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jinjinghua 블로그홈 | 로그인
김경화
<< 3월 2024 >>
     12
3456789
10111213141516
17181920212223
24252627282930
31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나의카테고리 : 작품

[단편소설] 손가락 감싸면 주먹인 것을 -김경화
2019년 07월 18일 10시 19분  조회:410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김경화 

손가락 감싸면 주먹인 것을 
 
어데로 가야 하나.
몇시 쯤 되였는지 알 수 없다. 푸르스름한 새벽 기운을 느끼며 집을 나왔고 아빠트단지를 한바퀴 돌고 여기까지 어슬렁거리며 걸어왔으니 대략 짐작해보면 아침 여섯시에서 일곱시 사이 쯤 되였을 것 같다. 주머니에 핸드폰이 있어 꺼내보면 시간을 알 수 있겠지만 그는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한산한 뻐스정류장 한쪽에 비켜서서 정면을 주시하고 있다. 무언가에 골몰한듯 보이지만 실은 어떤 것에도 집중해있지 않다.
뻐스가 달려온다. 선로번호가 씌여져있다. 그는 기억을 더듬어 뻐스의 행선지를 추정해보려 애쓰지만 기억은 너무 흐릿하다. 이 도시에는 그의 이름으로 된 집이 있고 엄연히 호적에 또렷하게 찍혀있는 그의 부인과 아들이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모든 것이 낯설고 꿈의 한 장면같이 비현실적일 수가 없다.
지금 쯤, 안해는 쌀을 씻고 있을가. 주름이 가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희고 통통한 손을 앞으로 뻗어 밥물을 맞추겠지. 오늘 아침은 국을 끓일려나, 아니면 도마도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계란과 함께 볶을려나, 아들애를 깨워 잔소리를 해가며 밥을 차려주고 입을 옷을 골라 주겠지. 완벽한 가족의 아침 풍경이라고 해야 할 것들이다. 그는 그 완벽해보이는 가족의 남편이고 아버지이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러하다.
그것을 믿어도 좋은 것일가.
모든 현실이 힘을 합쳐 그를 밀어내고 있다. 땅이 한쪽으로 기우는 듯한 착각에 그는 발끝에 단단히 힘을 준다. 그가 침을 삼킨다. 다리가 저려난다. 이곳을 지나는 뻐스는 네대다. 그는 하나하나 자세히 훑어본다. 이 시간 그가 갈 만한 곳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지금 이대로 집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다. 이 폭발할 것 같은 마음으로 집에 들어간다면 눈앞에 그려지는 아름다운 것들을 그가 그의 손으로 부숴버릴가 그는 두렵다. 그가 애써 쌓은 탑을 그의 손으로 무너뜨리고 그 무덤 앞에 무릎을 꿇고 주먹으로 땅을 칠 것 같아 그는 두렵다. 꽉 틀어쥔 주먹사이로 검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모든 것에 무감각해진 그가 멀거니 주먹사이로 빠져나가는 검붉은 액체를 무표정하게 바라보게 될가 그는 두렵다. 꾹꾹 가슴속에서 올리미는 충동을 억누르며 그는 눈을 쪼프리고 낯설고도 익숙한 역 이름들을 내리훑는다. 모아산? 여기로 가볼가? 흙의 냄새를 맡고 나무를 만져보고 풀잎이라도 손을 뻗어 쓰다듬고 싶다. 그러면 불덩어리가 들어있는 것 같은 이 마음이 조금 다독여질 수도 있을지 모른다. 어떻게든 마음을 진정하고 생각을 정리하자. 그는 목표를 정하고 오른손을 뻗어 주머니를 뒤진다. 세 개의 짤린 손가락 끝은 물체에 닿을 때마다 아릿하다. 지갑을 꺼내 열어보니 일원짜리가 보이지 않는다. 그는 주위를 흘깃거리다가 정류장 뒤편에 있는 슈퍼에 들어가 물 한병을 산다. 일원짜리 두장을 손안에 거머쥐고 다시 단단히 섰다. 차가 스르륵 멈춰서고 문이 열리자 그는 훌쩍 올라탄다. 주말이 아니라서 그런가. 차에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는 창가 쪽 자리에 앉아 밖을 내다본다.
꼭 십년 만이다. 십년후 여름, 그는 다시 이 도시로 돌아왔다. 중간에 장모가 돌아갔을 때 닷새일정으로 급히 왔다가 장례만 치르고 떠났었다.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들은 낯설다. 십년 사이, 이 도시는 너무도 많이 변했다. 변하지 않은 것은 그 뿐인 것 같다.
아니, 어쩌면 가장 많이 변한 것은 그 자신일 수도 있다.
그는 더 이상 젊고 기운 차지 않으며 열개의 손가락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이제 더 이상 그는 그가 아니다. 
 
2
그는 안해를 안았다.
왼팔을 안해의 머리께로 뻗자 안해가 기다렸다는듯 그의 팔에 머리를 묻었다. 안해의 몸에서 알싸한 박하향이 풍겼다. 서먹함과 설레임이 교차했다. 내 안해지만 오래만에 살을 대하니 미묘한 낯설음이 있다. 누운 안해는 성숙한 녀자의 매력이 풍긴다. 그는 약간 떨리는 손으로 안해의 등을 더듬어 브래지어의 호크를 풀었다. 그는 잠간 망설인다. 성한 손으로 팔베개를 한터라 잘린 손가락으로 안해를 만져야 한다. 그는 망설여진다. 잠간 주춤하다가 그는 아직 성한 엄지를 안해의 가슴에 가져갔다. 부드럽게 늘어진 가슴이 다소 그의 긴장을 늦추게 한다. 그는 손을 뻗어 가볍게 유두를 만졌다.
