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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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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교육원 <동시심화과정> 수업자료 / 권영세[ 한국 ]
2017년 09월 26일 16시 38분  조회:1459  추천:0  작성자: 강려
평생교육원 <동시심화과정> 수업자료 / 권영세
 
2강 시는 어디서 오는 것인가?
 
시는 역사가 쓰여지기 이전부터 존재했다. 인류의 역사가 문자로 기록되기 이전에도 인류에게 역사가 있었고, 이때의 역사는 대체로 종족이 살아온 내력, 혹은 종족이 이동해 온 흔적에 대한 이야기이고, 이런 이야기는 훌륭한 이야기꾼에 의해 전승된다. 그런 점에서 문자로 기록된 역사 이전에 이야기가 있었고, 이 이야기는 이야기꾼에 의해 전승되었다. 그러나 후대로 올수록 이야기꾼들은 그들의 종족에 대한 이야기를 후대에 전하기 위해 단순히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이야기를 기억할 수 있는 기술을 필요로 했고, 이런 필요 때문에 이야기꾼들은 이야기에 리듬을 부여하여 같은 낱말이나 문장을 반복하게 된다. 시는 이렇게 이야기를 기억하기 위한 기술과 함께 발전한다. 우리가 말하는 정형시의 기법 가운데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각운과 어구 반복은 이런 사정을 배경으로 태어난다.
그런 점에서 시가 최초로 태어난 곳, 말하자면 시가 온 곳은 이야기이고, 각운과 반복은 이야기를 기억하기 위한 수단이었고, 차츰 이런 수단과 함께 긴 이야기는 짧게 축소되거나 압축되기 시작한다. 결국 시는 간단히 정의 한다면 응축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 고대 시가인「공후인箜篌引」혹은 「공후도하가公無渡河歌」로 불리는 다음과 같은 노래를 생각해도 알 수 있다.
 
님이여 그 물을 건너지 마오 (公無渡河)
님은 마침내 물속으로 들어가셨네 (公竟渡河)
물속에 빠져 죽은 님 (墮河而死)
아아 저 님을 어찌 다시 만날까 (將奈公何)
 
위의 노래는 슬픈 이야기를 미적으로 승화시키고, 따라서 이 시가를 읽을 때 우리가 체험하는 것은 비록 슬픈 이야기를 동기로 하지만 정형률과 낱말의 반복이 주는 즐거움, 각운이 주는 즐거움이고, 이것이 시 읽기 나아가 시 쓰기가 우리에 즐거움을 주는 이유이다. 그런 점에서 시는 감동이고 기쁨이고 가난한 영혼을 채워주는 정신의 양식이다. 많은 이론가나 시인들이 시를 ‘여과된 삶’ 혹은 ‘순수한 삶’이라고 부르는 것은 시가 거대한 삶의 이야기들을 걸러 그 핵심을 보여주고, 이때 여과된 것, 곧 최초의 이야기보다 강력한 호소력을 띠기 때문이다.
시는 고대부터 존재했고, 그것은 이야기를 간략하게 전달하려는 목적에서 출발했다. 이런 고대 시가의 특성은 시를 처음 쓰려는 사람들에게 암시하는 게 많다. 예컨대 처음부터 시를 쓰지 말고 자신이 체험한 이야기를 산문으로 적고, 이 산문을 줄이고, 정형률에 맞게 표현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여옥이 부른 ‘공후인’의 경우도 남편이 전한 이야기를 토대로 하지 않았는가? 또한 이야기는 정서를 동반해야 한다. 물론 시는 역사적으로 각 시대에 맞는 시의 유형을 소유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비록 각 시대가 그 시대에 고유한 시를 생산하지만 모든 시가 크게 보면 동일한 세계를 지향한다는 점이다. 요컨대 모든 시인이 말하는 것은 ‘내가 혹은 우리가 경험한 것은 이렇다’로 요약된다. ‘이렇다’는 것은 자신만의 시각으로 본다는 뜻이고, 따라서 시를 쓰거나 읽을 때 우리는 새로운 방식으로 세계를 배우고 체험하게 된다.
 
<참고 문헌>
이승훈,『이승훈의 알기 쉬운 현대시작법』(북인, 2011) pp. 15-17
 
 위의 내용과 관련하여 다음 동시를 읽고 감상해 보자.
아무도 거짓말 안 했다
김마리아
 
여러분, 오늘은
거짓말에 대한 수업을 합니다
잘,
생각해 보고 손 드세요
솔직하게
 
지금까지
거짓말 한 번도
안 해 본 사람
손들어 보세요
 
나는 고개를 돌리며
옆을 봤다
친구들도 두리번거렸다
 
조용했다
 
손을 든 사람 아무도 없었다
 
우리 반 아이들은
아무도 거짓말 안 했다
그 시간에는
 
 
내가 더 좋다
권영세
 
식사 때마다 조심조심 앉으려 해도
쿵쾅 쿵쾅 소리 내는
우리 집 식탁 의자
 
엄마가 시장에 가서
예쁜 꽃이 달린
의자 양말 사 오셨다
 
그제야 발이 편한지
소리 없이 살짝 내딛는
양말 신은 식탁 의자
 
이제는 아파트 마당에서
아래층 호랑이 할머니 만나도
눈치 보지 않아서 참 좋다
 
고운 양말 신은 식탁 의자보다
내가 더 좋다
 
 
 
 
 
 
 
3강 시의 기능은 무엇인가?
 
시에는 고대 시가가 그렇듯이 사회적‧현실적 효용성이 있다. 고대 시가는 이야기를 쉽게 기억하고 후대에 전하기 위한 실용적 수단이었다. 고대의 시인들은 종교나 정치의 영역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었고, 사회를 하나로 통합시키는데 기여했다. 좀 더 나은 수확과 전쟁에서의 승리를 위해 시인들은 노래하고, 이 노래가 사회를 끌고 나가며, 시인들은 또한 전쟁의 역사를 노래하고, 권력을 비판하고, 그 무상함을 노래하고 신들을 찬양했다. 그렇기 때문에 포악한 왕은 시인들을 죽였고, 반대로 훌륭한 왕은 시인들의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시의 이런 기능은 현대라고 해서 달라진 것이 아니고 다만 그 표현 형식이 달라졌을 뿐이다.
그러나 현대에 오면 시인들은 이런 권력이나 실제적‧현실적 효용성보다는 근대 미학의 특성인 이른바 순수 예술을 강조한다. 말하자면 현실적 효용성보다는 시 자체의 아름다움, 그러니까 현실에 대한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혹은 현실과 다른 또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일에 몰두한다. 이렇게 현실과 거리를 두고 시 자체를 사랑하는 태도가 현실과 다른 시의 공간을 낳고, 이런 공간은 일상적이고 이성적인 사고가 아니라 상상력을 낳는다. 예컨대 주요한은 <빗소리>가 아닌 상상의 공간을 노래한다.
 
