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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초월의 접목체椄木体 하이퍼시 탐색하기 (김 필 영)
2018년 11월 03일 18시 11분  조회:755  추천:0  작성자: 강려
평론부문 당선작<월간 시문학 우수작품상>
 
현실과 초월의 접목체椄木体
하이퍼시 탐색하기
(김 필 영)


1. 서문
 

   스마트시대를 맞아 하이퍼텍스트를 손바닥 안에서 읽고 사용한다. 보편화된 인터넷망을 통해 방대한 학문영역과 정보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들게 됨에 따라 하이퍼텍스트에 대한 구별의 개념이 없이 누구나 하이퍼텍스트를 읽으며 살고 있는 시대인 것이다.(종이 하이퍼텍스트를 포함) 사람의 시간과 체력이 허용하는 한 무한한 사이버공간의 가상적 영역에서 ‘하이퍼텍스트시스템’은 문자적인 텍스트와 무한의 이미지 간에 관계가 맺어지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러한 환경적 변화상황에 따른 하이퍼텍스트 등장에 있어 학자들은 그 등장의 의미를 중시하여 적극적으로 논문을 발표하였고, 한국에서도 2000년 전후로 문학을 전공한 학자들을 중심으로 하이퍼텍스트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어 많은 논문이 발표되었다. 그 바탕에는 기존문학의 수동적 전달과정을 하이퍼텍스트 문학에서는 독자가 능동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기대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하이퍼텍스트문학’에서 범위를 ‘하이퍼텍스트시’(이하, 하이퍼시), 특히 전자(電子)가 아닌 종이 하이퍼시로 범위를 좁혀 탐색하고자 하며, 본 논점에서 밝히고자하는 핵심은 그간의 하이퍼시의 성립과 관점에 대한 일부 오류를 지적하고 조정된 방향에서의 2000년대 하이퍼시의 이해와 관점을 재고하여 발전방향을 조명해보고자 한다.

 
 
2. 하이퍼시 비판관점 조정의 필요성
 


   비판하는 제도적 기준이나 방법이 비판 후의 건전한 발전적 의도에 부합되지 않을 때 비판의 가치는 의미를 상실한다. 그간의 하이퍼시에 대한 비판시각에는 ‘등장의 의미’에 무게가 실렸으며 외적 성과물에 대한 결과도출의 기대가 성급하여 평가를 속단한 경향이 있었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 이치적이다. 왜냐하면 하이퍼시를 창작하는 당사자든, 읽는 자든, 비판하는 자든 중요한 것은 하이퍼시가 우리 환경에 접목되어 대중에게 다가갈 가치나 시문학에 기여할 가치가 있느냐의 문제나 어떤 메스미디어를 통해 하이퍼시가 어떻게 제작될 것인가 보다 중요한 것을 놓쳤다는 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하이퍼시의 시적 구성요건과 시적 완성도에 대한 냉철한 고찰과 이론이 정립되어 계도되는 일이 선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비판의 방향과 선입견이 거세게 일어나 평가자체의 방향과 평가의미가 가치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한국의 시문학적 역사에서 초현실주의적 작품들에도 ‘하이퍼적 특성’은 시대마다 있었다. 1930년대 외부 세계는 프로이트의 무의식세계의 이론을 배경으로 현실의 시간과 공간구조를 벗어난 내면세계를 구축했다고 볼 수 있으나 그 초현실적 이론이 한국의 문학계에는 실제적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었으며 한국은 전통적 서정과 이데올로기적 시류가 장악하고 있던 때였다. 그때 이단자처럼 등장한 시인이 이상(李箱,1910~1937)이었다. 이상의 초현실적, 기호학적 지식 터득 수준이 어떠했든, 그가 기존의 전통적 문체를 부정 또는 파괴하려는 실험을 감행한 의도의 유무를 떠나 그의 기존 구문과 차별화된 이질적인 이미지의 자유로운 전개와 결합은 한국현대시사의 ‘초현실적 시쓰기’와 하이퍼텍스트의 효시였음이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이상(李箱)이후, 하이퍼적 요소를 지향하는 아방가르드적 작품의 발표는 조향(趙鄕, 1917~1984), 김춘수(金春洙, 1922~2004), 문덕수(文德守, 1928~ )를 걸쳐 발전해 왔으며, 황지우, 박남철, 오남구, 심상운 등이 이 계열로 볼 수 있으며, 근래 ‘월간 시문학’의 김규화 등이 전개하는 ‘하이퍼시클럽’도 그 맥을 잇는 운동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하이퍼시적 요소(초현실적 시-3.4문학)가 과거에 시도된 적이 있었다고 해서, 하이퍼시를 실패의 소산물이라고 단정하거나 계도부족으로 인한 단편적 조명을 냉소적으로 비판만 하는 것은 한국의 현대시를 대하는 올바른 자세라 할 수 없다. 그러나 하이퍼시의 연구와 이론적 정립은 비판에 답할 만큼은 발표되었으나 충분히 계도(啓導)되지 못한 점도 문제 중 하나이다. 이제는 하이퍼시론이 상당수 발표된 바 있으며, 창작과 경험적 이론정립과 탐구가 지속되고 있음을 볼 때, 오히려 지나간 시대의 작품에서 하이퍼적 작품을 발굴해 체계적으로 집대성하고, 시작(詩作)의 새로운 시도로서의 하이퍼시의 창작을 긍정적으로 주시해보는 것이 합리적인 자세라고 할 수 있다. 현재 하이퍼적 구조로 창작되어 발표된 작품이 기존의 흐름을 초월하려는 시도로 보인다면 그것이 작가의 자연적인 소양이었든, 부단한 노력이 수반된 의도였든, 그 용기와 노력을 비판만 할일은 아니다. 물론 이 주장은 하이퍼시를 지향하고 창작하는 당사자들도 하이퍼시가 아닌 타 경향의 시를 겸허히 바라보고 건전하게 비판하며, 하이퍼시를 통해서도 인간의 행복이 선도되도록 서정과 이해의 지평을 넓혀 위로와 감동을 제공하며 진리와 정의로 향하는 하나의 길잡이임을 증명할 수 있을 때, 편견과 오해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논문에서서는 현재 하이퍼시의 가능성에 대해 작품과 시론을 동시에 실행하고 있는 문덕수 시인의 하이퍼시론과 또 한 평론가의 하이퍼시론에 문덕수 시인의 시를 반추시켜 하이퍼시의 성립을 분석해보고 검증해봄으로써 하이퍼시의 발전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3. 두 권의 하이퍼시론 탐색
 

(1) 문덕수 하이퍼시론 요약

◉ 하이퍼시의 전 단계 와 현 단계 요약

   문덕수 평론집 『현실과 초월-하이퍼시의 방향』(2014년 시문학사 발행) 중심으로 논문에서 동일인물의 시와 시론에서 논점으로 대두시켜볼 수 있는 부분 요약을 거론해본다.

