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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주의에서 고답파, 상징주의로/ 민 용 태
2019년 02월 04일 20시 46분  조회:1738  추천:0  작성자: 강려
낭만주의에서 고답파, 상징주의로
 
 
민 용 태(고려대 명예교수.스페인 왕립 한림원 위원)
 
1. 그리움의 미학
 
“산 너머 저 산 너머 어느 먼 곳에/ 행복이 산다고 사람들은 말 하네”, 독일의 시인 카알 붓세(Busse,1872-1918)의 이런 그리움이 낭만주의 냄새이다. 초기 낭만주의의 자연과 원시인에 대한 그리움, 빅또르 위고의 동양인에 대한 향수가 소위 ‘이국취향(exoticism)’의 유행을 낳았다면, 후기 낭만주의와 상징주의는 보다 깊은 형이상학적 우주의 세계에 대한 그리움으로 메아리친다.
오르떼가 이 가셑(Ortega y Gasset)은 토인비의 ‘세계사’를 언급하면서, 인간의 그리움에 대한 철학을 말한다. 사람은 애초에 어떤 크막한 우주로부터 떨어져 나왔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 따라서 시인들은 늘 그 잃어버린 원초적 고향에 대한 향수를 느낀다고 말한다. 프로이트가 태초의 태아의 자궁 속 행복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욕망을 죽음의 욕망(Thanatos)으로 본다. 이들 사고 또한 인간에게는 어떤 잃어버린 원형적 상태로 되돌아가고 싶은 그리움이 상존한다는 생각이다.
초기 낭만주의에서 떼오필 고띠에(Théophile Gautier,1811-1872)의 고답파(Parnasse)에 이르는 이국 취향(exoticisme)의 문학은, 고띠에의 주장처럼 시간과 공간에서 먼 것이 아름답다는 시각을 발전시켰다. 이 아름다운 것, 즉 먼 것, 먼 곳은 시인의 끝없는 그리움이 향하는 지표이다. 그들은 시간상의 먼 시대, 자연과 원시 속에 호랑이와 사자의 원초적 힘이 용솟음치는세계와 전설적인 중세를 그리워했다. 동시에 공간적으로 먼 이짚트나 동양을 늘 그리움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 그리움의 지표는 낙타를 타고 사막을 헤매는 아라비아인들부터, 만리장성을 넘어 이태백이 달을 보고 시를 읊조리는 당 나라까지 갔던 것.
 
“중국 시인들은 오래된 예절에 익숙해 있지.
그래서 이 태백도 이를 쓸 때는
책상 위에 마가리트 꽃병을 놓고 썼느니...”
 
1865년 7월 15일, ‘고답파’ 그룹이 형성되던 때에 쓴 고티에의 이런 중국 타령은 이들의 이국 취향이 단순한 그리움의 차원을 넘어, 동양에 대한 호기심과 지적 관심으로 기울고 있음을 시사한다. 실제 이 시기로부터 중국과 일본의 시가와 예술은 서양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엑조티시즘은 현실을 추한 것으로 보았던 낭만주의자들이, 한편으로 적극적인 이상을 추구하고, 또 다른 한 편 소극적으로는, 먼 곳으로의 도피를 꿈꾸었던 성향에서 비롯된다. 이들의 이상주의는 자유와 조국, 여성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미학적으로는, 추하고 싫증나는 현재나 현실보다는, 멀고 아름다운 과거, 꿈같이 먼 나라의 이야기 속에 그들이 추구하는 심미적 세계가 오롯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극도의 상상의 자유를 꿈꾸었던 낭만파 시인들의 고향은 그 고재 면에서 엑조티시즘을 낳았다. 즉 눈에 보이는 현실보다는 꿈의 세계, 낮보다는 밤, 눈에 보이는 오늘보다는 먼 어제의 세계, 손에 잡히는 여기보다는 닿을 수 없는 먼 고향을 그리워하는 시풍(詩風)이 그것이다. 이들은 그 먼 곳에 자유롭게 그들이 꿈꾸던 아름다움의 이상향을 그렸다. 따라서 낭만주의자들이 꿈꾸던 아라비아나 중국, 일본의 예술은 그것이 원형 그대로 이해되었다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의 꿈의 색깔로 얼룩진 안타까운 그리움의 지표였을 뿐.
그러나 낭만파들의 먼 곳에 대한 그리움은 곧 눈에 보이지 않는 우주, 플라톤의 ‘이데아’의 이미지에 가까운 어떤 우주적 원형의 세계에 대한 그리움으로 변한다. F. 슐레겔은 말한다.
 
