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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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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22)
2018년 09월 07일 13시 12분  조회:1093  추천:0  작성자: 김장혁





      42지하주차장 특대살인강탈사건의 내막
백화청사 지하주차장 특대살인강탈사건을 저지른 흉수들을 나포했다는 희소식은  재빨리  YB시공안국에 전달됐다.
강운룡 과장이 직접 창남과 수길을 데리고 찌프를 타고 수천리 떨어진 초원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류치실에서 강과장을 본 조흥수는 머리를 푹 떨어뜨렸다.
“나쁜 놈!”
조흥수는 천천히 머리를 들었다.
“강과장, 담배를 한대 줍소.”
“탄백하고 발편잠을 자게나.”
조흥수는 쇠고랑이를 찬 손으로 권연을 받아 입에 물고 수길이 켜댄 라이터 불을 붙여 물고 길게 들이빨았다.
그는 담배연기를 후- 내뿜더니 쥐구멍에 들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고려할 시간을 좀 줍소.”
“뭐라고? 증거가 다 있는데도 탄백하지 않겠는가?”
조흥수는 머리를 푹 숙이고 입에 빗장을 지른 채 담배만 풀썩풀썩 피웠다.
강과장은 류치실에서 나와 몽골족 대대장과 토론한 후 조흥수와 조길수 형제를 YB시로 압송하기로 했다.
몽골족대대장은 강운룡 과장한테 성호를 혀끝이 다슬게 칭찬했다.
“성호가 매려관에 잠복했기에 화살 하나로 독수리 두마리를 잡게 됐습니다. 성호는 적수공권으로 총을 쏘는 흉수와 용감히 싸운 조선족청년영웅입니다. 성호야 말로 우리 초원에서 날아예는 매입니다. 매는 우리 몽골족들의 영웅을 상징합니다.”
그는 사건경과를 쭉 얘기하면서 성호의 영웅적사적을 쭉 이야기했다.
강과장은 몽골족 수사대대장과 경찰들의 손을 일일이 굳게 잡고나서 조흥수와 조길수를 찌프에 압송해 가지고 먼 길을 떠났다.
이튿날, 강운룡 과장은 반정탐능력이 강한 조흥수를 놔두고 먼저 그의 동생 조길 수를 돌파구로 삼고 심문했다.
심문실에 들어선 조길수는 강운룡 과장을 흘끔 도적질해보았다.
강운룡 과장은 날카로운 눈길로 조길수를 쏘아보면서 기선제압을 했다.
조길수는 머리를 수깃하며 눈을 깔더니 맥없이 걸상에 풀썩 물앉았다.
“빨리 죽이오. 사람을 시달리게 하지 말고.”
“죽을 죄를 진 걸 아는가?!”
조길수는 육중한 몸뚱아리를 들썩해 바로앉으면서 두덜거렸다.
“죽이라지 않소? 죽으면 다지.”
꽝!
강운룡 과장은 77식권총을 사무상에 꽝 내놓았다.
“이건 누구 권총인가?!”
“모르오.”
“네가 쓴 권총인데도 몰라.”
“죽어도 모르오. 형이 어디서 얻어온 건지.”
조길수는 모르쇠를 댔다.
강운룡 과장은 수길과 눈길을 마주쳤다.
“우린 조흥수를 심문해서 모든 증거를 확보했어. 백화청사 지하주차장 특대살인강탈 사건 범죄과정을 로실하게 탄백해라.”
“다 안다면서 묻소?”
조길수는 천정을 멍하니 바라보더니 두덜거렸다.
“바보. 파출소 소장을 했다는게 몇마디 안팎에 벌써 다 불어버렸어?”
조길수는 형이 탄백했다는 말에 정신방선이 와그르르 무너졌다.
“극상해 죽겠지 뭐.”
“죽기 전에 탄백해라.”
조길수는 코방귀를 뀌면서 입에 빗장을 꽉 지르더니 눈마저 딱 감아버렸다.
강과장은 정책교육을 해서 조길수를 내보냈다.
뒤이어 끌려들어온 조흥수는 더 완고했다. 반정탐능력이 있는 그는 입을 닫아매고  한마디도 탄백하지 않았다. 고의적으로 강운룡 과장 등을 애를 먹이면서 겨뤄보려는 심산 같았다.
강운룡 과장은 사무실에서 뒤짐을 지고 왔다갔다 거닐면서 궁리하다가 주춤 멈춰섰다.
몇해 전에 보험공사 보위과 최영일 과장이 77식권총을 강탈당한 일이 피뜩 떠올랐다.
“가능하게 그 권총이 아닐가? 조흥수는 최과장과 잘 알지 않는가?”
강과장은 먼저 77식권총을 돌파구로 삼으려고 최영일 과장을 불러왔다.
당시 최영일 과장은 마작을 놀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1층 현관에서 웬 강도놈한테 둔기에 맞아 쓰러졌고 77식권총을 강탈당했다. 최과장은 다행히 둔기에 슬 맞았기에 몇달 동안 입원치료를 받고서야 간신히 목숨만은 구했다. 그러나 뇌진탕후유증으로 해 출근도 하지 못하고 내부퇴직해 치료받고 있었다.
최영일 과장은 강운룡 과장 사무상의 77식권총을 들고 번호를 찬찬히 살펴보더니 반색했다.
“맞소. 이건 내 권총이요.”
강과장은 수길을 보고 77식권총을 무기고에 가져다 보관하게 하고나서 최과장을 돌아보고  “77식권총을 분실한 날에 조흥수를 만난 적이 있소?” 하고 물었다.
최 과장은 한참 사색을 더듬더니 무릎을 탁 쳤다.
“그날 조흥수와 함께 한 친구네 집에 가서 마작을 놀았소.”
“조흥수가 손을 쓸 틈이 없었는데.”
강과장은 뒤짐을 지고 사무실을 왔다갔다 거닐었다.
그는 주춤 걸음을 멈추더니 최과장한테 물었다.
