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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운, "디지털시에 대한 이해", 한국시문학아카데미 특강 자료 외 2편
2018년 02월 03일 11시 04분  조회:3096  추천:0  작성자: 강려

「디지털 시」에 대한 이해

--디지털 시의 원리와 언어의 특성

 

심 상 운

 

1. 들어가는 글-디지털 시대의 문화감각

21세기 문화의 핵심 동력으로 자리 잡은 디지털(digital)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 없이 디지털 감각디지털 시를 말한다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나 다름없다따라서 디지털이 펼치는 놀라운 세계를 자기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디지털 시대의 문화에 대한 이해와 참여가 무엇보다도 선행되어야 한다.

현대사회에서 의사소통 방식은 아날로그 형식에서 디지털 형식으로 바뀌었고여기서 생기는 모든 변화를 통틀어 디지털 혁명이라고 한다혁명이라는 과격한 단어를 사용한 것은 컴퓨터 체계와 그에 따른 커뮤니케이션의 시스템 변화 때문이다 CD, 정보통신기기휴대폰개인컴퓨터(P.C.), 인터넷(Internet), 통신위성광섬유, HDTV, 디지털 영상 등영상을 공학적으로 처리하는 영상공학영상신호처리(Image Signal Processing) 등의 영역은 현대사회의 커뮤니케이션의 구조를 밑바닥에서부터 뒤바꾸는 근원적인 동력이 되어 사회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따라서 이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는 현대인들은 부지불식중에 생활 패턴사고방식감각감성언어 등에 변화를 겪으며 살지 않을 수 없다이러한 변화의 현상을 디지털 문화라고 하고디지털 문화를 향유하고 사는 사람들은 나이와 관계없이 디지털 세대라고 한다.

인터넷 네트워크 속의 이 세대는 새로운 정보기술의 활용능력의 차이로 구분할 수 있다이러한 디지털 세대의 특성은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인 요인에 의해서 움직이고소외에 짓눌리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함께 나누고 공유하는 집단의식을 가지고 있다그리고 강한 독립성과 감성을 드러내며지적 개방성을 나타낸다자유로운 표현확실한 소신혁신적 태도탐구정신즉각적인 반응공동 관심사에 대한 민감성은 햄릿 같은 아날로그 시대의 세대들과는 확연히 구분된다그들은 익명성에 숨어서 자신의 본래적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고 선입견에서 해방되어서 세대와 성()을 뛰어 넘기도 한다그리고 파도와 같이 무분별한 군종성(群從性)에 휩쓸리기도 한다그러나 그들은 자신들만이 통용하는 상징이 있으며 언어(문자)뿐만 아니라 모든 사용 가능한 커뮤니케이션을 사용하는 자기표현에도 익숙하다따라서 그들은 귀에 대응하는 라디오눈에 대응하는 신문 등 하나의 미디어에 하나의 감각능력으로만 대응하는 아날로그 시대의 ‘감각분할’ (그것을 한쪽으로의 미디어에 치중하는 모노미디어 Monomedia 라고도 한다.)의 불완전성에서 벗어나서 디지털의 ‘감각통합의 시대’ 에 사는 세대라고 정의할 수 있다인간의 몸 안에서 오감을 자유로이 융합하듯 하나의 미디어 안에서 사운드이미지텍스트데이터의 다양한 요소를 자유자재로 혼융하여 저장전달재생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특히 통제 범위를 넘는 전달성과 재생(재창조)성은 그 한계를 규정하기 어렵게 만든다.

고대 중국의 한 황제가 궁정 수석 화가에게 “벽화 속의 물소리가 잠을 설치게 한다.”고 궁궐에 그려진 벽화를 지워버리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그 이야기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인간은 원래 안(), (), (), (), (), (등으로 이루어진 다양한 감각능력을 응집시켜 수용하는 감성통합의 존재임을 암시한다그것은 디지털 시대의 문화감각을 향유할 수 있는 현대인의 자질로 연장된다.

이런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 변화의 중심 원리와 특성(디지털과 컴퓨터의 특성)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시 창작의 방법론을 모색하는 것은 현대시의 피할 수 없는 과제다. 그 이유는 시란 대상에 대한 정서의 표현이고새로운 해석이고이름붙이기이고혼란한 생각들을 질서화 하여 깨달음을 주는 것이라는 현대시의 이론에 디지털 시대의 독자들이 과거와 같이 언뜻 그대로 동의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시에 대한 이런 인식은 전통적인 서정시나지성의 기능을 우월하게 내세우는 모더니즘 시의 일반적인 경향에 대한 반동(反動)이다그것은 디지털 시대의 독자들은 시인이 안내하는 대로 끌려가고 설득을 당하는 것을 거부한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따라서 시를 의미의 예술에서 해방시켜서 의미보다는 감각과 이미지의 예술로 전환시키고 독자에 대한 일방적인 설득이 아닌 독자 참여의 공간을 확대시키는 시의 방법론은 시대적인 당위성을 갖는다그런 의미에서 디지털의 특성과 디지털 시대의 감성을 탐구수용하고 그것을 현대시의 표현기법으로 활용하는 것은 현대시의 새로운 길 열기라고 말할 수 있다.

2. 디지털의 컴퓨터 공학적 특성

 

디지털은 손가락을 뜻하는 라틴어 ‘digitus’에서 숫자 ‘digit, 2진법을 의미하는 ‘digital’이란 단어로 형성되었으며모든 계산을 ‘0 1‘켜짐과 꺼짐(on-off)‘있음과 없음’의 구조로 이해하는 방식이다그것은 아날로그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자료를 1,2,3,4,5,6...과 같은 연속적인 실수가 아닌특정한 최소 단위를 갖는 이산적인 수치를 이용하여 처리한다이런 원리를 지닌 컴퓨터의 정보처리 방식이 만들어내는 디지털의 특성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디지털은 정수로 이루어진 최소 단위들(unit)이기 때문에 분리와 합성에 의한 변화가 자유롭다그것은 물리적인 힘에 의해서 연속적으로 운용되는 아날로그에 비해 디지털은 숫자나 문자로 표시되는 *데이터(data)에 의해서 불연속적인 변화를 순간적으로 구현하기 때문이다디지털 카메라에서 화소(畵素)는 화소(畵素)의 위치와 색상을 숫자화 한 데이터에 의해서 구현된다이 데이터는 소리의 높이 성량 음색 등도 숫자로 처리하고 보존하기 때문에 언제나 정확한 소리의 재생과 전달이 가능하다.

수리적(數理的데이터로 처리되는 이 최소 단위들(unit)은 컴퓨터에서 문서와 통계 자료 뿐만이 아니라 음성 및 영상 자료까지 재편집 재창조를 할 수 있게 한다그것을 편집(edit)이라고 하는데사용자가 컴퓨터를 이용하여 어떤 문서를 작성하거나 흩어져 있는 여러 자료들을 필요한 형식에 맞추어 재배열하는 것을 말한다이 때 편집을 하기 위해 이용되는 워드프로세서 등의 편집 도구를 편집기 또는 에디터(editor)라고 한다따라서 디지털은 복제삭제편집이 간편하며복사물과 원본의 차이가 없다는 특징을 갖는다이 최소 단위들의 결합과 분리 즉 편집은 디지털의 기본적 특성이 된다.

그 대표적인 예는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을 만들어내는 컴퓨터 그래픽의 기능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컴퓨터그래픽은 어떤 그림의 부분을 떼어내고 다른 것들과 합성시켜서 원래의 그림과는 전혀 다른 그림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이 때 그림의 의미도 바뀌게 된다또 은행나무 뿌리와 버드나무의 줄기와 벚나무의 꽃을 합성(집합적 결합)하여 새로운 나무를 만들 수 있다현실세계에서 이런 변형은 실제 생명체의 유전자(DNA) 조작(생명공학)에 의해서 가능하지만디지털의 가상현실에서는 데이터의 조작(최소 단위들의 수리적 조합과 분리)에 의해서 순간적으로 구현된다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그 그림을 형성하는 단위의 데이터 속에는 원래의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여기에 탈-관념을 가능하게 하는 원천적인 근거가 존재한다이 가상현실의 세계는 가상적인 세계를 현실로 착각하게 한다영화 <쥬라기 공원>에 나오는 동물들은 버추얼 그래픽(Virtual graphic)이 만든 그림이다.

이 “버추얼”의 영상은 색깔모양 등을 마음대로 변화시킨다어떤 사람이 누워 있을 때그의 옷을 바꿔 입히기도 하고옷의 색깔을 변화시키기도 하고그 사람의 얼굴 팔 다리 등을 바꿀 수도 있다또는 그 사람의 주변 환경을 마음대로 바꿀 수가 있다또 현실세계의 소리의 일부 (새소리물소리바람소리 등)를 채집하여 그것을 여러 음계의 소리로 확대변형시키기도 한다아직 후각의 디지털화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멀지 않은 미래에 그것도 가능하다고 한다따라서 아날로그 시대에는 사진이 사실 확인의 증거가 될 수 있었지만 디지털 시대의 사진은 단순한 이미지가 될 뿐이다.

이런 디지털의 기능들은 모듈(module)화에 의해서 더 효과적으로 운영된다컴퓨터의 여러 부분에서 독자적 기능을 가진 교환 가능한 구성 요소로서 작용하는 모듈은 시스템을 구성하는 독립적 단위가 되어서 기능의 효과를 높이고 더 분화된 독자적 역할을 수행한다모듈은 컴퓨터에서 전체와 부분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제시하고 있다중앙통제의 시스템에 의해서 일괄적으로 정보가 처리(입력편집출력 등)될 때한 부분의 기능이 장애를 일으키면 그 장애로 인해서 전체적인 장애현상이 발생한다그래서 그런 비능률적 중앙통제의 기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기능을 분산하고 독립시켜서 시스템 전체의 능률을 강화하고 장애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구조가 컴퓨터의 모듈이다이 모듈은 건축 재료의 효과적인 사용을 위한 방법으로 고안된 것을 컴퓨터에서 프로그램 시스템의 구조에 응용한 것이다정밀한 조직의 네트워크 속에서 다른 부분과는 전혀 연관성이 없는 운용과 독립성을 갖는 모듈화의 특성은 새로운 프로그램(시스템)을 만들 때이미 만들어진 모듈을 가져다 쓰면 된다는 재사용성과 다른 부분과 연관이 없이 자기 일만 수행하기 때문에 기능을 고도화하고 확대하는데 있다그리고 이미 만들어진 모듈은 새로운 프로그램(모듈)을 생산하는 모체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이 모듈은 객체지향성에 의해서 독립된 영역을 구축한다.