   문덕수 시인은 위 평론집의 「하이퍼시의 전 단계와 하이퍼시의 현단계」*『현실과 초월』하이퍼시의 방향(2014년 시문학사 발행) 124~125쪽) 머리말에서, “전자(電子)가 아니라 종이 하이퍼시의 가능성을 시험해보려는 하이퍼시동인의 활동이 주목된다. 그것이 가능할까, 이런 의문의 충격을 가라앉힐 수 없다.”라고 하였다. 이어서 “하이퍼시의 성공을 상정(想定)해 볼 수 있는 영역에는 많은 문제점의 내재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하이퍼시의 가능성’과 ‘하이퍼시의 성공’과 ‘문제점’이라는 세 가지 상황을 문제적인 것처럼 기정사실화하고 있지 않음이다. 그러나 이 세 상황은 문덕수 시인의 하이퍼시에 대한 관점이 아니라 일반 독자대중의 보편적 인식의 관점을 객관적으로 제시하여 기술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객관화된 관점은 하이퍼시만이 현대시가 지향하여 나아가야 할 점이라고 강변하고 있지 않음이며, 시문학을 대하는 시인으로서, 학자로서의 합리적 자세를 인지할 수 있다.(이 논문에 문덕수의 시와 시론을 적용한 이유도 그러한 객관적 관점에 바탕을 둔 것임을 밝힌다.) 그 논의 방향은, (1) 언어 예술인 시의 하이퍼적 가능성, (2) 사물과 기호가 가지는 하이퍼성과 하이퍼성이 아닌 단계, (3)컴퓨터의 인공언어와 시어(詩語)와의 관련성에 대해 논하였다.
‘하이퍼시의 전 단계’는 “지각의 원인으로서 감관(감관: 즉 눈)과 대상을 분석하였다. 그 점에서 체득할 수 있는 두 가지 주요 논리는 “지각이나 지각 이전 단계의 사물세계는 하이퍼성(hyper性)이 없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점과 “시의 언어가 하이퍼 가능성을 지니게 된 하나의 조건으로 ‘원근법의 파괴’와 둘 이상의 사물에서의 관계성”이라고 했다.
‘하이퍼시의 현 단계’는 “20세기 전위회화에 와서 원근법이 완전히 부정된 것”으로 보이는 ‘고정된 시점의 파괴라는 점에서 하이퍼시로 나아가는 단계의 구실을 함을 거론하였으며, ‘관계성의 발견’에서 ‘유사성’이 폐기되었음을 강조하고 있다.*(동 평론집 136쪽) 그리고 “아날로그 의미의 세계로부터 디지털 의미의 세계로 이동 때, 기호의 지향대상(指向對象)이 소멸”된다고 볼 때, “데이터로서의 자연언어는 외부세계의 사물과 연관되어 있지만, 컴퓨터에 입력되면 이진법의 언어로 변환되고 다시 기계신호로 바뀌어 출력에 도달한다.”(생략) 즉 “컴퓨터에서 인공 언어로 바뀌고 지향대상을 소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향대상의 소멸은 시간과 공간을 비약한다는 현상”이 발생하게 되고 즉 “시간과 공간을 무화(無化)하거나 축소〮〮,확대를 자유롭게 한다는 것이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김춘수는 ‘현대시의 계보’라는 글에서 이러한 현상을 ‘무의미’ 또는 ‘언어의 방임상태(언어의 유희)’라고 했다.

◉ 하이퍼시의 구조* 요약
*하이퍼시의 구조란 무엇인가『현실과 초월』 하이퍼시의 방향: 시문학사 발행) 165~187쪽)

   문덕수 시인이 위 주제의 논고에서 기술한 예문을 생략하고 평설의 요지를 소제목형식으로 임의적으로 정리하여 ‘하이퍼 시의 구조’로서 10개항으로 요약해본다. 논문에 열거된 주요한 구조를 놓치는 무례를 범하지 않기 위해 미묘한 의미중복이 있음을 밝힌다. 여기에 ‘하이퍼시의 구조’를 소제목처럼 열거했다고 해서 한편의 시에 10개 항 모두 충족되어야함을 말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러나 한편의 시에서 이러한 구조가 복합적으로 나타날 때 하이퍼적 요소가 짙어질 수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시의 전개에서 반드시 아래 순서에 따라 의미를 다 부여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1) “하이퍼시란 탈관념의 사물과 상상의 이미지 두 단위를 연결한 시”이다.
2) “표현에 있어서 설명보다(관념적 진술보다) 묘사(암시적 묘사 등)를 더 강조”한다.
3) 단위를 모아 구성(연이나 절, 리좀덩어리 등과 구별하여 단위라고 부르기를 권함)
4) 두 존재의 관계 사이의 심연, 단절, 틈을 포괄적으로 초월이라는 이쪽과 저쪽을 지닌다.
5) 초월의 구성 : 한 단위와 단위 각각의 관계 有와 無의 대립적 관계 구성을 중시 한다.
6) 〔A〕단위와〔B〕단위간을 연결하는 부분이 전체구조로서의 은유의 초월적 대조관계.
7) 본의(本義, tenor)와 유의(喩義, vehrcle)간의 유사성에 의한 결합인 교유(交喩, diaphor).
8) 〔A〕단위와〔B〕단위간을 연결할 수 있는 현실과 초월의 고리 찾기(살리기)를 중시 한다.
9) ‘리좀’이나 ‘모듈’ 같은 연(聯)인 단위(單位, unit) 구분하기(필수적인 것은 아님)도 하나 굳이 이러한 용어를 사용할 필요는 없다.
10) 묘사와 실제 의미사이의 간극, 차이성에 의한 긴장을 지향하는 차유(差喩, trensphor)를 말하는 견해도 있다.

 
 
(2) 심상운 하이퍼시론 요약- 하이퍼시 창작법
 

   심상운 시인은 2006년 경 디지털시론에 몰두했다. 『디지털 시의 이해』라는 혁신 시론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탈관념시론과 디지털시론, 하이퍼시론을 집필하여 발표해 왔다. 시론에 더하여 김규화 시인 등과 하이퍼시동인, 하이퍼시클럽을 결성하였으며 정연덕 시인 등과 ‘시현장’ 동인을 이끌며 ‘하이퍼시쓰기 운동’에 불을 지피고 ‘하이퍼시쓰기’에 적극적으로 활동하게 된다. 심상운은 2010년에 『의미의 세계에서 하이퍼의 세계로』평론집을 발표하여 현대시의 다양한 기법, 변화의 추이에서 ‘하이퍼시의 필연성과 이해’에 관심을 집중시키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이에 본 논고에서는 그의 저서내용 중 ‘21세기 하이퍼 시 이해를 위하여’라는 부제로 집필한 『의미의 세계에서 하이퍼의 세계로』평론집에 수록된 「단선구(조單線構造)의 세계에서 다선구조(多線構造)의 세계로」* 내용에서 ‘하이퍼시 창작법’으로 기술한 것을 그대로 인용한다.*
*(심상운 저,『의미의 세계에서 하이퍼의 세계로』 푸른사상, 2010. 103~131쪽)