“낭만주의는 전진하는 우주의 시(詩)다. 그 사명은 단순히 시의 색다른 장르를 통합하여, 시를 철학이나 수사학과 결부시키는 일이 아니다. 낭만파 시가 사명으로 알고 의도하는 것은, 시와 산문, 독창성과 비평, 예술과 자연을 때로는 혼합하고, 때로는 융합하여, 시를 생기 있고 친근하게 만들어, 인생과 사회를 시적으로 만들고, 재치를 시화하고 예술의 재형식을 여러 가지 내용이 풍부한 형성소재로 충일 포화시키고, 또한 유머를 불어넣음으로써 활기를 부여하는 일이다. 낭만주의 시는 모든 시적인 것을 포괄한다. 그 범주는 엄청나게 복잡한 예술의 소우주로부터, 문학 소년의 꾸밈새 없는 노래에서 내뿜는 한숨과 입맞춤에까지 이르고 있다. (중략 )낭만주의 시는 무한하며 낭만 시만이 자유이다. 시인의 자의는 어떠한 법칙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 최고 원리로 삼는다.”
우선 낭만주의의 상상의 자유는 절대적이다. 그것은 독일의 엑조티시즘이 선호하는 이딸리아에 대한 향수나 르네상스 예술에 대한 그리움을 넘어, 우주에 대한 무한한 동경으로 나아간다. 문학이나 예술이 대상으로 삼는 개개의 자연이나 현실, 사랑은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린 크막한 우주의 열쇄를 푸는 끄나풀들이다. 그 우주는 무한한 만큼 개인의 상상력에 또한 무한한 자유를 허용한다. 개인주의, 주관성에 뿌리한 낭만주의는 내가 꿈꾸는 환상세계, 내가 생각하는 우주에 대한 창조적 사고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신(神)은 죽었다!”라고 한 니체 이전에, 낭만주의는 크리찬이즘의 유일신(唯一神)적 우주관을 흔들어 놓았다. 개인감정을 중시하고 개성을 추구하는 낭만주의는 궁극적으로 사람 개개인, 시인 개개인이 우주를 생각하고 모시는 “사제(司祭)”가 된다. 카알 슈미트(Carl Schmitt)는 “낭만주의와 낭만적 재현상의 가장 밑바탕에는 사적(私的)인 사제를 모시는 현상이 있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그 때까지는 신을 받드는 주체가 성직자였다면 이제 일반 개인으로 믿음의 주체가 넘어는 오는 것. 그러나 그 낭만주의가 모시는 신은 독재(獨裁)자가 아니라 무한한 자유와 가능의 신이다.
서방 세계에서 우주나 초월적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신이였다면, 낭만주의로부터는 운명과 귀신, 요정 등, 불가사이의 현실들이 현상 세계의 저 너머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 때로부터 우주는 그야말로 형언할 수 없는 신비의 베일을 쓰고는 시인들을 끝없이 유혹한다. 따라서 낭만주의 시인들이 막연한 것을 동경하고, 꿈, 모험, 동화, 마술, 마약, 알코올, 도취의 상태로 접근하려고 하는 초의식(超意識)적 노력 또한 어떤 잃어버린 낙원이나 우주에 대한 그리움의 소산이었던 것. 낭만주의 시인에게 늘 현실의 삶은 천국에서 추방당한 이방인의 설음이 아우른다. 노발리스 또한 자신을 이방인으로 본다.
추위와 피로에 쌓인, 그대 이방인(Fremdling)이여,
이 하늘이 그대에게는 낯설 뿐이겠지--
그대 고향에서는 보다 따스한 바람이 불고
옛날에는 젊은 가슴 한층 꿈에 부플었으리.
 
고향의 들판에는 항상 봄의 입김이
빛나는 삶의 씨를 뿌려주지 않았던가?
늘 평화가 굳게 자리하고 있지 않았던가?
그리고 한 번 싹텄던 것은 반드시 꽃이 피곤 했었지?
 