디지털의 자료(데이터)는 아날로그에서 채집한 자료(화상소리 등)를 바탕으로 성립된다그것을 샘플링이라고(sampling 견본추출하는데아날로그의 소리가 디지털로 변화될 때 아날로그에 있던 노이즈(noise 잡음현상은 말끔히 제거된다그것은 디지털의 명료성을 나타내는 것이다그리고 디지털은 감각자체의 변화가 아니고 기법의 변화에 한정되기 때문에 고도의 디지털 그림(동영상)이나 음악의 감각은 아날로그를 지향한다는 것이다따라서 디지털의 단절적 현상(초기의 계단현상)은 아날로그의 연속적인 현상(경사진 언덕)으로 점차 복귀된다그것은 디지털시계가 외형상으로는 아날로그시계의 모양을 닮아 가는 것과 같다이 밖에 아날로그는 고갈되거나 변질되는데 비해 디지털은 무한히 재사용해도 고갈되거나 변질되지 않는다는 것도 디지털의 특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데이터(data- 컴퓨터가 통신해석 및 처리를 할 수 있도록 형성된 사실 및 개념의 표현을 어떠한 조건값 또는 상태로 나타내는 숫자나 문자)

 

3. 현대시에 나타난 디지털적인 요소

이상(李箱시에 나타난 디지털적 요소

현대시에서 1930년대 이상(李箱)의 시만큼 난해하면서도 많은 연구 과제를 던져주는 예는 찾아보기 어렵다그의 시 중에서도 대표적인 난해시(難解詩)로 꼽히는 시가「오감도烏瞰圖」(詩第一號)이 시가 난해한 이유는 현실적 관념으로는 해석할 수 없는 “불확실한 의미의 공간” 때문이다그래서 다양한 해석의 방법과 의미가 생산되었으며 앞으로도 누구나 도전해 볼 가치가 있는 매력적인 공간을 남겨놓고 있다그러나 그 “불확실한 의미의 공간”은 디지털의 특성과 만날 때 선명하고 명료한 공간이 된다그 특성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이 시를 구성하는 언어는 컴퓨터 모니터의 화면(글자나 그림)을 구성하는 디지털의 데이터(data)와 같다는 것.

2) 이 시의 언어들은 어떤 의미에도 감염되지 않아서(-관념분리와 결합을 통한 변형이 자유롭다는 것.

3) 이 시의 언어들의 결합은 집합적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4) 이 시가 표현하는 것은 가상현실의 영상 즉 추상적인 버추얼 그래픽(Virtual graphic)이라는 것.

5) 이 시는 컴퓨터 그래픽의 자유로운 그림 바꾸기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

十三人의兒孩가道路로疾走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適當하오)

第一의兒孩가무섭다고그리오.

第二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三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四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五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六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七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八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九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十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十一兒孩가무섭다고그리오.

第十二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十三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十三人의兒孩는무서운兒孩와무서워하는兒孩와그렇게뿐이모였소.

(다른事情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

 

그中에一人의兒孩가무서운兒孩라도좋소.

그中에二人의兒孩가무서운아孩라도좋소.

그中에二人의兒孩가무서워하는兒孩라도좋소.

그中에一人의兒孩가무서워하는兒孩라도좋소

(길은뚫린골목길이라도適當하오.)

十三人의兒해가道路를疾走하지않아도좋소.

-----이상(李箱)「烏瞰圖」(詩第一號)전문

디지털의 기본적 특성을 나타내는 이 다섯 가지의 개념에「오감도烏瞰圖」(詩第一號)를 대입해보면 이 시가 안고 있는 새로운 시의 공간이 열린다먼저 이 시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는 도로(道路)를 질주하는 13(十三人)의 아해(兒孩)(무서운 아해와 무서워하는 아해들)에 대한 해석이다그 아해(兒孩)들을 이 시를 구성하는 언어는 컴퓨터 모니터의 화면(글자나 그림)을 구성하는 디지털의 데이터(data)와 같다는 첫 번째 특성에 대입하면 그들은 고정된 의미가 없는 이미지 또는 재료(object)라는 디지털적 해석이 나온다따라서 시 속의 아해(兒孩)들를 수식하는 제1,2,3....13이라는 서수(序數)에도 어떤 의미가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이 확실해 진다그것은 이 서수(序數)작가가 임의로 지정한 추상적인 숫자라는 의미에서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따라서 제1의 아해를 제2의 아해로 바꾸어도 되고 제3의 아해를 제10의 아해로 바꾸어도 된다는 가설이 성립된다그것은 의미가 없는 서수(序數)로 표시된 이 시의 아해(兒孩)들은 시인이 독자들의 호기심을 유발시키고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의미와 무의미의 이중적 이미지가 들어 있는 재료(object)라는 판단의 근거가 된다따라서 무서운 아해와 무서워하는 아해를 “

하이퍼시와 포스트구조주의
 
                                          심 상 운
 
 
1, 롤랑 바르트의 이상적 텍스트와 하이퍼시의 구조적 특
 
프랑스의 문예비평가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는 구조주의적 분석에서 해체 비평으로 넘어가는 접점에 위치한『S/Z』(1970)에서 이음, 노드, 네트워크, 다중 경로 등의 개념을 사용하여 이미지들의 덩어리들(그의 말로는 lexia)로 구성된 이상적인 텍스트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이 이상적인 텍스트에서는 네트워크는 다양하고 상호작용적이며, 그들 중의 어떤 것도 다른 나머지를 초월할 수 없다. 이 텍스트는 기표(signifier)들의 거대한 별무리이지 기의(signified)들의 구조가 아니다.그것은 시작도 없다. 그것은 뒤집을 수 있다. 우리는 그것에 여러 입구에서 접근할 수 있다. 그것들 중 어느 것도 자기가 중심이라고 말할 수 있는 처지에 있지 않다. 그것이 동원하는 부호들은 눈이 미치는 한 확장된다. 그 부호들은 결정 불가능하다.”
 
그의 말은 텍스트의 의미에 내재적인 통일성이 전혀 없는, 다양한 언어가 기표의 표면으로 떠오르는 그가 상정한 이상적인 텍스트에 관한 것이지만 그것을 하이퍼시에 대입할 때‘기표(signifier)들의 거대한 별무리(이미지들의 덩어리들)’란 말과 함께 하이퍼시의 구조적 특성을 예리하게 집어낸 것 같아서 놀라움을 준다. 초기 구조주의에서 랑그(langue)를 말하면서‘저자(著者)의 죽음’을 지적한 바르트는 포스트구조주의에서는 독자들이 텍스트 속으로 들어가는 문이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과 독자들은 저자가 깔아놓은 기의(記意)에 구속되지 않고 텍스트의 의미부여과정을 자유롭게 개방하고 폐쇄해야 한다는 이론을 내세운다. 그의 이론은 독자들을 고정된 의미의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만든다. 그것은‘진리’나‘실재’에 대해 위압적인 강요를 하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언어에 대한 반발로 초기의 구조주의에서 전환된 1970년대의 포스트구조주의의 면모를 보여준다.
 
하이퍼시와 비하이퍼 시의 기본적인 차이는 비선형/ 선형, 비순차/ 순차, 다선구조/단선구조라는 대조적 형태에서 찾아진다. 따라서 하이퍼시에는 기승전결(起承轉結) 등 전통적인 시의 구조가 배제 되고, 새로운 연결구조가 성립된다. 그 구조는 독자들의 생각을 의미(정해진 정보)’로부터 벗어난 상상의 네트워크로 퍼져나가게 하는 구조다. 그 속에는 어떤 정해진 중심 즉 기의가 없다. 그것은 하이퍼시가 은유의 시가 아니고 환유(換喩)의 시 즉 기의가 아닌‘기표(記標)의 시’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저자에 의해 정해진 순서와 기의에 익숙해진 독자들은 기표만으로 끝나는 하이퍼시에서 당황한다.



하이퍼시의 기본구조는 이미지의 단위(unit)들로 형성된‘이미지의 집합적 결합’이다. 산발적으로 퍼져있는 이미지들은  ‘의식의 링크(link)’에 의해 연결된다. 이 링크는 하이퍼텍스트의 용어이지만 하이퍼시에서도 사용된다. 그 단위들은 한 단어 또는 몇 개의 단어일 수도 있고 독립된 이미지 또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이 단위들은 의식과 무의식이 섞여있는 의식의 흐름으로 형성된다. 땅속줄기들의 연결과 같은 개념으로도 인식되는 이 흐름은 무엇을 무엇과 연결시키며 어떤 상상(想像)이 다른 상상의 앞에 나오거나 뒤따라오는지를 결정하는데, 독자의 공간도 보장되어야 하기 때문에 다양한 방법을 수용하고 정해진 구조(경계)를 고수하지 않는다. 그것이 하이퍼시 구조의 특성이다. 따라서 하이퍼시는 전통적인 시에서 중요시하는 메시지(주제, 관념)의 전달보다 상상이나 공상(空想) 속의 현상(現象)에 대한 감지(感知)를 중요시한다. 따라서 고정된 기의에서 벗어나서‘이미지의 덩어리’를 감각하게 하는 하이퍼시에서는 어떤 의미를 전달하는 메시지는 이미지와 이미지의 충돌과 결합이 만들어내는 암시(暗示)에서 찾게 된다.
 
이러한‘무경계(無境界)의 기법’은 상상의 무한한 생산과 확산의 구조를 형성하는 기반이 되어 포스트구조주의의 이론가들(들뤄즈, 가타리)이 말한 '경계를 만드는 분절선(分節線)들의 감옥으로부터의 해방'과 상통한다. 층(層)이나 영토(領土)를 만드는 선(線)으로부터의 탈출과 해방은 인간의 전통적 의식에 혼란스러움을 수반하지만 그것이 인간의 무의식(無意識)의 사고(思考)와 연관된다는 점에서 자연(自然)에 더 가깝게 접근된다.
 
2. 하이퍼시와 리좀의 관계
 
20세기 후반 프랑스의 철학자, 사회학자, 작가인 질 들뢰즈(Gilles Deleuze, 1925년 1월 18일 ~ 1995년 11월 4일)는 펠릭스 가타리(Félix Guattari1930〜)와 위계적(位階的)이고 계층화, 영토화된 철학적 사고를 수평적 사고의 구조로 개혁하기 위해서『천 개의 고원』(1980년)에서 하나의 새로운 은유를 제안하는데 그것은 바로 리좀이다. 하이퍼시의 다선구조는 앞에서 언급한 탈-경계의 상상과 사유의 이미지로서 땅속줄기 즉 리좀(Rhizome)의 이론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땅 밑 줄기인 리좀은 뿌리나 곁뿌리와 전적으로 다르다. 구근(球根, bulbs)이나 덩이줄기(tubers)가 리좀이다. 뿌리나 곁뿌리를 가진 식물들도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보면 리좀 형태를 하고 있을 수 있다. 두더쥐 굴 같은 것도 그것이 가진 서식, 식량조달, 이동, 은신, 출몰하는 기능에서 보자면 리좀이다. 리좀 그 자체는 매우 다양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감자나 개밀(couchgrass)에서 잡초에 이르기까지 리좀은 가장 좋은 것에서 가장 나쁜 것까지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
   
리좀, 즉 수평으로, 사방으로 펼쳐지는, 중심이 없는 뿌리줄기식물(박하나무, 풀들)은 뿌리를 중심으로 위로 솟아나가는 위계적으로 조직화된 나무뿌리들과는 상반된 구조를 보여준다.곁뿌리나 잔뿌리들이 모이는 중심이 없는 덩이줄기들은 가지 또는 줄기는 서로 만나고 흩어지는 방식으로 접속하고 분기(分岐)하며 우발적, 역동적으로 뻗어나가는 생명력을 지닌다. 들뤄즈와 가타리는『천 개의 고원』에서 이런 리좀적 구조를 제시하면서 그들이 지향하는 새로운 개념을 표출하고 있다. "글쓰기는 의미작용(signifying)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것은 아직 오지 않은 영역을 측량하고 그곳의 지도를 만드는 것과 관계한다." 는 말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책의 형식으로도 드러내고 있다. 이 책의 <서언>에서 책의 형식을 다음과 같이 분명히 밝혀놓고 있다. "이 책은 장(章)이 아니라‘고원들(plateaus)‘로 이루어져 있다. 맨 마지막에 읽어야만 하는 결론을 제외하고는, 이 고원들은 어느 정도까지는 서로 독립적으로 읽힐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리좀을 통해서 새로운 형태의 글쓰기와 책의 개념을 제시하는『천 개의 고원』은 현대 철학의 한 복판에서 포스트구조주의의 탈-주체, 탈-중심, 탈-영토의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하는 강력한 의도의 표출로 인식된다. 이 책에서 리좀의 특성을 보여주는 여섯 가지 원리는 다음과 같다. 
 