그때였다. 안해가 몸을 뒤튼 것은. 아주 미세한 움직임이였지만 그는 멈칫했다. 가슴에 서늘한 무엇이 비껴 지나가는 순간이였다. 엄지만으로 만지려다가 잘린 손가락이 안해의 가슴에 닿았고, 그 순간 안해의 몸이 살짝 움직였다. 미세한 동작이였지만 그는 또렷이 느꼈다. 그는 멈칫했다. 눈앞이 아득해지려고 했다. 그 미세한 몸짓의 언어를 알 것 같아서였다. 그는 침을 삼키고 용기를 내여 몸을 일으켰다. 떨리는 손으로 안해의 마지막 한겹을 벗겨냈다. 안해의 그곳은 차갑게 닫혀있었다. 건조했고 경직돼있었다. 그의 남자도 축 고개를 떨구고 도무지 머리를 들 기미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스르륵 안해의 몸에서 손을 거두었다. 애써 짜냈던 한 가닥의 용기도 어부가 그물을 거두듯 스르륵 거두어졌다. 어디선가 풀벌레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는 허물어지듯 안해한테 등을 보이고 누워버렸다. 안해가 말없이 뒤에서 그의 등을 두어번 쓰다듬다가 스르륵 팔을 거두고 그를 등지고 돌아누웠다.
뒤척이다가 잠이 들었나 보다. 잠에서 깨여 일어났을 때, 안해의 숨소리만이 적요한 방안에 울려퍼지고 있었다. 그는 어둠 속에 우뚝 섰다. 카텐 틈새로 새벽의 푸르스름한 빛이 방안에 스며들어 안해를 비추었다. 그는 모로 누워 잠든 안해를 들여다보았다. 머리카락이 얼굴을 반쯤 가린 안해는 흰 어깨를 이불 밖으로 드러내고 쌕쌕 가벼운 숨소리를 내며 자고 있었다. 어깨로부터 목까지 이어지는 선이 희고 매끈하다. 뛰여나게 예쁘진 않지만 누구나 탐할 만큼 매력적이다. 게다가 안해는 서글서글한 성품에 친화력이 좋은 편이여서 낯선 사람하고도 어렵지 않게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다. 녀자 나이 마흔이면 한창이지.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의 안해는 마흔살이다. 염색을 하지 않으면 흰머리가 반을 차지하고 막로동에 거멓게 탄 피부와 제법 굵은 주름이 건너간 그에 비해 안해는 아직 젊고 싱싱하다. 열살이라는 나이차이를 생각하지 않는다 해도 나이에 비해 훨씬 겉늙어버린데 그에 비해 안해는 나이보다도 훨씬 젊어보인다.
그는 베란다로 나와 담배를 한대 꺼내물었다.
잘린 식지와 중지에 라이터를 끼고 아직 성한 엄지로 라이터불을 당긴다. 세 번의 시도 끝에 겨우 불을 붙였다. 손가락이 시큰거린다. 고작 라이터불 하나 켜고 시큰거리는 손으로 이제 무엇을 더 할 수 있단 말인가.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정통편이라도 먹어야겠다. 그는 주방 쪽 전등만 켜고 그 불빛을 빌어 랭장고 옆 서랍장을 열고 약상자를 뒤적거린다. 각종 감기약과 소염제가 있다. 그는 하나씩 꺼내 확인해본다. 정통편이 어디 있을 터인데 보이지 않는다. 그때였다. 그 약곽이 눈에 들어온 것은. 약곽의 글자를 확인하는 순간, 그는 가슴이 서늘해졌다. 그는 약곽을 눈앞으로 가져왔다. 다시한번 글자를 확인하고 나서 천천히 손을 뻗어 약곽을 열었다. 약은 반이상 빼여먹은 상태이다. 그는 잠간 주춤하다가 약을 도로 상자에 넣고 서랍장을 닫아버렸다. 우뚝 랭장고 앞에 섰다가 랭장고문을 열고 물병을 꺼냈다. 커다란 사기컵에 가득 차가운 물을 담아 벌컥벌컥 들이켰다. 혼자 사는 녀자가 먹어버린 피임약이라니,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서 있는 바닥이 그대로 밀려나가는 듯했다.