아, 부질없이 무언가를 찾아 해매는 그대여--
저 천상의 나라는 이미 멸망하였나니--
아무도 모르리, 그 오솔길, 영원히
광막한 대양에 묻혀버린 그 길.
 
노발리스는 항상 봄이 살아 숨 쉬는 평화로운 고향을 꿈꾼다. 고향으로 가는 오솔길은 이미 바다와 파도와 현실이라는 세상 풍파에 깊이깊이 묻혀버렸다. 잃어버린 천국에 대한 슬픔과 그리움은 낭만주의로부터 상징주의 시인들에게 이르는 긴 긴 안타까움의 이정표들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이 코와 피부로 느껴지던 이상향을 꿈꾸었던 것이 보들레르(C.Baudelaire,1821-1867)가 아니었던가. 그는 “교감(Correspondences)”에서, “어린애 살처럼 싱싱하고/오보에처럼 부드럽고, 풀밭처럼 푸른 향기가 살아 숨쉬는” 영원한 고향을 꿈꾼다. 자연의 생명력이 그 원형으로 숨쉬는, 때 묻지 않은 우주의 주소를, ‘숲’은 ‘이따금 어렴풋한 말’들의 ‘교감’을 통하여 알려준다. 그래서 자연은 그에게 하나의 신전이며 그 ‘상형문자’이며, 그 속에서 시인은 우주의 크막한 숨소리를 듣는다.
F. 슐레겔은 “모든 인간에게는 무한한 것에 대한 그리움이 개발되어야 한다” 고 말한다. 이런 충고는 낭만주의와 상징주의 시인들에 의하여 적극적으로 받아드려졌다. 슐라이에르마하(Schleiermacher)는 동경이 모든 종교의 근원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종교뿐만 아니라 모든 철학과 시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 신에 대한 동경뿐만 아니라, 무한한 우주, 어떤 아름다움과 생명성의 근원에 대한 동경과 열망, 그리고 절망이 현대 시정신의 바탕이 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불교적 깨달음에 대한 관심이나 사물의 본 모습에 대한 그리움, 또 그 본 모습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때 묻지 않은 언어에 대한 탐구가 말라르메로부터 발레리에 이르는 순수시의 몸부림이 아니었겠는가.
낭만주의로부터 현대시는 태어난다. 그것은 이성(理性)적이고 관념적인 사추의 방법보다는 동화같은 어린애스러운 동경이나 그리움이 삶이나 아름다움의 원형에 접근할 수 있다는 새로운 믿음의 출발이기도 하다. 플라톤으로부터 우리는 우리가 보고 경험하는 현실 세계는 어떤 보이지 않는 틀의 모조품이라는 직감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가 그 잃어버린 참 세계를 감지하기 위해서는, 이성보다는 감성, 감성보다는 꿈, 자유로운 상상과 환상을 통하여 접근이 더욱 용이하다는 생각을 현대는 가지고 있다. 말하자면, 현실적 사고보다는 그리움이, 눈 뜨고 보는 세상보다는 눈 감은 제3의 눈이 시인이나 철학자에게 보다 참스러울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 주었다.
낭만주의의 그리움은 엑조티시즘처럼 시간과 공간 속에 존재하는 먼 것에 대한 동경에서 출발했다. 인간의 역사와 지리 속에서, 멀고 아득한 것에 대한 미적 가치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런 사고는 이제, 낮보다는 밤, 깨어있는 것보다는 꿈꾸는 것, 똑똑한 것보다는 흐리 멍텅한 것, 확실한 것보다는 희미한 것이, 그 자체로 훨씬 아름답고 참에 가깝다는 것을 배웠다. 후기 낭만주의에서 상징주의에 이르는 시적 에스프리의 깊어짐은 이런 원초적 그리움의 애틋함이 더욱 진솔해지면서 나타난다.
말라르메로부터 시인은 이미 어느 사물도, 그 사물을 감지하는 느낌도, 그 느낌을 표현하는 언어도 시인이 꿈꾸는 원형적 아름다움의 세계에 다다르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더 나아가서, 시가 표현하는 확실한 시어일수록, 사람들의 관습이나 일반적 편견에 길들여진 순수하지 못한 언어의 조작이 만들어낸 허상들임을 깨닫는다. 그런 쉬운 시, 확실한 시어, 비순수한 언어의 시는 첫째, 확실한 만큼 그리움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아름답지 못하다. 둘째, 참스러운 우주적 비젼을 마치 자기가 다 아는 신인 것처럼 확실히 표현하는 그 자체가 이미 엄청난 위선이다.
따라서 말라르메의 “천지 창조의 첫날같이 순수하고 성스러운 모습”을 구현할 수 있는 언어에 대한 그리움은 일상적 언어에 대한 끝없는 부정으로 나타난다. 그의 시와 시어는 우리가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어떤 형태도 거부한다. 그는 현실을 경멸하듯 현실적 언어를 거부한다.
 