<원리1, 원리2> 연결과 이질성의 원리(principles of connection and heterogenity)
<원리3> 다양체의 원리(principle of multiplicity)
<원리4> 의미작용 없는 단절의 원리(principle of asignifying rupture)
<원리5,원리6> 지도 제작과 전사(轉寫)의 원리 (principles of cartography and decalcom
ania)
 
<원리 1, 원리, 2> 연결과 이질성의 원리
 
"리좀 체계 내의 어떤 점이든 다른 점과 연결될 수 있고 연결되어야 한다." 리좀은 구조상 반위계적이며 수평적이다. 어느 것이 먼저고 어느 것이 나중이라고 할 수도 없고, 어떤 점은 다른 어떤 점과만 연결되어야 한다고도 말할 수 없다. 모든 점들은 연결되어 있고 또 연결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연결은 이질적인 것들 간의 연결이고, 이질적인 것과의 연결은 미지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된다. 따라서 하이퍼텍스트가 만들어 놓은 공간을 통과하는 모든 독자들은 새로운 경로를 찾는 탐험가, 미개의 땅을 찾아가는 모험가, 미지의 것에 대한 예언가의 경험을 하게 된다. 하이퍼시의 마디들(이미지)의 연결도 이와 같은 효과를 위한 것이다.
 
<원리 3> 다양체의 원리
 
"다양체는 주체도 객체도 갖지 않는다. 다양체는 결정들(determinations), 크기들, 그리고 차원들만을 가질 뿐이다. 그리고 여기서의 차원은 그 단계가 높아지기 위해 다양체의 본성이 변화되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하나의 모임(assemblage)은 정확히, 그 연결이 증가함에 따라 필연적으로 본성상의 변화를 겪는 다양체의 차원들의 이러한 성장이다. 리좀에는 구조, 나무, 뿌리 속에서 발견되는 것과 같은 점들이나 위치들(positions)이 존재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선들만이 존재한다." 이 이론은 하이퍼시는 위계적 구조가 강요하는 각각의 단위에 대한 고정된 해석을 거부하고,  다양한 이미지들과 그 이미지들의 집합(이미지 덩어리)이 빚어내는 새로운 세계와 감각을 중시한다는 것과 연결된다.
 
<원리 4> 의미작용 없는 단절의 원리
 
"리좀은 어느 한 지점에서 끊어지거나 산산히 부서지더라도 예전의 선들 중의 하나나 또는 새로운 선들 위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이 구절은 모든 리좀은 층을 만들고, 영토를 만들고, 의미작용을 수행하는 고정된 틀의 선들을 포함하고 있지만 그와 마찬가지로 또한 끊임없이 달아나는 탈영토화의 선들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선들이 파생될 때마다 리좀 안에는 단절이 있게 된다. 하이퍼시 속에도 의미작용을 하는 이미지와 의미작용을 거부하는 이미지들이 섞여 있다. 이 두 이미지들은 단절되기도 하고 연결되기도 한다.
 
<원리 5, 원리 6> 지도 제작과 전사(轉寫)의 원리
 
“지도를 갖고 길을 찾아가는 경우를 상상해 보자. 우리는 지도를 찢어서 다닐 수도 있고, 거꾸로 뒤집어서 볼 수도 있으며, 때로는 자기에게 필요한 새로운 정보나 기호를 그 위에 덧붙여 기록해 넣을 수도 있다. 여기서 지도는 실제 세계와 계속해서 맞닿는다. 지도는 그 자체가 리좀의 한 부분이다. 그리고 다양한 입구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것이 리좀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이다. 지도는 다양한 방식으로 세계와 맞닿아 있다. 지도는 벽에 그려질 수도 있고, 예술 작품처럼 구상될 수도 있고, 정치적 행동이나 명상의 일환으로 구성될 수도 있다.”
 
리좀의 원리에서 현실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지도(map)의 이미지는 가상공간을 바탕으로 하는 하이퍼시의 발상원리와 접합된다. 하이퍼시는 의식의 흐름 속에서 발생하는 이미지의 덩어리지만 현실과의 관계 속에 생명력을 얻는다. 그리고 시인과 독자의 관계를 암시한다. 시인이 지도를 만들어 내지만 지도(가상현실) 속에서 독자와 시인은 동반여행자가 되기 때문이다. 지도는 스스로의 내부에 갇혀 있는 무의식을 복사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구성해 내고 창조한다. 지도의 에너지는 현실세계와 접점을 이루는데서 발생한다. 그리고 그것을 현실의 공간 속에 재현하여 수행(performance)함으로써 더 큰 에너지가 된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포스트구조주의의 들뤄즈와 가타리의 리좀 이론은 하이퍼시의 창작이론과 상통하는 접점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리좀의 이론은 하이퍼시 창작에 많은 영감과 동력을 제공한다. 컴퓨터의 하이퍼텍스트 원리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컴퓨터에서 벗어나서 독자적 형태를 취하고 있는 하이퍼시의 에너지는 의식의 흐름, 탈-관념(사물성), 다선구조, 가상현실(상상과 공상의 공간), 기표, 등을 바탕으로 한 새롭고 다양한 감각과 상상의 무한한 확대에서 분출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미지의 구조를 통합하고 변화시키는 들뢰즈와 가타리의 은유, 상상과 추리, 수평적 공간이동의 사상과 합치된다. 하이퍼시의 다양한 이미지들의 결합을 리좀에 대한 논의와 연결지어보면 그 유사성이 두드러진다. 리좀이 포스트구조주의의 탈-주체, 탈-중심, 탈-영토의 이념을 실현하는 어떤 시스템을 보여주기 위한 비유라면, 하이퍼시는 그러한 시스템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기표의 이미지 덩어리로 인식된다.
 
3, 하이퍼시와 무의식의 관계-자크 라캉의 무의식에 대한 이해
 
하이퍼시의 중심에는 의식의 흐름이 놓여 있다. 이 의식의 흐름은 의식과 무의식의 뒤섞음이 만들어내는 이중 삼중의 다차원의 공간을 만들어 내고 시간의 질서도 바꾸어 놓는다. 그리고 기표와 기의의 관계, 무의식의 기표, 기표의 미끄러짐, 기표가 기의에 닻을 내리는 곳 등은 하이퍼시를 창작하는 데만이 아니라 시인의 내면의식을 이해하고 즐기는 중심요소로 작용한다. 따라서 하이퍼시의 이론에서 20세기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Jacques
-Marie-Émile Lacan, 1901~1981)의 이론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20세기 중엽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Ponty), 레비-스트로스(Claude Levi-Strauss),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 등과 더불어 활동한 그는 ‘구조주의 정신분석학’의 대표자로서 프로이트(Anna Freud)의 정신분석학을 구조주의적 맥락에서 새롭게 재창조했으며, 거기에 인간존재에 대한 중요한 철학적 성찰을 가미함으로써 포스트구조주의의 핵심 인물로 부상하였다.
 
주체를 지배하는 무의식( unconsciousness)
 
무의식(unconsciousness)은 프로이트 학파에서 사용하는 정신분석의 용어로, 의식적인 자각을 할 수 없거나 의식을 통해 접근할 수 없는 사고, 기억, 욕망 등을 가리키는 마음의 세계이다.
 
“자크 라캉은 S. 프로이트를 구조주의적으로 재해석해서 무의식이 언어적으로 구조화해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개인의 말이 특히 정신과 의사와 환자 사이의 관계에서 동시에 두 수준에서 작용한다고 본다. 개인은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의식하면서 말하지만, 동시에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와 전혀 다른 것을 무의식적으로 얘기한다고 한다. 데카르트에 따르면 주체는 '코기토'(cogito:생각하는 나)에 의해 구성된다. 이때 의식적·반성적 주체가 자아라면 다른 하나는 누구인가? 라캉은 이 다른 하나를 무의식이라고 본다. 그는 무의식이 언어처럼 은유와 환유의 체계로 구조화해 있다고 본다. 이 무의식은 한 개체 안에서 그를 이끄는 타자(他者)이다. 이 타자는 자아에 앞서서 얘기하며 자아의 욕망을 통제한다. 개인들은 자신이 행위하고 말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이 구조가 말하게 하고, 행위하게 하고 욕망을 갖게 하는 것이다.”(-브리테니카 백과사전에서 부분발췌) 이런 사유는 인간을 이성과 주체로 정의했던 서구 사유의 전통(데카르트의 명제)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무의식의 발견이란 의식 속의 나가 모르는 나에 대한 인식이다.의식적인 나는 무의식의 나를 모르지만 무의식의 나에서 발생하는 움직임이 의식적 나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이 ‘무의식의 나’로 인해 인간은 원초적으로「분열증」환자가 된다는 것이 라캉의 주장이다.주체(나)가 의식적 주체와 무의식적 주체로 갈라진다는 사실 자체가 인간은 분열적 존재임을 증명한다.
 
