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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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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홍문표 시창작 강의 노트

홍문표 시창작 강의 노트 1
2019년 10월 24일 20시 04분  조회:862  추천:0  작성자: 강려
1. 시학의 길
홍문표
(1) 시학의 개념
① 시학의 의미
시학(poetics)이란 시에 대한 학문이다. 법학이 법에 대한 학문인 것처럼, 시학은 시에 대한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이론이며 객관적인 진술이다. 따라서 거기엔 엄격한 이성의 사고와 과학적 탐구의 과정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② 시학의 어려움
그러나 시는 과학의 대상처럼 고정적인 물질이거나 객관적인 논리를 통하여 제작된 이성의 산물이 아니라 오히려 논리나 이성을 초월한 상상과 정서를 통하여 표현된 창조적 산물이기 때문에 이러한 비논리적인 대상을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종합하여 어떤 법칙을 발견하고 체계를 세워야 한다는 데 어려움이 있다.
③ 인생관과 시관
시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인생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만큼 간단하지 않다. 그러나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논리적으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저마다 인생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처럼 시인들도 시가 무엇인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저마다 시적인 체험과 인식을 토대로 시를 창작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시의 정의가 천차만별이 될 수밖에 없음을 알게된다. 그러므로 엘리어트는 시의 정의에 대한 역사는 오류의 역사라고 지적하면서, 시의 정의를 논하는 것은 무용한 일이라고 말한 바가 있다.
④ 시학의 정당성
그러나 인생관이 분명하지 않은 자의 삶이 무가치, 무책임한 것처럼 시에 대한 분명한 논리와 신념과 비젼이 없을 때 그는 다만 언어를 희롱할 위험이 있다. 시가 무엇인지, 왜 써야 하는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 분명한 시관이 있고서야 전문적인 시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2) 시학의 방법
① 종합주의와 다원주의
산 밑에 있을 때는 자기가 오르려는 산봉우리 아니면 몇 그루의 나무만 보인다. 그러나 높이 오를수록, 멀리 보이고 여러 개의 산이 있음도 알게 된다. 학문의 길, 시학의 길도 보다 많이, 보다 높게 산에 오른 자가 보다 깊고, 보다 넓게 시를 볼 수 있다. 이는 인생의 길도 그렇다.
발치엔
질퍽하게 밟히는
아카시아향
중턱엔
천년 침묵의 속살을 후벼대는
쑥국새
정수리에 오르니
하늘문이 열리네.
무질근한 일상을 털고
신발끈 조여매고
허위허위 오른 산길
엉클어진 호흡을 내뱉으며
한 시간을 버틴 결심
팔각정에 앉으니
하늘 복판에 내가 있네.
손 끝에 잡히는 새하얀 낮달
싱싱한 햇살 몇 두룸
소나무 잔가지에 걸어 놓고
눈을 감으니
사르르한 이브의 눈짓
세상이 온통 꽃밭이네
- 자작시「날마다 산에 올라․5」
② 장님과 코끼리
시의 이성적 접근 방식으로 인도에서 전해지고 있는 장님들이 코끼리를 구경한 일화를 들고 싶다. 장님들이 코끼리를 구경한 소감은 경험한 조건에 따라 각자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동안 시학이나 문학비평에 다양한 이론과 논쟁은 결국 어느 한 편만을 보고 주장한 편견의 역사다. 그러나 그들의 소감을 종합하고 정리하여 본다면 어느 정도 코끼리에 근사한 모습을 추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미술에 몽타주라는 수법이 있다. 여러 사람들의 부분적인 인상을 들어서 이를 종합하여 실물과 유사한 모습을 재현하는 일이다. 시학이란 결국 시적 체험들의 논리적 종합이고, 시적 인식들의 객관적 몽타주이다. 거기엔 과거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시론들의 종합적인 정리가 있어야 하고 작품 속에 나타난 구조의 원리를 발견해야 하는 분석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가급적 광범위한 시론의 정리와 작품의 분석을 통한 끝없는 모색과 논의가 가장 정직한 시학의 접근 방식이다. 흄은 보편적 지식의 유일한 토대는 경험과 관찰이라고 했다. 물질적 영역은 실증주의, 정신적 영역은 경험주의다.
(3) 에이브럼스의「거울과 등불」
① 문학의 기본적인 구성조건
시학에의 접근방식은 물론 관점에 따라 무수히 열려질 수 있는 세계다. 그러나 아무리 시학의 영역을 확대한다 하여도 그 기본 문제는 작품 그 자체에 관한 것, 작품을 창조한 시인, 작품을 읽는 독자, 그리고 작품과 시인과 독자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적인 세계, 즉 우주와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이점에 대하여 에이브럼스는 그의 문학 이론서인「거울과 등불(The Mirror and The Lamp)」에서 예술 작품을 형성하는 네 요소를 들어 구조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예술 작품이란 소재와 사건 또는 환경적인 요인이 될 수 있는 우주(universe), 예술가(artist), 그리고 청중(audience)이 삼각을 이룬다고 하였다.
우주(모방론)
작품 (존재론)
예술가(표현론) 청중(효용론)
따라서 그의 이론은 작품과 그 대상인 우주와의 관계에서 전개되는 모방론(mimetic theory), 작품과 독자와의 실제적 효용관계에서 전개되는 실용론(pragmatic theory), 작가의 내면적 정신, 영혼, 상상, 정서 등의 표출이라는 관점에서 전개되는 표현론(expressive theory), 작품을 어떤 외부적 사항과 독립시켜 오직 작품 그 자체만의 객관적 존재로 논의되는 존재론(objective theory)으로 구분하고 있다. 이처럼 작품의 이해나 해석을 작품 외적인 조건과의 총체적인 관계성에서 파악하려는 자세와, 그것을 체계적으로 분석하여 다각적으로 조명한다는 입장은 매우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4)모방론의 시관
① 모방론의 의미
거울의 시학- 모방론이란 거울처럼 우주, 자연, 인간, 사회, 현실에 대한 생각을 거울처럼 작품에 그대로 반영한다는 뜻에서 에이브럼스는 거울의 시학이라고 했다.
