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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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성의 뜨락에서
2021년 08월 13일 09시 43분  조회:175  추천:0  작성자: 김동진

자성(自省)이란 자기성찰의 줄임말로서 사람이 스스로 자신의  잘잘못을 살피는 일종의 행위표현을 뜻하는 낱말이다. 어찌 보면 인간의 성숙을 촉진하는 생장소 같기도 하고 때묻은 심혼을 깨우치고 다스리는 령단묘약 같은 소중한 단어이기도 하다.

그러하기에 나도 가끔은 나의 제대로 여물지 못한 인생을 들고나와 자성의 뜨락을 거닐면서 부끄러운 자책과 자인의 시간을 만들어본다. 그것은 지나간 일들에서 나타난 잘못된 자기의식과 뒤틀린 관념에 대하여 반성하는 뉘우침의 시간이다.

자성의 뜨락에는 내가 나를 정시하는 고요한 시간이 있다. 바로 이런 자기성찰의 시간 속에서 나는 나의 마음에 걸쳐진 허위와 몰상식의 껍데기를 벗어놓고 자신의 부끄러움을 꼬집으면서 때묻은 심혼의 정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지나간 정월 중순에 있은 일이다.

해마다 설명절이 지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 있다. 아빠트 관리부문에서 수금원으로 일하는 나젊은 녀인인데 위생비를 받으러 다니는 것이다.

문을 열어주며 보니 지난해에도 이맘때 왔던 그녀였다. 설을 쇠기 바쁘게 돈 받으러 다니는 것이 스스로도 미안한지 어색하게 웃으면서 입을 여는 것이였다.

“올해의 위생비를 받으러 왔습니다.”

“얼만데요?”

“한 사람이 한달에 3원인데 두분이니 모두 72원입니다.”

나는 위생비를 주면서 심기가 비뚠 소리 한마디를 ‘덤’으로 주는 걸 잊지 않았다.

“돈을 받아가는 데는 꽤나 이름이 있다니까.”

그래도 그녀는 화를 내지 않았다. 수금원 일을 하면서 나와 같은 사람들의 곱지 않은 눈총과 곱지 않은 말투에 단련이 되였는지 아무런 내색도 없이 돈을 받아 가방에 넣고 령수증을 주면서 차분하게 응대하는 것이였다.

“어쩌겠습니까? 저도 이 일을 좋아서 하는 게 아닙니다. 벌어먹고 살아야지요. 다른 재간은 없고 제가 맡은 사업이 이것이니 미워하고 욕을 해도 할 수 없지요.”

그녀는 시끄러워하는 나에게 이 말을 남겨놓고 돌아섰다.

그런데 별것도 아닌 이 사소한 일은 그렇게 지나갔는데 왠지 그 뒤끝이 찜찜하였다. 그녀가 남긴 마지막 말이 나의 머리속을 뱅뱅 돌면서 나를 꼬집는 것이였다.

(저도 이 일을 좋아서 하는 게 아닙니다… 맡은 사업이 이것이니 미워하고 욕을 해도 할 수 없지요.)

이는 그녀의 페부에서 나온 조금도 과장됨이 없는 솔직한 말로서 가장 기본적인 례의마저 지키지 못한 나의 졸렬한 언행에 대한 반박이였다.

그리하여 나는 그날의 일을 돌이켜보면서 또 한번 자성의 뜨락을 거닐게 되였다. 아무리 반갑지 않은 손님이라 해도 용건이야 어떠하든 우선은 “어서 들어오세요. 년초부터 수고가 많으십니다.”라고 공식적인 인사를 하는 것이 도리인데 “돈 받아가는 데는 이름이 있다.”고 비아냥거렸으니 이는 한마디로 수금원의 수고에 대한 랭대와 모욕이였다.

사실 수금원이라는 이 말단직업은 해먹기 쉬운 일이 아니다. 혼자서 지정된 아빠트구역의 4,5백호의 가정을 집집마다 찾아다녀야 하는데 그것도 사람이 없으면 두번이고 세번이고 다시 가야 한다. 그쯤까지는 그래도 괜찮은데 어떤 집에서는 사람이 있으면서도 문을 열어주지 않아 돌아가야 하니 그 고충도 만만치가 않다. 이렇게 쉴새없이 날마다 5층 아빠트의 층계를 오르내려야 하는 그 다리인들 어찌 아프지 않을 것인가?

내가 도대체 무슨 자격에 무슨 턱을 대고 수금원 그녀 앞에서 거들먹거렸는지 알 수가 없다. 기껏해야 허리에 나이테를 더 두른 것밖에 없는데 그것을 밑천으로 타인의 참하고 여린 마음을 아프게 하다니…

그녀와 같은 수금원들의 봉사가 있기에 집집마다 수금소를 찾아가는 일이 없이 집에 앉아 편하게 지내면서도 그것이 좋은 줄 모르고 경거망동한 것이다. 그러니 그것은 나의 머리속의 도덕지수가 어떠한가를 보여주는 자기표현이 되고 말았다. 맡은 바의 사업임무를 충실하게 완수하기 위하여 밤낮이 따로 없이 뛰여다니는 그녀의 로고를 리해할 대신 찬물을 끼얹고 랭소를 안겨주었으니 누가 나를 보고 손가락질하면서 늙은이의 망발이라고 해도 할 말이 궁하다.

곱지 않게 본 눈총, 비아냥거린 입 그리고 시끄러운 표정을 한줄에 꿰여놓고 보니 제딴에는 먹물을 조금 먹었노라고 아는 척, 고상한 척 하는 나라는 사람도 알고 보면 그저 거기서 거기인 그런 령감쟁이에 불과하였다.

자성의 뜨락에서 발견한 주책머리없는 자신의 부끄러운 내면세계를 보면서 나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하고 죽을 때까지 뉘우치면서 살아야 한다.’는 절대적인 진리를 다시한번 깨우치게 되였다.

  이제 다음해에도, 그 다음해에도 설명절이 지나면 어김없이 그녀가 오든지 아니면 그녀와 같은 수금원이 새해의 첫 손님으로 우리 집 초인종을 누를 것이다. 그때에는 잊지 말고 반갑게 맞이하고 년초부터 수고 많다는 인사를 드려야 하겠다. 그리고 바치는 위생비에 “새해에 복 많이 받으세요!”란 한마디를 덤으로 얹어드려야 하겠다. 그러면 그녀도 자성의 뜨락에서 새롭게 태여난 이 늙은이를 보고 무척 반가워할 것이다.

연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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