라캉에 의하면 유아기(생후 6개월에서 18개월 사이)의 아이는 주체와 객체의 구분이 없는 <거울단계>에 있는 존재이다. 아이는 의식의 거울에 나타나는 파편화된 자아의 이미지 속으로 어떤 통일성을 투사하기 시작한다. 여기에서 아이는 하나의 ‘허구적인 이상’ 즉 자아를 만들어 낸다. 라캉은 이 세계를 상상계라고 한다. 이 상상적 경향은 아이가 자란 후에도 계속된다. 그러나 언어를 배우면서(언어의 바다 속에서) 아이의 의식 속에는 상징의 세계가 펼쳐진다. 라캉이 말하는 무의식 즉 타자(他者)는 어린아이가 상상계에서 상징계로 옮겨갈 때 어린아이의 무의식에 자리 잡는 언어, 기표의 세계다. 어린아이는 상상계의 달콤함과 환상을 포기하는 대신 상징계 안에서 인간으로서, 주체로서 일어선다. 그래서 타자란 ‘나와 남’을 분별하는 상호주체성의 장이기도 하다. 상징계에 들어서는 동시에 개인들의 무의식에는 상호주체성이 각인된다. 상호주체성이라는 말 속에는 바라봄과 보여짐이라는 두 개의 주체가 있다. 보여짐을 모르는 주체는 상상계인 <거울단계>에 있는 주체이기 때문에 대상을 실재로 믿고(동일시함)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소외된 나르시즘의 신경증환자에 해당된다. 이 고착에서 벗어나 상징계로 이행할 때, ‘나’는 바라봄과 보여짐의 두 가지 의식을 갖게 되고, 대상이 허구임을 깨닫고 다시 또 연기된 대상을 향해서 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상상계와 상징계의 차이가 이성에 환상을 개입시키는 작용을 함으로써 인간은 현실적인 면과 비현실적인 면을 공유하게 된다
 
무의식의 한 가운데에는 욕망(desire)이 자리 잡고 있다. 욕망은 인간의 근원적인 결핍에서 생긴 것이다. 결핍은 어린 아기가 어머니의 몸에서 분리되어 나올 때 형성되는 인간의 원초적 조건에 의해서 발생한다. 인간은 세상에 태어나는 최초의 사건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 기억은 인간의 무의식 속에 자리 잡는다. 따라서 라캉은 욕망이 지향하는 곳은 어떤 분열(결핍)도 없는 미지의 ‘신화의 세계’라고 한다. 의식 속에는 욕구(need)와 요구(demand)가 들어 있다. 욕구는 사물들을 향하지만 요구는 사람들을 향한다. 어린 아기는 장난감을 욕구하지만 무의식 속에서는 엄마의 사랑을 요구한다. 욕구와 요구는 합쳐지지 않는다. 그래서 기표와 기의 사이에는 간극이 생긴다. 라캉은 욕망과 욕구 사이에 ‘충동(pulsion)’을 넣는다. 충동은 욕구와 유사하지만 ‘성애적(性愛的)’ 모양을 띤다는 점에서 욕구와는 다르게 해석된다. 이 성애적(性愛的) 충동은 예술적 에너지의 원천되기도 하는데, 작가에 따라서 작품의 내면에 잠재되기도 하고 표면으로 솟구치기도 한다.
 
욕망은 영원한 그리움(결핍에 대한 충족희망)이라는 측면에서 인간을 살아가게 하는 동력이다. 시인이 시를 창작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욕망은 번뇌의 원천이기도 하다. 욕망의 허상을 실재라고 믿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때 욕망은 위험해진다. 그러나 자신의 시선 속에 타인을 억압하는 욕망의 시선이 깃들어 있음을 깨달을 때 좀 더 쉽게 타인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집착하는 대상이 허상임을 스스로 인식할 때 집착에서 해방된다. 따라서 라캉이 말하는 ‘실재계와의 만남’은 스스로가 욕망하는 주체임을 인정할 때 열리는 정신의 자유로운 경지이다. 그것은 불교경전『금강반야바라밀경』의 끝부분 “일체의 함이 있는 것들은 /꿈과 허깨비와 거품과 그림자 같으며/이슬 같고 또한 번개와도 같으니/마땅히 이와 같이 관할지니라.//와 상통한다.
 
라캉의 언어관
 
꿈은 억압된 욕망들의 배출구라는 프로이트의 이론은 라캉에 의해 재해석된다. 그는 왜곡되고 수수께끼 같은 꿈의 현상이 은유와 환유라는 기표의 법칙에 따른다고 한다. 기호에 대한 라캉의 설명에 의하면 기의는 ‘떠 있는’ 기표 밑에서 계속 ‘미끄러진다.’ 그의 이론에는 왜곡되지 않은 기표들은 없다. 이런 그의 정신분석은 무의식에 대한 과학적인 접근이라는 점에서 구조주의의 객관성과 부합된다. 따라서 그의 이론은 소쉬르의 구조주의 언어이론과 맥을 같이 한다. 먼저 기표들의 장(랑그, 언어의 법칙)이 존재하고, 각 개인의 무의식이 그 언어법칙에 따라 작동한다는 라캉의 언어인식은 의식으로부터 기의가 생기고 기의를 나타내기 위해 기표가 존재하는 것이라는 현상학적 언어인식(선관념후사물)과 상반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라캉에게서는 소쉬르에게서처럼 기표와 기의가 일대일의 대응 관계를 형성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존재와 사유의 일치’라는 전제 위에서 활동했던 소쉬르와 기의의 ‘미끄러짐’에 대해 이야기한 라캉 사이에 합치될 수 없는 지점이 생긴다. 소쉬르나 레비-스트로스에게는 기표/기의의 대응관계가 성립하며 때로 그 관계를 일탈하는 경우들이 존재하는데 반해 라캉에게는 기표와 기의는 처음부터 일치하지 않으며 다만 경우에 따라 기표가 ‘기의에 닻을 내리는 곳’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라캉은 기표들의 무의식적 구조를 분석함으로써 기의들에 접근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기의는 끝내 그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한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기의가 숨어 있다는 것, 기의는 언어가 포획할 수 없는 곳에 있다는 것, 그 곳은 상징계를 넘어선 실재계라는 것이다. 인간은 기표라는 껍데기를 사용하면서 그 껍데기에는 약속된 기의가 포함되어 있으리라는 생각을 할 뿐이다. 따라서 눈앞에 실재하는 것은 기표의 이미지일 수밖에 없다. 시가 지리 잡는 곳도 기표의 이미지다.
 
인간의 의식이 은유와 환유의 구조로 되어 있다는 것은 라캉이 시도한 프로이트의 재해석이다. 그에 의해 욕망은 환유의 기표로 부상(浮上)한다. 그러나 그것은 완벽한 기의를 갖지 못하고 끝없이 의미를 지연시키는 기표다.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 1930-2004)는 언어가 의미를 전달하지 못하고 계속 지연시키는 상태에 있다는 것을 지칭하는 뜻으로 차연(Différance)이란 용어를 만들어 사용했다. 이것은 지연시키다(to defer)와 차이짓다(todiffe
r) 두 개의 단어를 결합해 만든 단어다. 대상은 실제처럼 보이지만 허구일 뿐이다. 따라서 기표와 기의 사이에는 ‘기의의 심연’이 놓이게 된다. 불교에서 말이나 글로 표현하지 않고 마음으로 뜻을 전한다는 염화시중(拈華示衆)도 기표와 기의의 불합치를 대변하는 예가 된다. 라캉이 정신분석의 과정을 거쳐 무의식의 세계에서 인식한 기표와 기의의 불합치 관계는 하이퍼시에서 이미지와 대상과의 관계와 같다. 이미지는 이미지일 뿐 대상의 기표로서 고착되지 않기 때문이다.
 

월간 시문학 2011년 12월호 발표



재료 2

  하이퍼시와 포스트 구조주의 
 
                                                                                   심 상 운
 
 
1, 하이퍼시의 구조적 특성
 
구조주의자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는 S/Z(1970)에서 이음노드네트워크다중 경로 등의 개념을 사용하여 이미지들의 덩어리들(그의 말로는 lexia)로 구성된 이상적인 텍스트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이 이상적인 텍스트에서는 네트워크는 다양하고 상호작용적이며그들 중의 어떤 것도 다른 나머지를 초월할 수 없다이 텍스트는 기표(signifier)들의 거대한 별무리이지 기의(signified)들의 구조가 아니다. 그것은 시작도 없다그것은 뒤집을 수 있다우리는 그것에 여러 입구에서 접근할 수 있다.그것들 중 어느 것도 자기가 중심이라고 말할 수 있는 처지에 있지 않다그것이 동원하는 부호들은 눈이 미치는 한 확장된다그 부호들은 결정 불가능하다."
 
그의 말은 텍스트의 의미에 내재적인 통일성이 전혀 없는(다양한 언어가 기표의 표면으로 떠오르는) 그가 상정한 이상적인 텍스트에 관한 것이지만 그것을 하이퍼시에 대입할 때‘기표(signifier)들의 거대한 별무리(이미지들의 덩어리들)’이란 말과 함께 하이퍼시의 구조적 특성을 예리하게 집어낸 것 같아서 놀라움을 준다. 초기 구조주의에서 랑그를 말하면서‘저자의 죽음’을 지적한 바르트는 포스트구조주의에서는 독자들이 텍스트 속으로 들어가는 문이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과 독자들은 저자가 깔아놓은 기의에 구속되지 않고 텍스트의 의미부여과정을 자유롭게 개방하고 폐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론을 내세운다. 그것은 독자들을 고정된 의미의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만든다. 그것은 또‘진리’나‘실재’에 대해 위압적인 강요를 하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언어에 대한 반발로 초기의 구조주의에서 전환된 1970년대의 포스트구조주의의 면모를 보여준다
 
 
하이퍼시와 비하이퍼시의 기본적인 차이는 비선형선형비순차순차, 다선구조/단선구조라는 대조적 형태에서 찾아진다따라서 하이퍼시에는 기승전결(起承轉結등 전통적인 시의 구조가 배제 되고,새로운 연결구조가 성립된다그 구조는 독자들의 생각을의미(정해진 정보)’로부터 벗어난 상상의 네트워크로 퍼져나가게 하는 구조다그 속에는 어떤 정해진 중심 즉 기의(記意)가 없다그것은 하이퍼시가 은유의 시가 아니고 환유(換喩)의 시 즉 기의(記意)가 아닌기표(記票)의 시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그래서 저자에 의해 정해진 순서와 기의(記意)에 익숙해진 독자들은 기표(記票)만으로 끝나는 하이퍼시에서 당황한다.
 
하이퍼시의 기본구조는 이미지의 마디들 속에 산발적으로 퍼져있는이음(link)’에 의해 연결되는마디(node)들의 집합(이미지의 집합적 결합)’이다그 마디들은 한 단어 또는 몇 개의 단어일 수도 있고 독립된 이미지 또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이 마디들은 의식과 무의식이 섞여있는 의식의 흐름으로 형성된다이 흐름은 리좀의 선(line)과 같은 개념으로 인식된다그러나 무엇을 무엇과 연결시키며 어떤 상상이 다른 상상의 앞에 나오거나 뒤따라오는지를 결정하는데독자의 자유가 훨씬 더 많이 보장되어야 하기 때문에 하이퍼시의 구조는 다양한 방법을 수용하고 정해진 경계를 허용하지 않는다이러한무경계(상상의 무한한 생산과 확산)의 구조는 포스트구조주의의 이론가들(들뤄즈가타리)이 말한 '선(단선)의 횡포로부터의 해방'과 상통한다선으로부터의 해방은 혼란스러움을 수반하지만 인간의 사고과정(思考過程)을 닮았다는 점에서는 기승전결의 논리성보다 자연에 더 가깝게 인식된다따라서 하이퍼시에는 전통적인 시에서와 같이 메시지(주제관념)를 중시하지 않는다기의에서 벗어나서이미지의 덩어리를 감각하게 하는 하이퍼시에서는 어떤 의미를 전달하는 메시지를 말할 수 없다.
 
2. 하이퍼시와 리좀의 관계
 
하이퍼시의 다선구조는 리좀 이론과 관련된다. 20세기 후반 프랑스의 철학자사회학자작가인 질 들뢰즈(Gilles Deleuze, 1925년 1월 18일 ~ 1995년 11월 4)는 펠릭스 가타리(Félix Guattari1930)와 하이퍼텍스트의 수평적 구조를 표현하기 위해천 개의 고원(1980)에서 하나의 새로운 은유를 제안하는데 그것은 바로 리좀(rhizome)이다.
 
