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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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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8.15'광복의 의미
2016년 03월 02일 08시 43분  조회:2459  추천:0  작성자: 김성룡

 “모택동의 평가”정순주 장군의 서예

1945년에 들어서서 아마 조금이라도 정세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일본제국주의의 패망을 얼마든지 판단할수있었을것이다. 당시 중국내에는 근 200만에 달하는 조선인이 살고있었다. 이들은 동북뿐만아니라 관내 화북, 화동지역에서 벼농사에 종사하였고 또한 무한, 중경, 상해를 비롯한 대도시에도 일부 조선인 시민이 살고있었다. 수십년간 일본제국주의의 침략과 수탈에 “망국노”의 신세로 살아오던 그들은 일본의 패망을 손꼽아 기다리고있었다.

“쏘련군의 땅크가 막 들어왔고 일본놈들이 무기를 놓았습니다. 해방을 받은 우리는 밖으로 뛰여나와 만세를 불렀습니다.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함께 거리에 떨쳐나와 ‘만세’를 부르며 쏘련군을 환영했습니다.”

“프랑카드를 들고 쏘련군을 환영하였는데 코가 크고 키가 큰 쏘련군이 땅크를 앞세우고 줄을 서서 들어오는데 저 앞고개에서 이쪽 골짜기까지 쭉 늘어섰습니다.”

아마 어린시절 우리는 당시의 이러한 정경을 친히 목격하였거나 로인분들로부터 많이 전해 들었을것이다. 지금도 70, 80세 로인들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이야기하군한다. 하지만 일제의 패망이라고 즐거워하던 그때에도 사람들은 저들의 앞에 놓인 운명을 몰랐을것이다. 구경 누가 이 땅의 주인이며 어떠한 정당이 어떠한 정부를 세울것이며 백성들은 어떻게 살아갈것인지? 당시 아무도 이를 명확히 몰랐다. 특히 중국내 조선인들은 자기의 운명이 어찌될지 더욱 몰랐으며 만악의 일본제국주의자들이 항복하고 그들의 억압으로부터 해방되였다는 순간의 기쁨에 잠겨있었을뿐이다.

세계 반파쑈전쟁이 최후단계에 진입하던 1945년 2월, 크리미아반도 얄따시에서 열린 “얄따회의”에서는 쏘련군의 동북출병이 결정되였다. 쏘련은 출병조건으로 동북의 대련과 려순에 대한 조차권을 요구했고 중장철도(中长铁路)와 외몽골의 현상유지라는 조건을 제기했다. 쏘련과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의 타협으로 이 조건은 수락되였다. 한편 태평양전장에서 대량의 인력과 물력을 소모한 미국은 조속히 전쟁을 마무리할 생각으로 이해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탄을 투하하여 일본의 패망은 눈앞에 닥쳐왔다. 시기를 놓칠세라 쏘련군은 8월 8일에 대일 선전포고를 하고 9일 령시부터 동북의 일본관동군에 대한 전면공격을 개시했다. 150만 쏘련군이 일거에 국경방어선을 돌파해서 한주도 안되는 사이에 동북 전역을 석권하자 8월 15일 점심, 일본 히로히또 천황이 떨리는 목소리로 세계를 향해 항복조서를 선독하였다. 사람들은 만세를 높이 부르며 자유와 해방을 경축했다.

하지만, 평화는 그처럼 쉽게 실현되지 않았고 더우기 진정한 자유와 해방은 남이 베풀어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였다. 일제의 패망과 더불어 세인의 시선이 부유한 중국 동북에 집중되였다. 쏘련과 미국이라는 당시 세계 량대세력이 동북을 눈박아 보았고 중국내의 국공량당이 동북을 주시하고있었다.

대흥안령, 소흥안령, 장백산맥으로 둘러있는 드넓은 동북평원은 기름진 땅과 풍부한 광산자원을 가지고있었지만 위도가 높은 동토대였기에 량곡생산이 제한을 받았고 옛날에는 벼농사를 상상도 못했으며 광산개발도 잘 되지 않았다. 인류가 19세기에 들어 서서야 동북개척이 본격화되였다. 특히 조선인이 대거 동북에 이주함에 따라 동북에서 벼농사가 시작되였다.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는 조선농민들은 저온지대인 중국동북에서 드디어 벼농사를 성공시켰으며 대량의 황무지를 개간하여 옥답으로 만들었다. 이때로부터 동북의 농업발전의 터전이 마련되였으며 동북은 유명한 곡창으로 변했다.