뭔가 희미하던 것들이 또렷해지고 있었다. 일년전 쯤부터였나. 전화를 하면 받지 않다가 다시 지금 전화해줘요 하고 위챗으로 문자가 오던 거며 이제 돌아가서 연길에서 뭐라도 해보고 싶다는 그의 말에 아직은 한국에서 버는 게 낫슴다 하고 한마디의 고려도 없이 보내던 안해의 문자며, 이렇게 오래 갈라져있어서 이제 세식구 같이 있어야 되지 않겠냐는 그의 말에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데뭐 하고 아무렇지 않게 받아치던 것들, 공항에 마중 나온 안해를 보고 전에 비해 옷차림이 지나치게 화려하다고 느꼈던 것, 울리는 전화를 그대로 꺼버리며 사기전화가 너무 많이 온다고 과하게 짜증내던 것, 집안에서도 전화기를 항상 갖고 다니던 것, 순간적으로 불쾌했으나 지나고 나면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시간의 편린들이 한꺼번에 수면 우로 떠오르며 이제 실체가 확실해지고 있었다. 그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들은 결코 아무렇지 않은 것들이 아니였다. 그는 방안을 노려봤다. 희미한 불빛 아래에도 거실은 잘 정돈돼있음을 알 수 있다. 안해는 정리정돈을 잘한다. 텔레비죤도 쏘파도 한치의 어긋남이 없이 반듯하게 놓여있다. 건조대의 빨래도 반듯하게 걸려있다. 안해는 누구한테나 잘 웃어주며 서글서글한 인상이다. 원래 하얀 피부가 좋은 화장품을 쓰며 잘 가꾼 탓인지 탄력 있고 윤기가 흐른다. 무엇보다 아직 젊다. 눈이 있는 사람은 모두 안해를 볼 것이며 안해의 이러한 매력을 느낄 것이다. 왜 이 생각을 못했을가? 왜 그토록 미련하게 돈을 버는 일에만 미쳐있었을가? 한주에 한번 하는 전화통화도 거의 아들애에 관한 거였으며 늘 지쳐있어서 위챗으로도 길게 얘기를 해본 적이 별로 없다. 그는 살가운 말을 할 줄 모른다. 남자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그는 생각했다. 돈을 버는 것만이 가장의 의무이며 책임이라고 생각했었다. 모든 것이 한꺼번에 후회되고 있었다. 그는 머리속이 헝클어진 실타래마냥 마구 엉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눈을 감았다. 그가 서 있는 오른쪽 방에는 사춘기의 아들애가 단잠에 빠져있을 테고 텔레비죤 옆으로 문이 나있는 큰방에는 그의 안해가 잠들어있다. 모든 것이 잘 정돈된 서랍 같은 온전한 가정이다. 그는 이 온전한 가정의 가장이고 남편이며 아버지이다. 그가 악을 쓰듯 지켜내고저 했던 것들이다. 그는 이것들을 이룩하기 위해 모든 걸 희생해왔고 한번도 후회한 적 없다. 언제까지나 후회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런데 이렇게 모든 것이 한꺼번에 후회되는 순간이 오게 된 것이다.
그가 이 가정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엄연하다. 아니, 엄연하다고 믿고 싶다. 이 온전한 것들, 그는 주먹을 불끈 쥐였다. 틀어쥔 주먹 안에서 뜨거운 열기가 차오르고 있음을 느끼며 그는 두려움을 느꼈다. 그 자신은 지금 이 모든 것을 부수어버릴 수도 지켜낼 수도 있다. 모든 것은 그의 손안에 있다. 그 사실을 깨달으며 그는 두려워졌다. 두려움에 뒤걸음질쳤다.
그는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여기가 모아산인가?
십년 전에 비해 눈이 홱 돌아갈 정도로 모아산은 변신해있다.
기차역에 있던 호랑이가 모아산입구에 떡하니 와서 앉아있고 사람 손이 많이 간듯 화단에 꽃이 예쁘게 피여있다. 작은 나무정자도 보인다. 모든 것이 잘 가꿔져있다. 화장실도 번듯하게 세워져있다.
그는 화장실로 들어간다. 번듯한 외관과는 달리 냄새가 진동을 한다. 손을 씻으려고 보니 비누 한쪼각 보이지 않는다. 여긴 겉만 번지르르하네. 그는 중얼거리며 화장실을 나온다. 한참 섰다가 길을 가로질러 나무계단 밑에 이른다. 계단을 따라 오른다. 여름샌들을 신었지만 걷는데 무리가 없을 정도로 계단은 평평하게 만들어져있다. 숲에서 풍겨나오는 아침공기는 제법 시원하다. 앞에서 등산차림을 한 중년 녀자 두명이 팔을 앞쪽으로 내밀어 기역자로 뻗으며 힘차게 걷고 있다. 이 정도 산도 산이라고 옷차림을 갖추고 나왔남. 그는 괜히 아니꼬와진다. 그러고 보니 추리닝에 곤색 반팔티를 입고 샌들을 신은 그가 산에 더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푹 웃음이 나온다. 두 녀자가 쫑알거린다. 한국에 있을 때는 말이야. 그때는 그렇게 연길 오고 싶었는데 오니까 또 가고 싶어. 왜 이런거야? 그래? 실은 나도 그래. 왜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또 가야지? 그럼. 가야지. 아마 그녀들도 그처럼 한국에서 금방 날아온듯 싶다. 하긴 요즘 연변사람치고 한국에 한번이라도 안 가본 사람이 있을가. 그만큼 한국은 가까운 곳이다. 한국에서 돈을 벌고 울고 웃고 그 한국 때문에 그도 촌에서 이 도시로 이사를 오고 아빠트에서 살게 된 것이고 그 한국에서 손가락 세개가 잘렸다. 그 한국에서 보낸 십년동안 그는 일에 목숨 건 사람이 되여있었고 안해는 다른 남자의 품을 그리워한 것이다.
그는 가슴에 통증이 느껴진다.