비가 옵니다.
밤은 고요히 깃을 벌리고
비는 뜰 위에 속삭입니다.
몰래 지껄이는 병아리같이.
- 주요한,「빗소리」부분
 
이 시는 봄밤에 내리는 빗소리를 노래한다. 일상인들의 시각에서 빗소리는 빗소리로 들릴 뿐이다. 그러나 시인은 ‘몰래 지껄이는 병아리 소리’로 상상한다. 뿐만 아니라 밤은 어미닭처럼 깃을 벌리고, 비는 어미닭 품에서 지껄이는 병아리가 된다. 요컨대 ‘뜰 위에 내리는 비’가 이 시에선 ‘몰래 지껄이는 병아리’처럼 속삭인다. 봄밤에 내리는 비는 이렇게 다정하고 기쁘고 따뜻하다. 시는 이렇게 상상력의 세계를 강조하고 상상력의 세계는 과학적 진리도 아니고 종교적 진리도 아닌 이른바 미적 진리를 추구한다.
그런 점에서 현대시의 기능은 상상력에 의한 미적 공간을 창조함에 있다. 그러나 이런 근대 미학이 심화되면서 시인들은 이렇게 현실과 다른 시적 공간을 사랑하는 태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언어 자체에 관심을 두게 된다. 시인들은 부패한 일상적 언어를 순화하고 정화시키는 일도 하지만 일상적 언어의 가치나 기능과는 다른 시적 언어의 가치와 기능을 추구하고, 심하면 일상적 언어를 파괴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파괴가 노리는 것은 일상적 언어를 초월하는 전혀 새로운 언어이고,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시인들이 추구하는 게 그렇다.
앞에서 보기로 든 ‘빗소리’는 일상어를 순화한, 그런 점에서 때 묻지 않은 언어이다. 그런가 하면이 시의 언어, 곧 시적 어법은 일상적 어법과 다른 시적 어법을 보여준다. ‘밤’을 어미닭에 비유하고, ‘빗소리’를 병아리 소리에 비유하는 게 그렇다. 그러므로 시적 언어는 시적 어법을 뜻한다. ‘병아리’라는 낱말은 일상인도 사용하고 시인도 사용한다. 그러나 사용하는 방법이 다르다. 일상인의 경우 ‘밤’은 그대로 ‘밤’이지만 시인의 경우 ‘밤은 고요히 깃을 벌린다’ 그러니까 말하는 방법, 어법이 다르다.
비유는 시적 어법의 출발이고, 이런 비유가 발전하면 상징, 아이러니, 역설 등 여러 가지 어법이 드러난다.이 문제는 뒤에 다시 살필 예정이다. 결국 시가 언어 예술이라는 자각이 심화되면서 우리는 시적 언어의 특성에 대해 공부해야 하고, 이런 언어의 가치와 기능에도 관심을 두어야 한다.
 
<참고 문헌>
이승훈,『이승훈의 알기 쉬운 현대시작법』(북인, 2011) pp. 17-19.
 
 위의 내용과 관련하여 다음 동시를 읽고 감상해 보자.
그림자에도 빛깔이 있네
하청호
 
봄날이네
벚꽃나무 밑에
아기가 곤히 자고 있네
그림자가 이불처럼
아기를 덮고 있네
 
이불 위로
벚꽃송이 떨어지네
수놓듯
수놓듯
그림자에 분홍 꽃 곱네
 
그림자에도
아름다운 빛깔이 있네.
 
 
 
철없는 개나리꽃 엄마
권영세
 
기다리던 새봄과
늘 함께 와서
정말 반가웠는데
 
생뚱맞게
겨울 나뭇가지에
노란 꽃송이 몇 개를
피워 놓을 게 뭐람.
 
저 어린 것들을
찬바람 쌩쌩 부는
바깥에 내 보내
입술 파르르 떨게 하는
 
요즘 개나리꽃 엄마는
참 철이 없어.
 
4강 시인이란 무엇인가?
 
시인은 시를 쓰는 사람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시인을 보는 사람, 견자見者, 광기에 홀린 사람으로 정의한 바 있다. 이때 본다는 것은 시인의 사유와 영감이 시인 자신을 초월해서 자신도 모르는 어떤 초월적인 것에 근거함을 의미한다. 이렇게 자신도 모르는 어떤 힘에 의해 사물을 보고 세계를 보기 때문에 시인은 광기에 홀린 자가 되고, 신비한 영감에 지배받는 자가 되고, 이른 바 견자가 된다. 따라서 시인은 일상인보다 크고 높고 귀중한 힘이 부여된 자로 인식된다.
 
시인에 대한 이런 인식은 틀린 것이 아니다. 사실 시인은 일상인과는 다르게 세계를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상상한다. 그러나 이런 특이한 감각, 정서, 사유, 상상은 따지고 보면 모든 인간에게 조금씩 있게 마련이고 시인은 이런 이상한 능력을 일상인들 보다 더 신뢰하고 믿고 개발할 뿐이다. 그리고 이런 능력은 그 후 낭만주의 시대에는 상상력이라는 이름으로, 현대에는 무의식이나 환상이라는 이름으로 바뀌면서 아직도 시인의 기본 조건으로 간주된다. 그런 점에서 시인에 대한 인식 역시 시대마다 다르고 이 시대적 차이가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근대 문학 초기만 하더라도 이광수가 말한 것처럼 시인 혹은 문인의 조건은 대학을 중퇴할 것, 연애에 실패할 것, 폐결핵을 앓을 것,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울 것, 장발이고 얼굴이 창백할 것, 가난할 것 등으로 요약된다. 이런 조건들은 일종의 세기말 퇴폐주의를 반영하고 당시 일제 식민지 시대의 병든 청춘들의 내면을 반영한다.
 
그러나 오늘날 이 땅의 시인들은 이와는 다르지 않은가? 1960년대를 살던 시인들이 다르고 오늘날 21세기를 사는 시인들이 다르다. 사실 오늘 이 시대의 시인들은 누가 시인이고 누가 은행원이고 대기업 사원인지 모를 정도로 구별이 안 된다. 지금 시인들의 외모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사실 모든 외면은 내면을 반영하고, 얼굴은 마음을 반영하고, 스타일은 영혼을 반영한다. 요컨대 시인을 그가 살고 있는 시대의 현실과 문화에 의해 정의된다.
 
이 시대 시인들은 건강한 육체와 정신으로 살 수도 있고, 우울증에 시달릴 수도 있고, 보이지 않는 정신적 외상, 트라우마에 시달릴 수도 있다. 넥타이를 맬 수도 있고 매지 않을 수도 있고, 술을 마실 수도 있고 전혀 못 마실 수도 있다. 담배를 피우는 시인도 있고, 금연을 단행한 시인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시대엔 시인의 상투형, 그러니까 시인 하면 떠오르는 개성이 사라지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 시대엔 시인과 일상인이 같아진 것인가? 그리고 모두가 시인이란 말인가? 사실 이 시대엔 시인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다만 자신의 감정과 사고를 운문으로 혹은 시적 표현으로 전달할 수 있는 자가 시인일 뿐이다.
 