“혹시 그날 조흥수한테서 의심스러운게 없었소?”
최영일 과장은 권연을 꺼내 붙여물고 한참 사색을 더듬더니 머리를 천천히 들었다.
“그날 마작을 놀 때오. 난 옆구리에 찬 권총이 불편해 끌러서 앞에 당겨 돌려놓고 놀았소. 그런데 조흥수가 이상한 눈길로 내 권총을 자꾸 여겨보더란 말이요.”
“이상한게 더 없소?”
한참 생각에 잠겼던 최 과장은 강과장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그날 저녁에 마작을 한창 놀다가 조흥수가 갑자기 배 아프다면서 먼저 집으로 가겠다고 했소. 다른 때 같으면 마작을 놀고 우리와 함께 한잔 마시고 갔겠는데 말이요. 그날엔 어쩐지 식은땀을 줄줄 흘리면서 먼저 가버렸소.”
“음. 문제 있소.”
강운룡 과장은 최과장을 돌려보낸 후 천일을 보고 병원에 가서 춘란의 병세가 어떻게 됐는가 알아보게 했다.
(관건은 춘란이 정신을 차려야겠는데…)
이튿날 강과장은 조길수를 재차 심문했다.
심문실 철문이 드르릉 열리자 조길수가 쇠고랑이를 찬 채 머리를 푹 숙이고 들어섰다.
강과장은 매서운 눈길로 조길수를 한참 쏘아보다가 콩크리트바닥에 쇠덩이를 굴리는 듯한 목소리로 심문했다.
“조길수, 백화청사 피해자 중에 한 사람이 살았어! 탄백해!”
“썰매떼기 작작 하오. 우리 언제 뭐 살인했소?”
“살인범은 어떻게 된다는 걸 알지?”
“야~ 이거 미치겠어. 내 강탈했소?”
“아직도 생떼질을 쓰겠는가? 그래 피해자를 데려다 대질시키지 못할 것 같은가?”
“누가 겁나?”
“조흥수는 네가 보위간사를 쳐죽였다고 했어.”
“뭐라고?”
조길수는 흘끔 강과장을 쳐다보더니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형은 절대 날 물어먹을 수 없어.)
강과장은 조길수의 허점을 찔러 피가 흐르게 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흥! 그래, 내 죽였어. 형과는 관계 없어! 됐지?”
조길수가 뜻밖에 달리 나올줄이야.
“바보, 총살맞을줄 알어.”
조길수는 정신방선이 와그르르 무너졌다. 이젠 진짜 미친 놈처럼 정신이 오락가락했다.
강과장은 창남과 눈길을 맞추고나서 심문했다.
“네가 보위간사를 둔기로 쳐서 죽였지? 출납은 네 형이 쳐 죽이고."
“내 보위간사를 단매에 쳐죽였소. 으하하하, 단매에 작살을 냈지.”
조길수는 미친듯이 희스테리가 발작했다. 그는 의아한 눈길로 강과장을 쳐다보았다.
“보위간사가 살았다고? 단매에 쳐눕혔는데 어떻게 살 수 있어?”
그는 믿을 수 없다는듯이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네 형은 고혈압에 심장병까지 있어 팔에 힘이 없어.”
“아무리 힘이 없으니 고까짓 계집애를 단매에 쳐죽이지 못해. 참, 후환을 남겼구만.”
“어떤가? 사건경과를 말하고 며칠 푹 발편잠을 자란 말이오.”
“다 털어놓겠습니다..”
조길수는 권연을 한대 달라고 해 풀썩풀썩 피우더니 죄행을 낱낱이 탄백하기 시작했다.
조흥수는 진짜 죽음의 궁지에 몰려 공포에 떨었다.
오후에 강운룡 과장은 조흥수를 심문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조흥수는 생떼를 쓰면서 죄행을 승인하지 않고 계속 뻗치려고 악을 딱딱 썼다.
“조흥수, 죄행을 탄백하라.”
“픽, 생사람을 잡지 맙소. 당당한 보위과장을 이게 뭡니까? 여지껏 백화상점을 보호한 걸 모르고. 흥! 범죄자로 몰아?”
퉁퉁하던 조흥수의 얼굴은 개한테 핥킨 것처럼 수척해졌고 검은 그림자로 얼룩졌다.
강과장은 단도직입해 심문했다.
“흥수, 길수가 다 탄백했네. 아직도 생떼를 쓸텐가?”
조흥수는 피씩 웃으면서 허리를 쭉 폈다.
“멋지게 추측하는구만. 생사람을 작작 잡소.”
“왜 내몽골로 도망쳤는가?”
“누가 도망쳤는가? 생사람을 잡아도 한두가지 안니구만. 쳇!”
조흥수는 억울하다는듯이 코방귀를 뀌고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보위 과장도 사직했지. 음식점도 잘 되지 않지. 어떻게 살겠소? 소장사나 할가고 내몽골에 간게지.”
“자기 죄가 두려워 도망친 거야. 그대로 도망치면 공안국의 의심을 받을가봐 보위 과장을 사직했지. 그때 네 집에 77식권총이 있었으니까. 보위과장 권총은 필요없다고 바쳤어. 위장술에 지나지 않았어.”
“옛말이면 듣기나 좋지. 77식권총은 내 동생이 얻어온게요.”
강과장은 비웃었다.
“서로 물고 뜯는 건 심통해. 동생은 형이 얻어온 거라 하고 넌 동생이 얻어온게라고. 흥!”
그 말에 기가 꺾였던지 조흥수는 머리를 좀 떨어뜨렸다. 아마 동생이 확실히 범죄과정을 탄백했다고 직감한 것 같았다.
“어떤가? 자네도 파출소 소장을 했으니까. 이쯤 하면 탄백할 때 됐다는 걸 알 수 있지 않는가? 괜히 우리까지 피곤하게 굴지 말고. 툭 털어놓게.”
