하오?”
승호는 머리를 숙이면서 쥐구멍으로 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했다.
“병원 간호장입니다.”
“혹시 박벽화 아니오?”
“예. 혹시 아십니까?”
“알다뿐이겠소?”
순간 경옥의 어머니 표정이 대뜸 흐려졌다.
갑자기 팽팽해진 집 안 분위기에 보이지 않는 번개가 치고 우뢰가 지동쳤다.
“경옥아, 당장 저 애하고…, 아이고, 이 일을 어쩌니?”
안수련은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채하지 못했다. 그녀는 머리를 싸쥐고 벽을 짚더니 구들에 스르르 물앉았다.
“아니, 어머니, 왜 이래요?”
경옥은 어머니를 껴안아 일으켰다.
수련은 승호를 되돌아보지도 않고 손삿대질을 했다.
“그만둬라. 사람을 친해도 부모가 어떤 사람인가 알고 친해라. 절대 안된다, 안 돼!”
 “어머니, 왜? 승호 아버지 공안국 과장이지. 어머닌 간호장이지. 좀 좋아서?”
“넌 몰라. 저 승호 아버진 친아버지 아니야.”
“뭐라고?”
승호도 충격이였다.
“어머니는?”
“쟤 어머니는… 아이고, 이 일을 어쩌니?”
(그만두겠으면 그만두라지. 흥!)
승호는 코방귀를 뀌면서 훌쩍 일어나 나와버렸다.
뒤에서 경옥이 애원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왜 이래? 우린 벌써 헤여지지 못할 관계인데. 으흐흑.”
“뭐라고? 절대 안돼! 이 일을 어쩌니? 아이고~”
승호는 문 밖에서 엿들었다.
“저 애 엄마는 우리 시내에서 소문난 바람둥이야. 아이고, 이 일을 어쩌니? 뭐나 유전이 있어. 바람둥이 난 아들은 꼭 바람기가 있는 법이야. 고생문이 터지자고 이래? 절대 안돼. 쟤는 타고난 바람둥이야!”
승호는 성이 꼭뒤까지 치밀어 더는 참을 수 없었다. 그는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 경옥의 어머니를 손가락질하면서 고함쳤다.
“뭐라고 지껄이는 겁니까? 딸을 주기 싫으면 싫었지. 엄마를 모욕하지 말란 말입니다! 이제 더 모욕하면 가만놔두지 않겠습니다!”
수련은 승호를 표독스런 눈길로 쏘아보면서 욕했다.
“봐라! 뛸데 있어? 더러운 피를 물려받은 놈새끼, 수양 없는 걸 봐라! 언감  누구한테?”
경옥이 중간에서 울면서 발까지 탕탕 굴러대며 말렸다.
“이러지 마십시오. 어머니-!”
그는 승호의 손을 잡아 바깥으로 끌고 나갔다.
“얘, 이러지 말라. 천천히 해결하자. 이러면 우리 몽땅 끝장나.”
승호는 간신히 참으면서 경옥에게 끌려 담장 바깥으로 나갔다.
“야~ 왜?”
승호는 주먹으로 담장을 쾅쾅 쳤다. 벽돌들이 마구 튕겨 마당에 날아가 떨어졌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승호는 정이 뚝 떨어졌다. 대학에 입학해 숱한 이쁜 녀대생들을 본 후에는 점점 더 멀어졌다. 숱한 예쁜 녀대생들이 줄지어 따라다니는 판에 고중생인 경옥한테 정이 가지 않았다.
(헤이구, 어디 처녀 없어서 욕 먹으면서 계속 련애해?)
그러나 승호는 생각을 좀 고쳤다. 칭칭 감겨드는 경옥의 우유빛 살결과 탄력있는 몸매를 놔주고 싶지 않았다. 더욱이 경옥의 어머니가 무슨 “더러운 바람둥이  피를 물려받았다”는지, 자기 어머니를 “시내에서 소문난 바람둥이”라는지 모욕한 일이 속에 내려가지 않았다.