무엇에 대한 시학-따라서 시나 예술이 작가에 의하여 표현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제기되는 부분이 바로 무엇(object)을 표현하느냐 하는 문제다.
오랜 전통- 모방론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시는 자연의 모방이다”라든지 플라톤이 “지상의 모든 현상은 본질(idea)의 모방”이라는 고대의 문학관에서 시작하여, 고전주의나 근대 사실주의에 이르기까지 가장 강력한 문학의 이론으로 이어지고 있다.
② 모방론의 유형
플라톤의 모방론- 플라톤의 견해처럼 모방이란 진리나 본질과는 무관하고 무가치한 현상을 흉내내는 정말 거짓의 모조품(imitation)이란 생각이다. 현상은 진리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그런데 예술은 바로 진리의 그림자인 현상만을 흉내낸다는 데 모방의 부정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플라톤은 시인은 그의 철인공화국에서 추방해야 한다는 시인추방설을 제기 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방론-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방이란 모든 예술의 본질이라는 생각이다. 그는 모방은 인간의 본능이며 본능의 만족은 또한 즐거운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모방은 관념의 세계에 관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살고 있는 구체적인 세상을 모방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진실을 삶의 현실에 내재한 것으로 보았다.
모범에 대한 모방- 모방은 문학적 모범에 대한 모방을 뜻했다. 이것은 작가의 글쓰는 훈련을 강조한 로마시대 이래 지속되는 개념이다. 이른바 고전이 후배 작가의 모범이라는 이러한 생각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디서나 믿어지고 있다. 고전주의나 복고주의도 그러한 발상이다.
재현과 반영- 근대에는 모방론이 재현(representation)이라는 말로 바뀌었다. 이는 우주적 본질의 모방이 아니라 현실을 그대로 재현한다는 말이다. 이는 특히 근대 사실주의 문학의 발전과 관계가 깊은 개념이다. 근대문학은 인간의 본질, 실재보다도 눈에 보이는 사실의 표면을 충실히 보여주는 일에 주안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재현은 다시 반영이란 말로 바뀌었다. 반영의 경우에는 사실의 반영보다 현실의 반영에 주안점을 두었고, 현실은 또한 역사적 현실이나 모순된 현실 등 비판적 관점에서 비판적 사실주의 계급주의에서는 계급간의 투쟁을 반영으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가 제기된다.
신 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가닥 있어
타는 가슴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국 소리 호르락 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소리
신음 소리 통곡 소리 탄식 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 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 김지하「타는 목마름으로」
(5) 효용론의 시관
① 효용론의 의미
문학의 존재이유- 문학도 인간의 것이라고 할 때 작품은 필연적으로 작가는 물론 독자와도 불가분리의 관계를 갖기 마련이다. 즉 작품은 독자에게 무엇을 기대하며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가 하는 작품의 존재 이유에 대한 물음이 제기되는 것이다. 작품과 독자와의 관계에서 생각할 때 문학은 독자에게 어떤 효과를 준다는 효용성이 제기된다.
심리적 효과와 교훈적 효과- 독자에 대한 효과는 크게 보아 독자의 감정을 움직인다는 심리적 효과와 삶에 유익한 지식이나 도리를 알려준다는 교훈적 효과를 생각할 수 있다.
끝없는 논쟁- 문학의 존재성을 개인적인 것인가. 사회적인 것인가. 심리적인 것인가. 윤리적인 것인가. 오락적인 것인가. 교훈적인 것인가. 세계관, 인생관에 따라 문학의 존재이유는 늘 논쟁거리가 된다.
② 효용론의 전개
시인추방설과 시적 카타르시스- 일찍이 플라톤은 시인이란 본질(idea)을 추구하지 않고 본질의 그림자인 현실을 모방하고 쾌락을 조장하는 시인을 추방해야한다고 했다. 그러나 사회에 유익한 교훈적인 시만은 인정한다고 했다. 교훈설의 선구가 된 셈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쾌락을 행복의 속성이라 했고, 유덕한 생활이 바로 쾌락이라고 했다. 자연을 모방하는 것도 쾌락이라 했다. 그러나 비극시에서 보듯이 모순되는 두 정서, 공포와 연민을 통해 마침내 평형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그는 쾌락이란 말보다 카타르시스(catharsis)라고 했다. 카타르시스란 심리적 정화작용이다.
어버이 살아신제 섬기기란 다하여라
지나간 후이면 애닲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한일 이뿐인가 하노라 -정철
독자중심의 문학론- 그동안의 문학은 작가가 독자를 어떻게 길들일 것인가 하는 작가 중심적 문학관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작품의 존재성을 독자가 결정하는 논리로 전환했다. 이는 오늘날의 상품은 소비자가 결정한다는 시장경제의 논리와 같다.
(6) 표현론의 시관
① 표현론의 의미
등불의 시학- 모방적 시관이 시는 자연을 반영하는 거울로 설명되고, 효용론적 시관이 시는 독자에게 어떤 실제적 효과를 주는 것이라고 설명한다면 표현론의 시관은 시인의 내면적 세계를 창조적으로 표현한다는 입장이다. 예술 작품이란 근본적으로 내면 세계의 구현이다. 그리고 이러한 창조과정은 시인의 지각이나 사상, 감정 등이 결합하여 구체화된다. 따라서 표현론은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는 거울이 아니라 스스로를 태워 빛을 발하는 등불의 시학이 된다.