최소한 시인은 일상인들과 다르게 사물을 보고 사물들을 낱말로 연결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물론 이 시대엔 시만 쓴다고 시인이 되는 게 아니라 신춘문예, 문학잡지라는 제도를 통과해야 하고, 아니면 시집을 내야 시인 행세를 한다. 이건 근대 문학이 가진 근대 제도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의 황진이는 신춘문예에 당선한 적이 없지 않은가? 그러나 이런 사회 제도와 관계없이 시인은 본질적으로 상상력이 있어야 하고, 상상력은 훈련에 의해 개발되고, 시 쓰기도 훈련에 의해 개발된다.
 
<참고 문헌>
이승훈,『이승훈의 알기 쉬운 현대시작법』(북인, 2011) pp.21-22.
 
 다음 시를 읽고 감상해 보자.
편지
천상병
 
점심을 얻어먹고 배부른 내가
배고팠던 나에게 편지를 쓴다.
 
옛날에도 더러 있었던 일,
그다지 섭섭하진 않겠지?
 
때론 호사로운 적도 없지 않았다.
그걸 잊지 말아주기 바란다.
 
내일을 믿다가
이십 년!
 
배부른 내가
그걸 잊을까 걱정이 되어서
 
나는
자네한테 편지를 쓴다네.
 
 
 
공룡이 되고 싶은 날
노원호
 
너무 심심해서일까
오늘은 괜히 공룡이 되고 싶다.
 
날개가 달려 하늘은 나는 공룡이라면 더 좋겠지만
그게 아니면 티라노사우루스가 되어
횡단보도를 뚜벅뚜벅 걷다가
달려오는 자동차를 멈추어 보고
지팡이를 짚고 오는 할머니를 보면
훌쩍 안아서 횡단보도고 건너 주고
할머니가 고맙다고 과자라도 주면
야금야금 맛있게 먹어도 보고
그래도 심심하면
어기적어기적 뒷동산으로 올라가
크게 소리도 질러보고
그러다
푸른 하늘이라도 활짝 열리면
나는 드디어 공룡이 되었다고
크게 한 번 외치고 싶다.
 
 
5강 왜, 시 읽기와 시 쓰기인가?
 
시인이 되기 위해 혹은 시인으로서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은 시를 많이 읽는 일이다. 그것도 잘 읽는 일이다. 잘 읽는다는 것은 시를 시로서 읽어야 함을 의미한다. 시집은 신문이나 과학 교과서가 아니다. 신문을 읽을 때 관심을 두는 것은 무슨 일이 발생했는가, 말하자면 객관적 사실에 대한 정보이고, 과학 교과서를 읽을 때 관심을 두는 것은 과학적 진리나 법칙에 대한 이해이다. 그러나 시집에 실린 시를 읽는 것은 이런 읽기와는 다른 것인데, 어떻게 읽어야 할지 각자 한 번 생각해 보고 함께 이야기 나누어 보자.
 
 나는 시를 이렇게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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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삼
 
나는 발이지요.
고린내가 풍기는 발이지요.
하루 종일 갑갑한 신발 속에서
무겁게 짓눌리며 일만 하는 발이지요.
때로는 바보처럼
우리끼리 밟고 밟히는 발이지요.
 
그러나 나는
삼천리 방방곡곡을 누빈 대동여지도
김정호 선생의 발
아우내 거리에서 독립 만세를 외쳤던
유관순 누나의 발
장백산맥을 바람처럼 달렸던
김좌진 장군의 발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손기정 선수의 발
 
그러나 나는
모든 영광을 남에게 돌리고
어두컴컴한 뒷자리에서 말없이 사는
그런 발이지요.
풀잎
박성룡
 
풀잎은
퍽도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어요.
우리가 ‘풀잎’하고 그를 부를 때는,
우리들의 입 속에서는
푸른 휘파람 소리가 나거든요.
 
바람이 부는 날의 풀잎들은
왜 저리 몸을 흔들까요.
소나기가 오는 날의 풀잎들은
왜 저리 또 몸을 통통거릴까요.
 
그러나, 풀잎은
퍽도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어요.
우리가 ‘풀잎’, ‘풀잎’하고 자꾸 부르면,
우리의 몸과 맘이 어느덧
푸른 풀잎이 돼 버리거든요.
 
 
 
 
 
 
6강 시 쓰기엔 재주가 있어야 하는가?
 
선천적으로 뛰어난 재주를 타고난 사람을 천재라고 한다. 그러나 인간의 재주는 개발하기 나름이다. 천재가 탁월한 재능을 타고났다고 하지만 역사상 위대한 천재들은 재주에 앞서 일상인보다 더 노력한 사람들이고 고독한 사람들이고 근면한 사람들이다. 그런 점에서 천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천재는 만들어진다. 영국 속담에 ‘천재는 일종의 정신병’이란 말도 있다. 이런 말이 암시하는 것은 천재는 일상인과 다르게 사물을 보고 느끼고 상상하고, 이런 상상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자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천재는 자기의 능력을 특별한 렌즈로 초점을 맞추는 자이고, 재주를 낭비하지 않고 언제나 집중하는 자이고, 남들이 볼 때 다소 이상한 자이다.
사실 상상력이란 일종의 정신병, 곧 일상적 사유에서 이탈하고 이성적으로 수용될 수 없는 것들을 수용하고 종합하는 이상한 정신능력이다. 그리고 이런 정신세계를 탐구하는 자들은 남들과 다르기 때문에 고독하다. 그러면 상상력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시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어딘가
소리 있는 곳으로 귀 기울이는
예쁘디예쁜
열린 창이여
 
꽃이슬 젖은
새벽길 위에 서서
그 많은 소녀들은 아직도
기다리고 있을까
 
단 한 번인 목숨
누구를 위하여도 죽을 수 없는
그 자라가는 소녀들의
열린 창이여
- 김춘수,「곤충의 눈」
 
 
 
 
 