계단을 오르다가 보니 계단 옆에 크고 작은 돌들이 탑을 이루고 있다. 하나하나씩 쌓은 돌들이 저렇게 탑을 이루다니.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저기에 돌을 올려놓은 거야. 누가 저렇게 소원들을 많이 빌었을가? 무슨 소원을 빌었고 그 소원들은 얼마간이라도 이루어지긴 했을가?
그가 녀자를 본 것은 그 찰나였다. 돌탑으로부터 눈길을 거두던 그 순간, 녀자 하나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언제부터 서 있었는지 그와 대각선으로 서서 돌탑을 바라보고 있는 녀자. 안해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녀자는 작고 마른 체구에 옆얼굴이 까무잡잡하다. 녀자는 무슨 소중한 걸 바라보듯 돌탑을 노려보다가 결심이라도 한듯 한 표정으로 계단을 내려서 돌탑으로 다가선다. 가장 큰 돌탑 앞에 멈춰서서 팔을 한껏 추켜올리더니 꽉 잡았던 주먹을 펼쳐 손바닥 절반도 안될 만큼 작은 돌을 조심스럽게 탑 가장자리에 올려놓는다. 잠간 눈을 감고 기도를 하는듯 서 있던 녀자는 뒤걸음질로 물러서서 다시 돌탑을 바라본다. 그가 녀자를 흘깃흘깃 바라보는 순간 녀자도 그의 시선을 느낀 걸가. 녀자의 눈과 그의 눈이 허공에서 부딪친다. 녀자가 혀를 홀랑 내민다.
돌탑을 바라볼 때 녀자는 세상을 다 살아버린 사람 같은 표정이였다면 그를 향해 혀를 홀랑 내미는 녀자는 아직 때 묻지 않은 무구함을 갖고 있다. 마흔중반쯤 되였을가? 아니 어쩌면 그보다 어릴 수도 더 나이 들었을 수도 있으리라. 녀자 나이란 그렇게 가늠하기 쉬운 것이 아니지를 않은가.
“저기…”
“네?”
녀자가 웃으며 머리를 가리킨다. 그는 얼떨결에 손을 머리께로 뻗었다. 뭔가 뭉클 손에 잡힌다. 손을 내려보니 기억에 가물가물한 나무에 붙어사는 파란 벌레다. 그는 손을 흔들어 털어버리고 게면쩍게 웃었다.
“등산 좋아하시나 봄다. 이 아침에 여기까지 올라오신 걸 보니.”
녀자가 웃으며 말을 건넨다.
“아… 네. 뭐.”
 그가 말끝을 흐린다.
“사실은 머리가 아파서. 아 그게 아니고…”
그는 자신의 답변이 너무 어설프다고 생각하며 과장되게 소리 내여 웃는다.
녀자가 웃어보인다. 돌탑을 다 쌓았으니 볼일을 다 본 모양인지 돌아서서 계단을 가로질러 어디론가 간다. 멀거니 녀자의 뒤모습을 바라보다가 급기야 그는 녀자가 간 쪽으로 걸어간다. 왜 그쪽으로 가는지는 그도 말할 수 없다. 그냥 발이 그쪽으로 갔다라고 하는 게 리유라면 리유가 될 수 있겠다. 아무튼 그는 그렇게 간다. 너무 바싹 따라가면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아 일정한 거리를 두고 녀자의 뒤를 따라갔다.
안해는 지금 쯤 뭐하고 있을가? 아들은 학교에 갔을 테고 안해는 늦은 아침을 먹고 있을가? 이른아침에 집을 나간 그를 생각하고 있을가? 그는 지난 십년을 생각한다. 모든 것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시간이 지났고 안해는 이제 더 이상 그가 이끄는 대로 따라오고 그만 알던 순하디 순한 어린 녀자가 아니다. 막말을 번지기 시작하던 아들은 이제 코밑이 거뭇해지고 묻는 말에 건성으로 대답한다. 그가 비행장에서 훌쩍 커버려 그의 아들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 아이한테 두 팔을 벌려 껴안으려고 했을 때 아이는 어색한듯 고개를 돌렸다. 뭉텅 짤려나간 필름같이 그 십년의 간격을 넘어 어떻게든 앞뒤로 맞추어보려고 해도 도무지 맞추어지지 않는 퍼즐이 그의 현실인 것 같다. 그가 욕망에 몸부림치며 보냈던 그 불면의 밤들에 그의 안해도 욕망으로 달구어진 몸을 뒤척일거라는 생각을 왜 못했던 걸가? 참아야 한다고 이겨내야 한다고 악을 쓰듯 살아온 십년, 과연 무엇을 이겨냈고 무엇을 얻었단 말인가? 그는 답할 수 없어 막연해진다.
어제 밤, 그의 잘린 손가락이 가슴에 닿았을 때 안해는 어떤 느낌이였을가? 방금전 그가 느꼈듯이 벌레가 기여가는 징그러운 느낌이였을가? 안해는 잠간 비껴나갔던 거고 가정을 지키려고 지금 애쓰고 있는 걸가? 만약에 그렇다면 그가 이 화산 같은 마음을 억누르기만 하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걸가? 발밑에 묵은 나무잎들이 밟힌다. 해살이 나무가지 사이로 비춘다. 그는 제법 통이 굵은 나무를 손으로 짚어본다.
그는 자신에게 묻는다. 아무 것도 못본듯이, 아무 의심 없이 모든 것에 태연할 수 있냐고.