낭만적 시관- 표현론의 중심은 물론 낭만주의이겠지만 고대에는 시인의 창조적 기능을 신비적인 영감의 산물로 보려 하였고, 근대에 와서 워즈워드의 정서의 자발성이나 코울리지의 상상설이 대표적이며 동양에서는 詩言志나 詩氣論이 주종을 이루고 있음을 보게 된다.
② 표현론의 전개
영감과 창조- 표현론이 본격적으로 논의된 것은 근대 낭만주의시대이지만 시가 시인의 내면적인 특성으로 창조된다는 생각은 고대로부터 시작하였다. 먼저 플라톤은 시를 특별한 영감의 선물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시인이란 신령한 힘에 접신된 상태에서 그의 입을 통하여 말, 즉 시를 토해내는 것이라 하였다.「대화편」이온에서는 그것을 시신(muses)이 준 것이라고 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시의 영감설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는 시는 영감을 받은 물건이라든지 시의 기술이라는 것은 천부의 재주를 가진 자 또는 광기가 있는 자가 가질 물건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견해는 후대의 천재론과 결부되기도 한다. 그러나 로마의 호라티우스는 영감론을 비판하고 문학이란 후천적 연마의 소산이라는 기술(art)론을 제기하였다. 로마의 실용적 사고의 일단이라고 할 수 있다.
워즈워드의 자발성- 시신의 영감을 받아서 시를 쓴다거나, 시인은 보통 사람과 달리 특별한 재능을 지닌 천재라는 논의는 마침내 문학의 보편적인 법칙성을 극복하고 창조적 개성이니 독창성이니 하는 자유분방한 낭만주의 시대를 열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낭만주의의 대표적인 선구자로 워즈워드를 발견하게 된다. 그는 시란 감정의 자발성(spontaneity)에 의한 흘러 넘침(over flow)이라고 했다.
.코울리지의 상상력- 내면의 표현은 결국 상상력으로 구체화된다. 해즐리트는 시는 오직 상상의 언어라고 했고, 코울리지는 상상은 시적 능력이고, 시적 능력은 곧 시인이라고 하였다.
너에게 가려고
나는 강을 만들었다
강은 물소리를 들려주었고
물소리는 흰 새 때를 날려보냈고
흰 새 떼는 눈발을 몰고 왔고
눈발은 울음을 터트렸고
울음은 강을 만들었다
너에게 가려고
- 안도현「 너에게 가려고 나는 강을 만들었다」
(7) 존재론의 시관
① 존재론의 의미
존재의 의미- 한 사물이 그 자체로서의 독립된 구조와 법칙을 가지고 객관적으로 드러날 때 이를 존재(being)라고 한다. 물론 존재의 본질적 개념은 비유(非有)나 무에 대한 대립 개념이며 상징적으로는 시간과 공간을 점하고 있는 실재물이란 뜻이기도 하다. 따라서 문학에 있어서의 존재란 작품 그 자체라는 의미이며, 이는 객관적(objective) 또는 형식적(formal) 관점에서의 인식이기도 하다.
존재론의 문학관- 문학 작품이 작가에 의하여 제작되고 독자에 의하여 인정된다 하더라도 문학 작품은 그 자체로서의 독립된 내용과 형식을 지니며 독특한 미학적 기능을 발휘하고 있음을 전제하고 작품의 고유한 존재 양식의 구조를 통해서 문학을 인식하려는 것이 존재론(objective theory)의 관점이 되는 것이다. 문학에 있어서 존재론은 작가가 한 작품을 통하여 드러내고자 한 설명된 내용(paraphrasable content), 즉 이야기 되어진 무엇(what)이 아니고 어떠한 방법(why)으로 이야기 되었는가 하는 표현방식이 문제가 된다.
형식화와 형상화- 작가는 작품에서 무슨 말을 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은 작품 제작이라는 커다란 종합화, 즉 형식화의 과정을 충족시키는 부분들이다. 작품 속에서의 사상 감정이란 다양한 의미 구조일 뿐이며 그것이 형식화되지 않으면 작품이란 전체 속에 참여할 수도 없는 것이다. 따라서 사상과 감정은 형식을 통해 형상화된다.
② 존재론의 전개
처음․중간․끝- 아리스토텔레스는 하나의 완전한 전체는 처음, 중간, 끝이 있는 것이다. 처음은 필연적으로 그 앞에 아무것도 따르지 않되, 그 뒤에는 다른 것이 자연히 따르는 것을 말하고, 끝은 그와 반대로 필연적으로 다른 어떤 것을 따르되 그 뒤에는 아무것도 따르지 않는 것을 말하며, 중간은 무엇을 따르고 동시에 뒤에 무엇이 따르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플롯을 엮는 사람은 아무데서나 시작할 수도 끝낼 수도 없다.
유기적 형식- 낭만주의 시대 문학관은 다양성과 통일성, 생명적, 역동적인 형식을 말했는데 쉴러는 살아있는 유기체적 형식만이 아름다움을 구현할 수 있다고 했다. 아름다움의 최고 이념은 ‘사실과 형식의 완전한 결합과 균형’이라고 했다. 여기서 유기적 형식이란 전체와 부분이 생명체와 같이 긴밀한 조화를 갖는 것을 말한다.
구조적 형식- 현대에 와서는 형식이란 말보다 구조라는 말을 사용한다. 러시아 형식주의, 영미 신비평, 프랑스 구조주의 등 일련의 형식주의는 형식과 내용을 분리하지 않고 작품을 구성하는 내적 질서로 본다. 내적 질서에 대한 용어로는 랑그(lange), 아이러니(irony), 역설(paradox), 긴장(tension), 낯설게 만들기, 전경화 등의 말들을 사용한다.
한 개의 원이
굴러간다.
그 안팎으로 감기는 별빛과
꽃잎들......