 
김춘수의「곤충의 눈」이다. 이 시에서 시인이 노래하는 대상은 ‘곤충의 눈’이다. 그러나 시인은 그것을 이상하게도, 말하자면 일상인들과는 다르게 ‘열린 창’에 비유한다. 시인은 ‘곤충의 눈’을 보면서 ‘열린 창’에 비유한다. 시인은 ‘곤충의 눈’을 보면서 ‘열린 창’을 상상하고, 2연에서 이런 상상은 ‘새벽길 위의 소녀’들로 발전하고, 마침내 3연에 오면 ‘곤충의 눈’은 ‘자라고 있는 소녀들의 창’이 된다. 물론 이때 ‘창’은 ‘눈’을 암시한다. 이상하지 않은가? 도대체 어떻게 ‘곤충의 눈’이 ‘열린 창’이고 ‘자라고 있는 소녀들의 창’이란 말인가? ‘빗소리’에서 ‘병아리’를 연상하는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다. 이런 상상은 시인의 고독과 남다른 직관과 사유의 소산이고, 자신의 삶에 대한 지속적 성찰로 매개한다.
요컨대 시의 천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시 쓰기를 좋아하고, 꾸준히 시 쓰기에 노력하고, 언제나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하기 때문에 고독한 자가 있을 뿐이다. 물론 시 쓰기에는 어느 정도 시에 대한 재능, 재주도 요구된다. 그것은 언어에 대한 남다른 감각과 상상력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재주는 살아가면서 대부분 낭비되기 때문에 재주보다 중요한 것은 지속적인 노력과 훈련이다.
따라서 재주라는 말보다 경향, 혹은 취향, 재미라는 말이 어울릴 것 같다. 사실 시는, 그리고 모든 예술은 고독한 놀이이고, 시인은 이런 놀이를 좋아하는 자이다. 축구 선수가 축구가 좋아서 볼을 차고, 과학자는 실험이 좋아서 밤늦도록 실험실에서 실험을 한다. 어디 운동선수와 과학자뿐인가? 사업가는 돈 버는 게 좋아서 사업을 하고, 학자는 공부하는 게 좋아서 공부를 한다. 돈을 벌려고 공부하는 게 아니고 이름을 내려고 공부를 하는 게 아니다.
시도 좋아서 쓴다. 좋지도 않고 취미도 없다면 돈도 안 생기고 괴로운 이 작업을 왜 하는가? 시인 혹은 시인을 지망하는 사람은 재주보다 시 쓰기에 취미가 있어야 하고, 재미를 느껴야 하고, 취향이 그래야 한다.
물론 사람마다 기호나 취미는 다르다. 시인은 시에 취미가 있는 자이고, 이 취미는 단순한 취미의 영역이 아니라 창조의 세계를 지향한다. 창조란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게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물을 남들과 다르게 보고 이 사물들을 언어로 남들과 다르게 연결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시를 쓰는 이유나 동기는 시인마다 다를 것이다. 도대체 그렇게 많은 시간을 시 쓰기에 소비하는 것은 무슨 가치가 있는가?
[참고 문헌]
이승훈,『이승훈의 알기 쉬운 현대시작법』(북인, 2011) pp.23-25.
 
 
 다음 시를 읽고 함께 이야기 나누며 감상해 보자.
꽃을 보려고
정호승
 
꽃씨 속에 숨어 있는
꽃을 보려고
고요히 눈이 녹기를 기다립니다
 
꽃씨 속에 숨어 있는
잎을 보려고
흙의 가슴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립니다
 
꽃씨 속에 숨어 있는
엄마를 만나려고
내가 먼저 들에 나가 봄이 됩니다
새들처럼
이옥근
 
파란 하늘이
자꾸만 높아지던
어느 날
 
느티나무
단풍 든 잎새들이
- 우리도 새들처럼 날아 보자
 
바람 타고
함성 지르며
새가 되어 날았습니다
 
7강 시인은 감각이 예민해야 한다
 
<1> 이미지의 유형
 
시는 관념이 아니라 감각을 강조한다. 관념을 전달하는 경우에도 직접 진술하기보다는 감각을 중심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미지가 중요하다.
이미지는 지각, 기억, 환상, 공상, 연상에 의해 태어난다. 하지만 모든 이미지는 감각에 호소한다는 특성을 공유한다.
인간만 해도 그렇다. 어떻게 태어났는가? 이런 문제도 중요하지만 태어난 인간들이 공유하는 특성도 중요하다. 탄생 과정도 중요하고, 탄생한 존재들이 공유하는 특성도 중요하다. 인간은 물론 어머니에게서 태어난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인간은 안방에서 태어나고, 병원에서 태어나고, 새벽에 태어나고, 아침에 태어나고, 저녁에 태어나고, 깊은 밤에도 태어난다. 순산인 경우도 있고, 난산인 경우도 있다. 태어나는 과정은 이렇게 다양하다.
그러나 이렇게 다양한 과정을 겪으며 태어났지만 인간이라는 공통점이 있고, 남성과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차이가 있다. 혹은 이런 성적 차이와 관계없이 모든 인간은 이성적으로 사유하고 도덕적으로 행동하고 감성적으로 사물을 지각한다는 특성이 있다. 그런 점에서 모든 인간은 이성, 양심, 감성을 공유한다. 이 세 가지 특성가운데 어느 것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이성적 인간, 도덕적 인간, 감성적 인간이 나타난다. 이런 분류는 시각이나 기준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이미지의 경우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미지도 지각에 의해 태어나고, 기억에 의해 태어나고, 환상에 의해 태어나고, 공상‧연상에 의해 태어난다. 그런 점에서 그 탄생의 과정은 복잡하고 차이가 난다. 그러나 감각적 실체 혹은 감각적 현실이라는 점에서 모든 이미지는 같다. 이 감각의 세계를 어떻게 나누느냐에 따라 여러 유형의 이미지들이 존재한다.
우리 신체의 감각기관은 눈, 귀, 코, 혀, 피부 등 다섯 가지이다. 이 다섯 기관을 이른바 5관官이라고 부른다.그러므로 이미지에는 시각적 이미지, 청각적 이미지, 후각적 이미지, 미각적 이미지, 촉각적 이미지가 있다.
물론 이밖에도 운동적(기관적) 이미지, 근육감각적 이미지, 공감각적 이미지 등이 추가된다. 이런 이미지들은 감각적 경험 자체를 전달한다. 이렇게 감각적 경험만을 목표로 하는 이미지를 시론詩論에서는 이른바 정신적 이미지라고 부른다.
이와는 달리 어떤 관념을 전달하거나 이미지를 전달하기 위해 사용되는 이미지는 비유적 이미지, 이미지가 상징이 되는 경우는 상징적 이미지 혹은 상징이라고 부른다. 
    
<2> 시각적 이미지와 청각적 이미지
 
첫째로 시각적 이미지는 눈에 보이는 사물들의 사물성, 말하자면 사물에 대한 관념이나 개념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사물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현대시는 음악보다 회화의 특성을 강조하고, 따라서 많은 현대 시인들은 회화성, 곧 시각적 이미지를 강조하고 나아가 이런 이미지로 한 편의 시를 구성하기도 한다.
다음은 시각적 이미지로 한 편의 동시가 구성된 보기이다.
 
서쪽 하늘에
붉은 노을 떴다
드넓은 호수에도
붉은 노을
 
누구일까!
 
하늘과 호수에
똑같이 찍어낸
저 엄청난 그림
 
데칼코마니.
- 하청호,「데칼코마니」전문
 
둘째로 청각적 이미지는 귀에 들리는 소리를 있는 그대로 옮기는 것이다. 그렇지만 시각적 이미지처럼 이미지 자체만으로 한 편의 시가 될 수는 없다. 따라서 설명적 기능을 하는 비유적 이미지인 경우가 많다.
다음은 청각적 이미지로 구성된 동시이다.
 
늦은 밤 부엌에서
보글보글, 보글보글…….
 
그게 무슨 소린지
넌 알겠니?
 
일 나간 우리 아빠
돌아오셨다고
찌개냄새가 좋아서
노래하는 소리야.
- 문삼석,「보글보글」전문
[참고 문헌]
이승훈,『이승훈의 알기 쉬운 현대시작법』(북인, 2011) pp.51-21.
8강 시인은 감각이 예민해야 한다
 
<3> 냄새촉각의 이미지
 
셋째로 후각적 이미지는 코에 닿는 감각을 강조한다. 시인이 후각적 이미지, 특히 향기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그러니까 향기의 상상력에 의해 한 편의 시를 구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후각적 이미지나 상상력으로 한 편의 시를 짓는 일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다.
다음 하청호 시인의「아버지의 등」을 읽고 후각적 이미지가 어떻게 한 편의 동시로 구성되었는지 살펴보자.
 