“권총은 어데서 난겐지 진짜 모르오.”
“우리 말해야 알겠나?”
강운룡 과장은 창남을 보고 무기고에 가서 77식권총을 가져오게 했다. 그는 77식 권총을 들고 흥수를 쏘아보았다.
조흥수가 머리를 푹 떨어뜨렸다.
강과장은 콩크리트바닥에 쇠공을 굴리는 듯한 목소리로 간단히 물었다.
“자넨 그날 마작을 놀면서 왜 자꾸 보험공사 최과장의 권총을 흘끔흘끔 건너다 보았는가?”
“…”
“자넨 그날 왜 불시에 배 아프다면서 먼저 마작판을 떠났는가?”
“확실히 배 아파 더 놀지 못했소.”
“거짓말!”
흥수는 억울한듯이 눈까지 흘겼다.
“자넨 숱한 단서를 남겼네.”
강과장은 미리 준비한 그날 범죄자가 사건현장에 남긴 피묻은 도끼를 쳐들어보였다.
“이건 자네가 친구네 집 부엌에서 장작을 패는 도끼를 쥐고 사건현장에 갔던  도끼야. 그때 우린 자네가 버리고 간 도끼에서 지문을 채취했었네. 그러나 당시 우린 상해총기강탈범죄자가 보위 과장인 자넬줄은 몰랐네. 그래서 자넨 수사망에서 잠시 빠져나갔지. 그러나 이젠 도망칠 수 없게 됐네. 이제라도 자네 지문을 채취해 대조해보면 끝이 아니겠는가!”
강과장은 창남과 수길을 보고 조흥수의 지문을 채취하게 했다. 그때까지도 조흥수는 요행을 바라고 코방귀를 뀌면서 순순히 지문을 채취하게 했다.
그러나 몇분 지나지 않아 도끼자루의 지문과 조흥수의 지문이 일치한 걸 환등에서 본 후 조흥수는 머리를 툭 떨어뜨렸다.
“아직도 떼를 쓰겠는가? 최 과장네 집을 아는 사람은 자네 밖에 없어. 다른 사람들은 최 과장네 집이 어데 있는 것도 모르는데 어떻게 최 과장네 집 현관에 미리 잠복해 기다리다가 범행할 수 있었겠는가? ”
아무리 반정탐능력이 있는 조흥수도 철 같은 증거와 인증 앞에서 승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흥수는 머리를 툭 떨어뜨리며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야,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됐을가?”
정신방선이 와그르르 무너지는 순간, 그는 쇠고랑이를 찬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고 대성통곡쳤다.
한참 후 그는 77식권총을 강탈한 죄부터 탄백했다.
“그날 나는 마작을 놀면서 최과장 권총을 뺏자고 궁리했소. 집의 식당도 잘 안돼 녀편네 바가지를 긁지. 아가씨들도 돈을 달라고 징징거리지. 권총을 빼앗아뒀다가 후에 강탈할 때 쓰자고 했지. 내 권총으로 강탈하면 며칠 못 가 들통날 것 같아 그런 궁리를 했소. 난 배 아프다고 핑게 대고 마작판에서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났소.  친구네 부엌에서 도끼를 주어들고 먼저 최과장네 집에 가서 현관 문 뒤에 숨어 있었지. 한참 후 최과장이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도끼등으로 머리를 쳤지. 난 쓰러진  최과장 옆구리에서 권총을 빼내가지고 도망쳤소.”
강과장은 조흥수를 쏘아보면서 한마디 했다.
“자넨 범행은 아주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저질렀네. 그러나 백화청사 지하주차장에 숱한 단서를 남겼네. 어서 탄백하라.”
조흥수는 바보처럼 강과장을 흘끔 쳐다보았다. 강과장의 말마디마다 비수로 돼 그의 심장을 찔렀다.
“첫째, 자넨 동생을 시켜 지하주차장에 미리 숨어 있게 했고 살인강탈한 후 차를 몰고 도망치게 했네. 그러나 주차장 출입구 몰카와 당직원한테 체모특징이 드러났네.”
“?!”
“둘째, 자넨 백화상점 안으로 해서 지하주차장에 들어가면 누구도 자넨줄 모르리라 오산했네.”
강과장은 도리머리질하는 흥수를 쏘아보며 계속했다.
“셋째, 자넨 춘란이 머리를 권총박죽으로 쳤네. 춘란의 머리에 난 옴폭한 상처는 총박죽으로 친 좋은 단서야.”
“옛말이면 듣기나 좋지.”
“어떤가? 이만하면 증거가 충분하지 않는가? 탄백하게나.”
“쳇, 쉽게 밥을 벌어먹자고 드는구만. 난 아무 죄도 없소.”
강과장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오해했구만, 자넬 사내대장분가 했더니. 알고보니 비굴하기 짝이 없구만. 아직도 살기를 바라는가? 허허허.”
“그따위로 죽음에 내몰지 말게.”
“좋아. 마지막 증거를 내놓지. 자넨 심장병과 고혈압이 있어 팔에 힘이 없어. 때문에 권총박죽으로 춘란을 단매에 쳐죽이지 못했어…”
조흥수는 쪽걸상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니, 그래 춘란이 살았단 말인가?!”
“놀랐지?”
그제야 빈틈을 보인 것을 알고 조흥수는 쪽걸상에 슬쩍 되앉아버렸다. 그러나 때는 늦었다. 그는 속으로 강과장의 허를 찌르는 수작에 놀아났다고 후회했다.
“쭉 말하라는가? 그래도 자네 탄백하는게 낫지.”
“춘란이, 춘란인 절대 살 수 없어.”
그때 강과장이 손을 홱 휘두르자 창남이 우쭐 일어나 나갔다.
이윽고 철문이 드르릉 열리더니 뜻밖에도 머리에 붕대를 감은 춘란이 녀경찰의  부축을 받으며 비칠거리면서 나타났다.
“야, 조흥수, 네 놈은 천벌받을 거야!”