그러나, 그는 대답할 수 없다.
고개 들어보니 녀자는 보이지 않는다.
배가 고파난다. 간이의자에 앉았다. 먹을 것은 없다. 그는 물을 한모금 마신다. 식어버려 미지근한 물이 식도를 타고 내려간다. 
 
그는 안해를 처음 만났던 때를 생각한다.
그와 안해는 중매로 만났다. 그때 그는 적은 월급이나마 받는 림업국산하 검측원이였다. 어찌하다 보니 서른을 막 넘기는 차에 친한 형의 안해가 중매를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고 딸 둘이 엄마랑 사는 시골아가씨인데 만나보지 않겠냐고 했다. 장가갈 나이가 찬 로총각인 그에게 이런 중매자리는 고마울 수 밖에 없었다.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게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그는 면도를 하고 최대한 잘 차려입고 아가씨를 만나러 갔었다.
“애기구나.”
안해를 마주한 순간 든 생각이였다. 금방 고등학교를 나왔다는 안해는 솜털이 보송보송했다. 단둘이 마주한 그 시골집에서 안해는 애매한 비자루만 잡고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난 그쪽보다 나이가 열살이나 더 많고 그렇게 돈이 많은 것도 아닌데…”
“성실하신 분이라고 들었슴다. 동생 공부시켜주시고 어머니 돌봐주시면 저는 다른 요구는 없슴다.”
뜻밖에 안해의 목소리는 옹골졌다. 뭔가 단단히 결심한 모양이였다.
그는 안해를 바라보았다. 눈가에 이슬이 촉촉히 맺히고 있었다.
그는 가슴이 뭉클했다. 오죽했으면 저렇게 눈물을 보이랴. 그는 저 아기 같은 녀자의 눈에서 눈물이 나게 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여름에 만난 그들은 몇번의 어설픈, 련애라고도 말하기 힘든 만남을 가지고 그해 겨울 결혼했다. 그는 약속대로 처제가 공부할 수 있게 뒤바라지를 했고 장모님을 가까이 모셔왔다. 그의 집에는 그 외에도 아들이 두명 있었으므로 그는 처가집의 아들이자 사위로 최선을 다할 수 있었다. 그는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였다.
안해는 그런 그한테 고마워했다. 아버지 없는 집의 큰딸답게 안해는 어리지만 철이 든 녀자였다. 아들을 낳고 애기 키우는 일에 열중했으며 살림도 알뜰하게 했다. 그는 행복했다. 언제까지나 그렇게 살기를 원했다. 아기 같은 안해가 옹골지게 살림하고 아이랑 노는 걸 보는 게 기쁨이였다. 그는 여태껏 느껴보지 못한 행복을 느꼈다. 그는 언제까지나 그렇게 살기를 바랐다. 셋이서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서로 마주보며 웃고 밤이면 그와 안해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손을 뻗어 지치도록 사랑을 나누며 그렇게 살기를 바랐다.
하지만 한국바람이 불고 먼저 약삭빠른 사람들이 나가서 돈을 벌어 도시에 아빠트를 사고 이사를 가고 차를 사고 미처 그들이 생각하지 못한 삶을 시작하자 그도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안해는 누구누구네는 시내로 이사간대요. 누구누구네는 아빠트를 샀대요. 우리 건이도 시내 가서 공부시키면 좋을 텐데 하고 언제부터 그를 할깃거리며 넌지시 말을 던져왔다.
“그래, 까짓거 나도 나가보자. 나가서 몇년만 고생하고 오면 될 텐데. 내 자식도 마누라도 남한테 뒤처지게 하지 말아야지.”
어느 푸른 새벽, 드디여 그는 결심했다. 아들애의 볼에 입 맞추고 눈물짓는 안해한테 애써 웃어보이고 돌아서서 그도 눈물을 훔쳤다. 드디여 그도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산을 누비며 림장일로 뼈가 굵은 그에게 한국에서 막로동을 하는 건 남들이 말하는 것처럼 힘든 일은 아니였다. 노가다도 하고 회사도 다니고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빨리 돈을 벌어서 돌아갈 생각으로 그는 일에만 매진했다. 정신없이 일을 할 때는 아무 생각 없다가 일을 끝내고 텅 빈 자취방에 들어서면 쓸쓸함이 한가득 몰려왔다. 그는 이겨내야 한다고 다짐하며 이를 악물었다. 일주일에 한번 집으로 전화를 해서 안해와 아들의 목소리를 들었고 그걸 위안으로 삼아 다시 새로운 일주일을 버텨갔다.
