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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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가슴을 파고드는 가을의 소리 (김동진)
2017년 09월 21일 16시 36분  조회:296  추천:0  작성자: 김동진

수필

가슴을 파고드는 가을의 소리

김동진

가을이다.

옛사람들이 옛날에 벌써 형상사유를 통하여 문학적으로 ‘천고마비’라는 멋진 규정어를 달아놓은 가을이다.

가없이 높이 들린 청자빛 하늘! 머리 우에 저처럼 높고 푸른 하늘이 있다는 것이 한가슴 뿌듯하게 크나큰 고마움으로 안겨온다. 그래서인지 이런 가을에 들려오는 각양각색의 소리는 마냥 정답기 만하다.
담장 굽에서, 마루 밑에서, 장독대에서 약속이나 한듯이 울리는 귀뚜라미소리는 여름이라는 계절이 가을의 문턱을 넘어섰다는 신호이다. 숲속에서 매미들의 합창이 열을 올리던 여름의 불고개를 넘어 소리없이 다가온 가을이 마침내 자신을 확인하는 소리를 내는 것이다.

하지만 귀뚜라미소리가 아무리 요란스럽다 해도 풍요하고 아름다운 가을의 무궁한 소리를 대신할 수는 없다. 귀뚜라미소리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오로지 귀뚜라미소리일 뿐이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벌판에 나서보라. 노을빛 산발과 황금의 전야를 한품에 거느리고 온 가을이 희열과 랑만의 바다처럼 출렁이고 있다. 그리고 가까이 동구밖 시내물은 조석을 다투는 서늘한 바람을 앞세우고 시린 소리를 내면서 말쑥하게 흘러가고 있다. 그 드놀지 않는 몸가짐은 초심을 잃지 않고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 쉬임없이 달려가는 마라톤선수를 방불케 한다.

시린 물소리와 더불어 잠자리축제가 시작된 사래 늘찬 강냉이밭에는 성숙을 다그치면서 한해의 허와 실을 갈무리하는 세월의 바람소리가 있다.

어디 그 뿐인가. 귀를 조금만 강구면 동서남북 사면팔방에서 귀맛 좋게 들려오는 것은 온통 오곡백과의 탐스러운 알맹이가 알알이 익어가는 소리이다. 지난여름의 혹서와 폭우의 시련을 이겨낸 전야의 가슴에는 이렇듯 눈부시게 아름다운 생명의 소리가 있다. 견인불발의 가을은 시련의 고개를 넘어 바야흐로 산이 익고 들이 익고 달도 익고 별도 익는 대형음악을 펼치고 있다. 그것은 하늘과 땅이 손잡고 만들어내는 황금빛의 향기로운 음악이다.

팔을 들어 손가락으로 살짝 다쳐도 파란 물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은 높고 푸른 하늘은 줄지어 떠나가는 철새들의 힘찬 날개에 가볍게 흔들리는데 고요하고 평화로운 들녘에는 울긋불긋한 계절의 색채에 서정을 가미하는 풀꽃들의 순직한 미소가 피여있다.

은빛갈기를 날리는 억새의 설레임, 자름한 꽃쟁반을 들고나온 구절초의 수집음, 가늘고 기인 허리를 펴고 한들거리는 코스모스의 화사함, 모두가 하나같이 이 가을의 높아진 하늘처럼 해맑은 모습으로 정겨운 미소를 날리고 있다. 그것은 소리없는 미소, 아니 소리를 감춘 소담하면서 감미로운 미소이다.
저기 단풍으로 불타는 숲속에는 우수수 떨어지는 락엽의 소리가 있다. 그것은 흘러가고 있는 가을의 소리이다. 그것은 때가 되면 스스로 떠나야 하는 섭리의 노래이다. 흙을 찾아가는 귀향의 노래, 뿌리를 찾아가는 귀근의 노래― 진지하면서 비장한 락엽의 노래를 듣노라면 흩날리는 가벼움 속에 깃들어있는 바위처럼 무거운 추락의 의미를 감득하게 된다.

가을이 가는 길에 들려오는 온갖 소리는 소리마다 가을을 장식하는 불가결의 화음이다. 알곡을 거두는 수확기의 동음, 황금트럭이 달려가는 소리, 탈곡기 돌아가는 소리, 도리깨를 휘두르는 소리, 알곡마대를 쌓아올리는 소리가 있어 가을은 흥겨운 노래와 춤의 가을이 되기에 손색이 없다.

이제 이 가을도 이런 온갖 소리와 색상의 조화 속에서 잎새로부터 열매에 이르기까지 모조리 남겨놓고 백지처럼 홀가분한 몸과 마음으로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질 것이다. 봄과 여름의 사랑으로 키우고 익힌 더없이 소중한 것들을 한점의 미련도 없이 이 세상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빈털터리가 되여 서리발이 하얀 겨울의 턴넬 속으로 걸어갈 것이다.

그러고 보면 더 많이 끌어안고 더 많이 가지지 못해 안달아하는 인간이야말로 참으로 가소롭다. 얼마나 더 잘살고 또 얼마나 더 오래 살겠다고 그리도 아등바등 욕심을 부리는지 모를 일이다. 아무리 잘살고 오래 살아도 손가락 한번 튕기는 순간이라고 하는데 말이다.

나는 지금 단풍빛이 고옵게 물들고 풀벌레의 울음소리가 있고 풀꽃들의 미소가 있는 가을들녘 한 모퉁이에서 마음그릇을 비울 줄 알고 사랑을 나누어줄 줄 아는 가을의 아름다운 소행을 본다. 동시에 인간의 끝없는 허위허욕에 끌끌 혀를 차는 자연의 소리를 새겨듣는다. 그 소리가 있어 가을의 미학은 인간의 상상보다 훨씬 심오하고 심각한 것이다.

가을의 온갖 소리 앞에서 마음의 대문을 활짝 열면 들려오는 소리의 당부가 있다. 그것은 나더러 살아오면서 껴입은 수많은 가식의 허울을 부끄러운 대로 하나하나 벗어던지고 진실한 자기를 만나보라는 가을의 정중한 타이름이다. 알맹이는 얼마이고 쭉정이는 얼마이며 허욕은 얼마였는가를 참답게 따져보라는 이 타이름이야말로 가을의 하많은 소리중에서 무엇보다 값진 천금의 소리가 아닌가 싶다.

이 소리는 가을심중의 가장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깨우침의 소리로서 인생사유를 할 줄 아는 모든 사람의 가슴을 파고든다. 바로 이런 소리를 할 줄 아는 가을이기에 한결 멋지게 의젓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가을의 타이름을 가슴깊이 새긴다. 그리고 진실한 자아를 찾는 작업을 시도한다. 마음그릇에 담겨있는 사욕으로 엉킨 욕심의 덩어리를 쓰레기통에 내버리고 인간사랑을 위하여 내가 능히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본다.

가슴을 파고드는 가을의 소리를 다시금 새롭게 음미하면서 시리도록 파아란 가을의 ‘하늘 못’에 마음의 옷을 헹구고 가을풀꽃의 맑은 미소로 심령의 창을 밝힐 수 있다면 누구나 이 가을 앞에 부끄럽지 않는 하나의 ‘생명개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2017-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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