깜짝 놀란 조흥수는 뒤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한참 후에 일어난 그는 춘란을 물고 뜯었다.
“네년도 감옥에 들어갈 거야. 절도죄를 덮어감싸줬더니 날 물어먹어?”
춘란은 조흥수를 손가락질하면서 욕설을 퍼부었다.
“네놈한테 얼마나 협박당하고 릉욕당했는지 몰라. 돈도 2만원이나 빼앗겼지. 그 피나는 돈 2만원 마련하느라고 부모집까지 다 팔았어. 어허헉, 헉헉.”
춘란은 격분해 엉엉 대성통곡치며 비틀거렸다.
녀경찰이 황급히 춘란을 부축해 쪽 걸상에 앉혔다.
이윽고 춘란은 천천히 머리를 쳐들었다.
“지금도 의심돼. 세집 석탄무지에 파묻어놓은 돈가방을 네놈이 재차 도적질해갔지?”
조흥수는 미친듯이 “으흐흐, 하하하.” 하고 너털웃음을 웃었다.
“당장 총살당할 판에 뭘 숨기겠느냐? 확실히 내가 지혜롭게 가져갔댔어. 감사해, 춘란아, 그 돈 아주 잘 썼어. 숱한 아가씨들과 술 처먹고 질탕하게 놀았어. 당장 죽어도 후회되지 않아. 네년 숫처녀도 먹어치웠지. 춘란아, 다만 너하구 더 놀지 못하는게 한이구나.”
“더러운 개새끼, 네놈 때문에 피눈물인들 얼마나 흘렸는지 아느냐?”
춘란은 피눈물을 줄줄 흘리며 대성통곡하더니 철창 너머 손삿대질을 했다.
“살인악마야, 날 죽이고 네가 살아남으리라 했어? 네놈을 붙잡지 않고선 눈을 감을 수 없었어. 염라국에 가서라도 네놈을 물어뜯을 거야.”
“야, 후환을 남겼구나. 단매에 쳐죽이지 못한게 한이야!”
조흥수는 살인악마의 몰골을 드러내면서 쇠고랑이를 찬 두 손으로 쪽걸상을 꽝꽝 두드렸다.
“네년도 무사하진 못해. 백화상점 출납원이라는게 돈 만원을 도적질했지. 살인강탈범의 애인으로, 아니, 정부로 놀아났지. 감옥밥을 콱 처먹어라.”
춘란은 이를 옥물고 한마디 한마디 뱉어냈다.
“네놈은 당장 천당으로 갈 거야. 호호호.”
말을 마치자 춘란은 미친듯이 웃으면서 압송돼나갔다.
원래 춘란의 안전을 고려해 흥수와 삼조대면을 시키지 말아야 했다. 그러나 조흥수가 총살받을 사형수로 확정될 수 있기에 례외로 삼조대면을 시켰다.
조흥수의 정신방선은 완전히 무너졌다. 그제야 그는 자기 죄상이 이미 천하에 다 밝혀졌다는 강과장의 말을 믿게 되였다.
“랭수 한사발 줍소.”
창남이 랭수를 한컵 주었다.
조흥수는 랭수를 벌컥벌컥 들이켜더니 자기 죄행을 천천히 털어놓기 시작했다.
조흥수는 돈이 말라 아가씨들을 데리고 놀지도 못하게 되자 어데 가서 돈을 강탈할 궁리를 했다. 궁리 끝에 그는 동생과 함께 백화상점에서 로임을 주는 날에 손을 쓰자고 했다.
조길수는 동생한테 보험공사 최과장한테서 강탈한 77식권총까지 주면서 막부득이한 긴급사항이 아니면 권총을 쏘지 말라고 했다.
그날 조흥수는 춘란이 백화청사에서 로임을 주는 것을 보호하는 척하면서 기웃기웃 살피다가 백화청사 바깥에 나와 조길수한테 손을 쓰라고 암시했다.
조길수는 마스크를 끼고 팔소매에 쇠파이프를 감추고 2층에 올라와 로임을 주는 춘란을 보면서도 서뿔리 손을 쓰지 못했다. 로임을 타러 온 직원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였다. 조흥수가 자꾸 손을 쓰라고 손으로 암시해도 조길수는 까딱하지 못했다.
조흥수는 조길수한테 눈짓해 바깥으로 나갔다.
“아무리 봐도 출납이 오늘 로임을 다 줄 거 같지 못해. 남은 돈이라도 빼앗자. 먼저 지하주차장에 들어가 기다려라.”
조길수는 백화청사 승강기를 타고 지하주차장에 손쉽게 내려갈 수 있었다. 그는 지하주차장 구석으로 가서 차 사이에 숨어 승강기를 노려보았다.
한참 후 승강기문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보위간사와 춘란이 나타났다. 춘란의 손에는 묵직한 노란색 트렁크가 들려 있지 않겠는가!
조길수는 숨을 죽이고 손 쓸 기회를 노렸다. 그런데 보위간사가 춘란의 곁에 딱 붙어서 있어 어쩔 수 없었다.
그때 승강기 쪽에서 조흥수가 나타났다.
조길수는 보위간사가 차문을 열려는 순간차 뒤에서 뛰쳐나가 쇠파이프로 단매에 까눕혔다.
“사람 살려요!”
그때 조흥수가 권총박죽으로 춘란의 정수리를 강타했다.
조길수는 땅바닥에 쓰러진 춘란의 손에서 트렁크를 빼앗아 차 안에 들이뿌렸다. 그는 흥수가 보위간사 손에서 들춰내 넘겨준 키를 받아 차를 몰고 도망쳤다.
1분도 안되는 사이에 모든 죄행을 끝냈다.
그날 저녁, 조흥수는 동생의 집에 가서 돈 5만원이 든 트렁크를 보면서 기쁨보다 근심이 앞섰다.
(굴어귀 풀을 뜯어먹는게 아닌데.)