◉ 하이퍼시 쓰기를 위한 단선구조의 세계에서 다선구조의 세계로의 이동방법
(본 소제목은 논고의 이해를 돕도록 필자가 임의로 설정한 제목임)

   다각적인 면에서 일어나는 사전의 동시적인 배열은 디지털 시대의 감각과 밀접한 관련을 갖게 된다. 이런 면에서 볼 때, 한 편의 시에서 최소 2개의 다른 리좀(이미지)이 들어가는 것을 시의 기본구조로 삼는 하이퍼시는 현대의 생활구조를 반영하는 시형태가 된다. 이 구조변화의 핵심에는 위계적 구조가 내포하고 있는 고정된 관념의 틀을 거부하는 수평적인 다양한 선(線)들(이미지, 자유, 정서)이 들어 있다. 이 선들은 새로운 영토를 만들어내고, 의미작용을 수행하려는 선들도 있지만 자신의 영토에서 탈출하여 미지의 세계로 달아나 탈영토화하려는 선들도 있다. 이 선들의 움직임으로 인해서 하이퍼시에는 의미의 연결과 단절이 끊임없이 발생한다.
   이 수평적인 다양한 선들의 움직임은 ‘보여주기(showing)'라는 디지털시의 특성과 결합한, 독자와의 새로운 소통형식이라는 측면에서 독창성을 갖는다. 이 하이퍼시의 소통은 정서와 의미(관념)를 소통의 중심에 놓는 아날로그의 논리적 소통에서 이미지(상상력)를 통한 감성의 소통이라는 디지털적 방식으로 변형된다. 디지털적 소통은 아날로그의 ‘선택과 집중’, ‘설득’의 세계에서 탈출하여 ‘다양한 상상의 집합과 연결’, ‘가상현실의 세계’라는 하이퍼 세계의 문을 여는 21세기적 소통이다. 따라서 가상현실의 보여주기와 하이브리드(hybrid)를 중심축으로 삼는 하이퍼시의 다선구조(多線構造)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허물뿐만이 아니라 열린 세계의 다양성을 보여주게 된다는 점에서 시적 생명력을 얻는다.
앞의 서술내용을 요약하면 단선구조의 세계에서 다선구조의 세계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다음에 열거한 9가지 방법이 유효할 것으로 생각된다.

1) 이미지의 집합적 결합(하이브리드의 구현)을 기본으로 한다.
2) 시어의 링크 또는 의식의 흐름이 통하는 이미지의 네트워크(리좀)을 형성한다.
3) 다시점의 미지를 만들어내는 캐릭터를 등장시킨다. 사물도 캐릭터가 될 수 있다.
4) 가상현실의 보여주기는 소설적인 서사(敍事)를 활용한다.
5) 현실을 바탕으로 현실을 초월한 상상 또는 공상의 세계로 시의 영역을 확장한다.
6) 정지된 이미지를 동영상의 이미지로 변환시킨다.
7) 시인의 의식이 어떤 관념에도 묶이지 않게 한다.
8) 의식 세계와 무의식 세계의 이중구조가 들어가게 한다.
9) 시인은 연출자의 입장에서 시를 제작한다.

   이 9가지 방법은 하이퍼시의 창작방법이 되기도 한다. 하이퍼텍스트(hypertext)의 하이퍼(hyper)에는 불가시적인 세계를 가시적인 세계로 전환시키기 위한 무한한 상상적 변화와 에너지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하이퍼시의 다선구조는 시대적 성향변화에 대한 현대시인의 적극적이며 창조적 대응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심상운 저, 『의미의 세계에서 하이퍼의 세계로』 푸른사상, 2010. 130~131쪽)에서 인용
이 경우에서도 시에서 문덕수 시인의 시론 적용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9가지 방법이 다 적용된 시만이 하이퍼시라는 것이 아님은 두말할 나위 없다.
 
 

4. 하이퍼적 요소의 시 들여다보기
(문덕수 시집, 『라일락 향기』(한국대표명시선100) 시인생각. 중심으로)
 

   문덕수 시인은 평론집 『현실과 초월-하이퍼시의 방향』(2014년 시문학사 발행)의 ‘한국시의 현황’이란 주제의 글에서 “한국시의 현황을 ‘방법’이라는 기준으로 1)전통과 서정(전통적 서정시), 2)메시지와 관념(관념시), 3)이미지와 사물(물리시), 4)탈관념의 모험(실험시),주지적 처리(주지시) 등으로 분류하여 논한 바 있다.*
* 『현실과 초월』 50쪽, 2014년 시문학사 발행)

   문덕수 시집,『라일락 향기』(한국대표명시선100, 시인생각)는 시선집으로서 수록된 시는 하이퍼적 요소가 희소한 시들도 여러 편 수록 되었으며 문덕수 시인이 쓴 시들 중,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1955년 현대문학 10월 시 「침묵」「화석」「바람 속에서」 등으로 등단한 이후, 1956년 첫 시집 『황홀』을 상재하고, 1966년 〮〮〮『선.공간』, 1968년 3인시집 『본적지』, 1975년 『새벽바다』, 1976년『영원한 꽃밭』, 1980년 『살아남은 우리들만이 다시 6월을 맞아』, 1981년 『수로부인의 독백』, 1982년 『다리놓기』, 1990년 『만남을 위한 알레그로』, 1994년 『사라지는 것들과의 만남』, 1995년『조금씩 줄이면서』, 1996년 『그대, 말씀의 안개』, 1997년 『빌딩에 관한 소문』, 2002년 『꽃잎세기』, 2007년 『꽃먼지 속의 비둘기』, 2009년 장시집 『우체부』, 2012년 『아라의 목걸이』(5권의 시선집과 4권의 번역시집 제외)까지 발간된 시집 속의 셀 수 없이 방대한 작품을 모르고 『라일락 향기』에 수록된 작품을 논한다는 것은 문덕수 시세계의 ‘코끼리의 코’만을 만지는 것일 수 있다. 허나 시집 내에 서평이나 평설이 없는 점을 고려하여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한 시인의 시를 놓고 동일 인물의 시론과 다른 논자의 시론을 대입해 하이퍼시의 성립요소와 효용성 그리고 하이퍼시의 방향에 대해 논할 때 그 객관성 입증에 논리적일 수 있다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문덕수 시인의 근래 출간되어 대중 가까이 보급된 시집 (문덕수 시집, 『라일락 향기』(한국대표명시선100, 시인생각)에 수록된 시들 중에서 하이퍼적 요소가 내재된 시를 중심으로 평을 펼쳐본다. (시집에 편집된 시들의 목차는 창작 순서와는 무관한 것으로 간주함)
 