"땅 밑 줄기인 리좀은 뿌리나 곁뿌리와 전적으로 다르다구근(球根, bulbs)이나 덩이줄기(tubers)가 리좀이다뿌리나 곁뿌리를 가진 식물들도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보면 리좀 형태를 하고 있을 수 있다.두더쥐 굴 같은 것도 그것이 가진 서식식량조달이동은신출몰하는 기능에서 보자면 리좀이다.리좀 그 자체는 매우 다양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감자나 개밀(couchgrass)에서 잡초에 이르기까지 리좀은 가장 좋은 것에서 가장 나쁜 것까지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
 
리좀즉 사방으로 펼쳐지는중심이 없는 뿌리줄기식물(박하나무풀들)은 뿌리를 중심으로 바깥으로 퍼져나가는 위계적으로 조직화된 나무뿌리들과는 상반된 구조를 보여준다이런 리좀 적 구조를 제시하면서 들뤄즈와 가타리는 그들이 지향하는 새로운 개념을 표출하고 있다. "글쓰기는 의미작용(signifying)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그것은 아직 오지 않은 영역을 측량하고 그곳의 지도를 만드는 것과 관계한다." 는 말이 그것이다.  그리고 천 개의 고원의 형식으로도 드러내고 있다이 책의 <서언>에는 이 책의 형식을 다음과 같이 분명히 밝혀놓고 있다. "이 책은 장()이 아니라 "고원들"(plateaus)로 이루어져 있다맨 마지막에 읽어야만 하는 결론을 제외하고는이 고원들은 어느 정도까지는 서로 독립적으로 읽힐 수 있다." 따라서 리좀의 제시는 새로운 형태의 글쓰기와 책의 개념을 통해서 포스트구조주의의 탈-주체-중심-로고스의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하는 강력한 의도의 표출이라고 생각된다.천 개의 고원에서 리좀의 특성을 보여주는 여섯 가지 원리는 다음과 같다.
 
<원리1, 원리2> 연결과 이질성의 원리(principles of connection and erogenity)
<원리3> 다양체의 원리(principle of multiplicity)
<원리4> 의미작용 없는 단절의 원리(principle of asignifying rupture)
<원리5,원리6> 지도 제작과 전사(轉寫)의 원리 (principles of cartography and decalcomania)
 
<원리 1, 원리, 2> 연결과 이질성의 원리
 
"리좀 체계 내의 어떤 점이든 다른 점과 연결될 수 있고 연결되어야 한다." 리좀은 구조상 반위계적이다어느 것이 먼저고 어느 것이 나중이라고 할 수도 없고어떤 점은 다른 어떤 점과만 연결되어야 한다고도 말할 수 없다모든 점들은 연결되어 있고 또 연결되어야 한다그리고 이 연결은 이질적인 것들 간의 연결이고이질적인 것과의 연결은 미지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된다따라서 하이퍼텍스트가 만들어 놓은 공간을 통과하는 모든 독자들은 새로운 경로를 찾는 탐험가미개의 땅을 찾아가는 모험가,미지의 것에 대한 예언가의 경험을 하게 된다하이퍼시의 마디들(이미지)의 연결도 이와 같은 효과를 위한 것이다.
 
<원리 3> 다양체의 원리
 
"다양체는 주체도 객체도 갖지 않는다다양체는 결정들(determinations), 크기들그리고 차원들만을 가질 뿐이다그리고 여기서의 차원은 그 단계가 높아지기 위해 다양체의 본성이 변화되어야 한다고 요구한다하나의 모임(assemblage)은 정확히그 연결이 증가함에 따라 필연적으로 본성상의 변화를 겪는 다양체의 차원들의 이러한 성장이다리좀에는 구조나무뿌리 속에서 발견되는 것과 같은 점들이나 위치들(positions)이 존재하지 않는다거기에는 선들만이 존재한다." 이 이론은 하이퍼시는 위계적 구조가 강요하는 각각의 마디에 대한 고정된 해석을 거부하고 하나의 마디를 관통하는 다양한 선들(이미지)과 그 선들의 집합(이미지 덩어리)이 빚어내는 새로운 세계와 감각을 중시한다는 것과 연결된다.
 
<원리 4> 의미작용 없는 단절의 원리
 
"리좀은 어느 한 지점에서 끊어지거나 산산히 부서지더라도 예전의 선들 중의 하나나 또는 새로운 선들 위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이 구절은 모든 리좀은 층을 만들고영토를 만들고의미작용을 수행하는 선들을 포함하고 있지만 그와 마찬가지로 또한 끊임없이 달아나는 탈영토화의 선들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선들이 파생될 때마다 리좀 안에는 단절이 있게 된다하이퍼시 속에도 의미작용을 하는 이미지와 의미작용을 거부하는 이미지들이 섞여 있다이 두 이미지들은 단절되기도 하고 연결되기도 한다.
 
<원리 5, 원리 6> 지도 제작과 전사(轉寫)의 원리
 
“지도를 갖고 길을 찾아가는 경우를 상상해 보자. 우리는 지도를 찢어서 다닐 수도 있고, 거꾸로 뒤집어서 볼 수도 있으며, 때로는 자기에게 필요한 새로운 정보나 기호를 그 위에 덧붙여 기록해 넣을 수도 있다. 여기서 지도는 실제 세계와 계속해서 맞닿는다. 지도는 그 자체가 리좀의 한 부분이다. 그리고 다양한 입구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것이 리좀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이다. 지도는 다양한 방식으로 세계와 맞닿아 있다. 지도는 벽에 그려질 수도 있고, 예술 작품처럼 구상될 수도 있고, 정치적 행동이나 명상의 일환으로 구성될 수도 있다.” 리좀의 원리에서 현실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지도(map)의 이미지는 가상공간을 바탕으로 하는 하이퍼시의 발상원리와 접합된다. 하이퍼시는 의식의 흐름 속에서 발생하는 이미지의 덩어리지만 현실과의 관계 속에 생명력을 얻는다. 그리고 시인과 독자의 관계를 암시한다. 시인이 지도를 만들어 내지만 지도(가상현실) 속에서 독자와 시인은 동반여행자가 되기 때문이다. 지도는 스스로의 내부에 갇혀 있는 무의식을 복사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구성해 내고 창조한다. 지도의 에너지는 현실세계와 접점을 이루는데서 발생한다. 그리고 그것을 현실의 공간 속에 재현하여 수행(performance)함으로써 더 큰 에너지가 된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포스트구조주의의 들뤄즈와 가타리의 리좀 이론은 하이퍼시의 창작이론과 상통하는 접점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리좀의 이론은 하이퍼시 창작에 많은 영감과 동력을 제공한다. 컴퓨터의 하이퍼텍스트 원리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컴퓨터에서 벗어나서 독자적 형태를 취하고 있는 하이퍼시의 에너지는 의식의 흐름, 탈-관념, 다선구조, 가상현실(상상과 공상의 공간), 기표, 등을 바탕으로 한 새롭고 다양한 감각과 상상의 무한한 확대에서 분출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미지의 구조를 통합하고 변화시키는 들뢰즈와 가타리의 은유, 상상과 추리, 수평적 공간이동의 사상과 합치된다. 하이퍼시의 마디(node)를 리좀에 대한 논의와 연결지어보면 그 유사성이 두드러진다. 리좀이 포스트구조주의의 탈-주체, 탈-중심, 탈-로고스의 이념을 실현하는 어떤 시스템을 보여주기 위한 비유라면, 하이퍼시는 그러한 시스템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환유(기표, 이미지의 덩어리)로 인식된다. 하이퍼시에서 링크는 환유의 수평이동이다.
 
3, 하이퍼시와 무의식의 관계-자크 라캉의 무의식에 대한 이해
 
하이퍼시의 중심에는 의식의 흐름이 놓여 있다이 의식의 흐름은 의식과 무의식의 뒤섞음이 만들어내는 이중 삼중의 다차원의 공간을 만들어 내고 시간의 질서도 바꾸어 놓는다그리고 기표와 기의의 관계무의식의 기표기표의 미끄러짐기표가 기의에 닻을 내리는 곳 등은 하이퍼시를 창작하는 데만이 아니라 시인의 내면의식을 이해하고 즐기는 중심요소로 작용한다따라서 하이퍼시의 이론에서 20세기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Jacques-Marie-Émile Lacan, 1901~1981)의 이론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현대철학에서는 그에 대한 이해는 현대철학의 관문통과 의례라고도 한다.)
 
20세기 중엽 사르트르메를로-퐁티레비-스트로스바슐라르 등과 더불어 활동한 그는 구조주의 정신분석학의 대표자로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구조주의적 맥락에서 새롭게 재창조했으며거기에 인간존재에 대한 중요한 철학적 성찰을 가미함으로써 후기구조주의 의 핵심 인물로 부상하였다.
 
주체를 지배하는 무의식( unconsciousness)
 
무의식(unconsciousness)은 프로이트 학파에서 사용하는 정신분석의 용어로의식적인 자각을 할 수 없거나 의식을 통해 접근할 수 없는 사고기억욕망 등을 가리키는 마음의 세계이다.
 
자크 라캉은 S. 프로이트를 구조주의적으로 재해석해서 무의식이 언어적으로 구조화해 있다고 주장한다그는 개인의 말이 특히 정신과 의사와 환자 사이의 관계에서 동시에 두 수준에서 작용한다고 본다개인은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의식하면서 말하지만동시에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와 전혀 다른 것을 무의식적으로 얘기한다고 한다데카르트에 따르면 주체는 '코기토'(cogito생각하는 나)에 의해 구성된다이때 의식적·반성적 주체가 자아라면 다른 하나는 누구인가라캉은 이 다른 하나를 무의식이라고 본다그는 무의식이 언어처럼 은유와 환유의 체계로 구조화해 있다고 본다이 무의식은 한 개체 안에서 그를 이끄는 타자(他者)이다이 타자는 자아에 앞서서 얘기하며 자아의 욕망을 통제한다개인들은 자신이 행위하고 말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이 구조가 말하게 하고행위하게 하고 욕망을 갖게 하는 것이다.”(-브리테니카 백과사전에서 부분발췌이런 사유는 인간을 이성과 주체로 정의했던 서구 사유의 전통(데카르트의 명제)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무의식의 발견이란 의식 속의 내가 모르는 나에 대한 인식이다의식적인 나는 무의식의 나를 모르지만 무의식의 나에서 발생하는 움직임이 의식적 나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이 무의식의 나로 인해 인간은 원초적으로분열증환자가 된다는 것이 라캉의 주장이다주체()가 의식적 주체와 무의식적 주체로 갈라진다는 사실 자체가 인간은 분열적 존재임을 증명한다
 
라캉에 의하면 유아기(생후 6개월에서18개월 사이)의 아이는 주체와 객체의 구분이 없는 <거울단계>에 있는 존재이다아이는 의식의 거울에 나타나는 파편화된 자아의 이미지 속으로 어떤 통일성을 투사하기 시작한다여기에서 아이는 하나의 허구적인 이상’ 즉 자아를 만들어 낸다라캉은 이 세계를 상상계라고 한다이 상상적 경향은 아이가 자란 후에도 계속된다그러나 언어를 배우면서(언어의 바다 속에서아이의 의식 속에는 상징의 세계가 펼쳐진다라캉이 말하는 무의식 즉 타자(他者)는 어린아이가 상상계에서 상징계로 옮겨갈 때 어린아이의 무의식에 자리 잡는 언어기표의 세계다어린아이는 상상계의 달콤함과 환상을 포기하는 대신 상징계 안에서 인간으로서주체로서 일어선다그래서 타자란 나와 남을 분별하는 상호주체성의 장이기도 하다상징계에 들어서는 동시에 개인들의 무의식에는 상호주체성이 각인된다상호주체성이라는 말 속에는 바라봄과 보여짐이라는 두 개의 주체가 있다보여짐을 모르는 주체는 상상계인 <거울단계>에 있는 주체이기 때문에 대상을 실재로 믿고(동일시함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소외된 나르시즘의 신경증환자에 해당된다이 고착에서 벗어나 상징계로 이행할 때, ‘는 바라봄과 보여짐의 두 가지 의식을 갖게 되고대상이 허구임을 깨닫고 다시 또 연기된 대상을 향해서 가게 된다는 것이다.
 