그는 죄행을 감추려고 안수련 총경리를 찾아가 사직하고 권총까지 바친 후 길수와 함께 도주의 길에 올랐다.
반정탐능력이 강한 조흥수는 안해한테 고향으로 간다고 해놓고 동생을 데리고 내몽골로 도망쳤다. 그 곳은 그가 입대해 근무하던 곳이기에 지형을 손금 보듯 했다. 목민들은 항상 양떼를 몰고 방목하면서 초원에서 옮겨다니면서 살기에 낯선 사람을 관리하기 힘들었다. 그런 허점을 노려 조흥수와 조길수는 아무도 모르는 초원에서 류동식강도질을 하면서 법망을 피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원쑤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초원에서 성호를 만날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조흥수는 두 손을 쳐들고 미친듯이 고래고래 고함쳤다.
“염라국에 가서라도 네놈을 물어뜯겠어! 하하하!”
 



           43. 사랑의 한계
땡볕이 대지를 홧홧 달구는 여름이 짙어가고 있었다. 여린 꽃잎들은 재글재글 내리쬐는 해볕에 볼 품 없이 시들어갔다.
집집마다 밤에 에어콘이나 선풍기나 켜지 않으면 찜통더위에 견딜 수 없었다.
어느날 밤, 뜻밖에 예화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최선생님, 지금 막 죽고 파요.”
“무슨 소리요?”
범송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예화, 진정하오. 내 곧 갈게. 지금 어데 있소?”
“예술극장 부근인데요. 오지 마세요.”
“아니, 꼭 기다리오. 만나 얘기하기요.”
범송은 다신 예화를 만나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죽고 싶다는 말에 그 다짐은 물 먹은 요술쟁이 모래성처럼 사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또 그 애를 만나요?”
선금이 눈을 흘겼다.
“어쩌겠소? 무슨 일인지 막 죽겠다오. 사람 살려내는게 급선무지.”
선금은 남편을 흘겨보면서 도도거렸다.
“그까짓 실습 때 녀학생이 그리 중해요? 한밤중에 줄 나가긴?”
“말이라고 해? 지나가던 처녀애라도 길바닥에 쓰러진 걸 보면 살려줘야지 않소? 어째 인도주의라곤 꼬물만치도 없소. 흥!”
범송은 짧은 바지와 반팔 와이셔츠를 주섬주섬 주어입고 부랴부랴 문 밖으로 달려나갔다.
탕, 탕, 탕.
선금은 한밤중에 층계를 내리뛰여가는 남편의 등뒤에 종주먹을 내휘두르며 입을 삐쭉 했다.
범송은 바삐 택시를 잡아타고 질풍같이 예술극장 부근으로 달려갔다.
으스름한 달빛이 깔린 예술극장 마당에 가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는데 층계 쪽에서 흐느낌소리가 간간히 들려왔다. 누군가 층계에 쪼그리고 앉아 흐느껴 울고 있지 않겠는가!
“예화, 웬 일이요?”
“선생님, 전 어쩜 좋아요?”
예화는 천천히 일어나더니 범송의 품에 어린애처럼 안겨 몸을 기대고 흑흑 흐느껴 울었다.
범송은 무더운 여름이였지만 예화를 꼭 안아주었다.
“무슨 일인지? 바깥에서 이러지 말고 다방에 가서 조용히 얘기하면 어때?”
예화는 머리를 끄덕였다.
조용한 다방의 희미한 불빛은 짙은 슬픔을 부셔 은은히 발산했다.
예화는 가방을 소파에 내려놓았다. 그녀는 커피잔을 들어 홀짝 마시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진짜 앞날이 캄캄해요.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던 님을 잃었어요. 정만 주고 몸만 가려거든 저를 만나지도 말 것이지. 이게 뭔가요? 그인 저를 이 세상에 홀로 남겨놓고 훌 가버렸어요. 육신은 까만 연기로 사라지고 시혼만 남아 내 마음을 오리오리 찢어놓으면서 괴롭혀요. 이 세상에 홀로 남은 병신 같은 이 육신은 어이 하리오?”
진짜 정신나간 것처럼 넉두리를 하는 그녀를 보고 범송은 망연자실했다.
“대체 무슨 일이요? 원 남편이 잘못됐소?”
“남편? 쳇, 그 개 같은 자식을 잊은지도 오랜데요.”
예화는 신경이 까실까실해 눈까지 흘겼다.
범송은 순한 예화가 오늘 밤처럼 거칠게 노는 건 처음 보았다.
예화는 커피를 들어 후후 불더니 홀랑 마셔버리고 뒤말을 이었다.
“제가 아무리 남편을 살갑게 굴면서 해선을 혼자 키우다 싶이 했지만요. 무슨 소용이 있어요? 숫처녀 맛을 보려고 수캐처럼 뭇 처녀애들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는데. 이젠 그 개 놈한테 아무 미련도 없어요.”
“박철을 잃어서 그러오?”
“아니예요. 그렇게 야박한 바람둥이와 누가 살아요? 갈라진지도 오랜데요.”
(남편도 아니고 박철도 아니라면 누구란 말인가?)
범송은 오리무중에 빠졌다.
예화는 손수건으로 두 볼에 끊어진 구슬처럼 주르르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선생님께 속일게 없어요. 웃지 말고 들어보세요. 박철과 갈라진 후 저는 선생님을 찾아 답답한 얘기나 하려고 했어요. 항상 부모와 못하는 말도 선생님과 다 말하고나면 마음이 홀가분하고 후련했지요. 어쩐지 선생님을 만나기 미안했어요. 사모님께 미안했죠.”
“예화, 그런 말 하지 마오. 우리 뭐 도덕에 어긋난 범죄활동이라도 했소? 사제간에 속심의 말을 하는 건 정상이요.”
“고마워요.”