금빛의 수밀도만한
세 개의 원이
천 개의 원이
굴러간다.
신의 눈알들이다.
어떤 눈알은 모가 서서
삼각형이 되어
쓰러진다.
어떤 눈알은 가로 누운
불기둥이 되어
뻗는다.
한 개의 원이
8월 한가위의 달만큼
자라서
굴러간다.
문덕수의 「원에 관한 소묘」
 
 
사물 인식의 두 방법
홍문표
1. 주관적 인식과 객관적 인식
(1) 국화와 누님
시인이 시를 쓴다는 것은 시인의 눈에 비친 우주나 사물이나 내면의 세계를 시라고 하는 언어형식으로 표현하는 미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 말은 결국 시인의 사물에 대한 인식과 언어적 표현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 사물에 대한 인식과 언어적 표현이란 말은 결코 시인에게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과학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과학자도 사물을 관찰하고 거기서 발견한 진리를 언어로 기술하는 점에서 시인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과 시가 구분되고 철학과 시가 구분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다음 두 글을 보자.
㉠ 국화 : 명. 식물. 엉거시과에 속하는 식물. 줄기는 나무질화 하며 잎은 대개가 깊이 찢어지고 품종이 다양함. 꽃의 빛깔이나 모양도 여러 가지여서 대국. 중국. 소국으로 나눠지며 꽃이 피는 시기에 따라 하국. 추국. 동국으로 나누기도 함.
- 현문사「한국어 대사전」에서
㉡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 서정주「국화 옆에서」
㉠의 문장 :국화에 대한 객관적, 사전적, 학술적 서술
국화의 생태, 종류, 특징들을 객관적으로 인식
㉡의 문장 : 국화에 대한 시인 자신의 주관적 견해, 비과학적 서술
국화꽃과 소쩍새, 국화와 누님, 과학적으로 전혀 무관 그러나
시인은 모든 현상들이 유기적 관계가 있는 것으로 인식, 주관적 인식
(2) 주관과 객관
① 인간의 의식 작용
인간의 정신이나 의식이란 언제나 움직이는 에너지다. 만일 의식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죽어 있거나 잠자는 상태일 것이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은 깨어 있다는 것이고, 깨어 있다는 것은 의식이 작용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의식의 움직임은 밖으로 나아가려는 원심력과 안으로 들어가려는 구심력으로 항상 줄다리기를 한다. 이렇게 의식이란 언제나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이 때 원심력은 기존의 객관적 기준에 의한 인식이고 구심력은 개인적이고 사적인 기준에 의한 인식이 된다. 이를 객관과 주관이라 한다.
② 과학자의 의식 작용 : 원심적, 객관적, 사회적, 역사적, 물질적, 실증적, 추상적, 합리적
③ 시인의 의식 작용 : 구심적, 주관적, 개인적, 개별적, 정신적, 구체적, 정서적, 심정적
④ 객관적 인식의 특징 : 일회적, 지적, 현실적, 실용적, 물질적, 침묵적 ㉠의 문장
⑤ 주관적 인식의 특징 : 생명력, 영원성, 충만함, 행복감, 감동적 ㉡의 문장
2. 감성적 인식과 이성적 인식
(1) 감성과 이성의 본질
인간은 근원적으로 이성(logos)과 감성(pathos)을 공유한 존재다. 그런데도 문명사는 이성, 지혜, 지식, 합리성, 과학성의 우월성만을 강조, 이성만능주의, “아는 것이 힘이다” 감성적 기능을 경시
(2) 좌뇌와 우뇌
최근의 뇌과학- 좌뇌와 우뇌의 기능분석, 좌뇌-이성적 기능, 우뇌-감성적 기능. 두뇌의 좌측을 상한 사람은 이성적 기능을 상실하게 되고 우측을 상한 사람은 감성적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따라서 좌뇌를 상하면 수량을 헤아리지 못하고 우뇌를 상하면 눈물이나 웃음을 모르는 목석 같은 인간이 된다. 좌뇌는 사물을 판단하고 계산하고 추상화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우뇌는 척추신경과 더불어 느끼고 상상하고 창조하고, 즐거워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최근의 천재교육- 우뇌를 키워라, 지능지수(IQ)보다 감성지수(EQ)를 높이는 것
(3) 현대인 비극
신은 우리에게 좌뇌와 우뇌를 균형있게 개발하여 이성과 감성의 조화로운 삶을 향유하도록 축복하셨다. 그런데 인간들은 좌뇌만 개발하여 이성적 사고, 이성의 문화에만 치중한 정신의 반신불수, 불구자의 삶을 살게 된다.
지식, 기술, 이성만을 중시하는 이성중심주의가 인간의 물질적, 기술적, 지적, 권력 등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목적으로만 수행되어질 때, 세상은 이기적이고, 경쟁적이고, 차별적이고, 불평등한 세상을 만듦. 여기에 현대인의 비극이 있음.
(4) 시는 감성적, 주관적 세계 인식
시란 이성 중심에서 감성 중심으로 객관에서 주관으로 세계를 인식하여 이성중심의 불균형의 삶에서 이성과 감성의 균형적 삶을 회복하려는 구원의 행위다.
손바닥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나의 얼굴이 보인다.
내게로 불 밝혀 가야 하는
땅이 보인다.
세상을 다 받아들고도 비어 있는 손
잠들지 못하는 나라
산맥이 일어서고 골짜기가 깊다.
강물이 꿈을 꾼다. 바다가 깨어 있다.
미래의 내 음성이 들리는 곳
손바닥 깊이 들어가면
고요하다.
이 고요한 길속에
길이 엇갈려져 끝이 없다.
혼돈과 창조의 거센 바람소리
우주의 숨소리
밤하늘 별의 운행이 화안히 비친다.
모두가 죽어 여기 돌아와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난다.