(옳다, 네년의 외동딸도 더러운 바람둥이로 만들어줄게.)
승호는 자기 모자간을 모독한 경옥의 어머니한테 복수하려고 이를 쁙쁙 갈았다.
어느 날 승호는 이성에 대한 유혹보다도 보복심과 야성이 반죽된 복잡한 심리로 끝내 그녀의 집에서 경옥을 침대에 쓰러눕혔다.  
경옥은 뜨거운 승호의 손을 딱 잡아 쥐고 똑바로 쳐다보았다.
"한가지만 묻자."
"백가지라도 물어라. 다 대답해주마."
승호는 경옥의 몸에서 손짓을 멈추었다.
경옥은 일어나더니 승호의 두 눈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이제부터 네 건 몽땅 내 혼자 거야! 알았지?"
"그래."
경옥은 끌어안으려는 승호의 가슴을 밀어냈다.
"배신하는 날엔 이걸 칼로 썩뚝 베갈줄 알아라!"
그 섬찍한 말에 승호는 질겁해 그만 뒤로 벌러덩 물앉았다.
"얘, 사랑하는 사람끼리 왜 면도칼날처럼 선뜩선뜩한 말을 해?"
경옥은 의연히 백지장 같은 하얀 얼굴에 독기어린 표정을 짓더니 몸서리를 칠 말을 퍼부었다.
"약속해! 아녀자라고 업신여기지 않겠다고. 배신하지 않겠다고.”
승호는 경옥의 백옥 같은 몸을 가지기 급급해 술술 대답했다.
"하늘에 맹세하지. 절대 배신하지 않을게.”
“대답 너무 쉽게 하지 말라.”
경옥은 정색해 승호를 마주 바라보면서 두 손으로 량귀를 꽉 움켜쥐며 물었다.
“이후에 중학생이라고 업신여겨선 절대 안돼. 알았지?”
승호는 경옥의 탄탄한 허리를 꼭 끌어안고 정중하게 입을 열었다.
“땅을 밟고 하늘 떠인 사내 승호, 정중히 맹세한다. 허경옥과의 사랑을 위해 추호의 배신이란 없다. 만약 배신하는 날엔 천벌을 받아 마땅하다. 하늘땅이 증명할 거야!"
경옥은 외씨같이 걀죽한 얼굴에 뜨거운 감동의 눈물을 끊어진 구슬처럼 주르르 흘렸다.
“혈서라도 써라니?”
"필요없어. 난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사랑해, 승호. 모든 걸 다 줄게."
처녀총각의 첫사랑은 휘발유를 친 장작더미에 붙은 불길처럼 세차게 활활 타올랐다. 요란하게 연기가 뭉게뭉게 피여올랐다. 뻘겋게 탁탁 튕기며 모든 것을 삼켜버리면서 활활 타올랐다.
승호의 가슴에서 기승을 부리는 복수의 불길이 이글거리면서 열기오른 몸을 기승스레 불태웠다…
경옥은 사흘 만에야 정신을 차리고 병상에서 간신히 깨여났다. 그녀는 흐리멍텅한 머리 속에 승호에게 처음 당하던 정경이 희미하게 떠올라 말라 터진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경옥아, 정신이 드니? 아이유, 이게 무슨 일이냐? 흑흑흑.”
그녀의 눈에는 눈물을 줄줄 흐리는 어머니가 희미하게 떠올랐다.
“어머니!”
그녀는 일어나려고 했다. 붕대를 팅팅 감은 천근무게나 되는 머리가 뻐개지는 것 같아 도저히 일어날 수 없었다.
수련은 황급히 불쌍한 외동딸을 제자리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병실이 어찌나 더운지 선풍기를 켜놓아도 경옥의 상처투성이 코등에 식은 땀이 송골송골 내배였다.
수련은 옆에서 땀을 닦아준다, 부채질을 해준다 하면서 바삐 맴돌았다.