예화는 점점 진정하더니 속심의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저는 친정집에도 갈 면목이 없어요. 젊어서 청상과부로 나앉아 우리 오누이를 기른 어머니를 볼 면목이 없었죠. 어머니 그렇게 말리는 것도 해선이 아빠와 갈라졌지요. 또 박철하구 동거하지 말라는 걸 동거하다가 갈라졌지요. 어머닌 제가 혹시 네번째 남자와 살 팔자 아닌지 모르겠다고 하지 않겠어요.”
그녀는 조용히 뒤말을 이었다.
“미용원도 잘 되지 않지. 참 답답했지요. 그때 내 생활에 과거에 급제를 하지 못한 한 선비가 뛰여들었어요. 웃지 마세요.”
“그래, 말해봐.”
범송은 커피잔을 들어 마시며 하회를 기다렸다.
“그인 저보다도 수무살이나 이상이였어요. 그 분은 한국에 나간 적도 있어 서양의 현대생활에 푹 물들었더군요. 그런데 가정생할이 엉망이죠. 본댁은 늘 시시콜콜 앓지. 아들딸도 잘 풀리지 않았지. 그분의 일생은 분투한 일생이고 성과가 없는 일생이고 감옥 같은 가정을 떠나고 싶어도 부모와 자식들이 불쌍해 떠나지 못한 망가진 일생이였어요.”
예화는 범송의 눈치를 보지도 않고 넋을 잃고 선비 말을 했다.
“그 분은 고생살이를 했지만요. 모든 걸 락관적으로 대했대요. 답답할 때면 조용한 산길을 걷고 령마루에 올라 시를 십여수 읊조리면 모든 고민이 다 사라진대요. 그런데 그인 저만 만나면 시를 읊기보다도 고민이 더 말끔히 없어지고 즐거워진다고 했어요.”
“그래 그분은 어떻게 돼 만나게 됐소?”
“간단해요. 제가 통신대학을 다니면서 알게 됐죠. 그 선생님은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다나니 쉰고개를 넘어서 저와 함께 한 학급 한 책상에 나란히 앉아 공부하게 됐지요. 간혹 집중수업을 받을 때면 우린 항상 한 책상에 앉아 공부했지요. 그는 아주 박식한 분이죠. 성격도 아주 활발하고 통쾌했지요. 비록 가정생활은 빈곤했지만요. 항상 맥주값은 자기 호주머니를 털어 결산했지요. 우린 밤이 깊어가는줄도 모르고 시를 담론하고 인생을 담론했지요. 우리 둘이 밤이면 밤마다 나눈 인생론은 그의 말처럼 아마 데카메론의 인생론문집보다도 더 많았을 거예요. 그 분은 자기 집 부근에 세집을 잡고 시나 지어 읊으면서 재미나게 지내자고 제의했어요. 저는 랑만적인 그 분이 좋았지요. 저는 큰 마음을 먹고 해선을 어머니한테 보내고  세집에 동거했죠.”
성호는 한숨을 후~ 내쉬었다.
예화는 담담하게 앉아 듣기만 하는 성호 눈치를 할끔 건너다보고 뒤말을 이었다.
“호~ 작년부터 그 분한테서 리백과 두보, 백거이 시도 배우고 간혹 시도 지어 읊었어요. 전 그 반년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요. 그 분은 간혹 제가 차린 음식점에도 왔지요. 그때 최 선생님도 자주 왔고요. 정말 고마운 분들인데요. 그 분은 쉰고개를 넘었지만요. 놀랍게도 진짜 남자였어요. 그 분과 함께 밤을 지낼 때면 아주 랑만적이였지요. 딱 속세를 벗어난 시선과 함께 사는 듯한 감이 들었지요. 그 분과의 사랑은 진짜 년령과 지위, 학력의 차이를 벗어난 순결한 사랑이죠. 그분과 함께 한 밤은 시혼과 남녀 육신이 융합된 행복한 밤이죠. 참말로 너무나도 짧고 아쉬운 밤이죠. 그 분은 다신 돌아오지 못하게 됐어요. 흐흐흑, 흑흑…”
범송은 혼이 나간 듯한 예화의 넉두리에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우두커니 앉아 듣기만 했다.
“그래 그 분이 어떻게 됐단 말이요?”
예화는 다시 비통에 잠겨 울었다.
“그 분은 그만 교통사고로 숨졌어요. 정말 그렇게 비참하게 저의 곁을 떠나리란 걸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날 저와 음식점에서 함께 맥주를 좀 과하게 마셨지요. 그분은 술을 마신다하면 이태백처럼 랑만적인 기분에 잠겨 취토록 마시군 했지요. 그날도 위생실로 나갔는가 했는데요. 밖에서 왁짝 떠드는 소리에 나가보았더니 그이가 큰 길에 쓰러져 있지 않겠어요. 얼음과자를 사들고 큰 길을  건너다가 차에 치운 거 같았어요. 그때 저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달려가 숱한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가 그이를 붙안고 대성통곡치면서 부르고 또 불렀죠. 그이께선 애타게 부르는 저의 목소리를 다신 듣지 못했어요. 다신 저를 정겹게 껴안고 눈이 뚫어지게 바라보지도 못하게 됐어요. 꼭 감으신 눈은 영영 뜨지 못했어요. 어허헉, 전 어쩌면 좋아요. 막 죽고 파요. 흐흐흑, 흑흑흑…”
예화는 범송의 품에 맥없이 안겨 어린애처럼 엉엉 울었다.
한참 후 머리를 든 예화는 가방 안에서 회색양복과 까만 안경을 꺼내 차탁 우에 올려놓았다.
“이건 그 분이 저한테 남겨놓은 유일한 유물이예요. 그날 저와 함께 맥주를 마시면서 더워서 이 양복을 벗어 벽에 걸어놓았지요. 아마 사고를 치자고 그랬던지 나가면서 이 근시안경을 벗어놓고 나갔지요. 안경만 끼고 나갔어도 사고를 치지 않았을 수도 있었는데요. 저는 이 귀중한 유물을 한평생 간직하려고 해요. 아니, 저도 이 유물을 가지고 그 분을 찾아가 저승에서 만났으면 좋겠어요.”