 

(1) 선(線)의 하이퍼적 소묘(素描)
 

   시집 서두에는 5편의 선(線)을 소묘(素描)한 시가 수록되어 있다. 선(線)이란 면(面) 위에 길게 그어 놓은 금, 또는 수학적으로 점이 연속적으로 이어져 이루어진 자취로 정의 하는 바, 점(點)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였을 때 발생하는 운동선(moving line)이라 할 수 있다. 소묘(素描)는, 일반적으로 채색을 쓰지 않고 주로 연필이나 콘티, 목탄, 파스텔 등을 사용해 선으로 그린 그림 또는 그 회화표현으로 그린다는 의미의 프랑스어 '데시네(dessiner)'에서 파생된 단어 흔히 데생(dessin)이라고 부르는 회화기법이다. 그렇다면 그 단순한 선(線)이 어떻게 하이퍼적 구조를 지녀 시가 될 수 있는 것인가. 색채가 없는 점이라 할지라도 연필을 들고 백지 위에 점을 찍어보자. 그 점을 똑바로 그으면 직선이 되고, 구부려 그리면 곡선이 된다. 각기 다른 방향에서 출발한 선이 각에서 만나는 점을 모서리라 한다. 고개를 들어 눈앞에 나타나는 사물을 보면, 처음 바라보는 지점에서 다음 바라보는 지점이 있겠으나 우리 눈은 전광석화처럼 ‘총천연색 전자동 카메라’ 기능을 발휘하여 촬영하는 데 그 행위를 슬로비디오로 구현한다면 무수한 점과 점이 이어지는 선(線)을 동시에 촬영하여 뇌로 보내어 물체를 인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목측할 수 있는 모든 사물을 보면 선(線)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시인이 선(線)을 소묘(素描)한 묘사에서 어떤 묘사가 현실과 초월의 각자 영역을 드러내므로 하이퍼적 구성요소를 보여주는가. 첫 시, 「선(線)에 관한 소묘(素描) 1」을 들여다본다.


선이
한 가닥 달아난다.
실뱀처럼,
또 한 가닥 선이
뒤쫓는다.
어둠 속에서 빛살처럼 쏟아져 나오는
또 하나의, 또 하나의, 또 하나의
또 하나의
선이
꽃잎을 문다.
뱀처럼,
또 한 가닥의 선이
뒤좇아 문다.
어둠 속에서 불꽃처럼 피어나오는
또 한 송이, 또 한 송이, 또 한 송이
또 한 송이, 또 한 송이
꽃이

찢어진다.
떨어진다.

거미줄처럼 짜인
무변(無邊)의 망사(網紗),
동그란 우주가
달걀처럼
고요히 내려앉다.
 
 
「선(線)에 관한 소묘(素描) 1」 전문
 

   까만 밤하늘에 한 유성이 춤을 추듯 등장하여 선의 질주로 시작되는 이 광경은 샌프란시스코 거리나 홍콩거리의 야경을 공중에서 원적외선 촬영기법으로 촬영한 영상을 보는 듯하다. 이 시 첫 행에서 나타난 “한 가닥 선(線)”은 어떤 사물을 직유하고 있지 않다. 선(線)에는 어떤 관념이 없다. 그러나 그 ‘실뱀처럼’ 달아나는 선을 ‘또 한 가닥 선이 뒤쫓’으므로 시작된 점의 운동인 ‘선의 상상의 이미지’가 태동하여 결합하게 된다. 마치 SF영화에서 지구라는 별에 점(點) 하나가 떨어져 움직이기 시작하자 발생하게 되는 광경을 연상하게 된다. “빛살처럼 쏟아져 나”와 뱀처럼 “또 하나의, 또 하나의, 또 하나의 또 하나의 선”들이 꽃잎을 물고 질주하는 선(線)의 출처를 주목하면 “어둠 속”이다. ‘어둠’은 상징적으로는 빛과 대칭적인 상태인 진리나 정의와 반대편이라 한다면 ‘빛살처럼 쏟아져 나온 선이 문 “꽃잎”은 거짓이나 불의로 유혹하는 물체로 유추할 수 있다. 하반절에서 “또 한 가닥의 선이 뒤좇아” 물자 “어둠 속에서 불꽃처럼 피어나오는”것이 있다. 연속적으로 피어나오는 또 한 송이 꽃이다. 이 때의 꽃의 출처는 ‘어둠 속에서’ 나온 것이며, ‘단절의 틈’에서 나와 “불꽃처럼 피어나”온 것이므로 그릇된 욕망일 수 있으며 그릇된 욕망의 말로는 결국 ‘찢어지고 떨어’지는 것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뱀처럼 꼬리를 물고 질주한 선의 세계는 그릇된 욕망을 향한 몸부림이며, ‘진실’이라는 과녁을 빗나간 위장된 ‘빛살’, 또는 ‘정의’의 길을 위장한 ‘빛살’이 물고 물려 현란하게 뒤따르는 ‘혼돈의 세상 상황’을 은유한 것으로 보인다. “거미줄처럼 짜인 무변(無邊)의 망사(網紗),”는 사물을 촬영하여 과대하게 확대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처럼 보이는 점묘의 집합체로 보이는 그물망이다. 인간의 눈으로는 물리적으로 우주라는 무한공간을 볼 수 없는 것이므로 그 우주를 무슨 수단을 통해 포획할 수 있는가. 오직 창작예술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거미줄처럼 짜인 무변(無邊)의 망사(網紗),”만이 “달걀처럼 고요히 내려 앉”은 “동그란 우주”를 받아낼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선(線)은 ‘현실’이나, 선(線)이 꽃잎을 물고 질주하는 것은 가상적 상상 즉 ‘초월’이다. “동그란 우주”와 “달걀처럼 고요히 내려 앉”은 “동그란 우주”를 받아내는 “거미줄처럼 짜인 무변無邊의 망사網紗,”는 차이성에 의한 긴장을 지향하는 차유(差喩, trensphor)기법이 적용되었으며, 우주와 망사를 대치시킴으로 현실과 가상적 상상 즉 초월을 통한 시적상태를 ‘하이퍼적 고리’라 볼 수 있다. ‘리좀’이나 ‘모듈’ 같은 연(聯)인 단위(單位, unit)가 이 시에서는 도입하지 않은 것은 리드미칼 한 운율과 이미지결합의 긴장감을 높이기 위한 시인의 의도로 보인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세상의 혼돈을 여러 가닥의 선(線)으로 동시에 끌어들여 은유함으로 하이퍼적인 시가 성립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선(線)에 관한 소묘(素描) 2」를 통해 선(線)의 하이퍼적 묘사를 좀 더 들여다본다.
 

영원히 날아가는 의문의
화살일까
한 가닥의 선의 허리에
또 하나의 선이 와서
걸린다
불꽃을 뿜고
얽히는
난무,
불사의 짐승일까.
과일처럼 주렁주렁 열렸던
언어는 삭아서
떨어지고,
일체가 불타버리고 남은
오직 하나
신비한 매듭.
 