일찍부터 동북에 눈독을 들인 일본제국주의는 “9.18”사변을 통해 동북을 강점하였고 장개석의 국민정부는 큰 저항이 없이 130여만 평방킬로메터의 국토와 3,800만 인구를 가진 동북을 내버리고말았다. 동북을 강점한 일제는 청나라 말대황제인 부의(溥仪)를 괴뢰황제로 내세워 괴뢰만주국을 세웠으며 조선으로부터 더욱 많은 조선농민을 동북에 강제 이주시켜 농사를 짓게 하였고 동북을 중국대륙 침략과 태평양전쟁의 중요한 군사기지로 만들기 위해 본격적인 철도부설과 광산개발을 진행했다. 일제가 패망할때 동북의 선탄생산량은 전국의 49%를 점했고 강철생산량은 전국의 90%이상을 차지했으며 14,000킬로메터의 철도선과 10만킬로메터의 도로가 있게 되였다. 당시 동북은 중국의 가장 큰 공업기지였으며 가장 큰 곡창이였다.

부유한 동북을 차지하기 위해 장개석은 웅식휘(熊式辉)를 동북행원(东北行辕) 주임으로 임명하여 쏘련군으로부터 행정권을 인계받으려했고 두률명(杜聿明)을 동북보안사령으로 임명하였다. 이들은 쏘련과 적극 담판하면서 각종 권력을 인계받는 동시에 동북의 일본군 잔여세력과 괴뢰만주국 군인, 경찰 그리고 무장토비 20여만명을 규합했으며 먄마에서 훈련받은 신1군과 신6군을 포함한 정예부대 25만을 동북으로 이동시켰다. 국민당 주력군이 모두 중국 서남부에 집결되여있었기 때문에 장개석은 미국함대의 도움으로 국민당 정예군을 북상시키는 한편 동북의 한간, 괴뢰군, 지주무장, 특무, 관료 그리고 마적과 류랑배들을 긁어모아 이른바 유지회(维持会)를 설치하였고 무장부대를 편성하기 시작했다.

일제의 패망을 눈앞에 두고 공산당의 중앙주석인 모택동은 민주적인 련합정부를 설립해야한다는 정치주장을 제기하면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금후의 투쟁은 어떤 나라를 세우는가 하는 투쟁이다. 무산계급이 령도하는 인민대중의 신민주주의적 국가를 세울것인가, 아니면 대지주, 대자산계급이 독재하는 반식민지, 반봉건적 국가를 세울것인가? 이것은 매우 복잡한 투쟁일것이다. 지금 이 투쟁은 항전승리의 열매를 탈취하려는 장개석과 그 탈취를 반대하는 우리와의 투쟁으로 나타나고있다.”

항일전쟁승리의 열매를 보호하기 위해 공산당은 3만 간부와 10여만 팔로군, 신사군을 동북에 긴급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누가 동북을 차지할것인가? 세계 반파쑈전쟁의 승리가 눈앞에 다가온 1945년 하반기, 풍요로운 동북은 국공량당이 힘을 겨루는 주요한 쟁탈지로 되였고 또한 쏘련과 미국 량대 세력까지 눈독을 들이는 초점지역으로 변했다. 그리고 전반 중국인민앞에는 두가지 운명이 놓여지게 되였다. 장개석을 위수로한 국민당은 대지주와 대자산계급이 통치하는 독재정권을 수립하려했고 공산당은 력사적 조류에 순응하고 민주주의적인 련합정부 설립을 주장하면서 새로운 민주주의 국가를 건립하려했던것이다.

동북에 온 공산당 간부들은 각지에 공산당조직을 설립함과 동시에 광범한 인민을 단합시키기 위해 군중조직인 동북인민민주대동맹(东北人民民主大同盟)을 조직, 령도하였으며 이를 통해 국민당의 이른바 유지회와 투쟁하였다. 그리고 동북경내 조선족 집거지들에도 모두 조선인민주대동맹 조직이 설립되였고 산하에 농민, 청년, 녀성분맹이 설치되여 활발할 선전활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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