무의식의 한 가운데에는 욕망(desire)이 자리 잡고 있다. 욕망은 인간의 근원적인 결핍에서 생긴 것이다. 결핍은 어린 아기가 어머니의 몸에서 분리되어 나올 때 형성되는 인간의 원초적 조건에 의해서 발생한다. 인간은 세상에 태어나는 최초의 사건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 기억은 인간의 무의식 속에 자리 잡는다. 따라서 라캉은 욕망이 지향하는 곳은 어떤 분열(결핍)도 없는 미지의 ‘신화의 세계’라고 한다. 의식 속에는 욕구(need)와 요구(demand)가 들어 있다.  욕구는 사물들을 향하지만 요구는 사람들을 향한다. 어린 아기는 장난감을 욕구하지만 무의식 속에서는 엄마의 사랑을 요구한다. 욕구와 요구는 합쳐지지 않는다. 그래서 기표와 기의 사이에는 간극이 생긴다. 라캉은 욕망과 욕구 사이에 ‘충동(pulsion)’을 넣는다. 충동은 욕구와 유사하지만 ‘성애적(性愛的)’ 모양을 띤다는 점에서 욕구와는 다르게 해석된다. 이 성애적(性愛的) 충동은 예술적 에너지의 원천되기도 하는데, 작가에 따라서 작품의 내면에 잠재되기도 하고 표면으로 솟구치기도 한다.
 


욕망은 영원한 그리움(결핍에 대한 충족희망)이라는 측면에서 인간을 살아가게 하는 동력이다. 시인이 시를 창작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욕망은 번뇌의 원천이기도 하다. 욕망의 허상을 실재라고 믿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때 욕망은 위험해진다. 그러나 자신의 시선 속에 타인을 억압하는 욕망의 시선이 깃들어 있음을 깨달을 때 좀 더 쉽게 타인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집착하는 대상이 허상임을 스스로 인식할 때 집착에서 해방된다. 따라서 라캉이 말하는  ‘실재계와의 만남’은 스스로가 욕망하는 주체임을 인정할 때 열리는 정신의 자유로운 경지이다. 그것은 불교경전『금강반야바라밀경』의 끝부분 “일체의 함이 있는 것들은 /꿈과 허깨비와 거품과 그림자 같으며/이슬 같고 또한 번개와도 같으니/마땅히 이와 같이 관할지니라.//와 상통한다.
 
라캉의 언어관
 
꿈은 억압된 욕망들의 배출구라는 프로이트의 이론은 라캉에 의해 재해석된다그는 왜곡되고 수수께끼 같은 꿈의 현상이 은유와 환유라는 기표의 법칙에 따른다고 한다기호에 대한 라캉의 설명에 의하면 기의는 떠 있는’ 기표 밑에서 계속 미끄러진다’. 그의 이론에는 왜곡되지 않은 기표들은 없다그의 정신분석은 무의식에 대한 과학적인 접근이라는 점에서 구조주의의 객관성과 부합된다.그의 이론은 소쉬르의 구조주의 언어이론과 맥을 같이 한다. 먼저 기표들의 장(언어의 법칙)이 존재하고각 개인의 무의식이 그 언어법칙에 따라 작동한다는 라캉의 언어인식은 의식으로부터 기의가 생기고 기의를 나타내기 위해 기표가 존재하는 것이라는 현상학적 언어인식(선관념후사물)과 상반된다 그러나 라캉에게서는 소쉬르에게서처럼 기표와 기의가 일대일 대응 관계를 형성하지 않는다여기에서 존재와 사유의 일치라는 전제 위에서 활동했던 소쉬르와 기표와 기의의 미끄러짐에 대해 이야기한 라캉 사이의 합치될 수 없는 지점이 생긴다소쉬르나 레비-스트로스에게는 기표/기의의 대응관계가 성립하며 때로 그 관계를 일탈하는 경우들이 존재하는데 반해 라캉에게는 기표와 기의는 처음부터 일치하지 않으며 다만 경우에 따라 기표가 기의에 닻을 내리는 곳이 존재한다는 것이다라캉은 기표들의 무의식적 구조를 분석함으로써 기의들에 접근할 수 있다고 말한다그러나 기의는 끝내 그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한다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기의가 숨어 있다는 것기의는 언어가 포획할 수 없는 곳에 있다는 것그 곳은 상징계를 넘어선 실재계라는 것이다인간은 기표라는 껍데기를 사용하면서 그 껍데기에는 약속된 기의가 포함되어 있으리라는 생각을 할 뿐이다따라서 눈앞에 실재하는 것은 기표의 이미지일 수밖에 없다시가 지리 잡는 곳도 기표의 이미지다.
 
인간의 의식이 은유와 환유의 구조로 되어 있다는 것은 라캉이 시도한 프로이트의 재해석이다그에 의해 욕망은 환유의 기표로 부상(浮上)한다그러나 그것은 완벽한 기의를 갖지 못하고 끝없이 의미를 지연시키는 기표다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 1930-2004)는 언어가 의미를 전달하지 못하고 계속 지연시키는 상태에 있다는 것을 지칭하는 뜻으로 차연(Différance)이란 용어를 만들어 사용했다이것은 지연시키다(to defer)와 차이짓다(todiffe r) 두 개의 단어를 결합해 만든 단어다대상은 실제처럼 보이지만 허구일 뿐이다따라서 기표와 기의 사이에는 기의의 심연이 놓이게 된다불교에서 말이나 글로 표현하지 않고 마음으로 뜻을 전한다는 염화시중(拈華示中)도 기표와 기의의 불합치를 대변하는 예가 된다라캉이 정신분석의 과정을 거쳐 무의식의 세계에서 인식한 기표와 기의의 불합치 관계는 하이퍼시에서 이미지와 대상과의 관계와 같다이미지는 이미지일 뿐 대상의 기표로서 고착되지 않기 때문이다.

 
 

 

구조주의 [構造主義, structuralism이론
 

좌장: 심 상 운
 
<20세기 중반 무렵에 등장한 구조주의 철학은 인간이 언어구조·무의식 등에 의해 구성된 존재임을 밝힘으로써 종래의 인간중심 사고를 거부한다. 즉 인간을 세계의 중심·주인으로 보고 그가 사물들 전체를 규정하고 그것들에 의미를 부여한다고 상정하는 관점(인간을 신의 대리인으로 보는 관점)을 비판한다. 이 관점은 주체, 주체의 자유, 이성, 역사와 역사의 발전 등이 신화에 지나지 않는 허구라고 주장함으로써 큰 충격을 주고 있으며 또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구조주의자 롤랑 바르트는 문학에서도 작가들은 기존의 글들을 혼합하는 능력, 재조립하거나 재배치하는 능력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작가는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글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이미 씌어진”언어와 문화의 방대한 사전에 의존할 따름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존 베일리는 구조주의 문학론이 문학작품은 작가의 창조적 삶의 산물이며 작가의 본질적 자아를 표현한다는 기존의 관념을 거부한다는 것, 소설이나 희곡이 ‘사물을 있는 대로 말해’주려 한다는 종래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는 다는 것, ‘작가는 죽었으며’ 문학 담론은 어떤 진리의 기능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이론을 지적하고 비판한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기호학의 죄는 픽션에서 진실에 대한 우리의 감각을 파괴 한 것이다. 훌륭한 이야기에서 진실은 허구보다 앞서고 허구와 분리될 수 있다”는 반구조주의의 이론을 펼친다. 따라서 구조주의는 문학에서도 철학과 같이 ’반인본주의‘를 지향한다고 볼 수 있다.
 