 
「선(線)에 관한 소묘(素描) 2」 전문


   “영원히 날아가는 의문의 화살”은 무엇일까, 진리를 탐구하는 길일 수도 있고, 우리 인간이 아직 겪지 못한 미래를 상징할 수 있다. 현대인의 삶에서 현재라는 지점이 활시위라면 어느 목표를 향하여 활시위를 떠난 화살을 상징적으로 묘사하면 한마디로 “의문의 화살”이 아닐까. 그 “의문의 화살”이 진리를 탐구하는 몸부림이든, 비켜가지 못하고 불의와 장애와 맞서 살아가야 하는 인생이든, 사람의 수만큼 또는 사람이 상상하는 수효만큼 무수할 수 있다고 본다면 “의문”이라는 것이 오히려 적합한 묘사라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이때 “한 가닥의 선(線)의 허리에 또 하나의 선(線)이 와서 걸”려 “불꽃을 뿜고 얽히는” 난무가 벌어진다. 한 가닥 선은 탈관념의 사물이며, 또 하나의 선이 와서 불꽃을 뿜고 난무하여 결합하므로 ‘상상의 이미지’가 태동하게 된다. 본문에서는 이 “의문의 화살”을 “불사의 짐승일까”라고 암시적으로 묘사하여 초월적 긴장구조가 상승한다. 진리를 찾아가는 길에, 생을 살아가는 길에 무수히 따라 붙는 ‘불사의 짐승’은 무엇인가. 다음 행의 묘사에서 “과일처럼 주렁주렁 열렸던 언어”가 “삭아서 떨어”졌다는 묘사를 통해 유추해 본다면,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의 다양성과 환경에 따른 언어의 구조적 결함이나, 주관적 주장으로 인한 소통의 부재로 나타난 몰이성적 양태가 상대를 향해 던지는 “짐승”의 행위와 같은 언어행위라 할 수 있으며, 살아가는 동안 “불사조”처럼 끈질기게 따라 붙어 우리를 향해 불꽃 속에서 얽어매고 태운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결국에 남는 것이 있다. 우리의 불완전함과 짧은 생애라는 피하지 못할 한계로 인해 아무도 풀지 못한 수수께끼 같은 생의 진리가 “신비한 매듭”으로 남는 것이다. 결구는 그 한탄을 재판장의 망치처럼 명징하게 내리치고 있다. 여기서 현실은 ‘화살’이나 ‘영원히 날아가는 화살의 의문의 비행’은 가상적 상상 즉 초월이다. ‘한 가닥 선’은 현실이나 서로 얽혀 난무하여 불꽃을 뿜는 ‘불사의 짐승’은 초월이다. “과일처럼 주렁주렁 열렸던 언어”는 현실이나 “삭아서 떨어지고 일체가 불타버리고 남은 오직 하나 신비한 매듭”은 초월이라 볼 때, “일체가 불타버”린 것과 “오직 하나 신비한 매듭”은 초월의 이쪽과 저쪽이며, 유(有)와 무(無)의 대립적 관계구성이자 차유(差喩, trensphor)의 성립구조로 시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실과 초월의 관점은 명백해지고 두 상황의 접목체인 하이퍼적 요소가 시 안에서 온전히 갖추어졌다고 볼 수 있다.
 
 

(2) 언어와 사물의 하이퍼적 소묘(素描)
 

   언어의 현실과 초월을 시어로 실현하는 것이 의도적일 때 그 비평은 독자의 몫이다. 아래의 시는 1961년 현대문학 74호에 발표 되어 『선(線) • 공간(空間)』(1966)> 시집에 수록된 작품이다. 컴퓨터가 없던 시절인 50년 전 작품이나 그때는 스마트 시대에 읽어도 한 폭의 일러스트(illust)화면을 보는 듯하다. 다시 읽어도 새롭게 다가오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언어는 꽃잎에 닿자 한 마리 나비가
된다.

언어는
소리와 뜻이 찢긴 깃발처럼
펄럭이다가
쓰러진다.

꽃의 둘레에서
밀물처럼 타다간
꺼져도,

어떤 언어는
꽃잎을 스치자 한 마리 꿀벌이
된다.

「꽃과 언어」 전문
 

   긴 세월 이 시에 대한 세간의 평은 ‘이미지와 이미지의 연쇄반응에 의한 순수 조형(造形)에 관심을 보이는 무의미의 시로서 표현 그 자체로 존재하는 표현’이라고 하였다. ‘무의식을 대상으로 하는 초현실주의 시로부터 비롯되었으며’ 무의식이란 이성 이전의 상태이기 때문에, 방임상태에서 무질서하게 축적된 의식의 단편들을 아무런 의미 관련도 없이 자동기술적으로 연상되는 이미지와 이미지를 떠오르는 대로 기록한 것이라고 하였다. 시인 김현승(金顯承)이 그의 시론적 저서에서 가장 새로운 시로서 인용한 작품이다.
   [상징사전]에서는, “언어 자체는 내연(內燃)하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으나, 그 생명력을 눈치 채고, 감지한 시인에 의해서만 생명의 참 모습, 참 의미(나비와 꿀벌)를 찾게 되는 것이며, 그럴 경우 이 시의 주제는 ‘꽃을 통한 언어의 생명력’이 될 것이라고 하였으며,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의미 없는 일’이라고 하였다. ‘언어’라고 하는 무형의 이미지로부터 출발하여, ‘꽃잎 · 나비 · 깃발 · 밀물 · 불꽃 · 꿀벌’과 ‘되다 · 찢기다 · 펄럭이다 · 쓰러지다 · 밀려오다 · 타다’ 등의 이미지만을 느끼면 그만인 시이기 때문이다.”라고 하겠다.

   그러면 위 시의 감상평에 앞서, 문덕수 시인의 하이퍼시론 ‘하이퍼시 구조’에 위의 시를 의도적으로 대입시켜 궁금증을 해소시켜보고자 한다.
 