어느 정도 돈이 모여지자 그들은 이사를 계획했다. 그는 작은 아빠트를 사려고 예상했지만 안해가 애가 크면 공부방이 있어야 되고 학교가 가까워야 한다고 우기는 바람에 대출을 해 안해가 원하는대로 방 세칸짜리 아빠트를 사고 시내로 이사왔다. 한층 부담이 커졌지만 그는 묵묵히 일을 했다. 안해가 고생할가 봐, 애가 다른 애들한테 뒤처질가 봐 그는 돈을 버는 족족 안해한테 보냈다. 생활에 쓰고 나머지 돈은 모으라고 했다. 곧 집에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믿었다. 하지만 세상에 뜻대로 되는 일이 있던가. 장모가 뇌출혈로 쓰러졌다. 그동안 모은 돈은 장모의 치료비로 다 들어갔다. 일년후 장모가 돌아갔다. 그는 부랴부랴 청가를 맡고 비행기를 탔다. 돌아와보니 번듯한 집에 현대식 가전, 가구들이 즐비한 집에서 제법 도시티가 나는 안해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들애는 들어올릴 수 없게 커있었다. 안해는 전처럼 돈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먹고 쓰는 물건들은 모두 고급이였다. 그는 그동안 아끼고 아끼며 살아가던 자신을 생각하며 한숨이 나왔다. 돈을 얼마나 더 벌어야 되는 것인가. 아득했다. 안해는 시내로 오니 물가도 비싸고 학원비도 많이 들고 돈이 많이 남지를 않는다고 했다. 안해는 물질적인 것에 눈을 뜨고 있었다. 그는 막연했지만 다른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는 다시 한국행 비행기를 타며 좀더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 외에 그는 다른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는 가장이고 남편이고 아버지라면 이 정도는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언제 집으로 돌아갈지 모른다는 것이 그를 착잡하게 했지만 돈만 더 번다면 그것 또한 곧 이루어질 것이라고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제 돌아가야지.”
그 무렵 그를 다급하게 하던 생각이였다. 그는 초조해지고 있었다. 십년이 가까워온다. 그 사실을 생각하자 그는 더는 지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전화기너머로 아들애의 목소리가 굵어지고 있었다. 부부란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데 어영부영 십년 가까이 되는 시간이 흘렀지 않은가. 지금까지 가정이 잘 유지된 것만도 생각해보면 천만다행이다. 한몫 쥐고 들어가겠다는 욕심은 여전하지만 한집 건너 리혼했다는 세월에 이러다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 아닌가. 그는 남은 시간에 돈을 좀 더 벌고 이제 지체 말고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사고는 귀국을 앞둔 두달전 쯤에 일어났다.
순식간이였다.
돈을 좀더 벌 목적으로 산에서 풀 베는 일을 시작한 지 삼일째 되던 날이였다. 그날따라 몸이 찌부둥했다. 일을 시작해서 얼마 안됐을 때 눈앞에 날아가는 말벌을 쫓느라 고개를 한쪽으로 튼 순간,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면장갑을 낀 손이 제초기에 빨려들어갔다. 억, 신음이 나갔다. 옆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달려와 제초기를 멈추고 그의 팔을 끄집어냈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에 면장갑이 피범벅이 되여버렸고 손가락 쪽이 너덜너덜해져있었다. 그는 그저 멍해있었다. 장갑을 벗고 손가락이 어떻게 됐는지 확인할 용기가 도무지 나지 않았다. 구급차가 오고 병원에 실려 가면서도 그는 그저 모든 게 꿈이기를 바랐다. 기적처럼 손가락에 아무 이상이 없기를 기도했다.
하지만 꿈이 아니였다. 그는 그 순간의 사고로 인해서 손가락 세개가 중간을 짤린 채로 병원문을 나서야 했다. 이렇게 돌아가는 것인가? 그는 무감각한 상태로 십년의 시간들을 보낸 방을 정리하고 아릿한 손가락을 놀려 짐을 쌌다. 산재보험으로 받은 이천만원이 든 손가방을 옆구리에 꽉 낀 채 그는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올랐다. 드디여 돌아가는 것인데 이상하게 모든 것이 아득해지려고 했다. 눈물이 나오려고 해서 그는 눈을 껌벅였다. 비행기 차창너머로 손을 뻗으면 만져질 듯한 하얀 구름이 끝없이 펼쳐져있었다. 이상하게 아무런 마음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구름 우를 걷는듯 꿈과 현실의 경계사이에 있는 듯한 느낌이였다.
 
불쑥 검은 주머니가 그의 눈앞에 들이밀어진다. 고개를 들어보니 아까 보았던 녀자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하심까? 한참 서있었는데도 모르게. 이걸 좀 잡수쇼. 아침도 안 드셨을텐데.”
녀자가 내민 주머니를 엉겁결에 받아들고 열어보니 일회용도시락곽에 김밥이 반정도 남아있다.
“얼른 잡수쇼. 난 배부르게 먹었으니 걱정마시구.”
녀자가 살갑게 권한다. 그는 망설이다가 김밥 하나를 집어 입에 넣었다. 쌀이 퍼진 건가. 김밥은 입안에서 질척거린다. 하지만 배가 고팠던 차라 그는 김밥을 연신 집어 입에 넣는다.
엇.
얼결에 그의 눈이 굳어졌다. 녀자의 유두 한쪽이 빼꼼히 얇은 등산티 우로 솟아올라있다. 스멀스멀 동물적인 남자의 욕망이 뱀이 머리를 쳐들듯 쳐드는 걸 느끼며 그는 민망해졌다. 그는 고개를 돌리고 물을 한모금 마셨다. 녀자는 아무 것도 눈치채지 못한 모양으로 날씨가 너무 덥다면서 손으로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그는 얼굴이 달아올랐다. 녀자의 얇은 옷을 아무렇게나 찢어버리고 새침하게 솟아오른 녀자의 유두에 입술을 갖다대고 걸탐스럽게 탐하고 싶어졌다. 녀자를 쓰러뜨리고 등산객들이 다 뒤집어지게 녀자의 속옷까지 찢어버리고 싶어져 얼굴을 붉혔다.