나는 도망친다. 그리고 누구나 삶에 등을 돌리는
모든 창에 나는 매달린다. 그리고 축복을 받아,
‘무한’의 순결한 아침이 금빛으로 물들고
영원한 이슬로 씻겨 진 그 창 유리에
나를 비추니, 나는 천사다! 그리고 나는 죽는다. 그리고
 
--그 유리가 예술이건 신비로움이건--
내 꿈을 왕관으로 쓰고 다시 태어나리라
‘아름다움’이 꽃피는 전생의 하늘에!
 
--‘창(窓)’에서
 
말라르메의 시학은 끝없는 언어 파괴를 통해 ‘창’을 닦음으로서 ‘전생의 하늘’에 다시 태어나고 싶은 안타까움의 몸부림이다. 그의 시의 매력은 바로 그 시어의 모호함, 희미함 자체이며, 그것은 동시에 불교의 깨달음을 위한 수행처럼, 다시 죽지 않고 다시 태어나지 않는 초월적 아름다움의 세계를 향한 그리움의 철저한 고행 행위이다.
 
 
2. 예술을 위한 예술 : 탐미(眈美)주의와 데까당(頹廢主義)
 
19 세기인들의 현실에 대한 혐오는 “그리움의 미학”을 낳고 “예술을 위한 예술”에 탐익하게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예술은 자연의 모방이라는 신화가 유효했다면, 이제 예술은 자연적인 것도 아닌, 인간적인 것도 아닌, 플라톤이 이데아의 세계에 가까운 지고의 이상 현실의 구현으로 생각된다. 자연이나 현실은 인공(人工)이나 예술보다 아름답지 못하다는 생각이 이들에게 지배적이다. 휘슬러(Whisler)는 말한다.
“자연이 항상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예술적으로 맞지 않은 주장이다. 비록 인반적으로 자연스럽다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 옳은 것이라는 사고가 늘 지배적이어왔지만, 자연이 옳은 경우는 극히 드물다. 따라서 차라리 자연은 늘 옳지 않다고 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하나의 그림으로 그릴만큼 완전한 조화를 가진 사물들의 모습이란 흔치 않은 법.”
이런 비슷한 사고의 뿌리는 이미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있어왔다. 희랍의 철인이 예술은 자연을 완전한 방향으로 모방한다고 이야기했을 때부터, 이미 자연은 완전하지 않을 수 있음을 염두에 둔 생각이었을 법하다. 이제 예술은 자연의 모방이라는 속박으로부터, 인간 현실의 모방이나 도덕적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어 한다. 이것들보다 더욱 차원 높은 영원한 아름다움의 이상향을 인공적으로 구축하려 한다.
호라티음으로부터 오랜 전통을 가진 예술의 효용성, 즉 예술은 교훈적인 유용한 내용을 재미있게 표현한다는 생각이, 이제 그 도덕 선생 같은 위선자적 탈을 벗고 지고한 쾌락주의자로 변신한 것도 이들 “예술을 위한 예술”을 사는 작가들의 모습이었다. 예로부터 예술은 아름답고 재미있으면 된다는 생각이 없어온 건 아니다. 그러나 이런 사고가 적극적으로 하나의 미학과 생활할 방식을 택한 것은 19 세기 중반 이후에 나타난 현상이다.
칸트의 “판단 비판”에서의 미적 판단의 무관심성(無關心性=desinterestness)은 “예술을 위한 예술” 운동의 이론적 바탕이 된다. 칸트는 위 책의 14 장에서 “오직 순수한 미적 판단들만이(그 판단들이 형식에 의거한 것들이기 때문에) 가장 올바른 취향의 판단이다.”라고 말한다. 한 예술 작품이나 자연물이 아름답다고 판단되는 것은, 칸트 생각에는, 어떤 경험에서 나온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그 아름답다고 하는 판단의 대상이 된 그 “형태”에 대한 순수한(따라서 보편적인) 성찰에 말미암는다. 이런 판단이야 말로, 어떤 특별한 목적이나 이해 관계에서 나온 것이 아닌 만큼 순수하다.
칸트의 생각은 상상과 이해 사이의 어떤 특별한 관계를 설명하는데, 상상력이란 생각들을 정리하고 그 모습을 재생시키는 기능이고, 이해는 그것을 관념화시키는 작용이다. 보통의 경우 우리가 어떤 것을 아름답다고 볼 때는, 우리 이미 가지고 있는 관념에 따라, “이 장미가 아름답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거기에 따른 상상력이 작용한다. 그러나 칸트의 미적 판단 개념을 따르면, 상상은 자유로워서, 상상과 이해 사이의 관계 또한 결정적인 것이 아닌, 끝없는 생각과 연상을 유도한다는 것. 어떤 미적 판단도 결국 정해 진대로 객관화되거나 관념화될 수 없으며, 상상력의 자유로운 놀이에 따라, 순수하게 주관적으로 어떤 미적 쾌감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 이것이 칸트가 “무관심성”이라고 말한 “미적 쾌감”의 성격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체험은 “이것이 장미이기 때문에 아름답다”는 식의 관념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자유롭고 순수한 주관적 느낌에서 온 것이기 때문에, 동시에 누구에서나 통하는 보편성을 갖는다.
이런 칸트의 무관심성 미학은 19 세기 이후 구라파와 미주 대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특히 심미주의, 데까당, 쿠비즘, 추상화 같은 현대 예술론에 크나큰 파문을 던진다. 그것은 예술을 위한 예술론의 발화시기 때부터 독일의 미학이 주효했음을 말해준다.
 