   첫 행에 “언어는 꽃잎에 닿자 한 마리 나비가 된다.”는 묘사에서 ‘언어’나 ‘꽃잎’은 ‘탈관념의 사물’이나 “언어가 꽃잎에 닿자 한 마리 나비가 된”것은 ‘상상의 이미지’이므로 ‘하이퍼시의 구조’ 제 (1)항을 충족 시켰다고 볼 수 있다. 2연에서 “언어는 소리와 뜻이 찢긴 깃발처럼 펄럭이다가 쓰러진다.”는 묘사는 (2)항을 충족시키는 ‘암시적 묘사’라 할 수 있다. 모두 4연으로 ‘단위를 모아 구성’된 것은 (3)항,(9)항의 구조를 생각하게 된다. 꽃과 언어는 두 존재 사이에 있는 ‘초월의 이쪽과 저쪽’을 상징하므로 (4항)을 충족하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꽃의 둘레에서 밀물처럼 타다간 꺼”지는 무(無)의 이미지와 “꽃잎을 스치자 한 마리 꿀벌이‘되는 유(有)의 이미지는 초월의 구성상 무(無)와 有의 대립적 관계구성인 (5)항인 동시에 ‘은유의 초월적 대조관계 성립 구조인 (6항)을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4개 연을 통해 ‘단위’를 구성하고 있으므로〔A〕단위와〔B〕단위 간을 연결할 수 있는(8)항 구조의 ‘현실과 초월의 고리’는 “꽃”임을 알 수 있다. “소리와 뜻이 찢긴 깃발처럼 펄럭이다가 쓰러”지는 ‘언어’와 “꽃잎을 스치자 한 마리 꿀벌이”되는 ‘어떤 언어’사이엔 ‘언어’라는 교유(交喩,diaphor)가 이루어진 것으로 (7)항의 구조요건을 충족시키고, 동시에 (10)항의 차유(差喩, trensphor) 구조도 적응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위 시를 심미주의(審美主義)적 시각으로 들여다본다면 어떠한가. 그러한 관점으로 시읽기를 시도해보는 연유는 하이퍼시가 독자에 따라 어떤 상상을 제공해 주는지 ‘시의 수용성면(受容性面)’에서의 하이퍼시의 가치를 가늠해보고자 함이다.
‘언어’가 “꽃잎에 닿자” 어떻게 “한 마리 나비가” 될 수 있을까. 세상에 추한 꽃잎은 없다. ‘꽃잎’이라는 ‘아름다움의 실체’나 상징적 대상을 바라본 사람은 그 감흥을 나비와 같은 사랑과 평화의 언어로 나타낸다. 이때의 언어는 결코 추하지 않으며 상처를 주지 않는다. 이때 발하는 본능적인 언어는 훨훨 나래를 저어 날아오르듯 자유와 평화의 모습으로 승화되어 “한 마리 나비가 된다.” 지상의 첫 남자가 자신 앞에선 첫 여자에게 한 언어가 연상되는 이 도입부는 자연 다큐멘터리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름답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고 발하는 향기로운 언어도 2연의 묘사처럼, 서로 미워할 때는 “소리와 뜻이 찢긴 깃발처럼 펄럭이다가 쓰러진다.” 얼마나 많은 언어들이 그 뜻을 전하지 못하고 패배진영에 매달려 “찢긴 깃발처럼” 허공에서 펄럭이다 쓰러져 갔는가. 이 묘사는 불통의 시대를 향한 처절한 외침처럼 들린다. 언어로 수많은 생명의 생사가 결정됨을 생각할 때, 언어는 어떤 무기보다 강하고 파괴적이며 그만큼 비극적이다. 3연에서 묘사된 “꽃의 둘레에서 밀물처럼 타”는 모습은 곱고 바르게 “꽃‘처럼 살아보려는 우리들이 격랑의 밀물처럼 세상을 향해 꽃처럼 달려와 포말로 부서지는 우리 생의 아픈 모습들을 은유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의 역사는 무수히 내뱉는 언어가 밀물처럼 밀려와 산을 태워버리듯 삶이란 짧고 허망한 시간을 불살라 황패케 하는 역사가 이어졌기에, 언어가 향기를 발하여 꽃가루를 날라 꽃씨를 맺게 하는 “한 마리 꿀벌”이 되게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음을 역사가 증명하기에, 지구상에 ‘꽃 같은 언어’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그 표현방법의 절정이 시(詩)라는 표현의 형태로 끊임없이 시도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3) 다른 그물망에 비친 하이퍼시 소묘(素描)
 

   이번에는 ‘문덕수 시인’의 하이퍼시를 자신의 시론이 아닌 ‘심상운 시인’의 하이퍼시론의 그물망에 올려 심미적 시각을 접사시켜 들여다본다.
 

수천의 발자국 소리
그것은 춤이다.

벽이
일천의 벽이 앞질러
숨어 있다가 문득 나타나 솟기도 하고
줄 지어 멀리 달아나듯 쫓아온다.

벽이 꺾이어 막아서기도 하고
때로는 원진圓陣으로 꼼짝없이 둘러싸기도 하고,
벽 위에 벽이 뛰어오르고,
그 위에 또 다른 벽이 뛰어오르고,

벽이 유리처럼 환해지면서
그 안에 또 다른 벽이 우뚝우뚝 솟는다.
도시는 커다란 어항
빌딩도 층층이 쌓아올린 어항이다.

어디로 가나
나는 그 어항 속의 금붕어다.
 
 
「벽 2」 전문
 

   수천의 발자국 소리는 무엇인가. 여기서 ‘수천’은 무수한 수를 지칭하는 상징적인 완전수이고, ‘발자국소리’라는 현실적 묘사는 ‘지구 위를 걷는 무수한 인간들의 삶의 꿈틀거림’을 의미하는 이미지로 다가온다. 이 ‘수천의 발자국과의 결합을 기다리는 다음 행간의 이미지는 파격적이다. “그것은 춤이다”라는 단정으로 ‘발자국과 춤’이 ‘집합적 결합’을 이루는 것은 단아하고 명징하다. 시어의 울림에 있어서 깊이와 너비는 독자의 상상력에 비례할 것이나 ‘벽’이라는 주제 앞에 ‘발자국’이 ‘춤’으로 네트워크(리좀)을 형성하고, 2연인 단위의 변환에서 주제인 “벽이 일천의 벽이 앞질러 숨어 있다가 문득 나타나 솟기도 하고 줄 지어 멀리 달아나듯 쫓아온다.”고 묘사함으로 ‘발자국’과 ‘춤’이 ‘쫓아오는 벽’으로 化하는 ‘다시점(多示點)’ 즉 ‘다선구조(多線構造)’로 펼쳐지는 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이렇게 전개되는 ‘가상현실 묘사’는 ‘소설적인 서사(敍事)’를 활용하여 큰 울림으로 들려온다. ‘소통의 단절’을 상징할 수 있는 ‘벽’을 ‘춤’이라는 율동체로 변환시킨 것은 ‘은유의 초월적 대조관계’라 할 수 있으며 ’현실을 초월한 공상의 세계로 사유의 영역을 확장시켜준다. 가장 가까우나 등을 지고 서있는 ‘벽’이란 고정물체는 “벽이 꺾이어 막아서기도 하고 때로는 원진(圓陣)으로 꼼짝없이 둘러싸기도 하고, 벽 위에 벽이 뛰어오르고, 그 위에 또 다른 벽이 뛰어오”르므로 ‘정지된 이미지’에서 벽이라는 이미저리가 확장된 ‘동영상의 이미지’로 전환된다. 우리는 호흡하며 얼마나 다양한 벽 앞에 좌절하며 살고 있는가. 우리의 아버지와 어머니, 지금의 나는 ‘미로 찾기’보다, 사면초가보다 답답한 온갖 ‘벽’의 “원진(圓陣)으로 꼼짝없이 둘러싸”여 야위어 가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벽을 대할 것인지를 “벽 위에 벽이 뛰어오르고, 그 위에 또 다른 벽이 뛰어오르”게 하여 시인은 묻고 있다. 이제 시의 결구로 향하는 단위에서 시인은 ‘연출자’ 입장으로 시를 향해 나아간다. 4연인 단위 하반부에서 답답하게 막힌 벽을 투시해주는 “유리처럼 환해지”는 ‘투명한 벽’을 등장시키는 연출로 ‘벽의 이면과 벽 너머의 세상’을 통찰케 한다. “벽이 유리처럼 환해지면서 그 안에 또 다른 벽이 우뚝우뚝 솟는” “커다란 어항”안에 존재하는 인간존재인 ‘자아’를 발견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 어항 속의 금붕어”가 어항 밖으로 탈출하여 살 수 없듯, 우리가 지구를 떠나 아니 ‘벽’을 떠나서 살 수 없는 존재임을 문덕수의 시인은 ‘벽’이란 사물을 통해 우리 스스로 지각하도록 ‘시의 벽’을 제시하여 시의 생명인 ‘진리를 향하는 길잡이’로서의 ‘벽’의 역할을 에둘러 은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 ‘벽’을 투시하며 벽을 넘어가려는 우리의 발길엔 ‘계단’이라는 사물이 기다리고 있다.
 