“바보 같은 소리!”
“이 가죽가방과 안경을 보면 항상 이 가죽가방을 옆구리에 끼고 찾아와 웃음짓던 그 분의 눈길을 보는 상 싶어요. 이 안경을 낀 자애로운 눈길을 보는 것만 같아요. 그 분은 무더운 날씨에도 꼭 넥타이를 매고 이 양복을 팔에 걸고 아주 점잖고 멋진 모습으로 저와 데이트를 했지요. 지금 이 시각에도 그이가 사무치게 그리워요. 난 어쩜 좋아요? 최선생님~”
예화는 그 희색양복을 끌어안고 얼굴에 비비면서 서럽게 울었다.
“세상뜬 분이 다 가져가게 보내줘야지. 슬퍼하는 제 모습을 보면 그 분도 슬퍼할게 아니요?”
범송의 말에 예화는 쓰라린 눈물을 손수건으로 닦았다. 그러나 그녀는 양복을 꼭 껴안았다.
“아니예요. 전 원래 그분의 장례날에 이걸 줘보내려고 장의관에 갔댔어요.  제사를 지낼 때 제가 무슨 명분으로 그 분의 유체 앞에 나서야 하는가요? 녀학생으로? 정부로? 애인으로? 참 우습지 않아요? 그분의 처자와 친척, 친구들이 다 저를 모르는데 말이예요. 마음 같아선 그분을 마지막으로 보고 싶고 눈물젖은 얼굴로 그이의 얼굴을 애무해줘 보내고 싶었어요. 그러나 숱한 사람들 앞에서 그럴 용기는 없었어요.”
그제야 범송은 별로 예화가 말하는 그 분이 혹시 자기 담임교원 최성균 선생님이 아니겠는가 하는 의혹이 들었다.
그날 범송은 장례날에 장의관 문어귀에서 서성거리는 예화를 보고 “무슨 일로 여길 왔는가?”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때 예화는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얼버무리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 분의 성함은 뭐냐?”
“최성균 선생님을 아는가요?”
“알다뿐이겠소? 그 분은 우리 대학교때 담임교원이였어.”
범송은 이렇게 대답하려다가 목구멍으로 올라온 말을 꿀꺽 삼켜버렸다.
이윽고 딴전을 피웠다.
“모르는 분이요.”
예화는 포도알깜장눈을 째질듯 뜨더니 기절할 지경이였다.
범송도 저으기 놀랐다. 참말 어처구니 없었다.
(항상 정치경제학을 담론하던 대학교 교수님께서도 암암리에 세집을 잡고 자기보다 20여세나 지하인 새파란 색시를 숨겨놓고 즐겼단 말인가? 이것이 사랑의 진실이란 말인가?)
희미한 전등불빛 아래 복잡한 침묵이 조용히 흘렀다.
범송은 생각할수록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진짜 지하에서 흐르는 사랑에는 한계가 없구나. 년령과 지위에 관계없이 사제간에도, 애비와 딸 같은 사이에도 이런 이변이 벌어지는구나.)
벙송은 수필과 시를 쓰기 좋아하는 예화는 좀 주관이 세고 괴벽하고 이상하게 남들의 눈치를 보지도 않고 제 좋은 궁리를 하거나 제 좋은 소리를 잘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잖고서야 어찌 자기 애비벌 되는 최성균교수와 그런 일을 벌린단 말인가?)
예화는 범송의 내면에서 흐르는 복잡한 심리를 알지 못하고 자기 얘기만 늘여놓았다.
그녀는 눈물을 손수건으로 닦더니 한참 후에야 또다시 조용히 입을 열고 자기 좋은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모두 그 분은 저와 맥주를 마셨기에 사고를 쳤다고 하는데요. 지어 공안국에서도 제가 그 분을 모살했는가고 의심해 자꾸 불러갔어요.”
그 말에 범송은 좀 의문이 들었다. 풍문에 공안국에서 료해하건대 최성균 선생은 교통사고로 죽은 것이 아니라 다방에서 죽었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정부와 놀다가 심장병이 도져서 복상사(腹上死)를 했다고 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심장질환이 있은 최성균 선생이 정부와 맥주를 마시다가 심장병이 도져서 사망했다고도 했다.
범송은 무슨 원인으로 사망했든 최성균 선생님이 사망하신 것을 아직도 섭섭하고 애석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예화가 모든 걸 속시원히 말해버리고 모든 고통을 잊고 홀가분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모든 걸 받아들일뿐이였다.
 “장례날에 저는 유리창 너머 먼 발치에서 뻘건 불이 활활 피여오르는 화가마에 들어가는 그이를 멍해 바라보았어요. 소소리 높은 꿀뚝에서 뭉게뭉게 피여오르는 까만 연기를 바라보면서 전 발을 동동 구르며 대성통곡쳤어요. 저의 사랑과 행복, 사랑하는 님 모두 한순간에 까만 연기로 타래쳐올라 사라졌어요. 그이는 저의 제주도 받지도 못하고 총망히 떠나갔어요. 그이는 갔어도 시혼만은 파란 하늘에서 둥둥 외롭게 떠돌았어요. 그이를 따라가 저세상에서라도 혼과 육신이 다시 융합됐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흐흐흑, 흑흑흑…”
범송은 파도치는 예화의 가냘픈 어깨를 내려다보니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아무리 정으로 사는 세상이라고 해도 일년 밖에 사귀지 못한 애비 같은 선생을 잊지 못해 정사(情死)까지 하려고?)
그는 이해되지 않아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무슨 말로 예화를 위로할지 몰라 망설이였다.
이때 다방문을 똑똑똑 두드리더니 주인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여보세요. 좀 조용히 얘기할 수 없어요? 저 녀자손님이 너무 울고 떠들어서 다른 방의 손님들이 좋아하지 않아요.”
