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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 후기구조주의 시각으로 詩 바라보기
2018년 10월 02일 17시 16분  조회:193  추천:0  작성자: 강려

퍼온 자료임

후기구조주의 시각으로 詩 바라보기

- 문학이론 입문의 후기 구조주의

 

 

  언어는 소쉬르의 생각처럼 닫힌 체계를 구성한다는 생각에서 더 나아가 모든 기호들은 다른 기호들과 구별되기 위해 흐르는 물처럼 시간에 따라 연속적으로 변해간다는 것을 공부하기로 한다. 소쉬르의 랑그는 한계 지어진 의미구조를 암시한다. 그렇다면 그 언어의 어느 곳에 경계선을 정할 것인가? 소쉬르의 논점을 보면 기호는 분리, 즉 분절[分節]의결과라는 것이다. 이것은 시니피앙 과 스스로 구별하기 때문이다. 시니피앙은 계속해서 시니피에로 변형되며 그 역(逆)도 마찬가지이다.

구조주의가 기호를 지시대상(referent)으로부터 분리되었다면 후기구조주의로 알려진 이런류의 사고방식은 더 나아가 시니피앙을 시니피에로 분리한다. 기존 구조주의는 '의미가 기호안에 직접적으로 현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의미는 쉽게 고정될 수 없으며 하나의 기호 안에서만 완전하게 현존하는 것이 결코 아니고, 오히려 현존과 부제가 함께 끊임없이 명멸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한다. 그러므로 하나의 텍스트를 읽는다는 것은 목걸이의 구슬을 세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명멸과정을 추적하는 것에 가깝다는 말이다. 이것은 언어가 시간에 따라 문장은 유보되며 지체되거나 변해가는 과정이다. 하나의 시니피앙은 다른 시니피앙에 넘겨주고 그것은 또 다른 의미의 전달된다. 읽어 내려간 텍스트는 앞서 올 텍스트에 영향을 주고 지난 텍스트는 앞서올 텍스트에 영향을 준다. 이렇게 개방적으로 흘러가는 것에 대해 완전히 순수하거나 완전히 독립적인 기호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쓰는 소설이나 시에서 독자에게 말하려는 전달의미가 완전하게 드러날 수 없다는 말이다. 작자의 의미는 항상 분산 분리되며 처음의 의도와 다르게 읽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글의 허구가 상대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것 에 대해, 왜곡과 굴절이 없을 수 없다고 한다.

하물며, 내가 쓴 글에도 나의 의식과 생각이 동일하지 않을 수가 있는데 나 외에 다른 독자나 일반이 나의 글을 읽을 때 정확한 의미전달은 그리 중요치 않다. 그냥 어렴풋하게 알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글쓰기는 2차적인 소통양식이며 삭막하고 기계적인 육성기록으로 나의 의식으로부터 한 단계 떨어진 이유로 플라톤에서 레비-스트로스에 이르러 서양철학의 전통은 생명력이 없고 소외된 표현방식이라고 비방하기 까지 했다. 그들이 육성에 많은 의견을 제시하였으나, 육성 또한 글쓰기의 한 형식일 수밖에 없다.

언어의 실제 과정 속에서 언어의 왕복운동, 좌우운동, 현전과 부제, 사이의 운동을 놓치고 있다. 후기구조주의가 "텍스트라는 말로 가리키는 것은 거미줄 같은 복잡성에 기인한다. 사람도 각기 자체의 정체성이 확립되려면 그에 비견되는 대상이 있을 것이다. 그것처럼 언어도 절대적으로 경계를 구분하고 확립하려하는 고전적 해체주의가 등장했다. 이 이데올로기는 특유의 사유방식임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데올로기는 허용 하는 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자아와 비 자아, 참과 거짓 , 이성과 광기, 주변과 중심 표면과 심층사이에 확실하게 엄격한 경계를 좋아했다.

이렇듯 해체비평의 전술은 텍스트가 자신의 지배적인 논리체계를 어떻게 혼란시키게 되었는가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해체주의는 텍스트가 곤경에 처하고 뿔뿔이 흩어지고 자기모순을 일으키는 '징후적인' 특징들에 혹은 아포리아(aporia) 즉, 의미의 막다른 골목에 집착하므로 써 이를 잘 보여준다.