아버지의 등에서는/ 늘 땀 냄새가 났다.//
내가 아플 때도/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어머니는 눈물을 흘렸지만/ 아버지는 울지 않고/ 등에서는 땀 냄새만 났다.//
나는 이제야 알았다/ 힘들고 슬픈 일이 있어도/ 아버지는 속으로 운다는 것을/ 그 속울음이/ 아버지 등의 땀인 것을/ 땀 냄새가 속울음인 것을.//
- 하청호,「아버지의 등」전문
 
이 동시는 후각적 이미지를 제시하기 보다는 이런 이미지, 특히 냄새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한 편의 시로 구성하였다. 즉 아버지의 등에서 나는 땀 냄새, 즉 땀 냄새라는 후각적 이미지라는 말보다는 후각적 상상력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시인은 아버지의 등에서 나는 땀 냄새를 중심으로 상상력을 전개한다. 따라서 시인은 아버지가 힘들고 슬픈 일이 있어도 겉으로 소리 내어 울지 않고 속으로 운다는 것을, 그 속울음이 아버지 등의 땀이고, 그 땀 냄새가 바로 속울음이라고 상상했다.
넷째로 미각적 이미지는 혀에 닿는 감각의 전달을 목표로 한다. 이런 감각 역시 여간 세련되지 않고는 단순한 설명의 차원에 머무는 수가 많다.
다음은 김영기 시인이 쓴「단비와 쓴비」이다. 미각적 이미지가 어떻게 쓰였는지 살펴보자
 
가뭄에 목마를 때/ 찾아온 비는 단비/“야, 그 비 참 달다.”/ 물꼬 내러 가는 아빠//
달다고/ 말은 못해도/ 춤을 추는 나뭇잎.//
태풍을 등에 업고/ 오는 비는 몹쓸 비/“야, 그 비 참 쓰다.”/ 과수밭을 보신 아빠//
쓰다고/ 말은 못해도/ 눈물 맺은 이파리.//
김영기,「단비와 쓴비」전문
 
이 동시는 ‘달다’, ‘쓰다’라는 맛을 나타내는 형용사를 써서 가뭄의 단비와 태풍과 함께 오는 비를 중심으로 시를 구성하였다. 여기서 비가 ‘달다’, ‘쓰다’라는 표현은 식물의 입장이 아닌 단지 시인의 상상일 따름이다.즉 가뭄에 와서 식물에 고마우니까 ‘단비’이고 세찬 비바람을 몰고 와서 식물에 해로우니까 ‘쓴비’이기 때문이다.
다섯째로 촉각적 이미지는 신체, 주로 신체 표면에 닿는 감각을 전달한다. 부드럽다, 딱딱하다, 물렁하다,단단하다, 꺼칠하다 등으로 표현되는 이미지이다.
다음은 권영세 시인의 동시「손때」이다. 이 동시에 촉각적 이미지가 어떻게 쓰였는지 살펴보자.
 
시골집 농기구 광 속에/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적 연모들이/ 가지런히 벽에 걸려있다.//
지금은/ 일손 없어 쉬고 있는/ 겹겹 손때 묻은/ 괭이, 삽, 가래, 호미……//
이제는/ 그 날의 주인도 떠나고 없는/ 괭이로 텃밭을 고른다.//
이마에는 어느 새 땀방울이 맺히고/ 문득 손바닥으로 전해 오는/ 어느 할아버님의 손길인가.//
잠시 일손 멈추고/ 얼굴은 모르지만/ 손잡이에 스며있는/ 따스한 정을 느껴 본다.//
권영세,「손때」전문
 
이 동시에는 어느 곳에도 촉각적 이미지에 해당하는 말이 없다. 다만 ‘문득 손바닥으로 전해 오는/ 어느 할아버님의 손길인가.’ 와 ‘손잡이에 스며있는/ 따스한 을 느껴 본다.’에서 밑줄 친 ‘손길’과 ‘정’이라는 말에서 촉각적 이미지를 짐작할 수가 있다. 시인은 앞의 ‘손길’과 ‘정’이라는 두 말을 중심으로 시의 메시지를 설정하고 있다. 이 말 외의 시적 표현들은 결국 ‘시골집 농기구 광속에 있는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적부터 겹겹 손때가 묻은 농기구’를 통해 조상의 손길과 따스한 정을 시에 담고자 하는 상황 전개를 위해 사용되었을 뿐이다.
 
[참고 문헌]
이승훈,『이승훈의 알기 쉬운 현대시작법』(북인, 2011) pp.51-21.
 
9강 우리는 비유 속에서 산다
 
시인은 감각이 예민해야 한다. 그렇지만 시 쓰기는 감각적 능력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사물에 대한 감각적 수용이 시인의 잠재적 능력이라면 이런 능력을 언어로 구현해야 한다. 따라서 시인에게는 특수하게 말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시 쓰기는 일상인들과 다르게 말하기, 다르게 쓰기에 지나지 않는다. 좀 더 심하게 말하면 시인은 말을 잘못 사용하는 자이고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는, 하지 않는 자이다. 일상인들은 ‘장미가 피었어’라고 말하지만 시인은 ‘장미는 타오르는 램프야’라고 말한다.
흔히 이런 말하기를 비유라고 한다. ‘장미는 타오르는 램프야’라는 표현에서 ‘장미’는 ‘램프’에 비유된다. 그러나 이런 표현은 일상인의 시각에서는 말이 되지 않고, 그런 점에서 비유적 표현은 일상적 어법에서 이탈하고 벗어나는 이상한 말하기가 된다. 그러나 이런 말하기를 통해 우리는 ‘장미’에 대한 새로운 감각, 새로운 의미를 알게 된다. 또한 답답한 세상을 신선하게 바라보고 느끼고 생각한다. 이런 표현을 통해서 시인이 독자에게 요구하는 것은 교육에 의한 사유를 통해 세상을 경험하지 말고 스스로 경험하라는 것, 그것도 사물을 새롭게 경험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하면 이런 비유적 표현은 시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우리의 삶은 비유 속에서 비유에 의해 비유와 함께 수행된다. 비유는 우리 주위를 감싸고 우리는 비유와 함께 삶을 영위한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사물들의 이름을 생각할 수 있다.
 