 
계단으로 굴러 내려가는 돌들이
한동안 찢어지는 아픈 소리로 울부짖다가
깊은 물속에 빠진 듯 잠잠해진다.
계단으로 굴러 내려가는 돌들이
나뭇가지처럼 길쭉하게 뻗다가는
달빛에 살기 띤 날을 세우고
가끔은 모난 루비로 빛난다.
돌들이 굴러 내려가는 맨 끝에서
한 계단 한 계단 올라서는 사나이가 있다.
스치고 부딪힐 때마다 발등은 찍히고
돌무더기를 꽃잎처럼 안고 쓰러졌다가는
일어서고 일어서곤 하는 그 사나이도
이제는 돌이 되어 올라간다.

「계단」 전문
 
 
   ‘계단’ 앞에서 ‘계단’을 올려다본다. 반드시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될 ‘계단’으로 시는 우리를 데리고 오르고자 한다. 점점 물이 차오르는 구멍 난 배에서 구조선으로 오르는 계단 앞에 서 있는 것처럼 절대 절명의 긴장감이 흐르는 ‘계단’이라는 이미지에 ‘구르는 돌’이라는 불안정한 이미지가 집합적으로 결합(하이브리드의 구현)한다. 난공불락의 요새 같은 삶의 계단을 올려다봤을 때, 그냥 오르기도 쉽지 않은데, 돌들이 굴러 떨어지는 계단이란 어떤 계단인가. 여기서 계단을 올려다보는 화자의 시점과 돌이 굴러 내려오는 타자의 시점과 그 두 상황을 지켜보는 독자의 시점이 다시점(多示點)으로 형성된다. “계단으로 굴러 내려가는 돌들이 한동안 찢어지는 아픈 소리로 울부짖다가 깊은 물속에 빠진 듯 잠잠해”지기도 하고, 계단으로 굴러 내려가는 돌들이 나뭇가지처럼 길쭉하게 뻗다가는 달빛에 살기 띤 날을 세우고 가끔은 모난 루비로 빛“나는 가상현실의 전개는 소설적 서사(敍事)를 활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묘사된 돌들의 다양한 모습, “계단으로 굴러 내려가는 돌들이 한동안 찢어지는 아픈 소리로 울부짖다가 깊은 물속에 빠진 듯 잠잠해진다”는 묘사는 우리의 측은지심을 자극하며 감성을 건드려 유혹에 빠지게 하는 상황을 은유한 것으로 보인다. “나뭇가지처럼 길쭉하게 뻗다가는 달빛에 살기 띤 날을 세우고 가끔은 모난 루비로 빛”나는 돌은 무엇인가. 어쩌면 ‘눈의 욕망’으로 야기된 ‘살의’와 물질의 기만적인 힘 앞에 욕망을 드러내는 우리들의 어리석은 모습을 ‘다선구조(多線構造)’로, ‘동영상’으로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때 나타나는 존재가 있다. “돌들이 굴러 내려가는 맨 끝에서 한 계단 한 계단 올라서는 사나이가 있다.” 이는 ‘의식 세계’의 우리의 모습인 ‘자아’이다. 그러나 이어지는 행간에서는 “스치고 부딪힐 때마다 발등은 찍히고 돌무더기를 꽃잎처럼 안고 쓰러졌다가는 일어서고 일어서곤 하는 그 사나이”가 있음을 묘사하는데 그 상황을 ‘무의식 세계’라 볼 때, 의식과 무의식 세계의 이중구조가 행간에 공존하고 있음을 본다.
전 편의 시 「벽 2」에서 “원진(圓陣)으로 꼼짝없이 둘러싸”인 벽에서 투시할 수 있는 ‘유리벽’을 등장시켜 ‘현실과 초월의 고리’인 희망의 고리를 제시한 문덕수의 시는 「계단」에서도 “돌무더기를 꽃잎처럼 안고 쓰러졌다가는 일어서고 일어서곤 하는” 불굴의 사나이를 ‘현실과 초월의 고리’로 등장시키므로 좌절하지 않고 일어서야 하는 우리들에게 ‘돌파구’와 같은 희망을 제시하고 있음에 문덕수의 시의 생명력으로 다가온다.

   이번 논의를 통해 들여다본 문덕수의 시는 따뜻하고 인간적이며 생명이 살아 숨 쉰다. 「초상」을 통해 “천개의 손”을 내밀어 자신의 모습을 비우고 타자에게 맞는 ‘다정한 악수’를 청한다. 「네 개의 막대기」를 통해 ‘환경을 파괴하고 폭력을 조장하고 선함을 말살하려는 ‘막대기’에게는 ‘죽음을 선고’하기도 하고, 「원(圓)에 관한 소묘」에서는 ‘한 개의 원을 ‘천개의 원’으로 증폭, 분할시켜 ‘신의 눈알’로 치환함으로 우리의 적나라한 자화상을 결코 가릴 수 없는 것임을, 어떤 불의도 결국 드러나고 마는 것임을 알려준다. 「라일락 향기」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버린 도심의 삭막한 골목길에 비둘기 한 쌍의 주둥이를 가볍게 보지 않으며, 쓰레기를 실어 나르는 냄새나는 작은 트럭을 무심히 지나치지 않는다.「원(圓)에 대하여」에서는 원이 점에서 출발하여 선이 되고 형(型)을 이루어 생명체로 존재하여 완성체에 이르는 시련의 과정에서 스스로 ‘원’이 되고자 한다. ‘원’은 결코 “윤곽이 아니라 그대로 가득 찬 충실이”라고, 한 점 지극히 작은 씨로 시작된 원, 우리는 “하나의 물방울로”, 마땅히 떨어져야 할 곳에 떨어져 “바다처럼 넘치며 출렁”일 것인가를 자문하게 한다. 「섬」에서는 일상에서 만나는 우리 모두가 ‘외딴 섬’이기에 눈과 눈을 반짝이고 입김서린 잔잔한 마음을 서로 나누라 한다. “「사과」한 알”에서 ‘천체(天體)’를 보며 사과를 붉게 맛 들게 하는 태양의 한 점 원초의 빛깔에서 “자아”를 찾는다.