경옥은 서서히 정신을 차리자 악귀 같은 승호가 떠올랐다. 사랑한다고 맹세하던 승호가 배신할줄은 꿈에도 몰랐다.
경옥은 입귀를 옥물더니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개자식, 내 손에 죽을줄 알아라.)
사랑이 원한으로, 련인은 원쑤로 돼버렸다. 그녀는 사촌동생 송호에게서 승호가 녀대생들과 좋아한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승호 하늘 땅에 맹세했는데. 설마?”
“누나, 진짜라니까. 은영이나 홍희라는 녀대생을 번갈아 데리고 선녀음식점에 드나드는 걸 보았어.”
“녀동창생이더냐?”
“그래. 교실에 들어가는 거 보니까.”
심한 충격을 받은 경옥은 이를 옥물었다.
그녀는 승호를 찾아가 물어볼 수도 없고 어떻게 확인할 수 도 없었다. 더구나 그렇게 가슴아픈 일을 아예 자기 눈으로 확인하고 싶지도 않았다.
(진짜 그런 일 있으면 어떻게 살아?)
“개자식, 진짜 딴 녀성 품는 날엔 내 죽고 네 죽을줄 알아!”
그녀는 승호를 몰래 감시하라고 부탁해놓고서도 행여나 송호 말이 거짓말로 됐으면 하고 하느님께 빌고 또 빌었다.
반년도 안돼 승호가 한 학급의 홍희를 좋아한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났다. 승호가 야밤에 홍희와 학교 식당 복도에서 사고를 쳤던 것이다.
경옥은 학교 기률검사위원회 사무실에 가서 큰아버지 허철만 서기를 만나  알아보았다. 진짜 사실로 확인됐다.
하늘땅이 핑그르르 돌아갔다.
순간 경옥은 허망 엉덩방아를 찌으면서 땅바닥에 쓰러졌다.
“경옥아, 경옥아!”
허서기는 녀조카를 껴안아 일으켜 사무실 소파에 앉혀 놓으면서 위안했다.
“얘, 그까짓 품질이 나쁜 놈을 깨끗이 잊어버려라!”
“어떻게 잊어? 우린 그런 사이 아닌데.”
허서기도 놀랐다.
“뭐라고?”
경옥은 차마 입으로 번지지 못하고 소파를 치면서 대성통곡쳤다.
“왜 부모 동의도 없이, 아이유, 이걸 어쩌니?”
허철만 서기는 경옥을 가엽게 바라보면서 속궁리했다. 그는 우선 승호를 불러 학생기률로 압력을 가해 경옥과 관계를 회복하게 하도록 설복시키려고 했다.
그런데 그날 격분한 경옥이 송호랑 시내 깡패들을 데리고 온데다 사무실에서 승호를 격노시켜 일을 그르치고 말았다. 그는 승호가 변심해서 홍희와 은영을 사랑하지 결코 경옥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승호와 담화하는 가운데서 경옥과 량성관계를 발생한 것은 다만 경옥의 어머니를 보복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는 승호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괘씸한 놈, 퇴학시키고 감옥에 처넣지 않는가 봐라!)
허철만 서기는 복수를 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현실에 주저앉고 말았다. 승호의 뒤에 리철갑 과장의 살기등등한 얼굴이 떠올랐다. 송파랑 송호랑 어려서부터 공부하지 않고 무리싸움을 하고 강도짓을 해서 쇠살창신세를 져야 했다. 그러나 번마다 허철만이 나서서 리철갑 과장에게 례물을 먹이고 쇠살창에서 꺼내군했다. 리과장의 아들 승호가 학교에서 자주 남녀관계사고를 쳤다. 때문에 엎음갚음으로 송호 형제를 간신히 지키고 있는 형편이였다.
“후~”
허서기는 이번 일도 엎음갚음으로 끝내고 싶었다. 하여 리철갑 과장과 쑤군거려 덮어두기로 했다.
그러나 경옥을 짓밟은 승호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어 속을 끙끙 앓았다.
(어디 두고보자! 수캐 같은 놈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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