“잘 먹었습니다, 배가 고팠는데.”
그는 괜스레 녀자한테 미안해졌다.
“뭐하는 분이심가? 주말도 아닌데 이 아침에 등산 다니시는 걸 보니 출근하시는 분은 아닌 것 같구.”
녀자는 샐쭉 웃어보이더니 말끝을 흐리며 그의 얼굴을 살핀다.
“그럼 그쪽은 뭐하는 분임가? 아침에 밥도 안하고 이렇게 나오시구.”
그는 녀자의 얼굴을 흘깃 살폈다.
“아. 뭐 좀 함다. 장사를.”
“아…”
녀자는 그냥 봐도 장사를 하는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어딘가 어수룩해보인다. 사회경험도 많아 보이지는 않는다. 어쩐지 녀자는 가정주부가 더 어울릴 것 같다. 그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 초면에 너무 자세히 물어보는 건 실례인 것 같아 말끝을 흐린다.
“저기 내려가서 식사하러 안 가시겠슴가? 김밥도 잘 먹었는데 밥 한끼 사기쇼.”
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런 말을 내뱉었다.
녀자는 대답대신 웃더니 먼저 앞서서 내려간다.
몇시 쯤 되였나. 해빛이 델 것 같이 뜨겁다. 이 녀자는 뭐하는 녀자인가? 그냥 봐서는 시골아낙네같이 어수룩해보이는데 이른아침에 밥도 안하고 산에 와서 돌아다니고, 그렇다면 챙겨야 할 식구가 있는 녀자는 아닌듯 싶고. 그건 그렇고 지금 나는 제정신인가? 멀쩡한 안해를 집에 두고 처음 본 녀자 뒤꽁무니나 따라가고, 멀쩡한 안해, 갑자기 그는 도망치고 싶다. 모든 현실에서 도망쳐 멀리멀리 떠나버리고 싶다.
그는 하늘을 쳐다본다. 파란 하늘은 건뜻 들려있다. 화창한 날씨이다. 잔등이 축축해난다. 이마에서 땀이 뚝하고 떨어진다. 그는 손등으로 땀을 훔치며 걷는다. 녀자의 뒤를 따라 산을 내린다. 뻐스정류소에 이르러 녀자와 한걸음 떨어져 서서 그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본다. 점심때가 다 되는 시간이였다.
 
“아…”
그의 입에서 탄식처럼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그러니까 이게 절대로 다단계는 아님다. 뭐 내가 다단계를 소개하겠슴가. 그냥 1688원 주고 가방이나 이불세트 사면 자기 가게 하나 가진단 말임다. 면세점 물건이고. 이보쇼. 물건이 영 좋슴다.”
녀자는 핸드폰을 그에게 내밀었다. 가방이며 향수며 진렬된 인터넷가게다.
“정말 이건 첨에만 투자하면 그담에는 누워서 자는 시간에도 돈이 술술 들어옴다. 내 밑에 누가 가입하면 가입비 들어오고 내가 물건 사도 돈이 들어옴다. 나두 몰랐는데 친한 친구 이거 한단 말임다. 그래가지구 친구 소개로 가입해봤는데 아직 나는 돈은 못 벌었슴다. 친구는 돈을 마이 범다. 나두 지금 열심히 노력하는 중임다. 같이 해보지 않겠슴가? 아무래도 집에서 쓸 게 많잼가. 그런거 사면서 또 돈도 번단 말임다. 한국에랑 가서 죽게 일해서 돈 버는 건 정말 우둔한 짓임다. 다들 형세를 몰라서 그랜단 말임다. 이제는 한국 가지 마시구 요거 하쇼. 그래구 다른 것도, 내 항목 몇개 소개해드릴게. 다 친구 하는겜다. 몇개만 하면 정말 앉아서 돈 벌게 된단 말임다.”
이게 말로만 듣던 다단계라는 건가? 녀자의 얼굴은 발갛게 상기되여있다. 녀자의 말투는 자신 있지 못하다. 약간 더듬거리면서 그에게 자신도 딱히 모르지만 친구는 돈을 잘 버는, 소위 앉아서 누워서 돈이 들어오는 일을 설명하고 있다. 녀자가 못 먹는다고 돈 랑비하지 말라고 극구 만류해서 명란볶음 하나에 오이랭채만 시켰었는데 그마저도 반도 축나지 않고 있다. 애초부터 녀자는 먹는 것에 관심이 없었던 걸가.
그는 아까부터 맥주 한잔을 놓고 홀짝거리는 녀자의 잔을 채워주고 자신의 잔에 맥주를 넘치게 부었다. 잔을 들어 단모금에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마음이 평정을 찾고 있었다.
“내 화장실 좀 다녀오기쇼.”
녀자한테 량해를 구하고 그는 화장실로 갔다.
오줌줄기가 길게 뻗어나간다. 녀자는 이 일을 금방 시작한 게 틀림이 없다. 누구를 속일 만큼 절대 영악해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속히우기 쉽게 순해빠진 인상이다. 무슨 사정이 있는 것일가? 남편이 없어서 혼자 벌어서 살아야 되는 녀자인가? 녀자가 지금 하고저 하는 것이 무엇이면 어떠한가. 다단계라도 좋다. 어쨌거나 녀자는 저토록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삶에 애착을 가지고 애쓰고 있다. 그는 지난 십년간 아침마다 깨여나면 오늘 하루도 열심히 돈 벌자고 웨치던 호기롭던 자신을 생각한다. 자칫 잊을 번했던 단단했던 자신을 떠올린다. 그는 마음이 저릿저릿해난다. 이름 모를 녀자는 그가 잊고 있었던 그의 내면의 것들을 깨우고 있었다.