   이상 문덕수 시인의 하이퍼시를 본인의 시론의 그물망에 비춰보기도 하고, 타자인 심상운 시인의 시론에 접사시켜 들여다 본 결과는 논하기 전에는 예측 못했던 큰 지진과 해일로 다가왔기에 하이퍼시에 대한 세간의 비판에 조정이 필요하다는 점을 다시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하이퍼시는 공상적이어서 난해하여 소통이 어렵고, 서정의 결핍으로 감동이 없으며, 다선구조의 복잡한 이미지망으로 인해 혼란스럽다는 등의 종래의 문제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있음이 그 점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아니 ‘현실과 초월’을 접목한 생경한 묘사들이 오히려 독자들에게 다채로운 상상으로 읽힐 수 있다는 신선한 충격으로 시편들의 행간들에서 지루함 없이 흥미를 느낄 수 있었음이 필자가 조장한 일이거나 결코 우연의 일치라고 할 수 없기에 더욱 그렇다. 더욱이 모든 시편들에는 인류에 대한 속 깊은 애정이 녹아있고, 절망에서 희망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제시하고 있어 시인의 역할에서 충실히 임하고 있음을 본다. 인기에 영합하지 않으며, 곁길로 가지 않고 쉼 없이 새로운 시를 추구하는 열정적인 시인의 시적 행보에 경의를 표한다.
 

5. 결론
 

   필자는 하이퍼시를 예찬하고자 이 논의를 시작한 것이 아니다. 시인이 지향해야할 가장 우수한 시쓰기가 하이퍼시라고 주장하고자 함도 아니다. 문덕수 시인의 많은 작품들이 다 하이퍼시가 아니듯 문덕수 시인이 하이퍼시만을 쓰는 시인도 아니며 평론가로서 학자로서의 문덕수의 평론이 다 하이퍼시론인 것도 아니다. 그러나 문덕수의 하이퍼시론을 한편의 시가 아닌 몇 행의 시적 행간에만 적용해보아도 이 논의의 진의를 파악하리라 생각한다.

   하이퍼적 묘사는 지금까지의 시도된 어떤 묘사보다도 시의 ‘낯설게 하기’에 효과적으로 기여하여 시어의 식상함을 불식시켜준다는 것을 본 논의에 인용된 작품들이 스스로 증명한다. 표현에 있어서 관념적 설명보다 ‘암시적 묘사’는 통찰력을 갖게 하여 사물의 틈과 이면을 볼 수 있게 한다. 사물의 이쪽과 저쪽의 대조적 상황은 유(有)와 무(無)의 대립적 관계를 통해 현실과 초월의 대조 상황을 제공하여 상상의 이미지를 확장시켜주므로 시를 읽는 독자에게 시공을 초월하는 다채로운 상상의 세계를 선사한다. 이는 시가 ‘현실과 초월의 경계’에 서있는 것이 아니라 그 경계를 넘어 섰을 때, 하이퍼시가 성립될 수 있는 것임을 밝혀주며 지금까지의 묘사에서 느끼지 못한 상상이 확장된 초월적 묘사는 시공을 초월하여 새로운 언어의 꽃으로 빛을 발할 것이다. 이 점은 시인 모두에게 적용되는 보편적 논리인 것이다.

   그 점에 관한 심상운 시인의 경우는 어떠한가. 심상운 시인의 시집과 지면을 통해 발표한 시들 역시 다 하이퍼시가 아니며 많은 평론들이 모두 하이퍼시론은 아니다. 그러나 앞서 그의 저서 『의미의 세계에서 하이퍼의 세계로』 평론집에 수록된 「단선구조(單線構造)의 세계에서 다선구조(多線構造)의 세계로」내용에서 ‘하이퍼시 창작법’으로 기술한 것을 인용하여 문덕수의 시를 접사시켜 해부해 봤을 때 시가 스스럼없이 증명해주었다. 그가 논한 ‘단선구조의 세계에서 다선구조의 세계로 이동한 시들의 이미지의 집합적 결합(하이브리드의 구현)을 기본으로 하여 시어의 링크 또는 의식의 흐름이 통하는 이미지의 네트워크(리좀)을 형성한 시들은 다시점(多示點)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개성을 등장’시켜주어 새로운 시쓰기를 제시하고 있음을 부정하는 것보다는 긍정하는 것이 무리 없음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가상현실의 보여주기’는 소설적인 서사(敍事)활용을 통해 현실을 바탕으로 하여 현실을 초월한 상상 또는 공상의 세계로 시의 영역을 확장한다. 그 점은 정지된 이미지를 동영상의 이미지로 변환시켜주는 역할에 기여하고 시인의 의식이 어떤 관념에도 묶이지 않게 한다. 아울러 ‘의식 세계와 무의식 세계’의 이중구조가 공존하는 시를 시인은 연출자의 입장에서 제작할 수 있게 하는 창작의 한 방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하이퍼시의 다선구조는 시대적 성향변화에 대한 현대시인의 적극적이며 창조적인 대응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는 논리에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하이퍼시적 요소가 과거에 시도된 적이 있었다고 해서 하이퍼시를 실패의 소산물이라고 단정하거나 냉소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한국현대시를 대하는 올바른 자세라 할 수 없다. 현재 하이퍼적 구조로 창작되어 발표된 작품이 기존의 흐름을 초월하려는 시도로 보인다면 그것이 작가의 자연적인 소양이었든, 부단한 노력이 수반된 의도였든, 그 장르를 인정하고 건전하게 비판하는 자세가 합리적이다. 물론 이 논리는 하이퍼시를 지향하고 창작하는 당사자들도 하이퍼시가 아닌 타 경향의 시를 겸허히 바라보고 건전하게 비판하며, 하이퍼시를 통해서도 인간의 행복이 선도되도록 ‘서정과 이해’의 지평을 넓혀 나아가 위로와 감동을 제공하며 진리와 정의로 향하는 하나의 길잡이임을 증명할 때, 편견과 오해를 극복하고 ‘꽃 같은 언어’로 향기를 발하여 꿀벌처럼 날아오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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