항시 침묵으로만 말하는
내 미지의 손이여.
이 깊은 신비의 기슭에서
누군가 밤마다 내 영혼을 향하여
활을 쏘고 있다.
- 이성선「손의 명상」
3. 과학적 진실과 시적 진실
(1) 과학적 진리에 대한 우상
과학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고, 실증적이기 때문에 이성중심의 인간들은 과학에만 진리가 있다는 우상을 갖고 있다. 그러나 과학이나 지식의 세계는 개개의 구체적인 실존이나 리얼리티를 무시하고 이들의 공통된 속성만을 축출하여 이를 개념적으로 추상화한다.
그것은 존재의 다양성이나 존재의 절대성을 무시하는 평균적인 것이며 산술적인 것이다.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80세라 한다. 이는 매우 과학적인 결론이다. 그러나 꼭 80세, 일 분 일 초도 틀리지 않는 만 80세 정각에 죽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다만 평균 수치로 그러한 결론을 추상할 뿐이다. 이처럼 개개의 존재들에 대한 실체가 사멸되고 추상화된 기호만 남는다는 것은 하이데거가 말한 ‘존재의 망각’이며 릴케가 지적한 바와 같이 ‘개개의 사물을 죽이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과학의 세계는 개별성, 특수성, 내면성, 영혼의 세계가 무시된 한 쪽만의 세계일 뿐이다.
(2) 진리와 패러다임
최근에는 같은 과학이라도 관점이나 구성방식, 해석과정에 따라 그 진실성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이론이 설득력을 갖는다. 전체를 구성하고 있는 개별적인 요소들의 의미는 그 전체의 방향과 성격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쿤은 이와 같이 개별적인 구성요소의 의미를 결정하는 전체적 관점을 패러다임(paradigm)이라고 하였다. 가장 분명한 예로 물리학에서는 전기를 파장(波長)으로 보지만 화학에서는 미립자(微粒子)로 보는 것이다. 즉 어떤 패러다임이냐에 따라 과학에서조차 진실은 천의 얼굴을 갖게 된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패러다임조차 애당초 존재한 체계가 아니라 인간이 만든 체계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학적 지식만이 절대적인 객관성을 지닐 수 없으며 과학적 진리도 상대적이며 오히려 주관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다만 과학적 진리가 객관적이라고 하는 경우 그것은 일정한 패러다임이라는 범주 내에서 논리성을 지녔다는 뜻일 뿐이다. 그러므로 패러다임이 바뀔 경우 객관성이나 논리성은 함께 상실되거나 변하는 것이 과학적 진리의 서글픈 운명이기도 한 것이다.
(3) 시적 진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도 진리에 대한 겸허한 이해가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즉 과학적 진실은 과학적 패러다임에 따른 것이고, 종교적 진실은 종교적 패러다임에 의한 것이며, 시적 진실은 시적 패러다임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는 과학적 진실만이 진실이 아니라 종교적 진실도, 시적 진실도 각각 그들 나름의 진실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 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 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 버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 조지훈「승무」에서
우리의 전통무용 중에 승무(僧舞)라는 춤이 있다. 고깔 쓰고, 장삼 입고, 때로는 법고를 두드리며 춤을 춘다. 명칭 그대로 승무는 불가의 승려들이 추는 춤이다. 그런데 실제로 나이든 남승들이 추는 승무를 보면 좀 투박하고 지루한 느낌이다. 그런데 조지훈의 시「승무」를 읽노라면 승무의 아름답고, 신비로운 춤사위에 사로잡힐 뿐만 아니라 세사에 시달린 우리들의 번뇌마저 벗어나는 듯한 황홀경에 빠지게 된다. 이성적 판단으로는 승무가 대수롭지 않은 춤인데 감성적으로 표현된 시「승무」를 통해 보면 황홀하고 신비로운 세계가 현실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이성적 사고 속에 매몰되어 있던 승무의 의미가 이처럼 시인의 감성적 언어를 통하여 이른 봄의 개나리처럼 활짝 피어나는 것이다.
달빛은 무엇이든 구부려 만든다
꽃의 향기를 구부려 꿀을 만들고
잎을 구부려 지붕을 만들고
머나먼 비단길을 구부려 낙타 등을 만들어 타고 가고
입 벌린 나팔꽃을 구부려 비비 꼬인 숨통과 식도를 만들고
검게 익어가는 포도의 혀끝을 구부려 죽음의 단맛을 내게 하고
여자가 몸을 구부려 아이를 만드는 동안
곧은 약속을 구부려 반지를 만들고
- 송찬호,<달빛은 무엇이든지 구부려 만든다 >에서
구부리다라는 단순한 낱말이 이처럼 낯설게 사용되어 우리 정서를 얼마나 세련되게 하며 공간과 시간 또 다른 의미의 세계를 창조하고 확장하여 정신의 깊이와 폭을 넓혀가고 있는가? 또한 개념적인 낱말들이 구부리다라는 한 시어 속에 들어가 아름다운 이미지를 만들면서 얼마나 폭 넓은 감동의 세계를 창조하고 있는가? 정보 언어와 유통언어에 물든 관습적인 기존 가치 세계를 뒤집고 한 번도 여행해 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펼쳐 보이며 끝없는 상상력으로 우리를 초대하는가?
 
감성 감정 정서의 세계
홍문표
1. 시는 감성 감정 정서의 세계
(1) 미묘한 감정
감성 감정 정서 마음 등의 용어들을 실질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오감을 통해 느끼는 순간적 감각적 인식이다. 이성의 세계, 지식의 세계는 한 번 습득하면 영구적이지만 감성의 세계는 순간 느꼈다 사라지는 감각이다. 이는 외부의 자극에 대한 지적인 이해가 아니라 순간순간 느끼는 심리적 반응이다. 따라서 상황에 따라 늘 변할 수 있는 예민하고 미묘한 세계다.