범송은 연신 “죄송해요.”라고 하며 결산하고는 예화를 데리고 다른 다방으로 옮겨가려다가 말고 택시를 타고 공원으로 달려갔다.
무더운 밤이 깊어가는데 예화의 처량한 울음소리가 쓸쓸한 기분을 더해주었다.
그들은 공원 정자에 가서 장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범송은 재생의 용기를 북돋구어주려고 했다.
“예화, 생리별의 아픔을 달래기란 쉽지 않소. 마음을 비우는 기쁨을 아는지 모르겠소. 모든 정욕과 물욕을 다 버리요. 마음을 비우면 모든 슬픔과 고민이 말끔히 사라지고 마치 흐리터분한 구름이 걷히고 새파란 하늘이 나타나듯이 머리가 상쾌해질게요. 속세를 벗어난 선녀처럼 말이요.”
예화는 머리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예화는 완강한 의지로 모든 비통을 이기리라 믿소. 새파란 나이에 무슨 떠나간 사람을 따라갈 소릴 다 하오? 인물체격이 물 찬 제비 같은 예화는 앞날이 창창하오. 꼭 멀지 않은 앞날에 새로운 사랑과 행복이 파란 전등 켜고 한들한들 날아올게요.”
“호호호. 진짜 달콤한 말인데요. 동화 속에서 반짝반짝 반디불이 파른 전등 켜고 오는 상싶군요.”
예화는 땅이 꺼지게 한숨을 호~ 내쉬였다. 그녀는 한두마디 위로의 말에 슬픔과 작별할 수 없었다.
“새로운 행복과 사랑? 저에겐 이젠 없어요. 강간당하고 바람둥이 남편을 만나 세상 더 없는 마음고생을 다한 인생이 애달파요. 내 혼을 다 가져간 사랑하는 님마저 가버렸는데 이제 사랑과 행복이 다 뭔가요? 사는게 정말 귀찮고 고달파요. 그분은 제가 가서 동무해주길 기다리고 있어요. 우리 둘은 만나면 그렇게 즐거우니까. 저승에 가서도 서로 넋을 잃고 혼을 위로해줄 수 있어요. 으흐흑, 흑흑흑…”
“그만두오! 좀 정신차리요!”
범송은 대뜸 언성을 높였다. 그 바람에 나무에 앉았던 먼발치 새들이 놀라 포로롱 날아날 지경이다.
“그분이 예화를 그렇게 사랑했다면 예화가 죽어서 만나길 바라지 않을 거요. 예화가 굳게 살아서 행복하게 사는 걸 보면 기뻐 할 거요. 시랑 수필이랑 발표하는 걸 보려고 할 거요.”
“그래요? 그럴 수도 있겠어요.”
그 말 한마디가 효과를 좀 보기 시작했다.
“정말 그 분이야 제가 행복하기를 바랄 거예요. 그렇죠. 제가 그 분을 그리고 추모하는 시라도 써서 발표하면 꼭 기뻐할 거죠. 그런데 자기를 따라 저승에 가지 않는다고 욕하지 않을가요?”
그 한심한 소리에 범송은 억이 막혔다. 그러나 이윽고 용케도 뒤말을 이었다.
“욕하긴, 그분은 지금 네 못난 생각을 하는거 보고 욕하고 있어. 네가 굳게 행복하게 살아야 그분의 혼을 위로할 수 있어. 네가 잘못되는 날엔 그분 황천에 가서도 마음이 아파 눈을 감지 못할거야. 저승에서 만나도 끌어안고 맨날 고통스레 울 거야.”
“그래서야 안되죠.”
예화는 흐트러진 머리를 두손으로 쓰다듬어올리더니 옷매무새도 바로 잡아놓았다.
“언제나 고통스러울 땐 선생님 말씀 들으면 고민도 비통도 말끔히 사라지는군요. 그 분은 참말로 제가 행복하길 바라는 거죠? 오늘 말씀 고마워요. 종종 찾아 만병통치약 같은 보귀한 말씀 듣겠어요.”
범송은 비칠거리는 예화를 부축해 택시에 앉혀 집에까지 데려다주었다.
이튿날 아침에 범송은 예화를 불러 최성균 선생의 유물- 양복과 안경을 가지고 택시를 잡아타고 그 분이 떠나간 북망강산으로 달려갔다.
한참 달려 그들은 쓸쓸한 화장터가 덩실하게 자리잡은 동산마루 수림으로 올라갔다.
예화는 가방에서 희색양복과 안경을 꺼내 얼굴에 대고 막 비비면서 어린애처럼 서럽게 엉엉 울었다.
범송이 재촉해서야 그녀는 무릎을 꿇고 양복과 안경을 마른 장작더미 우에 사르르 가볍게 놓았다.
“님이여, 당신의 마지막 유물을 보냅니다. 비록 당신은 저승에 있으시고 전 이 세상에 남아 있어도 그대가 저에게 준 사랑은 잊지 않을 것이옵니다. 제가 꼭 당신의 뜻대로 행복하게 살고 당신을 그리는 좋은 시를 써서 세상에 발표할 것입니다. 이 옷을 보내오니 곧 닥쳐올 찬 가을바람을 조금이나마 막아주옵소서. 저승에서라도 꼭 이 안경을 끼고 부디 큰 길을 건널 땐 조심, 조심해주옵소서…”
범송이 양복과 안경에 휘발유를 치고 성냥을 득 그어대자 시뻘 건 불길이 치솟아올랐다.
“최성균 선생님, 하늘나라에서 부디 편안히 사세요.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범송이 중얼거리는데 예화는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맞잡고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기도나 드리는듯이 앵두입을 열었다.
“내 사랑은 새까만 연기로 사라졌어도 그대 사랑과 시혼만은 마음 속에서 영원히 노래할 것이옵니다. 살겠다고 발버둥질치는 간사한 저를 용서하옵소서. 부디 황천길에서 혼이나마 안정하고요. 명복을 비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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