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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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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쏘련군과 함께 귀국한 항일련군
2016년 03월 07일 17시 34분  조회:2915  추천:0  작성자: 김성룡

동북에 진출한 쏘련군에는 특수한 군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항일전쟁시기 동북대지를 휩쓸며 간고하고도 치렬한 전투를 진행해온 항일련군 장병들이였다. 항일명장 허형식(许亨植)과 리홍광(李红光)을 비롯한 수많은 우리겨레 항일지사들이 동북대지에서 소중한 생명을 바쳐 싸웠다. 동북의 심산밀림속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일제와 싸운 이들의 항일의거는 일제 식민통치하에 있던 수천만 동북인민에게 특히는 동북에 정착한 조선인에게 있어서 희망의 등불이였다.

김광협, 주보중, 강신태

쏘련군과 함께 동북으로 진출하기 위해 1945년 7월에 항일련군 간부들은 중국공산당 동북위원회를 재구성했다. 바이족인 주보중(周保中)이 서기를 맡았고 위원에는 리조린(李兆麟), 풍종운(冯仲云), 왕효명(王效明), 왕일지(王一知) 등을 비롯해 조선인 강신태(姜信泰)와 김광협(金光侠)도 망라되였다. 항일련군중의 조선지사들은 대부분 조선사업위원회를 구성해 조선으로 나갔지만 중국공산당의 동북위원회에 강신태와 김광협을 비롯한 조선인을 포함시킨것은 이들이 동북에서 싸웠던 경력이 있어 동북상황에 대해 익숙한것과 중국동북에 조선농민이 많이 거주하고있는 현실을 고려한 사안으로 추정된다.

한편 주보중은 1945년 9월에 당중앙의 파견을 받고 동북에 온 중공중앙 동북국 서기인 팽진(彭真)을 만나 당조직관계를 회복하였으며 그가 령도하는 동북위원회의 조직관계와 자료, 당비를 전부 팽진에게 맡겼다. 주보중 등은 쏘련군에서의 특수한 지위를 리용해 쏘련군의 적극적인 협조를 받았으며 각지에 새로운 정권을 수립하고 군대를 모집하는데서 적극적인 역할을 발휘하였다. 분공에 따라 주보중은 장춘에, 리조린은 할빈에, 풍종운은 심양에 가서 사업했고 조선인 강신태는 연길에, 김광협은 목단강에 가서 사업하게 되였다. 이들은 쏘련군을 도와 사회치안을 유지하고 당조직을 회복했으며 무장을 확대하였다. 10월에 이르기까지 동북항일련군은 4만여명으로 확대되였으며 일본이 패망한데 비추어 부대명칭을 동북인민자위군(东北人民自卫军)으로했다.

항일련군 출신인 한족간부 왕효명(王效明)은 길림시에서 쏘련군 길림시 위술(卫戍)사령부 부사령의 신분으로 활동하였다. 그는 길림시 지하공산당원인 리유민(李维民)을 만나 당조직을 확대할 계획을 세웠다. 그들은 우선 량환준(梁焕俊)이 조직한 길림시 조선인해방동맹을 쟁취하고 량환준을 비롯한 조선인간부들을 중국공산당에 가입시켰다. 그리고 11월 21일에 길림시에서 길림 전성 보안총대를 설립하고 수천명 청년들을 규합시켰다. 길림시와 부근 조선족마을의 청년들도 보안총대에 참가해 한개 대대로 편성되였다. 

동북위원회 위원인 강신태[원명 강건(姜健)]는 최명석(崔明锡), 박락권(朴洛权), 김만익(金万益), 강위룡(姜渭龙), 김명수(金明洙), 려영준(吕英俊) 등 22명 동북위원회 연변사업위원회 간부들을 거느리고 9월 18일, 연길 군용비행장에 도착하였다. 하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쏘련군의 공격으로 일제가 항복했지만 사실 동북은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었다. 대량의 일본군 잔여세력이 구석구석 도사리고있었고 무장을 든 수많은 마적떼가 도처에서 백성을 괴롭히고있었다. 게다가 연길, 룡정 거리에는 “국민당 길림성 연변판사처”, “국민당 연길현 당부”라는 간판이 나 붙었고 국민당이 끌어모은 별동대, 보안대, 자위군, 치안유지회가 있었다.