나의 마음은 고요한 물결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고
구름이 지나가도 그림자 지는 곳
돌을 던지는 사람
고기를 낚는 사람
노래를 부르는 사람
이리하여 이 물가 외로운 밤이면
별은 고요히 물위에 나리고
숲은 말없이 잠드나니,
행여, 백조가 오는 날,
이 물가 어지러울까
나는 밤마다 꿈을 덮노라
- 김광섭「마음」
(2) 감정과 카타르시스
이원론과 서열주의- 플라톤이래 본질과 현상, 정신과 육체, 이성과 감성을 이원화하여 본질, 정신, 이성 등에 우월한 것으로만 서열화하여 감성적 예술, 시 경멸했다.
그러나 감정은 해방감. 행복감, 만족감, 충만함을 주는데 이를 아리스토텔레스의 카타르시스(catharsis)라고 했다.
인간은 어떠한 자극을 받는가에 따라 신체의 각 기관이 다양하게 반응하고 이에 따라 슬픔, 기쁨, 웃음, 노여움, 두려움, 놀라움, 그리움, 사랑스러움 등의 정서적 감정을 느끼게 된다. 예컨대 시끄러운 소리는 불쾌감을 줄 뿐만 아니라 신체적으로는 소화기 장애를 일으킬 수 있고, 짜증스런 기분을 유발하게 된다. 그러나 경쾌한 리듬은 소화기능을 돕고, 즐겁고 유쾌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만병의 근원은 스트레스, 카타르시스는 바로 스트레스 해소
육체적 건강에 지대한 효과- 시치료, 문학치료(대체의학)의 원인이 됨
나무가 되고 싶다.
나무가 되어 바람에 흔들리거나
양지바른 산자락에 앉아
시나 몇 줄 쓰고 싶다.
청청한 하늘 바라보면서
새털구름 한 자락 잘라
백두산에는 바늘꽃 심고
한라산에는 미나리아재비
밤에는 초롱한 별빛을 세면서
흥얼흥얼 콧노래나 부르고 싶다.
가지는 꺾이어도 좋다.
허리는 부러져도 좋다.
잎들이 떨어져
너에게 짓밟혀도 좋다.
봄이면 속살이 돋고
여름이면 또 꽃이 피는 것을
꺾어지면 어떠리
부러지면 어떠리
짓밟히면 어떠리
순리를 씹으며
고독을 씹으며
풋내를 씹으며
바람처럼 살다가
강물처럼 살다가
청산에 붙어사는
나무가 되고 싶다.
- 자작시「나무가 되고 싶다」
(3) 가슴의 세계
정서는 지성적인 사고와 지식의 축적을 목적으로 하는 머리의 세계가 아니라 충격과 놀라움과 뜨거움으로 느끼는 가슴의 세계가 되는 것이다. 물론 가슴의 세계란 비유적 표현이고 과학적으로는 뇌와 중추 신경의 작용이다.
러시아의 시인 푸슈킨은 칸트의 혈관에는 이성이라는 맹물이 흐른다는 말을 했다. 드퀸시는 지식의 문학과 힘의 문학을 구분한 바가 있다. 지식의 문학은 가르치는 것(to teach)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고, 힘의 문학은 감동시키는 것(to move)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지식의 문학은 언제나 유용성을 따지고 논리를 따지고 나에게 얼마나 유익한 것인지를 냉정하게 살피며 머리를 굴린다. 그러나 힘의 문학, 즉 시의 세계는 머리를 굴리는 것이 아니라 뜨거운 가슴으로 모든 것을 품는다. 그리움과 슬픔과 사랑과 황홀함으로 세계를 끌어안는다.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보며는 내 가슴은 뛰누나
내 어렸을 때도 그랬고 어른이 된 지금도 그렇고
늙어서도 그렇기를 바라노니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죽는 이만 못하리.
- 워즈워드의「내 가슴은 뛰누나」에서
(4) 정서의 훈련
정서의 의미- 리쳐즈는 정서를 일종의 유기적 혹은 전신적 감각이라고 하였다. 제임스는 자극이 되는 사실을 지각한 뒤를 따라 신체적 변화들이 일어나는데 그 변화의 의식이 곧 정서라고 하였다.
시인과 예술가와 악기- 정서란 악기와 같은 것이다. 특히 예민한 현악기와 같은 것이다. 가야금이나 바이올린은 반드시 그 예민한 줄을 자극했을 때만 소리가 난다. 뿐만 아니라 악기는 잘 다루면 다룰수록 그 소리가 더욱 예민하고 예술적이다.
명기(名器)라는 말이 있다. 훌륭한 장인이 만든 소리가 뛰어난 악기를 가리켜 하는 말이다. 그러나 명기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악기도 같아서 잘만 길들인다면 좋은 명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은행나무 그늘엔
노오란 음부(音符)들이 떨어진다.
은행 이파리들에다
내 귀여운 어휘들을 적어 본다.
적어 놓은 어휘들은
제법 노오란 발음들을 한다.
- 양명문「은행나무 산조」에서
2. 감정의 구체적 표현
(1) 사랑의 묘약
① 감정의 구체성
감정은 순간순간의 느낌이기에 보다 구체적일 때 보다 효과적인 속성이 있다.
사랑은 근본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느낌이란 너무나 미묘하고, 어떠한 경우도 동일할 수 없다. 이것이 사랑의 실존이고 진실이다. 따라서 사랑을 주제로 한 시를 추상적으로 또는 막연한 언어로 기술한다면 이는 사랑을 느끼는 것도, 사랑을 실천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다.