      ▪ 괭이갈매기         ▪ 물총새          ▪ 딱따구리
      ▪ 칼새                  ▪ 집게발톱        ▪ 강아지풀
      ▪ 비단풀               ▪ 애기풀           ▪ 할미꽃
 
위에 보기로 든 본래의 각 사물들은 모두 다른 사물에 의해 비유되었다. 이런 비유를 통해 우리는 각 사물들의 특성을 좀 더 명료하고 신선하고 구체적으로 이해한다. ‘괭이갈매기’의 경우, 갈매기는 괭이 곧 고양이에 비유되고, 그것은 이 갈매기 울음소리가 고양이 소리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물총새’의 경우엔 물새가 총알에 비유되고, 그것은 이 새가 물가의 나뭇가지에 앉아 있거나 공중의 한 자리에 떠서 물을 살피다가 총알처럼 날쌔게 물속으로 들어가 고기를 잡아먹기 때문이며, ‘딱따구리’의 경우엔 이 새가 딱딱한 부리로‘딱딱’ 소리를 내며 나무에 구멍을 내어 그 속의 벌레를 잡아먹기 때문이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이런 표현은 비유가 아니라 소리 상징에 속할 수도 있다. 그러나 ‘딱딱’ 소리를 그대로 새의 이름으로 한 점에서 이 새는 소리를 비유한다고 할 수도 있고 상징 역시, 비유의 한 유형이기 때문이다. ‘칼새’는 새가 칼에 비유되고, ‘집게발톱’은 발톱이 집게에 비유되며, ‘강아지풀’은 풀이 강아지에 비유된다. 그것은 이 풀이 여름에 강아지 꼬리 같은 이삭이 나오기 때문이다. ‘비단풀’은 바다 속에 자라는 풀로 비단에 비유되고, ‘애기풀’은 풀이 애기에 비유되고, ‘할미꽃’은 꽃이 할미에 비유된다.
요컨대 이런 이름들은 비유적 특성을 보여주고, 이런 비유적 표현이 강조하는 것은 각 사물의 특성에 대한 명료한 이해이다. 그런 점에서 비유적 표현은 결코 시인만이 독점하는 독과점적 표현 형식이 아니다. 일반인도 이런 표현, 곧 비유 속에서 산다. 이렇게 비유 속에서 산다는 것은 다른 삶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이름들, 이런 사물들, 갈매기, 물고기, 풀, 새들은 얼마나 많은 다른 상상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하는가? 그런 점에서 이런 사물들은 바로 시이고 혹은 시가 아니다. 아무튼 이런 사물을 통해 우리가 체험하는 것은 사물에 대한, 세계에 대한, 삶에 대한 생생한 감동이다.
 
 다음 시를 읽고 비유적 표현에 대해 생각해 보자.
빨래집게
한상순
 

입이 있어도
누굴 흉보지 않아
 
누가 뭐래도빨래 줄에
빨래가 널리면
 
그때
내 입은 번쩍 열리게 돼
 
그리고 덥석 문 빨래
함부로 뱉지 않지
 
 
 
 
 
 
내가 가지고 싶은 생각
조기호
 
내 생각은
동그랬으면 좋겠다.
굴렁쇠처럼
동네방네 맘껏 구르다가
누구라도 어깨동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 생각은
빵빵했으면 좋겠다.
공처럼
통통 튀어 오르다가
높다랗게 둥지 하나 틀었으면 좋겠다.
 
내 생각은
단순했으면 좋겠다.
한곳
깊은 땅속을 흐르다가
맑은 샘물이 되었으면 좋겠다.
 
 
[참고 문헌]
이승훈,『이승훈의 알기 쉬운 현대시작법』(북인, 2011) pp.67-69.
 
10강 직유도 직유 나름이다
 
비유는 두 부분으로 이루어지는 바 우리는 그것을 취의와 매재라고 부른다. ‘괭이갈매기’의 경우 ‘갈매기’는 취의이고, ‘괭이’는 매재이다. 취의란 비유의 주체, 말하자면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대상을 뜻하고 매재는 비유되는 사물을 뜻한다. 취의란 본래 말하려는 것을 의미하고 매재는 이 본래의 사물을 말하기 위한 수단, 즉 수레라는 의미이다.
또 하나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비록 우리의 삶이 비유로 이루어지고 비유 속에서 영위 되고 비유를 통해 전개된다. 하나 이미 우리가 알고 사회적으로 공유되고 있는 경우, 그런 비유를 상투적 비유 혹은 죽은 비유라고 한다. 한편, 상투형에 속하는 비유의 경우에도 관점에 따라서는 신선한 비유가 될 수도 있다.
직유는 말 그대로 두 사물을 유사성을 토대로 비교하는 방법을 의미한다. 직유는 흔히 취의와 매재 사이에‘-처럼’, ‘같은’, ‘-듯’ 등의 낱말들을 사용해서 비교되는 두 사물의 관계를 분명하게 알려준다. 그런 점에서 직유는 은유와는 다른 시적 효과, 이를 테면 사물에 대한 설명적‧해설적 기능이 강하다. 그러나 처음 시를 쓰는 초심자들은, 상상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시를 어떻게 쓰는지 모르는 사람들은 직유적 표현부터 공부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직유도 나름이다. 직유라고 해서 모두 사물에 대한 설명(‘우리 아내의 손은 솥뚜껑 같다’)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오월의 더딘 해 고요히 내리는 화단//
하루의 정열도/ 파김치같이 시들다/ 바람아, 네 이파리 하나 흔들 힘이 없니!//
- 오일도,「오월의 화단」부분
 
불 피어오르듯 하는 술/ 한숨에 키어도 아아 배고파라.//
수 접듯 놓인 유리컵/ 바쟉바쟉 씹는 대로 배고프리.
- 정지용,「저녁 햇살」부분
폭탄처럼 벌거벗은/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눈을 크게 뜨고//
보아라/ 우리는 불안과 죄의/ 바다를 건너/ 드디어 폭발했다//
- 이승훈,「사랑 1977」전문
 
위의 보기는 사물이나 관념에 대한 산문적 설명의 차원을 극복하고 뛰어넘고 또한 같은 직유라 해도 서로 다른 특성을 보여준다. 오일도의 경우, ‘하루의 정열’(취의)이 ‘파김치’(매재)에 비유되고, 이런 비유는 나른한 5월의 정서를 매개로 한다. 특히 5월의 화단, 바람도 불지 않고 해만 하염없이 내리는, 노곤한 그런 5월의 화단을 보면서 시인이 느끼는 정열은 정열이 아니라 정열의 소멸이고 정열이 시들어가는 느낌이다. 이런 느낌을 매개로 ‘파김치’가 선택된다. ‘파김치가 되었다’는 말은 기운이 몹시 지쳐 나른하게 되었음을 비유한다. 이 시에서는 취의가 정서나 관념으로 되어 있고 매재가 사물 혹은 이미지로 되어 있지만, 정지용의 경우에는 취의가 사물(술)이고 매재도 사물(불)로 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취의와 매재의 관계는
(1) 사물/사물 (2) 사물/관념 (3) 관념/사물 (4)관념/관념
 