연길에 도착한 강신태는 우선 지희겸(池喜谦), 강동주(姜东柱), 박동운(朴东云)을 비롯한 진보인사들이 조직한 군중조직을 통합시키고 이들을 쟁취함으로써 군중을 발동하고 무장부대를 조직하기 시작했다. 9월 19일에 연길시에서는 600명 조선족대표가 4만여명 회원을 대표하여 로동자, 농민, 청년, 녀성 대회를 열고 “로동자, 농민, 청년, 부녀총동맹”을 설립하고 강동주를 집행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하였다.

 이 조직은 연변사업위원회의 지도를 받으면서 10월에는 지희겸이 위원장을 맡은 연변인민민주대동맹으로 개칭되여 폭넓게 군중사업을 전개하였다. 한편 이 시기 최무(崔武), 최문국(崔文国)을 비롯한 개명인사들이 창간한 조선문판의 “한민일보(韩民日报)”가 있었다. 신문은 11월에 “연변민보(延边民报)”로 개칭하고 연변인민민주대동맹의 기관지로 되였다. 강동주가 주필을 맡은 이 신문은 첫기부터 모택동의 글 “련합정부를 론함(论联合政府)”을 련재하였다.

쏘련군 복장을 입었지만 조선말을 하는 동북위원회의 이 특수한 군인들은 우선 조선족의 두터운 신뢰를 받게 되였다. 더우기 동북땅에서 만악의 일제와 싸웠던 항일련군 출신이라는것을 안 조선족 청장년들은 다투어 무기를 들고 이들을 따라 나섰다. 이러한 상황에서 강신태는 김만익을 대장으로하는 연길경비대를 조직하여 훈련시켰다. 그리고 최광(최명석 崔名锡), 박락권, 최시영(崔时英)등을 왕청, 룡정, 화룡, 훈춘에 보내 정권건설과 당조직 확건, 무장대 조직사업을 진행하게 했다.

 그리고 전윤필(全允弼), 박근식(朴根植), 엄군섭(严君燮)이 거느린 룡정별동대와 리주설, 김수억(金寿忆) 등 조선족 농민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화룡 평강구 장인강자위대(长仁江自卫队)를 접수해 재편성하고 5개 퇀의 확군계획을 세웠으며 조충렬(赵忠烈)이 거느린 로투구별동대를 연변경비 2퇀 4련으로 편성했다. 그리하여 김만익은 연길에서, 박락권은 룡정에서, 박근식은 화룡에서, 남창수(南昌洙)는 조양천에서, 최광은 왕청에서 각기 조선족 무장을 조직했다.

길림성 연길에서 만난 원 독립6사 문서로 있었던 리복룡(李福龙) 로인은 조충렬 렬사가 당시 부대를 조직하던 상황을 이야기했다.

“저의 상급인 조충렬 렬사는 연변에서 무장대오를 조직한 조직자의 한분입니다. 일제가 패망하자 그는 뜻있는 청년들을 모아 청년동맹을 조직했습니다. 연변에서 민주동맹 대회를 할때 그는 로투구(老头沟)지구의 대표로서 회의에 참가했습니다. 회의에서 항일련군 출신인 강신태의 보고를 듣고 무장대오의 중요성을 인식한 그는 로투구에 돌아온후 청년동맹 성원들과 함께 지주집 무장과 당시 치안유지회의 무장을 탈취하여 170여명의 무장을 조직했습니다.

 후에 이들은 명월구의 부대와 합쳐 경비퇀을 편성했으며 조충렬 렬사는 지도원직을 맡았습니다. 지도원은 반드시 공산당원이여야했습니다. 조충렬 렬사는 당시 가장 먼저 입당한 분입니다. 연안에서 온 손장상(孙长祥)이 그의 소개인이라고합니다. 그는 1947년 3월 7일, 길림부근의 사간방(四间房)이라는 곳에서 싸울때 전우들을 엄호하다가 장렬히 희생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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