② 춘향전이 위대한 이유 ― 구체적 표현
월하의 삼생 연분 너와 나와 만난 사랑, 허물없는 부부 사랑, 화우동산(花雨東山) 옥란화 같이 펑퍼지고 고운 사랑, 연평 바다 그물같이 얽히고 맺힌 사랑, 청루미녀(靑樓美女) 금침같이 솔마다 감친 사랑, 시냇가의 수양같이 펑퍼지고 늘어진 사랑, 남창북창(南倉北倉) 노적(露積)같이 다물다물 쌓인 사랑, 은장옥장(銀藏玉藏) 장식같이 모모이 잠긴 사랑, 영산홍록(映山紅綠) 봄바람에 넘노나니 황봉백접(黃蜂白蝶) 꽃을 물고 질긴 사랑, 녹수청강 원앙조격으로 마주 떠 노는 사랑, 년년 칠월 칠석야에 견우직녀 만난 사랑, 양귀비를 만난 사랑, 명사십리 해당화 같이 연연히 고운 사랑 네가 모두 사랑이로구나, 어화 둥둥 내 사랑아,
- 「춘향전」에서
③ 사랑의 묘약
감정은 섬세하고 예민한 것이어서 한 가지 대상에 대해서도 느끼는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고 시간마다 다르다. 그러기에 감정은 가장 주관적이며 개별적인 것이며 동시에 구체적인 것이어야 한다. 사실 주관적이란 말은 사물을 공통된 것으로 묶어서 보는 것이 아니라 개개의 특성을 구별하여 보는 것이며 이는 개별적인 존재성을 중시하는 시적 리얼리티이기도 하다.
손금에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 ―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이 어린다. 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아본다.
- 윤동주 「소년」에서
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사랑을 배웠다 너로 해서
그러나 너의 얼굴은
어둠에서 불빛으로 넘어가는
그 찰라에 꺼졌다 살아났다
너의 얼굴은 그만큼 불안하다.
- 김수영 「사랑」에서
(2) 사물의 구체화
① 시간의 구체화
봄 - 이른 봄 - 이른 봄날 - 이른 봄날 아침 - 이른 봄날 아침 동트는 시각
② 공간의 구체화
무덤 - 할머니 무덤 - 망우리 언덕 할머니 무덤 - 망우리 언덕 사철나무 아래 할머니 무덤
잔디,
잔디,
금잔디,
심심산천에 붙는 불은
가신 님 무덤가에 금잔디.
봄이 왔네, 봄빛이 왔네.
버드나무 끝에도 실가지에.
봄빛이 왔네, 봄날이 왔네.
심심산천에도 금잔디에.
- 김소월 「금잔디」
공간 - 잔디 → 금잔디 → 심심산천 → 가신 님 무덤가의 금잔디
시간 - 봄 → 봄빛 → 버드나무 끝 → 실가지
봄 → 봄빛 → 봄날 → 심심산천 → 금잔디
③ 예수와 바울 ― 구체화와 감동
바울 :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예수 : 공중에 나는 새도 깃들 곳이 있고 여우도 굴이 있건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노라
(3) 시의 원근법
① 원근법의 표현
머언 산 청운사
낡은 기와집
산은 자하산
봄눈 녹으면
느릅나무
속잎 피어가는 열 두 구비를
청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
- 박목월 「청노루」
머언 산 → 청운사 → 느릅나무 → 청노루 → 맑은 눈 → 도는 구름
(최원경) (원경) (중경) (근경) (최근경) (심경)
② 구체적 공간과 시간
이 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꼬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 하리라.
- 성삼문 「이 몸이 죽어가서」
죽음의 공간화 - 봉래산 - 제일봉 - 낙락장송
죽음의 시간과 공간 - 백설(겨울 시간) - 만건곤(공간) - 독야청청(의미공간)
 
감정과 지성의 조화
홍문표
(1) 지나친 감정 표현
① 감정의 여러 모습
미묘한 정서는 시시각각으로, 분위기에 따라서 무수히 변하는 것이다. 사람에 따라, 상황이나 대상의 변화에 따라 정서는 천태만상이다. 전통적으로 동양에서는 일곱 가지 정서, 즉 칠정(七情)이라 하여 희(喜), 노(怒), 애(哀), 락(樂), 애(愛), 오(惡), 욕(欲)이라는 정서의 유형을 말한 바가 있고, 러스킨(J. Ruskin)은 사랑(love), 존경(venernation), 찬탄(admiration), 기쁨(joy)과 이에 대응하는 미움(hate), 분노(indignation), 공포(horror), 슬픔(grief) 등 여덟 가지 정서를 제시한 바 있다. 따라서 시인은 상황에 따라 감정을 적절히 표현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어떤 시인은 늘 한가지 감정만을 집중적으로 드러낸다. 지나칠 경우는 센티멘탈리즘이 되지만 적절할 경우는 시인의 독득한 개성이 된다.
② 1920년대 센티멘탈리즘
1920년대 「백조」, 「장미촌」 등의 동인지를 중심으로 감정이 중시되는 낭만주의 사조가 유행하였는데 식민지의 암울한 시대, 3․1 운동은 실패로 돌아가고 마침 일본으로부터 들어온 세기말 사상 등으로 이 시대 낭만주의 시들은 실망, 좌절, 허무, 이별 등 어두운 감정을 주로 하는 경향이었다. 이를 센티멘탈리즘이라고 한다
저녁의 피묻은 동굴 속으로
아 - 밑없는, 그 동굴 속으로
끝도 모르고
끝도 모르고
나는 꺼꾸러지련다.
나는 파묻히련다.
가을의 병든 미풍의 품에다
아 - 꿈꾸는 미풍의 품에다
낮도 모르고
밤도 모르고
나는 술 취한 집을 세우련다.
나는 속 아픈 웃음을 빚으련다.