구조주의에서 후기구조주의에로 발전 모습은 1960년대에 들어와서 K.마르크스, M.하이데거, S.프로이트 등의 견해에 대립하여 프랑스에서 새로이 형성된 사상적 조류이다. 그러나 실존주의나 마르크스주의와 같이 명확한 형태를 갖춘 사상적 경향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인류학자, 사회학자인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철학자 M.푸코, 리시안 세바크, L.알튀세르, 정신분석학자 J.라캉 등이 구조주의를 주창한 주요 멤버이다. 그중에서 1960년대 발표한 "이야기의 구조적 분석 입문"이란 중요한 시론은 야콥슨과 레비스트로스의 방식을 따르며 이야기 구조를 별개의 단위, 기능, 지표(인물의 심리 분위기, 등등...을 지시하는 것)들로 나뉜다. 이야기는 시간에 다라 전개되지만 비평가들은 비시간적인 설명틀속으로 흡수시킨다. 바르트에 있어서 '건강한 기호는 자신의 자의성에 기를 기울이는 것' 즉, 자신을 자연적인 것으로 속이려하지 않고 의미를 전달하는 바로 그 순간에도 자신의 상대적이고 인위적인 위치같은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바스트의 '이중적' 기호--의미를 전달하는 동시에 자신의 고유한 물질적 존재를 몸짓으로 나타내는 기호--는 러시아 형식주의자들과 체코 구조주의자들의 '낯설게 된'언어의 그리고 명료한 언어적 존재를 과시하는 야콥슨의 연결자이다. 낯설게 하기는 쉬클로프스키와 야콥슨의 좀 더 명확하게 이어졌다. "비평선집'에서 바르트는 "가능한 한 완전하게 자신의 언어로써 텍스트를 감싸는 것" 이 비평이라고 말했다. 또한

<비평과 진실>에서 비평담론은 "작품의 1차언어 위를 떠도는 2차언어'라고 했다. 후기구조주의적인 용어로 문학 언어 자체를 규정한다. 문학 언어는 '밑창 없는" 언어이며 "텅 빈 의미"에 지탱하는 '순수한 애매모호함'같은 것이다.

후기구조주의자들이 글이나 텍스트성을 논할 때 바르트 자신이 말했듯이 후기구조주의로의 이전은 작품에서 텍스트로의 움직임이다 그것은 시나 소설의 명확한 의미를 갖춘 닫힌 실제물(entity)로 보고 그 의미를 판독하는 것이 비평가의 임무라고 했다. 이렇듯 텍스트는 구조라기보다는 '끝없는 구조화 과정'이라고 바르트는 주장했다. 러시아 형식주의자 미래파 구조주의자들이 단어를 낯설게 하고 새롭게 하는것, 소외된 언어에게 그것이 빼앗긴 풍성함을 부여하는 것에 몰두했던 것은 러시아정치적인 문제와 직결되어있다. 그 시대엔 괄호 안에 넣고 지시대상을 유보하고 내향적으로 빠져들어 갔다. 하지만 그것은 쓸모없는 존재라고 사회적 죄의식에 의해 고통 받거나 그늘져있었다 우리나라의 일제 강정기때 윤동주가 그 대표적인 한 흐름이다 생각할 수 있겠다. 그의 시에 나오는 참회록이나 자화상에서 이미, 후기 구조주의의 한 일면이 보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사회적 오염으로부터 자신을 자유롭게(윤동주시인은 그렇다고 볼 수 없지만,)침묵의 순수함을 향해 글쓰기의 영도를 추구했지만, 또 다른 문학 양식일 뿐이었다.

폴드망의 비평은 본질 자체를 정의하는 새로운 방식을 찾아냈다. 그에 따르면 모든 언어는 비유와 문체에 의해 움직이는 철저히 은유적이다 라고 했다. 어떤 언어라도 정말로(literally)글자 그대로의 것을 믿는 것은 큰 실수라고 했다. 철학이나 법 또한 시처럼 은유에 의해 움직이고 똑같이 허구이라고 했다. 은유는 본디, 근거 없는 것이고 일련의 기호들을 다른 기호로 바꾸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문학은 이런 한 애매모호함의 가장 극명한 영역인데 그 안에서 독자는 글자 그대로 의 의미와 문체적 의미에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독자는 텍스트에 의해 끝없이 심연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예일 학파의 비평가들이 말하는 텍스트의 애매함은 문학비평에서의 아이러니하고 거북스런 일이 되며 의미의 환상성, 진리의 불가능함, 모든 담화의 기만적 관계등을 낱낱이 밝혀주는 텍스트의 내적 공간으로의 불안한 모험이 된다- 라고 했다.

뉴크리티시즘에서는 문학은 모든 지시행위의 몰락이며 의사소통의 공동묘지이다그리곤, 결정 불가능한 가물거리는 거미줄로 보았다.

후기 구조주의에서 특이할 만한 사항은 쾌락주의 또는 무책임한 무정부주의 등, 후기 구조주의에서 빈번하였으나, 다원성 구별 성적분리 등 급진적 페미니즘형태들도 있었다. 하지만 21세기를 지나가면서 언어와 텍스트에 대하여 가학적이며, 획기적인 새로운 흐름이 일어날 것이라 여겨진다. 첨단 산업화의 발전으로 통신의 발달과 심화되는 개개인의 단절, 그리고 환경의 피폐함이 텍스트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자목 궁금하다. 그것은 지금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몫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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