1. 언어학적 배경

언어는 그 자체 안에 독립된 상관구조를 갖고 있으며, 그 구조를 이루는 요소들은 글이나 말 속에서 작용과 반작용을 거듭함으로써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끌어낸다는 이론을 처음으로 제시한 사람은 스위스 학자인 페르디낭 드 소쉬르(1857~1913)이다. 소쉬르의 언어학은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구조주의 형성의 토대를 만들었다. 소쉬르는 20세기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처음으로 ‘체계의 개념’을 언어학에 도입시켰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구조주의적 사유방식의 기초가 만들어졌으며 그의 언어학적 모델은 다양한 사회 문화 현상들에 폭넓게 적용되었다. 그의 사후에 출간된〈일반언어학 강의 Cours de Linguistique Générale〉에서 그는 ‘언어학 연구의 대상은 무엇인가’와 ‘언어와 사물의 관계는 무엇인가’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세 가지의 이론으로 내놓았다. 그 첫째가 언어의 체계를 랑그(langue)와 빠롤(parole)로 구별한 것이다. 랑그는 한 언어의 발화들의 기저를 이루는 형성 규칙들과 패턴들의 총체이며, 빠롤은 실제적인 발화들 자체를 말한다. 따라서 랑그는 언어의 사회적 측면으로서 우리가 화자로서 ‘무의식적’으로 의존하는 공유체계인데, 반해서 빠롤은 이 체계가 언어의 실제 용례를 통해 개별적으로 구체화된 것이다. 이 랑그와 빠롤은 그의 언어학에서 기본적인 연구 대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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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언어학에서 언어의 통시태보다 공시태를 강조한 것이다. 공시태는 정해진 시점에서 작동하는 동시적 요소들 사이의 관계를 의미하며, 통시태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언어 체계와 그 요소들의 변화를 의미한다. 여기서 소쉬르는 통시태보다 공시태의 우월성을 강조한다. 그렇다고 하여 언어가 변한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특정한 시점의 언어 구성요소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보는데, 그 이유는 빠롤에 대한 랑그의 강조에서 찾을 수 있다. 그것은 어떤 곡이 다른 기회에 다른 오케스트라에 의해 연주되어도 같은 곡으로 인정되듯이, 빠롤은 같은 형식이 다른 실체로 실현된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랑그는 개인적인 화자가 처한 사회적인 맥락과는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기호들의 체계를 의미한다. 이런 랑그에 대한 논의에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에 대한 논의가 들어설 여지가 없다. 즉, 소쉬르는 언어 상태가 변한다는 사실도 언어가 공시적인 체계라는 사실에는 아무런 변화를 가져다주지 못한다고 보았다.
셋째는 언어를 기호의 체계로 본 것이다. 소쉬르에 따르면 언어는 기호들의 체계이다. 여기서 기호란 개념을 의미하는 시니피에(signifie')와 청각 이미지를 의미하는 시니피앙(signifiant)이 결합된 것이다. 즉, 시니피에(기의)와 시니피앙(기표)의 결합은 어떠한 필연성 없이 결합한 것으로 단지 그 언어집단의 사회적인 약속에 의해 자의적(恣意的)으로 결합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어떤 기호의 의미는 본래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라 그 기호가 속해 있는 체계 안의 다른 가치들과 맺는 관계에 따라 정해진다. 그러므로 기호의 의미에 관해서 말한다는 것은 그 기호가 언어체계 안에서 다른 기호에 대해서 갖는 ‘차이’에 관해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종래의 ‘기호=사물’의 모델이 ‘기호=기표/기의’의 모델로 바뀐 것이다. 이 모델에는 사물의 자리가 없다. 언어의 요소들은 낱말과 사물 사이의 결속의 결과로서 의미를 얻는 것이 아니라 어떤 관계체계의 일부로서만 의미를 얻는다는 것이다. 기호체계로서의 언어의 독자성은 ‘언어와 사물의 관계’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그것은 교통신호체계에서 신호가 ‘빨강-노랑-파랑’ 세 가지일 때, 기표(빨강)/기의(서시오), 기표(파랑)/기의(가시오), 기표(노랑)/기의 (기다리시오)의 약속체계를 갖는 것과 같다. 이때 체계는 일종의 임의적 약속으로 빨강과 서시오 사이에 고유의 절대적인 의미관계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의미는 색깔의 차이에 의해서 생길 뿐이다. 그것은 파랑과 노랑도 같다. 여기서 차이란 대립 및 대조의 체계 내에서 이루어지는 구별이다. 예컨대, 신호등 빨강은 파랑이 아님이며 파랑은 빨강이 아니라는 뜻이다. 음성언어도 소리의 차이로 형성된다. 음성언어의 최하위단위인 음소(音素)는 유의미한 음 즉 언어 사용자(발화자, 청취자)에게 인지·지각되는 음이다. 음성언어의 체계는 음들의 관계 즉 대립항들이 짝을 이룬 이항대립의 패턴으로 이루어진다. 음소의 차원에서 보면 이 대립항은 ‘비음/비(非)비음, 모음/비(非)모음, 유성음/무성음, 긴장음/이완음 등이 있다. 이런 언어관의 요점은 언어 사용의 기반을 이루는 것은 하나의 ’체계‘ 즉 구조라는 점이다. 이런 구조는 화자들이 내재화하고 있는 언어능력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저절로 드러나는 것처럼 보인다. <소쉬르의 언어모델은 언어는 사회적 맥락에서 고려되어야 한다는 점을 간과한 것으로 비판된다. 기표/기의의 관계는 자의적 관계이지만 실제로 말하는 사람들은 특정 기표들이 특정 개념들과 안전하게 연계되는 것을 바라기 때문이다.> 구조주의와 기호학은 동일한 이론적 영역에 속한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 견해다.
 
<미국의 철학자 C.S 퍼스는 기호를 1)도상적인 것(icon:유상기호, 어떤 대상의 화상 따위), 2) 지표적인 것(index:지표기호, 화살표 등으로 무언가를 지시하는 경우), 3) 싱징적인 <2>
 
것(symbol:상징기호, 약속된 기호로서 그 대표적인 것이 자연언어임)의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였다. 상징기호는 기호가 그 지시 대상과 자의적 관계를 가지는 것으로 언어가 여기에 속한다.
 
프랑스의 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는 언어학의 구조를 인류학의 연구방법으로 활용하였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문화체계의 보편적 유형은 인간 정신의 불변적 구조가 낳은 산물이다. 그의 인류학은 문화체계의 보편적 유형을 금제(禁制), 신화(神話) 혹은 제의(祭儀)의 기원이나 원인 대신 특정한 인간의 행위의 저변에 깔린 차이의 세계에서 찾는다. 친족관계를 구조적으로 분석할 때도 객관적인 혈연이나 혈족관계가 아니라 인간의 의식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인간의 정신활동을 규제하는 보편적 법칙이 모든 형태의 사회생활에 반영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의 인류학은 신화, 제식, 친족관계의 구조에 대한 ‘음소적(音素的)’ 분석을 발전시켰다고 말할 수 있다. 레비- 스트로스가 말하는 구조란 정신구조만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그는 친족관계, 신화에 나타나는 유형, 예술, 종교, 의례, 요리의 전통 등을 폭넓게 분석하여 문화체계의 보편적 유형이 존재한다는 증거를 발견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의 이론은 검증할 수도 없고 입증할 수도 없으며, 특히 역사의 진행과정을 무시하는 근본적인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이처럼 인류학의 예들이 보여주다시피, 구조주의자들은 인간이 구성한 의미체계의 ‘문법’, ‘구문’, 혹은 ‘음소적’ 패턴을 밝히려 한다.
 
『신화학』『유행의 세계』를 저술한 롤랑 바르트는 자신의 이론의 근거를 기호학에서 찾고 있다. 그는 인간의 모든 행위가 공인된 변별적 관계의 체계(기호)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원칙을 사실상 모든 사회적 행위에 적용시킨다. 이는 어떤 실제의 발화(빠롤)도 그 이면에서 작용하는 체계(랑그)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언어체계는 변화가 가능할뿐더러 그 변화는 발화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작용중인 언어체계의 규칙에서 모든 발화가 비롯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는 그것을 의복착용에 적용하고 있는데, 일상적인 의복착용을 개성의 표현이나 개인적인 스타일의 문제로 보지 않고 의복체계 내에서 찾는다. 어떤 한 개인이 만들어 내는 개성적인 의복스타일은 의복의 체계에서 그가 선택한 형태라는 것이다. 따라서 개성적인 스타일은 개인의 선택 능력을 나타낸 것이 될 뿐이다. 이것을 음식에 대입하면 식사 중에 선택된 음식의 연쇄는 메뉴라는 것이다. <이것은 작가의 언어선택 능력이 문학작품의 우열을 결정짓는다는 의미로도 유추될 수 있다.>
 
2. 구조주의 서술학

구조주의자들은 문학이 언어와 특별한 관계를 가진다는 데에 동의한다. 문학은 언어의 본성과 특수한 성질들에 주목한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구조주의 시학은 러시아 형식주의와 밀접하게 연결 된다. 구조주의 서술이론은 문장구성규칙(구문론)이 서술규칙의 기본 모델이 된다. 문장 단위의 가장 기초적인 구문론적 모델은 ‘주어+서술어’로서, “기사(주어)는 칼로 융을 죽였다(서술어)”는 식의 문장이 그 예다. 이 문장이 어떤 삽화나 전체 이야기의 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문장에서 ‘기사’를 특정한 이름(란슬롯이나 거웨인 따위)으로, ‘칼’을 ‘도끼’나 다른 것으로 바꾸어 넣어도 그 본질적 구조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문장구
<3>

조의 이런 유추에 따라 블라디미르 프로프는 러시아 동화의 이론을 개발했다. 한 문장의 주어를 전형적인 인물들(주인공, 악당 등)에 대입하고 ‘술어’를 이런 인물의 전형적인 행동에 대입하는 것이 프르프스식 접근법이다. 따라서 그의 31가지 기능의 이야기 구조는 하나의 모델을 형성한다. 이 구조는 논리적 연쇄 관계를 이루고 있다. 예를 들면,
 
25, 어려운 과제가 주인공에게 부과된다. 26. 그 과제가 해결된다. 27. 주인공이 인정을 받는다. 28. 가짜 주인공 혹은 악당이 폭로 된다. 29. 가짜 주인공에게 새 모습이 주어진다. 30. 악당이 벌을 받는다. 31. 주인공이 왕 위에 오른다.

이런 이야기의 모델은 특정지역이나 특정 장르(동화, 희곡, 소설, 시 등)에 국한되지 않는 일반적 보편성을 내포하고 있다는데 의미가 있다.
 
레비 - 스트로스는 언어학 모델을 사용하여 구조주의 방식으로 오이디프스 신화를 분석한다. 그는 신화의 단위를 신화소 (언어학의 음소 및 형태소와 비교됨)라 부른다. 신화소(神話素)는 언어학의 기본 단위처럼 이항대립으로 구성된다. 그가 구성한 오이디프 신화소는 1) 친족관계의 과대평가(오이디프스가 어머니와 결혼 한다. 안티고네가 법을 어기고 오빠를 매장한다)와 2)친족관계의 과소평가(오이디프스가 아버지를 죽인다. 에테오클레스가 형제를 죽인다.)이다. 그는 이 신화소를 통해서 연쇄적 관계의 이야기 구조가 아닌 신화에 의미를 부여하는 패턴을 만들어 내고, 그런 패턴을 적용하여 인간정신의 기본구조, 인간의 온갖 제도, 구성물, 지식의 형태들의 형성방식을 지배하는 구조를 밝힐 수 있다고 한다.

A.J. 그레마스는 그의 저서『구조주의의 의미론』에서 프로프의 일곱 가지 ‘행동영역’ 대신에 주체/객체, 송신자/수신자, 조력자/반대자라는 여섯 가지 역할 (행위자)을 세 쌍의 이항 대립으로 제시한다. 이 쌍들은 모든 서술에서 되풀이 되는 세 가지 기본 유형을 나타낸다. 1, 욕망, 탐색, 혹은 목표 (주체, 객체) 2, 전달 (송신자, 수신자) 3, 보조적 도움 혹은 훼방(조력자, 반대자). 이것을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프스 왕」에 적용하면 프로프의 범주를 사용할 때보다 더 깊이 있는 분석에 도달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그레마스는 형식주의자 프로프보다 더 본격적인 구조주의자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실체들 자체의 성격 대신 그것들 사이의 ‘관계’의 맥락에서 사고하기 때문이다. 그는 있을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의 연쇄를 설명하기 위해 이야기의 기본 구조를 ‘계약적(契約的) 구조’, ‘수행적(遂行的) 구조‘, 이접적(離接的) 구조’라는 세 가지의 구조로 묶는다. 이 중 첫 번째의 계약적 구조는 ‘계약(혹은 금지)→위반→징벌, 계약 없음(무질서)→계약수립(질서)’라는 구조로서, 오이디프스 서술이 여기에 해당된다. 오이디프스가 부친살해와 근친상간에 대한 금지를 위반하여 자신에게 벌을 내리는 것이 계약(금지)→위반→징벌의 구조다.