같은 유형으로 나타나고, 시 쓰기의 초심자들은 (1)부터 단계적인 훈련을 해야 한다. 사물을 사물에 비유하기는 사실 쉬운 것 같지만(‘우리 오빠는 전봇대처럼 키가 크다’) 정지용의 시에서 알 수 있듯이 그렇게 쉬운 것도 아니다. 쉬운 것은 대체로 설명의 차원에 머물고 쉽지 않은 것은 사물에 대한 신비한 의미를 알려준다. 그런 점에서 정지용의 경우에는 은유적인 특성이 나타난다.
이 시에서 말하려는 것은, 취의는 ‘술’이라 했지만 다시 읽어 보면 표제 ‘저녁 햇살’을 전제로 할 때 취의는 이고, 따라서 시인은 ‘저녁 햇살’(취의)을 ‘술’(매재)에 비유한다. 그리고 이 ‘술’은 다시 ‘불’에 비유되기 때문에 결국 저녁 햇살(취의)/술(매재), 술(취의)/불(매재)이라는 이중적 직유 형식이 나타난다. 요컨대 저녁 햇살을 보면서 술을 생각하고, 이 술이 불처럼 피어오르는 것은 그것이 붉게 타고 있는 저녁 햇살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비유는 모두 ‘갈증’을 매개로 한다. 그러나 이런 술, 저녁 햇살, 피어오르는 불을 한숨에 마셔도 시인을 배가 고프다. 갈증은 계속된다. 그렇다면 밥을 먹어야 하나?
다음 이승훈의 시에 나오는 직유는 앞의 두 시인과는 다르다. 이 다름의 차이도 중요하다. 두 얼굴(취의)이 폭탄(매재)에 비유된 것은 ‘벌거벗다’는 낱말을 매개로 한다. 그러나 ‘폭탄처럼 벌거벗은 얼굴’이라는 표현은 난해하다. 그것은 이 시를 쓸 즈음 시인은 초현실주의 미학에 빠져 이성과 의식보다 무의식을 강조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 시를 그림에 비유하면 바다에 떠 있는 두 얼굴이 서로 맞대고 있고, 이 얼굴에 폭탄이 오버랩되거나 병치되는 이미지이다.
문제는 ‘폭탄’이다. 폭탄은 폭발한다. 그러니까 이 시는 사랑의 아름다움, 따뜻한이 아니라 ‘불안과 죄의 바다’를 건너 폭발하고 만 사랑을 노래한다. 한편 ‘벌거벗은’은 ‘폭탄’과 ‘얼굴’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 이른바 양행 걸림 기법이다. 한편 여기서의 ‘벌거벗은’은 어떤 가식, 장식, 속임, 꾸밈이 없음을 의미한다.
이런 직유는 두 사물의 결합이 의식의 차원을 넘어서는 일종의 초현실주의적 기법에 속하고 초현실주의는 의식이 아니라 무의식, 억압된 무의식, 욕망을 노래한다.
 
 다음 동시를 읽고 주제와 관련하여 생각해 봅시다.
뜻밖에
권영세
 
길을 가다가
뜻밖에 너를 만났지.
 
생각지도 않았는데
너무너무 반가웠어.
 
 
 
늘 만나는 그들과도
뜻밖에 너를 만난 듯
 
그렇게 반가웠으면
정말정말 좋겠어.
 
[참고 문헌]
이승훈,『이승훈의 알기 쉬운 현대시작법』(북인, 2011) pp.67-69.
 
14강 리듬은 시의 숨결이다
 
시 쓰기는 일상으로부터의 이탈을 의미하지만 한편 그의 이탈 행위, 곧 시 쓰기는 반복되고 시의 내용과 형식 역시 반복된다. 시의 주제나 소재 가운데 새로운 것은 별로 없고 옛날이나 오늘이나 비슷한 주제이고 시라는 형식 역시 크게 보면 소설이 아니라 시라는 점에서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그렇다면 시 쓰기에서의 반복은 어떤 것인지 살펴보자.
 
1. 낱말을 반복하라
반복은 시뿐만 아니라 산문, 연설 등의 경우에도 사용되고 이런 사용에 의해 미적 효과, 시적 효과, 주제 전달의 효과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의 경우 반복이 주는 미적 효과 및 시적 효과는 무엇이고 어떤 유형으로 나타나는가?
 
나비
나비
노랑나비
 
꽃잎에서
한 잠 자고,
나비
나비
노랑나비
 
소뿔에서
한 잠 자고,
나비
나비
노랑나비
 
길손 따라
훨훨 갔네.
- 김영일,「노랑나비」전문
 
이 동시는 전체가 여섯 개의 연으로 구성되었지만 의미구조로 보면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나비/ 나비/노랑나비’를 각 부분의 앞에 두고 그 뒤에 ‘꽃잎에서/ 한 잠 자고’ 와 ‘소뿔에서/ 한 잠 자고’, 그리고 ‘길손 따라/ 훨훨 갔네’라는 짜임이다. 동시를 소리 내어 읽으면 자연스레 운율이 살아나는 것은 ‘나비/ 나비/ 노랑나비’의 반복과 그 뒤의 글자 수를 같게 한 때문이다.
 
2. 구와 절을 반복하라
낱말이 아니라 구와 절이 반복되면서 한 편의 시가 완성되고, 시로서의 통일성과 리듬을 획득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런 구와 절은 시에서 주제를 암시하거나 계속 반복됨으로써 독자의 관심을 끈다. 구는 둘 이상의 낱말로 구성되지만 주어와 동사의 형식을 띠지 못하고 다만 절이나 문장을 수식하는 문장의 한 요소로 드러난다. 명사구, 동사구, 형용사구, 부사구 등이 있다. 한편 절은 주어와 동사의 형식, 곧 문장의 형식을 띠지만 완전한 문장이 되지 못하는 경우, 예컨대 주절, 종속절, 대등절 등이 있다. 먼저 구가 반복되는 경우,
 
밭을 갈아 콩을 심고
밭을 갈아 콩을 심고
꾸륵꾸륵 비둘기야
 
백양 잘라 집을 지어
초가삼간 집을 지어
꾸륵꾸륵 비둘기야
 
대를 심어 바람 막고
대를 쪄서 퉁소 뚫고
꾸륵꾸륵 비둘기야
-박목월,「밭을 갈아」일부
 
시의 전반부이다. ‘밭을 갈아 콩을 심고’는 대등절에 해당하지만 여기서는 다음 절이 생략된 형식이고 그러나 이런 절이 각 시행마다 반복되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명사구 ‘꾸륵꾸륵 비둘기야’가 각 시행마다 반복된다. 이런 반복을 흔히 후렴구라고 하는 바 이 시의 미적 효과는 절의 반복과 구의 반복, 특히 후렴구가 성취한다. 다음과 같은 명사구가 반복되지만 형식을 같고 내용은 일부가 변주되는 경우,
 
제일 높은 돌 위에 올라가 누운 제일 큰 자라.
제일 높은 돌 위에 올라가 제일 큰 자라 등판 위에 올라간
그 다음 큰 자라. 제일 높은 돌 위에 올라가
제일 큰 자라 몸통에 몸을 기댄 세 번째 자라.
- 박찬일,「웃기는 자라」부분
 
시의 앞부분이다. 네 개의 시행으로 되어 있지만 크게 보면 이 시는 ‘제일 높은 돌 위에 올라가 누운 제일 큰 자라’라는 명사구가 세 번 반복되면서 변주된다. 단순한 반복이 반복과 반복 사이를 강조한다면 이렇게 변주되는 반복은 변주 자체가 시적 의미를 암시한다. 시의 후반 역시 크게 보면 이런 형식의 변주로 구성된다. 다음 명사구의 반복의 경우, 
 