“쉴러가 부른다. 그는 그의 예술에서 날카로운 감성의 소지자이며 거의 그 자신이 시인이라고 해야 한다. 나는 쉴러파의 제자인 헨리 크랩 로빈슨(Henry Craa Robinson)을 만난다. 그의 칸트의 미학에 관한 작품은 몇 가지 대단히 강력한 사고를 제시한다. 모든 목적성이란 예술을 타락시킴으로, 아무 목적 없는 ‘예술을 위한 예술!’!그러나 예술이 목적이 없을 때 진정한 목표를 달성한다.”
윌리엄 K.윔사트는 이민간 프랑스 지성인(꽁스땅과 그의 친구 마담 드 스탤)들이 파리 로 돌아오고, 1814년 보르봉 가의 왕권 복귀로, 프랑스에는 이런 칸트의 미학을 반추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고 말한다. 소위 ‘독일 미학’이라는 이름으로 유행하는 예술 풍조는 ‘순수 예술’ ‘무관심성’ “자유‘ ’순수 아름다움‘이라는 이름으로 19 세기 초 프랑스와 영국 문단을 누빈다. 1832년에 나온 고띠에(Théophile Gautier,1811-1872)의 “초기 시(Premiéres poésies)”의 서문에서는 “이 책이 무슨 목적이 있는가? 아름다움이라는 목표 이외에는 없다.”라고 하면서, 당시 유행하던 공리주의자들, 경제학자, 산 시몬의 사회주의파들을 공격한다.
고띠에가 창안하고 발전시킨 “고답파” 시학, 특히 르꽁 드 릴르(Leconte de Lisle,1818-1964)를 비롯한 이들 시인들은 모두 예술 지상 주의자들이다. “고답파”가 주장하는 시 쓰기의 이론 몇 가지를 보자.
“--시는 인간의 고통을 쏟아내는 배출구가 아니다. 결괴적으로 시는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는다.
--예술은 효용성에서 벗어나야 한다.“아무 쓸모없는 것이 진정 아름다운 것이다”라고 고띠에는 말한다.
--예술은 형식의 순수성만을 지향해야 한다.”
이상에서 보듯, 고답파 시인들에게 칸트의 미학의 무관심성, 무효용성, 그리고 특히 “형식의 순수성”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중요했는가를 알 수 있다. 공꾸르 형제는 칸트가 그림에 대해서 이야기한 “색깔은 부수적이며, 디자인이 중요하다”는 형식주의를 본따라, “세련미(préciosité) 와 정확성(présicion)을 시 표현의 핵심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시는 현미경으로 관찰하듯 세부 묘사에 정확성을 기하고, 그리스나 라틴어 등에서 따온 새로운 말을 만들어 내거나, 남들이 사용하지 않는 이상한 말, 중국의 당시나 이태백까지 들먹이게 된다.
고띠에의 이국취향은 우리가 앞서 이야기한 바 있다. 특히 그의 중국이나 중국시에 대한 관심, 공꾸르 형제의 일본 “우끼요에(浮世畵)”에 대한 관심은 물론 이국적인 예술에 대한 호기심에서 비롯되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칸트가 말한 예술적 ‘느낌’의 주관적 보편성, 세계성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 고답파의 예술 이론가들은 이처럼 오래고 먼 예술에서, 오히려 변하지 않는 정확한 미적 ‘느낌’의 공통분모를 찾고자 했던 것이다.
