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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학자는 은유를 어떻게 보는가
2019년 03월 09일 21시 27분  조회:1553  추천:0  작성자: 강려
언어학자는 은유를 어떻게 보는가
 
페르디낭 드 소쉬르의 구조주의 언어학의 유산을 물려받은 촘스키는 언어의 심층 구조를 밝히는 데 온힘을 쏟은 언어학자로 평가받는다. 현대 언어학에 가히 혁명적 영향을 끼쳤다고 일컫는 <통사 이론의 양상>(1965)에서 그는 이른바 <선택 제약>의 관점에서 은유를 설명한다.
 
 
선택 제약이란 한 어휘 항목이 다른 어휘 항목과 결합하는 방식을 규정짓는 규칙을 말한다. 한 문장에서 명사는 통사 자질을 가지고 있는 반면 동사나 형용사는 명사와의 관계에 따른 선택 자질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한 주어는 아무 낱말이나 술어로 삼을 수 없고 오직 여러 낱말 가운데에서 특정한 낱말만을 술어로 선택하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그 돌이 울었다>는 통사 규칙을 위반한 문장이다. <그 돌이 유난히 빛났다>라든지 <그 돌이 단단해 보였다>라고 말하면 몰라도 <돌이 울었다>는 문장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돌>이라는 무생물 주어는 <울었다>는 정감을 나타내는 동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통사 규칙은 주어와 동사의 관계에 그치지 않고 형용사와 명사, 부사와 동사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가령 <아름다운 역겨움>이라든다<찬란하게 달린다> 라는 말은 앞뒤가 서로 맞지 않는다.
 
좀스키의 선택 제약을 위반한 본보기로 <색깔 없는 푸른 관념이 맹렬하게 잠을 잔다>라는 문장을 한 예로 든다. 추상적 관념에는 색깔이 없기 때문에 <푸른 관념>이라는 표현은 잘못된 것이다. 더구나 관념의 색이 푸르다고 해놓고서 <색깔 없는>이라는 말로 관념이라는 명사를 꾸미게 하는 것은 더더욱 말이 되지 않는다. 또한 <관념이 --- 잠을 잔다>는 표현도 걸맞지 않기에 마찬가지이다. 잠은 추상적 관념은 할 수 없고 오직 생물체만이 할 수 있는 생리 현상이다. 관념이 잠을 잔다는 표현도 모자라 <맹렬하게 잠을 잔다>라고 말하는 것은 더더욱 말이 되지 않는다. <깊이>나 <곤하게>라는 부사는 몰라도 <맹렬하게>라는 부사는 <잠을 잔다>는 행위를 꾸며 주는 수식어로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좀스키가 말하는 선택 제약을 좀더 쉽게 이해하는 데에는 김수영의 맨 마지막 작품 <풀>은 아마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절대 권력의 억압 아래 고통받고 절망하면서도 끈질긴 생명력의 민중을 노래하여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 작품이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었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고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이 작품에서 한낱 풀에 지나지 않는 식물이 사람처럼 행동하여 선택 제약을 어긴다. 동물도 아닌데 풀이 자리에 눕고 일어난다는 것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그것도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고 말한다. 눕고 일어나는 행동도 이상한데 풀은 웃고 웃기까지 한다. 비록 생물체라고는 하지만 풀이 울고 웃는다는 것은 정상적 언어 관습에서 벗어난 것이다. 논리성에 따라 문장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는 촘스키의 입장에서 보면 김수영의 작품은 선택 제약을 어긴다. 한 낱말이 문장에서 선택할 수 있는 테두리를 벗어남으로써 통사 규칙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풀은 생물과 식물이라는 자질을 갖추고 있는 반면, 눕거나 일어난다는 동사는 동작과 상하 운동과 동물에만 적용된다 는 자질을 갖추고 있다. 
 
한편 통사론뿐만 아니라 화용론도 은유 이론에서 한몫을 톡톡히 맡는다. 화용론자 H. 폴 그라이스는 대화 격률(格律) 이론에서 은유를 언급한다. 이제는 이 분야에서 고전이 되다시피한 논문<논리와 담화>에서 종래의 기호학적 모델과는 전혀 다른 추론적 의사 소통 모델을 제안한다. 모든 의사 소통을 메시지를 기호화하고 그 기호를 해독하는 것으로 보는 기호학적 모델에서와는 달리, 추론적 모델에서 의사 소통은 어디까지나 추론적 증거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해석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정상적인 의사 소통이 가능하기 위하여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을 그라이스는 <협조의 원리>라고 부른다. 이 원칙에 따르면 대화에 참여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 대화의 목적과 방향에 걸맞은 방식으로 담화에 이바지하여야 한다. 
 
그라이스는 협조의 원리를 크게 1) 양의 격률 2) 질의 격률 3) 관계의 격률 4) 방법의 격률의 네 가지로 나눈다. 양의 격률은 정보의 양과 관련한 것으로서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대화의 목적에 꼭 필요한 만큼의 정보만을 제공하고 필요 이상으로 많은 정보를 주거나 이와는 반대로 필요한 것보다 적게 정보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 규정짓는다. 질의 격률은 대화에서 절대로 그릇되다고 믿고 있는 것을 말해서는 안 되며 오직 진실된 것만을 말할 것을 규정짓는다. 또한 적절한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적합성과  연관성을 강조하는 관계의 격률은 오직 대화와 직접 관련된 것만을 말하도록 규정한다.  마지막으로 방법의 격률에서는 무엇보다도 명료성을 생명처럼 소중히 여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될 수 있는 대로 모호하거나 애매한 말을 피하고 간결성과 논리적 질서를 추구하려고 한다.
 
그라이스는 은유가 협조의 원리 가운데에서 질의 격률을 어긴 것으로 본다. 한 대상이나 개념을 다른 어떤 것에 빗대어 말하는 은유는 진실된 것을 말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라이스의 관점에서 보면 김수영처럼 <풀이 눕는다 /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 풀은 눕고>나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 다시 누었다>라고 말하는 것은  오직 진실된 것만을 말하도록 규정짓는 질의 격률을 조롱하는 문장이다. 그러나 어찌보면 은유는 질의 격률을 조롱할 뿐더러 양태의 격률을 조롱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마디로 촘스키에서나 그라이스에게서나 은유란 어디까지나 정상적인 언어 규칙에서 벗어난 언어에 지나지 않는다. 은유가 작용하는 메커니즘을 과학적으로 밝혀내면서도 그들은 지나치게 통사 규칙이나 의사 소통의 원칙에 얽매여 있다는 비판을 모면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들의 언어 이론은 나무를 보되 숲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바로 이 점에서 언어학자들은 문학가들과는 크게 다르다.
 
문학가들은 은유를 정상 언어에서 일탈한 비정상적 언어나 정상 언어에 기생하는 부차적 언어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은유야말로 정상 언어요 언어의 규칙에 맞는 언어라고 주장한다.
 
적합성 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개념은 <맥락 효과>와 <처리 노력>이다. 이 두 개념은 말하자면 적합성 이론의 지붕을 떠받들고 있는 지붕과 같다. 최적의 적합성을 얻는 데에는 어느 진술이 참이냐 거짓이냐 하는 것보다는 경제적이냐 비경제적이냐 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적합성의 원칙은 최소의 노력이나 자재로써 최대의 효과를 노리려고 한다는 점에서는 경제 원칙과 비슷하다.
 
 
   - <은유와 환유 ; 민음사> 김동욱 지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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