뇨도에 마지막 남은 한방울까지 짜내고 그는 지퍼를 잠그고 돌아섰다.
녀자는 그가 음식값을 지불하는 동안 밖에 나가 기다리다가 그가 나가자 어색하게 웃으며 어디 가서 커피라도 하고 말끝을 흐린다. 녀자는 그새 브래지어를 정돈해서 티 우로 크지 않은 가슴이 얌전하게 내밀어져있다. 아까 산에서 녀자의 반팔티 우로 솟은 유두를 마주했던 그 격정은 온데간데 사그라들고 없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던 누이동생이나 오래된 친구처럼 그는 녀자가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는 다음에 봅시다 하면서 녀자한테 웃어주었다. 녀자도 별 뜻 없이 한 말인듯 푹 웃더니 고개를 숙여보이고 돌아선다. 그는 녀자의 뒤모습을 바라본다. 작고 마른 녀자의 걸음걸이는 뜨거운 해빛 탓인지 지쳐보인다. 그는 녀자의 신발이 많이 닳아있음을 느낀다.
 
 
그가 추적추적 걸어서 집에 돌아왔을 때, 안해는 어데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집은 아침에 청소를 한듯 바닥이 알른알른하게 닦여있다. 식탁에 씌워져있는 흰색의 보자기를 거두자 정갈한 반찬이 차려져있다.
더운 날에 맥주를 마셔서인지 숨이 차다. 그는 주방에 우뚝 섰다. 그가 밖에서 헤매고 있는 동안 여기에는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들이 있었다. 그가 헛헛한 마음을 달랠 길 없어 몸부림치고 있을 때 적어도 그를 기다리는 것들은 존재했다. 아니, 있었다고, 존재했다고 이 순간 믿고 싶다. 뭉텅 잘려져 나간 필림 같다고 여겨졌던 십년, 도무지 맞추어지지 않는 퍼즐 같아 그가 절망했던 그 십년은 그냥 잘라져 나간 것만은 아니라고 이 순간, 그는 굳게 믿고 싶다. 
그는 핸드폰과 지갑을 식탁에 놓고 빨래건조대에서 팬티를 집어들고 화장실로 갔다. 입었던 옷을 모조리 벗어 세탁기에 처넣고 갈아입을 팬티는 세탁기 우에 놓고 샤와기를 집어들었다. 윽. 그는 짐승 같은 소리를 낸다. 물이 너무 차가워서이다. 세수비누로 온몸에 비누칠을 하고 몸을 문질러댄다. 형편없이 쪼그라든 그의 남자는 수도꼭지처럼 얌전히 고개를 떨구고 있다. 그는 손을 뻗어 천천히 그의 남자를 문질러 씻는다.
손가락 세개는 잘려나갔지만 아직 엄지와 새끼손가락은 붙어있다. 그는 새끼손가락을 쳐들어본다. 적당히 굵은 그것은 너무 멀쩡하다. 그는 세상을 향해 유혹하듯 그것을 까댁까댁해본다. 웃음이 나온다. 새끼손가락으로 세상을 향해 푹 찔러보고 싶어진다. 그는 주먹을 쥐여본다. 엄지가 세개의 잘린 손가락을 감싸고 새끼손가락이 받쳐주어 하나의 주먹이 만들어진다. 그것은 세상 어디를 향해서든 충분히 내지를 수 있는 주먹이였다.
그는 어깨를 펴고 몸을 곧게 핀다. 그때, 그의 남자가 빼꼼히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아직 완전히 죽지는 않았다고, 죽었다고 생각할 때에도 사실은 안에서 멀쩡하게 살아숨쉬고 있었다고 시위라도 하는 듯했다. 그는 까댁까댁하면서 머리를 들고 있는 그것을 멀거니 바라본다.
어디서 개업이라도 하는 걸가. 밖에 폭죽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탕탕탕. 탕탕.
그는 샤와기를 끄고 조용히 소리들에 귀를 기울였다. 밖에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 자동차의 경적소리, 아직 끝나지 않은듯 퉁탕하고 끊기다가 또 울리는 폭죽소리가 들려온다.
그 모든 소리들을 들으며 그는 그렇게 주먹을 틀어쥐고 거인처럼 우뚝 서 있었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0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10 [작가평]고향의 개울물은 오늘도 소리내여 흐른다 2019-07-19 0 411
9 [단편소설] 손가락 감싸면 주먹인 것을 -김경화 2019-07-18 0 410
8 [수필] 길목에 서서 2019-07-16 0 394
7 [중편]알바트로스 2019-07-15 0 271
6 [중편]사랑한 죄 2019-07-14 0 267
5 삶의 대화 2019-07-09 0 252
4 [중편] 겨울개구리 2019-07-09 0 211
3 [중편]언니 2019-07-08 0 240
2 [단편] 적마(赤馬),여름 지나다 2015-07-22 0 999
1 아버지의 유산-김경화 2012-11-19 2 1224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