윌리엄 K.윔사트는 영미 문학에서의 예술을 위한 예술론, 혹은 오스카 와일드의 탐미주의를 비교문학적 입장에서 자세하게 서술한다. 그는 우선 애드가 앨런 포우(Edgar Allan Poe)가 슐레겔의 드라마론(Drmatic Lectures)을 번역으로 읽고, “이상성의 기능이 시적 감정이다”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1840년 이후 쉘리가 낭만주의의 상상력을 격찬하는 시를 알게 되면서, 자기 나름대로의 문학론을 설립하게 되는데, 이것이 “문학 창작론(Philosophy of Composition)”, “시학 원리(Poetic Principle)”를 쓰게 한다고 말한다. 거기에 또한 애매하나마 칸트의 미학이 녹아있음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 위 학자가 인용한 포우의 주장들을 보자.
“무덤을 넘어서 전해오는 영광스런 광휘들을 황홀하게 감지하고, 영감을 받아, 우리는 싸운다. 시간의 소산인 생각들과 사물들 사이, 수많은 짜 맞추기를 통해, 어쩌면 오직 영원의 세계에만 속할지 모르는 요소들로 이루어진 사랑스러움(Loveliness) 몇 조각을 얻기 위하여.
그 즐거움은 동시에 가장 순수하고, 가장 고양되고, 가장 강렬한 것으로, 나의 주장은 그것이 아름다움의 성찰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 아름다움의 성찰에서만이 우리는 쾌락의 승화(昇華)와 영혼의 열락을 얻을 수 있는 것. 그것을 우리는 시적 감정으로 인지하게 된다. 나는 아름다움을 만든다, 고(故)로--숭고미와 같은 의미로 말해서--나는 아름다움을 시의 마을로 꾸민다.”
이런 천상의 아름다움(supernal beauty)은 물론 일시적 센티멘탈리즘이나 열정에 나온 것이 아니며, 누구에게 가르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영혼의 최대 고양 상태”에서 느껴지는 것인만큼, 감정이나 이성의 산물일 수 없다. 포우의 이런 숭고한 아름다움 지상주의는 보들레르에서 가장 훌륭한 동반자를 만난다. 프랑스 시인의 “악의 꽃(Les Fleurs du Mal)”이라는 이름부터 악(惡)을 넘어선 아름다움에 대한 믿음이 깔려 있다.
보들레르는 예술을 위한 예술은 결국 아무것도 될 수 없다고 반대 의견을 표시한다. 그것은 인간 본성을 거부하기 때문이란다. 그는 생명 중심의 높은 이상을 추구하는 것이 예술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예술이 생명적인만큼 도덕적이라고 말한다. “시인은 단순이 인간의 본성을 넘쳐나리만큼 풍성하게 갖추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도덕주의자다.”라는 애매한 표현을 쓴다. 결국 보들레르는 기존의 선과 악의 구분에 의한 도덕률을 존중하지는 않는다. 생명과 삶의 의지로 충만한 활동이 시작활동인 만큼 그 자체가 이미 도덕적이라고 보들레르는 말한다. 악과 부패로부터 피어난 꽃도 보들레르에게는 생명적인만큼 도덕적이다. 그래서 그는 “악의 꽃의” 서시에서 “불명예스러운 도시여, 나는 너를 사랑한다.”라고 외친다.
보들레르는 자연 숭배자는 아니다. 예술이 자연의 모방이라고 믿지는 않는다. 예술은 마술적 매혹이다. 마술인 만큼 고양된 기술이며 “존재의 화장“이다. “루즈와 화장이 가장 고양된, 초자연적으로 강력한 존재의 방법에 대한 상징이다.”보들레르 또한 인공적 매혹의 천국을 꿈꾼다. 예술로 이루어진, 아름다움을 위에 두는 새로운 도덕률을 꿈꾼다.