- 이상화 「말세의 희탄」
바람아,
오― 폭풍아 흑풍아
그 불꽃을
불어 날려라
쓸어 헤치라
몰아 무찔러라
오, 위대한 폭풍아
세계에 충만한 그 불꽃을
오, 그리고
한없고 끝없는
허무에 춤추어 비치라.
- 오상순 「허무혼의 선언
(2) 1930년대 ‘시문학파’의 밝은 감정
그러나 1930년대는 싱싱한 자연을 발견하면서 다시 순수하고 깨끗한 정서로 어두움이 극복되고 밝은 하늘과 자연 속에 속삭이는 심정의 순수함을 보게 된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아래 웃음 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새악시 볼에 떠오는 부끄럼같이
시의 가슴을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
실 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 김영랑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3) 1970년대 ‘민중시’의 부정적인 감정
1970년대부터 우리 사회는 급격한 도시화, 산업화로 빈부의 격차가 극심하게 되었고, 소외계층의 불만은 가진 자, 지배자에 대한 부정과 저항의 정서로 팽배하였다. 이러한 시대적 자각은 민중의식이라는 이념과 행동을 구체화하게 되었고 이러한 의식에서 제작된 시를 민중시, 실천시 등으로 불리어지게 되었다. 이들 시의 공통점은 권력과 자본의 불평등에 대한 철저한 비판, 부정 개혁이었다.
우리 세 식구의 밥줄을 쥐고 있는 사장님은
나의 하늘이다
프레스에 찍힌 손을 부여안고
병원으로 갔을 때
손을 붙일 수도 병신을 만들 수도 있는 의사 선생님은
나의 하늘이다
두달째 임금이 막히고
노조를 결정하다 경찰서에 끌려가
세상에 죄 한번 짓지 않은 우리를
감옥소에 집어 넌다는 경찰관님은
항상 두려운 하늘이다
죄인을 만들 수도 살릴 수도 있는 판검사님은
무서운 하늘이다
관청에 앉아서 흥하게도 망하게도 할 수 있는
관리들은
겁나는 하늘이다
높은 사람, 힘 있는 사람, 돈 많은 사람은
모두 하늘처럼 뵌다
아니, 우리의 생을 관장하는
검은 하늘이시다
- 박노해 「하늘」
(4) 뜨거운 감정의 시
정서가 고정화될 때 정조가 되고 정조가 불건전할 때 센티멘탈리즘에 빠진다고 하였는데 감정이 지극하면서도 뜨겁게 타는 경지를 열정이라고 한다. 원래 열정을 영어로 패션(passion)이라고 하는데 이는 ‘고통을 받는다’라는 어원을 갖고 있다. 고통을 감수하고 고통을 내재한 언어야말로 가장 값진 시어다. 기독교에서는 예수께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의 고통을 지는 사건을 그리스도의 수난(The Passion), 즉 패션으로 표기한다. 인간을 위해 십자가의 수난을 달게 받는 사랑의 경지야말로 열정의 최고 감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 한숨의 미풍에 날아 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은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 한용운 「님의 침묵」
(5) 절제된 감정
① 모더니즘시의 실험
서구 문학사에서 낭만주의가 세기말 사상과 결탁하여 침울하고 병적인 퇴폐주의(decadanism)로 후퇴하였을 때 감정보다는 지성적인 표현을 강조하는 주지주의(主知主義)가 발생했는데 이미지즘과 더불어 이를 모더니즘이라고 한다. 이들은 사물에 대한 주관적 감정을 감각적인 이미지 즉 객관적 상관물로 드러내고자 했다.
② 사물의 객관화
바다는 뿔뿔이
달아 날려고 했다
푸른 도마뱀떼 같이
재재 발렀다
꼬리가 이루
잡히지 않았다
흰 발톱에 찢긴
珊瑚보다 붉고 슬픈 생채기!
- 정지용 「바다」에서
③ 지나친 지성
그런데 모더니즘 시의 경우도 지나치게 지성적이어서 감동보다는 난해성으로 독자를 곤혹스럽게 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ELEVTER FOR AMERICA
세마리의닭은사문석의층계이다.룸펜과모포
빌딩이토해내는신문배달부의무리.도시계획의암시
둘째번의정오싸이렌
비누거품에씻기어가지고있는닭.개아미집에모여서콩크리트를먹고있다.
- 이상의 ‘대낮’
(6) 감정과 지성의 등가
현대시의 두드러진 경향은 과거의 규칙적인 음성적 리듬의 시에서 개성적인 리듬의 시로, 과거의 지나친 주정적인 시에서 주지적인 경향으로 전환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시가 주지적이라고해서 감성을 완전히 배제한 것으로 오해하는데 사실은 감성과 이성을 균형있게 배열한 감정과 지성의 등가(等價)의 시를 말한다. 엘리어트는 시란 감정과 지성의 등가물(等價物)이라고 하였다.
가장 깊은 부리에서
아슴히 높은 정수리까지의
내 외로움을
사람아
너에게 드릴밖에 없다
동쪽 비롯함에서
서녘 끝 너메까지
한 솔기에 둘러 낀
하늘 가락지
돌고 돌아서
다시 오는
이 마음을
- 김남조 「雅歌」
새양철 지붕위로 쏟아지는 쇠못이여
쇠못같은 빗줄기여
내 어린날 지새우던 한밤이 아니래도 놀다 가거라
잔디 위에 흐느끼는 빗줄기여
늬맘 내 다 안다
늬맘 내 다 안다
내 어린날 첫사랑 몸져눕던 담요짝 잔디밭에 가서
잠시 놀다 오너라
- 조정권의 ‘비를 바라보는 일곱가지 마음의 형태1’에서
몇 트럭씩
논밭으로 실려 나가는
묶인 고뇌와
고장난 시간들
지나다 보면
낯이 선 사투리들이
발길에 툭툭 채였다.
 
- 노향림의 ‘K읍 기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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