날 만든 것은 사랑
날 맞아준 사랑
날 요정으로 만들어준 사랑
그래 어디로 가버렸나
내가 사랑했던 그이
내게 기쁨을 주고
내게 꿈을 주고
날 춤추게 해주던 그이
…(중략)…
날 만든 것은 사랑
날 맞아준 사랑
날 요정으로 만들어준 사랑
나는 당신들을 짐승으로 만든다
기분 내킬 때마다
당신들의 사랑은 우스운 것
…(중략)…
 
 
날 만든 것은 사랑
날 부순 것도
날 버린 것도 사랑
내가 사랑했던 그이
어디로 가버렸나
어디로 가버렸나
어디로 나버렸나
- 프레베르,「날 만든 것은 사랑」
(김종호 역) 부분
 
시의 2,3,4연이다. 1연만 빼면 이 시는 명사구 ‘날 만든 것은 사랑’이 각 연마다 반복되고, ‘날 맞아 준 사랑’, ‘날 요정으로 만들어준 사랑’은 2회 반복된다. 그런 점에서 이런 명사구의 반복이 시의 주제를 암시하고 시에 통일성을 주고 리듬을 준다. 1연에서는 태어남과 삶에 대해 말 하는 바 ‘나’는 발가벗고 태어났고 태어난 대로 산다는 것. 다음은 절의 반복,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조랑말 발굽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다
- 박용래,「저녁눈」전문
박용래의「저녁눈」이다. 이 시에서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은 이른바 주절에 해당하고, 이 절이 각 시행마다 반복되고, 또한 서술어 ‘붐비다’로 각 시행이 완성된다. 한편 이 시는 같은 문장 형식이 반복되는 보기도 된다. 절의 반복 역시 변주되면서 반복되는 경우도 있다.
 
내가 맨 처음 그대를 보았을 땐
세상엔 아름다운 사람도 살고 있구나 생각하였지요
 
두 번째 그대를 보았을 땐
사랑하고 싶어졌지요
 
번화한 거리에서 다시 내가 그대를 보았을 땐
남모르게 호사스런 고독을 느꼈지요
 
그리하여 마지막 내가 그대를 만났을 땐
아주 잊어버리자고 슬퍼하며
미친 듯이 바다 기슭을 달음질쳐 갔습니다
- 조병화,「초상」전문
 
시의 전문이다. 각 연마다 종속절 ‘내가 그대를 보았을 땐’이 반복된다. 그러나 일반 문장에서는 이런 절이 종속적 기능으로 끝나지만 시의 경우 특히 이렇게 반복됨으로써 그대를 보는 순간이 강조되고 시에 통일성이 주어진다. 이 시에서는 ‘그대를 보는 때’가 순차적으로, 말하자면 시간적 순서로, 통시적으로 반복되지만 공시적으로는 반복되는 경우도 있다.
 
너를 본 순간
물고기가 뛰고
장미가 피고
너를 본 순간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너를 본 순간
그 동안 살아 온 인생이
갑자기 걸레였고
갑자기 하아얀 대낮이었다
너를 본 순간
나는 술을 마셨고
나는 깊은 밤에 토했다
- 이승훈, 「너를 본 순간」부분
 
 
이 시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같은 표현의 반복이지만 앞의 시와 이 시가 다르다는 점이다. 앞의 시는 시간적 순서를 따르고 이 시는 그런 순서가 아니라 공시성, 혹은 동시성을 강조하고 따라서 ‘너를 본 순간’에 나를 찾아오는 복잡한 정서, 상상, 관념을 노래한다.
 
3. 문장과 연을 반복하라
이상에서 한 편의 시가 낱말, 구, 절의 반복에 의해 통일성을 획득하고 미학을 획득하고 리듬을 획득한다는 것, 따라서 시에서 반복의 기법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끝으로 문장과 연의 반복,
 
거기서 무얼 하시나요 작은 아씨여
갓 꺾은 꽃을 들고
거기서 무얼 하시나요 처녀여
시들을 꽃을 들고
거기서 무얼 하시나요 고운 여인이여
떨어지는 꽃을 들고
거기서 무얼 하시나요 늙은 여자여
죽어가는 꽃을 들고
승리자를 기다리고 있답니다
- 프레베르,「꽃다발」(김화영 역) 전문
 
시의 전문이다. 1연에서는 시인 혹은 화자가 여인에게 묻고 2연에서는 여인이, 혹은 여인들이 대답한다. 시에는 한 여인이 아니라 여자의 일생을 압축하는 네 여자, ‘작은 아씨’, ‘처녀’, ‘여인’, ‘늙은 여자’가 나오고 네 여자가 ‘승리자를 기다리고 있다’고 대답하는 것이 유머러스하고 슬프고 사랑스럽다. ‘거기서 무얼 하시나요’는 반복되고 ‘작은 소녀여’는 변주된다. 그러나 문장이 변주되지 않고 반복되는 경우도 있다. 
 
강가에 키 큰 미루나무 한 그루 서 있었지
봄이었어
나, 그 나무에 기대앉아 강물을 바라보고 있었지
 
강가에 키 큰 미루나무 한 그루 서 있었지
여름이었어
나, 그 나무 아래 누워 강물 소리를 멀리 들었지
- 김용택,「나무」부분
 
시의 1,2연이다. ‘강가에 키 큰 미루나무 서 있었지’라는 문장은 5연까지 각 연의 첫 행에서 반복되고 이런 반복이 이 시의 통일성을 부여한다. 가을에는 기대서서 멀리 흐르는 강물을 보고, 겨울에는 강물에 눈이 오고, 다시 봄이 오면 그냥 기대 앉아 있었다는 것. 이상은 문자의 반복이고 다음은 연이 반복되는 경우,
배꽃가지
반쯤 가리고
달이 가네
 
경주군 내동면
혹은 외동면
불국사 터를 잡은
그 언저리로
배꽃가지
반쯤 가리고
달이 가네
- 박목월,「달」전문
 
이 시는 불국사 터를 잡은 언저리를 배경으로 달이 가는 풍경을 노래하지만 같은 연의 반복이 문제이다. 1연에서는 달이 강조된다면 3연에서는 불국사 터를 배경으로 가는 달이 강조된다. 따라서 같은 달이지만 1연에서는 달이 전경에 드러나고 3연에서는 달이 배경으로 드러난다. 
 
그대

기다리는
마음으로
그대

기다리는
마음으로
그렇게
잠이
들었다
 
 
이런 반복은 내용을 강조하기도 하지만 이 시의 경우 시간은 변하지만 아무 사건도 발생하지 않는, 따라서 한결같이 지속되는 정서나 관념의 흐름을 강조한다. 내가 그대를 기다리는 마음이 아니라 그대가 나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그러니까 그대의 마음과 내 마음이 하나가 되는 마음으로 잠이 드는 사람들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고 아름다운가? 대체로 많은 사람들은 나만 그대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잠이 들기 때문이다.
 
[참고 문헌]
이승훈,『이승훈의 알기 쉬운 현대시작법』(북인, 2011) pp.85-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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