영국의 탐미주의 또한 좁은 기존 도덕의 벽을 허물고 출발한다. 오스카 와일드가 그 대표적 작가이다. 보들레르와 같이 와일드의 인생 또한 타락과 시련과 죽음으로 점철되어 있다. 와일드는 “나는 예술을 최상의 현실로, 현실을 단순한 일종의 허구로 생각했다.”라고 고백한다. 탐미주의는 예술 지상주의인 만큼 반도덕적, 반사회적인 특성이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 데 킨세이(De Quincey)의 에세이, “예술의 하나로서의 살인에 대하여”라는 책 제목만 들어보자. 시간의 변화 속에 퇴색되어 가는 아름다움을 시간의 늪에서 구원하기 위해, 한 여자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영원화 시키기 위해, 그 아름다움의 절정의 순간에 여자를 죽여, 원형 그대로의 조각으로 만든다. 영원한 아름다움으로 머물게 한다. 흔히 이런 사고가 탐미주의 작품의 바탕이 되곤 했다.
오스카 와일드는 예술이 비도덕적인 이유를 “감동을 위한 감동이 예술의 목표이다. 행동을 위한 감정이 인생이 목표이듯이.”라고 설명한다. 즉 인생의 도덕률과 예술의 도덕률이 같을 수 없으며, 예술은 인생의 도덕의 예속물일 수 없다는 것. 이렇게 해서 탐미주의는 일부러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소름 끼치게 타락한, 추한 현실을 기꺼이 소재로 삼았다. 우리의 알반 상식과는 전연 무관한 현실 속에서 예술성만으로 살아있는 “최상의 현실”을 그려내고자 했기 때문이다.
퇴폐주의나 댄디즘이 “예술을 위한 예술”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들의 아름다움, 그 순수성, 진솔성에 대한 집착이다. 사회에 유용하고 도덕적인 것에는 진정한 아름다움이 없다. 현실적으로 부서지고 허물어지고 타락한 현실 속에 지고한 예술성이 오롯이 살아갈 수 있다. 이런 심미적 쾌락주의는 한 편으로 세기 말적 염세주의에 물들면서 많은 시인과 예술가들에게 전염병처럼 퍼져나갔다. 보들레르, 베를레느, 말라르메, 랭보 등 거의 모두 데까당들이다. 베를레느는 말한다. “나는 데까당스 말기의 제국이다.” 이들은 인간의 원죄와 양심의 가책을 느낀 크리스천들인 데가 있었다.
보들레르는 “사랑을 한다는 것은 악(惡)을 저지르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사랑을 포기하지 않은 악마적 낭만주의자였다. 사랑이 악(惡)이라면, 그 최고의 기쁨은 바로 그 악을 저지른다는 의식에 있다고 했다. 창녀에 대한 동정과 연민은 데까당과 낭만주의자들에게 공통된 것으로, 우리 작가 이 상의 기녀와의 삶이나 “날개” 속의 주인공의 창녀와의 동거가 바로 비슷한 취향에서 출발한 것들이다. 이들은 기존의 도덕률과 사회, 그리고 부르조아지적 가정의 타성과 관습에 반발하는 순수한 저항아들이었다. 같은 인간으로서의 감정을 가지고, 운명의 질곡 속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모든 고난 받은 자들에 대한, 순수한 이해와 사랑은 퇴폐주의가 개척한 또 하나의 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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