츠베탕 토도로프는 프로프와 그레마스의 성과를 종합하여 오이디프스의 신화를 ‘X는 왕이다. X는 Y와 결혼한다. Y는 X의 어머니다. X는 Z를 죽인다. Z는 X의 아버지다.’라고 다섯 개의 명제로 구조화 한다. 이 명제들은 연쇄체를 이루고 하나의 텍스트가 된다. 이 연쇄체
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텍스트의 세부를 구성한다. 예컨대, 끼워 넣기(이야기 속의 이야기,
<4>

옆길로 빠지기), 연결짓기(일련의 연쇄체들), 바꾸기(연쇄체들을 섞어짜기) 등도 가능하고 여러 방식들을 혼합한 경우도 있다. <이 연쇄체의 개념은 하이퍼시의 관점에서 주목된다.>

제라드 쥬네뜨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연구를 통해서 스토리, 담론, 서술의 세 가지 이론을 전개한다. 예를 들면 「아에네이드」2부에서 아에네이스는 청중에게 이야기하는 이야기꾼이고(서술), 하나의 언어적 ‘담론’을 제시하며, 그의 담론은 그 자신이 인물로 나오는 사건들을 재현(스토리)하는 것이다. 그는 서술의 세 차원을 동사의 세 가지 성질에서 끌어 낸 세 가지 상(相)(완료상, 진행상 따위.) 즉 시제, 법, 태(능동태·피동태·사동태 따위)와 연결시킨다. 그의 ‘법’ ‘태’의 구분은 시점이 초래하는 문제점을 해소시킨다. 예컨대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에서 주인공이자 화자인 핍은 성숙한 자아의 서술 태도를 통해서 어린 자아의 시각을 제시한 것이 그것이다. <김소월의 시「엄마야 누나야」도 이와 유사한 시점을 보여준다.>
이 밖에도 그는 서술을 1) 이야기와 모방, 2) 서술과 묘사 3) 서술(이야기)과 담론 등 이항대립을 통해 고찰한다. 첫 번째의 이야기와 모방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나오는 단순서술(발화자가 작가자신인 경우)과 직접모방(작가가 등장인물을 통해서 발화하는 경우)을 구별하는 것이다. 쥬네뜨는 이 구별이 유지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문학작품이 문학적 재현이라고 할 때, 작품 속 발화자가 작가 자신인 경우와 작중 인물의 경우를 구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이야기는 오직 이야기일 따름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 서술과 묘사는 서술이 행동, 사건 등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스토리에서 본질적인 것처럼 보이고 묘사는 보조적 장식적인 것 같이 보인다는 것을 비판한다. 그 예로 “그 남자는 탁자로 가서 칼을 집어 들었다.”라는 문장에서 명사와 동사가 서술적일 뿐 아니라 묘사적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세 번째의 서술과 담론의 대립은 주관적 채색이 배제된 순수한 서술이 있을 수 없음을 입증함으로써 이 대립을 해소한다. 어떤 서술이 아무리 투명하고 무매개적으로 보일지라도 판단하는 어떤 정신의 흔적이 전혀 없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서술과 담론의 대립을 해체하는 제라드 쥬네뜨의 이론은 자크 데리다가 해체적 철학의 문을 여는데 큰 영향을 준다. <이항대립을 해소하는 쥬네뜨의 주장은 구조주의보다 포스트구조주의에 적합한 이론이라는 점에서 문제를 던지고 있다.>
 
<자크 라캉은 S. 프로이트를 구조주의적으로 재해석해서 무의식이 언어적으로 구조화해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개인의 말이 특히 정신과 의사와 환자 사이의 관계에서 동시에 두 수준에서 작용한다고 본다. 개인은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의식하면서 말하지만, 동시에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와 전혀 다른 것을 무의식적으로 얘기한다고 한다. 데카르트에 따르면 주체는 '코기토'(cogito:생각하는 나)에 의해 구성된다. 이때 의식적·반성적 주체가 자아라면 다른 하나는 누구인가? 라캉은 이 다른 하나를 무의식이라고 본다. 그는 무의식이 언어처럼 은유와 환유의 체계로 구조화해 있다고 본다. 이 무의식은 한 개체 안에서 그를 이끄는 타자(他者)이다. 이 타자는 자아에 앞서서 얘기하며 자아의 욕망을 통제한다. 개인들은 자신이 행위하고 말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이 구조가 말하게 하고, 행위하게 하고 욕망을 갖게 하는 것이다.-브리테니카 백과사전에서 부분발췌>

<5>
 
3. 은유와 환유
 
구조주의는 실제 비평가의 해석상 적용을 위한 토대를 마련 해주는 몇 가지 사례를 보이고
있는데, 그것은 은유와 환유로 요약된다. 로만 야콥슨은 언어의 수직적 차원(랑그)과 수평적
차원(빠롤)으로 텍스트의 해석에 접근한다. 그는 수직적 차원에서는 서로 대체될 수 있는 요소들의 언어들을 제시한다. 그 언어에는 동의어와 반의어가 섞여 있다. 예를 들어 ‘오두막’이라는 말의 대체어로 ‘오막살이, 초가집, 대궐, 우리, 굴’ 등이 선택된다. 수평적 차원은 연쇄체를 이룰 수 있는 언어들의 결합이다. 예를 들면 ‘오두막은 타 버렸다.’ ‘오두막은 보잘것없는 작은 집이다’라는 식이다. 그는 수직적 차원은 은유, 수평적 차원은 환유와 상응함을 지적한다. 그리고 문학적 스타일도 은유적인 것이거나 환유적인 것 어느 한 쪽으로 경사되어 표현될 수밖에 없음을 주장한다. 야콥슨의 이론에 따르면 문학사조의 낭만주의→사실주의→상징주의는 스타일상으로는 은유적→환유적→다시 은유적인 것으로의 변화로 이해하게 된다.

데이비드 로지는 『현대적 글쓰기의 양식』에서 야콥슨의 이론을 현대문학에 적용했다. 그는 은유적→환유적→은유적의 순환 과정에 몇 단계를 추가하여 모더니즘과 상징주의는 본질적으로 은유적인데 비해 반모더니즘은 사실주의적이고 환유적이라고 한다. 넓은 의미에서의 환유는 한 연쇄체 혹은 한 문맥 내의 한 요소에서 다른 요소로의 전이를 말한다. 가령 우리가 ‘한 잔들 게’라고 했을 때 ‘잔’은 잔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잔속에 든 내용물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환유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문맥이 필요하게 된다. 야콥슨이 환유를 사실주의와 연결시킨 것도 사실주의가 하나의 전체를 환기시키기 위해서 대상의 여러 양상, 부분, 문맥상의 세부묘사 등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야콥슨의 이론을 쓸모 있게 다듬은 데이비지 로지는 “문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하면서도 다음의 예를 제시한다.
 
사전검열을 받는 영화에서는 성교의 영상적인 비유로 불꽃놀이와 해안에 부서지는 파도가 애용되는데, 그 절정이 독립기념일의 해변에서 일어났다면 환유적인 배경으로 위장될 수 있겠지만, 크리스마스 이브에 시내의 곁채에서 일어난다면 두 말할 여지없이 은유적인 것으로 받아질 것이다.
 
이 예로 보아서 야콥슨의 이론을 너무 고지식하게 사용할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된다.
 
4. 구조주의 시학
 
1975년「구조주의 시학」을 저술한 조나단 킬러는 처음으로 프랑스의 구조주의를 영미의 비평론에 융합시키려고 시도했다. 그는 언어학이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위한 최상의 인식모델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소쉬르의 랑그와 빠롤 이론에서 벗어나서 노엄 촘스키의 ‘언어능력’과 ‘언어수행’ 사이의 구별을 선택했다. 언어능력은 언어체계에 대한 지식에 무의식적으로 동화되어 그 지식을 바탕으로 올바른 문장을 만들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는 이 같은 관점이 의미하는 것을 문학 이론에 적용시킨다. 독자들은 교육제도를 통해 문학의 <6>
문법을 습득하게 되고, 시인과 작가는 독자들의 언어 능력에 기반을 둔 읽힐 수 있는 것을
쓰기 때문이다. 그것은 문학이론의 초점을 텍스트에서 독자로 이전하는 것이다. 그는 “시학의 진정한 대상은 작품 자체가 아니라 그 작품의 가해성(可解性)이다. 우리는 작품이 어떻게 이해될 수 있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독자로 하여금 그 작품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은
연중의 지식 내지 관습이 형성 되어야 한다.”고 한다. 따라서 그는 텍스트를 이해하는 규칙은 텍스트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독자의 해석 행위 속에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한다. 따라서 그는 해석의 다양성에 좌절하지 않고 통일성을 발견하고자 한다. 그 이유는 어떤 특정한 시에서 통일성을 발견하는 방식이 저마다 다를 수 있지만 그들이 찾는 의미의 기본형식들(즉 통일성의 기본 형식들)은 동일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런 해석의 관습(동일성)을 구조주의의 특성에 따라 통시적이고 역사적인 의미 체계가 아닌 정태적·공시적 의미 체계에서 찾으려 한다. 그러나 그의 텍스트 접근법에서 가장 난제는 독자가 사용하는 해석의 규칙을 얼마나 체계화할 수 있느냐하는 문제다. 개별 텍스트에 관해서 한 시기에 산출할 수 있는 다양한 해석들을 설명해 낼 단일한 틀, 단일한 규칙과 관습의 틀을 생각해 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1988년「기호 만들기」에서는 순수 구조주의에서 벗어나 문학적 능력의 제도적 이념적 토대에 대한 근본적인 탐구를 하게 된다.
 
구조주의는 텍스트의 언어란 작가 정신의 반영이며 작가의 언어는 그의 개성과 분리 될 수 없다는 일반적인 인문주의적 유형을 비판한다. 그리고 언어는 현실을 파악하는 능력을 가진 무엇이라는 관점을 가진 신비평(新批評)에 동조하고 도전한다. 이는 태초에 말씀(언어)이 있었고 말씀이 텍스트를 창조했다는 언어의 선재성(先在性)을 의식하는 것이기도 하다. 전통적이고 낭만적인 문학론에서 작가는 텍스트의 기원이며, 창조자이자 조상이다. 그러나 구조주의자들에 의하면 쓰기에는 기원이 없고 언어가 모든 개별적 발화보다 앞선다. 따라서 구조주의는 텍스트와 작가를 분리할 뿐 아니라, 역사적인 변화의 문제를 텍스트에서 배제하고 이야기의 구조 자체와 한 시대를 지배하는 미학 체계에만 관심을 기울인다. 그래서 구조주의자들은 작가의 언어가 현실을 반영한다고 하지 않고, 언어의 구조가 현실을 산출(産出)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의미의 근원은 작가와 독자의 경험이 아니고 언어를 지배하는 작용과 대립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구조주의는 언어(문학)의 탈신비화(脫神秘化)라고 말할 수 있다.
 
<구조주의(構造主義, structuralism)는 인문학과 사회 과학 등 다양한 학문에 영향을 미친 사상흐름(사조)이다. 근본 요소들 사이의 상호 관계 위에 정신적, 언어적, 사회적, 문화적 '구조'가 성립하며, 그 구조에서 특정 개인이나 문화의 의미가 생산된다고 본다. 본디 언어학에서 출발하였지만 점차 그 적용 범위를 넓혀가면서 언어, 문화, 정치, 사회를 분석하는 가장 유명한 접근방법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위키백과)>
 
* 이 글은 라만 셀던· 피터 위도 우슨· 피터 부루커 지음 정정호· 윤지관· 정문영· 여건종 옮김『현대 문학이론 개관(A Reader's Guide to Contemporary Literary Theory)』의 4. 구조주의 이론을 정리·요약한 것에 사전의 지식을 보충한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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